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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9

이 땅에서 이 땅에서 공공철학하기(1) -‘공공’이란 무엇인가? 조성환

이 땅에서 공공철학하기(1) – 다시개벽

이 땅에서 공공철학하기(1)

-‘공공’이란 무엇인가?

글: 조성환

이 글은 개벽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공공성’의 유행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공공성’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가령 구글에서 ‘공공성’으로 검색해 보면, ‘법률의 공공성’이나 ‘의료의 공공성’또는 ‘교육의 공공성’이나 ‘건축의 공공성’, ‘금융의 공공성’과 같은 용례가 나오는데, 이에 의하면 ‘공공성’은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만능어’처럼 보인다.
마치 조선시대에 성리학에서 ‘리(理)’라는 말이, ‘사랑[愛]의 리’, ‘효도[孝]의 리’, ‘마음[心]의 리’, ‘사물[物]의 리’와 같이, 어디에도 적용할 수 있었던 것과 유사하다. 성리학에서 ‘리’는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는, 그러나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른, 당위적 ‘가치’를 의미하였다. 모든 사물에는, 그중에서도 특히 인간에게는, ‘그렇게 있어야 할 모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리’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마찬가지로 ‘공공성’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지켜야 하는, 어떤 분야에도 두루 적용되는, 공통의 덕목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 덕목이 모종의 이유에서 잘 지켜지지 않고 있고, 그래서 ‘공공성’이라는 말이 일종의 화두처럼 쓰이는 느낌이다. 가령 세월호 사태가 있은 지 얼마 후, 〈공공성 꼴찌 국가 한국…세월호와 ‘공공성’〉이라는 제목의 뉴스가 보도되었는데(2014.11.7. SBS 인터넷판 뉴스 「취재파일」). 이 보도에 의하면, SBS와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1년 동안 공동 연구한 결과, 세월호 사태의 원인은 한국 사회의 공공성이 낮은 데에 있었고, 실제로 OECD 국가들의 순위를 매겨 본 결과 한국의 공공성은 꼴찌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문제의 원인을 ‘공공성’에서 찾은 대표적인 예이다.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공공성’이라는 말의 유행과 더불어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원초적인 질문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가령 조원희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매일노동뉴스》 2006.08.20.), 조한상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책세상, 2009), 이노우에 타츠오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초청강연회, 2010.11.05.), 정태인 「공공성이란 무엇인가」(《공무원U신문》 2014.11.17) 등이 그것이다.
이 공통된 물음이 말해주는 것은 ‘공공성’이 사람들의 중요한 관심사이기는 하지만 그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공공성이 중요한지는 알겠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고, 그래서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여기에는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것보다 더 깊은 철학적 의미가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즉 ‘공공성’이라는 말 속에는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더 나아가서는 ‘정치’나 ‘경제’의 핵심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들 논의에서 공통된 것은 ‘공공성’ 개념을 논하는 데 있어 하나같이 서양의 ‘public’ 개념을 출발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공공성’을 ‘publicity’나 ‘publicness’의 번역어로만 이해하지, 원래 동아시아사상에서 논의되어 온 ‘공공성’ 개념은 전혀 고려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실은 ‘공공성’ 개념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부분의 인문학적 논의에서 보이는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는 서양의 ‘publicity’에 해당하는 개념이 없었을까? 다시 말하면 ‘publicity’의 번역어로서의 ‘공공성’ 개념은 어떻게 해서 탄생한 것일까? 그것은 원래부터 한자문화권에 있던 말일까? 아니면 번역을 위해서 만들어진 말일까? 이하에서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의 일환으로 동아시아 고전에 나오는 ‘공공’ 개념을 추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을 한국에서의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즉 한국 사회에서의 공공성 문제를 생각하는데 있어 첫걸음으로 삼고자 한다.

‘공공성(公共性)’ 개념의 기원
먼저 ‘공공성’이라는 말을 분석해 보면 ‘공공’+‘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 ‘성(性)’이란 ‘인간성’, ‘특수성’, ‘형평성’과 같이 명사 뒤에 붙어서 ‘어떠한 성질’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공공성’이라는 말도 일단 ‘공공의 성질’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공공’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귀착된다. 즉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아시아사상사에서의 ‘공공’ 개념에 주목한 학자는 일본에서 활동한 공공철학자 김태창이다. 그는 동아시아 고전에 나오는 ‘公共’ 개념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공공철학’을 건립하고자 하였다. 김태창의 『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동방의 빛, 2010)에 의하면, 한자어 ‘公共’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처음 등장한다. 구체적으로는 『사기』에 수록된 「장석지(張釋之) 열전」에 처음 나오는데, 장석지는 한나라 문제 때에 법을 총괄하는 직책을 맡고 있던 고위 관리였다. ‘공공(公共)’ 개념이 최초로 나오는 문맥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한나라 문제(B.C.202~B.C.157)가 궁궐 밖을 행차하다가 마침 다리를 건너려고 하는데 갑자기 다리 밑에서 한 사람이 뛰쳐나오는 바람에 문제가 타고 있던 말이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문제는 무사했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황제가 말에서 떨어져 큰일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문제는 즉시 장석지에게 다리 밑에서 뛰쳐나온 사람을 심문하라고 명령했다.
장석지가 자초지종을 묻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황제의 행차가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황급히 다리 밑에 숨었습니다. 한참을 있다가 행렬이 다 지나간 줄 알고 나왔는데 아직 행렬이 다리를 건너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에 장석지는 황제의 행차를 방해했으므로 법률에 따라 벌금 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문제는 황제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 죄에 비하면 형벌이 너무 가볍다면서 크게 화를 냈다. 이에 대해 장석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법이란 천자가 천하와 함께 공공(公共)하는 바입니다.”
이 말은 문맥상으로 볼 때 제아무리 천자라 할지라도 법은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지켜야 한다는 뜻임을 추측할 수 있다. 여기에서 ‘공공’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데, 그 의미는, 앞의 ‘공公’은 ‘모두’ 또는 ‘공평하게’를 뜻하고, 뒤의 ‘공共’은 ‘함께한다’는 말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모두와 공평하게 함께한다”는 정도의 뜻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핵심은 뒤의 ‘함께한다(共)’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앞의 ‘공(公)’은 ‘함께한다’를 수식하는 부사 정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분석해 보면, ‘공공’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함께한다’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공공’이 동사로 쓰였다면 여기에 ‘성’이 붙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왜냐하면 ‘성’이란 말은,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대개 명사에 붙어서 추상명사를 만드는 어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이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공공성’이란 ‘공공하는 성질’, 다시 말하면 ‘모두와 함께하는 성질’이라고 이해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고전적인 의미의 ‘공공’에서 보면, “한국이 공공성이 낮다”고 한다면 “한국인들은 모두와 함께하는 성향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된다. 뒤집어 말하면 ‘모두’가 아닌 ‘일부’하고만 함께하거나, 아니면 ‘자기’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뜻이다.

[공공철학을 다룬 도서들: 왼쪽부터 『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김태창 저 / 조성환 역, 도서출판 동방의빛, 2010),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기획, 조병희, 이재열, 구혜란, 김지영 저, 한울아카데미, 2015),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조한상 저, 책세상, 2009), 『일본에서 일본인에게 들려준 한삶과 한마음과 한얼의 공공철학 이야기』(김태창 구술/야규 마코토 기록, 정지욱 역,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2)]

우주론적 차원의 ‘공공’
‘공공’ 개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사기』로부터 약 1000년 뒤인 성리학에서의 일이다. 성리학에서는, 『사기』에서와 같이 “법을 공공한다”는 용례 이외에도, “리를 공공한다”는 의미에서의 ‘公共之理(공공지리)’라는 말을 쓰고 있다. 여기에서 ‘리’는 앞에서 말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대해 쓰는 말이다. 즉 법과 같이 단지 인간 사회에만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에 대해 쓰이는 개념이다.
그래서 ‘공공지리’란 “모든[公] 존재가 공유하는[共] 리”를 말한다. 이것을 줄여서 ‘공리(公理)’라고도 한다. ‘공리’는 근대에 서양문물을 받아들일 때 ‘axiom’의 번역어로 채택된 말이기도 하다. 수학에서 axiom이 “어디에나 두루 적용되는 증명이 불필요한 자명한 진리”를 의미하듯이, 전통시대에 ‘공리’ 역시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는 존재원리 같은 것을 가리키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오늘날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가치중립적인 법칙이나 원리를 말하였던 것은 아니다. 즉 뉴턴 물리학에서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유클리드 기학학에서의 ‘평행선 공리’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리학에서 강조하는 ‘리’에는 무엇보다도 가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즉 그것을 실천하면 우주의 조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경우에 한해서 ‘리’라고 한 것이다(Brook Ziporyn 참조).
대표적인 예가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이다. ‘공’은 그 원리를 체득하면 해탈을 이룰 수 있고 다른 존재와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리’이다. 그리고 ‘공’이라는 ‘리’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공공지리’, 즉 ‘공리’이다. 붓다는 이 ‘공리’를 몸소 깨닫고 중생을 위해 설파했기 때문에 중국의 성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아울러 인도의 ‘불도(佛道)’가 유교와 같은 중국의 공식적인 ‘가르침’, 즉 ‘불교(佛敎)’로 격상될 수 있었다.
이러한 흐름에 자극을 받아 성립한 성리학에서는 고대 유학의 ‘인(仁)’을 ‘리(理)’로 격상시켰다. 즉 맹자에서는 ‘인(仁)’이 타자의 아픔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라고 하는 인간의 심리현상으로 이해되었는데, 12세기의 주자에 가면 그것이 “우주가 만물을 생성하는 마음”[天地生物之心]이라고 하는 우주론적 원리, 즉 ‘공리’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즉 인간의 마음이 우주의 마음으로 확대된 것이다. “인(仁)은 사랑의 리(理)이다”[仁者愛之理]라고 하는 주자의 말은 이러한 변화를 말하고 있다.

‘공공’의 세속화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쓰는 ‘공공성’이란 개념은, 앞에서 소개한 용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주론적 차원에서의 ‘공공’이 인간사회의 영역으로 한정됨과 동시에 동사에서 명사로 그 쓰임이 변질되어 탄생한 말이다. 이와 같이 ‘공공’ 개념에 변화가 생긴 것은 20세기 초의 일본에서의 일이다. 야마와키 나오시에 의하면, 일본의 윤리학자 와츠지 테츠로(和辻哲郎)는 1930년대에 『윤리학』이라는 저서에서 ‘公共性’이라는 개념을 처음 썼다고 한다.
그런데 와츠지는 ‘공공’을 추상명사화함과 동시에 그것이 적용되는 영역을 ‘국가’로 제한시켰다. 즉 공공성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장을 ‘국가’로 한정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도 ‘윤리’적 차원으로 축소시켰다. 주지하다시피 1930년대는 일본이 중일전쟁을 전후로 이른바 ‘전시체제’에 돌입한 시기이다. 즉 국가주의가 절정에 달한 시점이었다. 이때 탄생한 ‘공공성’ 개념이 ‘국가’를 핵심으로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 결과 전통시대의 ‘리(理)’의 자리에 ‘국(國)’이 들어가게 된다.
이때 생겨난 말이 “멸사봉공(滅私奉公)” 즉 “사(私)를 멸하고 공(公)을 받든다”는 개념이다. 다시 말하면 “공(公)을 위해서 사(私)는 희생되어도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때의 ‘공’은 이제 ‘리’가 아닌 ‘국’으로 제한된다. 그래서 ‘멸사봉공’은 달리 말하면 국가를 위해서라면 개인은 희생되어도 된다고 하는 국가지상주의적인 표어를 의미한다.
당시에 일본은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자살 특공대를 만들어 미국과 싸우게 했는데, ‘멸사봉공’은 이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사용된 일종의 슬로건이었다. 또한 ‘멸사봉공’은 일제시대에 우리나라를 다스렸던 일본 총독의 연설 속에 나오는 말로도 유명하다(〈이순신 장군이 ‘멸사봉공’? 뜻이나 알고 쓰나〉, 인터넷판 《오마이뉴스》 2012년 12월 5일자). 이 연설은 일본이라는 나라[公]에 대한 봉사[奉]만이 최고의 가치라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후에 이런 생각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지게 되는데, 특히 근대화 과정에서 나라를 위해서, 또는 회사를 위해서, 또는 조직을 위해서라면 개인은 희생되어도 된다는 논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공(公)’은 주로 ‘정부’나 ‘관청’ 등을 나타내는 말로 제한적으로 사용되게 된다. ‘공직자’, ‘공무원’, ‘관공서’, ‘공기업’, ‘공익’과 같은 말이 대표적인 예이다. 반면에 국가나 사회를 뛰어넘어서 모두가 함께하는 것에 대해서 ‘공(公)’을 쓰는 일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공(公)’ 하면 곧바로 국가나 정부를 떠올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아울러 이때부터 ‘공공’이라는 말도, ‘공공 기관’이나 ‘공공 정책’과 같이, 국가로서의 ‘공(公)’을 나타내는 말로 의미가 한정된다.
나는 이것을 ‘공공의 세속화’라고 부른다. 국가를 넘어선 우주론적 차원의 ‘공공’이 국가적 영역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국가와 국가를 잇는 사상적 고리는 끊어지게 되고, 인간의 문제를 우주의 차원으로까지 확장시켜 생각하는 사고는 소멸하게 되었다. 흔히 근대의 폐단으로 지적되는 인간중심주의, 생태문제, 국가주의 등은 모두 공공의 세속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과제는 이 세속화된 ‘공공’을 어떻게 하면 다시 자연의 영역, 우주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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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쇼에키와 동학을 중심으로

글: 조성환, 2021.05.01

이 글은 개벽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프랑스와 쥴리앙이라는 프랑스의 비교철학자는 “한국은 중국철학의 보관소”라고 했다고 한다(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이근세 옮김, 『전략』 교유서가, 2015, 『해제』). 중국에는 이미 사라져버린 귀중한 사상들을 한국이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일본인들은 한국이라고 하면 ‘한(恨)’을 떠올린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의 혐한론의 분위기를 타고 더욱 가열되고 있는데, 가령 일본에서 활동하는 황문웅이라는 대만출신 저널리스트의 신간 『恨韓論』(宝鳥社, 2014)이 대표적이다(설령 한국에 대해서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자 하는 논의의 경우에도 ‘한’은 단골 주제로 등장한다. 가령, 오구라 키조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講談社, 1998)).
이런 외국인들의 평가에서 공통되는 것은 한국사상의 긍정적이고 주체적인 의미를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면서 한국과 일본의 생명사상에 접근한 것이다.

1. 안도 쇼에키의 활진사상(活眞思想)
안도 쇼에키(安藤昌益, 1703-1762)는 에도 중기에 해당하는 18세기 일본의 사상가로 중국의 유교, 불교, 도교의 이른바 삼교의 틀 안에 들어오지 않는 독특한 사상가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는 의사였으면서도 농민의 입장을 대변하였고 특히 생명사상을 주창한 사상가로 유명하다. 유불도 삼교의 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니노미아 손토크(二宮尊徳. 1787~1856)와 유사하고, 생명을 철학적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다나카 쇼조(田中正造, 1841~1913)의 선구자라 할 만하다. 그의 철학의 핵심 개념으로는 ‘직경, ‘활진’, ‘자연세’ 등을 들 수 있다.

