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장자.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장자. Show all posts

2021/10/31

알라딘: 바가바드 기타 함석헌 (옮긴이)한길사2003

알라딘: 바가바드 기타


바가바드 기타  | 한길그레이트북스 18  
함석헌 (옮긴이)한길사2003-03-10원제 : Bhagavadgita
---
세계의 종교 주간 11위, 소설/시/희곡 top100 3주|Sales Point : 2,402 
 8.7 100자평(18)리뷰(6)
--
양장본528쪽
---
목차
1. 아르주나의 고민
2. 삼캬 요가
3. 카르마 요가
4. 즈나나 카르마 산야사 요가
5. 내버림의 요가
6. 진정한 요가
7. 즈나나 비즈나나 요가
8. 브라마 요가
9. 왕지식과 왕신비
10. 거룩하신 능력
11. 일체상
12. 박티요가
13. 밭과 밭알이와 그 분별
14. 3성 분별
15. 멸 불멸을 초월하는 지상자아
16. 거룩한 바탈과 귀신 바탈
17. 세 종류의 신앙
18. 내버림에 의한 해탈

책속에서
P. 93
16. 비유(非有) 아닌 것이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하는 것이 유(有) 아닐수 없다. 이 둘의 궁극은 참다움을 본 이에 의해서만 보일 수 있다. - 미친 나이스가이
P. 114
71. 일체의 애욕을 버리고 갈구하는 것도 없이, 나란 생각도 내것이란 생각도 아니 하는 사람은 평화에 이른다. - 미친 나이스가이
P. 129
19. 그러므로 집착을 떠나 언제나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을 하라. 집착 없이 행하는 자가 가장 높은 데 이르기 때문이다. - 미친 나이스가이
P. 171
22. 우연히 오는 것으로 만족하고, 상대로 보기를 넘어서서, 미워하는 마음이 없이, 성공 · 실패를 하나로 보는 사람은 아무리 행동하여도 얽매임이 없느니라. - 미친 나이스가이
P. 198
10. 자기의 모든 행위를 브라만에게 바치고 집착을 떠나 행동하는 자는 죄에 물들이 없나니, 마치 연잎이 물에 젖지 않음 같으니라. - 미친 나이스가이
더보기
독서에세이
무엇에도 집착 않는 해탈에 이르는 길
기독교, 이슬람교와 더불어 세계적인 종교의 하나인 불교는 인도에서 생겨났다. 하지만 오늘날 인도는 불교 국가가 아니라 힌두교 국가이다. 기원전 5세기 무렵 불교는 인도의 동북부에서 발생하여 한동안 성행하다가 인도의 전통 종교인 힌두교에 밀려 동쪽으로 전파되기 시작한다. 중국, 한반도, 일본의 고대 사회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여기에 기인한다.

불교가 그 고향인 인도에서 힌두교에 밀린 이유는 뭘까? 불교의 평등 사상은 카스트 제도마저 부인할 정도로 진보적인 것이었는데도 인도 민중이 불교를 버린 까닭은 뭘까? 그것은 인도의 독특한 윤회 사상 때문이다.

윤회를 믿는 인도인들은 지금은 비록 노예의 신분이더라도 꾹 참고 성실하게 살아 가면 다음 세상에서는 더 좋은 신분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다음 세상을 기약하면 되는데, 굳이 현재의 삶에서 평등을 추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현세의 행복은 오히려 자신의 업을 키워서 복된 내세를 저해하게 될 뿐이다).

그래서 불교는 윤회의 관념이 없는 극동에서 더 찬란하게 꽃을 피우게 된다. 하지만 인도에서 힌두교가 불교를 누른 이유는 더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바가바드 기타>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베다>, <우파니샤드>와 더불어 힌두교 3대 경전 가운데 하나지만, 다른 두 경전과는 달리, 그리고 불교의 경전들과도 달리 승려가 아닌 일반 대중이 읽을 수 있는 경전이다.

"나에게 귀의하면 천민, 여자, 바이샤, 수드라라 할지라도 지고의 목표로 갈 수 있다." 불교와 달리 힌두교에는 이렇게 대중적이고 서민들의 구체적인 삶과 연관된 경전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바가바드 기타>의 내용 자체가 대중적인 것은 아니다. '바가바드 기타'라는 말은 '거룩한 자, 존엄한 자의 노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득한 옛날 쿠루크셰트라라는 들판에서 카우라바 집안과 판다바 집안이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두 집안은 서로 형제 간이었으니 바야흐로 골육상잔의 비극이 벌어지려는 순간이었다. 이 때 판다바의 왕자인 아르주나와 비슈누 신의 화신인 크리슈나가 나누는 대화가 <바가바드 기타>의 내용을 이룬다.

왕자와 성자의 대화, 따라서 '존엄한 자의 노래'는 어울리는 제목이라 하겠다. 아르주나는 갈등한다. 형제를 죽이고 왕이 될 것이냐, 아니면 속세를 버리고 은거하여 명상과 고행을 하는 삶을 살아 갈 것이냐. 이 극적인 장면에서 크리슈나는 용감히 나가 싸우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어찌 형제들과 싸워 이기라는 게 신의 가르침일까?

크리슈나는 그것이 단순히 세속적인 왕위를 얻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싸움이며 근원적인 갈등임을 말한 것이다.

"그대가 할 일은 오직 행위 자체일 뿐 그 결과가 아니다. 행위의 결과를 동기로 삼지 말며 행위하지 않음에도 집착하지 말라."

이것이 인간을 대표하는 아르주나에게 크리슈나가 주는 신의 가르침이다.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삶이란 근원적인 갈등이 해소된 상태, 곧 해탈을 가리킨다. 윤회 관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힌두교에서 지고의 목표로 제시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인 것이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가르치는 해탈에 이르기 위한 길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지식의 길, 즉 깨달음을 통해 참된 지식을 얻고 인간 본성으로 복귀하는 길이다. 둘째는 행위의 길, 즉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아무런 집착이 없이 수행함으로써 속세의 한가운데에서 해탈에 이르는 길이다. 셋째는 가장 높은 단계인 믿음의 길, 즉 신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길이다. 이 셋을 종합하면, 진정한 해탈은 깨달음으로 행동하고 신을 믿음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인도의 성자로 추앙받는 마하트마 간디는 평생 동안 <바가바드 기타>를 항상 몸에서 떼어 놓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벽에 한 구절씩 붙여 놓고 아침마다 세수할 때 읽고 이를 닦는 동안 그것을 외웠다고 한다. 그 덕분일까? 그의 영도 아래 인도는 200년 동안의 영국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해탈(독립)'할 수 있었다. - 남경태(전문번역가)
--------------
저자 및 역자소개
함석헌 (옮긴이) 
-----
평점 분포
    8.7
----
구매자 (7)
전체 (18)
공감순 
     
힌두경전 기타에 함석헌 선생의 주석을 더한 인간 내면의 전쟁을 그린 지고자의 노래  구매
인문학에길을묻다 2010-07-15 공감 (23) 댓글 (0)
Thanks to
 
공감
     
인간의 몸은 아홉개의 구멍을 가진 거대한 상처다. 이 문장만으로도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책.  구매
bl. 2013-11-21 공감 (2) 댓글 (0)
Thanks to
 
공감
     
책을 반정도 읽다가 갑자기 무기력증에 빠졌다. 몇달간 무기력증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경쟁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겐 안맞는 책인듯 하다.  구매
착한레이 2013-07-24 공감 (2) 댓글 (0)
Thanks to
 
공감
     
인도를 대표할만한 성전에 대한 우리나라 사상가의 의역~ 간혹 정확하지 않은 대목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읽고 이해하기에는 놀랄만큼 너무 명료합니다.  구매
밭고랑 2013-04-02 공감 (1) 댓글 (0)
Thanks to
 
공감
     
인도의 경전에 대하여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인도 종교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구매
거북이 2012-05-05 공감 (0) 댓글 (0)
-----
마이리뷰
     
나는 오늘 궁극에 다녀왔다 새창으로 보기
바가바드기타(Bhagavad Gita)
―나는 오늘 궁극(窮極)에 다녀왔다



궁극(窮極)을 향한 노래

『바가바드기타』는 궁극을 향한 노래이다. 이는 신에 대한 종교에 대한 옳은 행위에 대한 논증을 설파하는 것도 아니다. 『바가바드기타』가 가지는 유일한 논증이라면 그것은 아름다운 비유이다. 궁극으로 가기 위해서는 놀라운 과정을 감수해야 한다 '사지가 주저앉고, 입은 바싹 타며, 전율이 내 몸을 휩싸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고뇌를 견뎌내야 하며, 전장에서 내 목숨을 위협하는 것은 혈육이며, 지고의 순례길 중에는 온 형제 가족이 낙오되거나 죽은 끝에 결국 혼자 남은 외로운 수행길을 감당해야 한다. 이 때 귀를 맑게 하는 아름다운 깨달음의 노래는 나를 더 이상 슬픔에 빠뜨리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지고자가 나를 위해 배려한 과정이며, 그러한 지고지순한 진리가 쉽게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궁극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자유를 의미하며, 자아를 초월한 초자아란 하나님이 완전히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상태이다. 스피노자는 그 상태를 꿈꾸어 '신을 향한 지적 사랑'을 갈구했으며, 파스칼은 '가장 위대하며 가장 비참한 상태'를 체험했다.
궁극에도 시간은 있지만, 이 때의 시간은 '영원을 헤아리는 사고방식'이다. 연대순으로 이루어진 역사는 별 의미가 없다. 영원이라는 관념에 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창조의 상대적 분야에서 가장 오랜 수명을 가졌던 어떤 물건의 생애를 생각해 보는 일인데, 인도인들은 창조의 분야에서 가장 오랜 수명을 가진 존재를 거룩한 어머니 혹은 우주적 어머니라고 불렀다. 우주적 어머니로부터 인간의 생애에 이르기까지는 수없이 많은 단위가 놓여 있는데, 어머니의 시간 개념으로 가장 말단의 단위인 칼리 유가(kali yuga) 하나만 해도 사람의 생애 43만 2천년이다. 그래서 영원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머니와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의 벽이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연인의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사고하는 방식이 인도인의 시간관이었다.
'궁극'을 경험한 자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힘겹게 찾아 올라갔던 정신의 여정은 간단한 한마디 말로 녹아야 하며, 그 말 한마디가 인생 이해의 전부를 뒤집어엎어서 사람은 단번에, 아주 완전히, 모든 얽매임을 다 벗은 영원한 해탈의 지경에 올라가게 한다.
'궁극'의 의식에 도달한 사람은 개인 생명의 수준에서 행하던 사고방식을 뛰어넘어 우주적 생명의 수준으로 올라간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단맛을 본 사람은 모든 단맛을 다 이기듯이 우주적인 의식을 체험했던 사람은 그 축복의 맛을 언제나 마음속에 간직한다. '궁극'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이미 인정세태의 괴로움은 사소한 추억에 불과하리라.

이 궁극의 노래는 노래의 언어로, 노래의 귀를 통해 받아들여야 한다. 사변적인 언어로 받아들이면 아름다운 향연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영혼의 가락과 정열에 몸을 맡기고, 가만히 듣고 있으면 당신의 내면 속에서 따라부르는 그 노랫소리가 바로 이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된다.


대략적인 줄거리와 서술 방식


『바가바드기타』는 쿠루크셰트라 전쟁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무대로 한다. 하스티나푸라에 자리잡은 쿠루족의 두 형제 가문, 즉 카우라바 형제들과 판다바 형제들이 쿠루크셰트라 들판 양편에 군대를 대치시키고 왕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살육전을 벌이려는 극적인 상황에서 아르주나와 크리슈나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바라타 왕국의 정당한 후계자였던 아르주나의 맏형이 두료다나의 술책에 빠져 도박으로 나라와 형제들을 다 잃고 13년 간 고행을 하게 된다. 시일이 지났을 때 두료다나는 반환을 거절했고, 생활을 꾸려 나갈 약간의 땅조차 수용하지 않아 결국 형제끼리 창을 겨누는 비극적인 상황으로 이야기는 비화되었다. 아르주나는 이 전쟁에 대한 확실한 대의 명분을 가지고 전쟁터로 나가지만 상대편 군대에서 자기 사촌들, 아저씨, 할아버지 등 혈족들을 있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혈족을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혈족을 죽이고 왕국을 통치하느니 차라리 숲으로 은거하여 궁극자에 대한 명상에 몰두하는 고행자의 삶을 택하려 한다. 그때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싸우라'(ii. 8)고 말하면서 둘의 토론이 시작된다.
이야기의 서두에 전쟁이 나온 것은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모순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전쟁이 주는 극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두료다나와 아르주나는 같은 전장에 서 있지만 그들의 싸움은 이미 같은 종류가 아니다. 두료다나는 다만 권력과 부를 유지하려는 자기욕망의 표현인 반면, 아르주나는 자신의 고뇌와 만인의 사명을 안고 싸우는 입장이다. 이 둘은 모두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말끔히 요약되며 크리슈나가 '싸우라'고 주장한 요점도 여기서 비롯된다.

