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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7

'구산스님 이야기 석사자(石獅子)' 전편 중에서

'구산스님 이야기 석사자(石獅子)' 전편 중에서





노하 이야기/선사선담
'구산스님 이야기 석사자(石獅子)' 전편 중에서노하
2017. 4. 21. 15:14댓글수1공감수0





















O 이 몸이 건강할 때는 백년이나 천년이나 살 것처럼 믿으나, 숨 한 번 내쉬었다가 들이쉬지 못하면 백년이요 들이쉬었다가 내쉬지 못하면 또한 백년이다. 인생 백년이 숨 한번 쉬는 데 달린 것이다.



그러면 과연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가 어디인고? 이 몸을 운전하는 주인공이 마음 붙일 곳이 어디인고? 나 자신을 믿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 속는 것이 아니겠는가? 꿈도 현상계도 모두 환상이 아닐 수 없다.



사람마다 나름대로 나란 멋에 살건만은

이 몸은 환상이라 믿을 곳이 어디런가

마음 하나 깨치면 제일 기쁨 아니리!





O 이 몸이 지(地)-수(水)-화(火)-풍(風)으로 구성되고, 세계도 지(地)-수(水)-화(火)-풍(風)으로 구성되었으니 세계도 인류도 모든 동물도 나 자신과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이 곧 대아(大我)이다. 그러니 세계의 어느 부분도 떼어버릴 수는 없다. 결코 남이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인 나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대아(大我)는 곧 무아(無我)인 것이다.



그러면 소아(小我)는 어떤 것인가? 6,7척에 불과한 이 육신만이 나이고 그 밖의 것은 자기와 상관없는 남으로 생각하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만이 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재산이 아무리 많이 있다 하더라도 빈궁함을 면할 도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천만인 속에 있어도 고독감을 면할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남이요, 나는 일개의 자기 몸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경지에서 생활할 것인가 물으면 누구나 대아경지에서 생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들 말한다. 대아경지에서 외계를 관찰할 때에는 남녀 차별도, 노소도, 생사도, 열반도, 종교도, 원근도, 선악도, 시비도, 극락도, 천당도, 사바도 일체 차별의식이 끊어진 진성의 세계이다.



세계도 인류도 유정무정(有情無情)도 우주 만유가 모두 자신인데 그 세계에 조물주가 어디에 있겠는가? 자신을 지배하는 자성(自性)이 바로 진아(眞我)이며 조물주이다.



我生汝生하고 我死汝死라고 한 보조국사의 말씀은 자성을 발견할 때에 자기 자신이 생사를 초월하면 우주 만유가 동시에 생사를 해탈하기 때문에 '내가 살면 너도 산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미시(迷時)에는 주객이 분리되고 오시(悟時)에는 주객을 초월하여 격외인(格外人)이 되는 것이다.





O 생사고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을 찾아 깨치는 그 순간에 육도고해가 사라진다. 중생들은 육도고해가 따로 존재한 것으로 착각하지만 몽중(夢中)의 시계도 실존인 양 착각하였다가 잠을 깨면 환상으로 인식하듯이 마음이 어리석으면 환상을 실존으로 착각하였다가 마음을 깨달으면 환상 세계는 자취도 없다. 절대불변인 실성(實性)을 깨달은 사람의 안목에서는 우주의 대진리를 곧바로 인식하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초월하고 시공도 초월해서 유무에 거리낌이 없으니 이것을 해탈이라 한다.





O 태어나되 태어남이 없고 죽되 죽음이 없으며

있지 아니하되 있고 없지 아니하되 없음이라.



유무가 무애(無碍)하고 범성(凡聖)이 무이(無異)하고 미오(迷悟)가 불이(不二)하니 선악이 무근(無根)이라, 사바와 극락이 일여하고 생사와 열반이 동화(同和)하고 이(理)와 사(事)가 무분별한 것이 열반심이며 대자재심이며 대해탈심이며 최상승심이다.





O 우주만유가 성주괴공(成住壞空)을 하는 듯하나 그 근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 변하지 않는 원리 가운데 또한 삼라만상이 벌어지니 이것을 일체유심조라 한다. 하기에 사람마다 모두 조물주요 절대자이면서도 자기 자신의 본성을 매각(昧却)했기 때문에 성주괴공 속에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다. 비단 사람뿐이랴! 항하사 미진수세계에 진진찰찰이 불생불멸 부증불감하니 그것을 무량수 무량광이라 한다. 그러면 그 근본 자체란 무엇인가?



자성은 사바와 극락의 차별이 없고 본심은 바로 아미타불이네

금색상은 위의를 나툴 뿐 무량한 광명 속에 끝없는 부처로세.





O 사람은 누구나 대법기(大法器)가 되기를 희망한다. 사람마다 이 몸을 운전하는 주인공이 있는데 그것을 일러 마음이다, 넋이다, 영혼이다, 본래면목이다, 얼이다 라고 하니 이것은 모두 다 이름일 뿐이다. 실제와는 상관없는 대명사이니 명상(名相)을 떠나서 자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물으면 육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으니 공한 것이 아닌가라고 답한다. 그러면 물질이 아니라서 잡을 수 없으니 허공이겠는가? 허공이 선악이나 시비를 판단할 수 있는가? 허공은 무기체이기 때문에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러면 소소영영하게 아는 그 한 물건이 무엇인고? 다시 말하면 이 몸을 운전하는 주인공은 무엇일까? 명사를 떼고 나니 마음도 아니요, 깨치지 못했으니 부처도 아니요, 주고받지 못하니 물건도 아니요, 허공이 선악을 알 수 없으니 허공도 아니다. 이와 같이 네 가지로 부정하고 나면 필경에 그 한 물건은 무엇일까? 의심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 뭣고(是甚麽)?'라는 화두인 공안이 성립된다.



이 화두선은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라, 큰 의심에 큰 깨달음이 있나니 의심 없는 것이 큰 병이 된다. 옛날 중국 당나라 때 조주라는 스님은 고불화현이라 칭송하였는데 어느 날 한 납자가 와서 조주 스님께 물었다.

"저 개에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스님은 "무(無)"라는 답하였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조주스님은 무엇 때문에, 어째서 '무(無)'라고 하였는고? 참구하고 참구하라. 조주수님의 '무(無)'자는 있다, 없다 하는 '무(無)'가 아니다. 그리고 참으로 없어서 '무(無)'라 말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 어째서 또 무슨 까닭에 '무(無)'라 하였는고? 조주 스님이 '무(無)'라고 말로 표현하기 이전에 무슨 생각이 있어서 '무(無)'라 하였는고? 여기에 착안하여야 한다.



이 '무(無)'자 화두를 깨치면 조주 스님과 같은 고불이 될 뿐만 아니라 삼세제불과 역대조사와 시방보살이며 천하 선지식과 함께 파수공행하느니라. 이와 같이 깨쳐서 완전무결한 인격을 이루는 것이 인간 최고의 행복이요 인간과 천상의 사표가 되는 길이다. 옛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한낱 '무(無)'자는 한 덩어리 불과 같아서 가까이 가면 얼굴이 확 타버린다' 하였으니 이 말이 과연 무슨 말일까?

O 일체 중생이 악을 행하면서 약인 줄을 모르기 때문에 갈수록 악업이 깊어져서 악도에 떨어지건만 일체 중생은 생처(生處)로 위락(爲樂)이라. 모든 중생들은 자기가 태어난 곳을 즐거움으로 삼기 때문에 악도를 벗어날 기약이 없을 뿐 아니라 더욱더 길어진다.

무정물(無情物)도 보라. 풀 한 포기를 뽑아 던져도 뿌리가 내리고 움이 돋으며 나무를 한 그루 잘라 내 버려도 흙이 있는 부분에서는 뿌리가 내리고 나무둥제에서는 새싹이 돋는다.  

생에 대한 애착은 인간과 모든 생물이 다를 게 없다. 그러기에 육신을 무시할 것은 아니나 육신만이 '나'라고 그릇 집착하고 있는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가치관을 상실하고 있을 뿐 아니라 뭇 동물과 차이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 점을 자세히 생각하여 진아를 깨칠 수 있는 길을 선택하여 전제전능한 우주의 대진리를 포착하고 깨달아 필경 무위진인(無爲眞人)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시방에서 중생들을 제도하고 대법왕(大法王)의 과를 증득하여 무여열반을 수용하도록 노력할 때 올바른 인간의 길을 가게 된다.

O 한 평생을 산다 하나 호흡은 순간이다. 명재일식지간(命在一息之間)이라. 사람의 목숨이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있으니 어찌 무상치 않은가? 어느 것을 '나'라 하며 믿을 곳이 어디인고? 곰곰이 생각하고 진정한 안심처를 찾으려면 선(禪)의 길을 결택하라.

좌선을 하고자 면벽관심(面壁觀心)을 할 때에 화두가 없이 눈을 감고 모든 번뇌를 끊으려고 앉으면 망상이 한없이 일어난다. 망상을 끊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반대로 더욱 치열하게 일어나는 것이 마치 풍랑처럼 더욱 번거로워져 오히려 큰 병이 된다. 

화두는 팔만사천 번뇌망상을 제거하는 청룡보검이며 명약이다. 마음도 부처도 물건도 허공도 아닌 한 물건이 '이 무엇인고?'라고 참구하라. 이와 같이 생각할 때에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목마른 이가 물을 찾듯이, 어린애가 어머니 젖을 생각하듯이, 늙은 부모가 삼대독자를 생각하듯이,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닭이 알을 품듯이 간절하게 생각해야 한다. 

참선을 하는 사람도 지혜롭게 마음의 당처(當處)를 반조하며 화두를 의심하다가 끝코를 잡을 시가가 도래하면 화두에 중량이 생겨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놓을래야 놓아지질 않는다. 또 자리에 한번 앉으면 하루가 순간이고 하룻밤 역시 잠깐이다. 그때는 몸이 허공에 뜬 것 같고 지구도 있는지 없는지 모를 지경이며 몸은 허공을 나는 것처럼 가벼워진다. 그런 때는 화두를 생각하려고 노력을 아니하여도 저절로 화두가 성성하게 들린다. 화두를 버리려고 하여도 버려지지 않고 저절로 성성히 들린다. 

O 공(空)인 줄 깨친 사람은 세간사가 모두 환몽임을 깨치고 발심하여 수도의 길을 찾아간다. 자기의 기능을 따라 수도하여 진아를 깨달으니 보배가 본래 스스로 구족하였음을 알았다.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널리 일체 중생을 살펴보니 여래의 온갖 지혜와 덕성을 본래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이미 구족하였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성불하지 못할 까닭이 무엇인가? 다만 자기 스스로 하지 않을지언정 하지 못한다고 말하지 말아라. 그래서 사원(寺院)이다, 총림이다 하는 수도도량은 참된 인간을 만드는 대장간이다. 다시 말하면 범부를 용광로에 제련하여 성인을 만들어 내는 불뭇간이다. 

O 범부가 처음 발심했을 때는 닦을 것도 있고 증득할 것도 있으나 대각(大覺)하면 닦을 것도 없고 또한 증득할 것도 없다.

이곳에 이르면 성품이 본래 둘이 아니기 때문에
범성이 둘이 아니며
미오가 둘이 아니며
노소가 둘이 아니며
생사가 둘이 아니며
원근이 둘이 아니며
고저가 둘이 아니며
또 유정무정이 둘이 아니니라.

이런 고로 어떤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근원에 돌아가면 산하대지 온 누리가 다 비로자나불의 청정법신인 것이다. 그러기에 대각은 각무소각고(覺無所覺故)로 미무능미(迷無能迷)라, 깨달았으되 깨달은 바가 없고 미했어도 미한 바가 없나니 이 이름이 여래청정선이며 또한 평등성지(平等性智)이다. 

O 만일 어떤 이가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보아라.
   모두가 이 마음의 조작이니라. -화엄경-

  과거의 부처님은 이미 갔고
  미래의 부처님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현재의 부처님은 어디에 가서 찾을 것인가?  

  마음 밖에 따로 부처없고
  부처 밖에 마음 없나니
  자심을 깨달으면 
  눈앞에 산 부처님 나타나리라.  

2020/08/26

希修 | '영성'? '깨달음'?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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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 '영성'? '깨달음'? '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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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깨달음', '道' 같은 단어들은 그야말로 텅 빈 기표가 된 것 같다. 말하는 이마다 뜻하는 바가 각기 다르고, 때로는 그저 신비주의만 풍길 뿐 자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본인조차 설명을 못 하기 때문. 그런 것들이 상식이나 논리의 차원을 초월하기에 언어만으로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해도 설명이 아예 '불가능'하다면, '벌거벗은 임금님의 멋진 옷' 같은 詐欺나 환상/망상과 어떻게 구분하겠는지. 그래서 나는, 어디까지나 나의 현재 이해 수준에서의 초기불교 관점을 소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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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심리가 어떤 상태인지, 기가 몸안 어디서 어떻게 막혀 있는지, 어느 하늘나라에 어떤 용이 있는지 등을 보는 것을 '得道'라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도, 한 번 재배하고 나면 땅의 힘을 소진시켜 몇 년간 땅을 쉬게 해야 한다는 인삼을 아침 저녁으로 챙겨 먹어 가며 건강/젊음에 집착하는, 마치 보톡스 중독자의 젊음 집착과도 전혀 다르지 않은 자기 자신의 그 이기적 욕심은 보지 못 한다. 신통력은 '선정' (정신의 집중으로 인한 고요함)에 수반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side effect일 뿐이고 '지혜'와는 무관하다고 초기불교는 분명하게 못을 박고 있건만, 예외적인 감각이나 질병 치유 능력을 이들은 '영성'/'지혜'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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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이들은 자기 내부의 '참 나'를 찾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얘기하는데, 결국 인도 베다전통에서 말하는 브라만-아트만이 그 뿌리. 대승불교에서는 이것을 '불성'이라고 단어만 바꿨고. 각 개인이 神의 '일부' (일부라고는 하지만 프랙탈 개념)인데 자신이 神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기에 그 망각만 일깨우면 된다는 얘기. 그렇기에 Advaita 혹은 Nondualism이라고도 불리는 전통에서의 '수행'이라는 것은 '이승에 국한된 자아인 ego'가 하는 모든 생각을 비우고 'I am'을 되뇌임으로써 잠자고 있는 神性을 깨우는 것. 그리고 이런 철학을 이어 받은 뉴에이지는 미국에서 자기계발과 결합하여 "너는 신이기 때문에 너 자신의 감정을 신뢰해야 하고, 너는 신이기 때문에 니가 스스로를 믿기만 하면 며칠 안에 백만장자도 될 수 있다!"는 '복음'을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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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초기불교에서의 '깨달음'이란, '팔정도' (초기불교에서 '道'는 팔정도를 가리킬 뿐 '대자연의 신비/섭리'가 아님)의 전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사실임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즉, '부처님은 이렇다고 했는데 진짜 그런지 안 그런지 어디 한 번 보자'의 단계를 지나 '아~ 이래서 부처님이 그런 얘기를 하셨구나! 그게 바로 이 얘기였구나! 이제 보니 진짜네!'하고 direct knowledge를 얻는 것을 말한다. 45년간 부처님이 남긴 가르침을 '사성제'라는 단어로 대표하기도 하고, 그러나 가장 핵심 교리는 '12연기'이기에, "사성제를 깨닫는다", "12연기를 깨닫는다"고 해도 틀린 얘기는 아닌데, 암튼 중요한 것은 현상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 전체를 '재발견' 혹은 '확인'하는 것 - 단순히 '논리적 이해'에서 그치지 않고. 다시 말해, 신비적인 게 전혀 아니라는 얘기다. (당신의 가르침은 "쥔 주먹"이 아니라 "편 손바닥" 같은 것이어서, 비밀스러운 것도 신비적인 것도 없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Direct knowledge까지 얻고 난 후! 모든 관념과 노력마저도 놓는 것은 '강의 건너편인 해탈에 다다랐으니 이제 뗏목에서 내림'인 것이고. (무조건 생각/이성을 놓으라고 말하는 다른 전통들과 달리, 아직 강의 이쪽편에 있으면서 무작정 생각부터 놓으면 축생으로 윤회할 뿐이라고 아비담마는 가르친다.) 요약하여, 선정의 도움을 받아 '지혜를 계발'( =탐진치 감소)해 나가다 보면 direct knowledge를 거쳐 해탈하는 것이고, 신통력은 지혜나 해탈과는 별개라는 것이 초기불교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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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崔明淑 and 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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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in Kang

