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4

천부경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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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천부경(天符經)》은 대종교의 경전 중 하나로, 1975년 교무회의에서 채택되었다. 현재는 환인(桓因)이 환웅(桓雄)에게 전하여 지금까지 내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917년경 최초의 등장 시에는 단군교의 경전이었다. 실제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17년으로 단군교(檀君敎)에서 처음으로 언급, 유포하기 시작하여 1920년경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 1921년 단군교의 기관지 《단탁》에 의해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대종교에서는 한참 후인 1975년이 되어서야 기본 경전으로 정식 채택하였다. 대종교에서는 단군 시기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이라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사학계에서는 위작이라 보고 있다는 관점이 있으나 이에 대한 드러난 합의는 없다.

전문 81자로, 난해한 숫자와 교리를 담고 있어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으나 현대 한국의 불교계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은 대체로 고대 한민족의 종교관, 우주관, 철학관을 담아 낸 것으로 고도의 종교성을 띄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전래 및 수용[편집]

《천부경》은 대종교의 중광(1909년)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천부경》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1917년 계연수가 단군교에 《천부경》을 발견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서부터이다. 편지에 따르면 계연수는 1916년 9월 9일 묘향산에서 수도하던 도중 석벽에서 《천부경》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동방의 현인 선진(仙眞) 최치원이 말하기를 단군(檀君)의 《천부경》 팔십일 자는 신지(神志)의 전문(篆文)인데 옛 비석에서 발견되었다. 그 글자를 해석해 보고 지금의 묘향산으로 추정되는 백산(白山)에 각을 해두었다 (라고 최치원은 말하였다). 나는 살펴보건대 최치원이 당나라에 가서 진사(進士)가 되었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신선이 되고 난 후 이 경문(經文)이 작년 정사년(丁巳年; 1917년)에 와서 처음으로 평안북도 영변(寧邊) 백산에서 출현하였다. 약초를 캐는 도인 계연수라는 분이 백산의 약초를 캐기 위해 깊은 골짜기까지 들어갔는데 석벽에서 이 글자를 발견하고 조사(照寫)했다고 한다. 나는 이미 《정신철학》을 편성하고 바야흐로 인쇄에 맡길 것을 계획하였을 때 우연히 유학자 윤효정으로부터 《천부경》을 구득하였는데 참으로 하늘이 주신 기이한 일이었다.

— 전병훈, 《정신철학통편》(1920년)[1][2]

1917년 단군교에서 공개한 이후 김용기, 강우 등의 일부 대종교 인사들이 관심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만주의 대종교 총본사는 《천부경》을 경전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해방 이후 윤세복이 귀국하여 대종교를 재건하였을 때에도 역시 《천부경》은 대종교의 경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윤세복의 사후 단군교 신자들이 대거 종단에 참여하게 되면서 단군교 계열의 경전들도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1975년에 이르러서야 대종교는 《천부경》과 《참전계경》을 정식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전문[편집]

전문은 총 81자이다.[3]

묘향산 석벽본, 태백일사본농은 유집본
원문독음원문독음

一始無始一
三極無盡本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一積十 鉅無匱
三天二 三地二 三人二
三大 合六 生七八九
三四 成環五 七一妙衍
萬往萬來 用變不動本
本心本 太陽昻明
人中天地一 一終無終一

일시무시일
삼극 무진본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일적십 거무궤
삼천이 삼지이 삼인이
삼대 합육 생칠팔구
삼사 성환오 칠일묘연
만왕만래 용변부동본
본심본 태양앙명
인중천지일 일종무종일

一始無始一
三極 無盡本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一積十鉅無匱
三天二 三地二 三人二
三大 合六 生七八九
三四 成環五 七一妙衍
萬往萬來 用變不動本
本心本 太陽昻明
人中天地一 一終無終一

일시무시일
삼극 무진본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일적십 거무궤
삼천이 삼지이 삼인이
삼대합육 생칠팔구
삼사 성환오 칠일묘연
만왕만래 용변부동본
본심본 태양앙명
인중천지일 일종무종일

판본[편집]

재야사학자인 송호수는 천부경의 여러 판본이 전해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  묘향산 석벽본
계연수가 1916년 발견하여 1917년 단군교에 보냈다는 판본으로, 계연수는 최치원이 석벽에 새겨놓은 것이라 주장하였다. 현재 여러 천부경의 원본으로 보인다.

