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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7

Namgok Lee | 크릴의 공자

Namgok Lee | Facebook

Namgok Lee
2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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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릴의 공자 15장 ‘유교와 서구민주주의’를 읽고 있다.

근대 서양에 중국의 유교를 전한 것은 예수회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선교 목적으로 중국에 가서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중국의 전통 사상과 접했고, 그것을 서양에 전했다.
원래 목적인 선교의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근대 서양에 중국의 사상 특히 공자 사상을 전한 가교 역할을 한 것이야말로 그들이 역사에 남긴 큰 공적이었다.
일부를 발췌 소개한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선교 목적의 수행을 위해 “주자철학(신유학)과 공자 도덕철학을 결합하고 있는 긴밀한 유대를 파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서신을 통하여 그토록 열광적으로 유럽에 보고한 유교가 17,8세기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된 정통 유교가 아니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흔히 신유교라고 불리는 그 정통유교는 복합적인 학설로서 공자사상을 구체화시킨 점도 많지만, 불교의 요소를 받아들인 정교한 형이상학적 철학체계이다. 그러므로 공자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으며 예컨대 볼테르 같은 유럽인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얻을 수도 없었거니와 명석하고 비판적인 정신을 가진 예수회 선교사들의 마음을 끌지도 못하였다. 더욱이 그들은 독자적인 형이상학체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유교 경전을 연구하면 할수록 당시 유행하고 있는 철학이 원시 유교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어떤 개종자는 유교를 배신하였다는 비난을 받자 자신은 전혀 그런 일이 없으며 ‘후세 유가들’의 ‘왜곡된 유교’보다는 가톨릭 안에 공자의 가르침과 더 가까운 교의가 있음을 발견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마테오리치의 말이다. “이  책(유교경전)들을 모두 주의 깊게 조사해보면 이성의 빛과 상반되는 것은 거의 찾을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과 조화되는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이 책들은 서구 어떤 철학자들의 저술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요점을 정리해보자.
중국철학은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유럽에 소개되었으며 그들이 주로 보고한 것은 그들이 최선으로 생각한 것 즉 공자 개인의 사상과 초기 유교 사상이었다. 이 철학은 성격상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영향을 가졌기 때문에 다른 세상에서 온 혁명의 복음처럼 환영받았다. 그러나 얼마 뒤에 유럽인들은 유교의 후세 형태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군주권의 목적에 봉사하도록 공자 철학의 일부를 전도시킨 것이었다. 동시에 그처럼 높이 찬양되었던 중국정치에는 적어도 전제정치의 특성이 실제로 많다는 것이 강조되었으며, 실제 중국 예찬자 가운데는 전제정치의 모범으로 중국을 찬양한 사람도 있었다. 공자의 덕성도 중국정치의 미점도 모두 예수회 선교사들이 선전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발명한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와 동시에 예수회 선교단도 철저하게 불신되었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추방된 끝에 1773년 교황의 명에 의해 해산되었다.  환상은 철저히 깨졌으며 ‘중국의 꿈’은 사라졌다. 18세기 서양은 중국에 대한 관심과 존경이 그처럼 높았지만, 18세기 말 이래로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다.
이 일련의 기이한 사건 결과 프랑스혁명이나 미국혁명의 배경을 추적하는 사람 가운데 많은 사람이 중국사상이 민주주의 철학의 성장에 기여한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게 되었다.>
선교 목적으로 중국에 간 예수회 선교사들이 동서 문명의 가교 역할을 한 것과 같은 일들이 원래의 선교 목적보다 더 큰 역사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일들은 긴 역사를 볼 때 너무나 많다.


Namgok Lee
17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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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가페 정원!!!


Namgok Lee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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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릴의 공자를 읽고 있다. 
제14장 승리(勝利)의 일부분을 발췌한다.

“한무제(漢武帝)의 치세(유교의 왜곡) 이후 약간의 기복은 있었지만, 유교는 정부의 후원을 계속 받았으며 때로는 너무 지나칠 정도의 지원을 받기도 하였다. 그 결과로 유가를 자처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의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유교는 때때로 백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고, 때로는 백성을 억압하는 데조차 이용되었다. 어느 시대건 정부가 학문을 후원하면 사상의 표준화 경향이란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한무제 같은 황제들이 유교를 후원함으로써 유교를 지배하려고 노력한 것도 결코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누가 누구를 삼키느냐?’는 것은 긴 역사의 안목으로 봐야 한다.
정치에 끼친 유교의 영향은 시대에 따라 강도가 달랐지만, 그 영향은 구석구석 스며들었고, 대체로 민주주의라고 할만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정부란 백성의 만족과 복리를 위하여 존재하며 그 책임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 비판은 물론 전복되는 것조차 당연하다는 이론이 2천년간 이처럼 일반화되었던 대국(大國)은 아마 유례가 없을 것이다.
민주정치를 위한 공자의 출발은 괄목할만한 것이었지만, 그 후 그가 제시한 원리에 추가된 것도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그 원리 자체도 충분치 못하였다. 민주정치가 효과적으로 구현되려면 일반 백성들이 군주를 선택하는데 효과적인 발언권을 가져야하며 이 목적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창출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것이 발전되지 못하였으며 다른 곳에서 이것이 성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는 이와 관련하여 흥미있고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이 문제를 고찰하려면 유럽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제 15장 유교와 서구 민주주의)”
마르크스 주의는 러시아 혁명 과정과 만나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변모하면서  한 때 세계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작동하였으나 70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 생명력을 잃었다, 중국에 와서는 중국의 현실과 만나 변모하였다. 마오쩌뚱, 덩샤오핑을 거쳐 시진핑에 이르고 있다. 
유교의 2천년 역사에 비하면 중국 공산당의 역사는 짧은 것이다.
요즘 공자를 들어올리고는 있지만, ‘누가 누구를 삼킬 것인가?’라는 크릴의 흥미로운 질문 앞에 서게 되는 것 같다.
☆ 7년전  아시아 경제신문에 유학의 왕초보가 '시진핑 주석에게 보내는 공자의 메시지'를 써봤군요.
이진홍님의 댓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진홍
https://cm.asiae.co.kr/article/2016113013282113027
[이남곡의 인문의 창]시진핑 주석에게 드리는 글(3)
CM.ASIAE.CO.KR

[이남곡의 인문의 창]시진핑 주석에게 드리는 글(3)
입력2016.12.01 


국가는 인간과 사회의 진화를 가로막는 직간접의 범죄와 부정과 부패를 제거하는 가장 강력한 기구입니다. 개방을 하고 자본주의를 도입하면 덩샤오핑(鄧小平)의 말대로 창(窓)을 열면 파리 모기와 온갖 벌레가 함께 들어오듯 여러 부정적 현상들도 나타나게 됩니다.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말을 할 정도의 시 주석의 노력을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지향하는 이상만은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 또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들입니다. “법제로 다스리고 형벌로 질서를 유지하면, 인민들이 형벌을 면하는 데 급급하여 부끄러움을 모를 것이다. 그러나 덕으로 다스리고 예로써 질서를 유지하면 부끄러움을 알고 바르게 될 것이다.”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제2편 위정)


“송사를 듣고 판결을 함에는 나도 다른 사람과 같으나 반드시 송사가 없도록 해야 한다.”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제 12편 안연)


위의 구절들은 국가와 정치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고금을 통해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최고 최선의 인권 보장은 좋은 정치와 좋은 제도입니다. 그러나 범죄자의 인권 보장을 포함한 근대 서양의 형벌 제도에 대해서는 진지한 검토와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는 것은 오래된 동양의 이상주의에 더 부합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목적을 가진 당(黨)이나 국가일수록 그 절차나 과정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남곡의 인문의 창]시진핑 주석에게 드리는 글(3)


물론 저 같은 촌부(村夫)가 짐작할 수 없는 많은 고충이 거대한 국가를 경영하는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충분히 존중합니다만,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자본주의 국가의 불평등이나 차별 같은 실질적인 수많은 합법적인 인권침해보다 오히려 중국의 정치범 탄압이나 범죄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이 더 이슈화되는 것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시 주석님,


마지막으로 민족문제와 새로운 문명에 대해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중국은 광활한 영토와 55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그 자체로 세계국가입니다. 미국이 이민(移民)에 의해 몇 백 년 동안에 인위적으로 형성된 세계국가라면, 중국은 수천 년의 역사, 수많은 분열과 통일을 경험해 온 세계국가입니다.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 이후로 '이념의 종언'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불완전한 정치 이데올로기로서의 사회주의를 이념이라고 하면 성립하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이념을 '우주 자연의 리(理)에 부합하는 인간의 관념'으로 해석한다면, 그런 이념의 시대는 온 적이 없습니다. 이제 와야 합니다.


중국에게는 패권다툼이라는 현재의 세계질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의연히 대처해야겠지만, 그 힘의 원천은 내부에 진정으로 리(理)에 바탕을 둔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권력은 총구(銃口)에서'라는 말은 지금까지의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는 맞는 말일지 모르지만, 진정으로 새로운 질서는 '이념'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공자와 제자의 대화입니다.


"위나라 임금께서 선생님께 정치를 맡기신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하시겠습니까?"
"반드시 명(名)을 바로 세울 것이다."子路曰, 衛君 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 必也正名乎


이 '정명(正名)'을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정하지 않음'은 공자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정명' 또한 고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시대정신을 가장 바르게 실현할 수 있는 종합철학을 세우는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정명'은 진정한 의미의 '이념'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이제 인간과 자연 ·인간 상호간·물질과 정신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 것이 우주 자연의 '리'에 부합하는지가 엄청난 파국적 위기와 함께 근원적으로 물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중국 공산당이 진정한 이념정당으로 진화하여 민족문제를 원활하게 해결함으로써 미래에 도래할 세계정부의 모델을 만드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여러 민족의 자치와 분권을 최대한 확대하면서, 동시에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협력 통합하는 실험은 중국 같은 나라가 아니면 어려운 일입니다.


동시에, 지구적 인류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지금의 소비와 소유 중심의 문화를 정신적 예술적 가치나 욕구가 증대되는 생태적 삶의 문화로 전환하는 새로운 문명의 선두에 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현실에서 더욱 절실한 요구로 됩니다. 8500만명의 중국 공산당원들이 이런 문명적 전환을 시도한다면 인류에 대한 최대의 기여로 될 것입니다.


과거 혁명 시기의 '조사 없이는 발언권 없다'라는 실사구시의 전통을 넘어, '생활 없이는 발언권 없다'는 자각이 중국공산당의 자율적 문화로 자리 잡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화혁명의 길입니다.


존경하는 시진핑 주석님,


저의 글을 이제 마치려 합니다. 너무 잘 아시고 실천하고 계시는 것들에 대해 촌부의 중언부언을 너그러이 받아들여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중국과 중국 인민을 사랑하고, 시 주석의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에서라는 것을 헤아려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2023/04/14

Namgok Lee '인문운동, 좌우를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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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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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논어산책에 다녀왔다.
어제 퇴원한 뒤라 좀 염려도 되었지만, 광주 벗님들의 좋은 기운을 받아서 오히려 가쁜하다.
입원 해 있는 동안 9년전 쓴  페북 글이 올라와서, '인문운동, 좌우를 잇다'는 주제로 다음 글을 소개했다.
====
"대기업을 비롯해 기업이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기업 경영에 도입하고 있다고 들었다.
인간관계ᆞ동기부여ᆞ생산성 향상 등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나아가지 않으면, 진정한 '인문'을 왜곡하게 된다.
나는 진정한 인문이란 인간의  진화를 억압하고 있는 '물신'과 '자기중심성'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효율과 이익을 위해, 이른바 인간관계를 그런 목적과  관련해서  원할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문학을 이용하는 것은 그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 되기 쉽다.
기업의 인문학을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라는 것이다.

