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5

Sung Deuk Oak [피터즈 통신 9] 변통론

(16) Facebook: Sung Deuk O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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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즈 통신 9]


밤새 무고하셨습니까?
서울에서 개역 성경을 마무리하고 있는 피터즈입니다. 두 번에 걸쳐 개역 성경(1938) 번역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인생이 고단하고 궁한 분이 많아서 먼저 변통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역>을 보면 인생사는 궁변통구의 순서로 흘러가지요. 사면초가와 같은 궁(窮)이 닥칠 때는 솟아날 구멍이 바로 변화입니다. 기존의 길에서 변화를 추구하다보면 통(break through)으로 나아갑니다.

  궁즉변, 변즉통을 줄이면 변통론이 되지요. 변통론이야 말로 중국과 한국의 오래된 지혜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쥐구멍에도 (벽을 헐면) 볕 들 날이 있다는 게 운명을 개척하는 변통론을 표현해 줍니다. 운명론적인 새옹지마와는 약간 다른 뜻이겠지요. 지난 날을 복기하면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치고 새로운 공간에서 새 일을 도모하기 바랍니다. 변화의 1차 대상은 나입니다.

제 인생에도 궁한 날이 많았습니다. 이전 편지에도 썼지만, 저는 열 두 살에 상인이었던 아버지 사업이 러시아인의 박해로 파산하고, 짐나지움에서 의대로 진학하려 했지만 인종차별로 포기하고 노동자가 되었으며, 22세에 이민 길에 올랐으나 직업을 구하지 못했지요. 1895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개종하고 권서가 되어 서울에 왔으나 한국도 청일전쟁 후라 살기가 팍팍했습니다. 1902년 미국에서 신학교를 마치고 한국에 오려고 했으나 사랑에 빠진 여인을 만나 결혼을 했기에 시민권 문제로 필리핀으로 가야했고, 새 언어인 스페인어를 배웠습니다.
 
2년 후 1904년에 다시 서울에 임명되었지만, 러일전쟁이 일어났고, 러시아인이라 한국에 있을 수 없어 아내와 미국으로 갔습니다. 1905년 서울에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아내 엘리자베스가 병에 결려 죽었습니다. 2년 후에 결혼한 에바 필드 의사와 행복하게 살았지만, 제가 1931년 개역성경 개역을 전담하여 서울에 온 후 1932년에 소천했습니다. 두 번에 걸친 상처(喪妻)는 제 인생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1934년 안식년으로 미국에 가서 평소 알고 지내던 앤 쿠퍼와 결혼하고 서울에 오려니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선교자금이 부족한 선교본부는 저를 파송할 뜻이 없었습니다. 겨우 독신 월급만 받는 조건으로 아내와 함께 서울에 왔지요.
 
그러나 저는 1897년에 시편을 번역한 이후, 오랫 동안 한국에서 사역하면서 한국어를 익히고 공부하면서 언제가 성경 번역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베어드 목사가 안식년 때 필라델피아에 가서 랍비에게 히브리어를 배우면서까지 완성하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제가 그 번역을 맡아 완성해야 할 사명감을 느끼고 1931년에 구약 개역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개역을 마치는 것이 소원이었으므로, 적은 월급으로 지난 여러 해 이 일에 매진해 왔습니다.
 
궁하지만 변하여 통합니다. 통은 막힌 자들과의 소통이요, 벽을 뚫어내는 것이요, 하던 일을 멈추지 않고 추진하여 새 세상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가치, 여러분이 가진 사명을 위해 7년, 20년 한결같이 밀고가면 통의 시간이 올 것입니다. 몇 달 바짝 하다가 실망하는 일은 실패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말이 통하는 세상, 숨을 쉬는 세상, 생각이 자유로이 흘러다니는 세상,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세상을 기대합니다.
 
