2020/11/19

希修 - 적잖은 여성들이 걷게 되는 인간관계 테크트리 . . 사실 남성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여성에겐...

(7) 希修 - < 적잖은 여성들이 걷게 되는 인간관계 테크트리 > . . 사실 남성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여성에겐...


希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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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잖은 여성들이 걷게 되는 인간관계 테크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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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남성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여성에겐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봉사적이어야 한다"라는 기대와 억압이 가해지고 대개의 경우 그걸 다소라도 내면화, 스스로 강제하게 되기에 여성에 한정했음. 남성들에겐 또 다른 고유한 고충들이 분명 있을 텐데 나는 잘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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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맑~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태석 신부님처럼 살고자 하는 '노력'은 최소한 하면서 산다고 믿고 본인도 그렇게 살으려고 노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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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집 안에서든 집 밖에서든 '착하게' 살수록 오히려 점점 더 채무자 취급 받음. 여기서 깨닫지 못 하고 멍청하게 '어, 어..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가?' 하면서 넘기다 보면, 상태 더 안 좋은 사람들만 점점 엮여 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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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온갖 피해의식과 원한으로 가득찬 사람(*)이 가여워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면 저럴까. 나라도 얘기좀 들어 주면 나아지려나' 싶어, 평균 하루 30분씩 단 하루도 안 거르고 6개월간 글자 그대로 감정쓰레기통 (수십년간 축적된 온갖 정서적 피고름 받아 주는) 역할을 해 줘도, 심기 거스르는 단 한 마디 '말실수' (그 사람이 듣기 싫어한 얘기)하고 나면 그 순간부터 원수취급 받음. 그 사람의 정신건강 상태가 나아지기라도 했다면 보람이라도 있으련만, 6개월동안 그 사람은, 내가 보여 준 공감을 지렛대 삼아 자기 '서사' (실제 일어난 사건들에 자신만의 주관적 해석과 망상이 결합하여 발효까지 일으킨, 의도적 거짓말은 아닐지언정 '객관적 사실/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그 본질일 수밖에 없는)를 스스로 믿는 확신만 점점 더 강해졌고 그러면서 분노와 원망을 오히려 증폭시켰으며, 내게 남은 건 피폐해진 정신건강과 상대방으로부터의 원수취급 뿐임을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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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상처 입었을 때 반창고 붙여 주는 정도 이상의 '도움'을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성인들 사이에선 '오만'일 뿐임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help one another so that one can help oneself 에 불과함을, 실은 부처님조차 남을 '구원'하긴 커녕 그저 가르침을 남겼을 뿐 남의 상처를 치유해 주거나 남의 업/근기를 변화시켜 주거나 하지 못 하셨음을 비로소 깨달음. (이 시점 즈음에 神에 귀의하는 사람들도 있음. 충분히 이해 가고도 남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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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패잔병처럼 너덜너덜한 상태가 되어 그제라도 *와의 관계로부터 발을 빼려고 하면, *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마치 입양된 아이가 양부모에게 버림이라도 받았다는 듯이 행동하고, 제3자들로부터 "아, 난 자세히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은데, *의 분노/눈물 감당하고 싶지 않으니 니가 어떻게 좀 해라. 너는 쟤보다 나은 상황이니 걍 니가 더 감당해라" 류의 요구를 받게 됨. 나의 입장을 묻거나 걱정하는 말 단 한 마디 없이, 다짜고짜 저런 요구부터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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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남에게 털어 놓을 수라도 있는 고민은 사실 가벼운 축에 들며, 누구나 나이 들면서 인간혐오 시기를 겪게 됨. 마음의 벽을 쌓고 경계의 날을 세우고 지내는데, 이 생활이 몇 년 계속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외로움도 함께 자라나며, 세 갈래로 나뉘어지는 기로 앞에 서게 되는 시점이 대개 4말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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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첫번째 선택지. 5번의 생활을 고집하면서 외로움으로 인해 정서적 불균형과 인지적 왜곡이 진행됨. 더 좁은 우물을 더 깊이 파고들어 가면서 *의 모습으로 점차 변해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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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두번째 선택지. 외로움을 감당하지 못 해 가끔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노력을 하지만, 스스로 자기 껍질 안에만 머무르니 인격적 만남이나 진정한 소통은 불가하고, 그럼에도 다른 방법을 찾지도 못 해 상대만 바꿔 가면서 이런 무의미한 표면적 관계들을 지속함. 실제로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으며, 정신적 수준은 영원히 '나만 정상이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비정상'의 상태로 남음. 아이러니한 것은, 부모님의 인격 수준이 그 세대 평균을 초과할수록 오히려 이런 미성숙에서 평생 못 벗어날 확률도 높아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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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난 날들을 곰곰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과거에도 현재에도 탐진치 덩어리일 뿐이며, 그렇다면 나 역시 어떤 사람들에게는 내가 *로부터 받은 대접/상처 비슷한 것들을 분명 주었겠구나 (의도적이 아니었기에 내 기억에 선명하지 않을 뿐) 하는 자각이 들기 시작함. 즉, 개개인의 문제라기 보다 그저 종의 문제인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아예 처음부터 *처럼 정신이 망가진 사람들, 자신의 친딸을 수십년간 성폭행하는 사람들, 보험금이나 주택청약을 위해 아이를 입양했다가 '목적달성' 후엔 그 가여운 아이를 때려서 죽이기도 하는, 그런 사람들을 부모로 두기도 한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서.. 내 부모는 저 정도는 아니었기에 내가 내 세대 평균은 되는 정신건강을 유지하며 자랄 수 있었음을, 그리고 어떤 우여곡절을 거쳤든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도 저런 수준과는 비교도 안 되게 훌륭한 사람임을 진심 감사하게 됨.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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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사람들처럼 될 수도 있고 이태석 신부님처럼 될 수도 있고 이런 가능성들을 모두 갖고 있는 것이 그저 인간임을 ('본성'이라는 것의 존재를 부처님은 부정하셨음), 더이상 토달지 않고 깨끗이 받아들임. 선한 면을 키우고 악한 면을 제어하기 위한 노력은 개인 차원에서도 사회 차원에서도 계속해야 하겠지만, 착했든 멍청했든 자기 삶 전체에 대한 감당도 책임도 결국 혼자 해야 한다는 것이 '고통 많은 인간계에 태어난 댓가'라고 승복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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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면, 전엔 '당연한 매너'라 여겼던 대다수 인간들의 '정상적' 행동 하나 하나가 오히려 반짝 반짝 빛나 보이고 그 개인 역시 appreciate 하게 됨.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자기중심적 혹은 이기적인 면이 보일 때는 잠시 짜증났다가 이내 impersonal 해짐. 진짜 악의적인 범죄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기대가 없다면 미움도 생겨날 일이 없으며, 악의도 없건만 결과적으로는 좀비처럼 남들에게 폐만 끼치고 다니는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탐진치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가 스스로 되고 말기에, 그런 점에서 그 사람에 대한 연민과 '저 사람이 조금 달리 생각/행동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도 생김. 그러나 이런 '여유'는 나 자신 안전할 때에만 가능한 사치라는 것 또한 이젠 알기에,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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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의 덜떨어진 이해 수준에서는, 이런 태도가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mettā/goodwill과 upekkhā/equanimity이며 또 가장 현실적인 삶의 태도 아닌가 싶다는. 모든 인간을 무조건 신뢰하거나 무한정 사랑하는 일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고 결국 神에 대한 믿음과 神으로부터 받는 능력에 의지해야만 가능할 것 같은데, 전지전능 완전무결 오로지 평화와 사랑뿐인 그런 神의 존재가 내게는 보이지도 믿어지지도 않으므로.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그 누구에 대해서도 personal한 미움은 최소한 갖지 않는, 그저 이 정도 수준이라도 지키며 사는 것이 목표. 인간에 대한 기대가 높을수록 그 낙차로 인한 충격과 상처와 원한도 필연적으로 깊을 수밖에 없고, 1,000명이 노력하여 단 한 명이 이태석 신부님처럼 되는 것인데 그 와중에 인간좀비들에 의해 망가지거나 희생되는 999명에 대해서는 세상 누구도 관심 갖지 않고 어느 종교도 책임져 주지 못 하므로,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 자신의 탐진치/좀비성이나 걱정하며 살기로. 그리고 나 또한 갖고 있는 나의 서사들은 가끔 들여다 보며 거르고 또 거르다가, 결국 몇 알갱이만 남게 되면 그땐 후~하고 바람에 날려 보내는 것이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최선이라는 사실도 배워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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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 성수진 일단 흔적부터 남깁니다^^~
    그냥;; 잘 계시지요?
    이곳의 가을도 깊어갑니다_()_
  • Sungsoo Hong 글에 공감도 되고 반성도 되는구나. 언제쯤 탐진치의 침범에 움츠리는 수비태세가 아니라 좀 자유로운 경지에 이를까.. 언제쯤 후~ 하고 바람결에 날려 보낼 크기의 알갱이가 남게 될지.. 서사의 gain 보다 진실의 gain이 더 크게 보일지.. 하는 아득함도 든다.
    • 希修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지금 여기 내 마음에 존재하는 탐진치만 노려보기. 지금 이 순간 이 한 호흡에만 집중하기. 그게 mindfulness.. ^^
    • Sungsoo Hong 希修그리고, 산전수전 겪고 앞서 수행하고 함께 수행하는 친구가 있다는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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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希修
    Favourites · 7 May ·



