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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3

그리스도교 유적으로 다시 읽는 일본 근현대사 - 서정민, 홍이표, 홍승표 믿음의 흔적을 찾아 : 일본 간토 간사이의 기독교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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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 Pyo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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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다림과 산고 끝에 드디어 『믿음의 흔적을 찾아 - 일본 간토(關東) · 간사이(關西)의 기독교 유적』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15년 6월 25일)이 발간되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무언가 구체적으로 말하고자 하면 일본에 대한 막연한 오해와 무지에 함몰되어 있는 우리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일본의 어제와 오늘, 특히 일본 그리스도교 역사 현장을 탐방하며 새롭게 알아가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모아 놓은 시공간의 편린들이다. 역사 속에 늘 실재했지만, 우리의 선입관과 이념의 인식 속에 늘 묻혀 있었던 바로 그 일본 그리스도교의 실체와 역사의 현장들을 하나 하나 밟아 가며, 우리는 그곳에서 일본 그리스도교의 민낯을 마주하게된다. 그리고 뜻밖에도 우리는 그 낯선 현장에서 한국교회의 다양한 표정과 기억들 또한 덤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일본 그리스도교의 실체에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그리스도교의 역사순례를 통해 오늘의 한국 그리스도교의 정체성과 나아갈 길을 새롭게 만나게 될 것이다. 그동안 미처 알지도 보지도 못했던, 새롭고 다양한 콘텐츠로 점철된 이 책이, 앞으로 한일 그리스도인들에게 널리 읽혀, 그저 관념과 감정으로만 단정짓는 만남이 아니라, 직접 찾아가 만나고, 보고, 만지고, 대화함으로써 오늘의 한일 관계에 '새로운 만남'을 여는 소중한 마중물이 되길 소망해 본다. (박석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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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내면서

<그리스도교 유적으로 다시 읽는 일본 근현대사>

일본은 그리스도교가 미미한 나라이다. 우리가 일본을 떠올릴 때, 다른 것에 비해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거나 한국교회보다 교세가 적다는 이유로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한 절대적인 선교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하거나 공격적인 선교 비전을 외치곤 한다. 이것이 대부분의 한국인,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일본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이며, 선입관일 것이다. 사실 일본의 그리스도교를 그 규모나 양, 가시적 현상으로만 판단한다면, 일본 전체 인구의 1% 미만이라는 분포율이 잘 말해주듯이 그런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판단은 틀림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의 그리스도교에 대해 그렇게 간단히 접근하거나 전망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벼운 외형적 이해일 수 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1,500년대부터의 일본 역사, 특히 근대화를 지향한 메이지(明治)유신 전후부터 오늘에 이르는 일본 근현대사를 연구할 때 일본 그리스도교와의 관계사로 살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일본 역사에서 일본 그리스도교가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은 크다. 즉 일본의 근현대사는 긍정적인 측면이든, 그 반대이든 ‘그리스도교 콤플렉스’의 역사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즉 일본의 근대국가는 그리스도교를 배척하고, 혹은 이용하는 방식으로 종교정책 뿐 아니라, 정치·외교 정책의 토대를 조율해 왔다. 한편 일본의 소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국가정책을 선도, 순응, 혹은 저항하는 방식을 통해 그리스도인 개인과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독특한 정체성을 수립해왔다. 특별히 이를 우리 한국, 특히 한국 그리스도인의 입장으로 보면, 일본의 그리스도교 정책, 일본 그리스도인의 국가와의 관계 설정이 그대로 한일의 역사, 한일 관계사와 그 뿌리가 이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일본 그리스도교 역사의 생생한 흔적들이 일본 전역에 의외로 널리 산적해 있다. 이 책은 그런 일본 그리스도교의 자취를 통해 일본 근현대사, 한일관계사를 되짚어보는 학술적 목표를 집약하고자 했다. 

이 책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기획한 “믿음의 흔적을 찾아”, 그 한국 편에 이어 일본 편으로 계획되고 준비되었다. 여기에 우리 세 사람의 공동 필자들은 처음에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일본의 그리스도교 신앙의 역사를 유적 중심으로 스케치 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고 참여하였다. 그러나 실제 답사와 집필을 진행하면서 이 작업이 그렇게 쉽게 실행될 수 있는 가벼운 내용이 아님을 바로 간파하게 되었다. 그 배경이 되는 일본 역사와 일본 그리스도교사의 전체적, 부분적 이해는 물론, 동원되어야 할 모든 자료는 일본어 문서이며, 그것의 상호관계를 판명해 나가는 작업 모두가 한국인 연구자들이 충실히 감당해내기에는 하나같이 난해한 작업들이었다. 이에 본의 아니게 처음의 기획 일정과는 달리 자료수집과 집필에 수년이 더 소요되었고, 오늘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게 되었다. 무엇보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운영위원회가 이러한 실정을 이해하고 꾸준한 인내를 보여주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이 책 출판이 처음 계획보다 상당히 늦어진 배경의 또 한 가지로는 철저한 답사와 거듭된 현장 실사, 자료검토의 지난한 과정을 결코 경솔히 생략하지 않으려는 필자들의 기본적 입장이 있었기 때문임을 밝힌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필자 중의 한 사람인 홍이표는 이미 일본에서 학업 등으로 장기 체류하고 있었고, 대표 집필자의 책임을 진 서정민도 2008년 1년간은 연구년으로, 그리고 2012년부터는 완전히 일본의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 체류하면서 이 기획과 관련된 직간접의 답사를 지속해 왔다. 우리 필자들 서정민, 홍이표, 홍승표가 함께 처음 이 기획을 직접적으로 의식하며 실행한 답사는 2008년 7월 교토, 오사카, 고베, 나라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간사이(関西)지역 답사였다. 이후 다시 우리 집필 팀은 2010년 6-7월 도쿄와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한 간토(関東)지역을 면밀히 답사하였다. 특히 이들 답사여행에는 같은 그리스도교 역사를 전공하는 젊은 연구자들, 혹은 일본의 전문가들을 대동하여 답사의 깊이를 더하고자 노력했다. 뿐만 아니라 단지 이 프로그램만을 위한 답사는 아니었지만, 관련한 답사 여행을 꾸준히 지속해 왔다. 중요하게 기억되는 것으로는 2009년 1월 필자 중 서정민은 오키나와(沖縄) 그리스도교 유적, 2009년 8월 필자 중 서정민과 홍이표는 학회 참여를 겸하여, 삿포로를 중심으로 홋카이도(北海道)를 답사하였다. 그리고 또한 필자 중 서정민은 2008년 9월과 2012년 2월 규슈(九州)지역의 그리스도교 유적을 조사하였고, 다시 2013년 7월에는 군마, 야마나시 등 간토 북부의 조합교회, 성공회 유적지를 탐색하였다. 그리고 다시 2014년 2월에는 필자 중 서정민과 홍이표가 다른 역사 연구자들을 안내하여 다시 간사이 유적을 세심히 탐색한 바 있다. 그밖에도 우리 필자들은 이 기획과의 직간접적 관련성을 염두에 두고, 줄곧 일본 전역의 근현대사의 자취와 그리스도교 유적 탐방에 발걸음을 옮겨왔다. 즉 이 책은 결코 책상 위의 산물이 아니며, 현장의 숨결과 생동감을 느끼고, 답사의 살아있는 향취를 채집하는데 결코 게을리 하지 않은 결과임을 밝힌다.
다만 책머리에 너른 양해를 구하고자 하는 바는 기획 단계의 미숙함으로 인해 일본 그리스도교 유적의 대강을 지나치게 소략하게 예상하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이번의 결실이 일본 그리스도교 유적 전체를 망라하는 내용이 되지 못한 아쉬움을 표하고, 독자들의 이해를 구한다. 즉 이 책은 일본 그리스도교 유적지 중 간토와 간사이 지역으로 그 범위를 한정하였다. 물론 다른 지역에 대한 원고와 자료도 어느 정도 확보는 되었으나, 한 권의 책으로 여기에 모두 담기에는 그 양이 너무 방대하고, 그것을 가볍게 축약하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일단은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지역이며, 특히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 관심이 집중될 수 있는 간토와 간사이 두 지역으로 내용을 집중하였음을 밝혀 둔다. 다른 지역에 대한 내용들은 다음 기회에 다른 기획과 계기를 통해 독자들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약해 본다.

이 책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의 프로젝트 기획에서 선정된 공동필자 서정민, 홍이표, 홍승표가 답사와 집필 책임을 맡았다. 물론 그 중 내용 전체의 책임은 공동필자의 구성이 사제관계이고, 지도교수를 맡았던 서정민이 모두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집필 진행 과정에서 이 책의 전체 초고, 특히 구체적인 내용 기록과 구성, 사진과 별도 자료편집의 대개는 전적으로 홍이표의 일관된 집필, 편집이 바탕이 되었다. 그의 희생과 공헌은 공동 집필이 성립되기 어려울 정도로 전적인 것이다. 또한 홍승표도 부분적인 집필, 교정, 가필, 사진촬영, 자료첨부 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다하였다. 다만 서정민은 책임 집필자로서 기획과 내용 구성의 지휘와 조언의 책임을 했을 뿐임을 밝힌다. 

이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본 현지의 기독교 역사 및 신학 전문가들로부터 따뜻한 관심과 조언을 받았는데, 덕분에 책의 내용이 훨씬 풍성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정 없이 결실이 늦어지고, 거듭 기획내용이 변경되는 과정을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려 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운영위원회에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 기획이 책으로 결실 맺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이해와 협력을 다한 이덕주 소장님과 연구소의 연구원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따로 전해드린다. 

점점 더 높고 거친 파고 중에 그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한일 관계에 이 책이 그 실타래를 푸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기도하며, 독자들과 함께 작은 결실을 기쁨으로 나누고 싶다.
2015년 3월 집필자를 대표하여 서정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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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진>
서정민 (일본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
홍이표 (일본 메이지가쿠인대학 그리스도교연구소 협력연구원)
홍승표 (전 「기독교사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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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책을 내면서 - 그리스도교 유적으로 다시 읽는 일본 근현대사 / 서정민

1부 - 동녘의 새 천막 간토(關東)

1) 일본의 제물포, 요코하마
01. 페리 제독의 요코하마 상륙과 기독교의 전래
- 미일화친조약 기념공원(개항광장)┃요코하마 개항자료관(구 영국영사관)의 후박나무
02. 일본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못자리, 카이간교회
- 광야가 아름다운 숲으로 변하리라!┃바라 선교사의 신앙운동과 영어사숙 제자들┃카이간교회와 한국의 인연, 노리마츠 목사의 한국사랑┃전쟁과 평화의 기로에서 자리를 지키다!
03. 한글 성서가 처음으로 인쇄된 곳, 미국성서공회 터
- 이수정의 한글 성서번역이 열매를 맺은 곳┃일본어 성서의 번역 과정
04. 일본 최초의 장로교회, 시로교회
05. 최초의 가톨릭 예배당 터, 요코하마천주당
- 왜 요코하마에 첫 가톨릭 예배당이 세워졌을까?┃언더우드가 머물던 헵번 선교사 사택 터┃야마테에 세워진 가톨릭과 성공회의 두 예배당
06 요코하마의 양화진, 외국인 묘지
- 요코하마 외국인 묘지의 탄생┃루미스 선교사 묘소를 찾아서 - 조선 개화파와의 인연┃최초의 한글성서번역과 루미스
07. 요코하마의 ‘자유공원’, 야마테공원 일대의 외국인 거류지
08. 일본 최초의 여성교육 요람, 페리스여학원
09. 일본의 초대 감리교회, 요코하마 우에하라교회
10. 일본 최초의 침례교회 발상지와 간토가쿠인 중학부
- 개항자료관에 남아있는 네이선 브라운의 일본어 성서
11. 조건 없는 사랑, 요코하마 쿄리츠가쿠엔
12. 절에서 시작된 일본의 기독교 선교
- 헵번이 일본에 오기까지┃불교 사찰에서 시작된 일본의 기독교 선교┃헵번의 교육 및 사전편찬 활동 무대, 요코하마
13. 빨간 구두 신은 여자아이의 상, 휴엣트 선교사 부부의 사랑
14. 니지마 조가 치료받은 일본 최초의 치과병원
15. 일본의 신문 발상지, 일본의 서재필, 하마다 히코조
16. 호도가야 가톨릭교회