(1) 직경(直耕=직접 밭을 간다)
안도 쇼에키는 우주의 본질을 ‘경(耕)’, 즉 ‘노동’으로 파악한다. 우주의 모든 존재는 다 각자 맡은 일을 함으로써 먹고 산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 하에서 그는, 전통적으로 숭상받아 온 성인들(요순, 석가, 노장 등)을 모두 “불경탐식(不耕貪食)”, 즉 “농사일을 하지 않고 농민들을 착취한 도둑”이라고 비판한다. 그런 점에서 인의나 무위의 실천자로서의 성인이 아닌 ‘일하는 사람’(耕者之謂聖)으로서의 성인관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2) 자연의 원리를 훔친 성인
쇼에키는 우주의 원리는 직경인데, 성인만이(더 나아가서 지배층) 이 원리를 위배한다고 비판한다. 이는 노장사상에서 모든 존재는 무위의 존재방식을 따르고 있는데 오직 인간만이 여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비판과 유사하다. 다만 그 내용상에 있어서 쇼에키는 무위(=자발)가 아닌 직경(=노동)을 주장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쇼에키의 말을 들어보자: “대개 조, 수, 충, 어에게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고 동류끼리 서로 먹거나 먹히는 일이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네 종류를 잡아먹는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잡아먹는 관습이 시작된 것은 바로 성인들이 범한 죄로 천도를 훔쳤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성인들은 일찍이 천도를 위배한 것입니다.”(박문현·강영자 번역, 『법세이야기』, 5쪽)

(3) 전도(轉道)와 정도(定道)
쇼에키는 기존의 중국철학의 핵심 개념을 모두 자기 식대로 바꾸고 있다. 가령 ‘성인’대신에 ‘정인(正人)’이라는 말을 쓰거나 ‘천(天)’대신에 ‘전(轉)’을, ‘지(地)’대신에 ‘정(定)’을 각각 쓰고 있다. 그 이유는 천지(天地)에는 상하의 계층적 의미가 들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지 대신에 전정(轉定=회전과 고정)이라는 가치중립적 용어를 쓴다. 그리고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천도(天道) 대신에 전도(轉道)를, 지도(地道) 대신에 정도(定道)라는 말을 쓴다.(참고로 『법세이야기』에서는 편의상 ‘天’을 ‘轉’으로 수정해 놓았다: “본문에는 ‘轉眞’으로 되어 있으나 ‘天眞’으로 일괄해 이해하기 쉽게 했다. ‘轉道’ 또한 ‘天道’로 통일하였다.” 박문현·강용자 『법세이야기』 5쪽, 각주 5)

(4) 활진(活眞) 또는 토활진(土活眞)
‘활진’은 쇼에키에게 있어서 우주의 궁극적 실재와 같은 개념이다. 그가 고안해낸 이 말에는 ‘생명’(活)이야말로 ‘참’(眞)이고, 그것의 근원지가 바로 땅임을 의미한다(土活眞). 아울러 ‘곡령(穀靈)’은 땅에서 나오는 곡물 속에 생명의 엣센스가 들어 있고, 그것을 영성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편 공공철학자 김태창은 쇼에키의 ‘활진’을 일본의 고신도(古神道)의 ‘산령産靈’(무스히=천지만물을 생성하는 신령)과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마찬가지로 신도학자인 카마다 토지(鎌田東二) 교수는 “자연신도에서는 무스히를 포함해서 자연생성력이 가장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하였다(<미래공창신문> 제24호). 이것은 쇼에키의 사상이 고대 일본의 생명사상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5) 자연진영도(自然眞營道)
쇼에키에게는 『자연진영도』라는 대표적인 저작이 있는데, 여기에서 ‘진영’이란 우리말로 옮기면 ‘참행위’와 같은 말로,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자연의 생명력을 기르는 직경이야말로 참다운 행위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노동이야말로 참된 ‘도’라는 것이다. 이것은 맹자가 말하는 ‘노심자(勞心者)’와 ‘노력자(努力者)’의 위치를 정확하게 뒤집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 治於人者食人, 治人者食於人, 天下之通義也. 『등문공(상)』).

(6) 법세에서 자연세로
쇼에키는 성인이 노동하지 않으면서 노동하는 자들을 착취하는 세상을 ‘법세’라고 한다. 법세는 성인들이 사적인 법(=제도)를 만들어 자연의 원리(=직경) 반하는 착취를 일삼는 세상이다. 반면에 모두가 직경하면서 자급자족하는 세상을 자연세라고 한다. 자연세는 몸소 경작을 함으로써 대지의 생명력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서 타인의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깨우치며 사는 이상세계이다.

(7) 일본적 영성
카마다 토지 교수는 일본적 영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본적 영성을 근거지우고 있는 것으로 ‘장소적 논리’가 있고, 이것을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의 말로 하면 대지성(大地性)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연이 지닌 커다란 역동으로, 거기에는 생태지(生態智)가 깃들여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생성력으로서 무수히의 힘을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사를 포함한 모든 것을 낳고 만들어 나가는 스스로성과 저절로성이다. 이러한 무스히의 힘이나 자연생성력이 일본적 영성의 근간에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미래공창신문> 제24호)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펴본 안도 쇼에키의 활진, 곡령, 직경사상 등은 이러한 일본적 영성의 대표적인 표현이다.

2. 동학의 하늘사상
일본적 영성의 근원에 ‘대지’가 있다고 한다면, 한국적 영성의 바탕에는 ‘하늘’이 있다. 한반도에 관한 최초의 문헌적인 기록은 제천행사를 특징적으로 전하고 있다. 19세기말~20세기초에 탄생한 이른바 민족종교들은 하나같이 제천행사를 부활시키고 있다(동학, 대종교, 증산교).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박재순은 하늘을 ‘한국종교의 원형’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또한 김태창은 최치원이 말한 풍류는 하늘의 노마드적인 속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하였다. 아울러 대지와 하늘의 차이가 한국인과 일본인의 심성의 차이를 대변한다고 하였다. 동학은 이러한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 사상적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상이다.

(1) 천도의 부활
최제우는 자신의 학문은 ‘하늘’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천도’라고 불렀고, 이 점에서는 서학과 마찬가지지만 ‘학’의 연원이 한반도(東方)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서학’이 아닌 ‘동학’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마치 쇼에키의 ‘활진’개념이 신도의 ‘무스히’사상에서 나왔다는 견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것은 동학이 우주적 생명력의 근원을 하늘 관념에서 찾고 있다고 한다면, 쇼에키는 그것을 경작이라는 대지 관념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편의상 전자를 천학(天學), 후자를 지학(地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학의 ‘하늘’은 유불도에 나타난 중국의 ‘천(天)’사상과도 본질적으로 다르다. 가령 『논어』에서의 ‘천(天)’은 무언(無言)의 천(天)인 반면에 최제우의 하늘은 가르침을 내려주는 하늘이다. 이러한 차이는 중국사상이 일찍부터 ‘상제(上帝)’나 ‘천(天)’이 아닌 ‘도(道)’라고 하는 인문적 질서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리라. 그런 점에서 중국사상은 도를 정점에 두는 도학(道學)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동일한 맥락에서 서양사상은 God을 가치의 근원에 두는 신학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2) 어우러짐으로서의 생명력
동학과 중국사상 또는 서양사상과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천인관계, 즉 하늘과 인간(또는 신과 인간)의 관계일 것이다. 최시형은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천인상여”(天人相與=하늘과 인간이 서로 관여한다)라는 동중서의 말을 빌려 표현하고 있다(“天人相與之機不可須臾離也”- 하늘과 인간이 함께 하는 구조는 잠시도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한대의 동중서는 군주가 비도덕적인 정치를 하면 그에 대한 경고로서 하늘이 자연재해를 내린다고 하는 천인감응론 또는 천인상관론의 입장에서 천인상여를 말했다고 한다면, 동학은 하늘과 인간의 상호의존관계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 말을 차용하였다(“하늘은 인간에 의지하고 인간은 하늘에 의지한다.”최시형).
이것은 인간이 자연의 원리를 일방적으로 본받는다고 하는 중국의 도가사상이나 쇼에키의 직경사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이다. 즉 동학은 인간도 하늘을 죽일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어린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하늘님을 해치는 것이다.”최시형) 인간의 주체성과 영향력을 훨씬 강조하고 있다. 동학에 이르면 하늘은 인간처럼 인격화되고 인간은 하늘만큼 존귀해진다. 동학의 생명사상은 하늘과 인간의 하나됨(合一)이 아니라 ‘어우러짐’(相與)을 통해 완성된다(이것을 김용우 선생의 표현을 빌리면 ‘호혜’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동학이 하늘과 인간의 불상리(不相離)를 말하고 있다면, 『중용』에서는 도(규범)와 인간의 ‘불상리’를 주장하고 있다(道也者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 또한 『팡세』에서는 신과 함께 하는 행복(Happiness of man with God)과 신과 함께 하지 않는 불행(Misery of man without God)을 대비시키고 있다. 스즈키 다이세츠는 대지로의 회귀를 일본적 영성의 특징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역시 천학(天學)과 도학(道學) 그리고 신학(神學)과 지학(地學)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언설들이라고 생각한다.

(3) 어우러짐의 한국철학적 배경
조선성리학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권근은 『천인심성분석지도(天人心性分釋之道)』에서 성리학의 ‘태극’이 아닌 ‘하늘’을 정점에 위치지우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권근은 ‘天’이라 글자를 ‘大’와 ‘一’로 분해한 뒤, 각각을 다시 리와 기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天爲一大. 一者, 以理言無對, 以行言無息; 大者, 以體言無外, 以化言無窮. 하늘은 ‘一’과 ‘大’를 말한다. ‘一’이란 원리의 측면에서 말하면 짝이 없다는 것이고, 운행의 측면에서 말하면 쉼이 없다는 것이다. ‘大’란 형체의 측면에서 말하면 밖이 없다는 것이고 변화의 측면에서 말하면 끝이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 그림 참조).
권근이 성리학적인 태극이나 리가 아닌 ‘천’을 최고의 범주로 설정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가령 리기론적 범주만으로는 실천철학적인 함축, 즉 ‘외천’(畏天)으로서의 경(敬)을 확보하기가 어려웠을지 모른다. 반면에 ‘천’을 리와 기를 아우르는 범주로 설정함으로써 존재와 당위, 사실과 가치를 포괄하는. 이것을 리와 기의 어우러짐으로서의 하늘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주자학에서는 하늘을 대신해서 태극이나 리가 최고범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면, 권근의 경우에는 그러한 사유체계를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하늘이 여전히 최고범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리와 기의 묘합으로 우주를 이해하는 생각은 이후에 율곡 등으로 이어지는데, 가령 율곡은 리와 기의 관계를 ‘묘합’으로 보았다고 한다(“理氣之妙.”‘묘합’에 대해서는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김동희 박사의 논문 『율곡 이이의 리기지묘 사유에 대한 재고찰』(2015)로부터 계발을 받았다. 김박사는 서양의 이원론적 사유, 중국의 일원론적 사유에 대해서 한국의 묘합적 사유를 특징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김동리의 형인 김범부는 한국사유의 특징을 ‘묘합’으로 보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월간 『공공철학』에 실린 야규 마코토씨의 글을 참고하였다). 리와 기의 묘합적 존재방식은 마치 양자역학에서 빛이 입자이면서 파동인 것과 유사하다(이 점에 대해서는 한동대학교 기계과의 이재영 교수로부터 계발을 받았다). 빛은 관찰자가 보고 있으면 입자처럼 움직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파동과 같이 행동한다고 한다. 여기서 입자와 파동의 이중적 존재방식은 이원론이나 일원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선후나 본말이 있을 수 없다.(게슈탈트심리학에 대해서는 Brook Ziporyn 교수가 중국철학의 ‘리’를 coherence로 해석하면서 드는 예를 참고하였다)

(4) 종교와 종교의 어우러짐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의 가설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사유의 특징 으로 ‘어우러짐’을 들 수 있고, 그것이 동학에서는 ‘상여(相與)’의 호혜행위로, 권근이나 율곡 등에서는 ‘묘합(妙合)’의 존재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또한 이런 맥락에서 일제시대 종교사가인 이능화의 “세계의 모든 민족종교는 하늘을 중심에 두고 있다”(悉皆以天爲主, 『백교회통』, 1912)는 말을 이해하면, 모든 종교를 어우러지게 하는, 즉 조화되게 하는 작용으로서 하늘이 설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가 ‘종교’를 신도와 불교 그리고 기독교의 세 개로만 한정시키고, 나머지는 ‘유사종교’라는 이름으로 단속과 통제를 가한 것에 비하면 대단히 대조적인 이해이다. 서양에서도 종교다원주의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이 19세기 말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능화의 “백교회통론”은 대단히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과는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이런 논의가 일찍부터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능화의 심성에는 종교와 종교 간의 장애가 아닌 소통(通敎)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았기 때문이리다. 한편 최치원은 이러한 통교적 사유방식을 ‘포함’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고 한다. 삼교를 포함하고 군생을 접화한다”). 여기서 ‘풍류’는 중국의 유불도 삼교를 어우러지게(包含) 하는 하나의 사유방식을 말하고, 그것이 한국인의 ‘멋’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단지 삼교의 조화나 백교의 조화를 논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어우러지게 하여 하나의 새로운 ‘도’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는 중국과도 다르고 이능화와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식민지시대에 이러한 종교간의 어우러짐을 표방하고 나타난 종교단체가 원불교이다. 가령 원광대학교의 한복판에 있는 수덕호에는 둥그런 호수 주위에 원불교 창시자의 동상 대신에 소크라테스와 예수 그리고 공자와 석가의 동상이 놓여 있다. 이것은 최치원의 ‘포함’사상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원불교의 전신인 불법연구회 제2대 회장을 지낸 조옥정은 구한말에 유학자로 시작했다가 동학도로 전향하고 다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가 마지막에는 원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의 기독교 성직자들로부터 불교를 신봉한다는 비난에 대해서 “한 눈보다는 두 눈이, 한 손보다는 두 손이 한 발보다는 두 발이 더 유익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것은 복수의 종교적 아이덴티티를 인정한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복수의 종교적 아이덴티티를 가치 있는 것으로 본다는 말이다.

