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31

(1) Hojae Lee - 평신도가 예수(부처)를 살려 내자 : 성인聖人으로 하루살기 1. 인류의 고전인 경전텍스트,...



(1) Hojae Lee - 평신도가 예수(부처)를 살려 내자 : 성인聖人으로 하루살기 1. 인류의 고전인 경전텍스트,...





Hojae Lee
25 July at 04:58 ·



평신도가 예수(부처)를 살려 내자 : 성인聖人으로 하루살기

1. 인류의 고전인 경전텍스트, 사서오경, 대장경, 성경, 꾸란경, 도교의 경전인 도장 등은 일점일획을 절대시하는 문자 숭배의 시대를 거쳐 인간이성의 발달과정을 거쳐 철저히 해체되어 비신화화/역사화되면서 경전의 위상은 추락하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여기에 1990년 초, 동유럽과 소련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후쿠야마는 “역사는 종언하였다”고 말할 정도로 지구촌은 민주주의의 경제적 이데오로기인 자본주의로 급속히 재편된다. 더불어 옛날 그 빛나던 종교경전의 위력은 과학의 도전으로 응전의 용기를 잃고 있으며, 경전의 정신을 담지하던 성전과 경전의 말을 전하던 직업종교인은 ‘자본’의 도전에 '오합지졸'이 되는 형국이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종말이 아니고 종교 종말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2. 성경을 포함한 경전텍스트는 건물성전 유지와 직업종교인의 생계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경전은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인간과의 대화집이다. 어느 경전이나 ‘나’의 문제를 적어놓은 일기이다. 경전은 인간(나)의 실패사와 이 실패를 고난을 통해 절대존재와 ‘궁극적 인간’과 ‘궁극적 구원의 길’을 가는 나의 승리의 희망찬가이다. 경전이 요구하는 것은 경전을 읽는 나 자신’이 그렇게 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의 삺, 석가의 삶, 공자의 삶 등등

3. 오늘! 우리는 경전이 말하는 그 궁극적 인간으로 하루만이라도 살아보자. 원래 제목을 ‘성인으로 살기 하루 프로젝트’로 하려다가 세상에 하도 프로젝트성 이벤트가 많아 평이한 제목으로 달아보았다.

4. 이런 측면에서 직업종교인의 사명은 한평생 신도를 모아서 굶어죽지 않게 갈증나게 하나님 말씀이라고 신도에게 설교나 설법을 하는게 아니다. 직업종교인은 신자가 스스로 예수처럼 살고, 부처처럼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 건물성전은 비게 만드는 것이 그의 사명이다. 교회가 늘어날수록 죄인은 많아지고, 사찰이 많아질수록 중생은 늘어난다. 향교에는 소인이 득실하고, 회사에는 가난한 노동자가 더욱 많다. 즉 종교의 목적은 모든 인간이 죄인과 소인과 중생의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나 창조적 진화의 완성체인 예수와 같은 사랑의 화신체, 더 나아가 풍류체가 되어야 한다. 병원의 목적은 모든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 병원문을 닫는 것이다. 일상생활에게 의사가 병자에게 약을 줄때 어떻게 주나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이다.

5. 변찬린의 안목으로 역사적 성인은 우리와 동질의 인간이었고 우리가 가야할 길을 미리 간 ‘인간’에 불과하였다. 그는 이렇게 직시한다.

예수도 측간厠間에 웅크리고 앉아 구린 똥을 누었다.
공자도 지어미와 방사房事하여 범부凡夫 리(鯉)를 낳았다.
세존世尊도 밥을 얻어 자시고 신음하시다 열반했다
노자老子도 무명無名의 보배로움을 잠시 잊으시고 오천 마디의 흔적을 남겼다.
우리와 무엇이 다르랴?

예수라고 밥안먹었겠는가. 빵드셨나? 김치나 된장찌게는 안드셨을 테고, 옷도 입으셨을테고, 백인미남으로 영화에 나오는 성스러운 얼굴이 아닌 얼굴이 약간 가무잡잡한 중동형 얼굴이시구, 키는 어느 정도 되셨을까? 그리고 예수는 직장에 나가서 돈 벌지는 않았을 테고 등등등. 예수가 33년 동안 보통 인간의 자리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는 자리까지의 생애 가운데 여러분이 어느 한 지점을 설정해 오늘하루 그렇게 살아보시라. 십자가에 또 못박혀 피흘리지는 마시고(!!!), 빈 동굴 만들어 그 속에서 삼일만에 부활한다고 기괴한 행동하지 마시고

오늘 하루 좋은 생각하고,무심했던 이웃에게 안부하고, 식사량도 조금 줄여서 생명을 아껴보고, 즐거운 얼굴로 이웃과 인사하고, 직장에서 더 활기차게 일하고...., 예수가 지금 우리의 입장에 있다면 이 보다 더한 빛나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각 자의 자리에서 성인으로 살아보기 해 보자. 제주 한달 살기보단 오히려 성인살이 운동을 해 보자.
나는 성인이다라고 외치는 순간 나의 세계는 그렇게 재편된다. 내가 성인으로 살아가면 예수의 십자가는 빛날 것이다.

6. 류영모는 익히 알려져 있듯이 예수를 신앙이 대상이 아닌 ‘선생이자 스승’으로생각하고, 정양모 신부는 류영모를 ‘동방의 성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함석헌을 원로 신학자이자 목사인 김경재는 기독교 백년의 인물로 ‘함석헌과 김재준’을 언급하고 있다. 축 시대의 성인의 역사적 흔적이 아득하다면 가까이 더구나 같은 국적의 위의 사람들을 인간적인 ‘존경감’의 표시이상은 하지 말고 우리도 그렇게 살아보는 거다.

'7. 우리는 모두 예수, 석가, 공자, 노자를 우리가 범접하지 못하는 신앙대상의 경지에 올려놓고, 우상숭배하기 바빴다. 어제의 과오는 ‘지금’털어버리고 오늘 하루 2019년 7월 25일은 우리도 ‘성인과 같이’가 아니고 성인으로 살아보자. 만약 예수와 석가, 공자와 노자가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면 그들은 우리의 신앙대상조차 될 수 없다. 곰곰히 생각해 보라. 예수가 인간의 몸으로 와 타락 인간의 입장에서 구도하여 궁극적 인간의 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하지 않았나. 신앙은 예수로 살아야 예수와 같은 친구로 될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이지 자기도 못하는 것을 신자에게 말하며 예수를 우상숭배하여 살아서 죄인 죽어서 ‘영혼이 하늘나라 간다’는 것은 성경에 없다. 있으면 밑에 댓글다시라. 이는 불교도 유교도 마찬가지이다. 공자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한 ‘그 도道’를 우리가 같으면 되는 것 아닌가.

8. 소위 성인의 말씀이 적혔다는 경전은 우리가 그렇게 살 때에 경전의 의미가 되살아나는 것이지, 성인을 (마음속으로) 신앙대상으로 우상화하는 즉시 자신은 죄인으로 중생으로 소인으로 살면서 경전의 의미는 직업종교인이 종교장사하는 영성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지금도 감리교의 영성상품, 장로교의 영성상품 등 수백 개 교단의 영성상품이 구매자를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누가 성인聖人의 머리를 디디고 그를 초극할까 ?
고성古聖들은 그 문하에서 배운 후생後生이 스승을 떠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자성自性을 개발하여
지인至人으로 돌면突變하기를 바라고 있다.
참 사람은 낚시를 던지지 않는다
참 사람은 그물을 짜지 않는다
참 사람은 함정을 파지 않는다.
소인小人들이 배운 것은 무성한 잎파리와 꽃
소인小人들이 포식(飽食)한 것은 꼬리와 껍질뿐
소인小人들은 낚시를 삼키고 그물에 걸려들고 함정에 빠진다.
옛 님들은 소인들이 스승을 배신하고 팔아 먹고
곡사曲士로 전락하여 아세阿世할 것을 환히 알고 있다.
환히 알고 있으면서 소인들과 대화하고 가르치는 뜻은
무리 중에서 스승을 앞 질러 갈 참 사람을 기다림이니
누가 이 크신 비밀을 알겠는가 ?
고성古聖들은 뒤에 오실 빛나는 후생後生을 기다리고 있다.
소인들의 작희(作戱)에 대도大道가 가리워 질 때
옛 성인의 문하門下에서 참 사람이 일어나
스승을 구해 내고 대도大道를 밝히 드러낸다
이런 사람을 지인至人이라 한다.

(변찬린의 “선,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

9. 빛나는 오늘! 우리 모두 오늘 하루만큼은 '성인으로 살기'하여 하루성인으로 거듭납시다.

Hojae Lee - 평신도는 눈치보지 말고 자기 가슴에 '말씀의 불'을 붙이자 (1) 1. 대부분의 인간은 일상이...



(1) Hojae Lee - 평신도는 눈치보지 말고 자기 가슴에 '말씀의 불'을 붙이자 (1) 1. 대부분의 인간은 일상이...






Hojae Lee
23 July at 06:08 ·



평신도는 눈치보지 말고 자기 가슴에 '말씀의 불'을 붙이자 (1)

1. 대부분의 인간은 일상이 습관이고 관습이 되어 관례에 따라 윤회의 틀에 박혀 살아간다. 이를 타파시키는 것이 신앙이요, 말씀이 담긴 경전이다. 경전 속에 있는 글자는 나의 가슴을 박동치게 하는 살아있는 불이다. 살아있는 말씀의 불이 성도들의 잠자는 가슴에 불이 활활 타올라야 한다. 불을 붙여주어야 할 직업종교인은 오히려 '교리의 말', '탐욕의 말', '기복숭배의 말'로 둔갑시켜 붙으려는 불마저 꺼 주체적 신앙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안타까운 현실이 목격된다. 그래도 자기는 바른 신앙을 가진 줄 안다. 딱한 일이다.

2. 각 개인은 살면서 한 평생 자신의 마음을 고동치게 하는 말이 있어야 한다. 만일 너에게 그 말이 있냐는 실존적 질문에도 '배운 데로 답한다' 그것이 교리의 신앙고백이고, 교학체계이다. 예수가 지금 우리 면전에서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들입니다'라고 할 것인가! 그건 베드로의 신앙고백이지 나의 실존적 신앙고백이 아니다. 절대존재와의 만남을 통한 실존적 고백은 한평생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자신의 편지내용에 있다. 그 편지내용이 '자기 십자가'이며, '화두(話頭)'이자 '노자가 말하는 '언유종(言有宗: 우두머리 말)'이다.그 편지내용은 개개인마다 다 다르다.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편지내용을 가슴에 담고 경전을 읽으며 하나님을 역사적 지평에서 우리가 만나야 할, 아니 주체적 나가 만나야 할 하나님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편지는 펼쳐보지도 아니하고 늘 남의 편지보며 그 길을 뒤따라 가다가 죽는다. 자기의 편지내용마저도 남에게 물어본다. 내 편지속에 무슨 내용이 있어요? 웃기는 일 아닌가. 즉 신앙마저도 주체적으로 하지 못하고 건물성전에 가서 대리인 신앙을 하는, 무기력하게 남의 편지대로 살아가는 신앙의 실상이 한국 종교의 현상이다. 마치 자기의 밥은 놔두고 남이 씹어놓은 밥을 맛있게 먹는 형국이라 할까? 영양분은 벌써 남들이 다 먹고 밥의 형체만 남았는데도 말이다. 영양가 없는 '신앙'의 결정체가 한국 교회와 사찰에 누룩처럼 번져있는 것이 아닌가? 자문해 보라!

