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3

Philo Kalia - *믿음과 불교의 信 大乘起信論을 공부하기 위해 유튜브 강의를 탐색하다가 이중표 교수의 강의가... | Facebook

Philo Kalia - *믿음과 불교의 信 大乘起信論을 공부하기 위해 유튜브 강의를 탐색하다가 이중표 교수의 강의가... | Facebook

*믿음과 불교의 信

大乘起信論을 공부하기 위해 유튜브 강의를 탐색하다가 이중표 교수의 강의가 제일 맘에 들어 듣고 있다. 이중표 교수는 2024년에 한 권으로 된 불경을 출간하면서 기독교인들이 주일에 성경을 손에 들고 교회에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그것이 불교인들을 위해 한 권으로 된 불경을 출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초기 불교 경전인 니까야를 중심으로 결집한 무려 1,448쪽(70,000원)이나 되는 불경이다. 이 교수는 불교 경전 해석 등 많은 학술서적을 지어낸 훌륭한 불교학자로 알고 있다. 그의 강의는 분명하고 미더우며 군더더기가 없었다.
이 교수는 대승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大乘起信의 信을 설명하기에 앞서 불교의 ‘신’은 기독교의 ‘믿음’과 완전 다르다고 운을 뗀다. 기독교의 ‘믿음’이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무작정 믿으라고 하는 것이 믿음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 예로 하느님의 창조, 예수의 동정녀 탄생, 부활 등을 거론한다. 이들은 상식적으로, 경험적으로,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니 무조건 믿으라는 말하는 것이 기독교의 믿음의 본질이라고 설명한다.
2,000년의 기독교 역사에서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근본주의에서나 말하는 믿음 이해를 기독교의 일반적 믿음으로 설명하는 데 절망에 가까운 무지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낙담이 생겼다. 극우 기독교에서나 이해할 법한 믿음을 신학자들이 설명하는 믿음으로 말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중표 교수는 중견 학자가 아닌가. 그렇다면 기독교의 중견 신학자들이 말하는 믿음을 들어 같은 수준에서 비교해야 할 것이다. 이웃 종교의 교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침묵하거나 아니면 공부하면서 좋은 방향에서 비교해야 하는 것이 학자의 기본 태도가 아닌가.
고대교부 중에 3세기의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Credo quia absurdum)라는 명제를 남겼다. 그러나 말씀의 불합리성은 비합리성이나 맹목적 믿음이 아니라 초논리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이후 5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는 Credo ut intelligam(알기 위해 믿는다)이라는 명제를, 11세기 안셀무스는 “Fides quaerens intellectum”이란 명제를 남겼다. 그 의미는 "faith seeking understanding" or "faith seeking intelligence”이다. 이 명제를 제목으로 삼은, 이미지에서 보는 신학서는 미국과 한국에서 신학도의 기초 공부를 위한 조직신학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기신론에 “正信”이란 말이 있듯이, 믿음은 이해(지성)를 찾으며, 합당한 지성을 찾게 될 때 바른 믿음으로 이해되고 체득된다는 것이다.
그리스에서는 참된 지식은 에피스테메(episteme)였고, 믿음(fistis)은 억견으로 취급당했으나, 성경 이후 중세 시기에는 믿음이 지식에 참된 빛을 준다고 생각했다. 믿음이 지식보다 앞선 것이다. 불교에서 무명과 무지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참된 다르마(法)의 길이듯이, 세상의 지식에서 벗어날 때 참된 믿음을 얻게 되고, 참된 믿음은 지식을 얻는 전제가 된다. 지식보다 믿음 상위의 패러다임은 종교개혁기에 ‘믿음//지식’이라는 대등한 지위로 전환되고, 다시 근대기에는 믿음과 지식은 분리되었으나, 신학에서 세계의 지식으로 해명하지 못하는 믿음을 맹목적으로 주장한 적은 없다. 근대기 이후 성서에서의 다양한 비평 방법이라든가 교리 이해를 위한 해석학이 만발했음이 이 사실을 증거한다.
이보다 중요한 사실은 온전한 믿음이란 신자의 믿는 행위(信行: fides qua)와 믿음의 대상(fides quae)인 하느님과의 상호 만남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믿음의 자리는 인간의 주체적 믿는 행위나 일방적 신의 선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믿는 행위 사이에서 일어나는 만남의 사건이다.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Credo in Deum). 이 문장이 믿음의 기본적 문장이다. 믿음의 대상은 오로지 하느님이다. 믿음의 대상은 성경이거나 그 어떤 교리적 개념(동정녀 탄생, 부활, 기적...)이거나 신조가 될 수 없다. 신조도 성경도 하느님을 가리키고 드러내는 방편일 뿐이다. 불교에서도 방편은 대단히 중요하다. 문자도 중요하다. 그러나 영원한 법은 不立文字이며 최후의 목적은 信解, 곧 成佛道에 있음이다. 불교에서도 마음의 보는 행위를 통해서만 일체가 만들어짐(一切唯心造)을 알게 되지만, 결국 ‘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전제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주객불이(主客不二)일지언정 주관주의나 객관주의가 아니다. 불교에 기독교가 믿는 하느님의 자리는 없지만, 객체의 차원이 없는 오직 주체로서의 心은 생각할 수 없다. 心은 살아 있는 생명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불교가 무신론이라 하지만 대승의 一心은 이 우주와 천지, 이 인간세계를 그토록 사랑하기 때문에 안으로, 안으로 향하여 함께 거주하려는 하느님의 마음(心)이 들어설 자리를 결코 없애지 않으리라 믿는다.