대한제국이 망한 7년(정사년; 1917년평안도 사람 계연수가 태백산에 약을 캐러 갔다가 신라학사 최치원이 절벽에 갈아 새긴 《천부경》이란 것을 보았으니, 아마도 단군의 신하인 신지(神志)가 전서(篆書)로 비에다가 경을 새겨 두고서 단군의 탄생지에 세워두었던 것이었는데 최치원이 잡힐까 두려워 그 에 도망해 들어갔다가 이를 해서로 풀어서 다시 새긴 것인 듯하다. 계연수가 이를 이상하게 여겨 탁본해가지고 돌아와서 세상에 전했으니, …[4]

— 김택영(金澤榮), 《소호당전집》(1922년)
  •  최고운 사적본
김용기가 1925년에 쓴 《단전요의(檀典要義)》에 소개된 것으로, 최국술이 《최문창후전집(崔文昌候全集)》에 실은 천부경의 출전으로 기재되어 있다.
  •  최문창후전집본
최국술이 1925년에 쓴 《최문창후전집(崔文昌候全集)》[5]에 출처를 《단전요의(檀典要義)》라고 기재한 천부경이 실려있다.
  •  노사 전비문본
김형택이 1957년에 쓴 《단군철학석의(檀君哲學釋義)》에 소개된 것으로, 1920년경 습득한 것이라고 한다.
  •  태백일사본
이유립이 1979년에 공개한 《환단고기》에 실린 천부경으로, 최치원의 (帖)으로 세상에 전하는 것을 1911년 계연수가 적어넣었다고 한다.

《천부경(天符經)》은 천제(天帝) 환국(桓國) 구전(口傳)의 서(書)다. 환웅대성존(桓雄大聖尊)께서 천강(天降)한 후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으로써 그것을 썼다. 최고운 치원(崔孤雲致遠)이 또한 일찍이 전고비(篆古碑)를 보고 갱부작(更復作帖)하여 세상에 전한 것이다.[6]

— 이맥(李陌), 《태백일사
  •  농은유집본
민홍규가 2000년에 《뉴스피플》에 기고하면서 알려진 것으로, 민안부(閔安富)의 유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특이사항으로는 일반 천부경이 아닌 갑골문으로 된 천부경이라고 주장하였다.[7] 하지만 이 천부경의 갑골문은 실제 갑골문과 전혀 다른 위작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8]

비판[편집]

역사를 연구하려면 사적 재료의 수집도 필요하거니와 그 재료에 대한 선택이 더욱 필요한지라. 고물이 산같이 쌓였을지라도 고물에 대한 학식이 없으면 일본의 寛永通寶(관영통보)가 箕子(기자)의 유물도 되며, 십만책의 藏書婁(장서루) 속에서 坐臥(좌와)할지라도 서적의 진위와 그 내용의 가치를 판정할 안목이 없으면 후인 위조의 《천부경》 등도 단군왕검의 성언이 되는 것이다.

— 신채호, 《조선사연구초》, 조선도서주식회사, 1929년[9]

우리나라는 고대에 진귀한 책을 태워버린 때(이조 太宗의 焚書같은)는 있었으나 위서를 조작한 일은 별로 없었으므로, 근래에 와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등이 처음 출현하였으나 누구의 변박(辨駁)도 없이 고서로 인정하는 이가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책은 각 씨족의 족보 가운데 그 조상의 일을 혹 위조한 것이 있는 이외에는 그다지 진위의 변별에 애쓸 필요가 없거니와, 우리와 이웃해 있는 지나. 일본 두 나라는 예로부터 교제가 빈번함을 따라서 우리 역사에 참고될 책이 적지 않지마는 위서 많기로는 지나 같은 나라가 없을 것이니, 위서를 분간하지 못하면 인용하지 않을 기록을 우리 역사에 인용하는 착오를 저지르기 쉽다.

— 신채호, 《조선상고사》, 종로서원, 1948
  • 단재 신채호는 천부경을 두고 후인이 위조한 것이라 위와 같이 단언하였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위의 언급은 “《천부경》이 위작이 아니라 말한 것”이라고 주장[10]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11]
  • 환단고기(桓檀古記)》의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는 《천부경》이 실려 있다. 그런데 《환단고기》에 《천부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단군교 《천부경》에 따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환단고기》의 저자인 계연수는 1911년에 《환단고기》를 썼다. 그런데 단군교에 보낸 편지에 따르면, 계연수가 《천부경》을 처음 발견한 때는 1916년이다. 그러므로 계연수는 《환단고기》에 자신이 직접 적어 넣었던 《천부경》을 5년 후에 처음 발견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 단군교는 원래 나철이 음력 1월 15일에 중광한 종교로서 항일운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10년에 일제에 조선이 병합되기 직전 나철은 대종교로 이름을 바꾸고 만주로 나가 일제와 대립하였다. 이때 이러한 나철의 노선에 반발하였던 정훈모는 수하의 친일파들과 함께 조선에 남아 단군교의 이름을 고수하며 새 종단을 세웠다. 이로써 일제에 대항하는 민족종교인 대종교와 일제의 통치에 순응하는 친일 교단인 단군교가 분리·양립하게 되었다. 현재 최초의 출전으로 지목되는 전병훈의 저서 《정신철학통편》(1920) 에 《천부경》을 전한 윤효정은 당시 단군교의 대선사로 활동하고 있었고, 천부경의 유래를 밝힌 <계연수기서> 에 따르면 계연수는 "《천부경》을 발견, 서울의 단군교당에 전했다"고 하는데, 여기의 단군교당이란 바로 정훈모의 단군교를 말하는 것이다. 더하여 《정신철학통편》에 기재된 《천부경》의 유래는 단군교가 주장한 것과 같은 것으로, 결국 원 출전은 단군교인 것이 확실한 것으로 판단된다.[12]