오래된 인도의 경전인 이 책은 어느 경전과 같이 주석가들의 적절한 비유가 돋보인다. 라다크리슈난, 간디, 함석헌 등의 저술가들은 경전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세계의 고전들과 인물들을 끌어다 이 책의 '보편화'에 기여했다. 궁극의 초월정신은 어디든 통하며 지고의 경지에서 마주앉아 세상을 논한다.
『바가바드기타』는 인도의 경전 중 가장 궁극에 가까운 저술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엄격한 카스트 제도 역시 궁극의 입장에서는 한낱 사소한 제도에 불과하다.


"어떠한 신자가 신앙을 가지고 어떤 형태의 신을 예배하기를 원하더라도 나는 그의 신앙을 튼튼하게 해준다"
……
프리다의 아들아, 내게 돌아오는 자는 비록 죄의 탯집에서 났더라도, 여자로, 바이샤로, 수드라로 났더라도 다 최고의 경지에 이를 것이니,



사실 『바가바드기타』 안에는 어떤 경지나 단계 같은 것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 다만 깊이 이해하고, 깨끗이 비우고, 참되게 행동하는 것을 통해 신에게 보다 깊이 다가가고자 하는 간절함이 가득할 뿐이다.


궁극의 가르침


너는 슬퍼할 수 없는 자를 위하여 슬퍼하고 있다.



아르주나는 관계에 현혹되어 있다. 즉 그는 아직도 제자나 스승, 친척은 그들 자체 때문에 소중한 것이 아니고 자아 때문에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난 자는 반드시 죽게 되고, 죽는 자는 반드시 나는데,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자신이 어찌할 수 있다는 듯이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르주나가 옅은 감정에 정신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다. 아르주나는 자아를 우주적 입장에서 사려하기 힘들다. 적과의 갈등과 대립이 2중, 3중고로 다가오는 이유도 물질과 환경에 영향을 받고 홀가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사랑을 위해서 우리는 압박자와 고통과 죽음에 직면한다.
인간의 생에서 모든 행동은 필연적으로 반동을 받는 법이고, 우리의 영혼을 끝까지 얽어매 지고자와의 대면을 어렵게 한다.
이 때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에게 들려주는 첫 번째 궁극은 '평정한 마음'이다. 꼭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어떤 일도 없으며, 아직도 얻지 못해서 꼭 얻어야 한다는 어떤 물건도 없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일을 하고 있다. 이 때 나의 행동은 행동 자체에 있는 것이지 결과에 이끌리지 않는다.


행동의 결과를 네 동기가 되게 하지 마라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의 자유는 우리의 모든 의식을 지고자에게 기울여 복종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먹고 싶은 대로 먹는 것은 자유처럼 보이지만 사실 감각의 지배를 받는 것일 뿐이다. '무엇을 조금 알면 독단적이 되고, 조금 더 알면 묻게 되고, 또 조금 더 알면 기도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존재해 나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덕분임을 알게 되기 때문에 겸손해진다. 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사상가는 모두 종교심이 깊은 사람들이었다.
 진정한 자유를 얻은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우주적 영(靈)의 기계로서, 모든 운명을 지고자에게 맡기고 또 우주적 질서의 유지를 위해 살아간다. 자신의 운명을 모두 맡길 수 있으려면 믿음도 두터워야 하겠지만, 세계에 대한 절대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로서 신과 나는 하나가 된다. 신과 하나가 될 때 나의 마음은 평정을 되찾으며 나의 행동과 말들은 생기가 돋는다. 나는 더 이상 누구의 지배도 아니며 신을 위해 일할 뿐이며, 모든 것은 신에 의해 안배되어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간다. 차가 아무리 빠르게 달린다 해도 차부는 움직이지 않듯이, 굴곡이 많은 생을 살아가는 우리 안에는 신이 타고 있다.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의 차부였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는 무장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졌을 때면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가 실망에 떨어졌을 때 위로해 주시기를 지체하지 않지만, 우리를 위해 우리 갈 곳을 대신 기어 올라가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에게로 돌아갈 때까지 길이 참고 견디시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궁극의 평정을 얻고 난 후 두 번째 궁극의 가르침은 '행위'이다.


너는 네 명함을 받은 일을 행하여라. 행(行)은 비행(非行)보다 나으니라. 행함 없이는 네 육신의 부지조차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바가바드기타』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실천'의 덕목이다. 평정을 갖춘 행위는 십만 대군보다 의연하며 강력하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탄생하였다.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일 일하기를 그친다면 이 세계는 망해 버릴 것이다. 나는 혼란을 일으킨 자가 될 것이요, 인류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지식은 그 완전한 지경에서는 이해와 체험의 두 가지를 다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완전한 지경에 이르려면 세계에 대한 이해와 체험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행위'라 함은 노자가 주장하는 '무위(無爲)'를 포함한다. 무위는 자신의 행위하되 따로 행위한다고 말할 것이 없는 상태다. 항상 일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일하는 자라는 주장을 아니하는 사람의 '행위'는 무행위요, 외양으로는 행동을 피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천만 칸 기와집을 짓고 있는 사람의 무행위는 행위다. 이러한 행위의 이치를 깨우친 사람은 자신이 하는 행위는 없고, 지고자의 '명'을 받고 행할 뿐이다. 마치 차부가 이끌 듯이 움직이는 말과 같다.


행위 속에 무행위를 보며 무행위 속에 행위를 보는 자는 사람 중에서 깨달음을 얻는 자니라. 그러한 사람이 요가를 닦는 사람이요 모든 행위를 완성하였느니라.



그의 몸은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고 행동자는 하나님이지 그 자신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가 행위를 이겨낼 때까지 언제고 기다려 줄 수는 있지만, 직접 전장에 나가거나 산을 기어오르지는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과 나의 관계이다. 나는 자신를 무(無)에까지 낮춘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보는 것이 『기타』의 사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자연을 닮았다. 하나님이 부리는 대로 꽃을 피우고 바람을 일으키는 대자연과 나는 하나가 되며 천지인(天地人)의 관계를 완성한다. 이 때 나의 행위는 지속적이어야 한다. 오래된 동양의 정신에서 '불성무물不誠無物', 즉 성실하지 않으면 만물이 생장할 수 없다고 한다. 어머니의 사랑이 없이 아이는 어린이도 될 수 없으며, 설사 어른이 되었다 할지라도 사랑을 나누어줄 수 없다. 세상에 사랑을 나누얼 줄 수 없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세상을 위태롭게 만드는 사람이다. 세상은 지고자의 지속적인 사랑과 인내로운 기다림으로 인해 유지되고 있다.


 활을 양껏 당기지 않고는 살이 힘있게 나갈 수 없고, 마음을 속으로 당기어 그 밑바닥에까지 이르게 하지 않고는 힘이 날 수 없다. 그리고 마음이 활발하며 강하지 않고는 세상에서 성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크리슈나는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성공하려면 정화, 즉 희생을 계속함이 필요한 것을 말해 준다.



무위는 곧 내버림이다. 아르주나가 고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버리지 못하고 구질구질하게 안고 갔기 때문이다.


장자 - 안회(顔回)가 "감히 묻잡니다. 마음 씻기[心齋]란 무엇입니까" 한다. 중니(仲尼)가 "네 뜻을 하나로 하여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으며,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운으로 들어라. 들음은 귀에 그치는 것이고, 마음은 가져다 맞추는 쪽[符]에 그치느니라. 기운이란 비어 가지고 물건을 대하는 것이다. 도는 오직 빔에 모인다. 비게 함이 마음 씻음이니라"고 답한다. 안회가 "제가 처음에 그렇게 시켜주심을 얻지 못했을 때 정말 스스로 회(回)이옵더니, 시켜주심을 얻고 나니 비로소 회란 것이 있지 않습니다. 이러면 빔이라 할 만하옵니까." 스승이 "됐다" 하였다.



내버림이란 것은 수십년 동안 자신이 갖고 있었던 성향이나 습관, 이성 등을 모두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자아의 저항도 대단할 것이다. 하지만 내버림은 행위를 통해 높은 수준(영적인 수준)에 있는 신령한 의식 안에 존재하는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람이 무지하면 수십 년 동안 틀린 지식을 신봉할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순간이라도 진리의 빛을 쬔 사람이라면 승복할 것이다. 이러한 영적인 체험을 통해 신 의식으로 들어간다. 거기가 바로 집 중의 편안한 집이며, 완성된 자아의 모습이다.


진정한 신


『기타』의 특징은 앞에서 말한 대로 유연한 신앙에 있다. 궁극의 종교로 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바로 유연성이다. 아직도 중동에서는 민족간 분쟁과 종교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윌 듀런트는 종교 등의 미묘한 문제로 생기는 대립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만행의 역사를 보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이 없고 반드시 지정된 신만을 섬겨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기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오지에 가서 똑같은 신을 섬기지 않는다고 해서 불경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신앙의 강요는 가장 잔인한 폭력이다. 왜냐하면 다른 신을 믿는 사람과 그의 신 둘을 모두 죽이기 때문이다.


맑은 물을 얻기 전에는 더러운 물을 버리지 말라는 가르침에 따라, 인도의 만신당(萬神堂) 안에는 군중들이 섬기던 가지가지의 신들이 다 모시어져 있다. 하늘의 신, 바다의 신, 시내와 숲의 신, 먼 옛날의 전설의 신, 부락 호수의 남신 여신. 시대가 지나가는 동안 어떤 것도 잃어서는 아니 된다는 두려움에, 모든 진실된 확신을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말고 조화시켜 보자는 생각에, 그것은 자신 속에 형형색색의 요소와 동기를 다 포함하는 하나의 엄청난 종합에 도달하게 됐다. 종교 안에서 깜깜하고 원시적인 미신이 시글거리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신은 욕망에 의해 그려진 신이기 때문에 『기타』가 추구하는 초월적 신과는 다르다. 이들은 자신이 욕구하는 것만을 취할 뿐이다.

거룩한 바탈은 해탈을 위한 것이고 귀신 바탈은 얽어매임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판두족의 아들아, 슬퍼하지 마라, 너는 거룩한 바탈로 났느니라.



정통종교의 이름으로 자유와 독립, 인간의 존엄을 거짓으로 해석한 종교가 세상을 병들게 하고 있다. 처음의 말씀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해석이 나오는 현상은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 스승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거나 그 안에 자신의 사리사욕을 살짝 집어넣은 경우다. 가르침이 천년이고 만년이고 전달되기 위해서는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온몸을 비우고 맑은 정신으로 그저 지고자의 명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임의의 판단은 불성실과 죄악의 결정적인 증거이다.

 

인간의 연약함을 안다는 것과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저 주는 복만을 바라는 것은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은 죄 속에 있으면서도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는 그 마음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지 결코 덮어놓고 무조건 그러시는 것은 아니다. 연잎이 물에 젖지 않는 것은 젖지 않는 성질을 제 속에 길러내어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누가 거기 무슨 칠을 해주어서는 아니다. 하나님은 결코 뺑끼칠장이가 아니다. 그런 따위 그릇된 신앙이야말로 이 세상의 권세자와 야합하여 역사를 언제까지라도 구정물 속에 썩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일을 가리켜 예수는 "거룩한 것을 돼지에게 주는 것"이라 했다.

우리가 이러한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이유는 우리 마음 속에 악한 마음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참된 자아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생각이든 행위든 성(誠)이 바탕이 되지 않고는 변태되기 십상이다. 궁극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무기는 '성실함' 밖에 없다. 그것도 임의에 따라 하고 안하고가 아니라 이미 나의 결정을 초월한 행위이다. 나의 최고의 판단에 의한 행위는 신이 시키는 행위다. 우리가 인(仁)을 생각하고 있으면 인을 행할 수 있지만, 인한 행위가 수천 년에 걸쳐 나오지 않는 이유는 인이 틀려서가 아니라 행위의 지속성을 담보할 바탕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나의 판단이란 것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우리가 자유라 부르기는 거북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의 일생 동안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자유가 내가 생각했던 자유보다 더 자유로워 보이기도 한다.

