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3

알라딘: 삶의 절벽에서 만난 스승, 공자, 이인우 2016 절판

알라딘: 삶의 절벽에서 만난 스승, 공자


삶의 절벽에서 만난 스승, 공자 
이인우 (지은이)책세상201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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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쪽

Namgok Lee - 【白川靜孔子傳 제1장-東西南北의 사람】

(1) Namgok Lee - 이인우 선생의 번역을 통해서 현대 일본의 거장(巨匠)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을 만난다. 배우는... | Facebook

Namgok Lee

  · 
이인우 선생의 번역을 통해서 현대 일본의 거장(巨匠)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을 만난다.
배우는 것이 기쁜 것을 실감케하는 노년의 행운이다. 
주공(周公)과 양호를 공자와 이렇게 만나게 하는 것은 물론 시라카와의 상상력이다.
나에게는 논어의 여러 구절들이 보다 생생한 상상력으로 다가온다.

【白川靜孔子傳 제1장-東西南北의 사람】 <16>
꿈과 그림자①
  자료를 따라 공자의 생애를 더듬어 보면 대체로 이상과 같다. 귀국 후의 공자에 대해서는 그다지 말할 만한 것은 없다. 아들 리鯉를 잃고 이어서 안연을 잃은 공자는, ‘아,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가’(선진-역주1)라고 탄식하며 깊은 슬픔에 잠긴다. 망명 중에 고락을 함께 한 자로도 위나라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사상가로서 원숙해진 공자는 74살로 죽을 때까지 수년간을,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뜻깊고 행복감에 찬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나, 차라리 너희들의 손에 죽으련다’(자한-역주2)라고 한 공자는 말 그대로, 제자들로부터 心喪3년의 복장服葬을 받았다. 벽안의 크릴이 ‘생애 중에 3년을 이런 일로 보낸다는 것은 서양인의 머리로는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하면서도, 이 시기에 제자들의 공적인 활동이 거의 기록돼 있지 않다는 사실로 미루어 ‘기적은 역시 실제로 일어났었다고 믿어지는 것이다’(크릴 저, <공자> 중에서)라고 쓴 그대로이다.
  공자의 죽음은 평온했고 평범했다. <예기> ‘단궁 상’에, 죽기 7일 전 아침 일찍 ‘태산이 무너지는가, 대들보가 쓰러지는가, 철인은 이제 시들어지는가’라고 노래하며 죽음을 예언했다고 하는 것은 물론 지어낸 이야기다. 소크라테스와 그리스도에게 죽음은, 죽는 것이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자에게는 죽음에 대한 기록이 없다. 물론 <춘추>의 경문에는, 애공조에 ‘16년 여름 4월 己丑, 공자 卒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애공으로부터는 弔祭辭(추도사)로 뢰誄가 내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는 전승은 없다. 와쓰지 박사(역주3)는 저 ‘죽음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크릴, <공자>) 전기의 의미를 다른 이유로 중요시 한다. 분명 탁월한 지적으로, ‘삶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선진-역주4)라고 한 공자의 입장에서 보면, 산다는 것이 모두 죽음에의 의미부여였다. 더욱이 ‘삶을 구하여 인을 해치지 않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위령공-역주5)라고 하듯이 죽음은 삶 속에 포함되어 있다. 공자의 죽음이 왜 위대한 죽음이었는가는 크릴이 놀라움에 가득 차 서술하고 있는 제자들의 心喪3년이라는 사실로 잘 표현되어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공자의 생애에 관한 전기적 사실의 서술은 끝났다. 그러나 사실이 반드시 진실은 아니다.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진실인 것이다. 공자를 大聖이라고 쓰는 것은 차라리 쉽다. 그것은 공자의 전기적 사실 속에서 아름다운 어록인 <논어>의 말을 적당히 보태면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자세가’ 이래의 수많은 공자전은 대개 그런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의 의미를 푸는 것은 실로 쉽지 않다. 의식의 밑바닥에 고인 그 어떤 것에도 조명을 비추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다이몬의 속삭임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델포이의 신탁에 어째서 그토록 헌신을 필요로 했는가. 성자라 일컬어지는 사람에겐 그러한 不可解한 면이 있는 것이다. 공자의 전기 중에서도 그 행동을 설명할 무언가가 필요한 때가 있다. 공자의 언동에는 사람들이 꿈꿀 때와 같은,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느끼게 할 때가 있다. 또 어떤 때는 무엇인가 환영에 두려워 떠는 듯한 모습이 있다. 공자가 지닌 꿈과 환영에 대해 잠시 자유로이 말하고 싶다.
【白川靜孔子傳 제1장-東西南北의 사람】 <17>
 꿈과 그림자②
  공자는 巫女의 자식이었다. 아비의 이름도 모르는 庶生子였다. 尼山에 빌어 태어났다는 것도 일반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 저 나사렛 사람처럼 신은 기꺼이 그런 자식을 선택한다. 공자는 선택된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나타날 때까지는 아무도 그의 前半生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 신은 스스로를 맡겨온 자에게 깊은 고뇌와 번민을 안겨주어 그것을 자각시키려 한다. 그 자각을 얻은 자가 성자가 되는 것이다.
  공자는 일생 꿈꾸기를 계속했다. 꿈에 나타나는 것은 언제나 周公이었다. 殷周혁명, 西周의 창업을 이룩한 이 성자는, 明保라 불린 주나라 최고의 성직자이며 또한 그 문화의 창조자였다. 동시에 이 성자는 또한, 비극의 성자이기도 했다. 공자는 만년의 어느 날 ‘심하구나, 나의 노쇠함이여. 오래구나, 내가 꿈에서 다시 주공을 뵙지 못함이’(술이-역주1)라고 탄식하고 있다. 공자는 평생 주공을 꿈에서 보고 주공과의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주공이 공자에게 한 말이 무엇이었는 지는 알 수 없다. ‘斯文을 잃지 말라’라는 것과 같은 명령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자는 안심하고 天命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천명을 말하는 행위는 모독이나 다름없다.
  공자에게는 또 하나의 幻影이 있었다. 그것은 다이몬으로 인식되었던 신의 소리가 아니라 현실의 인물로서 행동한다. 그러나 공자는 아마도 그 인물 속에서 다이몬과 같은 이상한 무언가의 그림자를 느끼고, 그를 두려워하고, 때로는 반발하고, 때로는 증오를 품고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생각된다. 그것은 양호라는 남자였다. 양호는 <논어>와 <맹자>에 양화陽貨라는 이름으로 보이는 사나이다.
  <사기>에 의하면, 공자와 양호의 만남은 공자가 아직 17살도 되지 않은 때의 일이다. 계씨가 士에게 향응을 베풀 때, 공자도 문학을 닦는 사람의 하나로 여기에 참가했다. 그런데 양호가 ‘계씨는 선비를 대접하는 것이지, 감히 그대를 향응하는게 아니다’라며 공자를 물러가게 했다. 이때의 공자는 아직 어머니의 상중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사기>의 해석이다. ‘세가’ 속 출처를 알 수 없는 기사의 하나인데, 이것은 어쩌면 양호 계통 자료의 殘片이 삽입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양호는 뛰어난 文辭의 소유자였다. 그것은 ‘양화편’ 첫장에 보이는 공자와의 문답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는 또한 巫史의 学에도 통해 있었다. <좌전>‘애공9년에는 그가 <주역>을 가지고 전쟁의 길흉을 점치는 기사가 있다. 공자학파의 손으로 이뤄진 문헌에 이와같은 기사가 있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필시, 양호도 또한 공자와 같이 師儒에서 나와, 時政의 개혁에 나서고, 門弟를 거느리고, 당시의 귀족정치에 도전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그의 학파에 전해진 자료는 유학의 융성에 따라 소실된 것 같은데, 얼만인가는 儒家의 자료 속에 섞여 들어가 있는 것이다.
 양호는 공자보다 다소 연배가 위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일찍부터 계씨를 따랐지만 3가의 전제정치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3가를 누르고 자신의 전제정권을 세운 것도 그에게는 혁명의 행동이었다. 공산불요도 그 때 양호와 한 동아리였다. 양호는 아마도 공자를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동지로 여기고 초빙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그를 경원했다. 그래도 공산불요의 초빙에는 적극 응하려고 했다.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비슷했을 것이다. 다만 공자는 양호를 거부했다. 양호가 전제에 성공하자, 공자는 곧바로 제나라로 망명해 古樂 연구 등을 하고 있다. 