또한 곤궁할 때는 기도할 때입니다. 시편 4장 1절입니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모세가 홍해 앞에서 사면초가가 되었을 때 그는 솟아날 구멍인 하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그때 바다가 열리고 육지와 같은 마른 길이 생기고 이끝에서 저끝으로 통했습니다.
저는 이제 성경 개역을 마무리하고 조용히 쉬면서 이 글을 씁니다. 주의 위로가 모두에게 넘치기를 빕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 9)
1938년 초에,
서울에서 피터즈 올림

추신, 제 개역 작업에 대해서는 옥성득, <대한성서공회 2>(1994)에 실린 다음 글을 읽어보세요. 그가 신학교 시절에 쓴 글이라 좀 거칠지만 개요는 알 수 있고, 개역 번역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그 책의 다른 부분을 보기 바랍니다. 구약 개역 번역 본문에 대해서는 다음 편지에 쓰겠습니다.

















54Paul Dongwon Goh and 5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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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에서 양역변통론 의 뜻은 무엇인가요?
 한국어 사전에서 양역변통론 의 정의

양역변통론 

조선 후기 민폐(民弊)의 제1차적 요인인 양역폐의 해소를 위해 양역제의 개선과 개혁을 주장하던 여러 논의의 총칭. 
효종 때 일부 관료에 의해 제기된 이래 숙종년간에 이르러서는 재야의 유생들까지 의견을 제시할 정도로 활발해졌고, 그 결과 마침내 1750년(영조 26) 균역법의 제정을 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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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역 
조선시대 양인(良人:양반계급을 제외한 일반 서민)이 국가에 대하여 부담한 의무[國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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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통 
대변이 나오는 것을 말하는데,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그 정상 회수에 대해서는 엄밀하게 한정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1일 1회가 많으며, 1일 1~2회 또는 2일에 1회라는 사람도 있다. 배변의 회수가 감소 또는 변량이 감소하기 때문에 불쾌감을 동반한 경우를 변비라고 하며, 변의 경도가 감소되는 것을 설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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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역법 은 조선 후기 군역을 대신하는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인 군역세법 개혁이다. 호당 군포를 부과한 것이 아니라, 토지 1결당 군포를 부과하여 지주들의 납세를 촉진시키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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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history.go.kr›data

아크로벳(pdf)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국사편찬위원회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1. 양역의 편성과 폐단 2. 양역변통론의 추이 3. 균역법의 시행과 그 의미 103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1. 양역의 편성과 폐단 1) 양역의 편성 조선 후기의 양역이란 전기의 군역에서 양반층이 빠져나감으로써 남게 된 일반 양인층만이 졌던 군역을 가리키며, 부담형태도 군사활동을 하는 立役보 다는 국가재정을 뒷받침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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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history.go.kr›front

2) 양역변통론의 대두 - 우리역사넷
양역변통논의는 대개 현종 말년부터 표면화된 것으로 말해진다. 인조 연간부터 계속된 중앙 軍門의 강화가 役摠(군역 부담자의 총숫자)의 증가를 수반하면서 진행되다가, 훈련도감의... 전자는 군제변통론의 형태로 현종 9∼10년경 山黨이란 정치세력에 의해 주장되지만 현종 초부터 먼저 논의된 것은 후자였다. 병조 재정의 주된 수입원은 후일 二軍色이라 불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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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ert.tistory.com