3. 자기의 가슴과 하나님의 맥박이 조율되고, 자기의 손발이 예수그리스도의 지시대로 신율되어, 성령의 춤을 추는 것이 크리스챤이다. 이는 크리스챤만이 아니고 종교적 신앙을 갖는 모든 종교인은 신앙대상 혹은 인간의 완성을 향해 끝없이 고동치는 가슴을 안고 역사광야의 지평을 내달려야 한다. 말씀의 불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은 그 얼굴이 빛난다. 빛난 얼굴은 하늘의 태양처럼 연소하며 세상을 밝힌다.
* 이 글을 보고 바로 거울보며 내 얼굴이 빛나나 볼 마음이 들면 아직 말씀의 불이 안 붙은 거다.
* 모세도 빛난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지 않았는가? 예수도 빛으로 빛난 발광체였지만, 아무도 모르게 부활하지 않았는가! 오직 아무도 모르게 씨알과 더불어 살 뿐이다. 어느 직업종교인처럼 과대광고하면 안된다.

4. 그런데 작금의 실상은 어떠한가? 어느 경전을 보아도 '무소유하라'고 가르치지, 탐진치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특히 종교적 신앙인은 무소유하며 세상의 부정과 부패를 방지하며 사회적 약자에게 빛나는 조명탄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사찰에 가면 금불상앞에서 간절히 절하는 불자들이 득실대고, 교회에 가면 크리스챤이 거룩한(?) 표정으로 하나님께 기복신앙을 한다. 생각해 보라! 사찰에서 금신불에 절하는 그 대상이 앉아야 할 자리는 바로 절하는 자기 자신이다. 불교의 요체는 '모든 사람이 깨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깨달아서 자기가 부처가 된다는 위대한 사상을 팽개치고 중들은 만날 자기는 각자의 자리에 불자는 중생의 자리에 두고 한 평생 설법이나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2천년의 불교전통에서 한국이 제기한 세계적인 불교담론이 있기나 하였는가? 이것이 바로 식민불교의 현주소이다.

6. 이는 기독교계도 마찬가지이다. 역사적 예수의 생애와 초기 제자의 사역과 바울서신에 나타난 일관된 사상은 죽은 인간을 살리는 부활 역사와 세상에 살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율법의 완성으로 압축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경전에 그렇게 말하는데도 자기 십자가(편지)는 지지않고 '예수는 주'요라면서 뒤를 쫄래쫄래 따른다. 마치 신랑/신부을 맞이하는데 '등불도 준비하지 않은 어리석은 신부/신랑여자처럼'! 자기 십자가는 자기가 져야지 누가 대신져 주지 않는다. 자기 십자가는 지지 않고, 하나님이 너희가 무얼 구하는 지 이미 알고, 머리털 갯수까지 안다는데 무슨 기복신앙, 믿음만능신앙, 은총신앙, 자기도 모르는 중얼중얼 방언을 성령받은 표지로 여기는 무당신앙. 그리고 건물교회에 가서 헌금액수대로 주어지는 집사,권사, 장로 등등등 세속적인 위계 자리에 도취되어 있는 것이 한국 교회의 실상이 아닌가? 타락한 인간의 한계를 타파하기 위해 막힌 죽음의 담벼락을 예수가 부활의 통로를 열어놓았으니, 이제 너희는 그 길을 따라 오라고 하지 않는가. 걷는 것 마저 그저 '믿음과 은총과 은혜로' '아멘 할렐루야' 하면 다 끝나는가.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7)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8)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8:24)
예수가 말했다. '너희가 내 말대로 살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 8:31-32)

부처가 말했다.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 : 스스로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법의 등불을 밝히며 살라"

건물성전과 교리와 교학체계속에 진리는 없다. 오직 하늘로 부터 받은 자신의 편지를 읽고, 그 편지내용을 삶과 역사에서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크리스챤이여! 은총으로 받은 예수 믿는 하늘의 복을 받았으면, 그 설레이는 은혜받은 복으로 주체적 신앙을 하시라.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지 하나님께 물어보고, 바로 '그 자기 십자가'를 지시라! 남의 십자가 지지 마시라.

불자여! 자신의 마음의 불을 밝혀 세상을 빛나게 하라! 그래서 지구역사의 큰 각자로 태어나시라.

자기 가슴을 고동치게 하는 '말씀'이 없는 신앙인은 죽은 목숨을 사는 것이다.




148박걸, 이찬수 and 14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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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Illhwa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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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8

왜 교토학파인가 - 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1)



왜 교토학파인가 - 에큐메니안
왜 교토학파인가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1)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승인 2019.03.07 19:01

앞으로 이어질 이찬수 교수님의 “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는 지난 2월16일 한국문화신학회ㆍ기독교통합연구소ㆍ난잔종교문화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동계학술회의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한 주신 일본 난잔종교문화연구소 김승철 소장님과 이찬수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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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학파(京都學派, Kyoto School)는 불교적 입각점 위에서 서양철학을 창조적으로 소화해냄으로써 지금까지는 없거나 미미했던 새로운 논리를 창안해냈다. 그로 인해 서양 철학자의 눈에는 가장 대표적인 동양철학 학파로 자리매김했고, 일본의 철학 수준을 세계적 차원으로, 보기에 따라서는 그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단순히 철학자들의 순수한 연구 모임으로 그친 것은 아니다. 본의든 본의 아니든, 교토학파 사상가들은 20세기 초반 일본의 군국주의 혹은 침략전쟁의 정당화에 기여했다는 비판적 평가도 받고 있을 만큼, 이들의 사상은 일본 및 동아시아 근대의 정치 지형의 변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정치적 영향에 대한 분석도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교토학파의 사상적 흐름

하지만 교토학파는 어디까지나 학자들이 이끈 철학적 ‘학파’이다. 따라서 그 학문적 넓이와 깊이에 대한 분석과 사상적 영향력에 대한 평가가 더 중요한 작업이라는 뜻이다. 교토학파의 사상적 특징부터 요약해보자.

교토학파는 서양의 존재(Being) 혹은 실체(essence/substance) 중심 논리의 한계 내지 불철저성을 비판하면서, 불교적 공(空, Emptiness) 혹은 절대무(絶對無, Absolute Nothingness)의 입장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반야심경』(般若心經, Heart Sutra)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Form is Emptiness, Emptiness is Form)에 담긴 “즉(卽)의 논리”(Logic of Soku)를 서양철학의 언어로 규명해낸 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교토학파의 개조로 일컬어지는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Nishida Kitaro, 1870-1945)는 “공(空)의 장(場)”(Field of Emptiness) 안에서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이른바 “장소적 논리(場所的 論理, Logic of Place)”를 창안했다. 이러한 니시다(西田)의 언어와 사상이 제자들에게 계승되면서 일단의 학문적 흐름이 형성되었다.

▲ 교토학파의 개조로 일컬어지는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Nishida Kitaro, 1870-1945) ⓒGetty Image


니시타니 케이지(西谷啓治, Nishitani Keiji), 타나베 하지메(田邊元, Tanabe Hajime), 히사마츠 신이치(久松眞一, Hisamatsu Shinichi) 등 후학들은 스승인 니시다(Nishida)의 사유를 계승하면서도 저마다 독특한 입장을 펼쳤다. 이들의 입장을 한 마디로 획일화시킬 수는 없지만, 각자의 사상적 특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니시타니(西谷, Nishitani)는 니시다의 철학적 틀을 이용해, 니체(F. Nietzsche)의 허무주의가 도달하지 못한 그 극단의 지점을 “공의 장”(Field of Emptiness)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세계가 허무주의적 방랑에 머물지 않고 도리어 허무를 관통해 철저하게 긍정될 수 있는 논리를 확보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선사(禪師, Zen Master)이자 학자인 히사마츠(久松眞一, Hisamatsu)는 일체의 유신론적 형태를 거부하고 자신의 깨달음 체험에 근거해 철저한 무신론을 확립하고자 했다. 그는 세상만사의 근원이라고 여겨지는 최후의 의지처를 타파함으로써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선사상-“萬法歸一歸何處”(『碧巖錄』 第45則)-의 현대적 표현이 철저한 무신론이라고 해석했다.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는 『금강경』(金剛經, Diamond Sutra)에서 따온 표현인 “즉비”(卽非, Sokuhi)의 개념을 활용해 “즉비의 논리”(Logic of Sokuhi; Logic of self-identity in self-negation)를 창안했다. 이를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대립과 차별[非]을 넘어선 절대긍정의 세계, 다시 말해 ‘즉(卽, 긍정, identity)’이 그대로 ‘비(非, 부정, negation)’인 세계를 규명하고자 했다.

이들이 대체로 선(禪의, Zen) 입장에서 서양철학을 포섭하고자 했다면, 타나베(田邊元)는 정토진종(淨土眞宗, Jodo Shinshu)의 시각을 중시했다. 그는 공(空)과 역사를 직접 동일시하기보다는, 공이라는 보편적 진리와 역사적 구체화 사이의 ‘매개’(媒介, mediation)를 통해 인간의 사회적 실천을 부각시켰다. 공이 그대로 색(空卽是色)일 수 있는 근거, 절대 진리의 세계와 구체적 현실 세계 사이의 상즉성(相卽性, inter-identity)은 인간의 자기부정적(自己否定的, self-negational) 개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매개’의 철학(philosophy of mediation)을 전개했다. 그의 입장은 제자 타케우치 요시노리(武內義範, Takeuchi Yoshinori)를 통해 계승되었다.

교토학파의 사상적 기반, 선불교

이들 간에 강조점의 차이는 다소 있지만, 전체적으로 교토학파는 불교적 입각점, 특히 공(空)의 입장에서 서양 사상을 창조적으로 수용하면서 세상과 역사의 존재 원리를 긍정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서양철학의 언어를 사용해 불교적 세계관을 살리면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철학을 시도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방식으로 서양철학 안에서 불교적 정신을 찾기도 했다.

니시타니(西谷, Nishitani)와 우에다(上田, Ueda) 등 많은 이들이 에크하르트(M. Eckhart)의 신비주의와 같은, 선(Zen)과 통할 수 있는 부정신학적(否定神學, negative theological) 흐름을 중시하고, 성서를 자주 인용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서양 사상의 근간에 있는 그리스도교 전통의 ‘배후’(背後)를 드러내면서, 그곳에서 동양 전통과의 유사성을 보되, 동양 사상의 우월성, 그리고 일본 철학의 보편성을 강조하려는 내심도 들어 있다. 서양적 정신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논리의 바닥까지 내려가 보지 못했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경향이 컸다.

그런 까닭에 이들이 종횡무진 사용하는 서양의 언어 속에서도 빛나는 것은 언제나 동양적, 불교적, 특히 선적(禪的) 정신이다. 그것도 좁혀 말하면, 일본 안에 흐르고 있는 대승불교적 정신이다. 공(空, Emptiness)의 철학을 통해 현실세계, 즉 색(色, Form)의 세계를 긍정하는 논리를 현대화시켰다는 데에 이 학파의 사상사적 의미가 지대하다.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chansuyi@hanmail.net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 입체적이지 못하다 (2)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 입체적이지 못하다 - 에큐메니안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 입체적이지 못하다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2)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승인 2019.03.2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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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교토학파는 존재 중심의 서양적 논리가 전제하고 있는 그 최종적인 지점을 서양철학의 언어로 타파했다. 그리고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는 동양적 논리를 정립했다. 서양의 종교 및 철학자들은 교토학파 사상가들이 서양철학의 언어로 구체화시킨 동양적 논리를 통해 특히 불교철학의 심원함을 다시 보게 되었다.

