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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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조성환 - 하늘과 땅의 살림영성 – 다시개벽
2016 “청주는 인문·사상철학·범종교적 교류의 접점 ” |
“청주는 인문·사상철학·범종교적 교류의 접점 ”
야마모토 교시, 변영호씨의 기고
2016-07-13 동양일보
‘동아시아의 공통 가치를 찾아서’라는 주제 아래 특강, 대담, 좌담, 토론 등 다양한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동양포럼은 이번 회에서 일본 지식인들의 글을 소개한다. 야마모토 교시 일본 미래공창신문 발행인과 재일교포 2세인 변영호 츠루문과대학 문학부 비교문화학과 교수가 청주를 방문하고 느낀 소감을 보내왔다. <편집자>
▲ 야마모토 교시미래공창신문사 발행인
청주 원로들의 이야기 속엔 일제강점기 한이…
- 동서양과 동아시아의 접점 도시 청주 -
청주 시내에 있는 김태창 선생의 자택은 대로변에 가깝다. 자택을 나와서 인도에 서 있자 곧장 택시가 잡혔다. 택시 문을 열자마자 CD로부터 힘찬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김태창 선생이 “야~ 활기있네요!”라고 말문을 열자, 카마다 토지(鎌田東二) 교토대 교수가 “쿠와타 케이스케(桑田佳祐) 아닌가요? 그립네요!”라고 맞장구쳤다. 이에 택시기사가 고조된 한국말로 “제가 열렬한 팬입니다”라고 응수하였다. 차안에서 일본인 록가수를 화제로 활기찬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이승우 선생과 유성종 전 총장이 기다리고 있는 한정식집에 도착했다.
때는 2015년 12월 6일 저녁. 당시에 한·일정부 사이에는 종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막판 교섭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베신조’는 그 무렵 한국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져 있는 일본인이었다. 역사인식을 후퇴시킨 수상으로 유명해진 것이다. 이렇게 한·일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는 시기에 일본인 가수의 노래를 불특정 손님에게 들려주는 한없는 밝음과 교정(交情). 이 인상은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인 청주의 현재와 밝은 미래로 이어지고 있다고 나에게는 생각되었다. 수도 서울이 한국의 정치적 중심지라고 한다면, 거기에서 약간 남쪽으로 내려온 청주는 동서양의 인문적·사상철학적·범종교적 교류의 접점 중의 하나일 것이다. 청주에는 5개의 대학이 있다. 청주대학의 유학생은 중국에서 온 학생이 40%, 나머지는 다른 나라에서 온 유학생이라고 한다. 청주공항은 오카야마(岡山)공항과 연결되어 있고, 올해 안으로 칸사이(關西)국제공항으로 가는 직행편이 생길 계획이라고 들었다. 충청북도는 한국에서 유일한 내륙 도시로, 경기도를 비롯한 5개도와 인접하고 있다. 미네랄이 풍부한 천연수가 나오며 눈부시게 융성한 도시로 인기가 높다.
전날까지 경상북도 안동에서 열린 ‘이퇴계 한중일국제학술대회’를 마치고, 카마다 교수와 나는 청주의 김태창 선생 자택에 초대받았다. 청주에서는 김태창 선생의 선배이자 친우(親友)인 두 분의 원로로부터 저녁식사를 대접받았다. 유창한 일본어로 귀중한 역사적 증언을 직접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미래공창신문’에서는 그 내용을 27호(2016년 2월 29일자)에서 일부 보도했고 다음호에서 상세한 내용을 소개했다.
두 원로는 식민지시대 말기에 초등학교와 청주시내의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한국바둑문화연구회 회장과 전 꽃동네대 총장이다. 두 분 다 80대의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정하다. 이승우 선생은 고급관료 출신으로 군수, 시장 등을 역임하였고, 정치적으로는 불편부당을 신조로 삼는 청렴결백의 선비이다. 지일파로 뉴스는 NHK를 듣고 일본 문화에도 아주 밝은 분이다. 일본과 중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바둑 기보를 비교하여 역사를 분석하고, 장계석이 왜 모택동에게 졌는지를 해설한 저서는 널리 읽혀지고 있다.
이승우 선생의 1년 후배인 유성종 전 총장은 한국교육평가원장 출신으로 문교행정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이다. 여러 대학의 총장을 역임했는데 무엇보다도 우정과 신의가 두터운 철인(哲人)이다. 동양평화를 향한 염원은 남다르고, 타협 없는 언론과 행동에는 국사(國士)의 기풍이 있다. 2000년에는 세계인쇄출판박람회의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하였다.
기억력이 발군인 이승우 선생이 전쟁말기의 소년시대를 회상했다. 부친은 금융조합(현재 농업협동조합)의 간부였는데, 생활이 어려워서 가족들의 식사는 아침에는 죽을 먹고, 점심은 거른 뒤, 저녁에도 죽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친은 명문 청주중학교에 다니는 이승우 소년에게만큼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게 했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청주 제2중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같은 또래의 일본인이 이씨 집안의 어려운 형편을 알 까닭도 없었다.
