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04

Advice from a Spiritual Friend by Rabten, Dhargyey, Stephen Batchelor - Ebook | Scribd

Advice from a Spiritual Friend by Rabten, Dhargyey, Stephen Batchelor - Ebook | Scri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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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160 pages3 hours

Advice from a Spiritual Friend

Rating: 5 out of 5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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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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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not wish for gratitude.
Never strike at the heart.
Now if you die, you will have no regrets."
The Seven-Point Thought Transformation


Like wise old friends, two Tibetan masters offer down-to-earth advice for cultivating compassion, wisdom, and happiness in every situation. Based on practical Buddhist verses on "thought training" (lojong), Advice from a Spiritual Friend teaches how to develop the inner skills that lead to contentment by responding to everyday difficulties with patience and joy.

Following Stephen Batchelor's introduction to the Kadamapa tradition that gave rise to these earthy, pithy instructions, Part One is a commentary by Geshe Dhargyey to Atisha's (982-1054) Jewel Rosary of a Bodhisattva. Part Two includes a commentary by Geshe Rabten to the famous Seven-Point Thought Transformation.

First published in 1977, Advice from a Spiritual Friend is a Wisdom classic that has enriched readers in many editions over the years. As Batchelor says in his introduction, "These teachings are as applicable today as they were when Atisha first introduced them to Ti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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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gillette
5.0 out of 5 stars the heart of tibbetan buddhism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 on 28 January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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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one interested in Tibbetan Buddhism should read this book. It was the model for Tibetan Buddhism and was just one of many forms practiced in the early years of Buddhism. It was then lost for a while and was rediscovered by some adventurous tibbetans who found out about a monk on an island (Sumatra maybe?) who possessed "sacred knowledge". Also known as " the jewel rosary of a bodhisattva" this is a must have for anyone serious about Buddhism, in my opinion for it is seriously sacred 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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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tantin C
5.0 out of 5 stars Easy, friendly tone.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 on 27 Februar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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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book was easy to read, it kept me interested up to the end. I am happy with the text and commenta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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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기존 정당 간의 연합정치가 어려운 상황에서 ‘연합정치’를 강령으로 하는 새로운 정당을

(1) Facebook

Namgok Lee
  · 
나는 지금 우리의 시대정신을 ‘통합과 전환’이라고 표현해 왔다.
통합은 ‘사회통합’과 ‘연합정치’를 의미하고, 전환은 ‘정치전환’과 ‘문명전환‘을 의미한다.

둘 다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인 용어나 태도를 넘어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용어나 태도로 나아가는 것이 그 동력(動力)을 강화하는 것으로 된다.
부정적인 태도는 상호 악순환에 빠져들기 쉽고, 확증편향의 퇴행적 편가름의 늪에서 인류적 위기와 나라의 위기를 헤쳐나갈 동력을 잃기 쉽다.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자기 주체성을 잃고 휩쓸려 망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모습 가운데 안타까운 현실의 하나다.

내가 동학시민운동을 하는 분들에게 ‘감시와 비판’은 동학 정신을 현대에 살리는 ‘최저선(最低線)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동학농민혁명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인 ’집강소‘를 현대에 살리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도 이런 생각에서다.
‘무엇 무엇에 반대한다’는 그 내용을 ‘이렇게 이렇게 하자’는 표현 속에 담아내는 운동이 진전해야 한다.
‘사회통합’은 실재하는 진영 간의 갈등과 대립을 어물 어물 봉합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성공할 수도 없다.
그 대립과 갈등을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인간의 보편적 선의지(善意志)를 바탕으로 해결하는 문화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인문운동’과 ‘종교’가 이 역할의 큰 담당자다.
책을 왜 읽고, 종교를 왜 갖는가?
확증편향과 편가름, 증오와 분노를 확대하는 방향이라면 그것은 ‘이슬’을 ‘독(毒)’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연합정치’는 고질적인 분열과 대립의 정치를 지양(止揚)하자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들 즉 계급(계층)문제, 경제문제, 민족문제, 국가 문제 등을 지금까지와 같은 정치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마련한 성과들을 살려 ‘전환’과 ‘도약’의 밑천으로 쓰지 못하고 버리는 안타까움이 있다.

지금 우리 정치는 일대 분수령에 서 있다.
자체 정화력(淨化力)과 진화력(進化力)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기존의 양 대 정치세력은 남의 칼을 빌려 스스로의 환부를 도려내는 듯한 모습으로 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언젠가 양대 정당이 진화해서 연합정치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지만, 지금의 상태로는 난망(難望)이다. 그리고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근래 나는 지역정당과 같은 새로운 정치운동에 주목을 하게 된다.
자치나 분권운동을 적극적인 정치운동으로 하자는 것에 관심이 간다.

그 것은 풀뿌리정치운동의 진화를 통해 ‘저항으로부터 권력으로’라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지방정부(행정부와 의회)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 권력은 ‘강제(국가 권력)’나 ‘매수(경제권력)’가 아닌‘설득과 공감’에 바탕한 시민(또는 사회)주체권력이다.
 현실과 먼 이상으로 들리기도 하겠지만, 어디선가 이런 모델들이 나타나면 꽉 막힌 정치를 뚫어내는 거대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목하는 다른 하나는 지금과 같은 기존 정당이나 정치문화로는 어려운 ‘연합정치’를 이런 정당 속에 담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있다.
기존 정당 간의 연합정치가 어려운 상황에서 ‘연합정치’를 강령으로 하는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당연한 가치로 하는 민주적 사회주의, 문명전환을 추구하는 녹색정치’ 삼자(三者)를 포용하고 융합하는 정강과 정책을 담을 수 있는 정당이 그것이다.
이런 내용을 갖춘 지역정당이 지방정부를 구성하는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우리공동체의  오랜 정치사에 큰 변혁의 물꼬를 열 수도 있을 것이다.

대단히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지금의 꽉막힌 정치 현실과  절박한 시대적 요구는 어쩌면 현실로 성큼 다가오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체성과 확산력이 애매한 기존의 소수 정당들과 자체 정화력과 진화력이 허약한 양대 정치세력 가운데에서도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사람들이 헤쳐 모일 수 있다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촉진하기 위해서도 지역정당운동이 촉매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현실정치와는 무관한 인문운동가를 자처하는 노인이지만, 나는 인문운동을 통해서 ‘정치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원화되고 일상적인 활동과 삶의 현장들이 ‘정치’로 되는 ‘새로운 질’의 정치와 정당을 그려보는 요즘의 심경을 적어본다.


6 comments
양재석
선생님의 말씀이
멀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현실이 어둡다는 것이고
현실가능성이 있다면
미래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전자에 손이 더 가고있으니...
Reply1 h
Namgok Lee
양재석 현실이 어두울수록 빛을 바라보는 마음이 더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Reply1 h


이항근
이 울림이 유장한 흐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eply1 h
권오국
지금 우리 지식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中道나 中庸에서 말하는 中에 대한 해석이 지극히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인 지평에 머무르거나 같은 中을 말하지만 서로 차원이 다른 논의나 말을 하는데 그것을 같은 범주의 말로 치환해버리는 범주오류(Category Error)를 너무나 쉅게 빠져버리는 경향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일 겁니다.
중은 좌우의 문제도 있지만 상하의 문제도 있으며 좌우 상하를 제대로 융합,내지 통합해냈을 때 的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지식 즉알음알이의 말이 지혜의 언어를 차원이 다른 지혜의 언어를 꺼집어내려 소위 토론하는 현실이 우리의 지적풍토라고 나는 생각합니다.십자가의 언어를 평면에다가 끌어내려 버리면 거기에 애시당초 구원은 없으며, 구원을 받을 정신적 깊이도 없는 겁니다.
진짜 깊은 공부와 성찰이 없는 우리 지식인사회와 대학,종교가 병들었거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할 생각조차 없는 것이 우리사회를 진짜 희망이 없는 사회로 만들어가는 건 아닌가? 삼가 두려울 뿐입니다.

Reply45 m
Namgok Lee
권오국 동감입니다
Reply17 m
권오국
이남곡 거친 말에 공감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진짜 큰 사랑으로 깊이 고민하면서 치열하게 공부 또 공부하고 정진해야할 사명이 이 나라의 지식인들과 사회의 정신적 리더들에게 있다. 그들이 못하면 누구라도 나서서 반듯이 해야할 일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합니다.
Reply14 m

2022/11/03

内村鑑三の「武士道に接木されたキリスト教」に関する間文化的哲学における一考察

hs-n10v1-p23-39-fuk.pdf

西南学院大学 人間科学論集 第10巻 第1号 23―39頁 2014年8月
内村鑑三の「武士道に接木されたキリスト教」に関する間文化的哲学における一考察
深 谷

Eine Betrachtung des in das Bushido <<gepfropfte>>
Christentum von Kanzo Uchimura unter dem interkulturellen philosophischen Gesichtspunkt
Jun Fukaya