【白川靜孔子傳 제1장-東西南北의 사람】 <18>
 꿈과 그림자③
  양호는 3년 후 실각했다. 3가가 단결해 자기 세력을 회복하려 했기 때문이다. 양호는 노나라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보옥대궁을 훔쳐 제나라로 망명했다. 상징이 있는 곳에 君權의 정통성이 있다는 생각이리라. 제나라에서도 그는 門下를 임금 쪽에 붙이고 상당한 세력을 구축했다. 양호가 제나라로 망명해 오자 이번에는 공자가 서둘러 귀국하고 있다. 그 후, 협곡의 회담으로 제·노 양국관계가 개선되었다. 제나라는 더이상 양호를 머물게 내버려둘 수 없어 그를 잡으려 했으나, 양호는 용케 망명해 송나라로 달아났다가 晋으로 가 趙簡子 밑으로 들어간다. 양호가 멀리 가버린 뒤에는 공자의 세상이다. 자로가 계씨의 宰(가신의 우두머리)가 되고, 공자도 노나라 국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공자의 三桓억제책도, 양호와 근본적으로는 다를 게 없었다. 공자는 자로를 시켜 3환의 사읍을 무장해제시키려 한다. 처음에는 순조로왔지만 결국 실패하고 공자도 양호와 같은 운명을 맞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나라로 갈 수 없다. 그래서 연고를 찾아 위나라로 갔다.
   위나라에서는 상당한 대우도 받았고 제자들도 각각 벼슬살이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공자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아무튼, 그럭저럭 지내기로는 그리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는 환영에 시달린다. 애공2년(전493) 후원자였던 위영공이 죽자, 진나라가 그동안 송나라에 망명해 있던 태자를 위나라에 입국시켰다. 주모자는 조씨(조간자), 태자를 받들고 위나라 잠입에 성공한 사람은 진나라에 망명해 있던 양호였다. 환영은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공자는 서둘러 다시 남방의 陳나라로 간다. 가는 길에 광땅에서 포위를 당하고, 송나라에서는 환퇴의 습격을 받는다. 제자들에게도 불안한 안색이 농후하다. 
  이 절망적인 분위기 속에서 공자는 주공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하늘이 아직 사문을 없애려 하지 않으시는데, 광인 따위가 나를 어찌하겠는가’ ‘하늘이 덕을 나에게 주셨다. 환퇴가 감히 나를 어찌하랴’. 몰래 쫓아오는 환영에 떠는 공자는 주공의 목소리에서 생기를 되찾는다. ‘양화편’에는, 양화와 공산불요의 이야기와 함께 불힐佛肹의 이야기가 수록돼 있다. 불힐은 중모中牟라는 진나라 도시의 재.  그 땅을 거점으로 진나라에 반기를 들려고 할 때 공자를 초빙한다. 자로는 이때도 강경하게 반대한다. ‘불힐, 중모로써 반란하려 합니다. 선생님, 왜 가시려 하십니까’라는 강한 어조로 반대한다. 공자는 이에 대해, ‘참으로 굳센 것은 갈아도 닳지 않는다. 진실로 흰 것은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며, ‘나 어찌 저 박이겠느냐. 마냥 한 곳에 매달려 사람들이 따먹지 못하게 하겠느냐‘라는, 공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투를 하고 있다(역주1). 무언가 집착하고 있는 듯한 語氣이다. 불힐의 반란은, 아마 <좌전>에 기록된 애공5년(전490) 조앙趙駚이 위나라를 치려고 중모를 포위했을 때의 일인 것 같다. 중모는 본래 위나라 땅으로, 이때 그 귀속을 놓고 晋나라와 衛나라 간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공자는 벌써 위나라를 떠나 陳나라에 가 있었다. 아마도 그곳으로 불힐의 초빙장이 날아왔을 것이다. 양화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晋나라와 衛나라의 사이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면 조씨에게 돌아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환영은 떨어져 있다. 이제 그 환영에 한 방 먹이고 싶다. 공자의 마음 속은 반발심과 증오로 들끓고 있다. 저 공자답지 않은 말투가 사실이라고 한다면, 나는 역시 그 환영을 향한 말이었다고 해석하고 싶다. 환영에 대해 한 말이므로 이것은 당연히 실현되지 않았다.
 공자는 다시 남쪽 초나라로 간다. 여기서는 환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환영이 없는 곳에는 긴장도 없었다. 공자는 뒷날의 반란자인 白公등의 무리에게 다소의 영향을 남기고 떠났다. 공자와 의견이 맞지 않았던 섭공葉公이 그 백공의 난을 평정하고 있다.
【白川靜孔子傳 제1장-東西南北의 사람】 <19>
 꿈과 그림자④
  모든 희망을 잃고, 공자는 다시 陳으로 돌아왔다. 이미 70에 가까운 공자에게 더 이상의 방황은 무리였고, 불가능하기까지 했다. 노나라에서는 제자 염구와 유약이 스승의 귀국 공작을 계속 벌이고 있었다. 공자 추방을 주도했던 계환자도 이미 죽고(전492), 염구도 실권자 계씨의 재가 되어 있다. 계씨에게 공자 復國의 양해가 떨어지자, 사자가 공자를 향해 서둘러 떠났다. 高師를 앙망하는 젊은 학도와 광간狂簡(뜻이 크고 진취적인 사람-역자)의 움직임도 보고되었다. 공자는 귀국을 결심한다.
  공자는 위나라로 돌아갔다. <사기>에 의하면, 공자는 불힐의 반란을 도우려한 뒤에는 조간자와 만나기 위해 黃河까지 갔다가 2명의 현인이 살해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희망을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하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간자는 양호의 주인이 아니던가. 양호는 애공9년(전486)에는 아직 건재해 있었다. 만약 공자가 황하가에 갔다면, 그것은 이 귀국길의 일이었을 것이다. 공자는 처음에는 晋나라에 갈 희망을 품었던 듯 하다. 그러나 양호가 그곳에 망명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양호도 아마 죽었을 것이다. 귀국이 결정되지 않았다면, 공자는 이 황하의 물결을 건너갔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귀국하기로 한 지금, 그 기회는 이미 사라졌다. 공자는 황하의 물가에 서서 탄식했다고 한다.
    아름답구나 강물이여, 양양하구나. 丘, 이를 건너지 못하는 것은, 天命이      런가.
  공자는 여기서 마침내 환영과 결별한다. 그것은 하늘의 명이었다. <논어>에 ’선생님, 강가에 서서 말씀하기를, 흘러 가는 것이 저와 같구나, 낮밤을 가리지 않는구나‘(자한-역주1)라는 구절이 있다. 아마도 이때의 이야기일 것이다.
  귀국하고나서의 공자는 더는 환영에 시달리는 일은 없었다. 동시에, 주공을 꿈에서 보는 일도 없어졌다. 그러나 환영은 과연 양호의 환영이었을까. 환영은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양호를 매개로 한 자기 자신의 그림자는 아니었을까. 자기의 理想態에 대한 否定態로서의 타락한 모습을 공자는 양호에게서 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공자는 항상 주공을 꿈에서 보고 있었기에, 이상태를 향한 希求를 버리지 않았다. 그것이 공자의 구원이었다. 처음의 망명 이래 22년간, 공자는 하나의 목소리와 하나의 그림자 속에 살았다. 그 목소리와 그림자 어느쪽이든, 공자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모두, 그러한 소리를 듣고 그림자를 보며 산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자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뜻에서, 공자나 소크라테스같은 사람은 희귀한 인격이었다. 위대한 인격이었다. 그리고 그 점에 주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위대한 인격의 생애를 꿰뚫는 리듬을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자의 망명생활, 따라서 그 생애의 주요한 부분에는 긴장된 아름다운 리듬이 흐르고 있다. ‘너희들은 나에게 숨기는 게 있는가. 나는 그대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나의 행한 일, 너희들과 함께 하지 않은 것이 없나니. 이것이  丘이니라’(술이편-역주2)라고 공자 스스로 말하고 있음에도, 공자의 주위에는 일종의 신비주의가 떠돈다. 제자들이 ‘숨긴다’고 느낀 것은, 아마도 그 아름다운 리듬을 움직이고 있는 무언가를 감지했다는 뜻이리라. 나도 공자의 생애 속에서 그와같은 리듬의 흐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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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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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회의 죽음에 대한 공자의 절망과 통곡을 일본인 학자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1910~2006)는 그의 저서 <공자전(孔子傳)>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군요.