일제 강점기의 한국에서는 모든 한국인을 송죽매(松竹梅)로 등급을 정하고 배급 등 여러 면에서 차등을 두었다. 송에 해당하는 이씨 가정보다도 등급이 더 낮았던 유성종 소년의 가족에게 배급된 것은 만주로부터 비료로 우송되어 온 시커멓게 썩은 두부찌꺼기였다. 쌀겨를 먹으면서 겨울을 지냈다. 보리가 익는 봄까지 먹을 것이 없어서 풀뿌리나 나무껍질을 먹으며 목숨을 연명했다. 이 시기의 비참함을 ‘보릿고개’라고 한다. 조상의 제사를 중시하는 유씨 집안에서는 과혹한 공출로부터 제사용 쌀을 보호하기 위해서 변소 옆에 작은 단지를 파묻고 그 속에 숨겼다. 언어말살교육은 가혹함을 더했다. 한국말을 쓴 것이 알려지면 교사는 아이들의 손등을 매로 때렸다. “지금 생각해도 한기가 서립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유성종 소년이 시골집에 돌아오자, 처음보는 남자가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누구죠?”라고 묻자, “너의 매형이다.” “어떻게 된 거죠?”라고 묻자, “누나가 나이가 차서 시집을 보내지 않으면 정신대에 끌려간다. 그래서 이웃 마을의 청년과 물 한 그릇 떠놓고 결혼시켰다.” 당시에 한국인 중에서 종군위안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승우 선생은 말한다. 남자는 ‘노동동원’으로, 독신여성은 ‘정신대’로 징용되었다. 정신대는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이었는데, 가는 곳은 알 수 없었다.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의 작품 중에 ‘라파울전기’라는 체험담을 그린 문고본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위안부에 대해서 두 군데 나오는데, 가건물에 매춘부가 있는데 조선여성은 ‘센핑’, 오키나와 여성은 ‘나와핑’이라는 멸칭으로 각각 불렸다고 합니다.”
유성종 전 총장이 6학년이었을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임종시에 “일본은 패한다. 사람들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고서 오래갈 까닭이 없다.”는 말을 남기셨다고 한다.
김태창 선생이 두 사람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 “두 분과 동년배인 일본인은 한국인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었던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요?
이승우 선생은 “진짜 몰랐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한국인과 일본인은 생활세계가 완전히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은 ‘사쿠라’라는 특권계급으로, 먹는 것은 풍부하였다. 하지만 한국인에 대해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라든가 ‘(천황 앞에서는) 일시동인(一視同仁)’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자신들과 한국인을 기만하고 있었다. 한국에 사는 일본인은 한국인의 궁핍함을 몰랐고, 그 자손인 우리도 지금까지 알 기회가 거의 없었다.
전후(戰後)에 후지와라 테이는 전쟁 말기에 만주에서 어린애 3명을 데리고 1년이나 걸려서 일본에 돌아온다는 내용의 소설 ‘떨어지는 별은 살아 있다’를 썼다. 북한을 경유한 장대한 귀국기록으로, 식민지의 고충을 체험한 민중이 일본인에 대한 보복을 억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볶은 콩을 씹으면서 연명하는 일본인을 동정하고, 스쳐 지나가면서 먹을 것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자신의 아픔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는 법이다.
나는 만주국의 국무원(國務院) 총무장관을 지낸 키시 노부스케(岸伸介)가 귀향의 고통을 겪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한국과 일본의 서민이 맛본 전쟁의 비참함을 아베 수상은 할아버지로부터 얼마나 배웠을까? 만주에서 민중을 통치하는 입장에 있었던 키시씨에게 애당초 전쟁의 비참함에 허덕이는 서민과 동고(同苦)·공고(共苦)하는 체험이 있었을까? 의문이 남는 부분이다.
일본인은 일본군국주의가 한반도나 중국인들에게 끼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진실을 아직 잘 모른다. 전후 70년을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망언정치가가 잘난 체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동아시아의 한중일 삼국이 진정한 우호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민중 차원에서 서로 진실을 얘기하고, 먼저 민(民)과 민(民) 사이에서 해원상화(解寃和解)를 추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확신한다.
2015년 12월 7일. 우리는 청주시내에서 스포츠사회학자인 전 충북대학교 체육과 이종각 교수와 경제사회학자인 전 청주대학 장준호 부총장과 함께 점심을 했다. 당시 한국의 TV에서는 연일 불법노동운동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절 안으로 도망친 시민운동 리더의 체포강행 여부를 둘러싼 열띤 토론이 전개되고 있었다. 일본이라면 경찰이 불교사원으로 들어가서 즉각 체포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교회나 절이나 대학은 일종의 아질(성역)이 되어 있다.
“나라는 법에 의해 다스려진다. 법은 스포츠의 룰과 마찬가지인데, 한국은 선진국으로서 법을 지키는 단계에 진입해야 한다”고 이종각 교수는 열정적으로 말한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는 격차해소법안에 저항하는 정규노동자쪽 리더이다. 연수입이 7000만~1억원에 달하는 노동귀족이라는 사실도 시민들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반면에 장준호 전 부총장은 “체포는 조금 더 기다려야한다”는 신중론 쪽이다. 군정에서 민정으로 민중의 힘과 단결에 의해 민주주의를 획득한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위로부터의 ‘통치’와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자치’의 상반성은 민주주의의 근간과 관련된다. 지금의 한국은 일본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언론의 힘이 강하다. ‘노동조합’은 한국사회의 활력의 척도가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체제에 불리한 뉴스진행자가 연이어 퇴직을 강요 당하고 있고, 국립대학의 인문계 교원에 대한 예산상의 압박이 논란이 되고 있으며, 언론은 두드러지게 빈약해지고 있다. 기자는 한국의 뜨거운 언론풍경에서 희망을 보았다.
이날 밤에는 한민족철학연구의 권위자인 충북대학교 김용환 교수와 재회하여 시내에 있는 백화점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백화점은 널찍하고 활기찼다. 주위에는 주차장과 도로를 끼고 고층아파트가 즐비했고, 생활과 쇼핑이 효율적으로 일체화되어 있는 느낌이다.
김 교수는 예수가 불교를 배웠다고 전해지는 인도의 헤미스사원 등을 답사하고, 그 체험을 1980년대에 책으로 정리해서 출판한 적이 있다. 예수가 13세 때에 ‘동방박사’를 방문하여 페르시아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 증거가 되는 문헌을 러시아 언론인 니콜라스 노토비치(Nicolas Notovitch)가 발견하여 바티칸궁전에 가지고 온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바티칸의 반응은 “기지(旣知)의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말한다. “예수는 더 나아가서 동쪽의 북인도로 향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병을 고치는 성인이 나타나서, 그 이름을 ‘이사’라고 하였습니다. 이사가 누구인지 문헌과 현지조사를 통해 조사해보면 예수를 가리킨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지간에 예수가 30이 될 때까지 17년간의 공백기간의 행적은 지금도 수수께끼이다. 그리스도교의 구세주가 불교의 영향을 받았는지 아닌 지는 가톨릭의 교리와도 미묘하게 연결된다.
