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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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역은 인간존중, 인간완성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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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2017.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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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역>을 내놓은 김일부와 <정역> 연구의 대가인 학산 이정호가 추었던 영가무도춤




 <정역>(正易> 연구가인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무형유산학과 교수가 일부 김항의 <정역>은 유학으로 시작했으니 우리 민족 고유사상인 풍류도를 계승해 동방사상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이는 <정역>의 대가인 석학 학산 이정호(1913~2004)의 전집 13권 출간을 계기로 열린 학술발표회에서 나왔다. <정역>은 동양사상의 뿌리인 주나라 역인 주역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전환한 김일부(본명 김항·1826~1898)에 의해 제시된 새 시대의 역이다.




 한글학자(국어국문학)였던 학산은 해방 전후 김일부의 정역을 보고는 30살 무렵 자신의 행로를 철학으로 선회해 충남대 총장을 지내는 등 철학자로서 살면서도 평생 정역을 절차탁마했다.




 학산의 장남인 이동준(81)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제자이기도 한 최영성 교수는 <정역>에 대해 “문자에 담긴 심오한 의미에다 언외(言外)의 지취(旨趣)가 곁들인 미언(微言)의 결정체로 ‘압축된 비밀코드’ 같다는 비유가 지나치지 않아서 은미할수록 더 드러나는 것이 역설의 법칙이다”고 말했다.




 그는 정역의 후천개벽 사상이 한국의 민족종교의 성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이렇게 주장했다.

 “정역은 ‘지도(地道)’의 변화에 중점이 있다. ‘지축(地軸)’이 바로 서야 천지간의 잘못된 질서가 모두 바로잡힌다는 ‘정력정륜(正曆正倫)’이 그 기본 정신이다. 논리는 ‘가을의 도리’에 입각해 있다. ‘창조의 원리’보다 ‘변화의 원리’에 중점을 두고 미래상(未來像), 미래세계를 제시함으로써 이른바 ‘후천개벽(后天開闢)’ 사상의 선구적 구실을 하였다. 근대의 민족종교로는 동학(東學)을 비롯하여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 등이 있다. 지금은 없어진 보천교(普天敎)도 이 대열에 포한시킬 수 있다. <정역>은 이들 민족종교에게 이론적 토대의 하나가 되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근대 민족종교치고 <정역>과 사상적으로 연관 없는 것은 없다고 본다. 대개 19세기 중반 이래 민족종교가 잇달아 모습을 드러내면서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 그 중심에 우주의 변화에 따른 ‘후천변화론’이 있었다. 정역팔괘도를 보면 복희ㆍ문왕의 팔괘도와 괘의 배치가 다르다. 억음존양(抑陰尊陽)으로 상징되는 선천의 괘도로부터 조양율음(調陽律陰)을 상징하는 후천의 괘도로 바뀌어 있다. 이러한 것들이 근대 민족종교에서 말하는 ‘개벽사상’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고 본다.”




» <정역>을 내놓은 일부 김항





 그는 “근대 민족종교의 특징은 ‘민족 고유사상’을 모태로 한다는 점인데, 큰 틀에서 볼 때 우리 민족의 사상적 근간인 ‘풍류(風流)’의 정신으로 귀결된다”고 보았다.

 “정역의 성격을 놓고 ‘유불선합일지정(儒佛仙合一之精)’, 즉 유⋅ 불⋅ 선 삼교의 정수가 합일된 것으로 보는가 하면, ‘선진유학(先秦儒學)’의 전통을 이어 유교 본래의 오의(奧義)를 재천명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는 “근대 민족종교에서 <정역>의 내용을 중시하고 저자인 김항을 높이는 데에는 김항이 제시한 ‘선후천 변화의 원리’를 매우 중요하게 인식하였을 뿐만 아니라, 김항과 <정역>이 민족 고유사상의 맥을 계승한 것으로 보아 높이 평가하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또 김항의 <정역>의 뿌리가 유가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항은 <정역>의 첫머리 ‘십오일언(十五一言)’에서 유가의 도통(道統)을 밝혔다. <정역>이 공자와 유가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대역서£에서는 공자의 거룩함을 기리고, 공자와 맹자를 ‘만고의 성인’이라고 칭송하였다. 또 복희씨의 선천역(先天易)을 ‘초초지역(初初之易)’이라 하고, 자신의 <정역>을 ‘내래지역(來來之易)’이라 하여, <주역> 없이 <정역>이 나올 수 없음을 시사하였다.”




