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07

21 알라딘: 흔적, 의미 없는 양희범

알라딘: 흔적, 의미 없는


흔적, 의미 없는 
양희범 (지은이)바른북스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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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160쪽
128*188mm (B6)
160g
ISBN : 9791165454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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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는 서로에게서 의미를 찾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치가 있을 때 그것을 의미라고 이야기를 한다. 의미가 없다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므로 우리는 서로에게 의미를 잃어간다. 가치가 없다는 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쓸모없는 영혼들은 그렇게 상처받아 간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의미 없는 사람들일까, 어쩌면 내 안에 숨겨진 의미를 찾지 못한 것은 아닐까. 태어나면서 잊게 된 의미를 찾을 수만 있다면. 이 흔적은 의미가 없지만, 남아 있다.


목차


시인의 말

1. 흔적
피어나다
겨울은 봄이 될 운명이다
하얀 꽃 네 송이
우주선
아디오스 오디오
하얀 밤
눈꽃
불면증
핏빛 거리
양지빌라
쓸모없는 고백
소풍
산수유
그믐달
별의 가루
다시 만나요
공벌레의 우주
딸기
12월 31일
91버스
이석증
( )의 가격

2. 의미
축복받은 고통
추잡한 언어
아는 사람 얘기
창문 속 하늘
죽이는 시인
힘없는 곡선
연어
얼마예요
아름답다 말하지 마세요
승무
소설가
#내장산
별의 눈물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표절이다
사랑스러워라
눈의 요정
별의 길은 산 위에 걸려있고
개나리야 지지 마라
밥값
오아시스를 찾는 여행자에게

3. 없는
피카부
척추측만증
헌혈
잠의 온도
자몽
유전된 풍선
선리기연
베란다에 남겨진 자리
빈자리
비어버린 와인병
미라보다리 아래에서
물들어버린 사랑
무제
무단횡단
며느리발톱
메마른 사랑
대출
그런, 사랑
뉴욕의 여름
낯선 단어
맴맴맴
기억의 파문
관계의 각도
겨울비
겨울비 2

4. …
흔적, 의미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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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양희범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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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서울 마포 출생
원광대학교 원불교학 졸업, 문예창작 복수전공
現) 원불교 성직자(원불교 교무)
2018년 소태산 문학상 시 부분 장려상
2019년 소태산 문학상 시 부분 우수상
2020년 소태산 문학상 소설 부분 우수상
《흔적, 의미 없는》 출간

최근작 : <○ 마음 감성사전>,<흔적, 의미 없는> … 총 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우리는 존재하고 있는 걸까?
의미를 찾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어쩌면 가슴속에 흔적으로 남을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서 의미를 찾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치가 있을 때 그것을 의미라고 이야기를 한다. 의미가 없다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므로 우리는 서로에게 의미를 잃어간다. 가치가 없다는 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쓸모없는 영혼들은 그렇게 상처받아 간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의미 없는 사람들일까, 어쩌면 내 안에 숨겨진 의미를 찾지 못한 것은 아닐까. 태어나면서 잊게 된 의미를 찾을 수만 있다면. 이 흔적은 의미가 없지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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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미없는

우리는 존재하고 있는 걸까? 의미를 찾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어쩌면 가슴 속에 흔적으로 남을 수 있다면 《흔적, 의미 없는》

우연히 알게 된 양희범 작가님. 작가님의 시집 선물에, 그것도 사인본 선물을 받아 들고 조금씨 작가님의 시 속으로 몸을 담아보았다. 시에 담긴 작가님께서 들려주고 싶은 수많은 의미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시를 읽으며 우리의 흔적에 대해, 그리고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의 삶이, 나의 존재가 이 세상에 스쳐지나갔던 흔적을 남기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는 흔적을 남기고 가는 사람일까 남기지 못한채 스쳐지나는 사람일까 생각해보았다. 사람들은 모두들 흔적을 남기고 가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으로 남게 되는 위인도, 가까운 사람과 마음으로 정을 나누며 기억으로 남게 되는 사람도 모두들 자신의 흔적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말하지 못할 말들을 하고 싶다
언어로 쓰이지 못할 온전히 타지도 못한 찌거기들의 냄새가 오늘따라 안쓰럽다
얼룩진 노트에 남의 말을 베껴 써도 결국 의미 없는 볼펜자국
노트 옆으로 삐져나온 스프링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뾰족하게 튀어나와버린 손바닥을 듯고 지나간 상처
검은 피가 쉴새 없이 흘러나왔다. p.58 '추잡한 언어'중에서

삶은 평화로울수는 없는 것일까? 가만히 있고 싶은 나를 '추잡한 언어'가 스쳐지나간다. 그런 말들은 왜 내게 들려야하는 것일까? 굳이 들려주지 않아도 될일들을 왜 그토록 떠들어대는 것일까. 마치 '비밀이야, 너만 알고 있어야해. 너한테만 이야기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나 이외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그런 '추잡한 언어'. 그 속에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싶다. 나의 삶을 어지럽히는 그 '추잡한 언어'속에서 도망치고 싶다.

차에 짓이겨 회색으로 물든 도로의 눈들이 녹아 없어지고
잊지 못할 순백은 생기 넘치는 옷을 입었다
난 그녀가 처녀가 된지도 모르고
홀로 배신자가 된 감상으로 사람을 미워했었다
내 마음을 떠나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아, 그녀는 사랑스러워라 p.89 '사랑스러워라' 중에서

수많은 의미 중에서 사랑스러움. 우리의 삶에서 사랑을 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고대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살아 숨쉴 사랑의 의미. 그 의미가 조금씩 바뀌더라도 사랑은 바뀌지 않은채로 있을것이다. 겨울이 물러가고 점점 봄이 다가온다. 눈이 녹아 내린 자리에는 생기가 넘치고 있다. 어느새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것들에 대한 마음, 그런 마음도 사랑이 아닐까. 그리움 뒤에 나타난 존재들이기에 더욱 더 사랑스러운 것이리라.

상자에 담아 놓은 빛의 상처

눈물 적은 베게

푹 꺼진 침대

꺽어 신은 신발의 흔적 p.146 '기억의 파문'중에서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것일까? 이 시를 보면서 무엇인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려온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별에 대한 흔적일까. 이런 흔적은 없었으면 좋겠다. 지우고 싶다. 문득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 시는 그랬다. 나의 기억 한자락을 끄집어내어 나를 흔들었다.

오랜만에 시의 매력에 깊이 빠지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양희범 작가님의 시가 궁금하신 분들은 《흔적, __의미 없는》을 읽어보시기를 권해봅니다.

2019 원불교의 마음공부 원익선(원불교 교무)

원불교의 마음공부



원불교의 마음공부
사건과 신학 2019. 8. 28. 15:33





원불교의 마음공부

- 원익선(원불교 교무, 원광대학교 정역원)



원불교의 기원은 1916년 소태산 박중빈(少太山 朴重彬, 1891-1943)의 깨달음이다. 1924년에는 익산에 성불제중(成佛濟衆, 부처가 되어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것)을 향한 교단을 창립하였다. 그리고 해방 후인 1948년 원불교로 개명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원불교는 개혁불교이자 현대불교다. 일제의 억압으로 암울했던 시기에 박중빈은 자수자각(自修自覺, 스스로 수행하여 스스로 깨달음을 얻음)하여 민족의 앞날을 희망으로 비추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슬로건을 내걸어 인류 문명의 미래를 바르게 인도하고자 하였다. 그 방법, 즉 인류를 낙원 세계로 인도하고자 하는 길은 다름이 아닌 마음공부다.

박중빈은 “모든 학술을 공부하되 쓰는 데에 들어가서는 끊임이 있으나, 마음 작용하는 공부를 하여 놓으면 일분 일각도 끊임이 없이 활용되나니, 그러므로 마음공부는 모든 공부의 근본이 되나니라”(『대종경(大宗經)』 제11요훈품(要訓品) 제1장)라고 설한다.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마음공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의 삶은 인간의 마음이 운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건물을 짓는다고 하자. 그 건물의 원모습은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설계도로 나타나고, 물적 인적 자원을 동원하여 건축된 것이다.

인간관계 또한 인간의 마음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삶에서 경험하는 희비애환은 마음의 다양한 모습이다. 이렇게 본다면, 문명은 인류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찬란한 예술 문화는 인간의 마음이 아름다운 미적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철학과 종교 또한 진리와 선함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의해 나타난 것이다. 전쟁은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의 증오가 상대방을 절멸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발생한 것이다. 원효(元曉)대사는 이러한 마음의 작용을 일심(一心)으로 표현한다. 마음에서 일체가 생성되고, 일체가 소멸된다. 마음은 마음먹기에 따라 좁쌀보다도 작기도 하지만, 우주를 포용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마음의 묘한 작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러한 마음을 알고, 자신의 운명을 바꾸자는 마음공부가 유행하고 있다. 다양한 명상체험이 아울러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전횡에 따라 인간의 자아가 왜소해지면서 삶의 중심이 흔들리고, 존재 자체가 물적 조건에 흔들리며, 존재 자체의 기쁨을 빼앗기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일어난 것으로 본다. 마음공부나 명상 모두는 인간의 삶을 새롭게 재구성하여 주체적인 삶의 의미를 되찾고자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현대종교인 원불교 또한 이 점에서 마음공부를 하나의 종교적 트레이드 마크로 삼고 있다.

원불교의 마음공부는 초기교단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불법연구회는 전통적 불교가 위기 때마다 실천한 결사정신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그 결사야말로 재가, 출가가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주경야독, 반농반선(半農半禪, 하루의 반은 생산활동에, 반은 수행에 집중하는 것)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 생활에서 마음을 찾고, 마음을 가꾸며, 마음을 활용하는 마음공부를 했던 것이다. 원불교 마음공부는 이 경험을 기반으로 교의적으로나 실천적으로 확대되어 정착되었다. 나아가 현대문명의 근본문제를 치유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고자 한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서는 원불교 마음공부가 좀 더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전통적으로 전해지는 나(我)와 경계(境界, 안이비설신의 육근이 부딪히는 모든 상황을 말함)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식에서 촉발되었다. 간단히 언급하자면 경계에 부딪혔을 때, 그 경계를 계기로 나의 본성인 불성(佛性)을 청정하고도 온전한 본래의 위치로 회복시키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STAR 마음공부’라는 것이 있다. S: Stop (멈추기) 온전한 정신수양, T: Think (생각하기) 생각으로 사리연구, A: Act (실행하기) 옳고 그름을 취사하기, R: Review (반조하기) 주의할 것, 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이것은 원불교의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라는 삼학과 함께 그 과정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검토하는 반조공부가 곁들여진 것이다.

이 삼학은 불교의 전통적인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것이다. 근본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원불교 수행은 견성(見成, 불성을 찾아 회복하는 것), 양성(養性, 부처의 삶이 되도록 불성을 잘 기르는 것), 솔성(率性, 실생활에서 부처의 행을 하는 것)이 목표다. 결국 이 불성을 깨달아 부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된다. 불성은 모든 사람이 고유하게 품고 있으며, 누구든지 부처가 될 수 있는 근본적 요소가 된다. 여기에서 불법의 평등성을 확인할 수 있다.

불성과 성품은 같은 뜻이다. 단 성품은 불성을 품고 있는 마음이다. 마음은 불성을 기반으로 하되 온갖 번뇌로 뒤덮여 자신의 업(karma)을 쌓아가는 불성의 외피다. 이 마음은 진리와 연계된 불성과는 달리 경계를 만나 발현된 파편화되고, 단절된 자기중심주의로 이끄는 원인 제공자이다. 불성은 이러한 마음의 독단에 끌리지 않는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세계다. 이 불성의 성격이 현실에서 그대로 작동되면 부처의 삶이 된다.

예를 들어 무시선법(無時禪法)이라는 원불교 수행의 최고 단계에서는 “진공(眞空)으로 체(體)를 삼고 묘유(妙有)로 용(用)을 삼아 밖으로 천만 경계를 대하되 부동함은 태산과 같이 하고, 안으로 마음을 지키되 청정함은 허공과 같이 하여, 동하여도 동하는 바가 없고 정하여도 정하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작용하라.”라고 한다. 우리의 불성이 완전히 비어 있음을 알게 되면, 어떤 경계에도 걸림이 없게 된다. 즉 맑은 호수에 기러기가 날아가도 호수에 파도가 일지 않듯이 불성에는 어떤 파도도 일지 않는다. 그리고 그 텅 빈 마음으로 대하는 모든 존재는 각각 절대적 존재로서의 가치가 있다. 즉 인간과 자연 모두는 그 하나하나가 절대적 존재인 것이다. 처처불상(處處佛像, 모든 존재는 부처로 현현해 있다는 뜻)은 이를 말한다. 진공묘유는 불성의 또 다른 성격이다.