수조원, 수십조원이라는 재산은 사실상 개인소유로는  별 의미가 없다.
그것은 본인들의 생각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사회적 자산이다.
그것을 자각하는 것이 '인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산을 어떻게 사회와 인간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까를 연구 실천하는 것이 '인문'이다.
이렇게  나아갈수 있다면 대단히 진취적인 기업문화가 탄생할 수 있고, 훌륭한 기업가가 탄생할 것이다.
그러한 기업ᆞ기업가는 시장의 인간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며, 사회의 평화적 진화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기업의 '인문운동'이다.

사실은  '인문운동'이 절실한 곳은 노동계를 비롯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이른바 진보 진영이다.
  • '새로운 인간상(물신으로부터 해방된)'
  •  '새로운 행복관' 
  • '생명력을 고갈시키는 경쟁이 아닌 자기실현의 노동에 의한 생산성
  • '인간 진화의 과학적인 신념' 
  • '즐거운 삶' 을 위해 
인문운동과 사회적실천이 결합해야 하는 것이다.
일정한 물질적 안정과  한단계 높아진 문명을 향한 정신적 자산은 새로운 주체의 양대기둥이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했지만, 자본의 인문학과 노동의 인문학이
 '인문운동'의 차원에서  만날 수 있다면, 이것은 거대한  '새로움'이 될 것이다."
===

인문운동과 사회적실천이 결합
자본의 인문학과 노동의 인문학의 만남


2023/04/08

230408 Namgok Lee | 공자

(4) Namgok Lee | Facebook
230408
Namgok Lee
1 d
  · 
유가(儒家)로서 학문을 시작하였으나 유가와 절연(絶緣)하고 독자적인 학파를 형성한 묵자가  유가를 격렬히 비판한 배경이 된 것은 유가 가운데 유교의 진정한 원리는 전혀 알지도 못하거나 거기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정치적인 출세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에만 몰두한 사람이 너무나 많았던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와 동시에 공자의 사상과 행태에 만족하지 못한 묵자의 급진성(공자는 이런 사람을 狂者라고 부른 것 같다)을 현대인들 가운데 일부가 공자보다 더 높이 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급진성이 비록 평등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감각에 와닿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인류 보편사(人類普遍史)의 진행에서는 그 영향력이 공자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국소적이다.

그 중요한 차이를 H.G.크릴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묵자는 자기가 누구보다도 세상의 악을 고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고 믿었으며, 공자와 달리 다른 사람에게 자유로운 선택이나 판단의 여지를 허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자신의 말을 들어보자. “나의 가르침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가르침을 버리고 스스로 생각하려는 것은 추수를 포기하고 낟알을 줍는 것과 같다.”
묵자는 빈곤, 무질서 및 전쟁을 비롯한 이 세상의 죄악을 엄격한 권위주의적인 체제로 구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각 집단의 구성원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지도자와 일치되어야하며” 각 집단의 지도자는 다시 그 상급자와 일체가 되는 방식으로 최종적으로는 천자(天子)에게까지 연결되어야 한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 가운데 다음 구절을 연상케 한다. “통합국가의 헌법을 제정하는 원리는 모든 지도자는 하급자에 대해 권위를 갖고, 하급자는 상급자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공자는 사유에 대한 원칙을 제시하였지만, 진리의 고정된 척도는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개인에게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는 책임을 맡겼고 그것도 각자의 자유에 일임하였다.
그러나 지적(知的) 자유에는 필연적으로 정신적 노고가 따르기 때문에 인간은 대체로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공자가 인간의 정신에 제공한 것은 ‘평화가 아닌 검(劍)’이었다.
제자 가운데 공자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극소수였고 따라서 공자의 시체가 식자마자 제자들이 아늑한 지적 안식처를 세우고 그 안에서 성전(聖典) 및 결코 오류를 범할 수 없는 성인의 권위를 찾기 시작한 것은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크릴의 맹자에 대한 다음의 언급도 시대를 넘어 오늘의 유사(類似) 진보주의자들을 돌아보게 한다.
<맹자는 당시의 비교적 우수한 유가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사람이지만, 유가 특유의 약점 즉  상류사회를 선망하는 속물(俗物)이었다. 그의 생활이나 여행은 사실 극히 사치스러웠지만 그는 훨씬 더 사치스러운 왕후(王侯)들을 크게 선망하였다.
맹자는 정의만 구현된다면 자기도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이것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지위나 사치를 경멸하고 덕(德)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척하였지만, (햄릿에 나오는) 귀부인처럼 도에 지나친 항의를 많이 하였다.>


Namgok Lee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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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미진중함시방'
내 마음 안에는 내가 싫어하고 반대한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함께 들어있다.
몸이 안좋으니까 잘 보인다.
공자가 일관한 것은 오직 '수기修己' 였다는 것.
그의 모든 외적 활동은 그것의 자연스러운 외화外化.
공자 사상이 그 숱한  풍랑과 왜곡을 겪으면서도 고전古典으로 살아남아 미래를 열어가는 메시지로 작용하는 핵심.

Namgok Lee
3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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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G.크릴의 공자를 읽으면서 드는 단상 하나.
맹자 대(代)에 오면 유자들 가운데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당당하게 유세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맹자는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조언할 때는 그들을 경멸해야 한다.”고 말하며, 
순자는 “진정한 군자는 천지와 동격이기 때문에 훌륭한 유자가 극도의 궁핍한 처지에 빠져도 왕후는 감히 그와 명예를 다툴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그들의 자존감을 높였다.
그런데 어떻게 포악한 군주들이 유자들이 ‘혁명’을 설교하는 것을 그대로 두었으며, 극단적인 모욕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에게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였는가?
군주들이 전(全) 중국(中國)을 차지하려는 각축전에서 학자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경쟁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맹자는 수십 대의 수레와 수백명의 종자를 거느리고 여행하였고 제후(諸侯) 사이를 전전하면서 식록(食祿)을 받았다.
물론 구성원의 수가 많아지면 뛰어난 사람들이 다수를 점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맹자는 당시 사람들이 인격을 수양하는 유일한 목적이 높은 지위를 얻으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단 목적을 달성하면 주의주장은 더 이상 불필요한 것으로 내던져 버린다고 말하고 있으며 순자도 자기 자신이 유가이면서도 그가 속유(俗儒)라고 부른 자들을 통렬히 비난하였다.
일찍이 공자는 ‘예(禮)’의 자구(字句)에 얽매여 그 정신을 망각하는 것을 특별히 경고하였으며, ‘도(道)’에 뜻을 두고 있는 척하면서 개인적인 쾌락과 출세에 관심을 가진 사람을 비난하였다.
논어 옹야 편에 자하라는 제자에게 소인유(小人儒)가 되지말고 군자유(君子儒)가 되라고 당부하는 말이 나온다.
군자(君子)의 특성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말하지만,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논어 이인편에 나오는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는 말이다.
실제로 인간은 어느 한 쪽으로만 되어 있는 경우는 없다. 다만 이(利)와 의(義) 어느 쪽에 더 끌림이 있는가는  인간을 평가하는데 가장 중요한 지점이 아닌가 한다.
공맹시대의 유자를 요즘 말로 하면 폴리페서(polifessor) 쯤 될 것이다.
맹자나 순자 정도 되는 당당한 폴리페서(polifessor)도 드물지만, 소인유(小人儒)와 비슷한 사람이 많다.
내가 보기에는 진보냐 보수냐 하는 차이보다 군자유(君子儒)와 소인유(小人儒)의 차이가 더 본질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적어도 의(義)에 끌림이 더 강한 지식인이나 정치인이라면 그가 보수건 진보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위기들을 넘어설 수 있는 지혜와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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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6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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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시카고에서 출생한 미국의 학자 H.G.크릴이 ‘개혁가 공자’를 서술하고 있다.
이런 시도야말로  인류 보편의 사상적 거인으로서 또 위대한 개혁가로서 공자의 진면목을 밝히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을 일부 발췌한다. 
“공자가 주장한 개혁이 과연 ‘민주적’이었다고 말해도 좋은지, 또 만약 그렇다면 어느 정도 ‘민주적’이었는가?
오늘날의 민주정치는 19세기말 및 20세기의 산물이며 최근에 확대된 인류의 경험 뿐 아니라 자연과학 사회과학 및 산업화 등과 같은 현대적 혁신에 크게 기초를 둔 것이다. 그러나 공자가 처했던 상황이 현대민주주의 옹호자들이 처했던 상황과 크게 상이相異하였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사상 사이의 相致點(상호일치점)이 있다면 오히려 특별한 흥미를 자아낸다.
매리앰(C.E.Merriam)은 ‘민주주의의 기본 가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1.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 차별보다는 우애 원칙에 근거한 개성의 보호 및 함양의 중요성, 근거도 없이 또는 과도하게 인간차별을 강조하는 데서 비롯된 특권의 폐지.
2. 인류의 완벽성을 부단히 지향하는 것에 대한 확신.
3. 국가의 수익은 본래 집단적인 수익이므로 크게 지연되거나 지나친 차별없이 가능한 한 신속하게 전사회에 분배되어야 한다는 가정.
4. 사회의 방향과 정책의 기본적인 문제에 관해 최후 결정을 대중이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 그리고 그런 결정을 표현하기 위한 절차를 인정하고 그 결정이 정책으로 반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
5. 폭력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합의 과정을 거쳐 의식적인 사회변화를 성취할 수 있다는 신념.
이 가운데 4개의 항목은(4번을 제외한 모두) 기본적으로 공자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이 분명하고 어떤 것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것도 있다.
투표와 관련된 나머지 한 항목이 실제로 가장 중요한 것 같은데, 공자는 대중이 정치를 좌우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생각해 본 일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앞에서더 지적하였지만 고대 중국에는 투표라는 개념은 없었던 것 같다. 프랑스 혁명이 한참 진행중이었던 1791년 프랑스 헌법이 제출되었을 때, “보통선거안을 부결하는 것이 무산계급은 문맹이고, 투표를 하려면 일정한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변호될 수 있었다면” 기원전 500년경 공자가 중국의 정치를 농민계급에게 넘길 것을 제안하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공자가 이상적인 교육상태나 그 비슷한 상황이라면 대중이 정치를 좌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는지의 여부다. 이것은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인데,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것을 종합하여 정치 권력에 관한 그의 의견을 체계적인 서술로 제시해보자.(공자가 결코 이런 것을 제시한 일은 없는 것 같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신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정부의 고유한 목적은 전체 백성의 복리와 행복이다.
이 목적은 정치에 가장 유능한 사람이 국정을 담당할 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
위정자의 능력은 가문, 재산 또는 지위와 필연적인 관련성이 없으며, 오직 인격과 지식에 달려 있다.
인격과 지식은 적절한 교육의 산물이다.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교육은 널리 보급되어야 한다.
따라서 적절한 교육을 받은 결과 가장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가 된 사람을 전체 국민 가운데서 선발하여 정치를 위임해야 한다.
이것은 백성 전체가 정치를 좌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결국 일종의 귀족정치 제도이지만, 가문이나 재산에 의한 귀족정치가 아니라 덕망과 능력에 의한 귀족정치이다. 민주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공자의 태도에는 가장 유능한 사람이 임용되는 것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없다는 결함이 있지만, 이것은 역사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공자의 제도에는 전체 백성이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정치란 백성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론은 확실히 백성들에게 막연하나마 ‘이론상’의 거부권을 부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정부의 형태나 제도적인 장치의 중요성은 과소 평가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형태나 제도의 기초가 될 뿐 아니라 그것을 수행하는데도 필요한 정신이나 철학보다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인간의 경험으로 충분히 증명되었다.  뿐만 아니라 진리는 (또는 적어도 진리의 이해는) 부단히 발전 또는 개화 과정에 있으며 모든 사람이 진리를 창조하고 발전시키는데 참여할 수 있다는 신념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반면에, 진리를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실재로 생각하는 철학은 모두 정치적 전체주의의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도 명백해졌다.
(중략)
공자가 절대론의 입장이 아니라 진리의 부단한 탐구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진리를 말하지도 않았고, 절대적인 가치척도를 제시하지도 않았으며, 그들 스스로 진리에 도달하도록 교육하였다.”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하여 목숨을 뺏고 뺏기는 권력투쟁이  공자의 제자를 자처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졌다는 것은 얼마나 빗나간 것인가?
서양의 학자가 본 공자가 그 유명한 주자(朱子)가 본 공자보다 훨씬 공자의 진실에 가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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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1 April at 08:45
  · 
크릴의 공자를 읽고 있다.
개혁가로서의 공자를 논하는 장(章)의 일부를 발췌 소개한다.
“공자의 교육론이 혁명적 성격을 띄었다는 것은 여러 다른 주장들 예컨대 노자나 한비자와 비교해볼 때 뚜렷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것이 혁명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공자 당시에 그의 정치적 주장에 아무도 경계심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은 공자가 개혁가로서 상당한 능력을 갖고 있었음을 잘 말해준다. 맹자와는 달리 공자는 결코 폭군을 죽여야 한다거나 제왕과 농민이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것을 직선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그의 전체적인 운동은 시작도 되기 전에 중단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좀 더 신중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1세기 뒤에 맹자가 아무 탈 없이 직선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기초를 쌓았던 것이다. 이것은 확고한 방침에서 나온 것 같은데, 부패한 정부 아래 살고 있는 사람은 기회가 오면 용감하게 행동할 용의를 갖고 있어야 하지만 말을 할 때는( 그 자체로는 상황을 바로 잡을 수 없기때문에) 다소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공자는 표명한 적이 있었다. (憲問 편)”
이 글을 읽으면서 이와 상반되는 상황이 요구되는 시대나 사회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극단적 상황에 극단적 대응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이 극단적 대응 또한 또 다른 극단(極端)이기 때문에 결코 그 자체가 안정되고 평화로운 개혁을 이루기가 어렵지만, 그 후에 나타날 건강하고 조화로운 개혁을 예비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일 수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악순환으로 전체가 붕괴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렇게만 된다면 역사는 거칠게나마  순항(順航)할 것이다.
사후(事後)에는 보이지만, 진행 중일 때는 모르는 일들이 역사 속에는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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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26 March at 09:57
  · 
이수태 저 ‘공자의 발견’에 이어 H.G.크릴 저 ‘공자, 인간과 신화’를 두 번 째 읽고 있다.
크릴에게서 학자의 진면모(眞面貌)를 느끼게 한다. 
나는 논리적인 성격도 있지만, 직관적인 성향이 강해서 학자의 길에 들어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요즘은 학자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사람들과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오늘 읽다가 ‘예언자의 신뢰도를 높여주는 것은 백발보다 나은 것이 없다’라는 코멘트 앞에서 혼자 웃는다.
나는 80이 다 되었지만, 흑발(黑髮)이다.
그 말대로라면 나는 예언자의 길을 갔어도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이다.  사이비 예언자의 유혹에서 아예 생래적으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머리 색깔이 아닌 말과 행동으로 사이비 예언자를 감별하는 능력은 다소나마 갖추고 있다는 생각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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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2