[조선] 9. 조선 후기 수취 체제의 개편 (영정법, 대동법, 양척동일법, 균역....
양역변통론 ]→ 농병일치론(유형원) 호포론(영조) - 논쟁만함 [ 균역법] → 영조 1년1필 균역청 → [호포법] 양반도 군포징수 환곡 [의창] → 무이자, 원곡부족 → [상평창] 1/10 이자... 양역 변통론의 대두 (1) 양역의 폐단으로 농민은 유망이나 피역으로 저항 (2) 양역변통론 1) 구전론 - 인구 단위로 돈을 징수 2) 유포론 - 무위도식하는 자에게 징수 3) 결포론 - 전결에서...
201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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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양역변통론의 전개 - 우리역사넷
그런데 위의 기록만으로는 그의 호포론이 양역제 자체의 철폐를 전제로 한 대변통론인지, 아니면 도고·아약징포의 탕감·감면으로 인한 부족 재정만을 확보하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그의 호포론에 대한 조정의 검토에서 그가 “물고·아약에서의 징포를 먼저 탕감하고 관청을 하나 세워서 호포법을 행하며 나아가 軍兵·公私賤의 제도까지 모두 변통할 것”을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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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2020.09.11.전한길한국사양역변통론 병농일치제
저는 양역변통론 주장은 유형원으로만 알고있었는데 지문 중 '성인 남자에게 2결의 토지를 나누어 주고 병농일치의 군대조직을 제안하였다.'가 맞는 지문으로 나오는데 양역변통론은 유형원이랑 홍대용도 주장하였나요??...
양역변통론과 역역을 토지에 부과군역폐단고ㅏ 양역변통론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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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2021.11.26.인터비즈(InterBiz)성군 영조도 실패한 조세 개혁.. 개혁은 왜 힘들까?ㅣ인터비즈
이 같은 군역의 폐단을 바로잡고자 등장한 것이 ‘양역변통론(良役變通論)’이다. 국가재정의 부족과 사회에 누적된 불만은 심각한 사태였다. 영조도 그 심각성을 인지했다. 어떤 면에서는 탕평책보다 더 심각한 안건이...5
#인터비즈#네이버비즈니스#비즈니스#경제#경영#영조#조선시대#리더십#조세#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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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2019.11.05.전한길한국사양역변통론을
양역변통론을 영조가 실시해보고 연구해보고자 양역사정청을 설치 한건가요? 그리고는 변통론 중 균역법을 확정한 뒤 시행하니깐 균역청을 설치햇고 양역사정청이 모테가 되고 이후에는 선혜청이랑 균역청이 통합되나요?
양역변통론유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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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정신과 원불교 4. 유교의 개혁운동과 원불교 [개혁정신과 원불교 [교리 [기사본문 - 원불교신문

개혁정신과 원불교 4. 유교의 개혁운동과 원불교 < 개혁정신과 원불교 < 교리 < 기사본문 - 원불교신문

개혁정신과 원불교 4. 유교의 개혁운동과 원불교

기자명 류성태 교무
입력 2020.07.23


류성태 교무

[원불교신문=류성태 교무] 정도전과 권근은 조선 건국의 개혁주의 사상가이다. 이들은 고려불교를 비판하고 유학을 국교로 삼고 개혁의 선봉에 섰다. 유교를 국가 개혁의 사상적 근간으로 삼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공을 세웠다. 불교를 극복하고 유교로의 전개는 건국 초기의 개혁이라는 이슈가 강력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뒤이어 조선 선조 때 율곡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바르게 파악하고 새롭게 변화하려는 변통론(變通論)과 사회모순을 개혁하는 경장론(更張論)을 주장했다.

시대의 구폐를 개혁하고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서 인정(仁政)과 삼강오륜의 이념에 근거한 개혁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그의 상소문 『만언봉사(萬言封事)』에서는 지시(知時), 시의(時宜)를 거론하며 개혁을 강조한 것이 이와 관련된다.


이처럼 조선의 개혁론으로서 변통론경장론 등은 후대의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지향하는 실학자들의 개혁정신으로 이어진다. 최한기, 이익, 정약용, 유형원이 그들이다. 이익은 이에 말한다. “법이 오래가면 폐해가 생기고, 폐해가 생기면 반드시 개혁이 있어야 한다.” 경장(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망할 것이라는 논리이며, 혹 실패를 한다고 해도 다시 경장해야 치국이 된다는 것이다. 최한기도 ‘새로운 것으로 낡은 것을 바꾸는’ 변혁의 중요성을 인지해 차라리 옛것을 버릴지언정 지금을 버릴 수는 없다는 진보정신을 표방했다. 정약용은 도탄에 빠진 민중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키도록 사회의 개혁의 경세론을 집대성했다.

근세 유교의 개혁론 중 돋보이는 것은 백암 박은식의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이다. 그는 불혹의 40세(1898)부터 망국의 52세 때에 심기일전해 사회 계몽운동가로 변신했다.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서 교육문화의 개혁운동을 추진했던 백암은 유교구신론을 통해 사변적인 성리학의 한계를 직시하고 심학인 양명학으로써 유교를 근대화하고자 하였다.