무시선법의 핵심은 “응하여도 주한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라고 가르치는 『금강경』(대승경전의 하나로 선종에서도 활용되는 경전)의 핵심 내용이다. 즉 우리 성품의 근본 자리에서 경계를 대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상의 어떠한 평지풍파도 나의 삶에서는 객관화가 된다. 희로애락에 끌려다니지 않는 청정무위(淸淨無爲, 마음이 청정하여 힘쓰지 않고도 자연스러운 삶이 영위되는 경지)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무시선법은 “우리의 몸인 육근이 일이 없을 때는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육근이 일이 있을 때는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라”고 한다. 일심은 깨어 있는 마음, 번뇌로부터 해방된 마음, 우주와 하나 된 마음이다.

원불교 마음공부의 핵심은 “일상수행의 요법 9조”에 잘 나타난다. 이 가운데 1, 2, 3조는 “심지(心地)는 원래 요란함(2: 어리석음, 3: 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2: 어리석음, 3: 그름)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自性)의 정(定)(2: 혜(慧), 3:(戒))을 세우자”이다. 이는 일상 속에서 삼학수행을 하는 것으로, 앞의 무시선법과 상통한다. 심지라는 것은 마음이 의지해 있는 근본, 즉 거의 같은 의미인 불성, 성품, 자성을 말한다.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불성에는 원래 없다. 이를 자성삼학이라고 한다. 중국 선종의 6조 혜능(惠能)대사의 행장인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 일찍이 확립된 선사상이다. 원불교는 이에 더 나아가 마지막 9조“공익심 없는 사람을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라고 하여 마음공부의 범위를 사회로 확장하고 있다.

원불교는 오늘날 다양한 현대불교와 같은 구조를 공유하고 있다. 즉 인간 개개인의 고통과 고뇌를 소멸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부조리와 불의를 물리치고 부처들이 사는 불토 낙원으로 변화시키자는 참여불교(Engaged Buddhism)에 속한다. 또한 기본적으로 마음을 통한 개혁 또는 개벽을 주장한다. 즉 마음공부가 근본 동력이다. 그 핵심은 불성의 다른 모습인 공적영지(空寂靈知, 공한 가운데에도 신령하게 아는 것)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에 있다. 삶과 문명은 이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 물론 원불교 수행은 ‘평상심이 도’와 같은 선사상과 ‘단전주(丹田住)’와 같은 전통 선법도 계승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원불교야말로 기존의 불교교의를 통합 활용하는 회통불교라고 할 수 있다.

이 진공묘유 또는 공적영지한 성품을 최근 일부에서는 ‘메타마음(Meta-Mind)이라고도 한다. 어떤 형태로 표현하든 그 최종에는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인 법신불(法身佛, Dharma-kāya-buddha, 부처를 부처이게끔 하는 근본 부처이자 우주의 근본 진리)의 진리로 귀결된다. 앞에서 언급한 불성 또는 성품은 곧 법신불의 속성이며, 인간 누구나 이 법신불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즉 깨닫게 되면, 무명(無明, 마음이 밝지 못하여 죄업을 짓게 되는 마음)을 벗어나 법신불과 일치가 되는 것이다. 법신불은 “우주 만유의 본원이며, 제불제성의 심인(心印)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법신불의 상징은 또한 원불교를 상징하는 일원상(一圓相)이다. 원불교 마음공부는 이 근본 진리와 합일하여 진리적인 삶, 즉 부처의 삶을 살며, 이 지상을 불국정토로 변화시키는 것이 최종 목표가 된다.

현재 원불교 내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STAR 마음공부’만이 아니라, ‘정전 마음공부’, ‘온삶 마음공부’, ‘알아차림 마음공부’ 등 다양한 마음공부의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어떠한 마음공부든 최종적으로는 이 법신불과 하나 되는 삶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길을 다르게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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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마음인문학 10년, 개인의 마음치유 넘어 사회치유까지 - 한울안신문

마음인문학 10년, 개인의 마음치유 넘어 사회치유까지 - 한울안신문



마음인문학 10년, 개인의 마음치유 넘어 사회치유까지
강법진 편집장
승인 2019.11.12 22:59
호수 1150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제10회 국제학술대회 4일간 열려

마음·삶·사회의 평화 담론으로 동반성장하는 해법 찾아 나서



[한울안신문=강법진]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가 11월 6일~9일 ‘마음공부 기반 치유, 성장, 평화·마음인문학의 성과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원광대 숭산기념관과 영광 국제마음훈련원에서 제10회 마음인문학 국제학술대회를 진행했다.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마음공부의 원류를 찾아가는 집중워크숍과 함께 18명의 발표자가 나선 학술대회, 영산성지 일대 현장답사 등으로 이뤄졌다. 특히 국내외 학제 간 교류를 통해 지난 10년간 마음인문학연구소가 축적해 온 성과를 돌아보는 동시에, 학계나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음공부 전통이나 새로운 마음공부법을 살피며 향후 방향을 설정해 가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첫날 집중워크숍에는 호주 출신의 존 앨런이 ‘마음공부의 원류들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호주 원주민과 불교 및 타 전통에서 유래하는 마음치유의 지혜를 활용하여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개인적·환경적 도전에 지혜롭게 헤쳐나갈 대처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본격적인 학술대회가 열린 7일~8일에는 ‘마음인문학의 회고와 전망:마음공부 공동체의 토대 구축’ (장진영, 마음인문학연구소), ‘유아 정신건강 및 웰니스에 세대 간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마음챙김 양육 프로그램들’(니르베이 싱, 미국)이란 주제발표에 이어 1·2분과로 장소를 나눠 대회를 열었다.

1분과는 마음인문학연구소 교수들이 발표자로 나섰다. ‘마음공부의 현대적 해석-보조지눌의 <수심결>을 중심으로’(오용석), ‘마음인문학의 마음공부 프로그램 적용과 전망: 마음챙김-기반 유아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중심으로’(김은진), ‘마음공부 기반 청소년 인성교육 프로그램 현황과 전망: 심심풀이 M3 프로그램을 중심으로(이은수), ‘마음인문학의 철학사상적 토대에 대하여: 마음의 구조와 작용 그리고 조절의 문제를 중심으로’(이기흥), ‘원불교 마음공부에서 ‘세움(立)’의 의미: 삼학과 사은의 통합적 적용을 중심으로’(조성훈) 등이다.

2분과에서는 ‘마오리족의 마음챙김: 호주 토착민들의 삶의 실천과 서구 세계가 상기하고자 하는 웰빙’(캐시 리버모어, 뉴질랜드), ‘영적 실천으로서의 고독: 중국 전통의 관점들’(왕병호, 홍콩), ‘세 가지 명상법: 명상의 과학과 개념모형’(김완석, 아주대학교), ‘마음의 소통과 마음사회의 사회학’(유승무, 중앙승가대학교), ‘인내심 강화를 위한 불교철학적 수양전략에 대하여’(프라마하 솜퐁 운요, 태국)란 주제로 발표가 이어져 청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다음날에도 심도있는 연구발표들이 공유돼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었다.


학술대회를 마친 발표자들은 1박2일간 영산성지 현장답사, 영광 국제마음훈련원에서 진행되는 종합토론에 참여했다. 마음인문학연구소 고시용(법명 원국) 소장은 “우리 연구소가 마음공부의 사회적 확산을 목표로 출범했는데 대중의 관심 속에서 이만큼 성장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번 학술대회는 지난 10년간의 사업을 마무리하고 후속 사업을 준비하기 위한 중요한 자리다. 지금까지는 마음공부의 이론을 정립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해 사회적 확산을 이뤄왔는데 그 부분이 개인의 마음치유에 그쳐서는 안 된다. 마음공부를 사회에 확산시키고 공감대를 이끌 수 있는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연구지원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후속사업에 진입할 수 있는 준비에 전념해야 한다”며 이번 대회는 다양한 전문가의 지혜를 빌려 마음인문학연구소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결의를 다지는 기회였다고 전했다.

한편,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는 2010년 10월 ‘마음인문학: 인류정신문명의 새로운 희망’이란 과제명으로 정부 교육부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HK) 지원사업에 채택됐다. 이후 연구학술 활동과 편찬 사업, 시민강좌 등 마음인문학 연구의 토대 구축 및 사회적 확산을 위한 활동에 정성을 다해왔다. 특히 ‘생활 속 지금 여기의 마음공부’를 중심으로 개인의 마음치유를 넘어 사회치유, 사회평화의 담론을 이끌며 실질적인 프로그램 개발과 적용으로 우리 사회에 마음공부 문화를 확산시켜 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1월 15일자

최현민 > 종교 대화 > 왜 지금 동아시아영성인가.

최현민 연구실 > 종교 대화 > 왜 지금 동아시아영성인가.

왜 지금 동아시아영성인가.


2016-03-25 

종교강좌 2016.314
동아시아영성을 통한 현시대읽기 1



왜 지금 동아시아영성인가.
최 현 민

1. 자본주의의 허상

왜 지금 동아시아영성인가. 본 강좌를 시작함에 있어 문제의식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역을 주역 자체로, 공자 맹자 장자 사상을 문헌학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이 강좌를 연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의 문제를 깊이 재인식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지 그 지혜를 동양사상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저는 이 강좌를 마련했습니다. 왜 우리가 2016년이라는 현대에 주역을 공부하면 되지 않은가 그 당위성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거의 종교의 수준에 와있습니다. 현대인을 아울러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종교성을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입니다. 자본주의의 가치관이 우리의 삶, 정신세계 안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를 자각하는 것이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세는 낙원, 유토피아를 내세에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종말론적 사고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내세와 현재의 긴장관계가 있지만, 천국하면 내세를 떠올립니다.
이에 반해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유토피아는 사후의 세계에 있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현대 신자유주의시장경제가 확립되면서 시장 자체가 힘이 되었고 자본주의 가치는 종교가 되어버린 현실. 사람들은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그들을 따라가지 않으면 왠지 뒤쳐질 것 같은 불안감과 두려움, 서로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아등바등합니다. 대학가는 스펙쌓기 위해 여념이 없죠.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 발버둥치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이 하나둘 단절되고 흩어져 소외되어버린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1) 진보의 의미와 그 허상

자본주의의 개념들인 현대화, 세계화. 진화하고 발전하고 진보하고 있다는 표현을 우리가 끝없이 씁니다. 현대화는 80년도에 많이 쓰이던 개념입니다. 15 16세기를 기점으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산업화, 도시화,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 자본주의, 이런 것들의 물꼬를 터트린 세계사의 물결을 현대화라고 말합니다. 이 현대화가 세계로 퍼져나가는 현상이 세계화라 할 수 있습니다. 나라 간의 국경을 넘어서 지구촌 전체가 하나의 경영시스템으로 묶어집니다. 세계 기업은 무한경쟁에 돌입했고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능력과 자질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20대 80의 비율로 구성되어 있지요. 그리고 점점 그 수치는 극단적으로 되어갑니다. 20%만이 안정된 삶을 살고 80%는 실업자 노동자의 삶을 사는 형태가 되면서 점점 많은 이들이 허탈감과 소외감,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점점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빈익빈 부익부의 격차가 심해지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우리가 발전하고 진보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물어야 합니다.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발전인지를 말입니다.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우리가 접하게 되는 광고물은 더 편리하고 안락한 기기들에 대한 선전들입니다. 기술적인 발전에 의해서 내가 원하는 행복은 안락한 차를 타고 스마트폰에서 찾은 맛집에 가서 맛있는 것 먹고 경치 좋은 곳에 드라이브 하는 것정도로 생각합니다.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직업은 요리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기술적 향상으로 인해 삶이 더 편리해지고 안락해진 것이 진정한 의미의 진보이고 발전인지를... 생태계의 파괴문제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지 힘든 현실입니다.
생태계 파괴는 곧 인간중심적 사유, 아니 더 나아가 생명의 경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생명의 가치는 경제적 가치(돈) 아래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첫 번째 순위는 경제가치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세월호 참사의 아픔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참사야말로 생명의 가치를 경제적 가치보다 하위권에 놓은 적나라한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가 진보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 사유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현대 진보사상의 밑바탕에는 어떤 이론이 깔려있는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2) 근대진보사상을 지향해온 이론적 배경

고대에는, 최초의 완벽한 상태로부터 조금씩 쇠퇴해진다는 역사관에서 가능한 한 그 쇠락해지는 상태를 최소한 늦추는 일을 추구해 왔습니다. 그러던 것이 중세에 와서 그리스도교적 역사관이 그 중심을 차지하게 되면서 역사를 시작과 과정, 종말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신이고, 인간은 신의 계획을 실현하고 그것에 봉사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내세지향적인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세지향적 구원의 약속은 근대로 들어오면서 지상천국의 약속으로 바뀌었습니다. 유토피아는 저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다는 현세지향적인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기저에는 근대 과학적 사유가 있습니다. 그 사유 중에서도 근대 고전물리학의 기계론적 세계관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근대의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데카르트를 들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고대나 중세의 철학으로부터 자신의 철학의 확실한 기초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이성의 힘으로 확실한 기초를 찾고자 했고 의심을 그 방법으로 택했습니다.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유명한 말이 그의 방법적 회의입니다. 가장 확실한 것은 생각하는 존재이고 정신인 것입니다. 이러한 철학적 기초에서 데카르트는 “수학은 인간에게 주어진 것 중 가장 강력한 지식획득의 수단이라고 확신한다. 수학이야말로 모든 것의 원천이다.”고 말합니다. 데카르트의 세계관이 뉴턴에게 이어집니다. 이런 흐름의 기저에 있는 것이 기계론적 사유입니다.
기계론적 사고란 실체를 중심에 두는 사고입니다. 뉴턴의 질량 보존의 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 미분과 적분의 수학적 방법 이라는 세 가지 전제 역시 기계론적 사유를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뉴턴은 우주란 하나의 기계이고 이 기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연은 생명이 없는 물질적인 재료입니다. 이것이 물리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자리 곳곳에 스며들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경제학을 들 수 있습니다.