알라딘:공자의 발견 脫朱子 論語學 이수태

알라딘: 공자의 발견




공자의 발견 
脫朱子 論語學
이수태 (지은이) 바오 2015-11-17

정가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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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포인트 137
4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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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의 저자 이수태의 새 저작. 논어라는 텍스트를 넘어 철저하게 공자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논어 속의 단편들이 지닌 다양한 메시지들의 내적 연관과 교호를 통해 공자라는 컨텍스트를 엮어내고 있다. 아울러 논어에 대한 진지하고 엄밀한 탐구를 통해 공자의 3대 관점이나 위대한 개념들의 탄생을 제시한다.

저자는 본문 속의 여러 글들에서 공자의 목소리를 논어라는 고전 속의 텍스트로만 가두어 두지 않고 오늘날 우리 시대가 당면한 많은 문제에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인식론적 단초를 제공한다. 저자는 오랜 세월 공자의 진의를 왜곡하고 가려 왔던 주자의 턱없는 논어 해석은 이제 수사학의 영역에서 종말을 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수기'와 '불이과', '양단을 넘어서'로 이루어진 공자의 3대 관점을 제시한다.

모두 5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은 공자에 대해 비교적 평이하고 개괄적인 차원의 글을 묶은 것이다. 제2장은 공자의 3대 관점으로, 주자가 잘못된 공자 이해가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졌는가를 밝히고 있다. 제3장은 논어가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제4장에서는 논어 단편에 대한 해석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종합하고 있다. 제5장에서는 공자라는 인물을 좀 더 긴 역사 앞에 세워 놓고 그 모습을 추적해 본 글들을 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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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5

Ⅰ.젊은 공자
1. 젊은 공자17/2. 낯선 방문자들22/3. 사마천과 공자28/4. 공자와 소년33/5. 성인에의 꿈38/6. 세기의 대화43/7. 자로와 세례자 요한50/8. 공자와 예수, 너무나도 닮은 그들55/9. 공자, 그는 과연 누구인가?61/10. 오늘날의 공자, 어디에 있나?74/11. 논어, 언제까지 한문 공부의 차원에만 머물 건가?79

Ⅱ. 공자의 3대 관점
1. 수기修己85/2. 불이과不貳過117/3. 양단兩端을 넘어서138

Ⅲ. 논어 깊이 읽기
1. 아이러니165/2. 화이부동169/3. 순수함과 순진함176/4. 덕이란 무엇인가?180/5. 음악 마니아 공자의 음악 이해192/6. 경제의 본질은 굶주림이다197/7. 말과 글, 그 거짓되기 쉬운 도구203/8. 명예욕을 어떻게 볼 것인가?207/9. 어짊仁213/10. 정명225/11. 위대한 개념들의 탄생229/12. 학이편의 비밀243/13. 아! 옛날이여254/14. 펼치는 일과 간직하는 일261/15. 의로운 사회와 어진 사회267

Ⅳ. 논어의 무덤?<논어집주論語集注>
1. 논어에 여색女色이? 275/2. 주자는 없었다 282/3. 논어의 무덤, <논어집주> 287/4. 나의 논어 해석에 대한 나의 입장 304

Ⅴ. 수사洙泗의 본류를 찾아서
1. 주나라의 신비331/2. 무왕과 백이숙제339/3. 공자와 주공345/4. 공자의 관중 평가352/5. 공자와 양호359/6. 최술崔述 이야기379/7. 공자가 <춘추>를 짓다?386/8. 논어와 제자백가393/9. 논어 편집자를 말한다400/10. 공자적 입장에서 본 노자407/11. 공자, 안 될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이었을까?428

추록·논어와 나434
-부록448
공자 연표/공자 제자 일람/중국 역대 왕조/주周나라의 변천 /공자 생존 시 주요국 세계世系/공자 생존 시 노나라 삼환三桓 세계世系/춘추시대의 중국/춘추시대의 중원 제후국/ 춘추시대의 노나라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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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이번의 책은 확실히 논어라는 ‘텍스트’를 넘어 공자라는 ‘인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같은 텍스트를 경유했으면서도 이번의 책은 논어 단편이 지닌 다양한 메시지들의 내적 연관과 교호를 통해 공자라는 ‘컨텍스트’를 엮어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다고 본다. 공자의 진의가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일관된 목적이었다. 주자의 턱없는 해석은 이제 수사학洙泗學의 영역에서 확실히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왜냐하면 <논어집주>가 건재하게 유통되는 한 공자는 저 2500년의 혼곤한 잠을 지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자와 주자는 더 이상 공존할 수 없다. 주자를 살리기 위하여 공자가 계속 죽어 있을 수 없다면 우리의 남은 선택은 분명하다. …… 이번 책을 내는 목적은 분명하다. 나는 논어에 관한 한 이제 <논어집주> 800년의 역사는 단호히 종막을 고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모든 논어는 다시 번역되고 쓰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25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공자의 진짜 육성을 듣고, 그 육성이 답이 없는 오늘의 현실에 대하여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타진해 보기 위해서도 그것은 불가피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머리말 중에서

논어와 공자에 초점을 맞추고 나는 30년이 넘는 세월을 내 나름대로 그 희유한 전적과 기이한 인물을 알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고 미미하게나마 그 자구가 읽히고 어렴풋하게나마 그 인물의 자태가 눈에 들어오는 환희의 순간, 내 시야 속에 주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자는 없었다! 이것을 나는 증언해 두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경험에 입각하여 나는 망설임 없이 선언하는 바, 누구든 주자의 옷자락을 잡고 논어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려 하는 한 그는 결코 공자라는 저 희유한 인물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본문 중에서




저자 소개
지은이: 이수태

최근작 :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300개의 정치적 혹은 비정치적 화두들>,<공자의 발견> … 총 19종 (모두보기)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고 서울사대부고와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들어가 32년간 한 직장에서만 복무하며 대전지역본부장, 일산병원 행정부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89년 「한국 가곡의 재인식 문제」로 제5회 객석 예술평론상을 수상했으며, 2013년에는 격월간 에세이스트사가 제정한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현재는 강화도에 집필실을 마련하여 활발하게 저술 활동을 하는 한편, 특히 수사학(洙泗學)을 연구하고 강연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논어 관련 저작, 『논어의 발견』(1999), 『새번역 논어』(1999) 『공자의 발견』(2015), 수필집으로 『어른되기의 어려움』(2002) 『누룩곰팡이의 노래』(2004)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2012) 『영원한 공직』(2013) 『300개의 정치적 혹은 비정치적 화두들』(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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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25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공자의 참된 목소리를 흔들어 깨웠던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의 저자 이수태의 새 역작!

여기, 공자의 참된 목소리가 있다!

