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7

조계종 ‘나눔의집’ 실태 폭로 넉달… 할머니들 재산 강탈? 고소·고발 ‘시끌’ - 천지일보 - 새 시대 희망언론

조계종 ‘나눔의집’ 실태 폭로 넉달… 할머니들 재산 강탈? 고소·고발 ‘시끌’ - 천지일보 - 새 시대 희망언론

불교언론-스님 꿈꾸던 위안부 할머니, 승가대에 잇단 보시 - 법보신문

불교언론-스님 꿈꾸던 위안부 할머니, 승가대에 잇단 보시 - 법보신문


스님 꿈꾸던 위안부 할머니, 승가대에 잇단 보시

최호승 기자
승인 2014.06.27 11:04
배춘희 옹, 26일 5000만원 기부…6월8일 91세로 운명 전 유서 당부


▲ 나눔의 집에서 살던 고 배춘희 옹이 6월26일 중앙승가대(총장 원행 스님)에 5000만원을 보시했다. 2012년 9월 3000만원을 기부한 데 이어 두 번째 선행이다.스님이 되고 싶었던 소녀는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차마 꿈이 여물기 전인 스물살도 못된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끔찍한 시간을 보냈던 소녀는 백발성성한 할머니로 눈을 감았다. 꿈은 유언으로 남았고, 조계종 학인스님 기본교육기관 중앙승가대에 소녀의 꿈이 전해졌다.

나눔의 집에서 살던 고 배춘희 옹이 6월26일 중앙승가대(총장 원행 스님)에 5000만원을 보시했다. 2012년 9월 3000만원을 기부한 데 이어 두 번째 선행이다.

지난 6월8일 향년 91세로 일기를 마친 배춘희 옹은 유서로 학교 승가교육 후원을 당부했다. 중앙승가대 총장 원행 스님과 후원회 사무처장 초우 스님이 후원금 전달식에 참석했고 나눔의 집 부원장 호련 스님이 기금을 전했다.

배춘희 옹은 평소 중앙승가대 학인스님들 교육불사 후원에 큰 원력을 세웠다.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되면 출가해 부처님 법을 따르며 살리라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삶은 고됐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겠노라 했지만 거짓말에 속았다. 1941년 중국 만주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가 됐다. 일본군은 그의 몸과 마음을 찢었고, 하루 종일 짐승 같은 시간을 견뎌야 했다. 해방 뒤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중국과 일본을 전전하며 생을 이어왔다. 고국을 그리던 그는 1981년이 돼서야 영국 귀국했다. 스님이라는 꿈이 일본군에게 무참히 짓밟혔던 1941년, 그 후 꼬박 40년 만이었다. 그리고 16년이 흐른 1997년 불교계가 마련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 집에 안겼다. 그 사이 정부에서 지급한 ‘생활안정지원금’을 차곡차곡 모았다.

스님이 되리란 배춘희 옹의 원력은 학인스님 교육불사로 이어졌다. 2012년 9월26일 아름다운동행(이사장 자승 스님)을 통해 중앙승가대에 장학금 3000만원을 보시했다. 나눔의 집 법당 탱화불사에도 800만원을 보탰다. 당시 그는 “비록 내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여기 계신 스님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꼭 큰스님이 되어 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전했다. 학인스님들을 만났고 강의실을 둘러봤다. 그는 전생의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감격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건강은 날로 악화됐고, 음식은 목구멍을 넘기기 어려워졌다. 부축 없이는 움직일 수 없어 거르지 않았던 수요집회도 불참했다. 방 밖을 나가기도 버거웠다. 그러나 나눔의 집 한편에 자리 잡은 방에서 독경하며 내생에라도 스님으로 살겠다는 기도는 멈추지 않았다.

지난 6월8일부터 배춘희 옹의 방에서 그치지 않던 독경소리가 끊겼다. 그의 원력은 학인스님들 가슴에서 영글어 가고 있지만 이생의 큰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최근 아베총리 내각은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과했던 고노 담화를 검증하며 이를 부정했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251호 / 2014년 7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https://advocacy.jesuit.kr/bbs/?t=59&fbclid=IwAR3SEfyYdYKHo-XD32Lrv8MD9EmK9Y38y43xCiwRgOYZX3wzO3WE1NrmSQc

2020/10/26

미야자키 하야오, "주변국의 원한은 없어지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에 각성 촉구 - 중앙일보

미야자키 하야오, "주변국의 원한은 없어지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에 각성 촉구 - 중앙일보


미야자키 하야오, "주변국의 원한은 없어지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에 각성 촉구
[중앙일보] 입력 2015.02.17 11:11 수정 2015.02.1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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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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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앙포토DB]

애니메이션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이 일본의 역사 문제를 비판하며 우려를 표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16일 T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제국주의 시대 일본은 지배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다가 자신들이 제국주의를 흉내내게 됐다”며 “결과적으로 3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전쟁을 일으켰고, 원폭이 두 번이나 떨어지는 일을 당했다. 주변국의 원한은 없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그는 일본의 역사에 대해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꼽으며 “법적으로 해결해도 감정이 풀리지 않고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어 이런 문제에 관해 “어떻게든 해야 한다”며 “민족과 종교가 얽히고설킨 중동 일대의 복잡한 상황에 비하면 일본이 안은 역사 문제는 매우 알기 쉬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하며, 일본이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적인 무질서는 이제부터 더욱 많아질 것”이라며 “그런 때에 아베 총리가 말하는 것이 너무 단순하다는 우려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그럴(세상이 무질서해 질) 때 평화헌법이 도움이 된다. 헌법을 지켜야 한다. 조금 저쪽(무장화)으로 가고 싶어도 가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식민지 정책을 추진하고 침략전쟁을 일으켜 자국민과 이웃 국가들에 큰 고통을 줬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법적 해결’이나 ‘감정이 풀리지 않은 문제’ 등을 언급한 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이 법적으로 완전히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피해자가 분노하고 상처받는 상황을 연상시킨다.



그는 또 프랑스 풍자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과 관련해서 “성질이 다른 문명에서 숭배하는 것을 캐리커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잘못”이라며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그는 다른 문화권이 숭배하는 것을 풍자화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그만두는 것이 좋다”고 제언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미래소년 코난’,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을 만든 애니메이션의 거장이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미야자키 하야오, "주변국의 원한은 없어지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에 각성 촉구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 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 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김철수
2012.05.11 | 조회 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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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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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나라, 일본
필자가 일본에 대해 얘기할 때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속은 모른다’는 한국 속담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 속담에는 자연에 대한 신뢰와 사람에 대한 불신의 의미가 담겨 있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때문에 사람을 만날 때는 조심하고 조심하란 경구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일본사회에서는 그 반대의 경우가 맞는 것 같다. 자연에 대한 믿음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화산, 지진. 자연은 언제 어디서 사고(?)를 칠지 사람들은 가늠하지 못한다. 곧 믿지 못한다. 대신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끼리 믿음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자신이 속한 집단 내부 구성원끼리의 믿음이지만.

작년에 일본열도 동북지방에서 큰 쓰나미가 덮쳐 일본 역사에 전무한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런데 사람들은 슬픔을 딛고 조용히 사후대처를 해 나가고 있다. 소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메이와쿠 문화’라 칭송도 들으면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일본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이를 종교에서 찾고 있다. 필자는 일본종교에 대한 여러 편의 글을 써왔다. 왜? 일본사회를 이해하는데 종교(문화)는 필수라 보기 때문이다. 종교만큼 미지의 세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거기에는 반드시 발견되는 중요한 주제가 있다. 인간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는가라는 주제이다. 이 주제에 답할 수 없다면 그건 종교가 아닐 것이다. 섬나라인 일본에는 해외로부터 갖가지 종교가 흘러들어왔다. 자생적 종교라 믿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종교인 신도(神道)도 그 중 하나이다. 일본인의 의식 저변에는 신도 등 갖가지 종교문화에서 구성되어진 사고방식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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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가. 일본사회에는 종교도 참 많다. 마치 ‘종교의 전시장’ 같다. 그러나 일본사람들에게 “당신의 종교는?” 하고 물으면 “무종교”라고 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본은 세계에서도 예를 찿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종다양한 종교를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종교들이 단지 병존하여 있는 전시장이 아니라, ‘토착적이고 외래적인 종교적, 문화적 전통들이 일본인의 고유한 신앙, 감정, 접근방식에 따라 서로 섞이고 짜인 일종의 직조물’과 같은 모습이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신의 나라, 곧 수많은 가미[神, 精靈]로 가득 찬 나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일본인은 종교에 이상스럽게 무관심’한 것이다. 이는 분명히 사실이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특정 종교를 갖고 있다고 응답하는 일본인의 비율은 30% 전후에 지나지 않는다. 2005년 8월,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이 조사한 〈종교에 관한 여론조사〉에서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고 답한 사람이 75%에 달했고(그러나 ‘신불神佛에 의지하고 싶은 사람’은 54%였다), ‘종교를 믿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23%였다. 곧 ‘종교를 가진 인구’는 1979년 조사에서 34%였던 것과 비교하면 11% 감소한 것이다. 이는 근 30년 간 거의 일관된 경향을 보인다. 미국인의 91% 정도, 그리고 한국인의 50% 이상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종교를 갖고 있다’라고 응답하는 비율과 비교해 본다면, 일본인의 종교 귀속의식은 희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현세적이며, 풍부한 종교적 생활
그러면 도대체 일본인의 종교관은 어떤 것일까?
일본사회에는 신도, 불교, 기독교, 신종교 등 각종 계통의 종교단체가 400개를 넘고, 그 활동도 사회 전체의 여러 방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은 여러 면에서 ‘종교적’인 심성과 행위를 보여준다. 경제나 정치, 문화,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종교를 제외해버리면 그 의미(meaning)가 상실되어 버릴 정도로 일본인들은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게 되면 유명한 신사를 찾아 참배한다. 불교의 성지인 고야산(高野山) 등에서 특정 기업의 번영을 기원하는 기업공양탑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가정이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장상이나 불단, 신단(神棚, 가미다나)들, 그리고 각종 종교시설에서 이루어지는 출생, 결혼, 장례식 등 각종 통과의례들.

그 뿐만이 아니다. 일본사회에서 공양(供養)의 확대현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선조나 죽은 자에 대한 공양, 그리고 유산, 중절, 사산된 태아[水子みずご, 미즈고]에 대한 수자공양(竪子供養). 그러한 공양시설도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다. 전국유산아(流産兒) 무연(無緣) 공양탑(生長의 家에서 1961년 건립), 오사카에 세워진 73미터나 되는 수자공양탑[辯天宗冥應寺] 등은 모두 낙태아의 위패를 제사하고, 지장(地藏)을 만들어 제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쿄에는 페트(애완동물)공양탑도 있고, ‘00家愛犬之墓’라 적힌 납골당도 흔하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는 인형공양도 있으며, 최근 못쓰게 되어버린, 곧 생명력이 다한 게임기 공양도 있다.

14110_p132_07현대사회는 합리화 및 효율화를 지향한다. 반면에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특히 보이지 않는 음(陰)적인 세계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신세계를 찾고 있다. 이러한 마음의 갈망이나 불안감을 종교는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종교를 일러 ‘위협산업’이란 말까지 들릴 정도이다. 종교가 인간 삶과 죽음을 다루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 여러 지역에 동물묘지[動物靈園]가 설립되어 번성하기까지 하고, 심지어 인형, 게임기의 생명까지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소(小)가족화 된 오늘날 개나 고양이 등이 자녀 형제와 똑같이 가족의 일원으로 다루어지고 있고, 그 대행 역할을 종교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 종교의 특이성에대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이다. 일본인들은 특정 종교에 귀속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풍부한 종교 생활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에도(江戶)시대(17~19세기 중반)부터 이 세상에 태어나면 신사(神社)에 가서 신에게 출생을 알리고, 일상생활은 유교윤리에 따르다가, 죽었을 때는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대개 남자아이는 출생 후 31일째, 여자아이는 33일째, 그리고 ‘7-5-3’이라 하여 남자아이는 3, 5살, 여자아이는 3, 7살 되는 해 11월 15일 신사참배를 한다.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씨신(氏神, 우지가미: 지역공동체가 숭배하는 신)에 대한 출생신고로 씨자(氏子, 우지코: 지역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구성원)의 일원이 되었음을 인정받기 위함이다. 신에게 아이의 성장을 보고하고 신의 가호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으며, 지역공동체로서는 공동체의 일원을 맞아들이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유교적 일상생활이 근대 서구적 양식으로 바뀌어 결혼식은 교회에서 치루고 싶어할 뿐이다. 그래서 새해 첫날의 인사(初詣, 하츠모우데)는 신사에서, 결혼식은 교회에서, 장례식은 절에서 올리는 모습을 흔히 접하게 된다. 이러한 다중신앙은 일본인에게 종교란 현세를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것임을 보여준다. 일본인에게 진리란 현실 그 자체이며, 현실을 넘어선 이념이나 법칙이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절대라든가 보편이라든가 불변성 혹은 영원성이라는 관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 모두가 그대로 진리일 뿐이며,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일본인의 사유방식은 이 세상에 완전히 절대적인 것은 없고 가미(神)조차 오류를 범한다. 진리의 절대성을 신봉하는 문화에서는 옳고 그름, 선과 악, 흰 것과 검은 것을 분명히 하려 든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싸울 때에도 양쪽 모두 이기고 졌다는 식의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 이런 관점이 곧 일본인이 고대로부터 형성하여온 ‘화’(和)의 관념과 통해 있다. 오갈 데 없는 섬나라에서 평화는 상이한 것들의 공존, 그것을 허용하는 관용성이 가장 현실적인 화(和)라고 보는 것이다.


신불습합(神仏習合)으로 이뤄진 신관
이런 화(和)의 정신이 종교에도 스며든 것인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헤이안(平安) 시대(794~1185)부터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이전까지 신불습합(神仏習合)이 일반적이었다. 신도와 불교가 나눠지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불교사원(寺院) 내에 신사의 토리이(鳥居)가 있고, 하지만 대보살(八幡大菩薩), 신사의 신을 불(仏, 호토케)이라 부르는 사례도 있다. 일본의 대표적 근대소설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는 이러한 일본인의 종교관을 적절하게 지적하였다. 곧 일본은 고래로부터 ‘팔백만 신’을 숭배하는 독특한 종교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석가도 예수도 일본에 오면 여러 신들 중 하나로 취급되어 버린다. 동시에 일본인은 해외의 사상을 변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바꿔 만드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려 보라. 여기에 나오는 수많은 신들, 썩음의 신, 강의 신….

유바바 : “여기는 말이야, 인간이 올 곳이 아니야. 8백만의 신령님들이 지친 몸을 달래러 오는 목욕탕이란 말이다.”

일본에서 신을 ‘가미’(カミ)라 한다. ‘가미’는 선악, 귀천, 강약, 대소 그리고 초인적이냐 아니냐 하는 구분도 의미 있지만, 그보다 어떤 의미에서든 위력 있는 존재를 뜻한다. 우주 삼라만상 가운데 위력을 발현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미가 될 수 있다. 때문에 가미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일본에는 실제로는 1천이 좀 넘는 신들이 보이고, 『고사기』에도 300개 이상의 신이 등장한다.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는 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정의이다.

“가미는 우선 옛 기록에 나타나는 하늘과 땅의 신이며, 또한 그 신들을 숭배하는 장소인 사원에 거주하는 정령들이다. 거기에 인간도 포함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 조차 없다. 그리고 조류, 짐승, 수목, 초목, 바다 같은 것도 포함된다. 옛날 관례로는 비일상적인 것, 초월적인 덕목을 지닌 것,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엇을 막론하고 ‘가미’라고 불렀다.”

‘팔백만 신’에서 알 수 있듯, 일본에 신의 수는 무수히 많다. ‘가미’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 다수라는 뜻이다. 가장 많은 것은 천체, 산, 들, 강, 바다, 바람, 비 등 지수풍토 등을 비롯하여 새, 짐승, 벌레, 수목, 풀, 금속, 돌 등 자연현상이나 자연물에 붙여진 가미의 명칭이다. 위인, 영웅, 귀족 등이 가미로 여겨지기도 했다. 근세 말기에는 인간 자체를 가미로 모시는 이키가미(生き神) 관념까지 나타났다. 이 과정을 통해 신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없어졌고, 신을 절대적 존재로 보지 않는 종교의 세속화와 세속의 종교화 토양이 조성되기도 했다.

일본인은 고대로부터 신과 부처들을 여러 가지로 짜 맞추면서 모셔왔다. 그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 독점적으로 믿는 태도는 발달되지 않았다. 구미에서는 기독교도이면서 이슬람교도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일본인은 다르다. 앞서 말했듯이, 한 집안에 불단과 신단이 동시에 모셔져 있다. 출생해서는 신사에 가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기를 바라며, 죽어서는 불교식 장례식을 거치는 것이 보통 일본인의 삶이다.

