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9

^^알라딘: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한국유교의 종교적 성찰과 여성주의 , 이은선 2009



알라딘: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 한국유교의 종교적 성찰과 여성주의 
이은선 (지은이)모시는사람들2009-01-15








































Sales Point : 32

10.0100자평(0)리뷰(4)

352쪽
책소개
유교와 기독교 그리고 페미니즘의 연결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 온 저자가 유교의 성인(聖人)과 기독교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특히 유교적 ‘여성선비’가 어떻게 해체하고 재건할 수 있을지를 탐구한 연구서다. 특히 멀어만 보이는 ‘유교’와 ‘페미니즘’이 ‘여성선비’라는 신조어 속에서 어떻게 용해되며, 그런 가운데 ‘종교로서의 유교’의 특장이 현대 사회와 현대인에게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여기서 화두로 제시된 ‘초월(超越)’은 저자가 유교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핵이라고 규정한 ‘세간적 초월의식’을 지칭한다. 이 세간적 초월의식이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적게 종교적이면서도 동시에 뛰어나게 궁극성과 초월성을 지시하는 또 다른 차원의 초월성”을 가장 훌륭하게 충족시킬 수 있음을 논한다.


목차


제1부 한국 종교문화사에 대한 여성주의적 탐구
제2부 조선시대 유교 종교성의 실례와 현대 여성주의적 조명
제3부 탈 세속화 시대에서의 유교와 유교 종교성


책속에서


18세기에서 조선 여성들의 삶의 유교 종법의 경직화가 가져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경제력의 상승과 함께 독서 인구가 확대되고 실용저인 학분의 확장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음을 알 수 있다. (중략)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단순히 세속적인 문명화 과정이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유교 여성들의 성화(聖化)의 과정으로 보고자 한다. 즉 여기에서야말로 진정으로 조선시대 유교 영성과 종교성이 잘 드러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82~83쪽)  접기

종교의 궁극적 지향점이 이렇게 자아를 극복하고 세계와 하나가 되고 궁극 안에서 자기를 포기하는 일이라면 여기에 유교 여성들의 봉제사 접빈객의 영성이야말로 그것과 다르지 않다. (중략) 이렇게 극진히 봉제사와 접빈객을 실천하면서 닦아온 유교 여성들의 공경심과 성실성은 삶의 전 영역으로 파급되었고, 이것은 곧 삶의 전 과정을 성화하려는 노력이 되엇 어느 남성 선비의 그것보다도 더 진실되게 유교 종교성을 진실하게 실현시킨 모습으로 보아야 한다.(186쪽)  접기

오늘날과 같은 물질주의와 개인주의, 이기적 현세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유교는 우리에게 가장 실감나게 다시 자신의 근원과 토대를 생각케 하고, 몸을 쓰게 하며, 자기를 넘어서서 함께함을 생각하도록 하는 전통이다. (중략) 한국 기독교회는 유교 예배의 전통을 받아들여서 최고 궁극자인 하느님에 대한 예배와 더불어 구체적인 몸의 조상에 대해서도 추모하고 감사하며, 정성을 다해 기리도록 할 수 있다.(256쪽)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은선 (지은이)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다. 이화여대에서 불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감리교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다가 스위스 바젤대학으로 가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바젤에서 신학박사(Dr. Theol) 학위를 받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성균관대 동양철학대학원에서 한국유교철학으로 철학박사학위(Ph.D.)를 받았다. 1988년부터 30년간 세종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지금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 ‘여성’, ‘종교’의 시각으로 유교적 언어와 기독교 언어를 함께 들어서 우리 삶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통합적으로 말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유교의 ‘聖人’과 기독교의 ‘그리스도’를 어떻게 한국 여성이 해체하고 다시 재건할 수 있을지를 탐구한다(聖性誠 여성통합학문연구 한국 信연구소).

1. 학력 및 경력

1) 이화여대 불문과 졸업(철학 부전공)
2) 감리교신학대학원 수학
3) 스위스 Basel대학 신학박사(Dr.Theol.)
4)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한국철학 철학박사(Ph.D)
5) 1988년 세종대학교 인문과학대학 교육학과 교수로 2018.2월년까지 만 30년 재직.
6) 현재 세종대 명예교수 및 <한국 信연구소> 대표

2. 주요경력

1) 세종대 교육학과 교수 및 교무처장
2)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 및 한국여성신학회 회장
3)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
4) 한나아렌트학회 회장
5) 문화체육관광부 공직자종교차별자문위원회 위원
6) 한국교육철학학회 운영이사 및 감사
7) 한국양명학회, 한국유교학회, 동양철학연구회 부회장
8) 생명평화마당 공동대표
8) 현재: 한국기독교협의회(NCCK) 화해와 통일위원회 위원,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성상임위원

3. 주요저술 및 논문

지난 30년간 종교와 철학, 교육과 여성 등의 분야에서 통합학문적으로 활동하면서 100여편 이상의 논문과 10여권의 단독 저서 및 30여권의 공동저서를 저술하였다.
-<현대이후주의와 기독교(공저>), 다산서당, 1993
-<포스트모던 시대의 한국여성신학>, 분도출판사, 1997
-<한국교육철학의 새지평-聖性誠의 통합학문적 탐구>, 내일을여는책, 2000
-<유교, 기독교 그리고 페미니즘>, 지식산업사, 2003
-<한국 여성조직신학탐구-聖性誠의 여성신학>, 대한기독교서회, 2004
-<여성신학의 새로운 지평(공저)>, 여성신학사, 2006
-<종교성, 미래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공저)>, 학지사, 2007
-<동서 종교의 만남과 그 미래(공저)>,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08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한국 유교의 종교적 성찰과 여성주의>,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09
-<한나 아렌트와 세계사랑(공저)>, 인간사랑, 2009
-<나는 왜 어떻게 신학을 하는가?(공저)>, 대화문화아카데미, 2011
-<한국 生物여성영성의 신학-종교聖?여성性?정치誠의 한 몸 짜기>,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11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11
-<생물권 정치학 시대에서의 정치와 교육-유교와 한나 아렌트와의 대화 속에서>,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13.
-<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공저)>, 글항아리, 2013
-<생명과 평화를 여는 정의의 신학(공저)>, 동연, 2013
-<한류로 신학하기(공저)>, 동연, 2013
-<한국사회 정의바로세우기(공저)>, 세창미디어, 2015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16
-<묻는다, 이것이 공동체인가(공저)>, 동연, 2015
-<21세기 보편영성으로서의 誠과 孝(공저)>, 동연, 2016
-, SUNY series in Korean Studies, 2016
-<환상과 저항의 신학-이신(李信)의 슐리얼리즘 연구(공저)>, 동연, 2017
-<한국적 작은교회론(공저)>, 대한기독교서회, 2017
-<종교개혁500년, ‘以後’신학(공저)>,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17
-<세월호와 한국여성신학>, 동연, 2018
-<통합학문으로서의 한국교육철학>, 동연, 2018
-<3.1운동백주년과 한국종교개혁(공저)>,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19
-<3.1정신과 ‘以後’기독교(공저)>,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19 접기