주해서[편집]

  • 김택영(金澤榮), 《소호당전집》, 1922년[13]
  • 계연수, 《천부경요해발(天符經要解跋)》, 1899년[14]
  • 단해(檀海) 이관집(李觀楫), 《천부경직해(天符經直解)》
  • 이유립, 《천부경요해(天符經要解)》, 1953년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정신철학통편》, 윤창대 주해, 우리출판사, 2004년
  2.  현존하는 책 중 '천부경'의 내용에 대해 최초로 거론한 책이다. 천부경의 발견된 경위를 밝혔다.
  3.  판본 사이에서 다른 부분은 굵은 글씨체로 표시
  4.  단군 천부경의 초기주석 연구, 김주진(金洙眞),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2005년
  5.  최치원의 후손인 최국술이 집안에 전해졌다고 주장하는 최치원의 글들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6.  《주해[환단고기]》, 김은수 번역·주해, 가나출판사, 1985년
  7.  이를 전해받은 사람 역시 송호수다.
  8.  문영, 《만들어진 한국사》, 파란미디어, 2010
  9.  1924년에서 1925년까지 발표한 6편의 논문을 모은 것으로, 신채호가 '천부경'에 대해 최초로 거론한 책이다.
  10.  박성수, 국학연구원 제 6회 학술대회 "천부경의 철학과 역사적 재해석" 기조연설
  11.  문영, 《만들어진 한국사》, 파란미디어, 2010
  12.  삿사 미츠아키, 〈한말·일제시대 단군신앙운동의 전개 : 대종교·단군교의 활동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3
  13.  金洙眞, 단군 천부경의 초기주석 연구,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2005년
  14.  윤창대 주해, 《정신철학통편》, 우리출판사, 2004년

참고 문헌[편집]

외부 링크[편집]

천부경(天符經)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부경(天符經)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부경 (天符經)

대종교 문헌 
대종교(大倧敎)에서 신성시하는 기본 경전으로 우주창조의 이치를 81자로 풀이하고 있음.

HD 환단고기 북콘서트 - 천부경, 인류원형문화를 열다

HD 환단고기 북콘서트 - 천부경, 인류원형문화를 열다


환단고기 콘서트 영상


HD 환단고기 북콘서트 - 천부경, 인류원형문화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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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https://www.youtube.com/watch?v=vzL6vb8h73s10 https://www.youtube.com/watch?v=Lrp2_Lc6IUs




HD 환단고기 북콘서트 - 천부경, 인류원형문화를 열다


천부경은 인류 제일의 진리 원전, 우주 조화사상의 원류
道紀 148. 5. 31(목), 세계환단학회, 서울역사박물관 야주개홀
결론은 동북아 역사문화 주도권 대전쟁이고 인류의 시원 창세 역사, 원형문화를 복원하는 새로운 전쟁입니다. 이것을 동력원으로 하여 앞으로 남북 통일시대를 넘어 지구촌 동서 통일 문명권 시대, 즉 개벽시대를 맞이합니다.

오늘 살펴볼 「천부경」은 ‘우주 수학의 원전’이고, ‘우주 신학의 원전’이며 동서의 종교, 과학, 철학사상의 ‘인류 문화 원전’입니다. 우리 인간과 우주의 존재 근원, 그 진리의 근원을 밝혀주는 말씀을 기록한 경전이고 하늘의 영원한 이법을 드러내는 경전이며, 이 하늘과 땅을 노래한 진리 원전입니다. 「천부경」을 보통 상경上經, 중경中經, 하경下經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상경 내용 중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석삼극무진본析三極無盡本’은 우주 창조의 근본 본체인 ‘하나’는 시작인데 그것은 창조의 시원 본체인 ‘무’에서 비롯된 하나다. 그리고 하나가 갈라져서 우주의 현실적인 3대 궁극자인 ‘삼극三極’, 곧 하늘과 땅과 인간이 나타났는데 그렇게 나눠져 있는 삼극의 바탕은 다함이 없다는 우주 생명의 영원성, 항존성을 나타냅니다.