2) 일본의 서울, 도쿄에서 만나는 기독교
(1) 츄오구(中央区)
01. 일본 감리교 역사의 구심점 긴자교회
02. 긴자 쿄분칸 및 성서관(일본성서협회) 건물
03. 가톨릭 츠키치교회
04. 성 누가 국제병원과 채플
- 성 누가 국제병원의 역사와 의미┃성 누가 국제병원 채플
(2) 메구로구(目黑区) · 미나토구(港区)
01. 이수정이 일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한 곳 신사카에교회
02. 최초의 한글 성서 번역자 이수정이 세례 받은, 시바교회
03. 세브란스 기념관이 있는 메이지가쿠인대학
- 메이지가쿠인의 창립과 시로가네 캠퍼스의 조성
04. 세이신 여자학원
05. 레이난자카교회
06. 안도기념교회
07. 타카나와교회
08. 성 알반교회
09. 아자부 난부자카교회
(3) 지요다구(千代田区) · 다이토쿠(台東区)
01. 3.1운동의 진앙지, 재일본한국YMCA
02. 가톨릭 간다교회
03. 도쿄의 다윗과 골리앗, 쿠단교회와 야스쿠니신사
04. 일본기독교단 창립의 터, 후지미쵸교회
05. 한국 YWCA의 요람, 도쿄 ‘여자학원’
06. 조치대학과 성 이그나티오 교회
- 성 이그나티오교회
07. 도쿄 부활대성당, 정교회 니콜라이당
08. 아사쿠사 성 요한교회
(4) 분쿄구(文京区) · 토시마구(豊島区)
01. 조선전도론의 근거지, 유미쵸 혼고교회
02. 혼고중앙교회
- 캐나다 감리교의 일본선교 개척자, 찰스 이비 선교사
03. 네즈교회
04. 니시카타마치교회
05. 성 디모데교회
06. 도쿄제성도교회
07. 일본성공회 학문의 전당, 릿쿄대학
(5) 시부야구(澁谷区) · 신주쿠구(新宿区)
01. 한국선교의 문을 연 매클레이와 아오야마가쿠인대학
02. 김옥균의 무덤이 왜 이곳에 있지? 아오야마 묘지
03. 도쿄의 종로5가 와세다 - 와세다교회와 일본 미션 타운
- 와세다 봉사원과 스코트 홀, 적벽돌이 아름다운 다이쇼 시대 예배당
04. 시나노마치교회
05. 일본성서신학교와 덴엔쵸후교회
06. 메지로 성 시프리안 성당
07. 메지로오카 침례교회
08. 군부대 위에 세워진 도야마교회
(6) 세타가야구(世田谷区)
01. 일본기독교단 마츠자와교회 가가와도요히코기념 마츠자와자료관
02. 도쿄 성 십자교회
03. 후지미가오카교회
(7) 스기나미구(杉並区)
01. 도쿄여자대학
- 안토닌 레이몬드의 삶과 일본의 미션 건축
02. 릿쿄여학원
03. 도쿄신학대학과 국제기독교대학
04. 아사가야교회
05. 일본복음루터교회 무사시노교회
- 히요시교회 예배당(요코하마)

3) 간토 외곽의 선교 

(1) 가나가와현(神奈川縣)
01. 화풍의 절정, 카타세 성 요셉 가톨릭교회
02. 해리스 감독을 기념한, 카마쿠라교회
03. 카마쿠라 성 미가엘교회
04. 요코스카 우와마치교회
05. 하다노 성 누가교회
06. 성공회 오다와라 성 십자교회
07. 오다와라 가톨릭교회
(2) 사이타마현(埼玉縣)
01. 사이타마 카와고에기독교회
02. 쿠마가야 성 바오로교회
03. 오오미야 세아이교회
04. 무사시노 토요오카교회
(3) 군마현(群馬縣)
01. 니지마 조의 고향에 세워진 안나카교회
02. 니지마 조의 고향집과 니지마학원
03. 하라이치교회
04. 미술관으로 시민의 사랑을 받는, 구 누마타교회
05. 마에바시 성 마테아교회
06. 마에바시 가톨릭교회
07. 타카사키 성 어거스틴교회
08. 이세사키교회
09. 이세사키 시마무라교회
(4) 토치기현(栃木縣) · 이바라키현(茨城縣)
01 마츠가미네키 가톨릭교회
02 닛코신코우교회
03 우츠노미야 성 요한교회
04 사노교회
05 쓰치우라 성 바나바교회
(5) 치바현(千葉縣)
01. 치바현 최고(最古)의 농촌교회, 후쿠다교회
02. 치바지역 감리교회의 뿌리 치바교회
03. 카즈사노 오하라교회
04. 일본 토착 목조예배당, 모바라승천교회
05. 보리스의 만년작, 치바 이치카와 복음루터교회

2부 - 일본인의 영원한 본향, 간사이(關西)

4) 또 하나의 선교 관문, 효고(兵庫)
01. 구로다의 십자가 기와 미스테리, 히메지성
02. 간사이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프로테스탄트교회, 고베교회
03. 미국 남감리회 선교의 베이스캠프, 고베에이코교회
04. 스크랜튼 선교사의 마지막 흔적, 고베클럽과 슈우케 저택, 그리고 일본성공회 성 미가엘교회
05. 고베외국인묘지에서 만나는 스크랜튼과 영 선교사
06. 기타노의 옛 교회 건축물들, 고베가톨릭중앙성당, 고베하리스토스교회, 고베침례교회
07. 한일기독교 역사연구의 요람, 청구문고(고베시립중앙도서관)
08. 효고, 아카시 방면의 교회들, 고베승천교회, 효고마츠모토도리교회, 아카시 성 마리아막달라교회
09. 일본 최초의 외국인 공동체, 고베유니온교회
10. 옛 빈민가 속으로, 가가와기념관(예수단교회)과 코프고베(CO.OP)
11. 옛 고베신학교 터와 남장로교청년관이었던 고베학생청년센터
12. 관세이가쿠인의 배꼽자리, 하라다노모리
13. 일본그리스도개혁파교회의 구심점, 나다교회
14. 엔도슈사쿠 문학의 산실, 슈쿠가와 성당
15. 관세이가쿠인 우에가하라 캠퍼스
16. 신사가 있는 동산에 세워진 고베여학원과 세이와 캠퍼스

5) 한일의 접점, 상인의 도시, 오사카(大阪)

01. 오사카 선교의 모판, 일본성공회 가와구치기독교회
02. 오사카를 대표하는 일본기독교단 오사카교회
03. 일본 최초의 목사 안수식이 거행된 나니와교회
04. 오사카 지역 최초의 감리교회, 히가시우메다교회
05. 오사카 성 마리아 대성당과 오사카여학원
06. 기리시탄 박해의 흔적, 오사카성 성벽 붕괴 석재군
07. 재일동포의 고향, 츠루하시 재일대한 오사카교회와 한국기독교회관(KCC)
08. 20년대의 철근 콘크리트 예배당 시마노우치교회
09. 일본자유메소지스트교단 오사카 니혼바시기독교회
10. 보리스 건축의 절제미가 돋보인 오사카 후쿠시마교회
11. ‘미생’의 거리, 주소의 숨겨진 묵상 공간, ‘박애사’ 예배당
12. 무라노 도고의 처녀작과 만년작 미나미오사카교회
13. 사카이 성 누가교회
14. 단지리 신앙, 키시와다부활교회와 키시와다교회
15. 조선인 여공의 눈물과 신앙, 키시와다 방적공장과 하루키교회
16. 빛의 교회, 이바라키 카스가오카교회 

6) 고대 한일관계사의 원점 나라(奈良) · 와카야먀(和歌山) 

01. 일본 토착예배당의 정수, 일본성공회 나라기독교회
02. 나라 시골의 사쿠라이 성 바오로교회, 다카다기독교회
03. 신궁참배 목사단의 기념촬영지, 도다이지
04. 굴욕의 땅, 가시하라신궁 옆의 야기기독교회
05. 와카야마의 은수자(隱修者)들, 하시모토기독교회와 키난교회 

7) 천년 도읍 교토의 

(1) 교토 시내 중심부
01. 교토 하리스토스 정교회
02. 보리스가 세운 최초의 예배당, 고코우마치교회
03. 정지용의 신앙과 시심이 깃든, 가톨릭 가와라마치교회
04. 하나님 나라의 성벽, 구세군교토소대 회관
05. 순종황제의 눈물이 고인, 조라쿠칸
06. 임진왜란의 한(恨)이 서린 귀무덤과 성 요한교회
(2) 고쇼(御所) 근방
01. 근대 일본과 조선 침략의 원점, 메이지 덴노 탄생 유허지
02. 성공회 성 아그네스교회
03. 헤이안여학원 캠퍼스 메이지관·아리스가관·쇼와관
04. 도시샤의 발상지 니지마 구저택과 이수정의 친필 휘호
05. 라쿠요교회
06. 도시샤대학
- 정문 주변┃신학부 주변┃도시샤여자대학 권역
(3) 히가시야마 근방
01. 경교의 흔적을 간직한 교토대 박물관과 교토학파의 요람, 교토대학
02. 한글학자 최현배의 흔적을 찾아, 요시다료와 라쿠유회관
03. 송몽규의 체취가 남아 있는 교토대 문학부 친레츠칸
04. 교토대학 기독교 청년의 아지트, 교토대 YMCA
05. 윤동주가 체포된 마지막 시작(詩作) 공간, 교토조형예술대학의 시비와오토우교회
06. 성공회 성 마리아교회
(4) 교토시 북부
01. 한국전쟁 때 희생된 번 주교가 세운, 가톨릭 다카노교회
02. 기요미즈야키(清水焼)의 제단과 십자가, 교토 아오이교회
03. 교호쿠교회
04. 니시진 노동자 자녀들의 꿈의 터전, 교토부활교회
05. 교토 속 남구(南歐) 풍의 예배당, 가모가와교회
06. 교토를 대표하는, 헤이안교회
(5) 교토시 서부
01. 십자가 정원이 있는 절, 다이도쿠지
02. 금각사 옆 금박 예수벽화가 그려진 키누가사교회
03. 묘신지의 십자가 동종과 기리시탄 신앙 발굴의 실로암, 라쿠사이교회
04. 니조성을 품은 포도원, 교토 성삼일교회
(6) 교토시 남부
01. 라쿠난교회와 교토남부교회
02. 메이지덴노릉 옆의 일본식 예배당, 모모야마기독교회
03. 화양(和洋)의 조화, 가톨릭 가츠라교회
(7) 교토부 북부 · 후쿠이현 남부
01. 조선과 일본의 징검다리 땅, 후쿠치야마교회
02. 가톨릭 탄바교회 성가족 소노베성당과 일본기독교단 탄바신세교회 소노베회당
03. 다다미 바닥에 비친 스테인드 글라스, 미야즈교회
04. 성공회 오바마 성 누가교회
(8) 오미(近江)의 항아리 복음, 시가현
01. 시가현의 선교 거점, 오오츠교회, 오오츠 성 마리아교회, 가타타교회
02. 호반의 성모, 가톨릭 오오츠교회
03. 보리스의 숨결, 오미하치만
- 과거 수운 상권의 중심지, 오미하치만┃보리스의 미션 필드, 오미하치만┃오미교다이샤중고교, 보리스기념병원, 오미카네다교회
04. 일본 최초의 신학교 터(セミナリヨ跡)
05. 히코네성 옆의 스미스 기념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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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흔적을 찾아 : 일본 간토 간사이의 기독교 유적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편집부 (엮은이)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2015-06-25



416쪽

책소개


전문 연구자들이 일본의 기독교 유적지를 소개하고 역사적 배경과 그 의미를 설명한 답사 안내서이다.