교토학파의 철학은 불교의 사상적 영향을 지대하게 받아오던 한국의 일부 종교학자들에게도 한국의 사상적 전통을 계승하면서 서양적 세계관까지 통합할 수 있는 한국적 논리를 고민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가진 한국의 연구자는 아직 소수에 그칠 뿐만 아니라, 교토학파 수준의 논리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지는 못한 상태이다. 존재 중심의 서양적 사유와 존재에 매이지 않는 동양(특히 불교철학적)의 사유가 별도의 장에서 공존하고는 있지만, 공존의 ‘논리’가 충분히 성립되었거나 온전한 ‘융합’의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교토학파의 연구 분야, 종교계가 압도적

이 글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교토학파가 한국 종교 및 종교철학 관련 학계에 어느 정도 소화되고 있는지, 연구의 전망은 어떤지, 그리고 교토학파 연구와 관련하여 어떤 과제에 직면해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가늠해보고자 한다. 정치학 및 문학자 등에 의한 교토학파 관련 논문들도 일부 출판되어 있지만,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사상에 대한 연구는 종교 관련 학자들에 의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많다. 실제로 관련 단행본들은 대부분 종교 및 종교철학적 저술이나 번역서들이다. 이것은 교토학파가 기본적으로 종교 혹은 종교철학의 언어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는 신학적 배경을 지닌 연구자들의 작업이 불교적 배경을 지닌 연구자들에 의한 것보다 더 많다. 한국에서 교토학파 연구는 ‘종교간 대화’에 관심을 두던 신학자들이 먼저 시도했고, 신학적 지평을 불교적 세계관에 어울리도록 확장하면서 ‘한국적 신학’을 확립하려는 의도의 표현이기도 했다.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형식과 언어를 넘어서는 더 보편적인 언어를 추구하는 이들에 의한 모험적 시도들도 있었다.

교토학파의 난해한 언어 이해가 관건

그렇기는 하지만 교토학파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교토학파 연구는 질과 양 모두에서 여전히 초보 단계이다. 무엇보다 교토학파를 입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한국인 전문 연구자는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이다. 아직 한국인에 의한 교토학파 전반에 대한 종합적 연구는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여타의 일본 사상 연구에 비해, 교토학파에 대한 한국인의 연구 성과나 연구자들은 소수에 머물고 있다.

▲ Nishida Kitaro with staffs and students around 1913(K. Nishida, Nishida Kitaro Zensyu, Vol.14 [Tokyo: Iwanami Syoten, 1951]) ⓒhttp://www.kyoto-u.ac.jp/cutting-edge/cutting_edge/page32.html


이것은 순수한 종교철학 연구가 학계의 주류에서 더 주변으로 밀려나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교토학파 사상가들의 심층적이고 종합적이며 난해한 언어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서양의 철학적, 불교적, 신학적 이해가 종합되지 않고서는 교토학파의 논리의 심층을 이해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불교적, 신학적, 순수 철학적 연구들이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류에 편승한 실용주의적 연구가 주류를 형성해가고 있으니, 앞으로도 교토학파 전문 연구자들이 더 등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교토학파의 사상사적 의미가 종교나 철학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교토학파의 일본 및 동아시아의 정치사적 의미가 적지 않고, 전술했듯이, 한국에서도 일부 정치학 혹은 문학자들이 이 부분에 관한 연구를 내놓고 있기도 하다. 교토학파의 시대적 의미와 정치 사회적 영향력을 고찰하는 연구도 그 자체로 중요한 작업들이다.

하지만 교토학파는 기본적으로 종교 및 철학적 연구 체계로서, 이 학파의 철학 및 논리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런 영향력의 근원을 간과하는 표층적 연구에 머물 수밖에 없다. 교토학파의 종교철학적 논리와 학문적 종합성 및 정치사회적 영향력까지 두루 소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에 부족한 점

그런 척도로 본다면,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는 여전히 그 심층까지 들어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일부의 영역에 머물고 있거나 각종 연구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종교 관련 연구자조차 교토학파의 내밀하고 심오한 철학적 언어를 충분히 소화하기는 간단하지 않은 마당에, 종교 관련 연구자들이 교토학파의 일본 및 동아시아의 정치사적 의미까지 입체적으로 파악하기는 현실적으로 힘에 부치는 일이다.

일본의 정치사적 언어에 익숙한 정치학자가 대승불교의 공(空)사상을 서양철학의 존재론과 일치시키는 교토학파의 논리와 섬세한 언어를 충분히 따라가기는 더욱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 글에서 한국 내 종교 관련 연구자들에 의한 연구를 중심으로 보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종교철학자 중에서도 대체로 신학적 배경을 지닌 이들에 의한 연구가 좀 더 많다. 일부 불교학자들이 교토학파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지만, 불교학자는 교토학파의 서양철학적 혹은 신학적 언어를 충분히 소화하기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 신학자는 대승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교토학파의 엄밀한 언어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는, 연구자의 관심에 따라 단편적으로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종합적이고 심층적으로 정리한 본격적인 단행본 출판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chansuy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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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수련과정체계의 문제인가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시작과 토대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3)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시작과 토대 - 에큐메니안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시작과 토대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3)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승인 2019.03.29 18:55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 기독교권에서(아마 전 영역에 걸쳐서도) 교토학파를 다루었던 최초의 인물은 최태용(崔泰瑢, 1897-1950)으로 보인다. 그는 1920년부터 일본에 유학하면서 기독교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內村監三)에게 큰 영향을 받았으며, 1924년 귀국 후 한국의 기성 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운동을 했다.(1)

▲ 최태용 목사는 명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일본 교토학파의 사상을 수용하고 이론화 하기 시작한 최초의 인물이다. ⓒGetty Image


최태용의 교토학파 수용

1928년에 다시 도일해 메이지 가쿠인 대학(明治學院大學)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교토학파에 대해 알게 되었다. 1932년 귀국 후에 썼던 그의 글에는 니시다 기타로(Nishida Kitaro)가 말하는 장소론을 차용해 “아담의 장소에서 그리스도의 장소에로의 옮김”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그가 전개하는 논리의 구조가 니시다의 장소론 혹은 행위론과 거의 같다. 1936년도에는 니시다의 “절대모순적 자기동일”의 논리에 기대서 “다수와 한 개체는 부정적 관계”에 있으며 “한 개체 즉 다수”라는 논리를 통해 여러 ‘교파들’과 전체로서의 ‘기독교’의 관계를 해명하고자 했다.

나아가 1946년 해방 정국에서 한국적 국민운동론을 만들고 실제로 국민운동을 펼치는 과정에 교토학파 사상가들의 제국이론을 차용하기도 했다. 최태용이 자신의 논리가 교토학파 철학자들에게서 왔다고 명시하고 있지 않고, 그가 교토학파 자체를 연구했거나 체계적으로 소개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운동에 뛰어든 1940년대 후반의 강의록 『新國家觀』에 스즈키 시게타카(鈴木成高), 타나베 하지메(田邊元), 미키 기요시(三木淸) 등을 인용하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사상 안에는 분명히 교토학파의 세계관이 들어있다.

이미 1930년대에 교토학파의 논리를 일부 소화해 ‘국민’과 ‘국가’, ‘교파’와 ‘기독교’의 관계를 해명하고,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국민 통합을 통한 국가 구성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구체적으로 농촌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던 그의 전력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홍정완, “해방 이후 남한 ‘국민운동’의 국가·국민론과 교토학파의 철학”(2010)에 잘 소개하고 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변선환 교수의 본격적인 교토학파 연구

한국 전쟁기를 지나 이른바 근대적 학문이 본격 시작될 때까지 한국에서 교토학파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들어 교토학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선구자는 변선환(邊鮮煥, 1927~1995)이다. 토착화 신학 및 아시아 신학의 확립을 위해 종교간 대화를 시도했던 변선환은 스위스 바젤대학(University of Basel)에 늦은 나이에 제출한 박사학위논문(1976)에서 자신보다 젊은 일본의 신학자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 1932~)의 신학을 다루었다.

▲ 일본 교토학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작고하신 고 변선환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Getty Image


귀국 후 감리교신학대학에 재직하면서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니시타니 케이지(西谷啓治), 아베 마사오(阿部正雄) 등의 사상 전반을 한국 신학계에 소개했다. 그 영향력 하에서 최범철(崔範澈)이 석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절대무와 한스 발덴펠스의 겸허신학”(1986)를 발표했다. 또한 김광원(金光源)은 “발덴펠스의 생애와 사상”(1988)이라는 제목으로 불교와 소통할 수 있는 신학적 입장을 소개한 소논문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변선환의 직·간접 제자인 김승철( 金承哲), 이찬수(李贊洙) 등이 교토학파 사유체계를 중심으로 불교와 그리스도교간 대화를 시도하면서, 점차 한국어로 된 본격적 연구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교토학파 관련 서적들의 번역과 출판

▲ 변선환 교수의 제자로 교토학파의 서적을 번역·출판하는데 가장 공을 쏟은 일본 난잔대학의 김승철 교수 ⓒ에큐메니안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와 관련하여 가장 획기적인 일은 1990년대 초·중반 불교계 출판사 ‘대원정사’(大圓精舍)가 후원하고 변선환(邊鮮煥), 김승철(金承哲) 등 기독교 신학자가 번역에 참여한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총서’가 발행되었던 일이다.

이 때 교토학파 관련 주요 저술들, 특히 니시타니 케이지(西谷啓治)의 『종교란 무엇인가』(1994), 한스 발덴펠스(Hans Waldenfels)의 『불교의 空과 하나님』(1993)이 번역되었다. 또한 히사마츠 신이치(久松眞一)의 『無神論』(1981)을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 타키자와 카츠미(瀧澤克己), 오다가키 마사야(小田垣雅也) 등의 신학적 응답과 엮어서 번역한 『無神論과 有神論』(1994)이 번역된다. 그리고 아베 마사오(阿部正雄)가 20여 년에 걸쳐 쓴 주요 논문들을 묶어 번역한 『禪과 現代哲學』(1996), 『禪과 現代神學』(1996), 『禪과 宗敎哲學』(1996)이 출판된다.

마지막으로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의 『바울과 정토불교, 예수와 선』(1998)이 번역되어 모두 8권의 주요 책들이 출판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교토학파가 본격 연구될 수 있는 기초가 놓이기 시작했다. 필자도 이 가운데 아베 마사오(Abe Masao, 阿部正雄) 저술의 한국어 번역에 참여하기도 했고, 그의 글들에서 사상적 도전을 제법 받기도 했다.

이 가운데 위 8 권의 책의 절반 가량을 한국어로 소개한 이는 김승철(金承哲)이다. 김승철의 노력으로 교토학파(京都學派)가 한국의 일반 종교 관련 연구자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김승철은 교토학파의 논리를 매개로 불교와 그리스도교간 대화의 이론적 심층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출판사 사정으로 이 시리즈가 폐간되면서(2) 교토학파가 더 많은 이들에게 좀 더 깊게 소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위축되었다. 하지만 이 출판물들은 한국의 연구자들에게 교토학파의 사상적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고, 소규모지만 후속 연구로 이어졌다.