1999년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을 출간하여 “주자류의 논어 해석에서 벗어나 새롭고 독창적인 해석과 정확하고 유려한 한글 번역”으로 한국의 경학계와 언론의 찬사를 받았던 저자 이수태가 논어 관련 신작을 출간했다. 이전에 출간한 두 권의 저서가 주자의 그릇된 해석에 뒤덮여 온 논어를 구제하여 그 원음을 되살리는 것이었다면, 이번 신작 <공자의 발견>은 논어라는 ‘텍스트’를 넘어 철저하게 공자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이번 신작은 논어 속의 단편들이 지닌 다양한 메시지들의 내적 연관과 교호를 통해 공자라는 ‘컨텍스트’를 엮어 냈다는 점에서 논어 연구에서 일대 진전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논어에 대한 진지하고 엄밀한 탐구를 통해 이제까지 어떤 연구자도 보여 주지 못했던 ‘공자의 3대 관점’이나 ‘위대한 개념들의 탄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저자의 논어 연구가 이제 완숙함을 넘어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본문 속의 여러 글들에서 공자의 목소리를 논어라는 고전 속의 텍스트로만 가두어 두지 않고 오늘날 우리 시대가 당면한 많은 문제에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인식론적 단초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논어, 탈주자 시대의 선언

저자가 논어를 연구하는 단 하나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공자의 진의가 살아나야 한다는 것, 즉 공자의 참된 목소리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저자는 논어를 해석하면서 엄격한 사료 비판과 가혹하리 만큼 치열한 자기 성찰을 통해 “공자가 무덤에서 나와 틀렸다고 말해도 물러서지 않을 만큼 자신 있는 부분도 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오랜 세월 공자의 진의를 왜곡하고 가려 왔던 주자의 턱없는 논어 해석은 이제 수사학洙泗學의 영역에서 종말을 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마디로 “논어, 탈주자 시대 선언”이다. <논어집주>가 여전히 건재하게 유통되는 한 공자는 저 2500년의 혼곤한 잠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공자의 진짜 육성을 듣고, 그 육성이 수많은 답을 요구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타진해 보기 위해서라도 논어의 탈주자 시대 선언은 불가피한 절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자의 3대 관점을 제시하다

모두 5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서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제2장 ‘공자의 3대 관점’이다. ‘수기修己’와 ‘불이과不貳過’, ‘양단兩端을 넘어서’로 이루어진 ‘공자의 3대 관점’은 이제까지 그 어떤 논어 연구자도 제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기’에서는 수기야말로 ‘모든 것, 즉 배움의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공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으며, ‘불이과’에서는 ‘무지와 과오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또 ‘양단을 넘어서’에서는 인간 사회에서 흔히 접하는 급진성과 결곡함,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 가운데와 하찮음의 문제를 공자의 관점에서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특히 ‘양단을 넘어서’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이토록 중요한 공자의 관점들이 간과되어 온 것은, 주자가 공자 특유의 관점이 반영된 최고 수준의 단편에서 줄줄이 해석을 그르친 것이 그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의 간략한 구성과 내용

모두 5개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장 ‘젊은 공자’는 공자에 대해 비교적 평이하고 개괄적인 차원의 글을 묶은 것이다. 대부분의 글이 기존의 낡은 공자관을 시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제2장은 앞서 언급한 ‘공자의 3대 관점’이다. 이 글은 이번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글로써 주자가 잘못된 공자 이해가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졌는가를 밝히고 있다. 제3장 ‘논어 깊이 읽기’는 논어가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데, 특히 신영복 선생의 화이부동和而不同에 대한 해석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제4장 ‘논어의 무덤-<논어집주>’에서는 논어 단편에 대한 해석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종합하고 있다. 제5장 ‘수사의 본류를 찾아서’에서는 공자라는 인물을 좀 더 긴 역사 앞에 세워 놓고 그 모습을 추적해 본 글들을 묶은 것이다. 마지막에 수록한 ‘추록-논어와 나’는 저자와 논어와의 인연에 대한 글로 저자의 논어와 공자에 관한 생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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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2 d
이수태 저 ‘공자의 발견'을 읽고 있다.

그는 공자의 3대 관점으로 <①수기(修己) ②불이과(不貳過)③양단(兩端)을 넘어서>로 요약 이해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副題)처럼 주자학(朱子學)으로 집대성된 ‘왜곡된 공자의 사상’을 제대로 찾고 그것을 현대에 살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많이 공감하는 바가 있다.
나는 주자학(朱子學)도 모르고, 공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논어를 읽었기 때문에 대칭적 비교가 없이 논어를 연찬하면서 읽었다.
나증에 보니 공자의 사상이 그 제자들에 의해 이루어져간 유학(儒學)과 다르다는 것, 어떤 점에서는 심한 왜곡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한편 7장에 나오는 다음 문장은 내가 논어를 통해 공자 사상의 기본으로 읽혀졌던 문장이다. 공자가 스스로 밝힌 자기정체성 즉 호학(好學)의 ‘학(學)’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이 수태 선생도 이 문장을 대단히 중시한다.
그러나 그 관점이 나와 좀 다르다.
이 다름은 ‘논어’에 접근하는 각각의 경로와 경험의 다름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다름이야말로 논어 또는 공자 사상의 생명력을 풍부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내 나름의 해석이다..
“내가 아는 것이 있을까? 나(인간)는 실재(사실 그 자체)를 알 수 없다(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오직 자신의 감각과 판단이라는 필터를 거쳐 인식할 뿐이다). 그러나 누가 물어오더라도 모른다고 피해버리지 않고(불가지론이나 회의론에 머물지 않고) 영위(零位)에 서서(무지의 자각을 바탕으로) 그 양 끝을 두들겨(철저 검토) 끝까지 (진실을) 밝혀 가보겠다.”
이 수태 선생의 해석이다.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아는 것 없다. 못난 사람이 있어 내게 물어오면 나는 막막하다. 나는 단지 그 양단을 두드려주는 것이 고작이다.”
나는 ‘무지(無知)의 자각과 탐구태도(연찬)’에 방점(傍點)이 찍혔다면, 이 수태 선생은 ‘그 양단을 두드린다’에 방점(傍點)이 찍힌다.
‘무지(無知)’라는 표현이 겸사(謙辭)가 아니라 실제를 말하고 있다는 것, 공공여야(空共如也)가 비부(鄙夫)를 수식하는 말이 아니라 공자를 수식하는 말이라는 것은 나와 관점이 같다.
그러나 공공(空空)을 보는 관점이 좀 다르다. 나는 공자의 탐구 태도의 출발점으로 보고, 그것을 영위(零位)에 서려는 즉 무지의 자각에 서려는  태도로 보았다. 
고기양단(叩其兩端)의 양단(兩端)을 보는 관점은 비슷한데, 나는 철저 탐구의 연찬태도에 방점이 찍히는데, 이 수태 선생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떠올린다. ‘줄탁동시’의 ‘탁(啄)’의 역할에 주목한다. 
나와는 방점이 좀 다른 곳에 찍히지만, 이 해석도 존중한다.
사람이 깨달아가는 주체는 그 자신이 주체다. 어떤 스승도 ‘탁(啄)’이라는 보조적 역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敎)의 바탕이다.
나는 공자의 무지(無知)를 학(學)의 출발점으로 보았고, 이 수태 선생은 ‘양단을 두들기는 것(叩其兩端)’을 가르침의 기본으로 보았다.
이 둘 다 공자의 사상과 실천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공자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그 동안 사회를 정체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해온  오래된 유학의 왜곡을 바로잡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더 절실한 현실적인 테마는 양극단(兩極端)이 정치무대의 중심을 장악하고 있는 정치적 혼란을 넘어서기 위해 인식과 실천의 방향을 근본에서 바꾸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외교와 내치의 방향이 바뀌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제도에서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양단(兩端)의 진폭이 너무 크거나 그 바뀜이 거친 것이 문제다.
우리는  짧은 기간의 압축적 변화(산업화를 통한 경제 성장과 군사독재를 벗어난 제도의 민주화)에 성공했지만, 이런 정치문화를 선진화시키는데는 상당한 시간과 진통을 겪을 것이다.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이다.
심리적 내전에 가까운 양극단의 충돌을 비극적 결말의 출발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양극단의 진폭을 줄이고 변화 과정의 거칠음을 부드럽게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넘어서야할 테마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심경을 어제 광주포럼에서 함께 나누었다.
실제로 그런 국민적 자각이 크고 넓어지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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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논어를 원체 기초적인 학습 과정이 없이 접했다보니, 내 책이 출판된 이후 여러 책들을 보며, 그 역사적 배경이나 사람들을 점차 알아가게 되었다.
많지는 않지만, 열댓 권 정도는 읽은 것 같다.

그 가운데 다음 세 권을 다시 읽어보려 한다.
이수태 저 ‘공자의 발견- 脫朱子論語學’, H.G.크릴 저 ‘공자-인간과 신화’ , 리링 저 ‘논어, 세 번 찢다’

이수태 선생의 책을 먼저 보기 시작한다.
‘탈주자논어학脫朱子論語學’이라는 부제(副題)에 걸맞게 70여개의 장(章)을 주자와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정통 유학자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나와 비슷하고, 주자 뿐 아니라 중용이나 맹자에 대해서도 공자를 왜곡했다고 보는 점은 나와 유사한 점이 있지만, 공부의 양(量)이나 깊이는 나와 비교가 안된다.
나는 아무런 기초적 학습과정이 없이 논어를 ‘연찬’ 식으로 읽다보니, 나중에 주자(朱子)의 관점과 많이 다른 것을 발견했지만, 그는
논어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해서 보는 나름의 관점이 있다.
나도 논어를 15년 정도 읽다보니 나름의 일이관지하는 관점이 생긴다.
언젠가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런 느낌이 논어가 일목요연하게 보여오는 점은 있지만, 그것은 공자와는 별개의 자신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맹자도 주자도 그러했을 것이다.
이런 안목이 생길수록 더욱 더 ‘연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읽다보니까, 이 수태 선생의 관점도 처음 볼 때보다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오늘 읽은 대목의 하나인데, 주자(朱子) 류(流)와 크게 다른 점이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
<자공이 말하기를, “만일 백성들에게 은혜를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구제해 줄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인(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 말하기를, “어찌 인이라고만 하겠느냐? 반드시 성(聖)이라고 할 수 있다. 요순 같은 사람도 오히려 그렇게 못함을 걱정하였을 것이다. 무릇 인(仁)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서고 싶은 곳에 남도 세워주며, 자신이 이루려고 하는 것을 남도 이루게 한다. 가까운 자신을 가지고 남의 처지를 미루어 보는 것이 인(仁)의 올바른 방향이라 이를 수 있다.”
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 其猶病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의 해석이 아주 다르다.
‘자신이 서고 싶으면 남을 세워주고, 자신이 달하고 싶으면 남을 달하게 한다.’와 비슷하게 대부분의 책들이 해석하는데 대해, 저자는 ‘스스로 서기를 바라서 남을 세우고, 스스로 통달하기를 바라서 남을 통달시킨다.’로 해석한다.
이런 해석에는 저자가 일관되게 바라보는 공자가 있다.
자신을 뒤로 하고 오히려 남을 앞세우니 인(仁)이 아닌가? 라고 보는 관점이 일반적이지만, 이 문장이 저자에게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대부분의 이타주의가 엎어놓은 이기주의에 불과하듯, 그것은 인(仁)이 아니라 탐욕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공자가 경계한 말로 저자에게는 다가온다.
공자는 베푸는 일을 근본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남을 위한다는’ 욕망들이 직접적으로 발현되는 한 그것은 아무것도 개선시킬 수 없다는 입장으로 보고, 세상을 향한 그런 직접적 욕망들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변화시키는데 더 근본적인 실천을 대부분 가로막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고 이 장(章)을 읽는다.
나도 일정한 부분에서 저자와 공감하는 바가 있다.
내가 말했다면 <‘남을 위한다는’ 허위의 욕망들이 선차적으로 작동한다면> 정도로 말했을 것이다.
나선형 순환의 오랜 경로를 거치며, 결국 현대적 용어로 표현하면 ‘자기혁명과 세계 혁명은 하나’, ‘자기혁명 없는 세계혁명은 허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본다.
저자가 역사 상 인물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예수’와 ‘공자’로 보는 것도 그가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관점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요즘 담론(談論)과 도덕(道德)이 동반 붕괴하는 현상을 보면서 일면식도 없지만, 이 수태 선생과 이런저런 생각들을 나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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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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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知 天 命
알 지
하늘 천
명령 명

하늘의 명을 알았다는 뜻으로, 나이 50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상세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공자가 논어 위정편에서 나이 쉰에 천명(天命)을 알았다고 한 데서 연유해 50세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여기서 '천명을 안다'는 건 하늘의 뜻을 알아 그에 순응하거나 하늘이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안다는 뜻이며, 마흔까진 주관적 세계에 머물렀으나, 50세가 되면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세계인 성인(聖人)의 경지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
Namgok Lee
1 h  · 

불혹不惑을 지나 지천명知天命으로.