목차


책을 내면서: 그리스도교 유적으로 다시 읽는 일본 근현대사 / 서정민

1부 동녘의 새 천막 간토
1 일본의 제물포 요코하마
2 일본의 서울 도쿄에서 만나는 기독교
3 간토 외곽의 선교 발자취

2부 일본인의 영원한 본향 간사이
4 또 하나의 선교 관문 효고
5 한일의 접점, 상인의 도시 오사카
6 고대 한일관계사의 원점 나라
7 천년 도읍 교토의 기독교유적


책속에서


'일본은 그리스도교가 미미한 나라이다. 우리가 일본을 떠올릴 때, 다른 것에 비해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거나 한국교회보다 교세가 적다는 이유로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한 절대적인 선교사명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하거나 공격적인 선교 비전을 외치곤 한다. 이것이 대부분의 한국인,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일본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이며, 선입관일 것이다. 사실 일본의 그리스도교를 그 규모나 양, 가시적 현상으로만 판단한다면, 일본 전체 인구의 1%미만이라는 분포율이 잘 말해주듯이 그런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판단은 틀림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의 그리스도교에 대해 그렇게 간단히 전망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벼운 외형적 이해일 수 있다. 더욱이 일본 그리스도교 역사의 생생한 흔적들이 일본 전역에 널리 산재해 있다. 이 책은 그런 일본 그리스도교의 자취를 찾아가는 길라잡이이다.' - 책을 내면서 : 그리스도교 유적으로 다시 읽는 일본 근현대사 中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편집부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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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의 역사 2>

최근작 : <3.1운동과 기독교 민족대표 16인>,<북한교회사>,<믿음의 흔적을 찾아 : 일본 간토 간사이의 기독교 유적> … 총 21종 (모두보기)

















2020/06/25

알라딘: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 - 다석(유영모) 신학의 얼과 틀 그리고 쓰임 이정배

알라딘: [전자책]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 - 다석(유영모) 신학의 얼과 틀 그리고 쓰임  epub
이정배
(지은이)모시는사람들2017-03-30
종이책 페이지수 464쪽, 약 48.2만자, 약 11.2만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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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함석헌의 스승인 다석 유영모의 사상에 관한 연구서로, ‘다석(多夕)신학’이라는 범주를 통해 다석사상을 새롭게 조명하는 책이다. 필자는 ‘다석신학’이 한국적일 뿐 아니라 충분히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담론이며, 다석이 한국 또는 동양의 신학자가 아니라 ‘(세계)신학자’로 자리매김될 수 있음을 논파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은 다석이 쓴 말(없음, 빔)로, 서구 기독교 신학과 구별되는 다석사상, 다석신학의 근간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특히 필자는 “다석학파”의 성립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유영모-함석헌의 흐름을 이은 다수한 신학자들의 맥락을 한 아름으로 엮어 내기도 하였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다석신학의 본질과 구조”를, 
제2부는 “다석신학의 세계사적인 의미와 보편적인 적용”을 본격적으로 탐구하였으며, 
제3부에는 다석사상에 관한 영문논문 2편을 실었다. 

본격적인 담론 전개에 앞서 필자는 “다석 유영모의 삶과 사상-어제와 오늘의 의미”라는 에세이를 통해 다석에 임하는 필자의 경건한 신앙적 태도와 학자적 엄숙함을 고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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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부 ┃ 서구 및 아시아 신학의 관점에서 본 多夕신학의 얼과 틀

동서 신학 사조에서 본 多夕의 얼 기독론
多夕 유영모가 본 한글 속의 기독교
천부경을 통해서 본 동학과 多夕의 기독교 이해
多夕과 多夕학파의 탈脫기독교적 기독교

제2부 ┃ 多夕신학의 세계사적 의미와 보편적 쓰임

역사적 예수의 재再케리그마화로서 多夕신학
茶山과 濯斯를 넘어 多夕에게로
개신교적 생태신학의 특성과 多夕신학 속의 생명의식
多夕신학의 빛에서 본 죽음과 생명의 통전

제3부 ┃ 기독교 서구와 소통하는 多夕신학

Finding a way to the Indigenization and Globalization of Christianity…
Dong-hak and Da-Seok’s Understanding of Christianity in Relation to Cheon-bu-gyeong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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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없이 있는’ 하나(빈탕)가 하느님이고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바탈 속에 존재하는 한 인간은 ‘없이 사는’ 존재가 되어야 마땅하다. 다석은 종종 성서가 말하는 ‘거룩’을 ‘깨끗’으로 이해했다. 마음이 깨끗해야 하느님을 볼 수 있다는 성서 말씀 때문이었다.... 다석에게 더러움은 '덜 없음'이었다. 빈탕한 데 맞혀 놀지 못한 상태가 바로 덜없음, 곧 더러움인 것이다. ... 그렇기에 없이 계신 하느님 안에 사는 사람은 ‘덜’ 없는 존재가 돼서는 안 된다. 교회 역시도 자신의 '덜 없음'을 자각하고 깨끗해져야만 할 것이다. 여기에 평화생태신학이 추구하는 해방적 교회의 실상이 담겨 있다.(“개신교적 생태신학의 특성과 다석 신학 속의 생명의식”, 본문 287쪽)  접기

그는 여느 서구신학자들보다 철저한 생태주의자인 것이다. 인간의 자기완성, 곧 절대생명에로의 길은 따라서 ‘있음’이 아닌 ‘없음’에 걸맞게 사는 데 있다. 때문에 다석은 우리 인간이 '빈탕'한 데 맞춰 살기를 간절히 바랐다. 몬(物)에 애시당초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다석이 자신의 삶으로서 제시한 것이 ‘일좌식(一座食) 일언인(一言仁)’이었다. ... 이것은 하루 한 끼 먹고 늘 묵상 기도하며 어디든 걷고 남녀 관계를 줄이는 일이다. 요컨대 '뜻'을 좇아 살기 위한 방편이었다. 빈탕한 하느님이고 그것이 인간의 바탈인 한 ‘일좌식 일언인’은 빈탕한 데 맞춰 사는 인간의 길인 것이다.(“다석 신학의 빛에서 본 죽음과 생명의 통전”, 본문 323쪽)  접기

이상과 같은 다석 유영모의 얼 기독론은 오늘 우리에게 서구 기독교 교리에 대한 안일한 모방적 적용을 피하게 하며 자기 전통에 대한 성실한 참여를 통해 기독교의 자기 변혁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종교 간의 평화 없이는 세계평화를 이룰 수 없으며, 종교 간의 평화는 종교 간의 대화 없이는 성사되지 않는다는 세계 윤리 구상을 직시하면서, 우리는 얼 기독론이 기독교와 동양 종교들 간의 지평융합을 위한 창조적 노력의 결실인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전 지전 지구적 위기 상황 하에서 국가/민족/종교 그리고 제반 이데올로기를 넘어 세계 윤리 구상을 정언적 명령으로 요청받는 시점에서, 얼 기독론이 갖는 초월과 내재를 아우르는 생명 신학적 요소는 역사 현실 속에서 보편적 구속력을 지닐 수 있다.(“동서 신학 사조에서 본 다석의 얼 기독론”, 본문 89쪽)  접기

유영모와 김흥호는 한글 속에서 없이 계신 하느님을 말했다. 우주적 생명의 본질이 본래 있음에 있지 않고 비움에 있음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비움은 철저하게 '아(我)'의 흔적을 버릴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하늘의 소리에 응답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불살라야 한다는 것이다. 비움 속에서만 인간은 하늘의 소리에 응답하며 그와 하나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효는 없이 계신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가 되려는 인간 '살음'의 목적이자 사람의 존재이유가 된다. 비움은 또한 우주생명의 화육을 돕는 생명 원리의 길이기도 하다.(“다석 유영모가 본 한글 속의 기독교”, 본문 127쪽)  접기

동학과 다석의 동양적 기독교 이해는 동서를 아우르는 생명사상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 '천부경'의 ‘일’과 ‘삼’의 구조에서 보듯 본래 우주는 ‘한 생명’이었다. 우주만물은 절대 생명인 ‘하나’의 화현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동학은 인간이 절대생명인 ‘한울’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의 자각을 말했고 다석은 하나님을 자신의 밑둥(속알)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참나가 우주를 포괄하는 전체임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자신의 참나를 찾음으로써 근원적 하나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천부경을 통해서 본 동학과 다석의 기독교 이해”, 본문 162쪽)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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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정배 (지은이)

감리교신학대학교 및 동대학원, 스위스 바벨대학교 신학부(Dr. Theol)를 마치고, 1986년부터 2016년까지 30년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미국 게렛신학교, 버클리 GTU, 일본 동지사대학교 신학부에서 활동했으며, 감신대 부설 통합학문연구소를 창설했고 이끌었다. 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 한국문화신학회, 조직신학회 회장,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종교간대화 위원장, 생명 평화마당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사단법인 나눔문화 이사장직을 수행했고 최근에는 3.1운동 백 주년 종교개혁 연대 공동대표, 국제기후시민종교네트워크(ICE) 상임 대표, 현장아카데미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이정배의 생명과 종교 이야기』, 『이웃 종교인을 위한 한 신학자의 기독교 이야기』, 『 생태 영성과 기독교의 재주체화』, 『빈탕한데 맞혀놀이-多夕으로 세상을 읽다』,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 『한국 개신교 전위 토착신학 연구』, 『켄 윌버와 신학』, 『기독교 자연 신학연구』, 『생명의 하느님과 한국적 생명신학』, 『 토착화와 생명 문화』 등이 있고 최근에는 『종교개혁 500년 以 後신학』과 『3.1정신과 以後신학』을 공동으로 엮어냈다. 접기

최근작 : <세상 밖에서 세상을 걱정하다>,<우리는 하느님을 거리에서 만난다>,<참여와 명상, 그 하나됨을 위한 여정> … 총 45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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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은 함석헌의 스승인 다석 유영모의 사상에 관한 연구서로, ‘다석(多夕)신학’이라는 범주를 통해 다석사상을 새롭게 조명한다. 필자는 ‘다석신학’이 한국적일 뿐 아니라 충분히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담론이며, 다석이 한국 또는 동양의 신학자가 아니라 ‘(세계)신학자’로 자리매김될 수 있음을 논파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은 다석이 쓴 말(없음, 빔)로, 서구 기독교 신학과 구별되는 다석사상, 다석신학의 근간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특히 필자는 “다석학파”의 성립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유영모-함석헌의 흐름을 이은 다수한 신학자들의 맥락을 한 아름으로 엮어 내기도 하였다.

책의 구성과 내용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다석신학의 본질과 구조”를, 제2부는 “다석신학의 세계사적인 의미와 보편적인 적용”을 본격적으로 탐구하였으며, 제3부에는 다석사상에 관한 영문논문 2편을 실었다.

본격적인 담론 전개에 앞서 필자는 “다석 유영모의 삶과 사상-어제와 오늘의 의미”라는 에세이를 통해 다석에 임하는 필자의 경건한 신앙적 태도와 학자적 엄숙함을 고백하고 있다. 이로써 이 책은 단지 다석에 대한 ‘신학적 접근’을 넘어서는 기도요, 공부가 됨을 알 수 있다.

본론 제1부에는 4편의 논문이 실렸다. 다석신학의 본질이 서구신학의 최근 경향이나, 기독교-불교 간 대화에 근거한 ‘교토학파’의 최신의 기독교 이해에 충분히 견줄 수 있는 선진적인 것임을 논파하였고(“서구 신학의 틀에서 본 다석의 얼기독론”), 소리글자인 한글을 하늘의 소리로 여기고 신학적으로 성찰한 다석의 사상을 조명하였다(“다석 유영모가 본 한글 속의 기독교”). 또 다석사상을 한국 고유의 “천부경”의 맥락에서 이해한 “천부경을 통해서 본 동학과 다석의 기독교 이해”는 2008년 세계철학자대회에서 발표된 논문이다. 수운의 동학과 다석신학을 천부경의 시각에서 연계하여, 문명 비판적인 세계사적인 생명담론으로 정리했다. 특히 “다석과 다석학파의 탈(脫)기독교적 기독교”를 통해 다석신학의 독창적인 사조를 구명함과 아울러, 유영모, 함석헌 이후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이기상, 박재순 등으로 계승/확산되어 온 다석학회 학자들을 아울러 “다석학파”로의 발전적인 전망을 모색하고 있다.