はじめに

21世紀にはいって10数年あまりたち、国際社会のグローバル化はますます進んでいる。インターネットで、情報が瞬時に世界をかけめぐる一方、経済的・政治的違いによる様々な対立・紛争も生じている。異なる文化や宗教への理解と協調が求められる現代、日本では、再び脱宗教的な倫理観や哲学がブームになっている。その一つに武士道への興味の高まりがある。
武士道は、古代からある日本における「戦闘者」(サムライ)の倫理観である。19世紀末、当時の日本の国際連盟事務次官であり、クリスチャンの新渡戸稲造が、英語で「Bushido」(1900年)を著し、世界中に広まった。米国大統領ルーズヴェルト1が熱心な愛読者であったと言われている。
本稿では、主に2つのことを課題とする。第一に、武士道が現代のグローバル社会に与える意義は何か、特に、武士道には洋の東西を問わない価値の普遍性があるのかを解明する。そのためには、外国人が武士道の普遍性をどのように理解し、評価しているのか説明する。第二に、日本におけるキリスト教の土着化の一形態である「接木」の意味を明らかにする。特に、新渡戸稲造と並んで、近代日本の代表的なキリスト者である内村鑑三のキリスト教と武士道の関係を分析する。内村は、「武士道に接木されたキリスト教」という表現で、日本におけるキリスト教の土着を形容した。「接木」という異文化間の土着化の形態とはどのようなものか、先行研究などによって説明し、さらに間文化的哲学(Interkulturelle Philosophie)の分類と対比させることを試みる。
本稿は、決して日本人のユニークさを紹介する一つの日本人論を提示することを目的とするものではない。むしろ、文化間の差異を超えた人間としての倫理的な普遍性を探求する際の、一つの例を明らかにすることにある。固有の文化におけるアイデンティティーの中に、他の文化と通じ合う普遍性がどのように含まれ、構成されているのかについて考察する。
1.内村鑑三の生涯と武士道
本稿のテーマである内村鑑三の武士道的キリスト教を解明するにあたり、始めに、内村の生涯の概略を紹介しておきたい。
内村鑑三は、1861年3月、高崎藩の武家の長男として東京(当時の江戸)に生まれた。17歳で札幌農学校に入学し、翌年受洗した。同期に新渡戸稲造がいる。24歳で私費で渡米し、アマースト大学に入学、さらに神学を本格的に学ぼうと27歳でハートフォード神学校に入学したが、翌年退学する。帰国後、新潟や横浜、東京で教師をするが、1891年、第一高等中学校教員の時、不敬事件を起こし、退職する。この事件は、天皇の言葉である「教育勅語」に対し、奉拝を充分しなかったとして非難された事件である。(1924年1月9日)その後、内村は教育職を離れ、評論家として著作活動をする。『基督信徒の慰』、『求安録』、聖書注解など多数を著した。また、伝道者として、聖書研究会を自宅で開きはじめたが、会員が増え、講堂を新たに建設(今井館)した。彼は、外国の宣教師や、教会のキリスト教によらない、聖書のみのキリスト教を重視し、日本とイエスの2つの J への愛を実現することを生涯の目標とした。彼の立場は、「無教会主義」と呼ばれ、「教会が無い」という意味での無を説いた。
彼が発刊した雑誌「聖書之研究」は、1900年10月から彼の亡くなる1930年まで357号にいたるまで発刊された。彼は、様々な聖書研究会が自然発生的に生まれ、また消滅していくことを是としていた。キリストによる集いが、管理的な組織になって硬直化していくこと、特に聖職者や儀式によって、信仰が階層化されることを嫌った。
他方、集会への参加や規律は厳格であり、儒教の教師方法を見本としていた。2例えば、2回以上無断欠席した者は、除名されたと言われている。
内村の無教会主義は、不敬事件がきっかけで生まれた独特の立場であり、現在でもこの立場でキリスト教信仰をもつ者も存在する。詳細は割愛するが、「教会に捨てられた」内村が行きつく先が、聖書に基づく信仰であり、この点はルター主義に共通すると言える。
武士道が、彼の思想に占める位置を把握するために、岩野祐介の「内村鑑三の武士道」(2010)を参照したい。岩野は、内村が著した「武士道と基督教」に最も内村の武士道の特徴が表れていると指摘し、さらにそれが第一次世界大戦中(1916年)に書かれていることに着目している。キリスト教国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参戦した米国、西欧諸国に対する日本の在り方に関して、内村の考えが表されていると言う。欧米のキリスト教、特にアメリカは、物質主義になっており、そこにおけるキリスト教の限界と日本の武士道に基づく新たなキリスト教の進展が望まれる内容となっている。3 さらに、岩野は、内村の武士道は、
「理想主義的世俗道徳」にとどまり、明確な特徴づけを行っていたわけではない、と指摘する。内村が「武士道」と呼んでいたものは、彼自身の生い立ち(武家出身)に負う程度の、常識的な範囲の道徳性とみなされるものである。少なくとも、日本的固有性を改めて内村から取り出すことは困難である、と結論づけている。4
2.先行研究
先述の岩野の他に、内村に関連した先行研究を次に分析することにしたい。
内村の弟子のひとり、聖書学者の黒崎幸吉は、1943年に『武士道的基督教』を著した。黒崎は、武士道の精神は、「全身全霊を主君にささげる」ことであると説く。ささげる、とは、「主君の喜びが自分の喜びであり、主君の悲しみが自分の悲しみ」であるという「人格同化」のレベルにまで高まることであると言う。5 キリスト教の精神も、すべてをキリストにささげることであり、その点において、「日本の武士道ときわめて大なる精神の共通性を持っている」6と言う。また、日本にキリスト教が必要な理由は、武士階級以外の国民(農民・商人ほか)にとって武士道的精神をキリスト教によって浸透させることができるためである。さらに、キリスト教は、武士道に一層高い理想(絶対的・永遠なるものとの繋がり)を与えることができると言う。1943年当時の日本は、第二次世界大戦開戦直後であった。黒崎の武士道キリスト教は、内村の「無教会主義」の革新性を明らかにすることを目的としていたが、残念ながら、天皇に身をささげることを求められていた皇国思想を擁護する論理にすりかわってしまった。7
さらに、国谷純一郎の論文「内村鑑三における伝統と近代化―武士道キリスト教を中心として―」(1968年)は、武士道とキリスト教の関係を歴史的視点から分析しようとしたものである。ここでは、内村が武士道を「小なる光」、キリスト教を「大なる光」と比ゆ的にとらえていることに触れ、武士道はキリスト教によって完全なる人の道となると理解されている。さらに、武士道の徳目(正直、勇気、恥を知るなど)は、パウロの言葉やイエスの生き方に対応するものと主張される。結論として、武士道とキリスト教は、連続性があり、有機的なつながりをもったものであり、「武士道にキリスト教を接木」8 するという内村自身の表現を肯定したものとなっている。国谷の論文で、注目すべきことは、むしろこの連続性を容易に内村が認めていることを批判している点である。異文化の地でキリスト教を信じる際に、個人的レベルでは様々な葛藤や実存的決断がある。しかし、日本人という国民性のレベルでは、「2つの J(Japan, Jesus)」を愛することに苦闘する姿は、内村には見受けられない。国谷によれば、内村は、武士道を理性の光から現実を超越する理想主義と結びつけている、と指摘する。9 それによって、武士道とキリスト教との連続性が捉えられるのである。
また、彼は、武士道が「日本道徳」と言えるのか、という疑問も投げかけている。武士道は一部の支配階級の道徳であり、日本民族の倫理観を捉えるには限度がある。国谷によれば、大半の庶民の倫理観は、歌舞伎のなかで表現される「つらさ」であり、それをもとに、北森嘉蔵が『神の痛みの神学』をまとめた、と指摘する。10 武士道が日本道徳の全体を捉える視点としてふさわしいかどうかは、議論の余地があるであろう。
カルダローラの『内村鑑三と無教会』(1978年)は、無教会の成立や教会との関係、無教会の本質と構造や今日的状況など無教会の全体像を捉えた最初の研究と言える。11 その中で、彼は、武士道とキリスト教の関係を連続と断絶の二重性で捉える試みをしている。内村鑑三と海老名弾正のキリスト教への回心を例に出しながら、「キリスト教が儒教の精神と真の意味」を完成すると彼らは信じたと指摘する。儒教精神を基礎とする武士たちは、封建制度が明治維新によって崩壊し、道徳的体系も合わせて崩れる運命にあったが、主君の代わりに、人格神を置くことによって、武士道のエートスを保った。カルダローラは、これを「価値体系の再活用」と呼んでいる。12
マリンズの『メイド・イン・ジャパンのキリスト教』(2005年)では、特に内村の無教会運動を分析している。(第4章)彼によれば、日本的キリスト教を特徴づけるものは、「儒教を志向する武士道の伝統」であると指摘する。13 そこでは、さらにカルダローラが無教会運動を「禅的キリスト教」と呼んでいることを批判している。内村は禅ではなく、「信仰による他力の救済」を強く訴えており、瞑想よりも聖書の教えや講義が無教会運動の核になっていると反論する。14 内村は、浄土教の阿弥陀仏信仰とキリスト教が非常に似ていることを指摘する15。マリンズの分析は、内村の無教会主義が、儒教を土台とした武士道に端を発しながらも、信仰による救済を説いた鎌倉仏教に接近する要素をキリスト教に見出そうとする内村のキリスト教理解を指摘したものと言える。
小野派一刀流17代宗家であり、牧師でもある笹森建美は、『武士道とキリスト教』(2013)の中で、武士道の「武」とは、「戈ホコ」を止めると言う意味で、戦いを止めることこそ、武の意味であると説いた。16 つまり、武器の扱いに熟達することが武士道ではなく、人の生き方、死に方を真剣に問う「道」であり、それはキリスト教と共通した点でもある。17 彼は、「接ぎ木」の意味を紹介している。それは、人工的な栽培技術であり、植物 A の幹や枝の切り口に、別の植物 B を密着させる方法である。それによって、B は A を通して育ち、単独で育つより病気に強く、収穫数があがったりするという。その際重要な点は、
A と B の相性であるという。内村や新渡戸は、武士道とキリスト教は、相性がよく、新たな価値を生むと考えていた、と笹森は推測している。18 また、彼によれば、内村や新渡戸は、武士道とは何かは理解していても、武道そのものを日々修練してはいなかったのでは、と疑問を呈している。19 その意味で、内村自身の台木としての武士道の資質に、若干の批判を加えている。
以上先行研究を概観してきたが、それらには主に次の二点が共通している。第一に、武士道を日本人の倫理観を代表するものと捉えていること。第二に、キリスト教と武士道に、神と人、主君と家来の関係において構造上の共通点があることである。第一の点に対しては、岩野が、武士道が本当に日本的固有性をもつものであるか、疑問を呈している。第二点目に関しては、国谷の指摘によれば、神を愛することと同時に、国を愛することに葛藤はなかったのか、という疑問が生じる。これらは、日本人のアイデンティティーとしての武士道の位置付け、また、武士道における普遍性と関連した課題であると考えられる。この課題に取り組むために、武士道を異文化として受容した外国人の立場から、武士道がどのようにみえるのか、参照していきたい。
3.武士道の普遍性とは?
外国人からみた武士道の普遍性を考察する際、今日最も積極的な発言をしている一人が、アレキサンダー・ベネットである。彼は、ニュージーランド出身で、京都大学大学院で学び、現在、関西大学国際部准教授、剣道7段の腕前である。彼は、雑誌のインタビューで、武士道は、「日本人が美とする価値観」であり、それは、人間として、世代を超えた普遍的な価値観であると言う。20 彼の著作、『武士の精神とその歩み:武士道の社会思想史的考察』(2009)には、武士道は、「名誉を重んじる象徴体系」21 であり、ナショナリズムと倫理主義で成立する「新宗教」22 としての側面があると言う。この著書で、ベネットは、武士道の普遍性を強調しているわけではない。武士道は、時代によって特徴が異なり、「戦闘的な武士の心性」(ハード武士道)、「武士の理想像・生き方」(ソフト武士道)、そして、内村、新渡戸に代表される「近代国家形成とともに作り出した概念」(明治武士道)の3つに分類される。23 明治武士道は、国家主義と結びつけられ、天皇を頭とした国粋主義、さらに軍国主義に焼き直されて、「日本人の魂」に変質していった。24
また、アメリカ人のナッシュは、著作『日本人と武士道』(2004)の中で、武士道の宗教的背景を巧みに分析している。彼によれば、武士道は、仏教から「死に親しむ心」を、禅宗から「絶対そのものを確知するための精神の鍛練法」を学んだと言う。さらに、神道から「主君に対する忠誠、祖先に対する尊敬、並びに親に対する孝行」を教えられ、孔子からは「平静仁慈にしてかつ処生の智慧に富むこと」、孟子から「同情心」を、王陽明から「知行合一」の教えを学んだと説明している。中国をはじめとする東洋思想のエッセンスを含んだ武士道は、ナッシュによると、騎士道やキリスト教の根本的な態度にも通じていると言う。25 武士道は、世俗の道徳体系にとどまらず、宗教のもつ超越的な次元に接点を持つと彼は考えた。26
実例として、幕末の武士の一人であり、内村鑑三が代表的日本人の一人に選んだ西郷隆盛を挙げている。西郷は、陽明学を深く学び、「敬天愛人」を生きる理念として掲げていた。天の法則に従い、人を愛する心をもつことを重視する西郷の姿は、「キリスト者」と言える、とまで語っている。27
また、台湾の元総統、李登輝は、グローバル化が進む現代こそ、アイデンティティーが重要であり、日本の根本精神である「武士道」の意義は大きいと考えている。28 彼は、聖書と並んで、新渡戸の『武士道』の中には、「現代の人類社会に通じる普遍の真理が隠されている」と指摘しつつ、日本国民の欠点に対し、
「武士道が大いに責任あること」をも認めている点を踏まえ、武士道の全面復活ではなく、今日でも通用する点を大事にすべきとしている。29 李は、武士道が説く「公義(Justice)」こそ、伝統的価値観が示されている点であり、かつ、永遠の真理であると考えている。30 また、武士道は、実践する知であり、「実践理性」であると言う。彼が、大陸の中国人を評価しない理由の一つに、日本人と同じように孔子や孟子の書に接しながらも、彼らは日本人のような武士道に培われた実践の精神が希薄であるから、と説明している。「論語読みの論語知らず」になって、口先ばかりで実行しない、と批判している。31
他にも、元 BBC の日本語部長で、柔道9段、将棋5段の腕前の、フリーライター、トレーヴァー・レゲットが著した『日本武道の心』32 では、イギリスの紳士の美徳と日本の武士道に触れている。彼によれば、紳士の美徳(正直、優しさ、自由、勇気)にかけているものは、冷静さと文化・教養であり、武士道にはそれがあるという。33 確かに、武士にとって、茶道は、「一期一会」に会する客人に対する礼儀であり、俳句は、辞世の句を読むためにも、不可欠な教養であった。
(ルース・ベネディクトの『菊と刀』は、彼女のリサーチの方法において時代的な制約があり、内容に関しても批判があるため、ここでは割愛する。)
武士道が、日本的固有性をもつものである点は、ベネットによっても明らかにされている。他方、それが日本人のみにとどまらず、普遍的価値を志向するものである側面は、武士道を体現した西郷隆盛の、「キリスト者」的な倫理観にも見出せる。李も武士道の公義が普遍的真理であると言及している。しかし、同時に武士道がナショナリズムや軍国主義に結びつき、負の側面を露呈した点も見逃されてはいない。幸か不幸か、『武士道』を著した新渡戸稲造は、武士道が軍国主義の原理に変質する前に世を去った。神を愛することと、国を愛することに矛盾を感じなかった内村の「理想主義」が、単純であったことが、武士道の倫理観が容易に国家の主君(当時の天皇)に身をささげること、それを実践することを可能にした、と言え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黒崎の『武士道的キリスト教』にある「人格同化」は、まさにそれを如実に表現していると思われる。
4.「接木」という土着化の意味
次に、内村の「武士道に接木されたキリスト教」に表現された「接木」という土着化の意味について分析し、さらに間文化的哲学の観点から考察を加えたい。