3) 근대 기계론적 페러다임과 근대 자본주의

오늘날 현대에 자본주의 발생을 소급해 올라가면 아담스미스를 만나게 됩니다. 아담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장하는 것은 시장경제가 발달하게 되면 자본가의 자본과 노동자의 노동에 의한 생산력, 두 바퀴가 잘 맞아서 돌아가는 나라가 부유한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장경제이론을 펼치게 됩니다. 아담스미스의 인간론은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각자의 영리를 추구하게 되면 개인의 영리가 모여서 사회가 부유하게 되고 국가가 부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계론적인 패러다임이죠. 이기적인 각 개인들이 돈을 벌면 사회가 부유하게 되고 국가가 발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부가 골고루 분배되느냐는 것입니다. 부의 불균형,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사회문제의 심각한 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편리하고 안락해졌지만 경제적 발전 뒤에 있는 그림자를 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죠. 제가 말씀드렸던 생태파괴,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 개인주의 발달로 인해서 인간관계의 단절, 더 나아가 인간성의 파괴, 자살, 정신질환들, 기술에 의한 스트레스(테크노 스트레스), 범죄율의 증가, 이런 것들이 현대사회 안에서의 그림자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것은 기술발전으로 인해서 생태계가 점점 더 무질서하게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우리는 인간인 내가 주체이고 자연은 객체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체와 객체로. 그런데 이러한 사고는 얼마나 큰 오류입니까?
‘나’라는 존재는 자연이 나에게 공급해주는 산소가 없이 이 시간 이렇게 존재할 수 있으까요? 주변의 이 모든 것 없이 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습니까? 인간은 자연의 일부입니다. 자연이 파괴된다는 것은 곧 내가 파괴됨을 의미합니다. 단지 자연만이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파괴된다는 자각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2. 고엔트로피 사회에서 저엔트로피 사회로

엔트로피 법칙이라고 부르는 열역학 제2법칙을 기억하시나요. 엔트로피는 무질서한 정도를 의미합니다. 열역학 제2법칙은 물질이나 에너지가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그건 바로 무질서한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유용한 상태에서 무용한 상태로 변하고, 획득가능한 상태에서 획득불가능한 상태, 질서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흘러갑니다.
생태계 파괴는 엔트로피의 법칙이 우리 삶에서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무질서의 정도인 엔트로피는 점점 증가하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쓰레기는 점점 증가하고 무질서도 증가해 가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엔트로피를 없앨 수는 없으나 그 속도를 낮출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형태를 변화시킴으로써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해법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어떻게 엔트로피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느냐입니다. 다시 말하면, 점점 고엔트로피의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속도를 늦춰서 저엔트로피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할 수 있느냐 이거죠. 그렇게 되려면 지금 우리가 지닌 가치관을 바꾸지 않으면 안돼요. 지금까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우리에게 접해온 가치관의 인식이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인식의 전환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동양사상 안에서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제가 2, 3년 전에 중국 상하이에 잠깐 들려서 하루 이틀 머문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중국에 갔을 때는 사람, 자전거, 자동차로 혼잡했었는데, 지금의 상하이는 유럽, 미국처럼 호화롭더군요. 중국이 19세기를 지나면서 서구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자본주의체제의 일부를 받아들이면서 굉장히 변하기 시작합니다. 중국은 서구의 세속주의적인 교육과 경제시스템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발전된 현실의 뒷면에는 엄청난 생태계 파괴가 있었습니다. 이제 중국은 고민에 빠진 것이죠.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중국이 들고 나온 것은 놀랍게도, 공자사상입니다. 공자사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중국 사유의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지금 중국이 처한 이 혼란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자각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사상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앞서 기계론적인 패러다임이 문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근대 서구의 기계론적 사유방식 이전에, 서구의 근본적인 사유를 살펴보면 그 중심에 존재론적인 사유가 있습니다. 서양철학은 존재하는 것들의 근원이 무엇일까를 질문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흙이냐, 물이냐, 불이냐, 바람이냐. 이 4대 요소 안에서 자연과 세계를 설명해보려 했습니다. 서양철학의 최초는 아르케가 무언지 존재가 무언지 묻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듯 서구의 사유의 뿌리는 존재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3. 존재론에서 관계론으로

1) 영육이원론

기원적 7세기전부터 인간이라는 존재를 묻기 시작했을 때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있다고 이해해왔습니다.
실존인물인지 잘 알 수 없지만 기원전 7세기 오르페우스가 고대 그리스에 깊은 영향을 준 건 사실입니다. 오르페우스교가 그리스 전역에 퍼졌으니까요. 인간의 영혼은 사악한 육체에 잡혀있어서 윤회를 계속 하는데 윤회로부터 벗어나려면 금욕생활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상을 펼쳤고 이것이 종교화되었어요. 오르페우스교에서 몸은 죽은 물질에 불과해요. 중요한 것은 영혼입니다. 바로 이러한 오르페우스의 사상은 서양의 철학의 밑바탕인,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플라톤의 사유에 깊은 영향을 줍니다. 플라톤은 오르페우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플라톤이 이야기한 이데아의 세계, 그건 바로 영혼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잠시 머물러 있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참된 사람은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영혼이고 육체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고향인 영적인 세계, 영혼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가장 큰 이상으로 생각해왔고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비판하면서 이데아가 내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역시 영혼이원론을 극복하지 못했어요. 인간은 영혼과 육체의 영육이원론으로 되어있다는 것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인간을 이해하는 근본이 되어온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역시 희랍철학의 영향을 받아 영육이원론적인 사유 안에서 존재를 이해해 왔습니다.

2) 양자물리학에 의한 자연이해

아까 뉴턴은 실체를 중심으로 해서 자신의 역학을 펼쳤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뉴턴의 역학이 20세기에 들어와서 무너졌습니다. 20세기에 양자물리학이 나오면서 뉴턴의 실체, 물질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것이구나, 실체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변화하는 것이구나, 처음에 고정되어 있다고 봤던 건 확률에 불과하는 것이구나,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구나 하는 발견과 전환이 양자물리학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양자물리학이 얼마나 깊게 우리의 삶에 들어와 있는지 못 느껴요. 여러분이 병원에서 받는 모든 검사, MRI, CT 유전공학 모든 반도체가 양자물리학에서 나온 것입니다. 물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뉴턴의 역학은 무너지고 양자물리학이 들어섰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해해왔던 존재이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양자물리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체중심의 존재이해가 왜곡되었음을 입증해준 것이지요. 이것이야말로 코페루니쿠스적인 전환이 아니겠습니까?
자연은 물체중심의 사유에서 사건중심의 사유로의 전환을 이야기합니다. 물체로서 고정되어 있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뉴턴은 물체는 더 이상 분할될 수 없는 원자의 집합체들이 절대공간에 일정하게 점유되어 있는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에 따르면 우리가 물질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감각기관의 한계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모든 것들은 변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놀라운 사실입니다. 우리가 존재를 이해할 때 실체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건너가야 하는 강이 있는데 우리는 존재론적인 사유방식에서 다른 큰 강을 건나야 한다는 것이죠. 동양사상은 우리로 하여금 그 큰 강을 건너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변화하고 있다, 주역의 핵심입니다. 3000년 전 중국인들이 지닌 사유의 중심에는 모든 존재가 변화한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뉴턴이 절대성을 이야기했다면 양자역학은 상대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양자역학은 이중성을 말합니다. 양자론에서 소립자들은 파동성과 입자성의 두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에 자연과학자들은 “자연의 존재요소들은 이중성을 갖는다”라는 명제를 받아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확정성의 원리가 있습니다. 물체의 처음상태를 완벽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양자역학의 입장에서는 어떤 물체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봅니다. 단지 확률적으로 알 뿐이지요.
이것을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합니다. 실체이론이 무너졌기 때문에 불확정성의 원리가 나온 겁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다 안다는 생각하는 건 착각에 불과하고 우리는 확률적으로 안다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최현민 2010.2.수양과_명상_수업_계획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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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수양과_명상_수업_계획서


2010-10-25 

수 업 계 획 서(2010년 2학기)

○과 목 명 : 수양과 명상(17‐131) ○담당교수 : 최 현 민
○ 학 점 : 3 학점
○수강대상 : 2‐4학년 ○수업시간 : 화 목 13:30‐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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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과목표

본 과목은 선불교의 수행의 이론과 명상을 배우고 익힘을 목표로 삼는다. 
특히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으로 회귀하는데 온 생애를 바친 선사 중 선사인 도겐(道元) 사상을 통해 인간의 근원 곧 나 자신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대한 답을 추구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근원적인 탐구를 통해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고자 한다.


2. 수업방법

강의:50% 토론과 나눔:20% 명상:30%

3. 교과내용

1. 불교의 명상
2. 선수행
3. 정법안장 수문기 1-6
4. 정법안장 변도화
5. 정법안장 현성공안



4.교 재

1) 주교재: 『수양과 명상』, 서강대 종교학과 편

2) 참고도서:

a. 코운 에죠,『정법안장 수문기』, 이재경 역, 동국대학교출판부
b. 스즈키 순류,『선으로의 초대』, 최세만 역, 시공사, 1995.
c. 스즈키 순류,『선심 초심』, 정창영 옮김 물병자리, 2007.
d. 한보광,『정법안장강의』, 여래장, 2006.
e. 틱낫한 『아, 붓다』, 반디미디어, 2004.
f. 틱낫한, 『삶에서 깨어나기‐금강경‐』, 장경각,1999.
g. 틱낫한, 『틱낫한 스님이 읽어주는 법화경』, 명진출판, 2003.
h. 틱낫한, 『평화로움』, 열림원, 2002
.

5. 시험 및 평가방법

가.출석 및 명상 태도: 20%
나.시험 레포트: 80%

6. 기타 안내사항

명상법을 직접 체험하고 배우는 시간이므로 출석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함.
자신의 종교를 넘어서 이웃종교에 대해 배우고 익히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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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수양과_명상_수업_계획서
2010-10-25 
수 업 계 획 서(2009년 2학기)

○과 목 명 : 수양과 명상(17-131) ○담당교수 : 최 현 민
○ 학 점 : 3 학점
○수강대상 : 2-4학년 ○수업시간 : 화 목 12:00-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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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과목표

본과목은 불교전통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고찰함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은 개체적 주체가 아니라 공동체적 주체임을 자각함을 목표로 한다. 이 자각을 위해 본 과목은 불교전통에서 발전되어온 명상에 대한 이론을 배움과 동시에 명상을 실천해봄으로써 인간 영성의 깊이를 체험하고 체득함을 목표로 한다.

2. 수업방법

강의:50%    토론과 나눔:20%      명상:30%

3. 교과개요 및 내용

가. 교과개요

1 세계종교속의 수양과 명상 강의 강의
2 틱낫한의 행선과 호흡선 강의, 행선, 좌선 강의,행선,좌선
3 위빠사나 수행 "
4 간화선 수행 "
5 간화선 수행 "
6 보조국사 지눌의 수심결 강독을 통한 마음공부

나. 교과내용

1. 세계 전통 속의 수양과 명상 (Ⅰ)
2. 세계 전통 속의 수양과 명상 (Ⅱ)
3. 사성제와 명상
4. 팔정도와 명상
5. 오계수행
6. 행선
7. 좌선
8. 관명상 (위빠사나수행)
9. 간화선 수행 – 십우도
10. 보조국사 지눌의 수심결 강독을 통한 마음공부


4.교 재

1) 주교재: 『수양과 명상』, 서강대 종교학과 편

2) 참고도서:

a.『평화로움』, 열림원, 2002.
b. 틱낫한 『아, 붓다』, 반디미디어, 2004.
c. 틱낫한, 『마음을 멈추고 다만 바라보라』, 꿈꾸는 돌, 2002.
d. 틱낫한, 『삶에서 깨어나기-금강경-』, 장경각,1999.
e. 틱낫한, 『틱낫한 스님이 읽어주는 법화경』, 명진출판, 2003.
f. 강건기, 『마음닦는 길』, 불일출판사, 2004.
g. 윤홍식 역, 『윤홍식의 수심결강의』, 봉황동래, 2007.

5. 시험 및 평가방법

가.출석 및 명상 태도: 20%
나.시험 레포트: 80%

6. 기타 안내사항

명상법을 직접 체험하고 배우는 시간이므로 출석을 잘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 스스로 명상법을 배워 익힐 뿐 아니라 인류역사에 소개된 명상법과 이론을 존중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개방된 마음이 필요함.


최현민 김지하 시인의 [화엄개벽의 모심>을 읽고....