그 다음에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은 하늘과 땅과 인간의 존재 정신을 정의하는 것인데, 하늘은 양의 근원으로서 일이요, 어머니 땅은 음의 근원으로서 이이며, 사람은 천지와 합일 되어서 우주의 꿈을 완성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삼입니다. 이 삼극의 변화 모습이 ‘일적십거一積十鉅 무궤화삼無櫃化三’인데, 하나의 기운 ‘일’이 축적되고 쌓이는 선천 변화를 거쳐서 ‘십’으로 커지고 열리는 후천 변화를 한다는 겁니다.

중경에서 ‘천이삼天二三 지이삼地二三 인이삼人二三’은 삼대 궁극자에 대한 정의로서 하늘도 땅도 인간도 음양운동(二) 3수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대삼합육大三合六 생칠팔구生七八九’는 우주의 궁극자 하늘과 땅과 인간이 삼합을 하면, 육이 되고, 이 ‘육’을 근본으로 해서 ‘칠팔구’가 생한다는 것입니다. ‘운삼사運三四 성환오칠成環五七’은 ‘하늘과 땅과 인간이 삼과 사의 구성원리로 운행되는데, 그 순환운동에 대한 수가 ‘오칠’이라는 것입니다. 크게 보면 이것은 오행과 칠성으로 우주의 순환 체계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하경에서 ‘일묘연一玅衍 만왕만래萬往萬來 용변부동본用變不動本’은 이 ‘하나’가 현상세계에서 오묘히 확장되고 발전해서 수없이 오고가도 작용이 변해서 부동의 근본, 우주의 진리 본체 세계로 화해 버린다는 겁니다.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 앙명昻明’은 근본은 마음인데 태양의 광명에 근본해서 앙명, 한없이 밝다는 것이고,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은 사람이 천지의 중심을 관통해서, 천지를 꿰뚫어서 궁극의 하나가 되는 것인데 이게 태일이에요. 마지막 구절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은, 하나는 마침이며 그 하나는 무에서 끝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상경은 ‘삼극’이 핵심이고, 중경은 ‘삼합’이 핵심인데, 이 ‘삼극’이라는 게 천일 지일 태일입니다. 그리고 하경에서 말하는 선천에서 후천으로 넘어가는 이 우주의 새로운 탄생이 ‘용변부동본用變不動本’입니다.

오늘 말씀을 전체적으로 정리하면 우주의 진리의 주제, 도통과 기도, 깨달음과 역사의 근본 주제는 하늘과 땅, 그리고 바로 그 꿈의 주인공 우리 인간에 대해서 깨닫는 ‘삼극’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삼극은 ‘삼합’을 통해서 영원히, 새롭게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인생 공부, 수도, 기도 공부, 진리 공부라는 것은 삼합입니다. 천지부모와 내가 진짜 삼합이 되어 가고 있는가? 이것이 진정한 서양의 삼위일체 문화의 원형사상인 것입니다.

우주와 나의 문제를 성찰하기 시작한 것이 ‘다시 개벽’을 외친 근현대사 출발점 동학입니다. 이 ‘다시 개벽’을 참동학 증산도에서 후천개벽 사상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천부경」이 ‘제일의 인류 시원문화 원전’인데, ‘일적십거’에서 궁극적으로는 우주의 성부 아버지가 오십니다. 동학에서 말하는 천주를 만나고 천주를 모심으로써, 우주의 열매 진리가 나옵니다. 그 책이 바로 지난 백 년 역사에 걸쳐서 나온 『도전道典』입니다. 『도전』은 ‘가을 우주의 제일 경전’입니다.

「천부경」은 ‘우주의 조화사상 원류’이고, ‘동서의 정치 또는 역사문화 원형문화의 원전’입니다. 또 ‘유·불·선 모든 종교사상의 제1의 원전’이고, ‘우주의 지존자, 우주 통치자 아버지 하나님의 계시록’입니다. 또한 앞으로 십무극 시대, 대우주 조화 인존시대가 열린다는 미래 경전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지구촌 동서문화 시원사상 경전


오늘 주중에 하루 종일, 잃어버린 우리 시원 역사 문화정신을 복원하는 데 함께해 주신 데 대해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오늘 소중한 연구 결과를 내주신 모든 분들과 함께 감동하고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우리의 역사 전적들을 다시 한 번 깨어나서 꼼꼼히 챙겨보게 되었습니다.

동서고금의 역사, 문화, 철학, 소중한 성자들의 말씀, 종교, 그 속에 담겨 있는 창조관, 인간관, 세계관 이런 모든 가르침의 원본, 문화의 원본이 『환단고기』입니다. 『환단고기』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문화 원전 의미가 복합돼 있다고 봅니다.

오늘 준비한 것은 많지만, 그 골수만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결론은 역사전쟁입니다. 동북아 역사문화 주도권 대전쟁입니다. 인류의 시원 창세 역사, 원형문화를 복원하는 새로운 전쟁입니다. 이것을 동력원으로 하여 앞으로 남북 통일시대를 넘어 지구촌 동서 통일 문명권 시대, 즉 개벽시대를 맞이합니다.