日本におけるキリスト教の受容に関して、代表的な研究『土着と背教』(1967年)を著した武田清子は、「キリスト教の土着方法」を5類型に分類した。それによると、キリスト教の受容には、第一に埋没型、第二に孤立型、第三に対決型、第四に接ぎ木型、第五に背教型があると言う。その中で、第四の接木型とは、「日本の精神的伝統に内在する諸価値の中から積極的可能性を潜在させたほうがと考えられる要素を選択し、そこにキリスト教の真理を受肉しようとする試み」である。34 特に、その価値として代表的なものは「武士道」である。内村鑑三ばかりでなく、新渡戸稲造もまた武家の出身である。彼らにとって、キリスト教の神と人との関係は、武士道のエートスを通して解釈されたと考えられる。
しかし、武田自身は、内村を対決型の典型例と捉えている。対決型とは、日本の伝統的古い価値・規範の内、キリスト教と相対立・矛盾する要素と対決しつつ、土着するタイプである35 という。実際に、内村がとった行動を考えると、対立したのは武士道ではなく、むしろ、教会という制度や宣教師たちであったことがわかる。36
武田の類型において、教会から離れる形態をとるものは、第五である。それは、キリスト教が日本的な精神土壌を含みながら歪んでいくこと(例えば、儒教的な倫理思想が浸透したり、教会が家族主義的共同体となること)に耐えられず、教会を脱会したり、背教者と呼ばれても、「キリスト教から触発されたある価値」を実現しようとしてキリスト者の群れを自発的に離れていった者をさす。37 このタイプは、キリスト教信仰を必ずしも捨てているわけではなく、むしろ「純粋に」保っているからこそ、教会の中で生じるキリスト教の「日本化」に耐えられなくなって、教会から離れていった例といえる。
これらの類型は、必ずしも個人に一つだけ該当するものではなく、「個人に複数の類型が重層的にみられる」と武田は言う。38 さらに、彼女は内村から対決、接木、孤立型のアプローチを引き出すことができると言う。39 そして、日本の精神風土へのキリスト教の土着において、接木型と対決型を望ましい在り方と考えている。40
また、土着の概念について、葛井は、次の3種類に区別している。第一に、「外来」の反対の概念としての「土着」である。それは、近代主義をまとった外来文化に対して、伝統主義の立場から、「在来固有文化」を守ろうとする態度である。第二に、「在来文化」の中に普遍性を見出す立場である。それは、伝統主義のマイナス面を克服するために、閉鎖的なナショナリズムを拒否する態度である。第三に、外来文化を受容するプロセスとして土着を位置付ける態度である。それは、外来対在来の二分法で、文化の出所を分けない態度である。41葛井は、キリスト教の土着は、第三のプロセスとしての土着を、さらに徹底したものであると言う。しかも、これら3つが、外来文化が受容する側の文化に同質化されるのに対して、キリスト教は、異質性を保ちつつ、在来文化との「緊張関係」を保持するという。42
葛井の立場から見ると、「接木」型とは、第二と第三を包含する形態と言えよう。在来文化(武士道)にキリスト教が接合され、両者の価値体系における共通性が融合するプロセスを経験する。武士道が、日本人の武士階級以外にも広がるためには、キリスト教の愛の精神が必要であった。また、武士道は、倫理体系であり、魂の救済を説く宗教ではない。キリスト教がその側面を補填したと言える。笹森は、接ぎ木するには A と B の相性が重要と指摘したが、その意味では両者は理想的な組み合わせだったのかもしれない。しかし、現実的には、武士道的キリスト教は、日本人には広まらなかった。それに関して、岩野は、「武士道的」要素が、かえってプロテスタント・キリスト教の倫理的に厳しい側面をクローズアップしてしまったため、キリスト教の民衆化を妨げる要因になったのでは、と指摘している。43 さらに、高橋三郎は、武士道を台木にすることは、日本的ナショナリズムを意味すると批判する。それは、武士道を理解する日本人にはいいかもしれないが、武士道がわからない民族には理解不可能であるという。すなわち、「武士道」は普遍性に欠けると批判する。44 武士道の普遍性に関しては、すでに触れたので繰り返さないが、ナショナリズムと容易に結びついた点は、明治期以降の日本の歴史が証明している。(軍人勅諭との関係等)
5.考察
明治時代の日本は、近代化を欧米の文化・制度を積極的に取り入れることによって進めた。キリスト教を武士道の精神土壌に受容することは、先進的な海外の倫理観を伝統的な日本文化に受容するという構図に当てはめるならば、間文化的哲学を提唱するヴィーマー(Wimmer)の中心主義(Zentrismus)の分類では、どれに合致するであろうか、それとも別の枠組みで考察すべきであろうか。まずは、試みてみたい。
彼によれば、中心主義は、以下の4つに分類できるという。45
拡張的中心主義(expansiv):一つの勢力が他を圧倒する、統合的中心主義(integrativ):他の立場をあえて批判せず、自らの目的のために努力する、分離的中心主義(separativ):自分の思考法・文化を隔絶したまま、他の文化をそのまま受け入れる、試行的中心主義(tentativ):他の文化との関わりの中で、両者において絶対的に有効な考えを要求することから始めるのではなく、有効性にたどり着くためにどうするかを、共に対話しながら追い求める。
彼によると、間文化哲学の方法論としては、4つ目のタイプ(ポリローグ[Polylog])が有効であると考えられている。基本的に、異文化間同士が、たがいの優劣を競うのではなく、同等であることを前提に、対話する点が重要である。
それでは、「武士道に接木されたキリスト教」が、どのタイプに分類されるのか考察したい。まず、武士道を「台木」とすることは、必ずしも武士道が強い勢力をもち、それがキリスト教を飲み込むことを意味していない。その意味で、少なくとも拡張的中心主義ではない。武士道が、キリスト教によってさらに「人の道」として発展する、と内村が指摘していることから、武士道が隔絶した状態のままではない。そこで、分離的中心主義でもない。問題は、の統合的中心主義にあるような、批判の回避やの試行的中心主義の「対話」を武士道とキリスト教の間で行ったか否かである。
カルダローラが指摘するように、武士道の主君の代わりに、キリスト教の人格神がおかれ、武士道のエートスが保持されたと言う。それは、「価値体系の再活用」であった。また、国谷は、武士道が「小なる光」、キリスト教を「大なる光」であり、武士道とキリスト教の連続性を指摘している。ここから生じる疑問、武士道がキリスト教と対立し、批判される要素をもっていなかったのではないか、という点である。
儒教を中心とした日本の倫理体系である武士道と、ギリシア哲学と並び西洋文化の土台を形成したキリスト教は、対話しあう者同士として存在するには、あまりに違いすぎたのかもしれない。もしそうであれば、の試行的中心主義にも該当しないであろう。では、接木はに属するのであろうか?
は、伝統的文化と外来文化の間に、「文化性の葛藤(Dilemma der Kulturalität)」が存在する。46 両者が互いに侵害し合わず、共存しつつも、対話を通して共通理解を積極的に求めることまではしないからである。武士道とキリスト教は、単に並列して存在するのではなく、明らかに武士道の側に組み換えが行われている。つまり、武士道における主君と家来の縦の関係に、キリスト教の神と人との関係があてはめられ、主君がキリストに入れ替わったのである。この点から、接木は、にも該当しないことが明らかである。
以上から、「武士道に接ぎ木されたキリスト教」は、中心主義の分類のどれにも該当しないことが明らかになった。先進的文化・倫理・宗教に飲み込まれるわけでもなく、強固に殻を閉じて隔絶するわけでもない。また、影響をまったく受けずにいるわけでもなく、対話的関係を通して共通理解を図ることもしない。部分的に適用可能なところを摂取、習得し、全体の構造は、原型をとどめるような文化受容は、対話型を重視する間文化的哲学の理論では説明しがたいのではないだろうか。
ここで、改めて武田の接ぎ木型土着方法について考察してみたい。彼女は、内村鑑三と札幌農学校同期であった新渡戸稲造のキリスト教受容について、興味深い分析をしている。それは、「古い皮袋に新しい酒をもる」という表現で、武士道にキリスト教が接ぎ木される意味を示しているものである。
古い皮袋にもられた酒はその中にひめられた醗酵素のゆえに、いつの間にか新しい酒に代わっており、しかも、新しい酒は皮袋を破ることなく、皮袋をもやがて新しい皮袋にと変容してゆく。そこには、日本文化に対する新しい価値(新渡戸の場合はキリスト教)の接ぎ木型土着方法のみごとな例がみられると言えるのではなかろうか。47
これは、マタイによる福音書9章17節以下の「新しい葡萄酒を古い革袋に入れるものはいない。そんなことをすれば、革袋は破れ、葡萄酒は流れ出て、革袋もだめになる。新しい葡萄酒は、新しい革袋に入れるものだ。そうすれば、両方とも長持ちする。」をモチーフにした類比である。武田は、接木的土着方法として、「古い革袋」を比喩にしているが、台木と接木の関係ほど革袋と酒の関係は単純ではない。なぜなら、台木と接木は、木として一体となるが、革袋と酒は、入れ物と液体としての本質は変わらないからである。また、「新しい酒」の意味も2種類考えられる。一つは、外から加わるまったく新しい酒(b)であり、もう一つは、すでに古い革袋の中にあった古い酒(a)が、変化して新しくなった酒(a’)である。新しい酒(b)も、革袋の中で変化し、別の酒になる(b’)。(実際にこの b’は、a’と区別がつかない)この両者は、革袋の中で、混ざり合いながら(a’+b’)「新しい酒」(c)になるのである。
武田の主張は、葡萄酒だけにとどまらず、革袋までも新しく変容するとまで言っている。そこが、きわめて特徴的である。聖句では、革袋はやぶれてしまうのだが、武田のたとえでは、古い革袋は、新しい酒が作用して、新しくなるという。それは、武士道が、キリスト教によって、キリスト教化するのではなく、武士道としてのレベルがアップすることを意味する。また、キリスト教が日本の精神文化の器に注がれることにより、西洋的なキリスト教から、日本的な、さらにより深みのある味わいに変化することでもある。
おわりに
内村の武士道的キリスト教は、その後、第二次世界大戦に向かうに当たって、日本のキリスト教界に曲解して継承された。武士道が、海外を侵略することを是とする「大日本帝国」の倫理にすり替わり、それとともに、日本化されたキリスト教(「大東亜の基督教」)に変質する根拠として、内村の「武士道的キリスト教」が位置付けられたのである。岩野は、内村のキリスト教は、この曲解を可能にするあいまいさがあった、と批判している。48
武士道は、従来から主君の人格をもって家来とのつながりを保つ特徴がある。その関係は、言葉や論理による厳密さによって保証される契約のようなものではない。神と人との契約関係を基礎とするキリスト教と、人格という人間存在全体による連関の構築という武士道は、人格的価値の継承という課題を新たに生み出したと言える。
このことは、言葉や論理に還元されにくい文化的価値の受容・伝承のプロセスに対して、間文化的哲学ができることは何かという課題を突きつけるのである。
<主な参考・引用文献>
家永 三郎「近代精神とその限界―内村鑑三の思想史的考察―」『家永三郎集 第4巻』岩波書店 pp.109-190
岩野 祐介「内村鑑三における信仰共同体の問題」現代キリスト教思想研究会 第7号
2009年 pp.37-50
……………「内村鑑三の武士道」アジア・キリスト教・多元性 現代キリスト教思想研究会 第8号 2010年 pp.31-43
内村 鑑三「接木の理」『内村鑑三全集』29巻 岩波書店1983年 pp.415-429
……………「武士道とキリスト教」『内村鑑三全集』22巻 岩波書店1982年 pp.161-
162
……………「基督信徒のなぐさめ」『内村鑑三全集』2巻 岩波書店1980年 pp.3-75葛井 義憲『キリスト教土着化論』朝日出版社 1979年
カルダローラ『内村鑑三と無教会』(田村光三他訳)新教出版社 1978年
国谷 純一郎「内村鑑三における伝統と近代化―武士道キリスト教を中心として―」明治大学教養論集 45巻、 1968年 pp.48-62
黒崎 幸吉『武士道的基督教』日英道書店 1943年笹森 建美『武士道とキリスト教』新潮社 2013年菅野 覚明『武士道の逆襲』講談社 2004年
関根 正雄(編著)『内村鑑三』人と思想 清水書院 1988年
武田 清子『峻烈なる洞察と寛容 ―内村鑑三をめぐって―』教文館 2000年
……………『土着と背教』新教出版社 1967年
ナッシュ,シュテファン『日本人と武士道』(西部邁訳)角川春樹事務所 2004年古屋 安雄「内村鑑三の無教会」『日本のキリスト教』教文館 2003年
ベネット,アレキサンダー『武士の精神とその歩み:武士道の社会思想史的考察』思文閣出版 2009年
星野 靖二「日本基督教思想史における『近代化』と『宗教』」思想史研究 1号、日本思想論研究会編 2001年3月
マリンズ『メイド・イン・ジャパンのキリスト教』(高崎恵訳)トランスビュー 2005年李 登輝『武士道解題』小学館 2004年
レゲット,トレヴァー『紳士道と武士道:コモンセンスの思想、サムライの伝統』(大藏雄之助訳)麗澤大学出版会 2003年
………………………『日本武道のこころ』(板倉正明訳)サイマル出版会、1993年
Wimmer, Franz Martin:Interkulturelle Philosophie, Facultas Verlags− und Buchhandels
AG WUV, Wien,2004
<註>
1904年、日露戦争中、ハーバード大学同期生の金子堅太郎伯爵(高平小五郎外交官の説が有力)が、大統領に進呈したと言われている。彼は30冊を購入し、5人の子に一冊ずつ配ったと言う。
関根(1988),p.112
内村(1982),pp.161-162
岩野(2010),p.42
黒崎(1943),p.11
ibid., p.51
ibid., p.40
「接木」という表現は、植村正久も用いている。cf.「吾らは武士の長所を携へて、天地の主、救世の君を奉じ、十字架の精神に之を接木せんと欲するものなり」(植村正久『福音新報』1894年6月15日)(カルダローラ、p.51)
国谷(1968)、p.57
10 ibid., p.59
11
カルダローラ(1978),p.369(田村光三[訳者代表]あとがきより)原文は、Carlo Caldarola, The Mukyokai Movement in Japan : Western Christianity and Japanese Cultural
Identity,1971。
12
ibid., p.51
13
マリンズ(2005),p.91
14
ibid., p.92
15
ibid.
16
笹森(2013),p.22
17
ibid., p.11
18
ibid., p.50
19
ibid., p.54
20
Discover Japan 2,vol.26「人生に効く『武士道』入門。」 出版社 2013年2月号 p.26
21
ベネット、p.259
22
ibid., p.17 イギリス人の日本学者チェンバレン(B.H.Chamberlain)が新渡戸の『武士道』を「新宗教」にすぎない、と批判した点に触れつつ、新渡戸自身も武士道を「新宗教」と考えていた面を否定してはいない。
23
ibid., p.259
24
ibid., pp.17-18
25
ナッシュ(2004),p.93
26
ibid., pp.91-92
27
ibid., p.95
28
李(2004),p.291
29
ibid., pp.287-288
30
ibid., p.27
31
ibid., p.54
32
レゲット(1993)
33
ibid., p.42,45
34
武田(1967),pp.10-11
35
ibid., p.9
36
cf.内村鑑三「キリスト信徒のなぐさめ」(1893)「教会に捨てられし時」と自ら無教会を立ち上げる動機について触れている。(内村(1980)p.27,36、「教会に捨てらるる不幸は不幸なるべけれ共、爾に捨てられざれば足れり」p.37)
37
武田(1967),p.14
38
ibid., p.77
39
ibid.
40
星野(2001),p.145
41
葛井(1979)p.4
42
ibid., p.8
43
岩野(2010),p.43
44
古屋(2003),p.69
45
Wimmer, S.54-57
46
ibid., S.56
47
武田(1967),p.54
48
岩野(2010),p.32 註4より
西南学院大学人間科学部児童教育学科