 하지만 김항의 학문과 사상은 유가에 그치지 않고 불가와 선가(仙家)까지 아우를 뿐 아니라, 그것을 넘어 한 차원 더 높은 곳에서 만나는 무언가 하나의 실체가 있다며 김항의 ‘무위시(无位詩)’를 예로 들었다.

 

 도내삼분리자연(道乃三分理自然) 도가 곧 셋으로 나뉨은 이치상 자연스러운 것

 사유사불우사선(斯儒斯佛又斯仙) 이에서 유교가 나오고 불교가 나오며 또 선도가 나오는 것을.

 유식일부진도차(誰識一夫眞蹈此) 뉘라서 알랴, 일부가 진정으로 이 도를 도습(蹈襲)한 줄을.

 무인즉수유인전(无人則守有人傳) 사람이 없으면 지킬 것이요 있거든 전해주리라.  

 

 또 김항이 유ㆍ불ㆍ선(도) 삼교에서의 중요 개념을 빌어 자신을 일컫는 명칭으로 사용한 점을 예로 들기도 했다.

 “‘대성칠원군(大聖七元君)’은 도교에서 북두칠성의 정령을 말하는 ‘대성북두칠원군(大聖北斗七元君)’이다. 또 금화정역의 세계를 불교에서 말하는 ‘용화세월(龍華歲月)’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용화미륵불이 출현하여 교화하는 후천의 세계를 말한다. 이를 다른 말로 ‘유리세계(琉璃世界)’라 하였다. 또 <정역>을 ‘정리현현진경(正理玄玄眞經)’이라 명명하기도 하였는데, ‘현현진경’이란 명칭에서 도교의 색채를 엿볼 수 있다. 여기에 ‘정리’ 두 글자를 덧붙여 유가적 성격을 가미한 것이다. 이를 보면 <정역>은 공자를 근본으로 하면서도 ‘유불선합일지정(儒佛仙合一之精)’을 넘어선 무위(无位)의 경지를 추구한 경전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면서도 최 교수는 의문을 제기한다. ‘어느 것이 김항의 학문 본령인가? 유교, 특히 역학이 본령인데 여기에다 불교와 선가 등의 사상을 수용하여 외연을 넓힌 것인가? 아니면 유ㆍ불ㆍ선을 넘어서는 재래의 사상체(思想體)가 그 본령인데,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역학에 관련된 저술만 세상에 남긴 것인가, 그도 아니면 뭔가 숨길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어서 그 실상과 실체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은 것인가?’.




 그는 김항의 주장이 너무 파격적인 것인데다, 이미 동학의 최제우(崔濟愚: 1824∼1864)가 좌도난정(左道亂正)의 죄목으로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21년뒤 <정역>을 완성한 김항은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또한 김항과 최제우가 같은 스승 아래서 공부한 사실도 밝혔다.




 “천도교 및 증산교, 김항의 후학들에게 전하는 바에 의하면, 최제우와 김항은 이운규의 문하에게 배웠다고 한다. 최제우와 김항의 교유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현재로선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至氣今至願爲大降,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라는 동학의 주문이 이운규에게서 나왔다고 하는 세전(世傳)의 말들을 사실로 받아들일 때, 이운규가 이들 세 계열의 문인ㆍ후학들에게 끼친 영향이 매우 컸고, 또 그들 사이의 사상적 연관성이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비록 이들이 각각 ‘선(仙)’과 ‘유(儒)’와 ‘불(佛)’을 맡아 그 방면으로 발전시켜 나갔지만, 사상적 종교적 모체(母體)는 하나였을 것이다. 그 ‘모체’의 실상을 이운규가 문인ㆍ후학들에게 전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점이다.”