이인우 선생의 번역으로 소개합니다.

<안연이 죽자, 공자 슬퍼하며 말하였다. “아,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顔淵死 子曰 噫 天喪予 天喪予 (11/8)
안연이 죽으니, 공자께서 통곡하였다. 공자를 따르던 한 제자가 말하기를, “선생님께선 너무 슬퍼하십니다.” 
“아, 그렇게 보였느냐. 그 사람을 위해 통곡하지 않으면 누구를 위해 그리하겠느냐.” 
顔淵死 子哭之慟 從者曰 子慟矣 曰 有慟乎 非夫人之爲慟而誰爲(11/9)> 

<<공자문례(孔子問禮)②

문례설화는 <장자(莊子)>에 처음 보이며 그 창작자는 장자 일파이다. 그러나 ‘천도편(天道篇)’에 보이는 문례의 설화는, 공자에게 묵자류의 ‘겸애무사(兼愛無私)는 인의(仁義)의 정(情)이다’라고 주장하게 하는 등 장자 말류가 지어낸 것인 듯하다. 장자는 유학(儒學)에 깊어서 장자의 사상은 유가의 비판으로부터 나오는 바가 있다. 장자가 문례설화를 가지고 그 학통(學統)을 높이려고 했을 리는 없다. 장자의 유가 비판은 종종 공자와 안회의 문답이라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안회 말하기를, “(도에) 더 나아간 것 같습니다.” 중니(仲尼) 말씀하시기를, “무슨 말이냐?”  안회가 말했다. “저는 인의를 잊어버렸습니다.” 중니가 말했다. “가(可)하다. 그러나 아직은 멀었다.”
다른 날, 다시 공자를 뵙고 말하기를, “더 나아간 것 같습니다. 공자 말씀하시기를, ”무슨 말이냐?“ 안회가 말했다. ”예악을 잊어버렸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가하다. 그러나 아직은 멀었다. “-장자 ‘대종사(大宗師)’
안회는 생각이 깊고 자득한 사람이다. 그 스승에게 고하기를 ‘인의를 잊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승은 ‘가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아직은 멀었다’라고 한다. 다른날에 또, 이번에는 ‘예악을 잊었다’고 한다. 인의예악은 당시 유가의 근본 주장이다. 그러나 스승은 역시 ‘아직 멀었다’고 한다. 공자는 이 준재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설화 속의 공자는 후학에 의해 노모스화된 유가 교설의 초극(超克)을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른 날 다시 공자를 뵙고 말하기를, ”더 나아간 것 같습니다. 좌망(坐忘)한 것 같습니다. 중니가 깜짝 놀라 얼굴빛을 고치며 말하기를, “무엇을 좌망이라 하는가?” 안회가 말하기를, “지체(肢體)를 버리고, 총명(聰明)을 물리치고, 형태를 벗어나고, 지(知)를 제거하고, 대통(大通)과 같아졌습니다. 이를 좌망이라고 합니다. 중니 말하기를, ”같아지면 곧 좋아함(주관)이 없어진다. 화(化)하면 곧 상(常; 고정된 상태)이 없어진다. 너는 과연 현명하구나. 구(丘)는 청컨대 너의 뒤를 따르련다. -상동
좌망이란 지각적인 것, 이성적인 것의 방기(放棄)를 말한다. 말하자면 직관(直觀)이다. 그것은 노모스적인 원리로서의 인의예악을 버리는 곳에서 생겨난다. 공자에게서 밝혀진 이데아적인 세계는 이윽고 유묵(儒墨)의 무리에 의해 노모스적인 사회적 일반자로 전화(轉化)되었다. 그것은 집단이 가진 규범성에 모든 사람이 복종해야만 하는 세계이다. 묵자와 맹자의 학설은 그 사상적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반자는 그 집단의 초월성으로 인해 주체적인 삶이 자유롭게 숨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생의 충동은 극도로 억압된다. 따라서 노모스적인 세계의 부정은 개인의 주체성 회복을 주장하는 것이 되며, 보다 근원적인 생의 해방을 주장하는 것이 된다. 생의 철학, 실존의 철학이라고 불리는 것이 생기게 되는 것은 대개 그러한 사상적 요구로부터이다. 장주의 사상이 종종 생철학이나 실존척학으로 여겨지는 것도 또한 그런 의미에서이다. 
<장자>에는 공자와 안회가 토론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 이밖에 8조 정도 더 있는 것으로 보아 장주는 이 두 사람을 토론시키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그것은 공자의 권위를 상징적인 것으로 하고, 우언(寓言)의 세계에서 이를 비판하는 수사적인 편의에서라기보다도, 조금 끼어드는 식으로 말하자면, 아마도 그런 형식으로 자기 사상의 초극을 바랐던 것은 사실은 공자 자신이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논어>‘공야장편’에 공자와 자공의 문답 1조가 보인다. 공자가 자공에게, ‘너와 회는, 누가 더 나은가’라고 묻는다. 자공은 물론 한 점이나 두점 정도 접고 있는 상대이다. ‘사(賜; 자공의 이름)가 어찌 감히 회를 바라겠습니까. 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압니다. 사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압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공자는 ‘아무렴. 나나 너나 모두 그와 같지 못하다’라고 한다. 자공이 아직 공자의 망명길을 함께 하고 있던 때의 일일 것이다. 그 때 벌써 공자는 이 젊은 준재가 자신을 뛰어넘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화는 공자가 단순히 사람의 재능에 대해 논한 것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공자가 말한 인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설사 안회 뿐이었다고 해도, 안회가 당시 공자보다도 높은 자각에 도달해 있을 리는 없다. ‘따르고자 하여도 유(由; 방법)가 없을 뿐’(자한편)라는 것이 당시 안회의 영탄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공자는 한번 형성된 사상이 지닌 완결성은 그 완결성으로 인해 스스로 한계를 가진 것이 됨을 이미 통찰하고, 자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데아적인 완성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데아는 영원히 그 실현을 갈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데아의 체인(體認)은 언제나 인격적인 주체의 실천에 의한 것인 이상, 그 새로운 발전은 다른 인격의 실천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공자는 그런 의미에서 그것을 안회에게 기대했던 것이다. 안회를 잃었을 때, ‘아아,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나’라고 길게 탄식했던 것도 그런 의미였다. 공자는 이미 새로운 이데아의 주체적 행위자를 찾고 있던 것이었다.
필시 장주는 이 공자의 원망(願望)을 간파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장주는 공자와 안회와의 토론이라는 우화형식을 통해 이를 실현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내가 장주를 공자의 사상적 계보의 정통 계승자라고 하고, 또 안씨의 유(流)에 속한다고 하는 곽말약씨의 설에 찬성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이다. 장주는 새로운 이데아의 탐구자였다. 그리고 노모스적인 세계 속에 살면서 이데아를 회복했다. 다만 그 회복은 노모스적인 세계의 부정을 통하여 행해졌다. 따라서 저절로 그것은 공자의 그것과는 다르게 되는 것이다. 공자에게서 인(仁)은, 전통의 모든 의미가 이데아로서 거기에서 체인(體認)되는 장(場)이어야 하는 것이었지만, 장자는 그것을 실체화하고 있다. 장자가 말하는 도란 이데아적 실재이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사상에는 분명히 계보적인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공자를, 이 학파에 초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장주의 후학들에 의해, 공자문례의 설화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공자문례 설화의 사상사적 의미이다. 다만 노자의 사상은 아마도 장자보다 늦게 형성되었고, <노자>라는 책으로 정착한 것은 더욱 후의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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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川靜孔子傳 제4장-유교의 비판자】 <57>
孔子問禮②