본론 제2부에도 4편의 논문이 실렸다. 다석신학의 빛에서 “역사적 예수 연구 결과와 포스트모던 사조” 등을 논구하였고(“역사적 예수이 재케리그마화로서 다석신학”), 다산 정약용과 탁사 최병헌에서 다석 유영모로 이어지는 유교적 기독교의 전통과 가능성을 탐구한다. 필자는 다석이야말로 다산과 탁사의 한계를 넘어서는 유교적 기독교의 완성자라고 갈파한다(“다산과 탁사를 넘어 다석에게로”). 또한 필자는 다석신학은 최근의 인류사적인 화두가 되고 있는 생태학과 생명학에도 훌륭히 응답하고 있음을 논구하고(“개신교적 생태신학의 특성과 다석신학 속의 생명의식”), 끝으로 종교적 본질이라고도 할 죽음과 생명에 관한 기독교적 시각을 다석신학의 틀 속에서 조명하였다(“다석사상의 빛에서 본 죽음과 생명의 통전”).

이들 논문 중 일부는 오래 전에 발표된 것들이지만, 이 책의 출간에 맞춰 대폭 수정하거나 개작하였다. 또 이 책에는 다석의 오도송과 핵심 사상에 곡을 붙인 두 곡의 노래 악보가 최초로 공개된다.

다석 유영모와 다석신학

다석 유영모 선생은 아직은 “함석헌 선생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나마 선생을 안다는 이들도 한국의 간디에 버금가는 성인으로 추앙하는 이들과 이단아로 정죄하는 이들로 양분되어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한국 기독교사의 산맥을 형성하는 초창기 인물 가운데 그의 영향을 받은 이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근년 들어 다석이 새롭게 주목받는 것은 기독교가 표면적인 흥왕(興旺)에도 불구하고 그 속으로부터는 심각한 위기의 국면에 노출되었다는 진단에 대한 한 반성의 결과이기도 하다. 다석의 사상과 삶 속에 오늘의 위기를 넘어서는 새로운 기독교 이해, 새 기독교의 씨앗이 있음을 주목하는 것이다. 나아가 기독교계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우리 시대가 요구받고 있는 새로운 삶과 새로운 사상의 대안이 바로 다석 안에 있다는 공감대가 점점이 확대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다석이 일견 기독교로부터 일탈된 것으로 평가하는 분들도 있지만, 다석은 멀어짐으로써 그 본질에 다가가는 방식을 취하였을 뿐이다. 다석은 그 사상적 다원성과 포용성에도 불구하고 오직 예수만을 자신의 스승으로 고백하였던 것이다. 또한 “다석은 불교의 견성/성불, 유교의 천명지위성/솔성지위도/수도지위교의 빛에서 기독교의 하느님/예수/성령에 대한 이해를 시도했다.”

다석은 하느님을 “없이 계신 분"으로 이해했다. 이는 태극이무극, 진공묘유라는 동양적 사고와통한다. 다석은 “젊지 않은 나이"에 예수를 자신의 스승으로 고백하고 오도시(悟道詩)를 노래했다. 다석은 “십자가의 도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는 전체생명이 되었고 우리 인간은 그 생명에 잇대어 살고 있다고 믿었다.”

다석은 동양적 수행 전통의 틀에서 기독교 십자가를 자속적(自贖的)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그리하여 다석은 하루를 살아도 평생처럼, 그리고 평생을 하루처럼 살았다. “오 늘”이라는 말로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영원을 보았던” 것이다.

“물질은 개벽하고 있으나 정신의 개벽이 요원한 이 때, 아니 어쩌면 사람이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금수처럼 욕망 덩어리로 살고 있는 시점에서 수행적 기독교, 십자가의 도(道)를 한국적 방식으로 전하는 다석의 가르침은 오늘의 한국인뿐 아니라 세계인을 위해서도 새로운 에토스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접기


2020/04/28

성경은 대도(大道)의 문서이다 빛의 구도자 다석 유영모와 빛의 전도자 한밝 변찬린(3) 이호재



성경은 대도(大道)의 문서이다 - 에큐메니안



성경은 대도(大道)의 문서이다빛의 구도자 다석 유영모와 빛의 전도자 한밝 변찬린(3)
이호재
원장(자하원) | 
승인 2020.04.28 


변찬린 : 성경은 어느 특정 종교의 전용문서가 아닌 대도(大道)의 문서이다. 『성경의 원리』가 새 종교의 새벽을 예고하는 예루살렘의 홰쳐우는 닭소리가 되길 바란다. 빛은 동방으로부터 비칠 것이다.

유영모 : 대개의 종교 이름은 자신이 붙이는 것이 아니고 남이 붙여서 된 이름이 많은데 나를 보고 ‘바른소리치김(正音敎)’라고 해 준다면 싫어하지 않겠어요.


독창적인 한국의 종교적 영성이 보편적인 우주적 영성

두 종교인을 그리스도교의 선교신학과 성취론의 관점에서 평가한다면 한국의 독창적인 종교적 영성과 종교(신학)사상이 서구 그리스도교 문화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는 보기론(補基論)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두 종교인의 사유체계는 그리스도교를 포월(包越)한 새로운 종교사상의 지평을 열고 있기 때문에 한국 종교와 세계 종교의 지평에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변찬린은 유영모, 김교신 등 주체적인 성경해석을 한 종교인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토착화 신학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그리스도교 신종교 계통의 종교사상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제시한다. 더욱 강조되어야 할 핵심은 희랍적 이원화로 형성된 서구 신학을 극복하려는 역사적 자의식으로 한국의 종교적 영성으로 『성경의 원리』 4부작을 저술하여 세계 종교 지평에서 보편화하려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는 성서를 18개로 범주화하여 조직신학적으로 해석한 『성경의 원리』(1979), 구약의 주요 인물과 사건을 해석한 『성경의 원리(중)』(1980), 신약의 주요인물과 사건을 해석한 『성경의 원리(하)』, 그리고 사후에 발간된 『요한계시록 신해』(1986)순으로 발간하고, 2019년 한국신학연구소에서 개정신판으로 전면 재발간되었다. 『성경의 원리』(1979 초판, 1988 재판, 1992 삼판, 2019 개정신판)는 “Principles of the Bible”로 영역(사진 참조)되어 하버드대 등 영미권의 주요 대학과 저명한 신학자에게 배포되었다.

▲ 변찬리, Principles of the Bible, 1995. ⓒ이호재 원장 제공


김상일 교수에 의하면 성서의 부활과 변화의 도맥에 대해 변찬린 만큼 시종일관 깊이 있게 해석한 것은 세계 신학계에서 최초라고 평가한 것을 이미 언급한 적이 있다. 또 한국종교문화 연구의 메카라 할 수 있는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의 연구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 이사인 윤승용은 변찬린의 한밝 성경해석학을 ‘한국기독교’의 해석 틀을 정초한 해석체계라고 평가하며 윤성범, 변선환 등 문화신학 그룹, 유영모 등과 같은 주체적인 성경해석 그룹, 영통 계시에 의한 그리스도교계 신종교 그룹 등의 종합된 신학 사상이라고 소개하며 “우리의 삶의 현장을 고려한 주체적 신학담론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미래 인류의 생명과 문명을 고려한 생명신학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삶의 현장 신학이고, 새로운 축의 시대를 대비하는 인류 미래신학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한다.(1)

한편 유영모에 대해서는 이정배 교수가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2009), 『빈탕한데 맞혀놀이』(2011)라는 저서를 통해 유영모 신학을 재구성하여 세간에 선보였다. 김흡영 교수는 세계 신학계에 한국신학의 자리매김을 위해 『가온찍기』(2013)로 다석신학을 조명하며 ‘도의 신학’의 한 사례로서 다석신학을 영미권에 소개하고 있다. 또한 2008년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 철학자대회에서 유영모와 함석헌이 한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소개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 종교인은 성서 및 동서양의 경전에 대한 독창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변찬린은 “성경은 특정 종교의 전용문서가 아닌 대도(大道)의 문서이다”라고 선언한다. 이런 바탕으로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한다”라는 원칙을 가지고 다종교적 경전과 간텍스트적 해석, 다학제적 방법론을 성서해석에 적용한다. 또한 유영모는 “내 말은 이 세상에 쓸모가 없다”, “예수만이 말씀으로 된게 아니다. 개똥조차도 말씀으로 되었다. (중략) 나는 말씀밖에는 아무것도 안 믿는다. 기독교만 말씀이 아니다. 불교도 마찬가지 말씀이다”라고 하며 말씀 중심의 깨달음을 『다석일지』와 강의록으로 남기고 있다. 두 종교인은 한국의 경전읽기 독창성을 바탕으로 우주적 몸으로 경전을 회통하여 보편성을 가진 언어로 재창조해 낸다.

유영모의 『다석일지』와 강의는 김흡영 교수가 말하듯이 “다석의 독창적인 신학 사상을 현대 조직신학의 범주와 잣대에서 체계화systematize 하는 작업 자체가 범주착오적 오류일 수 있다”는 선교신학적 오류를 잘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유영모와 변찬린의 경전읽기는 성서해석이라는 관점에 국한해서만 이해하더라도 이미 서구신학을 극복하고 한국의 독창적 영성으로 새로운 경전읽기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김흡영 교수는 세계신학계를 향해 핫지슨(Peter C. Hodgson)의 구성신학적 방법(2)을 이용해 조직신학적으로 다석신학을 재구성해 냈지만(3) 변찬린은 성서텍스트를 다종교적 언어, 간텍스트적 해석과 다학문적 방법을 이용하여 당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선교신학의 한계를 극복하였다.

그럼에도 다석의 제자이자 개신교 목사의 종교적 정체성을 가진 김흥호의 『다석일지』 해설서인 『다석일지공부』는 김흥호의 직관적인 깨달음의 해설과 그리스도교의 환원적인 사유적 해석의 입장에서 다석을 해설하고 있다. 김흥호는 『다석일지』를 이렇게 평가한다.
우리는 지금 『다석일지』에 적힌 삼천 수나 되는 시나 시조를 읽으면서 (중략) 이 시조들이 성경 어느 말씀과 연관되는지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한이 된다. 성경 말씀을 읽고 한 말들이니 다시 이 말을 생각하여 성경 말씀까지 찾아 들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성경』 말씀의 변형이 선생의 시와 시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성경 말씀의 한국화(韓國化)가 『다석일지』이다.(4)


유영모는 성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경전을 읽었으며, 그 깨달음을 한시와 독창적인 한글 언어 등으로 『다석일지』에 기록하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개신교 목사로서 호교론적인 사유가 『다석일지』의 해설서인 『다석일지공부』에 선 반영되어 있음을 후학은 경계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이 또 다른 제자 박영호와 대척점을 이루는 부분이기도 하다. 박영호는 “김흥호가 목사가 되고자 신학을 공부하러 가다니, 어미 닭이 오리 새끼를 깬 것과 같이 어이가 없었다”라고 평한다. 스승 유영모와 제자 김흥호와 박영호의 사유체계의 차별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정배 교수의 제안대로 불교에 중점을 둔 교토학파를 염두에 두고 유영모를 중심으로 함석헌, 김흥호와 박영호, 이기상 교수 등 다석연구자로 ‘다석학파’를 형성하려 한다면 선교신학의 입장을 뛰어넘는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유영모와 함석헌을 균형 있게 연구한 결과는 박재순 교수가 있을 뿐이다. 아직도 유영모의 직계 제자인 박영호가 정확한 기억력으로 유영모를 증언하고 있다. 제자가 생존해 있을 때 이런 종교신학프로젝트가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가 참가하여 성공리에 진행되기를 바란다.