명쾌합니다! 아직도 불교 공부하려면 한자를 잘하고 불교한자를 제대로 익혀야한다고 믿는 분들이 태반이니... 한국어로 초기불교 소개하시는 분들도 결국 한자어에 의존 안 할수는 없는 노릇이거든요

2020/08/23

03 불교평론 초기불교의 사상·윤리성에 비추어 본 한국불교 / 김종명



불교평론
초기불교의 사상·윤리성에 비추어 본 한국불교 / 김종명
특집-현대 한국불교의 비판적 성찰


[17호] 2003년 12월 10일 (수) 김종명 jmk@ysu.ac.kr




1. 머리말

“머리 깎은 스님이나 부처를 믿는 신도나 부처님 말씀을 모르고 있다.”

1967년 해인사 초대방장으로 취임한 성철(1912∼1993) 스님의 사자후다.1)1) 〈성철 스님 《백일법문》으로 겨울나기〉, 〈중앙일보〉 2003년 11월 22일(27면).

나2)도 이 견해에 동의하며, 이 점은 여전히 한국불교계의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불교는 부처가 경험한 다양한 형태의 삶의 산물로서 인간 삶의 진단, 고통의 원인 및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 인생교육시스템이었다. 2) ‘필자’보다 책임성이 강조된 개념이며, 국내의 일부 학계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한국 역사상 기복신앙으로서의 불교전통’3)은 그 수입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내려 왔으나, 인생교육시스템으로서의 ‘초기불교’4)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현실적 삶에 대한 경험적 분석을 토대로 하여 성립된 불교의 기본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3) 이 전통은 최근 ‘기복불교’란 개념으로 칭해지고 있다. 기복불교의 비판론에 대해서는 《불교평론》 7호(2001년 여름호), 9호(2001년 겨울호), 14호(2003년 봄호) 관련 부분 및 홍사성 〈기복신앙은 불교가 아니다〉, 《불교와 문화》 1·2호(2002) 참조. 기복불교를 옹호한 데 대해서는 〈법보신문〉 2002. 3. 13 등 참조. 이 글에서의 기복불교에 대한 논의들은 주로 이 자료들에 의하였다.

따라서 나는 이 글을 통해 한국불교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사유체계와 삶의 양식으로서의 초기불교의 성격에 대한 바른 알음알이와 그 실천화가 중요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현대의 한국불교계를 진단하고, 국내외의 불교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분석한 후, 이를 바탕으로 사상과 윤리로서의 불교와 그 현대적 중요성을 검토하기로 한다.

한국불교의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한국불교가 가진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그것이 부처의 말씀과 어떻게 어긋나는지 근거를 제시한 후 해결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으며,5) 사상·윤리6)로서의 초기불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이 글의 주제와 관련, 몇 차례에 걸쳐 견해들을 발표해 왔다. 따라서 이 글은 나의 기존 견해들에 대한 종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여기서의 ‘초기불교’는 부처와 그의 제자들의 가르침을 뜻한다. 초기불교의 가르침, 생활, 수행법 등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특집 - 초기불교를 다시 본다〉, 《불교평론》 14호(2003년 봄호) 참조.
5) 박영록, 〈‘기복불교를 말한다’를 말한다〉, 《불교평론》 9호(2001년 겨울호). 6) 여기서의 ‘사상’은 ‘사회 및 인생에 대한 일정한 견해’를, ‘윤리’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의미한다. 이들 각각의 개념에 대해서는 이숭녕 감수, 《새국어대사전》 (서울: 한국도서출판중앙회, 1997), p. 586

2. 한국불교계 진단

1) 한국불교의 현재
한국 역사상 전개된 불교의 중요성은 역사적·문화적·교육학적·철학적 측면 및 한국학의 세계화 등의 다방면에서 찾을 수 있다.7) 7) 김종명, 〈21세기와 한국불교〉, 《불교연구》 제7집(서울: 한국불교연구원, 2000), pp.259∼303.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불교학의 연구 수준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며,8) 한국사회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상대적 위상 및 현대 한국의 여론 주도층 중 불교 관련 인사가 차지하는 비율도 상당히 낮다.9) 한국인들은 복을 받고 태어나서, 복을 빌며 살다가, 복을 비는 마음으로 죽는다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을 받고, 복을 누리는 것에 대해 운명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여기에는 인과응보의 사고가 밑바탕에 깔려 있으며, 많은 사람들은 이를 불교사상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10) 8) 김종명, 〈한국불교학계의 연구활동: 분석과 평가〉, 《종교연구》 제27집(2002년 여름), pp.87∼118. 9) 김종명, 〈국제대학원과 한국학의 세계화〉, 《국제한국학회지》 제2권(1997), pp.179∼182. 10) 황인규, 〈기복불교는 왜 생겨났는가〉, 《불교평론》 7호(2000년 여름호).

이런 현상은 우리의 일반 학계, 승단 및 세속 세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의 한국불교계는 제사 만능주의를 표방하여 부처의 비판을 받은 그 당시의 브라만교를 방불케 하고 있는 것이다.11)11) 유동호, 〈기복주의를 넘어 공덕주의로〉, 《불교평론》 7호(2001년 여름

결과적으로, 불교는 기복 위주의 ‘종교’로만 간주된 채 인문교양교육에서도 별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불교학도 국내학계의 주변학문으로 밀려나 있다. 이는 현재 세계불교학계를 리드하고 있는 국가의 하나인 미국의 경우 인문학의 한 분야로서의 불교학 연구가 특히 1980년대 이후 ‘폭발적 성장’세를 보여 온 현상12)과는 아주 다르다. 12) 김종명, 〈국내 불교학 연구의 방향〉, 《철학사상》(2000. 11) 111호, p.70.

더욱이 불교 개념들인 ‘홍익인간’과 ‘원융무애’를 교육이념으로 채택하고 있는 나의 재직 대학교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도 불교는 종교이며, 이 대학교 교양교과목 편성의 한 원칙인 종교성 배제의 원칙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불교 관련 교과목은 교양교과목이 되기에는 부적절하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불교종단의 고위 행정직을 역임하고 있는 승려들과 사찰의 승려들도 기복신앙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부채질까지 하고 있으며, 현대 한국 불자들의 대부분도 복을 빌기 위해 절에 나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13) 13) 홍사성, 2002.

따라서 비불자들 중 상당수도 불교를 개인 차원의 기복종교로 생각하는 경향이 적지 않으며, 심지어는 무속과 같은 차원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14) 불교에 대한 이러한 왜곡된 시각의 원인은 무엇인가? 14) 한명우, 〈기복불교의 실태와 문제점〉, 《불교평론》 7호 (2001년 여름호).



2) 원인 분석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원인은 다양하다. 초기불교의 자연관, 인생관, 세계관은 각각 사대설, 업보설, 십이처설이다. 그러나 한국불교는 사상적으로 이러한 초기불교를 이은 것이 아니다. 한국불교는 초기부터 중국 고유의 자연관, 인생관, 세계관인 풍수지리설·조상숭배설·천견재이설(天譴災異說)에 사상적 토대를 둔 채15) ‘기복불교’로 자리매김 되어 왔으며, 대내외적으로도 왜곡 이해된 역사를 가졌다. 15) 김종명, 《한국중세의 불교의례: 사상적 배경과 역사적 의미》(서울: 문학과지성사, 2001), pp. 206∼272. 나는 한국불교의 정체성 문제와도 직결된 이 주장에 대한 학계의 반응을 기대해 왔으나, 아직 별 반응이 없다.

대내적으로는 현실과 타협한 승단의 정치적 예속, 과거 중국불교 전통의 묵수적 수용,16) 근대 일본 불교학계의 연구 성과에 대한 무비판적 계승,17) 현대 한국승가 교육과정의 문제,18) ‘불립문자’에 대한 오해, 교리에 대한 무지19) 등에서, 대외적으로는 왕실에 의한 기복종교화, 유학자들에 의한 허무의 종교 및 비도덕적 종교로의 잘못된 이해,20) 근대 서구 선교사들에 의한 미신으로의 곡해, 근대 교육과정 수립시 구시대의 유산으로 치부된 점 등이 그 이유들로 나타난다. 

16) 카마다 시게오(鎌田武雄) 지음, 장휘옥 역, 《중국불교사》(서울: 장승, 1993), p. 21. 이러한 경향은 국내의 중국사 연구 및 의학계의 연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에 대해서는 각각 김태승, 〈중국근대사 인식의 계보와 유산〉, 한국사연구회 엮음, 《20세기 역사학, 21세기 역사학》(역사비평사, 2000), 82쪽 및 이종찬, 〈동서 의학의 문명사적 비교〉, 영산대학교 제6차 한의학 학술대회(2003. 11. 7) 발표논문, pp.15∼16 참조. 따라서 비판문화의 부재는 국내 동양학계의 일반적인 경향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17) 국내 불교학계에서는 화엄사상과 정치권과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해 왔으나, 이것은 근대 일본 불교학계의 연구성과를 답습한 결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최연식, 〈화엄철학은 어떻게 일본의 정치이데올로기가 되었는가〉, 《불교평론》 6호 (2001년 봄호) 참조. 18) 김종명, 〈현대사회와 승가교육〉, 《한국불교학》 제28집(2001), pp.485∼518. 19) 조준호, 〈기복불교는 불교인가〉, 《불교평론》 7호(2000년 여름호). 20) 김종명, 〈퇴계의 불교관: 평가와 의의〉, 《한국인의 원류를 찾아서》, 퇴계 탄신 500주년 기념 계명 한국학 국제학술대회 논문집(2001. 9. 16∼20), pp.59∼78. 김종명, 〈불교쟁론 23: 주자의 불교 비판〉 상·하, 〈법보신문〉 1999년 10월 13일∼20일 (12면).


그러나 이러한 외부적 원인들도 내부적 원인의 산물로 간주되므로 현대 한국사회에서 한국불교가 가진 낮은 위상의 궁극적 원인은 불교계 내부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한국 역사상 바람직한 인생교육을 위한 사유체계로서 출발한 불교의 진면목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결과로 생각된다.

특히, 기복불교는 역사상의 한국불교를 사실상 특징지워 온 가장 중요한 개념이었다. 이는 한국불교의 문제점들이 종합적으로 나타난 현상인 동시에 한국불교를 낙후시킨 대표적 병폐기도 하며,21)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의 최대 걸림돌로 인식되어 온 지도 오래다. ‘통불교’ 개념22) 및 ‘법통설’23)과 더불어 한국불교의 특징적 개념으로 간주되어 온 ‘호국불교’24) 개념도 기복불교 개념의 외연적 확장에 다름 아니다. 21) 〈불교포럼: 기복불교의 대안〉, 〈현대불교〉 불기 2545[2001]. 9. 19. 22) 이 개념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대해서는 심재룡, 〈한국불교는 회통불교인가〉, 《불교평론》 3호(200년 여름호) 및 Jaeryong Shim, “On the General Characteristics of Korean Buddhism-Is Korean Buddhism Syncretic?” in 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 Vol. 2 (1989), pp.147∼157 참조. 이 개념에 대한 긍정적 시각에 대해서는 이봉춘, 〈회통불교론은 허구의 맹종인가〉, 《불교평론》 5호(2000년 겨울호) 참조.
23) ‘법통설’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에 대해서는 박해당, 〈조계종의 법통설에 대한 비판적 검토〉, 《철학사상》 제11호 (2000. 12), pp.43∼62. 길희성, 〈한국불교 정체성의 탐구: 조계종의 역사와 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종교연구》 제2집(2000), pp.159∼193 참조. 24) ‘호국불교’ 개념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김종명, 2001, pp.277∼286. 김종명, 〈‘호국불교’ 개념의 재검토-고려 인왕회의 경우〉, 《종교연구》 제21집(2000년 가을), pp.93∼120. Benard Senecal, “On Writing a History of Korean Buddhism: A Review of Books,” in Korea Journal(Spring 1997), pp.154∼177. Jong Myung Kim, “Chajang (fl. 636∼650) and ‘Buddhism as National Protector’ in Korea: A Reconsideration,” in Religions in Traditional Korea, ed. Henrik H. Sorensen, SBS



따라서 유교의 경우 종교로의 자리매김이 현대 한국에서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25)되고는 있으나, 나는 불교가 종교로만 간주되고 있는 점이 인문학으로서의 불교의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기본법상의 제약 때문이다. 교육기본법(敎育基本法, 제정 97. 12. 13 法律 第5437號) 제1장 總則에서는 종교교육의 범위를 다음과 같이 한정시키고 있다. 제4조 (교육의 기회균등)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제6조 (교육의 중립성)
2항: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학교에서는 특정한 종교를 위한 종교교육을 하여서는 아니된다(시행일 98. 3. 1).