공공철학公共哲學을 전공하신 충북대학교 김태창金泰昌(1934~ ) 명예교수님이 「어느 철학자의 부끄러운 이야기」라는 글에서, 자신이 국내는 물론 해외를 다니면서 학문 활동을 해보면 철학의 빈곤을 아주 뼈저리게 절감하고, 참담한 심정에 빠질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유명한 서울대 철학과 박종홍朴鍾鴻(1903~1976) 교수가 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1889~1976)의 초청을 받았을 때 있었던 일화를, 어떤 신부님의 회고담에서 읽었다면서 소개했습니다.

평생을 ‘존재Sein’를 화두로 해서 인류의 밝은 정신의 빛을 복원하려 한 하이데거가 그때 박종홍 교수에게 뭐라고 했는가? ‘나는 중국철학도 좀 들어봤고 일본철학도 들어봤다. 그런데 한국철학은 근원철학radical philosophy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한 문서가 「천부경」이라 하더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천부경」을 직접 내놓고 ‘이것을 좀 해석해 달라’고 했는데, 박종홍 교수는 서양철학만 공부하고 한국의 시원 역사와 철학 공부를 제대로 안 했기 때문에 해석해 주지 못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인구에 회자하는데, 하이데거가 과연 「천부경」을 읽었는가? 저 유명한 20세기의 대표적인 하이데거 대철인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무사상無思想을 실제로 「천부경」에서 가져왔습니다. 「천부경」은 이미 20세기 초엽에 서양에 건너가서 유럽문화 정신사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것입니다.



「천부경」은 우주 진리 경전


그러면 「천부경」은 어떤 경전인지, 세 가지로 간단히 정리를 해 봤는데요.

첫째로 「천부경」은 ‘우주 수학 원전’입니다. 인간과 우주의 수수께끼를 수로써 정의한 거예요. 1에서 10까지 열 개의 숫자를 가지고 진리를 정의한단 말입니다. 이 얼마나 신나고 놀랍고, 진리를 탐구하는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가? 열 개의 숫자로써 그동안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진리의 근본 명제, 새로운 희망의 세계를 향하는 근대사의 진리 중심 주제 ‘개벽’에 대해서 이미 약 1만 년 전에 인류문화 원전 「천부경」에서 놀랍게 정의를 한 것입니다. 대개 한 글자 내지 두 글자, 많아야 네 글자로 너무도 간명하게 되어 있는데, 우리가 암송을 하면서 어느 날 「천부경」의 그 진리 맛을 제대로 알면 나름대로 크게 느끼는 정서가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우주 신학 원전’입니다.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 신을 삼신이라 한 것은, 신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 철학적이며, 종교적이고 구도적이며, 신의 실상에 어울리는 명쾌한 정의라고 봅니다. 여기서 삼신을 우주관의 언어로, 삼극사상三極思想으로 전개하는데, 이건 정말로 놀라운 거예요.

셋째로 「천부경」은 동서의 종교, 과학, 철학사상의 ‘인류 문화 원전’입니다.

「천부경」의 전수 내력


「천부경」은 일찍이 동서 문화의 고향인 환국에서부터 입을 통해서 전해 내려왔다는 말이 있습니다. ‘환국구전지서桓國口傳之書’라 했으니, 그때도 어떤 형태이든 언어가 있었을 겁니다. 아마 환국의 시원언어를, 그 당시 살던 인류의 조상들이 천상에 다 있으니까 앞으로 채널링 같은 것으로 그 조상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복원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 후에 환국 문명이 동서 문명으로 분화되던 6천 년 전에 커발환 시조 환웅께서 동방 태백산에 오셨는데, 그때 역사를 기록하는 문자 담당 사관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사슴 발자국을 보고 만들었다는 문자, 녹도문鹿圖文으로 이것을 기록했습니다. 그 뒤 신라 때 최고운崔孤雲(857~?)이 이것을 찾아서 한문으로 기록을 했어요. 묘향산 바위에 새겨진 것을, 20세기 초엽에 운초雲樵 계연수桂延壽(1864~1920) 선생이 약초 캐러 산에 들어가서 기적적으로 발견하여 탁본을 떴다고 합니다. 그 사연을 적은 편지 내용이 있어요.

그리고 단군조선 시대 때 제왕들이 봄가을에 천지의 원 주인이신 아버지 천주님에게, 『환단고기』에서는 삼신상제님이라 하는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에게 천제를 올리고 나서 온 백성들과 더불어서 술 마시고 노래했는데, 그때 11세 도해道奚 단군이 ‘논경연고論經演誥’ 즉 「천부경」을 논하고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강론하셨다는 기록이 『단군세기』에 있습니다.