최근작 : <3.1운동 백주년과 한국 종교개혁>,<세월호와 한국 여성신학>,<통합학문으로서의 한국 교육철학> … 총 2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은 유교와 기독교 그리고 페미니즘의 연결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 온 저자가 유교의 성인(聖人)과 기독교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특히 유교적 ‘여성선비’가 어떻게 해체하고 재건할 수 있을지를 탐구한 연구서다. 특히 멀어만 보이는 ‘유교’와 ‘페미니즘’이 ‘여성선비’라는 신조어 속에서 어떻게 용해되며, 그런 가운데 ‘종교로서의 유교’의 특장이 현대 사회와 현대인에게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여기서 화두로 제시된 ‘초월(超越)’은 저자가 유교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핵이라고 규정한 ‘세간적 초월의식’을 지칭한다. 이 세간적 초월의식이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적게 종교적이면서도 동시에 뛰어나게 궁극성과 초월성을 지시하는 또 다른 차원의 초월성”을 가장 훌륭하게 충족시킬 수 있음을 논구한다. 연구서이자 유교적 수양(修養)의 가능성과 입문 동기를 제시한다.

Ι.
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졌다.

제1부 “한국 종교문화사에 대한 여성주의적 탐구”는 먼저 한국에서의 여성들의 삶이 종교문화사적으로는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일별한다. 본격적으로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에 끼친 유교 종교성의 특질을 살피고 여성들에게 체화된 유교 예(禮) 실행의 종교적 의미를 밝힌다.

제2부 “조선시대 유교 종교성의 실례와 현대 여성주의적 조명”에서는 1부에서 총론적으로 살펴본 유교 종교성과 여성의 연관성을 18세기의 두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구명한다. 이 두 ‘여성선비’는 제한적이나마 여성들에게도 허용되었던 교육을 바탕으로 유교적 도와 예 실행의 일 주체로 나서며,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성리 철학과 도학’을 사고하고 자신들의 삶에서 실행하였음을 보였다.

제3부 “탈 세속화 시대에서의 유교와 유교 종교성”은 유교 전통과 기독교 신앙의 만남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제시해 줄 수 있는지를 탐색해 본 글들이다. 이는 저자가 현실에서 부닥치는 여러 상황들, 예컨대 호주제 폐지와 부부생활, 명절의 제사 지내기와 여성의 입장, 죽음에 대한 유교적 이해 등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유교의 종교성, 기독교와 유교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Ⅱ.
이 책은 ‘유교의 르네상스’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유학(儒學)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 조선의 유교, 유학이 오늘날 진정으로 의미 있는 학문, 종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유교와 기독교, 유교와 여성과의 대화는 필수사항이라는 저자의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문제에 답하기 위하여 두 ‘여성선비’의 삶과 사상을 통해 유교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고 있다.

‘여성선비’라는 말은 모순형용처럼 들린다. ‘선비’는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을 말하고, 또한 그 유교의 정통은 가부장주의라는 남성 위주의 사회 체제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로 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조선시대의 실제 역사 속에서 두 명의 여성선비를 발굴해 내고 그들의 삶과 사상을 통해서 유교가 여성에게 있어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가치 체계요 사상으로서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한 ‘여성성’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를 저자는 ‘유교의 세간적 초월의식’에서 찾아 내고, 그것이 ‘유교의 종교성’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종교성의 최소화와 궁극성과 초월성에 대한 갈구를 동시에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유교가 기여할 수 있는 바라고 주장한다.

Ⅲ.
저자는 여성의 몸이 ‘생산’에 매인 시대로부터 해방되고, ‘성’의 차에 따른 사회적 역할의 차이가 없어지는 지금이야말로 “유교적 예화와 성화에 대한 자각을 서구적 주체성의 의식과 여성주의로 다듬어서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할 수 있는 성찰의 힘으로 넓혀 나갈(205쪽)” 때라고 말한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의 삶이 더 추락할 수 없을 것 같은 물질주의의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고, “그래서 모든 존재가 단지 교환가치로 전환되고 찰나적인 것으로 화해 버리는” 이 시대에 ‘유교적 여성’의 성실성과 공경의 영성이 우리에게 다시 믿음과 희망의 근거를 제시해 준다고 말한다. 접기


평점분포

10.0


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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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여권신장 

인류의 역사를 발전지향적 단계별로 구분해 볼때 近代라는 개념은 기존의 고,중세에 비해서 물질적인 발전이 기하급수적으로 상향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각종 문명의 이기로 인해 인류는 불과 몇백년사이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문명화를 이루면서 수천년을 살아온 인류의 삶을 무색하게 하였다. 이러한 물질적인 발전과 더불어 우리가 지켜봐야 하는 것은 바로 정신적인 면의 발전을 들 수 있다. 민주주의, 자유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남녀평등의 개념등 역시 물질적 발전에 못지 않게 엄청난 발전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近代化라는 대세속에 우리는 물질과 정신적인 양대축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왔고 지금도 그 변화는 진행중이다. 우리가 흔히 근대화라하면 바로 서구화 그리고 기독교화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국권을 상실하고 타의에 의한 해방을 맞이한 대한민국의 경우는 특히 근대화라는 기치아래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치 그동안의 피해를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받기위해서 말이다. 외형적으로 한강의 기적을 낳은 경제적인 발전은 차치하더라도 정신적, 제도적, 문화적인 면에서도 이 땅에 세워졌던 그 어떤 국가라는 개념보다도 확고한 위치에 올라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우리가 여전히 믿고 있는 하나의 종교같은 초월성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극히 없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이제 근대화를 완성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봐서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특히 남녀 평등의 문제(물론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패미니스트들도 있지만)는 과거 이나라의 정서적 기둥인 유교(성리학)사상으로 뭉쳐있던 시대에 비해선 상당한 발전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철저한 근대화의 영향으로 유교같은 낡은 사상의 가치가 부정되고 서구화, 기독화의 정서에 맞는 여성운동이 진정한 근대화의 축으로 인식되었고 또한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책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는 지금 우리가 이룩한 근대화라는 작업의 진행과정이 올바른 도구로 성립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준다. 특히 유교(성리학)에 대한 그동안 부정적인 생각들 사회발전과 여권신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에 대해서 다시금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고 볼 수 있다.