교육기본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각자가 믿는 종교에 관계없이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으나, 국공립학교에서의 특정 종교교육은 금지되고 있다. 나름대로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교육업무를 추진하고 있는 선진 외국의 교육기관들과는 달리, 국내의 국공립학교에서 시행되는 교과과정들은 사립학교에서도 답습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법에 따라 국공립학교에서 특정 종교가 교수되지 않는다는 것은 종립학교 이외의 사립학교에서도 종교는 가르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은 국내의 대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일반 교육 현장에서 특정 종교를 교수할 수 없는 국내의 교육 현실 속에서 불교가 종교로 정의되고 있는 점은 인문학으로서의 불교가 교육과정에 포함되지 못하게 된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26) 26) 김종명, 〈21세기와 한국불교〉(2000), pp.266∼267.

따라서 나는 무엇보다도 현대 한국사회에서 인생교육체계로서의 불교의 중요성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부처의 가르침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선행된 후, 그것의 한국에서의 역사적 변천에 대한 검토가 이어질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불교의 성격을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불교에 대한 오해는 곧 불교의 성격에 대한 오해의 산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3. 불교의 성격 검토

불교의 성격은 무엇인가? 철학인가? 종교인가? 양쪽 모두의 성격을 가진 것인가? 그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인가? 위의 물음들은 일견 진부해 보일지도 모르나, 적어도 현대 한국이란 지역에 한정시킬 경우 아주 중요하면서도 근본적인 것이다. 한국에 소개된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불교는 기복종교로 간주되어 왔을 뿐, 부처의 가르침은 한국 역사상 대중화되지 못한 가운데 불교의 성격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우리의 학계에서나 승단에서 별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교의 성격에 대한 해석과 관련, 국내외의 견해들을 살펴보고, 이 견해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시도해 보자.

1) 국내의 경우
국내에서 불교는 크게 승단과 학계를 통해 수행 및 연구되고 있으며, 불교학계는 다시 종립대학교와 비종립대학교로 구분된다. 이들 집단 간의 불교의 성격에 대한 시각은 다르다. 조계종으로 대표되는 한국 승단에서 불교는 기복종교로 간주되는 경향이 절대적이며, 동국대학교를 비롯한 종립대학교의 경우도 불교는 신앙 우선, 학문 그 다음이란 차원에서 취급되고 있다.

반면 비종립대학교에서는 학문, 특히 철학의 한 분야로 간주되고 있으며,27) 불교에 관심을 가진 국내의 일부 서양철학자들도 이러한 입장에 서 있다. 또한 비불교 전공자에 의한 불교 교육도 상당한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불교의 성격과 관련,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승단과 종립대학교의 역할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일반 대중들로 하여금 불교를 기복종교로서만 인식하게 하는 한 근본 요인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27)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경향은 서양의 학문계로부터 역풍이 분 결과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Robert E. Buswell, Jr., The Zen Monastic Experience: Buddhist Practice in Contemporary Korea(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2), p.71 및 로버트 버스웰 지음, 김종명 옮김, 《파란 눈 스님의 한국선 수행기》(서울: 예문서원, 2000), p.99 참조.


2) 서양의 경우
과거 서양에서도 불교는 종교란 편견과 철학이란 편견이 동시에 존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서양에서 불교를 종교의 틀로만 보려는 견해는 중세 이후 기독교를 철학 및 과학과 적대시하여 종교로만 국한시켜 온 버릇에 기인한다.

또한 세계 불교학 연구의 초기에 해당하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불교학 연구는 형이상학적 개념 분석에 치중하였으며,28) 이를 수입한 일본 불교철학계도 이 전통 위에 서 있었다. 한국불교계는 일제시대를 통하여 이러한 일본의 학풍을 다시 수입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한국 불교철학계의 전통이 되었다. 28) 형이상학적 개념 분석에 치우친 점은 한국의 동서양철학계의 공통점이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김종명, 〈한국 역사에 나타난 대표적인 논쟁 학설들의 철학적 분석〉, 《한민족과 2000년대의 철학》①, 한민족철


‘Religion’의 번역어로서의 ‘종교’의 3요소인 신, 경전, 신자에 바탕을 둔 이러한 주장은 서구의 기독교에 기준을 둔 것이었다. 따라서 불교를 비롯한 아시아 종교와 많은 원시종교를 배제한 결과를 가져왔다. 불교가 기존의 종교란 틀 속에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의 경우 불교는 일차적으로 기복종교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사상도 시대적 산물이란 대전제에 비추어 볼 때, 과거의 기복불교 전통이 현대에도 그대로 수용되어야 할 당위성은 없다. 오히려 그것은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기복이라는 종교행위는 초기불교의 입장에서는 성립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연기설과 그것에 바탕을 둔 업설 때문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복을 빌어야 할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의 행위이기 때문에 사실상 불교에는 복을 빌 대상이 없다. 또한 불교의 중심교리에는 주술이나 기도로써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르침도 없다. 학자들이 이 시기의 불교야말로 인류 종교사에서 가장 비판적, 지성적, 이지적, 합리적, 계몽적 종교라고 한 이유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29)29) 조준호, 2000.


소수의 지식층들이 활동하던 과거에는 대부분의 비지식층 대중을 위한 방편설로서의 기복 강조도 나름대로는 시대적 타당성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까지도 이러한 경향은 지구촌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프리카, 아시아처럼 사회적·경제적 박탈감이 강한 국가일수록 그에 대한 심리적 보상 차원에서 종교에 기대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 문맹률 측정을 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인들의 지식수준이 높아진 현대에서까지 기복신앙이 불교신행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따라서 유럽 및 북아메리카 등 서구 선진국일수록 기독교 신자가 감소하고 있는 점30)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30) 박정호, 〈부자 나라 기독교 쇠퇴 뚜렷〉, 〈중앙일보〉 2003년 11월 5일 31) 반면, 미국의 불교인들 중 대부분은 유럽계 백인, 고학력 중년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성별 차이도 크지 않다. 〈불교신문〉 불기 2547(2003)년 11월 26일 참조. 32) 김종만, 〈기복불교 옹호론의 문제점〉, 《불교평론》 14호(2003년 봄호).

현대 한국사회의 불자들은 40대 이상, 여성, 비전문인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31)

길어야 20∼30년 후, 이들을 이을 다음 세대를 위한 한국불교계의 대안은 무엇인가? 중등교육이 이미 의무화되었으며, 고교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현대의 한국에서 여전히 기복불교 선양에만 열을 올릴 것인가? 이는 한국불교계의 생존 전략으로서도 부적절하다. 오히려 포교 차원에서도 초기불교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종교다원주의 시대인 현대에서 근본주의적 관점에 서서 초기불교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현대의 한국불교가 불교의 근본 가르침과 배치되고 있기 때문이다.32)

불교를 철학으로 이해하면서, 형이상학적 개념 분석에 치중해온 서구의 불교학 연구 전통은 불교의 수행면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을 간과하였다. 불교의 중요 교학들은 철학적·논리적 사유의 산물이 아니라, 참선 경험의 산물이다. 이 점은 불교가 합리적·관념적 분석을 중시하는 서양의 철학적 사유구조와 다른 이유다. 불교 텍스트의 내용들이 수행의 목표를 위한 방편설이란 점을 간과한 것이다.33) 33) Sungtaek Cho, “Rethinking Current Buddhist Studies in Korea,” in Collection of Papers of the 9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Korean


더욱이 대부분의 불교이론들도 그렇게 오래된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이론들 자체에 대한 연구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또한 불교와 서양철학은 각각의 독특한 문화적, 역사적 특징을 가지고 전개된 사유체계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 사유적 전통에 의해 다른 사유 전통을 평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불교는 단순히 철학의 영역이나 종교의 영역에만 속한다고는 할 수 없다. 불교는 이성과 논리를 강조하는 서양철학과는 달리 삶의 양식과 신념 체계를 동시에 의미하는 사상체계34)이며, 불교에서의 이 두 영역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초기불교의 성격과 관련하여 현대의 세계불교학계에서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도 불교는 철학적 요소와 종교적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35)34) 서구에서는 최근 이러한 사유체계를 ‘ethnophilosophy’란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35) Frank E. Raynolds and Charles Hellisey, “Buddhist Religion, Culture, and Civilization,” in Buddhism and Asian History, Joseph M. Kitagawa and Mark D. Cummings, ed. (New York: Macmillan


4. 사상·윤리로서의 불교

초기불교의 핵심 사상들은 사성제·연기설·사대설·오온설·십이처설·삼법인설·팔정도 등이며, 이 이론들은 철학의 일반적 관심사인 존재론·인식론·윤리론뿐 아니라, 서양철학에서는 결하고 있는 수증론(修證論)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불교는 깨달음의 철학이며, 해탈의 종교로서 철학적으로는 실재론과 운명론을 극복하면서 구체적 현실에 대한 바른 알음알이를 통해 합리적으로 사는 방법을 제시하였으며, 종교적으로는 도덕적 덕목을 강조한 인간 중심의 윤리적 교육체계로서 고행주의와 쾌락주의를 극복한 가르침을 제시하였다.

1) 사상으로서의 불교
사성제의 일부, 연기설·사대설·오온설·십이처설·삼법인설은 사상으로서의 불교를 잘 표현하고 있는 이론들이다.

사성제는 인생 진단(苦), 인생 현실의 원인(集), 인생의 목표(滅), 바람직한 삶의 방법(道)에 대한 이론으로서 불교의 총체적 가르침이다. 이는 곧 인생교육시스템이며,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바른 생각과 바른 행위다. 특히 ‘고’와 ‘집’은 철학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고’는 인간의 삶 자체가 고통이라는 인생에 대한 부처의 진단 결과를 지칭하는 용어다. 인생을 통하여 누구나 상대적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기쁨의 순간도 경험하게 되는데, 인간 삶 전체를 고통으로 보는 시각은 자칫 허무주의에 입각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오해의 산물일 뿐이다. 불교가 제시하는 고통의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육체적·정신적 고통뿐 아니라, ‘불만족’도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통하여 경험하게 되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명한 것이지만, ‘불만족’을 고통의 내용으로 포함시킨 것은 불교만의 특징이다. 인생살이를 통한 기쁜 경험도 일시적이며, 그것이 달성된 후엔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을 지속적으로 바라는 것이 일반적 인생사란 점에서 기쁨의 경험도 고통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삶을 초래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 ‘집’의 개념으로 나타나며, 그 내용은 무분별한 욕망이다. 불교에서의 욕망은 존재의 본질과 현상에 대한 무지, 즉 무명의 산물로 간주되어 극복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욕망이 부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부정의 대상은 잘못된 인식의 결과로 인한 무분별한 욕망이며, 올바르고 정당한 욕망은 오히려 긍정된다. 불교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무명 상태의 인간은 잘못된 언설적 개념화에 의해 탐·진·치의 삼독으로 대표되는 잘못된 욕망을 일으키고, 이러한 욕망에 의해 이기적 행위를 포함한 잘못된 행위를 하게 되며, 그 결과 고통을 받으며 산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목표는 이러한 무명의 타파와 욕망의 극복을 통해 존재의 본질과 현상에 대한 바른 알음알이를 얻어 마음 속의 번뇌가 없어지게 된 상태에 이르는 데 있는데, 이러한 마음의 자유 상태를 열반 또는 해탈이라 한다.

연기란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준말이며, 그 뜻은 모든 현상은 수많은 1차 원인(因)과 2차 원인(緣)의 결합에 의해 생긴다는 것, 즉 모든 존재는 서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성 속의 존재라는 것이다. 존재들 사이의 상호관계성을 강조한 이론인 연기설은 사성제와 함께 불교의 핵심 사상을 이루고 있으며, 부처도 ‘법(현상, 세계)을 보는 것은 연기를 보는 것이며, 연기를 보는 것은 법을 보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연기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없어지므로 저것도 없어진다.” 이 이론은 현대 물리학계로부터도 상당한 설득력을 인정받고 있다.

사대설은 존재의 물질적 구성 요소에 대한 이론이며, 모든 존재는 흙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공기(혹은 바람)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피부·살·머리카락·발톱 등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고, 혈액과 체액 등은 물로 환원되므로 각각 흙의 요소, 물의 요소로 구성된 것으로 본 것이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대사열 및 체온 등은 불의 요소, 날숨과 들숨 등은 공기의 요소로 간주된 것이다. 이 설은 불교 이전 인도의 존재 구성 요소설에 입각한 것으로서 현대의 과학적 지식에 비추어 보면 초보적인 분석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여전히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오온설은 불교의 인간관이며, 인간은 오관(눈·귀·코·혀·몸)으로 대표되는 물질적 요소(色)와 일련의 정신작용, 감수작용(受)·인식작용(想)·의지작용(行)·판단작용(識)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것이 그 내용이다. 감각기관과 대상 사이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감수작용 단계에서는 대상에 대한 좋음, 좋지 않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음의 세 가지 중 한 가지 작용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대상에 대해 호감을 가질 경우, 정신작용은 그 다음 단계인 인식작용으로 진행되게 된다. 여기서는 대상의 특징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게 되며, 그 결과가 긍정적일 경우, 그 대상에 대한 욕망이 일어나는 의지작용 단계를 거쳐, 소유 결정에 이르는 판단작용에 이르게 되며, 이는 곧 행동으로 나아가게 됨을 의미한다.

이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사대로 구성된 오관을 통해 사물을 받아들이고, 일단 받아들인 후에는 일련의 정신작용을 거쳐 행동을 하는 존재란 것이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작용은 항상성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그것들에 집착함으로써 갖가지 고통을 초래하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이 이론을 통해 인간에 대한 바른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란 말은 우주, 자연, 대상, 객관을 뜻하며, 불교에서는 인간 인식의 모든 대상이 되는 존재로서 법(法, dharma)이라고 표현된다. 불교의 세계관은 인간이 객관대상으로서의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며, 이는 십이처설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존재론적 물음에 대한 사유체계가 아니라 인식론적 사유의 산물이다.36) 36) 불교의 세계관에 대한 더 상세한 설명은 김종명, 〈불교의 세계관〉, 《求道》 (1997. 5), pp.7∼12 참조.


십이처설은 눈, 귀, 코, 혀, 몸, 마음(意) 등 6근과 인간의 감각기관인 오관의 대상과 마음의 대상인 세계(法)인 6경의 관계에 대한 이론이며, 그 핵심은 ‘인식 없이 세계 없다’는 것이다. 객관 대상인 세계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관에 의해 인식되는 대상일 뿐이란 것이다. 그러나 오관 스스로가 각각의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란 점은 아주 중요하다. 일례로, 특정 대상을 주시하고 있더라도, 의식 없이 그것을 봤을 경우에는 무엇을 봤는지를 기억할 수 없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오관을 기능케 하는 ‘그 무엇’을 일컬어 억지로 마음, 의, 의식 등등으로 지칭하였으며,37) 마음은 인간 존재와 세계의 근원인 동시에 모든 인간 행동의 원천으로 간주된다. 즉 세계는 나의 마음의 산물(一切唯心造)이란 시각이며, 마음을 통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불교의 세계관은 서양의 신(神) 중심적 세계관 및 유교의 형이상학적 세계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현대에서도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론이다. 37) 교학불교와 선불교를 포함함 불교역사상 마음에 대한 다른 명칭은 수십 가지가 넘는다.