김 교수는 “예수는 처음부터 구세주로 하늘에서 내려왔다기 보다는, 김태창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성’이나 ‘우주생명’을 각성하고 그리스도로서의 사명을 자각하여 이스라엘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요?”라고 한다. 그리스도교의 십계와 불교의 십계의 공통점 등을 생각하면, 두 세계 종교 간의 대화는 흥미롭기 그지없다.
12월 8일. 아침식사를 마치고 김태창 선생이 “최한기의 활동운화(活動運化)를 실제로 관찰해 봐요”라며, 탁자 위에 유리로 된 커피포트를 준비했다. 포트에 물을 붓고 볶은 현미, 메밀가루, 말린 우엉, 볶은 콩가루, 아마란스를 넣고 스위치를 켜자, 처음에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재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임은 점차 빨라지고 서로 격렬하게 부딪히기 시작했다. 정물(靜物)이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양상이 돌변했다. 재료가 빙빙 돌면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운(運)’에 해당한다. 정반대로 회전하는 ‘전(轉)’이고, 정신(魂)의 기능으로 말하면 전개(全開)상태가 된 것이다. 한층 열을 가하자 용기 속은 혼돈스럽게 뒤섞이고, 모든 입자가 근원적 생명력을 한껏 들끓게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열탕은 옅은 황색으로 변했다. 각 소재가 속에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던 영양소를 밖으로 끄집어내어 탕질(湯質)에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그것은 각 재료의 개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활동운(活動運)’에 이어서 새로운 영양엑기스가 탄생한(化)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활명연대(活命連帶)에 의한 개신(開新), 미래의 공동창발(共 創發=未來共創)은 바로 이것이라고 실제 관찰을 통해서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기자가 지금까지 야규 마코토(柳生眞) 박사의 논문을 읽고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최한기의 ‘활동운화’의 과정을 시각을 통해서 깨닫게 해준 것이다. 이날 밤에는 충북대학교 강형기 교수와 제자들의 회식자리에 동석하게 되었다. 충북대학으로 유학 와서 비영리민간단체가 지방정부 차원의 국제교류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는 네모토 마사츠구(根本眞嗣) 박사도 강 교수의 제자 자격으로 참석했다.
한국에는 226개의 마을에서 만드는 조합회가 있다. 그 고문단장인 강형기 교수는 지방자치의 일인자로, ‘향부론(鄕富論)’(1990년)의 저자이기도 하다. 김태창 선생이 충북대학교 행정대학원장을 겸임하고 있던 25년 전에, 그는 29세의 젊은 나이에 사회인을 대상으로 행정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강교수는 말한다. “당시에 김태창 선생님은 구름 위에 있는 존재였습니다.”
1991년에 한국에서 최초로 정보공개조례를 도입한 도시는 청주다. 조례화를 추진한 것은 강형기 교수가 교실에서 가르친 제자이다. 그리고 2년 뒤에는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의 3분의 2 이상이 정보공개조례를 만들었다. 이것에 기초하여 1996년에는 정부가 정보공개법을 만들었는데, 이 법률은 정보공개의 대상을 행정기관뿐만 아니라 재판소, 국회, 특수법인, 지방자치단체에까지도 확대시키고 있다.
한편 일본은 1996년에 행정정보공개부회가 정보공개법안 요강안의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는데, 내용은 한국의 공개법보다도 뒤져 있을뿐만 아니라 아직 법안의 제출조차 되어 있지 않다. 주민투표법이나 외국인투표법의 제정 등 강 교수의 활동은 역동적이고 실적을 동반하고 있다.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강 교수의 친구인 피아니스트가 2개월 전에 오키나와의 쟈마미마을과 토카시키마을에 갔는데, 94세의 할머니가 ‘아리랑’을 부르고 있었다. “누구한테 배우셨어요?”라고 묻자, “한국에서 끌려온 7명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대단히 아름다웠는데, 매일같이 멍하니 하늘을 보면서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위안부의 이름도 끌려온 경위도 전부 알고 있었습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고 한다. 진실이 사라지는 일은 없다.
12월 9일에는 이종각·장준호 두 분도 청주공항까지 배웅해 주셨고, 청주에 체재하는 김태창 선생과 잠시 이별을 하고, 카마다 교수와 나는 인천을 경유하여 일본으로 돌아왔다.
▲ 변영호츠루문과대학 비교문화학과 교수
변영호 邊英浩
츠루문과대학 문학부 비교문화학과 교수
나 자신에게 묻는 것, 한국 고유의 것은 무엇인가
- 한국철학 발신지 청주에 동양일보가 있음을 -
일본에서 교토포럼이 인연이 된 이래로 줄곧 알고 지내온 김태창 선생이 최근에 고향인 충청북도 청주로 돌아오셔서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래공창신문’의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사장으로부터 청주에서 열리는 1회 ‘동양포럼: 동양적 생명관의 재조명’(동양일보 주최. 2016년 5월 3일)에 참가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김태창 선생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였기 때문에 나는 자세한 내용도 모른 채 무작정 청주를 방문하게 됐다.
나는 재일교포 2세로 한국유학사상을 연구하고 있고, 때때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으며, 2006년에는 서울대학교 객원연구원으로 1년간 지낸 적이 있지만, 사실 충청북도도, 청주도 첫 방문이었다. 청주에 대해서는, 조선시대에는 서원(西原)이라는 지명으로 불렸으며, 율곡 이이가 지방수령으로 부임하여 ‘서원향약’을 실시한 장소라는 인식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와 보니 인구가 90만명이나 되는 지방의 중핵문화도시임을 알 수 있었다.