일본인의 생활 속에서도 이러한 종교적 행동을 볼 수 있다. 종교적 혼합이나 절충현상이 심하다. 정월에 신사를 참배하고, 춘분 추분을 중심으로 한 7일간이나 백중맞이(盆:봉. 8월 15일 조상을 제사하는 불사)에는 사찰, 크리스마스에는 교회, 때로는 신종교의 레크리에이션에 참가한다. 그래도 그들은 별로 모순을 느끼지 않는다.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종교가 없다’는 사람이 많으면서도 또 대다수는 ‘종교심은 중요하다’고 답한다. ‘무종교이지만 종교심은 중요하다.’ 어쩌면 종교가 생활 속에 파고들어 습관화되어 버려 더 이상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무종교라는 의미는 교단 종교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의미로 파악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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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역사연구가이자 작가인 이자와 모토히코(井沢元彦)는 일본인의 무의식에는 강렬한 원령(怨霊)신앙과, 원령을 발생시키지 않는 ‘화’(和)의 신앙이 있고, 신도는 그 위에 성립했다고 지적하였다. 불교도 결국은 원령을 진혼(鎮魂)하기 위한 도구로서 활용되었으며, 일본인의 독특한 ‘언령’(言霊, 우리가 내뱉는 말속에도 영이 깃들어 있어 말을 삼가야 된다는 믿음)신앙도 일본인이 무의식 내에 ‘화’(和)를 이루려는 사고구조의 한 형태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원령 신앙을 우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히메』(원령공주)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모노노케’(もののけ)는 사람을 괴롭히는 사령(死靈), 원령이다. 무차별한 환경파괴로 인해 사라지는 숲의 원한이 낳은 재앙의 신 다타리 신의 저주, 그 저주를 풀기 위한 등장인물들의 노력은 일본 원령신앙의 한 단면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사회의 종교현황
14110_p132_04그러면 교단종교를 중심으로 일본사회의 종교현황을 살펴보자. 문부과학성의 종교통계조사에 의하면, 일본에서 종교 신자수는 신도계가 약 1억 580만명, 불교계가 약 8,900만명, 기독교계가 약 200만명, 그 외 약 900만명으로 합계 2억 600만명이 된다. 일본의 총인구가 1억 2천명 정도이므로 2배 정도의 신자수가 되는 것이다. 신도계와 불교계만으로도 거의 2억명이 된다. 이는 조사가 설문조사로 행해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기 단체의 신자수를 많게 신고하는 경향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아야 할 다른 이유도 있다. 일본에서는 신도, 불교의 신자가 대다수를 점하고 있다. 전술한 대로 오랫동안 신불습합이 행해졌기 때문이다. 메이지 초기에 신불분리(神仏分離)가 이루어진 후에도 신도와 불교 사이의 구별이 애매한 면이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신단[神棚]을 모신 가정에 불단이 있는 경우가 많고, 불교사원의 단가(檀家)인 동시에 신사의 씨자(氏子)인 가정이 많다. 이처럼 신도를 신앙하는 자와 불교에 귀의하고 있는 자를 포함하면 2억명을 넘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 생각하면, 신도와 불교 2개의 종교가 일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도가 불교를 흡수하여 혼연일체가 되어 토착신앙이 되었다고 파악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울 수 있다. 신도와 불교는 하나의 종교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신도
신도는 크게 나눠 신사를 중심으로 한 신사신도(神社神道), 막말(幕末) 이래 형성된 교파신도(敎派神道) 및 종교단체를 결성하지 않고 가정 및 개인이 운영하는 민속신도(民俗神道)가 있다.

14110_p132_05신사신도는 명확한 교의(教義)가 없고(교파신도계의 교단들은 명확한 교의가 있다), 엄밀한 입신(入信) 규정도 없다. 씨자(氏子)로 들어가는 것이 이에 가깝지만, 신단[神棚]을 설치하거나 신사에 기부 및 제사(祭事)에 참여하는 경우를 신자로 보는 경우도 많다. 현재 종교법인이 된 신사는 약 8만개이며, 또 종교법인으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숭경(崇敬)을 받고 있는 신사도 다수 있다. 이러한 신사에서 받들어지는 제신(祭神)은 흔히 팔백만 신이라 불리는 것처럼 실로 다양하며, 또 제신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사 중에는 신궁, 대사 등의 명칭을 갖고 있는 신사들도 있으며, 이 중 신궁은 일본왕실과 관련된 신사이거나 역대 일본왕을 제사하는 신사이다.

교파신도계의 교단들은 신도의 종교전통 내에서 특정 조직자 창교자의 종교체험을 중심으로 교리를 만들고 신자가 형성되는 조직종교이다. 때문에 신종교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흑주교(黑住敎), 출운대사교(出雲大社敎), 부상교(扶桑敎), 어악교(御嶽敎), 신리교(神理敎), 금광교(金光敎), 천리교(天理敎) 등이다.

불교

일본의 불교는 대부분 대승(大乗)불교이다. 불교는 일본역사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현재까지도 많은 신자수를 보유하고 있다. 불교는 6세기에 일본에 전래되었다. 나라(奈良)시대(710~794)에는 ‘남도육종’(南都六宗)이라 하여 삼론종(三論宗), 성실종(成実宗), 법상종(法相宗), 구사종(倶舎宗), 율종(律宗), 화엄종(華厳宗) 등이 널리 퍼졌다. 가마쿠라(鎌倉)시대(1185~1333) 초기까지 일본불교는 8종이었다. 남도육종에 천태종, 진언종이 더해졌다. 그러나 가마쿠라 시대에 정착한 불교문화를 배경으로 호넨(法然)의 정토종, 신란(親鸞)의 정토진종, 일련(日蓮)의 일련종 등 일본인 자신에 의해 독자적인 불교가 형성되었다. 또 이 시기에 중국으로부터 임제종과 조동종도 전해졌다.
2차대전 이전에 종교단체법이 성립될 때 28종파로 정리되었지만, 2차대전 이후 종교법인령이 성립되고 정부 인가제가 시행되면서 다수의 불교 교단이 분파 독립되어 2007년 말 현재 154개의 불교종파가 존재하고 있다.

기독교
기독교의 일본 전도는 1549년 로마 가톨릭의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에르(F. Xavier)가 일본에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7세기 초두에는 수십만 명의 신자가 있었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기독교를 금지하였고, 도쿠가와(德川) 막부도 철저하게 탄압을 하여 기독교도는 이후 거의 전멸하다시피 되었다. 일본에 기독교의 본격적인 재포교가 준비된 것은 막말 경(19세기 초 중반)이었다. 서구 열강이 일본의 개국을 요구하면서 선교사들도 일본열도에 상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독교 신도수는 현재 세례를 기준으로 하여 공식적으로 전인구의 0.8%이다. 사비에르가 일본열도에 최초로 포교했던 직후의 시기에도 1%를 넘었었다. 현재 신자수가 1%를 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일본의 기독교 관계자는 이를 ‘1%의 벽’이라 부르고 있다. 이 비율은 구미를 중심으로 한 선진국가들과 비교하면 당연히 낮다. 또 한국 등 아시아 전체와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낮은 비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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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자수가 적다고 해서 기독교가 일본의 문화, 사회에 점하고 있는 위치가 낮은 것은 결코 아니다. 일본 기독교의 위상은 그 공식적인 신자수를 능가하는 위치에 있다. 일본에서 기독교는 불교에 이어 제2위의 종교이며, 기독교를 제외하고 일본의 종교를 말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기독교는 일본사회에서 문화적 사회적인 활동을 활발히 함으로써 일본 근대화의 추진동력을 만들어 주었고, 때문에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왔던 것이다. 다만 일본사회에서는 예로부터 명확한 입신(入信) 의례를 거쳐 종교조직의 회원이 된다는 습관이 정착되지 않은 점 등 때문에 공식적 신자수가 적게 보고되고 있을 뿐이다.

교파별로 나누어 보면, 신자수가 제일 많은 교파는 가톨릭(구교)이다. 가톨릭의 총수는 45만명 정도로 일본 총인구의 0.3%이다. 프로테스탄트(신교)의 최대교파는 일본기독교단이다. 또 프로테스탄트 중에서 복음파라 불리는 교파는 구미권의 기독교에 비해서도 성서신앙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또 특정 교회에 속하지 않고 자기 집에서 성서만을 보는 ‘무교회 운동’(지도자는 内村鑑三, 우찌무라 간산이 유명하다)도 있다. 그리스정교(일본정교회)의 신도수는 일본에서 1만명 전후로 추정되며, 또 여호와의 증인도 많은 신자를 확보하고 있다.

신종교, 일본사회의 종교 붐
지금으로부터 20년 전(1991년), ‘행복의 과학’이 돌연 일본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를 주도한 자는 일본인들의 동경하는 도쿄대학의 법학부 출신이었고, 그가 쓴 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도쿄돔에서는 그의 탄생제가 거액의 비용을 들여 성황리에 치러져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행복의 과학’은 신종교였다. 소위 신종교가 종종 쓰는 수법인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포교전략’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1990년대는 세기말적 흐름이 일본사회를 지배하면서 제4차 종교 붐이 일어난 시기였다. 일본사회에서 이러한 종교 붐 현상은 몇 차례 있었다. 제1차가 막말유신기, 제2차는 2차 대전 패전 직후, 제3차가 1970년대였고, 바로 제4차가 1990년대였던 것이다.

19세기 막말유신기, “에에쟈나이까”
19세기 일본사회에는 역사적인 거센 조류가 몰아치고 있었다. 19세기 초반부터 러시아와 영국 군함들이 통상을 요구하며 다가왔으나 막부는 쇄국을 고집해 문을 열지 않았다. 백성들의 생활은 불안했다. 1853년에는 미국의 페리제독이 군함[黑船] 네 척을 이끌고 와 개항을 요구했다. 아니 위협했다. 결국 막부는 미국의 강화 요구를 받아들여 이듬해 일미화친조약을 체결했고, 이후 일본의 문을 개방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의 정치와 경제는 혼란스러웠고 민중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이 때 민중들 사이에서는 구원을 바라는 심리에서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참배하는 것이 대유행하였다. 이를 ‘오카게마이리’(お陰參り)라 한다. 이세신궁에 모신 신의 음덕을 바라는 참궁(參宮)이었다. 1830년의 오카게마이리는 약 500만명의 인파가 들끊었다. 오사카에서 이세(伊勢)에 이르는 길가에는 참궁을 위한 인파가 혼잡하였고, 그 사람들은 아마테라스 오오미가미(天照大神)의 신위(神威)를 받들어 미친 듯 “에에쟈나이까(いいじゃないか)”로 쓴다. 곧 “(세상바꿈이)좋지 아니한가”를 노래하고 춤추며 이세신궁으로 향했다. 이러한 참배물결의 큰 파도가 지나가면서, 봉건체제의 틀을 깨트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1867년 막부는 정권을 천황에게 반납[大政奉還]했고, 조정은 천황정치의 부활을 정식 공포했다[왕정복고]. 이듬해 천황은 수도를 쿄토에서 도쿄로 옮기고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했다. 이것이 메이지유신(1868)이다. 이에 따라 신정부는 1869년에 다이묘(大名)들의 영지와 영내 백성들을 천황에게 반납하게 하고[版籍奉還], 1871년에는 종래의 번을 폐지하고 대신 전국을 현으로 나누어 중앙정부에서 관리를 파견했다[廢藩置縣]. 또한 메이지정부는 신사신도를 ‘국가의 종사(宗祠)’로 불교, 기독교와 달리 취급하여, 이세신궁을 정점으로 한 국가신도 체제를 확립하였다.
그래서 신사는 국가가 제사 및 보호 유지해야만 하는 시설이 되었다. 이러한 막말유신기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흑주교(1814), 천리교(1838), 그리고 금광교(1859) 등 많은 신종교들이 출현하였다.

20세기 세 번의 종교 붐, ‘신들의 러시아워’
20세기에는 1945년, 일본의 패망 직후와 1970년대 오일쇼크 직후, 그리고 1990년대 세기말적 분위기에서 세 번의 종교 붐 현상이 있었다.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직후 일본사회에서 국가신도가 폐지되었다. 천황 스스로가 신격(神格)을 부정(인간선언)하였고, 정교분리와 신교자유를 보장하는 신헌법이 시행되었다. 일본종교사에 미증유의 변동이 일어난 시기였다. 히도노미찌, 대본, 혼미찌, 창가교육학회(1946년에 창가학회로 개칭) 등이 조직을 재건하여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그동안 국가신도에 종속되었던 천리교와 금광교도 재출발하고 있었다. 또 생장(生長)의 가(家), 대일본관음교단(오늘날 세계구세교), 지우(璽宇, 1945), ‘무아(無我)의 춤’으로 인해 ‘춤추는 종교’로 일약 유명한 천조황대신궁교 등이 재건 재발족 개교되었다. 이처럼 전후부흥기는 여러 신종교들이 난립 경쟁 발전한 소위 ‘신들의 러시아워’ 시기였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는 대체적으로 평온한 시기였다. 경제적으로 낮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수출호조에 힘입어 일본 국내에서 풍요의 사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시기 시작된 신비 주술 붐은 소위 ‘신신종교’ 및 ‘작은 교단’의 유행현상으로 나타났다.

이전과 비교하여 다른 점은 상대적으로 많은 젊은이가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번화가에는 ‘파친코점보다 그 수가 많다’라고 언급될 정도로 소교단이 배출되고 얼마 안돼 신신종교로 불리워질 정도로 대교단으로 급성장하는 예도 있었다.
그리고 1990년대의 4번째 종교 붐은 세기말적 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세기말 때마다 찾아오는 종말론 이야기, 특히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종말예언 등은 서두에 보았듯이 행복의 과학 등과 같은 신종교들을 탄생시켜 주고 있었다.

현재 일본사회에서 활동하면서 종교단체로 등록된 신종교 교단수만 보더라도 300여개가 넘고 있고, 신자수도 대략 인구의 1~2할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신종교 교단들은 각종 교육기관 및 의료기관을 설립하고 출판 문화사업 등을 전개하면서 일본사회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일본의 대표적인 신종교 단체인 창가학회의 정계진출은 일본사회를 놀라게 하였고, 이 이외에도 PL, 영우회(靈友會), 입정교성회(立正校成會), 생장의 가 등의 신종교 단체가 정치와 끊임없이 관련을 맺어왔다. 또한 이러한 신종교 교단들은 일본 국내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남미,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활발한 포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식의 종교관
일전에 이름있는 한국의 기독교계 인사가 일본사회는 격조가 낮은 여러 잡신들을 모시기 때문에 벌을 받아 자연재해가 휩쓴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일본사회, 아니 일본의 종교문화를 잘 모르고 말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본인들은 종종 ‘풀 한포기, 나무 한 조각, 심지어 우리가 내뱉는 말[言] 한 마디에도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의식조사에서 ‘믿는 종교(교단)는 없으나 신불(神佛)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일본인이 응답이 다수라는 결과도 이러한 일본인의 종교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곧 현대 일본인의 대다수는 실제로 종교의례에 참가하면서도 특정 종교조직에 대한 귀속의식은 희박하고, 스스로는 ‘무종교’(無宗教)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일본인이 신 및 불(仏)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믿고 있지만 특정의 교단종교에 귀속하고 있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일본인의 종교관과 일본사회의 종교 실태를 보고 있노라면, 필자는 차라리 ‘일본교’(日本敎)라 부르고 싶을 때가 많다. 일본의 신사를 중심으로 한 신도신앙, 팔백만신, 일상생활을 신도 불교 기독교 등 여러 종교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들, 어떤 종교가 들어와도 수용하고 녹여내는 습합(習合)신앙 등은 ‘일본교’라는 명칭을 무색치 않게 할 것 같다. 그래서 ‘일본인은 무종교라기보다 일본교라는 종교의 신도’ 라고 주장하는 편이 더 옳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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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로 읽는 일본인의 마음 < 문화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종교로 읽는 일본인의 마음 < 문화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종교로 읽는 일본인의 마음 - 오마이뉴스

종교로 읽는 일본인의 마음 - 오마이뉴스


종교로 읽는 일본인의 마음일본 종교를 통해 본 '일본'
03.08.13 08:05l최종 업데이트 03.08.14 10:36l
김용태(hamsung21)



▲ <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책세상, 2001)

ⓒ 책세상
"우리는 일본과 일본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다소 엉뚱한 질문처럼 들리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 속에 일본을 바라보는 두 가지 마음이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적극적으로 사랑은 하고 싶지만 불편한 과거 때문에 차마 할 수 없는 애증어린 심정이라고 할까.