최현민 연구실 > 기타 > 김지하 시인의 <화엄개벽의 모심>을 읽고....

김지하 시인의 <화엄개벽의 모심>을 읽고....
2010-03-23 1

김지하 시인의 <화엄개벽의 모심>을 읽고....

-2009년 5월 크리스찬아카데미 김지하 발표문에 대한 논평문--

최현민 (서강대)

동서양의 종교사상을 넘나들며 섭렵한 김지하 시인의 글을 접하면서 그의 사유와 고뇌의 흔적을 본다. 시공의 역사 안으로 녹아들어 현실의 문제를 풀어갈 해법을 제시함을 보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종교인으로서 현실을 깊이 통찰치 못한 채 살아온 나 자신을 만난다. 김지하 시인의 사유를 다 따라가지 못한 체, 그저 공감된 부분을 중심으로 나의 성찰과 함께 토론해 볼 점들을 나누고자 한다.

1. 일상 안에서의 ‘모심’을 향한 회심

김지하 시인은 ‘모심’의 문화혁명에 대해 말한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할 화두, 이 복잡한 현실문제를 풀어갈 해법은 ‘모심’ 한마디에 있다는 것이다. ‘화엄개벽의 모심’에 우리의 문제를 풀어갈 묘수(妙修)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현 사회문제의 해법으로 김지하 시인이 제시한 ‘화엄개벽의 모심’에 대해 몇 가지 나누고자 한다.
김지하 시인은 ‘모심(侍)’을 동학본주문의 첫 글자, 곧 ‘내유신령 외유기화 일세이진각지불이자야(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各知不移者也)’로 풀어 말한다. 그는 여기서 내유외유(內有外有)를 떼이야르 드 샤르댕이 말한 ‘우주진화 내면에 의식의 증대와 외면의 복잡화’로, 각지불이(各知不移)를 ‘현생인류가 화엄세계(不移)을 각자 제 나름으로 깨달아 실현함’으로 풀이한다.
이를 떼이야르 사상과 비교해보면 떼이야르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출현이 지닌 가장 큰 의미를 ‘반성의 능력’으로 본다. 우주는 반성이전의 단계를 몇 십 억 번 시도한 후 인간 곧 반성력을 출현케 했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됨의 정체성이 반성의 능력 곧 ‘회개’할 줄 아는 능력에 있음을 말해준다. 그럼 구체적으로 무엇을 회개 곧 자각해야 하는가?
김지하 시인의 사유에서 그 답을 찾는다면 ‘각지불이(各知不移)’ 곧 각자 제 나름으로 화엄세계를 깨달아 실현하며 살아가는 것이겠다. 그 세계는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와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회개하라,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예수의 선포 속에서 회개와 하느님 나라가 지닌 불가분의 관계성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태 20,28)”고 말씀한다. 그 징표로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다. 바로 그 섬김의 세계, 모심(侍)의 세계가 하느님의 나라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모심(侍)이나 섬김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섬김(모심)을 현실 문제를 풀어갈 해법으로 제시하려면 구체적인 삶의 장에서 섬김(모심)의 걸림돌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삼보일배, 촛불, 오체투지의 대외적 모심이 현실 안에서 결실을 맺으려면 우리 마음자리, 그리고 일상 안에서의 섬김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가정과 직장, 자신이 속한 종교공동체와 사회 안에서의 섬김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화엄개벽의 모심’이란 허울 좋은 슬로건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 안에서, 그리고 일상 안에서 모심이 어려운 까닭은?



2. 섬김의 주체로서의 ‘여성성’ 회복

김지하 시인은 개벽을 실천할 모심의 참 주체로서 ‘여성성’을 말한다. 그리고 그 여성성을 1만 9천 년 전 파미르고원 마고성의 창조신인 여신, 그 잉태의 힘에서 찾고 있다. 마고라는 여신의 표상이야말로 여성성으로 드러난 비로자나의 화엄정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투쟁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이 여신 모성의 전통을 상실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가부장제에 의해 억압되기 전 고대역사 안에 엄존해온 모권제의 사상적 근원에 있는 여성성인 모성을 김지하 시인은 모심의 주체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여성을 모심과 살림의 참주인으로 삼는다는 것은 남성을 여성에 의존하도록 길들이는 것도 아니며, 남성과 여성의 자리를 바꿈으로서 이루어지는 개벽세상도 아닐 것이다. 우리가 풀어가야 할 과제는 남성 중심에서 여성 중심으로의 자리바꿈이 아니라 남성은 자신 안의 여성성을, 여성은 자신 안의 남성성을 재발견하여 균형있는 참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모심의 주체로서의 여성성은 남녀로 이분화된 한 쪽 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며 상생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여성적 원리이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性을 넘어 존재 안에 드리운 바로 그 여성성을 회복해감이 중요하리라 본다. 섬김의 주체로서의 여성성은 온전한 인간성 회복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가정, 직장, 사회공동체에서 우리 모두가 온전한 인간성을 회복하는데 장애되는 요인은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3. 영성적 차원과 탈중심적 소공동체 차원

앞서 필자는 ‘모심’을 구체화함에 있어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이고, 모심의 주체로서의 ‘여성성’을 말함에 있어 장애요인이 무엇인지 숙고해볼 것을 제안했다. 두 측면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하나는 영성적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탈중심적 소공동체 차원이다.

1) 영성적 차원

영성적 차원은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다. 왜 내 삶의 자리에서 ‘모심’이 어려운지 그리고 모심의 주체로서 여성성을 실현해감에서 무엇이 장애가 되는지 성찰해보자는 것이다. 결국 ‘모심’이 어려운 것은 내 자존심을 버리기 싫기 때문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 자존심의 실체는 무엇인지 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 나인지, 나의 정체성인지, 아니면 나의 허상인 거짓자아에 불과한 것인지를....
내가 참된 주체로 산다는 것, 그것은 바로 ‘모심’의 삶에 있다. 모심의 삶을 살 때 우리는 참된 자기의 본래성을 회복할 수 있다. 김지하 시인이 말한 ‘모심’은 회개를 첫 가르침으로 삼은 예수의 언표와도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회개를 통해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나라를 실현함은 예수의 가르침의 정점인 ‘섬김(모심)’을 사는데 있기 때문이다.
일본 조동종의 창시자인 도겐(道元, 1200-1253)은 “불도(佛道)를 배우는 것은, 자기를 배우는 것이며, 자기를 배우는 것은 자기를 잊는 것이다”(『正法眼藏』「現成公案」)라고 한다. 도겐의 표현대로 자기를 잊는 것이 본래성을 회복하는 길이라면, 그 길이 곧 모심의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2) 탈중심적 소공동체 차원

앞서 말한 영성적 차원이 개인적인 면에서 성찰한 것이라면, 탈중심적 소공동체 차원이란 그 영성이 현실 안에 구체화되기 위해 영성의 지속적인 연대성을 유지해감에 필요하다는 측면을 말한 것이다. 김지하 시인은 ‘촛불’을 지도자도 조직도 강제도 없이 그때 그때의 합의에 의해 도달한 ‘집단지성’이라고 본다.1)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그들 마음마다에 드리운 ‘천지공심의 씨앗들’이라고 풀이한다. 김지하 시인이 말했듯이 촛불이 ‘영을 동반한 생명사건’이라면 그 생명력은 지금도 계속 피어오르고 있는가? 또한 그 촛불의 힘을 계속 유지하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아무리 생태문제 등 일련의 현실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도, 영성이 부재한 정부 정책 앞에서 무력함을 느낀다. 거대한 정책과 맞서기 위해선 우리의 영성을 공유하고 나누며 표출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지금 자신이 속한 소공동체(가정, 교회, 사찰, 직장, 서클, 지역)가 그런 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성찰하고,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이를 방해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토론해 보았으면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속한 신앙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례전(예배, 미사, 예불 등)에 우리의 변형된 의식을 수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한 우리의 가정이 영성적 통합의 장이 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그 요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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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5월2일 촛불집회 1주년을 맞이하여 촛불집회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낸 평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촛불집회는 시민의 재발견이었다,” “거대한 정치 교육장이었다,” “10대 촛불소녀들을 통해 몸에 체화된 민주주의의 결실이었다”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는가 하면, ”촛불은 아름다웠지만 계급적 문제에 대해선 무력했고 둔감했다" "자신의 계층과 가까울수록 촛불은 좀 더 빛나며 거리가 멀어질수록 촛불은 어둡다"고 촛불집회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또 “아무리 주장이 옳아도 촛불집회와 같은 광장민주주의의 기능은 국가 기본 법질서의 메커니즘을 보완할 수 있을 뿐 대체할 수는 없다. 스스로의 한계와 분수를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법천지의 약육강식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는가 하면,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피력하기 위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부정의 소리들도 있다. 이러한 긍정과 부정의 평가 이외에 다음과 같이 조심스럽게 평가하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 목소리로 외쳐댔건만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고,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고 하지만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볼 때 어떤 운동의 성패를 가늠하기에 1년이란 너무 짧은 시간이다” “아직까지 마음의 촛불을 끄지 않은 사람들, 그들이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갈 것이다.”


마음공부 기반으로 치유·성장·평화를 이야기 하다 < 교화 < 뉴스 < 기사본문 - 원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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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기반으로 치유·성장·평화를 이야기 하다
기자명 이여원 기자
입력 2019.11.14
호수 1959


제10회 마음인문학 국제학술대회
마음·삶·사회의 평화를 위한 담론
제10회 마음인문학 국제학술대회는 국내외 석학들이 함께 자리해 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음공부 전통과 새로운 마음공부법을 심도 있게 짚었다.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소장 고시용)가 지난 10년간의 성과를 돌아보며 6일~9일 “마음공부 기반 치유· 성장·평화-마음인문학의 성과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원광대 숭산기념관에서 제10회 마음인문학 국제학술대회를 진행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그간 수행됐던 마음인문학의 연구사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마음인문학을 한층 더 심화시키는 자리였다. 이를 위해 마음인문학연구소 교수진과 국내외 석학들이 함께 자리하며 학계나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음공부 전통이나 새로운 마음공부법을 심도 있게 짚었다. 총 나흘간 진행된 학술대회는 6일 호주 출신의 존 앨런이 진행하는 ‘마음공부의 원류들을 찾아서’라는 주제의 집중워크숍으로 시작했다.

워크숍에서는 호주 원주민과 불교 및 타 전통에서 유래하는 마음치유의 지혜를 활용하여 오늘날 제기되는 개인적· 환경적 도전을 헤쳐나가는 전략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됐다. 7일에는 ‘마음인문학의 회고와 전망-마음공부 공동체의 토대 구축’ (장진영·마음인문학연구소), ‘유아 정신건강 및 웰니스에 세대간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마음챙김 양육 프로그램들’(니르베이 싱·미국)의 주제발표를 시작으로, 오후에는 두 분과로 나눠 발표가 있었다.

8일에는 각 두 분과로 나뉜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이후 9일까지 원불교 영산성지 현장답사, 영광 국제마음훈련원에서 진행되는 종합토론이 이어지며 건강한 마음의 확장과 공유를 통해 열린 사회의 안녕과 평화의 의제까지 고민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마음인문학연구소 고시용 소장은 “생활 중심의 마음공부는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새로운 시대코드를 반영하며 재구성되고 있다”면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지난 10년간 진행된 마음인문학연구소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그동안 심도있게 논의된 마음공부의 사회과학적 담론을 통해 마음공부의 외연을 사회적 차원으로 넓히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2019년 11월15일자]


원불교의 마음공부와 치유(治癒) : 양은용 (원광대 한국문화학과 교수)

원불교의 마음공부와 치유(治癒) : 네이버 블로그

원불교의 마음공부와 치유(治癒)
양은용 (원광대 한국문화학과 교수)

차례

Ⅰ. 서언
Ⅱ. 소태산 종교관의 구조
Ⅲ. 원불교 교리상의 마음공부
Ⅳ. 마음공부와 치유
Ⅴ. 결어
===
원불교의 마음공부와 치유에 대한 논평
최현민 수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대우교수, 사랑의 씨튼수녀회)