문례설화는 <莊子>에 처음 보이며 그 창작자는 장자 일파이다. 그러나 ‘天道篇’에 보이는 문례의 설화는, 공자에게 묵자류의 ‘兼愛無私는 仁義의 情이다’라고 주장하게 하는 등 장자 말류가 지어낸 것인 듯하다. 장자는 儒學에 깊어서 장자의 사상은 유가의 비판으로부터 나오는 바가 있다. 장자가 문례설화를 가지고 그 學統을 높이려고 했을 리는 없다. 장자의 유가비판은 종종 공자와 안회의 문답이라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안회 말하기를, 회, (도에) 더 나아간 것 같습니다. 仲尼 말씀하시기를, 무슨 말이냐? 안회가 말했다. 회, 저는 인의를 잊어버렸습니다. 중니가 말했다. 可하다. 그러나 아직은 멀었다.
다른 날, 다시 공자를 뵙고 말하기를, 회, 더 나아간 것 같습니다. 공자 말씀하시기를, 무슨 말이냐? 안회가 말했다. 회, 예악을 잊어버렸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가하다. 그러나 아직은 멀었다. -장자 ‘大宗師’
안회는 생각이 깊고 자득한 사람이다. 그 스승에게 고하기를 ‘인의를 잊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승은 ‘可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아직은 멀었다’라고 한다. 다른날에 또, 이번에는 ‘예악을 잊었다’고 한다. 인의예악은 당시 유가의 근본주장이다. 그러나 스승은 역시 ‘아직 멀었다’고 한다. 공자는 이 준재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설화 속의 공자는 후학에 의해 노모스화된 유가 교설의 超克을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른 날 다시 공자로 뵙고 말하기를, 회, 더 나아간 것 같습니다. …말하기를, 회, 坐忘한 것 같습니다. 중니가 깜짝 놀라 얼굴빛을 고치며 말하기를, 무엇을 좌망이라 하는가? 안회가 말하기를, 肢體를 버리고, 聰明을 물리치고, 형태를 벗어나고, 知를 제거하고, 大通과 같아졌습니다. 이를 좌망이라고 합니다. 중니 말하기를, 같아지면 곧 좋아함(주관)이 없어진다. 化하면 곧 常(고정된 상태)이 없어진다. 너는 과연 현명하구나. 丘는 청컨대 너의 뒤를 따르련다. -상동
坐忘이란 지각적인 것, 이성적인 것의 放棄를 말한다. 말하자면 直觀이다. 그것은 노모스적인 원리로서의 인의예악을 버리는 곳에서 생겨난다. 공자에게서 밝혀진 이데아적인 세계는 이윽고 儒墨의 무리에 의해 노모스적인 사회적 일반자로 轉化되었다. 그것은 집단이 가진 규범성에 모든 사람이 복종해야만 하는 세계이다. 묵자와 맹자의 학설은 그 사상적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반자는 그 집단의 초월성으로 인해 주체적인 삶이 자유롭게 숨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생의 충동은 극도로 억압된다. 따라서 노모스적인 세계의 부정은 개인의 주체성 회복을 주장하는 것이 되며, 보다 근원적인 생의 해방을 주장하는 것이 된다. 생의 철학, 실존의 철학이라고 불리는 것이 생기게 되는 것은 대개 그러한 사상적 요구로부터이다. 장주의 사상이 종종 생철학이나 실존척학으로 여겨지는 것도 또한 그런 의미에서이다.
<장자>에는 공자와 안회가 토론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 이밖에 8조 정도 더 있는 것으로 보아 장주는 이 두 사람을 토론시키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그것은 공자의 권위를 상징적인 것으로 하고, 寓言의 세계에서 이를 비판하는 수사적인 편의에서라기보다도, 조금 끼어드는 식으로 말하자면, 아마도 그런 형식으로 자기 사상의 초극을 바랐던 것은 사실은 공자 자신이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논어>‘공야장편’에 공자와 자공의 문답 1조가 보인다. 공자가 자공에게, ‘너와 회는, 누가 더 나은가’라고 묻는다. 자공은 물론 한 점이나 두점 정도 접고 있는 상대이다. ‘사賜(자공의 이름)가 어찌 감히 회를 바라겠습니까. 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압니다. 사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압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공자는 ‘아무렴. 나나 너나 모두 그와같지 못하다’라고 한다. 자공이 아직 공자의 망명길을 함께 하고 있던 때의 일일 것이다. 그 때 벌써 공자는 이 젊은 준재가 자신을 뛰어넘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화는 공자가 단순히 사람의 재능에 대해 논한 것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공자가 말한 인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설사 안회 뿐이었다고 해도, 안회가 당시 공자보다도 높은 자각에 도달해 있을 리는 없다. ‘따르고자 하여도 由(방법)가 없을 뿐’(자한)라는 것이 당시 顔子의 영탄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공자는 한번 형성된 사상이 지닌 완결성은 그 완결성으로 인해 스스로 한계를 가진 것이 됨을 이미 통찰하고, 자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데아적인 완성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데아는 영원히 그 실현을 갈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데아의 體認은 언제나 인격적인 주체의 실천에 의한 것인 이상, 그 새로운 발전은 다른 인격의 실천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공자는 그런 의미에서 그것을 안회에게 기대했던 것이다. 안회를 잃었을 때, ‘아아,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나’라고 길게 탄식했던 것도 그런 의미였다. 공자는 이미 새로운 이데아의 주체적 행위자를 찾고 있던 것이었다.
필시 장주는 이 공자의 願望을 간파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장주는 공자와 안회와의 토론이라는 우화형식을 통해 이를 실현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내가 장주를 공자의 사상적 계보의 정통 계승자라고 하고, 또 안씨의 유에 속한다고 하는 곽말약씨의 설에 찬성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이다. 장주는 새로운 이데아의 탐구자였다. 그리고 노모스적인 세계 속에 살면서 이데아를 회복했다. 다만 그 회복은 노모스적인 세계의 부정을 통하여 행해졌다. 따라서 저절로 그것은 공자의 그것과는 다르게 되는 것이다. 공자에게서 仁은, 전통의 모든 의미가 이데아로서 거기에서 體認되는 場이어야 하는 것이었지만, 장자는 그것을 실체화하고 있다. 장자가 말하는 道란 이데아적 실재이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사상에는 분명히 계보적인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공자를, 이 학파에 초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장주의 후학들에 의해, 공자문례의 설화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공자문례 설화의 사상사적 의미이다. 다만 노자의 사상은 아마도 장자보다 늦게 형성되었고, <노자>라는 책으로 정착한 것은 더욱 후의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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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Simplify Your Life: Zen Principles from Shunmyo Masu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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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views  Sep 4, 2024
In this video, I dive into the timeless wisdom of Shunmyo Masuno's book "Zen: The Art of Simple Living." Learn how to simplify your life, find inner peace, and transform your mindset with four actionable steps rooted in Zen principles. Whether you're new to Zen or looking to deepen your practice, this video offers practical insights to help you live more mindfully.