비록 필자는 감리신학대학원을 나온 기독교인이지자 확고한 패미니스트이지만 유교에 대한 생각을 기존의 여권신장운동론자들과는 사뭇 르게 접근하고 있다. 이 책은 유교를 종교로 인정하고 종교의 궁극인 초월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선 영,정조시대 2명의 여성학자를 통해서 유교가 종교로서의 역활을 충실히 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또한 여성주의, 여권신장운동에서 유교가 그 기본 버팀목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책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동안 우리 여성들의 발목을 잡은 유교사상이 어떻게 여권신장의 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필자는 종교를 통해서 궁극적인 초월에 이를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여권을 제고 시키는 방편이라고 본다. 기독교가 그렇듯이 유교에서도 종교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종교성이란 다름 아닌 聖人之道로 규정되는 일련의 정신적 수행을 뜻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성선비학자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학문세계를 통해 성인지도의 길은 철저한 자기수행과정을 통해서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했던 것이다. 유교의 가장 근본적인 정신인 修身에서 齊家 治國 平天下에 이르는 과정을 스스로 보여 주고 있다. 즉 자신의 몸을 통해서 수도자의 고행과 같은 의미의 봉제사와 접빈객을 통한 유교 종교성의 초월을 몸소 실천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근대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뿌리인 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나 깊이 각이되어 있었다. 특히 여성의 경우 한집안의 딸, 한남자의 아내, 자식의 어머니라는 삼중고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마치 여성운동이나 여권신장을 주창하는 이들에겐 철절히 배척되어야 하는 중세의 산물로 여겨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대화라는 개념속에 숨겨져 있는 서구화와 기독교화의 몰이해로 인한 우리 전통의 말살을 불러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독교의 예배과정과 유교의 봉제사는 그 형식면에서 차이가 있을뿐이라고 생각된다. 예배를 통한 초월에 대한 감사의 표시와 봉제사를 통한 조상의 은덕에 대한 감사는 그 궁극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는 없다고 본다. 단지 유교의 종교성은 내면적인 자기성찰에 그 주안점을 두고 있을 뿐이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서 지금 여성운동을 주창하는 이들이 마치 근대화의 화신인양하는 자세에 대한 실랄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결국 그 집단의 고유정신을 밑바탕으로 외래사상과의 올바른 접목만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바람직한 이정표를 제시해 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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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향 2009-02-1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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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유교적 영향이 사회 곳곳에 남아숨을쉬고 있다. 유교의 예가 여성주의적 실천과 만나기 위해 변화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것 같다. 이 책은 유교와 기독교 그리고 페미니즘의 연결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 온 저자가 유교의 성인[聖人]과 기독교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특히 유교적 ‘여성선비’가 어떻게 해체하고 재건할 수 있을지를 탐구한 연구서다. 먼저, ‘유교의 세간적 초월의식’에서 찾아 내고, 그것이 ‘유교의 종교성과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규명해 간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는 개인적 차원에서부터 “백성들을 예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정치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공자가 말하는 예는 사회,문화적 존재인 인간의 삶 전체를 조직하는 유교의 중요한 가치임에 틀림없다.

’페미니즘이 공동체주의와 많은 전제들을 공유하긴 하지만, 이들의 처방을 수락하기 어려운 것은 이들이 제안하는 과거 전통이나 혹은 현재 우리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이해, 전승된 관습이나 규범, 그 어느 것도 여성들이 의지할 수 없는 것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의 권리는 “우리의 공통적인 인간성에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이해로부터 도출된다. 특히 이 책은 조선시대의 실제 역사 속에서 조선 영,정조시대에 살았던 '임윤지당'과 조선후기 정조,순조시대를 살았던 '강정일당'이라는 두 명의 여성선비를 발굴해 내고 그들의 삶과 사상을 통해서 접근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두 여성선비의 공통점은 강정일당(姜靜一堂)은 각고의 수양과 심오한 학문 그리고 도덕적 실천을 훌륭한 문장으로 남긴 조선 시대 여성 성리학자이며 문인이었다는 점이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닦음으로써 기존의 남성위주의 교육체계에서도 도전을 보여주고 있다.

정일당은 가난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온갖 불행을 겪고 인고의 삶을 살면서도 학문을 닦고 자아를 실현했다. 정일당은 가정에서 여성의 직분을 다하면서도, 심성을 수양하고 진리를 탐구하여 성리학의 오묘한 이치를 터득하고, 순수하고도 편안한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 정일당은 임윤지당을 존경하여 "하늘에서 받은 성품은 남녀의 차이가 있는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여성이지만 성인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음을 늘 주장하였고 여성으로서 그 기대에 맞게 대항한것은 아니지만 아주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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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2009-02-1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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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유교하면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단어 부터 떠오르는 내게, 유교를 하나의 종교로 보는 관점은 매우 생소하였다. 인(仁)을 최고 이념으로 삼아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삼는 하나의 윤리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우기, 유교사상에 대해 솔직히 나는, 대한민국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막연한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조선 시대 여성들의 삶은 유교 전통 아래, 그야말로 "인고의 세월" 그 자체로 인식되었다. 오죽하면, 시집가면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겠는가! 유교 가부장주의 아래 우리 여성의 삶, 그 중에서도 특히 며느리/아내/아녀자로서의 삶은 그야 말로 '문서 없는 종'에 다름 아니라는게 나의 오랜 고정 관념이었다.

이 책은, 제일 먼저 위와 같은 나의 고정 관념들에 물음표를 던지고,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을 통해, 그리고 종교라는 다소 생소한 틀을 통해 한국 여성의 삶을 돌아 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아주 멀게는, 원시 샤머니즘의 무(巫)교에서 부터, 삼국 시대 불교, 그리고 가깝게는 조선 시대 유교에 이르는 긴 시간과 공간의 광대한 역사적 스펙트럼 속에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난 듯 흥미롭게 이야기가 펼쳐 진다.

특히 조선 시대 유교의 종교성과 그것이 여성의 삶에 미친 영향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구체적으로 18세기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삶을 통해, 마치 한 편의 사극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림 처럼 생생하게 여인의 삶을 반추 한다. 한 시대의 고통과 성과를 보다 장구한 시간과 포괄적인 공간에서 살피고 있는 점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 한마디로 스케일이 불록버스터 영화 같다.

어느 부분에서는 저자의 상상과 비약이 조금 지나친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만,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또 결국에는 생각대로 발전하고 이루어 지므로, 저자의 이와 같은 시도는 매우 의미 있는 성과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역사는 항상 어떻게 의미 부여를 하기느냐에 따라 180도 새롭게 재조명될 수 있으며, 역사에 기대어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 역시 후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처럼 한계를 약간 넘은 듯한 저자의 새로운 역사유추, 그리고 생각과 발상의 전환은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준다. 또한 부정 보다는 긍적적인 삶의 요소를 보려는 저자의 시각과 가치관 역시 매우 마음에 들었다. 저자의 말 대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자의 삶은 서로 다르긴 하지만, 나름대로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삶의 제약과 조건들 아래서 시작'되는데, 과도하게 한계와 제약 조건들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정말이지 그 속에서 나름대로 한계를 극복하고 활동했던 소수의 사람들의 업적과 교훈은 간과 되기 쉬울 것 같다.