    < 용서와 자비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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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적 아닌 개인적 차원에서의 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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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khanti / forgiving / 용서: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다면 무수한 윤회동안 원한도 영원히 되풀이될 뿐이므로, 그 소모적인 무한반복을 중지시키기 위해 원한을 접는 것. 댓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는 마음의 포기를 의미할 뿐, 관계 회복이나 화해와는 별개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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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mettā / goodwill / 慈: 상대방이 지혜를 통해( =업의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탐진치를 줄여 나감으로써) 스스로!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기를 기원하는 마음. 상대방을 내 행동의 수혜자로 대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 운명의 주체로서 존중해 주는 것. 아비담마를 번역하신 각묵스님은 mettā를 '성냄 없음'으로 정의하셨음. 즉,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원하는 대로 해 주거나, 즐거운/편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의 일은 mettā의 핵심과는 무관하다는 얘기. (부정적인 방향으로 치우치기 쉽도록 인간이 진화해 왔기에 한 번쯤! 긍정적인 쪽으로도 생각해 보는 교정의 노력이 필요할 뿐, '긍정적' 자체가 목적/善임 것은 아님.) 본질적으로 감정도취=자기도취를 수반하며 서로를 옭아매는 온갖 기대, 원망, 집착, 소유욕 등으로 귀결되기도 너무 쉬운 pema / love / 사랑을 부처님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으셨음. 밥을 먹으면 똥이 남고 사랑을 하면 미움과 고통과 흐려진 정신이 남는다고 말씀하셨음 (b1). (mettā를 'lovingkindness'로 번역하기 보다, Thanissaro 스님처럼 'goodwill'로 번역하는 것이 적확하다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 b2) 하지만 동시에, 강도가 자신의 팔다리를 하나씩 잘라내고 있는 와중에도 상대에 대해 유지해야 하는 태도가 mettā임. "네 행복은 네 손에 달렸으니, 업/윤회로부터 벗어나는 지혜로운 삶을 니가 살기 바란다"라는 진심만 유지한다면, 누군가와의 인연을 놓아 보내더라도 慈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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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인간관계의 만병통치약이 못 되는 이유: #16, 17.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24975830206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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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1) #10~30: Unsentimental Goodwill. What the Buddha said about 'love'. Emotional/sentimental love or naive positive thinking about human nature is not the way.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media_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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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2) "If you truly feel mettā for yourself and others, you can’t let your desire for warm feelings of love and intimacy render you insensitive to what would actually be the most skillful way to promote true happiness for all."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72471653124917&set=a.1042727616099321&type=3&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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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karuṇā / compassion / 悲: 상대방이 지혜를 통해 스스로! 고통/불운을 종식시키기를 바라는 마음 or 그 과정에서 상대방을 돕고자 하는 의지. 즉,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적용한 mettā. 아기가 죽어 울고 있는 여인 Kisa Gotami에게 부처님은 따뜻한 위로 대신 "마을에 내려가 일가 친척 누구 하나 죽은 적 없는 가문을 찾아 내어 그 집에서 겨자씨를 빌려 가져오라"는 말씀을 하셨음. 그동안 윤회해 온 억겁의 세월에 비하면 이승에서의 100년은 찰나에 불과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교하는 자체도 무의미하니, 이런 괴로움이 싫다면 더이상 헤매지 말고 어서 해탈하라는 뜻. 불교의 karuṇā는 상식적 의미의 '연민'/'공감'과 다름. 틱낫한 스님은 karuṇā는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마음( =상대방의 고통이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 하셨고 (c1), 에크하르 톨레 역시 함께 슬퍼하거나 괴로와하는 행위는 공감이 아니라고 말함 (c2). 환자의 질병을 질병으로 정확히 진단하고 처방을 알려 주는 것이 의사가 환자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의 연민/공감이지, 환자의 질병에 속상해 하고 함께 울어 주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 아님. (물론, 상대가 나의 소견/처방을 원하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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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1) 'Compassion' usually means that you suffer together, but 'karuṇā' does not. A physician needs to understand his patients, but, if he suffers with his patients, he won't be able to help them. ... ... A bodhisattva should be able to have the kind of love (such) that (she) can (be) happy for her and understand the suffering of other people, in order to be able to help them out ... ... If you are a psychotherapist and if you have enough joy, love, patience and understanding in you, ... you won't be overwhelmed by the suffering of those who come to you. -- Thich Nhat Hanh

    https://www.youtube.com/watch?v=C-wa1cvoJI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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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2) A true compassion is not about commiserating. Avoid commiserating with other people’s problems, so that you don’t get caught in their mental construct. -- Eckhart Tolle

    https://www.eckharttollenow.com/new-home-video/default.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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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muditā / empathetic joy / 喜: 상대방이 지혜를 통해 스스로! 지은 행복에 대해 함께 기뻐하는 마음. 즉, 행복 속에 있는 사람에게 적용한 mett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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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 upekkhā / equanimity / 捨: 현재의 노력만으로 당장 달라질 수 없는 부분 (현재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도 더이상 희석되지 않는 과거 업의 결과, 타인의 선택 등)에 대한 인내심, 어리석음을 고집하는 이에 대한 평정심. 예를 들자면, 도박 끊을 생각조차 아예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대신, 도박을 끊으려는 노력을 하기는 하는데 아직 못 끊고 있는 사람이나 도와 주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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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 31 윤회계의 모든 존재들에 대해 무한정으로 베풀어야 하는 마음이라는 뜻에서 자비희사의 넷을 四無量心이라고 부르는데, 이 넷과 용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 '공감', '착함', '좋은 관계' 등과 일치하지 않음. 우리는 또 부처님을 한없이 온화한 분이셨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달랐음. 부처님과 대화중 자기 자신의 모순을 깨달아 민망하여 부처님의 질문에 대답않고 우물쭈물하는 사람에게 "여래가 물을 때 대답 않으면 그 머리가 7조각으로 쪼개질 것이다"같은 무시무시한 말씀도 하시고 (f1),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시는 부처님의 말씀을 Udāyin이 중간에 끊자 옆의 제자 Ānanda에게 "Ānanda야, 이 쓸모 없는 인간 Udāyin이 내 말 끊는 것좀 보렴"같은 말씀도 하심 (f2). 상대방이 당장 감정적 '상처'를 입더라도 잘못된 견해/태도는 분명히 지적하여 바로잡아 주는 것이 진정한 자비요 연민이라고 생각하셨음 (f3). 바로 이것이, 당신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 극소수에 불과할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부처님이 장장 45년동안이나 때로는 야단을 치고 때로는 더없이 신랄한 비판을 해 가면서 상세한 가르침을 펼치신 이유. 이게 부처님의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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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1) "If you don't answer, or evade the issue, if you keep silent or go away, your head will split into seven pieces." -- DN3, Ambaṭṭha 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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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2) "Look, Ānanda, at how this worthless Udāyin interrupts." -- MN136, Maha Kammavibhanga 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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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3) #68~69: Compassion.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097318147306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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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 사무량심과 용서는, 업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이해만 하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귀결되는 태도. 따라서 "불교 수행의 두 축은 지혜와 자비"라는 얘기에서 '지혜'와 '자비'는 사실상 동의어나 다름 없음 - 자비는 지혜의 당연한 결과이기에. 한 사람의 업과 관련한 문제들은 그 자신의 수행에 달렸을 뿐, 그 누구도, 심지어 부처님조차 어떻게 도와 줄 방도가 없다는 것이 불교의 기본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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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希修 added 194 new photos to the album "Skill in Questions" by Ṭhānissaro Bhikkhu.
    Favourites · 9 May


    #7~14: Right Spe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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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36: Socrates and the 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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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64: The Buddha encouraged judging yourself and others. You can forgive once you judge accurat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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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66: Right speech can be har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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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67: Kar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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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69: Compa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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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73: Integ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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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93: Orthodoxy, criticisms and discussions. The Buddha's criteria for conversation/debate partners.
    (#90~92: Only one path to the top of the mountain, only one 'right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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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98: Cross-questioning, Socrates and the 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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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102: Choosing and judging a tea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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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113: Cross-questioning and judging one's own thoughts, words and actions is THE 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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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129: How a sense of self is helpful/useful and not a problem.
    (#120~122: How one's practice benefits others, how interconnectedness is taken care of in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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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 Heedful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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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134: A wise person's prac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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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136: Wrong livelih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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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140: Rebirths of an actor and a person with a wrong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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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 Agnos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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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146: Four Inconceivab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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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150: The questions to be put a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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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172: Four major contexts in which questions were put aside.
    (#155~159: Oneness vs. duality/plurality.
    #161~168: Existence vs. non-existence, self-made vs. other-made, ultimate/absolute truth vs. conventional truth.
    #169~172: language, concepts, 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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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3~186: Attitudes required on the path.



    6You, 崔明淑, Sungsoo Hong and 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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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希修 부처님이 pema/사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으신 것도 이런 감정도취=자기도취의 측면 때문 아니겠는지.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있으므로 미화할 만한 대상은 아니라는 뜻일 뜻. 중요한 건 unconditional, universal한 mettā/goodwill/慈이고..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0222711853961669&id=113364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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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최근 수정 시각: 2020-11-14 


분류 가톨릭 수도사제대한민국의 가톨릭 신부대한민국의 가톨릭 선교사살레시오회 수도자의사1962년 출생서구(부산) 출신 인물
이름
이태석(李泰錫)
세례명
세례자 요한
출생
1962년 10월 17일[1], 경상남도 부산시 남부민동[2]
사제서품
2001년 6월 24일
선종
2010년 1월 14일 (향년 47세)
직업
가톨릭 수도사제[3], 수단 톤즈 선교병원 원장
소속
살레시오 수도회
병역
대한민국 육군 대위 만기전역(군의관)

1. 개요
2. 생애
3. 사후
4. 저서 및 작품



1. 개요[편집]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거룩한 학교, 내 집처럼 정이 넘치는 그런 학교 말이다.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의 저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中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가톨릭 신부이며 수도자. 세례명은 요한 세례자. 수단 현지에서의 애칭은 요한(John)과 성씨 이(Lee)의 합성어인 '쫄리'. 수단 아이들이 계속 "존 리", "존 리"하면서 부르는 게 그런 발음으로 굳혀진 듯하다.

1990년대부터 내전 중이었던 수단에 파견, 2001년부터 2008년까지 7년여간 봉사활동을 하며 체류했으며, 이 시기 행한 수단에서의 여러 선행과 공적들로 가톨릭 뿐만 아닌 타 기독교 종파와 타 종교, 무종교인들에게도 큰 존경을 받고 있다.