쉽게 말해 우리는 일본과 일본인을 한편으로는 '동경'의 대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거부'의 대상이라는 복합적 심정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물론 합리적 일본관, 곧 일본으로부터 '배울 건 배우고, 비판할 건 비판하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럴려면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일본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이러한 자세보다는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쪽과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쪽으로 갈려 있는 듯 하다.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

일본종교를 연구하고 있는 소장학자이자 <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 : 종교로 읽는 일본인의 마음>(책세상, 2001)이라는 책을 쓴 박규태씨는 이 같은 복합적 심정에 대해 "우리 사회가 평면적이고 양자택일적인 이원론이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이라 말했다. 또한 "일본에 대한 우리의 비생산적이고 이중적인 콤플렉스가 여전히 강력하게 기능하는 현실"이라 덧붙였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자아의식'이 이런 식으로 서 있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는 "끌어안아야 할 일본과 우리가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본"을 뒤섞어 버리게 된다. 또한 "옳고 그름의 담론이 그저 껍데기뿐인 명분으로 권력을 행사"하면서 "생각이 다르고 내 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고 악으로 매도해버리는 일차원적인 발상들이 독버섯"처럼 피어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은이는 일단 우리가 얼마만큼 일본을 알고 있는지 묻는다. 특히 일본의 종교에 대해서. 이에 대한 지은이의 대답은 단호하다. 그는 "일본인의 종교에 관해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바는 거의 제로 상태다"라며 "한 문화의 종교를 이해한다는 것은 타자와의 만남을 위한 첫 번째 배려"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과거사 문제가 아직 풀리지 못한 상황에서 과연 사심없이 일본이라는 타자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학인으로서 자신이 공부하는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고 또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은 그게 쉽지 않다. 처음 일본에 가서 공부할 때 느꼈던 알 수 없는 분노, 나는 지금도 그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럼에도 지은이는 분노를 접고 이해의 상상력을 펼치며 일본인 마음 속으로 들어갔다. 어렵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합리적인 일본관을 정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서 지은이는 이 책에서 일본의 신도와 불교, 기독교와 신종교 등의 사상과 역사, 그리고 그 현대적 정황을 기술했다. 한마디로 일본의 종교 지형을 한눈에 조감하며, 그 조감도 속에서 일본인의 마음 깊이를 읽어내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종교현상학적 태도 가운데 하나인 '공감'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 야스쿠니 신사 전경

ⓒ 김용태
이 책에서 특별히 관심을 갖고 읽어야 할 부분은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종교적 접근 또는 해석이다. 두루 알다시피 야스쿠니 신사는 과거 군국주의 시대에 천황을 위해 전쟁터에서 죽은 250여만 전사들이 신으로 모셔져 있는 곳이다. 이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의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우익집단 인사들이 공식 참배를 하면서 '야스쿠니 문제'가 불거지곤 한다.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원령신앙

이러한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 지은이는 단순히 정치적인 관점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음을 지적한다. 예컨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일반적인 일본인들의 두 가지 태도가 그러하다. 일부 우파 정치인들이 얘기하듯 '일본 국민들은 평화바보'일 정도로 반전(反戰)과 평화헌법을 주장하면서도, 그러나 속내를 들어다 보면 야스쿠니 신사에 심정적인 동의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일본인들은 대부분 '평화헌법'을 지지하며 전쟁을 반대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전범이 신으로 모셔져 있는 이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서는 심정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왜 그럴까?"

지은이는 이 같은 두 가지 태도의 이유에 대해 일본인의 독특한 집단적 심성인 '원령신앙'을 그 이유로 든다. '원령신앙'은 일본인의 무의식에 오래 전부터 쌍여 온 민간신앙인데, 기본적으로 정상적으로 죽지 못한 신령이 산 자에게 미칠지도 모르는 해코지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이 짙게 드리워 있다.

"중세 이래 일본에는 생전에 원한을 품고 죽은 귀족이나 왕족이 사후에 탈이나 재앙을 일으키는 걸 막기 위해 사령을 신으로 모시는 관습이 있었다. 이를 통상 어령(御靈) 신앙 또는 원령신앙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이는 정치적 분란이나 전란, 사고, 자연재해, 역병 등으로 생전에 한을 품고 죽거나 비명사한 자의 원령이 산 사람을 괴롭히고 여러 재앙을 불러온다하여 두려워한 민간신앙이다."

그런데 이 같은 '공포'에 기반한 원령과 산 자의 관계를 정화하고, 순화하는 곳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라는 것이 지은이의 설명이다. 쉽게 말해, 원령신앙이 질병의 원인이라면 야스쿠니 신사는 질병에 대한 치료인 셈이다.

"전쟁터에서 비정상적으로 죽은 자는 원령이 되어 산 자를 괴롭힐지도 모르니까, 그 원령을 위무해주어야만 하고 그게 바로 야스쿠니 신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원령신앙이라는 종교적 관점으로 일본 우익집단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정당화할 수는 없을 듯 하다. 평범한 국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정치적 의도를 품고 신사를 참배하는 우익 인사들의 태도는 전혀 종교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적인 일본인들의 집단적 심성에 이러한 공포적 원령신앙이 전제돼 있다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

박규태 지음, 책세상(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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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2020. 4. 13. 



10일 서울 성북동 가톨릭 씨튼연구원에서 만난 원장 최현민 수녀는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때까지 판단을 보류하는 게 종교 현상학의 방법론”이라며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면 일본을 올바로 이해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왕태석 선임기자

​“일본을 알려면 일본 종교를, 무엇보다 신도(神道)부터 알아야 해요.” 일본인에게 신도란, 이런저런 종교가 아니어서다. 일본의 불교, 일본의 기독교를 알기 위해서도 신도를 알아야 한다. “일본인들의 정서와 뼛속에 너무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초(超)종교’나 ‘생활 습속’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합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지난 10일 서울 성북동 씨튼연구원에서 마주한 최현민(61) 원장의 설명이다. 씨튼연구원은 종교 간 대화를 이끄는 천주교계 연구원으로 최 원장은 최근 ‘일본 종교를 알아야 일본이 보인다’(자유문고)를 내놨다.

신도의 가장 큰 특성은 ‘흐릿한 선악관’이다. 일본은 한국만큼 윤리적 도덕적 책임 문제에 덜 민감하다. 신도의 인식 체계 내에서 악이란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다. 생명력이 다하거나 오염됐을 때 발생하는, 하나의 현상이다. 선으로 다시 회복될 여지가 있다. 일본 축제 ‘마츠리’가 사실상 정화 의식이고, 일본인들이 마츠리에 열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더러워지는 것 자체도 자기 책임이 아니다. “신도에서는 신(神)을 ‘가미’라 부르는데, 그 중에는 ‘악신(惡神)’도 있어요. 내 안에 들어온 악신이 나를 움직여 나쁜 행동을 하게 했다고 일본인들은 생각합니다.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죠.” 일본이 과거사 책임 문제를 회피하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한중일 동북아 3국 불화의 씨앗인 ‘야스쿠니(靖國) 참배’ 문제 또한 그런 맥락 아래 있다. “일본인들은 원한을 품은 영혼, 즉 원령(怨靈)이 산 사람을 해코지할 수 있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 그들을 달래줘야 한다고 믿어요. 원초적 믿음 같은 것이어서, 그 부분을 이해하지 않고 정치적으로만 접근하면 해결이 어렵습니다.”

​어쩌다 일본은 고대 토착 신앙의 절대적 영향 아래 놓이게 됐을까. 최 원장은 일본의 역사와 관련된 문제라 봤다. “지금 일본인은 천황을 현인신(現人神)으로 인식합니다. 신화와 역사를 결합해 국민을 만들어 내려 했던 메이지(明治) 정부의 기획이 주효한 거지요.” 단군신화를 상징성 강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천황가 신화인 기키(記紀) 신화를 사실 그 자체로 여긴다.

​이런 믿음 체계를 가지고 있기에 일본 종교에는 ‘초월성’이 아주 부족하다. 일본이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못한 건 그 때문이다. 일본이 불교나마 받아들인 건 ‘장의(葬儀) 불교’ 형태로 현세 중심인 신도의 내세 공백을 기능적으로 메워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엔 장단점이 따른다. 가령 신도적 믿음은 팔로어십(지도자 추종)에 유용하다. 그래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난을 극복하는 데는 아주 유용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리더십이다. “위기 국면에서 한국이 주목 받은 게 투명성이잖아요. 머뭇거리고 감추려 하는 아베 신조 정부의 리더십이 사태를 더 악화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리더십만 잘 작동하면 일본도 위기를 극복해낼 겁니다. 우리와 연결돼 있으니 당연히 그래야 하고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 수녀와의 대화치곤 독특하다. 그럴 만한 배경이 있었다. 최 원장은 원래 생명과학도였다. 생화학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마쳤다. 하지만 세부적 과학 지식은 ‘숲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닐까’라는 회의감으로 발전했다. 공부 대신 수도의 길을 택했다.

​전임 씨튼연구원장 김승혜 수녀가 최 원장을 다시 공부의 길로 이끌었다. 
일본 난잔(南山)대 종교문화연구소와 교류하면서 최 원장은 일본 불교에 이끌렸다. 종교학 석사, 박사 논문 모두 불교에 대해 썼다. 2000년대 중반 서강대에서 ‘일본 종교’ 과목을 맡으면서 일본 종교 전체를 파고들기 시작했고, 그 성과를 모아 낸 게 이번 책이다.

종교 간 대화를 하면서평화’라는 화두를 쥐게 됐다. 동북아 평화는 그 시작점이다.

“한일 관계가 계속 꼬여 온 건 사실이죠. 
하지만 우리가 선입견을 조금만 내려놓는다면, 
조금이나마 관계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요.” 

종교는 아주 좋은 실마리다. 종교는 사람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권경성 기자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원한의 문제 - 증산도(Jeung San Do) 공식 홈페이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원한의 문제 - 증산도(Jeung San Do) 공식 홈페이지

<브레이브 하트>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원한의 문제
대한의혼 | 조회 2772 | ||| (0)
지구촌에서 전쟁을 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전쟁사를 읽지 말라. 전승자의 신은 춤을 추되 전패자의 신은 이를 가나니”(道典 2:102:3∼4)

오죽하면 상제님께서 이렇게 전쟁사를 읽지 말라고 하시겠는가. 전쟁사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전패자의 신이 저주한다는 말씀이다.

사실 인간 현실 문제의 심각함은, 이렇듯 고통받는 이들의 원과 한의 중심에 서봐야만 제대로 알 수 있다. ‘과연 깊은 원과 한을 맺고 죽은 신명들이 천지 안에서 어떤 역사를 만들고 있느냐? 앞으로 이 우주에 어떤 대변혁이 오느냐?’ 이것은 극복될 수 없는 원과 한을 맺은 처절한 사람들의 모습을 봐야만 실감할 수 있다.

영국 북부에 스코틀랜드가 있는데, 수백 년 동안 그 민족의 영웅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이가 있다. 그대들도 잘 알고 있는 윌리암 왈라스다.

내가 스코틀랜드의 공항에 내려 차를 몰고 가는데, 아름다운 호숫가에 있는 조그만 가게의 할머니가 하는 말이 있다. “이 곳에 와서 윌리암 왈라스의 생가를 안 가보면 말이 안 된다.”는 거다. 그들의 자긍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영국이 북부 스코틀랜드를 강권으로 점령하여 통치를 하는데, 얼마나 악질적이었느냐 하면, 스코틀랜드 처녀가 시집을 가면, 첫날밤에 영국군 장교가 더불고 잔다. 그러니 스코틀랜드 남성들의 원과 한이 얼마나 컸겠는가. 아, 내가 장가를 가는데, 그 날 밤에 마누라를 영국 군인이 데리고 잔다고 생각해 보라. 아마 누구도 감당키 어려운, 그야말로 천지를 가르는 울분이 일 것이다. 제아무리 도덕가나 성직자나 착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에 분노한 윌리암 왈라스가 자유를 얻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 그게 <브레이브 하트>란 영화로 나왔다. 20세기 불멸의 영화다.

 

-종도사님 도훈 중 (2002.5)-

이성수 / 영화 선교사 영화 감독 | 디스타임

이성수 / 영화 선교사 영화 감독 | 디스타임





이성수 / 영화 선교사 영화 감독
2020-02-20


한국 최초 영화 선교사 이성수 영화 감독이 캘거리를 방문했다. 2014년 원주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Beautiful Mind’를 들고 캘거리를 찾은 이후 5년 9개월 만이다. 당시, 그는 밴쿠버에서 선교사로 6년을 지내던 중 원주민들의 삶을 보면서 ‘원주민도 우리와 똑같은 하나님 피조물이고 귀한 영혼들일 텐데 왜 그들의 삶은 이럴까? 이것은 결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란 애틋함을 갖게 되어 영화를 만들었다.

이번 캘거리를 방문하면서 새 다큐멘터리 영화 ‘용서하기 위한 여행’을 들고 왔다. 일본을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던 것은 2015년 코스타 30주년을 기념행사를 통해서다. 그때 만난 일본지역 선교사들은 이 감독의 ‘Beautiful Mind’에 감동을 하고 그를 일본으로 초청했다. 도쿄를 시작으로 쓰나미로 원전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까지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이 감독은 일본에 만연해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느꼈던 것. 일본 전역에 8만 개의 신사가 있음에 놀라면서 성경 속의 도시 니느웨를 떠올렸다. 그런데도 한국인의 뿌리 깊은 원한의 대상인 일본을 용서하는 것이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용서하지 않을 핑계를 찾기 위해 성경 속의 말씀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런 그를 움직인 것은 두 명의 일본인이다.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찾아와 끊임없이 용서를 빌어 온 일본 목사가 그 한사람이다. 그는 일본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목사로 꼽히기도 한다. 또 한 사람은 일제 강점시대 대한민국 전역에 세워진 1천여 개의 신사를 찾아다니며 회개 운동을 하고 있던 일본 목사다. 한국 기독교인이 해야 할 일을 일본인이 하고 있음을 보면서 그의 마음은 움직였다.

저 먼 과거에서부터 시작된 일본의 만행을 담고 있는 이번 영화 역시 선교가 주목적으로 상업 영화가 아니어서 영화관 상영은 하지 못했다. 따라서 영화를 만들면 이성수 감독은 전 세계 교회를 돌며 영화를 상영한다. 이번에도 역시 일본을 직접 방문해 일본 현지 교회에서 상영했다. 이 영화를 본 일본 현지 목사들은 ‘당신은 우리를 참 부끄럽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었다.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은 역사의 진실이 담겨있다. 이 영화가 일본 전국에 상영되어야 한다’라고 했다는 것.

이 감독은 5천 년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이 흥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받은 축복을 나눠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반해 니느웨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점점 쇠락해 가고 있는 나라 일본을 불쌍하게 여겨 살리자고 말한다. 피해 당사자인 우리 한국인이 일본을 용서하고 위로해야만 하나님의 역사도 일본에서 일어날 수 있다면서.

이 감독은 구원의 축복을 나 혼자 지니고 있지 말고 나누자면서, 상처받은 치유자로서 우리의 운명을 강조한다. 이순이 지난 지 한참인 이 감독은 그의 마지막 프로젝트로 다음 세대를 위한 다큐멘터리 ‘복음 통일’을 계획하고 있다.

 

'왜 일본 공포영화 주인공은 위기 자초하나' 여기 답이 있다 - 오마이스타

'왜 일본 공포영화 주인공은 위기 자초하나' 여기 답이 있다 - 오마이스타



'왜 일본 공포영화 주인공은 위기 자초하나' 여기 답이 있다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클래식한 J호러 <토시마엔 괴담>
김준모(rlqpsfkxm)
19.07.01 



▲ <토시마엔 괴담> 포스터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1년 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타카하시 히로시 감독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링>과 <여우령>의 각본가로 유명한 그는 당시 심사위원으로 부천을 찾았고 인터뷰 답변으로 J호러의 한계와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J호러의 근원은 심령사진의 재현으로 우연히 찍힌 심령사진을 실제로 재현해 보고자 하는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시도는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 일본 공포영화의 전성기로 이어졌다.

<링> <주온> <착신아리> <하나코> 등 J호러는 다채로운 귀신 캐릭터와 빠져 나올 수 없는 저주의 매력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더 자극적이고 무서운 영상들에 대한 접근성이 쉬워지자 더 이상 관객들은 심령사진의 재현이라는 J호러의 방향에 관심을 지니지 않게 되었다. 당시 타카하시 히로시 감독은 J호러가 다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방향성에 있어 고민을 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놀이공원 토시마엔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



▲ <토시마엔 괴담>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그리고 1년 뒤, 동명의 이름을 지닌 신인 감독이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방문하였다. 그의 영화 <토시마엔 괴담>은 요즘 보기 힘든 클래식한 J호러의 느낌을 담고 있다. 인터넷 개인방송이 등장하고 스마트폰을 통한 촬영을 통해 현대적인 감각을 보여주지만 공포를 주는 방법에 있어서는 J호러의 고전적인 규칙들, 특히 귀신의 원한을 통한 복수와 청각적으로 긴장감을 높이고 시각적으로 마무리를 짓는 기술, 전해 내려오는 괴담과 이를 통한 저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놀이공원 토시마엔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두 가지 측면에서 클래식하게 공포를 유발해낸다. 첫 번째는 괴담을 통한 저주이다. 도입부에서 인터넷 공포체험 개인방송을 진행하던 세 명의 남녀는 토시마엔 놀이공원에 내려오는 금기를 어기고 악령에 의해 사라지게 된다. 금기를 통한 저주는 J호러가 지닌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어떤 비디오를 보면 3일 후 죽게 된다는 <링>이나 학교 공중 화장실에 등장하는 변소귀신의 소문이 주가 되는 <하나코>처럼 특정 장소나 행동에 대한 괴담이나 금기, 이를 통한 저주가 이 작품의 핵심이 된다.

도쿄에 실재하는 토시마엔 놀이공원의 도시괴담에 담긴 금기는 세 가지이다. 오래된 건물의 문을 두드리지 말 것, 귀신이 불러도 대답하지 말 것, 비밀의 거울을 바라보지 말 것이다. 금기를 소재로 한 공포영화는 항상 이 금기가 깨지면서 저주가 시작된다. 유학을 앞둔 대학생 사키는 학창시절부터 우정을 이어온 네 명의 친구와 함께 추억 여행으로 이 놀이공원을 향하고 토시마엔 괴담의 금기사항을 어기고 저주에 빠지게 된다.



▲ <토시마엔 괴담>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두 번째는 원한을 지닌 귀신을 통한 공포의 유발이다. J호러가 심령사진의 재현을 위해 택한 방법은 귀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원한을 지닌 사람이 죽어 그 혼령이 악령이 되었다는 기본 설정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귀신 캐릭터를 만들어 왔다. 이 작품 역시 저주를 발현하는 귀신 캐릭터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공포를 유발해낸다. 3년 전 사키를 비롯한 친구들이 고등학생일 때 토시마엔 놀이공원에서 실종된 친구 유카의 존재가 저주의 근원으로 등장하며 왜 유카가 악령이 되어 친구들에게 저주를 내리는지가 미스터리의 중심을 이룬다.