(5) 한국인의 영성
나는 바로 여기에 한국인의 영성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즉 “복수의 종교적 아이덴티티”를 인정하는 경향이다. 그것을 한글로 표현하면 ‘하늘’이나 ‘한’으로 나타낼 수 있고(‘크다’, ‘많다’는 의미에서), 이미지로 그리면 ‘○’이 되고, 한자로 표현하면 ‘通’이나 ‘風流’가 될 것이다. ‘한’이나 ‘円’은 타자를 수용하는 ‘바탕’이나 ‘마당’또는 ‘터’를 형용한 것이고, ‘풍류’는 그것이 ‘미적’이라는 가치를 표방한다. 살림은 이러한 영성의 발현을 통해서 실현된다. ‘한’은 맺힌 ‘恨’을 풂으로써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자연과 자연을 어우러지게 하는 살림행위를 말한다. ‘한살림’은 ‘큰살림’이라는 뜻이다. 권근은 그것을 ‘天’으로 표현하고, 그 의미를 다시 ‘大’와 ‘一’로 담아냈다. 큰살림을 방해하는 것은 하늘의 차원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작고(小) 구분된(二) 인식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의 전시체제에서 와츠지 테츠로는 ‘공공’을 국가 영역으로 축소시켰다. 이것은 ‘공공의 세속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스즈키 다이세츠는 1940년대에 『일본의 영성』(1944), 『일본적 영성의 자각』(1946), 『영성적 일본의 건설』(1946), 『일본의 영성화』(1947)를 발표하여 일본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식 근대화를 추구해 온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마 최근에 한국에서도 조금씩 영성에 대한 논의가 일기 시작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일 것이다. 아마도 한살림운동의 근저에는 근대화과정에서 잊혀진 한국적 영성에 대한 성찰이 깔려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생명학연구회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2016 “청주는 인문·사상철학·범종교적 교류의 접점 ” |

“청주는 인문·사상철학·범종교적 교류의 접점 ” |

“청주는 인문·사상철학·범종교적 교류의 접점 ”
야마모토 교시, 변영호씨의 기고
2016-07-13 동양일보

‘동아시아의 공통 가치를 찾아서’라는 주제 아래 특강, 대담, 좌담, 토론 등 다양한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동양포럼은 이번 회에서 일본 지식인들의 글을 소개한다. 야마모토 교시 일본 미래공창신문 발행인과 재일교포 2세인 변영호 츠루문과대학 문학부 비교문화학과 교수가 청주를 방문하고 느낀 소감을 보내왔다. <편집자>


▲ 야마모토 교시미래공창신문사 발행인

청주 원로들의 이야기 속엔 일제강점기 한이…
- 동서양과 동아시아의 접점 도시 청주 -
청주 시내에 있는 김태창 선생의 자택은 대로변에 가깝다. 자택을 나와서 인도에 서 있자 곧장 택시가 잡혔다. 택시 문을 열자마자 CD로부터 힘찬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김태창 선생이 “야~ 활기있네요!”라고 말문을 열자, 카마다 토지(鎌田東二) 교토대 교수가 “쿠와타 케이스케(桑田佳祐) 아닌가요? 그립네요!”라고 맞장구쳤다. 이에 택시기사가 고조된 한국말로 “제가 열렬한 팬입니다”라고 응수하였다. 차안에서 일본인 록가수를 화제로 활기찬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이승우 선생과 유성종 전 총장이 기다리고 있는 한정식집에 도착했다.
때는 2015년 12월 6일 저녁. 당시에 한·일정부 사이에는 종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막판 교섭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베신조’는 그 무렵 한국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져 있는 일본인이었다. 역사인식을 후퇴시킨 수상으로 유명해진 것이다. 이렇게 한·일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는 시기에 일본인 가수의 노래를 불특정 손님에게 들려주는 한없는 밝음과 교정(交情). 이 인상은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인 청주의 현재와 밝은 미래로 이어지고 있다고 나에게는 생각되었다. 수도 서울이 한국의 정치적 중심지라고 한다면, 거기에서 약간 남쪽으로 내려온 청주는 동서양의 인문적·사상철학적·범종교적 교류의 접점 중의 하나일 것이다. 청주에는 5개의 대학이 있다. 청주대학의 유학생은 중국에서 온 학생이 40%, 나머지는 다른 나라에서 온 유학생이라고 한다. 청주공항은 오카야마(岡山)공항과 연결되어 있고, 올해 안으로 칸사이(關西)국제공항으로 가는 직행편이 생길 계획이라고 들었다. 충청북도는 한국에서 유일한 내륙 도시로, 경기도를 비롯한 5개도와 인접하고 있다. 미네랄이 풍부한 천연수가 나오며 눈부시게 융성한 도시로 인기가 높다.
전날까지 경상북도 안동에서 열린 ‘이퇴계 한중일국제학술대회’를 마치고, 카마다 교수와 나는 청주의 김태창 선생 자택에 초대받았다. 청주에서는 김태창 선생의 선배이자 친우(親友)인 두 분의 원로로부터 저녁식사를 대접받았다. 유창한 일본어로 귀중한 역사적 증언을 직접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미래공창신문’에서는 그 내용을 27호(2016년 2월 29일자)에서 일부 보도했고 다음호에서 상세한 내용을 소개했다.
두 원로는 식민지시대 말기에 초등학교와 청주시내의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한국바둑문화연구회 회장과 전 꽃동네대 총장이다. 두 분 다 80대의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정하다. 이승우 선생은 고급관료 출신으로 군수, 시장 등을 역임하였고, 정치적으로는 불편부당을 신조로 삼는 청렴결백의 선비이다. 지일파로 뉴스는 NHK를 듣고 일본 문화에도 아주 밝은 분이다. 일본과 중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바둑 기보를 비교하여 역사를 분석하고, 장계석이 왜 모택동에게 졌는지를 해설한 저서는 널리 읽혀지고 있다.
이승우 선생의 1년 후배인 유성종 전 총장은 한국교육평가원장 출신으로 문교행정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이다. 여러 대학의 총장을 역임했는데 무엇보다도 우정과 신의가 두터운 철인(哲人)이다. 동양평화를 향한 염원은 남다르고, 타협 없는 언론과 행동에는 국사(國士)의 기풍이 있다. 2000년에는 세계인쇄출판박람회의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하였다.
기억력이 발군인 이승우 선생이 전쟁말기의 소년시대를 회상했다. 부친은 금융조합(현재 농업협동조합)의 간부였는데, 생활이 어려워서 가족들의 식사는 아침에는 죽을 먹고, 점심은 거른 뒤, 저녁에도 죽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친은 명문 청주중학교에 다니는 이승우 소년에게만큼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게 했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청주 제2중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같은 또래의 일본인이 이씨 집안의 어려운 형편을 알 까닭도 없었다.
일제 강점기의 한국에서는 모든 한국인을 송죽매(松竹梅)로 등급을 정하고 배급 등 여러 면에서 차등을 두었다. 송에 해당하는 이씨 가정보다도 등급이 더 낮았던 유성종 소년의 가족에게 배급된 것은 만주로부터 비료로 우송되어 온 시커멓게 썩은 두부찌꺼기였다. 쌀겨를 먹으면서 겨울을 지냈다. 보리가 익는 봄까지 먹을 것이 없어서 풀뿌리나 나무껍질을 먹으며 목숨을 연명했다. 이 시기의 비참함을 ‘보릿고개’라고 한다. 조상의 제사를 중시하는 유씨 집안에서는 과혹한 공출로부터 제사용 쌀을 보호하기 위해서 변소 옆에 작은 단지를 파묻고 그 속에 숨겼다. 언어말살교육은 가혹함을 더했다. 한국말을 쓴 것이 알려지면 교사는 아이들의 손등을 매로 때렸다. “지금 생각해도 한기가 서립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유성종 소년이 시골집에 돌아오자, 처음보는 남자가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누구죠?”라고 묻자, “너의 매형이다.” “어떻게 된 거죠?”라고 묻자, “누나가 나이가 차서 시집을 보내지 않으면 정신대에 끌려간다. 그래서 이웃 마을의 청년과 물 한 그릇 떠놓고 결혼시켰다.” 당시에 한국인 중에서 종군위안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승우 선생은 말한다. 남자는 ‘노동동원’으로, 독신여성은 ‘정신대’로 징용되었다. 정신대는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이었는데, 가는 곳은 알 수 없었다.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의 작품 중에 ‘라파울전기’라는 체험담을 그린 문고본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위안부에 대해서 두 군데 나오는데, 가건물에 매춘부가 있는데 조선여성은 ‘센핑’, 오키나와 여성은 ‘나와핑’이라는 멸칭으로 각각 불렸다고 합니다.”
유성종 전 총장이 6학년이었을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임종시에 “일본은 패한다. 사람들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고서 오래갈 까닭이 없다.”는 말을 남기셨다고 한다.
김태창 선생이 두 사람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 “두 분과 동년배인 일본인은 한국인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었던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요?
이승우 선생은 “진짜 몰랐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한국인과 일본인은 생활세계가 완전히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은 ‘사쿠라’라는 특권계급으로, 먹는 것은 풍부하였다. 하지만 한국인에 대해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라든가 ‘(천황 앞에서는) 일시동인(一視同仁)’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자신들과 한국인을 기만하고 있었다. 한국에 사는 일본인은 한국인의 궁핍함을 몰랐고, 그 자손인 우리도 지금까지 알 기회가 거의 없었다.
전후(戰後)에 후지와라 테이는 전쟁 말기에 만주에서 어린애 3명을 데리고 1년이나 걸려서 일본에 돌아온다는 내용의 소설 ‘떨어지는 별은 살아 있다’를 썼다. 북한을 경유한 장대한 귀국기록으로, 식민지의 고충을 체험한 민중이 일본인에 대한 보복을 억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볶은 콩을 씹으면서 연명하는 일본인을 동정하고, 스쳐 지나가면서 먹을 것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자신의 아픔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는 법이다.
나는 만주국의 국무원(國務院) 총무장관을 지낸 키시 노부스케(岸伸介)가 귀향의 고통을 겪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한국과 일본의 서민이 맛본 전쟁의 비참함을 아베 수상은 할아버지로부터 얼마나 배웠을까? 만주에서 민중을 통치하는 입장에 있었던 키시씨에게 애당초 전쟁의 비참함에 허덕이는 서민과 동고(同苦)·공고(共苦)하는 체험이 있었을까? 의문이 남는 부분이다.
일본인은 일본군국주의가 한반도나 중국인들에게 끼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진실을 아직 잘 모른다. 전후 70년을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망언정치가가 잘난 체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동아시아의 한중일 삼국이 진정한 우호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민중 차원에서 서로 진실을 얘기하고, 먼저 민(民)과 민(民) 사이에서 해원상화(解寃和解)를 추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확신한다.

2015년 12월 7일. 우리는 청주시내에서 스포츠사회학자인 전 충북대학교 체육과 이종각 교수와 경제사회학자인 전 청주대학 장준호 부총장과 함께 점심을 했다. 당시 한국의 TV에서는 연일 불법노동운동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절 안으로 도망친 시민운동 리더의 체포강행 여부를 둘러싼 열띤 토론이 전개되고 있었다. 일본이라면 경찰이 불교사원으로 들어가서 즉각 체포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교회나 절이나 대학은 일종의 아질(성역)이 되어 있다.
“나라는 법에 의해 다스려진다. 법은 스포츠의 룰과 마찬가지인데, 한국은 선진국으로서 법을 지키는 단계에 진입해야 한다”고 이종각 교수는 열정적으로 말한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는 격차해소법안에 저항하는 정규노동자쪽 리더이다. 연수입이 7000만~1억원에 달하는 노동귀족이라는 사실도 시민들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반면에 장준호 전 부총장은 “체포는 조금 더 기다려야한다”는 신중론 쪽이다. 군정에서 민정으로 민중의 힘과 단결에 의해 민주주의를 획득한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위로부터의 ‘통치’와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자치’의 상반성은 민주주의의 근간과 관련된다. 지금의 한국은 일본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언론의 힘이 강하다. ‘노동조합’은 한국사회의 활력의 척도가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체제에 불리한 뉴스진행자가 연이어 퇴직을 강요 당하고 있고, 국립대학의 인문계 교원에 대한 예산상의 압박이 논란이 되고 있으며, 언론은 두드러지게 빈약해지고 있다. 기자는 한국의 뜨거운 언론풍경에서 희망을 보았다.
이날 밤에는 한민족철학연구의 권위자인 충북대학교 김용환 교수와 재회하여 시내에 있는 백화점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백화점은 널찍하고 활기찼다. 주위에는 주차장과 도로를 끼고 고층아파트가 즐비했고, 생활과 쇼핑이 효율적으로 일체화되어 있는 느낌이다.
김 교수는 예수가 불교를 배웠다고 전해지는 인도의 헤미스사원 등을 답사하고, 그 체험을 1980년대에 책으로 정리해서 출판한 적이 있다. 예수가 13세 때에 ‘동방박사’를 방문하여 페르시아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 증거가 되는 문헌을 러시아 언론인 니콜라스 노토비치(Nicolas Notovitch)가 발견하여 바티칸궁전에 가지고 온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바티칸의 반응은 “기지(旣知)의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말한다. “예수는 더 나아가서 동쪽의 북인도로 향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병을 고치는 성인이 나타나서, 그 이름을 ‘이사’라고 하였습니다. 이사가 누구인지 문헌과 현지조사를 통해 조사해보면 예수를 가리킨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지간에 예수가 30이 될 때까지 17년간의 공백기간의 행적은 지금도 수수께끼이다. 그리스도교의 구세주가 불교의 영향을 받았는지 아닌 지는 가톨릭의 교리와도 미묘하게 연결된다.
김 교수는 “예수는 처음부터 구세주로 하늘에서 내려왔다기 보다는, 김태창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성’이나 ‘우주생명’을 각성하고 그리스도로서의 사명을 자각하여 이스라엘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요?”라고 한다. 그리스도교의 십계와 불교의 십계의 공통점 등을 생각하면, 두 세계 종교 간의 대화는 흥미롭기 그지없다.