For coaching inquiries, feel free to reach out at amy.coaching.you@gmail.com.

Contents of this Video:

0:00 - Welcome to Zen: Unlocking Inner Peace

01:28 - Understanding Zen: What It Really Means

03:26 - Decluttering Your Life: Letting Go of Wasteful Things

04:30 - Finding Time for Self-Improvement: Practical Tips

05:48 - Mastering Organization for a Harmonious Life

07:46 - Balancing Work and Home: Creating Separate Spaces

09:04 - How Zen Can Help You Overcome Procrastination

10:17 - Infusing Joy into Everyday Tasks: A Zen Approach

11:18 - Knowledge vs. Wisdom: Zen Perspectives

12:30 - Wrapping Up: Embracing Zen in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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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なたの牛を追いなさい | 毎日新聞出版

あなたの牛を追いなさい | 毎日新聞出版


定価:1650円(税込)
電子書籍版定価:1650円(税込)


「十牛図」が教えてくれる人生で最も大切なこと!
禅僧×俳優が繰り広げる「現代禅問答」

「世界が尊敬する日本人100人」にも選ばれた禅僧の枡野俊明さんと、このたび還暦を迎える(2023年1月19日)俳優の松重豊さんが、「本当の自分」になるための心のあり方、考え方、行動について語り尽くした一冊。将来が不安、仕事で行き詰まっている、人間関係が思うようにならない......日々生きていく上で湧いてくるモヤモヤの根っこはいったいどこにあるのでしょうか? 悟りに至る10段階を見える化した禅の最強フレームワーク「十牛図(じゅうぎゅうず)」に沿って、今の自分を読み解きます。現在、世界的庭園デザイナーとしても活躍する枡野俊明さんが語る「禅の庭」、松重豊さんの芝居や「演じること」への向き合い方や若き日の迷いなど、豊富な話題を織り交ぜてお届けします。



目次

序章 縁あって牛を探しに

1章 牛を探す、その前に

2章 牛探しの旅に出発 (「十牛図」一~三)

3章 暴れる牛と私の行方 (「十牛図」四~七)

4章 道草を食いながらーー人生相談

5章 再び街へ出かけよう(「十牛図」八~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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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를 쫓아
저자 마츠시게 토요, 시노노 슌아키
발매일: 2023년 1월 19일 ISBN: 978-4-620-32763-1 판형:46판 페이지 수: 216 페이지

서영 : 당신의 암소를 쫓아
정가:1650엔(부가세 포함)

「십우도」가 가르쳐 주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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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존경하는 일본인 100명」에도 선정된 선승의 토모노 토모아키씨와, 이번에 환력을 맞이하는(2023년 1월 19일)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씨가, 「진짜 자신」이 되기 위한 마음의 방식, 사고방식, 행동에 대해 말한 한권. 장래가 불안, 일로 막혀 있는, 인간관계가 생각하게 되지 않는다......날마다 살아가는데 솟아오는 모야모야의 뿌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깨달음에 이르는 10단계를 보이게 된 선의 최강 프레임워크 「십규도」를 따라 지금 자신을 읽습니다. 현재, 세계적 정원 디자이너로서도 활약하는 시즈노 토모아키씨가 말하는 「선의 정원」, 마츠시게 유타카씨의 연극이나 「연기하는 것」에의 마주하는 방법이나 젊은 날의 헤매는 등, 풍부한 화제를 섞어 전해드립니다.

목차

서장 인연 있고 소를 찾아서

1장 소를 찾는, 그 전에 2 장

소 찾기의 여행에 출발 (「

십우도」1 ~3)

==
'당신의 암소를 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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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송의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선의 가르침을 화화한 「십규도」.
 혼자의 동자가 소를 찾는 “심규(진규)”, 소의 발자취를 찾아내는 “견적(켄세키)”, 소를 찾아내는 “미규(켄규)”, 포(토라) 하려고 하지만 소가 날뛰는 “득우(토쿠규)”, 귀가하는 “마키우우(보우규)”, 소를 잊어 집에서 휴식하는 「망우 존인(보우규 존진)」, 무의 세계를 따라가는 「인규 망망(진규우구보)」, 자연의 풍경이 펼쳐지는 「반본 환원(퐁텡겐겐)」, 후부쿠로 화상이 된 도코가 이치이데데.
 언뜻 보면 목가적인 그림이면서 '소'를 '본래의 자신'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선의 가르침 입구가 되는 것이다.
 역병이나 전쟁으로 인심이 불안에 노출되는 가운데, 즉효성을 구타하는 수상한 과학이나 종교가 뛰어나는 오늘에 있어서, 철저히 자기와 대화하는 선의 가르침은, 종교라기보다는 자신의 발로 대지에 계속 서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 1월에 환력을 맞이한 배우 마츠시게 토요 씨는 40대부터 선의 가르침을 가로질러 가며 그 무렵 만남 '이미지네이션을 불러일으켰다'는 십소도에 감명을 받아 조동종 건공사 주직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정원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이 두 사람, 어쨌든 심이 강하다. 선으로 단련한 정신성일까.
 형식상은 키노 씨가 해설, 마츠시게 씨가 듣는 사람이지만, 2명의 커리어의 이야기나, 그 때마다 자신이 어떻게 생각했는가 하는 것이 피로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대등한 「대담」이 되고 있다.
 선의 가르침을 구현화하는 정원 만들기, 혹은 쿠사에서 어떻게 떠나는가 하는 연기론. 콤플렉스와의 대치(타이지)의 방법, 욕심을 털어내는 수법,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전환하는 발상, 과거와 마주하는 자세. 반드시 어딘가에 박히는 말이 있다. 두 인생의 개별 구체론 속에 보편성을 느끼게 하는 독서 체험이다.
 「헛되게 고민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됩니다만, 인간은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기노씨는 동시에 「생각하기 전에 움직여라」라고 한다. 이것은 사고를 가볍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성을 수반한 사고의 가치를 호소하는 선의 가르침의 뉘앙스를 권취한 표현일 것이다.
 「사쿠노 선생님의 『선의 정원』 만들기에서도, 이것도 더할 수 있고, 저것도 더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최종적으로 깎아내는――그런 프로세스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그것과 같이, 재미있는 표현을 여러가지 망상하지는 않지만, 는 어디까지나 겸허하면서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받아들여 성장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청소를 하고 싶게 됐다. 당신은 황소 그림에서 어떤 그림에있을 것입니다. = 아사히 신문 2023년 2월 18일 게재


    ◇

 매일 신문 출판 · 1650 엔. 마스노·신미씨는 1953년생. 속눈썹 유타카 씨는 63년생. 여행 잡지의 대담에서의 인연이 계기로, 본서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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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최강 프레임워크 「십규도(주규도)」를 바탕으로 펼치는 선승×배우의 현대 선문답! 枡野俊明×松重豊 『너의 소를 쫓아라』 2023년 1월 19일 발매
당신의 소를 쫓아라
상품
2023년 1월 19일 09:30
매일 신문 출판 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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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신문 출판 주식회사는, 정원 디자이너로서 활약하는, 선승·사쿠노 토시아키씨와 배우·마츠시게 유타카씨의 대담을 정리한 서적, “당신의 소를 쫓아라”를, 마츠시게 유타카씨의 환갑의 생일, 2023년 1월 19일에 발매합니다.