- 접기
승주나무 2005-10-07 공감(42) 댓글(1)
Thanks to
 
공감
     
힌두교의 살아 있는 성전 새창으로 보기 구매
바가바드기타는 힌두교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애송되는 경전이다.  권위로 보면 "베다"나 "우파니샤드" 같은 계시서가 이보다 우위에 있다 하겠지만, 인도 대중들에게 끼친 영향력 면에서는 오히려 계시서를 능가하는 경전이 '거룩한 자의 노래' 바가바드기타이다.  바가바드기타는 궁극적 실재에 대한 어떤 체계적인 논리를 펴지 않는다. 단지 실천적인 삶의 원리를 가르칠 뿐이다. 지고자의 실재성은 논리적인 사변의 대상이 아니라, 영성에 의한 체험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신흥동 2011-09-24 공감(4) 댓글(0)
Thanks to
 
공감
     
깨달음에 관한 최고의 고전 새창으로 보기
바가바드기타는 인도에서 고대로부터 전수되어온 깨달음에 대한 철학시로써, 부족간의 전투에서 친족과의 전투에 임한 주인공이 싸움을 할지를 망설이는 상황에서 조언자가 등장하여, 주인공에게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며, 싸움에서 이기면 현실에서 승리를 쟁취해서 좋고, 만일 싸움에서 져도 정의를 위해서 싸웠기 때문에 죽어서도 영혼은 해방되므로 좋으므로, 절대 망설이지 말고 싸움에 임하라는 격려의 내용이 담겨있는 글입니다.

보통 깨달음은 소극적 방관 내지 내 마음의 평화를 지키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초연한 것이 마치 참 깨달음인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이 책을 보면 이런 선입견이 철저히 깨어지게 됩니다.

 

 

또한 이 책을 통해서

살면서 가끔씩 내 마음속에서 울리는 양심의 소리에 대해서도 재고하게 됩니다.
만약 내안에 나라는 느낌을 주는 자의식외에
또다른 뭔가가 있다면 아마 양심이겠죠...
이 양심을 장자는 참주인이라고 불렀고, 하느님, 진리, 도,
진아, 참나, The Self등 참으로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답니다.
이 책은 그 양심의 입장에서 현실에서 어떻게 행위하고 어떤자세로 삶에
임해야 할지를 옆에서 차근차근 얘기해 준답니다.

 

또 요즘처럼 바쁜 현대인들에게 소극적인 도피보다는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깨달음에 이를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점에서 아주 유용하답니다.

- 접기
석천 2014-01-08 공감(2) 댓글(0)
Thanks to
 
공감
     
[마이리뷰] 바가바드 기타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읽다가 한글의 아래아 글자까지 나오는 것을 보고 읽기 포기했다. 외국의 옛 문헌을 꼭 우리의 옛날 글자로 옮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해설도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는 점은 덤이다. 지금은 올재 클래식에서 나온 바가바드 기타를 읽고 있는데 훨씬 읽기도 편하고 해설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미친 나이스가이 2020-08-19 공감(2) 댓글(0)
Thanks to
 
공감
     
내가 아르주나면 함석헌 선생이 크리슈나 새창으로 보기
      처음엔 엄청난 양의 주석에 뜨악했다. 흐름이 끊기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읽어보니 함축적으로 표현된 기타를 이해하는 데 주석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오히려 없었으면 곤란했을 뻔했다. 
기타 못지 않게 주옥같은 명사들의 주석들이다.   함석헌 선생님 이름만 들어보았지 읽어본 저서가 없어서 어떤 분인지 잘 몰랐는데 글을 통해 만난 선생은 절로 존경심이 드는 분이었다. 함석헌 선생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무지개모모 2013-07-16 공감(2) 댓글(0)
===

서민들의 삶 속에 숨쉬는 경전, 『바가바드 기타』







『베다』나 『우파니샤드』와는 달리 언제나 서민 대중의 삶 속에서 호흡해온 대중들의 경전 『바가바드 기타』는 인도의 모든 지역, 모든 계층이 공유하며 다양한 인도를 하나로 묶는 공통분모격으로서 힌두교의 살아 있는 성전이라 할 수 있다.

쿠르크셰트라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무대로 하는 『바가바드 기타』는 바로 이 전쟁이 벌어지려고 하는 찰나에 전쟁에 대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전쟁터로 나갔으나 상대편 군대에서 자기의 혈족들을 바라보고는 고뇌에 빠지게 되는 아르주나와 크리슈나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여기서의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모순을 나타내는 인간 내면의 전쟁이라 할 수 있겠다. “싸우라”고 아르주나에게 조언하는 크리슈나의 표현도 결국 전쟁을 명한 것이라기보다는 슬픔과 미혹으로 생겨난 장애를 제거하기 위한 촉구일 뿐이다.

현대에 들어 『바가바드 기타』는 더 큰 의미로 부각된다. 간디는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마치 모르는 영어 단어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듯이 이 행동의 사전을 찾아보았다고 한다. 이외에도 라다크리슈난, 시성 타고르 등 수많은 인도의 정신적인 지도자들에게 『바가바드 기타』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힌두교 경전 중 가장 먼저 번역된 이 『바가바드 기타』는 주석을 단 함석헌 선생이 토박이 우리말로 풀어썼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문자에 얽매이기보다는 뜻을 헤아려 새기는 가운데 우리의 고유 사상을 녹여놓았다는 점에서 『바가바드 기타』의 한국적인 토착화를 이루어 그 의미가 더욱 돋보이며 값지다 할 수 있다.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의 자세
- 본문 들여다보기

그 자리에 올라앉아, 마음을 한 점에 집중하고, 사념과 감각을 제어하여, 자기 혼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요가를 닦을지어다.

함석헌 - 장소나 자리에 대해 주의할 요점은 장시간 동안 밖에서 오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 방해를 받음이 없이, 그리고 사람의 몸이 피로해짐이 없이 견디어갈 수 있도록 하며, 마음의 활동이 깊은 정신적 체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순조롭게 되어가도록 하자는 데 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道 何事不成)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그런 지경에 가려면 많은 훈련을 쌓은 후에야 이루어지고, 처음에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육신 속에 있는 것이므로 생리적인 법칙을 무시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침착한 마음으로 지킬 것을 지켜가며, 불급불완(不急不緩)의 겸손한 태도로, 단계적으로, 제 분에 맞는 대로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특히 기독교 개신교 사람들이 주의할 것은 개신교에서는 신앙을 강조하는 나머지 개인 자질에 생리적 심리적 차이가 있다는 점을 생각 않고, 아직도 욕심을 제어하지 못한 사람들까지도 제멋대로 열심을 내어 구하기만 하면 된다 하기 때문에 잘못되는 일이 많다. 초심자는 반드시 신뢰할 수 있는, 체험 있는 이의 지도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것을 보면 주의깊게 그 사람과 경우를 생각하여서 지도하신 것을 알 수 있고, 바울도 처음에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나 일단 폐단이 생긴 후는 그것을 바로 지도하기 위해 애쓴 것을 알 수 있다. 정신에라고 결코 법칙도, 원리도, 순서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아직 샤머니즘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데는,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있겠지만 이 점도 확실히 그 하나임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라다크리슈난 - 12절에서 요가라 한 것은 쟈나 요가(dhyana yoga), 즉 명상을 말한다. 진리를 깨달으려면 실제적인 이해 관계에서 놓여나지 않고는 아니 된다. 그런데 실제적 이해란 우리 사는 외계의 물질적인 세계와 서로 얽혀 있다. 그 주된 조건은 잘 수양된 가라앉은 마음이다. 우리는 사물을 대할 때 될수록 자유롭게 비틀리지 않은 지성을 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 자신을 국외에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된다.

피타고라스(Pythagoras)는, 왜 자기 자신을 철학자라 부르느냐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한다. 그는 인생을 올림피아 같은 큰 축제에 모인 가지각색의 군중에다 비했다. 어떤 사람들은 저자에 장사를 하러 가 재미를 보고, 또 어떤 사람들은 경기에 나가 상을 타려고 가고, 그리고 또 어떤 이는 단지 그런 것을 보려고 가는데, 이 나중 사람이 철학자라고 했다. 그들은 직접적인 문제나 실제적인 필요에 버물려 들지 않는다.

샹카라는 지혜를 탐구하는 자의 가장 근본적인 자격은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못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과, 현세적 내세적 행동의 결과를 누리자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음과, 자제와 정신적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고 했다. 플라톤에게는 모든 지식의 목적은 선(善), 즉 삶과 앎에 다 같이 근원이 되는 선의 관념에 대해 사색할 수 있는 데까지 우리를 높여주는 데 있다. 따라서 이상적인 철학자란, 인생을 힘껏 다 살고 난 끝에 가서 그의 목적이 언제나 고요하고, 안으로 향해 잠잠하고 고적하며 떠나 있는 살림에 있는 사람이다. 그 살림 속에서는, 세상이 그를 잊음으로 인해, 그는 세상을 잊고 자기의 하늘을 선에 대한 외로운 명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 그것만이 참 살림이다. “마음이 정결한 이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을 볼 것이다.” 이 혼의 정화는 훈련에 의해서만 얻어진다. 플로티노스는 “지혜는 안정 속에 있는 심성의 한 상태라”했다.

마하리시 마헤슈 요기 - 크리슈나가 밝히고자 하는 첫째는 명상은 반드시 앉은 자세로 해야지, 눕거나 서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누우면 정신이 둔해지고, 서면 마음이 자아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갔을 때 쓰러질 염려가 있다. 명상을 시작하려면 마음이 정상적인 상태에 있어야 한다. 마음이 둔해져도 못쓰고 너무 활발해도 못쓴다. 둔하면 잠이 와서 체험할 능력이 없어지고, 너무 활발하면 이 조잡한 의식 속에 남아 있어서, 말하자면 오묘한 체험 속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셈이 된다. 마치 수면에서 활발하게 동작하면 물 속에 빠지지 않는 것과 같다. 명상한다는 것은 마음이 자아의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일인데, 만일 섰을 때와 같이 마음이 너무 활발히 작용하면 그 빠져드는 과정이 시작되지 못한다. 그래서 명상은 앉아서 하라고 한 것이다. “한 점에 집중하고”에서 한 점에 집중하려면 마음이 점점 더 오묘한 지경에 들어가는 대로 두어야만 잘된다.




요가 수행자. 요가는 우주적 에너지의 원천과 하나되는 체험이다.

『바가바드 기타』 제6장 「진정한 요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욕망과 분노에 대한 통찰

『바가바드 기타』는 쿠루크셰트라 전쟁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무대로 한다. 하스티나푸라(Hastinapura)에 자리 잡은 쿠루족의 두 형제 가문, 즉 카우라바(Kaurava)형제들과 판다바(Pandava) 형제들이 쿠루르셰트라 들판 양편에 군대를 대치시키고 왕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살육전을 벌이려는 극적인 상황에서 『바가바드 기타』의 가르침이 시작된다. 원래 바라타 왕국의 정당한 후계자였던 유디슈티라(Yudhis.t.hira)가 카우라바 형제들 가운데 맏형 두료다나(Duryodhana)와 도박을 하여 그 결과로 그는 왕국을 잃고 네 형제들과 함께 13년 동안 숲 속에 유배되었다. 약속한 기한이 되어 유디슈티라가 두료다나에게 자신의 왕국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의 요구는 거절되고 결국 두 가문 간에 전쟁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바로 이 전쟁이 벌어지려고 하는 찰나에 판다바 가문의 다섯 형제 중 셋째인 아르주나(Arjuna)와 크리슈나(Kr.s.n.a) 사이에 오간 대화를 적은 것이다.