차례

Ⅰ. 신종교와 신영성운동의 관계
Ⅱ. ⾃他⼒竝進 길로서의 마음공부
Ⅲ. 법신불 일원상의 인격성과 비인격성
===

원불교 마음공부와 치유

Ⅰ. 서언
질병 ․ 빈곤 ․ 전쟁의 3대 사회악이 종교를 낳게 한다는 말이 있다. 종교의 본령이 사회구원에
있으므로, 질병과 빈곤과 전쟁이라는 사회적 고통이 심화될 때, 성자의 구세이념이 펼쳐진다는
뜻이다. 불교의 원점에서 파악된 고(苦)와 이에 대한 자비(慈悲), 그리스도교의 원죄(原罪)와 사랑이
강조된 것은 이러한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따라서 종교의 구세이념은 새로운 이념의 탄생에 영향을 미친다. 성립사적으로 보면, 기존종교의
가르침이 변화된 사회상황 아래서 기능하지 못할 때 사회에서는 새로운 구세이념을 요청하게 되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 새 종교운동이다.
바라문교의 가르침 아래서 불교가 성립하고, 유대교 아래서 그리스도교가 성립한 것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새로운 종교는 기존종교의 구세이념을 포월(包越)하는 가르침을 제시하려 한다. 당시
사회가 그 이념을 받아들일 때 다시 말하면 새 종교운동의 구세이념이 목적을 달성할 때 그것은
사회적 생명력을 갖게 되고 그러지 못할 때는 소멸하고 만다.
그렇다면 사회의 존재형태가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진 근현대에 와서 종교이념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근대 인류는 격변하는 사조(思潮)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구세이념을 갈구하게 되었다. 서세동
점(西勢東漸)의 정치사회사조 아래 혼란과 전쟁을 경험하였고 새로운 체제와 이념을 터득해 온
것이다.
물질문명의 이기에 탐닉하면서 정신문화의 축을 다시 세워야하는 과제를 안고, 교통 ․ 통신의
발달과 함께 공동체적 운명을 가꾸어 왔다. 근대 이후 인류가 경험해온 전쟁, 인구증가와 자원고갈,
환경오염, 도덕적 타락 등의 현상은 지구촌사회를 이대로 두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공감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인류는 이러한 위기상황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 구세이념에서 볼 때 가장 두드러진
흐름을 신종교(新宗敎)운동과 신영성(新靈性)운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먼저 신종교운동은 19세기를 전후로 사회구제를 외치며 일어난 사회운동이다.㉮ 지구촌이라
불릴 만큼 변화된 사회 환경 아래서 새로운 구세이념을 모색함으로써 그것은 민족과 지역을 넘어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성립하였다.
기존종교의 구세이념을 비판하고 또 새롭게 해석하면서 기존종교의 근대적 변모를 자극하였다.
한국 신종교의 사상적 특징을 후천개벽(後天開闢)사상 ․ 원융회통(圓融會通)사상 ․ 민족주체(民族主
體)사상 ․ 인간존중(人間尊重)사상 ․ 사회개혁(社會改革)사상 등으로 정리할 수 있는 것처럼㉯ 이
㉮ 姜敦求,「新宗敎硏究序說」(서울대 종교학연구회 편,『宗敎學硏究』6, 1987, 191쪽); ⾦洪喆,『韓國新
宗敎思想의 연구』, 집문당, 1989, 25쪽 참조.
㉯ 졸고,「韓國新宗敎運動과 그 사상」(『東洋宗敎學』11, 원광대 동양종교학과, 2001, 9쪽 이하) 참조.
이를 盧吉明,『韓國新興宗敎硏究』(경세원, 1996) 40쪽 이하에서는 ⼈尊사상과 民衆사상․開闢사상
과 地上天國신앙․救世主신앙과 選民사상․調和사상과 統⼀사상․解寃사상과 傳統⽂化繼承사상으로 정
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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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와 치유

운동에는 시대정신이 뚜렷하게 반영되어 있다. 지역이나 민족국가에 따라 문화기반이나 사회상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제도이념의 구성 체계 등에는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물질문명에 대응한
정신문명, 곧 영성의 혁명을 강조함으로써 인류정신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신영성운동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세계적으로 전개된 사회운동이다. 신종교운동이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여러 형태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이 신영성운동도
그러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는 미국 등지에서 뉴에이지운동(New age Movement)으로㉰ 일본에서는
신영성운동 외에 정신세계 등으로 불리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종교나 과학과 같은 과거의
문화현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성을 찾으려고 한다. 영성으로 불리는 새로운 정신세계를 열어나감으
로써 절대자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자기변용(自己變容)이나 치유(治癒)의 의미가 강조된다.
물론 이 두 가지 운동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종교사상의 흐름에서 보면 사회변동에
대한 종교의 대응은 전통종교나 신종교운동 모두가 전 세대와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고,㉲ 신영성운동에
서도 그 근저에 종교적 흐름이 깔려 있다.
생명 중시의 기철학(氣哲學)적 세계관이 강조되고 건강문제가 사회적 화두(話頭)로 부각된 가운데
전개되는 이들 운동은 인류의 새로운 정신차원을 모색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사회구원의 문제는
결국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지구촌 사회가 된 오늘날에 그것은 밖으로 환경과 생태계로 연결되고, 안으로는 영성 내지 정신세계
와 관련되어 있다. 사회가 복잡하고 이념이 다양해진 만큼 극절한 치유를 통해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환경회복과 인간회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인간 삶의 새로운 활로를 말해준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근현대사회의 변혁사조 아래 소태산(少太山 朴重彬, 1891-1943)에 의해 1916
년 성립한 원불교의 교리체계를 통해 그 구세원리의 일단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는 만유로 벌여
있는 세상을 은(恩)으로 파악하며 이에 따라 감사생활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의 구세이념을
특히 마음공부와 관련하여 치유적 성격을 밝히려는 것이다.
㉰ 존슨 로버트 L,『반문화운동과 종교』, 이장식 역, 현대사상사, 1976; 全明秀,「뉴에이지운동의 전개
와 변모-대체종교에서 대중문화로의 방향전환에 관한 시고」(『圓佛敎思想과 宗敎⽂化』34,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2006) 등 참조.
㉱ 島薗進,『精神世界のゆくえー現代世界と新霊性運動ー』, 東京堂出版, 1996; 島薗進,「新靈性⽂化と宗
敎」(원광대학교 편,『미래사회와 종교』, 원광대출판국, 2000) 등 참조.
㉲ 신종교의 개념에 근대의 변화된 사회상황 아래 변용된 종교활동의 대부분을 포함시키고 있는데
근래 한국사회에서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이 달라지면서 종교단체와 수련단체의 경계가 모호해진
경우가 적지 않다.
㉳ 소태산은 우주와 세계, 인간관계를 은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는 은을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생
명적 관계로 규정하고, 이를 네 가지 범주로 규정한 것이 사은이며, 사은의 실천이념이 감사생활
로 요약된다. 원불교 은사상에 대해서는 李鉉澤,「원불교의 은사상」(원불교사상연구원 편,『원불교신
앙론 연구』, 원불교출판국, 1996, 185쪽 이하); ⾦洛必,「恩思想의 ⽣哲學적 조명」(같은 책, 284
쪽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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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와 치유

Ⅱ. 소태산 종교관의 구조
원불교의 교리적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립과정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기존종교의 역할이나 구세이념에 대한 평가가 따르고, 그 영향 등이 드러나기 때문인데 소태산의
종교관과 관련하여 다음의 세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기존종교의 구세이념에 대한 수용과 공존의 태도이다. 새로운 종교는 기존종교나 그 구세이념
에 대한 태도를 나타내기 마련인데 원불교에서는 그 역할을 인정하고 협력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소태산은,
<1> 천하 사람이 다 행할 수 있는 것은 천하의 큰 도요, 적은 수만 행할 수 있는
것은 작은 도라 이르나니, 그러므로 우리의 일원종지(一圓宗旨)와 사은사요(四恩: 天地
恩․父母恩․同胞恩․法律恩, 四要: 自力養成․智者本位․他子女敎育․公道者崇拜) 삼학팔조(三
學: 精神修養․事理硏究․作業取捨, 八條: 信․忿․疑․誠․不信․貪慾․懶․愚)는 온 천하 사람이
다 알아야 하고 다 실행할 수 있으므로 천하의 큰 도가 되나니라.㉴
<2> 참다운 도덕은 개인 ․ 가정으로부터 국가 ․ 세계까지 다 잘 살게 하는 큰 법이
니, 세계를 맡긴들 못할 것이 무엇이리요.㉵라 하여,
그 교법을 천하의 큰 도라고 자신한다. 세계를 맡겨도 능히 지도해나갈 수 있는 가르침이라
고 본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 법위(法位)를 갖추어감에 있어서 불퇴전(不退轉)에 이르는 출가위
(出家位)의 승급조항에「현재 모든 종교의 교리를 정통하며」㉶라 하고,「모든 종교의 교지도 이
를 통합 활용하여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의 신자가 되자는 것이니라.」㉷ 라고 하여 기존종교의
구세이념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3> 모든 교회의 서로 달라진 내역과, 그 근원은 원래 하나인 내역도 또한 이와 같
으므로, 인지가 훨씬 개명되고 도덕의 빛이 고루 비치는 날에는 모든 교회가 한 집안
을 이루어 서로 융통하고 화합하게 되나니라.㉸
<4> 예수교에서도 예수의 심통 제자만 되면 나의 하는 일을 알게 될 것이요, 내게
서도 나의 심통 제자만 되면 예수의 한 일을 알게 되리라. 그러므로 모르는 사람은 저
교 이 교의 간격을 두어 마음에 변절한 것 같이 생각하고 교회 사이에 서로 적대시하
는 일도 있지마는, 참으로 아는 사람은 때와 곳을 따라서 이름만 다를 뿐이요 다 한
집안으로 알게 되나니, 그대의 가고 오는 것은 오직 그대 자신이 알아서 하라. … 나
의 제자 된 후라도 하나님을 신봉하는 마음이 더 두터워져야 나의 참된 제자니라.㉹▷
㉴ 『⼤宗經』교의품 2.(『圓佛敎全書』, 원불교출판사, 1977, 112쪽)
㉵ 같은 책, 실시품 14.(같은 책, 333쪽)
㉶ 『正典』수행편 법위등급.(같은 책, 91쪽)
㉷ 같은 책, 총서편, 교법의 총설.(같은 책, 22쪽)
㉸ 『대종경』전망품 13.(같은 책, 3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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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와 치유

이러한 소태산의 종교관을 구세이념에서 보면 자신이 조직한 교리제도가 너른 세계의 많은
생령(生靈)을 건지는데 가장 적실한 가르침이며 구세 사업에는 모든 종교와 만나고 협력해나가야
한다는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법통을 이어 2대 종법사(宗法師)에 오른 정산(鼎山 宋奎, 1900-1962)이 삼동윤리(三同倫理:
同源道理․同氣連契․同拓事業)를㉻ 밝히고 3대 종법사인 대산(大山 金大擧, 1914-1998)이「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 개척하자 하나의 세계」라㉮ 밝힌 것이 이러한
성격을 증명한다.
둘째, 불교에 연원(淵源)하여 만 종교 만 사상을 아우르는 태도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소태산은
구도(求道)에서 대각(大覺)에 이르도록 까지 고향에서 생활인의 모습을 견지하였다. 물론 구도과정에
서는 깊은 선(禪)적 경지에 들고「이 일을 장차 어찌 할꼬?」하는㉯ 화두로 일관하기도 하였다.
1916년 4월 28일 대각을 이룬 후, 그는 모든 종교의 경전을 열람하는데 그 가운데 『금강경(金剛經)』
을 보고 다음과 같은 감상을 밝힌다.
<5> 서가모니불은 진실로 성인들 중의 성인이라. …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道를 얻
었으나 발심한 동기로부터 도 얻은 경로를 돌아본다면 과거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 되는 바 많으므로 나의 연원을 부처님에게 정하노라. … 장차 회상(會上)을 열 때
에도 불법(佛法)으로 주체를 삼아 완전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리라.㉰
당시 불교가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불교관은 불법(佛法)과
불교(佛敎)를 크게 대별하여 전자를 계승 선양할 가르침으로, 후자를 제도적으로 개선할 대상으로
보는 특징이 있다.㉲
<6> 그가 보는 불법은 천하의 큰 도(道)라 참된 성품의 원리를 밝히고 생사의 큰일
㉹ 같은 책, 전망품 14.(같은 책, 388쪽)
㉺ 졸고,「원불교에서 본 종교 간의 대회원리」(『한국종교연구』4, 서강대 종교문제연구소, 2002, 46
쪽) 참조.
㉻ 1961년 4월에 발표한 涅槃 偈頌으로, 그 내용은『⿍⼭宗師法語』 도운편 34-37(같은 책,
988-991쪽)에 밝혀 있다.
㉮ 『⼤⼭宗師法語』 구세편 15.(자문판, 대산종사법어편수위원회, 2006, 584쪽) 1971년 원불교반백
년기념대회 표어이며, 1989년 2월의「민족평화를 위한 종교인 회의」에 메시지로 보내고, 열반에
이르러 게송으로 삼았다.
㉯ 『圓佛敎敎史』제1편 2장, 대종사의 입정.(『원불교전서』1036-1038쪽)
㉰ 『대종경』서품 2.(같은 책, 95쪽)
㉱ 소태산은「불교가 이 나라에서 여러 백년 동안 천대를 받아 온 끝이라 누구를 막론하고 불교의 명
칭을 가진 데에는 존경하는 뜻이 적게 된지라」(같은 책, 서품 15, 같은 책, 102쪽) 하여, 실상을
파악하고 있다. 그가 1920년에 초안, 출판한『조선불교혁신론』(불법연구회, 1935)은 이러한 그의
불교에 관한 관점을 집약한 것이다.
㉲ 한종만,「원불교의 불교관」(수위단사무처 편,『원불교사상시론』I, 원불교출판사, 1982, 74쪽) 참조.
불법과 불교를 혼용한 경우도 있는데, 대체로 교법은 계승하고 제도는 개혁한다는 관점이 드러난
다.