マーク・R・マリンズ「メイド・イン・ジャパンの…」② | 現代スサノヲのイメージブログ

マーク・R・マリンズ「メイド・イン・ジャパンの…」
2020-04-11 07:05:12


テーマ:ブログ
まえがき


第1章日本製キリスト教という問題


①宗教伝播の問題

②日本の場合

③土着運動という盲点





第2章さまざまなキリスト教


①ローマ・カトリック教会とプロテスタント・ミッション教会


②超教派から教派へ


③札幌バンドと熊本バンド


④明治期のミッション教会


⑤国家主義への適応


⑥戦後の状況


⑦多彩な土着運動


⑧土着化の新たな類型論





第3章カリスマと準教祖


①日本人が拒否したもの


②日本文化の多様性と聖書の多元性


③カリスマと準教祖


④「霊の世界」のあらわれ方


啓示の継続と正典の修正


精霊のバプテスマ、異言、癒し


心霊主義的世界観








第4章無教会運動とは何か



①日本製キリスト教の源泉


②内村鑑三の精神遍歴


③士族の儒教倫理


④預言者としての内村鑑三





第5章自己修養の道



①村松介石と道会


村松介石の改宗と試練


「日本協会」から「新宗教」へ


4つの綱領


道会の日本的特徴


キリスト教への復帰


②川合信水と基督心宗教団


アジアの宗教伝統とキリスト教


修行と実践の強調


血染の聖典


③宗教体験と自己修養





第6章第二波の土着運動



①村井ジュンとイエス之御霊教会


天啓史観と現世利益


祭司の集団


②大槻武二と聖イエス会


生けるキリストとの出会い


使徒キリスト教の神学と実践


西洋教会の再評価


イスラエルの救済とエルサレムの平和


③手島郁郎と原始福音運動


無教会運動との決別


禊と火渡り


幕屋の国家主義的傾向


④日本製使徒キリスト教の特徴


第7章日本人キリスト教徒と死者の世界


①先祖崇拝と霊魂信仰


意識調査から


都市化と新宗教運動


マスメディアと民俗宗教


企業の宗教儀礼


②プロテスタント神学と先祖崇拝の衝突


③民俗宗教への取り組み


④日本人の目で聖書を読む


「この世」と「霊会」


家族志向


⑤イエス之御霊教会の身代わり洗礼


⑥死霊の救済


⑦世界の再呪術化





第8章何がキリスト教移植を阻むのか


①成長と衰退のパターン


②土着化は万能薬か


無教会


道会


基督心宗教団


イエス之御霊教会


原始福音運動


聖イエス会


③日本におけるキリスト教のジレンマ


④黙殺された次元


⑤押し寄せる韓国キリスト教


ヨイド純福音教会のカリスマ


聖楽バプテスト教会とベレヤアカデミー


⑥韓国キリスト教のシャーマニズム化


⑦パウロ・チョー・ユンギの日本宣教


⑧日本グレースアカデミーにおける癒し


⑨韓国ペンテコステ派と現世利益





第9章日本製キリスト教の捉え方


①日本製キリスト教の「道」


②カリスマとその継承


③現代日本人のキリスト教観


④土着運動が示唆するもの


キリスト教土着運動教団別資料


無教会


道会


基督心宗教団


栄光の福音キリスト教団


活けるキリスト一麦教会


基督教カナン教団


日本キリスト召団


イエス之御霊教会


聖イエス会


聖成基督教団


原始福音・キリストの幕屋


活かすキリスト・エクレシア(天召聖兄弟団活かすキリスト・エクレシア)


沖縄キリスト教福音センター





一般的参考文献


邦文文献


英文文献


謝辞


訳者解説


索引
 

 

【トナリビトの怪】(2)キリスト教と弱い主体 波勢邦生 『アーギュメンツ#3』 - キリスト新聞社ホームページ

【トナリビトの怪】(2)キリスト教と弱い主体 波勢邦生 『アーギュメンツ#3』 - キリスト新聞社ホームページ

【토나리빗의 괴】 (2)기독교와 약한 주체 파세방생 『아규먼츠 #3』

 「판매는 수매만」이라고 하는 놀라운 방법이면서, 다사제한 저자들에 의해 화제를 모은 비평지 「아규먼츠」완결로부터 3년. 일본어 기독교의 가능성을 논한 이 잡지 게재 「토나리비토의 괴」를 본지에서 전문 공개한다. (2/8회)

지구를 잡는 하나님의 손
기독교와 약한 주체
세계민속학과 기독교
괴담 "지머"
괴담 형식과 계시 형식
다니엘서의 두 가지 수수께끼
태평양호에 서는 예수
늦은 해제와 후기
 

기독교와 약한 주체

 하나님의 손가락과 태평양호로 어울리는 문제는 서양적인 것――기독교와 근대화――이다. 나는 태평양 호에서 "늦은 현대"를 생각한다. 한 언어·문화권에 있어서의 늦은 근대화와 기독교 수용의 방법은, 그 사회가 서양 근대적 자아를 「주체」로서 인스톨 해 가는 과정과, 궤를 일로 하고 있다. 「초월・계시・주체」라고 하는 사회적 형식. 나는 거기에, 「주체」가 될 수 없었던 것의 존재를 파악하려고 생각한다. 그것을, 여기서는 편의적으로 「약한 주체」라고 하자.

 「약한 주체」란, 근대 시민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가 될 수 없게 배제된 것, 또는 주체화 이전의 인간성이다. 분명히 창세기의 에덴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신의 목소리'로서의 기독교가 현상할 때 반드시 '주체'가 문제가 된다. 그것은 서구 현대 자아로 가정되기 쉽다. 그러나 '신의 목소리'가 요청하는 것이 자유와 책임을 맡고 행위와 의사의 '주체'로서의 서양 근대적 자아만은 아니다. 서양적 인 것을 보편으로 속이는 기독교의 일부는 이것을 서양 근대적 자아로 바로 싸워왔다. 그러나 다른 주체의 형태도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환태평양 지역에서 생각한다면 상당히 많은 언어권과 문화를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그 종이 폭도 없기 때문에 일본어로 기독교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왜냐하면 일본어는 영어나 독일어처럼 기독교와 역사적으로 일체화된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서양적인 것'에 직면한 일본을 인접문화권과 비교해 현지어 기독교의 행방을 참조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미국 문화와 밀착한 개신교와 직면한 하와이, 일본, 오키나와를 생각할 수 있다. 개신교는 하나의 개인에 의한 성경 해석의 총체이며, 그것에 의한 설명의 분기, 즉 명확한 언어화이다 - 그것은 비언어적인 요소를 배경화해 버린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일부가 되어 기독교화한 하와이와 식민지화를 면해 기독교화되지 않은 일본은 대조적이었다. 당연히, 사이에 오키나와를 넣을 수 있다. 하와이, 일본, 오키나와와 병치함으로써 각각의 역사적 위치가 명확해진다.

 우선 하루카 이웃 하와이의 사례를 생각하고 싶다 (6). 하와이인은 기독교를 통해 '서양 근대적 자아'와 대결의 스모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약 40만 명의 인구가 약 10%로 줄어든다는 출자 아이덴티티 자체의 흔들림이며 하와이 문화와 기독교의 혼련 형태라는 현재에 이르는 역사이다.

 그 속에서 싹트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전 호놀룰루 판사 조셉 카오나에 의한 1867년 이후의 천년왕국운동과 반란은 기독교화되고 미국화되는 하와이에서 기독교를 하와이화하려는 시도였다. 또한 하와이의 전통적 종교직 카프나는 현지어의 풍요로운 구두 전승 세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기독교인이면서 카프나인 사람들도 나타났지만, 영어 공용화와 학교 교육에 의해, 또 교회에서 억압됨에 따라 카프나는 하와이 왕국의 붕괴, 미국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사람들과의 연결을 잃었다. 하와이 고유의 '약한 주체'의 세계는 거의 잃어버린 것이다. 태평양을 넘어온 성경 해석에 고집하는 미국 개신교는 하와이어의 구두 전승 세계를 덮어썼다.

 그럼 일본에서는 어떨까. 일본어 기독교라고 하면 우치무라 감조와 무교회, 하타노 세이이치와 교토 학파 등 위대한 축적이 있다(7). 또 『메이드 인 재팬의 기독교』에서 소개되고 논의된 다양한 일본적 기독교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8). 그러나 어쨌든 교토 학파도 일본의 기독교도 그 전시중의 행동의 시비를 포함하여 이들은 서양 근대적 자아와 주체성을 요구하는 것이었다(9).

 일본어 기독교는 그 역사 때문에 '주체'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거기서 기독교는 근대화를 위한 문화표상으로서 탁월한 근대인의 종교로서 싸워져 다른 종교를 섬기는 형태로 수입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늦은 근대화를 경험한 많은 문화·언어권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은 독립을 유지한 채 근대화를 실시했다(10).

 하와이, 일본, 오키나와를 포함한 '늦은 근대화'의 물결을 입은 문화·언어권에는 하나님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서양 근대적 자아 앞에 다성적인 세계의 확산이 있었다. 그러면, 주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역사에 남는 일이 없는 「약한 주체」의 목소리를 어떻게 하면 퍼낼 수 있을까. 서양 근대적 자아에 직면하는 것으로 쫓은 것, 그래도 덧붙여 구분 전승 세계에 있는 듯한 토착의 목소리와 어떻게 하면 재접속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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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갱신은 6월 6일(일) 저녁 6시



6) 하와이의 사례에 대해서는, 문화 인류학자·이노우에 아키요의 연구 “하와이인과 기독교 문화의 혼련과 아이덴티티의 창조”를 전면적으로 참조. 오키나와의 기독교에 대해서는, 잇시키 철 「남도 기독교사 입문」전 25회 「복음과 세계」(신교 출판사, 2014~2016) 등을 참조. 또, 와타쿠야마 아침장 '한알의 보리'(일본기독교단·요미탄교회, 1987년) 등은 오키나와의 출판문화에 근거한 '오키나와 기독교 문학'으로 평가될 수 있다. 나가사키의 기독교에 대해서는, 일본어 기독교 전래 발상지, 탄압, 순교, 잠복, 피폭이라는 특이한 역사를 추적하고 있으므로 예외적이다. 카쿠레키리시탄에 관한 뛰어난 연구로는 미야자키 켄타로 「카쿠레키리시탄의 실상:일본인의 기독교 이해와 수용」(요시카와 히로후미칸, 2014)을 참조하라.
7) 니시타니 케이지 「기독교와 철학과 선」 「니시야 케이지 저작집」(창문사, 1987) 207-225쪽을 참조.
8) 마크·R.마린즈 저, 다카사키 에역 “메이드·인·재팬의 기독교”(트랜스뷰, 2005)
9) “제2차 대전하에 있어서의 일본 기독 교단의 책임에 대한 고백”(일본 기독 교단 , 1966) 참조. 잡지 『문학계』 1942년 9-10월호의 특집 기획에, 기독교로부터 요시만 요시히코(카톨릭 신학자·1904-1942)가, 논문 「근대 초극의 신학적 근거」를 게재.
10) 다케우치 호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다케다 키요코편 「사상사의 방법과 대상」(창문사, 1961년) 등이 흥미롭다.