아르주나는 이 전쟁에 대한 확실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전쟁터로 나간다. 그러나 그는 상대편 군대에서 자기 사촌들, 아저씨, 할아버지 등 혈족들을 바라보고는 고뇌에 빠진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혈족을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혈족을 죽이고 왕국을 되찾느니 차라리 숲으로 은거하여 명상에 몰두하는 고행자의 삶을 택하려 한다. 그때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싸우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곧 크리슈나가 전쟁 그 자체를 옹호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크리슈나는 결코 전쟁을 열망하지 않았으며, 그는 오히려 두 가문 간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평화의 사절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런데 그의 역할은 카우라바 지도자들의 억지 때문에 실패했다. 싸우지 않겠다는 아르주나의 주장을 논박하는 과정에서, 크리슈나는 판다바족에 관한 한 그 전쟁이 정당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아르주나의 의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세속적인 관점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크리슈나의 가르침이 지니는 요체가 정작 전쟁 그 자체에 대한 옹호가 아니라, 아르주나의 결심, 즉 싸우지 않겠다는 것이 왜 옳지 않은가를 보여주는 데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르주나가 싸우지 않겠다는 것은 단지 그 대상이 자기의 혈족이기 때문이다. 그가 자기의 사랑하는 혈족들을 죽이느니 차라리 스스로 죽겠다는 말은 일면 매우 사리에 맞는 것 같지만, 그것은 영원한 자아의 본질을 망각한 결과이며 냉철한 판단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는 무지와 이에 수반되는 격정 때문에 고뇌했다. 결국 그는 스스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가 그의 마음이 어두운 먹구름으로 가려졌으며, 옳고 그름을 분간할 수 없다고 고백했을 때, 크리슈나는 그에게 바른 지식을 내려 무지를 제거하려고 한다. 그 가르침은 아르주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의 고뇌를 다루는 가운데, 크리슈나는 모든 인류의 선을 위하여 『바가바드 기타』를 설한다.

‘싸우라’는 표현에 대하여 샹카라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전쟁을 명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슬픔과 미혹으로 생겨난 장애를 제거하기 위한 촉구일 뿐이다. 자아란 육체적 생사를 초월한다는 것과, 누구나 자기 신분에 주어진 사회적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설정된 상황이 바로 전쟁이다. 『바가바드 기타』의 가르침은 슬픔과 미혹과 같은 윤회의 원인을 제거하자는 것이지 결코 전쟁을 명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바가바드 기타』의 쿠루크셰트라 전쟁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모순을 나타내는 인간 내면의 전쟁이다. 『바가바드 기타』의 가르침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놓인 아르주나의 고뇌로 시작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다. 전쟁은 죽거나 죽여야 하는, 생명이 무참히 살해되는 인간의 극한 상황이다. 『바가바드 기타』의 가르침은 먼저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 고뇌하는 아르주나의 내면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아르주나는 내면의 싸움에서 미혹에 눈멀고 두려움에 떠는 모든 사람을 대변한다.

이어서 설해지는 가르침이 더욱 매혹적인 것은, 그것이 아르주나의 내면의 큰 위기를 나타내는 전쟁이라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 설정되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여실하게 드러나는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한 철저한 고뇌가 있기 때문에 참다운 철학이 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정확히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 삶 가운데 문득 찾아오는 중대한 위기 상황은 우리의 마음속에 궁극적인 가치에 대한 생각을 자극한다. 오직 그때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감각의 장애를 깨부수고 내적인 실재에 닿는 데 필수적인 긴장을 얻게 된다.

아르주나의 낙심은 단지 실망한 사람의 일시적인 기분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비실재성을 일깨우는 공허감, 가슴속에 느껴지는 일종의 죽음 상태이다. 아르주나는 만일 필요하다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 옳은지 모른다. 그는 전율스런 시험에 직면하였으며, 감당하기 어려운 고뇌가 그를 뒤흔든다. 아르주나가 마주치는 절망감은 문득 깨달음의 길에 꼭 지나야 할 영혼의 어두운 밤이다.

이처럼 『바가바드 기타』는 전쟁 그 자체보다는 이를 통하여 내면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순과 갈등을 다루고 있다. 영혼의 삶은 쿠루크셰트라의 전쟁터로 상징되며, 카우라비족은 영혼의 진전을 방해하는 적이다. 아르주나는 시험을 물리치고 감정을 제어하여 인간의 왕국을 되찾으려고 시도한다. 전진의 길은 고통과 자기 극기를 통해서 가능하다. 내면의 삶에 대한 추구는 “사지가 주저앉고, 입은 바싹 타며, 전율이 내 몸을 휩싸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아르주나의 고뇌를 요한다. 이어지는 크리슈나의 가르침---참된 자아에 대한---이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아르주나의 철저한 고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가바드 기타』의 시작은 갈등과 모순, 이기심, 악마의 부드러운 속삭임이 교차하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크리슈나와 아르주나의 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우리가 듣는 것은 전쟁의 아비규환이 아닌 신과 인간 간의 진지한 교감을 보게 된다.

이거룡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심신통합치유학


함석헌 선생은 190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나셨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 3운동에 참가, 학업을 중단하셨는데 오산학교에 편입하여 이승훈, 유영모 선생의 영향을 받으셨다.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일부를 다니실 때 우치무라 간조 선생의 성서연구 집회에 참여하셨고, 귀국하여서는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다. 1932년에는 『성서조선』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쓰기 시작하셨으며, 1938년 창씨개명과 일본어 수업을 거부하여 오산학교를 사임당하셨다.

해방을 맞아 용암포·용산군 자치위원장을 지내시고 평안북도 자치위원회 문교부장에 취임하셨다. 1947년 월남하셨으며, 서울에서 매주일 YMCA 강당에서 일요종교집회를 가지셨고, 6?5가 일어나자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시게 되었는데 이때 『수평선 너머』를 발간하셨다. 1953년 서울로 올라오셨고,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사택을 마련, 1956년부터 『사상계』에 집필을 하셨다.

1970년 잡지 『씨알의 소리』 창간호를 내셨고, 1979년 퀘이커세계협회 초청으로 미국종교대회에 참석하시기도 했다. 노벨평화상 후보로 두 차례 추천을 받으셨다. 남강문화재단을 1984년 설립하셨고, 제1회 인촌상을 수상하신 바 있다.
저서로는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비롯해 『인간혁명의 철학』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 등 많이 있는데 이는 한길사에서 펴낸 ‘함석헌 전집’ 20권에 모아져 있으며, 1996년에 나온 ‘함석헌 선집’ 5권에 다시 정리된 바 있다.

출처: https://hangilsa.tistory.com/138 [여기는 한길사 블로그입니다]


==

2021/10/30

[조성환] 나에게 주어진 새길 - 성산기획

[조성환] 나에게 주어진 새길 - 성산기획

[조성환] 나에게 주어진 새길



나에게 주어진 새길

– 원광대학교 초대 총장 숭산 박길진의 일본 유학과 대학 경영 –

조성환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

새길 – 일본으로 떠나는 숭산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던 해에 숭산 박길진(1915~1986)은 유학 길에 올랐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교단도 어려운 상황인데다 종교가 아닌 철학을 공부하러 간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 세상을 넓게 보기 위해서는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싹트고 있었다. 숭산은 철학에 심취했던 배제고등학교 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나는 4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생각이 서서히 전환되기 시작했다. (…) 이때부터 나는 안으로 나 자신 인생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데 귀결되었다. 그래서 철학 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철학개론과 논어, 맹자, 중용에 이르기까지 독파하였고,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철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으며 그 방향의 공부에 집중하였다. (숭산종사 추모기념대회: 아, 숭산종사, 2004, 43쪽)

숭산이 유학의 목적지로 동양대학(東洋大學)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양대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는 철학에 있다”는 건학이념을 내건 ‘철학대학’이었기 때문이다. 동양대학을 창시한 이노우에 엔료(井上円了, 1858~1919)도 숭산과 비슷한 나이에 동경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1881년, 24세). 입학생은 단 한 명이었다. 숭산 역시 원불교 역사상 최초의 유학생이었다. 숭산이 유학을 떠나기 직전에 쓴 「새로운 출발」(1937)이라는 시에는 그의 비장한 각오가 느껴진다.

새로운 출발

험악하고 무서운 길이다.

나는 이 길을 걸어갈 때 자기 이욕(利慾)을 만족시키려는 고부라진 마음을 주의할지며,

모둔 동지와 선배들과 같이 우리의 사명과 의무를 끝까지 이행하리라.

아는 내 개체를 불에 던지더라도 그것은 절대로 어기지 않겠다는 용기승천의 세력으로

재출발을 부르짖는다.

언이행난(言易行難)의 인간이다. 배움이 있고 앎이 있고 실행이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배우고도 모르고 실행없는 인물은 무용지물이다. 실행 있는 충실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

활기있게 말과 정신과 실제의 덩어리를 한 뭉치로 만들어 전신에 걸머지고

육해산상(陸海山上)으로 날뛰며 한 마디의 호령으로 잠든 강호를 깨우치리라.

도덕이 쇠퇴한 사회다. 나에게 원천을 준 위대한 삼강령팔조목과 사은사요이시여,

이제 나는 ‘당신’의 품안을 떠나지 않고 위대한 정신을 받아 혼란한 사회를 위하여

영원히 땀과 피를 아끼지 않고 정의도덕을 위하여 분투노력하여서

불만을 느끼는 ‘당신’의 얼굴에 만족의 미소를 띄게 하리라.

이 시를 보면 당시 숭산은 “다시 태어난다”는 마음으로 유학의 장도에 올랐던 것 같다. 흥미롭게도 「서시」의 주인공 윤동주(1917~1945)도 이듬해인 1938년에 「새로운 길」이라는 시를 쓴다. 그 역시 연희전문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에 남긴 작품이다.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이 두 시에는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공부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한국 청년들의 비슷한 감성이 담겨 있다.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이 각오를 다지고 미래를 꿈꾸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구도 : 동양대 유학 생활

숭산은 일본에 공부하러 가는 대신 교단으로부터 커다란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것은 귀국 후에 교육 기관을 하나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 박길진이 아닌 공인 박길진으로서 감당해야 할 일이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내가 일본에 가서 공부한 목적은 인재를 양성할 교육 기관을 하나 맡을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대학을 다닐 때 벌써 ‘불교전수학원’ 원장의 발령장이 날아오기도 했었다.”

(원보 17호, 1983.02.01.)

“총부에서는 졸업식도 하기 전 내게 「불교전수학원」이란 발령장을 보내왔다.”(숭산문집, 64쪽)

교단의 사명을 지고 떠난 유학이었기에 각오는 남달랐지만, 막상 일본에 도착해보니 유학 생활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숭산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몸 불편하고 돈도 한 푼 없으면서 무엇을 가졌길레 기운은 그리 살았오.

그뿐인가 땅 한편 없고 집 한간도 없오. 가진 것이 있다면 희망 하나 뿐이오.”

(「희망」, 일본 수학시, 일원상과 인간의 관계, 316쪽)

그렇다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꿈을 포기하지 않게 만든 것일까? 진리에 대한 열정과 세상에 대한 애정이었던 것 같다.

“읽을 틈이 없다고 한탄치 말고, 볼 능력이 없다고 서러워 마라. 우리는 아직도 욕심을 억제할 여유가 있고, 사랑하고 불쌍히 여길 힘이 있지 않는가. 힘과 여유가 한 가지 있건마는 될 일은 아니하고 안 되는데 구하더라.” (「구본(求本), 회보 54, 1939년 5월 1일, 42쪽」

비록 외국생활은 어려웠지만, 유학시절은 숭산에게 생각을 정리하고 학문에 몰두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독서와 사색에 몰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수양과 구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도일(渡日) 후 동양대학에 취학하면서부터 나는 전일(前日)에 범한 사고의 극단을 정리하면서 순수한 학문 세계에서만 골몰하였다. 즉 독서와 사색에의 건전한 태도로 종교가로서 일체를 준비하는 한편, 저명한 불교학자며 일반 종교들과도 자주 상종하면서 우리 한국을 불교의 나라로서 발전시켜야겠다는 신념을 굳게 하였다.” (1958.10.25. 학보 8호.)

이처럼 숭산은 일본에서 단지 철학을 ‘배우는’ 것에 머물지 않았다. 다양한 종교와 폭넓은 교류의 경험을 쌓았다. 그것은 하나의 새길을 찾아가는 구도의 과정이기도 하였다. 그는 일본의 세계적인 사회운동가인 카가와 토요히코(賀川豊彦, 1888~1960)를 찾아가 ‘신(神)’에 대한 문답을 나누기도 하였다.

나는 그분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신에 대한 신앙이 철저하신데 그 신이 어딘가는 계실 것입니다.

제게 지금 그 신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얼마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그런 후 정원수의 나뭇잎 하나를 따서 나에게 주고는 “이게 신이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신에 대해서는 묻지를 않았다.