무엇보다 종교과 여성을 결부시켜 우리 역사를 볼 수 있었던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 현 시대 대한민국에서 여성과 종교가 연관지어져 이슈가 되었던 사건은 다름 아닌 국민 여배우이자 인기 톱탤런트 였던 최진실씨의 급작스런 죽음이었다. 신앙인으로서 그녀가 죽음을 스스로 택했다는 사실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무력감 내지는 실망감을 느꼈던 것 이다. 나 역시 이를 계기로 종교가 한 개인의 삶에 어느 정도 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종교가 인간 개인의 삶에 어느 정도의 깊이 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각 개인별 편차가 매우 심한 듯 하다. 한편 역으로 인간 개개인의 삶이 종교를 뛰어 넘어 어떻게 역사와 문화를 변화 시켜 나아가고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내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느 시대에나 인간 지각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상적이고 영적인 세계의 가치를 믿고 성숙된 삶을 사는 초월자 적인 인간이 존재한다는 점 이다.

저자의 참신한 역사유추와 긍정의 힘, 그리고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고급스럽고 깔끔한 책의 편집과 구성이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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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lee75 2009-02-1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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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교를 통해 본 여성주의 

한국 유교에서 여성주의를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 참 낯설다. 왜냐하면 유교하면 남성중심주의적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남존여비(男尊女卑)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여성주의(페미니즘)는 서양에서 인간 자신에 대한 자각과 이성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계몽주의가 발달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확산하면서 여성의 권익을 찾기 위한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동양과 마찬가지로 서양 역시 그 이전의 역사를 보면 남성 중심으로 여성을 억압해왔고, 그것을 종교적, 제도적, 윤리적 장치를 통해 공고히 다져왔다. 따라서 이것에 반하여 일어난 여성주의는 당연히 전통적인 가치와 제도, 윤리 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물신주의가 결합되면서 여성운동이 여성의 모성(母性)을 부정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부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저자는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목표도 우리 공동체의 삶을 더욱 더 바람직한 인간적인 삶으로 이끄는 것’(p.166)이라고 말하고, 여성운동이 그 본질적 가치를 찾는 길은 ‘여성과 여성의 몸과 여성 주체성의 신성한 차원을 다시 회복하’(p.167)는 것에 있으며, 이는 결국 ‘세속화’를 넘어선 ‘종교적’ 가치를 지니는 ‘영적 혁명’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 ‘영적 혁명’의 바탕을 한국의 유교에서 찾고 있다.

과연 유교는 종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 저자는 ‘오늘날 현대 종교현상학의 종교 이해는 어떤 구체적인 인격신적인 신에 대한 믿음이나 성직자 체계의 유무 등을 종교의 핵심으로 보지 않고 대신 삶의 진행과정에서 경험되는 성(聖)과 속(俗)에 대한 구별 의식을 그 핵으로 본다’(p27)라고 하여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성인지도(聖人之道)를 추구하는 유교도 역시 종교의 하나로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모두 알다시피 유교는 춘추시대에 활동한 공자로부터 시작되었다. 공자는 인간의 가장 큰 덕목으로 인(仁)을 주장했다. 인은 그 글자대로 풀자면 두 사람(二人)을 뜻한다. 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서로 관계를 맺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윤리와 도덕이 필요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유교는 원래부터 인간의 문제에 착안하였고 또한 공동체적 가치를 주창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주로 논의하는 유학은 북송의 정이천과 정명도 형제, 주돈이, 장재 등에 의해 발전하고 남송의 주희에 의해 완성된 성리학(성리학)을 말하고 있다.

도학(道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성리학은 그 이전의 유학에 비해 더욱 더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리학에서 하늘(天)이란 존재는 완전무결하며 이 세상의 가장 본원적 원리인 이(理)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 이가 각자 사람에게 부여된 것이 성(性)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성이 도덕적 원리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한다. 따라서 성리학에서는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자각하고 그것이 더럽혀 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사명이었으며, 이를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하였다. 인의예지의 덕성은 곧 인간 사회의 덕목이다. 즉 유교에서 말하는 수행 방법이란 공동체 생활 속에서 그 덕목을 구현하는 것으로서, 성(聖)과 속(俗)이 분리 되어 있지 않다.

공자는 자신의 학문의 법통을 주나라에서 찾았다. 주나라는 이른바 ‘종법(宗法)’에 근간을 둔 제도를 운영하였다. 종법이란 한 집안을 장자인 남성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국가 운영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종통(宗統)을 세우는 것이 우선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 제도를 이은 유교를 받아들인 조선도 역시 종법 질서를 따랐으며, 그 결과로 남성 중심적이었고, 여성은 종속적 지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가 생각하기 쉬운 것처럼 여성이 단순히 종속적 위치에 만족하고 가정 내에서만 머무르는 존재였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써 영, 정조 연간에 생존했던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이라는 두 여성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비록 규중에 갇혀있는 여성의 몸이었지만, 학문을 연마하고 도덕을 수양하여 당시 남성도 이르기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고, 이들은 며느리, 아내, 어머니, 종부로서 역할을 다하여 모든 이들이 존경을 받았고,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삶이 ‘매우 역동적이고 책임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주체적으로 살았다’(p.182)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적 개념으로 가정을 사적 공간으로 여기지만, 조선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여성들은 비록 가정에 머물렀지만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을 통해서 공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하면 당시 가정은 사적 공간이 아니라 공적 영역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여성은 가정 내에 머물면서도 공적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오늘날 여성주의가 과도하게 사적 영역에 몰두함으로써 잃어버리고 있는 공적 영역의 일을 다시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p.185)고 말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여성 여성주의가 인간성 상실과 생태적 위기, 과도한 경쟁 원리의 적용과 주관주의에 함몰되는 위험 앞에서 다시 ‘보살핌’의 윤리를 찾고, ‘어머니 되어 주기’의 의미를 찾는다면, 바로 한국 유교 전통의 여성들이야말로 참된 생명의 배려자와 살림꾼으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p187)고 말하고 있다.

또 ‘오늘날 한국 여성들이 나가야 할 길은 유교적 예화와 성화에 대한 자각을 서구적 주체성의 의식과 여성주의로 다듬어서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할 수 있는 성찰의 힘으로 넓혀 나가’(p.205)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적 여성주의’를 완성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여성주의가 과연 보편적인 여성 운동가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인가 하는 것은 알 수 없지만, 현재 처해 있는 인간과 여성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써 참고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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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 2009-02-1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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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전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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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리뷰
종이책a6******|2009.02.20|신고/차단
10
얼마전 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1)아주 행복하다. (2)보통이다. (3)불행하다. 순으로 손을 들게 했었는데 내가 볼땐 별 문제 없이 행복할 것 같은 30대 중반의 아이 엄마들이 (3)불행하다. 에 손을 많이 들어서 의아해했다. 예배가 끝난후 그분들 중에 한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유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 점도 있는 것 같아." 그때 나는 살면서 한번도 유교에 관해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순간 유교에 관해 좀더 깊게 알고 싶어졌는데 이책을 통해 유교라는 것이 여성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됐는지 많이 알게 됐다.
 