포세이돈

 하세 · 쿠니오 1979 년 오카야마 생 · 그리스도 신문 간사이 분실 연구원 / 시나리오 작가

マーク・R・マリンズ編『Critical Readings on Christianity in Japan』 : 書籍 : クリスチャントゥデイ

マーク・R・マリンズ編『Critical Readings on Christianity in Japan』 : 書籍 : クリスチャントゥデイ



마크·R·마린즈편 “Critical Readings on Christianity in Japan”
2015년 5월 24일 23:37 기자 :行本尚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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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R·마린즈편 「Critical Readings on Christianity in Japan」Brill, 2015(전 4권)(사진:Brill)



' Critical Readings on Christianity in Japan '(전 4권)은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전문서 출판사인 브릴(Brill)사가 올해 출판한 전문서이다. 최근 출판된 영어에 의한 일본의 기독교에 관한 연구서로, 이만큼 포괄적이고 상세한 책은 본서 외에 없을 것이다. 합계로 1400페이지를 넘는 그 내용은, 제1부부터 제10부까지, 일본의 기독교의 역사나 정치적·사회적 영향, 내셔널리즘이나 국가와의 관계, 신학 사상이나 사회학적·인류학적 연구, 문학에 이르기까지 학제적이고 다방면에 걸친다.

저자의 대부분은 외국인이며 일본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다만, 신간본이라고 해도, 그 내용은 일본어로부터의 영역도 포함해 196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다른 출판물에 나온 논문을 전재해 모은 것이 대부분이다. 원래 본서는 최신의 지견을 모은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연구를 정리한 리딩스(선집)이며, 연구자나 학생용의 책으로서는 귀중한 노작이다.

어쩌면 일본어만의 세계에 가까워지기 쉬운 일본의 기독교는, 비록 그것이 국내에서는 소수파라도, 국제적인 시야에 서는 연구나 해외에의 발신에 가치가 있는 것을, 이 책은 생각나게 해준다.

편자 마크 R 마린스 교수는 시코쿠 학원 대학, 메이지 학원 대학, 카미치 대학의 교수를 맡고 현재는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대학에서 일본 연구에 임하면서 동대의 일본 연구 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종교 사회학자. ' 메이드 인 재팬의 기독교 '(트랜스뷰, 2005년) 등 저자로도 알려져 있다. 본서에서도 일본 기독교의 문화적·사회적인 차원에까지 밟아 논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본서에 수록된 마린스 교수 자신에 의한 것을 포함한 합계 57의 논문은, 마찬가지로 마린스 교수의 편집에 의해, 2003년에 1권의 책으로서 출판된 「Handbook of Christianity in Japan (일본의 기독교 핸드북) 』를 더욱 자세히 깊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린스 교수는, 본지의 메일 취재에 따라, 「『Critical Readings』는, 일본에 있어서의 기독교의 여러 측면을 커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논문의 선택이 꽤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번역의 시간과 예산은 없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쓰여진 것(이미 번역된 것)에서 논문을 선택했습니다. 국내외의 연구 성과의 학제적 논문집이 되었습니다”라고 설명. "향후 일본과 세계 기독교의 교육·연구에 도움이 되면, 또 젊은 연구자에게 도움이 되시면 다행입니다"라고 회답했다.

본서는 연구자나 대학생·대학원생을 위한 전문서이지만, 일본의 기독교에 관한 예비 지식과 영어에 자신이 있는 사람으로, 해외나 일본에서 영어를 말하는 외국인에게 일본의 기독교를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도 추천 책이다.

무엇보다, 본서의 판매 가격은 전 4권으로 10만엔을 넘고 있어, 개인으로 부담없이 살 수 있는 책이 아니고, 오히려 그만큼의 예산이 있는 대학 도서관이나 큰 공공 도서관 전용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도서관과 도쿄대학 종합도서관, 남산대학 나고야도서관, 서남학원대학 도서관, 릿쿄대학 이케부쿠로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지만 영어로 활동하고 있는 큰 교회의 도서실에도 있다. 좋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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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葬送文化学会 테마 「일본에 있어서의 사자 의례」~ 기독교의 미국 선교사의 시점으로부터  

日本葬送文化学会                 2月定例会

일본장례문화협회                 7월 정기총회·보고회

                                                   일시: 2005년 7월 21일 18:30~

                                                     동:도쿄문화회관 4F 중회의실 ①

 테마 「일본에 있어서의 사자 의례」   ~ 기독교의 미국 선교사의 시점으로부터 ~

강사: 토마스 존 헤이스팅 선생님

강연 내용                          

  도입・자기소개・경위】

 현재 아일랜드계의 개신교 목사이지만, 원래는 가톨릭. 결혼도 개종의 계기 중 하나. 

 그러한 사례는 구미에서는 자주 있는 것.

 아일랜드 사람들은 일상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한다.

 「죽음」에 관한 화제는 가장 보편적인 사례이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말해지고 있다.

 나 자신도 1998년부터 3년 사이에 부모·언니를 잃고, 그 가운데 직면한 경험에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

 일본에 와서 깜짝 놀란 것은, 외국인이 자주 입는 일상생활상의 종교적 스탠스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

 아침, 신선반에 손을 맞추고, 낮에는 그리스도세계와 같은 체제로 업무에 흥분하고, 밤은 불단에 감사를 드린다

 등.

 이러한 생활습관에 각각의 종교적 역할 분담이 잘 녹아 있는 것에 큰 관심을 가졌다. 동시에

 일본에 와서 20년 가까이 되지만, 첫 부임한 호쿠리쿠의 교회 이래, 그 후도 여러가지 당황하는 일도 많아, 특히

 일본의 장례식, 즉 사자의례에 관하여 큰 흥미를 가졌다.

  1:일본의 종교적 분업

 유언서의 예화 · · 기독교의 일본인 대학 교수가, 그 체거 때, 유언에 자신의 장례를 기독교식으로 바라

 하는 것을 기재하고 있었다. 매우 열정적 인 그리스도인 인 선생님조차도 굳이 그런 유지를 남겨주세요.

 해야 할 일이 유언서를받는 가장 친숙한 사람에게도 일상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았다.

  사실에 놀랐다. 서구에서는 불가능한 현상이며, 이것은 일본에서 기독교 신앙 자체가 매우 "개

 인적' 수준의 문제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례를 보고, 총괄적으로 다음을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의 기독교는 개인의 정신적인 필요로부터 개인과의 관계가 주체적으로 되고 있다.

 또 불교는 이에 대해 '가족'을 중심으로 그 세대간 혈연을 주체로 하고 있다. 특히 이것은 죽은 의례,

 즉 장례식의 장면에서 현저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가족 형태는 메이지 이후와 제 2 차 세계 대전 후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에 유의해야합니다.

 하지 않는다. 거친 개념에서 '집'과 '가족'이라는 뉘앙스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신도는 메이지에서 국가를 주체로 통제 된 배경도 영향이 강하지만, 기본적으로 지역 풍토를 동일하게한다.

 하는 공동체를 그 주체에 있을 수 있다.

 이타미 13의 영화 「장례식」의 감상 

 종교적 분업 속에서 현저하게 그 특징이 나타나는 것이 「장례식」으로, 이전에 상영된 영화 「장례식」을 보았을 때,

 국인에게 있어서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많았다.

    일본의 죽은 의례의 중심 종교는 물론 불교이지만, 종교 학적 입장에서 이러한 고찰을 하면 불교에서

 일이 당연한 의례 관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의미와 의미를 모르는 채 평평하게 행해져

 있다. 동시에 그러한 전통이 어떤 과정에서 계승되어 왔는지 모르는 채 행해지고 있다는 것에 누구도 의심

 질문을 가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가족 자체가 죽음의 「비치」 「이해」 「교육」을 게을리해 온 결과, 죽음 그 자체나 사자 의례에 관해서

 전혀 '무지'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기업으로서의 장의사의 대두가 있어, 이들이 기업적인 영업 측면에서만 진행된다고 하면, 지금까지 계승

 당해 온, 막연한 가운데 전통적인 죽음이나 사자 의례에 관한 감성이나 감각이 붕괴해, 계승되지 못할 우려를

 느낌. 장례가 절차상의 관례화됨으로써, 거기에 내재하는 장례의 의미나 의의, 그리고 가치를 상실해 간다

 그럴 것이다.

 이들은 일본인의 "개인화"경향으로 잡힐 수 있지만, 소위 서구 국가가 지금까지 따라 온 "개

 "인화"란, 일본인 특유의 개인화라고 할 수 있다. 

 행동 중심주의 「데이터 북~현대 일본인의 종교」로부터

   세계의 대부분에서는, 일본인의 종교에 대한 이해를, 일반적으로 「무관심」혹은 「무종교」적으로 논하는 경향이 지금

 심지어 뿌리 깊다. 그러나 일본인의 일상 생활에서 소위 "종교적 행동"을 고려하여 논한다면 일본인

 의 종교 현상은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조상 숭배를 행동 규범에 둔 것은 압도적으로 어느 나라보다 많

 보인다.

 오봉이나 그 해안 등에 행해지는 무덤 참배 등은 세대적인 격차를 넘어 많은 일본인의 관심이 높다는 데이터

 도 있다. (참고 : 요미우리 신문의 조사한 일본인의 종교 의식 보고로부터)

 또한 일본인의 종교적 의식이 뿌리 깊고 잠재적이고 견고한 것은 아시아에 걸리는 기독교 포교의 수치인가?

 그들도 현저하게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종교적 의식을 가진 사람 가운데 25%에 이르며, 이는 포교의 성공 사례를 나타냅니다

 하지만 일본의 수치는 1%밖에 없다.

 아직도, 이 사실은 그리스도 교회의 ​​큰 의문과 포교에서의 갈등을 만들어 내고 있다.

2:죽은 자 의례와 일본 정신 문화

 「민속 종교」의 차원 「메이드 인 재팬의 기독교」

  지금까지의 일본에서의 포교 경위를 현재 상태에서 고찰하면, 일본인 특유의 조상 숭배 의식의 뿌리로부터 기존의 키리

 스트 교단으로부터 일본의 풍토 의식에 맞춰 '탈각'한 독자 집단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별로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탈각 집단은 일본에 어울리는 포교의 시도를 이용하여,

 이른바 '메이드 인 재팬'의 기독교화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1896년 민법에 규정된 「가부장 제도」는 배경에 사족형의 부계 종속을 근저로 하고 있지만, 현재에 이르더라도,

 '집'과 '가정'의 이중구조는 짙게 잔존하고 있다.

 이것으로부터도 일본에서의 민속 종교는 심층적·잠재적으로 잔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독자적인 어레인지된 기독교 집단이 파생해도 이상하지 않고, 또 기존의 교회·교단에서도,

 특히 죽은 자의례에 관해서는 일본적 식 진행에 맞춘 어레인지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 현상이다.

 유교적 실천 윤리화

 「집」제도에 있어서의 의무는 「동혈통제」에 근거하고 있다. 그것을 근본적으로 조상 숭배는 세대 간의 협력을 더욱 견고합니다.

 이로써 계속시켜, 이른바 유교적인 사상 배경도 친숙해지는 경우도 있어, 특히 「충」혹은 「효」에 의해,

 사족형 가족의 보편화의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에도기에서는 "번"을 기반으로 한 형태가 유지되었지만 메이지기에 들어가 이것이 국가에 통제됩니다.

 천황을 중심으로 이에 순응하는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실천적인 윤리관이 침투했다.

 어쨌든 죽은 자 의례에서, 그 주체성을 "집"제도를 매체로하는 것에는 변함없이,

 대에 들어가서 현재에 이르러 둘러싼 모든 환경의 변화로부터 다양한 문제를 표출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서는 지금까지 붙잡혀 온 조상 숭배와 죽은 자 의례에 관한 아이덴티티의 근거조차 흔들리는 문제

 포스트 모던에서 이것은 심각한 주제로 제기됩니다.