여기에 청각과 시각을 동시에 공략하는 효율적인 공포감 조성이 인상적이다. 악령이 나타나기 전 사운드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고 악령이 등장하는 순간 시각적인 공포를 통해 마침표를 찍는다. 이 영화는 J호러의 클래식한 방식이 여전히 관객들에게 유효하다는 점을 증명해낸다. 다만 J호러가 왜 전성기 이후 오랜 시간 관객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SNS나 스마트폰 활용해 공포의 감도를 높이다

J호러의 약점은 장면의 연출을 위해 캐릭터들을 극단적으로 답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가득해 위기를 자초하는 편이며, 경찰에 신고하거나 해당 장소에서 빨리 탈출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등 이성적 사고가 부족한 인물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인물 간에 갈등이 극에 달할 수 있게 쉽게 흥분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 어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이 작품에서도 사키를 비롯한 친구들은 맨 처음 실종된 친구 카야가 전화를 걸어 기묘한 이야기를 하고 공포감을 조성하는 사건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경찰에 신고하거나 놀이공원을 빠져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 <토시마엔 괴담>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또 안쥬는 친구들이 실종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경찰 신고보다는 '우리가 친구들을 찾아야 된다'며 무리하게 친구들에게 수색을 강요한다. 그런 안쥬에게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도망치자는 말만 반복해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드는 치아키의 대립은 극적인 재미보다는 답답함을 유발해낸다. 이는 클래식한 J호러가 지니는 문제점으로, 호기심과 답답함이 바탕이 되어야만 인물들이 한 명 한 명 흩어지고 그 순간 공포를 조성해낼 수 있다는 단점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토시마엔 괴담>은 여전히 J호러가 지닌 힘과 그 힘에 관객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신예 타카하시 히로시 감독은 SNS나 스마트폰을 활용해 공포의 감도를 높이는 건 물론 괴담을 통한 금기와 저주를 흥미롭게 풀어내면서 J호러의 새로운 방향성보다는 기존 스타일의 강화와 보완을 보여준다. 공포 장르의 다양한 변주 속 여전한 클래식의 매력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지향하는 장르영화의 방향성과 잘 어울린다.

[별을 쏘다]美이민 간 日귀신 여전히 ‘오싹’ - 경향신문 - 과거의 원한을 간직한 사물이나 혼령이

[별을 쏘다]美이민 간 日귀신 여전히 ‘오싹’ - 경향신문


[별을 쏘다]美이민 간 日귀신 여전히 ‘오싹’
입력 : 2006.10.25


할리우드에 일본산 공포영화 바람이 그칠 줄 모른다.


일본 공포영화 ‘주온’ 시리즈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속편 ‘그루지2’는 10월 둘째주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소니픽쳐스에서 배급한 ‘그루지2’는 2천2백만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려 전주 1위였던 잭 니컬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호화배역의 범죄영화 ‘디파티드’를 2위로 밀어냈다.



‘그루지’ 시리즈는 일본 원작의 감독 시미즈 다카시가 직접 할리우드로 가 메가폰을 잡고, ‘스파이더맨’의 샘 레이미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 ‘링’ 등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 일본 공포영화가 배경을 미국으로 바꾼 것과 달리, ‘그루지’는 미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원혼이 깃든 집의 비밀과 마주친다는 내용이다.


할리우드의 일본 공포영화 리메이크 붐은 ‘링’(2002)에서 시작됐다. 한국에서도 리메이크 된 적이 있는 이 작품 역시 미국에선 2편까지 제작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링’ ‘주온’ 등의 일본 공포영화는 과거의 원한을 간직한 사물이나 혼령이 현재의 인간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일본 공포물은 주로 등 뒤에서 은근슬쩍 다가오는 듯 서서히 옥죄어오는 공포감을 안겨주지만, 피와 살이 튀는 잔인한 장면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공포영화라고 하면 살인마가 희생자들을 추적해 잔인하게 죽이는 슬래셔 영화, 썩어문드러진 시체가 살아 돌아오는 좀비 영화에 익숙했던 미국 관객에게 일본의 은근한 공포물은 신선한 느낌을 안겨줬다.


일본 공포물이 미국에서 재탄생하면서 사회, 문화적 함의가 풍부해지는 경우도 있다. 나카타 히데오의 ‘검은 물 밑에서’를 리메이크한 ‘다크 워터’(2005)가 그렇다. ‘중앙역’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월터 살레스 감독은 원작에선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던 주인공 여성의 과거 상처와 현재의 열악한 경제 조건을 추가함으로써 현대인의 억압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는 “비논리와 직관에 의존했던 일본 공포물은 할리우드로 건너오면서 논리와 인과관계를 갖춘다”고 설명했다. 일본판 ‘링’은 저주에 걸린 피해자가 1주일 뒤 죽는 모습만 보여줬지만, 할리우드의 ‘링’은 1주일 사이 피해자가 죽을 것이라는 징조를 계속 보여주는 식이다.


일본 공포영화가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양산되다보니, ‘착신아리 파이널’ ‘유실물’ 등 일본 주류 영화계에서 만드는 공포영화가 매너리즘에 빠진 듯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비주류 영화계에선 ‘환생’ 등 참신한 공포도 시도되고 있어, 한동안 일본 공포물의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백승찬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불교평론 불교와 전쟁: 불살생과 대량살생 / 심재룡

불교평론

불교와 전쟁: 불살생과 대량살생 / 심재룡
[특집] 현대사회와 불교윤리
[KBS 제작 달라이 라마와의 미공개 인터뷰 포함]
[15호] 2003년 06월 10일 (화) 심재룡  jrs@snu.ac.kr

불교는 평화의 종교다. 불교의 계율은 불살생을 가장 큰 덕목으로 가르친다. 역사상 불교권에서는 살생을 주무기로 하는 전쟁이 공격적으로 치러진 적이 없다. 이 근거로서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불경을 전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불경과 계율이 제시하는 불살생 원칙에도 불구하고 불교사회에서 전쟁과 갈등은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비일비재하다.

왜 그럴까? 불교사회에서도 '성전(聖戰)' 또는 '의로운 전쟁'과 같은 개념은 없는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선 불교의 규범적 반전·평화관을 제시한다. 대량살생 곧 전쟁은 계율의 문제로 접근하기에는 버거운 또 다른 차원이 있는 모양이다.

최근에 불거진 불교권역에서의 전쟁 내지 대규모 갈등은 과연 불교적으로 정당화되는지 아니면 어떤 비판을 받고 있는지 이들을 반성함으로써 불교의 사회적 발언과 참여가 지닌 한계를 지적해 보고자 한다. 불교의 전쟁관에 대한 실증적·역사적 반성은 이제까지 시도된 적이 드물기 때문에 이 글의 한계 역시 자명하다. 귀납적 연구를 통해 모든 불교권을 망라한 일반적 결론을 도출하기란 불가능하다. 혹시 불교를 영원 불멸의 진리로 이해하는 독자 제현에게 반성의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1. 《법구경》에 나타난 반전 평화 사상: 상좌불교권의 규범적 평화관

죽이거나 죽는 자는 한낱 그림자이거나 허깨비가 아닌 살아 있는 인간이다.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인간의 현실적 세계를 긍정하면서 불교는 영구한 평화를 희구하며, 이의 실현을 위해 오직 한 가지 길을 제시한다. 불교의 초기 경전 군에 속한 《법구경》의 빨리어 판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 세상에서 원한은 원한에 의해서 결코 풀어지지 않는다. 원한을 버릴 때에만 풀리나니, 이것은 변치 않을 영원한 진리.{{) 법정 스님이 옮긴 《진리의 말씀 『법구경』》에서 따옴(불일소책, 1984, p.12). 한역에는 여기에 '참을 인(忍)' 자를 덧보태어, 원한을 품기보다는 참음으로써 끝없는 한풀이의 종언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 방법이야말로 여래의 진리임을 표방한다(不可以怨以怨 終以得休息 行忍得息怨 此名如來法).
}}

불교의 고전적 평화사상은 바로 이 한 마디에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인도의 정통 사상으로 인정하는 힌두이즘의 고전 《바가바드 기따》에 나타난 전쟁 또는 살생관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에 따르면, 그 주인공 아르쥬나는 친척을 죽이는 전쟁을 행함에 아무 원한도 지니지 않고, 평정한 마음으로 마치 허깨비를 치듯이 살육을 행해도 그 것은 오직 무사의 의무를 행하는 것일 뿐이라 한다. 혹시 전쟁 중에 죽임을 당하더라도 반드시 다시 태어남이 약속되어 있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득한다. 그러나 《법구경》은 다시 태어남을 약속하기 보다는 죽음의 보편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언젠가는 죽어야 할 존재임을 깨닫지 못하는 이가 있다. 이것을 깨달으면 온갖 싸움이 사라질 것을.{{) 《법구경》 제6절. 이 부분의 법구경의 번역은 대부분 법정 스님의 《진리의 말씀》에서 따옴.
}}

죽음의 보편성을 눈앞에 두면 싸움의 종식된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 가짐을 유도하여 싸움 내지 갈등을 해소한다고 해야 할까?

승리는 원한을 낳고 패자는 괴로와 누워있다. 마음의 고요를 얻은 사람은 승패를 버리고 즐겁게 산다. (법구경 201절)

《기따》는 범법자를 제거하는 의로운 전쟁을 통해 세계의 질서(法, dharma)를 보전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한다는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 반해, 《법구경》은 단도직입적으로 행복의 기준으로서 승패를 떠나 고뇌와 탐욕과 원한 속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고 즐거웁게 사는 길을 제시한다.

《기따》에 나타난 힌두적 성전관(聖戰觀)과 《법구경》에 나타난 불교의 평화관은 이렇게 정반대이다. 더욱이 불교에서는 그처럼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자세한 실천방도까지 제시한다.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평화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흔히 부처님께서는 사회사상가로서는 부족한 분이라거나 심지어는 실패한 분이라고까지 하는 주장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평가가 과연 정당한지를 생각해 보자. 필자는 빨리어 불전에 나타난 부처님의 생각을 세 가지 측면에서 조명해 보고자 한다. 즉 평화로운 사회, 평화로운 인간관계, 평화로운 마음씨, 이렇게 세 가지 모습으로 부처님의 반전·평화사상을 그려봄으로써 그러한 부정적 평가를 바꾸어 보고자 한다.
'평화로운 사회'란 인간들이 즐겁게 살 수 있는 사회다.

 단지 제 마음의 즐거움만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사는 즐거움이 있는 사회다. 불교에 따르면 개인의 도덕적 행위와 적당한 부(富)가 함께 할 때 평화로운 사회는 가능하다고 한다. 빨리어 불전 《앙굿따라 니까야(A guttara-nikaya)》(II. 75)에는 "정의로운 지배와 경제적인 안정이 온 백성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킴과 동시에 저들로 하여금 네 가지 즐거움을 함께 누리게 한다"고 적혀있다.

첫째, '소유의 기쁨'(attisukha)이다. 지나친 탐욕이 아니라 정당한 방법으로 획득한 적당한 부에 만족하는 기쁨이다. 둘째, '부를 사용하는 기쁨'(bhogasukha)이다. 위의 소유를 제대로 의롭게 사용할 때 느끼는 기쁨이다. 본래 소유는 도구적 가치를 지닐 뿐 그 자체가 궁극적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셋째, '빚이 없는 기쁨'(ananasukha)이다. 단순한 금전적 빚으로부터의 자유뿐만 아니라, 일체의 의무를 수행하고 더 이상 사회에 빚을 지지 않는 자는 즐거울 수밖에 없다. 넷째, '허물이 없는 기쁨'(anavajjasukha). 오직 의롭고 덕 있는 도덕적 삶을 누리는 자에게나 이 기쁨은 가능하다.

불교가 그리는 평화로운 사회는 단지 전쟁이 없다는 소극적 표현을 넘어 고상한 도덕성이 삶의 질을 결정하여 사회 구석구석에 웃음꽃이 핀다.

위와 같이 평화로운 사회의 구성원들간에는 네 가지 덕성이 보인다. '친절함'(metta), '남의 고통을 나누어 가짐'(karuna), '남의 기쁨을 나누어 가짐'(mudita), 그리고 고통과 기쁨을 비롯하여 '온갖 고난에 흔들리지 않는 평정한 마음'이다. 흔히 한자로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 하는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네 가지 마음가짐은 불교적 평화를 이룩하는 대인관계의 기본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아마 사무량심 가운데 친절 하나만이라도 실행하면 한 사회는 물론 국제관계마저 단숨에 바꾸어 평화가 찾아 올 것이다.

불교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단순한 사회 또는 국가 간의 평화보다는 한 개인의 마음에 깃든 영구한 평화의 구축에 있다 할 것이다. 마음이 평화롭지 않는 불자가 아무리 사회와 국가의 평화를 외친다 한들 그 것은 헛된 공염불일 것이다. 팔정도를 따라 마음을 가라 앉혀 올바른 수행을 거친 자는 소위 마음 속의 부정적 삼대 요소, 즉 탐욕과 화냄과 어리석음을 제거하여 다시는 그와 같은 마음가짐을 지니지 않게 된다.

이처럼 흔들림이 없이 평화로운 마음씨를 일러 불교에서는 열반(nirv a / nibbana)이라 한다. 열반을 궁극의 목표로 수행정진하는 사회가 곧 불교식으로 평화로운 사회요, 그 구성원이 평화를 진작하는 평화의 일꾼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위의 세 가지 모습을 다시 한번 뭉뚱그려 평화로운 불교적 이상향을 그려 보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누구나 최소한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단순 소박한 생활을 영위한다. 둘째, 인간의 기본적 의무를 수행함으로써 기본적 인권이 보장된다. 셋째, 통치자와 행정요원들은 모두 의롭고 도덕적이다. 넷째, 모두에게 일터가 주어지고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된다. 다섯째, 사회구성원은 적어도 다섯 가지 불교의 계율을 자발적으로 지킨다. 여섯째, 도덕의 인과응보를 믿어 남을 해치지 않고 누구나 즐거운 삶을 누리도록 도와가며 살아간다.

2. 불교적 사회와 전쟁

빨리어 불전에 보이는 규범적 평화 사상에도 불구하고 불교적 사회라고 전쟁이 없을 수 없다. 스스로 남을 침략하지는 않아도 침략을 받을 경우 전쟁에 휘말리는 것은 당연하다. 부처님께서 평화적 사회를 구현하는 매우 구체적인 가르침을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불법(佛法)을 수지하고 성불(成佛)을 기원하며 전문적으로 수행에만 전념한다는 승려들이 계율적 가르침을 무시하고 세속인들이나 씀직한 폭력적 방법을 동원하여 종종 이권다툼이나 권력투쟁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비판을 접어 두기로 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혹시 불교는 그 사회·정치·경제 등 인간의 모듬살이와 관계된 분야에서만 모든 문제를 심리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결국 어딘가 사상적으로 부족한 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폭력과 갈등에 대한 불교적 해결, 즉 원한을 사랑으로 되돌려 주자는 주장은 허공에 메아리치는 공염불인가? 우리는 경전에만 의지하여 불교의 반전·평화 사상을 마냥 규범적으로 들먹이기만 하지말고, 구체적으로 어느 사회에서 어떤 경우에 피치 못해 전쟁이나 폭력을 사용하게 될 적에, 저들이 어떤 정당화를 사용하는지 알아 볼 것이다. 우선 최근 몇 백년간 서양의 제국주의자들의 무력과 전쟁에 시달리던 동남아시아 불교국가들의 경우를 잠깐 살펴보자.

1) 동남아 소승불교권의 경우

근세에 서양의 제국주의자들과 전쟁을 수행한 동남아 불교국가들의 전쟁을 연구한 트레버 링에 따르면, 정작 어느 특정 국가의 종교와 전쟁과는 아무 연관성이 없다고 결론짓는다.{{) Trevor Ling, Buddhism, Imperialism and War (George Allen and Unwin, 1987). 한글 부분역에는 한길사의 "오늘의 사상신서" 제30권으로 편찬된 《현대사회와 불교》(이재창, 월폴라 라훌라 외, 1981)의 pp.348∼366을 참조할 것. }}

이렇다면 불교권의 국가들은 물론 어느 종교를 국교로 삼던가 주요 종교로 신봉하는 나라들의 전쟁은 적어도 종교 탓만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겠다. 국가권력이 존속하는 한, 경우에 따라 전쟁과 평화는 늘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사실 종교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앞세우기 때문에 생겨나는 전쟁이 많다.

특이한 것은 이들 동남아 국가들에서 불교 및 전통 종교의 영향으로 대인 관계에는 비공격성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정작 전쟁 상태에서는 지나친 잔인성이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 이유를 설명해 보고자 한다. 태국과 미얀마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대인관계에서 도발의 회피는 그 근원을 불교의 소승경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위에 언급한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말라는 《법구경》의 고전적 가르침과 비폭력·불살생이라는 규범적 가르침의 전통은 동남아 제국의 일반 불교도들 사이에 엄청난 감화를 끼쳤음에 틀림없다. 동남아 제국에서 보이는 사회적 대인관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신들의 개인적 도발적 충동들을 직접적으로 공개적으로 나타내지 않고, 간접적으로 불완전하게 남의 험담을 즐기는 식의 발산이 많다는 것이다.