계몽적 애국운동가로서 박은식, 신채호, 정인보 등은 나라를 구하려는 유교개혁 운동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급변하던 시류 속에 개혁을 완수하지 못했다. 유교의 개혁운동은 실학자들의 열망에도 큰 성공을 이루지 못한 채 경술국치라는 암울한 역사에 매몰되고 말았다.

유교의 『변통론』, 『경장론』 『구신론』에서 못다 이룬 개혁의 꿈은 ‘개벽(開闢)’의 닻으로서 소태산의 『혁신론』, 정산의 『건국론』 태동의 마중물이었다. 국가와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변통(變通), 개혁하려는 경장(更張),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구신(求新)이 원불교의 선천을 마감하는 ‘개벽(開闢)’과 같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음은 흥미롭다.

조선유교의 개혁이슈들이 불교개혁의 소태산과 정산의 삼교 활용의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음이 주목된다. 유교의 개혁사상이 원불교 교법의 ‘사실적 도덕의 수행’, ‘실학적 교리’, ‘의례의 예전’에 용해되어 새 시대의 개혁운동으로서 응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있다. ‘주역’의 혁괘(革卦) 5효에서는 인간사의 대변혁에 또한 대인(大人)이 요청된다고 했으니, 원불교의 대인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주역’의 우환의식을 새기면서 원불교 미래의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는 개혁 프로그램의 실제적·실용적 대안을 제시하는 자일 것이다.

/원광대학교

[2020년 7월 24일자]




이이의 변통론

이이의 변통론

조선 전기 경세론과 불교비판

이이의 변통론

이이(李珥)는 사회 개혁의 문제와 관련하여 바꿀 수 있고 또 바꿔야 하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는 개혁에 있어서 근본적인 이념과 구체적인 실현 방법의 문제에 관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이는 우선 때에 맞게 법을 바꾸는 '변통'(變通)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변통'이란 말은 『주역』의 "역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 계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서 이를 도와서, 길하여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易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是以自天祐之, 吉無不利., 「계사 하」2]에서 연원하는데, 기존의 질서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 닥치면 변화시켜 통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이는 여기서 『주역』의 이러한 논리에 대한 정이의 언급을 인용하면서 변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법령과 제도는 바꿀 수 있지만 왕도(王道)와 인정(仁政)과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은 영원히 바꿀 수 없다고 함으로써, 변통의 내용 내지 대상을 법제에 한정시키고 유학의 근본 원리, 봉건적 윤리 질서는 바꿀 수 없다고 하여 변통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리는 두루 통하고 기는 국한된다는 이통기국론(理通氣局論)의 함의와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아래의 인용문은 1574년에 쓴 「만언봉사(萬言封事)」의 일부이다.

신의 생각으로는 정치는 때를 아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일은 실질적인 것에 힘쓰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정치를 하면서도 때에 알맞게 할 줄 모르고 일을 당하여 실질적인 결과에 힘쓰지 않는다면, 비록 성왕과 현신이 만난다 하더라도 다스림의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입니다. […] 이른바 때에 알맞게 한다는 것은 때에 따라 변통해서 법을 제정하여 백성을 구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이(程頤) 선생께서 『주역』에 대해 논하여 말하기를 "때를 알고 형세를 아는 것이 『주역』을 배우는 큰 방법이다."라고 하셨고, "때에 따라 변화하여 바꾸는[變易] 것이 바로 영원한 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법이란 시대에 따라 제정하는 것이어서 시대가 변하면 법도 같지 않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순(舜) 임금이 요(堯) 임금을 계승하였으니 당연히 다르게 할 것이 없어야 했을 터인데도 9주(州)를 나누어 12주로 만들었고, 우(禹) 임금이 순 임금을 계승하였으니 당연히 다르게 할 것이 없어야 했을 터인데도 12주를 바꾸어 9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성인들이 변화시켜 바꾸기를 좋아해서이겠습니까? 단지 때에 따른 것에 불과합니다. 예부터 후세에 이르는 수천 년 동안 역대의 다스려지고 어지러웠던 자취는 대체로 이와 같습니다만, 때를 따라 폐단을 잘 구제했던 것은 오직 하(夏)·은(殷)·주(周)의 삼대에서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삼대 이후로는 폐단을 구제했던 일이 본디 드물기도 하지만, 그 올바른 방법을 다하지도 못하였습니다. 대체로 때를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은 법령과 제도이며, 고금을 통하여 변해서는 안되는 것은 왕도(王道)와 인정(仁政)과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입니다. 후세에는 원리와 시행방법[道術]이 밝혀지지 못해서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을 고치고 바꾸는 때가 있었고 변할 수 있는 것을 굳게 지키는 때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잘 다스려지던 날은 언제나 적고 어지러운 날들이 언제나 많았던 이유입니다. (李珥, 『萬言封事』, 『율곡전서』 5-12ㄴ~14ㄴ)