 현대 일본은 '악질적인 개인화' 경향을 향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일본의 전통

 밟으면서 '각각의 의례의 의미를 인식하고, 이것을 해 나가는 것 같은 대책이 필요하지 않은가.

3: 기독교와 죽은 자 의례

 16세기(예수회와 도미니코회의 충돌)

 1494 년에 전래한 기독교의 일본 포교에서 가장 과제가 된 것이 사자 의례와 조상 숭배에 대한 대응이었다.

 예수회는 토착복습에 동조했지만 도미니코회는 가톨릭을 부정적으로 생각했지만 이것을 불복으로

 경위가 있다.

   메이지 초기의 개신교 선교사

  "배타적 신학"

  메이지에 들어가 다시 기독교 포교 활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지금까지의 토착적인 풍토습속

 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집단을 만들고 메이드 인 재팬의 기독교 집단을 낳은 것은 앞서 말했다.

 죽은 자의례에 있어서의 작법에서는, 메이지 30 년대에 있어서는, 그래도 기독교식의 형식이 견고하게 시행되고 있었지만,

 최근( 1993 년)의 루터 교회의 식 진행을 보면, 불식의 장례 절차를 상당히 근거로, 꽤 일본화된 것

 되어왔다.

 구체적으로는 인도나 조사・야키카 등의 행위가 「장송의 말」「추도・조사」「헌향・헌화」로 대체되어 처음

 칠일 법요 등도 Seventh Day Rite로서 행해진다. 또한 49 일기의 납골 등도 50

  날에 행하는 등, 토착의 장송습속으로부터의 위화감을 적게 하고 있다. 이러한 경위로부터 연간 법요에 해당한다.

 「기념회」 시행에 있어서도, 년・년・년・12 년・30 년 40 년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의 본질적인 교리작법에서 벗어난 시행을 하기 위해서는 소위 배제형야의 신학구성이 필요

 요컨대, 일본에서는 이러한 대응으로 행하고 있다.

 전 사족의 개인화

  메이지 초기의 기독교 신자는 특히 사족이 많은 것을 특징으로 볼 수 있지만, 이것은 무사가 소멸한 것에

 따라서 낭인화, 즉 사족은 사회적으로 고립 된 상황에 휩쓸리고 그 신분을 상실함으로써 개인화됩니다.

 한 면을 현저하게 수용하지 않는 입장이 된 것이 영향을 준다.

  통상의 포교 침투 형태로부터 말하는 것은 서민층을 기반으로 한 표준적인 침투가 아니라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 근대의 포교 역사에서 보면, 거기에 모순을 느낀다.

   오늘의 교회 대응

 나가 부임하고 있던 가나자와의 와카쿠사 교회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 교회의 묘지가 너무 예쁜 것을 본 사람이, 신자도 아닌데도 태연하게 그 장소의 무덤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방금 방금 자신에게는, 이것은 일본인의 종교적 무성함이 표출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표면

 이러한 관점에서, 그 사람들의 요구의 배경은 불교를 벗어나 경제적 인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야 한다고 느꼈다.

  또, 그 교회의 열심한 신자의 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그 딸으로부터 기독교식으로 장례식을 의뢰

 했다. 딸 씨의 아버지는 이전에 사망하고 불식으로 장례식이 행해졌다고 말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가능한 한 맡기고 있지만, 그 때의 손잡이로서 장례를하기 전에

 고인을 가능한 한 많은 친족이나 관계자로부터 들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고인의 인생관이나 취미 등에서 다시

 고인의 인격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또 놀랐다. 그것은 식후 회식 자리에서 옆에 있는 친족들로부터 “나도 기독교에서 장례

 를 부탁하고 싶다”고 가볍게 운반된 것으로, 또 또 일본인의 종교관에 놀랐다.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 이치

 유는 장례식에서 매우 친숙하고 고인에 대한 다양한 던지기에 감동했다는 것이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매우 의미있는 강의였다. 다시 한번 헤이스팅 선생님에게는 질의 응답 때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해 주셨으면합니다.      

                                         보고국 니무라

 
《회장의 모습》

        

 

        

 

[독서] 마크 R. 마린스 "메이드 인 일본의 기독교" | 신발을 태워 페이지를 반복

[독서] 마크 R. 마린스 "메이드 인 일본의 기독교" | 신발을 태워 페이지를 반복
【読書】マーク・R. マリンズ『メイド・イン・ジャパンのキリスト教』

靴を焼け、頁を繰れ
家から一歩も出ない勢いで”何か”にのめり込むブログ

【독서】마크·R. 마린즈 “메이드·인·재팬의 기독교”
2020/6/16 2021/1/5 독서


왜 기독교는 일본에 뿌리를 내리지 않았을까, 개국 후의 일본에 있어서 서양의 선진적인 문화의 하나로서 받아들여져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라고 하는 의문을 전부터 어쩐지 안고 있었다. 근대 문학 관계의 사람을 조사해 보아도 기독교 세례를 받은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의 일본에서 기독교도가 총인구의 1%에도 못 미친 것 같다. 종교에는 무경착이라던가 무절조한 일본인이라면 기독교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도 이상하지 않은데 왜일 것이다.

그런 일을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이 '메이드 인 재팬의 기독교'라는 서명을 보고 곧바로 흥미가 솟았다. 그래서, 읽어 보면 좀처럼 때문에 된다고 할까, 지금까지 잘 몰랐던 '일본의' 기독교에 대해서 별로 볼 수 없는 시점에서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미 있었다.


일본의 기독교 토착 운동

서양 기독교를 어디에 이식하든, 거기에 반드시 있었던 것은 예수의 중요성을 '보편적'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미션 교회에서 벗어나 새롭게 발견한 그 신앙을 전개시키는 길을 택했다. 사람들이다.
마크 R. 마린스 "메이드 인 재팬의 기독교"P7

현재의 일본의 기독교는 페리 내항 후, 개국하고 나서 일본에 선교사가 와서가 실질적인 시작이 되지만, 최초의 선교사는 무려 1859년, 아직 막부도 쓰러지지 않은 안정의 대옥의 곧 이미 일본에 왔다. 그리고 1992년까지 약 140년간 200개 이상의 포교단체가 일본에 오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놀라움이다. 본서에는 그 리스트가 실려 있는데 무려 7페이지에도 넘어 있다.

그만큼 일본에의 포교는 힘이 들어간 사업이었지만, 선교사의 포교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출신 단체가 소속하는 서양 문화도 동시에 밀어붙이는 것이었다고 본서에서는 적혀 있다. 새롭게 기독교인이 된 것은 위패·신선반을 태우도록 명령받았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일본인에 의한 기독교의 토착 운동이다. 우치무라 감조의 무교회주의, 마츠무라 개석의 도회, 카와 합신수의 기독심 종교단 등 그 수는 많다. 이런 토착운동은 서양의 정당한 기독교에서 보면 이단적이고 컬트한 신종교로 기독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메이드 인 재팬의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신종교를 일본인에 의한 기독교로서 긍정적으로 파악해, 기독교를 서양을 떠난 글로벌한 문화로서 보았을 때 일본에서는 어떻게 전개했는지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다. 일본의 기독교 전도는 실패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지만, 그래도 독자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기독교를 만들어낸 일본인도 있었다는 것이 본서를 읽으면 알 수 있다.

일본의 기독교 토착 운동의 선구자 「무교회주의」
일본 기독교 토착운동의 선구자로 가장 유명한 것이 우치무라 감조의 무교회주의다. 1878년 삿포로 농학교에 입학한 우치무라는 선배 학생으로부터 강한 권유를 받아 기독교도가 되었지만, 미션 교회에 대한 불만으로 우치무라와 그를 지지하는 일단은 삿포로에 독립 교회를 설립, 제도나 성직자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진정한 신앙생활을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그의 핵심적인 주장은 요즘부터 모아가 있었다. 미국에 유학, 아머스트 대학에서 학장이었던 실리 박사의 가르침에 배우고 기숙사 내에서 '계시'를 받아 종교적 체험을 얻는다.

귀국 후 개신교 운동은 제도화되어 시기상조에 종말했다고 주장하며 종교개혁을 완성시키는 시도로 무교회주의를 시작한다. 서양에서 기독교를 배우고 개신교 운동을 계승하는 것으로 태어난 무교회주의이지만, 우치무라 감조는 전통적인 일본 문화, 무사도와 유교, 정토교의 아미타 신앙 속에서도 기독교와의 관계를 발견한다 .


우치무라 감조는 학교의 수업 수준에서 이름을 기억하지만, 「무교회주의」는 서양의 기독교를 일본에 이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독자적인 기독교를 만들려고 했다고 하는 것은 별로 알려져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닐까. 적어도 자신은 우치무라 감조라고 하면 처음에는 닛신 전쟁에 찬성하고 있었지만 후비전론자가 되었다거나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는 일일이 신사를 볼 때마다 인사를 해야 했지만 세례하고 나서 는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든가 그러한 일화를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것만으로, 종교가로서의 우치무라 감삼은 몰랐다.

기타 일본 기독교 토착 운동
무교회주의 의외로 다양한 기독교 토착 운동이 있지만 그 특징을 나름대로 빼내면 서양적인 기독교의 부정, 일본의 전통 문화나 불교 속에 기독교와의 연속성을 찾아내는 정통파 기독교의 가르침은 거부해도 성경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독서로 해석하는 준교조(교조는 예수 그리스도)는 종교적 체험을 얻어 카리스마적 종교가가 되었다 , 등일까.

성서의 독자적인 해석이라고 들리지 않지만, 개신교는 성경으로 돌아가는 운동에서 태어난 것이고, 개인이 한 사람 한 사람 성경을 읽고 신앙에 대해 생각한다는 교파이기 때문에, 우치무라 감조가 개신교 운동을 계승하는 것으로 사람의 세운 교회조차 필요 없다는 무교회주의를 세우는 것도 성경을 읽고 이것이 불교와 통하는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신종교를 시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라고 할까 그런 이단의 신종교를 긍정적으로 재검토하자는 것이 본서의 자세다.


몇 가지 토착 운동에 대해 기술되어 있지만, 주요 종교의 중심적 진리는 4개의 기본적 교리로 환원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 마츠무라 개석에 의한 도회는 재미있다.

천지 주재의 신에 대한 신앙과 숭배를 가리키는 '신신'(기독교라면 아버지 신, 불교라면 보편적인 진리, 신도라면 텐노오 중주신), 현세이익에 번거로움 없이 덕의 도자기를 목표로 하는 수덕( 기독교에서는 죄로부터의 탈각, 불교에서는 수행, 유교에서는 수신), 이웃을 사랑하고 타인을 위해 사는 '애인', 물리적 존재를 넘어서는 것을 가르쳐야 할 세상의 영혼과 불멸을 주는 '영생' . 이 4개가 주된 종교에 공통되는 「4강령」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이지만, 꽤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붓다도 공자도 예수도 그 말한 기본적 진리는 같고, 나는 그 흐름을 끄는 한 명의 교조라는 마츠무라의 가르침은 꽤 보편성이 있다고 할까 같은 것을 말하는 신흥 종교의 교조 많다.

조상 숭배라는 일본 종교 요구
본서에서는 일본인의 의식의 저류에 있는 민족종교의 특징으로서 조상숭배와 영혼신앙을 들고 있다. 조상이라고 인정된 죽은 자에 대한 신앙과 그 신앙에 입각한 제의례, 적절한 의례를 하지 않으면 고통받는 영의 원한에 의해 건강 문제나 사업 실패 등 트러블이 일어난다. 이것이 일본인이 의식하지 않고도 가지고 있는 종교의식이며, 일본인에게 있어서의 종교적 요구이다. 이것은 도시화에 의해 전통적인 관행이 쇠퇴한 지금도 공통되고 있어 신흥 종교는 이러한 요구에 대답하고 있다. 반대로 이 요구에 답할 수 없는 종교는 일본에서는 침투하지 않는 것이다.

개신교 선교사의 생각으로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죽은 자는 지옥으로, 거기에 살고 있는 인간의 기도가 통하는 여지는 없다. 또 선교사는 일본의 전통적인 종교에서 입신자를 분리하려고 시도했고, 새로운 신자가 선교사의 가르침에 따라 집의 불단이나 조상의 위패나 신선반을 태워 가정내에서 무수한 비비가 일어났다고 한다. 우상 파괴의 가르침으로 하면 확실히 불단도 위패도 뒤떨어진 만족의 습관이므로 무리는 없지만, 당연히 일본인의 종교 의식에 반한 포교가 퍼져가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거기서 1930년대부터 40년대에 발달한 기독교 토착운동에서는 이러한 조상문제에 대처하고, 성예수회신도에서는 가정제단에 죽은 자를 모시거나, 예수지령교회에서는 조상대신 세례를 받는 몸 대신 세례를 하고 있다. 필요에 따라 새로운 서비스가 탄생한다. 이것은 비즈니스 업계에서는 당연하지만, 종교에도 같은 것이 적용되는 것 같다.