충, 효, 열의 사상의 유교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우리나라는 깊은 유교화 과정을 겪었다. 사실 유교가 타종교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
예(禮)에 관한 사상이다. 예는 인을 근본으로 하여 우리들의 구체적인 행동을 현실의 제도와 행위규범으로 규정하는 것인데 유교의 예는 지난 역사의 실행에서 많은 경직과 폐단을 불러왔고 특히 여성들과의 관계에서는 심하게 부정적인 측면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유교가 종교성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잘 언급되지 않았다.

2부에 나오는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은 조선시대의 여성 성리학자인데 남성만이 학문을 닦고 관직에 오를수 있던 시대에 뭇 남성들보다 학문의 열정이 더 컸고, 다양한 문체의 글을 남겼다. 윤지당은 "즐거움은 배움으로 말미암은 후에 얻어지는 것이지, 배우지 않으면 그 즐거움을 얻을 수 없다." 라는 안연의 글을 좋아할만큼 배움에 대한 열의가 강했고, 배움에는 결코 여성도 예외가 될수 없다며 여성들의 삶의 임무도 남성들과 다르지 않게 성인지도의 길을 가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정일당은 집안이 가난하였으나 남편에게 간곡히 성인지도의 학문을 권면하였고 그말에 감동한 남편이 학문에 뜻을 두게 되자 자신도 곁에서 바느질 하면서 남편의 글소를 듣고 더불어 공부를 했다. 그에게 있어 학문의 목표는 결코 입신양명이 아니였고, 남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의 천명에
대한 깊은 순종이었고 하늘과 땅에 대한 떳떳함이 었다.

긍정적이기 보단 부정적으로 유교를 생각했었고, 유교안에 여성들의 삶이 억압되고 억눌려 힘든면만 보였는데 이책으로 인해 유교의 종교성, 그것은 자기 성찰에 제일 큰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을 통해 감동받은 부분임윤지당 - 사람을 대하고 남과 교제할 때는 한결같이 화목하고 너그럽게 했으며, 남에게 베풀 때는 아끼거나 바라는 마음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분수에 지나치게 하는 법도 없었다고 한다. 입으로 하는 말에도 흉이 될 것이 없어서 비록 노비에게도 일찍이 나쁜 말을 쓰는 법이 없었다고  전한다.
남의 과오를 보면 면밀히 여기도 반드시 잘 타일러 정도에 맞도록 한 후에야 그만두었다고 한다.강정일당 - 아홉명의 자녀가 모두 일찍 죽고 3주야를 굶어도 원망하거나 근심하는 마음이 없이 오히려 그러한 불행을 만날 때마다 남편을 더욱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그것은 극단적인 환경과 혈육이 전멸하는 비극 속에서도 스스로의 도리를 다할 뿐 결코 명을 탁하지 않고 현실에 맛서서 자기 성실을 다하는 심원한 종교적 수행자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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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ks*****|2009.02.13|신고/차단
10
인류의 역사를 발전지향적 단계별로 구분해 볼때 近代라는 개념은 기존의 고,중세에 비해서 물질적인 발전이 기하급수적으로 상향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각종 문명의 이기로 인해 인류는 불과 몇백년사이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문명화를 이루면서 수천년을 살아온 인류의 삶을 무색하게 하였다. 이러한 물질적인 발전과 더불어 우리가 지켜봐야 하는 것은 바로 정신적인 면의 발전을 들 수 있다. 민주주의, 자유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남녀평등의 개념등 역시 물질적 발전에 못지 않게 엄청난 발전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近代化라는 대세속에 우리는 물질과 정신적인 양대축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왔고 지금도 그 변화는 진행중이다. 우리가 흔히 근대화라하면 바로 서구화 그리고 기독교화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국권을 상실하고 타의에 의한 해방을 맞이한 대한민국의 경우는 특히 근대화라는 기치아래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치 그동안의 피해를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받기위해서 말이다. 외형적으로 한강의 기적을 낳은 경제적인 발전은 차치하더라도 정신적, 제도적, 문화적인 면에서도 이 땅에 세워졌던 그 어떤 국가라는 개념보다도 확고한 위치에 올라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우리가 여전히 믿고 있는 하나의 종교같은 초월성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극히 없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이제 근대화를 완성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봐서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특히 남녀 평등의 문제(물론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패미니스트들도 있지만)는 과거 이나라의 정서적 기둥인 유교(성리학)사상으로 뭉쳐있던 시대에 비해선 상당한 발전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철저한 근대화의 영향으로 유교같은 낡은 사상의 가치가 부정되고 서구화, 기독화의 정서에 맞는 여성운동이 진정한 근대화의 축으로 인식되었고 또한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책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는 지금 우리가 이룩한 근대화라는 작업의 진행과정이 올바른 도구로 성립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준다. 특히 유교(성리학)에 대한 그동안 부정적인 생각들 사회발전과 여권신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에 대해서 다시금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고 볼 수 있다.
 
비록 필자는 감리신학대학원을 나온 기독교인이지자 확고한 패미니스트이지만 유교에 대한 생각을 기존의 여권신장운동론자들과는 사뭇 르게 접근하고 있다. 이 책은 유교를 종교로 인정하고 종교의 궁극인 초월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선 영,정조시대 2명의 여성학자를 통해서 유교가 종교로서의 역활을 충실히 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또한 여성주의, 여권신장운동에서 유교가 그 기본 버팀목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책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동안 우리 여성들의 발목을 잡은 유교사상이 어떻게 여권신장의 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필자는 종교를 통해서 궁극적인 초월에 이를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여권을 제고 시키는 방편이라고 본다. 기독교가 그렇듯이 유교에서도 종교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종교성이란 다름 아닌 聖人之道로 규정되는 일련의 정신적 수행을 뜻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성선비학자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학문세계를 통해 성인지도의 길은 철저한 자기수행과정을 통해서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했던 것이다. 유교의 가장 근본적인 정신인 修身에서 齊家 治國 平天下에 이르는 과정을 스스로 보여 주고 있다. 즉 자신의 몸을 통해서 수도자의 고행과 같은 의미의 봉제사와 접빈객을 통한 유교 종교성의 초월을 몸소 실천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근대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뿌리인 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나 깊이 각이되어 있었다. 특히 여성의 경우 한집안의 딸, 한남자의 아내, 자식의 어머니라는 삼중고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마치 여성운동이나 여권신장을 주창하는 이들에겐 철절히 배척되어야 하는 중세의 산물로 여겨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대화라는 개념속에 숨겨져 있는 서구화와 기독교화의 몰이해로 인한 우리 전통의 말살을 불러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독교의 예배과정과 유교의 봉제사는 그 형식면에서 차이가 있을뿐이라고 생각된다. 예배를 통한 초월에 대한 감사의 표시와 봉제사를 통한 조상의 은덕에 대한 감사는 그 궁극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는 없다고 본다. 단지 유교의 종교성은 내면적인 자기성찰에 그 주안점을 두고 있을 뿐이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서 지금 여성운동을 주창하는 이들이 마치 근대화의 화신인양하는 자세에 대한 실랄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결국 그 집단의 고유정신을 밑바탕으로 외래사상과의 올바른 접목만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바람직한 이정표를 제시해 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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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de******|2009.02.11|신고/차단
10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얼마 전 설이 지났다. 이번 명절도 음식 장만하랴 손님 치르랴 바쁘고 힘든 날들이었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인터넷엔 명절로부터 야기된 여러 가지 갈등의 이야기들이 유난히 많이 떠돈다. 명절 증후군. 명절 이혼. 가족관계도 시류를 따라가는 것일까? 이혼이니 별거니 하는 말들.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는 며느리 이야기가 이제는 흉도 아닌 세상이 되었다.