▲ 변선환 교수와 김승철 교수 등에 의해 번역된 출판된 교토학파 관련 서적들. 하지만 출판을 맡았던 대원정사의 폐간되면서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에큐메니안


미주
(미주 1) 이것은 1935년 ‘기독교조선복음교회’(Korea Evangelical Church)라는 교단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미주 2) 불교전문 출판사에서 기독교 및 신학과 연관된 책을 내는데 대한 교단 내부의 오해 및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chansuyi@hanmail.net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성숙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4)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성숙 - 에큐메니안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성숙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4)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승인 2019.04.05 16:01

지난 글에서는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에 대한 시작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그 시작과 더불어 후속 연구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보도록 한다. 이러한 후속 연구들 중에서 김승철(金承哲)의 『大地와 風: 東洋神學의 조형을 위한 解釋學的 試圖』(1994), 『解體的 글쓰기와 多元主義로 神學하기』(1998), 『無住와 放浪: 그리스도교 신학의 불교적 상상력』(2015)은 비록 본격적인 교토학파 소개서는 아니지만, 1990년대 이후 교토학파의 세계관과 논리를 소화한 한국 신학자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김승철 교수의 동양신학의 조형



『대지와 바람』에서는 불교적 세계관을 생명의 원천인 ‘대지’(존재의 근원, 신앙의 장소, 생명의 원천)에 비유하면서, 그 대지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조형되는 ‘동양신학’을 추구한다. 기존 서구의 신학을 아나키즘적으로 해체하면서, 불교적 실재 이해에 기반한 신학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아베 마사오(阿部正雄), 니시타니 케이지(西谷啓治), 와쓰지 데쓰로(和辻哲郞), 우에다 시즈테루(上田閑照) 등의 입장을 수용하거나 원용한다.

이들의 사상 자체를 소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원적 다원주의 신학’을 구성해내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대승불교 및 교토학파의 세계관을 녹여내고 있다.

이런 내용을 좀 더 깊게 담고 있는 책이 『해체적 글쓰기와 다원주의로 신학하기』이다. ‘일자(一者) 안에 다양성을 흡수시키려는 서구적 종교다원주의의 근간을 해체해, 다원주의도 다시 다원화시키는 방식으로 다양성의 현존을 도모하는 김승철의 시도는 교토학파 철학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다른 책 『무주와 방랑: 기독교 신학의 불교적 상상력』(2015)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스즈키(鈴木) 사상의 키워드이기도 한 ‘즉비의 논리(卽非의 論理)’를 해체주의 신학에 접목시키면서 신학과 교토학파를 접근시킨다. 이 책의 일부인 “일본에서의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에서는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 타키자와 카츠미(瀧澤克己)의 신학을 통해 불교와 기독교가 양쪽 전통에 모두 어울릴 수 있도록 시도하기도 한다. 20여 년 전부터 저술한 논문들의 모음집이지만, 『무주와 방랑』은 교토학파 철학을 신학 안에 녹여낸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이찬수 교수의 교토학파에 대한 체계적 소개



이찬수가 박사학위 논문 『神, 人間, 그리고 空: 칼 라너와 西谷啓治 비교 연구』(1997)의 교토학파 부분을 기반으로 출판한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 京都學派와 그리스도교』(2003)에서는 니시다(西田), 니시타니(西谷), 타나베(田邊), 스즈키(鈴木) 등 대표적 교토학파 철학자들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정리 및 소개하고 있다. 교토학파 주요 사상가들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면서 그리스도교와의 심층적 소통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는 연구서이다. 부제에 담겨있듯이, 종교적 세계관 및 그에 대한 분석의 심층에서는 외형적 차이를 해소시키며 서로 만나게 해주는 공통의 논리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논리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드러난다고 보고 있다. 한국어로 된 관련 단행본 가운데 ‘교토학파’라는 제목을 달고 출판된 유일한 연구서일 것이다.

이찬수의 『다르지만 조화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2015)에서도 니시다, 타나베 등의 철학을 종합한 논문 등 교토학파 관련 글들을 4편 수록하고 있다. 교토학파를 위시해 불교와 그리스도교적 세계관과의 접목 가능성 및 두 종교가 동일한 논리 위에 있을 가능성을 탐색하며 분석하고 있는 글들이다.

길희성 교수의 정토사상 연구



교토학파 자체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는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사상 안에 교토학파의 철학도 소화하고 있는 학자가 길희성(吉熙星)이다. 길희성의 『菩薩예수: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창조적 만남』(2004), 『일본의 정토사상』(1999) 등이 그 사례이다. 『보살예수』는 예수에게서 보살의 정신을, 보살에게서 예수의 모습을 보는 논리를 심층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 교토학파의 ‘절대무’(181-184쪽) 개념을 가져오기도 한다.

『일본의 정토사상』에서는 교토학파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신란(親鸞)의 정토사상을 깊이 정리 및 분석하는 과정에 타나베(田邊)의 ‘참회도(懺悔道)로서의 철학’의 요지를 적용하기도 한다. ‘절대무’라든지, ‘참회도로서의 철학’이라는 표현과 내용을 인용하는 분량이나 회수는 적지만, 그 적용의 질은 매우 높다.

교토학파에 대한 정치학적 연구

이들은 대부분 종교간 대화, 특히 불교와 기독교간 대화를 통해 기존의 사유 체계를 넘어서는 종교적 세계관의 새로운 심층을 상상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에 비하면, 철학자 허우성(許祐盛)의 역작 『일본 근대의 두 얼굴: 니시다 철학』(2000)은 니시다 기타로의 불교철학을 정치학적 관점까지 견지하면서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를 지닌다. 교토학파를 종교철학적 차원에서 주로 연구하던 그 동안의 경향에 비해 이 책은 불교철학과 정치철학적 관점이 종합된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으로 인해 니시다의 종교철학이 일본의 군국주의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한국인이 본격적으로 상상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chansuyi@hanmail.net

이찬수 〈평화와 신학〉 창립 포럼 “한국전쟁과 트라우마”

(7)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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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June ·


〈평화와 신학〉 창립 포럼 “한국전쟁과 트라우마”

〈평화와 신학〉은 한국전쟁 69주년을 하루 앞둔 6월 24일(월) 오후 7시에 명동 향린교회(담임목사 김희헌)에서 “한국전쟁과 트라우마”를 주제로 창립 포럼을 개최합니다. 양권석 신부(성공회대)의 사회로 이숙진(이화여대), 이상철(한백교회), 배근주(미국 데니슨대학교), 정경일(새길교회)의 발표와 토론이 있고, 조주경의 춤(“위로”)과 자우녕의 영상(“두려움의 지도”)도 함께합니다. 아울러 한완상 3.1운동 및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의 축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평화와 신학〉은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본격화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정치외교적 평화를 넘어 정의로운 평화, 삶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신학담론—새로운 한반도 평화/통일신학, 사회적-영적 트라우마 극복, 타자의 평화체제 등의 주제—을 함께 탐구하고 모색하기 위해 결성된 연구공동체입니다. (문의: peaceandtheology@gmail.com 010-7291-3031)

일시: 2019년 6월 24일(월) 오후 7-9시
장소: 향린교회(명동)

이숙진_ "말하는 주체와 기억 공동체: 48년 체제와 여성"

제주4·3은 48년 국가형성기에 국민을 ‘적’으로 몰아 학살한 국가폭력의 기원적 사건이다. 긴 세월 동안 누가, 누구를, 왜, 얼마나 잔혹하게 도륙했는지 알면서도 진실은 발화될 수 없었다. 최근 깊은 침묵과 잊힌 기억들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성폭력으로 인하여 “살아남았기에 더 고통스러웠던 4·3 제주여성들”의 목소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최근 성범죄 피해자들이 고발자로서 미투운동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우리사회의 공감적 청자 공동체 형성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이숙진은 ‘말하는 주체’와 공감적 청자들로 구성되는 기억의 공동체에 관심하면서, 4·3에서 5.18에 이르기까지 48년 체제하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이상철_ “48년 체제와 한국전쟁, 그날 이후 살아남은 ‘빗금 그어진 주체($)’들을 향한 레퀴엠”

정신분석학에서 상상계속 아이는 상징계로 진입할 때 상실과 거세를 경험한다. 그 과정을 지나온 주체를 라깡은 ‘빗금 그어진 주체($)’라 명하였다. 48년 체제와 한국전쟁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상징계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임과 동시에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사회적 원죄의 진앙이다. 이상철은 한국전쟁이라는 트라우마를 간직한 이후의 시대를 데리다의 표현을 빌어 와 ‘유령(haunting)의 세기’라 명명하면서, 원죄를 간직한 ‘빗금 그어진 주체($)’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추적한다.

배근주_ “미국의 ‘잊어버린 전쟁’에 대한 기억: 한국전쟁과 트랜스내셔널 트라우마”

한국전쟁은 미국의 전쟁이었지만, 미국에서는 ‘잊어버린 전쟁 (forgotten war)’으로 불린다. 한국전쟁은 왜 잊어버린 전쟁이 되었을까? 전쟁 후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들과 그들의 자녀들, 미군과 결혼한 기지촌 여성들, 한인 입양아 등등 다양한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주체들은 이 잊어버린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을 재생산할까? 배근주는 탈식민주의 이론가 아칠레 음벰베(Achille Mbembe)의 개념인 ‘네크로폴리틱스(necropolitics)’를 통해 미국의 전쟁인 한국전쟁을 분석하고, 세대와 국경을 넘나들며 존재하는 전쟁의 트라우마를 기독교 윤리적으로 접근한다.

정경일_ “역사적 트라우마와 모든 죽은 이를 위한 애도”

한국전쟁은 내전화한 국제 이념전쟁이면서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죽인 “작은 전쟁들”의 총칭이다. 그때의 우리는 서로에게 가해자였고 피해자였다. 참혹한 동족상잔의 트라우마는 세대에서 세대로 유전되어, ‘전쟁이 일상’이었던 세대의 후예는 ‘일상이 전쟁’인 세대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이기적 개인주의, 경쟁적 생존주의, 탐욕적 물질주의는 한국전쟁 시대의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정경일은 한국인의 몸과 마음에 남아있는 과거와 현재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돌아보고, 체제 사이의 ‘정치적 평화’ 너머 사람 사이의 ‘관계적 평화’를 위한 기억과 애도의 신학적 서사를 모색한다.




Cosmology Has Some Big Problems - Scientific American Blog Network



Cosmology Has Some Big Problems - Scientific American Blog Network

Cosmology Has Some Big Problems

The field relies on a conceptual framework that has trouble accounting for new observations

By Bjørn Ekeberg on April 30, 2019


Credit: Thanapol Sisrang Getty Images


What do we really know about our universe?

Born out of a cosmic explosion 13.8 billion years ago, the universe rapidly inflated and then cooled, it is still expanding at an increasing rate and mostly made up of unknown dark matter and dark energy ... right?

This well-known story is usually taken as a self-evident scientific fact, despite the relative lack of empirical evidence—and despite a steady crop of discrepancies arising with observations of the distant un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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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recent months, new measurements of the Hubble constant, the rate of universal expansion, suggested major differences between two independent methods of calculation. Discrepancies on the expansion rate have huge implications not simply for calculation but for the validity of cosmology's current standard model at the extreme scales of the cosmos.

Another recent probe found galaxies inconsistent with the theory of dark matter, which posits this hypothetical substance to be everywhere. But according to the latest measurements, it is not, suggesting the theory needs to be reexamined.