유영모와 변찬린은 그리스도교의 사유체계를 포월(包越)하여 한국적 지평에서 인류 정신문명사에서 보편화할 수 있는 ‘포월적 상생’의 사유점을 발견하였다. ‘이 포월적 상생’의 준거점이 변찬린의 언어로는 한민족의 종교적 원형인 ‘선맥과 풍류’의 발견이고, 유영모의 언어로는 ‘가온찍기’를 하고 ‘빈탕한데 맞혀놀이’를 한다는 것이다. 포월적 중심은 ‘선맥의 가온찍기’이고, 상생의 큰 원은 ‘풍류로서 빈탕한데 맞혀놀이’을 하는 우주적 궤적이다. 이 지점을 놓치면 한국신학의 세계화 작업은 중심없이 원을 그리며 서구신학의 대리전을 치르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유영모의 바른소리치김(正音敎)

‘바른 소리’와 ‘정음(正音)’에 대해서는 유영모 연구자가 상당히 주목하고 있지만 “바른소리치김(正音敎)”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유영모는 자신의 가르침을 ‘정음교(正音敎)’로 불러주기를 바란 적이 있으며, 함석헌도 ‘새 시대에는 새 종교’가 나와야 한다는 탈 그리스도교적 사유를 하고 있다. 유영모의 직계제자인 박영호는 유영모가 이미 특정 종교에 얽매인 사유를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자, 유영모의 종교사상을 조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말을 기록으로 남겨놓고 있다.
대개의 종교 이름은 자신이 붙이는 것이 아니고 남이 붙여서 된 이름이 많은데 나를 보고 ‘바른소리치김(正音敎)’라고 해 준다면 싫어하지 않겠어요.(5)


필자는 2015년 변찬린과 유영모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박영호 선생을 종로 5가에서 처음 만난 후 수년 간 여러 차례에 걸쳐 ‘정음교(正音敎)’의 실체가 학술정보로서 가치가 있는지 다각적으로 조사한 바 있다. 박영호 선생은 의식하였는지 모르지만 필자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유사한 질문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사한 결과를 처음으로 에큐메니안에 공개한다.

▲ 2019. 12. 5, 필자와 대담 중 ⓒ이호재 원장 제공


박영호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71년경 『씨알의 소리』 편집장을 역임한 전덕용은 함석헌이 『씨알의 소리』가 1, 2호 발간되고 폐간된 후 (함석헌은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 전덕용의 초청으로 구기동에 사시는 유영모 선생을 모시고 광화문 근처에서 20여 명의 청중에게 『정음설교(正音說敎)』를 주제로 한 강연을 하였다. 다음은 그동안 인터뷰한 내용을 문답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6)
필자 : 선생님, 유영모 선생께서 생전에 자신의 종교를 ‘바른소리치김’이라고 한 사실은 있는지요?
박영호 : 아 그럼요. 문화일보에 썼듯 “나를 보고 ‘바른소리치김(正音敎)’라고 해 준다면 싫어하지 않겠어요”라는 말을 했지요
필자 : 일전에 선생님이 무슨 종교를 만든다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셨지만 하나의 제도종교의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은 있는 거네요.
박영호 : 1971년경에 「정음설교」라는 글이 『다석일지』에도 보이고 심지어 ‘정음교의 신자’라고 하기도 한 적이 있지요!
필자 : 네 선생님, 수차례 문의드렸지만 이 부분은 유영모 선생의 종교적 정체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 다시 한번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문의드리는 겁니다.
박영호 :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유영모 선생은 이미 특정 제도의 틀을 벗어나신 분인데 김흥호 선생의 글만 보고 신학자들이 유영모 선생을 크리스챤이라고 하는데 정양모 신부는 기독교의 교리를 훨씬 벗어나신 분이라고 다석학회에서 공개적으로 말씀하신 적도 있어요.
필자 : 네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


종교학자 강돈구 교수는 유영모가 “자신의 사상을 ‘正音敎’라고 부를 수 있는 점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집 대문에 “참을 찾고자 하거든 문을 두드리시오”라고 할 정도로 종교사상가이면서 한편으로는 종교가로서의 면모도 보이고 있다. (중략) 종교의식과 종교조직, 그리고 경전을 만들려고 하지 않은 유영모의 종교는 소위 ‘구도자求道者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7)

유영모는 종교간(내)의 대화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종교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고 기존의 제도종교의 경전을 회통해 내고 있다. 이런 지점이 종교학과 신학이 서로 대화를 하여야 하는 다학제적 이해지평이다. 또한 이 지점이 바로 서구 그리스도교의 단속(斷續)과 한국 종교적 영성을 디딤돌로 비약(飛躍)하여 세계 종교 지평에서 ‘포월적 상생’을 하는 풍류의 심성이다.

미주
(미주 1) 윤승용, 「한밝 변찬린, 새 축 (軸) 의 시대 ‘한국적 기독교’ 해석 틀을 만들다」, 『뉴스레터』 (504), 2018.1.10.
(미주 2) 영미권에서는 1994년에 “Winds of the Spirit”로 출간되어 2000년에 『기독교 구성신학』이라고 국내에 소개되었다. 구성신학은 폴 틸리히의 상관관계 방법론을 기초로 하여, 성경과 전통, 문화사와 신학, 종교적 전통, 문화적 콘텍스트(상황, 자리), 종교적 경험을 신학의 구성 자원으로 사용할 것을 핫지슨(Peter C. Hodgson)이 제안한 바 있다.
(미주 3) 김흡영, 『가온찍기』(서울: 동연출판사, 2013), 6-29.
(미주 4) 김흥호, 「나의 스승 유영모」, 『다석강의』(서울:현암사, 2006), 967.
(미주 5) 박영호, 『多夕 柳永模의 생각과 믿음』(서울: 현대문화신문, 1995), 52.
(미주 6) 박영호는 필자와의 교류에서 ‘바른소리치김(正音敎)’를 말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직접 확인해 주었다. 2020년 3월 23일 전화통화에서 인터뷰 내용이 사실과 다르지 않음을 최종 확인하고 사진과 함께 공개하는 것을 동의하였음을 밝힌다.
(미주 7) 강돈구, 「유영모 종교사상의 계보」, 『종교이론과 한국종교』(서울: 박문사, 2011), 484.


이호재 원장(자하원) injicheo@naver.com

2019/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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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09년 4월호)
동서문명의 만남과 융합







다석연구의 부흥 

이정배 교수가 “다석 르네상스 시대”라고 말한 것처럼 다석 사상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늘고 있다. 2006년 봄에 『다석강의』(현암사)가 출판된 이래 2008년 8월에 세계철학대회에서 20명의 학자들이 유영모·함석헌의 철학을 발표했다. 그 무렵 필자는 다석의 삶과 사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다석 유영모』(현암사)를 2008년 7월에 냈고 다석의 제자 박영호가 다석의 삶과 사상을 쉽게 풀이한 『다석 류영모』(두레)를 2009년 2월에 냈다. 바로 이어서 이 교수가 무게 있는 학술연구서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을 펴냈다.
일본의 대표적인 철학연구기관인 교토포럼에서 발행하는 『공공적 양식인』에 다석의 사상이 소개됨으로써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서구철학에서는 ‘생각’이 이성의 추리와 사고(思考)를 뜻하는데 다석은 ‘생각’이 생명의 주체인 ‘나’의 행위일 뿐 아니라 ‘나’를 생성하고 전진향상시키는 생명행위라고 보았다. 더 나아가서 ‘생각’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영적 행위라고 하였다. 이성의 틀에 갇힌 서구철학이 출구를 찾지 못하는데 다석은 ‘생각’을 생명을 살리는 행위, 하나님과 소통하는 행위로 봄으로써 철학적 사유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일본의 철학자들이 이러한 다석의 철학에 주목하고 있다. 올해 7월과 12월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한일철학대화마당을 열어서 다석의 사상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올 3월 20일에는 씨 학회가 창립되어 한국의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유영모·함석헌 철학의 연구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교수의 다석 사상연구서가 나온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다석 사상연구를 위한 이정배 교수의 자격 

다석 사상연구를 위한 특별한 자격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석의 사상을 연구하는데 두 가지 이유에서 자격이 필요하다. 첫째 다석의 신학과 철학이 창조적이면서 깊고 넓은 정신세계를 담고 있지만 다석이 남긴 글과 자료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다석의 삶과 정신이 매우 높고 깊기 때문에 그의 사상과 깨달음의 경지를 헤아리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다석 사상에 매력을 느끼고 연구하려고 하지만 쉽게 다석 연구에 뛰어들지 못한다.
이 점에서 이 교수는 선택받은 사람이다. 이 교수는 변선환의 애제자이다. 변선환이 다석의 제자인 김흥호를 감신대에 초빙하였다. 김흥호의 연구실과 이 교수의 연구실이 이웃하고 있어서 13-4년 동안 이 교수는 김흥호를 통해서 다석의 정신과 사상에 대한 가르침을 직접 받았다. 필자는 이것이 우연히 이루어진 게 아니라 변선환의 깊은 배려로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로써 이 교수는 누구보다 다석연구를 위한 준비를 갖춘 셈이다.
이 교수가 변선환으로부터 불교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이어서 스위스에서 유교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다석 연구를 위한 준비였다고 생각된다. 그 동안 문화신학에 대한 연구에 앞장서면서, 국내에서는 최초로 다석사상을 연구한 박사제자를 길러냈다. 몇 해 전에는 김흥호와 함께 다석사상연구논문집을 펴내기도 했다.