나는 양성론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페미니스트도 남성 우월론자도 물론 아니다. 시집와서 장손며느리로 산지 어언 20년이다. 시아버지 제사는 물론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제사에 친정아버지 제사까지, 늘 빠듯한 살림에 기제사에 명절까지 챙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철없는 새댁 때는 이런 집안 행사가 두통을 앓을 정도로 부담스럽고 버거웠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도 나이를 먹고 보니 제사니 명절이니 하는 집안 행사들이 피하고 싶은 행사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당연히, 힘은 든다. 그러나 제사와 명절 때나 되어야 아이도 나도 남편도 그리고 다른 가족들도 서로 집안 식구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제사나 명절 때에나 우리 집안에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시고 아저씨뻘의 5촌도 있고 삼촌도 있다는 것을 아이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늘 조용하던 집안에 사람이 들끓고 웃음소리도 들리고 제법 사람 사는 집 같은 냄새가 풍기면 아, 제삿날이거나 명절이구나 하고 한번 쯤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남편이 장손이니 아들도 당연히 장손이다. 나는 아들에게 늘 이야기 한다. 제사나 명절이 없으면 가족이라는 끈끈함을 대체 언제 느껴 보겠느냐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우상숭배도 아니고 미신도 아니라고.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을 추억하는 일이고 자신의 뿌리에 대해 확인해보는 일이라고. 그 일을 노동이라고 생각하면 한 없이 힘들고 싫은 일이겠지만 무슨 일이든 누군가 즐거우려면 어차피 누군가는 뒤에서 거들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제사나 명절에서의 주부의 역할을 나름대로는 가족의 즐거움을 위해서 한 때 기꺼이 하는 봉사라고 생각한다. 힘이 안 든다면 거짓말이다. 다만, 그 힘듦을 보람과 즐거움으로 상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가진 내가 유교전통에 꽤나 근접한 사고를 가진 보수주의자였다는 사실을 비로소 확인한다. 이 책에서 조명하고 있는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삶은 자칫 우리가 이미 배운바 대로 조선시대의 엄격한 가부장제도와 사회 관습에 얽매여 있던 조선 여인의 삶을 미화한 것처럼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의 삶이야말로 유교 종교성의 핵인 성인지도의 추구가 여성의 몸과 마음을 통해서 구현된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임윤지당은 조선 후기 영. 정조 시대에 원주에서 살았던 여성 성리학자이다. 임윤지당은 어려서부터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했던 오빠 임성주로부터 유교경전과 역사책을 학습하였다. 성장하여 19세 때에 신광유와 결혼하였으나 결혼한 지 8년 만에 남편이 죽었으므로 28살의 나이로 과부가 되어 시동생 형제들과 한 집안에서 살았다. 양가의 어머니들을 효성을 다 해서 모셨고 47세 때는 이미 집안의 큰 어른이 되어 제사를 받들고 손님 접대하고 일가친척을 대하고 모든 가사를 처리하면서도 밤에는 늦게까지 학문에 몰두하는 생활을 하며 자신의 독서와 저서 활동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의 호 윤지당은 오빠가 지어준 것이다. 임윤지당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다양한 문체의 글을 남겼는데 일생 동안 저술한 글을 수록한 문집인 [윤지당유고]는 같은 시기의 여성문집들과는 달리 문학에 속하는 시문은 드물고 학술적인 논문이거나 경전해석이 주류라는 점이 특징이다.

강정일당은 임윤지당 보다 50여년 후인 영조 때의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매우 조신하여 보는 사람이 혀를 찰 지경이었다고 하는데 윤광연과 결혼한 후 학문에 힘 쓸 수 없도록 집안이 가난하였으나 남편에게 간곡히 성인지도의 학문을 권면하였고 그 말에 감동한 남편이 학문에 뜻을 두게 되자 자신도 곁에서 삯바느질을 하면서 남편의 글소리를 듣고 더불어 공부를 하였다. 가난한 환경과 허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각고의 노력으로 학문에 정진하여 [문답편]과 [언행록]등 원래 10여권의 저술을 하였으나 모두 유실되었고 사후 남편 윤광연이 낸 유고문집인 [정일당유고]만 전한다. 문집에는 남편 윤광연을 대신하여 쓴 代夫子作의 글이 많다. 대작은 한문학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글쓰기 형태이지만 조선시대 여성작가 중에서 그런 글을 남긴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정일당 문집에는 대부자작이 엄연하게 대부자작임을 밝힌 채 기록되어 있어 남편을 대신하여 썼으나 정일당의 저술로 인정받고 있다.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은 남녀의 차이를 본질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여성도 노력을 통해 참다운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실천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리학적 남녀평등사상을 이어받아 나름의 성리사상을 펼치며 자신의 삶에서 체화시켜 조선시대 유교 여성들의 진정한 종교성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런 저자의 주장은 유교가 왜 종교일 수 있는지를 이해해야 이해할 수 있다.
  
세계 3대 종교인 유교. 불교. 기독교를 보면 불교와 기독교는 성과 속의 구별이 확실한데 비해 유교는 성과 속의 구별이 없다. 바로 이 점이 유교를 종교로서 보다는 학문으로서만 이해하고 인정하는 생각을 만들었다. 하지만, 학문으로서의 유교적 교리나 종교로서의 유교적 교리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다만, 학문으로서의 유교적 교리가 지나치게 예법에 얽매여 많은 경직과 폐단을 가져왔으며 특히 여성들에게 극복할 수 없는 사회적 족쇄가 되었다.

종교로서의 유교. 유교적 관점에서의 성인지도의 특징은 천. 천명. 덕. 인 성. 예로 설명되는 초월의 내재화이다. 이런 유교의 종교적 특징인 초월의 내재화를 탁월하게 진행시킨 것이 성리학이며 성리학은 세상의 만물이 성의 씨앗을 담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한편, 성인지도의 방법론으로 성과 경과 효를 하는데 성인지도의 길에서 실질적으로 중요시 되는 덕목은 효이며 이 방식이 생사를 초월하고 죽음을 극복하는 길로 보았으므로 효에는 깊은 종교적이고도 초월적인 생명 존중과 시간의 연속성에 대한 관념을 담고 있다. 때문에 유교 상장례 중에서 제사는 후손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외경심을 가지고 제사를 받들면 우리의 감각으로는 알 수 없지만 그들과 통교할 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유교는 겉으로 보기에 종교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침묵의 종교’이지만 조상 제례 등을 통해서 유교에서 어떻게 생사가 관통되며, 생자와 사자가 소통하는 존재로서 이해하는가가 드러난다.