It's perhaps worth stopping to ask why astrophysicists hypothesize dark matter to be everywhere in the universe. The answer lies in a peculiar feature of cosmological physics that is not often remarked. A crucial function of theories such as dark matter, dark energy and inflation—each in its own way tied to the big bang paradigm—is not to describe known empirical phenomena but rather to maintain the mathematical coherence of the framework itself while accounting for discrepant observations. Fundamentally, they are names for something that must exist insofar as the framework is assumed to be universally valid.

Each new discrepancy between observation and theory can, of course, in and of itself be considered an exciting promise of more research, a progressive refinement toward the truth. But when they add up, they could also suggest a more confounding problem that is not resolved by tweaking parameters or adding new variables.

Consider the context of the problem and its history. As a mathematically driven science, cosmological physics is usually thought to be extremely precise. But the cosmos is unlike any scientific subject matter on earth. A theory of the entire universe, based on our own tiny neighborhood as the only known sample of it, requires a lot of simplifying assumptions. When these assumptions are multiplied and stretched across vast distances, the potential for error increases, and this is further compounded by our very limited means of testing.

Historically, Newton's physical laws made up a theoretical framework that worked for our own solar system with remarkable precision. Both Uranus and Neptune, for example, were discovered through predictions based on Newton's model. But as the scales grew larger, its validity proved limited. Einstein's general relativity framework provided an extended and more precise reach beyond the furthest reaches of our own galaxy. But just how far could it go?

The big bang paradigm that emerged in the mid-20th century effectively stretches the model's validity to a kind of infinity, defined either as the boundary of the radius of the universe (calculated at 46 billion light-years), or in terms of the beginning of time. This giant stretch is based on a few concrete discoveries, such as Edwin Hubble's observation that the universe appears to be expanding (in 1929) and the detection of the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 (in 1964). But considering the scale involved, these limited observations have had an outsized influence on cosmological theory.

It is, of course, entirely plausible that the validity of general relativity breaks down much closer to our own home than at the edge of the hypothetical end of the universe. And if that were the case, today's multilayered theoretical edifice of the big bang paradigm would turn out to be a confusing mix of fictional beasts invented to uphold the model, along with empirically valid variables mutually reliant on each other to the point of making it impossible to sort science from fiction.

Compounding this problem, most observations of the universe occur experimentally and indirectly. Today's space telescopes provide no direct view of anything—they produce measurements through an interplay of theoretical predictions and pliable parameters, in which the model is involved every step of the way. The framework literally frames the problem; it determines where and how to observe. And so, despite the advanced technologies and methods involved, the profound limitations to the endeavor also increase the risk of being led astray by the kind of assumptions that cannot be calculated.

After spending many years researching the foundations of cosmological physics from a philosophy of science perspective, I have not been surprised to hear some scientists openly talking about a crisis in cosmology. In the big “inflation debate” in Scientific American a few years ago, a key piece of the big bang paradigm was criticized by one of the theory's original proponents for having become indefensible as a scientific theory.

Why? Because inflation theory relies on ad hoc contrivances to accommodate almost any data, and because its proposed physical field is not based on anything with empirical justification. This is probably because a crucial function of inflation is to bridge the transition from an unknowable big bang to a physics we can recognize today. So, is it science or a convenient invention?

A few astrophysicists, such as Michael J. Disney, have criticized the big bang paradigm for its lack of demonstrated certainties. In his analysis, the theoretical framework has far fewer certain observations than free parameters to tweak them—a so-called “negative significance” that would be an alarming sign for any science. As Disney writes in American Scientist: “A skeptic is entitled to feel that a negative significance, after so much time, effort and trimming, is nothing more than one would expect of a folktale constantly re-edited to fit inconvenient new observations."

As I discuss in my new book, Metaphysical Experiments, there is a deeper history behind the current problems. The big bang hypothesis itself originally emerged as an indirect consequence of general relativity undergoing remodeling. Einstein had made a fundamental assumption about the universe, that it was static in both space and time, and to make his equations add up, he added a “cosmological constant,” for which he freely admitted there was no physical justification.

But when Hubble observed that the universe was expanding and Einstein's solution no longer seemed to make sense, some mathematical physicists tried to change a fundamental assumption of the model: that the universe was the same in all spatial directions but variant in time. Not insignificantly, this theory came with a very promising upside: a possible merger between cosmology and nuclear physics. Could the brave new model of the atom also explain our universe?

From the outset, the theory only spoke to the immediate aftermath of an explicitly hypothetical event, whose principal function was as a limit condition, the point at which the theory breaks down. Big bang theory says nothing about the big bang; it is rather a possible hypothetical premise for resolving general relativity.
On top of this undemonstrable but very productive hypothesis, floor upon floor has been added intact, with vastly extended scales and new discrepancies. To explain observations of galaxies inconsistent with general relativity, the existence of dark matter was posited as an unknown and invisible form of matter calculated to make up more than a quarter of all mass-energy content in the universe—assuming, of course, the framework is universally valid. In 1998, when a set of supernova measurements of accelerating galaxies seemed at odds with the framework, a new theory emerged of a mysterious force called dark energy, calculated to fill circa 70 percent of the mass-energy of the universe.

The crux of today's cosmological paradigm is that in order to maintain a mathematically unified theory valid for the entire universe, we must accept that 95 percent of our cosmos is furnished by completely unknown elements and forces for which we have no empirical evidence whatsoever. For a scientist to be confident of this picture requires an exceptional faith in the power of mathematical unification.

In the end, the conundrum for cosmology is its reliance on the framework as a necessary presupposition for conducting research. For lack of a clear alternative, as astrophysicist Disney also notes, it is in a sense stuck with the paradigm. It seems more pragmatic to add new theoretical floors than to rethink the fundamentals.

Contrary to the scientific ideal of getting progressively closer to the truth, it looks rather like cosmology, to borrow a term from technology studies, has become path-dependent: overdetermined by the implications of its past inventions.

This article is based on edited excerpts from the book Metaphysical Experiments:Physics and the Invention of the Universe, published by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일본의 계산된 경제 도발…대법 판결 정당성 세계에 알려야 - 중앙일보



일본의 계산된 경제 도발…대법 판결 정당성 세계에 알려야 - 중앙일보

일본의 계산된 경제 도발…대법 판결 정당성 세계에 알려야
[중앙선데이] 입력 2019.07.27
기자배명복 기자


[배명복의 사람속으로] 한·일 갈등, 한국의 대응 - 호사카 교수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 조치에 대응하면서 위안부 합의가 왜 문제인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왜 정당한지를 한국과 일본 국민, 국제사회에 제대로 설명하고 알리지 못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인섭 기자“이 기회에 한국 경제를 완전히 꺾어놓겠다는 의도로 한국에 대해 일본이 경제전쟁을 감행한 것입니다.” 일본계 한국인 학자인 호사카 유지(63) 세종대 교수(정치학)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경제전쟁 선포로 규정하고, “지금은 여야를 떠나 거국일치로 총력 대응에 나설 때”라고 강조했다.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장을 겸하고 있는 그를 지난 23일 서울 서소문에 있는 중앙일보 9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 청구권 유효
작년 고노 외상도 언론에 “그렇다”
아베 정부, 알면서도 계속 말 바꿔

한국 경제적 부상 막으려 수출규제
대법 판결 인정 땐 배상 문제 불거져
아베가 벌인 경제 전쟁 장기화될 것

이미 나온 판결은 배상으로 해결
향후 판결은 ‘1 +1’ 방식이 바람직
질의 :한·일 갈등이 격화될 때마다 입장이 곤혹스러울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까.
응답 :“한·일 관계가 좋은 것이 저로서도 물론 좋지만, 그렇다고 곤혹스러울 것은 없습니다. 전공이 한·일 관계의 현안이다 보니 양국 관계가 안 좋을 때마다 저를 찾는 분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학자이기 때문에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팩트를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질의 :강제징용 피해자들 개인의 청구권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 판결은 1965년 한·일 기본협정을 무시한 사실상의 국제법 위반 행위로, 50년 이상 유지해온 한·일 관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게 아베 정부의 주장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응답 :“전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이 남아 있다는 것은 91년 당시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이던 야나이 슌지(柳井俊二)가 세 번이나 정확하게 말한 내용입니다. 65년 청구권 협정으로 소멸한 것은 국가의 외교보호권입니다. 협정에 따라 일본이 한국에 제공한 돈은 미수금이나 미불금 등 한국인 징용자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이지 배상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은 일본 법원도 지금까지 인정해온 부분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아베 정부가 말을 바꾼 겁니다.”
일본 피해 커지면 아베도 무시 못할 것


질의 :왜 바꾼 거죠.
응답 :“개인 청구권을 인정하면 일본이 불리해지니까요.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났을 때 일본 기자들이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에게 ‘개인의 청구권은 남아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 내용이 일본 신문에 다 났습니다. 그 후 아베 정부는 한국이 국가 대 국가의 약속을 어긴 것이 문제라고 말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국가 간 약속을 어긴 나라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는 게 그때부터 일본이 줄곧 주장해온 논리입니다.”

질의 :강제징용 판결 문제를 계기로 아베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에 나선 진짜 의도가 뭐라고 보십니까.
응답 :“한국의 경제적 부상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에서 한·일 간 격차가 계속 좁혀지고 있습니다. 몇 년 후에는 한국이 일본을 추월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남북한 평화공존이 실현되면 한국의 국력은 엄청나게 커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국이 일본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날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일본인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한국 경제를 완전히 꺾어놓아야 하고, 그 핵심은 반도체다, 이런 식으로 면밀하게 계산한 끝에 감행한 의도적 도발이라고 봅니다.”

질의 :다른 목적은 없을까요.
응답 :“한국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면 배상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청구권 협정은 보상 문제였지 배상은 포함돼 있지 않았습니다. 보상은 적법한 행위에 따른 손해를 보전해주는 것이지만, 배상은 위법 행위로 인한 피해를 보전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불법성을 전제로 합니다. 지금까지 일본은 보상금 외에는 낸 적이 없습니다. 배상은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아베 정부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문제입니다.”

질의 :이대로 가면 한국 쪽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외교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응답 :“외교적으로 푼다고 해서 일본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위안부 합의를 되풀이하게 됩니다. 아베 정부가 원하는 외교적 합의는 일제의 강점이 합법이었다는 전제 위에서 이루어지는 합의밖에 없습니다. 그건 결국 일본에 굴복한다는 뜻입니다. 일본은 지금 한국에 경제전쟁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중국에 감행한 무역전쟁은 경제에 국한해 시작했지만, 일본은 강제징용 판결이라는 사법적 문제를 경제 문제로 바꿔 시작했다는 점에서 훨씬 비열합니다. 미국 농민들의 피해가 커지자 대선에 빨간불이 켜질 것을 우려해 트럼프가 한 발 뒤로 물러났듯이 일본 내 피해가 커지면 아베도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국민이 일본 상품 안 사고, 일본 여행 안 가면서 일본 경제에도 피해가 나타나고 있어요. 규슈의 사가현 같은 데서는 ‘한국인들이 오지 않아 타격이 크다’는 비명이 벌써 나왔습니다. 이런 소리가 일본 여기저기서 나오면 아베도 무시하지 못할 겁니다. 그걸 무시하면 아베의 장기집권에 빨간 불이 켜질 수 있습니다.”