도착 후에 김태창 선생, 전 세이카(精華)대학의 츠치다 다카시 교수,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사장님, 조성환 박사와 함께 동양일보사를 방문했다. 그러자 먼저 와계신 유성종 전 꽃동네대 총장이 마중 나와 주셨다. 유 총장과는 안동에서 뵌 적이 있는데, 이퇴계의 ‘경사상’을 몸소 실천하시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었다. 그런데 청주 출신인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후에 청주에 체재중인 우리를 배려해 주신 점에 대해서도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방 안에는 조철호 회장이 기다리고 계셨다. 조 회장님의 말씀으로부터 지적이고 성실한 인품과 시인으로서의 정열을 곧바로 느낄 수 있어서, 존경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켰다. 나에게 있어 이 방문이 주최측에 대한 형식적인 경의 표현의 차원을 넘어설 수 있게 된 것은 의외의 기쁨이었다. 조 회장의 말씀은 흥미로웠다. 기나긴 기자생활 속에서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신문을 창업하겠다는 뜻을 품게 된 이야기, ‘동양일보’를 창업했을 때 도와주기로 한 친구들의 회사에 정부가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바람에 자신의 자금만으로 창업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꺼내셨다.
나아가서 청주가 대한민국의 중심에 위치하고, 삼국시대의 중심지이기도 한 점, 지역에 뿌리를 두면서 장차 동양시대가 오리라는 확신을 갖고 ‘동양일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IMF위기가 한창일 때에 부도난 이야기였다. 처음에 ‘동양일보’는 소규모의 자금으로 창업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모든 인쇄공정을 컴퓨터화하여 한국의 신문출판문화의 선구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노동조합도 없는 규모로 출발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대형 신문사가 노조의 반대로 사원들을 해고시키지 못해서 할 수 없었던 일을 역으로 실현시킨 것이다.
그러나 IMF때에는 이것이 역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당시에 한국에서는 컴퓨터 관련기계는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IMF때에 한국통화가 크게 하락했기 때문에 동양일보의 비용이 급상승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부터가 조철호 회장의 매력이다. 동양일보 1면에 “부도를 냈지만 신문은 앞으로도 계속 낸다”는 광고를 냈고, 그것을 읽은 뜻있는 시민들이 기부를 해줘 최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조 회장의 인격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때 300명 이상의 사원이 있었는데 단 한 사람도 해고시키지 않고, 대신 사원들로부터 희망자를 받아서 자진 퇴사하게 하여 100명 남짓의 규모로 재편성했다는 것이다. 이 위기상황에서 해고자를 한 사람도 내지 않았다는 것은 보통의 신념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인품 때문에 ‘철학하는 사람이 산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김태창 선생과 곧바로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인문학이 축소·소멸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조 회장과 같은 분이 철학과 인문학을 지탱해 주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조 회장은 시인이기도 한데, 동양일보를 방문한 날 저녁에 트럼펫 연주자와 시인들을 초대하여 낭송회를 열고, 직접 지은 ‘청주의 여성들은’이라는 청주 여성의 높은 품격을 찬양하는 작품까지 들려 주셨다.
다음날에 있었던 1회 ‘동양포럼: 동양적 생명관의 재조명’은 일원적인 일본적 생명관, 이원적인 중국적 생명관, 그리고 삼원적인 한국적 생명관이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10월 1~3일에 대규모로 개최될 동양포럼의 준비모임과 같은 성격으로, 이후의 포럼의 출발점이 되었다.
나는 지금 일본에서 한국의 문화와 사상을 가르치고 있는데, 항상 나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한국철학이란 무엇인가? 한국 고유의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등이다. 그런데 한국학자들을 만나면 대개는 서양이나 중국에 관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을 알고 싶어서 한국에 왔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까지 서양이나 중국, 또는 일본에 대해 배울 생각은 없다”고 항상 불만이 쌓여있었다. 그런 때에 김태창 선생을 만났는데, 선생 역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더 나아가서 이 문제에 대해 뛰어난 답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조철호 회장도 같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김태창 선생과 의기투합해서 ‘동양일보’를 걸고 지원할 것을 약속해준 것이다.
나는 김태창 선생이 산수(傘壽)를 지나서 고향에서 커다란 지원자들과 지우(知遇)를 얻은 것이 대단히 기뻤고, 이것이 앞으로 형태를 갖추어 나갈 가능성을 느꼈다.
나도 여기에 대해서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고, 나아가서 청주가 장차 동양의 중심지로 문화교류와 한국철학의 발신지가 되기를 크게 기대하고 있다. 그 청주의 중심에 ‘동양일보’가 있음을 알게 해준 여행이었다.
2012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을 비교한다 |
조성환 한국철학의 특징을 찾아서 – 다시개벽
다시개벽
1920년 창간한 잡지 『개벽』의 창조적 복간
한국철학의 특징을 찾아서
글: 조성환
이 글은 개벽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폐강 직전의 한국철학
이 글은 이번 학기에 서울에 있는 모대학에서 <한국철학특강>을 강의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탄생하게 되었다. 나의 모교이기도 한 이 대학은 1년에 30여 개에 달하는 철학과목이 개설되지만 ‘한국철학’ 과목은 단 한 개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이번 학기에는 학생 10명을 채우지 못해 폐강 위기에 처한 것이다. 서양철학과목은 적게는 50명, 많게는 100명까지도 학생들이 몰려오고, 중국철학도 기본적으로 수십 명은 채워지는데 왜 유독 한국철학만은 이렇게 외면당하는 것일까? 한국철학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참담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 무언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글을 연재하게 된 것이다.