5

원불교 마음공부와 치유

을 해결하며 인과의 이치를 드러내고 수행의 길을 갖추어서 능히 모든 교법에 뛰어난
바 있나니라.㉳ 고 하여,
만 종교에서 뛰어난 가르침으로 평가한다. 물론 미래의 불법은 과거의 불법과는 달라야 하며,
그 달라진 불법은 장차 세계의 주교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것이 소태산이 말하는 불
교의 시대화․대중화․생활화이다.
<7> 그는 과거에는 유․ 불․ 선(儒佛仙) 삼교가 각각 그 분야만의 교화를 주로 하
여 왔지마는 앞으로는 그 일부만 가지고는 널리 세상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므로 우
리는 이 모든 교리를 통합하여 수양 ․ 연구 ․ 취사의 일원화(一圓化)와 또는 영육쌍
전(靈肉雙全) ․ 이사병행(理事竝行) 등 방법으로 모든 과정을 정하였나니, 누구든지
이대로 잘 공부한다면 다만 삼교의 종지를 일관할 뿐 아니라 세계 모든 종교의 교
리며 천하의 모든 법이 다 한 마음에 돌아와서 능히 사통오달의 큰 도를 얻게 되리
라. 고㉵ 본다.
앞으로의 가르침은 불교에서 비롯하여 유․불․도 삼교사상의 종지를 통하고 만 종교 만 사
상과 원융회통하는 가르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정신개벽(精神開闢)으로 본 한국 신종교의 개벽사관의 수용 태도이다. 그것은 1960년 수운(水
雲 崔濟愚, 1824-1864)의 동학(東學) 창도로 비롯된 신종교운동에서 공통적으로 선언한 시대변화
사조를 계승하는 성격을 지닌다.
개벽이란 암흑과 혼돈에서 천지가 열린다는 뜻으로, 선천세계가 끝나고 대명천지가 도래한다는
뜻에서 후천개벽이라고도 한다. 후천개벽이란 인간중심의 문화개벽으로 새로운 문명세계를 가져오게
되며 한국 신종교에서는 이를 천운의 회복으로 본다.
수운과 함께 연담(蓮潭 李雲圭, 1804-1861-?)에게 배웠다고 하는 일부(一夫 金恒, 1826-1898)는
1881년 『정역(正易)』을 완성함으로써 선후천 교역(先後天交易)을 맞이했다고 술하고 있다.㉶
수운은 「유도불도((儒道佛道) 누천년에 운이 역시 다했던가/ 윤회(輪廻)같이 둘린 운수 내가
어찌 받았으며/ 척조창생(億兆蒼生) 많은 사람 내가 어찌 높았으며/ 이 세상 없는 사람 내가 어찌
있었던고…」라㉷ 하여 삼교의 교화력이 쇠멸했음을 분명히 한다. 개벽의 원리에서 보면 삼교는
선천시대의 구세이념이요, 그러한 시대가 지나 운(運)이 다했다는 논리이다.㉸
㉳ 『대종경』서품 3.(『원불교전서』95쪽)
㉴ 같은 책, 서품 15(같은 책, 103쪽) 참조.
㉵ 『대종경』교의품 1.(같은 책, 111-112쪽)
㉶ 李正浩 저,『正易硏究』(국제대학 인문사회과학연구소, 1976),
200쪽에서는 수운 ․ 일부 ․ 광화(光華 ⾦致寅, 1855-1895)의
3인을 연담의 동학제자로 소개하고 있다. 연담은 기존종교인
유․불․선 삼 교 가운데 수운에게는 선, 일부에게는 유, 광화에
게는 불을 전수했다고 한다.
㉷ 『⿓潭遺詞』敎訓歌.

6

원불교 마음공부와 치유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수운은 결국 하느님을 직접 모실 수 있다는 자신을 갖는다. 수운은 교화력을
잃은 유교와 불교에 대하여 당시 세력을 확대하던 서학(西學;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는 운을 인정하고
있는데,㉹ 그의 행동을 살펴보면 유 ․ 불 ․ 도 삼교의 문화풍토를 수용하면서 그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르침을 추구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선천은 억압과 폭력으로 불평등과 부조리가 가득 차서 어둡고 괴로운 시대이며, 후천은 협력과
조화에 의해 평등과 평화가 가득 차서 밝고 서로 잘 사는 시대이다. 묵은 세상이 가고 새 세상이
오는 것은 민중의 바램이다.
이 후천개벽시대가 오는 과정에 있어서 수운은 괴질(怪疾)이 존재한다고 보고, 증산(甑山 姜一淳,
1871-1909)은 병겁(病劫)을 말하고 있는데, 소태산은 이를 정신개벽으로 주장한다.㉺ 수운에서
비롯되어 한국 신종교운동에 있어서 공유되었던 개벽사관을 소태산은 정신개벽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정신개벽은 소태산의 개교, 즉 원불교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그것은
대각을 이룬 그의 시대사회를 바라보는 코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8> 대종사(소태산) 당시의 시국을 살펴 보시사 그 지도강령을 표어로 정하시기를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하시니라.㉻
<9> 현하 과학의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점점
쇠약하고 사람이 사용하여야 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하여 쇠약한 그 정신을 항복
받아 물질의 지배를 받게 하므로, 모든 사람이 도리어 저 물질의 노예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생활에 어찌 파란고해(波瀾苦海)가 없으리요. 그러므로 진리적 종
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함이 그 동기니라.㉮
이 가운데 정신과 물질을 아울러 나가는 도학과학병진론(道學科學竝進論)이나 신앙과 수행(훈련)
이라는 자타력병진론(自他力竝進論) 등 그의 다양한 관점의 단초를 열고 있다. 정신개벽이란 달라진
시대환경 아래서 주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므로 개인에게는 물론 사회에 있어서의 치유에까지
전개될 때 의미를 지니게 된다.
소태산의 도학과학병진론을 치병과 관련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10> 이운외(李雲外)의 병이 위중하매 그의 집안사람이 급히 달려와 대종사께 방책
을 문의하는지라, 말씀하시기를 곧 의사를 청하여 치료하라. 하시고, 얼마 후에 병이

㉸ 李世權편저, 東學思想(경인문화사, 1987) 82쪽 참조.
㉹ 崔東熙, 水雲 (金用天·崔東熙저 天道敎, 1973,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 57쪽) 참조.
㉺ 김홍철, 「근세 한국종교사상에 있어서의 病觀 연구」(동저, 圓佛敎思想論考, 원광대학교출
판국, 1980, 307쪽 이하) 참조.
㉻ 『대종경』서품 4.(『원불교전서』 95-96쪽)
㉮ 『정전』총서편, 개교의 동기.(같은 책, 21쪽)

7

원불교 마음공부와 치유

평복되니,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일전에 운외가 병이 중하매 나에게 먼저 방침을 물은
것은 그 길이 약간 어긋난 일이니라. 나는 원래 도덕을 알아서 그대들의 마음병을 치
료해주는 선생이요, 육신 병의 치료는 각각 거기에 전문하는 의사가 있나니, 이 앞으
로는 마음병 치료는 나에게 문의할지라도, 육신병 치료는 의사에게 문의하라. 그것이
그 길을 옳게 아는 것이니라.㉯
그는 병을 육신병과 마음병으로 구분하고 육신병 담당은 의사이므로 병원을 찾고, 자신은 마음병
치료인이므로 그에 관해 문의하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현대 의학을 인정 수용하는 태도가
분명해진다. 그의 개벽사관은 물질문명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선용할 인간의 자주력이
필요하며, 그것을 정신개벽이라 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소태산의 종교관은 개벽사관을 통한 시대인식과 불법에 연원한 교법으로 기존종교의
구세이념과 융통조화하는 원리이다. 독자성을 가지면서도 이웃종교와 공존하면서 공동선(共同善)을
구축하는 종교협력의 관점이 그의 종교관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Ⅲ. 원불교 교리상의 마음공부
소태산의 구세이념은『정전(正典)』에 그 대체가 담겨 있다. 초기교서인『수양연구요론(修養硏究
要論)』(1927)과『육대요령(六大要領)』(1931)을 거쳐 그의 열반을 앞둔 일제말기에『불교정전(佛
敎正典)』(1943)으로 발간했던 것을, 1962년에 현재의 체제로 결집하였다.㉰ 원불교 교리체계는『정
전』의 머리에 수록된 「교리도(敎理圖)」㉱를 통해 그 구성체계가 드러나며, 마음공부 원리도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교리도」는 중앙 상단의 법신불일원상(法身佛一圓相, 〇)을 정점으로 3등분하고 있다. 중앙은
법신불 원리를 설명하고, 오른 쪽은 수행문, 왼쪽은 신앙문을 배치하고 있다. 수행문에는 삼학과
팔조 그리고 아래에 수행의 강령인「무시선 무처선(無時禪 無處禪)」을 배치하고 있는데 「무시선
무처선」은 「언제나 선, 어디서나 선」으로 번역한다.
신앙문에는 사은과 사요 그리고 아래 신앙의 강령인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을
배치하고 있는데, 「처처불상 사사불공」은 「곳곳이 부처님, 일마다 불공」으로 번역한다. 아울러
이들을 둘러싼 네모서리 밖에 사대강령(四大綱領)인 정각정행(正覺正行) ․ 지은보은(知恩報恩) ․
㉯ 『대종경』실시품 31.(같은 책, 339-340쪽)

때가 급하여 이제 만전을 다하지는 못하였으나, 나의 일생 포
부와 경륜이 그 대요는 이 한 권에 거의 표현되어 있나니, 삼가 받아가져서 말로 배우고, 몸
으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증득하여, 이 법이 후세 만대에 길이 전하게 하라.」(『대종경』 부촉품

㉰ 『불교정전』을 편수하고 소태산은「

3, 같은 책, 400쪽)고 한 것처럼 당시에 골격이 갖추어졌다. 그 가운데 일제시대의 제약을 털어
내는 등의 작업을 거친 것이『정전』이다.『정전』의 성립과정에 대해서는 ⾼時湧,「원불교 교리성립사
연구-『정전』결집을 중심으로」(원광대 박사논문, 2004) 를 참조.
㉱ 『정전』모두 소수.「교리도」는『육대요령』(1931)에 처음 등장하며, 현재의 그것은 1943년 1월에 제
정되었다.(『대종경』부촉품 7장)

8

원불교 마음공부와 치유

불법활용(佛法活用)․무아봉공(無我奉公)을 각각 배치하여 실천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교리도」에 나타나는 일원상은 소태산의 대각에 의해 체현된 근원적 진리의 상징으로, 「일원(一
圓)은 법신불이니, 우주만유의 본원(本源)이요, 제불제성(諸佛諸聖)의 심인(心印)이요, 일체중생의
본성이다.」㉲라고 풀이한다.
여기서 일원이란 일원상으로 표현되기 이전의 진리당체로, 일원즉사은(一圓卽四恩)이며, 일원을
양성(養性) ․ 견성(見性) ․ 솔성(率性)의 세 가지 속성으로 배대한 것이 삼학이다.㉳ 신앙문인 사은사요를
통해서는 복족(福足), 수행문인 삼학팔조를 통해서는 혜족(慧足)으로, 복혜양족(福慧兩足)하면 부처
가 된다는 원리이다.
이러한 교리의 강령이「일상수행의 요법」9조로, 각 조는 다음과 같다.
<11> 1. 심지(心地)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
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自性)의 정(定)을 세우자. 2. 심지는 원래 어리석음이 없
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어리석음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혜(慧)를
세우자. 3. 심지는 원래 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그름을 없게 하
는 것으로써 자성의 계(戒)를 세우자. 4. 신과 분과 의와 성으로써 불신과 탐욕과 나와
우를 제거하자. 5.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 6. 타력생활을 자력생활로 돌리자.
7.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을 잘 배우는 사람으로 돌리자. 8.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을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리자. 9. 공익심 없는 사람을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
이들 각조를 교리에 배대하면 1-3조는 삼학, 4조는 팔조, 5조는 사은, 6-9조는 사요에 해당한다.
9조의 실천강령 속에 주요 교리를 망라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마음공부의 요체로 간주된다.
마음공부는 오늘날 원불교 신앙․수행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흔히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공부에 관련하여 소태산은 말한다.
<12> 지금 세상은 물질문명의 발전을 따라 사․농․공․상에 대한 학식과 기술이 많이
진보되었으며, 생활 기구도 많이 화려하여졌으므로 이 화려한 물질에 눈과 마음이 황
홀하여지고 그 반면에 물질을 사용하는 정신은 극도로 쇠약하여 주인된 정신이 도리
어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말았으니 이는 실로 크게 근심될 현상이라.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물질이라도 사용하는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 물질이 도리
어 악용되고 마는 것이며, 아무리 좋은 재주와 박람박식(博覽博識)이라도 그 사용하는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 재주와 박람박식이 도리어 공중에 해독을 주게 되는 것이며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그 사용하는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 환경이 도리어 죄업을
돕지 아니하는가.
㉲ 같은 책.
㉳ 韓鍾萬,「⼀圓相眞理의 相卽性」(원불교사상연구원 편,『일원상진리의 제연구』상(원광대출판국, 1989,
327쪽 이하) 참조.
㉴ 『정전』수행편, 일상수행의 요법.(『원불교전서』 54쪽)