삼법인설은 존재에 대한 속성론으로서 불교만이 가진 독창설이다.

그 내용은 (1) 모든 존재란 시간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諸行無常). 모든 존재는 생멸을 반복하기 때문이며, 오온으로 구성된 인간도 예외는 아니란 것이다. (2) 모든 존재는 공간적으로도 실체가 없다는 것(諸法無我)이다. 이 이론은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 중의 하나로서 존재의 본질과 참모습에 대한 바른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불교 흥기 당시 인도의 정통종교였던 브라흐만교엔 없었던 것이다.

불교에서는 사람들이 보통 자신, 혹은 영혼 등의 한 부분은 적어도 변치 않는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상정된 영원한 자아에 묶인 삶을 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존재에 대한 무집착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이론은 자아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 아니라 ‘참 자아’를 찾게 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3) 정신적, 육체적 즐거움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존재(一切皆苦)란 것이다. 인생살이를 통해 인간이 겪게 되는 대표적인 고통은 4고(태어남·늙어감·병듦·죽음)로 표현되며, 이것의 확대된 형태는 8고(태어남·늙어감·병듦·죽음·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싫어하는 이와의 만남·원하는 것을 얻지 못함·오온에의 집착)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의 의미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한 데 있다. 일반적으로 범부들은 존재의 현상에 집착하여 판단을 내리고, 이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통을 겪게 되므로 존재의 본질에 대한 관심은 이러한 어려움을 줄이거나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불교의 주요 사유체계들은 불교의 존재론·인식론 및 세계관을 대표하는 것들이며 인간의 의지, 즉 ‘마음’을 모든 존재의 근본으로 본 데 그 핵심이 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기복적 요소는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복도 잘못된 마음의 산물이며, 그 속성도 영원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에 따른 건강한 삶을 살 때, 복은 부수적으로 따른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상식적일 것이다.

이들 초기불교 교학들은 후대에 전개된 부파불교 전통의 대표적 학파들인 상좌부·대중부·설일체유부, 대승불교 전통의 중관학·유식학, 한국불교를 비롯한 동아시아불교 전통의 화엄종·천태종·선종·정토종 등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을 포함한 역사상의 불교전통에서는 주인공인 불교의 내용보다는 부수적인 ‘방편설’이란 이름의 기복신앙이 주인 자리를 차지해 왔다.

이 점은 반성적 시각에서 비판의 대상이 될지언정 더 이상 묵수나 추종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기복불교란 기치 아래 ‘부처 팔아 밥 빌어먹는’ 일은 이제 불식되어야 한다. 이 점은 한국 역사상 시대별 대표 승려들이었던 원효(元曉, 617∼686), 지눌(知訥, 1158∼1210), 휴정(休淨, 1520∼1604),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이 질타했던 일이기도 하다.

2) 윤리로서의 불교
불교에서는 인간 행동의 범주를 몸에 의한 행동(身業), 입에 의한 행동(口業), 뜻에 의한 행동(意業)의 3가지로 분류한다. 따라서 불교윤리의 목표도 이 삼업의 청정화에 두고 있으며, 특히 의업은 모든 행위의 근원으로 간주되어 가장 중요시 된다. 불교의 윤리성은 사성제 중의 네 번째 가르침인 팔정도에서 잘 나타난다. 팔정도는 계·정·혜의 삼학으로 구성된 바람직한 삶의 방법을 제시한 것으로서, 특히 계의 항목들―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직업, 바른 정진―은 불교 윤리의 기초가 되었다. 후대에 전개된 5계·8계·10계 및 이삼백여 가지에 달하는 비구(니)계 등의 기원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대소승불교 전통에서도 계율은 깨달음만큼 중요시되었으며, 계율은 깨달음의 하위 개념도 아니었다. 특히 대승불교권에서 잘 알려진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는 윤리로서의 불교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와 도림선사(道林禪師, 741∼824)의 대화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송나라에서 1004년에 편찬된 《경덕전등록》에 전하는 이 게송의 내용은 “모든 악은 짓지 말고, 선을 중시해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뜻을 맑게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諸惡莫作 重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란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 불교는 곧 윤리적 가르침이었으며, 그 핵심은 마음 수행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부처는 자신의 교설의 목적을 행복(열반)을 얻는 데 두고 있었으며, 삼독을 없애는 것도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서, 이는 곧 도덕의 완성을 의미하였다. 윤리로서의 불교는 자기 자신의 본질에 대한 확신이란 철학적 기초 위에서 자리이타를 지향하는 윤리론을 체계적으로 전개하였으며, 그 핵심은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데 있다.

칠불통계게의 핵심도 단순히 악을 멈추고 선을 행하라는 윤리적 교훈으로서보다는 청정한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한 데 있으며, 그것이 바로 불교의 본질임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윤리로서의 불교도 바른 마음가짐에 의한 바른 행동을 강조하고 있을 뿐 기복을 중요시하고 있지는 않다.

3) 현대적 중요성
불교의 철학적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제시한 합리적 세계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처는 사회의 변혁과 인류 공동의 행복이 개개인의 올바른 세계관과 이에 근거한 삶의 양식의 변화에 의해 달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자아변혁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38) 38) 안옥선, 《불교윤리의 현대적 이해: 초기불교윤리에의 한 접근》(서울: 불교시대사, 2002), pp.103∼105.


이 점은 기존의 동서양의 세계관과는 아주 다르지만, 합리적인 것이다. 세계란 형이상학적 실재인 신의 창조물이란 시각이 서양의 전통적 세계관을 구성하고 있었다면, 동양 성리학의 세계관은 세계 존재 이유로서의 이치와 다양한 만물이 생기기 이전의 태초의 세계를 ‘있다’고 보는 믿음 위에서 전개되었다. 이러한 세계관은 분석적·합리적·구체적 관점에 서 있다기 보다는 실유론적·형이상학적·사변적 시각에 입각한 것이었다.39) 39) 김종명,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하여: 그 동양철학적 모색〉, 황필홍 외, 《새로운 공동체를 찾아서》(서울: 한맥, 1997), pp.115∼147.


그러나 불교의 세계관은 형이상학적 실재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본질에 대한 확신에 기초를 두고 있다. ‘사유 없이 존재 없다’는 십이처설의 메시지는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불교 세계관의 현대적 중요성은 기존의 동서양철학이 가진 존재론적 한계성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점에서 살필 수 있다. 이는 곧 불교의 윤리학적 특징으로도 이어진다.

현대의 종교는 윤리적 요인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더욱 넓게 정의되고 있으며, 이 점에서는 불교를 포함한 전통도 종교로 간주되고 있다.40) 연기론적 존재론과 상황윤리론을 바탕으로 한 불교윤리의 현대적 중요성은 현대 윤리학이 직면해온 합리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윤리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40) Mircea Eliade, ed., Encyclopediea of Religion, vol. 11 (New York: Macmillan Publishing Company, 1993), p. 283.


윤리학의 근본과제는 인간 행위의 옳고 그름, 선과 악을 판별하는 보편적 기준을 확보하려는 데 있다. 동양의 윤리는 유가 윤리로, 서양윤리는 기독교 윤리로 대표되어 왔다. 그러나 기존의 동서양 윤리론은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한계성을 가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것은 양자의 윤리론이 각각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인 천명·신의 뜻·이성을 윤리의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의 성리학은 윤리적으로는 이기이원론을 인간의 삶에 적용시켜 도덕적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려 하였다.

성리학의 인간관은 인간을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봄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강조한 데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성리학의 도덕적 형이상학도 더 이상 그 가치를 지속시킬 수 없게 되었다. 서구 근대 윤리학은 이성의 입장에서 도덕 판단의 보편적 원리를 확립하고자 노력해 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으며, 합리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것은 인간 행위의 선과 악, 옳고 그름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합리적이고도 보편적인 이유와 근거, 기준과 원칙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으며, 윤리적 상대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41)41) 길희성, 〈현대 윤리학의 위기와 상호의존의 윤리〉, 《西江人文論叢》 第11輯(2000. 1), p.53.


그러나 불교의 연기적 상호의존의 윤리는 기존의 전통적 도덕 실재론들과 차별화되며, 또한 존재론적 근거도 갖고 있다. 어떤 행동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에 대한 불교의 기준은 그 행동이 자신이나 남, 혹은 양쪽 모두에게 해가 되느냐, 아니냐와 열반을 얻는 데 방해가 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으며, 인간 스스로가 자기 행동의 책임자로 간주된다.

이러한 특징은 기존 동서양의 형이상학적 윤리관이 가진 현실적 딜레마로부터 하나의 탈출구를 제공해주고 있으며, 인도철학사와 종교사에서 불교가 남긴 가장 큰 공헌 중의 하나도 자아와 같은 증명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실재를 가정하지 않고 윤리론을 전개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불교는 감정과 이성을 동시에 중요시하고 있는데, 지계(持戒)를 통한 바른 감정이 없으면, 지혜도 얻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감정에 바탕을 둔 유럽의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나 흄(David Hume, 1711∼1776)의 경험론, 이성에 기초한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이성론의 한계도 극복한 것으로 간주된다.42)42) Damien Kewon, The Nature of Buddhist Ethics(New York: St. Martin’s Press, 1992), p.108.


불교윤리는 상황윤리란 점에서도 기존의 윤리론과 그 성격을 달리한다. 부처는 당시의 다른 사상가들처럼 특정 행위는 특정 결과를 낳는다고 보지 않았다. 브라흐만교에서는 범신에 대한 제사만을 선업으로 간주하였으며, 부처 당시의 육사외도들은 숙명적 인생관을 주장하고 있었다. 또한 자이나교는 업의 절대적 법칙성을 강조하였으며, 우파니샤드 철학자들은 자아가 행위자며, 결과를 받는 자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인간의 행동은 세 가지 요인인 외부 자극(접촉 등), 의식적 동기(삼독 등), 무의식적 동기(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마음 등) 중의 하나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그것은 같은 행동이라도 환경이 다를 경우 결과도 달라진다고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존재들을 과거의 업으로 해석한 결정론자들과는 달리, 부처는 업을 존재 결정의 한 요소로 간주하면서, ‘행위는 윤회의 밭, 의식은 씨, 욕망은 수분’으로 비유하였다.43) 43) David J. Kalupahana, Buddhist Philosophy, A Historical Analysis(Honolulu: The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76), pp.44∼51.




즉 행위의 효과는 행위 자체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으며, 행위자의 상태, 행위 환경 등의 다른 요소들도 관계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행위자의 의식이다. 이러한 사유체계는 현대의 실정법 체계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을 가지고 있다.

불교의 연기적 인간관은 전통사회의 공동체적 인간관계가 지닌 폐쇄성과 배타성뿐 아니라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근대 서구 사회의 인간관계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을 극복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것은 개인주의와 폐쇄적 공동체주의,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우주적 공동체를 지향하기 때문이다.44) 44) 길희성, 2000, pp.51∼72.


따라서 불교의 상호존중성과 포용성은 현대의 다원주의 사회에서도 보편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45) 인간의 삶과 자연 존재를 동시에 중요시하는 불교의 사유체계는 환경문제가 지구촌의 초미의 관심사가 된 현대에서 환경생태학46) 측면에서의 기여도도 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45) 안옥선, 2002, pp.143∼168. 46) 불교와 생태학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불교문화연구원, 《불교와 생태


5. 맺음말

과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불교는 기복불교로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 산물일 뿐 인간 스스로와 그들의 삶에 대한 바른 알음알이 얻기와 그 실천에 중점을 두었던 초기불교의 가르침과도 다른 것이다. 불교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부처의 가르침 자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역사적 산물로서 전개된 한국불교에 대한 검토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현대 한국에서도 불교는 기복 위주의 종교로만 간주된 채, 인생교육체계로서의 불교의 존재는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의 철학적·윤리적 가르침들은 형이상학적 존재론에 바탕을 두고 전개된 동서양의 철학계와 종교계에 새로운 대안으로 간주되고 있다. 또한 불교는 현실적이고도 실용적인 가르침47)이다. 따라서 불교의 성격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현대 인류의 삶의 질적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 불교계에 남겨진 과제로 생각된다. 47) 안옥선, 〈‘불교와 불교학의 실용성’에 대한 한 생각〉, 《불교평론》 13호(2002년 겨울호).

인간의 가치는 노력과 수양과 행동에 있는 것으로서 종성(種姓)의 문제는 수도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부처와 그 제자들의 요지였다.48)
48) 기무라 다이켄(木村太賢), 박경준 역, 《原始佛敎思想論》(경서원,

근대 한국의 대표적 선승이었던 만공(滿空, 1876∼1946)도 승려의 기준은 겉모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에 대한 앎에 있음을 강조하였다.49)

무엇보다도 불교에 대한 기본 지식의 함양은 가장 시급한 과제다. 불립문자는 문자적 지식에 대한 절대적 의존성을 경고한 말이지 불교교리 자체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한국승단에는 이를 잘못 해석하여, 문자는 마귀며, 승려로서 교학을 공부하는 자는 지적 알음알이에 묶인 사람이라는 식의 인식이 팽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당연히 불식되어야 한다. 앎이 없는 실천은 위험할 뿐 아니라 정혜쌍수를 강조해온 한국불교 전통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대학을 비롯한 고등교육기관들은 객관성과 보편성을 가진 인류의 관심사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학문의 전당이며, 종립대학들도 이 대전제 위에 서 있다. 따라서 그 일차적 관심도 불교신앙이 아닌 불교학에 두어야 할 것이며, 그 학문적 성과는 현대 한국사회에 회향되어야 할 것이다. ■

김종명
UCLA 철학박사(불교학전공), 현재 영산대학교 조교수(문화관광 전공). 논저서로 《한국중세의 불교의례: 사상적 배경과 역사적 의의》, Encyclopedia of Buddhism(공저), 《논쟁으로 보는 불교철학》(공저), 《파란 눈 스님의 한국선 수행기》(역서), 〈원효와 지눌의 수증론 비교〉 등이 있다.


알라딘: [전자책] 카르마 경영의 6가지 원칙 윤홍식

 알라딘: [전자책] 카르마 경영의 6가지 원칙


카르마 경영의 6가지 원칙  epub

윤홍식 (지은이)봉황동래2020-07-27


종이책 페이지수 532쪽, 


책소개


카르마 경영의 6가지 원칙을 실천함으로써 어떠한 삶의 역경도 경영할 수 있다는 것을 소개한 책이다. 독자들이 카르마 경영의 달인이 되어, 인생의 고통을 이겨내고 운명을 창조하는 데 큰 지혜와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


<홍익보살의 길>

대승보살도 선언문

홍익보살 선언문

홍익보살의 길

홍익보살 실천지침 14조

대승보살의 참선법, 6바라밀선禪

카르마 경영의 6가지 원칙

6바라밀선禪의 구체적 실천법

보살의 길, 6바라밀의 실천법

에고의 찬가

참나와 현상계

한 생을 넘어선 큰 안목으로 보살도를 하자

존재의 목적


<참나를 밝히는 길>

모든 선禪은 대승선의 방편일 뿐이다

진정한 열반이란 무엇인가?