대중적으로 수단의 슈바이처로 알려져 있으나, 한국 가톨릭에서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살레시오 수도회를 설립한 성인 돈 보스코(요한 보스코)의 이름을 따 수단의 돈 보스코라 칭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는 슈바이처는 가톨릭이 아니라 개신교 신자, 그것도 목사였으므로 이태석 신부에게 붙이기는 조금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기 때문. 하지만 돈 보스코 성인이 슈바이처에 비해서 덜 알려진 탓에, '수단의 돈 보스코'라는 호칭은 천주교도 사이에서 주로 통용되고 있다.

살레시오 수도회는 이태석 신부의 소속 수도회이기도 한데, 선종 직전 곁을 지키고 있던 수도회 수사들에게 '어젯밤 꿈에서 돈 보스코가 나를 축복했습니다'라는 말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본인이 소속된 수도회의 설립자에게 인정받은 셈이다.


2. 생애[편집]
1962년
10월 17일 부산 출생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991년
살레시오 수도회 입회
1992년
광주가톨릭대학교 입학
1994년
첫 서원[4]
1997년
로마 유학(교황청립 살레시오 대학교)
2000년
종신서원(로마), 부제 서품(로마)
2001년
사제 서품(서울), 아프리카 수단으로 출국
2005년
제7회 인제인성대상 수상
2009년
제2회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 수상
2010년
1월 14일 대장암으로 선종
2010년
12월 제1회 KBS 감동 대상 수상
2011년
7월 15일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2018년
11월 20일 남수단 대통령 훈장 추서
johnlee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가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 다녔던 송도성당

1962년 10월 17일에 부산에서 출생하였다. 천주교 부산교구 송도본당[5] 출신이다. 여기서 알로이시오 슈월츠 몬시뇰 신부에게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미국인인 알로이시오 신부는 훗날 이태석 신부가 톤즈에서 봉사한 것처럼 6.25 직후 피폐해진 당시 최빈국 한국에서 몸 바쳐 봉사한 인물로, 이태석 신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교황청에서 2015년에 가경자로 선포되었다.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홀어머니가 삯바느질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특히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게다가 음악에도 재능을 보여 어린 시절 성당에서 풍금을 독학으로(!) 익혔다고. 직접 작사, 작곡을 할 정도라고 하니, 공부 잘하는 데다 음악까지 잘하는 보기 드문 인재.

특히 초등학교 시절 성당에서 보여준 성 다미안 드 베스테르 신부[6]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보고 그와 같은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였다고 한다. 이후 중학교 3학년 때 작곡 작사한 성가 <묵상>을 통해 자신의 삶을 그려내었다. 이 곡은 1998년 수원가톨릭대학교 갓등중창단 첫 번째 앨범 <내 발을 씻기신 예수>에 소개되었다. 여기서 들을 수 있고 가사는 다음과 같다.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만 하느냐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 말씀하셨지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 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7] 1981년에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87년 의사 면허를 취득한다. 이후 육군 12사단에서 군의관[8]으로 복무하면서 신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졌다고 한다. 전역 후인 1991년, 이탈리아인 성 요한 보스코 신부가 설립한 대표적인 자선 수도회인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다시 공부하여 2001년 6월 24일 사제서품을 받았다. 당시 그의 서품식을 집전한 이는 다름아닌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었다. 본 문서의 위에 올라온 유튜브 영상의 1분 10초 부분에도 나온다. 오늘날 한국천주교회의 큰 자랑이자 존경을 받는 두 사제의 놀랄 만한 인연이었던 셈.[9]

보통 사람보다는 늦은 시작이었지만 그의 신앙과 덕행은 남달랐다. 사제서품을 받은 직후 아프리카 케냐로 건너갔다가 얼마 안 되어 더 위험하고 어려운 지역인, 20년 동안 내전이 계속되었던 수단(현 남수단 지역)으로 건너가 의료활동을 시작하였다. 열악한 수단의 환경 속에서도 병원을 손수 만들었고, 나병 혹은 문둥병이라 불리는 한센병 환자들과 결핵 환자들을 보살피며 지속적인 예방접종 사업을 벌였다. 특히 발가락이 뭉그러진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그들의 발에 맞춰 특수 제작한 신발을 선물하기도 했다. 또한 1주일에 1번씩 오지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동진료를 하면서 8년을 지냈다. 여기에 내전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받을 미래 세대들을 걱정하며, 손수 학교와 기숙사를 짓고 수학을 가르치기에 이른다. 거기다 아이들을 모아 악단을 만들고 지휘자를 맡기까지 했다. 이때 브라스밴드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 당연히 없었기에 스스로 교본을 보고 배워서 아이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10]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5장 40절)
위와 같은 성경 구절을 자신의 목숨처럼 여기며 의료활동을 해나가던 2008년 10월, 2년마다 한 번씩 들르는 한국에서 휴가차 건강검진을 받던 중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말기 암 선고를 받고도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해서 주변 사람들이 뜯어말리느라 고생하였다고 한다. 담당 의사에 따르면, 말기암 선고를 받자마자 "톤즈에서 우물 파다 왔어요. 마저 다 해야 하는데…"라며 실의에 빠졌다는데, 본인이 암 판정을 받아서 그런 게 아니라 앞으로도 봉사활동을 계속하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으로 보였다고 한다. 판정 직후 인터뷰에도 병명은 숨긴 채로 미소를 띄우며 담담하게 봉사활동 및 지원 호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 이후에도 투병 중에 톤즈로 몇 번이고 다시 가려고 했기 때문에 그때마다 주변에서 말렸다고 한다.[11]

투병 중에도 자선 공연도 하고 각 지역의 성당을 직접 찾아가서 봉사활동과 지원을 호소하였지만, 결국 암이 간으로 전이되어 2010년 1월 14일 새벽 5시 35분, "Everything is good."[12]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47세를 일기로 선종하였다.[13] 임종을 지켜본 수녀에 따르면 선종 몇 시간 전부터 의식이 희미해져서 손 하나도 제대로 못 움직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돈 보스코!" 라고 외쳤는데 돈 보스코는 자신이 속해 있는 살레시오 수도회의 창립자이자 수호성인이다. 수녀는 이태석 신부에게 "돈 보스코 성인이 앞에 보이시냐"고 물었고, 이태석 신부는 고개를 약하게 끄덕였다. 그 다음 손을 들어 모여 있던 살레시오 수도회 수도자들에게 강복을 해준 다음, 위의 유언인 "Everything is good" 을 남기고 선종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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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의 얼굴 부분이 나중에 영정사진이 되었다.

3. 사후[편집]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에 복원된 생가와 그 옆에는 이태석신부 기념관이 세워졌다.

2010년 4월 11일 방영된 KBS 스페셜 <수단의 슈바이처, 故 이태석 신부>와 이를 재편집해 2010년 9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로 한국에 이름이 알려졌다. 사실 그전에도 여러 성당을 돌며 모금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이 영화가 개봉된 후 "그분이 그분이셨구나!"라는 반응을 보인 신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2011년 2월까지도 장기 개봉 중이며 단 몇 개 상영관 개봉 체제에서도 40만이 넘는 관객이 보았다. 자세한 정보는 해당 문서를 참조.

씁쓸한 사실도 있는데, 수단 현지에서 몇몇 한국 사업가들이 이태석 신부로 인하여 높아진 한국의 인지도를 믿고 들어가 여러 가지 사기사건 등을 저지르고 있어, 이태석 신부의 노력과 한국인에 대한 평판을 땅에 떨어지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단에서의 사기사건은 TV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따로 다뤄지기도 했다.

2011년 행정안전부에서는 정부포상 국민추천제를 시행하였는데, 이 제도를 통한 첫 번째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이후 정부에서는 매년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2018년까지 최고등급 국민훈장인 무궁화장을 수여 또는 추서받은 사람은 이태석 신부가 유일하였다.[14]

2011년 12월 15일 바티칸 교황청 내 비오 10세 홀에서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울지마 톤즈>가 공식 상영되었으며, 선종 5년이 지나면 시복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울지마 톤즈>를 연출한 구수환 PD가 2012년에 쓴 책인 <울지마 톤즈-그후의 선물>을 보면 여전히 열악한 남수단 내부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책자를 보면 이태석 신부가 도왔던 현지인들은 하느님을 원망하면서 "우리가 서로 싸우고 죽게 하곤 왜 쫄리[15] 신부님을 데려가느냐"면서 울부짖으며 "그분만큼 우릴 돕던 분이 없어요"라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16] 고인을 잘 알았던 선배 성직자들은 '이룬 것 없고 나이만 먹은 나를 데려가시지 않고, 앞으로도 할 일이 많고 나이도 젊은 이태석 신부를 먼저 데려가셨다'며 슬퍼했다. 이태석 신부가 자비를 털어가며 운영하던 병원은 이태석 신부와 같이 병원 일을 돕던 다른 한국인 신부가 남아서 하고 있는데 "정말 이태석 신부님이 하던 일을 도저히 못 따르겠다"고 할 정도였다.

이태석 신부의 선종 소식이 알려지고 톤즈를 비롯한 많은 현지 주민들이 이태석 신부를 애도하는 가두행진을 벌였는데, 워낙에 시국이 불안한 곳이라 시위나 행진 같은 집단행동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음에도 군인이나 민병대원 누구도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그들도 이태석 신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

더불어 이태석 신부를 종교적으로 괜시리 욕하는 이들이 아직도 보이는데, 그는 절대로 그런 찌질이 종교 장사꾼이 아니었다. 생전 가톨릭 신자만이 아닌 무슬림, 토속신앙인, 개신교 신자 가리지 않고 모두 돌보았다. 민병대원도 치료하여 그들이 너무나도 고마워하며 이 병원 근처에는 스스로 전투를 벌이지도, 얼씬거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개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당을 짓기 전에 병원과 학교부터 세워야 하는 걸 거듭 강조한 성직자이다. 고인의 뜻을 기리는 사단법인 이태석 사랑나눔을 봐도 스님도 있고 종교를 초월하여 충분히 존경할 만한 가치가 넘쳐흐르는 사람이다. 물론 이태석 신부는 엄연히 살레시오 수도회에 소속된 사제이며, '종교가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식의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태석 신부는 '사제이지만'이 아니라 '사제였기에', 종교와 인간이 모순을 가지는 상황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자신의 행동을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거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른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2013년 9월 22일 한가위 특선으로 KBS-1에서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브라스 밴드 한국에 오다!>가 방영되었는데 바로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에서 처음으로 만든 밴드가 이 브라스 밴드이다.