질의 :외교적 해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전쟁도 외교라는 마음가짐으로 맞서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응답 :“그렇습니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대로 전쟁은 외교의 연장입니다. 외교의 연장으로 일본이 경제 전쟁을 시작한 만큼 우리도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감정적으로 싸우라는 게 아닙니다. 논리적으로 싸우라는 뜻입니다.”
화해치유재단 일방적 해산은 아쉬움




12일 한 대형마트에 일본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질의 :그래도 타협의 길은 열어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응답 :“그렇습니다. 이미 나온 한국 대법원 판결까지는 일본 기업이 배상을 통해 해결하고, 앞으로 나올 판결에 대해서는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이 참여하는 ‘1+1’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봅니다. 상징적으로라도 일부는 일본이 배상을 인정한 것으로 해야 한국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질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일본인 다수가 지지하는 것으로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한 피로감 때문일까요.
응답 :“피로감 프레임을 씌운 게 바로 아베 정권입니다. 아베는 한국은 골대를 몇 번이나 옮긴 나라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말을 기회 있을 때마다 되풀이하면서 위로부터 혐한 감정을 조장해 왔습니다.”

질의 :아베가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하는 데는 전임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현 정부가 뒤집은 탓도 있지 않을까요.
응답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지 않고, 재협상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스탠스였습니다. 문제가 된 것은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아닐까 싶습니다. 이 부분만큼은 일본과 어느 정도 협의를 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질의 :그런 과정 없이 해산한 것은 문제라는 뜻입니까.
응답 :“좀 더 나은 방법이 있을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정부에는 설명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설명을 잘 안 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문제라고 봅니다. 예를 들면 위안부 합의가 왜 문제인지, 대법원 판결이 왜 정당한지 제대로 설명하고 알려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한국과 일본 국민,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노력에서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봅니다. 일본 보세요. 아베 총리와 스가 관방장관, 경제전쟁을 지휘하고 있는 이마이, 세코, 하기우다 3인방이 돌아가면서 한국의 잘못이라고 계속 떠들고 있습니다. 이에 맞서 한국도 그게 아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옳다, 일본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를 매일 하고, 기사화해야 합니다.”

질의 :아직은 한국 국민이 비교적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일본이 한국을 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국인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면 양상이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을 정말로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할 거로 보십니까.
응답 :“한번 결정하면 그대로 가는 게 일본의 속성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건 아베가 진짜 잘못하는 것입니다.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것은 폭탄으로 한국을 파괴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것은 일본이지 한국이 아닙니다. 이 점을 한국 국민과 정치권, 언론이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질의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응답 :“지금은 미래를 말할 때가 아닙니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에 온 힘을 쏟아야 할 시기입니다. 출구가 없는 잘못된 경제전쟁을 시작한 것은 일본입니다. 아베 정권은 경제를 최우선시했던 일본 보수의 본류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경제보다 이데올로기가 중요합니다. 일제 강점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하면 그 이데올로기가 무너집니다. 그래서 그들은 일제의 강점은 합법이었고, 한국을 식민지화했지만 근대화시켰고, 위안부는 없었고, 있었어도 합법이었다고 주장하면서 패전 이전 일왕 중심의 대일본제국을 부활하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런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자국 경제를 희생해가면서까지 한국에 경제전쟁을 감행한 것입니다. 아베 정권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이 상황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걸 알고, 경제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국면이 열릴 수 있습니다.”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bae.myungbok@joongang.co.kr

호사카 유지 교수 1979년 도쿄대 금속공학과 졸업. 88년 한국 입국. 98년 세종대 교수. 2000년 고려대 박사 학위 취득. 2003년 대한민국 귀화. 2009년 세종대 부설 독도종합연구소장 취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사. 『일본 고지도에 독도 없다』 『일본 우익사상의 기저 연구』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우리역사 독도』 『독도 1500년의 역사』 등 다수의 저서.

와다 하루키 등 일본 지식인 75명, ‘수출규제 철회’ 서명운동 개시


李宇衍
1 hr ·



일본 일부 인사들의 이러한 움직임이 한일관계에 도움이 될까? 안된다. 바람직하지도 않다. 방향을 잘못 잡은 한국정부를 고무함으로써 오히려 유해하다.

지금 이 난리가 난 데는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 탓도 크다. 그들은 전시노동자(소위 “강제징용” 노동자) 관련, 역사왜곡을 방관, 방조하거나, 심지어 그에 가담하기도 했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왜 그랬을까? “동정주의”였다.

그들이 지금 또 다시 사실을 호도하려 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올해 초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선 한마디도 안 하면서 한국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과시했다”, “(최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문재인 대통령만 무시했다”
: 한국 정부는 작년 10월 30일 대법원 판결 이후 지난 9개월간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일본의 외교적 협의와 중재위 설치 요구에 대해서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한국은 일본을 철저히 무시했다.

“마치 한국이 ‘적’인 것처럼 다루는 조치를 하고 있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잘못”, “한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기조로 해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구축하고 있는 중요한 이웃”
: 동아시아에서 자유민주주의 한국의 최대의 적은 북조선과 중국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이들과 손을 잡으려 지극정성을 다해왔다.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범국민적 극단적 반일운동을 선동한다. 또 상대를 먼저 적대시한 것도 한국이다. 문제인 대통령이 아베 수상 앞에서 “일본은 동맹이 아니다”고 단언한 예가 극명하다.

지식인? 전혀 지성적이지 않다.

일본 “양심적 지식인”들의 이와 같은 태도는 어디에서 나올까? 역시 우리가 청한 바 없은 “동정주의”다. 이런 움직임에 의해 일본 정부가 태도를 바꾼다면,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단기적으로는 한국에 이득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아니다. 패자의 콤플렉스만 아니라, 승자의 동정주의도 건전한 상호관계의 발전을 저해한다. 1965년 이후 한일관계에서 우리는 그것을 보아왔다.




와다 하루키 등 일본 지식인 75명, ‘수출규제 철회’ 서명운동 개시

입력 2019.07.26 23:14


김정우 기자

“한국이 적인가’ 성명 발표… “일본 조치는 적대 행위, 한국은 중요한 이웃”

일본 유명 학자와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가 등 총 75명이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즉각 철회하라"는 주장을 담은 성명서 발표와 함께 온라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사이트(https://peace3appeal.jimdo.com). ‘한국은 적인가’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인터넷 캡처

https://peace3appeal.jim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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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저명한 학자와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가 등 사회지도층 인사로 활동하는 지식인들이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 철회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최근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개설된 일본의 인터넷 사이트(https://peace3appeal.jimdo.com)에는 ‘한국은 적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서가 올라와 있다. 8월 15일을 1차 기한으로 내걸고 서명자를 모집 중인데,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와 우치다 마사토시(內田雅敏) 변호사, 오카다 다카시(岡田充) 교도통신 객원논설위원, 다나카 히로시(田中宏) 히토쓰바시(一橋)대 명예교수 등 총 75명이 공동 작성자로 참여했다. 다른 대학 교수와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가, 언론인, 전직 외교관, 의사, 작가 등도 이름을 올렸다.


성명에서 이들은 “우리는 7월 초 일본 정부가 밝힌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에 반대하며,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한다”며 “반도체 제조가 한국 경제에 갖는 중요한 의의를 생각하면 이번 조치가 한국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적대적 행위임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은 이 나라(한국)를 침략해 식민지 지배를 한 역사가 있어 한국과 대립하더라도 특별하고 신중한 배려가 필요하다”며 “일본의 압력에 ‘굴복했다’고 보인다면 (한국의) 어떤 정권도 국민에게서 버림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경제) 보복이 한국의 보복을 부르면 그 연쇄 반응의 결과는 수렁”이라며 “이런 사태만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홍인기 기자ㆍ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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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은 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올해 초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선 한마디도 안 하면서 한국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과시했다”며 “(최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문재인 대통령만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는 “마치 한국이 ‘적’인 것처럼 다루는 조치를 하고 있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잘못”이라며 “한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기조로 해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구축하고 있는 중요한 이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펼쳤다. 성명은 “일본의 조치는 그동안 큰 수혜를 입은 자유무역의 원칙에 반하며, 일본 경제에도 커다란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면서 “보통 올림픽의 주최국은 주변국과의 갈등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일본은 주최국 자신이 주변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 기업과의 화해 성립에 힘써 온 일본의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가 지난 20일 도쿄 사무실에서 한일 징용문제 갈등과 관련, 기급 설립을 통한 해결 방안을 밝히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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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과거사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 입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한일 청구권협정은 양국 관계의 기초로 존재하고 있는 만큼, 존중을 받아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아베 정권이 반복하는 것처럼 ‘해결이 끝났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 정부는 그동안 일관되게 개인에 의한 보상청구권을 부정하지 않아 왔다”며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협정 체결 후) 반세기 동안 사할린의 잔류 한국인 귀국 지원, 피폭 한국인 지원 등 식민지 지배로 인해 개인이 입은 피해의 보상을 갈음할 조치를 해 왔다”고 짚었다. 이와 함께 “한국과 일본이 중재위원회 설치를 둘러싸고 대립 중이지만,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른 중재위 설치 논의는 2011년 8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헌법재판소의 결정 때 처음 나왔다”며 “당시엔 일본 측이 중재위 설치에 불응했다”고 설명했다.

성명은 결론 부분에서 “(일본에서) BTS(방탄소년단)의 인기는 압도적이고, (매년) 300만명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여행하고 700만명이 한국에서 일본을 찾고 있다”며 “우익과 혐오 스피치 세력이 아무리 외쳐도 일본과 한국은 중요한 이웃나라로서 분리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베 총리는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의 사이를 갈라놓고 대립시키려는 걸 그만두라”며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즉시 철회하고 한국 정부와 냉정한 대화와 토론을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성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의견이 다르면 손을 잡은 채 토론을 계속 하면 되지 않겠어요?”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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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ayer Life of Quakers David Johnson

The Prayer Life of Quakers

https://youtu.be/gZxGL2GQgZ0


QuakerSpeak
Published on Jul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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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does Quaker prayer look like? Australian Friend David Johnson says it’s something every human being does naturally, and it leads to inordinate spiritual refreshment. 

Quaker prayer is a matter of letting go of outward words, and of our thoughts and imaginations, and of centering down into a place of silence where we can wait and notice the movements of God within us.

 A Quaker Prayer Life 

I’m David Johnson. I live in far North Queensland, Australia. I’m part of a small worshipping group; my monthly meeting is Queensland Regional Meeting. I’ve written many small pieces in Australia, but the two main things I’ve done recently are to collate–with some of my own comments–many quotes on Quaker prayer from the first- and second-generation Quakers. 

A Heart Prepared By God 

There’s a difference here between an outward prayer of a known prayer or a liturgy, which for some people–and I’ve used it myself–is a very helpful anchor. When I first kneel by a bed or when I first sit down to say a prayer, it’s a very helpful anchor and an introduction. 
But that is different to the prayer which emanates from the heart, and the early Quaker William Penn identified his experience when he said that “true prayer can only come from a heart prepared by God.” 

A Natural Contemplative Practice 

Our Quaker prayer life is one of the inheritors of this very ancient, very natural contemplative practice. This is very natural for the human being. 
We can see this practice coming down in many strands. We can see it in the mindful breathing in the Buddhist faith. We can see it in the constant invoking of the name of God in the Orthodox Christian faith. We can see it in a similar way in the Sufi faith. 

The Quaker prayer life, for me, is a way of going inward, using normally one of these practices as an entry point: using deep breathing, using the same repetitive saying of a sacred word, so that my attentiveness moves from up in here, gradually and sinks down into here where I’m enabled, I don’t actually do it, I’m actually enabled to give up my own willing, give up my own running of my own mind, sinking down, breathing down, centering down into where the spirit of God is present in the heart, and where the presence of God can actually minister to me, convey things to me that I then have a choice about. 