물론 <한국철학특강>이 폐강직전까지 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령 전문적인 ‘특강’ 과목이라는 점, ‘동학’이라는 생소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 시간대가 금요일 늦은 오후라는 점, 가톨릭 계열의 학교라서 상대적으로 한국철학에 소홀하다는 점, 강사인 나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 등등. 그러나 이런 점들을 다 감안해도 한국철학에 대한 철학과 학생들의 무관심은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무관심은 무엇보다도 철학과 교수들의 한국철학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왜냐하면 철학과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철학과 교수들의 절대적인 영향 하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는 이번에 처음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쯤, 일본에 유학하고 있을 때부터 이 물음은 시작되었다. 그때 나는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일본’의 모습을 접하고서 오히려 ‘한국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교토포럼을 기획하고 진행하시는 한국인 철학자 김태창 선생을 만난 뒤로 처음으로 ‘한국철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철학으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원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질문은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에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동양철학 전문서적으로서는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저서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도올 김용옥 선생은 ‘고전 번역’의 중요성을 화두로 던지면서 동양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함과 아울러 동양철학의 언어도 서양철학처럼 정교한 ‘학’의 논리를 갖출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고전번역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확산되었고 동양학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 세대가 이 물음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즉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 이어서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령 민주화운동으로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이 다른 데로 이동했다는 점, 90년대의 포스트모던 열풍 이후로 서양철학이 학계의 지배적인 담론이 되었다는 점, IMF와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논의의 초점이 경제 문제로 집중되었다는 점 등등. 그러나 좀 더 결정적인 이유는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 안에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그때 ‘동양학’은 주로 ‘중국학’으로, 그것의 핵심 내용 역시 ‘고전번역’이지 ‘한국철학’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이러한 문제들을 염두에 두면서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고민하고자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새롭게 제기하면서 그 안에서 ‘한국철학’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
중국철학으로서의 한국철학 연구
혹자는 나의 문제제기에 이렇게 반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대학에는 한국철학 과목도 많이 개설되고 있고 한국철학 교수도 많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반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한국철학 연구자들은 중국철학과 한국철학을 혼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종래의 한국철학 연구는 ‘중국철학의 일부’로서의 한국철학을 연구하는 것이지 한국철학 그 자체를 탐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령 조선유학을 연구하는 한국철학 연구자의 태도는 ‘동아시아 유학사’의 일부로서의 한국철학 연구이지 한국철학 그 자체에 대한 연구는 아니다. 얼핏 보면 별반 다를 바 없이 보이는 이 차이는 실은 어머어마한 결과를 초래한다. 무엇보다 연구자들로 하여금 ‘한국철학사’를 기술할 수 없게 만든다. 왜냐하면 ‘한국’이라는 수식어에 해당하는 내용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한국 땅에서 전개된 철학적 활동들을 나열하는 것을 ‘한국철학사’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史)’라기보다는 일개 ‘보고서’에 불과할 것이다. 적어도 ‘사’라고 하려면 일관된 관점과 해석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철학사’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사유방식’이 담겨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인의 사유방식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기존의 한국철학 연구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조선성리학 연구자들은 이 물음을 던지지 않았다.
기존의 조선유학 연구는 암암리에 다음과 같은 전제를 깔고 있다: “조선은 주자학의 나라였고, 퇴계를 비롯한 대부분의 조선유학자들은 중국의 주자(朱子)를 하늘처럼 받들었다. 따라서 조선의 유학은 주자학의 연장이다. 그러므로 주자학만 알면 조선유학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대단히 비(非)역사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조선의 성리학으로서의 주자학의 전개는 한국 땅에서 이루어졌고, 그것이 한국 땅에서 이루어졌다면 당연히 ‘한국’이라는 변수가 작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상사를 서술하는데 있어서 사상을 수용하는 쪽의 성향도 같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연구는 이 부분에 대한 성찰이 빠져 있다. 그 결과 한국을 단지 일방적으로 문화를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수용자로서만 규정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조선유학 연구자들이 유교경전으로 한국철학을 공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한문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먼저 『논어』나 『맹자』 또는 『시경』이나 『서경』 등을 읽으면서 문법과 어휘를 익히기 마련인데,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중국적 세계관이 그들의 머릿속에 소프트웨어처럼 깔려 버리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적 사유방식을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유교적 세계관이 프로그래밍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사상의 모든 것을 중국사유와 중국문헌으로 환원해서 이해하려는 습성이 배게 된다.