그 뒤 고구려 때 「천부경」의 핵심 사상이 들어 있는 ‘다물흥방지가多勿興邦之歌’를 불렀고, 대진大震 소위 발해라는 나라에서 4세 문황제文皇帝가 태학太學을 세워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가르치게 하셨어요. 신라 때 박제상朴堤上(363~419) 은 『징심록澄心錄』에서 「천부경」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고려 말에 이색李穡(1328~1396)과 범세동范世東(1342~1396)이 각기 「천부경」 주해서를 썼어요. 또 최영崔瑩(1316~1388) 장군이 행촌杏村 이암李嵒(1297~1364)에게 ‘천부와 인’이 무엇인지 물었다는 내용이 『태백진훈太白眞訓』에 있는데, 이암이 무인시대를 종결시킨 류경柳璥(1211~1289)이라는 분의 가장구전家臟舊傳을 인용하면서 천부와 인을 설명했어요. 여기서 「천부경」에 대해 정의한 대목이 아주 재미가 있습니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 정조正祖(1752~1800) 임금이 천제를 올릴 때 이 「천부경」을 언급합니다. 또 서양의 노스트라다무스에 비견되는 세기적인 영능력자로 유명한 남사고南師古(1435~1493)도 「천부경」을 진경眞經이라고 했어요. ‘진리 자체를 담고 있는, 진리의 원형 경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김시습金時習(1435~1493)은 ‘천부지리天符之理’, ‘천부지법天符之法’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습니다.

조선 후반으로 넘어와서 『환단고기』를 책으로 묶는 준비를 하면서 운초 계연수가 「천부경」에 대한 주해서를 내고, 20세기 넘어와서 여러 분들이 여기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하이데거는 「천부경」을 가지고 자기 사상의 근본 주제, 무사상無思想을 심화시켰습니다. 이 우주의 진리 원액, 우주 진리의 바다에서 대우주의 존재의 근원을 추구한 무사상을 가져왔어요. 1920년대에는 「천부경」을 세계화한 조선의 인물이 있었습니다. 1907년, 50세 때 중국에 망명한 저 유명한 전병훈全秉薰(1857~1927)이라는 도인입니다. 이분은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벼슬을 지냈는데, 중국에서 원세개袁世凱, 여원홍黎元洪 총통이 성인으로 추앙했어요. 원세개의 아들 원극정元克定도 ‘조선에 이런 거유巨儒가 있었나?’ 하고 찬탄했습니다.

전병훈은 광동성 나부산羅浮山에 있는 아주 유명한 신비의 도인 고공섬古空蟾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고, 『도장道藏』 2천 권을 가지고 산에 들어가서 공부하면서 수행을 했습니다. 신선 공부를 하며 한 소식을 듣고 나와서 『도진수언道眞粹言』(1919) 열 권을 짓고, 「천부경」이 발굴됐다는 말을 들었어요. 아마 계연수 선생의 『환단고기』를 전병훈이라는 철인, 도인이 직접, 간접으로 접한 것도 같은데, 당시 『정신철학통편精神哲學通編』(1920)을 인쇄할 것을 중단하고 「천부경」을 책 서두에다 넣었어요. 전병훈은 이 책을 29개국 150개 대학에 보냈습니다. 『정신철학통편』은 시원 사상을 담은 「천부경」을 머리에다 놓고 유·불·선뿐만 아니라 서양 철학사상사까지 정리한 책입니다.

그런데 유명한 독일 선교사 리하르트 빌헬름Richard Wilhelm(1873~1930)이 당시대에 중국에 와 있었는데, 중국어에 정통해서 주역을 번역했어요. 이 번역이 아주 잘됐고 책이 영어로도 나왔습니다. 또 여동빈呂洞賓 신선의 책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도 아주 잘 번역했는데, 칼 융Carl Gustav Jung(1875~1961)이 해설한 내용을 자기 나름대로 요약해서 이 책 뒤에 붙였어요. 리하르트 빌헬름은 귀국했다가 1920년대에 다시 북경에 와서 『정신철학통편』 속의 「천부경」과 놀라운 내용을 읽고 독일 정신철학계와 지인들에게 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칼 융이라든지 하이데거 이런 사람들이 젊은 시절에 「천부경」을 분명히 접했을 것으로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데거 대철인이 박종홍 교수에게 「천부경」을 내놓고, ‘당신이 한국의 유명한 철인이라 하시니 이걸 좀 해석해 주세요’라는 말을 했던 겁니다.



「천부경」 연구 현황


지금 우리 학계에서 「천부경」을 연구한 결과로 단행본이 130여 종 나왔고, 학술논문이 한 2백 편 나왔어요. 그리고 석박사 논문은 한 80편 정도 됩니다.