천명을 안다는 말을 인간의 인식이나 의지 너머의 '무엇'을 안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집을 극대화할 위험이 크다.
전제군주나 독재자 또는 혹세무민(詐欺)하는 사이비 종교인이나 도사에게만 아편과 같은 말이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과대망상이나 아전인수의 몽환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나는 지천명을 자기 분수分數를 아는 것으로 본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공자도 불혹을 지나 겨우 도달한 세계로 말하고 있다고 본다.
요즘 말로 하면 'n분의 1'을 자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 '1' 속에는 'n'을 공통분모로 하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n=1이라는 형이상학적 담론도 많다.
그러나 잘 못 나가면  앞에 말한 위험에 빠지기 쉽다.

자기 분수를 안다는 것은 인간의 인식과 의지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하더라도  미지로 남겨두고,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자유로운 삶으로 이끈다.
불혹이 뜻을 세우고(志) 자립(立) 하는 과정을 거치며 중심을 잡아가는 강剛의 단계라면, 지천명은 유柔로 접어드는 성숙의 단계다.

이순과 종심소욕불유구로 이어진다.
 공자가 스스로 쓴 이력서를 나는 이렇게 보고 있다.
이 이력서에 대한 나의 이해도 여러 차례 변했다.
공자의 진의와는 별개로 결국 나의 관점이 변한 것일 뿐이다.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치매가 오기 전까지.

2023/03/10

유상용 | 야마기시즘 - 연찬

유상용 | Facebook

유상용 (Ryu Sang 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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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다음의 인간ㆍ사회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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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7 m ·

아래의 글은 '야마기시즘실현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야마기시씨가 쓴 글이다. 조금 전 번역을 한 것인데, 그의 자세, 의도를 짐작할 수 있는 글이라, 관심있는 분들께 참고자료로 드린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돈이 필요 없는 즐거운 마을 >
1960년 5월- 야마기시 미요조, 처(부인) 니와
연구가·실행가에게 드리는 말씀

이 저서는 교서教書가 아니다. 아니, 이 저서뿐만 아니라 나의 과거에 말해 온 것, 써 온 것, 해 온 것 모두 및 앞으로의 모든 언행, 어느 것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전부 연구가의 참고 자료로서 제공하고, 그것의 취사선택·실행에 있어서는 각각의 자유의지에 맡기는 것이다.
그때 그 자리에서 내가 생각한 대로 혹은 스스로 깨닫지 못한 채 표현되고 있는, 일단의 부분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윽고 내가 생각하는 기록, "월계月界로의 통로"의 일부분으로서 『정해正解 야마기시즘 전집』의 초안을 정리해 각 집輯으로 분류하고 인간 생활은 물론 우주 만반의 현상계·무현상에 대해, 내가 느끼는 대로 종횡으로 써내려 대중 앞에 드리고 싶어서 지금 그것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그러나 생각만큼 되지 않는 것은, 지금의 환경 조건 하에서 심신의 불편함으로 인해 그것의 중단 상태의 부득이한 사정에 있으며, 내가 오늘까지 받았던 과거, 현재의 사람들 및 대자연에 응하는 날이 늦어지는 것에 무거움을 느끼고 무위로 생명이 다 연소될 때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아쉬워한다.
이 저서는 지금의 세계정세를 고려하여, 내일을 기다릴 수 없는 긴박함을 느끼고, 신심의 초췌함 속에서 마음 졸이는 대로 전집 안의 구절을 발췌·생략하여 기술한 것으로 조잡한 정도가 심한 것이 있다.
나를 낳고, 키우고, 쏟아넣은 것이 살려지는 것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한다.
만약 세상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면, 나를 살려서 사용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진정, 최량을 목표로 하고, 그것을 검토하고, 탐구하고, 한순간의 멈춤 없이, 희망찬 전진 일로, 과거·현재를 알고, 장래를 창조하는 환희로 생활하는 오늘-지금, 즉 모두가 사이좋게 즐겁고 풍요롭게 오늘보다 내일, 모레로 경쾌한 미래를 창설하는 오늘의 환희 속에 현재-지금도 정상·건강 속에 잠겨 생활하는 한 컷 한 컷의 연속이려 하는 것이다.
내일의 행복은 오늘의 기쁨 속에서 나온다.
만약 오늘-지금이 정상·건강하지 않다면 신속하게 그것의 원인을 탐구하여 그 틀린 부분을 발견하고 즉각 그것의 해소를 도모하는 것이다.
슬픈 오늘 중에서 즐거운 내일은 태어나지 않는다.오늘은 물건이 부족하고 몸에 땀이 나도, 마침내 올 물심의 풍만, 건강·정상을 위한 오늘-지금의 마음의 세계는 환희요 삶의 보람으로 사는 것이다.
야마기시즘 생활은 진실을 지향하여, 지금도 진실일 것이며 환희 속에 이론연찬·방법연찬·실행연찬의 정상·건강의 연속생활을 말한다.
이 책 『돈이 필요 없는 즐거운 마을』을 저술할 때 사실은 이론, 이념에서부터 설명을 시작한 후, 현상면에 대해 쓰는 것이 순서인데, 지금 저자의 체력적·시간적 사정도 있고, 그것은『정해 야마기시즘 전집』에 따르기로 하고 여기서는 읽는 사람들이 둘러가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형태면에 대해 대중적으로 쓰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은 최종 단계의 완성된 모델이 아니라 진리, 진실, 최선을 목표로 하는, 이제부터 시작인 단계에 있으며 미숙·불완전한 전진 단계의 한 장면임은 물론이다.
다음 날도 다음 날도, 연찬을 계속하여, 개량에 개량을 가해 유치한 것을 완전한 것으로 키워 나가려는 생장기의 것이다.
그 연찬 개량도 저자 혼자 좋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각자가, 세계의 모든 지혜, 모든 능력, 실적을 취사선택하여 다같이 키워나가는 것이고, 내일도 오늘의 이 저서에 담겨있는 형태를 답습하는, 진보성 없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창안하고, 보다 좋게, 보다 진짜로, 모두가 개량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반복해서 말해 두고 싶은 것으로, 저자 스스로도 더욱더 개량을 계속해 나가겠지만, 그것에 의존하지 않고, 각자 스스로 개량·실행해 나가는 것이다.
교서가 아니라고 쓴 것은, 가르치려는 것이거나 따르고 배우는 것이 전혀 아니고, 어디까지나 생각하기 위한 참고 자료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현재의 세태에서는, 본서의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겠지만, 이것을 읽어도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본서에 담긴 구현방식을 즉시 실행,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경지에 들어선 상당히 진보적이고 세계의 첨단을 가는 혁명의식에 불타는 보기 드문 사람들에게만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 공상空想도 일반에게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지만, 사실 실현하기 쉬운 이상경理想境 '돈이 필요 없는 즐거운 마을'이 지상의 일각에 한 곳 든든히 세워질 때, 그것을 보고, 듣고, 전한 세계 과학자들의 연구 과제가 되어, 인간의 본질, 사회의 본연의 상태 등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실행가実行家가 속출할 것은 불을 보듯이 명확하다.
세계 각지·각처에 '돈이 필요 없는 즐거운 마을'이 속속 세워질 것이고, 이렇게 해서 이것들이 상관연相関連적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세상에 번져, 급속히 전세계를 휩쓰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황당하고 꿈같은 이야기라고 비웃고 있는 낡은 사회통념・상식관도, 사실 앞에서, 어느새인가 새로운 사태 속에 서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세계 제1호를 쏘아 올릴 사람은 누구일까.
뒤따르는 사람은 누구누구일까. 하기 싫은 사람, 못하는 사람은 하지않아도 될 일이고, 또 그런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돈이 필요 없는 즐거운 마을』이라는 저서명도 단지 그것은 일단의 일부의 표현일 뿐, 이것의 진의真意·실질은 삼라만상 모든 것에 관계하는 깊은 것으로, 세계혁명을 유발하는 포문을 여는 것이다. 돈이 필요 없다는 것은 통화나 티켓·권익·계약·의무·소유관념 등 유무형 일체의 틀에서 해방된 진정한 자유의 천지天地이며, 예부터 내려오는 법률·제도·습관·통념이, 근본적으로 참된 모습에 입각한, 전 인류가 상상으로조차 이루지 못한, 가장 진보적인, 문화적인, 물리·심리의 정수를 모은, 철리현현哲理顕現의 세계이고,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실현도 쉬울 것이다. 참된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잘못된 생각에 방황하는 동안에는 진정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수규명理数究明적으로 한 점의 차질 없는 답이 나올 것이다.
규모는 작아도, 본질적인 것이 한 군데 생기면, 나중에는 누가 권하지 않아도 모두 다 본받는다.
전 세계에서 보러 와서, 전 세계로 넓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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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기시즘 실현지, 산안마을>230326

한국에서 일본어로 된 이름으로 활동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산안山岸의 일본발음이 야마기시다. 
내가 실현지에 참획(실현지 멤바로 되는 것)한 92년부터 작년까지의 시간을 돌아보면 
92~2002 실현지, 야마기시즘을 배우다 
2002~2009 실현지, 나의 야마기시즘 검증기 
2009~2018 강화도, 스즈카와 교류하며 본질적인 사회를...
2018~2022 강화도, 스즈카와 결별,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으로 정리할 수 있다. 
나름, 방향을 잃지 않으려고 해마다 겨울이면 1~2주일, 삶의 과정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복기가 되어있다. 마무리하는 과정의 글이 늘어지는 것도 재미없으니, 시기별로 한 두 꼭지씩의 글을 쓰고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이 글들을 읽고 계신 분들 중 아홉 분은, 길고 짧게 실현지 생활을 하셨거나 현재 살고 계신 분들이다. 우리들 역시 공개적인 방식으로 야마기시를 다루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함께 정리해보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으면 좋겠다.  
92년 1월에 참획하기 전에 나는 1년 반 정도 미국 에미서리 공동체에서 살았었다. 성숙하고 아름다운 spiritual community였다. 그곳에서 한국으로 나올 때 나는 이미 야마기시에서 ‘일생의 일’(거창하지만 그 때는 그런 뇌피셜~^^)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그것은 그 전에 잠시 들렀던 야마기시 어린이 낙원촌(캠프)에서 느낀 ‘본향本鄕’의 느낌과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실현지 식구들이 많이 떠나고 어려운 상황에서, 돌아와서 함께 하자고 권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연치 않은 인연인 윤00님을 도와 함께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2008년11월에 미국서 돌아와 2009년1월에 참획을 하였다. 
참획과 함께 다가온 것은 나의 희망찬 느낌과는 거꾸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참획을 정한 날은, 함께 하자고 권한 사람이 가방을 싸들고 실현지를 나가는 날이었다. 새로운 참획자에게는 엄격했는데, 외부에서 온 편지를 사전에 잘라서 검열?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외부세계에 대한 닫힌 의식과 리더의 완고한 자기 확신 등등, 시간이 갈수록 “나는 왜 여기에 왔나?” 하는 기분이 쌓여갔다. “무언가 하늘의 뜻(?^^그 땐 그랬다)이 있을 것 같았는데...” 다만 나의 착각이라기보다는 “어떤 의미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참획 후 6개월, 그런 심리적 압박이 쌓여가서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1주일간의 휴가를 얻었다.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꼼짝을 못할 것 같아서, 강원도 태백에 사는 친형에게 부탁해 산속 외딴 빈집을 알아봐달라고 해서 5일간을 기거하게 되었다. 쌀과 반찬만 가지고 들어가 밥을 해먹으며 5일 밤낮을 자거나 앉아서 묵상을 했다. “나는 왜 왔는가?” 
6일째 되던 날 아침에, 말로는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마음이 개운해지고 “이제 됐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뚜렷한 답은 안 나왔지만, 정리하고 실현지로 돌아가도 될 것 같았다. 
돌아가는 기차에서, 평택 즈음을 지나는데 논 가운데 담장을 친 농가가 몇 집이 보였고, 문득 ‘답답하게도 경계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 때 알게 됐다.
 “경계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거였구나. 그래서 야마기시에 돌아왔구나...” 그 뒤로는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야마기시의 선배들이 해온 것을 최대한 그대로 배워보리라” 
장점을 보자면 야마기시에는 지금까지 잘 없었던 여러 가지 사회실험들을 하여, 개발 터득해온 사회적 방법들이 있다. 
ㅡ 야마기시즘 사회의 조직과 운영방식, 실현지라는 이상사회의 축도에 짜넣은 무소유ㆍ공용ㆍ일체의  사회제도, 
6개월 1회 자동해임으로 역할에의 집착을 풀어놓는 제도, 상하의식이 없는 사회 기풍
ㅡ 연찬학교라는 무아집체득의 훈련이 사회제도로서 내장되어, 경제적으로도 번영하지만 인격적으로도 성숙할 수있는 기회가 사회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것
ㅡ 인간 의식과 사회제도에 대한 적극적인 실험과 그것을 시험할 수 있는 시험장을 마련하고 있는 것
ㅡ 종교 맹신을 배제하고 자기 탐구와 연찬으로 사회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것
등 많은 성과들이 있었다. 
전쟁을 준비하려다 개발된 기술이 인류의 복지에 기여하기도 하고, 밥먹는 일과 거리가 먼 달 착륙선을 만들다가 알게된 원리들이 인간을 풍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더구나, 과학적 탐구와 지혜를 모은 연찬을 기치로 내세운 야마기시가 70년 정도 실험한 내용에는, 그 전체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활용하려고 하면 살려 쓸 수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실현지 분들도 더욱 개방해서, 모두에게 살려질 수 있는 것이 있으면 풀어놓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연찬학교'의 내용을 짧은 코스로 풀어서 제공한다거나..
다음 글에는 그런 것들을 나누고 싶다.