9

원불교 마음공부와 치유

그러므로 천하에 벌여진 모든 바깥 문명이 비록 찬란하다 하나 오직 마음 사용하는
법의 조종 여하에 따라 이 세상을 좋게도 하고 낮게도 하나니, 마음을 바르게 사용하
면 모든 문명이 다 낙원을 건설하는 데 보조하는 기관이 되는 것이요, 마음을 바르지
못하게 사용하면 모든 문명이 도리어 도둑에게 무기를 주는 것과 같이 되나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은 새로이 각성하여 이 모든 법의 주인이 되는 용심법(用心法)을 부
지런히 배워서 천만 경계에 항상 자리이타(自利利他)로 모든 것을 선용하는 마음의 조
종사가 되며, 따라서 그 조종 방법을 여러 사람에게 교화하여 물심양면으로 한 가지
참문명 세계를 건설하는 데에 노력할지어다.㉵
<13> 모든 학술을 공부하되 쓰는 데에 들어가서는 끊임이 있으나, 마음 작용하는
공부를 하여 놓으면 일분 일각도 끊임이 없이 활용되나니, 그러므로 마음공부는 모든
공부의 근본이 되나니라.㉶
그는 구세이념의 본질이 용심법에 있고, 이를 수행과 학습을 아우른 개념으로 마음공부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정산 역시 같은 용어를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14> 송죽(松竹)의 가치를 상설(霜雪)이 드러내듯이 공부인의 가치는 순역경계가 드
러내나니, 각자에 난관이 있는 때나 교중에 난관이 있는 때에 그 신앙의 가치가 더 드
러나고 그 공부의 가치가 더 드러나나니라. 국가에서 군인을 양성하는 것은 유사시에
쓰자는 것이요 도인이 마음공부를 하는 것은 경계를 당하여 마음 실력을 활용하자는
것이니라.㉷
<15> 학인이 묻기를 “이 세상에서 어떠한 공부가 제일 근본되는 공부가 되나이까.”
말씀하시기를 “마음공부가 제일 근본되는 공부가 되나니라. 마음공부는 모든 공부를
총섭하나니, 마음공부가 없으면 모든 공부가 다 바른 활용을 얻지 못하나니라.” 또 묻
기를 “이 세상에서 어떠한 기술이 제일 근본되는 기술이 되나이까.” 말씀하시기를 “인
화하는 기술이 제일 근본되는 기술이 되나니라. 사람 잘 화하는 기술은 모든 기술을
총섭하나니 인화하는 기술이 없으면 모든 기술이 다 활용되지 못하나니라.”㉸
<16> 과수를 기르는 데에도 뿌리에 거름을 주어야 그 과수가 잘 자라고 훌륭한 결
실을 보게 되는 것 같이, 사람의 뿌리는 마음이라 무엇 보다 먼저 마음공부에 힘써야
훌륭한 인격을 이루나니, 이 마음공부를 여의고 어찌 혜복의 결실을 바라리요.㉹
원불교에서는 이러한 마음공부 개념을 정리하여 1977년 마음공부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래 많은
논의와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들에는 마음공부의 개념 작업에서부터 마음이 무엇이며, 마음공부의
㉵ 『대종경』교의품 30.(같은 책, 130-131쪽)
㉶ 같은 책, 요훈품 1.(같은 책, 315쪽)
㉷ 『정산종사법어』 권도편 31.(같은 책, 878쪽)
㉸ 같은 책, 무본편 6.(같은 책, 907쪽)
㉹ 같은 책, 무본편 9.(같은 책, 908쪽)

10

원불교 마음공부와 치유

대상과 방법, 그리고 공부가 이루어지는 이른바 경계와 마음의 관계 등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한내창은 이러한 선행 연구에 바탕하여 원불교의 마음공부를 「1) 경계에 접하여, 2) 이 경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마음(객체적 자아)을, 3) 또 다른 마음(주체적 자아)이 지켜보면서, 4) 즉각적인
반응을 일단 멈추고(경계에 끌려가지 아니하고), 5) 성품(자성)에 비추어, 6) 반응하는 마음이 적절한지
대조해, 7) 경계를 원불교적 가르침에 맞게 활용하는 노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Ⅳ. 마음공부와 치유
그런데 마음공부를 모든 공부의 총섭 원리로 본다면 정신개벽과 의미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신개벽은 물질문명의 이기에 빠져 주체성을 상실한 현대사회에 대한 병맥진단이라는 점에서
치유를 전제한다.
은사상에 입각해서 보면 감사생활로, 삼학수행에서 본다면「안으로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이하며
밖으로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하는」정신수양에서부터
「천만 사리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데 걸림 없이 아는 지혜의 힘」이 생기게 하는 사리연구, 그리고「모
든 일을 응용할 때에 정의는 용맹 있게 취하고, 불의는 용맹 있게 버리는 실행의 힘」을 얻게
하는 작업취사공부이다.㉮
이를 요약하면 「응용하는 데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하는 공부가 된다.
그러면 이러한 수행의 방법이 어떻게 치유적인 성격을 지니는가? 소태산은 정신수양의 방법으로
염불(念佛)과 좌선(坐禪)을 주요과목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7> 염불이라 함은 천만 가지로 흩어진 정신을 일념으로 만들기 위한 공부법이요, 순역(順逆)
경계에 흔들리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공부법으로서 … 염불하는 사람이 먼저 이 이치를 알아서
생멸이 없는 각자의 마음에 근본하고 거래가 없는 한 생각에 대중하여, 천만 가지로 흩어지는
정신을 오직 미타일념(彌陀一念)에 그치며 순역 경계에 흔들리는 마음을 무위안락의 지경에 돌아오게
하는 것이 곧 참다운 염불의 공부니라.㉰
㉺ 김도공,「마음공부 방법론에 대한 모색-교단 내 마음공부의 현상과 원리 비판을 중심으로-」(『원불
교사상』 24,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2000, 365쪽 이하); 유명원,「단계별 마음공부 방법론에
대한 고찰-법위등급 6단계를 중심으로-」(『원불교학』 7, 한국원불교학회, 2001, 244쪽 이하); 백
준흠, 「원불교 마음공부에 관한 연구」(『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28,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2004, 109쪽 이하); 김성장,「원불교 마음공부 개념에 대한 연구」(『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29,
2005, 117쪽 이하); 고시용,「원불교 설교에 나타난 마음공부-『월간교화』를 중심으로-」(같은 책,
30, 2005, 159쪽 이하); 유정엽,「일상수행의 요법 1․ 2․ 3조 해석의 문제」(『원불교사상연구원 원
보』 58,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2009, 203쪽 이하) 등.
㉻ 한내창,「원불교 ‘마음공부’ 정의의 한 시도」(『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29, 176쪽).
㉮ 『정전』교의편, 삼학.(『원불교전서』 46-50쪽)
㉯ 같은 책, 수행편, 상시훈련법.(같은 책, 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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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와 치유

<18> 좌선이라 함은 마음에 있어 망념이 쉬고 진성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몸에 있
어 화기(火氣)를 내리게 하고 수기(水氣)를 오르게 하는 방법이니, 망념이 쉰즉 수기가
오르고 수기가 오른즉 망념이 쉬어서 몸과 마음이 한결 같으며 정신의 기운이 상쾌하
리라. … 오래오래 계속하면 필경 물아(物我)의 구분을 잊고 시간과 처소를 잊고 오직
원적무별한 진경에 그쳐서 다시없는 심락을 누리게 되리라.㉱
염불은 마음을 무위안락에 돌아오게 하고 좌선은 몸과 마음이 한결 같으며 정신의 기운이 상쾌해지
는 공부라는 것이다. 물론 수양의 구경은 군인이 전쟁에서 마음을 단련하여 부동심이 되는 기질수양(氣
質修養)과 수도인이 오욕의 경계 중에서 마군을 항복받아 순역경계에 부동심이 되는 심성수양(心性修
養)을 같이 얻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실지의 경계에서 단련하는 것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소태산은 이처럼 마음공부를 직업생활
속에서 적극적인 실천이념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19> 한 가정의 흥망이 호주의 정신 여하에도 달려 있나니, 한 가정이 흥하기로 하
면 첫째는 호주의 정신이 근실하여야 할 것이요, 둘째는 집안사람들이 서로 화합하여
모든 일에 힘을 모을 것이요, 세째는 무슨 실업이든지 먼저 지견과 경험을 얻은 뒤에
착수할 것이요, 네째는 이소성대(以小成大)의 준칙으로 순서 있게 사업을 키워 나갈
것이요, 다섯째는 폐물 이용의 법을 잘 이용할 것이요, 여섯째는 원업(元業)과 부업(副
業)을 적당하게 하며 생산 부분을 서로 연락 있게 할 것이요, 일곱째는 그 생산이 예
정한 목표에 이르기 전에는 그 자금을 다른 곳에 함부로 유용하지 말 것이요, 여덟째
는 목표에 달한 뒤에라도 무리한 폭리는 꾀하지 말고 매양 근거 있고 믿음 있는 곳에
자본을 심을 것이요, 아홉째는 수지를 항상 살펴서 정당한 지출은 아끼지 말고 무용한
낭비는 단단히 방지하여, 이와 같은 치가에 전력하면 그대들의 살림이 자연 불어나고
그에 따라 마음공부 하는 데에도 또한 서로 도움이 되리라.㉳
<20> 사람이 평생에 비록 많은 전곡을 벌어 놓았다 하더라도 죽을 때에는 하나
도 가져가지 못하나니,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는 것을 어찌 영원한 내 것이라 하리
요. 영원히 나의 소유를 만들기로 하면, 생전에 어느 방면으로든지 남을 위하여 노
력과 보시를 많이 하되 상(相)에 주함이 없는 보시로써 무루(無漏)의 복덕을 쌓아야
할 것이요, 참으로 영원한 나의 소유는 정법에 대한 서원과 그것을 수행한 마음의
힘이니, 서원과 마음공부에 끊임없는 공을 쌓아야 한없는 세상에 혜복의 주인공이
되나니라.㉴
예컨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근실한 가운데 살림을 잘 이루면 마음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는
㉰ 같은 책, 수행편, 염불법.(같은 책, 60쪽)
㉱ 같은 책, 수행편, 좌선법.(같은 책, 63-66쪽)
㉲ 『대종경』수행품 16.(같은 책, 151쪽) 참조.
㉳ 『대종경』 인도품 41.(같은 책, 206-207쪽)
㉴ 같은 책, 천도품 17.(같은 책, 293-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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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와 치유

것이다. 치유에서 본다면 일탈에 의한 방법이 아니라 건전하고 적극적인 생활인의 자세를 견지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그가 말하는 혜복의 주인공이란 신앙과 수행에 의해 공덕을 쌓은 인물을 가리킨다.
마음공부에 있어서 직업을 중시하는 것은 정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흥미로운 것은 소태산은 사회도 사람처럼 병이 들며, 치유해야 한다는 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밝힌 사회병의 진단과 처방은 다음과 같다.
<21> 지금 세상은 밖으로 문명의 도수(度數)가 한층 나아갈수록 안으로 병맥(病脈)
의 근원이 깊어져서 이것을 이대로 놓아두다가는 장차 구하지 못할 위경에 빠지게 될
지라, 세도(世道)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깊은 근심을 금하지 못하게 하는 바
이니라. 그러면, 지금 세상은 어떠한 병이 들었는가. 첫째는 돈의 병, 둘째는 원망의
병, 셋째는 의뢰의 병, … 네째는 배울 줄 모르는 병, … 다섯째는 가르칠 줄 모르는
병, … 여섯째는 공익심이 없는 병이니 … 이것이 곧 큰 병이니라.㉶
<22> 그런즉 이 병들을 고치기로 할진대 무엇보다 먼저 도학(道學)을 장려하여 분
수에 편안하는 도와, 근본적으로 은혜를 발견하는 도와, 자력생활 하는 도와, 배우는
도와, 가르치는 도와, 공익 생활하는 도를 가르쳐서 사람 사람으로 하여금 안으로 자
기를 반성하여 각자의 병든 마음을 치료하게 하는 동시에, 선병자의(先病者醫)라는 말
과 같이 밖으로 세상을 관찰하여 병든 세상을 치료하는 데에 함께 노력하여야 할지니,
지금 세상의 이 큰 병을 치료하는 큰 방문은 곧 우리 인생의 요도인 사은사요와 공부
의 요도인 삼학팔조라, 이 법이 널리 세상에 보급된다면 세상은 자연 결함 없는 세계
가 될 것이요, 사람들은 모두 불보살이 되어 다시없는 이상의 천국에서 남녀노소가 다
같이 낙원을 수용하게 되리라.㉷
그가 밝힌 사회의 병은 돈의 병, 원망의 병, 의뢰의 병, 배울 줄 모르는 병, 가르칠 줄 모르는
병, 공익심 없는 병의 여섯 가지이다. 사람의 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병이 깊어져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 같이 사회의 병도 그대로 두면 사회가 파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치유하는 방법은 도학을 장려함으로써 가능해지는데, 구체적으로는 분수에 편안하는 도,
은혜를 발견하는 도, 자력 생활하는 도, 배우는 도, 가르치는 도, 공익 생활하는 도를 가르쳐 안으로
병든 마음을 다스리고 밖으로 세상을 관찰하여 치료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장려할 도학은 구세이념인 교리강령이라고 그는 본다. 아울러 치유된 세상은「모두 불보살이
되어 다시없는 이상의 천국에서 남녀노소가 다 같이 낙원을 수용」한다는 것이다. 치유된 삶이란
불보살과 천국, 곧 주체와 환경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 정산은「신․분․의․성을 마음공부에 들이대면 삼학공부에 성공하고 사․농․공․상에 들이대면 직업
에 성공하나니라.」(같은 책, 권도편 32)
㉶ 『대종경』교의품 34.(같은 책, 134-135쪽)
㉷ 같은 책, 교의품 35.(같은 책, 135-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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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와 치유