이것은 가령 일본 학자들의 장기인 주석 작업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가령 조선유학의 텍스트를 읽다가 중요한 철학적 개념이나 어려운 용어가 나오면 이른바 출전을 조사해서 중국고전의 전거를 찾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시경』에 나오는 말이랄지 『사기』의 무슨 편에 나오는 말이랄지 하는 식으로 방대한 사전들을 동원해가며 열심히 조사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자신들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번도 그 개념 속에 한국적 문화나 사유가 들어 있을 수 있다고는 의심해 보지 않는다. 한국철학을 연구하는 일본 학자는 물론이고 그 영향을 받은 한국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내가 주목한 것은 ‘한중비교철학’이다. 즉 중국철학과 한국철학을 비교하는 것이다. 흔히 ‘비교철학’ 하면 동서비교철학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비교하는 것이 비교철학의 영역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중국철학과 한국철학을 비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래와 같이 중국철학의 연장선상에서의, 중국철학의 우산 속에서의 한국철학 연구가 아니라, 그 막대한 영향력을 인정한 상태에서, 중국철학과 한국철학을 대등하게 비교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동서비교철학 작업과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거시적 차원에서는 동아시아철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서양철학에 의해 왜곡되어 있고, 그 안에서 다시 한국철학이 중국철학에 의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수양으로서의 학문
먼저 동아시아철학 또는 동양철학을 서양철학과 비교하는 문제를 생각해보면, 무엇보다도 ‘철학’ 그 자체의 이해, 더 나아가서는 ‘학문’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나는 이 차이를 ‘동도서학(東道西學)’이라는 말로 나타내고자 한다. ‘동도서학’이란 ‘동양의 도학과 서양의 과학’을 줄인 말이다. 다시 말하면 동양은 도학을 추구했고 서양은 과학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비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가령 몇 년 전에 교토포럼에 참석한 연세대학교 철학과 이광호 교수는 도학과 과학으로 동서양의 학문을 대비시킨 적이 있다. 이때 양자의 차이는 도학이 대상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반면, 과학은 대상과 분리되어 객관적 사실을 탐구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일제시대에 탄생한 원불교 역시 도학과 과학으로 동서양을 암묵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원불교는 ‘과학과 도학을 겸비한 전인적인 인재 양성’(원광대학교 교학대학 홈페이지)을 지향하는데, 이때 과학은 기술에 바탕을 둔 물질문명을, 도학은 도덕에 바탕을 둔 정신문명을 상징한다. 따라서 원불교에서의 도학과 과학의 대비는 정신과 물질, 또는 도덕과 기술의 다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도학’의 핵심은 ‘수양’이다. 즉 ‘동도(東道)’라고 할 때의 ‘도’는 곧 ‘수양’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동양학은 학문 자체가 수양을 목적으로 하고, 모든 논의가 수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서양은, 설령 그것이 철학이라고 할지라도, 객관적 진리 추구라는 ‘과학’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똑같이 ‘마음(Mind)’을 논해도, 서양의 경우에는 우리의 ‘앎’이 어떻게 성립하는지, 그 ‘앎’이 객관적인 타당성을 지니는지와 같은 ‘인식론’(Theory of Knowledge)에 치중해 있다면, 동양의 경우에는 ‘마음(心)’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 본래 마음[本心]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와 같은 ‘마음공부[心學]’에 일차적인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동서양의 학문을, 거칠게 구분하자면, ‘수양으로서의 학문’과 ‘과학으로서의 학문’으로 대별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유교에서 말하는 ‘수기치인’은 일종의 ‘수양정치론’으로 이해할 수 있고, 같은 맥락에서 도교는 ‘수양양생론’, 불교는 ‘수양해탈론’이라고 각각 규정할 수 있다. 여기에서 ‘수양’은 각각 정치와 양생 그리고 해탈에 이르기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우리는 흔히 신유학하면 불교의 ‘리’의 존재론과 도교의 ‘기’의 우주론을 대폭 수용하여 리기론 체계를 수립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수양’의 관점에서 신유학을 다시 생각해보면, 형이상학이나 우주론보다는 오히려 수양론이 대폭 강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유학은 불교 수양론의 도전을 받아서 마음공부를 전폭적으로 강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유학 역시 여전히 ‘심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신유학에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성(誠)-경(敬), 미발-이발, 함양-찰식, 거경-궁리, 정좌, 정성(定性), 허심, 명경(明鏡) 등이라는 사실로부터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중국불교나 유학이 마음공부에 치중하고, 그런 점에서 ‘심학’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 중국도교나 인도요가의 경우에는 몸의 동작을 통한 ‘기’의 순환을 중시한다. 그런 점에서 ‘기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기학’이라는 표현은 조선말의 대유학자인 최한기가 자신의 철학체계를 지칭해서 쓴 말로, ‘기’ 중심의 학문체계를 가리킨다. 그래서 거기에는 우주론, 인식론, 윤리학 등이 포괄적으로 망라되어 있다. 반면에 여기에서 말하는 ‘기학’은 그것보다는 훨씬 좁은 의미이다. 즉 수양론에 국한해서 쓰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최한기의 ‘기학’ 체계에는 수양론으로서의 ‘기학’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원광대학교 불교학과대학원에는 ‘기학’ 전공과정이 있는데, 커리큘럼은 기공학, 내단수행, 도인법 등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이때의 ‘기학’이 바로 이 글에서 말하는 수양론으로서의 ‘기학’에 가깝다. 한편 순수하게 수양론의 관점에서만 보면 기독교 역시 ‘심학’으로 분류될 수 있다. 왜냐하면 ‘기’ 수련보다는 믿음이나 기도와 같은 심적인 요소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퇴계가 도교의 양생서인 『활인심방』을 받아들였던 것은, 수양학적 측면에서 보면 유교에는 취약한 기학적 요소를 보완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한국철학의 특징을 찾아서
이상이 서양철학과 대비되는 동양철학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다음으로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중국철학과 대비되는 한국철학의 특징이다. 나는 그것을 ‘하늘’, ‘회통’, ‘개벽’, ‘살림’이라는 네 개념으로 잡아보았다. 그리고 이 네 사상이 압축되어 있는 것이 바로 조선후기에 탄생한 ‘동학’이라고 본다.
먼저 ‘하늘’은 한자어 ‘天(천)’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중국의 ‘天’과 서양의 ‘God’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개념이다. 이 ‘하늘’은 ‘한국종교의 원형’이라고도 말해질 정도로(박재순), 한국인들의 심성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개념이다. 단군신화의 천신강림설화를 비롯하여 윤동주의 「서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고대 부족국가의 제천행사에서 시작하여 식민지시대 민족종교의 천제(天祭)에 이르기까지, ‘하늘’은 한국인들의 이야기와 생활방식 속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조선성리학자들이 사용했던 한자어 ‘天’ 개념에도, 중국 유교에서 말하는 ‘天’뿐만이 아니라, 한국적인 ‘하늘사상’이 가미되어 있음을 추측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편 ‘회통’은 한국종교의 경향성을 대변하는 말이다. 일찍이 9세기의 최치원이 풍류도를 ‘포함삼교’, 즉 “삼교를 포함하고 있다”고 규정한 이후로, 흔히 한국불교의 특징으로 거론되는 ‘통불교’ 담론, 조선후기의 실학자로 알려진 다산 정약용의 유교와 천주교의 융합, 그리고 일제강점기 이능화의 『백교회통』(1912) 논의를 거쳐, 실제로 유불도 삼교를 종합했다고 하는 원불교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는 외래 사상을 수용하여 새로운 ‘도’를 만들고자 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경향은 아마도 문화를 전파하는 입장에 있었던 중국이나 서양과는 달리, 그것들을 수용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발달된 것이리라.