===
<특강은 일본문화의 정수(精髓)> 230323

‘축소지향’의 일본문화가 가장 아름답게 꽃 핀 것 중의 하나가 이 '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라고  생각한다. 
7박8일간의 짧은 기간 안에, 고정관념, 화, 소유, 나, 일체(一體), 자유, 참된 행복, 불행의 원인, 진실사회와 실현방법, 운동론까지를 씨줄 날줄로 짜 넣어서,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면서 보여 오는 진실 사회의 모습이, 단기간 내에 실감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축소지향의 함정이 하나 있다. 축소해놓은 것은 아름답고 알기쉽지만, 그것을 그대로 확장한다고 같은 내용으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지점이 야마기시 운동의 결함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일본문화가 오버하면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다.)
특강을 받은 사람들이 맛본 지점은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정토회의 깨달음의 장이나 몇 군데 마음공부 프로그램에서 특강의 전반부를 차용하여 잘 활용하시는 것을 보면 핵심을 꿰뚫는 내용이 있음은 증명되었다고 본다. 
문제(?)는 후반부에서 제안하는 <마음이 열린 뒤에 보여 오는 세계-사회와 그 실현>에 대한 공동 작업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一)원인은 야마기시회 스스로가 자신을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운동을 전개한 지도 오래됐고, 본래 실현해보려고 했던 사회의 실태도 주춤하고 있는 지금이니까, 이제는 해왔던 일들을 ‘일단 선반 위에 올려놓고, 영위에서, 모두의 연찬으로 철저히 구명’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아래는 특강에 대한 대략의 설명이다. 사과에 대한 설명으로 사과 맛을 볼 수 없듯이 관심있는 분은 꼭 특강에 참석해보시길 바란다>
특강은 아래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진행해간다. 
1. 어떠한 경우에도 화(怒)가 나지 않는 사람이 된다.
2. 영위(零位)에 선다.
  주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단정하지 않고 
예를 들면 지위, 가문, ... 아(我), 시간, 생명 등에  집착하는 마음을 풀어놓고 영(零)의 몸 가벼움에 서서 사물을 보고, 생각하고, 구명 <연찬(硏鑽)> 이해한다.
3. 연찬은 모든 생각하는 법의 기본이고
   모든 실행의 근본이기도 한 것은 아닐까하고 사고하며 
4. 자타일체(自他一體)의 리(理)를 연찬하여 
   이것이 진실사회(親愛의 情으로 가득 찬)의 근본이념이라는 것을 체득한다. 
5. 자타일체로 번영하려고 하는 이론, 방법, 실행은 어떨까하고 연찬한다.
이 목표는 기간 중 계속 의식하고 확인해가며 진행된다. 
특강은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자신과 사회의 실태, 불행의 원인과 그것이 제거된  행복사회의 모습, 그리고 이상사회를 만드는 방법까지를 압축해 넣은 것이다. 
도입부는 자신의 ‘생각’이란 어떤 것인가를 알아가는 것이다. 목표2처럼 ‘주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단정하지 않기’위해, 자신의 생각이 무언가에 집착하여 ‘고정’되게 사물을 보고 있지는 않은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전제 없이 사물을 볼 준비가 되어야하는 데 그것을 ‘영위에 선다’라고 했다.  
목표2에서는 ‘영의 몸 가벼움에 서서 사물을 보고 생각하고 구명’하는 것을 ‘연찬’이라고 했다. ‘연찬’이란 야마기시즘의 방법론의 키워드이다. 인간의 생각이란 옳고 그름을 수없이 반복하여 판단해오며 쌓은 것인데, 한번 옳다고 생각한 것은 여간해서는 정말은 어떤지 검토되지 않은 채 판단의 기준이 된다. ‘옳다, 틀림없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검토해보았다면, 그 다음은 ‘감정’에 대해 살펴본다. 무엇이, 누군가가 ‘싫다’는 감정은 어떤 것인가? 자기가 한번 싫은 것이라고 정하면 그것은 싫은 것인가? 싫다는 것 역시 자신의 고정관념은 아닐까? 
그 다음은 감정의 극단적인 모습 중의 하나인 ‘화(분노)’에 대해 살펴본다. 목표1은 ‘어떠한 경우에도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된다’이다. 야마기시는 왜 이것을 목표1로 했을까? 이것은 개인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문제의 아주 중대한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내면의 갈등이나 개인 간의 싸움, 전쟁의 원인이 되는 ‘화’에 대해 검토해가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다’고 자신을 부자유하게 묶고 있는 고정관념들을 검토해간다. 인간사회는 스스로 만들어놓은 법률, 규칙, 의무 등에 스스로가 묶여서 옴짝달싹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돈이나 소유관념도 그런 고정관념이 사회화된 한 예일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도 검토해간다.
그렇게 주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단정하지 않고, 고정관념을 풀어놓고 자신도 사물도 제로에서부터 검토해가는 것을 연찬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목표3은 ‘연찬(硏鑽)은 모든 생각하는 법의 기본이고 모든 실행의 근본이기도 한 것은 아닐까하고 사고하며’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사물을 검토해가면 세계의 참된 모습이 보여 온다는 것인가? 야마기시는 그것을 목표4에서 ‘자타일체’라고 표현했다. 현상에서는 나와 남으로 분리되게 보여 대립ㆍ갈등하는 모순된 세계지만 본질에서는 나와 남이 한 몸이라는 것이 참된 이치(理)가 아닐까하는 것이고 그것을 연찬하여 진실사회의 근본이념임을 체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강의 후반에서는 야마기시가 그리는 이상사회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고, 인간의 특징인 지능과 사용방법, 인간의 불행의 원인과 그것을 제거하고 행복사회를 실현하는 이론과 방법 등에 대해 연찬한다. 
야마기시는 집약된 일주일의 특강을 통해 한 사람이 개별ㆍ대립적인 사람에서 일체ㆍ조화의 사람으로 전환되는 것만이 아니라, 인류사회가 일체ㆍ조화의 사회로 대전환되는 ‘다음 세상으로의 통로’가 되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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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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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이하 특강)이란 긴 이름의 핵심은 ‘연찬’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연찬인데, 아직 사람들이 연찬할 수 있는 상태로 되어있지 않으니까, 특별히, 강습적으로, 연찬할 수 있는 상태를 맛보게 하여, 최종적으로는 ‘연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연찬’하자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는 자기연찬, 둘이서는 대화연찬, 셋 이상은 연찬회로 구분하여 한다. 
실현지 생활 내내 ‘연찬은 생명선이다’라고 강조해왔었다.
대부분의 우리는 ‘아집’, ‘자기중심성’에 바탕을 두고 듣고, 말하는 경향이 크니까, 
생각으로는 ‘진실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해도, 실제로는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수가 많다.
 
들을 때는 ‘나’가 없이 듣고, 말할 때는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이런 상태의 사람들이 서로 듣고 말하는 관계가 사회의 기본이 된다는 것이, 단순하지만 사회구성의 핵심이다. 
실제로 이 듣고 말하기가 잘되는 연찬회에서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열리고 공간에는 화기(和氣)가 도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두뇌인터넷이라고 할까? 브레인스토밍도 같은 원리라고 본다.
 
이 ‘연찬’이란 것이 조화로운 사회의 기본이라고 본다
세계가 수 천 년 동안, 소유-권력-상하 사회로 지속되어져 오면서 기본을 잊어버린 것이지 특별한 방법이 아닌 것이다.
 
내가 알게 된, 사람들의 대화방식 중에 이 연찬과 가장 흡사한 것은, 북미 인디언들이 마을에서 나누는 대화이다. 비폭력대화, 써클대화 등의 서양에서 개발한 대화법들도 실은 인디언 대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원형의 대화이고, 야마기시에서는 그 바탕에다 탐구(과학적)를 더해서 원뿔형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진리탐구의 방법론이기도 한 것이다.
 