박희승
공감합니다! ^*^;;
_((( )))_
김세창
맞아요.
불교인들이 이웃종교에 관한 인식 수준이 그렇습니다.
이병일
그래서 저도 대승기신론과 로마서의 믿음에 대해 논문을 쓰려고 한 적도 있었는데 ㅎㅎ
朴忠良
이중표 교수는 경전에 대해서 아주 정직하고 엄격한 학자의 자세를 보이지요.. 저도 좋아합니다
유용선
"나는 믿을 필요없다. 알기 때문이다."
지형은
올리시는 글들, 고맙습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우희종
불교에서 하느님의 자리가 없다기보다는 ’하느님의 ‘인격적 형태의 자리’가 없는’이 보다 정확할 듯합니다만.
궁신영
이번 폭우로 인한 피해가 심각합니까?
Lee Chan-Hee
선생님의 기독교관은 너무 건강한 관점인 것 같습니다.! 보수 기독교계에서 그동안 박해를 많이 받아오셨겠어요;;;





“종교 장사하는 대형 교회보다 출교자의 힘이 더 세다”

“종교 장사하는 대형 교회보다 출교자의 힘이 더 세다”

“종교 장사하는 대형 교회보다 출교자의 힘이 더 세다”
한겨레 2025. 8. 20. 
[기억합니다] 30주기 맞은 신학자 변선환을 기리며


지난 8월8일 30주기를 맞은 변선환 신학자. 한겨레 자료사진

1991년 10월29일~31일, (서울)광림교회에서 희대의 회의가 열렸다. 감리교신학대 학장이던 변선환 목사를 출교시키기 위한 감리교 특별총회였다(홍정수 목사도 출교 대상이었지만, 이 글에서는 변선환에게 초점을 두련다). 변선환이 누구이기에 그랬던 것일까.

감리교신학대서 다원주의신학 설파
위험시한 보수적 대형교회 목사들이
1991년 총회 열어 종교재판에 넘겨
이듬해 출교…목사·학장 등서 쫓아내

변선환은 1927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났다. 3·1운동 민족 대표 중 한 사람인 신석구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의 세계로 들어섰다. (평양)성화신학교, 감리교신학교, 한국신학대, (미국)드루대, (스위스)바젤대에서 공부했다.

1967년 감리교신학대 교수가 된 초기에는 현대 서양 신학에 집중했다. 그러다 이내 한국의 다양한 종교들을 존중하는 다원주의 신학의 길로 들어섰다. 한국의 오랜 종교와 사상을 모르고서는 신학을 제대로 할 수 없을뿐더러, 기독교와 신학 자체가 유럽이든 아시아든 지역의 토착 문화와 만나며 형성되어왔다는 사실을 중시했다.

그는 다원주의 신학을 ‘종교해방신학’으로 이어갔다. 왜곡된 인생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밝혀주는 ‘종교적 차원’과 물질적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정치·사회적 차원’을 결합한 신학이었다. 그에게 동서양의 종교들은 “새 휴머니티의 전일적 회복”이라는 구원의 길의 동반자였다. 그는 개방적인 자세로 늘 열심히 공부했고, 열정적으로 강의했다. 제자들을 특히 아꼈다. 제자들의 역량을 키워 한국의 신학과 교회를 지성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위에서 말한 감리교회 총회는 바로 이 변선환을 교회에서 내쫓기 위한 시도였다.