또한 19세기 말 동학에서 시작된 ‘개벽’ 사상은 ‘개화’와 대비되는 말이다. 개화가 지식인들 중심의 전반서구화를 의미한다면, 개벽은 민중들이 중심이 된 자주적인 근대화운동이었다. 흔히 민족종교로 분류되는 동학(천도교)-증산교-원불교는 모두 이 ‘개벽’이라는 용어를 공유하고 있다(1909년에 탄생한 대종교 역시 ‘개벽’과 사상적으로 상통하는 ‘중광重光’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바로 이 점이 당시의 중국이나 일본사상에서는 보기 드문 요소이다. 즉 근대 한국의 개벽사상은 종교를 초월하여 100년 넘게 전개되었고, 지금도 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살림’ 역시 외국어로는 좀처럼 번역하기 힘든 한국적인 개념이다. ‘살림’은 ‘살리다’는 동사에서 왔다는 점에서 ‘생명’과는 구분된다. 따라서 생명철학이나 생명학이 생명현상의 탐구에서 출발하고 있다면, 살림철학이나 살림학은 살리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신유학에서 말하는 ‘생물(生物)’ 역시 “대자연이 만물을 ‘낳는’ 생성작용”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살림’과는 다르다. ‘살림’은 단지 생명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기’를 살리고, 개인의 능력을 살리고, 조직을 살리는 것까지 포함하는,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살림’은 ‘경영’의 의미까지 담고 있다. ‘나라살림’, ‘가정살림’이라고 할 때의 ‘살림’이 그런 예이다. 이 ‘살림’ 개념은 특히 현대 한국철학에서 주목받고 있는데, 장일순의 한살림운동, 박재순 등의 살림신학, 김태창의 활사개공(活私開公) 등이 그것이다.
이상의 네 가지 개념이 응축되어 있는 사상이 동학이다. 그래서 한국철학사는 동학으로 수렴되어 동학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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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한국윤리교육학회 바로가기
간행물윤리교육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통권제25집 (2011.08)바로가기
페이지pp.31-48
저자야규 마코토
언어한국어(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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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영어
Kyoto Forum-promoting public philosophy in professor Lee Myeong-Han's paper titled
"the Reflective Consideration for the Dissemination of Public Philosophy in Korea now" in
Yangmyeonghak, No.28 (April 2011) published by Korea Yangmyeonghak Society. I would
like to summarize three points of my paper. The first point deals with the main currents
of thoughts and ideas underlying Kyoto Forum public philosophy movements. The second
point is concerned with clarifying Director Kim Tae-Changs philosophysing activities.
Then third point refers to clarifying prof. Lee Myong-Han's misunderstanding and/or
distortions of public philosophy promoted through Kyoto Forum for the past twenty years
in Japan and abroad.
목차
국문초록
I. 서론
II. 공공철학은 한 개인이나 조직이 만들고 보급하는 철학이 아니다
1. 공공철학과 사철학(私哲學)
2. 공공철학 교토포럼에서 요시다 쇼인을 비판의 도마에 올리다
III. 공공철학은 오래되고 새로운 철학운동이다
1. “보고 생각하는” 철학과 “듣고 얘기하는” 철학
2. 시민들이 토론하고 소통하여 세계를 밝히는 철학으로서의 공공철학
IV. 공ㆍ사ㆍ공공의 3차원
1. 3차원 상관연동의 철학
2. 대화와 공동을 통해 새로운 차원을 열다
V.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public private public philosophy Activities with and together New Developments and New frontier(Gaisin) Multi-dimensional thinking in threeperspectives(Samwonsago). 公 私 公共 哲學 對話 共働 開新 三元思考
저자야규 마코토 [ Yagyu Makoto | 日本大阪公共哲學共働硏究所特任硏究員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1김태창 편저, 조성환 번역,『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서울: 동방의 빛, 2010. 12)
2남상호 지음,『육경과 공자인학』(서울: 예문서원, 2003)
3야자키 카츠히코 지음, 정지욱 번역,『한 일본 기업인이 실천하는 실심실학』(서울: 동방의 빛, 2010. 12)
4金泰昌,『共福の思想地球時代の‘フランシスコ的革命’を求めて』(グローバル文化研究所・GEC出版, 1992)
5金泰昌편저,『ともに公共哲学する 日本での対話・共働・開新』(東京大学出版会, 2010)
6金泰昌편저,『公共哲学を語りあう 中国との対話・共働・開新』(東京大学出版会, 2010)
7公共哲学共同研究会レポート(金泰昌책임편집: 將來世代總合硏究所)
8『比較思想史的文脈からみた公私問題 ―第一回公共哲学共同研究会―』(1998. 4. 25~27)
9『学際的公私論の基本論点 ―第二回公共哲学共同研究会―』(1998. 6. 13~15)
10『各国別公私問題の現状と課題 ―米・仏・英・露・独・イスラエル・パレスチナにおける観察と体験―』(1998. 10. 17~19)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 한국윤리교육학회 [The Korean Ethics Education Association]
- 설립연도
- 2000
- 분야
- 사회과학>교육학
- 소개
- 본 학회는 윤리, 도덕 교과교육학과 교과내용학의 연구발전에 기여하려는 목적하에 설립되어 전국대학교의 윤리, 도덕교육 관련교수들과 대학원 석사,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현장교사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는 순수 학술단체이다. 이러한 설립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연구, 학술회의 및 워크??, 학술교류, 출판활동에 주력하여 본 학회가 운영됨으로써 전국대학과 초중등학교에 있는 회원들의 학구열을 고취시키고 일선학교의 윤리교육분야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한국의 윤리, 도덕교육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간행물
- 간행물명
- 윤리교육연구 [Journal of Ethics Education Studies]
- 간기
- 계간
- pISSN
- 1738-0545
- eISSN
- 2733-8983
- 수록기간
- 2000~2023
- 등재여부
- KCI 등재
- 십진분류
- KDC 370 DDC 370
이 권호 내 다른 논문 / 윤리교육연구 제25집
- Emotion and Emotion Education in Moral Educationpp.1-30
- ‘公共哲學’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試論 - 중앙대학 이명한 교수의 비판적 견해에 대한 반론을 포함해서pp.31-48
- 기업의 윤리적 가치관이 조직몰입 및 이직의도에 미치는 영향pp.49-66
- 박물관을 통한 다문화교육프로그램분석pp.67-94
- 타자를 위한 책임으로 구현되는 레비나스의 양심pp.95-110
- 아펠 양심론의 담론적 성격과 도덕교육적 의의pp.111-127
- 혜강의 氣學的자아pp.129-147
-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반론 - 데니스 노블의 ‘생명의 음악’을 중심으로pp.149-168
- 노자의 수양론 체계pp.169-194
- 그리스 비극의 수양론적 가치pp.195-214
EBS 기획특강 : 왜 공공철학인가? / 김태창
21세기, 공공철학을 지향하며 김태창왜 공공철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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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에서는 2012년 1학기부터 대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하기 위해 <글로벌인문학>이라는 강좌를 제공하고 있으며, 특강과 분반토론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특강은 강좌책임교수가 각 주제영역의 국내외 석학, 저명교수, 전문가 등을 모시고 진행하며, 분반토론은 분반교수들이 특강의 내용에 대한 예습과 복습뿐만 아니라, 글쓰기 연습, 비판적 사고훈련, 서평작성 요령 등의 내용으로 진행합니다. 이 강좌는 하버드대학의 교양강좌 운영방식을 참조해 국내 대학에서 처음 시도하는 강좌입니다.