“나뭇잎이 신이다”는 카가와 도요히코의 말은 “새소리가 하늘님의 소리다”는 해월 최시형의 설법이나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라는 원불교의 교리와 다르지 않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천지만물이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위기의 시대에는 이 가르침이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지덕(智德) : 숭산의 교육이념

숭산이 다녔던 동양대학의 건학이념은 ‘철학대학’과 ‘지덕겸전(智德兼全)’이었다. ‘철학대학’이란 “모든 학문의 중심에는 철학이 있다”는 뜻이고, ‘지덕겸전’은 지성과 덕성을 겸비한 인재를 기르겠다는 생각이다. ‘철학대학’이라는 건학이념은 ‘철학공원’의 건설로 이어졌다. 동양대학을 창시한 이노우에 엔료는 동경의 나가노구에 거대한 철학공원을 만들었다. 거기에는 인류의 사대성인을 모신 ‘사성당(四聖堂)’이라는 건물도 있다. 사성당은 서양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 서양 근대철학의 종합자 칸트, 불교의 창시자 석가, 유교의 창시자 공자를 모신 사당으로, 지금도 매년 11월 첫 번째 토요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흥미롭게도 원광대학교 안에도 사대성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사성당과 다른 점은 칸트 대신 예수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서 숭산 박길진이 철학뿐만 아니라 종교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모든 진리는 하나로 통한다”는 원불교 정신의 반영이기도 하다. 또한 원광대학교의 건학이념은 ‘지덕겸수(智德兼修), 도의실천(道義實踐)’이다. ‘지덕겸수’는, ‘지덕겸전’과 마찬가지로, 지성과 덕성을 겸비한다는 뜻이고, ‘도의실천’은 도덕과 정의를 실천한다는 말이다. 동양대학이 철학이라는 지성의 훈련에 강조점이 있다면, 원광대학은 종교를 통한 도덕의 실천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거울 : 숭산의 인생철학

숭산이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소지품 중에 ‘거울’이 있다. 그가 거울을 중시한 이유는 1985년에 쓴 「숭산법어 : 거울의 교훈」이라는 글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거울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산에 비치면 산이 다 비쳐지고, 바다에 비치면 바다가, 천체(天體)에 비치면 수 많은 별들까지 다 그 거울에 들어가 버린다. (…) 그것은 거울 속이 텅 비어서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순무(純無)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무(無)의 심경(心境)을 가져보면 한량없는 넓은 마음이 되어 이 우주의 모든 것을 포용하고도 남음이 있게 될 것이다.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원보(院報) 23호, 1985.05.30.)

숭산에게 있어 거울은 장자(莊子)의 개념을 빌리면 허심(虛心), 즉 ‘텅 빈 마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종교는 이러한 허심을 기르는 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울은 ‘영성’의 다른 말이라고 보아도 좋다.

“머리는 텅 비워버려야 한다.” (원보 12호, 1981.05.)

“이러한 한가한 마음을 양성하기 위해 종교가 필요한 것이다.” (원보 13호, 1981.06.)

이렇게 보면 숭산에게 있어서는 원불교의 ‘원’은 텅 빈 거울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속에 아무 것도 없어서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는 본래 마음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수덕호의 사대성인상도 거울과 같은 마음이 되어야 세울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타 종교의 진리에 열려있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개벽 : 마음을 비우는 수양

숭산에게 있어 ‘정신개벽’이란 ‘마음을 거울처럼 비우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만 장자와의 차이는 물질개벽 시대에 허심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원불교의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표어에 드러나 있다. 이 표어에서 키워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물질과 정신의 대비이고, 다른 하나는 개벽이다.

1900년 전후로 일본을 통해서 동아시아에 본격적으로 서양철학이 수용되는데, 당시 서양철학을 이해하는 큰 틀은 유물과 유심, 물질과 정신이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일본에서는 ‘수양’ 담론이 시작된다. ‘수양’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책들이 여러 권 나오는데, 바로 여기에서 ‘정신수양’이라는 개념이 성립한다. 문제는 일본의 수양론이 ‘국가주의’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국민교육이나 국민윤리의 일환으로 수양론이 개발된 것이다.

반면에 한반도에서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국가라는 틀을 넘어서 우주론적이고 문명론적인 차원에서 수양론이 전개된다. 서구 근대의 ‘물질’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새로운 정신적 주체, 영성적 인재를 길러내자는 취지의 수양론인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1917년에 천도교 사상가 이종린이 정신수양이라는 책을 쓰고, 1927년에 원불교 최초의 교재인 수양연구요론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이런 수양론이 개벽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1930년대에 천도교에서 ‘정신개벽’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원불교의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도 이러한 사상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구 : 사회병에서 지구병으로

숭산은 원불교의 대종경을 해설하면서 ‘도덕문명’을 말하였다.

“현대사회는 물질문명은 발달하였으나 많은 사회병을 안고 있다…이러한 때일수록 정신문명, 도덕문명의 선행이 절실히 요청된다.” (대종경강의 「제2 교의품」, 65쪽)

“물질문명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국한되지만, 도덕문명은 모든 인간에게 다 필요하다. 물질문명은 인류에게 유익한 반면에, 혹 피해를 줄 수도 있지마는 도덕문명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나 피해를 주는 바가 하나도 없다.” (대종경강의 「제2 교의품」, 62쪽)

숭산이 살았던 시절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원불교가 탄생했던 시절은, 한국사회가 근대화와 산업화에 매진한 시대였다. 그것을 숭산은 ‘사회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사회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구병’을 앓는 상황이 되고 있다. 친족윤리와 국민도덕을 넘어서 지구도덕, 지구윤리가 요청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숭산이 지향한 도덕대학과 정신개벽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에드가 모랭의 개념을 빌리면, “야만적인 과학기술문명”에 의해 초래된 지구위기를 탐욕을 비우는 정신개벽으로 극복해서 “지구문명”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인류세 시대에 “인류에게 주어진 새길”이 아닐까?

 

2021/10/27

“하나님 ‘떠나라’ 목소리 들릴 때마다 뒤돌아보지 않았죠”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하나님 ‘떠나라’ 목소리 들릴 때마다 뒤돌아보지 않았죠”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하나님 ‘떠나라’ 목소리 들릴 때마다 뒤돌아보지 않았죠”
등록 :2021-10-10 
조현 기자 

[짬] 자전 에세이 펴낸 홍인식 목사

지난해 순천중앙교회 담임을 사퇴하고 목회 현장을 은퇴한 홍인식 목사가 지난 6일 인터뷰에서 자전적 신앙고백서 <엘 까미난떼>를 쓴 이유를 말하고 있다.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
홍인식(65) 목사는 밝고 명랑하고 솔직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 이사장으로서 차별금지법 폐지를 주장해도, 보수 목사들조차 명랑한 그의 얼굴을 보면 험한 말을 접기 일쑤다. 인생 대부분의 시기를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쿠바, 칠레, 멕시코, 한국 등을 떠돌며 산 방랑자의 낭만과 자유와 여유를 대하면 상대방도 완고한 무장이 해제되기 마련이다. 최근 스페인어로 ‘걷는 자’란 뜻의 책 <엘 까미난떼>(신앙과지성사 펴냄)에서 명랑한 겉모습과 달리 아픈 어린 시절까지 고백한 그를 지난 6일 서울 공덕동의 한 교회 카페에서 만났다.
스페인어 걷는 자 ‘엘 까미난떼’ 출간
부모 이혼·더부살이·남미 이민 등
성공·부자 갈망했던 성장기 아픔 첫 고백
한국인 최초 ‘해방신학’ 박사학위 받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쿠바 칠레 등등
10차례 ‘꽃방석’ 자리 버리고 자유롭게
신앙과지성사 제공
-
홍 목사는 20대 때 신학대학원생들이라면 누구나 선망했던 영락교회에 전도사로 들어갔다. 이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주목받던 한인교회에서, 50대엔 서광선 이화여대 교수·한완상 서울대 교수·이삼열 숭실대 교수 등이 활동했던 서울 압구정동 현대교회에서, 올 초까지는 전남 순천의 장자교회인 순천중앙교회에서 각각 목회 활동을 했다. 그는 그런 ‘꽃방석’을 언제나 임기나 정년도 채우지 않고 박차고 나갔다. 지위에도 돈에도 매이지 않고 언제나 떠났다. 그쯤은 놓고 떠나도 뭔가 유복한 뒷배경이 있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가 생애 처음으로 <엘 까미난떼>에서 고백한 삶은 ‘유복’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초등학교 1학년인 만 7살 때 부모가 이혼했다. “짐을 싸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아빠 집으로 옮겼다. 엄마 집을 떠나는 차에서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떠올리며 조약돌로 표시도 해놓지 않았는데 어떻게 엄마 집을 다시 찾아올 수 있을지 고민하며 길을 잃지 않으려 뇌리에 박았던 창 밖 풍경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아빠가 새엄마와도 이혼해 다시 짐을 쌌다. 옮긴 곳은 아빠를 ‘오빠’라 불렀으나 혈육은 아닌 ‘고모’의 집이었다. 그곳에서 더부살이 5년을 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학비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20일간 등교 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전교 1·2등을 했지만 학교에서 쫓겨나던 날의 설움과 모욕감을 잊을 수 없다. 그는 고교 2학년 때 어머니·누나·여동생과 함께 파라과이로 농업 이민을 떠났다. 가난을 벗어나려 고국을 떠나는 날, 너무도 울어서 앞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도 기어코 성공해서 가난에 보복하겠다는 마음만은 굳건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파라과이에서 고교를 다니며 옷행상과 옷가게를 했고, 아순시온국립대학 경영학과에서 성공과 부자의 꿈을 키웠다.

그런 그가 한국인 최초의 ‘해방신학’ 목사가 됐다. 해방신학은 혼자 잘 사는 길을 포기하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삶을 위한 선택이었다. 1960년대 이래 남미에서 독재자들과 다국적기업의 부도덕에 맞서 로메로 주교를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를 낸 게 해방신학이었다. 그래서 해방공간 북에서 공산당에 의해 박해받고 남하해 친미·친독재의 길을 걷던 월남자들이 세운 영락교회를 비롯한 주류 교회의 보수적 크리스천들에 의해 민중신학, 해방신학을 비롯한 진보는 ‘빨갱이’로 매도당하기 일쑤였다. 북한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땅과 재산을 빼앗기고 남하한 아버지를 둔 그가 영락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해방신학자가 되리라곤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할 수 없었다.” 홍 목사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해방신학과 달리 마치 성령론자처럼 고백했다. 파라과이 한인교회의 환송을 받으며 “목사가 되어 다시 남미로 돌아오겠다”고 했던 그는 10년 만에 돌아온 고국에서 장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형교회인 영락교회 전도사가 되었다. 교인들을 심방할 때마다 신자들이 여비 봉투를 줘서 주머니는 늘 두둑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짝사랑했던 여성과 결혼해 ‘토끼 같은’ 아이들까지 생겼다. 가난한 파라과이로 돌아간다는 약속 같은 건 곧 잊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미아리 산동네에서 할머니 권사가 봉투도 없이 꼬깃꼬깃한 5천원 지폐를 주었다. 마지못해 받긴 했지만 ‘내가 거지인가. 이따위 적은 돈을 주다니’ 하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 순간 머릿속에 뚜렷한 음성이 들렸다. ‘이가봇, 내가 너를 떠났다’는 성경 구절이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고 떠났다는 소리에, 하나님이 아닌 봉투를 믿는 나를 발견하고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뒤 그는 짐을 싸 파라과이로 떠났다. 그곳에서 목회를 하다 몇년 뒤 아르헨티나로 옮겨 목회를 했다. 거기서 체 게바라의 친구인 세계적인 개신교 해방신학자 호세 미게스 보니노를 스승으로 모시고 해방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교수 겸 목사로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잘 나가는 신성교회 담임을 할 때였다. 200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미주한인장로교총회에 참석했을 때 한 지인이 그를 처음 만나는 목사에게 “아르헨티나에서 온 홍인식 목사님입니다”라고 소개했다.

“‘내가 그냥 목사인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큰 한인교회 목사고, 박사에 교수까지 하고 있는 성공한 목사라고 소개해야지, 그따위로 소개하다니’란 생각에 불쾌해하며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다시 ‘떠나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신성교회를 떠나 남미에서도 가장 열악한 공산국가 쿠바로 가 5년간 신학대학 교수를 했다. 이후 칠레에서도, 서울 현대교회에서도, 멕시코 신학대에서도, 전남 순천중앙교회에서도 기득권을 버리고 떠났다. 무려 10차례 뒤돌아보지 않고 ‘엘 까미난떼’가 됐던 그는 말했다.