변선환 30주기를 기념한 제자들 모임. 필자 제공

당시 한국의 지성적 신학계에는 종교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세가 터를 잡아가고 있었다.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믿는 일부 배타주의자들은 선구자 변선환을 위험시했다. 보수적 대형 교회 목사들은 그가 사탄이기도 한 양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감리교회 내 그런 세력들이 총회를 열어 변선환을 종교재판에 넘겼고, 의도한 대로 목사직을 면직시켰다. 그리고 총회 결과를 그가 속한 서울연회로 이첩해 다음 수순인 출교 결정을 재촉했다.

이듬해인 1992년 5월7일 (서울)금란교회에서 열린 서울연회 재판위원회는 마치 ‘이단 척결 부흥회’ 같았다. 동원된 수천명의 교인이 “사탄아 물러가라” 소리를 지르며 한국 최고의 신학자에 대한 출교 재판을 지원했다. 그를 옹호하는 이들의 교회 진입을 막았다. 겨우 자리 잡은 일부 지지자는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이 ‘그들만의 재판’은 계획대로 변선환을 출교시켰고, 그는 목사, 교수, 학장직 모두에서 쫓겨났다. 초등학생이 어쩌다 선형대수학 같은 대학수학을 보고는 ‘이상한 수학’이라며 난리 친 격이랄까.

변선환은 그 뒤 개인 연구, 설교, 강연을 이어가다가 1995년 8월8일 저녁, 자택에서 68살의 나이로 갑자기 타계했다. 거실 소파 옆 자그마한 책상에서 원광대 학술행사 발표문인 ‘한일 양국의 근대화와 종교’를 작성하던 자세 그대로였다.

열정 강의·인간미에 매료된 제자들
함께 ‘큰배움교회’ 열고 매주 교류
1995년 타계 뒤 전집 출판 등 이어가

1980년대 후반 내 모교 서강대 종교신학연구소에서는 꽤 괜찮은 발표회가 거의 매월 열렸다. 변선환은 그 모임에 자주 참석했다. 발표문에 밑줄을 쳐가며 특유의 글씨체로 깨알 같은 메모를 하면서 질문도 하고 논평도 했다. 우연히 보게 된 그의 필체는 흘려 썼는데도 반듯한, 그러나 알 듯 말 듯 한 암호용 그림 같았다. 대학원생이던 내가 변선환을 인상적으로 만난 첫 자리였다.

인연은 계속되었다. 그는 대학원생인 나에게 좋은 학술모임을 소개하며 참여를 권하곤 했다. 한번은 내가 번역한 ‘화엄철학’(1990)과 ‘하느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1991)를 들고 학장실로 찾아간 적이 있다. 재판이 한창이던 당시 불교철학서와 다원주의 신학서를 번역한 젊은 기독교인이 가상했는지, 그는 나의 기운을 북돋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대학에서 내쫓긴 1992년 하반기에 변선환은 제자와 함께 서울 아현동에 ‘큰배움교회’를 열었다. 나도 합류하라며 명령 같은 요청을 했다. 마침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도 내 생각을 불온시하는 이가 생기던 차였기에 그의 요청은 하늘의 뜻처럼 여겨졌다. 1993년 초부터는 ‘큰배움교회’라는 작은 교회에서 매주 변선환을 비롯한 교우들과 교류했다.

변선환과 대면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단박에 내 삶 깊숙이 들어왔다. 내가 박사 논문 주제로 일본 교토학파 철학을 잡은 것도 그에게서 얻어진 통찰 덕이었다. 그는 젊은 연구자의 학문적 자존감을 북돋워 주었다. 감리교신학대 출신이 아닌데도 제자처럼 여겼고, 격의 없이 대했다. 많은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기억하는 것도 그의 열정적인 강의와 격의 없는 인간미였다.

변선환의 제자들은 매년 기일(8월8일)에 그의 묘소를 찾아 예배와 큰절을 드린다. 목사 제자들이 기도도 하고 절도 한다. 필자 제공

그의 사후, 제자들은 생전의 논문을 모아 ‘변선환 전집’(전7권)을 출판했다. 전집 각 권의 제목은 내가 붙였다. 유족의 도움으로 ‘변선환 아키브(아카이브)’를 만들었고, 산하에 둔 ‘동서종교신학연구소’에서 그의 삶과 사상을 다룬 단행본 일곱권을 여러 해에 걸쳐 차근차근 출판했다. 기일인 8월8일을 전후해 제자와 유족이 함께 성묘하며 그를 기린다. 목사 제자들이 그의 산소에서 기도도 하고 절도 한다. 그렇게 그의 사랑을 받던 제자들이 그를 계속 부활시킨다.