연관목차

조선 전기 경세론과 불교비판 67/155

조선 전기 경세론과 불교비판
머리말
일러두기

제1부 조선 전기 경세론과 불교 비판 해제
Ⅰ. 조선 전기 경세론 해제
Ⅱ. 조선 전기 불교 비판 해제

제2부 조선 전기 경세론과 불교 비판 해설
1. 경세론
1.1. 총론
1.1.1. 김시습의 명분론
1.1.2. 송흠의 춘왕정월론
1.1.3. 양성지의 민본적 통치론
1.1.4. 양성지의 자주적 통치론
1.1.5. 권벌의 인정론
1.1.6. 조식의 민본사상
1.2. 정치론
1.2.1. 이곡의 정치론
1.2.2. 이첨의 정치론
1.2.3. 정도전의 정치론
1.2.4. 변계량의 정치론
1.2.5. 조광조의 정치론
1.2.6. 이이의 군권제한론
1.2.7. 정인지의 군주찬송가
1.3. 성학론
1.3.1. 이제현의 성학론
1.3.2. 성삼문의 성학론
1.3.3. 이석형의 성학론 1
1.3.4. 이석형의 성학론 2
1.3.5. 이황의 성학론
1.3.6. 이이의 성학론
1.4. 군신관계론
1.4.1. 신용개의 군신관계론
1.4.2. 강희맹의 군신관계론
1.4.3. 김정국의 군신관계론
1.4.4. 이이의 군신관계론
1.4.5. 윤상의 인재 등용론
1.4.6. 이이의 현자등용론
1.4.7. 이이의 군자등용론
1.4.8. 이이의 붕당론
1.5. 법제론
1.5.1. 총론
1.5.1.1. 신용개의 제도론
1.5.1.2. 남수문의 제도론
1.5.2. 토지 제도론
1.5.2.1. 조준의 토지 제도론
1.5.3. 부세 제도론
1.5.3.1. 이이의 공납제 개선안
1.5.4. 교육 제도론
1.5.4.1. 김반의 교육 제도 개혁안
1.5.4.2. 이제현의 유학 진흥 방안
1.5.4.3. 조광조의 유학 진흥 방안
1.5.4.4. 남수문의 교육론
1.5.4.5. 김안국의 교육론
1.5.4.6. 기준의 교육론
1.5.4.7. 신광한의 서원론
1.5.5. 간관론
1.5.5.1. 정도전의 간관론
1.5.5.2. 기준의 간관론
1.5.5.3. 이이의 국시론
1.5.6. 예악론
1.5.6.1. 성현의 음악론
1.5.6.2. 김수온의 예악론
1.5.7. 개혁론
1.5.7.1. 조광조의 개혁론
1.5.7.2. 김정국의 개혁론
1.5.7.3. 이이의 경장론
1.5.7.4. 이이의 변통론 지금 읽는 중
1.5.8. 상벌론
1.5.8.1. 조준의 상벌론
1.6. 대외 관계론
1.6.1. 신숙주의 외세 대응론
1.6.2. 남수문의 외세대응론
1.6.3. 조광조의 대외관계론
1.6.4. 변계량의 자주국가론
1.7. 재이론
1.7.1. 남효온의 재이론
1.7.2. 이색의 재이론
1.7.3. 최항의 천인감응론