12월 8일. 아침식사를 마치고 김태창 선생이 “최한기의 활동운화(活動運化)를 실제로 관찰해 봐요”라며, 탁자 위에 유리로 된 커피포트를 준비했다. 포트에 물을 붓고 볶은 현미, 메밀가루, 말린 우엉, 볶은 콩가루, 아마란스를 넣고 스위치를 켜자, 처음에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재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임은 점차 빨라지고 서로 격렬하게 부딪히기 시작했다. 정물(靜物)이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양상이 돌변했다. 재료가 빙빙 돌면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운(運)’에 해당한다. 정반대로 회전하는 ‘전(轉)’이고, 정신(魂)의 기능으로 말하면 전개(全開)상태가 된 것이다. 한층 열을 가하자 용기 속은 혼돈스럽게 뒤섞이고, 모든 입자가 근원적 생명력을 한껏 들끓게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열탕은 옅은 황색으로 변했다. 각 소재가 속에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던 영양소를 밖으로 끄집어내어 탕질(湯質)에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그것은 각 재료의 개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활동운(活動運)’에 이어서 새로운 영양엑기스가 탄생한(化)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활명연대(活命連帶)에 의한 개신(開新), 미래의 공동창발(共 創發=未來共創)은 바로 이것이라고 실제 관찰을 통해서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기자가 지금까지 야규 마코토(柳生眞) 박사의 논문을 읽고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최한기의 ‘활동운화’의 과정을 시각을 통해서 깨닫게 해준 것이다. 이날 밤에는 충북대학교 강형기 교수와 제자들의 회식자리에 동석하게 되었다. 충북대학으로 유학 와서 비영리민간단체가 지방정부 차원의 국제교류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는 네모토 마사츠구(根本眞嗣) 박사도 강 교수의 제자 자격으로 참석했다.
한국에는 226개의 마을에서 만드는 조합회가 있다. 그 고문단장인 강형기 교수는 지방자치의 일인자로, ‘향부론(鄕富論)’(1990년)의 저자이기도 하다. 김태창 선생이 충북대학교 행정대학원장을 겸임하고 있던 25년 전에, 그는 29세의 젊은 나이에 사회인을 대상으로 행정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강교수는 말한다. “당시에 김태창 선생님은 구름 위에 있는 존재였습니다.”
1991년에 한국에서 최초로 정보공개조례를 도입한 도시는 청주다. 조례화를 추진한 것은 강형기 교수가 교실에서 가르친 제자이다. 그리고 2년 뒤에는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의 3분의 2 이상이 정보공개조례를 만들었다. 이것에 기초하여 1996년에는 정부가 정보공개법을 만들었는데, 이 법률은 정보공개의 대상을 행정기관뿐만 아니라 재판소, 국회, 특수법인, 지방자치단체에까지도 확대시키고 있다.
한편 일본은 1996년에 행정정보공개부회가 정보공개법안 요강안의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는데, 내용은 한국의 공개법보다도 뒤져 있을뿐만 아니라 아직 법안의 제출조차 되어 있지 않다. 주민투표법이나 외국인투표법의 제정 등 강 교수의 활동은 역동적이고 실적을 동반하고 있다.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강 교수의 친구인 피아니스트가 2개월 전에 오키나와의 쟈마미마을과 토카시키마을에 갔는데, 94세의 할머니가 ‘아리랑’을 부르고 있었다. “누구한테 배우셨어요?”라고 묻자, “한국에서 끌려온 7명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대단히 아름다웠는데, 매일같이 멍하니 하늘을 보면서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위안부의 이름도 끌려온 경위도 전부 알고 있었습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고 한다. 진실이 사라지는 일은 없다.
12월 9일에는 이종각·장준호 두 분도 청주공항까지 배웅해 주셨고, 청주에 체재하는 김태창 선생과 잠시 이별을 하고, 카마다 교수와 나는 인천을 경유하여 일본으로 돌아왔다.


▲ 변영호츠루문과대학 비교문화학과 교수

변영호 邊英浩
츠루문과대학 문학부 비교문화학과 교수
나 자신에게 묻는 것, 한국 고유의 것은 무엇인가
- 한국철학 발신지 청주에 동양일보가 있음을 -
일본에서 교토포럼이 인연이 된 이래로 줄곧 알고 지내온 김태창 선생이 최근에 고향인 충청북도 청주로 돌아오셔서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래공창신문’의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사장으로부터 청주에서 열리는 1회 ‘동양포럼: 동양적 생명관의 재조명’(동양일보 주최. 2016년 5월 3일)에 참가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김태창 선생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였기 때문에 나는 자세한 내용도 모른 채 무작정 청주를 방문하게 됐다.
나는 재일교포 2세로 한국유학사상을 연구하고 있고, 때때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으며, 2006년에는 서울대학교 객원연구원으로 1년간 지낸 적이 있지만, 사실 충청북도도, 청주도 첫 방문이었다. 청주에 대해서는, 조선시대에는 서원(西原)이라는 지명으로 불렸으며, 율곡 이이가 지방수령으로 부임하여 ‘서원향약’을 실시한 장소라는 인식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와 보니 인구가 90만명이나 되는 지방의 중핵문화도시임을 알 수 있었다.
도착 후에 김태창 선생, 전 세이카(精華)대학의 츠치다 다카시 교수,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사장님, 조성환 박사와 함께 동양일보사를 방문했다. 그러자 먼저 와계신 유성종 전 꽃동네대 총장이 마중 나와 주셨다. 유 총장과는 안동에서 뵌 적이 있는데, 이퇴계의 ‘경사상’을 몸소 실천하시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었다. 그런데 청주 출신인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후에 청주에 체재중인 우리를 배려해 주신 점에 대해서도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방 안에는 조철호 회장이 기다리고 계셨다. 조 회장님의 말씀으로부터 지적이고 성실한 인품과 시인으로서의 정열을 곧바로 느낄 수 있어서, 존경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켰다. 나에게 있어 이 방문이 주최측에 대한 형식적인 경의 표현의 차원을 넘어설 수 있게 된 것은 의외의 기쁨이었다. 조 회장의 말씀은 흥미로웠다. 기나긴 기자생활 속에서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신문을 창업하겠다는 뜻을 품게 된 이야기, ‘동양일보’를 창업했을 때 도와주기로 한 친구들의 회사에 정부가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바람에 자신의 자금만으로 창업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꺼내셨다.
나아가서 청주가 대한민국의 중심에 위치하고, 삼국시대의 중심지이기도 한 점, 지역에 뿌리를 두면서 장차 동양시대가 오리라는 확신을 갖고 ‘동양일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IMF위기가 한창일 때에 부도난 이야기였다. 처음에 ‘동양일보’는 소규모의 자금으로 창업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모든 인쇄공정을 컴퓨터화하여 한국의 신문출판문화의 선구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노동조합도 없는 규모로 출발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대형 신문사가 노조의 반대로 사원들을 해고시키지 못해서 할 수 없었던 일을 역으로 실현시킨 것이다.
그러나 IMF때에는 이것이 역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당시에 한국에서는 컴퓨터 관련기계는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IMF때에 한국통화가 크게 하락했기 때문에 동양일보의 비용이 급상승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부터가 조철호 회장의 매력이다. 동양일보 1면에 “부도를 냈지만 신문은 앞으로도 계속 낸다”는 광고를 냈고, 그것을 읽은 뜻있는 시민들이 기부를 해줘 최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조 회장의 인격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때 300명 이상의 사원이 있었는데 단 한 사람도 해고시키지 않고, 대신 사원들로부터 희망자를 받아서 자진 퇴사하게 하여 100명 남짓의 규모로 재편성했다는 것이다. 이 위기상황에서 해고자를 한 사람도 내지 않았다는 것은 보통의 신념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인품 때문에 ‘철학하는 사람이 산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김태창 선생과 곧바로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인문학이 축소·소멸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조 회장과 같은 분이 철학과 인문학을 지탱해 주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조 회장은 시인이기도 한데, 동양일보를 방문한 날 저녁에 트럼펫 연주자와 시인들을 초대하여 낭송회를 열고, 직접 지은 ‘청주의 여성들은’이라는 청주 여성의 높은 품격을 찬양하는 작품까지 들려 주셨다.
다음날에 있었던 1회 ‘동양포럼: 동양적 생명관의 재조명’은 일원적인 일본적 생명관, 이원적인 중국적 생명관, 그리고 삼원적인 한국적 생명관이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10월 1~3일에 대규모로 개최될 동양포럼의 준비모임과 같은 성격으로, 이후의 포럼의 출발점이 되었다.

나는 지금 일본에서 한국의 문화와 사상을 가르치고 있는데, 항상 나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한국철학이란 무엇인가? 한국 고유의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등이다. 그런데 한국학자들을 만나면 대개는 서양이나 중국에 관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을 알고 싶어서 한국에 왔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까지 서양이나 중국, 또는 일본에 대해 배울 생각은 없다”고 항상 불만이 쌓여있었다. 그런 때에 김태창 선생을 만났는데, 선생 역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더 나아가서 이 문제에 대해 뛰어난 답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조철호 회장도 같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김태창 선생과 의기투합해서 ‘동양일보’를 걸고 지원할 것을 약속해준 것이다.
나는 김태창 선생이 산수(傘壽)를 지나서 고향에서 커다란 지원자들과 지우(知遇)를 얻은 것이 대단히 기뻤고, 이것이 앞으로 형태를 갖추어 나갈 가능성을 느꼈다.
나도 여기에 대해서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고, 나아가서 청주가 장차 동양의 중심지로 문화교류와 한국철학의 발신지가 되기를 크게 기대하고 있다. 그 청주의 중심에 ‘동양일보’가 있음을 알게 해준 여행이었다.

2012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을 비교한다 |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을 비교한다 |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을 비교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연구' 국제 학술회의
2012-11-21     윤관동 기자

한국학중앙연구원은  21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대강당에서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연구’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

김태창 일본 공공철학연구소장이 ‘한국적 공공의 개념화를 위한 시론’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 이어 7명의 학자가 이이, 장현광, 정제두, 정조, 최한기, 안재홍, 니노미야 손토쿠 등 한국과 일본 지식인들의 ‘공공(公共)’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논문은 ‘선비와 사무라이를 통해 본 공공의식(김봉진, 일본 기타큐스대학)’, ‘민(民)의 참여를 둘러싼 공공의식의 비교적 특징(고희탁, 연세대)’, ‘민세 안재홍의 다사라이념과 공공함의 정치(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사중지공(私中之公)으로 본 정조의 국가경영(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14세기 말∼16세기 전반기 ‘公共’의 용례 검토(가타오카 류, 일본 도오쿠대학)’, ‘조선 선비들을 통해서 본 공공성의 개념과 쟁점들(정순우, 한국학중앙연구원)’, ‘최한기와 일본의 공공 사상가 비교연구(야규 마코토, 일본공공철학연구소)’ 등이다.

토론자는 이숙인(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김현철(동북아역사재단), 윤대식(충남대), 이동수(경희대 공공대학원), 박홍규(고려대), 김기봉(경기대), 안외순(한서대) 등이 나선다.

연구원 관계자는 “‘선비와 사무라이’라는 양국의 상징 존재가 언제 형성되었으며 어떻게 변천됐는지 왕과 사대부들이 독점하던 ‘공공 담론장’이 언제부터 민(民)이 주체가 되어 참여했는지 심층적으로 다룰 예정이다”고 밝혔다.

조성환 한국철학의 특징을 찾아서 – 다시개벽

한국철학의 특징을 찾아서 – 다시개벽

다시개벽
1920년 창간한 잡지 『개벽』의 창조적 복간



한국철학의 특징을 찾아서
글: 조성환



이 글은 개벽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폐강 직전의 한국철학

이 글은 이번 학기에 서울에 있는 모대학에서 <한국철학특강>을 강의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탄생하게 되었다. 나의 모교이기도 한 이 대학은 1년에 30여 개에 달하는 철학과목이 개설되지만 ‘한국철학’ 과목은 단 한 개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이번 학기에는 학생 10명을 채우지 못해 폐강 위기에 처한 것이다. 서양철학과목은 적게는 50명, 많게는 100명까지도 학생들이 몰려오고, 중국철학도 기본적으로 수십 명은 채워지는데 왜 유독 한국철학만은 이렇게 외면당하는 것일까? 한국철학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참담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 무언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글을 연재하게 된 것이다.
물론 <한국철학특강>이 폐강직전까지 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령 전문적인 ‘특강’ 과목이라는 점, ‘동학’이라는 생소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 시간대가 금요일 늦은 오후라는 점, 가톨릭 계열의 학교라서 상대적으로 한국철학에 소홀하다는 점, 강사인 나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 등등. 그러나 이런 점들을 다 감안해도 한국철학에 대한 철학과 학생들의 무관심은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무관심은 무엇보다도 철학과 교수들의 한국철학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왜냐하면 철학과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철학과 교수들의 절대적인 영향 하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는 이번에 처음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쯤, 일본에 유학하고 있을 때부터 이 물음은 시작되었다. 그때 나는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일본’의 모습을 접하고서 오히려 ‘한국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교토포럼을 기획하고 진행하시는 한국인 철학자 김태창 선생을 만난 뒤로 처음으로 ‘한국철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철학으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원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질문은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에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동양철학 전문서적으로서는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저서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도올 김용옥 선생은 ‘고전 번역’의 중요성을 화두로 던지면서 동양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함과 아울러 동양철학의 언어도 서양철학처럼 정교한 ‘학’의 논리를 갖출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고전번역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확산되었고 동양학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 세대가 이 물음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즉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 이어서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령 민주화운동으로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이 다른 데로 이동했다는 점, 90년대의 포스트모던 열풍 이후로 서양철학이 학계의 지배적인 담론이 되었다는 점, IMF와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논의의 초점이 경제 문제로 집중되었다는 점 등등. 그러나 좀 더 결정적인 이유는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 안에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그때 ‘동양학’은 주로 ‘중국학’으로, 그것의 핵심 내용 역시 ‘고전번역’이지 ‘한국철학’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이러한 문제들을 염두에 두면서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고민하고자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새롭게 제기하면서 그 안에서 ‘한국철학’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
중국철학으로서의 한국철학 연구

혹자는 나의 문제제기에 이렇게 반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대학에는 한국철학 과목도 많이 개설되고 있고 한국철학 교수도 많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반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한국철학 연구자들은 중국철학과 한국철학을 혼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종래의 한국철학 연구는 ‘중국철학의 일부’로서의 한국철학을 연구하는 것이지 한국철학 그 자체를 탐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령 조선유학을 연구하는 한국철학 연구자의 태도는 ‘동아시아 유학사’의 일부로서의 한국철학 연구이지 한국철학 그 자체에 대한 연구는 아니다. 얼핏 보면 별반 다를 바 없이 보이는 이 차이는 실은 어머어마한 결과를 초래한다. 무엇보다 연구자들로 하여금 ‘한국철학사’를 기술할 수 없게 만든다. 왜냐하면 ‘한국’이라는 수식어에 해당하는 내용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한국 땅에서 전개된 철학적 활동들을 나열하는 것을 ‘한국철학사’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史)’라기보다는 일개 ‘보고서’에 불과할 것이다. 적어도 ‘사’라고 하려면 일관된 관점과 해석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철학사’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사유방식’이 담겨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인의 사유방식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기존의 한국철학 연구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조선성리학 연구자들은 이 물음을 던지지 않았다.
기존의 조선유학 연구는 암암리에 다음과 같은 전제를 깔고 있다: “조선은 주자학의 나라였고, 퇴계를 비롯한 대부분의 조선유학자들은 중국의 주자(朱子)를 하늘처럼 받들었다. 따라서 조선의 유학은 주자학의 연장이다. 그러므로 주자학만 알면 조선유학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대단히 비(非)역사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조선의 성리학으로서의 주자학의 전개는 한국 땅에서 이루어졌고, 그것이 한국 땅에서 이루어졌다면 당연히 ‘한국’이라는 변수가 작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상사를 서술하는데 있어서 사상을 수용하는 쪽의 성향도 같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연구는 이 부분에 대한 성찰이 빠져 있다. 그 결과 한국을 단지 일방적으로 문화를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수용자로서만 규정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조선유학 연구자들이 유교경전으로 한국철학을 공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한문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먼저 『논어』나 『맹자』 또는 『시경』이나 『서경』 등을 읽으면서 문법과 어휘를 익히기 마련인데,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중국적 세계관이 그들의 머릿속에 소프트웨어처럼 깔려 버리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적 사유방식을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유교적 세계관이 프로그래밍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사상의 모든 것을 중국사유와 중국문헌으로 환원해서 이해하려는 습성이 배게 된다.
이것은 가령 일본 학자들의 장기인 주석 작업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가령 조선유학의 텍스트를 읽다가 중요한 철학적 개념이나 어려운 용어가 나오면 이른바 출전을 조사해서 중국고전의 전거를 찾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시경』에 나오는 말이랄지 『사기』의 무슨 편에 나오는 말이랄지 하는 식으로 방대한 사전들을 동원해가며 열심히 조사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자신들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번도 그 개념 속에 한국적 문화나 사유가 들어 있을 수 있다고는 의심해 보지 않는다. 한국철학을 연구하는 일본 학자는 물론이고 그 영향을 받은 한국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내가 주목한 것은 ‘한중비교철학’이다. 즉 중국철학과 한국철학을 비교하는 것이다. 흔히 ‘비교철학’ 하면 동서비교철학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비교하는 것이 비교철학의 영역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중국철학과 한국철학을 비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래와 같이 중국철학의 연장선상에서의, 중국철학의 우산 속에서의 한국철학 연구가 아니라, 그 막대한 영향력을 인정한 상태에서, 중국철학과 한국철학을 대등하게 비교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동서비교철학 작업과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거시적 차원에서는 동아시아철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서양철학에 의해 왜곡되어 있고, 그 안에서 다시 한국철학이 중국철학에 의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수양으로서의 학문