또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충동들을 자신의 정신역학 내부로 고립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적국에 대한 전쟁 상태는 그들이 군대 조직 속의 규율에 적응하기 전에 전쟁의 폭력을 이용하여 분노의 덩어리를 아무런 통제 없이 발산하게 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심리적 설명이다. 이 설명으로 우리는 혹시 불교국가의 군대가 왜 위험한 상황에서는 비겁하고 승리할 경우에는 잔인성을 보여주는지 얼마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관찰이 혹시 최근 크메르루주의 잔학상을 부분적으로는 설명할 수는 있지도 모르겠다.

2) 대승불교권의 경우

한편 대승불교권 국가에서 전쟁은 어떤 방식으로 정당화되는가? 중국과 일본의 경우를 연구한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대승불교의 보살도에서 그 정당화의 싹을 찾는다.{{) 중국의 경우는 John J. M. de Groot의 "Militant Spirit of the Buddhist Clergy in China", T'oung Pao, Series 1·2, no.2 (1891), pp.127∼139 참조. 일본의 경우는 Paul Demieville의 "Le Bouddhisme et la Guerre", Melange publies par l, Institut des Hautes Etudes Chinoises 1 (1957), pp.347∼385참조. }}

보살은 큰 악을 제거하기 위하여 보다 작은 악을 제거하는 데 불살생을 범하지 말라는 중계를 어기더라도, 그로 인해 그 보살은 보다 많은 중생을 구제하므로 그 보살의 일신(一身)은 비록 지옥도에 떨어져 고통을 받더라도 올바른 길, 즉 정도(正道)는 아니지만 방편으로서 악인을 살상함이 보살에게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보살의 방편적 살생 가능설은 이런 계산에서 정당화를 얻는다.

한 명의 흉포한 강도를 죽임으로써 오백 명의 선량한 보살들을 살리려 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 강도를 죽인 보살은 지옥도에 떨어지더라도 그 살인은 오백 명이 살고 한 명이 죽고 또 한 명이 지옥에 떨어짐으로써(그 보살도 궁극적으로는 구제되겠지만) 계산상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승불교권에서 전쟁을 합리화하는 이론(?)의 절정은 최근 우리 민족이 겪은 한국전쟁의 대량살상, 즉 한국전쟁에 참가하기를 권장하는 당시 중국불교협회장 조박초의 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1951년 《현대불학》 4월호에 실린 다음과 같은 문장은 대승불교판 보살도의 극단적 이용이다. 이는 불교 본연의 모습과는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직접 '항미원조 국가보위 인민지원군(抗美援朝國家保衛人民志願軍)'에 입대하여, 석가모니께서 자비의 화신으로 모든 중생을 대신하여 고난을 무릅쓰고 인민을 구제하기 위해 적들을 죽인 정신을 실지로 배우는 길이다. 세계의 평화를 깨뜨리는 미제(美帝)를 쓸어 없애는 것이야말로 불교 교리에 충실한 것이므로 아무도 비난 할 수 없을 뿐더러 당연히 공덕을 쌓는 길이다.{{) 졸고, 〈근대 이후의 중국의 불교연구〉, 《동양의 지혜와 선》, p.371 참조. }}

3) 스리랑카 내분의 경우

정통 상좌불교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는 스리랑카는 타밀족과 싱할라족과 사이의 내분을 겪고 있다. 특히 최근에 스리랑카는 싱할라 단일 민족의 국가로서 그 국토의 일부를 결코 타밀족에게 분리이양하지 않겠다는 국가민족주의가 팽배하여 타밀족을 몰아내는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법구경》으로 대변되는 상좌불교의 절대평화론자와 단일민족국가를 위해 타밀족을 몰아내겠다는 전쟁론자 사이에서 스리랑카는 사상적 갈등을 겪고 있다. 학자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불경이 아닌 《마하방사》, 즉 스리랑카의 역사서에서 그 전쟁의 정당성을 찾고 있다. 부처님과 거의 동시대를 살던 두투게무누 대왕은 다밀라 종족을 살상한 것을 못내 괴로워하다가 '깨친 분들'(아라한)에게 이렇게 위로의 말을 들었다한다.

군주께서 살해한 것은 1.5인입니다. 인간의 왕이시여! 한 사람은 당신이 홍포한 불법에 귀의하여 오계를 수지한 사람이지요. 나머지 믿음이 없는 불신자거나 부도덕한 삶을 살다간 사람들은 인간 축에도 들지 못합니다. 대왕께서는 불법에 영광을 돌리시었으니 걱정일랑 놓으십시오.

아라한들에게 불법의 홍포는 두투게무누 대왕이 불살생계를 범하여 고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겠다. 정법수호를 위한 의로운 전쟁이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이와 같이 불경이 아닌 역사책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스리랑카 민족주의자들은 전쟁을 옹호하고 있다. 불경의 절대평화론을 불경 이후 세속적 문헌에서 나타나는 이야기를 통해 완화시키는 것이다.

 결국 불교보다는 단일 민족 국가를 만들겠다는 민족주의에서 전쟁의 정당성을 찾으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금년도 2003년 전자저널 《불교윤리(Buddhist Ethics)》에는 스리랑카의 불법과 전쟁에 대한 학술회의를 기록한 최신 문건이 올라 있다. 현대 스리랑카의 의전론에 대해서는 Tessa Bartholomeusz, "In defence of Dharma: Just War Ideology in Buddhist Sri Lanka", Journal of Buddhist Ethics 6 (1999), pp.1∼16 참조. }}

4) 현대 일본 선(禪)학자들의 전쟁옹호론 :사무라이의 칼과 야마도 다마시 소위 일본정신론

서구를 모방하여 근대화를 모색하던 메이지유신 당시 불교계는 타락하고 반사회적인 종교라는 비난과 함께 '폐불훼석(廢佛毁釋)'{{) 불교를 제거하고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파괴한다는 뜻. }}이라 불리는 탄압을 받고 있었다.

그러한 탄압에 맞서 일본 불교계에서는 근대적인 지도자들이 나타나, 교단의 타락상은 불교의 순수한 정신적 뿌리로부터 벗어난 것일 뿐 불교 자체의 문제는 아님을 지적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른바 '신(新)불교' 운동을 전개하여 서구의 경험적ㆍ이성적 과학 사조와 조화될 수 있는 것으로 불교를 새롭게 구성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일본 정부가 요구했던 국가의 정체성(코쿠타이[國體]) 확립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수용하여, 일본이 천황의 신적인 지배 아래 문화적으로 동질적이며, 정신적으로 진보하게 되었음을 선전하는 데 앞장섰다. 그리고 일본이 점차 제국주의화함에 따라 그들은 아시아인들의 공통된 문화적ㆍ정신적 기반인 불교 또한 일본에서 가장 진보된 형태로 나타났다는 주장을 펼쳤다.

곧 순수한 불교는 오직 일본에만 남아있다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선(禪)과 일본의 무사도(武士道)가 일치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누카리야 카이텐(滑谷快天, 1867∼1934)은 《사무라이의 종교》라는 책에서 선의 윤리는 사무라이의 윤리와 동일하며, "무사도는 전장의 군인들뿐만 아니라 생존 경쟁을 하고 있는 모든 시민들도 따라야 한다"{{ Nukariya Kaiten. Religion of the Samurai: A Study of Zen Philosophy and Discipline in China and Japan (London: Luzac, 1913), pp.50-51. }}고 말했다. 그런데

선의 본질이 무사도의 정신, 그리고 일본 정신과 통한다는 주장은 결국 일본의 제국주의적 정복과 천황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미화하는 데 봉사했음을 시사한다. 선의 어용화가 일본의 근대국가로의 진행과 맞물려있음을 볼 수 있다. 스즈키 타이세츠 역시 이러한 논점을 그대로 따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도 평정과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마음은 일본인에게서 두드러지게 발견되며, 막강한 적 앞에서 겁내지 않고 적에게 공정하게 대하는 무사도의 가르침은 선 수련의 정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D. T. Suzuki, "The Zen Sect of Buddhism", Journal of the Pali Text Society (1906), p.34. }}

5) 티벳 자치를 주장하는 달라이 라마의 경우

필자는 지난 해 망명 중의 달라이 라마를 달람살라로 찾아갔다. 이제 그가 주장하는 정법수호와 티벳 문화 보존, 그리고 중국과의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그의 의지를 들어보았다. 아마도 부처님의 평화사상은 망명 중의 달라이 라마에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의 인터뷰는 본시 KBS가 기획한 《21세기의 지도자》 가운데 정신적·종교적 지도자로서 달라이 라마를 찾아서 이미 90분 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아직 방영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그 중 일부를 발췌·전재하는 것이다.

심재룡:
당신은 아이들의 교육을 통해 티벳의 문화를 보존하고, 결국에는 독립 대신 정치적 자치를 성취하길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나 지난밤에 티벳 친구들에게 술을 마시기 전 건배할 때 쓰는 말을 묻자, '랑젠', 즉 '독립'이라고 했습니다. 티벳의 일반인들은 당신이 제의하는 불완전한 자치가 아닌, 중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바랍니다. 당신은 과거에 주장했던 바와 같이 비폭력이 당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란 것을 그들에게 어떻게 설득시키겠습니까? 서민들이 당신의 바램에 동의할까요?

달라이라마: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비폭력이며, 다른 하나는 독립입니다. 비폭력에 관한 한, 설명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비폭력, 혹은 비폭력적 방식은 더 인간적인 방법이며, 긴 시각에서는 더 효과적인 방법이며, 적어도 부작용의 위험은 현저히 적습니다. 만약 폭력이 개입된다면 어느 정도 만족감을 얻게는 되겠지만 긴 안목으로 볼 때는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될 것입니다.

 특히 티벳의 경우, 우리들의 비폭력적 접근, 비폭력적 투쟁 때문에 외부 세계에서 우리를 돕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국 내의 중국인들까지도 티벳의 투쟁과 현안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의 처지에 공감하고 관심과 함께 그들의 결속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비폭력 노선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비폭력 노선이 도덕적으로 바른 길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건설적인 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티벳인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티벳청년단"은 우리 공동체에선 상당히 큰 조직인데, 비폭력에 관한 한 이 풀뿌리 조직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제 두 번째 문제는 독립입니다. 여기 있는 "청년단"의 공식적인 입장은 완전한 독립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의 접근방식에 대해 아주 비판적입니다.

심재룡: 그렇습니다. 그것이 저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달라이라마: 내가 알고 있는 바, 이 시점에서 독창적인 문화유산을 가진 티벳이라는 나라는 실제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의 국가, 하나의 유서 깊은 나라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것이 현 상황입니다. 달라이라마로서 나는 전통적으로 일정한 의무를 지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 실질적으로 모든 티벳 국민들은, 종교인이건 아니건, 불교도이건 아니건, 거의 모든 티벳인들이 나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내게 많은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돌보고, 돕고, 그들에게 봉사할 도덕적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상황이 너무나 심각하고 중대하기 때문에 나는 티벳 동포들이나 다른 동지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의무는 티벳을 보호하고, 티벳의 환경을 보호하고, 티벳의 문화를 보호하고, 유서 깊은 문명을 보존하는 것"이라고요. 나는 그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 다음 먼 미래는 티벳인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티벳 국민들에게 말입니다! 내가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고 빤디뜨 네루가 인도 의회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최종적인 발언은 티벳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말이죠. 나는 그 말이 지극히 옳다고 생각합니다. 도덕적 원리는 물론이고, 민주주의 원칙에 따르면 국가의 미래는 온전히 국민들에 달려 있고, 그들 스스로 챙겨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나의 사명은 티벳의 문화, 티벳의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티벳이 중국의 수중에 있는 동안 티벳 자연환경의 보존은 홍수의 대비와 같은 경우를 보더라도 중국 본토에 매우 도움이 됩니다. 산림의 대규모 벌채로 티벳의 자연환경이 훼손되면, 그것이 중국인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다음엔 문화유산의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티벳 불교의 정신적 전통을 포함한 티벳 문화가 살아남고, 또 보존된다면, 그것은 중국의 문화와 정신적 전통을 풍요롭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심재룡: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달라이라마: 그렇습니다. 또 한 가지는 중국 정부의 문제인데, 그들은 티벳, (그들로 봐서는) 서(西)중국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경제개발은 우리가 바라는 바이며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정치 분야에서 안정의 문제가 있습니다. 중국 정부 초미의 관심사는 안정과 통일입니다. 그 점에 있어서 나는 나의 접근법인 중도 노선이 진정한 안정과 통일을 성취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심재룡: 중도라면 문화의 다양성을 화해시킨다는 뜻이겠지요?

달라이라마: 그렇습니다. 만약 중국정부가 티벳인들에게 일정한 권한과 신뢰를 보여준다면, 전자에 대한 후자의 태도는,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으로, 훨씬 긍정적이 될 것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언제나 억압을 행사합니다. 불평불만이나 분노가 표출될 때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들의 대응은 언제나 억압입니다. 오늘날 티벳에서 중국의 지배는 실제로 무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심재룡: 티벳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테러 행위가 자행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테러'와 부시 대통령의 입장을 보십시오. 나는 뉴욕에서 일어난 새로운 테러 사태에 대해 부시에게 보낸 당신의 서한을 읽어보았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습니다. 나는 당신이 올바른 결단을 내리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셨지요. 당신은 부시 대통령 입장에서 올바른 결단이 어떤 것일 수 있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달라이라마: 그건 다른 얘기입니다. 우선 제가 하던 얘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하여간 총칼 아래서의 안정과 통일은 피상적인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안정은 내면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경제개발을 위해서 통일과 안정은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나는 통일과 안정, 그리고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나의 접근방법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이곳 다람살라의 "티벳청년단"과 티벳에 있는 티벳인들은 과거의 경험 때문에 중국에 대해 진저리를 치고 있고, 중국공산당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아주 복잡합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현실을 보고자 한다면, 그래서 중국 정부의 최대 현안을 성취하기 위한 최선의 길이 왜 진정한 의미의 자치인가를 논의하고,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방법과 바른 길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안정과 통일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 토론하고자 한다면, 나는 완전한 독립을 원하는 많은 티벳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세상은 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감성보다는 인간의 지성과 지혜를 써야 합니다. 이제 당신의 다음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큰 질문입니다. 첫째, 나는 온 세계가 점점 테러의 온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심재룡: 테러의 횡행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어떤 정치학 교수는 '문명의 충돌'을 얘기합니다. 대담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탈레반 정권에 의해 폭파된 바미안 불상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교적 어법으로 일종의 '업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한 만행을 시발점으로 미국의 테러참사가 있었고, 아프가니스탄과 그 이슬람 동맹국들이 현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테러의 횡행에 대한 당신의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아직도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나의 비폭력과 평화로운 중도노선을 수용하십시오"라고 말이죠.

달라이라마: (파안대소) 나는 비폭력적인 방법이 단지 소극적이기만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질문은 실제로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나는, 미리 말씀드렸듯이, 대체로 이 세상이 점점 폭력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세계는 테러의 지배 하에 있지 않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은 실제로 한 줌 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주 소수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악의적인 사람들은 인류가 지구상에서 진화해 온 이래, 인간이라고 불리는 두 발 달린 생물체가 걷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존재해왔습니다. 몇몇 악의적인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 왔던 것입니다. 주된 차이점이 있다면 이러한 악의적인 사람들이 어떤 도구와 방식을 쓰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소수의 악의적인 사람들이 엄청난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세계가, 특히 자유세계가 이러한 테러리스트들에 대항해서 단합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옳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은 목적이나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그들의 행위 자체가 끔찍하고 부정적이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끔찍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테러리스트들에 대항하기 위한 범세계적인 조치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대응방식이 문제가 됩니다. 테러리스트들은 폭력을 씁니다. 그런데 먼저 이 경우에는 목표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특정 국가나 지역 내지 장소가 관련되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의 옷 속에 작은 벌레가 한 마리 있다고 합시다. 당신은 벌레 때문에 옷에 불을 지르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속 좁은 인간이나 바보가 하는 짓입니다. 당신은 옷을 들추고 벌레가 어디 있는지 찾아낸 다음, 그것을 집어서 내다 버리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테러의 경우에도 교육이나, 때로는 대화를 통한 비폭력적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들이 분노하고 있는 이유를 물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들이 왜 폭력을 쓰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교육이나 경제적 수단을 강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경제적 압박을 받습니다. 앞으로 테러에 대한 미래의 방어수단으로 대화를 더욱 더 자주 가져야 합니다.

심재룡: 저의 질문에 자세히 대답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달라이라마: 당신의 첫 질문은 너무 컸습니다. "예", "아니오"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심재룡: 저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당신이 가진 낙관론의 근거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은 대규모의 보복이 테러행위에 대한 대응으로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했습니다.

달라이라마: 대응수단으로 폭력을 쓴다면, 예컨대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에서 나는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악의에 찬 사람들, 즉 테러리스트들은 은신처에 숨거나 어떻게 해서든 도피할 방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미국인들, 그리고 미국인들이 선출한 미국의 지도자들이 일반적으로 자유와 평화를 충분히 구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들은 결국에는 이 문제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바램이자 기도입니다. 당신은 또한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아프가니스탄의 불상 얘기를 언급했습니다.

물론 그 소식을 듣고, 온 세계 사람들, 특히 불교권의 모든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고 또 슬픔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는 불교권에서 그 파괴에 대해 적대적으로 보복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불상 파괴와 같은 모든 행위는 물론 몰상식하고도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이미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일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한 개인, 한 종교"라는 생각, 그리고 "하나의 진리"라는 생각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류공동체 차원에서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진리를 수용하는 것 또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종교적 영역에서 다원주의는 필수적입니다. 통상적으로 저는 집회의 군중들이나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하나의 종교와 하나의 진리라는 생각은 정당하고 또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나 개인의 경우, 나는 불교도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서 불교는 유일한 종교이고, 유일하게 효용성 있는 진리입니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종교, 하나의 진리라는 개념은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두 사람이나 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런 생각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습니다.