초간단 견성법

최상승선의 비결

우리는 본래 열반이다

지금 여기

몰입의 9단계

즐거움 속에 명상에 들어가는 방법

6바라밀선禪으로 견성하기

참나에게 믿고 맡기는 삶

6바라밀선禪은 불성의 향연

1급과 1단

영성의 1급과 1단의 실체를 밝히다

1급과 1단의 실체와 영성연구방법론

화엄 10지, 보살이 닦아 가는 길


<운명을 바꾸는 길>

양심전문가가 되어라

양심적 가정?조직의 경영을 위한 6가지 점검 사항

나와 세상을 바꾸는 6바라밀 양심혁명

6바라밀 양심캠페인과 정신문명의 도래

매 순간 자명함을 따르는 삶

6바라밀로 가정을 경영하라

먼저 주변부터 밝히는 것이 보살의 길

종교의 어두운 그림자

6바라밀을 총동원하여 독서하기

참회와 6바라밀

작은 일부터 바로잡아라

받아들임의 지혜

모든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길


<부록>

5분 명상

10분 명상

몰입의 4단계

불교의 4선정四禪定과 멸진정滅盡定

5가지 화두

10가지 견성의 인가 기준

6바라밀과 6도윤회

지상정토 게임(MMORPG) 즐기는 법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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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장

우리의 목표는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에 드는 것이 아니다.

P. 69~70 ‘통증’의 신호가 건강을 지켜 주듯이, ‘찜찜함’의 신호는 우리의 양심을 지켜 줍니다. 각각의 항목에 대해 양심에 찜찜한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를 잘 관찰하다 보면, 자연히 양심이 보내는 자명함과 찜찜함의 신호에 민감해지게 됩니다.

P. 102 우리가 괴로운 것은 오직 ‘6바라밀’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6바라밀만 잘 돌아가면 절대계에서 처방이 척척 나오니, 현상계의 어떤 난관도 모두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리를 하지 않아도 우리 내면의 불성이 알아서 해결하기 때문에, 우리는 6바라밀만 잘하면 됩니다. 그러니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신통은 6바라밀을 잘하는 것입니다.  접기

P. 220 양심(보리심)의 소리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선정바라밀), 양심의 소리를 이해하고(반야바라밀), 이를 진심으로 수용하고(인욕바라밀), 이를 구현하려고 노력할 때(나머지 바라밀)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나와 남의 이익을 모두 고려한 답이 나오고, 그러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나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는 최선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접기

P. 345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고, 여러분이 스스로 분쟁이 있는 곳에 가서 해결해 줄 수 있는 양심전문가가 되십시오. 악이나 욕심이 판을 치는 곳에 여러분이 투입되면, 양심세력이 힘을 얻고 욕심세력이 힘을 잃게 되는 그런 전문가가 되세요. 어느 곳에 있든지 양심을 따르면 여러분은 성스러워지고 고귀해질 것입니다.

P. 412~413 짧은 시간 안에 올바른 답을 빨리 찾아내려면, ‘몰입력’을 통해 고도로 활성화된 뇌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몰입을 잘하더라도 머리가 빨리 돌아가지는 않는다면 그 집중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없겠죠. ① 호흡으로 ‘체력’을 기르고 ② 깨어있음으로 ‘집중력’을 기른 다음에는 ③ 양심분석으로 ‘집중사고력’을 길러야 합니다. 자명한 판단을 빨리빨리 내리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죠.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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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윤홍식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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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당 대표이며,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홍익당 후보로 출마하였다. 동서양 인문학의 핵심을 참신하면서도 알기 쉽게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 인기 있는 젊은 철학자이자 양심경영 전문가이다. 3,500여 개의 인문학 강의 조회 수는 5,100만을 돌파하였고, 구독자 수는 7만2천여 명에 달한다.

연세대학교 사학과 및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한 후 홍익학당, 홍익선원, 출판사 봉황동래를 운영하고 있으며, 견성콘서트·고전콘서트·참선캠프 등을 열고 있다. BBS에서 수심결 강의를 진행했고, 동국대 불교학과 및 춘천 삼운사, 태고종, 원불교 등의 초청으로 ‘견성과 6바라밀, 대승불교’를 주제로 강의를 하였다. 그 밖에도 삼성·LG 등 일반기업과 법무부·중소기업진흥청·우정청 등 공공기관에서 고전을 통한 윤리교육과 양심리더십 교육을 맡았으며, KBS·EBS·BBS 등 방송 매체에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WBS원음방송에서도 “정신을 개벽하자” 특강 시리즈를 강의하였다. 다양한 강의를 통해 견성과 보살도, 6바라밀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으며, 국민 전체의 인성교육을 위하여 『양심노트』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저서로는 『화엄경, 보살의 길을 열다』 『한국 큰스님에게 배우는 禪의 지혜』 『선문답에서 배우는 선의 지혜』 『카르마 경영의 6가지 원칙』 『양심이 답이다』 『5분 몰입의 기술』(2009년 문화체육부선정 우수도서) 『인성교육, 인문학에서 답을 얻다』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윤홍식의 수심결 강의>,<카르마 경영의 6가지 원칙>,<화엄경, 보살의 길을 열다> … 총 30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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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삶을 올바른방향으로 가기위해서 꼭 지침서가 되는 책입니다

독서가좋아여 2019-05-0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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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는 이제 알았는데 실제 삶은 기대만큼 잘 풀리지 않는다 싶은 사람들에게는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고, 영성 초심자에게는 참나 각성의 기초부터 쉬운 접근법을 차근차근 소개하는 책이다. 기다려오던 책!

김경민 2019-04-20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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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니 윤홍식샘 유투브 목소리 그대로 들리는 듯 생생하더군요..


인류역사상 진리 철학 존재 해탈 자유 도덕에 대해 이리도 자명하게 풀어서 중생들이 보다 손쉽게 실천력을 기르게 해주시는 분이 또 잇을까 이 책을 보면서 끊임없는 탄성이 절로 나왓습니다.


정성 가득한 선물받는 감동을!!

유노모 2019-05-1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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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2

무아 - 아트만, 아나트만(Anātman), 아나딴(Anattan)

 무아 - 산스크리트로 아트만에 대비되는 말


개설
만물에는 고정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나〔實我〕가 없다는 뜻으로 
범어(梵語)로는 아나트만(Anātman), 팔리어(Pali language)로는 아나딴(Anattan)이다. 

무아(無我)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뒤 최초로 설파한 가르침이다. 
석가모니 이전의 인도사상에서는 상주(常住)하는 유일의 주재자로서 참된 나인 아트만(ātman)을 주장하였으나, 석가모니는 아트만이 결코 실체적인 나〔我)〕가 아니며, 그러한 나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내용
무아설은 아트만을 불변의 실체로 인정하는 기존의 인도 사상과는 구별되는 불교 고유의 주장이다. 
그러나 고정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아(我)는 부정하면서도 아트만의 상주설(常住說)과 함께 인도 사상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윤회설을 수용하고 있다. 
불교의 시각에서 윤회란 실체로서 존재하는 나〔我)〕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범부의 그릇된 인식으로서 존재하는 나〔我)〕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무아윤회(無我輪廻)’라고 부른다.

불교의 무아윤회는 윤회의 주체로서 중유(中有: 사람이 죽은 후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의 시간) 개념을 상정하였으며, 대승불교의 유식학(唯識學)에 이르러 아뢰야식(阿賴耶識: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으로 대체되었다.

구사론(俱舍論)에서는 ‘중유의 상속’ 또는 무상(無常)한 ‘오온(五蘊: 色․受․想․行․識)의 상속’으로써 윤회가 성립된다고 주장한다. 즉 중유라는 개념이 윤회의 주체를 연속시키며, 이것이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업력(業力: 선악의 행위가 남기는 잠재력) 또는 잠세력(潛勢力: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어있는 세력)의 상태로 있는 오온이다. 결국 중유의 상속에 의한 윤회는 ‘온갖 번뇌와 업에 의해 오염된 온(蘊)에 의한 윤회’를 의미한다.

아뢰야식을 장식이라 하여 인간의 심층의식으로 상정하였던 유식학에서는 아뢰야식을 윤회의 주체로 보았다. 이는 기존의 상속이론보다 진전된 무아설의 일환이다. 아뢰야식은 업의 잠세력을 의미하는 습기(習氣)일 뿐이며 바로 이 점에서 그것은 무아적 존재이다.

불교의 무아설은 ‘나〔我)〕’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실천적 의미를 담고 있다. ‘나’라고 하는 실체가 존재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는 불교 수행자에게는 무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무아는 제법무아(諸法無我)라는 이름 아래 설명되었고, 무아의 생명은 무아의 실천이나 무아행(無我行)이라고 하는 실천적인 면에서 살아 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고정성이 없는 무아이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무아성을 자각하여 수양하고 노력함에 따라 역경을 극복하여 더욱 향상할 수 있음을 뜻하고 있다. 그러므로 불교의 이상인 열반은 무아성의 자각 아래 철저하게 무아행이 이루어질 때 나타나는 경지이다. 이 무아는 일반적으로 크게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로 나누어 설명되는데, 신라의 원효(元曉)는 그의 여러 저술에서 명쾌한 해석을 가하였다.

원효는 인무아를 외도(外道)나 범부(凡夫)들의 견해를 타파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외도나 범부는 몸과 마음을 한결같이 주재하는 영구불변의 주체가 있다고 보고 이를 ‘나〔我)〕’라고 하나, 우리의 몸과 마음은 오온이 가정적(假定的)으로 화합해 있는 것일 뿐, 특별한 주체라고 인정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인무아’라고 한다고 하였다.

법무아는 소승(小乘)의 수행자들이 갖는 그릇된 집착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은 모든 대상의 법에 대하여 실아(實我)가 있고 실법(實法)이 있다고 그릇 생각하여, 갖가지 현상들에 대하여 상주하고 실재하는 것으로 인정하지만, 실은 모두가 인연의 화합으로 생긴 가법(假法)일 뿐, 따로 그 현상들을 있게끔 하는 법아(法我)가 없는 까닭에 ‘법무아’라고 한다고 하였다.

또 실천적인 면에서 볼 때 무아는 무소득(無所得)과 무가애(無罣碍)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 무소득이란 집착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我〕와 자기 소유물〔我所〕에 대하여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고정불변할 것을 원하여 이를 집착하게 된다. 이와 같은 아집(我執)과 아소집(我所執)이 없는 것이 무소득이다. 무가애는 무애(無碍)라고도 하는데, 장애와 정체됨이 없이 자유자재한 것이다. 이것은 무소득의 무집착이 진전하여 완성된 상태를 가리킨다.

의의와 평가

불교사에서 볼 때 무아라는 말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차차 공(空) 또는 공성(空性)이라는 말로 바뀌어 사용되었고, 선종(禪宗)에서는 무(無)라는 말도 무아의 뜻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원래 아집(我執)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했던 무아의 가르침은 뒤에 어떠한 것도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가르침으로, 마침내는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립의 소멸과 해탈로 발전되어 갔다.

참고문헌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원효)
『윤회의 자아와 무아』(정승석, 장격각, 1999)
『불교개설(佛敎槪說)』(무진장, 홍법원, 1980)
『불교학개론(佛敎學槪論)』(김동화, 보련각, 1954)

출처
제공처 정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
[네이버 지식백과] 무아 [無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무아 [ anātman , no-self , 無我 ]

구분
철학용어
관련문헌
밀린다팡하

불교철학에서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이다. 
무아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나(自我)”라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무아는 연기(緣起), 공(空), 무상(無常) 등과도 긴밀히 연관되는 개념으로, 연속적이며 불변의 실체로서의 자아를 부정한다. 
따라서 부단히 변화 중에 있으며, 어느 정도 독립적인 기능을 하는 현상으로서의 자아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정되는 것이다.

이름이나 명칭은 그 대상을 변화하는 사물로서가 아니라, ‘고정된’ 사물로, 그리고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결합체가 아닌 실체라고 믿게 하는 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격적 개체’라는 표현 뒤에 ‘육체 속에 존재하는 영원불변한실체’라는 간과하기 쉽지만 의미심장한 단서가 따라다니게 되는 것이다. 즉 부단히 변화 중에 있으며, 어느 정도 독립적인 기능을 하는 현상으로서의 자아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이며 불변의 실체로서의 자아가 부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대상을 고유명사나 보통명사로 지칭하더라도 그것들의 연기적 성격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면 문제가 없다. 문제는 명사가 아니라, 그러한 명사를 사용하면서 우리가 취하는 심리적 태도인 것이다.

무아가 부정적인 표현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내용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염세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허무주의를 표방하는 것도 아니다.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한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온을 근거로 영속적이고 변치 않는 자아가 존재한다는 미망과 집착은 생각보다 오래되고 또 질긴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아 [anātman, no-self, 無我]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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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전

무아 [ 無我 ]

산스크리트어의 anātman 또는 nirātman의 역어(譯語). '무아'가 일반적이지만, 비아(非我)로 번역되는 경우도 있다. '아트만(ātman, 我)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은 불교를 다른 모든 철학사상으로부터 구별하는 특징이자 불교의 근본사상이다. 아트만은 인도의 정통적 철학의 여러 학파에 의해 실재라고 간주된 영원불멸의 본체이고, 고정적 실체이다. 불교에 의하면 모든 현상은 생멸(生滅) 변화하는 무상(無常)한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영원의 본체와 실체는 인식될 수 없다. 이것을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라 한다.