'당신의 암소를 쫓아라' 서영(띠 있음)



십소 그림



【내용 소개】

「세계가 존경하는 일본인 100명」에도 선정된 선승의 키노 토모아키 씨와, 이번에 환력을 맞이하는(2023년 1월 19일에 60세)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씨가, 「진짜 자신」이 되기 위한 마음의 본연의 방법, 생각, 행동에 대해 말한 장래가 불안, 일로 막혀 있는, 인간관계가 생각하게 되지 않는다… 깨달음에 이르는 10단계를 보이게 된 선의 최강 프레임워크 「십규도(十규도)」를 따라 지금 자신을 읽습니다. 현재, 세계적 정원 디자이너로서도 활약하는 시즈노 토모아키씨가 말하는 「선의 정원」, 마츠시게 유타카씨의 연극이나 「연기하는 것」에의 마주하는 방법이나 젊은 날의 헤매는 등, 풍부한 화제를 섞어 전해드립니다.





【저자로부터의 코멘트】

「선에는 남녀노소, 누구의 인생에도 살릴 수 있는 힌트가 담겨 있습니다. 어렵다고 생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실은 나날의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행이 많이 있습니다. 행에 자주 교제해 주시면 다행입니다.」――마츠시게 토요



“정숙하게 스스로의 생활 방식을 바라보고, 그 생활 방식을 지극히 하려고 하는 “선”은, 매우 현대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거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은 결코 선교만의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큰 시사를 주는 것입니다. (중략) 이번 대담은 단순한 대담이 아니고, 대담 그 자체가, 농밀한 시간이며, 서로의 영혼과 영혼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 본서입니다. 따라서, 본서는, 스스로의 삶의 방법을 궁리해 가는 분, 선적 생활 방법을 목표로 하는 쪽, 스스로의 일에 선의 생각을 살리고 싶은 분들에게 있어, 몹시 붐비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시노 슌아키(「끝에」보다)





토시 아키노 씨 · 마츠시게 토요 씨 저자 근영



【목차】

서장 인연이있는 소를 찾으십시오.

1장 소를 찾아 그 전에

2장 소 찾기 여행으로 출발

3장 날뛰는 소와 내 행방

4장 도초를 먹으면서――인생 상담

5장 다시 거리에 나가자





【서지 정보】

서명 : '당신의 소를 쫓아라'

저자 : 기노 슌 아키, 마츠시게 토요

정가 : 1,650엔(부가세 포함)

발행 : 매일 신문 출판

판형 : 46판 나루제・216페이지

ISBN : 978-4-620-32763-1

발매일: 2023년 1월 19일

URL : https://mainichibooks.com/books/hobby/post-598.html





【저자 프로필】

시노노 슌아키

조동종덕웅산건공사 주직, 정원디자이너, 다마미술대학 환경디자인학과 교수. 1953년, 가나가와현 출생. 타마가와 대학 농학부 졸업 후, 오모토야마 슈지지에서 수행. 「선의 정원」의 창작 활동에 의해,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얻는다. 2006년에는 '뉴스위크' 일본판에서 '세계가 존경하는 일본인 100명'으로 선출된다.



마츠시게 토요(마츠시게・유타카)

1963년생. 후쿠오카현 출신. 1986년 대학 졸업과 함께 니가와 유키오 주재의 GEKISHA NINAGAWA STUDIO에 입단. 2007년에 영화 「샤브레도 샤베레도모」에서 제62회 매일 영화 콩쿠르 남우 조연상을 수상. 2012년 「고독의 음식」에서 드라마 첫 주연. 2019년 「히키타씨! 회임이에요」로 영화 첫 주연. 2023년 NHK 대하 드라마 「어떻게 하는 이에야스」에 출연. 「심야의 음악 식당」(FM 요코하마)에서, 퍼스널리티도 맡는다. 잡지 「크로와상」으로 에세이 「타베루 노오트.」를 연재중. 2020년에는, 소설·에세이를 정리한 「공동의 나카미」(매일 신문 출판)를 상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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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版社内容情報
禅僧×俳優の現代禅問答
「十牛図」が教えてくれる人生でもっとも大切なこと

「世界が尊敬する日本人100人」にも選ばれた禅僧の枡野俊明さんと、このたび還暦を迎える(2023年1月19日に60歳)俳優の松重豊さんが、「本当の自分」になるための心のあり方、考え方、行動について語り尽くした一冊。
将来が不安、仕事で行き詰まっている、人間関係が思うようにならない……日々生きていく上で湧いてくるモヤモヤの根っこはいったいどこにあるのか? 悟りに至る10段階を見える化した禅の最強フレームワーク「十牛図」に沿って、今の自分を読み解きます。
現在、世界的庭園デザイナーとしても活躍する枡野俊明さんが語る「禅の庭」、松重豊さんの、芝居や「演じること」への向き合い方や若き日の迷いなど、豊富な話題を織り交ぜてお届けします。


序章 縁あって牛を探しに
1章 牛を探す、その前に
2章 牛探しの旅に出発
3章 暴れる牛と私の行方
4章 道草を食いながら――人生相談
5章 再び街へ出かけよう

内容説明
悟りに至る10段階を見える化した禅の最強フレームワーク「十牛図」に学ぶ!世界が尊敬する日本人100人・禅僧×還暦・俳優の現代禅問答。「十牛図」が教えてくれる人生で大切なこと。

目次
序章 縁あって牛を探しに
1章 牛を探す、その前に
2章 牛探しの旅に出発―「十牛図」一~三
3章 暴れる牛と私の行方―「十牛図」四~七
4章 道草を食いながら―人生相談
5章 再び街へ出かけよう―「十牛図」八~十

著者等紹介
枡野俊明[マスノシュンミョウ]
曹洞宗徳雄山建功寺住職、庭園デザイナー、多摩美術大学環境デザイン学科教授。1953年、神奈川県生まれ。玉川大学農学部卒業後、大本山總持寺にて修行。「禅の庭」の創作活動により、国内外で高い評価を得る。芸術選奨文部大臣新人賞を庭園デザイナーとして初受賞。外務大臣表彰、カナダ総督褒章、ドイツ連邦共和国功労勲章功労十字小綬章など、受賞・受章多数。2006年には、『ニューズウィーク』日本版にて、「世界が尊敬する日本人100人」に選出される

松重豊[マツシゲユタカ]
俳優。1963年生まれ。福岡県出身。明治大学文学部在学中より芝居を始め、1986年、大学卒業とともに蜷川幸雄主宰のGEKI‐SHA NINAGAWA STUDIOに入団。2007年に映画「しゃべれどもしゃべれども」で第62回毎日映画コンクール男優助演賞を受賞(本データはこの書籍が刊行された当時に掲載されていたものです)
※書籍に掲載されている著者及び編者、訳者、監修者、イラストレーターなどの紹介情報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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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를 쫓아
2023.01.27
나에게는 드문 장르의 책을 읽었습니다.