나의 기독교인 친구들이나 이슬람교도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혹은 세 사람이나 네 사람만 있을지라도 그 상황에서는 여러 개의 종교, 여러 개의 진리라는 생각이 현실적이고, 적절할 것입니다"라고 말이죠.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불이 다시 나감. 이런 정전사고가 인터뷰 중 서너 번 있었다. 인터뷰 다시 중단, 달라이 라마께서는 "오 잠시 문제네!"라고 하시면서 매우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셨다. 잠시 후 인터뷰 계속)

하여간 나는 특정 종교 내에서나, 종교적 전통들 간에 다원주의를 확산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많은 종교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실적으로 온 세계, 혹은 모든 인간이 불교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다 기독교도나 무슬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주요 세계종교는 그 전통이나 철학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인간에게 봉사한다는 동일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공통되는 수행원리 역시 공유하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전통은 우리에게 사랑, 자비, 용서, 관용, 평안, 자율 등의 동일한 덕목을 간직하고 있으며, 또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통되는 근거, 공통되는 책임의식이 있는 것입니다. 종교전통들 간에 조화를 증진시키는 일은 가능하며 또 필요한 일입니다. 불상의 파괴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나의 즉각적인 반응은 그것이 불교와 무슬림, 그리고 기독교 세계간의 이해와 상호작용의 부재에 기인하고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다른 전통에 대해 특정한 태도를 키워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그 소식을 접했을 때,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었습니다. 만약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무슬림들이 불교에 대해 좀 더 알고, 세계를 전체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었다면 그들은 분명히 불교가 인류가 가진 중요한 종교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상의 파괴가 불교 공동체에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들이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개의치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태도로 인해 그러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심재룡: 종교와 문화의 다원주의 수용과 관련해서 나의 다음 의문은 소위 '문명화된 사람들' 가운데 권력층들은 여전히 온 세상을 지배하는 유일신의 관념을 고수하고 있고, 또한 그들 자신만의 정의(正義)를 가지고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만 관용과 자비, 그리고 사랑이라는 정신적 자세를 유지하고 가르치며 보존할 수 있을 것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다른 관점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교 용어로) '무지'와 '증오'에 가득 차 있는 보통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끊임없이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언제나 "남보다 자신"을 강조합니다. 나는 보통 사람들에 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달라이라마: 옳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치를 고양시키는 일 가운데에서 내가 노력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주제입니다. 나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고통을 포함해서 많은 문제들이 본질적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점에 관해서 나는 우리의 정신적 성향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감정이 얼마나 나쁘고 파괴적이며 부정적인지 잘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날의 일상사에서 가족 차원, 공동체 차원, 그리고 개인적 차원의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자비라든가, 대화의 정신, 화해와 용서의 정신, 배려하는 마음, 보살피는 마음 등 건설적인 감정들은 개인적 차원의 행복은 물론, 가족이나 사회, 국가, 그리고 심지어 국제적인 차원의 행복에 도움이 되고 또 유용합니다. 다른 한편 복수심이 표출하는 증오와 과도한 탐욕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감정들이 마음의 일부로서 단지 '성향'이라고 간주해서 통상적으로 이러한 감정이 일어나도 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감정들을 당연한 것, 정상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잘못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개개인의 내면에 있는 감정의 세계에서는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반드시 명상을 통해서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명상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종교인 내지 신앙인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정을 이해하는 일의 중요성은 종교인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비신앙인들, 즉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의 행복한 삶, 하나의 행복한 가정, 하나의 행복한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의 관심사입니다. 신앙인이든 비신앙인이든 상관없이 이 점에 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고, 관점의 차이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감정과 모든 사람의 관심을 진지하게 들여다보십시오. 변화, 특히 감정의 변화는 주로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심재룡: 그것이 지적인 교육이 아닌 정서적 교육을 통해 이루어집니까?

달라이라마: 지성을 통해, 지성을 이용해서 이루어집니다! 지성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의 파괴적인 힘을 알 수 있습니다. 일단 그것을 깨닫고, 또 확신을 가지게 되면, 그 확신은 자동적으로 부정적 감정의 강도를 약화시키게 됩니다. 일단 자비심과 마음의 평화가 가져다 주는 유용성을 깨닫게 되면 결국에는 모종의 열정과 의지력이 증진됩니다.

그러므로 실제 체험에 근거를 둔 인간의 지성을 최대한 활용하십시오! 현재 많은 사회사업가, 임상의사, 심리학자, 그리고 다른 사람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학교 내의 학생의 범죄를 포함해서 사회 안의 범죄율의 증가가 가정이나 사회 차원의 자비심의 부족 때문이라는 것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연구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의료 영역에서도 어떤 신체적 질병은 부정적 감정에 기인합니다. 자비심과 같은 정서는 신체적 조건을 더 건강하게 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몇 가지 과학적 증거가 있습니다. 제 말은 과학적 연구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고 우리는 지식을 활용하고 또 학교나 공동체의 구성원과 그것을 공유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의 감정에 주목하고 또 그것을 계발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모든 것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요소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부유하거나 지나치게 부유하고, 어떤 사람들은 가난합니다. 물론 18세기나 19세기에는 민주적인 자유국가에서도 착취가 자행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은 혁명을 통해 변했습니다. 몇몇 국가에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것들은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때로 그들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국가에 속한 개인적 차원에서는 물론, 전 지구촌 차원에서도 여전히 부와 가난 사이에 개재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도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잘못된 것입니다. 산업화된 나라들이 있지만, 지구상에는 아직도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아마도 한국도 포함되겠지만 재화의 과잉이 있고 지나친 소비를 하고 있습니다.

심재룡: 그리고 비만, 부유한 사람들의 거대한 배…….

달라이라마: 그와 동시에 한국의 경우, 북한 사람들은 아직도 굶주리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식량의 부족으로 더욱 많은 고통을 겪습니다. 넓게 보면 북한 사람들 중에서도 부유하고 잉여물자를 가진 사람이 있는 반면, 남한 사람들 중에도 때로는 생필품이 부족한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시기하고 또 좌절을 겪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알아야 하며, 그럼으로써 결국에는 정신적 자세나 관념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가지 문제는 우리가 '나'와 '그들'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별적으로 우리는 나의 행복이나 괴로움, 고통이 나의 것이고,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라는 것, 그것은 '당신'과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고통과 즐거움은 이차적인 것이 됩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자비심을 실천하는 것이 남을 위한 것이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심재룡: 그러나 사랑과 자비는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말씀이지요!

달라이라마: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통 이기적인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느낍니다. (웃음) 자비심 혹은 남을 보살피는 마음은 나의 행복과 나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나는 우리가 사물의 겉모습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분석해 보면, 한 인간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개인은 동료나 타인들이 없이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일상적 요구로서 우리는 주거와 가구, 편의시설, 음식, 의복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일 개인에 의해 만들어질 수 없으며, 일단의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생활의 기본 수단은 사회적 토대를 필요로 하고, 따라서 나의 미래는 남에게 의존하거나 남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특히 현대에는, 예컨대 우리가 좋아하건 말건 경제적 측면과 환경적 측면에서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온 세상이 이제는 한 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라든가 '그들'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고 기능할 수 없습니다. 나의 미래, 혹은 우리의 미래는 타인들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타인들의 이익을 배려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타인들의 이익을 상관하지 않는다면, 더욱이 타인들을 착취하고 파멸시키며, 고통을 가한다면 그 결과 당신 자신이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패배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남의 이익을 배려하는 것은 실제로 그 자신의 미래에 엄청난 이익이 됩니다. 다음으로 자비심의 실천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당신이 타인을 보살피는 마음에 관해 명상하는 순간, 그 즉시 당신의 마음 속에 내적인 힘이 강화됩니다.

그로 인해 당신에게 용기와 의지력이 생기고, 결과적으로 두려움과 의심은 감소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 나, 나"라는 생각만 한다면 그의 정신적 영역은 더욱 협소해지게 됩니다. 정신적 영역이 좁아지게 되면, 심지어 조그만 문제조차도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남들을 생각할 때, 우리의 마음은 넓어지고.

따라서 자신의 문제가 사소한 것으로 보이고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참여한 적이 있는 미국에 있는 어떤 실험실의 과학자들에 의하면, 어떤 의학자가 발표한 연구논문이 "나를, 나의, 내가"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사람이 심장마비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지나치게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긴장하게 되고, 너무나 자기 중심적이어서 더 많은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건강조차도 나빠집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것들을 바로 가르치는 것이 사람들을 제대로 교육시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과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가장 정통적인 불교의 평화관을 피력하고 계신 듯하다


6) 월남전의 와중에서 전쟁의 살육과 부정 부패한 정권에 항거 분신자살한 스님을 정당화하는 틱낫한 스님의 경우

틱낱한이라는 베트남 스님이 지은 시를 소개하겠다. 현대 아시아 불교의 보다 더 사회 참여적인 태도를 잘 나타내고 있는 이 시를 감상해보면, 그들의 태도가 마음만 고쳐먹으면 된다는 과거 전통적 불교도들의 태도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여기 이 시 속에는 과거의 전통과 단절된 아주 극단적이고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불교철학을 구성해내려는 노력이 들어 있다.

내 본래 이름으로 저를 불러주세요.
내가 내일 떠나리라 얘기하지 마세요.
오늘도 나는 여기 이 자리에 있을 것이므로.
깊이 당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세요.

매 초마다 매 순간마다 나는 여기 옵니다.
봄철 새싹이 돋아나는 나뭇가지의 새싹으로,
아직 날개는 여리지만 날려고 비상하려는 작은 새처럼,
새로 지은 둥지에서 새로운 노래를 부르려
안타깝게 노력하는 조그만 새처럼,
꽃 가운데(花心), 그것을 갉아먹으려 돌아다니는 자벌레처럼,
딱딱한 돌덩어리 속에 숨어 있는 영롱한 보석처럼,

나는 매순간마다 여기에 옵니다.
여전히 나는 여기 있습니다.
웃고 웃으려고 여기 옵니다.
두려워하고 희망하려고 여기 옵니다.

내 가슴의 맥박소리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죽음과 탄생을 상징합니다.
저는 강물 위에서 내 몸을 탈바꿈하는 조그마한 나비입니다.
그런데 나는 바로 봄이 오면
그 나비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조그만 새입니다.
맑은 연못에서 즐겁게 헤엄치는 조그만 개구리입니다.
미동도 하지 않고 그 개구리를 잡아먹으려 다가드는 물뱀입니다.
저는 온몸이 뼈다귀만 앙상한 우간다의 어린 아기입니다.
제 발가락은 마치 대나무처럼 가늘고,

그런데 나는 동시에 우간다에 죽음의 무기를 팔아먹는 무기상입니다.
저는 피난민 보트에 몸을 숨긴 열두 살 난 어린 소녀입니다.
해적에게 몸을 망치고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열두 살 먹은 소녀입니다.
그런데 저는 동시에 그 해적 놈입니다.
제 가슴은 아직 이 세상의 고통과 그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악한 가슴을 가진 해적 놈입니다.

저는 그 정치국원입니다.
제 손에는 엄청난 권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저는 바로 제 백성들에게 피의 빛을 변제해야 하는 바로 그 놈이올시다.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제 기쁨은 마치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 같습니다.
하도 따듯한 물이라서 이 세상의 모든 꽃들을 피어나게 합니다.
그러나 제 고통은 눈물의 강입니다.
하도 가득 차서 사해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고통의 강물입니다.

제 본래의 참다운 이름으로 나를 불러 주세요.
제 웃음과 흐느낌을 동시에 들을 수 있도록,
그래서 제 고통과 기쁨이 하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본래 이름으로 저를 불러주세요.
그래서 깨달을 수 있도록,
그래서 제 가슴이 항상 열려 있도록,
자비의 문이 항상 열려진 채로 있을 수 있도록.

세상은 모두 연기(緣起)의 그물망으로 얽혀 있으니, 독립된 진정한 자아라는 것은 허상이고, 너도 죄인이고 나도 죄인이며, 너도 기쁨이고 나도 슬픔이며, 슬픔과 기쁨은 서로 교차하는 것이라는 불교 연기사상을 시로 나타낸 것이다.

즉 우리는 연대 또는 참여라는 개념을 통해서 세상의 고통에 참여하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 시 속에 담겨 있다.

위와 같이 참여불교, 민중불교, 고통불교, 부처님불교가 아닌 중생불교가 주장된 것은 1920년대 암베드까르라는 인도의 불가촉천민 지도자에게로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그는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서도 신분차별 때문에 대학에서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인데, 5천 명의 불가촉천민과 더불어서 불교로 집단 개종을 주동한 사람이다.

그가 주장하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은 기존의 불교가 주장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제4의 불교라 불리는 이 새로운 불교운동이 제시하는 고통 극복과 해결의 방법은 심리적인 해결이 아니라 맑스 식의 혁명처럼 구조적이고 사회 맥락적인 방법이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도덕적이지만, 사회가 비도덕적이며 부도덕하다는 주장이 있다. 은행에 다니는 은행원은 자기가 헤아리고 있는 돈이 정주영의 돈인지, 전두환이 세탁을 한 돈인지 알 수 없다. 그 은행원은 월급을 받아 부모도 모시고, 처자식도 먹여 살려야 한다.

 핵심은 개인의 도덕성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부도덕한 구조적 연관이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불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고통을 당하는 것이 내가 과거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잘못되는 것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전체 구조와 맞물려 있는 것이고 은행원이 되는 순간부터, 사복형사가 되는 그 순간부터 구조적으로 고통의 구렁텅이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이 세상에 부도덕한 악(고통)은 없앨 수가 없다. 혁명은 판을 뒤엎는 일이다. 그런데 현대 참여불교의 경우 아직 판을 뒤엎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너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하다. 우리는 모두 고통을 받는 중생이다. 열두 살짜리가 강간을 당했고, 해적은 강간을 했다. 하지만 그 둘 모두 구조적 연관 속에 있는 것이지 이놈은 나쁜 놈, 이놈은 좋은 놈 이런 것은 아니다.

3. 불교식 평화 건설법: 비폭력·불살생의 철저한 확대 실천

이제 우리는 이 지상에 존재하고 존재했던 역사상의 불교국가에서 평화의 모범을 찾을 수 없다는 현실에 직면한다. 그렇다면 과연 불교적 견지에서 평화는 어떻게 진작할 수 있을 것인가? 불교식 평화 진작은 기본적으로 비폭력의 실천에 있다. 그 것은 단지 생명을 지닌 존재를 죽이지 않는다는 소극적 불살생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로 불교의 오중계 모두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불교의 윤리적 삶을 실천하는 데 있다. 다시 한번 오중계를 생각해보자.

1) 일체의 생명을 존중해서 이를 내 것으로 빼앗지 아니할 것입니다.
2) 생명 아닌 물건도 주지 않는 것을 취하지 않겠습니다.
3) 육욕에 따르는 일탈행위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4)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5)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체의 음식을 절제하겠습니다.

얼핏 이것들만 철저히 지키면 자동적으로 이 세상에 평화가 올 것 같은 희망을 품을 법도 하다. 그 한 예로 불살생의 계율을 지키자는 불교도의 결의는 다음과 같이 철저한 조건을 요구한다. 구체적으로 살생은 다음과 같은 요건을 갖출 때 진정한 의미의 살생이 된다.

1) 동물이거나 인간이거나 살아있는 생명이 있을 것.
2) 자기의 행위가 생명과 관계되어 있음을 알고 있을 것.
3) 살생을 마음 속에 품을 것.
4) 이 '살생'이라는 생각을 적절한 방법을 동원하여 실행에 옮길 것.
5) 그 결과 실제로 생명이 없어지는 죽음이 일어날 것.

이 중 네 번째 요건인 살생의 방법으로 경전에는 여섯 가지가 나열되어있다.

1) 직접 자기 손으로 죽임.
2) 남을 시켜 죽임.
3) 총을 쏘거나 화살, 막대기 등을 동원하여 죽임.
4) 땅에 파묻거나 숨이 막히게 하여 죽임.
5) 술수를 써서 죽임.
6) 마술을 동원하여 죽임.{{) H. Saddhatissa, Buddhist Ethics (London: George Allen and Unwin, 1970, p.89ff.
}}

불교가 이처럼 철저하게 살생을 분석하는 이유는 일체의 살생을 악으로 간주하여 비폭력·불살생을 생활화하기 위해 그 구체적 반대 보기, 즉 폭력의 실상을 직시하여 이를 범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굳히는 데 있다. 만약 위의 계를 철저히 지키자면 불교도는 아마도 철저한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채식주의자가 반드시 평화론자로 직결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불교식 오계를 모두 철저히 지킨다고 해서 이 지상에 평화가 도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 그럴까?