The Steps of Quaker Prayer 

So the first step as we go inward, which is identified in the Quaker prayer life, is actually being very attentive inwardly in the heart to the Light and the movements there, what the early Quakers called “mind the light,” be attentive to it. 
The second step, when the light shows us something, is actually to welcome it. What George Fox, the early Quaker called, “love the Light” no matter what it shows you. Because the Light is showing parts of you that may be in error (what others call sin) so that it might be remedied and you might become purer of the heart. 

And that’s my experience, that when I welcome those signs–and they come quite often– that I was out of line spiritually, when I welcome those and sit with them, the light shows me some reparation or there is some healing. There is some reconciling going on towards peace within me. 

Experiencing Inward Refreshment 

The Quaker experience is that as we continue that letting-go of outward forms and just sinking inward, we find we’re being helped. 
Something is actually working with us. We can call that the grace, we can call that the presence of the Light, or of Christ, or another word for it, is the anointing within us–it comes to help us in this path. 

And as we do this, we find that it gradually goes deeper and starts to take hold of us. We begin to let go of those expectations. We begin to find, eventually, for small times at first and then for longer ones–that that deep silence is actually accessible to every one of us, and that it is actually–even though we don’t hear anything–we begin to realize that the first language of God is actually si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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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2

CK Park - 평화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오랫동안 평화란 전쟁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전쟁은 다른 이의...



(21) CK Park - 평화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오랫동안 평화란 전쟁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전쟁은 다른 이의...





CK Park
20 July at 09:53 ·



평화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오랫동안 평화란 전쟁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전쟁은 다른 이의 생명을 살상하고 다른 이의 것을 빼앗는 행위를 당연시한다. 고대사회에서의 전쟁은 야만 그 자체였다. 전쟁에서 이긴 편은 남자들은 무참하게 학살하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노예로 삼았다. 그 잔인한 전쟁의 역사는 오직 평화로만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부재한 상태가 평화라는 생각은 매우 폭력적인 평화를 말하는 것이다. 상대를 진압하여 얻는 평화는 승자 독식의 평화였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평화와 서구 사회에서의 평화를 살펴보다 보면 아시아인의 평화 이해가 매우 전근대적이고도 비인간적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서구 사회를 비판하는 아시아 학자들은 아시아의 정신적 풍요를 낭만화하며 그 우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심원한 유불선의 유산을 생각하면 그리 틀린 것은 아닐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는 서구 사회가 가지는 이웃에 대한 적대성과 우리가 경험한 이웃에 대한 적대성에는 큰 차이가 있다. 즉 이웃을 이해하는 방식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

유럽의 역사에서 평화 사상의 원류를 찾아보면 기원전 그리스 세계에서 형성되었던 도시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각축전의 성격과 그 시대에 그들이 꿈꾸었던 평화 사상을 만나게 된다. 소규모의 도시국가들이 각축전을 벌이다가 강력한 페르시아나 마케도니아 세력의 위협을 받게 되자 도시국가의 지도자들은 상대를 살육과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생각을 버리고 공존의 대상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거기서 나온 개념이 에이레네, 평화다. 그러니까 이웃을 나와 같은 인간, 나와 같은 생존권, 나와 같은 삶의 의지를 가진 인간이라고 바라보는 데에서 평화 사상이 싹튼 것이다.

다양한 차이와 일방적인 집단의 욕망을 넘어서 서로가 인간, 동류라는 의식은 서구 사회에서 평화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 되었다. 물론 그들 역시 종족주의적인 우월성, 그리고 이질 집단을 향한 비하와 멸시의 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갈등과 투쟁,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를 극복하기 위하여 그들은 서로의 생존을 보장하는 원칙을 평화의 근본 요건으로 삼았다. 그리스 도시국가 중에서 자웅을 겨루던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등과 같은 도시국가들의 지도자들은 평화협약을 맺을 때 불가침의 조건만 내건 것이 아니었다. 상대의 생존을 보장하는 원칙을 반드시 포함시켰다. 평화의 약속은 상대를 향한 인도주의적인 생존 보장 약속이 담겨있었다. 보급로를 끊는다든지, 용수로를 차단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이런 인도주의적인 정신에 바탕을 둔 평화 사상이 모든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시행되었던 것은 아니다. 근동 아시아 지방에서 형성된 야훼종교는 가장 포악한 전쟁사를 기록한 문서를 남기고 있다. 그것이 성서다. 야훼 백성이라 자인하는 이스라엘 집단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했다. 그들은 상대편이라면 남녀, 노소, 짐승의 새끼까지 죽이는 족속이었다. 원시 유대교의 포악은 갈멜산 위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야훼 제사장들이 이교도들을 살육하는 피튀기는 장면에서 극을 이룬다. 그들은 상대를 자신들과 같은 존재라고 여기지 못했다. 이런 이들이 가진 평화 사상이란 정복과 잔인한 살상 이후에 얻는 “피 묻은 평화”였다. 야훼 종교의 한 얼굴이다.

하지만 성서의 전통에는 피 묻은 평화 사상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다. 성서에는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의 평화, 자기들만의 평화를 측정하는 기준도 있었다. 거기에서 샬롬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샬롬은 일종의 복지적 개념이다. 몸과 마음과 관계의 평화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유대인들이 이러한 샬롬 사상을 자기네 족속에게만 적용하곤 했다는 것이다. 샬롬 평화 사상을 종족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 보편적으로 확대하여 새롭게 해석한 종교가 예수의 사상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독교다.

기독교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은 구약 성서에 나타난 피 묻은 평화를 영적 전투라 해석하며 호전적인 선교론을 제창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거짓 교사들에게 속아 피 묻은 평화를 주장하며 포악해지는 기독교인들은 매우 잘못된 가르침에 세뇌된 것이다.

예수는 모든 형태의 국가주의나 종족주의적, 심지어 영적 전투를 빙자한 종교적인 폭력을 거부했다. 예수는 고위 유대 종교가 버린 사람들을 친구라 불렀다. 그는 부유한 사람들이 멸시하는 가난한 이의 이웃이 되었고, 거룩함을 자랑하는 종교인들과는 달리 거룩하지 못한 사람으로 간주하던 이들의 친구였다. 민족적 순수라는 우월성에 사로잡혀 이교적 문화를 수용한 이들을 저급한 존재로 여기던 전통도 여지없이 깨뜨리신다. 이 예수가 가르치신 평화는 인종, 신분, 소유, 권력을 통해서 해석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평화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이 이 예수의 평화를 안이하게 여긴다. 그저 주어지는 것이라고 여기고, 그러한 평화를 위한 실천적 지평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사실, 예수의 평화는 무수한 차별과 적대성과의 싸움을 의미한다. 예수는 유대 종족주의와 싸웠고, 권력자들과 대립했으며, 종교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이들과 등졌다. 예수는 자애롭고 평화로운 부처의 미소를 가지지 않았다. 그는 수행자이기도 했지만, 수행자만이 아니었다. 그는 논쟁했고, 심지어 다투기도 했으며, 제자들을 향하여 엄격하기도 했다. 그에게서 평화란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훼손하는 악과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아침 일본군들의 성노예로 살아가신 다섯 분의 이야기를 읽었다. 남의 나라 사람이면 강제로 잡아다가 가두어 두고 집단 성폭력을 하고, 성노예로 삼아도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추악한 도덕성의 희생자들이다. 일본인은 자신의 누이나 어머니도 일제 군사의 성욕의 하수구로 삼았을까? 어쩌다가 그리스인들이 기원전에 인식한 평화 사상의 근간, “나도 그대도 사람이라는 인식”이 일본인들에게서는 19세기가 넘도록 형성되지 못했을까? 그리고 이런 일본인들이 범한 전쟁범죄를 박정희의 대일청구권 행위 하나로 면탈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국인이 할 수 있을까?

일군 성노예로 살아가셨던 이들은 그 고되고 수치스러운 악몽으로 남아있는 기억을 더듬어 증언했다. “주말이면 그들이 트럭을 타고 와 수십 명이 줄을 서서 문밖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렸어요...” 짐승들의 세계가 아닌가? 세상의 어느 군대가 이런 조직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성을 범한단 말인가? 자신의 누이나 어머니가 일제 군인들에게 할머니들이 겪었던 집단 성폭력을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겪었다면, 자신의 아버지를 일제가 끌고 가 개처럼 학대하며 징용살이시켰다면 그렇게 만만하게 용서하라고 할 수 있을까?

일제 성노예로 살아갔던 김군자 할머니는 해방된 후 자신이 모은 돈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기부했다. 한번은 5,000만 원, 또 6,000만 원, 그리고 1억 원을 모두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학비로 써달라고 내놓았다. 가난때문에 자기처럼 못 배워 자기 권리를 박탈당하는 일이 없도록 가난한 학생을 도우라고 내놓은 것이다. 이런 할머니가 지금 일본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받기 위해 항의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가공할 몹쓸 짓을 집단으로 범하고서도 모른 척하는 일본인들의 비양심을 드러내며 진정한 사죄를 요구하는 것일까?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많은 이들이 일본과의 선린우호 관계에 이상이 왔다며 적당한 평화를 주장한다. 거기에는 속내로 경제적인 이유, 과학기술의 의존성, 혹은 개인적인 일본과의 친분 등을 이유로 든다. 할머니들의 인간의 존엄성을 바닥까지 부정한 집단에게 슬쩍 돈으로 퉁 치려던 박정희나 그의 딸 박근혜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것이 그대가 바라는 평화인가? 평화는 일본인들이 사악한 제국주의적 망상에 사로잡혀 전쟁을 벌이며 조선인의 인간의 존엄성을 토탈 부정한 행위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자인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참회한 것이 아니다. 돈 문제로 보상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라는 것을 일러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평화는 돈 주고 사는 것도 아니다. 적당히 퉁치는 데에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피차 사람의 얼굴로 서로를 인간으로 바라볼 때 찾아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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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Kang-nam Oh, Sung Luke Kim and 132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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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구 참된 평화는 평강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안식을 누리는 것이 아닐까요?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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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K Park 김진구 네 강한 자, 사자가 약자, 어린 양을 먹잇감으로 바라보지 않는 관계가 평화의 상징적 의미지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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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d

이의용 고맙습니다.
깨우쳐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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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d

조경애 교수님 글 소중히 읽고 가슴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늘 가슴한켠이 아린 구약성경의 내용이 있습니다 왜 가나안 사람들을모두 죽이라고 하셨는지요? 이스라엘의 정복전쟁의 전멸방법이과연 하나님의 방법이었을까요? 이방사람과 같은 잔인한 살육인 듰싶어서요 신약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맞지 않고요~20대의 제 딸은 구약의 이스라엘의 나라세우는 방법들에 대한 회의가 많습니다 구약엔 폭력이 아주정당하게 그려지고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저와 제딸은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에대한 이해에 가끔 혼란이 옵니다~ 첫 댓글에 어려운 질문을드려죄송합니다~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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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d


CK Park 조경애 성서는 다양한 자료를 묶은 책이고, 각 자료들의 저자와 사회적 맥락이 다르지요. 문자적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좋은 주석서를 구해 함께 읽으셔야 조금은 바르게 이해할 수 있어요. 이 주제와 관련된 제 책을 읽어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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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d

Byung Jik Kim 참으로 귀한 말씀을 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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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h

Paul Ji 격하게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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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d

이경자 이런 역사를 알아야하는데 안타깝게도 이 시대에 살면서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아픔입니다.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잡기 위해서 역사를 바르게 인식해야되고 크리스찬은 정신 좀 차려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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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d