책의 구성과 내용에 관하여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다석 신학의 본질과 구조를 다룬 4편의 논문이 실려 있고 2부는 다석 신학의 세계사적 의미와 보편적 적용에 관한 4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3부에는 천부경과 동학에 비추어서 다석의 기독교 이해를 다룬 논문을 영역한 글이 실려 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저자가 말하듯이 동도동기론의 관점에서 쓰여졌다. 한국의 철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이 서구의 전통과 주제를 서구의 관점에서 다룬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이다. 또한 동양의 문화전통과 주제를 서구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는 이른바 오리엔탈리즘과도 다르다. 이교수는 “한국을 위시한 동북아시아 문화전통을 서구적 잣대로서가 아니라 한국적·아시아적 시각에서 이해해야 하는 소위 동도동기론적 해석학”을 말한다.(94쪽) 이로써 학문의 주체적 자립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교수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틀 안에 갇혀 있지 않다. 1부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서구의 학문이론과 관점과의 비판적 대화를 시도한다. 동도동기론의 관점을 견지하면서 서구신학과의 긴밀한 대화를 통해서 다석의 신학을 보다 풍성하고 정밀하게 다듬고 표현한다. 가다머의 지평융합이론, 판넨베르그의 아래로부터의 기독론, 서구의 에코페미니즘 등을 끌어들여 다석신학의 한국적 아시아적 정체성을 뚜렷이 확립하면서도 다석신학에 대한 논의와 이해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2부에서 “다석신학의 세계사적 의미와 보편적 쓰임”을 말하듯이, 저자는 다석신학의 논의를 세계적 지평에서 전개한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을 실증하는 것이다.
이 서평에서는 이 책에 실린 논문들 가운데 3개를 소개하고 평가함으로써 서평의 책임을 가름하고자 한다.
첫 번째 논문 “동서신학의 사조에서 본 다석의 얼 기독론”에서 저자는 판넨베르그의 미래적 기독론과 힉의 신중심주의적 기독론을 서구의 대표인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으로 규정하고 이와 관련해서 다석의 얼 기독론을 설명하고 있다. 존 힉의 기독론은 판넨베르그의 기독론을 좀더 철저화하고 발전시킨 형태인데 저자는 힉이 “궁극적 신비(실재)와 종교체험의 다원성(문화적 해석의 상대성)을 분리”하는 것을 양자의 상호연관성을 근간으로 하는 동양종교의 관점에서 비판한다. 더 나아가 “신중심적 기독론의 결정적 문제점은…기독교 안에서 이미 그리스도로 고백된 예수가 아시아적 심성 속에서는 어떻게 해석되고 언표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46쪽)
같은 논문에서 저자는 교토학파의 선불교적 그리스도 이해를 다룬다. 선불교철학의 즉비(卽非) 논리에 따르면 서로 다른 개별자와 초개별자, 현상과 본체가 ‘하나’이다. 본래의 자기는 “주객도식이 난파된 공(空)으로서의 근원저(根源底)에로의 자기초월”을 뜻한다.(49쪽) 선불교 신학자들은 “절대 무(無)를 근간으로…성육신, 십자가…부활을 해석”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보편성 속에 해소시킴으로써, “십자가 사건 속에 포함된 당파적 연대성으로서의 참된 종교적 관용성을 숙지하지 못한 것이다.”(57쪽)
저자에 따르면 일본 교토학파의 그리스도 이해가 선불교에 근거를 둔 것과는 달리 유영모는 불교적 토대에 유교적 내용으로 살을 붙임으로써 기독교 이해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들었다.(63쪽) 유영모는 “불교의 무아(無我), 곧 인간의 자기의식을 철저히 폐기시키는 자기부정의 원리 속에 유교적 살신성인의 실천원리를 채워 넣음으로써 동양적 정신을 지평융합”시킨다.(65쪽)
저자는 유영모가 “몸으로서의 예수를 철저하게 비신성화시켰다.”는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의 철저화된 형태”라고 생각한다.(73쪽) “예수의 얼을 그리스도, 곧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리얼리티로 인정하는 점에서 유영모의 기독론은 하느님과 예수의 존재론적 차이에 관심을 집중하는 아리우스주의의 신중심주의적 입장과도 분명히 구별된다.”(75쪽)
저자는 신중심주의를 표방하는 서구 종교다원주의신학과 유영모의 기독론의 차이를 밝힌다. 서구 종교다원주의신학은 “하느님과 공(空), 예수 그리스도와 부처 또는 공자…간의 유비적 관계에 주목”한다. 이에 반해 유영모의 얼 기독론은 “‘얼의 몸 입음’을 모든 사람의 공통된 일로 이해하면서, 성육신의 의미지평을 더욱 급진적으로, 더욱 보편적으로 넓혀 주었다.”(79쪽) 또한 선불교신학자들은 십자가 사건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또는 무아란 이름 하에 탈역사화시켜…그 사건이 생성된 역사적 원의미를 탈각시킨 한계를 드러낸다.”(85쪽) 그러나 유영모는 예수의 십자가를 “몸의 나를 버리고 얼의 나로 솟아오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친 사건으로 이해한다.”(86쪽) 유영모의 기독론은 서구의 종교다원주의신학자들에 비해서 성육신의 의미지평을 더욱 보편적으로 확대하고 일본의 선불교신학자들과는 달리 예수사건의 역사성을 살려내고 있다.
저자는 “다석 유영모가 본 한글 속의 기독교”에서 동도동기론의 해석학적 관점을 가지고 다석의 한글 신학을 밝히고 있다. 다석에 따르면 언어는 “모두 하느님이 주신 것이며,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글을 통하여 하느님을 찾아 나설 수 있다.”(97쪽) 다석은 겨레의 얼이 담긴 한글 속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보고 한글로 하느님 말씀을 풀어내고자 노력하였다. 다석은 하느님의 말씀을 겨레의 언어인 한글로 이해하여 자기 말로 바꾸는 것을 성육신이라고 불렀다.(97쪽)
유영모에 따르면 모음은 “우주의 아버지이며 어머니이신 하느님이 인류를 부르는” ‘계소리’이고 자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아는 인간이 자신의 몸을 들여 하늘의 소리에 응답하여 하늘에 이르는 길”이고 ‘제소리’이다.(110쪽) 다석은 10글자의 모음을 “ㅏㅑ 아해들아 ㅓㅕ 어서 ㅗㅛ와요, ㅜㅠ우흐(위)로 ㅡㅣ세상을 꿰뚫고 곧이 곧장.”으로 풀이한다. 모음은 이 세상을 꿰뚫고 하느님 계신 곳으로 인간을 부르고 계신 하느님의 사랑을 계시하는 언어이다.(111쪽)
모음의 기본은 천지인 삼재를 나타내는 ·ㅡㅣ이다. ㅡ는 세상이며 ㅣ는 세상을 꿰뚫고 곧장 올라가는 ‘고디 신’이고 ·는 태극의 신학적 풀이로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평등, 박애의 상징이다. 다석은 천지인 삼재의 순서를 바꾸어서 ‘으이아’(ㅡ ㅣ·)로 부른다. ‘으이아’는 우주의 원음으로서 세상의 탐진치를 끊고 하늘로 올라가기 위한 인간의 힘씀을 나타낸다. ㅡ ㅣ·를 겹쳐놓으면 십자가가 되고 십자가는 인간의 마음과 세상을 한 점으로 찍고 세상 죄의 수평선을 뚫고 하느님께 올라가는 가온찍기(點心)가 이루어지는 자리이다.(111-2쪽)
다석은 자음을 변형시키거나 의미를 부여해서 자음이 “하느님에게로 나아가는 구체적인 길을 제시한다.”고 보았다.(113쪽) 또한 ㄱㅋㅎ, ㄴㄷㅌ, ㅁㅂㅍ, ㅅㅈㅊ, ㅇㆆㅎ이 삼단계의 변증법적 발전을 보이고 있는 것은 한국적인 천지인 삼재관을 반영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다석은 ㅁㅂㅍ이 물불풀로서 땅에서 물이 올라오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이 땅 위에 풀(생명)을 자라게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114-5쪽) 다석의 한글이해는 단순한 말놀이나 사변적인 유희가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깨닫고 체득하는 행위였다. 그의 한글이해는 “몸으로 캐내는 생각”이다.(116쪽)
그러면 그의 한글이해와 그리스도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저자에 따르면 다석과 김흥호에게 그리스도는 “시간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참나를 만나는 일, 몸 속에서 정신이 터져 나온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의 자리”이며, “계소리와 하나 되는 제소리를 내게 하며, 없이 계신 그분에게로…우리를 이끄시는 분”이다.(118쪽)
여기서 소개할 셋째 글은 “천부경을 통해서 본 동학과 다석의 기독교 이해”이다. 이 글은 부제 “기독교의 토착화/세계화를 위한 수운과 다석의 한 접점 모색”이 시사하듯이 천부경이라는 한국고유의 종교철학사상의 빛에서 동학과 다석사상의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의미를 밝히려 한다.
저자는 천부경의 삼재사상의 틀에서 동학과 다석사상의 상관성을 드러내려 한다. 수운은 『천주실의』의 자극 내지 도움으로 민족 고유한 『천부경』의 하느님을 재발견하였다. 다석도 유불선을 회통시키며 『천부경』의 삼재론을 민족문화의 원형으로 보았다.
저자는 먼저 동학과 다석사상의 근본토대로서 삼재론을 『천부경』을 중심으로 논의한다. 81자로 이루어진 『천부경』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하나(一)로부터 천지인 삼극(三極)이 갈라져 나오지만 그 근본은 소진되지 않고 영원함을 말한다.”(134쪽) 또 『천부경』은 대우주인 하나와 소우주인 인간의 일치를 말한다. “우주생성의 근원인 하나가 바로 참나이기에 참나를 찾는 일이 바로 하나(一)로 돌아가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다.(136쪽) ‘내 마음이 곧 네 마음’(吾心卽汝心)이라는 수운의 말과 ‘하느님은 종당에 참나’라는 다석의 말은 천부경의 내용과 통한다고 저자는 말한다.(136쪽) 저자는 서구 기독교의 충격으로 생겨난 동학은 “기독교 토착화의 맹아를 지녔다.”고 보았다.(136쪽)
저자에 따르면 다석은 천부경의 ‘한’ 사상에 근거해서 토착적으로 예수를 이해한다. 예수는 “우주의 절대 생명인 하나(一)가 자신을 아들 삼은 것을 느끼고 그 ‘하나’의 아들 노릇을 하려고 자신의 바탈을 불사른 존재”이다.(143쪽) 예수만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이 ‘하나’의 아들임을 깨닫고 “절대 생명을 살아낼 수 있다면 독생자가 될 수 있다.”(143쪽)
다석의 얼 기독론은 성령과 인간을 직결시킴으로써 종래의 배타적, 타력적 대속(代贖)사상을 수정한다. 다석은 “동양의 수행적 전통에서 예수의 십자가를 자속(自贖)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146-7쪽) 예수뿐 아니라 누구나 다 자속의 길을 가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도 예수 자신에게 있어서 자속의 길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자속은 우리에게 자속의 길을 요구함으로써 오히려 대속으로 역할을 한다.(147쪽)
저자는 토착(土着)과 토발(土發)을 구별한다. 토착은 “유입된 서구사조 자체를 완제품으로 여겨 그것을 우리 토양에 맞게 표현한, 일명 뿌리내리기”를 일컫는다. 이에 반해 토발은 “밖에서부터의 자극을 통해 자생적 토양에서 그것을 능가하는 보편적 담론 생산을 이름”한다.(158쪽) 저자는 동학과 다석사상을 토발된 사상으로서 매우 유사한 것으로 파악한다. “유불선을 운이 다한 종교로, 서구 천주학을 이치에 맞지 않는 종교로 평가하면서 그의 극복을 잊혀젼 신, 곧 천부경의 귀일사상 속에서 찾았던 동학과 유불선을 배경으로 기독교를 탈서구적, 비정통적으로 이해한 다석 사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158쪽)
저자는 동학의 ‘하늘로써 하늘을 먹임’(以天食天)과 다석의 보편적 대속론이 일치한다고 보았다. 다석은 “먹고 먹히는 세상사가 대속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163쪽) 다석의 보편적 대속사상은 “이천식천의 빛에서…인간과 기독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우주의 비인격적 생명마저 에두르는 신적 관계성의 새 차원을 들어내는 기독교 생태담론이 될 수 있다.”(164쪽)
다석은 기독교를 수행적 종교로 재해석한다. 그에게 십자가는 “자신의 밑둥(속알)에서 하느님을 찾고 참나로 돌아가기 위한 수행적 방편일 뿐이다.”(166쪽)

문제와 평가
이정배 교수는 이 책에서 서구의 신학과 철학, 일본 교토학파의 선불교 신학을 끌어들이고 천부경을 바탕으로 동학과의 비교연구를 통해서 다석신학의 한국적 의미와 세계적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폭넓은 비교연구는 다석사상의 창조적 특성과 사상적 보편성을 밝혀준다. 이 교수의 이러한 다석사상연구는 한국의 학자들뿐 아니라 서구와 일본의 학자들이 다석사상을 이해하고 연구하는데 중요한 안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동서양의 신학과 철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통찰은 가지고 다석사상을 깊고 총체적으로 파악한 진지한 연구서이다. 이 교수의 다석연구에 경의와 공감을 표하면서 다석사상연구자로서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며 생겨난 물음과 생각을 몇 가지 덧붙이려고 한다.
1) 다석의 기독론을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으로 규정한 것은 다석이 몸을 가진 예수의 신성을 부정했다는 점에서 타당하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내려와 하늘로 가는 길을 연 이”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위로부터의 기독론’으로 볼 여지가 있다. ‘아래’와 ‘위’를 구별하는 서구신학의 관점 자체가 다석의 그리스도 이해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2) 다석의 속죄론을 자속으로만 표현할 수 있을까? 다석 자신도 대속이라는 말을 쓴다. 주체의 자리에서 보면 자속이고 전체의 자리에서 보면 대속이 아닌가?
3) 동학과 다석사상의 유사성을 강조하는데 차이도 있다고 본다. 다석사상에서는 ‘생각’이 중심에 있는데 동학에서는 주문과 부적의 사용에서 보듯이 비합리적 성격이 보인다. 다석은 자아와 세상에 대한 철저한 부정을 말했는데 동학은 정치현실에 휩쓸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이천식천과 대속이 같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천식천은 먹고 먹히는 것을 전체 생명의 자리에서 이해한 것이라면 대속은 자기희생을 통해서 주체와 주체의 죄와 더러움을 씻어주는 행위로서 차이가 느껴진다.

다석사상은 동서문명의 만남과 융합의 과정에서 생성된 한국적이고 세계적인 사상이며, 심오할 뿐 아니라 삶과 실천에서 우러나오는 힘과 지혜를 지니고 있다. 다석사상연구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 교수는 몇 안 되는 진지하고 열정적인 다석연구자의 한 사람이다. 이 교수가 다석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기를 기대하고 기다린다.


박재순 l  목사는 서울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한신대에서 석사와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신학연구소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을 역임했으며, 저서로 『바닥에서 하느님을 만나다』, 『한국생명신학의 모색』, 『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 『하느님 없이 하느님 앞에』 등 다수의 책이 있다. 지금은 씨  사상연구소 소장이다.

