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친][메노나이트] 한국 메노나이트의 기원과 사토시 타카히 상 이야기
---
- 사토시 상은 한국 출생 일본국적인으로 혹카이도에서 농장을 하며 사는 분이다. 일본이름으로 한글로 글을 쓰니, 미리 그 배경 설명부터 좀 해놓는다. 내가 사토시 상을 알게 된 것은 메노나이트 종파와, 한국 메노나이트에 대해 공부를 하다가 일본 메노나이트인 줄 알고 페친신청을 하고 난 후였다.
- 내가 메노나이트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우선 메노나이트가 퀘이커 처럼 평화교회라는 것이었고, 또 미국 퀘이커 처럼 북한에서 지원사업을 해 왔다는 것인데서 시작했으나, 또 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는 퀘이커보다 메노나이트가 더 숫자도 많고, 활동도 많은 것을 알게되어, 그 이유를 이해하려는 데 있었다. 그 이유의 현재적 상황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쓰기로 하고, 여기서는 메노나이트가 한국서 어떻게 시작했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이 사토시 상이나 한국 메노나이트의 현재와 어떻게 관계되었는가를 짧게 살펴보려고 한다.
---
- 한국 퀘이커는 거의 함석헌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보이기도 하나, 물론 실제로는 미국 퀘이커가 한국에 "선교'활동을 하러 온 것이 함석헌과의 만남의 시작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메노나이트도 한국에 선교를 하러 온 것이 한국 메노나이트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퀘이커의 경우에는 함석헌 같은 큰 인물이 한국에서의 퀘이커 사상의 전달자 역활을 하게 되었으나, 그 외로는 그 전수의 매체가 무엇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메노나이트의 경우에는 퀘이커보다 10년이나 먼저인 1950년대에 메노나이트가 한국에 새운 고아들을 위한 직업훈련학교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이 직업훈련학교는 약 5-6년간 계속하고, 메노나이트 선교단은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당시에 이 학교를 통하여 지나간 아이들이 그 후로 한국 메노나이트의 제 1세대가 된 것같다. 그리고 그 자식들 중에 카나다나, 미국의 메노나이트 대학을 가게 된 사람들이 제 2세대가 된 것이다. 한국 퀘이커의 경우에는 이런 매체가 없었던 것이 한국 퀘이커가 자라지 않은 이유인 것 같다.
- 사토시 상 (47년생) 은 이 메노나이트 직업훈련학교 출신이었던 것이다. 이 직업훈련학교의 출신들은 모두 이 학교의 "은혜"를 잊지 않고 뭔가를 통해 갚으려고 하는 것 같다. 우선은 자신이 메노나이트가 되는 것이고, 또 메노나이트로서 사회에 공헌하려는 것이다. 사토시상의 경우에는 농업기술 전문가가 되어 일본에 오게 되고, 나중에는 정착하여 혹카이도에서 농장을 사서 성공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는데, 은퇴할 나이가 되었지만, 그 농장안에 메노나이트 교회와 학교를 새우는 꿈을 실천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짧은 줄거리이다.
- 언제인가 더 긴 이야기로 쓰게되기를 바란다.
Satoshi Takahi
onSpstreodm40cf 20a ir4h79c85fhi0cy37a1u10Jc092i2nc32h5ucc2a ·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되었으며 좋겠다. 요즈음 날씨는 많이도 추운것이 우사안의 온도가 영하로 내려간다. 누구인가가 길가에 버려둔 고양이를 데리고 와서 목장안에서 함께 지낸지가 몇년이 지났다. 요즈음은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송아지 등에 올라 가만히 앉아 있다. 아마 서로가 얼굴을 익혔는지 아니며 야 고양이야 내 등에 올라와 봐 아마 따뜻할것야. 그러면 무겁고 귀챦을텐데 괜챦을까라고 물어보는 고양이 에게 너 얼마나 무거운데 그런말 하니 나야 아무렇치도 않아 우선 추우니까 잠깐이라도 올라와서 앉았다 가 라고 이야기 하는것 같다. 그래 우리네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