토시 아키노, 마츠 시게 토요 / 암소를 쫓아


당신의 소를 쫓아


쓰루미(가나가와)에 있는 건공사의 주직이자 정원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선의 가르침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는 "십우도"를 바탕으로 현대의 삶을 설명한 저서입니다.
책이라기보다는 두 사람의 대담의 쓰여진 형식이 되어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고 바삭바삭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신심도 특히 없으면 자기 계발적인 서적과는 거리를 두어 온 인생이었습니다만, 마츠시게씨의 소설+에세이 「공동의 나카미 」 가 매우 좋았으므로 이번도 읽어 보았습니다. 덧붙여서 시스노 슌아키씨는 시부야에 있는 세루리안 타워의 일본 정원을 디자인한 분이기도 하네요.


선사는 사진을 찍으러 가는 장소로서는 매우 좋아합니다만, 선 그 자체에는 나는 그다지 인연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해외 기업이 제품에 「Zen」에 연관된 네이밍을 채용하는 것이 많아, 완전히 패션화해 버리고 있어요… 라고 차가운 눈으로 보고 있는 부분마저 있었습니다.


그 「십우도」, 나는 그런 것이 있는 것 자체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사람이 그 일생에 있어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까지(및 이른 후)의 상태를, 자신의 소를 찾는 여행에 나온 동자에게 봐 「심우」 「견적」 「견소」 「득우」 「마키우」 「기우 귀가」 「망우 살인」 「인소의 잊어버린 것의 표현의 표현」


당신의 소를 쫓아


나 자신은 특히 깨달음을 열고 싶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인생의 되돌아가는 지점에 와서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고 할까… 그때까지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최우선으로 살아 온 것이, 가족이나 사회적 책임이 늘어나는 한편으로 인생의 선택지는 나이를 거듭할 때마다 한정되어 간다. 그 틈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자신에게 있어서의 힌트가 무엇인가 쓰고 있는 것은, 라고 하는 것은 조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인용해 주시면, 예를 들면 이하와 같이 하지는 확실히 자신의 고민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현대사회는 복잡하게 사물이 얽혀 하나의 것이 완성되고 있군요. (중략) 지금은 많은 분들이 모여 만들어야 하는 복잡한 것이 많기 때문에, 개인 개인의 일이 평가되기 어려워져 버리고 있다. (중략) 그러니까 자신의 삶 방법은 이것으로 좋은 것인가? 라는 망설임이 태어나기 쉬워졌습니다.


이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분은 너무 많은 것이 아닐까요. 하고 싶은 것, 만들고 싶은 것은 있어도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쉽지 않고, 라고 해도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만으로는 동기 부여는 유지할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자신의 하고 있는 것은 정말로 누군가에게 인정되고 있는 것인가? 라는 불안은 다하지 않고 결과가 수입으로 반영되기도 어려운 세상이기도 한다. 그런데 고민하는 것 자체가 번뇌인 것이겠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번뇌에 빠져 번뇌와 어떻게 접을 수 있을까, 라고 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렇지만 그 때, 어느 쪽으로 가면 얻는가 하는 것과 같은 손익 계정을 빼고, 자신에게 매력적인지 어떤지를 물건으로 하는 것이, 결국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의 최선의 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음↑이것은… 무엇보다 자신이 지금 선택한 길은 절반은 손익계정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가족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렇지만 100% 손득만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고, 가족에 대한 최저한의 책임은 완수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자신에게 있어서 매력적인가 아닌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뭐 나쁘지는 않다…일까?


개인적으로는, 이 쿠다리↓가 가장 울렸습니다.


그 고민하고 있는 것 자체가 살아 있는 증거예요. 고민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고민이 없어지면 涅槃(번뇌에서 해방된, 깨달음의 경지)입니다.


아… 불행을 지났으니까 고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고, 벌써 죽을 때까지 고민하고 있었으면 좋을까. 어떤 의미 그야말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본서의 내용에 맞추어 말한다면, 한 사람의 인간이기도 한 분야에서는 소를 찾을 수 있어도, 다른 분야에서는 아직 소를 찾고 있는 단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분야에서 암소를 발견했다면 다른 부분에서 암소를 찾는 방법도 알아차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영원히 같은 고민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에는 조금 구해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마음으로 이해하려면 더 인생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도 어느 정도는 자신을 긍정해 주었던 것처럼 느꼈습니다.
물론 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마츠시게씨의 배우관이거나 『외로움의 음식』에 관한 화제도 곳곳에 나오므로 마츠시게씨의 라디오를 듣고 있는 듯한 감각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어딘가 일본 정원을 보러 가고, 마음으로 무언가를 느끼고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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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당신의 소를 쫓아라(십소도)
6


호리바 영웅(Hideo Horiba)2024년 3월 30일 10:51


요약

십우 그림을 예로, 선이란 무엇인가? 불교의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를 사색하는 책. 정직, 조금 설교 냄새도 있다. 깨달음 자체가 난해 때문에 십우표란 무엇인가? 그냥 '깨달을' 수 있는 책은 물론이다.

십소도 란,
「1. 심우~3. 미소」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깨닫는 페이즈(자신을 아는) 「4. 득소~7. (다른 사람이 있는 그대로 살 수 있도록 지원한다)



상세
선이란?

・선에는 남녀노소 , 누구의 인생에도 가게 하는 힌트가 막혀 있다
・선과는 신체로 실천해 가는 철학
・철학은 학입니다만, 선은 신체로 실천해 증명해 가므로 행. 그래서 수행
· 스스로 기준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 지금의 자신이 마음 속에서 다른 한 명의 자신에게 묻는다. 하루

  잘
시작
  합니까
?
  이것이 인생을 바꾸는 큰 포인트.
  30분 일찍 일어난 지 10분만에 좋기 때문에 청소



깨달음: 자신을 아는

1. 심우(진규)- 찾는다
· 본래의 자신은 자신 안에 있기 때문에 밖을 찾아도 찾을 수는 없다
· 자신과는 누구인지 생각하기 시작하는 계기
  ⇒ 주위의 사람과 자신이 어떻게 다른가? 타인과의 비교에서 태어난
·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이 자아, 나는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이 무가
 “제법 무아”

2. 견적(켄세키)- 눈치채는, 방향성이 보여 온다
·경험이 얕은 시기에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은 좀처럼 할 수 없다.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모르는데 고를 수 있다고 해도 곤란한 것
·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장소를 스스로 찾아낸다 .
  이동하는 타이밍은 어렵지만 힘든 일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마주보고 생각해내고,
  그래도 자신의 환경을 바꾸기로 결심했다면 그것은 도망치지 않는다

3. 미규(켄규) - 있어야 할 자신이 어느 정도 명확해진다
· 선의 정원은 거울을 닮았다. 자신의 지금의 상태가 거울에 비추어지고 있는 료안지 석정·
  모순
되는 것 같지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다」 자세도 중요



깨달음 :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다

4. 득소(토쿠규)-알면 되어 있는 것은 다르다.
번뇌·욕망·헤매·자신과의 싸움을 거쳐 의식적으로 깨달음을 얻는
·나만이 득을 하고 싶은 것은 욕심 (=집착),
 자신의 인생을 보다 잘 전진시키는 것은 의욕 - 제법 무아
·선의 말에는 구름이 잘 나온다. 구름은 하늘에 푹 빠져 있고, 바람이 불는
 방향으로 위치가 바뀌고, 바람이 강하면 모양도 바뀌고, 변환자재.
 아무리 모양이 바뀌어도 구름은 구름. 본질은 잃지 않는다.
 ※환경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나」란?
・인생에 있어서는 자신의 힘으로는 저항할 수 없는 큰 힘이 일할 때가 있어,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위는 한정된다

5. 마키우(보쿠규): 남는 번뇌를 하나하나 줄이고 깨달음을 유지한다?
・매화나무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자는 욕심을 목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뤄야 할 일을 이루고
 있다

· 손익 계정을 빼고 자신에게 매력적인지 여부를 물건

(이하는 목우와 관계 있는?)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기준으로 길을 개척하면, 자연스럽게 인연이 맺어   져 간다. 좋은 가장자리 로
돌리 십시오 .