“‘신이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신을 믿느냐’가 문제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돈, 지위, 이데올로기, 명예를 믿은 건 아닌지…. 남미에서 평생 가난한 자, 핍박받는 자와 함께하며 군부 독재자에게 죽임까지 당하는 해방신학자에 비하면 나는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well/people/1014602.html#csidx437a30502bac4d28b0e97a62be9b3f1 

'퀘이커 평화주의자' 이행우 선생을 보내며

'퀘이커 평화주의자' 이행우 선생을 보내며


'퀘이커 평화주의자' 이행우 선생을 보내며

[기고] 평화통일운동가 이행우 선생의 '진주알 잇는 실' 같았던 삶
김성수 <함석헌 평전> 저자 | 2021-10-26 

나는 1980년 대 초반 함석헌(1901-1989)을 처음 만나며 금방 '함석헌에 미친 사람'이 되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3554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65180)

1984년 5월 군대에서 제대하고 철도청에 복직한 나는 서울 명동 전진상교육관과 향린교회에서 매주 함석헌이 강의하는 노자와 장자 공부모임을 참석했다. 한 번은 노자 공부모임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은 분이 퀘이커 교도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1985년 어느 날 그의 손에 이끌려 서울 신촌 봉원동에 있는 퀘이커모임을 처음 찾았다. 그곳에서 나는 예배 후 함석헌이 강의하는 성경과 퀘이커 공부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다.

퀘이커 모임에 참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중년의 재미동포가 미국에서 한국 퀘이커 모임을 방문했다. 그는 예배 후 그의 생생한 '북한방문기'를 들려주었다. 그 재미동포가 이행우 선생(1931-2021)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한국전쟁 중 함경남도 북청에서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전쟁피난민' 출신이라 이행우 선생의 북한방문기에 온 시각을 곤두세우고 깊은 관심을 갖고 들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29329)

▲오른쪽 끝이 이행우 선생이다. ⓒ김성수 제공

당시는 광주학살로 손에 피를 묻히고 정권을 잡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기라 북한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사항이었다. 그래서 이행우 선생은 전두환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재미동포라 전두환 정권은 그를 철저히 감시는 하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하지는 못했다. 이행우 선생은 그 후에도 거의 매년 평생 40번 이상 북한을 방문했고 방한 할때 마다 퀘이커모임에서 북한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이행우 선생은 그의 스승 함석헌을 모시고 서울퀘이커모임에 참석했고 1960년엔 함석헌과 함께 서울퀘이커모임을 창립했다. 그리고 1968년 그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퀘이커연구소 펜들힐로 유학을 갔고 그 후 가족과 함께 미국에 정착했다. 전주고등학교와 서울대 수학과 출신이었던 그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곧 컴퓨터 전문가로 직장을 잡아 지난 2003년 73세의 나이로 현업에서 은퇴했다. 컴퓨터 전문가 1세대로 수입도 좋았지만 그는 그와 가족이 평생 살 집 하나 마련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평생 번 돈을 한반도 평화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썼기 때문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단란하게 휴가나 여행을 가기 보다는 그는 자비를 털어 미국, 북한. 일본, 중국, 유럽을 방문해 정치인, 관리, 시민활동가, 학자, 언론인들을 만나며 한반도 평화통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했고 국제회의를 개최했으며 그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설득했다. 그 외에도 그는 자비를 털어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영어논문집을 제작해 이들에게 배포했고 민주화운동으로 고난을 받고 있는 한국의 재야인사나 정치범들을 위해 미국에서 모금을 해 한국으로 돈을 송금해주었다.

1974년 한국민주화운동인사들과 그 가족들을 돕기 위해 '한국수난자가족돕기회'를 미국에 결성하면서 그는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인사들이 거의 수입이 없는 실업 상태였기 때문에 재미동포들에게 모금활동을 하여 국내에 돈을 보냈던 것이다.

1982년에는 미국 퀘이커(AFSC)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해 북한 관리들을 만나 한반도 평화통일문제, 조미관계 개선문제, 북조선대표단을 미국에 초청하는 문제 등을 협의했다.

1986년 그는 한겨레 미주홍보원을 설립, 'Korea Report'라는 영문보고서를 발간해 대미홍보와 국제연대 활동을 전개했다. 그가 이 보고서를 발간하기 전에는,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미국에서 한국문제를 분석한 영문 자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미국 고위관리, 정치인, 학자. 언론인들이 그가 낸 보고서에 큰 관심을 보였고 미국사회에 한반도평화통일의 중요성에 대해 대단히 큰 영향을 미쳤다.

1987년엔 그는 미국의 지인들과 한국지원연대(Korea Support Network)를 결성,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고 국제사회에 알렸다.

1989년엔 전국대학생협의회를 대표해 방북한 대학생 임수경이 문규현 신부와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일이 있었다. 그 때 이행우 선생은 대학생 임수경을 무사히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미리 문규현 신부와 함께 방북해 '임수경의 안전한 귀환을 위해' 북한당국의 협조를 구했다.

1994년에는 대기근으로 북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사했다. 그러자 이행우 선생은 기근으로 고통받는 북한동포들을 인도적으로 돕기 위해 미국 퀘이커들과 함께 방북해 북한의 농업을 지원하고 인적교류를 추진했다.

1995년 그는 미주평화통일연구소, 1998년에는 자주민주통일미주연합을 설립했다. 이런 단체들을 통해 이행우 선생은 한반도 평화통일문제에 대한 논문을 발간했다. 그리고 그가 발간한 논문들은 남북과 해외동포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는 그런 긍정적 반응을 바탕으로 다른 한반도 평화통일운동단체들과 적극적 연대활동을 벌였다.

이행우 선생의 이런 물밑 작업과 각고의 노력은 마침내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가능하게 했고 한반도 평화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행우 선생의 한반도평화통일을 위한 보이지 않는 헌신적 봉사와 희생 덕에 마침내 지난 2000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늦게나마 그의 한국 민주화운동, 남북한 긴장완화, 한반도 평화통일 노력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지난 2011년 이행우 선생은 한겨레 통일문화상을 받았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83611)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난 2013년, 45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그는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고 곧 한국국적 회복을 신청했다. 하지만 당시 이명박 정권과 그 뒤를 이은 박근혜 정권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행우 선생의 국적회복 신청을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한편, 지난 2012년 8월 나는 북한 실향민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실의에 빠져있었다. 그러던 중 그 다음해인 2013년 귀국한 이행우 선생을 나는 매주 서울퀘이커모임에서 만나며 마치 아버지가 죽음에서 돌아온 것처럼 느꼈다. 그는 내가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극우 인사 이영조 진실화해위원장을 상대로 고소한 법적소송에서도 큰 위로와 힘이 되어 주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79063)

그리고 그런 이행우 선생의 따스한 격려에 힘입어 나는 지난 2016년 마침내 이영조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하는 결실을 맺기도 했다.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1605281843001

한편, 지난 2020년 8월 그는 광복회로부터 "한반도 분단극복과 통일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광복평화상'을 받았다.

올해 9월 나는 암으로 병상에 누워계신 이행우 선생께 문안인사차 영국에서 국제전화를 드렸다. 올해 3월 어머니를 보내고 코로나 때문에 어머니 장례도 참석 못해 힘들어 하던 내게 선생은, "성수, 힘내야지! 그리고 오래 살자!"라며 오히려 격려의 말씀을 주셨다. 그런 선생이 지난 10월 16일, 암으로 투병 생활 끝에 돌아가셨다. 그의 부인과 두 아들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장례를 진행한 뒤 그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모셨다.

함석헌 선생이 내게 정신적 할아버지와 같은 분이였다면 이행우 선생은 내게 정신적 아버지와 같은 분이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96447

이행우 선생은 달변가가 아니었지만 그 말씀의 내용은 늘 놀라웠다. 그의 가장 큰 무기가 '진실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화려한 무대 뒤에서 남을 위해 조용히 일만 하셨다. 그는 아름다운 '진주목걸이를 이어주는 실' 같은 분이었다. 진주목걸이가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한 여인의 목에 당당하게 걸릴 수 있는 것은 그 진주 하나하나 속을 관통하여 이어주는 가느다란 '보이지 않는 실' 때문이다. 내가 보는 이행우 선생은 그런 분이었다. 그는 입이 아니라 삶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남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몸소 본을 보여 주셨다. 그런 이행우 선생이 너무 그립다. 내년에 모국에 가면 반드시 어머니와 그의 묘지를 찾아가 머리 숙이고 목 놓아 마음껏 울고 싶다. 선생님, 너무나 그립습니다!
===

* 이행우 선생 : 1931년 1월 3일 전북익산 생. 1955년 서울대 문리과대학 수학과 졸업, 그 해에 해군장교에 임관, 해군사관학교에서 수학 교수. 1957년 군복무를 마치고 이리 남성고등학교, 서울 동북고등학교, 숭문고등학교에서 수학 교사, 한양대학교 출강. 종교는 퀘이커교. 1968년 미국퀘이커교단 초청으로 유학, 퀘이커교육기관인 펜들힐(Pendle Hill)에서 1년간 퀘이커교에 대하여 공부. 공부를 마치고 미국 필라델피아에 정착, American Bank(1969-1979), Burroughs Corp.(1979-1980), Polymer Corp.(1980-1986), Delaware Investments(1986-2003) 등에서 Systems Analyst로 근무. 2011년 한겨레통일문화상, 2020년 '광복평화상' 수상. 2021년 10월 16일 하늘나라로 가심.


▲이행우 선생 추도식 안내문


2021/10/26

유동식2 | 부처님, 공자님도 하나님께서 보낸 예언자 | 풍류도를 알면 모든 종교를 알 수 있다 | 풍류신학 유동식 교수



*자막있음 | 부처님, 공자님도 하나님께서 보낸 예언자 | 풍류도를 알면 모든 종교를 알 수 있다 | 풍류신학 유동식 교수
313 viewsOct 26, 2021

31

1

SHARE

SAVE


조현TV 휴심정

유동식 교수는 황해도 평산 남천에서 태어나 연희전문대를 거쳐 일본 도쿄 동부신학교에 유학 중 1944년 일제 학도병으로 징집됐다가 한국전쟁 직후 감신대를 거쳐 미국 보스턴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이어 감신대와 연세대 교수를 지냈다.

2021년 그는 100살이다. 일제강점기 연희전문에서 윤동주 시인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다. 그는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연세대 옆 단독주택에서 홀로 산다. 부인 윤정은 전 이화여대 교수가 4년 간의 암 투병 끝에 2004년 별세했으니, 사실상 20년 넘게 홀로 삼시 세끼를 해결하며 산 셈이다. 그런데도 초인종을 누르자 2층에서 내려와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을 손수 열어줬다.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운동 삼아 직접 나온다고 한다. ‘원활한 대화와 인터뷰가 가능할까’라는 염려를 일거에 날리고, 무려 3시간 동안 질문에 자세히 답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기독교인에게는 교회라는 공간을 넘어 참 신앙을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한국 전통의 얼을 풍류도로 보고 풍류신학을 연 그는 케이팝의 원류를 풍류도라고 본다. 그는 “춤과 노래와 예술혼인 풍류도를 마음껏 발현하라”고 젊은 세대를 격려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우리의 자존심을 살려줬던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을 영어로 줄줄 외웠다. 그러면서 ‘동방의 등불’은 풍류도를 오늘에 알린 최치원이 썼던 말이라고 했다. 유동식 교수가 생각하는 한국문화의 원형과 풍류신학, 한국 기독교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
Transcript