먼저 동아시아철학 또는 동양철학을 서양철학과 비교하는 문제를 생각해보면, 무엇보다도 ‘철학’ 그 자체의 이해, 더 나아가서는 ‘학문’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나는 이 차이를 ‘동도서학(東道西學)’이라는 말로 나타내고자 한다. ‘동도서학’이란 ‘동양의 도학과 서양의 과학’을 줄인 말이다. 다시 말하면 동양은 도학을 추구했고 서양은 과학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비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가령 몇 년 전에 교토포럼에 참석한 연세대학교 철학과 이광호 교수는 도학과 과학으로 동서양의 학문을 대비시킨 적이 있다. 이때 양자의 차이는 도학이 대상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반면, 과학은 대상과 분리되어 객관적 사실을 탐구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일제시대에 탄생한 원불교 역시 도학과 과학으로 동서양을 암묵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원불교는 ‘과학과 도학을 겸비한 전인적인 인재 양성’(원광대학교 교학대학 홈페이지)을 지향하는데, 이때 과학은 기술에 바탕을 둔 물질문명을, 도학은 도덕에 바탕을 둔 정신문명을 상징한다. 따라서 원불교에서의 도학과 과학의 대비는 정신과 물질, 또는 도덕과 기술의 다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도학’의 핵심은 ‘수양’이다. 즉 ‘동도(東道)’라고 할 때의 ‘도’는 곧 ‘수양’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동양학은 학문 자체가 수양을 목적으로 하고, 모든 논의가 수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서양은, 설령 그것이 철학이라고 할지라도, 객관적 진리 추구라는 ‘과학’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똑같이 ‘마음(Mind)’을 논해도, 서양의 경우에는 우리의 ‘앎’이 어떻게 성립하는지, 그 ‘앎’이 객관적인 타당성을 지니는지와 같은 ‘인식론’(Theory of Knowledge)에 치중해 있다면, 동양의 경우에는 ‘마음(心)’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 본래 마음[本心]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와 같은 ‘마음공부[心學]’에 일차적인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동서양의 학문을, 거칠게 구분하자면, ‘수양으로서의 학문’과 ‘과학으로서의 학문’으로 대별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유교에서 말하는 ‘수기치인’은 일종의 ‘수양정치론’으로 이해할 수 있고, 같은 맥락에서 도교는 ‘수양양생론’, 불교는 ‘수양해탈론’이라고 각각 규정할 수 있다. 여기에서 ‘수양’은 각각 정치와 양생 그리고 해탈에 이르기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우리는 흔히 신유학하면 불교의 ‘리’의 존재론과 도교의 ‘기’의 우주론을 대폭 수용하여 리기론 체계를 수립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수양’의 관점에서 신유학을 다시 생각해보면, 형이상학이나 우주론보다는 오히려 수양론이 대폭 강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유학은 불교 수양론의 도전을 받아서 마음공부를 전폭적으로 강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유학 역시 여전히 ‘심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신유학에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성(誠)-경(敬), 미발-이발, 함양-찰식, 거경-궁리, 정좌, 정성(定性), 허심, 명경(明鏡) 등이라는 사실로부터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중국불교나 유학이 마음공부에 치중하고, 그런 점에서 ‘심학’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 중국도교나 인도요가의 경우에는 몸의 동작을 통한 ‘기’의 순환을 중시한다. 그런 점에서 ‘기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기학’이라는 표현은 조선말의 대유학자인 최한기가 자신의 철학체계를 지칭해서 쓴 말로, ‘기’ 중심의 학문체계를 가리킨다. 그래서 거기에는 우주론, 인식론, 윤리학 등이 포괄적으로 망라되어 있다. 반면에 여기에서 말하는 ‘기학’은 그것보다는 훨씬 좁은 의미이다. 즉 수양론에 국한해서 쓰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최한기의 ‘기학’ 체계에는 수양론으로서의 ‘기학’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원광대학교 불교학과대학원에는 ‘기학’ 전공과정이 있는데, 커리큘럼은 기공학, 내단수행, 도인법 등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이때의 ‘기학’이 바로 이 글에서 말하는 수양론으로서의 ‘기학’에 가깝다. 한편 순수하게 수양론의 관점에서만 보면 기독교 역시 ‘심학’으로 분류될 수 있다. 왜냐하면 ‘기’ 수련보다는 믿음이나 기도와 같은 심적인 요소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퇴계가 도교의 양생서인 『활인심방』을 받아들였던 것은, 수양학적 측면에서 보면 유교에는 취약한 기학적 요소를 보완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한국철학의 특징을 찾아서

이상이 서양철학과 대비되는 동양철학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다음으로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중국철학과 대비되는 한국철학의 특징이다. 나는 그것을 ‘하늘’, ‘회통’, ‘개벽’, ‘살림’이라는 네 개념으로 잡아보았다. 그리고 이 네 사상이 압축되어 있는 것이 바로 조선후기에 탄생한 ‘동학’이라고 본다.
먼저 ‘하늘’은 한자어 ‘天(천)’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중국의 ‘天’과 서양의 ‘God’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개념이다. 이 ‘하늘’은 ‘한국종교의 원형’이라고도 말해질 정도로(박재순), 한국인들의 심성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개념이다. 단군신화의 천신강림설화를 비롯하여 윤동주의 「서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고대 부족국가의 제천행사에서 시작하여 식민지시대 민족종교의 천제(天祭)에 이르기까지, ‘하늘’은 한국인들의 이야기와 생활방식 속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조선성리학자들이 사용했던 한자어 ‘天’ 개념에도, 중국 유교에서 말하는 ‘天’뿐만이 아니라, 한국적인 ‘하늘사상’이 가미되어 있음을 추측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편 ‘회통’은 한국종교의 경향성을 대변하는 말이다. 일찍이 9세기의 최치원이 풍류도를 ‘포함삼교’, 즉 “삼교를 포함하고 있다”고 규정한 이후로, 흔히 한국불교의 특징으로 거론되는 ‘통불교’ 담론, 조선후기의 실학자로 알려진 다산 정약용의 유교와 천주교의 융합, 그리고 일제강점기 이능화의 『백교회통』(1912) 논의를 거쳐, 실제로 유불도 삼교를 종합했다고 하는 원불교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는 외래 사상을 수용하여 새로운 ‘도’를 만들고자 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경향은 아마도 문화를 전파하는 입장에 있었던 중국이나 서양과는 달리, 그것들을 수용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발달된 것이리라.



또한 19세기 말 동학에서 시작된 ‘개벽’ 사상은 ‘개화’와 대비되는 말이다. 개화가 지식인들 중심의 전반서구화를 의미한다면, 개벽은 민중들이 중심이 된 자주적인 근대화운동이었다. 흔히 민족종교로 분류되는 동학(천도교)-증산교-원불교는 모두 이 ‘개벽’이라는 용어를 공유하고 있다(1909년에 탄생한 대종교 역시 ‘개벽’과 사상적으로 상통하는 ‘중광重光’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바로 이 점이 당시의 중국이나 일본사상에서는 보기 드문 요소이다. 즉 근대 한국의 개벽사상은 종교를 초월하여 100년 넘게 전개되었고, 지금도 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살림’ 역시 외국어로는 좀처럼 번역하기 힘든 한국적인 개념이다. ‘살림’은 ‘살리다’는 동사에서 왔다는 점에서 ‘생명’과는 구분된다. 따라서 생명철학이나 생명학이 생명현상의 탐구에서 출발하고 있다면, 살림철학이나 살림학은 살리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신유학에서 말하는 ‘생물(生物)’ 역시 “대자연이 만물을 ‘낳는’ 생성작용”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살림’과는 다르다. ‘살림’은 단지 생명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기’를 살리고, 개인의 능력을 살리고, 조직을 살리는 것까지 포함하는,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살림’은 ‘경영’의 의미까지 담고 있다. ‘나라살림’, ‘가정살림’이라고 할 때의 ‘살림’이 그런 예이다. 이 ‘살림’ 개념은 특히 현대 한국철학에서 주목받고 있는데, 장일순의 한살림운동, 박재순 등의 살림신학, 김태창의 활사개공(活私開公) 등이 그것이다.
이상의 네 가지 개념이 응축되어 있는 사상이 동학이다. 그래서 한국철학사는 동학으로 수렴되어 동학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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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公共哲學’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試論 - 중앙대학 이명한 교수의 비판적 견해에 대한 반론을 포함해서 - earticle

‘公共哲學’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試論 - 중앙대학 이명한 교수의 비판적 견해에 대한 반론을 포함해서 - earticle



‘公共哲學’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試論 - 중앙대학 이명한 교수의 비판적 견해에 대한 반론을 포함해서
A Critical Essay on Prof. Lee Myeong-Han's Misunderstanding of Public Philosophy
‘공공철학’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시론 - 중앙대학 이명한 교수의 비판적 견해에 대한 반론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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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한국윤리교육학회 바로가기
간행물윤리교육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통권제25집 (2011.08)바로가기
페이지pp.31-48
저자야규 마코토
언어한국어(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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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영어
This paper is a preliminary attempt to critically respond to the ungrounded critique of
Kyoto Forum-promoting public philosophy in professor Lee Myeong-Han's paper titled
"the Reflective Consideration for the Dissemination of Public Philosophy in Korea now" in
Yangmyeonghak, No.28 (April 2011) published by Korea Yangmyeonghak Society. I would
like to summarize three points of my paper. The first point deals with the main currents
of thoughts and ideas underlying Kyoto Forum public philosophy movements. The second
point is concerned with clarifying Director Kim Tae-Changs philosophysing activities.
Then third point refers to clarifying prof. Lee Myong-Han's misunderstanding and/or
distortions of public philosophy promoted through Kyoto Forum for the past twenty years
in Japan and abroad.

한국어본 논문은『양명학』제28호(2011년 4월)에 실린 이명한 교수의「공공철학과 공공철학 보급에 대한 반성적 고찰」과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론을 계기로 해서 공공철학의 내용과 지향에 대한 열린 대화의 장을 펼쳐보고 싶은 것이다. 본고에서는 먼저 공(公)과 사(私)에 대한 공공철학의 견해를 밝히고 그것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시정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공공철학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입장과 관점을 변호ㆍ계몽ㆍ보급하려는 것이 아니다. 국적, 민족, 정치적 신조 등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여러 주제에 대해 대화ㆍ토론하면서 새로운 철학적 지평을 열어나가는 철학 활동이고, 그것은 자기와 타자의 진솔하고 활발한 소통ㆍ상통ㆍ통달을 이루고자 하는 철학적 운동이며, 그것을 통해서 한일간,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대화와 상호이해 및 화해와 공복(共福)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염원을 가진 현재진행형의 철학적 영위이다.

목차

국문초록
I. 서론
II. 공공철학은 한 개인이나 조직이 만들고 보급하는 철학이 아니다
1. 공공철학과 사철학(私哲學)
2. 공공철학 교토포럼에서 요시다 쇼인을 비판의 도마에 올리다
III. 공공철학은 오래되고 새로운 철학운동이다
1. “보고 생각하는” 철학과 “듣고 얘기하는” 철학
2. 시민들이 토론하고 소통하여 세계를 밝히는 철학으로서의 공공철학
IV. 공ㆍ사ㆍ공공의 3차원
1. 3차원 상관연동의 철학
2. 대화와 공동을 통해 새로운 차원을 열다
V.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public private public philosophy Activities with and together New Developments and New frontier(Gaisin) Multi-dimensional thinking in threeperspectives(Samwonsago). 公共 哲學 對話 共働 開新 三元思考

저자야규 마코토 [ Yagyu Makoto | 日本大阪公共哲學共働硏究所特任硏究員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1김태창 편저, 조성환 번역,『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서울: 동방의 빛, 2010. 12)
2남상호 지음,『육경과 공자인학』(서울: 예문서원, 2003)
3야자키 카츠히코 지음, 정지욱 번역,『한 일본 기업인이 실천하는 실심실학』(서울: 동방의 빛, 2010. 12)
4金泰昌,『共福の思想地球時代の‘フランシスコ的革命’を求めて』(グローバル文化研究所・GEC出版, 1992)
5金泰昌편저,『ともに公共哲学する 日本での対話・共働・開新』(東京大学出版会, 2010)
6金泰昌편저,『公共哲学を語りあう 中国との対話・共働・開新』(東京大学出版会, 2010)
7公共哲学共同研究会レポート(金泰昌책임편집: 將來世代總合硏究所)
8『比較思想史的文脈からみた公私問題 ―第一回公共哲学共同研究会―』(1998. 4. 25~27)
9『学際的公私論の基本論点 ―第二回公共哲学共同研究会―』(1998. 6. 13~15)
10『各国別公私問題の現状と課題 ―米・仏・英・露・独・イスラエル・パレスチナにおける観察と体験―』(1998. 10. 17~19)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윤리교육학회 [The Korean Ethics Education Association]
  • 설립연도
    2000
  • 분야
    사회과학>교육학
  • 소개
    본 학회는 윤리, 도덕 교과교육학과 교과내용학의 연구발전에 기여하려는 목적하에 설립되어 전국대학교의 윤리, 도덕교육 관련교수들과 대학원 석사,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현장교사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는 순수 학술단체이다. 이러한 설립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연구, 학술회의 및 워크??, 학술교류, 출판활동에 주력하여 본 학회가 운영됨으로써 전국대학과 초중등학교에 있는 회원들의 학구열을 고취시키고 일선학교의 윤리교육분야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한국의 윤리, 도덕교육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간행물

 
  • 간행물명
    윤리교육연구 [Journal of Ethics Education Studies]
  • 간기
    계간
  • pISSN
    1738-0545
  • eISSN
    2733-8983
  • 수록기간
    2000~2023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370 DDC 370

이 권호 내 다른 논문 / 윤리교육연구 제25집

EBS 기획특강 : 왜 공공철학인가? / 김태창

EBS 기획특강 : 왜 공공철학인가? / 김태창

21세기, 공공철학을 지향하며 김태창왜 공공철학인가?