6. 기우귀가(기규키)-진짜 자신을 자신의 것에
(깨달음에 이르는=항상 깨닫고 있는 상태, 도대체)
·어린 시절에 연기한다는 경험 을 하면,
다른 인간이 자신과는 다른 사고방식이나 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지도
 자신을 시연으로 배우・・
과거
에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갱신해 나가는 데에 에너지를 소비한다

7. 망우존인(ぼうぎょんじん)- 귀멸의 칼날로 말하는 곳의 전집중 상주·
깨달은 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자신이 깨달았다는 의식조차 태어나지 않는 것이 깨달음의 세계

・불교에서는 사람은 두번 죽는다고 말해져 1번째는 물리적으로 숨을 끌었을 때
2번째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 중에서 존재가 사라졌을 때

다른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공유 : 다른
사람들도 그대로 살 수 있도록

8. 인규 망망 · 망설임이나 깨달음
도 초월한다 ·
선적인 해석에서는 「제행 무상」 「제법 무아」가 하늘

9. 반본 환원(전퐁겐겐)
・모든 진리는 삼라만상의 자연 속에 존재하고 있다
・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으로 '환한다'
・내가 필사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 속에서 살려지고 있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무렵의 자신에게 「돌아간다」

10. 入鄽垂手(진짜 수련)
· 참이 있어야 할 모습으로 「깨달음」을 사람들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
· 진리가 보이면, 사람에게 쉐어
· 료칸은 좋은 예. 모두 깨달은 후에 아이들과 함께 놀고 그
  날 먹는 만큼 질소에 사는 깨달음은 '돈오', 갑자기 내려오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선에 맞게 전한다(교외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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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미우라 타쿠마


5.0 / 5점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준다.2025년 1월 24일 일본에서 검토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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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깊은 대담이었습니다. 십우도는 선, 혹은 불교를 이해하는데 있어서의 입문의 에피소드인 동시에, 생활 방식 그 자체를 생각하는 텍스트이기도 하고, 즐겁고도 진지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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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on 고객


5점 만점에 3.0점 생각이 늘었다2023년 6월 1일 일본에서 검토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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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충실한 내용이었습니다. 사람으로 생각해야 할 일이 증가했습니다.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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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e 타로


5.0 / 5점 마음에 평화를 줍니다.2023년 2월 28일 일본에서 검토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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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두는 곳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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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5.0 / 5점 이해하기 쉬운2023년 1월 21일 일본에서 검토됨

대담 형식으로 읽기 쉽고 알기 쉬웠다. 선에게는 지금까지 익숙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생활에 떨어뜨려 즉 실천할 수 있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지혜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마츠시게 유타카 씨의 정신성의 높이에 감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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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노도 마코토


5.0 / 5점 「십규도(주규도)」를 둘러싼 선승·사키노 슌아키와 배우·마츠시게 토요의 대담집2023년 4월 27일 일본에서 검토됨

『당신의 암소를 쫓아라』(사쿠노 토시아키・마츠시게 유타카, 매일 신문 출판)는, 「십규도(주규도)」를 둘러싼 선 스님・시모노 토모아키와 배우・마츠시게 토요의 대담집입니다.

「십우 그림」이란, 소를 찾는 동자를 그린 10장의 그림입니다.

그 중 하나는 「진규(진규)――『진짜 자신』을 찾는다」입니다. 「소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떻게든 소를 잡고 싶다」.

그 둘은, 「견적(켄세키)――사람의 빛을 찾아낸다」입니다. “소를 찾아 나간 동자가, 길에 남겨진 소의 발자국을 찾아낸다”.

그 셋은, 「견규」――어야 할 자신을 찾아낸다」입니다. "소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나무 그늘에서 소의 엉덩이가 보인다. 소의 몸 전체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소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넷째는, 「득우(토쿠규)―― 번뇌나 헤매고, 욕망··· 인생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마침내 동자는 소의 모습을 찾아 소의 목에 밧줄을 걸어 힘으로 잡으려고 한다. 그런데 소는 날뛰고 좀처럼 잡을 수 없다."

그 다섯은, 「목규(보쿠규)――수행에 끝은 없다. 아직도 남는 번뇌의 씨를 하나하나 없애 가는」입니다. "날뛰고 있는 소를 겨우 일을 하지 못하게 된 동자. 이제 이것으로 소를 길들일 수 있었다고 안심한다".

그 여섯은, 「기우귀가(키규키카)――자아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자신을 자신의 것으로 한다」입니다. 「동자가 소의 등에 타고, 피리를 불고 있다. 소는 날뛰기도 없이 걸음을 진행해, 이윽고 동자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소와 동자는 일체가 되어, 「깨달음」을 드디어 얻을 수 있었다」.

그 일곱은, 「망우존인(보규젠진)――깨달은 것을 의식하지 않는 곳에 진정한 깨달음은 있다」입니다. “자신이 돌아가는 곳으로 돌아온 동자는 완전히 쉬고 있다. 그림 속에는 더 이상 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동자는 겨우 생각으로 데려온 소를 깔끔하게 잊어버리고 있다”.

그 여덟은, 「인규 망망(진규구보)――미혹도 깨달음도 초월했을 때, 거기에는 절대의 진리가 있다」입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소를 데려온 동자는, 하지만 이미 그 것조차 잊고 있다. 오히려, 자신이 누구인지 마음이 미치지 않게 되어 있다.

그 9는, 「반본 환원(엡폰겐겐)――자연은 아름답고도 가혹하지만, 그것을도 문제로 하지 않는다」입니다. 「동자의 모습도 소의 모습도 사라지고, 단지 자연의 풍경만이 그려져 있다. 계절이 바뀌어, 시시각각 자연은 변화해 간다. 그 변화 속이야말로, 불변의 진리라고 하는 것이 나타내지고 있다」.

그 십은, 「입철수수(니텐슈이슈)――참이 있어야 할 모습으로, 깨달음을 사람들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입니다. 「승려의 옷을 입고, 부대 화상의 모습이 된 동자. 그 온화하고 상냥한 모습 그대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리인가――이치이――에 나간다」.

●마츠시게=이(십의 입천수수의) 역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해도, 골의 정경을 알고 있는 것, 여기를 목표로 살아가고 싶다고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지만, 속세에 살고 있어, 여기까지 도착하는 분이 계십니까? ●사키노=역사상은 계십니다. 예를 들어, 료히로씨는, 정말로 10군요. 모두 깨닫은 후, 마을의 아이와 함께 놀거나, 그 날에 먹는 것만 마을사람으로부터 받고 고합안에서 질소에 살고 있었습니다. ●마츠시게 = 좋네요. 수행이라고 하면 어려운 것이고, 깨달음을 여는 만큼 먼 생각이 되어 버리지만, 이 원 안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깊은 의미가 있는 생각이 듭니다.

선의 본질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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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5.0 / 5점 황소 그림에 관심2023년 4월 9일 일본에서 검토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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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읽기 쉽다. 황소 그림에 관심이있었습니다.

1명이 이 글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움이 되는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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