유영재 누구든 남여노소, 이념과 종교를 불문하고
"#사람의얼굴로 #서로를인간으로 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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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한국종교를 컨설팅하다 / 종교학자가 비판적으로 진단한 한국종교의 현재와 미래


[책] 한국종교를 컨설팅하다 / 종교학자가 비판적으로 진단한 한국종교의 현재와 미래
저자 이찬수 외 [등저], 발행 모시는 사람들 / 2014/ 254p.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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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상실한 종교/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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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종교, 어디까지 왔나?│최준식
프롤로그
1. 들어가며
2. 서설: 종교를 정의하는 문제 -- 영원철학을 중심으로
3. 본설 : 한국 종교계의 비종교적인 모습
4. 마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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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 성장의 빛과 그늘│박영대
1. 2005년 인구센서스를 통해서 본 한국천주교회
2. 교구장 사목교서를 통해서 본 한국 천주교회
논평/ 가톨릭 제자리 찾기 │ 변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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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 자리 잡기와 자리 찾기│김진호
1. 시작, 근대성과 식민성, 그리고 배타성
2. 한국 개신교회의 자리 잡기, 전형이 형성되다
3. 한국 개신교회의 전형, 절정을 지나 위기에 놓이다
4. 맺음 : 작은 교회들의 수평적 네트워크의 가능성
논평/ 한국 개신교의 자리 찾기 │ 최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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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 문제와 발전 방향│이병두
1. 이야기를 시작하며
2. 한국 불교의 문제
3. 바람직한 불교의 발전 방향 - 결론을 대신하여
논평/ 불교 제자리 찾기 │ 조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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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100년, 원불교의 과제│김경일
1. 시작하는 말
2. 원불교 출현의 시대적 배경
3. 원불교의 유래와 성립과정
4. 불교와 원불교의 관계
5. 불평등한 사회 혁신을 위한 방안 - 사요四要
6. 원불교의 자리 찾기
7. 마무리의 말
논평/ 원불교의 자리 찾기를 위하여 │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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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의 위기, 한계와 기회│김용휘
1. 동학·천도교의 창도와 역사적 전개
2. 현실진단
3. 원인 분석과 대안의 모색
4.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의연함으로
논평/ 천도교 제자리 찾기 |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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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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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는 자성과 쇄신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소공동체 사목, 교구 시노드 등 다양한 사목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2005년 인구 센서스 결과, 천주교가 크게 성장한 것이 드러나면서 자성과 쇄신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있다. 대신에 각 교구가 성장 제일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조짐이 보인다. …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있는가? 희망은 깨어 있는 평신도이다. 교회를 이미 떠나 있거나 교회의 경계에 서 있는 깨인 평신도를 어떻게 조직해서 효과 있는 실천을 함께 해 나갈 것인지에 그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한국 천주교회 성장의 빛과 그늘│박영대)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성장은 현저히 둔화된다. 하지만 교회의 신앙적 제도는 성장주의에 맞추어져 있었다. 성장은 지체되었는데, 성장주의는 지속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 시기 교회 위기의 요체였다. … 한데 이 시기에 급부상한 교회들이 있다. 우리가 ‘후발 대형 교회’라고 부르는 이념형은 바로 이러한 변화를 함축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 하여 작은 교회들은 사회를 횡단하는 수평적 연대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수평적 연대는 배타성을 지양하는 새로운 존재 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수직적 네트워크가 낳은 식민주의도 청산할 수 있는 신앙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국 개신교, 자리 잡기와 자리 찾기│ 김진호)

진정한 불교 포교는 인구 통계상의 불교인 숫자를 증가시키는 일이 아니라 ‘붓다의 가르침’을 좇아 세상을 지혜롭게 그리고 자비 정신을 구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세상이 평화로워지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글 서두에 올린 달라이 라마의 발언에 100% 동감하고, 한국 불교계가 이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한국 불교, 문제와 발전 방향│이병두)

원불교는 아직 100년이 채 안 된 어린 교단이다. 최근 ‘4대 종단’의 하나로 이름하고 상대적으로 잘 정돈된 교단이라고 하는 칭송을 받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기성종단에 비하여 아직 교세의 규모나 사회적 역할에 있어서는 감히 비교할 수 없다.…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시대의 문제를 원불교는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이 말은 원불교 개교開敎정신을 집약한 핵심 표어이다. 원불교가 이 시대 대중이 필요로 하는 종교로 자리매김하는 참된 길 찾기는 가능할 것인가. (개교 100년, 원불교의 과제│김경일)

(천도교의) 문제는 하나로 요약된다. 수행과 사회 참여가 함께 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수행의 목적이 제대로 제시되지 못하였고, 사회 참여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지 않았고 거친 이데올로기의 주변에서 맴돌았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몸의 변화이고 생활의 변화이다. 정신 개벽과 생활 개벽이 동학 개벽의 핵심이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급증을 내지 않고 그저 묵묵히 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의연함이 중요하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아야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며 끝까지 주어진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천도교의 위기, 한계와 기회│김용휘)

Park Yuha 2016 · 학문이라는 이름의 외설 혹은 테러 정영환

Park Yuha
21 July 2016 ·



학문이라는 이름의 외설 혹은 테러
(오랫만에 씁니다. 좀 깁니다..)

나에 대한 비판이 다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상황을, 슬프게 생각한다.
고발 이후 내가 집중적인 비난을 받은 것은 고발직후,가처분판결전후, 기소, 한일합의,민사패소때였다. 물론 그 대부분은 언론이 “자발적 매춘부” 라는 틀을 갖고 왔기 때문이다.


이번 비난은 정영환의 책이 계기가 된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워커스의 기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외부요인이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는 정영환의 책은 “박유하는 위안부할머니를 자발적매춘부라고 했다”는 언론보도와 똑같은 역할을 했다.
학문이라는 이름의 외설, 혹은 테러. 그 시도는 성공한 듯 하다.

언론이 출판사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기지만 않았어도 기자간담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정말은 2년전에 했어야 할 일이었다. 나는 이 2년동안 나눔의집 소장과 고문변호사의 “외설”(대중의 관심을 모으려는 의도가 뚜렷하다는 점에서)과 테러(“박유하는 친일파”라는 틀을 씌워 대중의 손가락질과 짓밟기를 유도해 왔다는 점에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고민해 왔지만, 아직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내가 공식적으로 대응한 것은 언중위에 간 일과 검찰의 기소에 대한 항의기자회견 뿐이다.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한 소극적인 변명 혹은 설명. 반론을 제대로 쓴 것은 작년 여름에 잡지에 난 두개의 비판/비난에 대한 글에 대한 반론 뿐이다.

이미 쓴 것처럼, 몇 달 전부터 이어진 비판서들을 사두기는 했지만 나는 아직 읽지 않았다.
반론이 없다고 해서 꼭 반론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의문들에 대해 이미 몇 개의 반론을 통해 대답해 두었으니 링크해둔다 . 비판자들은 물론, 제게 의구심을 갖게 된 분들도 읽어 주시면 좋겠다.

아래 글을 링크하면서 알게 된 건, 내가 길게 대답한 글들의 대상이 전부위안부문제 연구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나를 비판하기 위해 기존연구나 인식들—남의 말을 옮긴데 불과하다.
나는 이른바 전문가-- 위안부문제 연구자가 아니라고 해서 배제할 생각이 없었지만 연구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대상으로 하다보니 좀 소모적이다. 앞으로는 오랫동안 이 문제에 관한 연구를 해 왔거나 운동을 해 온 분들과 토론해야 할 것 같다.

학자의 소송가담이라는 사태를 맞아(월요일 재판에서는 검사가 <제국의 변호인>을 증거라면서 제출했다)포기한 국민재판도 다른형태로 이어질 수 있도록, 법원에 제출한 자료들을 홈페이지에 공개해 나갈 예정이다.
그리고 이제, 나의 책을 포르노로 만들려던 이들의 시도가 왜 외설이 되고 마는지, 왜 평화 대신 끊임없는 불화를 만드는 "폭력의 사고"일 수 밖에 없는 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머지 여름을 보내려 한다.

이재승, 윤해동교수에 대한 반론은 쓰다 말았었다 .정말은 젊은 역사학자들이 이 교수의 의견을 신봉하기에 이 반론에서 이재승 교수에 대한 비판도 썼었는데 반론의 직접 대상이 아니라면서 수정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뺏었다.

기자간담회는 어디까지나 언론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간담회 내용을 글로 정리할 시간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일본에서도 기존 연구자들과 운동가들이 오해마저 포함한 비난을 이어가고 있으니 몸이 열개라도 충분치 않다.
앞으로는 반론할 의미가 있는 글에 대해서만 반론해야 할 것 같다.

홈페이지에, 지난 3월말에 동경대에서 이루어진 옹호자와 비판자들의 연구모임에 관한 후기를 <연구모임후기>라는 항목에 몇 개 번역해 올려 두었다.
사실 나는 그 글들이, 당일 이루어진 정영환등의 발표를 내가 없었던 탓에 그대로 믿고(그 시점에서는 아직나의 반론의 일본어번역을 준비하지 못했었다) 나의 책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쓰인 부분들이 있어서 자괴감이 크다. 중요한 일에도 때로 빠르지 못한 나의 불찰의 결과다.
그렇긴 하지만, 이 모임에 대한 한겨레, 시사인, 오마이뉴스등의 편향된 보도를 보셨던 분들은 참고해 주시면 좋겠다.

나는 정영환의 곡예적인 왜곡은 아프지 않다. 그저 그런 외설을 학자들마저 환영하는 이 사회가 슬플 뿐이다. 비판자들 대부분의 진정성을 믿기에 더욱 그렇다.

추신: 간담회에서 말했으나 보도 되지 않은 이야기를 덧붙여 둔다.

1)유희남할머니의 작고에 대한 애도와 그 분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 당일 아침에야 작고사실을 알았다. 연기할까 고민했으나 이미 시간을 한번 변경한 터여서 재변경을 감행해 기자분들에게 혼란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여성신문은 그 자리에 있었다는데 그 말을 빼고 보도했다. 심지어 20억 얘기를 다시 재유포했다. 이에 대해서는 대응할 생각이다.
(할머니들께 그런 거짓마저 말하도록 한 건 우리 모두다.)

2) 정영환의 입국을 허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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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소 1년 시점의 글(동아시아 화해와 평화의 목소리 심포지엄 발제문,2015/6)
http://parkyuha.org/%ea%b8%b0%ec%96%b5%ec%9d%98-%ec%a0%95%…/


(정영환비판에 대한 반론1, 페이스북 노트 2015/8/31)
http://parkyuha.org/%eb%b9%84%ed%8c%90%ec%9d%b4-%ec%a7%80%…/


정영환 비판에대한 반론 2, 역사비평 122호, 2015/8)
https://cldup.com/mt2lV_7iqt.pdf


젊은 역사학자들에 대한 반론(역사문제연구 34호,2015/10)
https://cldup.com/9Nl3W0KE2Q.pdf


한겨레 기사에 대한 반론(2016/2)
http://www.hani.co.kr/a…/society/society_general/729598.html

정영환 책에 대한 보도관련 생각(2016/7)
. http://wp.me/p7BuXx-10P
WP.ME
기자간담회 자료 전문 다운로드 [요약] 1) “일본군/국가의 책임을 극소화했다” 국가책임을 말했고 그에 따른 사죄보상을 요구했음 당사자 포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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