중국이나 일본 이런 해외에서도 여러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어요. 실제 제가 뉴욕에서 ‘환단고기 북 콘서트’를 끝내고서 나오니까, 거기서 영어로 밥 먹고 사는 사람과, 「천부경」을 가지고 책자를 세 권 쓴 분이 왔길래 책을 선물로 주니 아주 좋아했어요. 「천부경」을 숨겨놓거나 가슴 속에다 깊이 새기면서 공부하는 이들이 사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봅니다.

우리 한국 역사학계가 시원 역사를 싹 부정하기 때문에, 「천부경」의 출처가 잘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동서양의 대철인들이 ‘나는 「천부경」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고 지금 이 순간도 자랑스럽게, 떳떳하게 학계에 말하지 못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천부경」은 어떤 경전인가


「천부경」은 실제 어떤 경전인가? 작년 올해, 우리 연구소에서 원어민들과 함께 「천부경」을 해독하고 제가 강독하면서 번역을 주관해서 오늘 나눠 드렸어요. 나눠 드린 카탈로그 가지고 계시죠? 「천부경」을 ‘The Scripture of Heavenly Code’라고 번역했어요. 천부天符는 하늘 천天, 부적이라는 부符 자를 썼는데, ‘부’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간 세상에서 쓰지 않는 마치 암호 같은 부호sign language입니다. 이 「천부경」은 우리 인간과 우주의 존재 근원, 그 진리의 근원을 밝혀주는 말씀을 기록한 경전입니다.

주위에리朱越利(1944~ ) 중국 사천대학교 교수가 천부의 뜻을 한 열 가지로 정리했어요. 「천부경」에서 ‘천부’는 ‘제왕의 명령 또는 실제 천상에 있는 천주님, 천주 아버지, 우주 절대자의 명령’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 ‘천도天道, 천의天意’라는 기막힌 뜻이 있고, ‘천성天性’ 즉 하늘의 본성, 하늘의 본래 마음이라는 뜻도 있어요.

그래서 「천부경」은 하늘의 법칙, 하늘의 영원한 이법을 드러내는 경전입니다. 「천부경」은 그냥 순수한 진리의 마음이 되고, 진리의 정서에 동화되고, 하늘과 땅과 하나가 되는, 이 하늘과 땅을 노래한 진리 원전입니다. 「천부경」을 보통 상경上經, 중경中經, 하경下經으로 나누는데, 어떤 이들은 천경天經, 지경地經, 인경人經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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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에 상경-중경-하경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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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세밀하게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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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희 - 디지털진천문화대전

조명희 - 디지털진천문화대전

조명희
포석 조명희 문학비

한자 趙明熙
이칭/별칭 포석(抱石),목성(木星),적로(笛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 수암부락지도보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양식
[상세정보]
[정의]

개항기에 활동한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문학가.

[개설]

조명희(趙明熙)는 본관은 양주(陽州)이고, 호는 포석(抱石)·목성(木星), 필명은 적로(笛蘆)이다. 시인이자 소설가, 희곡작가인 조명희는 1894년(고종 31) 8월 10일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 수암부락[숫말]에서 조병행과 연일정씨와의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활동사항]

조명희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소년기를 진천에서 보내며 소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 서울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가난으로 중퇴하였다. 이후 방황하다가 3·1운동에 참가해 투옥되기도 하였다. 감옥에서 나온 조명희는 1919년 가을경에 일본 도쿄 도요대학[東洋大學] 동양철학과로 유학을 갔다. 이때 유학생 모임인 학우회에 들어가 김우진을 만나, 희곡을 창작하고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때 무정부주의 계열의 단체인 흑도회에 가입, 무정부주의 운동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1921년 일본에서 돌아온 조명희는 창작 희곡 「김영일의 사」를 순회 공연하여 전국적으로 큰 호응을 받으며 민족주의 신극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는 희곡사상 선구적 의미를 가진다. 1923년 단행본으로 발간된 『김영일의 사』와, 같은 해 『개벽』에 발표된 조명희의 두 번째 작품인 『파사(婆娑)』는 근대 희곡사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테마인 민족 해방과 인습 타파의 문제를 동시에 표현한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명희는 『폐허 이후』·『개벽』 등에 몇 편의 시를 발표한 뒤, 1924년 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출간하였다. 그는 이 시집 서문에서, 남의 시를 본뜨지 말고 우리 시를 찾아 지게 목발 두드리는 나무꾼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자고 당당히 주장하였다.