왜 한일에서는 기독교의 수용에 크게 차이가 있는가
일본에서는 기독교도는 인구의 1% 이하라고 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인구의 30%와 종교 중에서 가장 큰 점유율을 취하고 있다. 왜 일본과 한국에서 이렇게 상황이 다른가 하는 것은 큰 의문이지만, 본서에서는 로버트 몽고메리라는 사람의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그 이론이 일본과 한국의 기독교 상황의 차이에 완벽하게 대답을 하고 있기 때문에 통째로 손 끌게 한다.

외부에서 닮은 종교의 수용을 좌우하는 기본적인 조건은 수용측의 집단과 다른 집단과의 관계의 질 속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그 밖의 집단에는 신종교를 가진 집단도 포함되어 있다. 관계 속에서도 신종교의 수용을 좌우하는 열쇠가 되는 요인은, 위협이나 지배가 오는 방향에 관한, 받아들여 측의 집단의 인지이다. 위협으로 인정받지 못한 곳에서 종교가 있을 경우 신종교의 수용에는 유리한 조건이 성립한다(그러나 신종교는 위협에 대한 저항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어떠한 위협이 존재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 신종교의 출처 이외의 곳에서 지배나 위협이 온다고 인지된 경우 신종교는 사회를 존속시키는 데 기여도가 높은 집단이나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간주될 것 있다. (중략)
반대로 신종교를 낳은 집단이 사회의 존속이나 사회를 특징짓는 정체성을 위협한다고 인정된 경우에는 신종교에 대한 저항을 촉진하는 조건이 형성된다. 저항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취할 것이다. 전통 종교가 부활할지도 모른다. 전통문화에 대한 저항이 강한 경우에는 기존 문화의 요소를 새로운 문화의 요소와 혼합한 다양한 종교운동이 태어날 수도 있다.
마크 R. 마린스 『메이드 인 재팬의 기독교』P225

즉 일본에서는 위협이 되는 구미로부터 기독교가 가져왔기 때문에 뿌리 내리지 않고, 한국에서는 직접적인 위협은 식민지 지배를 하고 있던 일본이기 때문에 기독교가 성장했다는 셈이다. 이 책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일본 정부에 대한 저항 이데올로기가 되어 많은 기독교인이 독립운동에 깊이 관여한 것 같다. 사실인지 알아보면 기독교, 천도교, 불교 등 종교 지도자가 주도한 3·1운동이거나 이승만이 기독교도이거나 한국의 독립운동에 기독교가 참여한 것은 확실하다. 같다.

일본을 비난하지 않았던 3.1 독립선언 3.1 운동의 중심에 있던 기독교

한국의 기독교는 어떻게 '반일 감정'과 연결되어 있었는가


또 일본에서 기독교의 토착 운동이 이루어진 것처럼 한국에서도 토착화는 일어나 한국 기독교는 샤머니즘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한국', '기독교', '샤머니즘'이라고 들으면 영화 '콕슨'을 떠올린다. 그 영화는 일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게 한국 영화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

본서는 일본의 토착 기독교에 대해 쓰여진 책이지만, 그것을 통해 종교에도 요구가 있어 수요에 맞춰 변화해 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본서에 쓰여진 것처럼 신종교가 태어난 것이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의 신종교가 태어나고 있을 것이다. 일본의 종교문화에 대해 알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널리 세계 종교에 통하는 일반적인 법칙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기독교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뿐만 아니라, 보다 넓게 문화의 정착이나 변화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도 읽을 가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평『메이드 인 재팬의 기독교』

「アタマの引き出し」は生きるチカラだ!: 

(マーク・マリンズ、高崎恵訳、トランスビュー、2005)-日本への宣教(=キリスト教布教)を「異文化マーケティグ」を考えるヒントに


2010年12月24日金曜日

書評『メイド・イン・ジャパンのキリスト教』(マーク・マリンズ、高崎恵訳、トランスビュー、2005)-日本への宣教(=キリスト教布教)を「異文化マーケティグ」を考えるヒントに


日本への宣教(=キリスト教布教)を「異文化マーケティグ」を考えるヒントに

 いまだに全人口の 1%を越えることのない日本のキリスト教人口、なぜそうなのかについての探求はこれまでにも多くなされてきたが、本書の特徴はこれまであまり着目されることの少なかった、「キリスト教土着」に大きな焦点をあてたことにある。

 私自身はキリスト教徒ではないが、キリスト教そのものは知的に理解する必要があるとは思ってきたし、近年非常に増えている「キリスト教式結婚式」を持ち出すまでもなく、日本人はとくに若年層を中心に「キリスト教的なもの」に親近感を抱いているようだ。

 しかし、今後も日本では信者になろうとする者はきわめて少数だろう。人生の通過儀礼の一つである結婚式をキリスト教式にしたとしても、信者でもないのに、出生や葬儀をキリスト教式にする者が増えるとは、とうてい考えられない。

 明治維新以後のキリスト教布教は、もっぱら米国のプロテスタント系教会が中心となってきた、(P.20~26に日本で伝道を行ったキリスト教団のリストが掲載されているが、驚くべきほどの多さである!)。
 しかし、キリスト教徒となった日本人のなかには、外国人宣教師のミッションのやり方にはしっくりこない者や拒否反応を示した者がいた。

 旧士族の儒教的エートスの持ち主であった内村鑑三の無教会運動を筆頭に、独特の聖書解釈により日本人のためのキリスト教の展開をはじめた者が少なからず存在する。
 これらはみな、キリスト教を普及させたい側の論理ではなく、キリスト教を受容したい側の論理からの強い熱望がそうさせたのであった。
  内村鑑三にインスパイアされた人たち(・・すべて男性である!)は、日本の伝統である精神修養、自己修養の道としてのキリスト教を開拓している。しかし、これらの教団に従ったのは、主として知識人を中心にした、知的な中産階級に留まった。

 なおざりにされた一般大衆は、「キリスト教土着」という方向に進み始める。ペンテコステ的という、異言や癒しなどの心霊主義的、体験型の信仰なキリスト教の道へと進んだのである。

 しかし、この道の行き着く先は、そもそもの土着型新興宗教と同じ土俵に入っていくこととなり、敗戦後の社会変動に際して、一時的には信者は増えたものの、ついには日本に定着することなく今日に至っている。
 土着型もカリスマは創設者一代限り、カリスマは継承されないまま家が組織を引き継いでいるが、信者の高齢化だけでなく、少子化のなか、新たな信者も獲得できずに衰退していくのは致し方のないところであろう。

 「魂の争奪戦」としての布教活動は、ビジネスでいえばマーケティングと同じ活動であるが、この活動において、キリスト教は日本市場では失敗したといってもいい過ぎではない。韓国と比べるとその差は歴然である。

 キリスト教が日本に定着しなかった理由には、日本人自身による「無意識の取捨選択」が働いているというべきだろう。
 著者もいうように、日本の民俗信仰にける「祖先と死者の霊をめぐる土着の信仰や慣習」はきわめて根強いものがあり、たびたびの社会変動を経ても根本的に変化することはなかったのである。  
 現在ではこれが、マスコミと連動したいわゆるスピリチュアル・ブームとなって、さらに顕在化され強化される方向にあるとすらいえる。現代的な衣装をまとっていても、日本人の民間信仰の本質は「祖先と死者の霊」を抜きにしては成り立たないのである。

 そしてまた、生きた人間と人間の関係が、自立した個人を基礎にした社会ではないことも、キリスト教の浸透を阻んでいる大きな理由の一つである。近代化された日本においても西洋的な意味での社会は存在せず、人間関係は依然として「世間」が中心である。
 キリスト教は「世間」からみれば他者以外の何者でもない。土着化したときには「世間」のなかに取り込まれたときには、すでにキリスト教ではなくなているというべきかもしれない。

 免疫系の比喩でいえば、キリスト教という異物に対する免疫反応は拒絶するか、取り込んで自分のものとしてしまうかの二つしかない。その意味では、キリスト教はもはや日本では増えることはないだろうが、多くの日本人は無意識のうちに取捨選択してキリスト教の要素をすでに何らかの形で取り込んでしまっているといってもよいかもしれない。しかも自分に都合のいい、「いいとこ取り」という形で。これは冒頭で言及した「キリスト教式結婚式」に端的にあらわれている。

 本書は、さまざま観点から読むことのできる興味深い研究書である。キリスト教の土着運動を描くことによって浮かび上がってくるのは、日本というもの、日本人というもの、つまり「世間」についてであり、また新しい思想や教義を異なる文脈をもつ文化に移植することの困難さについてである。

 ビジネスマンとしての私が興味をもつのは、とくに後者の点である。布教の成功とは、その教えによってどれだけの数の魂を救うことができたかということで測ることができるが、どこまでオリジナルな本質を保ったまま、現地に土着化するかという課題として残る
 これはビジネス用語を使えば、カスタマイズによるローカリゼーションであるが、宗教も思想の一つである以上、同様のメカニズムが働いているとみて問題ないであろう。

 万人向けの本ではないので、すべての人に薦めるつもりはないが、日本とは何かを考える人には、面白い視点を提供してくれる本であることは間違いない、といっておこう。


<初出情報>

■bk1書評「宣教(=キリスト教布教)をマーケティグの観点から考えるヒントに」投稿掲載(2010年12月23日)
■amazon書評「宣教(=キリスト教布教)をマーケティグの観点から考えるヒントに」投稿掲載(2010年12月23日)

* 1年前に執筆していながら未発表だった文章を、大幅に圧縮して「書評」として投稿。ブログでは、原型に戻したうえで字句の修正を行った。





目 次
まえがき
第1章 日本製キリスト教という問題
 1. 宗教伝播の問題
 2. 日本の場合
 3. 土着運動という盲点
第2章 さまざまなキリスト教
 1. ローマ・カトリック教会とプロテスタント・ミッション教会
 2. 超教派から教派へ
 3. 札幌バンドと熊本バンド
 4. 明治期のミッション教会
 5. 国家主義への適応
 6. 戦後の状況
 7. 多彩な土着運動
 8. 土着化の新たな類型論
第3章 カリスマと準教祖
 1. 日本人が拒否したもの
 2. 日本文化の多様性と聖書の多元性
 3. カリスマと準教祖
 4. 「霊の世界」のあらわれ方
第4章 無教会運動とは何か
 1. 日本製キリスト教の源泉
 2. 内村鑑三の精神遍歴
 3. 士族の儒教倫理
 4. 預言者としての内村鑑三
第5章 自己修養の道
 1. 松村介石と道会
 2. 川合信水と基督心宗教団
 3.宗教体験と自己修養
第6章 第二波の土着運動
 1. 村井じゅんとイエス之御霊教会
 2. 大槻武二と聖イエス会
 3. 手島郁郎と原始福音運動
 4. 日本製使徒キリスト教の特徴
第7章 日本人キリスト教徒と死者の世界
 1. 祖先崇拝と霊魂信仰
 2. プロテスタント神学と祖先崇拝の衝突
 3. 民俗宗教への取り組み
 4. 日本人の目で聖書を読む
 5. イエス之御霊教会の身代わり洗礼
 6. 死霊の救済
 7. 世界の再呪術化
第8章 何がキリスト教移植を阻むのか
 1. 成長と衰退のパターン
 2. 土着化は万能薬か
 3. 日本におけるキリスト教のジレンマ
 4. 黙殺された次元
 5. 押し寄せる韓国キリスト教
 6. 韓国キリスト教のシャーマニズム化
 7. パウロ・チョー・ヨンギの日本宣教
 8. 日本グレースアカデミーにおける癒し
 9. 韓国ペンテコステ派と現世利益
第9章 日本製キリスト教のとらえ方
 1. 日本製キリスト教の「道」
 2. カリスマとその継承
 3. 現代日本人のキリスト教観
 4. 土着運動が示唆するもの
キリスト教土着運動教団別資料
訳者解説


著者プロフィール

マーク・マリンズ(Mark R. Mullins)
    
1954年アメリカ合衆国アラバマ州に生まれる。アラバマ大学卒業、リージェント大学(カナダ)を経てマックマスター大学(カナダ)で博士号取得。宗教社会学専攻。1985年から日本在住。四国学院大学、明治学院大学を経て、上智大学比較文化学部教授(本データはこの書籍が刊行された当時に掲載されていたもの)。

高崎 恵(たかさき・めぐみ)
       
1963年生まれ。国際基督教大学卒業、同大学大学院で博士号取得。文化人類学専攻。東京外国語大学アジア・アフリカ言語文化研究所COE特別研究員、オックスフォード大学クィーンエリザベスハウス客員研究員を経て、国際基督教大学、東京女子大学、東洋大学非常勤講師(本データはこの書籍が刊行された当時に掲載されていたもの)。