00:00
유동식 교수님은
00:03
싸이의 강남스타일 말 타는 모습을 보시고
00:08
알렉산더나 징기스칸이 말(馬)로 세계를 정복하지 못했는데
00:12
싸이가 우리 기마 민족의 말 타기 동작으로 세계를 정복했다
00:15
하셨는데요 요즘은 싸이도 그랬지만
00:19
BTS,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를 휩쓸고 한국의 국악 같은 이날치밴드
00:26
이런 것에 전 세계인이 열광을 한단 말이에요 한국 전통 국악, 우리는
00:30
서양인들이 귀담아 들을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음악과 춤으로
00:38
전 세계인을 열광 시키는 힘이 풍류도에서 나온다고
00:44
보십니까 그렇지!
00:50
내가 홍콩 대학에서 강의해 달라고 가서 바로 그걸 얘기했는데
01:02
알렉산더는 말을 타고 세계를 정복하고
01:08
하려다 파키스탄까지 와서 죽고 말았는데
01:15
싸이라는 사람은 말 춤을 타고 파리에 이르렀어
01:22
파리의 그 사진 봤어? 에펠 탑 앞에
01:27
사람들이 새까맣게 모였어, 그 말 춤 보려고
01:35
싸이가 참 대단한 인간이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01:45
그건 내가 어딘가 신문에 난 걸 잘라 놨는데
01:53
아시아의 아주 독특한 민족이야, 우리가
01:59
중국이, 주변국을 다 먹어 가지고 큰 영토를 만들었는데
02:07
요 조그만 나라가 안 먹히는 거야
02:15
당나라 때부터 전부
02:21
위구르 족까지, 이슬람은 민족적으로 다른 것까지
02:29
다 합쳤거든
02:34
그런데 요 조그마한 한국은 그게 안 되는 거야 그게
02:40
거기에 우리의 독자성을 찾아야 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하느냐
02:46
내가 말 춤 얘기를 어디에 썼었나? 내가 홍콩 대학에 가서
02:53
강의할 때 그 얘기를 했지. 알렉산더는 말 타고 티벳 와서 죽었지만은
03:02
싸이는 말 춤 갖고
03:06
파리까지 점령했다고 파리에서
03:12
신문에 났던 것 잘라 놓은 게 나한테 있어
03:17
그야말로 새까맣게 모였더라고
03:22
기마 민족의 후예라고 내가...
03:25
그것이 우리 풍류도 전통의 혼 속에 들어 있는 그것이
03:30
발현된 것이라고 보십니까 그럼
03:37
우리 피 속에 굉장히 사람의 의식 구조라는 것은
03:43
단 시일 내에 변하는 것이 아니야
03:49
나는 기독교 신앙도
03:53
갑자기 늘어나다시피 하고
03:57
아시아에서는 인구 비례로 제일 많지만
04:02
이제 정말로 유대 민족의 기독교가
04:10
우리의 피 속까지 들어오려고 그러면
04:17
토착화라는 얘기 썼지만, 상당한 세월이 걸린다
04:26
많은 경우, 학자들은 성경에 입각해서 해석을 하지만
04:34
많은 신도들의 경우에는
04:38
무속과 혼합돼 있어
04:45
무속이라는 것이 세 가지야, 비는 것이
04:53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제석신(帝釋神)(*민간신앙에서 가옥에 있다고 믿는 신)
04:59
대감(大監)이라는 건 부자 되는 거(*대감 : 무속에서 인간의 재복과 집안의 평화 및 번영을 담당한다고 믿어지는 신령)
05:08
평화, 종교가 공통된 건데
05:18
초월적인 신, 창조주를 믿는 것이 기독교고
05:29
무속은 하나하나의 신이 따로, 말하자면 다신교야
05:37
제석은 수명 장수하게 하는 것
05:45
대감은, 터줏대감이라는 말 잘 쓰지? 대감신은 부유하게 사는 거
06:01
우리의 의식 속에 그것이 있는데
06:05
다만 천지창조
06:15
자유의 영, 평화와 사랑
06:23
특히 사랑
06:30
요한서신에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건 자유의 영이고
06:39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건 평화. 자유와 평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자유와 평화와 사랑
06:51
이게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행복, 그 연장선 상에서 내세를 보는 거거든
07:07
그게 기독교의 핵심인데
07:12
부분적으로 무속이, 부분적으로 불교가 부분적으로 유교가
07:20
요소들은 다 들어가 있어
07:25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이라고 해
07:30
자기를 극복하고 천성으로 돌아가서
07:36
예를 지킨다
07:40
위인(爲仁), 인은 사랑이지 말은
07:45
기독교적인 요소와 유교도 들어 있고 불교의 자비도 들어가 있고
07:52
다 들어가 있어. 그것이 완성이 된 것이
07:56
완성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탄생과 십자가와 부활로
08:10
지금 인류에서 신도 수가 제일 많은 것이 기독교지
08:24
미국과 한국은 프로테스탄트가 많고, 다른 데는 다 가톨릭이지만
08:32
전 세계의 제일 큰 종교는 기독교지
08:37
신앙적으로 우리나라 기독교가 끼친 아주 좋은 영향이
08:43
굉장히 많기도 하고 우리나라 발전과 시민 의식을 함양하고 사람들이
08:50
역동성을 키우고 서구화 동력을 갖도록
08:54
하는데 굉장히 큰 힘이 됐는데요
08:59
신앙적으로는 미국의 근본주의적인 영향을 받아서 너무 지나치게
09:05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런 식으로 너무 강조하다 보니까
09:09
그러면 예수 안 믿었던 우리 조상들은 다 지옥에 갔단 말이냐
09:14
이런 점은 어떻게 봐야 됩니까
09:18
히브리서의 첫 줄에
09:24
하나님께서 여러 번,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시다가
09:30
마지막 날에 외아들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셨다
09:37
나는 이걸 아주 제일 핵심으로 생각해 불교를 통해 말씀하시고, 유교를 통해 말씀하시다가
09:46
마지막에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셨다
09:50
우리의 종교문화사를 엮어내는 거야
09:55
불교를 통해서도 부분적으로 말씀하셨다
10:01
나는 불교도, 부처님도 하나님께서 보낸 예언자라고 생각해
10:09
공자님도 하나님께서 보낸 예언자야 그러니까 이사야(*구약의 위대한 선지자)나
10:18
구약만이 아니고
10:21
우리한테는 더 풍요롭게
10:25
부처님을 통해 팔만대장경이라는 그 방대한
10:31
교훈을 해주셨고 또 유교
10:37
나는
10:40
극기복례위인이면 기독교의 전부인데 뭐 자기를 극복하고 하늘의 뜻으로 돌아가서
10:48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기독교지 뭐
10:55
하나님이란 말을 안 써서 그렇지
11:03
우리 조상 때부터 하느님 신앙, 그러다가 기독교가 들어오니까
11:14
거기서 딱 맞는 거지
11:18
그 대신 어떤 위험이 있느냐면 전통적인 신앙하고 혼동해 버리는 것
11:24
또 하나는
11:28
무속
11:34
병 낫게 해주는 거
11:38
기도하는 건 당연한데 그걸 위해서
11:43
하나님께 그 것만
11:49
God bless...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11:56
좋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한... 병 낫는 거
12:02
전화 받아서 어디 아프냐 기도해주는 프로그램 있지
12:10
매주 목요일인가 해 나도 재밌어서 매주 보는데
12:15
그걸 극단으로 몰고 가면 무속이 되고 말아
12:20
병 낫기 위해서
12:24
병이 나면 고쳐주십사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게 당연한데
12:29
그것이 삶의 목적이, 신앙의 목적이 될 적에는
12:34
무속화 되는 거야 부자되는 것도 마찬가지야
12:39
종교 간에는 공통점이 있고
12:45
독자성이 있는데
13:00
기독교가 한국에 끼친 제일 큰 영향은
13:05
문화적인 현대화야 들어오자마자 배제, 이화
13:13
배화 세웠잖아 그게 한국 근대화의
13:19
첫걸음이지 그 분들이 들어와서
13:23
전도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어
13:28
교육부터, 교육과 자선사업
13:33
홀트가 근자에 와서는
13:41
고아들까지
13:44
바탕에 깔린 어려움을 해소해 준
13:49
한국 근대화와 기독교는 절대로 뗄 수 없는
13:54
그것을 뭣 모르고들
14:01
유물사관을 가지고.... 역사 공부를 해봤나, 그런 생각이 들어
14:09
유동식 교수님은 100세까지 살아 오시면서 지금까지 만나본 수많은 인물들
14:15
근현대사 인물들이 많을텐데
14:18
가장 인상적인 인물, 기억 나는 분 있습니까
14:26
내가 공부, 학위를 그 사람 따라 했지만은
14:34
내 신학의 조상은 불트만(Bultmann)이야
14:43
내가 불트만의 '케리그마와 신화'를 처음으로 번역했어
14:56
내가 유럽에 있을 적에 그 댁에 찾아가고 그랬는데
15:08
우리는 영의 세계를 믿는데 그걸 표현하려고 하면 이 세상적인 걸로 표현
15:15
할 수밖에 없잖아
15:18
영의 세계를 이 세상적인 걸로 표현한 것이 신화가 된 거야
15:26
근데 희랍신화라고 하는 것은
15:29
무슨 옛날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의 철학을
15:34
영적인 철학의 세계를 신화로 표현한 것이지
15:44
영적인 세계를 표현하려고 그러면 이 세상적인 걸로, 말로 표현할 수
15:51
밖에 없으니까 그것을 해석을 해야 한다
15:58
이게 비신화화라는
16:04
쉽게 말해서 죽으면 천당 간다, 하늘 간다
16:08
저 하늘을 생각을 하잖아
16:13
그게 아니라 영의 세계
16:18
차원으로 말하면 4차원의 세계가 아니야
16:23
그 초월의 영의 세계에서
16:27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인간의 형상을 갖고 생각을 하는 건
16:33
일종의 신화지
16:37
그것을 해석해야 된다
16:42
신화의 세계를 영적인 세계로
16:46
그것을 어떻게 정신 생활 문화에 적용할 수 있느냐
17:02
내가 학문적으로 눈 뜨게 된 건 불트만 교수. 내가 보스톤에서 요한복음으로 논문 쓴 것은 불트만의 비신화화
17:22
한국인이라는 자각과 더불어 불트만 교수
17:34
불트만의 영향으로 한국의 전통 한국의 문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을 발견하는
17:40
시도를 하신 거죠 유동식 교수님은 연희전문
17:44
들어 오셨을 때 윤동주 시인이 1년 선배이셨다는데
17:50
그 때 윤동주 시인이 어땠습니까 같은 기숙사에 있었지
17:57
같은 기숙사에 있었는데
18:02
그 분이 사람들하고...우린 그땐 어떤 분인지 몰랐는데
18:11
사람이 얼굴도 하얗고
18:15
깨끗하고 예의 바르고 늘 사람 만나면
18:21
미소 띠고 아주
18:24
점잖은 신사
18:29
사귀는 사람이 별로... 어떻게 보면 차원이 좀 달라. 그 분은
18:38
일찍 깨달은 사람이야
18:41
시의 세계에서 살 수 있는
18:47
기독교 신앙도
18:53
달님, 해.. 그 시에서도 보다시피
18:58
그 세계를 깨달은 사람이지
19:02
쉽게 말하면 학생인데 도사야, 그러니까 일반 사람들하고
19:09
막 사귀질 않지 유동식 교수님이 풍류신학 이런 걸
19:13
보고 저는 화엄경 사사무애법계 이런 걸 설명하시는 걸 보고
19:19
어떻게 보면 불교에서도 제일 핵심인데
19:23
아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셔서 놀랐는데
19:27
불교 공부를 하셨으니까 스님들 하고 인연이 있으셨습니까
19:33
내가 그 쪽 강의 들은 건, 해방 후에 기숙사에서
19:43
대학교 기숙사에 있었는데
19:47
겨울 방학 때는 불도 안 때 주거든 불도 안 때 주는 방에
19:53
이재각이라고 룸메이트가 있었는데 둘이서
20:00
난로에다가...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 갖다가 조금씩 때고
20:10
자취라고 해야 엉터리로 먹으면서 무슨 공부를 했냐 하면
20:19
그 때는 교수가 시원치 않으니까
20:23
외래 강사들을, 이름 있는 강사들의 강의를 쫓아 다녔어
20:28
학생들이. 그게 일반적인 경향이야
20:33
함석헌 선생, 유영모 선생을 YMCA에서 만났고
20:38
불교에 함 선생님처럼 뛰어난
20:44
사람이 있었는데 탄허라고
20:50
탄허 스님이 그 때는 나이가 젊었을 때지
21:01
장자 강의를 했어
21:05
그야말로 불교 강의를 하지 않고 장자 강의를 했어
21:12
겨울 방학 때 하루에 2시간씩
21:18
그 때 한국 대학에서 들으셨습니까
21:24
남산 밑에 한국대학이 있었다고 하는데 뭔가 사립학교...
21:31
그 교실에서
21:35
참 그때만 해도 추운데 말이야
21:43
강의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학생들이
21:48
교파 이런 것 막론하고
21:53
과 막론하고 모두 굶주려 있어
21:58
YMCA에서 함석헌 선생 강의하는데 거의 꽉
22:03
몰리고 또 밤에
22:07
장자 강의하는데 꽉 몰리고 겨울방학은 거기 가서 그렇게...
22:18
함 선생도 동양 고전에 통한 입장에서
22:24
얘기를 하는 거고 탄허도 성경을 다 알아요
22:31
장자를 얘기를 하는데 거기서 말하면
22:36
동양학에 대한
22:42
서양만이 아니로구나
22:50
점점 뿌리를 캐다가 한국 종교사를 한 거지
22:57
거기서 장자만 들었는데 화엄경, 화엄학은 어떻게
23:02
아셨어요
23:06
장자를 강의하는데 화엄학과 관련해서 강의를 한 거지
23:12
따로 떼서는...
23:17
화엄은 53권의 큰 양인데, 장자는 하나지만은
23:27
그 장자를 해석을 하려면
23:32
화엄회상에서 봐야 돼
23:40
이사무애법계 이의 세계하고 이 세상
23:45
4차원과 5차원의 세계
23:53
차이가 없어, 만나
24:00
그렇게 되면 5차원인데
24:04
풍류도가 거기야
24:08
풍류도의 사상적인 뿌리로 가면
24:14
화엄하고 장자
24:20
노자는 장자를 통해서
24:24
포함삼교 할 수 있는
24:29
그런 기회가 해방 후에 주어진 거야
24:35
우리가 불행한 시대에 공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24:41
그런 특징이 있었어 회통하는 특징
24:47
교수들이 없었기 때문에 전부 일본 사람들이 교수 하다 갔으니까
24:53
교수가 없기 때문에 그 분들
24:58
그 분들 통해서 유불선을 공부할 수 있었어
25:07
장자 얘기하면
25:13
노자 얘기하게 되거든
25:17
노자 무위자연
25:22
극기복례 포박이지족이라
25:26
그 때 나온 거야
25:31
무위자연 사람의 조그만 지식을 버리고
25:35
자연의 법도를 따라서 살아라, 그게 노자의
25:45
극기복례 자기를 극복하고... 예라는 건 유교
25:54
하늘이 내린 법도로 돌아간다
26:00
마지막이 포박이지족이다
26:07
이건 아주 기독교... 에베소서 4장인가...
26:18
자기가 받은 대로 족한 줄 알아라
26:24
포는 안는 것 박은 소박하다고 하잖아
26:29
있는 그대로 끌어 안고 족한 줄 알고 살아라
26:37
하늘이 내린 거다
26:44
그 도사들의 강의를 들은 게 내가 성서를 보는 데 큰 도움이 됐어
26:49
풍류신학도 보니까
26:54
유동식 교수님께서 한국 불교의 핵심인 화엄학에
27:00
사사무애법계, 이사무애법계를 아주 성경적으로 설명을 해놓으셨더라고요
27:05
영의 세계는 이법계인데
27:09
우리 현실의 세계는 사법계고 그런데 영과 현실이 전혀 동떨어진
27:14
것이 아니고 영의 세계가 지금 우리 삶 속에서, 말 속에서
27:19
우리 생활 속에 지금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법계, 사법계가 서로
27:23
회통하고 터 놓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27:28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도
27:32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삶 속에서 회통치고 있는 것이다
27:37
역사적인 예수가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 안에 들어 오셨고 또 다시
27:47
하늘로 가셨다 그리스도는
27:52
이사무애법계를 모르면 성육신을 이해 못 하지
28:00
살아 계신 하나님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28:07
어떻게 이해를 해 그게
28:12
동양학자들은 그렇게 포착을 한 거지
28:23
어느 도의 극치에 가면 다 통하는 거야
28:30
그게 우리 유동식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포함삼교, 풍류도에 다
28:35
그것을 표현한 것이
28:41
예술이야 예술이라는 건
28:50
그 후에 한국 사상을 공부하려고 그건 전부 중국 사상들 아냐
29:01
요샌 모두 번역돼 나왔지만 삼국사기 읽느라고 혼이 났어
29:08
우리가 한문을 그렇게 모르거든
29:15
거기서 배운 게, 고운 최치원
29:26
그 분의 고민이 우리와 같았어
29:34
어릴 때 당나라로 유학을 갔고
29:40
17년 만에 돌아왔으니 중국 것은 다 통달했는데
29:47
신라는 몰랐지 근데 와서 보니까
29:54
화랑과 고승들이 남긴 글을 보니까
29:59
중국 사람들이 통한 그 이상의 것을 본 거야
30:08
그 분이 난랑 화랑 비문에 쓴 것이
30:16
우리나라 얼이 풍류도라고 했는데
30:21
삼국사기 쓸 때 인용을 한 거지
30:27
그 글을 보고 나로서는 눈이 번쩍 한 거지
30:34
풍류도만 알면 모든 종교를 다 알 수 있다
30:40
그 눈으로
30:44
최치원 선생은 그 눈으로 유불선을 봤는데 나는 그 눈으로 기독교를 봤던 거야
30:52
그래서 풍류신학이라는 말을 했어 처음에는 이단으로 몰려 가지고
31:00
공격을 많이 당했는데 이젠 풍류신학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더라고
31:05
신학교에서도... 대표적인 토착신학이니까요
31:10
토착신학을 해야, 유동식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나의 종교가
31:17
민족 안에 깊숙히 들어갈 때는 일이 백년 안에 되는 것도 아니고 포착을
31:22
해서 의식 깊숙이 같이 하나가 돼야 하기 때문에
31:27
풍류신학이 큰 기여를 할 것 같습니다