2016년 8월 KBS 뉴스를 통해 이태석 신부가 지은 학교의 제자들의 근황이 보도되었는데, 이들은 한국에서 의학과 공학을 배우고 있다. 토마스 타반 아콧과 존 마옌 루벤 두 사람은 2018년 1월 15일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태석 신부의 후배가 되었다.

2017년 1월 산티노 뎅씨가 충남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태석 신부 선종 후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지원으로 한국에 왔고, 2015년 충남대 토목공학과로 편입해서 졸업하였다. # 또, 2018년 12월 21일 토마스 타반 씨가 드디어 졸업하고 정식 의사가 되었다. 아프리카 출신자가 한국 의대를 졸업하여서 의사가 된 건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2019년 1월 존 마옌 씨도 같은 의대를 졸업하고 정식 의사가 되었다. 의사의 길을 택한 두 사람은 수련의 생활을 끝내는 대로 남수단으로 귀국하여 현지 병원을 개원할 예정이다.

2018년 11월 20일 남수단 정부가 이태석 신부에게 대통령 훈장(Medal of the President)을 추서했다. 남수단 정부가 외국인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것은 건국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2020년 1월 중에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를 맞아 <울지마 톤즈2>가 개봉한다고 한다.

2020년 2월 그의 제자 존 마옌 루벤(1986년생) 이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2020년 7월 9일 사는 곳이 다르며 의사, 약사, 공무원, 언론인 등이 된 제자 70명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영화 <부활>이 개봉됐다. <울지마 톤즈>의 후속작이다. #1 #2


4. 저서 및 작품[편집]

  • 생활성가 - "묵상" (성 바오로 출판사) 1998년
  • 자서전 -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쫄리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 (생활성서사) 2009년
  • 자서전 -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증보판" (생활성서사) 2010년
  • 강론집 - "당신의 이름은 사랑(톤즈의 돈 보스코 이태석 신부 영성의 메시지)" (다른우리) 2011년
  • 만화 - "내친구 쫄리 신부님 1" (생활성서사) 2011
  • 다큐멘터리 - "울지마 톤즈" 2010년
  • 영화 - "울지마 톤즈 2: 슈크란 바바" 2020년
  • 영화 - "부활" 2020년

[1] 음력 9월 19일.
[2] 현재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
[3] 일선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신부들은 교구에 소속되어 있는 교구사제다. (혹은 재속사제라고도 하는데, 한국 가톨릭의 경우 수도사제가 본당을 맡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태석 신부는 수도회에 소속되어 있는 수도사제이다. 수도사제는 '수사신부', '성직수사'라고도 부른다. 한편 수도회에는 성품성사를 받은 성직수사 외에도, 성품성사를 받지 않은 평수사(남성 수도자)도 있다.
[4] 수도자로 살겠다는 약속. 청빈, 정결, 순명의 복음삼덕(福音三德)을 서약한다. 자세한 것은 수도자 항목 참조.
[5] 부산관광고등학교와 송도중학교 인근에 위치. 성당 근처에는 이태석 신부의 생가가 복원되어, 여러 사진과 유물과 영상이 전시되어 있으며 관광객들이 간간이 방문햐다.
[6] 성 다미아노 신부라고도 한다. 하와이의 한센병 환자를 위해 사목활동을 하다 결국 한센병에 걸려 1889년 선종했으며,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2009년 시성되어 한센병 환자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7]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 시행 이후다. 1974년 서울과 부산에 전국 최초로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가 적용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부산고등학교와 함께 부산의 일류 명문 고등학교였다.
[8] 행군 훈련 끝날 때마다 발 다친 병사들이 많아 고생했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웬만한 육군 군의관들에겐 죄다 해당되는 사항이다.
[9]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불과 1년 차이로 선종했다. 2009년 2월에 김수환 추기경이 노환으로, 이듬해인 2010년 1월에는 이태석 신부가 암투병 끝에 숨을 거둔 것.
[10] 아이들은 브라스밴드에 큰 애착을 갖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이태석 신부에게 빨리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하고 싶다고 하자, ‘먼저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단다.’ 라고 말한 일화도 있다.
[11] 이를 두고 "만약 자신의 몸 상태를 전혀 알지 못하고 계속 톤즈에서 봉사를 했다면 오히려 건강이 악화되는 일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간혹 나온다. 아주 적은 사례이긴 하지만, 이런 치명적인 중병을 품고도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의외로 오래 사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
[12]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다." 혹은 "모든 것이 다 좋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3] 나중에 남수단을 취재한 <울지마 톤즈 그 후 이야기>라는 책자에서 말라리아로 다 죽어가는 현지인 환자를 본 한국인 의사가 "이태석 신부님 마지막 모습이 바로 저랬습니다..." 이라며 병명은 다르지만 삐쩍 마른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했다고 회고하는 게 나온다.
[14] 2019년 이국종 교수가 2번째 무궁화장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15] 이태석 신부의 영어 이름이 요한을 나타내는 존, 즉 존 리였는데, 존 리라는 이름이 쫄리로 불리게 된 것이다.
[16] 톤즈 마을 주민들은 눈물을 보이는 걸 수치스럽게 여기는데, 이태석 신부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얼마나 톤즈 사람들이 이태석 신부를 따랐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이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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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 이태석 신부
성직
사제서품 2001년 6월 24일
서울대교구
수여 김수환
개인정보
출생 1962년 10월 17일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선종 2010년 1월 14일 (47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안장지 담양군 천주교 공동묘역 살레시오 성직자 묘역 북위 35° 22′ 15″ 동경 126° 57′ 56″좌표: 북위 35° 22′ 15″ 동경 126° 57′ 56″
국적 대한민국
가족 누나 4명, 형 4명, 남동생 1명
학력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졸업
경남고등학교 졸업
Picto infobox military.png 이태석
생애 1962년 10월 17일 ~ 2010년 1월 14일(48세)
출생지 대한민국 부산시 서구 남부민동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부모 신명남(모)
배우자 無(미혼)
친척 누나 4명, 형 4명, 남동생 1명
복무 대한민국 육군
복무 기간 1987년 ~ 1990년
최종 계급 대한민국 육군 대위
근무 군의관
지휘 군의무장교
기타 이력 천주교 사제
수단 톤즈 돈보스코 미션 선교병원 원장
이태석(李泰錫, 1962년 10월 17일(음력 9월 19일) ~ 2010년 1월 14일)은 대한민국의 살레시오회 소속 사제 겸 의사로 아프리카 수단 남부(현재는 남수단)의 와랍 주에 있는 마을인 톤즈에서 교육 활동과 의료 활동을 펼치다가 2008년 11월 한국에 휴가차 입국하였을 때, 대장암 4기를 진단받아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고 2010년 1월 14일 암투병 끝에 선종하였다. 선종 직전에 "Everything is good!"라는 말을 했다고 동료 수도자들이 증언한다.


목차
1 별칭과 명성
2 생애
2.1 출생과 성장
2.2 청년기
2.3 사제 생애
3 사후 봉사단체 난립
4 기타
5 소속
6 학력
6.1 비학위 수료
7 수상 경력
8 저서
9 이상은 살레시오회 이태석위원회의 정식 감수를 받은 자료이다
10 이태석을 연기한 배우
11 노래
12 사후 기념
13 각주
14 같이 보기
15 외부 링크
별칭과 명성
세례명은 요한, 별칭은 수단의 돈 보스코(수단의 슈바이처)[1]로 칭송되었고, 톤즈 마을 사람들은 그의 세례명에 성을 더해 발음하기 쉬운 ‘파더 쫄리’(존 리John Lee) 신부로 불렀다.

생애
출생과 성장
부산시의 남부민동에서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나 송도성당에서 알로이시오 슈왈츠 신부로부터 유아세례를 받았다. 9살 되던 해(1970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며, 어머니가 자갈치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해서 아이들을 키웠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교회에서 하와이의 몰로카이 섬에서 버림받은 한센병 환자들과 산 벨기에 선교사 다미안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모로카이(MOLOKAI)를 보고 다미안 신부와 같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2] 학창시절에는 송도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 청년회, 학생회, 성가대, 복사(사제를 돕는 역할) 등 종교 활동을 계속 하였다.[3]

청년기
1981년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가톨릭 사제가 되는 뜻을 품었다. 복무를 마치고 특히 청소년교육에 대한 깊은 관심에 따라 1991년 8월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한다. 그리고 1992년 광주가톨릭대학교에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1993년 1월 24일 수련을 시작해서 1994년 1월 30일 첫 서원을 하고, 광주 가톨릭 대학교에서 2년 철학과정을 마친 후 서울 대림동 살레시오 수도원에서 역시 2년 과정의 사목실습을 하였으며, 1997년 로마 교황청립 살레시오 대학교로 유학한다. 그곳에서 재학 중, 한국에서 이미 20년 동안 선교사로 활동하다 1991년 아프리카 수단으로 다시 파견된 공고미노 수사가 로마에 휴가차 들렀을 때 그를 만났는데 그로부터 수단의 이야기를 듣고 선교사가 될 것을 권유받는다. 1999년 방학 때 선교체험을 하러 아프리카 케냐에 들렀을 당시 남수단 톤즈에서 활동을 하고 있던 제임스라는 인도 출신 살레시오 수도회 신부를 만나 톤즈로 가게 되고, 이때 강렬한 인상을 받아 톤즈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한다.