강의 내용
원광대학교에서 진행하는 <글로벌 인문학>에서는 철학자 김태창님의 강의가 진행된다
===

글로벌인문학 공개강좌

WKU GLOBAL HUMANITIES 원광대학교 글로벌인문학 공개강좌 - 인문학적 소양과 글로벌 통찰 능력을 기른다

강좌소개

매학기 철학, 역사, 사회, 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롭고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를 설정해 국내.외 석학을 비롯한 저명교수와 최고 전문가 등을 초빙하는 특강 형식으로 진행되며, 특히 일반시민들에게도 개방하여 대학의 지식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본교에서는 2012년 1학기부터 대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하기 위해 <글로벌인문학>이라는 강좌를 제공하고 있으며, 특강과 분반토론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특강은 강좌책임교수가 각 주제영역의 국내외 석학, 저명교수, 전문가 등을 모시고 진행하며, 분반토론은 분반교수들이 특강의 내용에 대한 예습과 복습뿐만 아니라, 글쓰기 연습, 비판적 사고훈련, 서평작성 요령 등의 내용으로 진행합니다. 이 강좌는 하버드대학의 교양강좌 운영방식을 참조해 국내 대학에서 처음 시도하는 강좌입니다.

이 강좌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사회와 세계에 대한 포괄적 성찰, 공유가능한 인류 문명의 자산에 대한 사유체험, 과거와 미래, 전통과 역사에 대한 성찰적 전망,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논리력과 표현능력, 지구촌의 사람들과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소통할 수 있는 소통능력, 지구촌에서 인류애(humanitas)를 실현할 수 있는 실천능력 등을 계발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이를 위해 매 학기 새로운 하나의 대(大) 주제가 설정되고 그 아래 여러 가지 하부주제들이 다루어지며, 그 주제는 철학, 역사, 사회, 정치, 문학, 예술, 문화, 종교, 문명, 자연과학, 인간본성, 동서정신세계의 비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포괄적으로 다루어질 것입니다.

강좌특성

매 학기 새롭고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 설정- 학제간 통섭적 주제와 인문학적 ‘큰 물음’을 다룸

  • 국내외 석학, 저명교수, 최고 전문가 초빙해 특강형식의 강좌운영
  • 국내 최초의 하버드식 강좌운영: 특강+분반토론
  • 대형강의와 분반형태의 소형강의 동시 운영
  • 강좌책임교수와 분반교수가 공동 운영
  • 강의에서 특강 내용의 이론적 배경정리 및 토론, 글쓰기연습, 비판적 사고훈련 등 다룸

글로벌인문학
교과목 소개2012년 1학기부터 대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하기 위해 <글로벌인문학>이라는 강좌개설
– 지방대학 특성화사업(CK-1)지원(2017 ~ 2018년), 대학혁신지원사업 지원(2019 ~ 2021년 현재)
원광대에서는 2012년 1학기부터 대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하기 위해 <글로벌인문학>이라는 강좌를 제공하고 있으며, 특강과 분반토론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특강은 강좌책임교수가 각 주제영역의 국내외 석학, 저명교수, 전문가 등을 모시고 진행하며, 분반토론은 분반교수들이 특강의 내용에 대한 예습과 복습뿐만 아니라, 글쓰기 연습, 비판적 사고훈련, 서평작성 요령 등의 내용으로 진행합니다. 이 강좌는 하버드대학의 교양강좌 운영방식을 참조해 국내 대학에서 처음 시도하는 강좌입니다.
사업목적이 강좌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사회와 세계에 대한 포괄적 성찰, 공유가능한 인류 문명의 자산에 대한 사유체험, 과거와 미래, 전통과 역사에 대한 성찰적 전망,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논리력과 표현능력, 지구촌의 사람들과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소통할 수 있는 소통능력, 지구촌에서 인류애(humanitas)를 실현할 수 있는 실천능력 등을 계발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이를 위해 매 학기 새로운 하나의 대(大) 주제가 설정되고 그 아래 여러 가지 하부주제들이 다루어지며, 그 주제는 철학, 역사, 사회, 정치, 문학, 예술, 문화, 종교, 문명, 자연과학, 인간본성, 동서정신세계의 비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포괄적으로 다루어질 것입니다.
강좌특성

매 학기 새롭고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 설정- 학제간 통섭적 주제와 인문학적 ‘큰 물음’을 다룸
– 국내외 석학, 저명교수, 최고 전문가 초빙해 특강형식의 강좌운영– 국내 최초의 하버드식 강좌운영: 특강+분반토론

– 대형강의와 분반형태의 소형강의 동시 운영

– 강좌책임교수와 분반교수가 공동 운영

– 강의에서 특강 내용의 이론적 배경정리 및 토론, 글쓰기연습, 비판적 사고훈련 등 다룸

2021학년도 2학기 글로벌인문학 KOCW 강좌보기
교수진 소개



담당교수 : 남유선 교수님 이메일 : nys@wku.ac.kr
학력 : 원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학사
독일 퀼른(Koeln)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독일어 석사
독일 퀼른(Koeln)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독일어 박사
현재 : 인문대학 유럽문화학부



분반교수 : 이 영 교수님 이메일 : quellely0014@naver.com
학력 : 원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원광대학교 독어교육 석사
충남대학교 박사과정수료


분반교수 : 한인철 교수님 이메일 : in-chul2790@hanmail.net
학력 :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원광대 문예창작학 석사
원광대 문예창작학 박사 과정


분반교수 : 신현선 교수님 이메일 : kokesi77@naver.com
학력 : 전북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졸업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 일어교육전공 석사
전북대학교 일어일문학과 박사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14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6.07 21:08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24 20:17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1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10 19:4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10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26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9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12 20:1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8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3.22 19:28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7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1.12 20:07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6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22 19:2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5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08 20:3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4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24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10 21:12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0.27 20:12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2020-06-21     동양일보


[동양일보]10월 9일 수요일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70대 후반까지도 완벽주의자였다. 무슨 일이나 그때 그곳에서 완벽을 기하지 않으면 마음이 평온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 자신이 완벽주의자의 문제점을 확실하게 실감한 것은 70대 후반의 일이었다.

며칠 동안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간호사의 한마디가 뜻하지 않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간호사는 내게 병의 완쾌가 더딘 것은 나 자신의 완벽주의적인 고정관념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사람은 그 정도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낼 수 있고, 그 정도면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지나치게 완벽주의적인 편집이 나 자신을 병고에서 해방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간호사는 일본에서는 아주 유명한 간호전문가였다.

그런 일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80대가 되면서 나 자신도 놀랍게 느낄 정도로 완벽주의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서 최선주의자로—어떤 상황이나 조건에서도 완벽을 기하려는 집념을 버리고,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려는 자세─ 바뀌었다.

행복은 완벽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데서 찾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완벽을 기하려는 마음이 너무 강하면 언제나 불만이고 불평과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납득하게 되면 만족의 극대화가(maximization of satisfaction) 아닌 행복의 최적화를(optimization of happiness) 체득하게 된다는 것을 늦게나마 80대가 되어서야 체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10월 10일 목요일

청년철학의 출발점은 ‘나는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이다.(Amo, ergo sum. I love, therefore I am) 중년철학은 ‘나는 소비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로(Consumo, ergo sum. I spend, therefore I am)’ 요약된다. 그러나 노년철학은 ‘나는 비운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이다.(Vacuo, ergo sum. I empty, therefore I am)’.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철학적 고뇌‧ 사유‧ 상상‧ 언설의 핵심내용이다. 사랑에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이 난다. 삶의 원동력이 거기서 나오고 삶의 보람이 거기서 느껴지고 삶의 지향이 거기서 세워지기 때문이다.

중년에 접어들면, 특히 자본주의 시장경제사회에서는, 돈을 벌고 돈을 쓰는 것에서 사는 맛을 알 수 있고 사는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사는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부자이건 아니건 일상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돈을 버는 일이나 아니면 돈을 쓰는 데서 보내진다.

그러나 노년이 되면 얼마나 비울 수 있는가가, 노년다운 삶의 기본이 된다. 청년이나 중년이 채우는—사랑의 욕구를 채우거나 돈의 소유와 소비로 채우거나— 삶이었다면 노년은 모든 것을 비우고 청년이나 중년의 채움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다시 채우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텅 빈 내면 깊숙이 우주생명의 숨결과 원력(願力=지구사회와 인류문명의 보다 나은 미래를 함께 새롭게 열어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힘)을 가득 채우는 데 온 힘을 기울이게 된다. 개체생명이 완전히 비워질 때 비로소 우주생명이 충만하게 되어 아주 다른 새 생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0월 11일 금요일

청년철학이나 중년철학은 중심과 방향은 다른 데가 있을 수 있지만 그 기반, 터전장소가 의식이라는(意識─consciousness)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말하자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내가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기본이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는데서 삶의 기쁨을 얻거나 열심히 돈을 벌어서 마음껏 쓰는 가운데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은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청년철학이나 중년철학은 모두 의식 중심의 철학이다.

그러나 노년철학은 기반, 터전, 장소가 의식에서 생명으로 이동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의식보다 깊고 넓은, 그래서 의식조차도 거기서 생겨나오는, 생명을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자각하는 것, 자기 삶의 참모습에 눈이 뜨이는 것이다. 남의 삶을 보고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깨닫고 얼을 통해서 보다 큰 생명에 이어져 있고 그것에 의해서 내 삶이 지탱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몸과 마음과 넋으로 이루어진 나 자신의 개인적인 삶 =개체생명을 비어가는 한편 나의 삶을 지탱해온 우주적 근원적 생명력이 빈자리를 채워가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거기에 순응해가는 것이 노년철학의 첫 번째 의미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겪어가면서 청소년세대와 중장년세대와 함께 서로 행복해지는 길을 열어가는 일이 노년철학의 두 번째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년철학은 노년의, 노년을 위한, 노년에 의한 철학이 아니다. 노년철학은 3세대가—청소년세대‧ 중장년세대‧ 노숙년세대— 함께 살면서 서로가 힘을 보태고 지혜를 모으고 능력을 발휘해서 화해와 상생과 공복=함께 행복해하는 좋은 사회를 이루기 위한 철학이다.



10월 12일 토요일

친구와 만나기 위해 시내로 나가려고 택시를 탔다. 그런데 중년의 여성운전기사가 내가 과거에 대학교수였다는 것을 안다면서, 평소에 궁금하게 생각해온 것들이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음 질문들을 했다.

1) 왜 살아야 하는 거지요?

2) 무엇이 있으면=가지면 행복하게 될 수 있나요?

3) 행복은 나 자신 밖에서 찾아지는 게 아니라, 나 자신 안에서 찾아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그런가요?

요즘에 들어서 상당히 유식한 운전기사들이 운전하는 택시를 종종 타게 된다. 그때마다 나누는 대화는 아주 유익하다.

나의 개인적인 견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놓고 다음과 같이 답했다.

1) 태어났으니까 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고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 행복이란 무엇이 있다거나 가지고 있다는 조건에 따르는 결과가 아니라 나의 삶이 삶답게 가꾸어지고 이루어지고 있다는 자각이요 각성이다.

3) 행복은 나의 밖이나 나의 안에서보다는 나와 너 사이에 나타나는 일=현상=사건이다. 나만의 행복은 불충분 할 수밖에 없고 자기와 타자가 함께 나눌 수 있는 행복일—그러니까 공복(共福)—때 충분하고 온전하고 충만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만의=나 홀로의 행복이 무시‧ 소외‧ 희생되는 데서는 어떤 행복도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다.

간단히 이렇게 내 의견을 나눴다. 말하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저의 작은 성의를 담은 수업료라고 여기시고 택시 요금은 안 받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떠나갔다. 일순 훈훈한 행복이 저만치 가고 있는 운전기사와 나 사이에 출현했다.



10월 13일 일요일

오후 3시 30분, C대학의 L교수와 전화로 이야기를 하던 중 요즘 행복에 관한 책들을—주로 한국에서 출판된 한국어 서적들─ 읽었는데 서양학자들의 행복론 또는 행복학설의 번역‧ 소개‧ 인용뿐이고, 막상 저자 자신의 생활체험이나 심사숙고에서 나온 견해나 소신이 들어있지 않아서, 매우 아쉽고 허전했다는 그의 소감을 토로했다.

나의 노철 개벽일기도 읽고 있으며, 특히 어제 쓴 부분을 읽고서 자기가 마침 생각해 온 문제와 동시성(Synchronicity=우연히 같은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현상‧ 사실‧ 상황)을 느꼈다고도 했다.

나도 일본에서 공공철학대화운동을 주관하고 있을 때부터, 행복에 관해서 여러 나라에서 출판된 여러 권의 전문서와 교양서를 읽어보았고, 또 여러 나라의 대표적인 행복학 전문가들과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았는데, 그 과정에서 나 나름대로의 현시점에서 나 자신이 깨달은 바를 최소한의 명제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고, 언젠가는 자세한 내용으로 펼쳐보려 한다는 나의 의중을 이야기했다.

1) 행복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지성적 행복이해, 감성적 행복이해, 영성적(또는 근원생명력적)행복이해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깨닫는 행복, 느끼는 행복, 통하는 행복이 있다는 것이다.

2) 행복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존재 그 차체라는 것이다. 가령, 재산이나 명성이나 지위처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서─존재의 차원에서─깨닫거나 깨우치거나 눈뜨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요 자각이요 기통(氣通=막혔던 생기=생명에너지가 확 뚫려서 거침없이 통하게 되는 현상)이다.

3) 행복이란 자기 밖 먼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안의 깊숙한 곳에서 근원적 생명에너지가 제대로 작동할 때 생성되며 그것이 얼마나 감격적이고 감동적이고 감사할 일인가를 깨닫는 것이다.

4) 그러나 거기서 끝나면 개인 속에 갇혀있는 불완전한, 온전치 못한, 부족한 행복이다. 자기 속에 일어나는 기적 같은 생명의 충만, 충일, 충전이 타자 속에서도 일어나서 자기와 타자사이에 공명(共鳴=함께 울리다), 공진(共振=함께 진동하다), 상통할(相通=서로 거침없이 통하다) 때, 비로소 자타간 공복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온전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0월 14일 월요일

오랜만에 C대학의 K교수를 만났다. 여러 가지 지내온 이야기를 하던 중에 장수개벽일기를 읽었다면서 솔직한 감정표현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옳은 지적이다. 나 자신이 감정노출을 극력 자제했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이 담겨있지 않으면 공감의 통로가 막혀버릴 수 있어서 삭막한 글이 되기 쉽다고도 했다. 역시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D대학의 K교수와도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동안 함께 해온 노년철학에 인간적 온기와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시(詩) 문학적 감성을 더함으로써 인문학적 품격을 갖춘 노년철학으로 잘 다듬어서 한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는 생각도 공유했다.