 최 교수는 “동학과 정역과 남학은 미래세계를 예시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후천사상과 개벽사상 사이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크게 보면 하나로 통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그린 미래세계 속에는 현세에 대한 비판의 논리가 함께 들어 있으므로, <정역>에서는 불완전, 불합리, 불평등한 현실세계와 미래의 이상세계를 미제(未濟)와 기제(旣濟), 나아가 윤력(閏曆)과 정력(正曆) 등으로 선명하게 대비하였다. 따라서 전제 왕조의 탄압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였다. 동학이 탄압을 받았고 남학 역시 그것을 피하지 못했다. 김항은 이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김항에게 역학은 알파이자 오메가이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보호막이나 보호색 구실을 해낸 것이 사실이라고 본다.”




특히 <정역>의 출현 이후 ‘간방’을 조선을 가리킨 것이라 하여, 간방 중심의 새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선언이 주체의식의 발로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문왕팔괘도에서 ‘간’은 방위로 동북방이다. 팔괘를 지리상으로 나누어 보면 우리나라에 해당한다고 한다. 계절로는 겨울과 봄의 중간이다. 겨울의 ‘종(終)’과 봄의 ‘시(始)’를 동시에 지닌 방위이니, ‘종만물(終萬物), 시만물(始萬物)’이라 함은 이런 의미다. 또 나무로 치면 ‘결실’을 의미하는데, 뿌리가 ‘시’라면 열매는 ‘종’이다. 이 역시 ‘시’와 ‘종’을 아우른다. 다만 열매는 성장할 때는 뿌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지만 결실을 본 뒤에는 뿌리에 종속되지 않는다. 이것은 진(震)이 변하여 간(艮)이 되는 이치와 같다. 지리상으로 중국을 의미하는 진방(震方)에서 동방문화가 출발하여 간방에서 완성을 본다는 말이 ‘제출호진(帝出乎震)’이요 ‘성언호간(成言乎艮)’이다. 간은 종착점인 셈이다. 여기서 <정역>에 담긴 주체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 김항은 자신의 <정역>을 ‘간방(艮方)’과 연결시켰다. 자신이 말한 ‘제삼의 역’이 간역(艮易)임을 누누이 시사하였다. ¢정역팔괘도£를 보면 ¢문왕팔괘도£에서 ‘동방 진(震)’이 있던 자리에 ‘간(艮)’이 들어서 있다. 지난날 ¢문왕팔괘도£가 동아시아(중국 중심)를 판도로 했다면, ¢정역팔괘도£에서는 간방이 동방을 대표하는 자리가 된 것이다. 필자는 간역에 담긴 정신세계를 ‘19세기판 동방사상이요 동인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금화정역이 주역(周易)과 같지 않다고 선언한 것부터가 주체의식의 발로라 하겠다. 난세(亂世)나 난국(難局)을 당하여 우리 민족의 자존심으로 북돋우는 동인의식이 고취되었음은 눈여겨 볼 만하다.”




또 <정역>과 민족 고유 사상과의 연관성을 이렇게 부연했다.

 “김항이 상제를 말하면서 이를 조화옹이란 말과 동격으로 사용한 것은, 용어상 민족종교와 맥락을 같이 한다. 즉, 대종교(大倧敎)의 경전인 <삼일신고(三一神誥)>에서 말하는 조화주(造化主), 교화주(敎化主), 치화주(治化主)의 개념을 통틀어 ‘상제’나 ‘화옹’이라 말한 것으로 보인다. ‘화화(化化)’는 조화ㆍ교화ㆍ치화의 공능(功能)을 말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화옹께서 친히 화사(化事)를 주의하여 지켜본다”고 할 때의 ‘화사’ 역시 조화ㆍ교화ㆍ치화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는 “김항이 ‘내가 정성을 다하면 화옹을 만날 수 있다’고 한것은 내 속에서 하늘을 찾거나 신을 찾는 것을 의미해 한국사상 속에 담긴 영험성(靈驗性)의 측면을 고취한 것이면서 아울러 유교의 종교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한국사상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초월적 신’보다 ‘내재적 신’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내 속에서 천성(天性)을 찾고 불성(佛性)을 찾고 신성(神性)을 찾는 것이 한국사상의 본령이다. <삼일신고>에서는 “자기의 본성 속에서 그 분의 아들 됨을 구하라! 신성(神聖)께서는 너의 뇌 속에 내려와 계신다”(自性求子, 降在爾腦)라고 했다. 모든 인간의 머릿속 깊은 곳에 하느님이 내려와 계신다 동학이나 대종교에서는 하느님을 ‘만난다’고 하지 않고 ‘모신다’고 한다. 내 영성 속에 있는 하느님을 모신다는 의미에서 시천주(侍天主)란 말이 나왔다.”