Ⅴ. 결어
이상에서 원불교의 교리구조에 유의하면서 마음공부와 치유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소태산은 물질문명이 범람하던 시기(1916)에 대각을 이루고 원불교를 창립하였다. 교통․통신이
발달하여 지구촌사회를 이룬 가운데 동서의 종교가 공존하는 상황이었다. 그 가운데 전개된 그의
종교관은 기존종교의 구세이념에 대해 수용․조화하면서 이를 포월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깨달음의 차원에서 불교와 만나 불법에 연원을 정하고 유․불․도 삼교를 비롯하여 만 종교 만
사상과의 원융회통을 구하며, 한국 신종교운동에 있어서 기축이 된 개벽사관을 수용하여 정신개벽을
제창하고 있다. 원불교 교리에 나타난 영육쌍전 ․ 이사병행 ․ 도학과학병진 등의 병진이념이 이러한
소태산의 구세이념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원불교 교리는「교리도」에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종지인 법신불일원상을 수행문과 신앙문
으로 체계화함으로써 자타력병진(自他力竝進)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수행문에 삼학팔조, 신앙문에
사은사요를 배치하여 전자를 통해 혜(慧), 후자를 통해 복(福)을 원만하게 갖추도록 한다. 따라서
일원상에 바탕한 삼학팔조, 사은사요는 원불교 교리의 기본강령이며, 원불교의 마음공부도 이것이
주체가 되어 있다. 이를 몰록 드러낸 것이「일상수행의 요법」이다.
마음공부는 여러 가지 개념화가 이루어져 있지만『정전』의 용어를 빌린다면「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공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경계에 물들지 않는 조촐한 한 마음을 간직하는 노력은
종교인의 신앙 ․ 수행에서만이 아니라 세상사를 잘 영위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소태산은 보고 있다.
세상사를 잘 하면 마음공부가 잘 되고, 마음공부가 잘 되면 세상사가 잘 영위되도록 하는 원리이다.
그리고 마음공부로 치유된 세상은「불보살과 천국」의 표현처럼, 인간과 환경이 함께 거듭난 이상의
낙원이라는 것이다.
弓山達也는 최근의 뉴에이지운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1990년대 이후「치유」가 강조되는 사회경향
에 주목하고, 특히 젊은이 문화를 분석하면서 그것을 사람의 몸과 마음을 둘러싼 환경 ․ 우주를
포함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것은 최근의 종교나 신비 주술에의 불신감․무관심의 결과이며, 정신성이나 마음에의 관심층이
종교 ․ 신비 주술로부터 심리학 등의 다른 섹터로 이행하고 있으며, 미국의 뉴에이지가 베트남
전쟁 ․ 환경파괴 ․ 인간소외라고 하는 현대사회의 병소에 대한 깊은 반성으로부터 일어난 것에
비해 일본은 그러한 강인함이나 사회성은 볼 수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한국에 있어서도 신영성운동이 전개된 만큼 탈종교적 경향 등 이와 유사한 사조가 존재할 것이다.
1970년대 말부터 전개된 마음공부 프로그램도 이러한 사회사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용어에서부터 원불교라는 종교적 이미지를 벗어나 생활인이 일상생활 속에서 부담없이 만날 수
㉸ ⼸⼭達也,「젊은이 ⽂化에 있어서 治癒」(『한국종교』 28,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 2004, 297쪽 이
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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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와 치유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2008년에 들어 원불교에서는「마음공부연구소」㉹를
발족하였다. 병든 인간, 병든 사회에서 치유주체 보다는 치유자체가 중요하다는 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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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공부연구소는 2008년 12월 11일에 개원하였다.「종교색에 거부감을 갖는 불특정 다수를 위
한 교화방안으로 마련한 것」(『원불교신문』 2008. 12. 19)이라 발족 의의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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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와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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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의 마음공부와 치유에 대한 논평

‘원불교의 마음공부와 치유’에 대한 논평
최현민 수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대우교수, 사랑의 씨튼수녀회)

1. 신종교와 신영성운동의 관계
양 교수님은 논문의 서론과 결론 부분에서 신종교와 신영성운동을 같은 맥락 안에서 해석
하고 있다. 신종교는 물리적 시설과 신자공동체, 교계제도, 집단적인 예배의식 등을 고루 갖
춘 ‘보이는 종교’인데 반해 신영성운동은 그런 것을 갖추지 않은 ‘보이지 않는 종교’ 형태로
되어 있다.
기공, 단전, 초월명상 등은 건강운동을 표방하지만 분명 종교적 성격이 내포되어 있기에
신영성운동이라 불리 운다. 서구에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뉴에이지운동이나 일본의
정신세계도 여기에 속한다.
21세기는 영성 시대라고 할 만큼 ‘영성’이 유행하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
현대영성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대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명상이나 정신수련을 통해
피폐해진 영육을 치유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명상이
나 정신수련 뒤에 개인주의가 도사리고 있지 않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영성운동은 초자연적 힘이나 카리스마적 존재에 의존하는 대신 자율적 개인의 각성에
의한 영성 개발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기성종교가 인간 본래의 영성을 억압해 왔다고 보
고, 지금이야말로 자유로운 개인에 의한 영성개발이 요청되는 시대임을 강조한다.
현대인들이 신영성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현대의 개인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신영
성운동이 개인에 중점을 두어 인간의 무한한 잠재능력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곧 인간 내부에 있는 신의 모습을 발견하면 인간이 곧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내부의 신성을 끄집어내기 위해 뉴에이지에서는 환생(還生)을 강조한다. 인간
이 환생을 거듭하면 할수록 영적으로 신에 가깝게 진화된다는 것이다. 또한 환생을 강조하면
서 동시에 자신의 신성을 깨닫기 위한 방법으로 명상을 통한 의식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이
와 같이 신영성운동은 인간의 초월능력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킴으로써 신(神)중심에서 우주
적 인본주의로 나아가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영성의 본령은 자기의 본래성-그리스도교에선 하느님의 모상, 불교에선 불성(佛性), 유교에
선 천성(天性)이라 함-을 회복함에 있다. 이러한 자기 본래성의 궁극적인 완성은 이웃과 세
상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개인의 무한한 잠재능력을 개발하여 신이 되고자 함이
아니라, 자신이 모든 삼라만상과 깊은 존재적 연대감을 지닌 ‘관계적 존재’ 곧 ‘공동체적 존
재’임을 자각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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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의 마음공부와 치유에 대한 논평

이 논문에서 신영성운동과 1970년대 말부터 전개된 마음공부 프로그램을 ‘정신적 치유’라
는 측면에서 같은 맥락으로 보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인가? 원불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마음
공부’가 신영성운동이 지향하는 것과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가?

2. 자타력병진(自他力竝進) 길로서의 마음공부
마음공부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원불교를 포함한 신종교를 어떤 시각으
로 보아야 할지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고자 한다. 사회학자인 노길명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
한바 있다.
“신종교는 기본적으로 기존 사회체제 모순과 부조리에 대응하고 그러한 모순과
부조리에 역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기성종교의 기능적 한계성을 비판하면서
등장한다. 따라서 신종교는 기성종교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에 기성
종교는 자신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신종교에 대해 유사종교, 사이비종교, 사교 이
단이라고 하여 그 존재의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대립과 비판을 바탕으로 하는 상호인식은 다종교문화를 지닌 한국 땅에서 살아가
는 우리들에게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최준
식 교수는 “종교의 정당성을 가늠하는 보편적 척도, 그것은 인간 개개인의 영혼 곧 성숙을
목표로 하는데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신종교를 접할 때 이런 척도가 필요하며, 모험적일지라도 서로 도전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대화의 문을 열어두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본다.
원불교는 1916년 창립된 신종교이면서도 한국 내 350여개의 신종교 교단 중 현재 3대 기
성종교인 불교 개신교 가톨릭 다음으로 많은 신도수를 지닌 종단으로 성장해 왔다.㉮ 그 이
유 중 하나로 원불교가 지닌 건전한 종교성을 들 수 있다. 본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 마음공
부는 원불교 교리와 수행의 핵심을 담고 있기에 원불교의 종교성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마음공부에 관해 몇 가지 여쭤보고자 한다.
1) 본 논문에서는 마음공부를 원불교의 교리도에 배치된 ‘신앙문과 수행문’ 양쪽을 아우르
는 마음수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앙문은 사은(四恩)과 사요(四要)를 통해, 수행문은 삼학
(三學)과 팔조(八條)를 통해서 수행한다고 말한다. 신앙문과 수행문을 통한 실천은 궁극적으
로 ‘恩사상’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恩사상이 원불교의 중심이 된 연유에 대해 말씀해주셨으
면 한다.
2) 본 논문의 결어에서 양 교수님은 마음공부는 신앙문, 수행문 양쪽을 함께 병행해서 닦
㉺ 김승혜 외,『한국신종교와 그리스도교』, 바오로딸, 2002, 352쪽.
㉻ 같은 책, 50쪽.
㉮ 1998년 원불교 종교문화연구소 조사에 따른 것인데 어떤 경우는 교단이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
을 파악하기 어려워 300에서 400개 정도라고 막연히 보기도 한다.(같은 책, 17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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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의 마음공부와 치유에 대한 논평

는 ‘자타력병진(自他力竝進)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신앙문이 타력문이라면, 수행문은
자력문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제 수행실천에서는 신앙문보다는 수행문
이 더 강화된 느낌을 받는다. 그 이유는 마음공부가 정신개벽을 지향하고 주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기에 자력수행이 더 강조된 것인가? 아니면 신앙문을 강조하다보면 타력신앙에 떨어지
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인가?
3) 양문(兩門)의 수행방법이 지닌 치유적 성격으로 ‘염불과 좌선’을 드셨는데 이는 불교에
서 행해지는 수행과 같은 것인가? 다르다면 어떤 점에서 다른 것인가? 또한 마음공부에 대
한 이웃종교인들의 호응도나 참여도는 어느 정도인가?

3. 법신불 일원상의 인격성과 비인격성
원불교에서는 법신불 일원상을 궁극적 진리, 궁극적 실재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본다.
이는 소태산 대종사의 종교체험에서 나온 것으로 ‘나와 우주의 합일체험’이라 할 수 있다. 모
든 만물이 그것으로부터 비롯되었기에 일체중생의 본성은 그것과 하나이며, 같은 근원으로
비롯된 모든 만물은 결국 하나라는 것이다. 원불교 신앙강령인 ‘모든 것이 부처 아닌 것이
없으니 대할 때마다 불공을 드리라’는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도 이런 관점에
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양 교수님은 이러한 법신불 일원상을 종교의 궁극적 체험으로 보면서, 불교의 佛, 유교의
태극(太極) 혹은 무극(無極), 도교의 무위자연,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즉 이러한 절대적 경지는 표현은 다르지만 차원은 같다는 것이다. 다석 유영모선생님은 하
느님을 ‘없이 계신 분’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하느님은 있음과 없음을 넘어선 ‘존재 그 자
체’, 불교의 공(空)과 만날 수 있는 경지로 묘사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궁극적 실재는 비인격성과 인격성의 이원론적 사유까지도 넘어서야 하기에
이를 다 포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종교는 궁극적 실재에 대해 강조하는 측면
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교는 인격적인 면을 강조하고, 불교는 비인격적인 면을 강조한다.
공(空), 연기(緣起), 법신불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원불교에서의 법신불은 어느 면에 더 강조
점을 두고 있는가?
원불교에서 매일 아침, 저녁 드리는 기도문이나 참회정진 기도문, 그리고 천도의식 기도문에는
“법신불 사은이시여”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되어있다. (故 노무현 전대통령 영결식에서 볼 수
있었던 원불교 천도재에서 의식을 집전하신 교무님께서 “법신불 사은이시여”로 기도를 시작하신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기도문에서 부르는 법신불 사은은 인격적인 측면을 보여주나 마
음공부를 통해 깨닫고자 하는 법신불 일원상은 비인격적인 성격이 강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법신불이 지닌 인격성과 비인격성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한다.
㉯ 김승혜 외,「한국신종교와 그리스도교」, 바오로딸, 2002, 3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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