우리가 함께 추구해온 노년철학은 3세대–청소년세대, 중장년세대, 노숙년세대–간 상화, 상생, 공복을 실현시킬 수 있는 좋은 사회건설을 지향하는 철학대화운동이다.

그 운동에너지의 원천은 동양포럼참가자들의 지성과 감성과 영성의 교향악적(Symphonic) 화합(和合), 융합, 조화에 있다. 정연한 논리가 있고 따듯한 감동이 있고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이 어우러지는 가운데서 공감에너지가 적정화될 수 있을 것이다.

노년철학은 논리가 바로선 언설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마음 깊숙한 내면에 와 닿는 시가 있으면 더 좋다. 그러나 거기서 한발 전진 할 수가 있다면 지역간, 남녀간, 세대간, 상호존중, 상호화합, 상호격려를 깊고 넓은 차원에서 성취할 수 있는 영성의 역동이 더해지게 되면 좋겠다. 시에는 그런 힘이 있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했다.



10월 16일 수요일

정오(정확하게는 12시 15분)에 유성종 선생, 김용환 교수와 만나 점심을 함께하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김용환 교수의 큰아들이 결혼을 했다고 해서 축하하는 뜻을 전했고,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국가공무원으로 특채되어 매우 흐뭇한 것 같았다.

그 젊은이는 오늘의 우리나라에서 일반시민들의 역할기대를 저버리고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법기술자가 되지 말고, 참다운 법률가가—판사이든 검사이든 변호사이든 국가공무원이든—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하다는 뜻을 전해 달라고 했다. 그런 뜻을 담고 인문학적 교양을 강조하는 책 한 권을 선물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책이니까.

그리고 유성종 선생과 나는 2019년 12월 31일부로 동양포럼의 운영위원장과 주간의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한다는 우리의 의중을 밝혔다.

우선 김용환 교수가 운영위원장과 주간 중 어느 쪽을 계승해 주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주간 쪽을 맡고 싶다고 해서 그러면 운영위원장은 유성종 선생이 권유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확답을 단시일 내에 받기로 하고, 두 분이 힘을 합쳐서 잘 키워달라는 간곡한 부탁도 했다.

유성종 선생과 나는 4년간 정말 최선을 다했고, 어느 정도 새 길을 열어놓기는 했으나 앞으로 연부역강한(年富力强=나이가 넉넉하고 힘이 강하다) 김 교수의 활동을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30년간 외국에 나가있었기 때문에 국내에 학맥이(學脈) 다 끊어져 버렸고, 그래서 좋은 사람들을 모시는 데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다. 그 점 스스로 인정한다.

그래서 김 교수가 우리나라 실정을 잘 감안해서 좋은 인선을 하고 좋은 성과를 내서, 노년철학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주기를 당부했다.

나 자신은 더 자유로운 입장에서 일본과 한국을 아우르는 쪽으로 노년철학대화활동을 계속해 나가겠다. 정권주체들이 극단적인 반일태도를 취하고 국민에게도 직간접적으로 ‘반일은 애국이고 친일은 매국’이라는 식으로 마구 몰고 가는 가운데서, 한일철학대화를 계속한다는 것이 김 교수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가 그 몫을 담당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설명도 했다.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13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6.07 21:08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24 20:17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1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10 19:4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10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26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9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12 20:1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8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3.22 19:28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7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1.12 20:07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6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22 19:2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5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08 20:3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4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24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10 21:12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0.27 20:12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3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0.06.07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10월 2일 수요일

6회 노년철학 국제회의 둘째 날 오전 회의는 야마모토 교시 미래공창신문사 사장의 ‘노년철학과 미래공창’이라는 발제강연이 있었고 토비오카 켄 박사의 진지한 질의가 계기가 되어 활발한 대화가 전개되었다.

질의의 요지는 ‘미래공창이라는 구호는 대단히 설득적이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미래공창이냐’는 것이었다.

야마모토 사장의 소상한 응답이 펼쳐지는 과정에서 불교의 인과론적 교리에 관련되는 언설이 나와서 김용환 충북대학 교수가 불교의 기본은 인과론적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지만 그것이 반드시 결정되어 있다면 인간의 미래공창하려는 의지와 행위와 염원이 무의미한 도로가 되지 않겠느냐는 문제 제기다.

야마모토 사장도 결정론적인 세계관을 고집하려는 의도는 없었고 보다 나은 미래를 함께 열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들의 사고와 행위·이론과 실천·판단과 상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결집·축적·진화되어야 그런 과정을 통해서 보다 바람직한=좋은 미래가 열리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좋은 원인을 마련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善因善果, 惡因惡果)이라는 점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나는 현대물리학에서도 고전물리학에서 강조되었던 인과론적 물리를 수정해서 불확정성원리(不確定性原理)의 여지를 인정하고 확률론(確率論)적 물리관을 제시하고 있다. 결정론적 사고와 자유의지론을 적절하게 융합시키려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요는 물질-물체-무기물의 세계에서는 모든 현상·변화·발전이 철저하게 인과법칙적으로 현현하지만 인간세계는 다소의 자유의지의 발휘· 작동· 작위를 통해서 인과론의 세계 속에서도 비인과의 지평· 차원· 세계를 형성· 건립·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미래공창적 사유· 판단· 행위· 실천· 책임 등의 문제 설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글표현으로는 ‘함께 미래를 여는 일’이라는 말을 쓰기로 하고 일본에서는‘미래공창(未來共創)’이라는 말을 쓰기로 함으로써 서로 다른 어감(한국에서는 공창이 여성멸시적인 공창(公娼)이라는 말을 연상시킨다는 일부 참석자들의 의견을 존중했음)의 차이를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을 강구했다.

국제회의는 그래서 여러 가지로 고려·배려·심려해야 할 일이 많다.



10월 3일 목요일

제6회 노년철학 국제회의 셋째 날의 오전회의는 하라다 켄이찌(原田憲一) 지성관대학 전 학장의 ‘비교문명이란 무엇인가?’와 김용환 충북대학 교수의 ‘노년철학과 문명의 대전환’, 그리고 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선생의 ‘노년철학과 신문명론–교육과제’ 등을 주제로 하는 발제가 있었다.

김용환 교수만이 시간 조절을 잘해서 대화를 전개할 수 있었고, 나머지 두 분은 하고 싶은 말이 나무 많아서였겠지만 대화 시간을 남겨주지 않았다.

김용환 교수의 발제에 나오는 봉사라는 말의 내용에 대해서 황진수 교수가 어제의 자신의 발제 내용과 관련시켜서 자원봉사에 대한 법령은 있으나, 시행령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지원체계가 불충분한 점을 지적했다.

거기에 대해서 김용환 교수는 노년의 보수를 기대하지 않는 자원봉사가 진정한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보수를 받고 하는 일과는 근본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는 이 두 분의 논의를 흥미 있게 듣고 노년학과 노년철학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노년학은 노년문제를 대상 인식적으로 접근하고 노년을 지원하는 제도설정에 중점이 주어진다면, 노년철학은 노년을 사는 사람들의 자각의 문제와 청소년이나 중장년이 노년을 어떻게 보느냐는 타자인식을 함께 아우름으로써 보다 나은 3세대(청소년세대·중장년세대·노숙년세대) 사이의 상화· 상생· 공복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둔다는 데서 서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회의에서는 김영미 시인의 ‘로마와 경주의 비교에서 보는 노년의 의미’라는 발제에서 세월이 흘러 낡았어도 오히려 더 아름다운 문화유산과 고령자 인간의 모습을 시적 상상력을 살려서 그려보여 주었다.

원혜영 충북대학교 강사는 ‘성차(gender)와 나이듦(aging)’이라는 발제를 통해서 스피박과 보부아르의 문헌을 살피는 가원데서 여성철학과 노년철학의 상관연동성을 밝혀보려 했다.

그리고 전체토론으로 들어갔는데 주로 11월에 있을 일본 시즈어까(靜岡)현 주최의 국제회의에 대한 준비로 하라다 켄이찌 비교문명학회 회장의 취지 설명을 듣고 질의문답이 있은 후에 내가 한국 측 참가자들에게 두 가지 참고사항을 유념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시즈오까현에서는 ‘노년’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장수’라는 말로 통일하고 있기 때문에 장수철학이라는 말로 통일했으면 좋겠다는 것과, 시즈오까현에서는 무병장수 또는 건강장수를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 동양포럼에서는 행복장수를 장수철학의 기본으로 삼고,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은 행복수명과의 상관연동에서 성찰한다는 점을 의식해 달라는 말을 함으로써, 3일간의 국제회의를 마감했다.

정상혁 보은군수와 관계 직원 여러분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10월 4일 금요일

어제 10월 3일은 ‘하늘이 열린/열리는 날’이라는 뜻의 개천절이었다. 서울에서는 한국역사상=단군 이래 최다인수가 참가한 조국규탄, 문재인 퇴진 대규모 시민궐기가 있었고 그것이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을 보도를 통해 알았다.

속리산 숲마을에서 있었던 노년철학 6회 국제회의(2019년 10월 1~3일)를 보은군과 공동주최하고 나 자신이 주관해서 끝까지 충실하게 성공적으로 끝맺기 위해서 전력투구하느라 그쪽에 관심을 둘 새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의 정치상황이 더없이 어렵고 국민은 극단적 대립, 분열, 갈등으로 더없이 아파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조이며 그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입장은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자유민주주의를 나의 정치적 신념으로 삼고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를 수용하지 않는다. 정치사상이나 체제원리로서 그런 것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 자신은 그런 사상에 공명하지도 않고 그런 체제 속에서 살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선호를 구태여 말한다면 친북좌파정권보다는 한미일 안보체제 속에서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을 공고히 하고, 열린 국제관계 속에서 자유무역을 통해서 경제발전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공직자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과 자세정립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건전한 법치가 공평하게 시행되는데 있어서 최고책임자인 법무부장관은 다른 것은 몰라도 투철한 준법정신이 몸에 배어있기를 기대한다.



10월 5일 토요일

오늘은 심신이 몹시 피로하고 위와 장의 상태가 아주 나쁘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철저하게 휴식을 취하는 쪽으로 일정을 조정했다.

3일간 계속되는 학술회의를 연달아 주관, 주재하기 위해서 정신적으로 긴장했고 육체적으로 무리를 해서 그 폐해가 고스란히 쌓여 몸이 반발을 하고 마음이 심한 불평을 표시하는 것 같다.

젊을 때는 하루 밤 자고 나면 거뜬했는데 80대 중반의 노년에 이르고 보니 확실히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약화되었음을 실감한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의사들로부터 나의 회복탄력성이 나이에 비해서 아주 좋은 편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피로감이 말끔하게 씻기질 않는다. 그저 가만히 쉬어야겠다. 특히 머리를 쉬게 해야 할 것 같다. 평안히 잘 자야지.

Good night! Have a good sleep!



10월 6일 일요일

어제부터 장상태가 좋지 않다. 아프고 쓰리다. 배변을 몇 번씩 하고나서도 여전히 아프고 쓰리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병원에 갈 수 도 없고 집에서 푹 쉬면서 나를 찾아준 이 불편함의 메시지를 헤아려 보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서 청소년기와 중장년기를 거치면서 노숙년기의 중반(80대에서 90대에 이르는 중간지점)에 이르게 된 지금까지 장 때문에 골치를 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특히 80대에 들어서면서 나의 사고와 판단과 행위가 뇌에서 보다는 장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아니다. 뇌에서 이루어지겠지만 장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 같다.

일본의 한 웹진 ‘생명과학정보실’의 대표이사이자 편집자이자 기자인 나가누마 타카노리(長沼敬憲)가 쓴 ‘장뇌력’이라는 책에 의하면 100세시대를 살아낼 힘은 뇌가 아닌 장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장뇌력을 갈고닦아 본디의 생명력을 회복하자고 외치고 있다. 그는 “뇌의 지배에서 벗어나서 장이 이끄는 대로 느끼며 살자”고도 한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 자신이 요즘에 와서 나날이 체감하는 것은 장의 상태가 좋으면 뇌작용도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발생학적으로 뇌보다 훨씬 오래전에 장이 생겨났고 생명작용의 중추적인 역할을 뇌보다 장이 훨씬 더 오래 담당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뇌를 발달시킨 덕에 고도의 지성을 갖추었으나 언제부터인가 뇌가 주인행세하기 시작한 탓에 목숨 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작동하고 있는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장을 모체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데에 나는 동감이다.



10월 7일 월요일

새벽 3시 20분, 마침 트로이 윌슨 오건(Troy Wilson Organ)의 ‘Philosophy and the Self: East and West(Selinsgrove: Susquehanna University Press:1987)’를 읽다가 젊은 때는 시를 쓰는 시기이고 나이든 때는 철학하는 시기라는 언급이 있어서 눈여겨보았다.

그것은 쇼펜하우(Arthur Schopen-hauer·독일의 염세철학자, 1788~1860)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 그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교를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청춘—시: 노년—철학이라는 대비에 직접 연결되는 것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젊은 때 / 나이든 때

의지보다 지성 / 지성보다 의지

행복의 시기 / 불행의 시기

세상사를 멀리서 봄 / 세상사를 가까이서 봄

만족을 모르는 행복추구 / 불행할까봐 두려움

시간이 늦게 간다는 느낌 / 시간이 빨리 간다는 느낌

죽음은 안 보인다 / 죽음이 가깝다

인생은 길다는 느낌 / 인생은 짧다는 느낌

계획을 많이 세움 / 추억 속에서 삶

소유욕은 적다 / 소유욕이 더하다

주위에 과민 / 주위에 둔감

세상사 외면에 관심 / 세상사 내면에 관심

지력이 왕성 / 지력이 쇠퇴

자기인식 부족 / 자기인식이 시작됨

지식을 축적 / 지식을 반성

불안의 시기 /휴식의 시기

좋은 일을 위해 분투 / 체념

환상 /환멸



글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나는 쇼펜하우어의 나이든 때의 모습과 특징에 공감 할 수 없는 면이 많다. 거의 내 견해와는 맞지 않는다. 그의 철학이 대체로 염세적인 경향이 있는데, 노년관도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젊어서는 시를 쓰고 나이 들어서는 철학한다는 말은 마음에 든다. 내 경우에는 젊어서는 (사회)과학을 했고 나이 들어서는 철학(공공철학과 노년철학)을 하게 되었지만 시에도 남다른 관심을 쏟았으니까. 역시 나이 들어 철학하는 삶이 제격인 것 같다.