원시경전(原始經典)에는 오온무아설(五縕無我說)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색(色)은 무상(無常)이다. 모든 무상한 것은 고(苦)이다. 고(苦)인 것은 무아(無我, anātman)이다. 무아인 것은 사(私)가 아니다. 사(私)는 무아가 아니다. 무아는 사(私)의 아(我 : 아트만)가 아니다. 이처럼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보아야 한다'라고 설명하고,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에 관해서도 위의 정형구(定型句)에 의해 기술하고 있다. 무아설(無我說)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我)라고 생각하는 것 안에는 아무런 실체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지만, 실천 주체로서 자기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아(無我)라는 부정(否定)에 의해 자아에의 집착을 멸(滅)하고 그것을 초월함으로써 자기의 진실한 모습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이 무아설의 취지이다. 소승에서는 인간존재에 대해서 무아를 말하지만(人無我) 그것을 구성하는 법(요소)의 존재는 부정하지 않는다. 대승에서는 인간존재에 관해서는 물론 그것을 구성하는 법에 관해서도 그 실재성이 부정되고 '무아', 또는 '공'(空)으로 표현된다. 소승의 무아설을 '아공법유'(我空法有)라고 말하고 대승의 그것을 '아법이공'(我法二空) 또는 인법이공(人法二空)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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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전 2009. 책보러가기

본 사전은『세계철학사』독자들을 위한 사전으로 이 땅에서 자연과 사회 및 인간 사유의 일반적 발전 법칙을 탐구하여 올바른 세계관을 수립하고 인식과 실천의 과학적 방법을 연구
[네이버 지식백과] 무아 [無我] (철학사전, 2009., 임석진, 윤용택, 황태연, 이성백, 이정우, 양운덕, 강영계, 우기동, 임재진, 김용정, 박철주, 김호균, 김영태, 강대석, 장병길, 김택현, 최동희, 김승균, 이을호, 김종규, 조일민, 윤두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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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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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無我)는 산스크리트어 아나트만(अनात्मन् anātmananatman팔리어anattā) 혹은 니르아트만(nir-ātman)의 번역어로 비아(非我)라고도 한다. 불교의 근본 교의 중 하나로 처음에는 자기 소유물을 자기 것으로서 집착함을 금하는 실천적인 입장에서 주장되었다. 즉 고타마 붓다가 말한 무아(無我)는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연기에 의해 이루어진 제법(諸法), 즉 유위법(有爲法)을 실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실천적 의미를 가리킨다.[1]

후에는 영원독립하며 주재적인 자아(아트만)의 실재를 주장하는 브라만교의 교의에 반대하여 사람은 5온(五蘊)의 집합이요, 생명의 주체인 실아(실재로서의 자아)는 없고 또한 모든 존재는 인연으로써 생긴 것이며 고정적인 본성은 없다고 하는 무아설(無我說)을 주장하게 되었다.[2]

무아와 무아설[편집]

무아(無我)란 이론적으로는 고정적 · 불변적인 실체로서의 ("我 · 아트만")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타마 붓다가 말한 무아는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실체가 없는 것, 즉 연기에 의해 이루어진 제법(諸法), 즉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을 실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실천적 의미를 가리킨다. 즉, 유위법(有爲法)을 실체로 보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구체적인 수행, 즉 도제(道諦: 팔정도, 37도품, 6바라밀 등의 수행)가 실제로 열반(무위법)에 이르게 하는 길이지, '우주 시간적으로 또는 공간적으로 영원한가 아닌가? (我, 아트만)라고 하는 실체(무위법)가 육체(유위법)와 어떻게 다른가?' 등과 같이 실체(무위법)의 성격은 어떠한지를 논하는 십사무기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접근은, 마치 독화살에 맞은 상태에서 독화살과 독을 제거할 생각을 하지 않고 독화살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따지는 태도와 같아서, 고타마 붓다에게 있어서는 무의미한 것이었다.[1][3][4][5]

무아는 일반적으로 제법무아(諸法無我)라는 명제로서 설명되었고 불교의 근본진리라고 하는 연기설(緣起說)은 이 무아설을 기초로 조직되었다. 그러나, 불교로서의 생명은 무아의 실천이라든가 무아행(無我行)이라고 하는 실천면에 있에 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고정성이 없고("無我 · 무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無常 · 무상") 까닭에 우리들의 수양이나 노력에 의해서 역경을 극복하여 더욱 향상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이상(理想)인 열반(涅槃)은 이 무아행이 철저하게 이루어진 경지를 말한다.[1]

2무아: 인무와와 법무아[편집]

대승불교의 교의에서 무아는 크게 인무아(人無我, 산스크리트어pudgala-nairātmya)와 법무아(法無我, 산스크리트어dharma-nairātmya)의 2무아(二無我)로 나뉜다.

인무아(人無我)를 아공(我空)이라고도 하며 법무아(法無我)을 법공(法空)이라고도 한다.[6] 그리고 이 둘을 통칭하여 2공(二空)라고 하는데, 2공(二空)은 2무아(二無我)와 같은 뜻이다.[6][7][8] 2공(二空) 또는 2무아(二無我)를 아법2공(我法二空)이라고도 하며, 아공(我空)은 인공(人空)이라고도 하는데 이 때문에 인법2공(人法二空)이라고도 한다.[9] 2공(二空)의 교의는 초기 대승불교의 근본적인 교의 또는 사상이 되었다.

이치로서의 2무아[편집]

인무아(人無我)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아집(我執)에 대해,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견해 혹은 이치[6],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6]이다. 아집(我執)은 번뇌장(煩惱障)이라고도 하는데, 번뇌장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열반(또는 해탈)을 가로막아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하게 하는 장애라는 의미이다.[10][11]
법무아(法無我)
존재하는 만물 각각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법집(法執)에 대해, 유위법(有爲法)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실체로서의 자아는 없다는 견해 혹은 이치[6],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6]이다. 법집(法執)은 소지장(所知障)이라고도 하는데, 소지장은 참된 지혜, 즉 보리(菩提)가 발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의미이다.[10][12]

경지로서의 2무아[편집]

불교에서, 수행에 의해 깨달음을 성취해 간다는 입장에서는 2무아(二無我)는 실제로 증득될 수 있고 또한 증득되어야 하는 특정한 경지를 뜻한다.

예를 들어, 유가유식파의 경우, 이 종파의 소의 논서인 《성유식론》에 따르면 이무아(二無我) 중 인무아의 경지에 다다르면 아집인 번뇌장이 소멸되어 열반(해탈)이 성취되고, 법무아의 경지에 다다르면 법집인 소지장이 소멸되어 보리(반야 · 대지혜 · 완전한 깨달음)가 성취된다.[10][13]

성유식론》에서는 이와 관련된 수행 단계를 더 자세히 설명하는데, 크게 자량위(資糧位) · 가행위(加行位) · 통달위(通達位) · 수습위(修習位) · 구경위(究竟位)의 다섯 단계("오위 · 五位")로 나누고 있다.[14] 이 중에서 네 번째인 수습위는 다시 십지(十地)의 열 단계로 나뉘는데, 십지는 극희지(極喜地) · 이구지(離垢地) · 발광지(發光地) · 염혜지(焰慧地) · 극난승지(極難勝地) · 현전지(現前地) · 원행지(遠行地: 제7지) · 부동지(不動地) · 선혜지(善慧地) · 법운지(法雲地: 제10지)이다.[15] 《성유식론》에 따르면 아집인 번뇌장은 수습위의 십지 중 제7지인 원행지(遠行地)에서 완전히 제거되어 제8지부터는 아무아의 경지에 있게 된다.[15] 그리고 법집인 소지장은 수습위의 십지 중 제10지인 법운지(法雲地)에서 완전히 제거 될 수 있는데, 완전히 제거되면 다섯 단계("오위 · 五位")의 마지막인 구경위(究竟位)에 이르게 되고 해당 보살, 즉 대승불교의 수행자는 비로소 부처가 된다.[15]

유가유식파는 열반과 해탈은 동의어로 사용하는 반면, 열반과 보리는 용어를 구분해서 사용한다. 유가유식파의 문맥에서 열반(또는 해탈)은 아집인 번뇌장이 완전히 제거된 인무아의 상태를 의미한다.[13] 그리고 보리는 법집인 소지장이 완전히 제거된 법무아의 상태를 의미한다.[13] 《성유식론》에서는 열반을 진해탈(眞解脫: 참다운 해탈)이라고도 표현하며 보리를 대보리(大菩提: 큰 깨달음 · 완전한 깨달음)라고도 표현하고 있다.[10][13]

각주[편집]

  1. ↑ 이동: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교 > 불교의 사상 > 근본불교의 사상 > 무아",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  "세계 사상 > 사상 용어 > 동양사상 관계 > 불교 관계 > 무아",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3.  잡아함경(雜阿含經) 제16권 408. 사유경(思惟經) ② Archived 2007년 10월 26일 - 웨이백 머신》, 대정신수대장경, T2 No. 99, CBETA. T02n0099_p0109a29(00) - T02n0099_p0109b04(00).
  4.  잡아함경(雜阿含經) 제34권 962. 견경(見經) Archived 2007년 10월 26일 - 웨이백 머신》, 대정신수대장경, T2 No. 99, CBETA. T02n0099_p0245c02(04) - T02n0099_p0245c06(04).
  5.  중아함경 제60권 전유경(箭喻經) 제10 Archived 2007년 10월 8일 - 웨이백 머신》, 대정신수대장경, T1 No. 26, CBETA, T01n0026_p0804a26(00) - T01n0026_p0804a29(11), T01n0026_p0805b22(02) - T01n0026_p0805b27(03).
  6. ↑ 이동:      호법(護法) 등. 〈성유식론(成唯識論)〉. 현장(玄奘) 한역, 김묘주 번역. 《대정신수대장경》. 제1권,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동국역경원. 2쪽. 2011년 4월 3일에 확인함번역자 김묘주 주석: 두 가지 공[二空]은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이다. 아공(我空)은 인무아(人無我)라고도 하며, 유정의 심신(心身)에 상일주재(常一主宰)하는 인격적 실체[我]가 존재하지 않는 이치, 또는 그것을 깨쳐서 아집(我執)이 소멸된 경지를 말한다. 법공(法空)은 법무아(法無我)라고도 하며, 외계 사물은 자기의 마음을 떠나서 독립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이치, 또는 그것을 깨쳐서 법집(法執)이 소멸된 경지를 말한다.
  7.  〈二無我(이무아)〉. 《같은 책》. 2011년 4월 3일에 확인함.
  8.  운허. 〈二空(이공)〉. 《불교 사전》. 동국역경원. 2011년 4월 3일에 확인함.
  9.  星雲, "二無我". 2012년 10월 17일에 확인.
  10. ↑ 이동:    호법 등. 〈성유식론(成唯識論)〉. 현장 한역. 《대정신수대장경》. 제1권.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01a09(12) - T31n1585_p0001a12(10). 2011년 4월 3일에 확인함
    원문
    今造此論為於二空有迷謬者生正解故。生解為斷二重障故。由我法執二障具生。若證二空彼障隨斷。斷障為得二勝果故。由斷續生煩惱障故證真解脫。由斷礙解所知障故得大菩提。
    편집자 번역
    지금 이 논서를 저술하는 이유는 이공(二空: 두 가지 공)에 대해서 미혹하고 오류가 있는 사람들이 이공(二空)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공(二空)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 무거운 장애(二重障: 번뇌장과 소지장)를 끊기 위한 때문이다.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의 (두 가지) 집착으로 인해 이 두 가지 장애가 함께 일어난다. 이공(二空)을 증득하게 되면 그에 따라 이들 (두 가지) 장애도 끊어진다. (이들 두 가지) 장애를 끊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 뛰어난 과보(二勝果: 열반과 보리, 또는 해탈과 보리)를 얻기 위한 때문이다. (이것을 더 자세히 말하자면) 윤회하는 삶(生)을 계속되게 만드는 원인인 번뇌장(煩惱障)을 끊음으로써 참다운 해탈(眞解脫: 유식학에서 해탈은 열반과 같은 것이다)을 증득하게 되기 때문이며, 지혜(解: 앎 ·이해 · 지식)를 장애하는 소지장(所知障)을 끊음으로써 대보리(大菩提: 큰 깨달음 · 완전한 깨달음 · 출세간의 무분별지혜 · 무상정등보리 ·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용문=에 라인 피드 문자가 있음(위치 13) (도움말)
  11.  운허. 〈煩惱障(번뇌장)〉. 《앞의 책》. 2011년 4월 3일에 확인함.
  12.  운허. 장=所池障(소지장) 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86%8C%EC%A7%80%EC%9E%A5&rowno=1 장=所池障(소지장) |장url= 값 확인 필요 (도움말) |장url=은 제목을 필요로 함 (도움말). 《앞의 책》. 2011년 4월 3일에 확인함.
  13. ↑ 이동:    호법(護法) 등. 〈성유식론(成唯識論)〉. 《앞의 책》. 2쪽. 2011년 4월 3일에 확인함번역자 김묘주 주석: 아공의 도리를 깨쳐서 번뇌장을 끊으면 해탈, 즉 열반을 증득한다. 법공의 도리를 깨쳐서 소지장을 끊으면 곧 큰 깨달음[大菩提]을 성취해서 붓다가 된다.
  14.  호법(護法) 등. 〈성유식론(成唯識論)〉. 《대정신수대장경》. 제9권.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48b11(07) - T31n1585_p0048b15(06). 2011년 4월 3일에 확인함何謂悟入唯識五位。一資糧位。謂修大乘順解脫分。二加行位。謂修大乘順決擇分。三通達位。謂諸菩薩所住見道。四修習位。謂諸菩薩所住修道。五究竟位。謂住無上正等菩提。
  15. ↑ 이동:   〈성유식론(成唯識論)〉. 《같은 책》.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50c17(00) - T31n1585_p0051b07(01). 2011년 4월 3일에 확인함

    次修習位其相云何。頌曰。
     29無得不思議  是出世間智
     捨二麤重故  便證得轉依
    論曰。菩薩從前見道起已。為斷餘障證得轉依。復數修習無分別智。此智遠離所取能取。故說無得及不思議。或離戲論說為無得。妙用難測名不思議。是出世間無分別智。斷世間故名出世間。二取隨眠是世間本。唯此能斷獨得出名。或出世名依二義立。謂體無漏及證真如。此智具斯二種義故獨名出世。餘智不然。即十地中無分別智。數修此故捨二麤重。二障種子立麤重名。性無堪任違細輕故令彼永滅故說為捨。此能捨彼二麤重故便能證得廣大轉依。依謂所依即依他起與染淨法為所依故。染謂虛妄遍計所執。淨謂真實圓成實性。轉謂二分轉捨轉得。由數修習無分別智斷本識中二障麤重故能轉捨依他起上遍計所執及能轉得依他起中圓成實性。由轉煩惱得大涅槃。轉所知障證無上覺。成立唯識意為有情證得如斯二轉依果。或依即是唯識真如。生死涅槃之所依故。愚夫顛倒迷此真如。故無始來受生死苦。聖者離倒悟此真如。便得涅槃畢究安樂。由數修習無分別智斷本識中二障麤重故能轉滅依如生死及能轉證依如涅槃。此即真如離雜染性。如雖性淨而相雜染。故離染時假說新淨。即此新淨說為轉依。修習位中斷障證得。雖於此位亦得菩提而非此中頌意所顯。頌意但顯轉唯識性。二乘滿位名解脫身。在大牟尼名法身故。