분명한 사실이 있다. 변선환을 쫓아낸 수백수천의 사람보다 변선환 한 사람의 힘이 더 세다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을 팔아 사실상 종교 장사를 하는 수천수만의 사람들보다 예수 한 사람의 사랑과 정의의 힘이 더 센 것과 같은 이치다. ‘옳음’의 길은 언제나 좁지만, 다수의 틈새에서 명멸하듯 전승되며 인류의 방향을 잡아준다.

이찬수/아시아종교평화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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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Kalia - *욕망(대학민국학술원우수학술도서, 세 번째 선정)

Philo Kalia - *욕망(대학민국학술원우수학술도서, 세 번째 선정) 공부, 배우고 물으면서 생각이 성장하고... | Facebook



Philo K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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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대학민국학술원우수학술도서, 세 번째 선정)

공부, 배우고 물으면서 생각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자기 나름의 생각을 새롭게 지어나가는 길은 즐겁고 환희에 찬 여정이다. 선현들의 생각을 집대성하여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는 겸사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동서 철학사는 술이창작(述而創作)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2025/08/22

보이지 않는 소장품 | 슈테판 츠바이크 | 알라딘

[전자책] 보이지 않는 소장품 | 슈테판 츠바이크 | 알라딘

[eBook] 보이지 않는 소장품 -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  | 츠바이크 선집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은이),정상원 (옮긴이)이화북스2022-05-16 




종이책의
미리보기
입니다.













전자책 미리 읽기

전자책종이책 14,850원

종이책 페이지수 : 376쪽


책소개
믿고 읽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 슈테판 츠바이크는 평범한 인간이 갑자기 예외적인 상황에 부닥쳐 겪는 혼란스럽고 격렬한 감정을 심리학자처럼 예리하게 포착하여 특유의 섬세하고 유려한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독자라 할지라도 작중 인물들이 겪는 광기 서린 격정과 공황 상태에 빨려들어 헤어나지 못할 만큼 그의 소설들은 놀라운 흡인력을 발휘한다. 이 책은 인간의 내면을 깊이 탐색해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감동을 주는 슈테판 츠바이크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The Burning Secret : Stefan Zweig :Wikipedia Film

The Burning Secret : Stefan Zweig

The Burning Secret
by Stefan Zweig

Topics Sanatoriums -- Fiction, PT, Austria -- Fiction, Jealousy -- Fiction, Psychological fiction
Publisher Project Gutenberg
Collection gutenberg
Contributor Project Gutenberg
===

Burning Secret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Burning Secret
Theatrical release poster
Directed byAndrew Birkin
Written byAndrew Birkin
Stefan Zweig
Produced byCarol Lynn Greene
StarringKlaus Maria Brandauer
Faye Dunaway
David Eberts
Ian Richardson
John Nettleton
CinematographyErnest Day
Edited byPaul Green
Music byHans Zimmer
Distributed byVestron Pictures
Release date
  • 22 December 1988
Running time
106 minutes
CountriesUnited Kingdom
West Germany
LanguageEnglish
Box office172,000 (Germany)
£9,542 (UK)[1]

Burning Secret is a 1988 drama film, based on the 1913 short story Brennendes Geheimnis by Stefan Zweig, about an American diplomat's son who befriends a mysterious baron while staying at an Austrian spa during the 1920s. 

This symbol-filled story, filmed with sensuous detail and nuance, is set in Austria in the 1920s. While being treated for asthma at a country spa, an American diplomat's lonely 12-year-old son is befriended and infatuated by a suave, mysterious baron. 

During a story of his war experiences, the baron reveals the scar of a wound from an American soldier and thrusts a pin through it, saying "see—no feeling." 

Little does the 

But soon his adored friend heartlessly brushes him aside and turns his seductive attentions to his mother. The boy's jealousy and feelings of betrayal become uncontrollable.

The film was written and directed by Andrew Birkin, and stars Klaus Maria BrandauerFaye Dunaway, and David Eberts. The film won the Young Jury Prize at the Brussels Film Festival in 1989, and David Eberts won the Special Jury Prize at the Venice Film Festival in the same year.

According to Birkin, the making of the movie "was something of a nightmare" with the two lead actors thoroughly disliking one another and other problems while shooting on location in Mariánské Lázně while directing young David Eberts was "a joy".[2]

The film was only composer Hans Zimmer's second feature film scoring.[citation needed]

Lions Gate Home Entertainment has yet to release the film onto DVD.

See also

References

  1.  "Back to the Future: The Fall and Rise of the British Film Industry in the 1980s – An Information Briefing" (PDF). British Film Institute. 2005. p. 20.
  2.  "Video description text on Andrew Birkin's YouTube Channel". 2021.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1 December 2021. Retrieved 11 March 2021 – via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