사제 생애
2000년 4월 27일 종신서원을 하고, 2000년 6월 28일 로마에서 부제서품을 받았다. 2001년 6월 24일 서울 구로3동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같은 해 10월 아프리카를 향해 선교사로 출발하여 12월 7일 아프리카 남부 수단 와랍 주 톤즈에 부임한다. 그곳에서 가난과 기아, 질병 등으로 도탄에 빠진 마을의 참상을 보게 되고, 그곳에서 선교활동을 겸한 의료봉사활동과 구호운동에 헌신한다. 병실 12개짜리 병원을 짓고[4] 진료소를 만들어, 하루 200~300명의 환자를 돌보며 인근 80여개 마을의 순회진료와 예방접종도 했다. 학교를 만들고, 초·중·고교 12년 과정을 꾸려 수학과 음악도 가르쳤다. 기숙사도 짓고 톤즈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악기도 가르쳤다.

나로 하여금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 한 채 이곳까지 오게 한 것도 후회 없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존재를 체험하게 만드는 나환자(한센인)들의 신비스러운 힘 때문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게 된다.
— 이태석,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중[5]
그러나 2008년 11월 한국에 휴가차 잠시 입국하였을 때, 대장암 4기를 진단받아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암투병 끝에 2010년 1월 14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새벽 5시 35분에 살레시오회 형제들과 가족들 그리고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종하였다(향년 48세). 유해는 전라남도 담양군 천주교 공동묘역 살레시오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그의 이야기는 살레시오회 잡지 《살레시오 가족》과, 까리타스 수녀회의 《생활성서》에 연재되었고, 《친구가 되어주실래요》라는 단행본으로도 소개되었다.

사후 봉사단체 난립
사후 이태석 신부의 이름을 건 단체가 나타나, 그의 소속 수도회인 살레시오회에서는 수회에 걸쳐 상업적 이용을 금하라는 경고를 하였다. 엉뚱한 사람 혹은 조직에서 상업적 이득을 보는 것이 그릇됨은 물론, 그의 정신에 대한 훼손, 그의 삶에 대한 모든 것이 잘못 다뤄지기 때문이다. 살레시오회측에서 수차례 경고한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태석 신부를 팔지마라" 살레시오회 강력경고

수도생활을 봉사로 격하하는 문제
이태석 신부의 행위는 살레시오 사제의 신분으로 수도회의 명을 받들어 지킨 숭고한 수도생활이다. 이것을 단순한 자원봉사자의 '봉사'로 격하하고 있다. 사후 난립한 단체들이 이태석 신부의 활동을 수도생활이 아닌 봉사로 격하하는 것은 천주교 수도회에 대한 기본적 지식조차 없다는 반증이다.
톤즈 사람들에 대한 그릇된 인지
사후 난립한 단체들은 이태석 신부의 사후 톤즈가 더욱 가난해지고 곤궁해졌다는 식으로 홍보하는데, 이 역시 이태석 신부의 생전에 추구하던 활동방향과 정반대의 주장들이다. 톤즈 사람들이 이태석 신부를 존경했던 것은, 이전 봉사단체에서 로테이션으로 근무하던 의사들과는 달리 이태석 본인이 자기 자신을 톤즈 사람들과 동일한 인간이란 자세로 접근하였기 때문이다. 톤즈 사람들은 못살고 불쌍하니 우리가 일방적으로 구휼해야할 미천한 존재로 보는 것은 이태석 신부의 유지로 볼 수 없는 자세이며 이태석 신부가 가장 싫어하던 시선이다.[6]
기타
이태석은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으나 가난하여 성당에 있는 오르간으로 독학했다. 이뿐만 아니라 첼로, 색소폰, 클라리넷 등도 독학으로 연주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탄’, ‘둥근 해’, ‘작은 별’ 등 쉬운 동요를 작곡했으며, 중학생 때에는 부산시에서 작곡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중학교 시절 지은 곡으로 ‘묵상’(청소년 성가에 수록), ‘새 아담을 찾아서’와 의대 재학시절 작곡한 ‘아리랑 열두고개’, 2005년 남북 수단이 평화협정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감격에 싸여 지은 ‘슈쿠란 바바’(하느님 감사합니다.)가 있다.[7]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오~오~오 /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님 말씀하셨지./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평화 위해. /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 묵상
소속
살레시오회 소속 선교사(Salesians of Don Bosco, 돈 보스코의 살레시오회: 청소년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가톨릭 활동수도회, 전세계 130개국 1만 5천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두번째로 큰 수도회)
천주교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파견 선교사
마지막 사목지: 前 수단 톤즈 돈 보스코 선교병원 원장
학력
천마초등학교 2회 졸업 (1975년)
경남고등학교 35회 졸업 (1981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의학사 졸업 (부산백병원 인턴수련)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신학 학사 졸업
비학위 수료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립 살레시오 대학교 신학 수료
수상 경력
2005년 제7회 인제인성대상(인제대학교와 인제학원에서 수여) 수상
2007년 제23회 보령의학 봉사상 수상
2009년 제2회 한미자랑스런의사상(대한의사협회와 한미약품에서 수여) 수상
2010년 제1회 KBS 감동 대상(KBS에서 수여) 추서[8]
201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저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출판사 - 생활성서, 2009년):이태석 신부가 생활성경에 연재한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증보판》(출판사 - 생활성서사, 2010년)
《당신의 이름은 사랑》(출판사 - 다른우리, 2011년): 2004년부터 2008년 사이에 남수단 룸벡교구 톤즈에서 이뤄진 강론이 담겨 있다.
《내 친구 쫄리 신부님》(출판사 - 생활성서사, 2011년 원작 이태석/글·그림 신명환): 만화로 만나는 이태석 신부
이상은 살레시오회 이태석위원회의 정식 감수를 받은 자료이다
이태석을 연기한 배우
이지훈 - 인순이의 토크 드라마 그대가 꽃
노래
작곡집, ‘쫄리신부님의 노래’
음반, ‘슈쿠란 바바’
사후 기념
2010년 9월, 이태석 신부의 헌신적 삶을 그린 영화 《울지마, 톤즈》가 개봉되었다. 2011년 1월 14일에는 선종 1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는 추모제가 열렸다.
1999년 12월 24일 오후 4시 KBS tv에서는 《성탄특집 이태석 신부 세상을 울리다 - 수단의 슈바이처 故 이태석 신부. 울지마, 톤즈》가 방송되었다.[5]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구수환 프로듀서는 제20회 한국가톨릭매스컴 대상을 받았으며, 대상 상금 전액을 아프리카 톤즈 병원에 기부했다.[9]
2011년 6월 1일 고 이태석 신부를 기리기 위해 ‘이태석 기념사업회’가 창립되었다.[10] 12월 홍보대사로 배우 안재모가 위촉되었다.[11]
2011년 외교통상부가 이태석 신부의 봉사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태석상을 제정했다. 2011년 11월 23일에 첫 수상자로 2003년부터 아프리카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 의료봉사를 해온 외과 전문의 이재훈(44)씨를 선정했다.[12]
2020년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 사업 요약: 2020년 1월 9일 "울지마 톤즈2: 슈크란 바바" 개봉 예정(KBS미디어 제작, 살레시오회 제작지원 및 감수)
2020년 1월 12일 "이태석 선종 10주기 기일미사: 광주 살레시오고등학교 -> 전남 담양 천주교묘역"
2020년 1월 14일(화) 이태석 기념관 개관(부산광역시 서구 톤즈공원 내 위치), 부산 서구청 건립, 살레시오회 위탁 운영
각주
 우리들의 형제 이태석 신부님이 살아 계셨다면, 수단의 슈바이처라는 명칭보다 수단의 돈보스코라는 명칭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살레시오 회원들은 단언한다.
 노재현 기자 (2010년 12월 24일). “다미안과 이태석”. 중앙일보. 2011년 1월 28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이태석목사님소개”. (사)이태석신부참사상실천사업회. 2012년 6월 19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이지연 기자 (2010년 1월 21일). “‘한국의 슈바이처’ 살레시오 수도회 이태석 신부의 생애”. 가톨릭뉴스. 2012년 6월 19일에 확인함.
 함태수 기자 (2010년 12월 24일). “‘살아있는 예수’ 故 이태석 신부 삶, 영화 TV다큐로 감동릴레이”. 마이데일리. 2011년 1월 28일에 확인함.
 뉴스1 살레시오회 "고(故) 이태석 신부의 톤즈 공동체, 상업적 이용 중단하라"
 이태영 (2010년 6월 13일). “사제 이태석”. 가톨릭신문. 2016년 3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6월 19일에 확인함.
 ““울지마 톤즈” 故 이태석 신부, KBS 감동대상 수상”. 한국경제. 2010년 12월 24일. 2011년 1월 28일에 확인함.
 오혜민 기자 (2011년 1월 23일). “다시 시작하는 이태석 : 그 시간 이후”. 가톨릭신문. 2016년 3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6월 19일에 확인함.
 “'울지마 톤즈' 이태석 신부 기념사업회 창립”. 연합뉴스. 2011년 5월 31일. 2011년 6월 24일에 확인함.
 이태석 기념사업회 안재모씨 홍보대사로
 이지혜 기자 (2011년 12월 4일). “제2의 이태석 신부 찾아”. 평화신문. 2012년 6월 19일에 확인함.
같이 보기
샘 칠더스
알베르트 슈바이처
장기려
장가용
외부 링크
이태석신부님 수단어린이장학회
이태석신부참사랑실천사업회
이태석신부사업기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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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선 (지은이)추수밭(청림출판)2020-09-24 

종이책 페이지수 244쪽,

2020/11/18

[알라딘서재]신약만이 기독교의 성경이다

[알라딘서재]신약만이 기독교의 성경이다


하나님의 진심 - 구약 성경, 천천히 다시 읽기
엘렌 데이비스 지음, 양혜원 옮김 / 복있는사람 / 2017년 9월
평점 :






이 책을 통해 구약성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이런 책을 읽으면서도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구약과 신약의 구분이다. 이를 구분하지 않고

구약의 여호와 신과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 하나님으로 지칭하듯이

구약의 여호와가 기독교가 믿어야 하는 신인줄 알고 있다.