    云何證得二種轉依。謂十地中修十勝行斷十重障證十真如二種轉依由斯證得。言十地者。一極喜地。初獲聖性具證二空能益自他生大喜故。二離垢地。具淨尸羅遠離能起微細毀犯煩惱垢故。三發光地。成就勝定大法總持能發無邊妙慧光故。四焰慧地。安住最勝菩提分法燒煩惱薪慧焰增故。五極難勝地。真俗兩智行相互違合令相應極難勝故。六現前地。住緣起智引無分別最勝般若令現前故。七遠行地。至無相住功用後邊出過世間二乘道故。八不動地。無分別智任運相續相用煩惱不能動故。九善慧地。成就微妙四無閡解能遍十方善說法故。十法雲地。大法智雲含眾德水蔽一切如空麤重充滿法身故。如是十地總攝有為無為功德以為自性。與所修行為勝依持令得生長故名為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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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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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Buddhism, the term anattā (Pali) or anātman (Sanskrit) refers to the doctrine of "non-self", that there is no unchanging, permanent self, soul or essence in phenomena.[1][2] It is one of the seven beneficial perceptions in Buddhism,[3] and one of the three marks of existence along with dukkha (suffering) and anicca (impermanence).[1][4]

The Buddhist concept of anatta or anatman is one of the fundamental differences between Buddhism and Hinduism, with the latter asserting that atman (self, soul) exists.[5][6]

Etymology and nomenclature[edit]

Anattā is a composite Pali word consisting of an (not, without) and attā (soul).[7] The term refers to the central Buddhist doctrine that "there is in humans no permanent, underlying substance that can be called the soul."[1] It is one of the three characteristics of all existence, together with dukkha (suffering, dissatisfaction) and anicca (impermanence).[1][7]

Anattā is synonymous with Anātman (an + ātman) in Sanskrit Buddhist texts.[1][8] In some Pali texts, ātman of Vedic texts is also referred to with the term Attan, with the sense of soul.[7] An alternate use of Attan or Atta is "self, oneself, essence of a person", driven by the Vedic era Brahmanical belief that the soul is the permanent, unchangeable essence of a living being, or the true self.[7][8]

In Buddhism-related English literature, Anattā is rendered as "not-Self", but this translation expresses an incomplete meaning, states Peter Harvey; a more complete rendering is "non-Self" because from its earliest days, Anattā doctrine denies that there is anything called a 'Self' in any person or anything else, and that a belief in 'Self' is a source of Dukkha (suffering, pain, unsatisfactoriness).[9][10][note 1] It is also incorrect to translate Anattā simply as "ego-less", according to Peter Harvey, because the Indian concept of ātman and attā is different from the Freudian concept of ego.[14][note 2]

Anatta or Anatma-vada is also referred to as the "no-soul or no-self doctrine" of Buddhism.[16][17][18]

Anattā in early Buddhist texts[edit]

The concept of Anattā appears in numerous Sutta(Pali)/Sutra(Sanskrit) of the ancient Buddhist Nikāya texts (Pali canon). It appears, for example, as a noun in Samyutta Nikaya III.141, IV.49, V.345, in Sutta II.37 of Anguttara Nikaya, II.37–45 and II.80 of Patisambhidamagga, III.406 of Dhammapada. It also appears as an adjective, for example, in Samyutta Nikaya III.114, III.133, IV.28 and IV.130–166, in Sutta III.66 and V.86 of Vinaya.[7][8]

The ancient Buddhist texts discuss Attā or Attan (soul, self), sometimes with alternate terms such as AtumanTumaPuggalaJivaSattaPana and Nama-rupa, thereby providing the context for the Buddhist Anattā doctrine. Examples of such Attā contextual discussions are found in Digha Nikaya I.186-187, Samyutta Nikaya III.179 and IV.54, Vinaya I.14, Majjhima Nikaya I.138, III.19, and III.265–271 and Anguttara Nikaya I.284.[7][8][19]

The contextual use of Attā in Nikāyas is two sided. In one, it directly denies that there is anything called a self or soul in a human being that is a permanent essence of a human being, a theme found in Brahmanical (Ancient Hindu) traditions.[20] In another, states Peter Harvey, such as at Samyutta Nikaya IV.286, the Sutta considers the materialistic concept in pre-Buddhist Vedic times of "no afterlife, complete annihilation" at death to be a denial of Self, but still "tied up with belief in a Self".[21] "Self exists" is a false premise, assert the early Buddhist texts.[21] However, adds Peter Harvey, these texts do not admit the premise "Self does not exist" either because the wording presumes the concept of "Self" prior to denying it; instead, the early Buddhist texts use the concept of Anattā as the implicit premise.[21][22] According to Steven Collins, the doctrine of anatta and "denial of self" in the canonical Buddhist texts is "insisted on only in certain theoretical contexts", while they use the terms atta, purisa, puggala quite naturally and freely in various contexts.[19] The elaboration of the anatta doctrine, along with identification of the words such as "puggala" as "permanent subject or soul" appears in later Buddhist literature.[19]

Anattā is one of the main bedrock doctrines of Buddhism, and its discussion is found in the later texts of all Buddhist traditions.[23] For example, the Buddhist philosopher Nagarjuna (~200 CE), extensively wrote about rejecting the metaphysical entity called attā or ātman (self, soul), asserting in chapter 18 of his Mūlamadhyamakakārikā that there is no such substantial entity and that "Buddha taught the doctrine of no-self".[24][25][26] The texts attributed to the 5th-century Buddhist philosopher Vasubandhu of the Yogachara school similarly discuss Anatta as a fundamental premise of the Buddha.[27] The Vasubandhu interpretations of no-self thesis were challenged by the 7th-century Buddhist scholar Candrakirti, who then offered his own theories on its importance.[28][29]

Existence and non-existence[edit]

Anattā (non-self, no enduring soul or essence) is the nature of all things, and this is one of the three marks of existence in Buddhism, along with Anicca (impermanence, nothing lasts) and Dukkha (suffering, unsatisfactoriness is innate in birth, aging, death, rebirth, redeath – the Saṃsāra cycle of existence).[30][31] It is found in many texts of different Buddhist traditions, such as the Dhammapada – a canonical Buddhist text.[32] Buddhism asserts with Four Noble Truths that there is a way out of this Saṃsāra.[note 3][note 4]

Eternalism and annihilationism[edit]

While the concept of soul in Hinduism (as atman) and Jainism (as jiva) is taken for granted, which is different from the Buddhist concept of no-soul, each of the three religions believed in rebirth and emphasized moral responsibility in different ways in contrast to pre-Buddhist materialistic schools of Indian philosophies.[47][48][49] The materialistic schools of Indian philosophies, such as Charvaka, are called annihilationist schools because they posited that death is the end, there is no afterlife, no soul, no rebirth, no karma, and death is that state where a living being is completely annihilated, dissolved.[50]

Buddha criticized the materialistic annihilationism view that denied rebirth and karma, states Damien Keown.[47] Such beliefs are inappropriate and dangerous, stated Buddha, because they encourage moral irresponsibility and material hedonism.[47] Anatta does not mean there is no afterlife, no rebirth or no fruition of karma, and Buddhism contrasts itself to annihilationist schools.[47] Buddhism also contrasts itself to other Indian religions that champion moral responsibility but posit eternalism with their premise that within each human being there is an essence or eternal soul, and this soul is part of the nature of a living being, existence and metaphysical reality.[51][52][53]

Karma, rebirth and anattā[edit]

The Four planes of liberation
(according to the Sutta Piaka[54])

stage's
"fruit"[55]

abandoned
fetters

rebirth(s)
until suffering's end

stream-enterer

1. identity view (Anatman)
2. doubt in Buddha
3. ascetic or ritual rules

lower
fetters

up to seven rebirths in
human or heavenly realms

once-returner[56]

once more as
a human

non-returner

4. sensual desire
5. ill will

once more in
a heavenly realm
(Pure Abodes)

arahant

6. material-rebirth desire
7. immaterial-rebirth desire
8. conceit
9. restlessness
10. ignorance

higher
fetters

no rebirth

Source: Ñāṇamoli & Bodhi (2001), Middle-Length Discourses, pp. 41-43.

The Buddha emphasized both karma and anatta doctrines.[57]

The Buddha criticized the doctrine that posited an unchanging soul as a subject as the basis of rebirth and karmic moral responsibility, which he called "atthikavāda". He also criticized the materialistic doctrine that denied the existence of both soul and rebirth, and thereby denied karmic moral responsibility, which he calls "natthikavāda".[58] Instead, the Buddha asserted that there is no soul, but there is rebirth for which karmic moral responsibility is a must. In the Buddha's framework of karma, right view and right actions are necessary for liberation.[59][60]

Developing the self[edit]

According to Peter Harvey, while the Suttas criticize notions of an eternal, unchanging Self as baseless, they see an enlightened being as one whose empirical self is highly developed.[61] This is paradoxical, states Harvey, in that "the Self-like nibbana state" is a mature self that knows "everything as Selfless".[61] The "empirical self" is the citta (mind/heart, mindset, emotional nature), and the development of self in the Suttas is the development of this citta.[62]

One with "great self", state the early Buddhist Suttas, has a mind which is neither at the mercy of outside stimuli nor its own moods, neither scattered nor diffused, but imbued with self-control, and self-contained towards the single goal of nibbana and a 'Self-like' state.[61] This "great self" is not yet an Arahat, because he still does small evil action which leads to karmic fruition, but he has enough virtue that he does not experience this fruition in hell.[61]

An Arahat, states Harvey, has a fully enlightened state of empirical self, one that lacks the "sense of both 'I am' and 'this I am'", which are illusions that the Arahat has transcended.[63] The Buddhist thought and salvation theory emphasizes a development of self towards a Selfless state not only with respect to oneself, but recognizing the lack of relational essence and Self in others, wherein states Martijn van Zomeren, "self is an illusion".[64]

Anatta in Theravada Buddhism[edit]

Theravada Buddhism scholars, states Oliver Leaman, consider the Anattā doctrine as one of the main theses of Buddhism.[23]

The Buddhist denial of "any Soul or Self" is what distinguishes Buddhism from major religions of the world such as Christianity and Hinduism, giving it uniqueness, asserts the Theravada tradition.[23] With the doctrine of Anattā, stands or falls the entire Buddhist structure, asserts Nyanatiloka.[65]

According to Collins, "insight into the teaching of anatta is held to have two major loci in the intellectual and spiritual education of an individual" as s/he progresses along the Path.[66] The first part of this insight is to avoid sakkayaditthi (Personality Belief), that is converting the "sense of I which is gained from introspection and the fact of physical individuality" into a theoretical belief in a self.[66] "A belief in a (really) existing body" is considered a false belief and a part of the Ten Fetters that must be gradually lost. The second loci is the psychological realisation of anatta, or loss of "pride or conceit". This, states Collins, is explained as the conceit of asmimana or "I am"; (...) what this "conceit" refers to is the fact that for the unenlightened man, all experience and action must necessarily appear phenomenologically as happening to or originating from an "I".[66] When a Buddhist gets more enlightened, this happening to or originating in an "I" or sakkdyaditthi is less. The final attainment of enlightenment is the disappearance of this automatic but illusory "I".[66]

The Theravada tradition has long considered the understanding and application of the Anatta doctrine to be a complex teaching, whose "personal, introjected application has always been thought to be possible only for the specialist, the practising monk". The tradition, states Collins, has "insisted fiercely on anatta as a doctrinal position", while in practice it may not play much of a role in the daily religious life of most Buddhists.[67] The Suttas present the doctrine in three forms. First, they apply the "no-self, no-identity" doctrine to all phenomena as well as any and all objects, yielding the idea that "all things are not-self" (sabbe dhamma anatta).[67] Second, states Collins, the Suttas apply the doctrine to deny self of any person, treating conceit to be evident in any assertion of "this is mine, this I am, this is myself" (etam mamam eso 'ham asmi, eso me atta ti).[68] Third, the Theravada texts apply the doctrine as a nominal reference, to identify examples of "self" and "not-self", respectively the Wrong view and the Right view; this third case of nominative usage is properly translated as "self" (as an identity) and is unrelated to "soul", states Collins.[68] The first two usages incorporate the idea of soul.[69] The Theravada doctrine of Anatta, or not-self not-soul, inspire meditative practices for monks, states Donald Swearer, but for the lay Theravada Buddhists in Southeast Asia, the doctrines of kammarebirth and punna (merit) inspire a wide range of ritual practices and ethical behavior.[70]

The Anatta doctrine is key to the concept of nirvana (nibbana) in the Theravada tradition. The liberated nirvana state, states Collins, is the state of Anatta, a state that is neither universally applicable nor can be explained, but can be realized.[71][note 5]

Current disputes[edit]

The dispute about "self" and "not-self" doctrines has continued throughout the history of Buddhism.[74] According to Johannes Bronkhorst, it is possible that "original Buddhism did not deny the existence of the soul", even though a firm Buddhist tradition has maintained that the Buddha avoided talking about the soul or even denied its existence.[75] French religion writer André Migot also states that original Buddhism may not have taught a complete absence of self, pointing to evidence presented by Buddhist and Pali scholars Jean Przyluski and Caroline Rhys Davids that early Buddhism generally believed in a self, making Buddhist schools that admit an existence of a "self" not heretical, but conservative, adhering to ancient beliefs.[76] While there may be ambivalence on the existence or non-existence of self in early Buddhist literature, Bronkhorst suggests that these texts clearly indicate that the Buddhist path of liberation consists not in seeking self-knowledge, but in turning away from what might erroneously be regarded as the self.[77] This is a reverse position to the Vedic traditions which recognized the knowledge of the self as "the principal means to achieving liberation."[77]

In Thai Theravada Buddhism, for example, states Paul Williams, some modern era Buddhist scholars have claimed that "nirvana is indeed the true Self", while other Thai Buddhists disagree.[78] For instance, the Dhammakaya Movement in Thailand teaches that it is erroneous to subsume nirvana under the rubric of anatta (non-self); instead, nirvana is taught to be the "true self" or dhammakaya.[79] The Dhammakaya Movement teaching that nirvana is atta, or true self, was criticized as heretical in Buddhism in 1994 by Ven. Payutto, a well-known scholar monk, who stated that 'Buddha taught nibbana as being non-self".[80][81] The abbot of one major temple in the Dhammakaya Movement, Luang Por Sermchai of Wat Luang Por Sodh Dhammakayaram, argues that it tends to be scholars who hold the view of absolute non-self, rather than Buddhist meditation practitioners. He points to the experiences of prominent forest hermit monks such as Luang Pu Sodh and Ajahn Mun to support the notion of a "true self".[81][82] Similar interpretations on the "true self" were put forth earlier by the 12th Supreme Patriarch of Thailand in 1939. According to Williams, the Supreme Patriarch's interpretation echoes the tathāgatagarbha sutras.[83]