2. 불교 비판
2.1. 정몽주의 불교 비판
2.1.1. 불교의 초월적 경향에 대한 비판
2.1.2. 불교의 반윤리성에 대한 비판
2.1.3. 불교의 마음관에 대한 비판
2.2. 정도전의 불교 비판
2.2.1. 유불도 삼교에 대한 종합적 인식
2.2.2. 불교의 심성론에 대한 비판
2.2.3. 불교의 자비에 대한 비판
2.2.4. 불교의 인과응보설에 대한 비판
2.2.5. 불교의 윤회설에 대한 비판
2.2.6. 유교와 불교의 종합적 비교
2.3. 여타의 불교 비판
2.3.1. 백문보의 불교 비판
2.3.2. 이색의 불교 비판
2.3.3. 하륜의 불교 비판
2.3.4. 정극인의 불교 비판
2.3.5. 양희지의 불교 비판
2.3.6. 서거정의 불교 비판
2.3.7. 박상의 불교 비판
2.4. 김수온의 불교 옹호론
2.4.1. 불교 옹호론
2.4.2. 유불 회통론
2.4.3. 불교 신앙 옹호론
2.4.4. 불교적 관점에 의거한 세계 인식
2.5. 절충조화론
2.5.1. 이곡의 절충론
2.5.2. 원천석의 삼교 일리론
2.5.3. 박팽년의 유불 조화론
2.5.4. 성현의 삼교 회통론
2.6. 권근의 불교관
2.6.1. 유불 조화론
2.6.2. 불교 비판
<부록> 조선 전기 인물 해제(가나다순)
(1) 강희맹
(2) 권근
(3) 권벌
(4) 기준
(5) 김반
(6) 김수온
(7) 김시습
(8) 김안국
(9) 김정국
(10) 남수문
(11) 남효온
(12) 박상
(13) 박팽년
(14) 백문보
(15) 변계량
(16) 서거정
(17) 성삼문
(18) 성현
(19) 송흠
(20) 신광한
(21) 신숙주
(22) 신용개
(23) 양성지
(24) 양희지
(25) 원천석
(26) 윤상
(27) 이곡
(28) 이색
(29) 이석형
(30) 이이
(31) 이제현
(32) 이첨
(33) 이황
(34) 정극인
(35) 정도전
(36) 정몽주
(37) 정인지
(38) 조광조
(39) 조식
(40) 조준
(41) 최항
(42) 하륜
참고문헌

출처

제공처 정보
조선 전기 경세론과 불교비판 2004.



저자 강중기


제공처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http://philinst.snu.ac.kr


[네이버 지식백과] 이이의 변통론 (조선 전기 경세론과 불교비판, 2004., 강중기)

궁(窮)하면 통(通)하리라! | 리더십 | DBR

궁(窮)하면 통(通)하리라! | 리더십 | DBR: ‘

궁(窮)하면통(通)하리라!
30호 (2009년 4월 Issue 1)

‘궁즉통(窮則通), 궁하면 통하리라.’ 요즘처럼 힘들고 어려운 경제 상
황에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메시지로 쓰이는 구절 가운데
하나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사용하고 있지만 대체로 2가지로 해석
된다.

첫 번째는 ‘세상은 힘들고 어려울수록 결국 통하게 돼 있다. 기다려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로 해석된다. 두 번째는 ‘어려울 때일수록 끝까지
파고들어 답을 찾자. 그러면 반드시 통하리라’는 뜻으로 쓰인다. 두 번
째의 궁(窮)은 ‘끝까지 궁구(窮究)해 답을 찾는다’는 뜻이다. 조금 자의
적인 해석이 가미되긴 했지만, 부지런히 노력하면 반드시 답을 찾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원문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 궁하면
(窮) 변하고(變), 변하면 통하고(通), 통하면 오래간다(久)는 뜻이다. ‘주역’은 변화에 대한 철학적 사유다. 세상은 변한다.