여호와는 유대민족의 신이다. 유대인의 신일 뿐이다. 예수는 이런 민족신을 섬긴 것이 아니다. 어떻게 예수의

기독교 신이 하나의 민족신일 수 있는가? 구약은 신약을 잘 이해하기 위해 참고하라고 덧붙인 것이다. 성경을

처음 만들 때 실은 예수의 말씀을 담은 신약만을 바이블로 만들었어야 했다. 그런데 구약을 덧붙인 것은

신약을 정확히 이해하라고 구약을 함께 엮은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가 착각을 했다. 구약도 신약에 버금가는

예수의 진리가 담긴 성서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신은 예수가 섬긴 신이 아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그냥 아버지라고 지칭했을 뿐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기독교가 왜 유대인의 민족신인 여호와를 섬기는가? 미쳤냐? 남의 나라 이스라엘의 신을, 왜 다른

민족의 신을 믿는가? 독일인이 단군신을 믿으면 이게 정상인가? 여호와는 단군신 같은 일개 민족신을 믿는가?



구약을 읽을 때는 이런 사실을 염두해두고 참고나 하는 것이지 구약의 내용을 예수의 진리고 기독교의 신이

던진 진리라고 믿으면 안된다. 그런데 기독교가 이천년동안 여호와를 예수의 신이라고 믿는 착각을 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구약의 여호와와 여호와가 내린 율법은 그당시 유대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계율이다.

그래서 예수가 율법주의를 부정하고 사랑을 선포한 것이다. 구약의 율법대로라면 법을 어긴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어진다. 율법은 형식주의윤리다. 이런 형식주의는 사랑의 논리가 아니다. 예수는 용서해주라는 사랑을

선포했는데 구약에 의하면 율법을 어기면 사형이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그게 여호와의 논리다.



예수는 이런 여호와의 논리를 부정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것이다. 여호와는 예수의 신이 아니다.

구약은 기독교의 성서가 아니다. 신약만이 성서다. 구약은 참고만 하라. 구약에 있는 내용을 들이대면서 그대로

살아야 된다고 우기면 안 된다. 구약에 동성애자는 돌로 처죽이라고 나왔다고 해서 기독교가 이대로 믿으면

안된다. 저런 계율은 당시 유대인에 내린 유대민족의 신의 계율이다. 기독교의 계율이 아니다. 기독교가 구약의

모든 율법에 쫄 필요가 없다. 십계명은 구약에만 있는게 아니라 다른 모든 민족에게 있는 법들이다. 특별난게

아니다. 이를 형식적으로 그대로 적용하면 안된다. 구약은 신약이 아니다. 기독교는 신약만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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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서재]재벌만 배불리는 설법 =법륜 스님의 행복 - 행복해지고 싶지만 길을 몰라 헤매는 당신에게

[알라딘서재]재벌만 배불리는 설법

재벌만 배불리는 설법 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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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one l 2017-01-19 14:54
https://blog.aladin.co.kr/768304183/9065750 



법륜 스님의 행복 - 행복해지고 싶지만 길을 몰라 헤매는 당신에게
법륜 지음, 최승미 그림 / 나무의마음 / 2016년 1월
평점 : 
 


불교는 이렇게 말한다. 일체유심심조. 모든 게 내 마음이 지은 것이다. 이 말은 맞기는 한데 잘못 이해하면, 모든 게 내 책임이다, 는 식으로 된다.

중들은 이런 불교의 깊은 깨달음을 일반인에게 설법하면서 더 구체적 분석을 안 해준다. 그래서 일반인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든다. 그전에 김수환도 다 내탓이오, 뭐 이런 개소리를 한 적이 있다.

생각해 보자. 이재용이가, 삼성이 뇌물을 써서 자기 이익을 취했다. 최근에 삼성이 이재용을 이건희 회장자리에 앉히려고 편법으로 합병을 했고 그러기 위해 국민연금 오천억을 날려버렸다. 국민은 오천억을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날린 것이다. 오로지 이씨 집안의 회장자리 세습을 위해. 자, 그러면 이게 누구 탓인가?

오천억을 잃은 사람들 탓인가? 그 사람들이 이건 모두 내 탓이다, 모든 게 내 책임이다, 이러고 있어야 할까? 

서민이 못 사는 게 자기 능력이 없어서이건 어째건 다 자기 책임이니 자기 위안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

삽성 같은 대기업이 부정을 저지르면 그것은 단순히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거대기업이 불법과 부정부패로 쓰레기 같은 짓을 하면 고스란히 국민 전체에게 피해가 간다. 그런데 삼성뿐 아니라 에스케이 현대 등 거의 모든 대기업이 정경유착으로 뇌물을 주고 특권을 받는 짓거리를 한국에서는 당연한 듯이 저지르고 있다.

이번에도 이재용은 400억이 넘는 돈을 박근혜 최순실에게 주었다. 이 돈은 이재용의 돈이 아니다. 삼성의 돈이다.

삼성은 이건희의 소유물이 아니다. 이씨는 자기가 가진 주식만큼만 소유자다. 삼성의 주식을 가진 주주 모두가 삼섬의 주인 오너다. 이건희만 오너가 아니다. 삼성이 동네 구멍가게냐?

삼성의 경영자, 이건희 이재용이 경영을 잘못하면 이는 경영자 자신의 책임이다. 이게 누구 탓인가? 삼성주식 천만원어치 가진 주주 책임인가? 주가가 떨어지면 경영자인 회장 책임이다. 그게 왜 내 책임인가?

청년 실업율이 최고라고 한다. 그러면 이게 누구 책임인가? 각 개인의 능력 탓인가? 경제를 망친 집권당인 새누리당, 바른당과 박근혜 정권의 책임이 제일 크다. 이번 국정농단으로 드러난 문제는 박정권, 집권 당사자들의 무능력과 비도덕적 행태로 인한 것이다. 경제는 파탄나고 중소기업이 다 무너지고 대기업 또한 경영실적이 악화되고, 이로 인해 일자리는 엄청 줄어들고, 젊은층의 실업률 문제는 개인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구조적 문제로 인한 것이다. 개인이 스펙을 더 늘려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청년실업이 과연 누구 탓인가? 내 탓인가?


일체유심조는 이런 뜻이 아니다. 이것은 인생 전체와 우주적 깨달음과 관련한 것이지 구체적 사안에 관한 것이 아니다. 중이 나와서 이런 식을 잘못 전달하면 청년들이 자기 탓만 하면서 해결책을 오로지 일개인의 문제로 오도하게 된다.

청년 실업이 해결되려면 국가경제가 살아나야 한다. 경제가 살려면 제대로 된 정권을 세워야 한다. 대기업이 뇌물로 경영하는 악행을 끊게 만들어야 한다. 대기업이 이씨집안이 스스로 정신차리고 도덕적인 주체로 거듭나게 하라는 말이 아니라, 이건 또다시 개인주체[자율] 탓을 하는 것이다, 그들이 도덕경영을 하게끔 법[타율]을 엄격하게 적용하라는 말이다. 이재용이 뇌물을 주었다면 그에게 도덕적인 인간이 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저 법대로 뇌물죄를 적용해서 징역 때리면 된다.

어떤 불법사항에 대해 그 개인에게 도덕적으로 살라고 양심을 추궁하는 방법과 법을 적용하여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불법행위는 법을 어긴 것이다. 그래서 불법이다. 불법행위를 형법으로 다루지 않고 개인의 양심을 물어 반성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이다. 즉, 불법을 저지르기 전에는 그 개인에게 도덕적 설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불법행위가 저질러진 뒤에는 형법을 바로 들이대야 한다. 

저자는 또 사람들에게 탐욕을 버려라, 욕망을 끊으라고 한다. 만족에 행복이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이런 말은 없는 사람에게 할 설법이 아니다. 10대 재벌 앞에서 할 설법이다. 그리고 재산이 10조면 안 되는가?
지금 어떤 자가 재산이 1억이다. 이 사림이 앞으로 5년 안에 20억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이러면 안 되는가? 도대체 중들이 욕심, 욕망을 버리는 말이 무슨 뜻인가? 이런 원론적인 말은 완전히 맞는 말이거나 아무 쓸모 없는 말이다. 

없는 사람 앉혀놓고 욕망을 끊어라? 말이라는 것은 그 대상, 듣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맞는 말도 되고 틀린 말도 된다.

욕심을 버리라는 말은 이씨 집안 사람들에게 할 말이지 거지 노숙자에게 할 말이 아니다. 사회적으로는. 이런 식의 설법은 모든 사회적 문제를 일개인의 수양에 책임을 돌려 사회구조적 문제를 덮어버리는 잘못을 하게 된다.

형법을 적용하고 사회구조를 바꿔야 할 문제를 일개인의 양심의 탓으로 돌려 근본적으로 해결하게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해쳐먹는 재벌은 이런 식의 설법을 아주 좋아한다. 모든 책임을 서민 개인의 문제로 돌려 자기들의 악행을  은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는 정치 사회철학을 안 하기 때문에 인간의 문제를 모두 개인문제로 돌린다. 그러나 연기설법에 의하면 일체법이 연기되어 있다. 사드를 배치하면 중국수출하는 사업자가 다 망한다.

일본의 자위대가 커지면 독도는 일본 땅이 된다. 다 연결되어 있다. 일개인 탓만 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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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서재]구약의 신은 예수의 신이 아니다

[알라딘서재]구약의 신은 예수의 신이 아니다



구약의 신은 예수의 신이 아니다 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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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one l 2016-12-20 21:57
https://blog.aladin.co.kr/768304183/8992373



한 역사학자가 쓴 성경 이야기 : 구약편
김호동 지음 / 까치 / 2016년 11월
평점 :






역사학자의 구약 해설서로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기독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종교다. 예수의 행적, 말씀과 그 제자의 편지들이 신약으로 되어 있다.

구약은 예수 이전에 있었던 문서자료다. 그런데 구약과 신약을 하나로 묶어놓는 바람에 기독교는 구약도

예수의 하나님 아버지와 관련된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구약은 유대민족의, 유대교의 종교역사를 기록해

놓은 것이다. 야훼는 유대민족의 민족 신이다. 모든 민족에는 그들만의 종교가 있고 그들만의 신이 있다. 한민족의 신은 야훼인가? 물론 아니다. 야훼는 일본의, 게르만족의 신도 아니고 유대민족의 신이다.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이 초기 기독교부터 구약의 신 야훼를 예수의 신으로 믿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고

이 이후 기독교는 아직도 자기의 신을 야훼라고 착각하고 있다.