잠시 폭력의 유형을 생각해 보고 불교가 평화 진작에 기여할 수 있는 정도에 한계를 있음을 살펴서 이 소론의 맺음말에 대신하고자 한다. 평화학의 정착에 노력하는 요한 갈퉁(Johan Galtung) 교수의 지론에 따르면, 폭력에는 직접적·구조적·문화적 폭력의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Johan Galtung (Professor of Peace Studies, University of Hawaii), "The Role of Buddhism in the Creation of Peace", Seeds of Peace Vol.5 No.1, 1989, pp.9∼11 참조. }}

마치 현대 사회의 법률가들이 작성하는 법조문의 정확성을 방불케 하는 위의 살상 분석의 틀을 보면 불교가 직접적 폭력에 대처하는 치밀성은 경탄할만하다. 그러나 구조적·간접적 폭력에 대해 불교는 철저하지 못하다. 천천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음을 맞이한 것을 보면, 불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두 번째 계율인 도둑질 않기도 마찬가지이다.

직접적인 개인적 도둑질에 대한 경고와 규제는 철저한 반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구조적으로 들어있는 착취의 과정에 대해서 불교는 과연 제대로 눈을 뜨고 있었는지는 의문스럽다. 다음의 문화적 폭력은 위의 직접적·구조적 폭력을 방조하는 문화적 양태를 지칭한다. 물론 불교가 그러한 문화가 아닌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역사상에 전쟁과 폭력을 행한 불교 군주와 불교 국가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와 같은 한계가 있음을 자각한 요즘의 불교인들은 평화의 진작을 위하여 여러 가지 방책을 제시한다. 현대 평화학의 결론적 방안을 대부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불교 특유의 생활방식을 가미한 불교적 평화진흥책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Dialogue New Series, Vol XVI Nos.1-2-3, 1989, pp.37ff. 특히 pp.53∼58 참조.
}}

1) 가난을 구제하고 고용의 기회를 확대할 것.
2) 생활수준을 높일 것.
3) 교육기회를 확충할 것.
4) 건강 보건 시설을 제공할 것.
5) 인권을 보장할 것.
6) 무력사용을 철폐할 것.

이 모든 방책에 동조하면서 불교의 입장은 근본적으로 탐·진·치의 제거라는 인간의 근본적 자기 개조에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개인의 평화 없이 사회의 평화가 없다는 것이 불교의 근본 강령이다. 이제 불교도는 물론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이 기본 강령을 인간과 인간 사이는 물론 인간과 자연 사이에까지 확대하는 실천적 용기를 발휘할 때이다.

심재룡
서울대 철학과 졸업. 미국 화와이대학 대학원 졸업(철학박사). 현재 서울대 철학과 교수. 논문으로 〈보조 지눌국사의 선교일치론〉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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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ystematical Digest of the Doctrines of Confucius (1875) (external scan)
Introduction to the science of Chinese Religion (1879) (external scan)
Famous Women of China (1890) (external scan)
China in the Light of History (1897) (external scan)
The Mind of Mencius; or, Political Economy Founded upon Moral Philosophy (1897) (external scan)
Confucianism (1895) (external scan)
Chronological Handbook of the History of China (1902), edited by P. Kranz (external scan)

RELIGIOUS OBLIGATION TRANSFORMED INTO INTERCULTURAL AGENCY: ERNST FABER’S MISSION IN CHINA: Monumenta Serica: Vol 54, No 1

RELIGIOUS OBLIGATION TRANSFORMED INTO INTERCULTURAL AGENCY: ERNST FABER’S MISSION IN CHINA: Monumenta Serica: Vol 54, No 1

Ernst Faber and the Consequences of Failure: A Study of a Nineteenth-Century German Missionary in China | Central European History | Cambridge Core

Ernst Faber and the Consequences of Failure: A Study of a Nineteenth-Century German Missionary in China | Central European History | Cambridge C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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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Get access Volume 47, Issue 1March 2014 , pp. 1-29
Ernst Faber and the Consequences of Failure: A Study of a Nineteenth-Century German Missionary in China
Albert Wu (a1) 
DOI: https://doi.org/10.1017/S0008938914000600Published online b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5 May 2014
Extract
In 1898, the year before his death, the German missionary Ernst Faber reflected on his forty-year career in China. The account of his early missions work was suffused with a tone of failure and disappointment. He wrote openly about his difficulties in adjusting to the climate and environment of southern China, the diminutive numbers of converts to Christianity, his frustrations with learning Mandarin and the local dialects used in Guangdong, and the overwhelming feeling of loneliness that he encountered working in rural parishes.

2020/10/25

Vipassanā - Wikipedia

Vipassanā - Wikipedia

Vipassan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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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ions of
Vipassanā
Englishinsight, clear-seeing, special-seeing
Sanskritविपश्यना
(vipaśyanā)
Paliविपस्सना
Vipassanā
Burmeseဝိပဿနာ (WiPakThaNar)
Chinese
(Pinyinguān)
Khmerវិបស្សនា
(vipassana)
Sinhalaවිපස්සනා
Tibetanལྷག་མཐོང་
(Wylie: lhag mthong; THL: lhak-thong)
Vietnamesequán
Glossary of Buddhism

Vipassanā (Pāli) or vipaśyanā (Sanskrit) literally, "special-seeing",[1] "special (Vi), seeing (Passanā)",[2] is a Buddhist term that is often translated as "insight". The Pali Canon describes it as one of two qualities of mind which is developed (bhāvanā) in Buddhist meditation, the other being samatha (mind calming). It is often defined as a form of meditation that seeks "insight into the true nature of reality", defined as anicca "impermanence", dukkha "suffering, unsatisfactoriness", anattā "non-self", the three marks of existence in the Theravada tradition,[3][4] and as śūnyatā "emptiness" and Buddha-nature in the Mahayana traditions.

Vipassanā practice in the Theravada tradition ended in the 10th century, but was reintroduced in Toungoo and Konbaung Burma in the 18th century, based on contemporary readings of the Satipaṭṭhāna sutta, the Visuddhimagga, and other texts.[5] A new tradition developed in the 19th and 20th centuries, centering on bare insight in conjunction with samatha.[6] It became of central importance in the 20th century Vipassanā movement[7] as developed by Ledi Sayadaw and U Vimala and popularised by Mahasi Sayadaw, V. R. Dhiravamsa, and S. N. Goenka.[8][9][10]

In modern Theravada, the combination or disjunction of vipassanā and samatha is a matter of dispute. While the Pali sutras hardly mention vipassanā, describing it as a mental quality alongside samatha which develops in tandem and leads to liberation, the Abhidhamma Pitaka and the commentaries describe samatha and vipassanā as two separate meditation techniques. The Vipassanā movement favors vipassanā over samatha, but critics point out that both are necessary elements of the Buddhist training.

Etymology[edit]

Vipassanā is a Pali word derived from the older prefix "vi-" meaning "special", and the verbal root "-passanā" meaning "seeing".[2] It is often translated as "insight" or "clear-seeing". The "vi" in vipassanā has many possible meanings, it could mean to '[see] into', '[see] through' or to '[see] in a special way.'[4]

A synonym for vipassanā is paccakkha "perceptible to the senses" (Pāli; Sanskrit: pratyakṣa), literally "before the eyes," which refers to direct experiential perception. Thus, the type of seeing denoted by vipassanā is that of direct perception, as opposed to knowledge derived from reasoning or argument.[citation needed]

In Tibetan, vipaśyanā is lhaktong (Wylielhag mthong). Lhak means "higher", "superior", "greater"; tong is "view, to see". So together, lhaktong may be rendered into English as "superior seeing", "great vision" or "supreme wisdom." This may be interpreted as a "superior manner of seeing", and also as "seeing that which is the essential nature." Its nature is a lucidity—a clarity of mind.[11]

Henepola Gunaratana defined vipassanā as "Looking into something with clarity and precision, seeing each component as distinct and separate, and piercing all the way through so as to perceive the most fundamental reality of that thing."[4]

Origins[edit]

According to Thanissaro Bhikkhu, in the sutta pitaka the term "vipassanā" is hardly mentioned, while they frequently mention jhana as the meditative practice to be undertaken.[12][note 1] When vipassanā is mentioned, it is always in tandem with samatha, as a pair of qualities of mind which are developed.[12] According to Thanissaro Bhikkhu, "samathajhana, and vipassana were all part of a single path."[12][note 2] Norman notes that "the Buddha's way to release [...] was by means of meditative practices."[14] According to Vetter and Bronkhorst, dhyāna constituted the original "liberating practice".[15][16][17] Vetter further argues that the eightfold path constitutes a body of practices which prepare one, and lead up to, the practice of dhyana.[18] Vetter and Bronkhorst further note that dhyana is not limited to single-pointed concentration, which seems to be described in the first jhana, but develops into equanimity and mindfulness,[19][20][note 3] "born from samadhi"[21] but no longer absorbed in concentration, being mindfully aware of objects while being indifferent to it,[22] "directing states of meditative absorption towards the mindful awareness of objects."[23]

Though both terms appear in the Sutta Pitaka[note 4], Gombrich and Brooks argue that the distinction as two separate paths originates in the earliest interpretations of the Sutta Pitaka,[28] not in the suttas themselves.[29][note 5] Henepola Gunaratana notes that "[t]he classical source for the distinction between the two vehicles of serenity and insight is the Visuddhimagga."[30] According to Richard Gombrich, a development took place in early Buddhism resulting in a change in doctrine, which considered prajna to be an alternative means to awakening, alongside the practice of dhyana.[31] The suttas contain traces of ancient debates between Mahayana and Theravada schools in the interpretation of the teachings and the development of insight. Out of these debates developed the idea that bare insight suffices to reach liberation, by discerning the Three marks (qualities) of (human) existence (tilakkhana), namely dukkha (suffering), anatta (non-self) and anicca (impermanence).[28]

According to Buddhist and Asian studies scholar Robert Buswell Jr., by the 10th century vipassana was no longer practiced in the Theravada tradition, due to the belief that Buddhism had degenerated, and that liberation was no longer attainable until the coming of Maitreya.[3] It was re-introduced in Myanmar (Burma) in the 18th century by Medawi (1728–1816), leading to the rise of the Vipassana movement in the 20th century, re-inventing vipassana meditation and developing simplified meditation techniques, based on the Satipatthana sutta, the Visuddhimagga, and other texts, emphasizing satipatthana and bare insight.[6][32][note 6] Ultimately, these techniques aim at stream entry, with the idea that this first stage of the path to awakening safeguards future development of the person towards full awakening, despite the degenerated age we live in.[35][note 7]

Theravāda[edit]

Relation with samatha[edit]

While the Abhidhamma and the commentaries present samatha and vipassana as separate paths,[note 8] in the sutras vipassana and samatha, combined with sati (mindfulness), are used together to explore "the fundamental nature of mind and body.[13] In the later Theravada tradition, samatha is regarded as a preparation for vipassanā, pacifying the mind and strengthening concentration in order for insight to arise, which leads to liberation.

The Buddha is said to have identified two paramount mental qualities that arise from wholesome meditative practice:

  • Samatha, calm abiding, which steadies, composes, unifies and concentrates the mind;
  • Vipassanā, insight, which enables one to see, explore and discern "formations" (conditioned phenomena based on the five aggregates).[39]

The Buddha is said to have extolled serenity and insight as conduits for attaining the unconditioned state of nibbana (Pāli; Skt.: Nirvana). For example, in the Kimsuka Tree Sutta (SN 35.245), the Buddha provides an elaborate metaphor in which serenity and insight are "the swift pair of messengers" who deliver the message of nibbana via the noble eightfold path.[40]

In the Four Ways to Arahantship Sutta (AN 4.170), Ven. Ānanda reports that people attain arahantship using calm abiding and insight in one of three ways:

  1. They develop calm abiding and then insight (Pāli: samatha-pubbangamam vipassanam)
  2. They develop insight and then calm abiding (Pāli: vipassana-pubbangamam samatham)[note 9]
  3. They develop calm abiding and insight in tandem (Pāli: samatha-vipassanam yuganaddham), for instance, obtaining the first jhāna and then seeing in the associated aggregates the three marks of existence before proceeding to the second jhāna.[41]

In the Pāli canon, the Buddha never mentions independent samatha and vipassana meditation practices; instead, samatha and vipassana are two "qualities of mind" to be developed through meditation. As Thanissaro Bhikkhu writes,

When [the Pāli suttas] depict the Buddha telling his disciples to go meditate, they never quote him as saying 'go do vipassana,' but always 'go do jhana.' And they never equate the word "vipassana" with any mindfulness techniques. In the few instances where they do mention vipassana, they almost always pair it with samatha — not as two alternative methods, but as two qualities of mind that a person may 'gain' or 'be endowed with,' and that should be developed together.[42]

Buswell states that the most common meditation method described in the Pāli canon is one where samatha is first done to induce jhana and then jhana is used to go on to vipassana. Buddhist texts describe that all Buddhas and their chief disciples used this method. Texts also describe a method where vipassana is done alone, but this is less common.[5]

Vipassanā movement[edit]

The term vipassana is often conflated with the Vipassana movement, a movement which popularised the new vipassana teachings and practice. It started in the 1950s in Burma, but has gained wide renown mainly through American Buddhist teachers such as Joseph GoldsteinTara BrachGil FronsdalSharon Salzberg, and Jack Kornfield. The movement has had a wide appeal due to being open and inclusive to different Buddhist and non-buddhist wisdom, poetry as well as science. It has together with the modern American Zen tradition served as one of the main inspirations for the 'mindfulness movement' as developed by Jon Kabat-Zinn and others. The Vipassanā Movement, also known as the Insight Meditation Movement, is rooted in Theravāda Buddhism and the revival of meditation techniques, especially the "New Burmese Method" and the Thai Forest Tradition, as well as the modern influences[7] on the traditions of Sri LankaBurmaLaos and Thailand.

In the Vipassanā Movement, the emphasis is on the Satipatthana Sutta and the use of mindfulness to gain insight into the impermanence of the self. It argues that the development of strong samatha can be disadvantageous,[43] a stance for which the Vipassana Movement has been criticised, especially in Sri Lanka.[44][45] The "New Burmese Method" was developed by U Nārada (1868–1955), and popularised by Mahasi Sayadaw (1904-1982) and Nyanaponika Thera (1901–1994). Other influential Burmese proponents are Ledi Sayadaw and Mogok Sayadaw (who was less known to the West due to lack of International Mogok Centres); S. N. Goenka was a student of Sayagyi U Ba Khin. Influential Thai teachers are Ajahn Chah and Buddhadasa. A well-known Asian female teacher is Dipa Ma.

Vipassana meditation[edit]

Morality, mindfulness of breathing, and reflection[edit]

Vipassanā meditation uses sati (mindfulness) and samatha (calm), developed through practices such as anapanasati (mindfulness of breathing), combined with the contemplation of impermanence as observed in the bodily and mental changes, to gain insight into the true nature of this reality.[46][47]

Practice begins with the preparatory stage, the practice of sila, morality, giving up worldly thoughts and desires.[48][49] Jeff Wilson notes that morality is a quintessential element of Buddhist practice, and is also emphasized by the first generation of post-war western teachers. Yet, in the contemporary mindfulness movement, morality as an element of practice has been mostly discarded, 'mystifying' the origins of mindfulness.[48]

The practitioner then engages in anapanasati, mindfulness of breathing, which is described in the Satipatthana Sutta as going into the forest and sitting beneath a tree and then to simply watch the breath. If the breath is long, to notice that the breath is long, if the breath is short, to notice that the breath is short.[50][51] In the "New Burmese Method," the practitioner pays attention to any arising mental or physical phenomenon, engaging in vitarka, noting or naming physical and mental phenomena ("breathing, breathing"), without engaging the phenomenon with further conceptual thinking.[52][53] By noticing the arising of physical and mental phenomena, the meditator becomes aware how sense impressions arise from the contact between the senses and physical and mental phenomena,[52] as described in the five skandhas and paṭiccasamuppāda. According to Sayadaw U Pandita, awareness and observation of these sensations is de-coupled from any kind of physical response, which is intended to recondition one's impulsive responses to stimuli, becoming less likely to physically or emotionally overreact to the happenings of the world.[54]

The practitioner also becomes aware of the perpetual changes involved in breathing, and the arising and passing away of mindfulness.[55] This noticing is accompanied by reflections on causation and other Buddhist teachings, leading to insight into dukkhaanatta, and anicca.[56][55] When the three characteristics have been comprehended, reflection subdues, and the process of noticing accelerates, noting phenomena in general, without necessarily naming them.[57][46][47]

Stages of Jhana in the Vipassana movement[edit]

Vipassanā jhanas are stages that describe the development of samatha in vipassanā meditation practice as described in modern Burmese Vipassana meditation.[58] Mahasi Sayadaw's student Sayadaw U Pandita described the four vipassanā jhanas as follows:[59]

  1. The meditator first explores the body/mind connection as one, nonduality; discovering three characteristics. The first jhana consists in seeing these points and in the presence of vitarka and vicara. Phenomena reveal themselves as appearing and ceasing.
  2. In the second jhana, the practice seems effortless. Vitarka and vicara both disappear.
  3. In the third jhanapiti, the joy, disappears too: there is only happiness (sukha) and concentration.
  4. The fourth jhana arises, characterised by purity of mindfulness due to equanimity. The practice leads to direct knowledge. The comfort disappears because the dissolution of all phenomena is clearly visible. The practice will show every phenomenon as unstable, transient, disenchanting. The desire of freedom will take place.

Northern tradition and Mahāyāna[edit]

Texts[edit]

The north Indian Buddhist traditions like the Sarvastivada and the Sautrāntika practiced vipaśyanā meditation as outlined in texts like the Abhidharmakośakārikā of Vasubandhu and the Yogācārabhūmi-śāstra. The Abhidharmakośakārikā states that vipaśyanā is practiced once one has reached samadhi "absorption" by cultivating the four foundations of mindfulness (smṛtyupasthānas).[60] This is achieved, according to Vasubandhu,

[b]y considering the unique characteristics (svālakṣaṇa) and the general characteristics (sāmānyalakṣaṇā) of the body, sensation, the mind, and the dharmas.