특강에서는 야마기시가 쓴 ‘야마기시즘 사회의 실태(부제 : 세계혁명실천의 서書)’를 ‘자료’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 안에는 그가 그리는 이상사회의 모습그 실현방법이 적혀있다. 그 것을 읽고 이해해가면서 동시에 그가 짜 넣은 묘한 방법들을 통해 자신과 사회의 참 모습에 대해 차차 깨닫게 된다.
약간 스포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다음 글에서는 특강의 내용을 어느 정도 소개하는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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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기시즘을 연찬한다>
야마기시가 한국사회에 기여한 세 가지가 있다. 야마기시 유정란 양계,
야마기시즘특별강습연찬회(또는 연찬),
그리고 야마기시즘 실현지 자체다.
(단정적으로 들리는 표현은 그 뒤에, “라고 나는 생각한다”를 붙여서 읽어주시길..)
유정란 양계는 일찍이 1930년대부터 시작된 야마기시씨의 농업실험의 결과로 나온 벼-닭-사람의 순환농법에서 비롯되어, 한국에는 1970년대 협업농 운동에서부터 생협, 한살림 등의 사회 운동의 초기에 중요한 정신적, 기술적 제공을 하였다. 야마기시씨는 그의 <야마기시회 양계법>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양계서적이라 생각하고 보기보다는 행복의 서적으로 읽는 편이 알기 쉽습니다. 또는 철학서적, 혹은 지능테스트 서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사람 모두 행복을 원하며 일하고 있겠지만, 어째서 행복을 얻을 수 없을까요?
. . .
그러므로 출발에 앞서서, 참다운 행복이나, 인생의 바른 모습을 확인하고, 참다운 양계란 어떤 것인가를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 . .
본 양계법은 종합철학으로부터 생긴 것으로서
... 이 양계의 진수를 터득하게 되면 정치ㆍ경제ㆍ사회ㆍ인생문제 및 기타 전부에 공통하므로, 응용하여 만사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야마기시씨는 그의 양계법을, 기술만이 아니라 행복이란 목적을 향한 종합적인 철학, 사회 실현 방법의 하나로서 짜 넣고 있고, 양계서는 돈벌이로서의 양계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이어진 ‘자연-전인 일체(一體)’의 진실을 전하는 책이기도 하다. 양계서의 본 뜻이 한국사회에 얼마나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정란 양계의 여러 기술들이 전해져 일정한 기여를 한 것은 틀림없고, 야마기시즘이 한국사회에 받아들여지는 데, 그런 음덕(陰德)이 또한 중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 특강이라고 줄여 부르는 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가 90년대 한국 사회운동의 전환기에,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 있다. 7박8일간의 특강을 수강한 한국사람은 아직껏 수 천 명을 넘지 않으나, ‘연찬’이라는 사고방식과 특강의 내용에서 다루는 ‘주제와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이 당시 한국의 사회운동, 정신운동의 리더들에게 전환의 ‘key role’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자기주장과 대립이 강한 사회상에 모두의 마음과 지혜를 모으는 연찬을,
유물도 유심도 아닌 ‘심물(心物)풍만세계’를,
본질을 바탕으로 한 지적 사회혁명이 가능하다는 비전을
보여준 것은 정신적 충격이면서 새로운 길이 열리는 희망이기도 했다.
다만 ‘일본 것’이라는 의식이, 내용에 더 깊게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기도 했다.
‘연찬’은 모든 선입견을 내려놓고 ‘0’에서 사물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고, 연찬회는 그런 상태의 사람들이 지혜를 모아가는 것이다. 맑은 두뇌인터넷이라고 할까?
그럼 ‘야마기시’의 성과는 연찬되고 있을까? 아마 일부는 되어 지고 일부는 빛이 비치지 않은 채로 있을 것 같다. 야마기시씨는 “이상은 방법에 의해 실현할 수 있다”고 했는데, 야마기시는 이상을 충분히 실현하였는가? 실현되고 있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소유 등 인간의 관념에 기반한 사회가 아닌 실제(실재)에 기반한 사회는 이루어질 수 없는가? 등등
그런데서 '야마기시'를 연찬해보고 싶은 것이다.
특강과 실현지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쓰는 게 좋겠다.
* 야마기시즘실현지(산안마을) 식구들께는 몇 분께 양해를 구하고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야마기시'라고 쓸 때는, 야마기시즘이라는 사고방식, 야마기시회라는 단체, 특강ㆍ연찬학교ㆍ실현지 등의 구현방식 등을 총칭해서 쓰고 있고, 인물로서의 야마기시는 '야마기시씨'로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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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단청
    고맙습니다!
    새롭게 정리되는 기회가 되네요.
    그냥 좋으니까 살았고, 저에게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2
    • 유상용
      나단청 각자의 선택이었지만 시대의 파도였고, 우리가 접한 지 30년이 넘었으니 이제 한번 정리해볼 때가 되었지요. 잊었던 것을 들어올려 연찬하면 그 의미가 새롭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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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기시와의 또 다른 통로 ㅡ

고1 겨울을 지나면서 ‘뿌리찾기’의 하나로 떠올린 것이, 막연하지만 땅, 지구(가이아), 농업 등이었는데, 2학년이 되면서 농업대학으로 진학을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2학년 때 담임교사는 생물선생님이셨는데 진학 상담에서 ‘농대’ 진학에 관심이 있던,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으셨고, 본인이 아는 농장 한 곳을 견학시켜주시겠다고 했다. 
1980년, 햇살이 따스한 5월의 어느 일요일,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수원역에서 내려 또 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간 후, 병아리를 키우던 어떤 농장을 함께 돌아보았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그것도 영향이 있었는지, 나는 82년도에 서울 농대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농대 나왔는데 어째 농사를 모르냐”는 말을 수 십 년 듣게 되는 출발이 되었다.^^

탈춤추고, 술먹고, 스터디하고, 시위 나가고, 학교 잘리고, 군대 가고, 돌아와 보니 89년 1월이었다. 헛헛한 마음 중에 자연농업, 한살림 등 여기저기서 미리 준비해주신 재료들을 모아, ‘바른 농업을 하며, 생활 속에서 수행을 하며, 도농 직거래를 하는, 사이좋은 마을공동체’를 만들면 어릴 때부터 바라던 삶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질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  

마침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으면 복적이 된다고 해서, 농대 4학년으로 복학을 했고, 그 1년 동안은 한국 내에 있는 유기농, 자연농, 공동체 등을 수업이 없는 매주 일요일 마다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어떤 스님으로부터 “자기는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이지만, 경기도 화성에 있는 어떤 농장에 가면 불법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런 곳을 제가 찾고 있습니다. 바로 가보지요”하고, 4월의 어느 주말, 물어물어 그 곳을 찾아갔다.

버스 큰길에서 내려 시골길을 삼십분 정도 걸어가니, 짙은 색 벽돌로 된 아담한 집이 한 채 나왔다. “계십니까~?” 하고 부르니 현관 안쪽 문이 열리며 한 중년 남자분이 나왔다.

 “어!, 선생님 여기 웬일이세요?” 
“자네야 말로 웬일인가?” 

그 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이셨던 윤ㅇㅇ님이었고, 내가 졸업하고 얼마 안 있어 학교를 그만 두시고, 84년부터 뜻있는 몇 가족과 함께 야마기시즘 실현지를 시작하셨던 것이었다.  

이 이어짐에 대해서는 글을 쓸지를 조금 망설였는데,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그 후 20년 정도의 야마기시 활동에 있어서 이 분과의 관계, 한국 야마기시 운동에서 이 분의 역할을 빼놓고서는 얘기할 수 없고, ‘본질적인 운동’과 그 ‘리더십’이라는 큰 주제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20년간 그 분의 중력장에 빨려 들어가지도 않고, 반발하여 튕겨나가지도 않는 묘한 균형점을 유지하려고 해왔다. 애증(愛憎)은 아니고 애려(愛慮)라고나 할까?

* 나중에 선생님께 들어보니, 그 농장은 지금의 실현지는 아니고, 그 가까운 지역에서 야마기시 양계의 육추실험을 하던 회원 농가였다.

===  · 

내가 야마기시에 접어든 경로 -

고등학교 1학년(1979년) 겨울, 어떤 계기로 인해 현상의 사회가 허망하게 느껴진 뒤, 나의 ‘뿌리 찾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79년에는 박정희의 죽음, 12.12쿠데타로 이어지는 혼돈의 시기였고 그런 분위기도 영향이 있었을 것 같다. 
이후로 10년 정도, 강렬하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허망하지 않은’ 길을 찾는 탐색이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혈통적인 뿌리 찾기로 시작하여, 몽골리안 루트, 시베리아 샤먼, 탈춤, 함석헌의 뜻으로본 한국사, 환단고기류의 상고사, 도올의 동양학, 김지하의 남녁땅 뱃노래, 동학, 증산도, 원불교로 이어지는 근세 개벽사상 등의 경로를 밟게 되었다. 

그 중 86년에는, 우리 때 많이 공부하던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사고방식에 의문을 품고 ‘과학이라면 현대물리학은 포용하고 있는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회를 구성할 수 있을까?’ 하고 물어 들어갔다. 인간에 대한 물음은 나 자신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는데, 스스로를 실험대상으로 동학, 증산, 원불교의 수련들을 조금씩 해보기 시작했다. 

그 흐름은 군대에 가서도 계속되었고, 그 때 읽은 책 중에 지승스님이란 분이 쓰신 ‘피야 피야 삼신 피야’란 책이 있는데, 나의 뿌리 찾기와 비슷한 경로를 밟으셨기에 반갑고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지승스님은 80년 10.27불교계 법난을 겪은 후 그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민족 사상의 원류라는 길로 들어가셨던 것로 기억한다. ‘삼신사상’을 말하고 있었는데, 원불교는 그 끊어진 표층수가 지하에서 다시 용출한 것으로 보았다. 원불교에 대한 관심이 조금 더 커진 계기가 되었다.

89년 1월에 군대를 마치고 나왔는데, 사회주의권의 해체에다 한국사회 상황도, 
‘옛 것은 사라지고, 새 것은 보이지 않는’ 막막한, 찬바람 부는 겨울이었다. 그 때 후쿠오카 마사노부 선생의 자연농업을 발견하였고, 한살림의 태동, 카톨릭의 도농공동체 등의 소식도 들려와 희망의 봄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조선의 마음’의 밑뿌리에는 뭔가 인류 보편의 심성이 살아있고, 그 것을 바탕으로 본질적인 사회(공동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노동과 수행이 둘이 아니고, 마음의 문제와 사회의 문제가 동시에 풀리는 통합된 길이 있지 않을까? 등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상-정신으로서의 ‘한사상’ ‘삼신사상’은 좋았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사회화하는 데는 가져다 쓰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 중에서 가장 사회화, 생활화에 균형 잡힌 길을 제시했다고 본 원불교를 베이스로 ‘삶의 양식이 근저에서부터 전환된 마을’을 만들어보자고 한 것이 91년~92년에 걸친 지리산 문수골 실험이었다. 교무, 청년들도 여러분이 관계했는데 모여살기 시작하고 6개월이 안되어 해체하게 되었다. 각자의 그림이 다르기도 했고, 종교단체의 특성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사회에 보편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었다.  

사회를 새롭게 구성하려면 정신적인 바탕과 함께, 구체적-실제적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필수 요소 등을 분석적 과학적으로도 해명할 수 있어야하고, 그 재료들을 가지고도 사회설계를 할 수 있는 종합적인 사고와 실제로 구성할 수 있는 실천력 등이 모두 필요하다. 그야말로 종합예술인데, 한국사상은 ‘하나의 사상’이라는 바탕이 훌륭하지만 구체성이 약했다. 

그 때 만난 것이 ‘야마기시즘(실현지)’이고 내가 생각하고 있던 본질적인 사회의 모습을 거의 대부분 이미 구현하고 있었다! 

“이 구체적인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 야마기시즘이 한국사상의 뿌리에 닿으면 뭔가 보편적인 제시를 할 만한 것이 나올 것 같다.” 는 생각에 나는 이후 야마기시의 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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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3 March at 12:07
  · 
돈이 필요 없는 사이좋은 즐거운 마을 2

사이좋다는 것은 일본어로 나카요시仲よし, 이고, 무엇과 무엇의 사이가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야마기시에서는 나카中(안, 속)이 좋다는 뜻으로 중의적으로도 쓴다. 속이 좋다는 것은 마음 속이 좋은 상태 즉, 각자의 마음 속에 대립이 없는 하나의 상태를 뜻하는 데, 본래의 사이좋음이라고 풀어쓰고 있다. 야마기시즘 특강에서는 “왜 화가 납니까?”라는 질문을 통해 상대가 끊어지는 체험을 해본다. 

대립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도 섬세한 마음에서 관ㆍ찰 觀ㆍ察할 때, '나'와 '상대'가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을 본다. 상대세계가 출현하는 것이다. 분별이 대립이 되지는 않겠지만 단절은 착각의 시작이다.