이 강좌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사회와 세계에 대한 포괄적 성찰, 공유가능한 인류 문명의 자산에 대한 사유체험, 과거와 미래, 전통과 역사에 대한 성찰적 전망,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논리력과 표현능력, 지구촌의 사람들과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소통할 수 있는 소통능력, 지구촌에서 인류애(humanitas)를 실현할 수 있는 실천능력 등을 계발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이를 위해 매 학기 새로운 하나의 대(大) 주제가 설정되고 그 아래 여러 가지 하부주제들이 다루어지며, 그 주제는 철학, 역사, 사회, 정치, 문학, 예술, 문화, 종교, 문명, 자연과학, 인간본성, 동서정신세계의 비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포괄적으로 다루어질 것입니다.
강좌특성
매 학기 새롭고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 설정- 학제간 통섭적 주제와 인문학적 ‘큰 물음’을 다룸
- 국내외 석학, 저명교수, 최고 전문가 초빙해 특강형식의 강좌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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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강의와 분반형태의 소형강의 동시 운영
- 강좌책임교수와 분반교수가 공동 운영
- 강의에서 특강 내용의 이론적 배경정리 및 토론, 글쓰기연습, 비판적 사고훈련 등 다룸
글로벌인문학
교과목 소개2012년 1학기부터 대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하기 위해 <글로벌인문학>이라는 강좌개설
– 지방대학 특성화사업(CK-1)지원(2017 ~ 2018년), 대학혁신지원사업 지원(2019 ~ 2021년 현재)
원광대에서는 2012년 1학기부터 대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하기 위해 <글로벌인문학>이라는 강좌를 제공하고 있으며, 특강과 분반토론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특강은 강좌책임교수가 각 주제영역의 국내외 석학, 저명교수, 전문가 등을 모시고 진행하며, 분반토론은 분반교수들이 특강의 내용에 대한 예습과 복습뿐만 아니라, 글쓰기 연습, 비판적 사고훈련, 서평작성 요령 등의 내용으로 진행합니다. 이 강좌는 하버드대학의 교양강좌 운영방식을 참조해 국내 대학에서 처음 시도하는 강좌입니다.
사업목적이 강좌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사회와 세계에 대한 포괄적 성찰, 공유가능한 인류 문명의 자산에 대한 사유체험, 과거와 미래, 전통과 역사에 대한 성찰적 전망,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논리력과 표현능력, 지구촌의 사람들과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소통할 수 있는 소통능력, 지구촌에서 인류애(humanitas)를 실현할 수 있는 실천능력 등을 계발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이를 위해 매 학기 새로운 하나의 대(大) 주제가 설정되고 그 아래 여러 가지 하부주제들이 다루어지며, 그 주제는 철학, 역사, 사회, 정치, 문학, 예술, 문화, 종교, 문명, 자연과학, 인간본성, 동서정신세계의 비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포괄적으로 다루어질 것입니다.
강좌특성
매 학기 새롭고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 설정- 학제간 통섭적 주제와 인문학적 ‘큰 물음’을 다룸
– 국내외 석학, 저명교수, 최고 전문가 초빙해 특강형식의 강좌운영– 국내 최초의 하버드식 강좌운영: 특강+분반토론
– 대형강의와 분반형태의 소형강의 동시 운영
– 강좌책임교수와 분반교수가 공동 운영
– 강의에서 특강 내용의 이론적 배경정리 및 토론, 글쓰기연습, 비판적 사고훈련 등 다룸
2021학년도 2학기 글로벌인문학 KOCW 강좌보기
교수진 소개
담당교수 : 남유선 교수님 이메일 : nys@wku.ac.kr
학력 : 원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학사
독일 퀼른(Koeln)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독일어 석사
독일 퀼른(Koeln)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독일어 박사
현재 : 인문대학 유럽문화학부
분반교수 : 이 영 교수님 이메일 : quellely0014@naver.com
학력 : 원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원광대학교 독어교육 석사
충남대학교 박사과정수료
분반교수 : 한인철 교수님 이메일 : in-chul2790@hanmail.net
학력 :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원광대 문예창작학 석사
원광대 문예창작학 박사 과정
분반교수 : 신현선 교수님 이메일 : kokesi77@naver.com
학력 : 전북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졸업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 일어교육전공 석사
전북대학교 일어일문학과 박사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14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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