Several notable teachers of the Thai Forest Tradition have also described ideas in contrast to absolute non-self. Ajahn Maha Bua, a well known meditation master, described the citta (mind) as being an indestructible reality that does not fall under anattā.[84] He has stated that not-self is merely a perception that is used to pry one away from infatuation with the concept of a self, and that once this infatuation is gone the idea of not-self must be dropped as well.[85] American monk Thanissaro Bhikkhu of the Thai Forest Tradition describes the Buddha's statements on non-self as a path to awakening rather than a universal truth.[57] Thanissaro Bhikkhu states that the Buddha intentionally set the question of whether or not there is a self aside as a useless question, and that clinging to the idea that there is no self at all would actually prevent enlightenment.[86] Bhikkhu Bodhi authored a rejoinder to Thanissaro, claiming that "The reason the teaching of anatta can serve as a strategy of liberation is precisely because it serves to rectify a misconception about the nature of being, hence an ontological error."[87]

Buddhist scholars Richard Gombrich and Alexander Wynne argue that the Buddha's descriptions of non-self in early Buddhist texts do not deny that there is a self. Gethin claims that anatta is often mistranslated as meaning "not having a self", but in reality meant "not the self".[88] Wynne claims early Buddhist texts such as the Anattalakkhana Sutta do not deny that there is a self, stating that the five aggregates that are described as not self are not descriptions of a human being but descriptions of the human experience.[89] Wynne and Gombrich both argue that the Buddha's statements on anattā were originally a "not-self" teaching that developed into a "no-self" teaching in later Buddhist thought.[89][88]

Thanissaro Bhikkhu points to the Ananda Sutta (SN 44.10), where the Buddha stays silent when asked whether there is a 'self' or not,[90] as a major cause of the dispute.[91] In Thailand, this dispute on the nature of teachings about 'self' and 'non-self' in Buddhism has led to arrest warrants, attacks and threats.[92]

Anatta in Mahayana Buddhism[edit]

There are many different views of Anatta (Chinese無我pinyinwúwǒJapanese: 無我 mugaKorean: 무아 mu-a) within various Mahayana schools.[93]

Nagarjuna, the founder of Madhyamaka (middle way) school of Mahayana Buddhism, analyzed dharma first as factors of experience.[12] He, states David Kalupahana, analyzed how these experiences relate to "bondage and freedom, action and consequence", and thereafter analyzed the notion of personal self (attāātman).[12]

Nagarjuna asserted that the notion of a self is associated with the notion of one's own identity and corollary ideas of pride, selfishness and a sense of psychophysical personality.[94] This is all false, and leads to bondage in his Madhyamaka thought. There can be no pride nor possessiveness, in someone who accepts Anattā and denies "self" which is the sense of personal identity of oneself, others or anything, states Nagarjuna.[12][13] Further, all obsessions are avoided when a person accepts emptiness (sunyata).[12][95] Nagarjuna denied there is anything called a self-nature as well as other-nature, emphasizing true knowledge to be comprehending emptiness.[94][96][97] Anyone who has not dissociated from his belief in personality in himself or others, through the concept of self, is in a state of Avidya (ignorance) and caught in the cycle of rebirths and redeaths.[94][98]

The early Mahayana Buddhism texts link their discussion of "emptiness" (shunyata) to Anatta and Nirvana. They do so, states Mun-Keat Choong, in three ways: first, in the common sense of a monk's meditative state of emptiness; second, with the main sense of Anatta or 'everything in the world is empty of self'; third, with the ultimate sense of Nirvana or realization of emptiness and thus an end to rebirth cycles of suffering.[99] The Anatta doctrine is another aspect of shunyata, its realization is the nature of the nirvana state and to an end to rebirths.[100][101][102]

Tathagatagarbha Sutras: Buddha is True Self[edit]

Some 1st-millennium CE Buddhist texts suggest concepts that have been controversial because they imply a "self-like" concept.[103][104] In particular are the Tathāgatagarbha sūtras, where the title itself means a garbha (womb, matrix, seed) containing Tathagata (Buddha). These Sutras suggest, states Paul Williams, that 'all sentient beings contain a Tathagata' as their 'essence, core or essential inner nature'.[105] The Tathagatagarbha doctrine, at its earliest probably appeared about the later part of the 3rd century CE, and is verifiable in Chinese translations of 1st millennium CE.[105] Most scholars consider the Tathagatagarbha doctrine of an 'essential nature' in every living being is equivalent to 'Self',[citation needed][note 6] and it contradicts the Anatta doctrines in a vast majority of Buddhist texts, leading scholars to posit that the Tathagatagarbha Sutras were written to promote Buddhism to non-Buddhists.[107][108]

The Mahayana Mahaparinirvana Sutra explicitly asserts that the Buddha used the term "Self" in order to win over non-Buddhist ascetics.[109][110] The Ratnagotravibhāga (also known as Uttaratantra), another text composed in the first half of 1st millennium CE and translated into Chinese in 511 CE, points out that the teaching of the Tathagatagarbha doctrine is intended to win sentient beings over to abandoning "self-love" (atma-sneha) – considered to be one of the defects by Buddhism.[111][112] The 6th-century Chinese Tathagatagarbha translation states that "Buddha has shiwo (True Self) which is beyond being and nonbeing".[113] However, the Ratnagotravibhāga asserts that the "Self" implied in Tathagatagarbha doctrine is actually "not-Self".[113][114]

According to some scholars, the Buddha-nature discussed in these sutras does not represent a substantial self; rather, it is a positive language and expression of śūnyatā "emptiness" and represents the potentiality to realize Buddhahood through Buddhist practices.[111] Other scholars do in fact detect leanings towards monism in these tathagatagarbha references.[115] Michael Zimmermann sees the notion of an unperishing and eternal self in the Tathagatagarbha Sutra.[116] Zimmermann also avers that 'the existence of an eternal, imperishable self, that is, buddhahood, is definitely the basic point of the Tathagatagarbha Sutra'.[117] He further indicates that there is no evident interest found in this sutra in the idea of Emptiness (sunyata).[118] Williams states that the "Self" in Tathagatagarbha Sutras is actually "non-Self", and neither identical nor comparable to the Hindu concepts of Brahman and Self.[111]

Anatta in Vajrayana Buddhism[edit]

Tibetan and Nepalese Buddhist deities Nairatmya and Hevajra in an embrace. Nairatmya is the goddess of emptiness, and of Anatta (non-self, non-soul, selflessness) realization.[119][120]

The Anatta or Anatman doctrine is extensively discussed in and partly inspires the ritual practices of the Vajrayana tradition. The Tibetan terms such as bdag med refer to "without a self, insubstantial, anatman".[121] These discussions, states Jeffrey Hopkins, assert the "non-existence of a permanent, unitary and independent self", and attribute these ideas to the Buddha.[122]

The ritual practices in Vajrayana Buddhism employs the concept of deities, to end self-grasping, and to manifest as a purified, enlightened deity as part of the Vajrayana path to liberation from rebirths.[123][124][125] One such deity is goddess Nairatmya (literally, non-soul, non-self).[126][127][128] She symbolizes, states Miranda Shaw, that "self is an illusion" and "all beings and phenomenal appearances lack an abiding self or essence" in Vajrayana Buddhism.[119]

Anatta – a difference between Buddhism and Hinduism[edit]

Anatta is a central doctrine of Buddhism.[129][130][131] It marks one of the major differences between Buddhism and Hinduism. According to the anatta doctrine of Buddhism, at the core of all human beings and living creatures, there is no "eternal, essential and absolute something called a soul, self or atman".[5][6][132] Buddhism, from its earliest days, has denied the existence of the "self, soul" in its core philosophical and ontological texts. In its soteriological themes, Buddhism has defined nirvana as that blissful state when a person, amongst other things, realizes that he or she has "no self, no soul".[5][133]

The traditions within Hinduism believe in Atman. The pre-Buddhist Upanishads of Hinduism assert that there is a permanent Atman, and is an ultimate metaphysical reality.[134][131] This sense of self, is expressed as "I am" in Brihadaranyaka Upanishad 1.4.1, states Peter Harvey, when nothing existed before the start of the universe.[134] The Upanishadic scriptures hold that this soul or self is underlying the whole world.[134] At the core of all human beings and living creatures, assert the Hindu traditions, there is "eternal, innermost essential and absolute something called a soul, self that is atman."[5] Within the diverse schools of Hinduism, there are differences of perspective on whether souls are distinct, whether Supreme Soul or God exists, whether the nature of Atman is dual or non-dual, and how to reach moksha. However, despite their internal differences, one shared foundational premise of Hinduism is that "soul, self exists", and that there is bliss in seeking this self, knowing self, and self-realization.[5][135]

While the Upanishads recognized many things as being not-Self, they felt that a real, true Self could be found. They held that when it was found, and known to be identical to Brahman, the basis of everything, this would bring liberation. In the Buddhist Suttas, though, literally everything is seen is non-Self, even Nirvana. When this is known, then liberation – Nirvana – is attained by total non-attachment. Thus both the Upanishads and the Buddhist Suttas see many things as not-Self, but the Suttas apply it, indeed non-Self, to everything.

— Peter Harvey, An Introduction to Buddhism: Teachings, History and Practices[136]

Both Buddhism and Hinduism distinguish ego-related "I am, this is mine", from their respective abstract doctrines of "Anatta" and "Atman".[134] This, states Peter Harvey, may have been an influence of Buddhism on Hinduism.[137]

Anatman and Niratman[edit]

The term niratman appears in the Maitrayaniya Upanishad of Hinduism, such as in verses 6.20, 6.21 and 7.4. Niratman literally means "selfless".[138][139] The niratman concept has been interpreted to be analogous to anatman of Buddhism.[140] The ontological teachings, however, are different. In the Upanishad, states Thomas Wood, numerous positive and negative descriptions of various states – such as niratman and sarvasyatman (the self of all) – are used in Maitrayaniya Upanishad to explain the nondual concept of the "highest Self".[139] According to Ramatirtha, states Paul Deussen, the niratman state discussion is referring to stopping the recognition of oneself as an individual soul, and reaching the awareness of universal soul or the metaphysical Brahman.[141]

Correspondence in Pyrrhonism[edit]

The Greek philosopher Pyrrho traveled to India as part of Alexander the Great's entourage where he was influenced by the Indian gymnosophists,[142] which inspired him to create the philosophy of Pyrrhonism. Philologist Christopher Beckwith has demonstrated that Pyrrho based his philosophy on his translation of the three marks of existence into Greek, and that adiaphora (not logically differentiable, not clearly definable, negating Aristotle's use of "diaphora") reflects Pyrrho's understanding of the Buddhist concept of anatta.[143]

See also[edit]

Notes[edit]

  1. ^ Buddha did not deny a being or a thing, referring it to be a collection of impermanent interdependent aggregates, but denied that there is a metaphysical self, soul or identity in anything.[11][12][13]
  2. ^ The term ahamkara is 'ego' in Indian philosophies.[15]
  3. ^ On samsara, rebirth and redeath:
    * Paul Williams: "All rebirth is due to karma and is impermanent. Short of attaining enlightenment, in each rebirth one is born and dies, to be reborn elsewhere in accordance with the completely impersonal causal nature of one's own karma. The endless cycle of birth, rebirth, and redeath, is samsara."[33]
    * Buswell and Lopez on "rebirth": "An English term that does not have an exact correlate in Buddhist languages, rendered instead by a range of technical terms, such as the Sanskrit PUNARJANMAN (lit. "birth again") and PUNABHAVAN (lit. "re-becoming"), and, less commonly, the related PUNARMRTYU (lit. "redeath")."[34]

    See also Perry Schmidt-Leukel (2006) pages 32-34,[35] John J. Makransky (1997) p.27.[36] for the use of the term "redeath." The term Agatigati or Agati gati (plus a few other terms) is generally translated as 'rebirth, redeath'; see any Pali-English dictionary; e.g. pages 94-95 of Rhys Davids & William Stede, where they list five Sutta examples with rebirth and re-death sense.[37]
  4. ^ Graham Harvey: "Siddhartha Gautama found an end to rebirth in this world of suffering. His teachings, known as the dharma in Buddhism, can be summarized in the Four Noble truths."[38]Geoffrey Samuel (2008): "The Four Noble Truths [...] describe the knowledge needed to set out on the path to liberation from rebirth."[39] See also [40][41][42][33][43][38][web 1][web 2]

    The Theravada tradition holds that insight into these four truths is liberating in itself.[44] This is reflected in the Pali canon.[45]According to Donald Lopez, "The Buddha stated in his first sermon that when he gained absolute and intuitive knowledge of the four truths, he achieved complete enlightenment and freedom from future rebirth."[web 1]

    The Maha-parinibbana Sutta also refers to this liberation.[web 3]Carol Anderson: "The second passage where the four truths appear in the Vinaya-pitaka is also found in the Mahaparinibbana-sutta (D II 90-91). Here, the Buddha explains that it is by not understanding the four truths that rebirth continues."[46]

    On the meaning of moksha as liberation from rebirth, see Patrick Olivelle in the Encyclopædia Britannica.[web 4]
  5. ^ This is a major difference between the Theravada Buddhists and different Hindu traditions which assert that nirvana is realizing and being in the state of self (soul, atman) and is universally applicable. However, both concur that this state is indescribable, cannot be explained, but can be realized.[72][73]
  6. ^ Wayman and Wayman have disagreed with this view, and they state that the Tathagatagarbha is neither self nor sentient being, nor soul, nor personality.[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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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 See, for instance, the "Snake-Simile Discourse" (MN 22), where the Buddha states:

    "Monks, this Teaching so well proclaimed by me, is plain, open, explicit, free of patchwork. In this Teaching that is so well proclaimed by me and is plain, open, explicit and free of patchwork; for those who are arahants, free of taints, who have accomplished and completed their task, have laid down the burden, achieved their aim, severed the fetters binding to existence, who are liberated by full knowledge, there is no (future) round of existence that can be ascribed to them. – Majjhima Nikaya i.130 ¶ 42, Translated by Nyanaponika Thera (Nyanaponika, 2006)

  55. ^ The "fruit" (Pali: phala) is the culmination of the "path" (magga). Thus, for example, the "stream-enterer" is the fruit for one on the "stream-entry" path; more specifically, the stream-enterer has abandoned the first three fetters, while one on the path of stream-entry strives to abandon these fetters.
  56. ^ Both the stream-enterer and the once-returner abandon the first three fetters. What distinguishes these stages is that the once-returner additionally attenuates lust, hate and delusion, and will necessarily be reborn only onc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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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 ^ Paul Williams (2008). Mahayana Buddhism: The Doctrinal Foundations. Routledge. p. 109. ISBN 978-1-134-25056-1.Quote: "... it refers to the Buddha using the term "Self" in order to win over non-Buddhist asc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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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edit]

Web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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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ernal links[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