1925년부터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창설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충청북도 청주 출신 조각가 김복진 등과 프로 연극운동 단체인 ‘불개미극단’을 조직하여 민족주의 연극운동가로, 희곡작가로, 시인으로, 소설가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궁핍한 소시민 지식인의 갈등을 그린 『땅 속으로』, 『R군에게』, 농토에서 쫓겨난 후 간도(間島), 일본으로 떠나거나 도시 빈민으로 떠도는 농민들의 비참한 삶을 그린 『농촌 사람들』, 『마을을 갉아먹는 사람들』 등의 소설을 계속 발표하였다. 1927년 『조선지광』에 발표한 대표작 「낙동강」은 프로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조명희는 1928년 러시아로 망명하였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과 육성촌, 우수리스크와 하바로프스크 등으로 옮겨 다니면서 블라디보스토크 신문 『선봉』의 편집자로, 조선사범학교 교수로, 『노력자의 조국』 주필로 활동하면서 재소 한인 문학 건설에 힘썼다. 망명하던 해에 「붉은 깃발 아래서」라는 장편소설을 탈고하였으나, 내용이 소련에서 수용될 수 없어 발표하지 못한 채 원고마저 분실하였다. 1937년에도 다시 『두 얼굴의 조각 그림』이라는 작품집을 출판하려고 하였으나, 이 또한 뜻을 이룰 수 없었다.

1937년 소련은 스탈린의 명령으로 연해주의 동포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 무렵 소련은 사회 지도자급 한인 2,000여 명을 체포하여 처형하였는데, 조명희 역시 친일파이자 반혁명분자라는 죄목으로 1937년 9월 체포되었다. 이듬해 5월 11일 조명희는 공개재판도 없이 비밀리에 총살되어 44세의 아까운 생을 마감하였다.

[저술 및 작품]

조명희가 한국 문단에서 활동한 기간은 8년 정도이지만, 다양한 활동으로 민족주의적 극작가, 사실적인 시인, 현실 비판의식이 높은 프로 소설가라는 선구적 업적을 남겼다. 일본에서 귀국한 조명희는 민족주의 신극운동을 개척하여, 희극 「김영일의 사」와 「파사(婆娑)」를 연이어 발표하였다. 1924년에는 ‘적로’라는 필명으로 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펴냈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미발표 창작 시집이었다.

카프에 가담한 1925년 이후에는 소설 「땅속으로」·「R군에게」·「농촌사람들」·「낙동강」·「아들의 마음」 등을 연달아 발표해, 프롤레타리아 소설의 형성과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대표작 「낙동강」은 이전까지 자연발생적인 수준에 머물던 신경향파 문학을 목적의식적인 프로 문학으로 발전시킨 작품으로 평가된다.

소련으로 망명한 뒤에는 식민지 민족의 한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노래한 시 「짓밟힌 고려」·「10월의 노래」·「볼쉐비크의 봄」 등을 발표하였고, 항일투사들의 활동을 그린 소설 「만주 빨치산」 등을 쓰는 등 KGB에 연행될 때까지 2편의 장편소설과 7편의 산문시, 수필, 평론 등을 썼다. 그밖에 소설집으로 『그 전날 밤』, 평론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직업·노동·문예작품」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88년 12월 10일 우즈베크공화국 타슈켄트시 국립원고연구소 문학박물관 4층에 조명희 상설전시관이 세워졌다.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1994년에는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그의 생가 터에 표지석이 세워지고, 이를 계기로 매년 포석조명희문학제가 개최되는 등 추모사업이 전개되고 있다.

중국 연변에서는 2001년에 연변포석회가 창립되어, 2002년부터 연변포석문학제가 매년 개최되어 2008년까지 7회 행사가 열렸다. 그밖에 2003년에 진천읍 벽암리에 문학비가 건립되고 포석문학공원이 조성되었으며, 2003년 제1회 포석추모 전국시낭송경연대회가 열려 2008년까지 6회 대회가 개최되었다. 또한 2006년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기술대학교 교정에 조명희 문학비가 건립되었다.

[참고문헌]

** ‘영혼의 탈식민지화’ 후카오 요코 , 야마모토 교시< 동양포럼 < 동양일보 2017

동양포럼-주제 기고 ‘영혼의 탈식민지화’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동양포럼-주제 기고 ‘영혼의 탈식민지화’

기자명 조아라 기자
입력 2017.04.23 


(동양일보 조아라 기자)동양포럼 운영위원회(위원장 유성종 전 꽃동네대 총장)는 오는 8월 14~16일 3일 동안 청주에서 한국의 조명희,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 중국의 루쉰을 재조명하는 한·중·일 문학-철학대화모임을 개최한다. 

‘영혼의 탈식민지화’를 주제로 한 이 행사 개최에 앞서 후카오 요코 오사카대 교수와 야마모토 교시 ‘미래공창신문’ 발행인의 글을 함께 소개한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혼의 탈식민지화’라는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경제대국 일본에서 진정한 삶의 모습에 관한 깊은 반성을 일으킨 후카오 요코 교수와 한·일 간 미래공창에의 길을 정력적으로 열어가는 야마모토 교시 발행인의 의견을 소개함으로써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이 그동안 국내·외에서 제창해 온 ‘영혼의 탈식민지화’와의 바람직한 상관연동을 진작시키는데 도움이 되도록 한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