"The unique characteristics" means its self nature (svabhāva).

"The general characteristics" signifies the fact that "All conditioned things are impermanent; all impure dharmas are suffering; and that all the dharmas are empty (śūnya) and not-self (anātmaka).[60]

Asanga's Abhidharma-samuccaya states that the practice of śamatha-vipaśyanā is a part of a Bodhisattva's path at the beginning, in the first "path of preparation" (sambhāramarga).[61]

The later Indian Mahayana scholastic tradition, as exemplified by Shantideva's Bodhisattvacaryāvatāra, saw śamatha as a necessary prerequisite to vipaśyanā and thus one needed to first begin with calm abiding meditation and then proceed to insight. In the Pañjikā commentary of Prajñākaramati (Wylieshes rab 'byung gnas blo gros) on the Bodhisattvacaryāvatāra, vipaśyanā is defined simply as "wisdom (prajñā) that has the nature of thorough knowledge of reality as it is.[62]

Sunyata[edit]

Mahāyāna vipaśyanā differs from the Theravada tradition in its strong emphasis on the meditation on emptiness (shunyata) of all phenomena. The Mahayana Akṣayamati-nirdeśa refers to vipaśyanā as seeing phenomena as they really are, that is, empty, without self, nonarisen, and without grasping. The Prajnaparamita sutra in 8,000 lines states that the practice of insight is the non-appropriation of any dharmas, including the five aggregates:

So too, a Bodhisattva coursing in perfect wisdom and developing as such, neither does nor even can stand in form, feeling, perception, impulse and consciousness...This concentrated insight of a Bodhisattva is called 'the non-appropriation of all dharmas'.[63]

Likewise the Prajnaparamita in 25,000 lines states that a Bodhisattva should know the nature of the five aggregates as well as all dharmas thus:

That form, etc. [feeling, perception, impulse and consciousness], which is like a dream, like an echo, a mock show, a mirage, a reflection of the moon in water, an apparition, that is neither bound nor freed. Even so form, etc., which is past, future, or present, is neither bound nor freed. And why? Because of the nonbeing-ness of form, etc. Even so form, etc., whether it be wholesome or unwholesome, defiled or undefiled, tainted or untainted, with or without outflows, worldly or supramundane, defiled or purified, is neither bound nor freed, on account of its non-beingness, its isolatedness, its quiet calm, its emptiness, signless-ness, wishless-ness, because it has not been brought together or produced. And that is true of all dharmas.[64]

Sudden insight[edit]

The Sthavira nikāya, one of the early Buddhist schools from which the Theravada-tradition originates, emphasized sudden insight: "In the Sthaviravada [...] progress in understanding comes all at once, 'insight' (abhisamaya) does not come 'gradually' (successively - anapurva).[65]"

The Mahāsāṃghika, another one of the early Buddhist schools, had the doctrine of ekakṣaṇacitta, "according to which a Buddha knows everything in a single thought-instant".[66][citation not found] This process however, meant to apply only to the Buddha and Peccaka buddhas. Lay people may have to experience various levels of insights to become fully enlightened.

The Mahayana tradition emphasizes prajñā, insight into śūnyatā, dharmatā, the two truths doctrine, clarity and emptiness, or bliss and emptiness:[67]

[T]he very title of a large corpus of early Mahayana literature, the Prajnaparamita, shows that to some extent the historian may extrapolate the trend to extol insight, prajna, at the expense of dispassion, viraga, the control of the emotions.[47]

Although Theravada and Mahayana are commonly understood as different streams of Buddhism, their practice however, may reflect emphasis on insight as a common denominator: "In practice and understanding Zen is actually very close to the Theravada Forest Tradition even though its language and teachings are heavily influenced by Taoism and Confucianism."[68][note 10]

The emphasis on insight is discernible in the emphasis in Chan Buddhism on sudden insight (subitism),[65] though in the Chan tradition, this insight is to be followed by gradual cultivation.[note 11]

East Asian Mahāyāna[edit]

In Chinese Buddhism, the works of Tiantai master Zhiyi (such as the Mohe Zhiguan, "Great śamatha-vipaśyanā") are some of the most influential texts which discuss vipaśyanā meditation from a Mahayana perspective. In this text, Zhiyi teaches the contemplation of the skandhasayatanasdhātus, the Kleshas, false views and several other elements.[70] Likewise the influential text called the Awakening of Faith in the Mahayana has a section on calm and insight meditation.[71] It states:

He who practices 'clear observation' should observe that all conditioned phenomena in the world are unstationary and are subject to instantaneous transformation and destruction; that all activities of the mind arise and are extinguished from moment or moment; and that, therefore, all of these induce suffering. He should observe that all that had been conceived in the past was as hazy as a dream, that all that is being conceived in the future will be like clouds that rise up suddenly. He should also observe that the physical existences of all living beings in the world are impure and that among these various filthy things there is not a single one that can be sought after with joy.[72]

The Zen tradition advocates the simultaneous practice of śamatha and vipaśyanā, and this is called the practice of silent illumination.[73] The classic Chan text known as the Platform Sutra states:

Calming is the essence of wisdom. And wisdom is the natural function of calming [i.e., prajñā and samādhi]. At the time of prajñā, samādhi exists in that. At the time of samādhi, prajñā exists in that. How is it that samādhi and prajñā are equivalent? It is like the light of the lamp. When the lamp exists, there is light. When there is no lamp, there is darkness. The lamp is the essence of light. The light is the natural function of the lamp. Although their names are different, in essence, they are fundamentally identical. The teaching of samādhi and prajñā is just like this.[73]

Tibetan Buddhism[edit]

Samatha and vipassana are explicitly referred to in Tibetan Buddhism. According to Thrangu Rinpoche, when shamatha and vipashyana are combined, as in the mainstream tradition Madhyamaka approach of ancestors like Shantideva and Kamalashila, through samatha disturbing emotions are abandoned, which thus facilitates vipashyana, "clear seeing." Vipashyana is cultivated through reasoning, logic and analysis in conjunction with Shamatha. In contrast, in the siddha tradition of the direct approach of Mahamudra and Dzogchenvipashyana is ascertained directly through looking into one's own mind. After this initial recognition of vipashyana, the steadiness of shamatha is developed within that recognition. According to Thrangu Rinpoche, it is however also common in the direct approach to first develop enough shamatha to serve as a basis for vipashyana.[74]

In Tibetan Buddhism, the classical practice of śamatha and vipaśyanā is strongly influenced by the Mahāyāna text called the Bhavanakrama of Indian master Kamalaśīla. Kamalaśīla defines vipaśyanā as "the discernment of reality" (bhūta-pratyavekṣā) and "accurately realizing the true nature of dharmas".[75]

Indian Mahāyāna Buddhism employed both deductive investigation (applying ideas to experience) and inductive investigation (drawing conclusions from direct experience) in the practice of vipaśyanā.[note 12][note 13] According to Leah Zahler, only the tradition of deductive analysis in vipaśyanā was transmitted to Tibet in the sūtrayāna context.[note 14]

In Tibet direct examination of moment-to-moment experience as a means of generating insight became exclusively associated with vajrayāna.[78][note 15][note 16]

Mahāmudrā and Dzogchen use vipaśyanā extensively. This includes some methods of the other traditions, but also their own specific approaches. They place a greater emphasis on meditation on symbolic images. Additionally in the Vajrayāna (tantric) path, the true nature of mind is pointed out by the guru, and this serves as a direct form of insight.[note 17]

See also[edit]

Notes[edit]

  1. ^ Thanissaro Bhikkhu: "If you look directly at the Pali discourses — the earliest extant sources for our knowledge of the Buddha's teachings — you'll find that although they do use the word samatha to mean tranquillity, and vipassanā to mean clear-seeing, they otherwise confirm none of the received wisdom about these terms. Only rarely do they make use of the word vipassanā — a sharp contrast to their frequent use of the word jhana. When they depict the Buddha telling his disciples to go meditate, they never quote him as saying "go do vipassanā," but always "go do jhana." And they never equate the word vipassanā with any mindfulness techniques."[12]
  2. ^ Thanissaro Bhikkhu: "This description of the unified role of samatha and vipassana is based upon the Buddha's meditation teachings as presented in the suttas (see "One Tool Among Many" by Thanissaro Bhikkhu). The Abhidhamma and the Commentaries, by contrast, state that samatha and vipassana are two distinct meditation paths (see, for example, The Jhanas in Theravada Buddhist Meditation by H. Gunaratana, ch. 5)."[13]
  3. ^ Original publication: Gombrich, Richard (2007), Religious Experience in Early Buddhism, OCHS Library
  4. ^ See, for example:

    AN 4.170 (Pali):
    “Yo hi koci, āvuso, bhikkhu vā bhikkhunī vā mama santike arahattappattiṁ byākaroti, sabbo so catūhi maggehi, etesaṁ vā aññatarena.
    Katamehi catūhi? Idha, āvuso, bhikkhu samathapubbaṅgamaṁ vipassanaṁ bhāveti[...]
    Puna caparaṁ, āvuso, bhikkhu vipassanāpubbaṅgamaṁ samathaṁ bhāveti[...]
    Puna caparaṁ, āvuso, bhikkhu samathavipassanaṁ yuganaddhaṁ bhāveti[...]
    Puna caparaṁ, āvuso, bhikkhuno dhammuddhaccaviggahitaṁ mānasaṁ hoti[...]
    English translation:
    Friends, whoever — monk or nun — declares the attainment of arahantship in my presence, they all do it by means of one or another of four paths. Which four?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 has developed insight preceded by tranquility. [...]
    Then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 has developed tranquillity preceded by insight. [...]
    Then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 has developed tranquillity in tandem with insight. [...]
    "Then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s mind has its restlessness concerning the Dhamma [Comm: the corruptions of insight] well under control.[24]

    AN 2.30 Vijja-bhagiya Sutta, A Share in Clear Knowing:
    "These two qualities have a share in clear knowing. Which two? Tranquility (samatha) & insight (vipassana).
    "When tranquility is developed, what purpose does it serve? The mind is developed. And when the mind is developed, what purpose does it serve? Passion is abandoned.
    "When insight is developed, what purpose does it serve? Discernment is developed. And when discernment is developed, what purpose does it serve? Ignorance is abandoned.
    "Defiled by passion, the mind is not released. Defiled by ignorance, discernment does not develop. Thus from the fading of passion is there awareness-release. From the fading of ignorance is there discernment-release."[25]

    SN 43.2 (Pali): "Katamo ca, bhikkhave, asaṅkhatagāmimaggo? Samatho ca vipassanā".[26] English translation: "And what, bhikkhus, is the path leading to the unconditioned? Serenity and insight."[27]
  5. ^ Brooks: "While many commentaries and translations of the Buddha's Discourses claim the Buddha taught two practice paths, one called "shamata" and the other called "vipassanā," there is in fact no place in the suttas where one can definitively claim that."[29]
  6. ^ According to Buddhadasa, the aim of mindfulness is to stop the arising of disturbing thoughts and emotions, which arise from sense-contact.[33]

    According to Grzegorz Polak, the four upassanā (foundations of mindfulness) have been misunderstood by the developing Buddhist tradition, including Theravada, to refer to four different foundations. According to Polak, the four upassanā do not refer to four different foundations, but to the awareness of four different aspects of raising mindfulness:[34]
    • the six sense-bases which one needs to be aware of (kāyānupassanā);
    • contemplation on vedanās, which arise with the contact between the senses and their objects (vedanānupassanā);
    • the altered states of mind to which this practice leads (cittānupassanā);
    • the development from the five hindrances to the seven factors of enlightenment (dhammānupassanā).
  7. ^ * Fronsdal: "The primary purpose for which Mahasi offered his form of vipassana practice is the attainment of the first of the four traditional Theravada levels of sainthood (that is, stream entry; sotapatti) through the realization of nibbana, or enlightenment."[35]
    * Robert Sharf: "In fact, contrary to the image propagated by twentieth-century apologists, the actual practice of what we would call meditation rarely played a major role in Buddhist monastic life. The ubiquitous notion of mappo or the "final degenerate age of the dharma" served to reinforce the notion that "enlightenment" was not in fact a viable goal for monks living in inauspicious times."[36]
    * Robert Sharf: "The initial "taste" of nibbana signals the attainment of sotapatti-the first of four levels of enlightenment-which renders the meditator a "noble person" (ariya-puggala) destined for release from the wheel of existence (samsara)in relatively short order."[37]
  8. ^ Various traditions disagree which techniques belong to which pole.[38]
  9. ^ While the Nikayas identify that the pursuit of vipassana can precede the pursuit of samatha, a fruitful vipassana-oriented practice must still be based upon the achievement of stabilizing "access concentration" (Pāli: upacara samādhi).
  10. ^ Khantipalo recommends the use of the kōan-like question "Who?" to penetrate "this not-self-nature of the five aggregates": "In Zen Buddhism this technique has been formulated in several koans, such as 'Who drags this corpse around?'"[69]
  11. ^ This "gradual training" is expressed in teachings as the Five Ranks of enlightenment, the Ten Bulls illustrations that detail the steps on the path, the "three mysterious gates" of Linji, and the "four ways of knowing" of Hakuin Ekaku.
  12. ^ Corresponding respectively to the "contemplative forms" and "experiential forms" in the Theravāda school described above
  13. ^ Leah Zahler: "The practice tradition suggested by the Treasury [Abhidharma-kośa] .. . — and also by Asaṅga's Grounds of Hearers — is one in which mindfulness of breathing becomes a basis for inductive reasoning on such topics as the five aggregates; as a result of such inductive reasoning, the meditator progresses through the Hearer paths of preparation, seeing, and meditation. It seems at least possible that both Vasubandhu and Asaṅga presented their respective versions of such a method, analogous to but different from modern Theravāda insight meditation, and that Gelukpa scholars were unable to reconstruct it in the absence of a practice tradition because of the great difference between this type of inductive meditative reasoning based on observation and the types of meditative reasoning using consequences (thal 'gyur, prasaanga) or syllogisms (sbyor ba, prayoga) with which Gelukpas were familiar. Thus, although Gelukpa scholars give detailed interpretations of the systems of breath meditation set forth in Vasubandu's and Asaṅga's texts, they may not fully account for the higher stages of breath meditation set forth in those texts [...] it appears that neither the Gelukpa textbook writers nor modern scholars such as Lati Rinpoche and Gendun Lodro were in a position to conclude that the first moment of the fifth stage of Vasubandhu's system of breath meditation coincides with the attainment of special insight and that, therefore, the first four stages must be a method for cultivating special insight [although this is clearly the case].[76]
  14. ^ This tradition is outlined by Kamalaśīla in his three Bhāvanākrama texts (particularly the second one), following in turn an approach described in the Laṅkāvatāra Sūtra.[77] One scholar describes his approach thus: "the overall picture painted by Kamalaśīla is that of a kind of serial alternation between observation and analysis that takes place entirely within the sphere of meditative concentration" in which the analysis portion consists of Madhyamaka reasonings.[77]
  15. ^ According to contemporary Tibetan scholar Thrangu Rinpoche the Vajrayana cultivates direct experience. Thrangu Rinpoche: "The approach in the sutras [...] is to develop a conceptual understanding of emptiness and gradually refine that understanding through meditation, which eventually produces a direct experience of emptiness [...] we are proceeding from a conceptual understanding produced by analysis and logical inference into a direct experience [...] this takes a great deal of time [...] we are essentially taking inferential reasoning as our method or as the path. There is an alternative [...] which the Buddha taught in the tantras [...] the primary difference between the sutra approach and the approach of Vajrayana (secret mantra or tantra) is that in the sutra approach, we take inferential reasoning as our path and in the Vajrayana approach, we take direct experience as our path. In the Vajrayana we are cultivating simple, direct experience or "looking." We do this primarily by simply looking directly at our own mind."[78]
  16. ^ Khenchen Thrangu Rinpoche also explains: "In general there are two kinds of meditation: the meditation of the paṇḍita who is a scholar and the nonanalytical meditation or direct meditation of the kusulu, or simple yogi. . . the analytical meditation of the paṇḍita occurs when somebody examines and analyzes something thoroughly until a very clear understanding of it is developed. . . The direct, nonanalytical meditation is called kusulu meditation in Sanskrit. This was translated as trömeh in Tibetan, which means "without complication" or being very simple without the analysis and learning of a great scholar. Instead, the mind is relaxed and without applying analysis so it just rests in its nature. In the sūtra tradition, there are some nonanalytic meditations, but mostly this tradition uses analytic meditation."[79]
  17. ^ Thrangu Rinpoche describes the approach using a guru: "In the Sūtra path one proceeds by examining and analyzing phenomena, using reasoning. One recognizes that all phenomena lack any true existence and that all appearances are merely interdependently related and are without any inherent nature. They are empty yet apparent, apparent yet empty. The path of Mahāmudrā is different in that one proceeds using the instructions concerning the nature of mind that are given by one's guru. This is called taking direct perception or direct experiences as the path. The fruition of śamatha is purity of mind, a mind undisturbed by false conception or emotional afflictions. The fruition of vipaśyanā is knowledge (prajnā) and pure wisdom (jñāna). Jñāna is called the wisdom of nature of phenomena and it comes about through the realization of the true nature of phenomena.[80]

References[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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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ernal links[edit]

History[edit]

Background[edit]

Practice[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