2019/07/28

왜 교토학파인가 - 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1)



왜 교토학파인가 - 에큐메니안
왜 교토학파인가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1)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승인 2019.03.07 19:01

앞으로 이어질 이찬수 교수님의 “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는 지난 2월16일 한국문화신학회ㆍ기독교통합연구소ㆍ난잔종교문화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동계학술회의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한 주신 일본 난잔종교문화연구소 김승철 소장님과 이찬수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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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학파(京都學派, Kyoto School)는 불교적 입각점 위에서 서양철학을 창조적으로 소화해냄으로써 지금까지는 없거나 미미했던 새로운 논리를 창안해냈다. 그로 인해 서양 철학자의 눈에는 가장 대표적인 동양철학 학파로 자리매김했고, 일본의 철학 수준을 세계적 차원으로, 보기에 따라서는 그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단순히 철학자들의 순수한 연구 모임으로 그친 것은 아니다. 본의든 본의 아니든, 교토학파 사상가들은 20세기 초반 일본의 군국주의 혹은 침략전쟁의 정당화에 기여했다는 비판적 평가도 받고 있을 만큼, 이들의 사상은 일본 및 동아시아 근대의 정치 지형의 변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정치적 영향에 대한 분석도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교토학파의 사상적 흐름

하지만 교토학파는 어디까지나 학자들이 이끈 철학적 ‘학파’이다. 따라서 그 학문적 넓이와 깊이에 대한 분석과 사상적 영향력에 대한 평가가 더 중요한 작업이라는 뜻이다. 교토학파의 사상적 특징부터 요약해보자.

교토학파는 서양의 존재(Being) 혹은 실체(essence/substance) 중심 논리의 한계 내지 불철저성을 비판하면서, 불교적 공(空, Emptiness) 혹은 절대무(絶對無, Absolute Nothingness)의 입장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반야심경』(般若心經, Heart Sutra)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Form is Emptiness, Emptiness is Form)에 담긴 “즉(卽)의 논리”(Logic of Soku)를 서양철학의 언어로 규명해낸 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교토학파의 개조로 일컬어지는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Nishida Kitaro, 1870-1945)는 “공(空)의 장(場)”(Field of Emptiness) 안에서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이른바 “장소적 논리(場所的 論理, Logic of Place)”를 창안했다. 이러한 니시다(西田)의 언어와 사상이 제자들에게 계승되면서 일단의 학문적 흐름이 형성되었다.

▲ 교토학파의 개조로 일컬어지는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Nishida Kitaro, 1870-1945) ⓒGetty Image


니시타니 케이지(西谷啓治, Nishitani Keiji), 타나베 하지메(田邊元, Tanabe Hajime), 히사마츠 신이치(久松眞一, Hisamatsu Shinichi) 등 후학들은 스승인 니시다(Nishida)의 사유를 계승하면서도 저마다 독특한 입장을 펼쳤다. 이들의 입장을 한 마디로 획일화시킬 수는 없지만, 각자의 사상적 특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니시타니(西谷, Nishitani)는 니시다의 철학적 틀을 이용해, 니체(F. Nietzsche)의 허무주의가 도달하지 못한 그 극단의 지점을 “공의 장”(Field of Emptiness)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세계가 허무주의적 방랑에 머물지 않고 도리어 허무를 관통해 철저하게 긍정될 수 있는 논리를 확보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선사(禪師, Zen Master)이자 학자인 히사마츠(久松眞一, Hisamatsu)는 일체의 유신론적 형태를 거부하고 자신의 깨달음 체험에 근거해 철저한 무신론을 확립하고자 했다. 그는 세상만사의 근원이라고 여겨지는 최후의 의지처를 타파함으로써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선사상-“萬法歸一歸何處”(『碧巖錄』 第45則)-의 현대적 표현이 철저한 무신론이라고 해석했다.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는 『금강경』(金剛經, Diamond Sutra)에서 따온 표현인 “즉비”(卽非, Sokuhi)의 개념을 활용해 “즉비의 논리”(Logic of Sokuhi; Logic of self-identity in self-negation)를 창안했다. 이를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대립과 차별[非]을 넘어선 절대긍정의 세계, 다시 말해 ‘즉(卽, 긍정, identity)’이 그대로 ‘비(非, 부정, negation)’인 세계를 규명하고자 했다.

이들이 대체로 선(禪의, Zen) 입장에서 서양철학을 포섭하고자 했다면, 타나베(田邊元)는 정토진종(淨土眞宗, Jodo Shinshu)의 시각을 중시했다. 그는 공(空)과 역사를 직접 동일시하기보다는, 공이라는 보편적 진리와 역사적 구체화 사이의 ‘매개’(媒介, mediation)를 통해 인간의 사회적 실천을 부각시켰다. 공이 그대로 색(空卽是色)일 수 있는 근거, 절대 진리의 세계와 구체적 현실 세계 사이의 상즉성(相卽性, inter-identity)은 인간의 자기부정적(自己否定的, self-negational) 개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매개’의 철학(philosophy of mediation)을 전개했다. 그의 입장은 제자 타케우치 요시노리(武內義範, Takeuchi Yoshinori)를 통해 계승되었다.

교토학파의 사상적 기반, 선불교

이들 간에 강조점의 차이는 다소 있지만, 전체적으로 교토학파는 불교적 입각점, 특히 공(空)의 입장에서 서양 사상을 창조적으로 수용하면서 세상과 역사의 존재 원리를 긍정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서양철학의 언어를 사용해 불교적 세계관을 살리면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철학을 시도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방식으로 서양철학 안에서 불교적 정신을 찾기도 했다.

니시타니(西谷, Nishitani)와 우에다(上田, Ueda) 등 많은 이들이 에크하르트(M. Eckhart)의 신비주의와 같은, 선(Zen)과 통할 수 있는 부정신학적(否定神學, negative theological) 흐름을 중시하고, 성서를 자주 인용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서양 사상의 근간에 있는 그리스도교 전통의 ‘배후’(背後)를 드러내면서, 그곳에서 동양 전통과의 유사성을 보되, 동양 사상의 우월성, 그리고 일본 철학의 보편성을 강조하려는 내심도 들어 있다. 서양적 정신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논리의 바닥까지 내려가 보지 못했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경향이 컸다.

그런 까닭에 이들이 종횡무진 사용하는 서양의 언어 속에서도 빛나는 것은 언제나 동양적, 불교적, 특히 선적(禪的) 정신이다. 그것도 좁혀 말하면, 일본 안에 흐르고 있는 대승불교적 정신이다. 공(空, Emptiness)의 철학을 통해 현실세계, 즉 색(色, Form)의 세계를 긍정하는 논리를 현대화시켰다는 데에 이 학파의 사상사적 의미가 지대하다.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chansuyi@hanmail.net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 입체적이지 못하다 (2)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 입체적이지 못하다 - 에큐메니안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 입체적이지 못하다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2)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승인 2019.03.2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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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교토학파는 존재 중심의 서양적 논리가 전제하고 있는 그 최종적인 지점을 서양철학의 언어로 타파했다. 그리고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는 동양적 논리를 정립했다. 서양의 종교 및 철학자들은 교토학파 사상가들이 서양철학의 언어로 구체화시킨 동양적 논리를 통해 특히 불교철학의 심원함을 다시 보게 되었다.

교토학파의 철학은 불교의 사상적 영향을 지대하게 받아오던 한국의 일부 종교학자들에게도 한국의 사상적 전통을 계승하면서 서양적 세계관까지 통합할 수 있는 한국적 논리를 고민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가진 한국의 연구자는 아직 소수에 그칠 뿐만 아니라, 교토학파 수준의 논리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지는 못한 상태이다. 존재 중심의 서양적 사유와 존재에 매이지 않는 동양(특히 불교철학적)의 사유가 별도의 장에서 공존하고는 있지만, 공존의 ‘논리’가 충분히 성립되었거나 온전한 ‘융합’의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교토학파의 연구 분야, 종교계가 압도적

이 글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교토학파가 한국 종교 및 종교철학 관련 학계에 어느 정도 소화되고 있는지, 연구의 전망은 어떤지, 그리고 교토학파 연구와 관련하여 어떤 과제에 직면해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가늠해보고자 한다. 정치학 및 문학자 등에 의한 교토학파 관련 논문들도 일부 출판되어 있지만,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사상에 대한 연구는 종교 관련 학자들에 의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많다. 실제로 관련 단행본들은 대부분 종교 및 종교철학적 저술이나 번역서들이다. 이것은 교토학파가 기본적으로 종교 혹은 종교철학의 언어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는 신학적 배경을 지닌 연구자들의 작업이 불교적 배경을 지닌 연구자들에 의한 것보다 더 많다. 한국에서 교토학파 연구는 ‘종교간 대화’에 관심을 두던 신학자들이 먼저 시도했고, 신학적 지평을 불교적 세계관에 어울리도록 확장하면서 ‘한국적 신학’을 확립하려는 의도의 표현이기도 했다.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형식과 언어를 넘어서는 더 보편적인 언어를 추구하는 이들에 의한 모험적 시도들도 있었다.

교토학파의 난해한 언어 이해가 관건

그렇기는 하지만 교토학파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교토학파 연구는 질과 양 모두에서 여전히 초보 단계이다. 무엇보다 교토학파를 입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한국인 전문 연구자는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이다. 아직 한국인에 의한 교토학파 전반에 대한 종합적 연구는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여타의 일본 사상 연구에 비해, 교토학파에 대한 한국인의 연구 성과나 연구자들은 소수에 머물고 있다.

▲ Nishida Kitaro with staffs and students around 1913(K. Nishida, Nishida Kitaro Zensyu, Vol.14 [Tokyo: Iwanami Syoten, 1951]) ⓒhttp://www.kyoto-u.ac.jp/cutting-edge/cutting_edge/page32.html


이것은 순수한 종교철학 연구가 학계의 주류에서 더 주변으로 밀려나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교토학파 사상가들의 심층적이고 종합적이며 난해한 언어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서양의 철학적, 불교적, 신학적 이해가 종합되지 않고서는 교토학파의 논리의 심층을 이해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불교적, 신학적, 순수 철학적 연구들이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류에 편승한 실용주의적 연구가 주류를 형성해가고 있으니, 앞으로도 교토학파 전문 연구자들이 더 등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교토학파의 사상사적 의미가 종교나 철학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교토학파의 일본 및 동아시아의 정치사적 의미가 적지 않고, 전술했듯이, 한국에서도 일부 정치학 혹은 문학자들이 이 부분에 관한 연구를 내놓고 있기도 하다. 교토학파의 시대적 의미와 정치 사회적 영향력을 고찰하는 연구도 그 자체로 중요한 작업들이다.

하지만 교토학파는 기본적으로 종교 및 철학적 연구 체계로서, 이 학파의 철학 및 논리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런 영향력의 근원을 간과하는 표층적 연구에 머물 수밖에 없다. 교토학파의 종교철학적 논리와 학문적 종합성 및 정치사회적 영향력까지 두루 소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에 부족한 점

그런 척도로 본다면,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는 여전히 그 심층까지 들어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일부의 영역에 머물고 있거나 각종 연구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종교 관련 연구자조차 교토학파의 내밀하고 심오한 철학적 언어를 충분히 소화하기는 간단하지 않은 마당에, 종교 관련 연구자들이 교토학파의 일본 및 동아시아의 정치사적 의미까지 입체적으로 파악하기는 현실적으로 힘에 부치는 일이다.