자연은 음양이 교차하고 춘하추동이 순환한다. 인간 세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변화에는 어떤 원리가 있다.
‘변화의 원리를 찾아내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하자’는 생각을 64괘(卦)와 384효(爻)의 범주를 통해 증명하려고 노력한 고대
인들의 결과물이 바로 ‘주역’이다. 그래서 ‘주역’은 미래 변화 예측이라는 측면에서 점서(占書)로도 해석되고, 변화에 대비
하는 인간의 절제와 겸양 및 수양에 대한 이론서로도 활용된다. 공자는 ‘주역’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위편삼절(韋編三絶),


Sung Deuk Oak Favourites [로마서 13:1]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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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3:1]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가?

1. 한국교회는 1901년 이후 1980년대까지 이 구절을 정부로부터 들었다.
1901년 고종의 대한제국 후기와 일제 강점기(1910~1945년)부터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절까지 집권자와 소위 보수적인 선교사와 목사들은 한결같이 로마서 13장 1-7절을 내세워 불의한 정권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니 복종하라고 가르쳤다. 그 구절과 함께 오용한 구절은 딤전 2:1-2, 벧후 2;13-17, 마태 17:24-27, 요한 18:36 등이었다. 곧 권력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에게 순종하고, 세금도 잘 내라는 말만 뽑아서, 시민으로서의 권리보다는 ‘신민’이나 ‘국민’으로서 정부에 복종할 의무만 강조했다. 특히 요한 18장 36절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나라와 상관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그리스도인의 현실 참여를 차단했다.
교회가 성경대로 살지 않으면 권세자들로부터 성경 해석까지 지도받게 된다.
2. 4.19 의거 참여 성서적 근거: 사도행전 4장 19절
그러나 마침내 1960년 4.19 때 한국교회는 사도행전 4장 19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당국자/종교 지도자]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라는 말씀을 가지고 불의한 정권과 지도자에 항거했다. 교회가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시민불복종 운동이 시작되었고, 어린 청년들의 값진 희생의 피가 뿌려져 결국 한국 민주주의가 꽃피었다.
3. 80년대 전두환 정권 경험으로
깨어 있는 시민과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서 13장을 계시록 13장과 함께 읽었다. 세상 정권이 선할 때 기독교인은 로마서 13장의 말씀대로 시민의 의무를 다해야 하지만, 불의할 때는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용(사탄)이 짐승에게 준 권력에 항거하고 대항하고 순교까지 한다. 즉 모든 권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다. 루터란이던 본회퍼도 두 왕국설을 적극 해석하여 바르멘 선언으로 히틀러 정권에 대항했다.
이처럼 때를 분별하는 것이 역사의식이다. 루터나 칼뱅까지 갈 필요가 없다. 현대사에서 한국 교회가 어떤 신앙고백으로 현실에 참여하고 체험으로 배웠는지 공부하면 된다. 로마서 13장은 ‘복종’이라고 쓰였지만, 평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책임적 참여함’으로 읽어야 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하는 모든 일, 곧 정치까지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덧) 지난 10년 간 정치가 오락가락하면서 기독교인끼리 서로를 향해 짐승이라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늘었다. 자제할 필요가 있다. 내가 보기에는 상당 부분 이단들의 계략에 말려든 면이 있다. 카톡 메시지 최초 생산자가 누구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SNS 가상공간에서 가짜뉴스를 분별하는 훈련을 받지 않은 60대 이상 취약층에서 카톡교가 형성된 배후에 누가 있는지 밝히는 연구가 있으면 좋겠다.
(덧) 동시에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한국교회에 절실하다. 6년 전 '언더우드 기도'가 가짜라고 상세히 논증했으나, 그 이후 그것을 취소하는 자들을 별로 보지 못했다. 교회가 미신적이라기보다는 문맹적이다. 교회 교인들의 평균 연령이 60세 정도이다. 아파트 소유자도 많지만 가짜뉴스에 취약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교회 목회자와 이단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