===
남창규한의원
남창규한의원
46 minutes ago (edited)
영의 세계를 이 세상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 신화다.

어느 도의 극치에 가면 다 통한다.

도(길)란 경계가 없다. 너와 나를 분리하지 않는다. 하나다.

선각자. 깨달은 자가 걸어 가는 그게 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휴심정이 있어 삶이 오늘도 윤택해지고 풍요로와집니다.

귀한 동영상 올려 주시고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4

조현TV 휴심정

조현TV 휴심정
조현TV 휴심정
16 minutes ago
남창규님께서 늘 함께 해주시니 기쁩니다.

1


대구센터  류명희
대구센터 류명희
55 minutes ago
100세 의 고령 이신데 정신 세계 가 바르시고 저희 들도 곱게 늙어갈수 있을지 너무 부릅습니다 교수님 기자님 말씀 감사 합니다🙏🙏🙏

3

조현TV 휴심정

조현TV 휴심정
조현TV 휴심정
16 minutes ago
류명희님, 그렇지요. 백세가 되도록 멋을 알고, 즐길줄 아시는 분이시지요.

===

2021/10/24

알라딘: [전자책] 박순경,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 제1권 구약편

알라딘: [전자책]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 제1권 구약편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 제1권 구약편
  • 마일리지
    970원(5%) + 멤버십(3~1%)
    + 5만원이상 구매시 2,000원
Sales Point : 17 
  • 종이책
    27,000원 (+1,500원) 


기본정보
  • 제공 파일 : PDF(12.99 MB)
  • TTS 여부 : 미지원 
  • 종이책 페이지수 710쪽
  • 가능 기기 : 크레마 그랑데, 크레마 사운드, 크레마 카르타, PC,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폰/탭, 크레마 샤인
  • ISBN : 9788969071439
  • 유의 사항 : PDF 파일의 특성상 글자 크기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목차

서언 / 4

Ⅰ부 창조와 구원의 시간, 역사 / 19

1. 창조자 하나님의 영과 말씀, 생명 역사 사회의 시간성 / 21
1) 시간의 근원, 창조자 하나님의 영 / 21
2) 사물의 존재와 운동의 시간성 / 25
3) 생명, 역사, 사회의 시간성 / 33

2. 창조자, 구원자 하나님의 영과 말씀, 시간 안에서의 창조 / 45
사제 P 문서 창세기 1:1~2:4a와 야위스트 J 문서 2:4b~3:24의 종합적 고찰
1) 하나님과 영과 말씀 안에서의, 태초의 시간 안에서의 창조 / 45
2) 무로부터의 창조, 혼돈 공허 암흑의 부정 / 49
3) 빛의 창조, 태초의 날 / 53
4) 창조의 6일과 제7일 / 54
5) 우주창조와 시간성 / 58
6) 생물들과 인간 생명의 창조와 시간성 / 68
7) 태초의 원시간 / 원공간, 에덴정원 / 82
8) 인간의 타락과 죽음, 시간 상실과 미래희망 / 93

3. 이스라엘의 족장시대, 민족사적 정초 / 109
1) 이스라엘의 보편사적 배경 / 109
2) 하나님의 아브라함 선택과 약속, 이스라엘 민족과 민족들의 아버지, 아브라함 / 117
3) 하나님의 약속의 표식, 이사악의 탄생과 제단에서 주어지는 생존 / 125
4) 야곱의 장자권 쟁취, 노동의 여정, ‘이스라엘’ 이름의 획득, 애굽에로의 이주, 이스라엘 백성의 미래예언 / 134

4. 이스라엘의 출애굽 해방과 계약법, 가나안 땅 정복과 혁명, 시간, 역사 개념의 정초 / 148
1) 구원사의 시간성의 원천, 창조의 시간 / 148
2) 문서자료들 J-E-D-P에 관하여 / 151
3) 이스라엘 민중의 출애굽 해방, 구원사의 출발점 / 153
4) 시나이에서의 야웨 하나님의 계시, 이스라엘과의 계약, 시간의 관계질서 / 168
5)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정복, 땅과 정치혁명, 민족사회 정초 / 183

5. 판관기, 이스라엘 계약사회 공동체, 야웨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나라 / 230
1) 신명기적 역사의 범위와 의의 / 230
2) 계약사회 공동체를 지키는 판관들 / 233

6. 왕국시대, 왕국의 분열과 멸망, 미래구원의 문제 / 256
1) 계약사회 공동체로부터 왕국시대로에로의 전환 / 256
2) 첫 왕 사울의 긍정성과 부정성?↔?다윗 왕의 긍정성 / 262
3) 야웨 하나님의 왕권 중재를 위한 다윗-이스라엘 왕국 / 268
4) 솔로몬 왕국의 영광, 왕국의 분열, 이스라엘의 계약 파기와 멸망 / 281
5) 이스라엘 구원사의 미래희망과 시간 / 311

7. 바빌론 포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귀환, 유대교 시대 / 319
1) 남은 자 이스라엘의 출바빌론, 예루살렘 귀환, 예루살렘 성전 재건 / 321
2) 유대교 시대에 대한 개관 / 324

Ⅱ부 시간 / 역사와 예언 / 337

1. 바빌론 포로기 전후 예언자들의 미래예언과 종말론 / 339
1) 예언자들의 미래예언 / 종말론의 시간성 / 340
2) 선적인 시간성 개념과 순환론의 문제 / 347
3) 시간 / 공간, 하나님과의 피조물 세계의 관계질서들의 차원 / 352
4) 예언자들의 미래예언 / 종말론의 대두 / 356
5) 미래예언 / 종말론의 기원문제 / 358
6) 종말론 대두의 필연성 / 361
7) 종말론의 종말시간은 어느 때인가? / 363

2. B.C. 8~3세기의 예언서들 / 367
1) 아모스와 호세아. 미가와 제1 이사야 / 367
2) 나훔, 스바니아, 하바꾹, 오바디아 / 425
3) 예레미아, 에제키엘, 제2-제3 이사야 / 448
4) 하깨, 즈가리아, 말라기 / 548
5) 요엘과 요나 / 577

3. 후기 유대교의 묵시록-묵시론적 종말론 / 591
1) 묵시록-묵시론적 종말론의 의미, 기원, 시간성 / 593
2) 제1 에녹: 우주공간-모든 시간 / 역사의 편력-하나님 나라 비전 / 601
3) 다니엘: 근동-그리스 왕국들의 종말시간들과 하나님 나라 비전 / 618
4) 제4 에즈라: 로마제국의 종말-하나님 나라에로의 구원사적 전통 문서들의 부활 비전 / 649

결론을 대신하여 / 680

저자 및 역자소개
박순경 (지은이)  
연세대학교와 동대학원 신학과에서 공부하였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졸업(Th. D.)하고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연구교수와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초빙교수(Wissenschaftler Assistent)를 역임했다. 저서로 『기독교의 현대적 이해』(한들출판사), 『그리스도인의 삶과 윤리』(한들출판사),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해설』(뉴미션21) 등이 있다. 역서로는 『하나님의 영』(미하엘 벨커/대한기독교서회), 『종말론에 관한 과학과 신학의 대화』(미하엘 벨커, 존 폴킹혼/대한기독교서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