‘즐거운’이란 어떤 상태일까? 나도 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데, 마실 때는 즐겁고 깨고 나면 불쾌함, 미진함이 남는다. 그렇게 유쾌-불쾌를 반복하지 않는 순일한 즐거움을 생각해본다. 마음 안에 대립이 없고, 가까운 사람과 사이좋고, 멀리서 온 사람을 환대하고, 자기에게 맞는 쾌적한 일을 하고, 적당히 풍족한 물질이 있고, 등등. 달리 말하면 ‘행복한’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행복의 의미는, 불행의 반대말이 아니고, 인생은 쾌적하고 행복일색一色인 것이 참된 인생의 본연의 모습이라는 우리들의 인생관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 불행이라고 느끼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어딘가에 잘못이 있고, 그 잘못의 원인을 탐구하고 제거하면 바르고 참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 야마기시 미요조

‘마을’이란? 인간은 수 만년 동안 마을(무리, 씨족)을 이루고 인간류로 살아왔다. 인간다움의 원형이 형성된 대부분의 시간을 마을에서 지내왔던 것이다. 유인원부터의 진화 시간으로는 수백만년. 

야마기시씨는 ‘세계혁명’을 지향했지만 방법론으로는 ‘국가’, ‘종교’ 개혁으로 먼저 들어가지 않고 ‘마을’에서부터 시작한다. 왜일까? 

아마 ‘본질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그 견본을 만들고 전파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본 것 같다. 세계의 많은 공동체 실험들도 이같은 발상으로, 가까운 사이에서 소유와 대립의 담을 허문, 사람 사이의 실례를 만들고 그것이 넓혀지기를 바랐던 것이겠지. 그런 접근에 대해서는 ‘공상적 사회주의’ 등 현실 가능성 없는 이상주의라는 비판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당대’에 실험해서 어느 정도 검증을 해볼 수 있다는 면도 있기 때문에, 과학과 실증을 중요시하는 야마기시씨도 그런 순서를 택하지 않았나 싶다. 

“이리하여 한 마을의 기풍을 근저에서부터 바꾸어 행복촌으로 하고, 지상의 각지에 행복의 단서를 만들어, 그것이 차차 전파되어 확대되고, 온 세계가 행복인으로 메워지면, 물자는 넘쳐  흐르고, 친애의 정이 가득 차 넘치고..” - 야마기시 미요조

김원일
형이 산안에 들어간 지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네요. 30년 경험을 합쳐서 곱씹는 작업이라 기대가 됩니다. 지역이, 땅이, 기후가 인간 삶과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에 지역에 따라 사상도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동북아시아 중심에서 중국과 일본을 이어주고 섞어주는 역할을 해왔던 한국의 특징에 잘 맞는 새 야마기시즘 이야기를 기대합니다^^
Reply5 d


유상용
1 March at 13:13
  · 
돈이 필요 없는 사이좋은 즐거운 마을 1

이 문구는 야마기시즘실현지(산안마을)가 스스로 붙인 별칭이다.

‘돈이 필요 없는’ 이란 ‘무소유’를 말하는데, 경제의 방식이며 세계를 인식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야마기시즘 특강에서 “그 가방은 누구의 것입니까?”하는 질문을 받으면, 소유관념에 찌들은 이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릿속의 관념 안에서 쳇바퀴를 돌다가 진행자의 반복되는 질문과 실연으로 차차 사물을 관觀하게 되고, 인간의 생각과 사실-실제와의 다름에 조금씩 눈뜨기 시작한다. 

‘필요 없다’는 것은 ‘있어도 무용지물’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소유’란 ‘내 것’이고, ‘내 것’은 ‘나’란 것이 생기고 연달아 발생하는 것인데, ‘나’가 임시적인 ‘가아假我’라는 것을 자각하는 데까지 이어지는 문제이다.
 (假我를 거짓된 나로 보기보다는 건물의 지을 때 설치하는 가설재 같은 임시적 구조물로 본다)
누군가 마음의 문제를 상당히 해결하더라도, 마음이 차차 현상으로 나타나 지금의 사회로 된 것이 수천년에 걸쳐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깨달은 사람도 쉽사리 현상의 모순을 바로 잡기 어려운 것이다. 

야마기시씨는 독특하게도, 20대 초반에 깨달음(?)을 얻고 나서, 종교를 펼치지 않고 쌀농사와 양계 등의 농업을 시작했다. 짐작컨대, 자기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의 실상이 보여 온 후에도, 종교 등의 ‘가르침을 펼치는’ 구조로 들어가지 않고, 이상사회의 물적 토대를 바르게 하기 위한 실험을 착수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가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뒤에 그 내용을 이렇게 두 문장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진리는 하나다. 이상은 방법에 의해 실현할 수 있다"

Jewon Jeon
저는 야마기시즘이
사상이 완벽하고, 사실은 , 정말은 , 진리는 이러한데, 인간이 깨닫지 못해서, 체득하지 못해서 행복 사회를 구현하지 못한게 아니라
그러한 장단점과 모순 나약함 불안함의 그 모든 특성을 지닌 인간을
어떤면에서 이상화 시킨 점이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Reply1 w


Namgok Lee
28 February at 21:37
  · 
오랜만에 이 책자를 본다.
내가 50대의 8년을 함께한 '무소유사회'의 이념과 실천의 방향에 대한 개설서槪說書다.
'특강'의 자료로도 사용해온 책이다.
그 동안 이 사회실험도 많은 변화를 거쳤다.… See more
윤차차로
요즘.
온전히 내 의지로 새로운 삶의 방법을 선택 한다면
야마기시적시스템에서 살아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Reply1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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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28 February at 10:35
  · 
요즘 야마기시즘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무언가를 전개하려는 게 아니고 마무리하려고 하는 것이다. 
25세 되던 1989년 봄에, 마음의 문제와 사회의 모순과 자연과의 관계 등 이어져있는 세계가 조금 보여오고, '본질적인 사회' 즉 마음의 본질이 현상에 실현되는 인간사회가 실현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후, 최근까지 30여년 길을 더듬어 찾고 실천해왔던 그 곳을, 나로서는 더 할 일이 없어서 이제, 당분간 휴업을 하려고 한다.
아직 유효하고 어쩌면 아직 본격적으로는 시작도 하지않은 것이기도 하나, 내게 주어진 힘과 함께 할 사람과 사회의 인심이, 나로서는 더 갈 수가 없다고 느껴서 에필로그를 쓰려고 하는 것이다. 
야마기시즘실현지도 있고, 에즈원커뮤니티도 있어서 진행 중이기도 한 일이나, 양수겸장의 달인이 나타나주길 바라며 휴식을 취한다. 

ㆍ심리적 방면의 해결
ㆍ사회구성의 진수란?
"(인간이) 이 정도 빛나는 실적을 남기고, 훌륭한 희망까지도 기대되는 실현력을 가진 지능을 구비하면서, 심리적 방면의 해결이 심히 늦어지고, 더욱이 사회구성의 진수眞髓를 파악하지 못하여, 인간사회에 분쟁이 끊어지지 않고, 불행으로부터 탈각할 수 없다는 것은, 돌이켜보면 부끄러울 뿐입니다 
ㅡ 야마기시 미요조"

浦崎雄一
直ぐに陽の目を見なくてもやり続ける事で、後世に人々に評価される日が来るかもしれません。貴方の実践が周りを溶かして行くと確信しています。こうして繋がっているのですから大丈夫だと思います。
ReplySee translation1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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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25 February at 00:43
  · 
- 나는 비밀을 견지하고 있다, 야마기시 미요조
나는 지금까지 나의 사회구상을 일부만 언급하고, 구체적인 것은 대부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야마기시즘 사회의 근본적 요소를 가장 정확하게 결정적으로 명확히 드러내는, 매우 간단히 몇마디로 설명할 수있는 말이 있다. 이 말로 전부를 누구든 판정할 수 있지만, 나는 그것을 절대로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언젠가는 말하겠지만, 지금 그것을 입 밖에 내면, 어떤 국가들은 쇼크를 받아 공격하러 올 것이기 때문에, 나의 몸이 위험하게 된다.
원래 생명은 한번은 없어진다는 것을 잘 아니까,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ㆍㆍㆍ,
이상사회가 늦어질 것 같아  발표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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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22 February at 14:27
  · 
ー 본질적 사회의 실제 모습 
나는 지금(1954년) 이것에 대해 전부를 말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현재의 사회 기구나 관념ㆍ사상과 너무나 거리가 멀어, 틀을 벗어나고 거꾸로이고, 정치ㆍ경제ㆍ법률ㆍ도덕ㆍ관습 등을 뿌리로부터 자르고 바꾸는 것이고, 
지금의 학설ㆍ이론을 제쳐놓고 판단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없고 위험하다고 볼 부분이 많아서,
주관을 다 버릴 수 없는 사람이나, 왜곡된 간접자료에 의한 것이나,
진수眞髓를 구명하지 않고, 겉으로 부분적으로 보고 오해하는 사람들의 비난ㆍ공격ㆍ박해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ㅡ 야마기시 미요조
4, 50년 지나니 '민주주의'도 빛을 잃고, 진보건 보수건 '돈주주의'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1950년대에 조심스레 내민 이 '위험한?' 사상은, 70년이 지나서 할일을 다 했을까? 또는 지표면 밑에서 지하수로 흐르다가 다시 용출될까? 
'일본' 사상이라는 외피를 넘어서 보면,
'본질을 현상에 실현'하려는 구체적 사회실험의 가치가 보인다. 
실험의 규모나 형태적 성공 여부를 떠나, 맑시즘 못지않은, 인간세에 대한 전면적인 제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이런 얘기는 별 관심도 없겠지만..


Geun-Soo Lee
인간의 욕심을 파고드는 명품. 국민소득이 어느정도 올라가니 그게 작은거라도 손에 잡히고 인스타로 자신을 과시하는 세상이 오니 MZ세대로부터 가꾸로 돈주주의 사상이 퍼지는게 아닌가 함.
80년대 군사정부 시절이 끝나면 뭔가 달라질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바닥에 깔린 공무원사회는 그대론지라 힘든 과정이 반복되고.
민주화시대의 열매를 10년간 가꾸다가 실패해 MB한테 농장내줬다가 박그네 닭질덕에 다시 찾은 사람들은 다시 열매 경작을 하는 과정에서... 20년간 농장 경영 뺏길 일 없다고 큰소리치던 사람들이 아마도 친일프레임을 적절히 사용하면 편하게 지낼거라 생각했을거라고 봄.
과연 반일만이 정답인지는 세월이 가르쳐줄듯. 왜 타이완은 한국과 일본 대하는 정서가 그렇게 다른지...
다양한 일본의 면을 못보고 하나만 보고 그걸 자기네 정치생명 연장에 쓰려는건 나라에 도움이 안될거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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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20 February at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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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혁명실천의 書, 서문에서 발췌>

살아있는 모든 것, 누가 참으로 행복을 원하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실로 인류의 역사는, 이 행복 획득의 피투성이 싸움에 묻혀있다, 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과연 세상은 항구적인 평화와 영원한 행복을 가져올 수 있을까?
우리 인간 세상은, 본래 행복일색一色이어야한다는 신념에 서있다. 
이 이상사회는 다른 어떤 것의 힘도 빌리는 일 없이, 우리들 인간의 힘으로 초래할 수 있다는 확신과 방법을 가지고 있다.

일체一切를 이해와 납득 위에 서서, 기쁨 속에서 다툼없이 투쟁없이 평화 속에서 하는 혁명.
참된 항구적인 평화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행복을 마음으로부터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야마기시즘 사회로의 세계혁명의 서]를 보낸다

1954.12.20 
 
ㅡ 야마기시 미요조 ㅡ

문병훈
간만에 들렀는데
올드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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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문병훈 1954년, 올드하지. ㅎㅎ
Reply1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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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19 February at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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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一體의 리理
보합保合의 리理
사랑愛의 리理
진리眞理
一 야마기시 미요조
간명하다.

김석환
간명한 데 어렵네 친구!^^♥♥♥♥♥♥♥
Reply2 wEdited
유상용
김석환 해설이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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