조선의 유교는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찾아볼 수 없도록 초월적인 천과 성의 진리를 자연과 사회내의 관계망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세상 만물인 속의 영역을 國, 家, 身으로 나누어 성의 영역으로 만들어가고자 했다. 불교의 성속 체계처럼 속의 영역을 접어두고 출가해서 성의 영역을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속된 영역이 성의 영역이 되도록 노력하고 속에서 평천하를 이루려니 가례의 실천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유교 전통의 가묘는 바로 인간 삶의 모든 일상이 이루어지는 가정이 사원이 되고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표현이다. 성직자 그룹을 구별하여 두는 것을 원치 않던 유교는 그 대신 집안의 남성 중에서 그 역할을 담당할 신분을 정했고 그가 바로 한 가정의 종통인 종손 또는 장손이며 가부장제의 핵심이다. 
현실에서 절도를 추구하는 예에 있어서 음과 양의 원리는 차별의 원리가 되었고 종법의 질서는 심한 남성 중심의 위계질서가 되었다. 성리학은 이런 한계가 있음에도 불고하고 포괄적으로 속의 영역을 끌어안으려 했으며 이 과정이 바로 가례의 생활화로 나타났다. 종교적 용어로 예화 또는 성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껏 학문적 의미로만 만나던 유교를 종교적 관점에서 더군다나 초월의 의미로 만나니 우선은 무척이나 이해하기가 어렵다. 늘 들어도 머리가 아픈 유교의 여러 교리들과 학자들의 이론은 이름만으로도 멀미가 나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읽는다면 왜 유교는 종교일 수밖에 없는가라는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책이다.
물론,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학문과 종교의 양 쪽을 모두 설명하는 저자의 해박함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어려운 것은 순전히 내 지식의 부족함 탓이다.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을 예로 들어 설명한 ‘제 2부 조선시대 유교 종교성이 실례와 현대 여성주의적 조명’을 읽고 ‘제1부 한국 종교문화사에 대한 여성주의적 탐구’를 다시 한 번 읽으니 드디어 길이 보였다. ‘제3부 탈세속화 시대에서의 유교와 유교 종교성’은 앞에서 느꼈던 저자에 대한 나름대로의 추측이 많이 뒤엉켜버리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무게 있는 주제를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께서도 명쾌한 결론은 내리지 못 한 거같다. 덕분에 여성주의 또는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정보를 많이 축적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주]에 있는 유교가 종교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옮기며 이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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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주]에서 피력한 
서구 종교학자들의 종교이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종교의 본질을 어떤 유일신에 대한 신앙이나 구별된 성직자 그룹의 유무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에 이들은 인간의 '궁극적 관심'이나 '의미 물음', '궁극적인 가치'에 대한 물음 등에 주목한다. 종교란 거기서 그 물음을 묻는 자아와 인간이 자신을 포함하여 세계의 상대성을 경험하고 그 상대성에 대한 '절대성'의 경험을 '거룩함'으로 이름 지으면서 지금 여기의 '속된 영역' 속에서 그 '거룩함'을 '전심을 다해서' 실현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말한다.
이런 의미라면 유교 聖人之道의 추구는 깊은 종교적 추구가 되는 바, 왜냐하면 거기에 유교의 궁극 관심이 잘 나타나 있고 유교는 바로 그 길의 완성을 통해서 이 세상에 도를 실현하려는 추구이기 때문이다.(page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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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ky****|2009.02.10|신고/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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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교에서 여성주의를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 참 낯설다. 왜냐하면 유교하면 남성중심주의적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남존여비(男尊女卑)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여성주의(페미니즘)는 서양에서 인간 자신에 대한 자각과 이성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계몽주의가 발달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확산하면서 여성의 권익을 찾기 위한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동양과 마찬가지로 서양 역시 그 이전의 역사를 보면 남성 중심으로 여성을 억압해왔고, 그것을 종교적, 제도적, 윤리적 장치를 통해 공고히 다져왔다. 따라서 이것에 반하여 일어난 여성주의는 당연히 전통적인 가치와 제도, 윤리 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물신주의가 결합되면서 여성운동이 여성의 모성(母性)을 부정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부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저자는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목표도 우리 공동체의 삶을 더욱 더 바람직한 인간적인 삶으로 이끄는 것’(p.166)이라고 말하고, 여성운동이 그 본질적 가치를 찾는 길은 ‘여성과 여성의 몸과 여성 주체성의 신성한 차원을 다시 회복하’(p.167)는 것에 있으며, 이는 결국 ‘세속화’를 넘어선 ‘종교적’ 가치를 지니는 ‘영적 혁명’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 ‘영적 혁명’의 바탕을 한국의 유교에서 찾고 있다.
과연 유교는 종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 저자는 ‘오늘날 현대 종교현상학의 종교 이해는 어떤 구체적인 인격신적인 신에 대한 믿음이나 성직자 체계의 유무 등을 종교의 핵심으로 보지 않고 대신 삶의 진행과정에서 경험되는 성(聖)과 속(俗)에 대한 구별 의식을 그 핵으로 본다’(p27)라고 하여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성인지도(聖人之道)를 추구하는 유교도 역시 종교의 하나로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모두 알다시피 유교는 춘추시대에 활동한 공자로부터 시작되었다. 공자는 인간의 가장 큰 덕목으로 인(仁)을 주장했다. 인은 그 글자대로 풀자면 두 사람(二人)을 뜻한다. 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서로 관계를 맺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윤리와 도덕이 필요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유교는 원래부터 인간의 문제에 착안하였고 또한 공동체적 가치를 주창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주로 논의하는 유학은 북송의 정이천과 정명도 형제, 주돈이, 장재 등에 의해 발전하고 남송의 주희에 의해 완성된 성리학(성리학)을 말하고 있다.

도학(道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성리학은 그 이전의 유학에 비해 더욱 더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리학에서 하늘(天)이란 존재는 완전무결하며 이 세상의 가장 본원적 원리인 이(理)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 이가 각자 사람에게 부여된 것이 성(性)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성이 도덕적 원리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한다. 따라서 성리학에서는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자각하고 그것이 더럽혀 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사명이었으며, 이를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하였다. 인의예지의 덕성은 곧 인간 사회의 덕목이다. 즉 유교에서 말하는 수행 방법이란 공동체 생활 속에서 그 덕목을 구현하는 것으로서, 성(聖)과 속(俗)이 분리 되어 있지 않다.