예수는 신약을 보면 한번도 자기의 하나님을 야훼로 부른 적이 없고, 신약에는 한번도 야훼라는 말은 안 나온다.

예수와 그 제자들은 자기의 신이 야훼가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성경을 처음 만들 때 구약을

신약과 붙여놓는 실수 아닌 실수를 함으로써 기독교인이 자기 신을 야훼로 부르게 되었다.



구약의 신, 아훼는 예수의 신이 아니다. 기독교의 신이 아니다. 예수는 야훼신을 부정한 한 사람이다.

구약의 야훼는 유대민족에 갇혀있는 민족신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그 성향이 너무 복수의 신념에 불타고 있다.

사람을 외치는 예수의 말씀, 복수가 아니라 원수도 사랑하라는 진리에 야훼는 전혀 맞지 않는 신이다.

예수가 유대의 민족신을 부정했기 때문에 유대인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다.



예수의 진리는 유대인만의 진리가 아니다. 전 우주를 포괄하는 진리다.

구약은 신약을 이해하기 위한 참고서로서 보면 되는 것이지, 구약의 내용이 모두 기독교가 믿는 신의 역사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야훼는 기독교의 신이 절대 아니다.








[알라딘서재]예수가 말한 진리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 그대 가슴에 뿌려지는 사랑의 씨앗들 오쇼 지음,

[알라딘서재]예수가 말한 진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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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말한 진리는 무엇인가 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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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one l 2016-10-07 18:50
https://blog.aladin.co.kr/768304183/8817465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 그대 가슴에 뿌려지는 사랑의 씨앗들
오쇼 지음, 김석환 옮김 / 티움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예수에 대한 이미지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가린 측면이 있다. 예수하면 사람들은 교회를 떠올리고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만을 생각한다. 기독교가 예수를 아주 모른다고 할 수는 없으나 기독교가 예수를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기독교는 예수의 한 측면을 잘 알고 있을 뿐이다.

예수의 진리가 무엇인지는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예수를 기독교가 말하는 천국행 구원자로만 알면 안 된다. 그렇다고 지상에 이루어질 유토피아를 꿈꾼 자로 봐서도 안 된다. 예수가 말한 진리는 하늘에 있는 게 아니다. 그는 철저하게 실존 속에서 삶을 산 사람이고 삶에 대한 진리를 설파하고 갔을 뿐이다.

이 책은 오쇼를 통해 예수의 진면목을 알 수 있도록 만든다. 예수를 기독교라는 특정종교의 틀로 보지 말고 인류에게 인간 삶의 바른 길을 제시한 인류의 스승으로 보자. 카톡릭과 기독교의 성직자들이 예수를 어떤 특정 측면만을 부각해 놔서 예수에게서 배울 수 있는 진정한 면을 가려버렸다. 오쇼는 그 가면을 벗겨 버린다.

이 책을 통해 예수를 좀더 정확하게 알아============갈 수 있다.

오쇼 책이 한동안 안 나오고 있었고 나온 책도 별로 맘에 안 들었는데, 티움 이란 출판사에서 아주 좋은 책으로 만들어 내놓아서 반가웠다. 가격분만 아니라 편집 상태도 아주 만족한다. 티움에서 앞으로도 외부의 어떤 말이나 협박에 신경쓰지 말고 오쇼 번역서를 계속 출판하기를

격려한다. 오쇼 책은 수백권이 있다. 다 번역해 낼려면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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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 그대 가슴에 뿌려지는 사랑의 씨앗들 
오쇼 (지은이),김석환 (옮긴이)티움2016-08-28
English title?

예수 더 없이 아름다운 사람
오쇼 (지은이),김석환 (옮긴이)티움2019-03-01----
기본정보
440쪽













책소개


4대 복음서라고 불리는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에 대한 해설서이다. 성경중에서도 4대 복음은 예수의 메시지를 가장 온전히 전해주는 복음서라고 알려져 있다. 오쇼는 예수에 대한 강론을 세 번에 걸쳐서 했는데, 도마복음 한 번과 4대 복음 두 번이다. 그 중에서 이 책은 마지막 세 번째 강의에 해당하는 것으로 오쇼의 예수에 대한 시각이 어떤지 그의 관점을 가장 잘 집대성해서 보여주고 있다.


오쇼는 깨달은 사람의 높은 혜안과 더불어 종교, 역사, 철학, 심리, 과학, 예술 등등 다방면의 풍부한 지식들을 바탕으로 어렵기만 했던 성경을 대중들 속으로 끌어들였다. 따라서 종교를 떠나서 그동안 인류 최고의 책이라고 불리는 성경에 관심은 있었지만 선뜻 읽어내지 못했던 독자들에게 성경 이해의 단초를 제공해 줄 것이고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더불어 기독교를 종교로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단순히 신앙적 관점에서만 바라본 성경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새로운 관점에서 성경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고 그런 기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뜻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목차
역자서문 4
1장. 씨앗의 죽음은 나무의 탄생이 되고 10
2장. 신은 오직 인간을 통해서 사랑할 수 있다 44
3장. 종교란 잃어버린 유년시절을 찾는 것이다 90
4장. 그대가 옳다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행할 때에 변화가 생긴다 130
5장. 주고 싶다면 먼저 받을 준비가 되어라 168
6장. 도덕은 종교의 자연스러운 향기이다 210
7장. 꼴찌가 되는 즐거움 속에 이미 그대는 첫째이다 256
8장. 자신의 어깨에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304
9장. 신은 그대 무의식 깊은 곳에 목적을 심어놓았다 350
10장.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신의 왕국에 도달할 수 없으니 394
초판 역자후기 438
저자 및 역자소개
오쇼 (Bhagwan Shree Rajneesh)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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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는 자신을 특정 영역으로 구분하는 것을 거부한다. 오쇼의 가르침은 삶의 의미를 묻는 개인적인 질문에서부터 현대사회가 직면한 정치 사회적 문제들까지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오쇼의 책들은 전 세계의 청중들과 나눈 즉석문답을 오디오와 비디오로 기록하여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이에 대해 오쇼는 ‘이것을 명심하라. 지금 나는 그대들만을 위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은 다가오는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런던의 <선데이 타임즈>는 20세기를 일군 1천 명의 주요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오쇼를 선정...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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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환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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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사학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인도철학을 전공하였다. 1980년도에 오쇼 책으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된 <마하무드라의 노래>를 접하면서 오쇼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이 후 노자 도덕경을 시작으로 예수,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등등 오쇼의 강의들을 다수 번역 출간하였다. 그의 번역은 국내의 암울했던 사회에 오쇼의 가르침을 확산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 후 20여년의 공백기를 보낸 그는 오쇼 책 번역을 다시 시작 하였고, 지금은 ‘한국라즈니쉬번역연구회’카페를 개설하여 웹상에서오쇼 번역본을 공유하고 있다.
최근작 : … 총 7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성경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은유로 표현되어있어 보통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기독교인들조차도 해독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교인들은 주일날 목사님의 해설을 통해서 주로 성경을 이해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다가 잘못 받아들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은 그렇듯 가장 대중적이지만 가장 왜곡되어왔던 성경에 대해서 쉬우면서도 깊은 통찰이 담긴 수준 높은 이해를 전달해주는 책이다.
오쇼는 흔히 깨달은 존재로 추앙받고 있으며 20세기에 가장 영향을 미친 인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그는 달변가이며 토론의 귀재이기도 한데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엄청난 독서량이 뒷받침되기도 하였다. 그는 깨달은 이후에도 읽은 책이 십만 권이 넘는데 십만 권이 넘으면서 부터는 읽은 책의 권수를 세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오쇼는 깨달은 사람의 높은 혜안과 더불어 종교, 역사, 철학, 심리, 과학, 예술 등등 다방면의 풍부한 지식들을 바탕으로 어렵기만 했던 성경을 대중들 속으로 끌어들였다. 따라서 종교를 떠나서 그동안 인류 최고의 책이라고 불리는 성경에 관심은 있었지만 선뜻 읽어내지 못했던 많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성경 이해의 단초를 제공해 줄 것이고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더불어 기독교를 종교로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단순히 신앙적 관점에서만 바라본 성경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새로운 관점에서 성경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고 그런 기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뜻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은 흔히 4대 복음서라고 불리는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에 대한 해설서이다. 성경중에서도 4대 복음은 예수의 메시지를 가장 온전히 전해주는 복음서라고 알려져 있다. 오쇼는 예수에 대한 강론을 세 번에 걸쳐서 했는데, 도마복음 한 번과 4대 복음 두 번이다. 그 중에서 이 책은 마지막 세 번째 강의에 해당하는 것으로 오쇼의 예수에 대한 시각이 어떤지 그의 관점을 가장 잘 집대성해서 보여주고 있다.
본문에서 예수가 그의 제자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는가?”라고 묻는 부분을 보면 예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잘 드러나는데 사랑뿐만이 아니라 본문에는 포도주나 십자가, 일용할 양식, 기도, 등등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용어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무릎을 칠 만큼 감탄할 정도로 잘 드러나 있다.


인간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지의 말이 ‘사랑’이고 신의 세계에서 가장 낮은 단계의 말이 ‘사랑’이라고 한다. 예수는 그 사랑으로 인간에게 신의 세계를 설파했다고 오쇼는 말한다. 따라서 독자는 책을 따라 흐르다 보면 어느덧 스스로 예수가 가던 길을 따르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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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기다렸던 책입니다. 감사합니다. 구매
handang8502 2016-08-31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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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말한 진리는 무엇인가 새창으로 보기 구매
예수에 대한 이미지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가린 측면이 있다. 예수하면 사람들은 교회를 떠올리고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만을 생각한다. 기독교가 예수를 아주 모른다고 할 수는 없으나 기독교가 예수를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기독교는 예수의 한 측면을 잘 알고 있을 뿐이다.