10월 8일 화요일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나이 들어가면서 생각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다가 마침내 죽어가게 되어 있는데, 나 자신이 가장 나다운 때가 언제일까? 생각할 때일까, 느낄 때일까, 괴로울 때일까, 아니면 즐거울 때일까?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을 수 있겠지만 나 자신의 경우에는, 그것도 85년을 살아오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체험‧ 경험‧ 증험‧ 효험해본 바로는 내가 아플 때, 아주 심하게 아플 때, 이 세상 어느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오직 나만이 겪어야하는, 견디어 내야하는 바로 그때, 다름 아닌 나 자신의 의식이 한계상황에서 나 자신이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생각은 다른 사람과 교류‧ 교환‧ 공유할 수 있다. 즐거움이나 기쁨은 함께 나눌 수 있고 서로 통할 수도 있다. 함께 나누고 서로 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즐거움과 기쁨이 크고 넉넉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픔은 홀로 겪어야하고, 견디어 내야하고, 이겨내야 한다. 불교는 태어나는 것, 늙는 것, 병드는 것, 그리고 죽는 것은 네 가지 괴로움(四苦)이라고 규정하고 거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가르치고 있다. 또 괴로움과 아픔을 합쳐서 고통(苦痛)이라 말하는 경우도 많지만, 나 자신은 괴로움도 남과 함께 나누고 서로 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움이나 기쁨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그 어느 것과도 다른 것이 아픔이다. 아플 때, 심히 아플 때, 나는 가장 깊은 뜻에서 ‘나’ 일 수 있다. 그래서 감히 나는 단언한다.

‘나는 아프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12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6.07 21:08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24 20:17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1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10 19:4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10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26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9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12 20:1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8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3.22 19:28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7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1.12 20:07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6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2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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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4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2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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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2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0.05.24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9월 25일 수요일

집 가까이 있어서 자주 들르던 서점이 없어지고 그자리가 오랫동안 비어있었는데 며칠 전에 카페와 돼지갈비집으로 바뀐 것을 보았다. 근처에 카페와 식당은 많이 있지만 서점은 거기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것조차 없어져서 못내 아쉽다.

내게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개인적인 사정에 불과하지만, 카페나 식당보다는 서점이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한데, 바로 그런 점에서 나는 오늘의 한국사회에서는 주변인적소수자 일 수 밖에 없는가보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세계의 어디를 가나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이 서점이었고 좋은 서점을 찾으면 마음이 흐뭇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의 숲속을 호기심 가득 설레이면서 철학적 희열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저 기분이 좋았고 영혼이 평안했다.

도심의 거대한 백화점이나 화려한 점포들이 즐비한 번화가에서는 군중속의 고독과 피로가 심신을 목 조이는 것 같은데 서점에만 들어서면 평온하고 안락함에 쌓이게 된다.

어쩌다 서점주인과 대화라도 하게 되면 오랫동안 서점경영에서 얻은 독특한 삶과 책에 관한 경험을 나누어 받는 것이 내게는 귀중한 배움이 되곤 했다.

서점 중에서도 특히 고서점을 좋아하는데 청주에는 없다. 다른 도시에 가 봐도 내가 찾는 고서점이 없다. 그냥 헌책만 모아놓고 싸게 파는 헌책방을 찾는 게 아니다. 출판된 지 오래되어 출판사의 재고도 없어졌고 오래전에 절판되어 구하기 어렵게 되었으나 지금에 와서 오히려 그것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많은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고본(古本)들이 갖추어져 있는 곳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늙었으나 나이맛이 있는 현로(賢老)‧ 달로가(達老=인간과 세계에 통달한 노인), 숙로가(熟老=오래 숙성된 포도주처럼 깊고 은은한 맛과 향기가 있는 노인) 있고, 이들을 만날 수 있는 노향이(老鄕=노인들의 향촌) 없어진지 오래 되었다. 아쉽다. 그립다.



9월 26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충청북도교육청 강당에서 ‘세대간 공감을 키우는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250여명의 충청북도내의 중고등학교 교장선생님들이 참석했다.

90분의 강연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문제들을 함께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1) 오늘의 한국사회는 다른 어느 나라의 경우보다 극심한 세대간 반감으로 분열된 탓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생기는 사회해체적 갈등‧ 대립‧ 혐오에 합리적으로 대응‧ 대처‧ 지양할 수 있는 교육적방아이 마련되어 있는가라는 문제.

2) 우리의 교육은—정책‧ 방법‧ 이론‧ 목표— 기본적으로 인생 50년 시대의 인생설계를 기준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21세기의 한국은—일본과 대만과 함께—세계 어느 다른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인생 100년 시대에 진입하고, 근대화—산업화‧ 공업화‧ 효율화‧ 합리화— 단계를 벗어나 저성장‧ 저출산‧ 초고령화라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대변혁에 대한 교육적 준비 작업은 마련되어 있는가라는 문제.

3) 오늘의 한국사회는 철저하게 중장년세대 (40/ 50/ 60세)중심사회이기 때문에 청소년세대(10/ 20/ 30세대)와 노숙년세대(70/ 80/ 90세대)를 중장년세대의 인간관, 세계관, 가치관으로 수렴, 동화, 종속시키려는 경향이 강하고 각각의 독자적인 의미와 가치를 소홀히 여기는 폐단이 있는데 세대간 상호소통, 상호배려, 상호존중을 독려하는 교육프로그램이 개발‧ 시행‧ 개선되고 있는가라는 문제.

4) 결국 이 3세대가 함께 살면서 서로 잘 어울리고 더불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사회건설을 지향해야하는데 거기에 걸맞은 인간형성교육을 어떻게 계획‧ 설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문제.

이 자리에 모이신 교장선생님들의 풍부한 경험과 탁월한 경륜과 원만한 인격으로 인생 100년 시대에 걸맞은 학교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간청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9월 27일 금요일

오늘부터 9월 29일까지 사흘간 노년철학 제5회 국제회의가 장수사회대비 교육의 탐색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청주 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중회의실에서 개최된다. 개회식에서 윤건영 청주교육대학총장의 인사말이 있었고 나의 취지 설명에 이어 오전 회의가 시작 되었다.

오전회의에서는 교육대학교 초등교육과 이재용교수가 세대간 공감능력함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극심한 세대간 반감으로 인한 세대간 갈등, 대립, 분열에 대응, 대처, 극복하는데 있어서 긴급한 교육적 과제라는 데서 중요한 지적이다.

최정순 제천중 교장의 발제에서 특히, 아크라시아에 관한 언급이 있었던 것은 21세기에 걸맞은 노년철학적 인간품성에 관한 깊은 통찰력을 명시해주었다.

선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행동에 옮길 수 없는 경우나 악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억제하지 못하는 도덕적 결함을 말하는데 특히 최근 노인, 고령자, 장수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래서 청소년세대(10·20·30세대)나 중장년세대(40·50·60세대)의 존경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오후 회의에서는 화당초 교사가 노인문제에 대한 민감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오늘의 우리사회는 민감해야 할 때 지극히 둔감하고 둔감해야 할 때는 민감하다.

그 다음에 정남중 교사는 중학년 때의 교육과정 가운데 ‘삶과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거론되어있고 거기서 삶의 소중함을 각성시킨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있음을 보여주었다.

올바른 생사관정립을 위한 교육이 중학교 때부터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생사관교육이 교육현장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그다음에 김성윤 두루고등학교 교사가 현재의 세대간 갈등이라는(세대간 전쟁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문제 상황 속에서 의 노인문제에 대응‧ 대처‧ 지양하는 합리적 방안으로써 세대간 평화공존이라는 화두를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한마디 했다. 오늘의 발제자들의 공통점은 장수사회대비교육을 저출산‧ 고령화라는 각도에서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성장이라는 문제의식을 함께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9월 28일 토요일

제5회 노년철학국제회의 이틀째로 오전에 3인과 오후에 4인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1)이철주 청주교육대학교 강사는 초등학교어린이와 노숙년세대와의 좋은 관계짓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각각 당사자들의 노력과 그것을 촉진시키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2)노숙년세대의 정의=개념규정이 분명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3)윤윤병 증평형석중학교 교사는 중학교 학생들의 노인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직접적인 경험과 대중매체를 통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전파된 것에 연유했다.

4)김정환 제천여자고등학교 교사는 고등학생과 노숙년세대의 친화맺기 문제에 있어서 서로간의 상생촉진적인 커뮤니테이션을 저해하는 불편함과 비효율성의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5)조경애 충청북도교육청 학교혁신과 장학관과 한영란 장학사는 세대통합교육에 관한 초등교육과정과 중등과정의 실상, 개선방안 및 미래전망을 사례중심으로 제시했다.

6)나는 마지막 세션에서 장수사회대비교육의 기본전략으로 세 가지를 약술했다.

첫째, Glonacal(global+national+local)시각을 상호연관적으로 지닐 필요가 있다. 둘째, 공시적(synchronic)과 통시적(diachronic) 접근을 아울러 실행 할 필요가 있다. 셋째, 노년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려면 역사적으로 그리고 문명론적으로 중장년 남자 중심의 인간관, 가치관, 세계관의 주도하에 여성문제와 아동문제가 어떻게 취급되어 왔는가와 함께 상관연동적으로 연구‧성찰‧평가되어야 한다.



9월 29일 일요

제5회 노년철학 국제회의 셋째 날은 09:00부터 13:00까지 자유토론으로 전개되었다.

거기서 논의된 중요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노년철학포럼에서 쓰는 몇 가지 중요어휘 중에는 오늘의 한국인의 언어감각이나 정서에 맞는 말로 바꿀 필요가 있는 것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가 ‘미래공창’의 ‘공창’이라는 말이다. 청주교대총장은 ‘협창(協創)이라고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3세대(청소년세대, 중장년세대, 노숙년세대)가 서로 힘을 합하여 함께 새로운 차원을 연다는 뜻으로 협(協)=3개의 힘력 자가 어떤 목표를 향해 서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상징하는 글자와 새로운 차원‧ 지평‧ 세계를 연다는 뜻의 ‘창(創)’이라는 글자를 합친 말이—‘협창(協創)’—어감적으로는 공창(共創)보다 더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2)노년철학은 기본적으로 노년세대의 자기성찰‧ 자기반성‧ 자기각성을 지향하는 철학이다. 그러나 노숙년세대만의 철학이 아니라 청소년세대와 중장년세대와 함께 진지하고 솔직한 대화를 통해서 더불어 화해‧ 상생‧ 공복의 길을 찾자는 철학이다.

3)여기서 철학이란 전문가들의 학문적 영역으로써의 철학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관한 지혜를, 사랑을 통해서 발견하거나 산출하려는 인간적 상호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삶과 죽음에 관한 지혜를 꾸준히 찾는 일을 좋아하고(호학=好學) 그것을 즐기고(락학=學樂) 보다 좋은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 (미래협창=未來協創)는 공동의 노력이요 열정이요 용기라는 데 공감을 촉구하는 것이다.



9월 30일 월요일

어제까지 3일간(9월 27~29일) 개최되었던 제5회 노년철학 국제회의에서 제시된 문제들 가운데서 특별히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충청북도교육청 학교혁신과 조경애 장학관과 한영란 장학사가 함께 사용했던 ‘세대통합교육’이라는 개념어이다.

장수사회 대비 교육의 탐색방안으로 제시된 세대통합교육이라는 문맥에서 제시된 것인데, 세대간 갈등‧ 대립‧ 분열을 세대통합을 통해서 해결한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문제는 ‘통합’이라는 것인데, 과연 세대간 갈등을 통합이라는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교육적인 대응인가라는 데 있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는 이렇다.

통합은 정치공학적 행정기술적 대응은 될 수 있어도 교육적 대응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육이 정치나 행정과 다른 점은, 전자가 기본적으로 권력관계인데 비해서, 교육은 그 근본에 있어서 인격관계라는 데 있다.

그리고 세대간 갈등을 인격관계로 보는 교육적 대응을 탐색하는 입장에서는 세대간 갈등을 원초적으로 세대간 반감의 증폭경향을 세대간 공감능력의 함양을 위한 세대간 상호노력을—대화‧협력‧개신의 지속적인 공동실천—통해서 점진적 성과를 모색한다는 접근방법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런 입장에서 9월 26일 충청북도교육청에서의 강연을 통해서 ‘세대간 공감을 키우는 교육’을 주제로 설정해서 교육공무원들에게 호소했었던 것이다.



10월 1일 화요일

제6회 노년철학 국제회의가 한국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 숲체험 휴양마을에서 오늘부터 3일간(2019. 10. 1.-10. 3.) 보은군과 동양포럼 공동주최로 개최되었다.

오전회의(9~12시)는 하세가와 토시히코(長谷川敏彦) 미래의료연구기구 대표이사의 ‘인구전환 이후의 새로운 노년교육·학습론 시안’이라는 발제강연이 있었고 대한노인회 보은지부 간부의 한 사람이 질문한 것을 중심으로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졌었다.

질문의 요지는 현시점에서의 인구학적 추산으로는 2060년경이 되면 한국 사회는 전인구의 반 정도를 65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데, 그런 시대적 사회적 상황에서의 고령자의 삶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하세가외 박사는 솔직히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아직 경험적 데이터가 없어서 구체적인 추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초고령사회를 대비하는 교육·학습이론이 공리공론이 되지 않겠느냐?’라는 것이 질문자의 불만이었다.

오후 회의(1시~4시 30분)는 토비오카 켄(飛岡健) 인간과학연구소 소장의 ‘노년철학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과학기술’이라는 발제강연이 있었고 야마모토 교시 미래공창신문사 사장이 이의를 제기한 데서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의 쟁점은 토비오카 박사가 “모든 문제는 문제로 삼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며, 문제로 삼지 않으면 문제는 없다. 노년문제도 그렇다”라고 말한 데 대해서, “문제는 문제로 삼든지 삼지 않든지 문제로 존재하는데, 인간이 그것을 기피하거나 무시할 수는 있어도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노년문제나 죽음의 문제는 인간이 문제로 삼거나 문제로 삼지 않거나 문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하라다 켄이찌(原田憲一) 지성관대학(至誠館大學) 전 학장이나 세꼬 카즈호(世古一穂) 시민활동가도 야마모토 교시 사장과 비슷한 이의제기를 해서 활발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나는 대한노인회 보은지부 간부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인생 50년 시대의 인간관·가치관·세계관을 가지고 인생 100년 시대의 인간적· 사회적· 세계적 요청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 일찍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미니의 세계로의 보험적인 여행을 풍부한 상상력과 살아온 인생의 경험을 잘 살려서, 충분한 대비를 할 수 있도록 서로 능력과 지혜를 모아서 함께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또 토비오까 박사는 도쿄대학 공학부 출신의 탁월한 공학도답게 공학적 발상을 분명히 말해준 것이지만, 그동안 노인문제에 대한 철학적 실천을 중점적으로 계속해온 입장에서 말하자면 상식적으로 당연시되는 일들도, 일단 문제로 삼아서 깊은 성찰을 해나가는 데서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모색한다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이 나 자신의 개인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명백히 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