공자는 자신의 학문의 법통을 주나라에서 찾았다. 주나라는 이른바 ‘종법(宗法)’에 근간을 둔 제도를 운영하였다. 종법이란 한 집안을 장자인 남성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국가 운영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종통(宗統)을 세우는 것이 우선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 제도를 이은 유교를 받아들인 조선도 역시 종법 질서를 따랐으며, 그 결과로 남성 중심적이었고, 여성은 종속적 지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가 생각하기 쉬운 것처럼 여성이 단순히 종속적 위치에 만족하고 가정 내에서만 머무르는 존재였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써 영, 정조 연간에 생존했던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이라는 두 여성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비록 규중에 갇혀있는 여성의 몸이었지만, 학문을 연마하고 도덕을 수양하여 당시 남성도 이르기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고, 이들은 며느리, 아내, 어머니, 종부로서 역할을 다하여 모든 이들이 존경을 받았고,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삶이 ‘매우 역동적이고 책임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주체적으로 살았다’(p.182)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적 개념으로 가정을 사적 공간으로 여기지만, 조선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여성들은 비록 가정에 머물렀지만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을 통해서 공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하면 당시 가정은 사적 공간이 아니라 공적 영역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여성은 가정 내에 머물면서도 공적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오늘날 여성주의가 과도하게 사적 영역에 몰두함으로써 잃어버리고 있는 공적 영역의 일을 다시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p.185)고 말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여성 여성주의가 인간성 상실과 생태적 위기, 과도한 경쟁 원리의 적용과 주관주의에 함몰되는 위험 앞에서 다시 ‘보살핌’의 윤리를 찾고, ‘어머니 되어 주기’의 의미를 찾는다면, 바로 한국 유교 전통의 여성들이야말로 참된 생명의 배려자와 살림꾼으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p187)고 말하고 있다.

또 ‘오늘날 한국 여성들이 나가야 할 길은 유교적 예화와 성화에 대한 자각을 서구적 주체성의 의식과 여성주의로 다듬어서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할 수 있는 성찰의 힘으로 넓혀 나가’(p.205)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적 여성주의’를 완성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여성주의가 과연 보편적인 여성 운동가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인가 하는 것은 알 수 없지만, 현재 처해 있는 인간과 여성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써 참고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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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여성관의 재정립
자하선인
2009.02.13
https://m.blog.yes24.com/ilsimyes/post/1259783

[도서]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이은선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유교와 페미니즘, 언뜻 보면 아주 상반되고 서로 만나서는 안 될 단어들처럼 보인다. 실상은 그렇다. 유교처럼 여자 알기를 우습게 알았던 학문체계도 없다. 우리 사회가 유교문화권이다 보니 유교에서 바라보는 여성관에 대해서 우리는 은연중에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뭐 유교만 그런가? 지금까지 인류역사가 여성들을 그저 아기를 낳아주거나, 일해 주는 노예처럼, 더 나아가서는 완롱(玩弄:희롱하다, 마음대로 갖고 놀다의 의미)거리 정도로 밖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최근에 들어서야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사회참여도 많아져서 어느 정도 남녀 동권의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불평등한 남녀 관계의 모습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게 이 유교라고 하는 사유, 학문, 종교적 체계일 것이다.

이렇듯 물과 불과 같은 유교와 페미니즘의 접점에서 새로운 유교 사상의 해석과 여성에 대해서 탐구한 책이 나왔다. 바로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인데, 저자인 세종대 이은선 교수는 동서양을 넘나들며 또 인접학문을 두루 섭렵하였고 최근 들어, 유교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세속화의 높은 파고 속에서 침몰하고 있는 우리 삶에 ‘초월의 차원’을 제공할 수 있게 하고, 특히 페미니즘 시대에서 여성들이 삶의 공동체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리더로서 역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 깊이 천착하고 있다. 고 한다.

사실 책 첫머리부터 충격을 받았던 건 유교와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유교안의 여성주의라는 부분을 찾아내 서술한 저자의 놀라운 역량 때문이었다. 읽기기 만만치 않은 책이지만, 새로운 세계를 탐구한다는 기분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한국 종교문화사에 대한 여성 주의적 탐구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으며 우리 본래의 전통 신앙부터 해서 역사적 맥락과 불교와 유교의 종교문화사속에서 전개된 여성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의미 있는 건 유교보다는 불교를 수용했을 때 여성의 사회 참여율은 높은데, 불교 교리 내에는 여성의 성불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도가 쪽도 그렇고, 불교 승려들의 문화에서도 비구니(여승)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서 나이어린 비구(남자승려)에게 예를 갖춰야 하는 게 있다. 반면 유교는 ‘초월’에 관심을 가져서 유교의 이상적 인간의 모습인 성인이 되는데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않는데 그 실상은 여성을 가장 억압하는 모습을 드러난다는 것이다. 본래 유교는 누구든지 자신을 수양하여(克己復禮라든지 修己安人)성인이 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유교의 모습은 세계사 속에서 보면 비슷한 모습을 밝아 왔음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2부는 조선시대 유교 종교성의 실례와 현대 여성 주의적 조명이라는 제목에서 조선시대 두 여성 성리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두 사람은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으로 ,조선에도 여성 성리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에는 참 낯설게 느껴졌다. 여성이 관직에 오를 수 없던 조선조 이들은 남에게 보이거나 입신양명을 위한 성리학이 아닌 스스로 천명에 대한 순종으로 학문의 길을 정진하였다는 사실은 전통적 여성상에 대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가치체계를 재고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이들은 학문과 함께 봉제사 접빈객으로 대표되는(조상에서 제사지내고 손님 접대하는) 당시 조선조 여성들이 해야 할 일과 음식,바느질 등의 가사 등에도 최선을 다한 슈퍼 여성으로서 면모를 보여줬다. 이 두 여성 성리학자를 통해 조선조 성리학은 학문을 닦는 것은 남녀 모두에게 인간적 도리로서 부여된 일로 여기며 그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여성일지라도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주체성을 강조하였다.

기존의 일반적인 생각처럼 유교는 여성들의 삶은 종속적이고 억압적이었던 역할의 삶이 아니라 성인지도를 향한 주체성을 가지고 공적 영역에서 자신을 갈고 닦으며 가정의 모든 살림을 주관을 강조했고 이런 실증적 증거로 이 두 사람을 들었다.

제3부 유교적 종교성의 현대 여성주의적 조명 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해서 오늘날의 과도한 경쟁원리, 개인주의, 인간성 상실 속에서 보살핌의 원리-어머니의 마음(불가에서 이야기하는 대자대비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이 현대 여성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의 실질적 대안으로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이 만만하게 읽을 수는 없지만, 읽는 내내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가치관이 무너지는 지적인 즐거움을 만끽 하게 해주는 행복한 독서가 될 것이며, 이 세상을 사는 여성들에게 진정한 여성스러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줄 거라 생각한다. 여성이 바뀌면 남성도 바뀌고 세상이 바뀔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