예수의 진리가 무엇인지는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예수를 기독교가 말하는 천국행 구원자로만


알면 안 된다. 그렇다고 지상에 이루어질 유토피아를 꿈꾼 자로 봐서도 안 된다. 예수가 말한 진리는 하늘에


있는 게 아니다. 그는 철저하게 실존 속에서 삶을 산 사람이고 삶에 대한 진리를 설파하고 갔을 뿐이다.





이 책은 오쇼를 통해 예수의 진면목을 알 수 있도록 만든다. 예수를 기독교라는 특정종교의 틀로 보지 말고


인류에게 인간 삶의 바른 길을 제시한 인류의 스승으로 보자. 카톡릭과 기독교의 성직자들이 예수를 어떤


특정 측면만을 부각해 놔서 예수에게서 배울 수 있는 진정한 면을 가려버렸다. 오쇼는 그 가면을 벗겨 버린다.


이 책을 통해 예수를 좀더 정확하게 알아갈 수 있다.





오쇼 책이 한동안 안 나오고 있었고 나온 책도 별로 맘에 안 들었는데,


티움 이란 출판사에서 아주 좋은 책으로 만들어 내놓아서 반가웠다. 가격분만 아니라 편집 상태도 아주


만족한다. 티움에서 앞으로도 외부의 어떤 말이나 협박에 신경쓰지 말고 오쇼 번역서를 계속 출판하기를


격려한다. 오쇼 책은 수백권이 있다. 다 번역해 낼려면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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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one 2016-10-07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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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새창으로 보기
오쇼의 4대 복음에 대한 강의로 예수에 대한 요소의 시각을 집대성한 것이라고 하네요. 명성만 들어보았던 오쇼를 접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자에게 사랑은 재산에 위협이 됨을 저자가 어느 재력가와 함게 한 7년의 통해 잘 알수 있었습니다. 가족들과도 금전문제 때문에 대화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해설서답게 문장을 잘 풀어서 설명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접할수 있었습니다. 일반대중과 제자들에게 말하는것의 차이는 수용과 비수용의 차이라고 하고 예수가 말하는 준비 3가지와 신이 매일 에너지를 주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는것이 성공에 이름을 성경문구로 설명도 해주고 행위만이 힘이 있고 깨어있음이 많은것을 알게 해 줌을 알려주고 있고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원래의 얼굴을 찾는것이 우선이라고 하고 예수가 계속 반복해서 산으로 간 이유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4대복음에 대한 해설을 읽게 되어 더욱 친근하게 성경을 접할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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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무야 2016-12-31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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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새창으로 보기
이 책의 저자 오쇼는 붓다, 예수, 노자 등의 철학을 독특한 해석과 강의를 통해 진리를 설파한 영적지도자입니다. 생전에 6천회가 넘는 강연과 6백여권의 저서를 남긴 우리시대 위대한 영적 스승중의 한 명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은 우리에게 익숙한 성경의 4대 복음서를 오쇼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본질, 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 우리의 삶에 대한 자각 등을 오쇼만의 독특한 시각과 철학으로 집대성한 것입니다. 간결함과 명쾌한 문장으로 평소 쉽게 읽고 지나쳤던 성경속 문장의 숨은 뜻을 알아가는 과정이 자뭇 흥미진진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우리 그리고 세상만물이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나온 신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삶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종교를 떠나 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세 고민하는 모든 분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줄 것으로 생각됩니다.





본문중에서,





탄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 즉 부모로부터의 탄생이 있다. 그것은 육체적이 탄생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낳은 것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에게서 태어나야 한다. 그대 스스로가 자궁이 되어야 하고, 아버지가 되어야 하고, 어머니가 되어야 하고, 아이가 되어야 한다. 과거의 그대는 죽어야 하고 미래의 그대가 탄생해야 한다. 그대는 그대 스스로를 낳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복음서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시작한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예수는 아무도 낳지 않았다. 그는 그 자신을 낳았다.(p.14)





예수의 길은 사랑의 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보다 더 사랑이 많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그들이 가난한지도 모른다. 사랑이 많을 때는 많은 돈을 축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돈은 함께 가지 않는다. 사랑이 많을 때, 그대는 나누어준다. 부자는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부자의 재산에 항상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부자가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그는 나누어주어야 할 것이다.(p.25)





지금 당장,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이다. 아무 것도 되지 마라. 그러면 모든 것을 가질 것이다. 거지가 되어라. 그러면 황제가 될 것이다. 잃어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p.40)





인정을 베풀어라. 자비를 베풀어라. 신이 그대에게 주었으면 하는 것을 그것이 무엇이든 그대가 세상에 베풀어라. 신의 세상에 주어라. 그것이 법칙이다.(p.43)





그대는 세상의 소금이다. 신에게로 나아가기 시작한 사람은 누구든 기쁨을 향해 나가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가 기쁨으로 나아갈 때, 그대는 세상 전체가 기쁨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그대가 곧 세상이기 때문이다.(p.44)





예수는 사랑으로, 무한한 사랑으로 넘치는 사람이다. 그는 이 땅을 사랑했다. 이 땅의 흙냄새를 사랑했고 나무를 사랑했고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는 이 땅의 창조물들을 사랑했다. 그것이 창조주를 사랑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p.52)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의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성경이나 베다를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내면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명상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학식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p.148)





그러자 예수가 말했다. “나에게 감사하지 말라.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대를 고친 것은 그대의 믿음이다. 그리고 감사하고 싶다면 신에게 감사하라. 나는 아무도 아니다. 나는 단지 통로일 뿐이다. 도구일 뿐이다. 나에 대해서는 잊어버려라! 그대를 고친 것은 그대의 믿음과 신의 현존이다. 만일 내가 거기에 있었다면, 나는 단지 하나의 연결고리, 하나의 다리였을 뿐이다.”(p.156)





예수는 말한다. : 그대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지 않는 한,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생각은 결코 누구를 변형시키지 않는다. 생각은 힘이 없다. 오직 행위만이 힘이 있다. 오직 행함만이 궁극적으로 그대의 존재가 된다.(p.165)





종교적인 사람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각이 있는 사람이다. 그 자각 소게서 행동은 자연스럽게 선이 된다. 다시 말한다. 자연스럽게 선이 된다. 그대가 선이 되게 만들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다. 애써 만든 선은 전혀 선이 아니다. 그것은 거짓이고, 허위이고, 위선이다. (p,214)





영상은 내면을 목욕하는 것이다. 매일 잠시 동안이라도 홀로 있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많은 먼지가 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먼지 때문에 그대의 거울은 더 이상 비추지 못할 것이다. 아니면 올바로 비추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비춰지는 것을 왜곡할 수도 잇다.(p.229)





각각의 개인은 독특하다. 너무도 독특하여 비교가 불가능하다. 그대는 더 높지도 않고 더 낮지도 않다. 그저 다를 뿐이다. 그대 자신을 높은 곳에 놓거나 낮은 곳에 놓거나 하는 문제가 없다. 그대는 그대이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거기에 비교가 없다. 기억하라! 에고가 사라질 때, 비교도 사라진다. 그리고 비교가 사라질 때, 경쟁이 사라지고 거기에 거대한 평화가 일어난다.(p.278)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질문과 대답은 같은 근원에서 온다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 다르지 않다. 단 한 치도 다르지 않다.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신의 유일한 아들이라고 말한다. 어리석은 말이다. 모든 것은 신으로부터 온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만이 전적으로 신의 유일한 아들일 수 있겠는가? 모든 사람이 신의 아들이다. 우리 모두가 신의 아들이다. 신은 우리의 아버지다. 예수가 계속 반복해서 말한 것도 그것이다.(p.310)





예수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그대는 나와 똑같다. 다른 것이 없다. 그대와 나는 완벽하게 똑같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대는 그것을 모른다. 다른 것은 그것 뿐이다. 우리 존재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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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 2016-12-2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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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서재]드디어 믿을만한 번역서가

[알라딘서재]드디어 믿을만한 번역서가


드디어 믿을만한 번역서가 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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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one l 2016-05-20 23:46
https://blog.aladin.co.kr/768304183/8507093



철학적 탐구대우고전총서 41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이승종 옮김 / 아카넷 / 2016년 5월
평점 :



이 책의 독일어 원본과 영어본을 대조해서 본적이 있다. 양자 사이에 다른 표현, 다른 개념들이 수시로 나와서 뜻을

아는데 애먹을 때가 있지만 또 다르기에 보완해서 좀더 정확한 뜻에 가까이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한글 번역은? 현재까지 가장 많이들 보는 번역서의 경우,

이제까지의 번역서들은 이게 정말 성심껏 번역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부적절한 번역어가 많이 나오고,

더 심한 문제는 앞쪽과 뒷쪽의 한국번역의 말투가 다르다는 것이다. 즉 그 번역서를 한 사람이

일관성을 가지고 작업했는지 의심이 간다. 과거에, 지금도 그런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대학원 수업을 통해

장별로 각각의 학생이 번역해 오면 담당교수가 이를 모았다가 자기가 한번 윤문 정도를 한 다음에 자기 이름으로

번역서를 내는 것이다.



기존의 '철학적 탐구' 번역서는 이런 느낌을 받았다. 설마 그렇진 않았겠지... 하여간 역자가 혼자 성의껏 했더라도

번역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래서 새 번역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해왔다.

이 번역서를 다시 독어 영어판과 함께 부분 대조해 보았다. 역자는 분영 영어 독어 본을 모두 참고한 것이 분명한 듯하고

한국어 번역어 선정에 엄청 신경쓴 흔적이 보인다.

번역이 참 어려운 것이 단지 어학실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다 알다시피 번역 기술을 따로 연마해야 한다.

또한 그 책의 내용에 대한 전공공부가 되어있어야 한다. 번역기술과 철학을 정확하게 알아야 이런 책을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철학이 한국에 소개된 뒤로 이제라도 믿을만한 번역서가 나온 것이 다행이라 여기지만 좀 늦은 게 아닌지...

현대철학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이런 책의 한국어번역이 제대로 나오려면 아마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할 것이다.

앞으로 언젠가는 이보다 더 좋은 번역서가 나올 것이다. 봔벽한 번역이란 없으니까. 그러나 좋은 번역은 분명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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