일본의 정치사적 언어에 익숙한 정치학자가 대승불교의 공(空)사상을 서양철학의 존재론과 일치시키는 교토학파의 논리와 섬세한 언어를 충분히 따라가기는 더욱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 글에서 한국 내 종교 관련 연구자들에 의한 연구를 중심으로 보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종교철학자 중에서도 대체로 신학적 배경을 지닌 이들에 의한 연구가 좀 더 많다. 일부 불교학자들이 교토학파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지만, 불교학자는 교토학파의 서양철학적 혹은 신학적 언어를 충분히 소화하기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 신학자는 대승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교토학파의 엄밀한 언어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는, 연구자의 관심에 따라 단편적으로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종합적이고 심층적으로 정리한 본격적인 단행본 출판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chansuy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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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시작과 토대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3)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시작과 토대 - 에큐메니안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시작과 토대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3)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승인 2019.03.29 18:55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 기독교권에서(아마 전 영역에 걸쳐서도) 교토학파를 다루었던 최초의 인물은 최태용(崔泰瑢, 1897-1950)으로 보인다. 그는 1920년부터 일본에 유학하면서 기독교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內村監三)에게 큰 영향을 받았으며, 1924년 귀국 후 한국의 기성 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운동을 했다.(1)

▲ 최태용 목사는 명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일본 교토학파의 사상을 수용하고 이론화 하기 시작한 최초의 인물이다. ⓒGetty Image


최태용의 교토학파 수용

1928년에 다시 도일해 메이지 가쿠인 대학(明治學院大學)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교토학파에 대해 알게 되었다. 1932년 귀국 후에 썼던 그의 글에는 니시다 기타로(Nishida Kitaro)가 말하는 장소론을 차용해 “아담의 장소에서 그리스도의 장소에로의 옮김”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그가 전개하는 논리의 구조가 니시다의 장소론 혹은 행위론과 거의 같다. 1936년도에는 니시다의 “절대모순적 자기동일”의 논리에 기대서 “다수와 한 개체는 부정적 관계”에 있으며 “한 개체 즉 다수”라는 논리를 통해 여러 ‘교파들’과 전체로서의 ‘기독교’의 관계를 해명하고자 했다.

나아가 1946년 해방 정국에서 한국적 국민운동론을 만들고 실제로 국민운동을 펼치는 과정에 교토학파 사상가들의 제국이론을 차용하기도 했다. 최태용이 자신의 논리가 교토학파 철학자들에게서 왔다고 명시하고 있지 않고, 그가 교토학파 자체를 연구했거나 체계적으로 소개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운동에 뛰어든 1940년대 후반의 강의록 『新國家觀』에 스즈키 시게타카(鈴木成高), 타나베 하지메(田邊元), 미키 기요시(三木淸) 등을 인용하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사상 안에는 분명히 교토학파의 세계관이 들어있다.

이미 1930년대에 교토학파의 논리를 일부 소화해 ‘국민’과 ‘국가’, ‘교파’와 ‘기독교’의 관계를 해명하고,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국민 통합을 통한 국가 구성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구체적으로 농촌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던 그의 전력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홍정완, “해방 이후 남한 ‘국민운동’의 국가·국민론과 교토학파의 철학”(2010)에 잘 소개하고 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변선환 교수의 본격적인 교토학파 연구

한국 전쟁기를 지나 이른바 근대적 학문이 본격 시작될 때까지 한국에서 교토학파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들어 교토학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선구자는 변선환(邊鮮煥, 1927~1995)이다. 토착화 신학 및 아시아 신학의 확립을 위해 종교간 대화를 시도했던 변선환은 스위스 바젤대학(University of Basel)에 늦은 나이에 제출한 박사학위논문(1976)에서 자신보다 젊은 일본의 신학자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 1932~)의 신학을 다루었다.

▲ 일본 교토학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작고하신 고 변선환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Getty Image


귀국 후 감리교신학대학에 재직하면서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니시타니 케이지(西谷啓治), 아베 마사오(阿部正雄) 등의 사상 전반을 한국 신학계에 소개했다. 그 영향력 하에서 최범철(崔範澈)이 석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절대무와 한스 발덴펠스의 겸허신학”(1986)를 발표했다. 또한 김광원(金光源)은 “발덴펠스의 생애와 사상”(1988)이라는 제목으로 불교와 소통할 수 있는 신학적 입장을 소개한 소논문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변선환의 직·간접 제자인 김승철( 金承哲), 이찬수(李贊洙) 등이 교토학파 사유체계를 중심으로 불교와 그리스도교간 대화를 시도하면서, 점차 한국어로 된 본격적 연구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교토학파 관련 서적들의 번역과 출판

▲ 변선환 교수의 제자로 교토학파의 서적을 번역·출판하는데 가장 공을 쏟은 일본 난잔대학의 김승철 교수 ⓒ에큐메니안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와 관련하여 가장 획기적인 일은 1990년대 초·중반 불교계 출판사 ‘대원정사’(大圓精舍)가 후원하고 변선환(邊鮮煥), 김승철(金承哲) 등 기독교 신학자가 번역에 참여한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총서’가 발행되었던 일이다.

이 때 교토학파 관련 주요 저술들, 특히 니시타니 케이지(西谷啓治)의 『종교란 무엇인가』(1994), 한스 발덴펠스(Hans Waldenfels)의 『불교의 空과 하나님』(1993)이 번역되었다. 또한 히사마츠 신이치(久松眞一)의 『無神論』(1981)을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 타키자와 카츠미(瀧澤克己), 오다가키 마사야(小田垣雅也) 등의 신학적 응답과 엮어서 번역한 『無神論과 有神論』(1994)이 번역된다. 그리고 아베 마사오(阿部正雄)가 20여 년에 걸쳐 쓴 주요 논문들을 묶어 번역한 『禪과 現代哲學』(1996), 『禪과 現代神學』(1996), 『禪과 宗敎哲學』(1996)이 출판된다.

마지막으로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의 『바울과 정토불교, 예수와 선』(1998)이 번역되어 모두 8권의 주요 책들이 출판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교토학파가 본격 연구될 수 있는 기초가 놓이기 시작했다. 필자도 이 가운데 아베 마사오(Abe Masao, 阿部正雄) 저술의 한국어 번역에 참여하기도 했고, 그의 글들에서 사상적 도전을 제법 받기도 했다.

이 가운데 위 8 권의 책의 절반 가량을 한국어로 소개한 이는 김승철(金承哲)이다. 김승철의 노력으로 교토학파(京都學派)가 한국의 일반 종교 관련 연구자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김승철은 교토학파의 논리를 매개로 불교와 그리스도교간 대화의 이론적 심층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출판사 사정으로 이 시리즈가 폐간되면서(2) 교토학파가 더 많은 이들에게 좀 더 깊게 소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위축되었다. 하지만 이 출판물들은 한국의 연구자들에게 교토학파의 사상적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고, 소규모지만 후속 연구로 이어졌다.

▲ 변선환 교수와 김승철 교수 등에 의해 번역된 출판된 교토학파 관련 서적들. 하지만 출판을 맡았던 대원정사의 폐간되면서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에큐메니안


미주
(미주 1) 이것은 1935년 ‘기독교조선복음교회’(Korea Evangelical Church)라는 교단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미주 2) 불교전문 출판사에서 기독교 및 신학과 연관된 책을 내는데 대한 교단 내부의 오해 및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chansuyi@hanmail.net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성숙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4)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성숙 - 에큐메니안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성숙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4)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승인 2019.04.05 16:01

지난 글에서는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에 대한 시작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그 시작과 더불어 후속 연구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보도록 한다. 이러한 후속 연구들 중에서 김승철(金承哲)의 『大地와 風: 東洋神學의 조형을 위한 解釋學的 試圖』(1994), 『解體的 글쓰기와 多元主義로 神學하기』(1998), 『無住와 放浪: 그리스도교 신학의 불교적 상상력』(2015)은 비록 본격적인 교토학파 소개서는 아니지만, 1990년대 이후 교토학파의 세계관과 논리를 소화한 한국 신학자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김승철 교수의 동양신학의 조형



『대지와 바람』에서는 불교적 세계관을 생명의 원천인 ‘대지’(존재의 근원, 신앙의 장소, 생명의 원천)에 비유하면서, 그 대지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조형되는 ‘동양신학’을 추구한다. 기존 서구의 신학을 아나키즘적으로 해체하면서, 불교적 실재 이해에 기반한 신학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아베 마사오(阿部正雄), 니시타니 케이지(西谷啓治), 와쓰지 데쓰로(和辻哲郞), 우에다 시즈테루(上田閑照) 등의 입장을 수용하거나 원용한다.

이들의 사상 자체를 소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원적 다원주의 신학’을 구성해내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대승불교 및 교토학파의 세계관을 녹여내고 있다.

이런 내용을 좀 더 깊게 담고 있는 책이 『해체적 글쓰기와 다원주의로 신학하기』이다. ‘일자(一者) 안에 다양성을 흡수시키려는 서구적 종교다원주의의 근간을 해체해, 다원주의도 다시 다원화시키는 방식으로 다양성의 현존을 도모하는 김승철의 시도는 교토학파 철학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다른 책 『무주와 방랑: 기독교 신학의 불교적 상상력』(2015)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스즈키(鈴木) 사상의 키워드이기도 한 ‘즉비의 논리(卽非의 論理)’를 해체주의 신학에 접목시키면서 신학과 교토학파를 접근시킨다. 이 책의 일부인 “일본에서의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에서는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 타키자와 카츠미(瀧澤克己)의 신학을 통해 불교와 기독교가 양쪽 전통에 모두 어울릴 수 있도록 시도하기도 한다. 20여 년 전부터 저술한 논문들의 모음집이지만, 『무주와 방랑』은 교토학파 철학을 신학 안에 녹여낸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이찬수 교수의 교토학파에 대한 체계적 소개



이찬수가 박사학위 논문 『神, 人間, 그리고 空: 칼 라너와 西谷啓治 비교 연구』(1997)의 교토학파 부분을 기반으로 출판한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 京都學派와 그리스도교』(2003)에서는 니시다(西田), 니시타니(西谷), 타나베(田邊), 스즈키(鈴木) 등 대표적 교토학파 철학자들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정리 및 소개하고 있다. 교토학파 주요 사상가들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면서 그리스도교와의 심층적 소통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는 연구서이다. 부제에 담겨있듯이, 종교적 세계관 및 그에 대한 분석의 심층에서는 외형적 차이를 해소시키며 서로 만나게 해주는 공통의 논리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논리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드러난다고 보고 있다. 한국어로 된 관련 단행본 가운데 ‘교토학파’라는 제목을 달고 출판된 유일한 연구서일 것이다.

이찬수의 『다르지만 조화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2015)에서도 니시다, 타나베 등의 철학을 종합한 논문 등 교토학파 관련 글들을 4편 수록하고 있다. 교토학파를 위시해 불교와 그리스도교적 세계관과의 접목 가능성 및 두 종교가 동일한 논리 위에 있을 가능성을 탐색하며 분석하고 있는 글들이다.

길희성 교수의 정토사상 연구



교토학파 자체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는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사상 안에 교토학파의 철학도 소화하고 있는 학자가 길희성(吉熙星)이다. 길희성의 『菩薩예수: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창조적 만남』(2004), 『일본의 정토사상』(1999) 등이 그 사례이다. 『보살예수』는 예수에게서 보살의 정신을, 보살에게서 예수의 모습을 보는 논리를 심층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 교토학파의 ‘절대무’(181-184쪽) 개념을 가져오기도 한다.

『일본의 정토사상』에서는 교토학파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신란(親鸞)의 정토사상을 깊이 정리 및 분석하는 과정에 타나베(田邊)의 ‘참회도(懺悔道)로서의 철학’의 요지를 적용하기도 한다. ‘절대무’라든지, ‘참회도로서의 철학’이라는 표현과 내용을 인용하는 분량이나 회수는 적지만, 그 적용의 질은 매우 높다.

교토학파에 대한 정치학적 연구

이들은 대부분 종교간 대화, 특히 불교와 기독교간 대화를 통해 기존의 사유 체계를 넘어서는 종교적 세계관의 새로운 심층을 상상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에 비하면, 철학자 허우성(許祐盛)의 역작 『일본 근대의 두 얼굴: 니시다 철학』(2000)은 니시다 기타로의 불교철학을 정치학적 관점까지 견지하면서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를 지닌다. 교토학파를 종교철학적 차원에서 주로 연구하던 그 동안의 경향에 비해 이 책은 불교철학과 정치철학적 관점이 종합된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으로 인해 니시다의 종교철학이 일본의 군국주의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한국인이 본격적으로 상상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chansuy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