<書評への付記>

 「第5章 自己修養の道」の「2. 川合信水と基督心宗教団」で、川合信水を描いて実弟の肥田春充(ひだ・はるみち)に触れていないのは大いなる不満である。

 なぜ、肥田春充が創始者の「強健術」がグンゼで普及したのか(・・川合信水は教育担当者として私企業のグンゼに招かれて労働者の指導にあたっていた)、そしてまた「肥田式強健術」の極意の型といわれるものに「聖十字架操練法」なんて技法があるのか、この本を読んではじめて、そのミッシングリンクが「川合信水と基督心宗教団」であることがわかった。

 肥田春充の「肥田式強健術」については、あらためてこのブログで紹介したいと考えている。

 「第6章 第二波の土着運動」の「3. 手島郁郎と原始福音運動」で、「幕屋(まくや)運動」について詳しく書かれているのはありがたい。「土着したキリスト教」において、創始者の息子ふたりが、原始キリスト教を突き抜けてユダヤ教の専門研究者になっているのは面白い。日本人の原点追求志向のなせるわざか。
 米国でもキリスト教原理主義者がユダヤ教に改宗して、イスラエルの入植者になっているケースが多々あることも知っておくべきことだろう。



追記(2011年2月18日)

 なお、この書評(初出)は投稿先の bk1 でも紹介していただいている。
 bk1 書評ポータルにて紹介 2010年12月30日 


追記(2011年9月17日)

 『鉄人を創る肥田式強健術 (ムー・スーパー・ミステリー・ブックス)』(高木一行、学研、1986)-カラダを鍛えればココロもアタマも強くなる! と題して肥田春充の「肥田式強健術」について紹介する記事を書いた。これで少し肩の荷が下りた



서평『메이드 인 재팬의 기독교』
(마크 마린스, 타카사키 메구미 역, 트랜스뷰, 2005)
-일본 선교(=기독교 포교)를「이문화 마케티그」로 생각하는 힌트로
「아타마의 서랍」은 살아있는 힘이다!:

서평 『메이드 인 재팬의 기독교』
(마크 마린스, 타카사키 메구미 역, 트랜스뷰, 2005)-일본 선교(=기독교 포교)를 '이문화 마케티그'로 생각하는 힌트로


2010년 12월 24일 금요일
서평『메이드 인 재팬의 기독교』(마크 마린스, 타카사키 메구미 역, 트랜스뷰, 2005)

■일본 선교(=기독교 포교)를 '이문화 마케티그'로 생각하는 힌트로 ■

 아직까지 전체 인구의 1%를 넘지 않는 일본의 기독교 인구, 왜 그런지에 대한 탐구는 지금까지도 많이 이루어져 왔지만, 이 책의 특징은 그동안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기독교 토착'에 큰 초점을 맞췄다는 데 있다.

 나 자신이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 자체는 지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왔고, 최근 매우 증가하고 있는 '기독교식 결혼식'을 들고 나올 필요도 없이 일본인들은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기독교적인 것'에 친근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도 일본에서는 신자가 되려는 사람은 극히 소수일 것이다.인생 통과의례 중 하나인 결혼식을 기독교식으로 한다고 해도 신자도 아닌데 출생이나 장례를 기독교식으로 치르는 사람이 늘어날 줄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메이지 유신 이후의 기독교 포교는 전적으로 미국의 개신교계 교회가 중심이 되어 왔다(P.2026에 일본에서 전도를 행한 기독교단의 리스트가 실려 있는데, 놀라울 정도로 많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된 일본인 중에는 외국인 선교사의 미션 방식에 불편하거나 거부반응을 보인 사람이 있었다.

 옛 사족 유교적 에토스의 소유자였던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 운동을 필두로 독특한 성경 해석으로 일본인을 위한 기독교 전개를 시작한 자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이들은 모두 기독교를 보급하려는 쪽 논리가 아니라 기독교를 수용하고 싶은 쪽 논리의 강한 열망이 그렇게 만들었다.
  우치무라 간조에 영감을 받은 사람들(...모두 남성이다!)은 일본의 전통인 정신수양, 자기수양의 길로서의 기독교를 개척하고 있다.그러나 이들 교단을 따른 것은 주로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지적 중산층에 머물렀다.

 등한시된 일반 대중은 기독교 토착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펜테코스테적이라는 이언과 치유 등 심령주의적 체험형 신앙의 기독교 길로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이 닿는 곳은 원래의 토착형 신흥종교와 같은 씨름판으로 들어가게 되어 패전 후 사회변동에 즈음하여 일시적으로는 신자가 늘어났지만, 마침내는 일본에 정착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토착형도 카리스마는 창설자 일대에 한해 카리스마는 계승되지 않은 채 집안이 조직을 계승하고 있지만 신자의 고령화뿐만 아니라 저출산 속에서 새로운 신자도 획득하지 못하고 쇠퇴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영혼의 쟁탈전」으로서의 포교 활동은 비즈니스로 말하면 마케팅과 같은 활동이지만, 이 활동에서 기독교는 일본 시장에서는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한국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역력하다.

 기독교가 일본에 정착하지 못한 이유에는 일본인 자신에 의한 무의식의 취사선택이 작용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저자도 말했듯이, 일본 민속신앙에 있어서 「조상과 죽은 자의 영혼을 둘러싼 토착 신앙이나 관습」은 극히 뿌리 깊은 것이 있어, 종종의 사회변동을 거치면서도 근본적으로 변화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현재는 이것이 언론과 연동된 이른바 스피리추얼 붐으로 더욱 가시화되고 강화되는 방향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현대적인 의상을 입고 있어도, 일본인 민간 신앙의 본질은 「조상과 죽은 자의 영혼」을 제외하고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살아있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자립적인 개인을 기초로 한 사회가 아니라는 점도 기독교의 침투를 막고 있는 큰 이유 중 하나이다.근대화된 일본에서도 서양적 의미에서의 사회는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관계는 여전히 '세상'이 중심이다.
 기독교는 세상에서 보면 다른 사람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다.토착화되었을 때는 「세상」속에 포섭되었을 때에는, 이미 기독교가 아니게 되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면역계 비유로 말하면 기독교라는 이물질에 대한 면역반응은 거절하거나 끌어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두 가지밖에 없다.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더 이상 일본에서는 늘어나지 않겠지만, 많은 일본인들은 무의식중에 취사선택하여 기독교의 요소를 이미 어떤 형태로든 수용해 버렸다고 해도 좋을지도 모른다.게다가 자신에게 편리한 '좋은 자리 잡기'라는 형태로.이는 서두에서 언급한 기독교식 결혼식에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 책은 다양한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연구서이다.기독교 토착운동을 그리면서 떠오르는 것은 일본이라는 것, 일본인이라는 것, 즉 '세상'에 대한 것이며, 또 새로운 사상이나 교리를 다른 맥락을 가진 문화에 이식하는 것의 어려움에 관한 것이다.

 비즈니스맨으로서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특히 후자의 점이다.포교의 성공은 그 가르침으로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할 수 있었는가로 측정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 독창적인 본질을 유지한 채 현지에 토착화할 것인가 하는 과제로 남는다.
 이것은 비즈니스 용어를 사용하면 커스터마이즈에 의한 현지화이지만 종교도 사상의 하나인 이상, 같은 메커니즘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 문제 없을 것이다.

 만인을 위한 책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추천할 생각은 없지만, 일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시각을 제공해 주는 책임에는 틀림없다고 말해 두자.


<초출정보>

■ bk1 서평「선교(= 기독교 포교)를 마케티그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힌트로」투고 게재 (2010년 12월 23일)
■amazon 서평「선교(=기독교 포교)를 마케티그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힌트로」투고 게재 (2010년 12월 23일)

* 1년 전에 집필하고 있으면서 미발표였던 문장을, 대폭 압축해 「서평」으로서 투고.블로그에서는, 원형으로 되돌린 후에 자구의 수정을 실시했다.





목차
전갈이

제1장 일제 기독교라는 문제
 1. 종교 전파의 문제
 2. 일본의 경우
 3. 토착 운동이라는 맹점

제2장 다양한 기독교
 1.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선교회
 2. 초교파에서 교파로
 3. 삿포로 밴드와 구마모토 밴드
 4. 메이지 시대의 선교 교회
 5. 국가주의에 대한 적응
 6. 전후의 상황
 7. 다채로운 토착 운동
 8. 토착화의 새로운 유형론

제3장 카리스마와 준교주
 1. 일본인이 거부한 것
 2. 일본 문화의 다양성과 성경의 다원성
 3. 카리스마와 준교주
 4. '영의 세계'가 나타나는 방식

제4장 무교회 운동이란 무엇인가
 1. 일제 기독교의 원천
 2. 우치무라 간조오의 정신 편력
 3. 사족의 유교 윤리
 4. 예언자로서의 우치무라 간조오

제5장 자기 수양의 길
 1. 마츠무라스케이시와 도회
 2. 가와이 노부미즈와 기독심 종교단
 3) 종교체험과 자기수양

제6장 제2의 물결 토착 운동
 1. 무라이 준과 예수의 영교회
 2. 오오츠키타케지와 성 예수회
 3. 테지마 이쿠로와 원시 복음 운동
 4. 일제 사도 기독교의 특징

제7장 일본인 기독교인과 죽은 사람의 세계
 1. 조상 숭배와 영혼 신앙
 2. 개신교 신학과 조상 숭배의 충돌
 3. 민속 종교에 대한 대처
 4. 일본인의 눈으로 성경을 읽다
 5. 예수님의 영신 교회의 대체 세례
 6. 사령의 구제
 7. 세계의 재주술화

제8장 무엇이 기독교 이식을 막는가
 1. 성장과 쇠퇴의 패턴
 2. 토착화는 만능약인가?
 3. 일본의 기독교 딜레마
 4. 묵살된 차원
 5. 밀려드는 한국 기독교
 6. 한국 기독교의 샤머니즘화
 7. 파울로 조용기의 일본 선교
 8. 일본 그레이스 아카데미의 치유
 9. 한국펜테코스테파와 현세이익

제9장 일제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법
 1. 일제 기독교의 '길'
 2. 카리스마와 그 계승
 3. 현대 일본인의 기독교관
 4. 토착 운동이 시사하는 바

기독교 토착운동 교단별 자료
역자 해설


저자 프로필

마크 멀린스(Mark R. Mullins)
    
1954년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태어나다.앨라배마대 졸업, 리젠트대(캐나다)를 거쳐 맥매스터대(캐나다)에서 박사학위 취득.종교사회학 전공. 1985년부터 일본에 거주. 시코쿠 학원대학, 메이지 학원대학을 거쳐 조치 대학 비교문화학부 교수(본 데이터는 이 서적이 간행되었을 당시에 게재되었던 것).

타카사키 메구미(타카사키 메구미)
       
1963년생.국제기독교대학 졸업, 동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문화 인류학 전공도쿄외국어대 아시아아프리카언어문화연구소 COE 특별연구원, 옥스퍼드대 퀸엘리자베스하우스 객원연구원을 거쳐 국제기독교대학 도쿄여대 동양대 시간강사(본 데이터는 이 서적이 간행될 당시 게재된 것).



<서평에의 부기>

 「제5장 자기 수양의 길」의 「2. 카와이 신수와 기독심 종교단」에서, 카와이 신수를 그려 친동생 히다 하루미치를 건드리지 않은 것은 큰 불만이다.

 왜 히다 하루미쓰가 창시자인 강건술이 군제에서 보급되었는지(·가와아이 신수는 교육 담당자로서 사기업인 군제에게 초청되어 노동자를 지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히다식 강건술」의 비법형이라는 것에 「성십자가 조련법」이란 기법이 있는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 미싱 링크가 「카와아이 신수와 기독심 종교단」임을 알았다.

 히다 하루미츠의 「히다식 강건술」에 대해서는, 재차 이 블로그에서 소개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6장 제2파 토착운동」의 「3. 테지마 이쿠로와 원시복음운동」에서, 「막부야 운동」에 대해 자세하게 쓰여져 있는 것은 고맙다.토착 기독교에서 창시자의 아들 둘이 원시 기독교를 뚫고 유대교 전문 연구자가 된 것은 재미있다.일본인의 원점 추구 지향의 나른한 기술인가.
 미국에서도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유대교로 개종해 이스라엘 정착민이 된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도 알아야 할 일이다.



추가(2011년 2월 18일)

 덧붙여 이 서평(초출)은 투고처의 bk1에서도 소개받고 있다.
 bk1 서평 포털에 소개 2010년 12월 30일 


추가(2011년 9월 17일)

 철인을 만드는 히다식 강건술(무 슈퍼 미스터리 북스)(타카기 일행, 학연, 1986)-몸매를 단련하면 몸도 마음도 강해진다! 라는 제목으로 히다 하루미쓰의 「히다식 강건술」에 대해 소개하는 기사를 썼다. 이것으로 조금 어깨가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