 그는 이런 근거를 들어 “김항의 <정역>은 유교의 종교적 측면, 아니 한국사상의 종교적 측면을 회복하려 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또 김항이 말한 상제의 개념이 신도(神道)의 개념을 배태(胚胎)한다고도 보았다.

 “김항은 뇌풍항괘(雷風恒卦)를 중시하여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였다. ‘항’괘에 담긴 의미는 ‘한결같다’[久也]는 것이다. 이는 ‘변함없는 진리’라는 의미와 통한다. 김항은 뇌풍항괘에 담긴 의미를 중시한 끝에 이름을 ‘항’으로 바꾸기까지 하였다. 그는 ‘금화일송’에서 “화공이 붓을 놓음에 뇌풍의 도가 생겨났다”(畫 工却筆, 雷風生)라고 할 정도였다. <주역>에서 ‘뇌풍(雷風)’은 만물을 운행하는 ‘기(氣)’를 의미한다. 만물의 본질을 이루는 ‘정(精)’은 대개 수화(水火)로 표현한다. 김항이 뇌풍을 중시했던 이유는 일차적으로 뇌풍으로 표현되는 ‘기’의 작용에 의해 우주의 운행이 이루어진다는 점, 이점은 최제우의 ‘至氣’ 철학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그리고 뇌풍이 하늘을 대신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린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수식천공대인성(誰識天工待人成)’이란 기실 뇌풍의 의미를 염두에 둔 말이라 하겠다.”







» 학산 이정호가 <정역>을 연구했던 계룡산 향적산방





 최 교수는 한민족의 고유 정신의 중요한 축인 궁리진성과 함께 ‘고무진신(鼓舞盡神)이라는 게 김항 학문의 주요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궁리진성과 고무진신은 본디 역학 공부와 관련된 것이다. 전자가 궁리에 중점이 있다면 후자는 수양에 중점이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공부방법을 아우르는 것을 ‘精義入神’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사람을 고무시켜 신명(神明)을 다하게 한다’는 고무진신은 공부 방법의 하나이면서, ‘감발흥기(感發興起)’ 같은 교육 방법과도 통한다. 감발흥기는 크게 느낀 바가 있거나 크게 흥미를 느껴 마음과 힘을 떨쳐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감흥의 최고 경지는, 자기도 모르게 춤을 추고 스텝을 밟는 경우다. 정명도가 말했던 ‘수무족도(手舞足蹈)’ <二程全書>에서 “부지수지무지족지도지(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를 모두 4회 언급하였다. ‘고무진신’은 이후 김항에 의해 ‘영가무도(詠歌舞蹈)’로 구체화하였다. 김항은 영가무도를 하였다고 한다. 그것도 매우 골독(汨篤)하게 하였다 한다. 야간에도 영가무도를 열심히 한 나머지 무도를 한 자리에 풀이 나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영가무도를 표방하거나 이것을 후학들에게 가르쳤다는 기록은 없다. 이 영가무도는 주자가 ¢소학제사(小學題辭)£에서 소학(小學)의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소학의 방법은 청소하고 응대하며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순하며 행동에 혹 어그러짐이 없어야 한다. 행동(실천)하고 남은 힘이 있으면 시를 외우고 글을 읽으며 노래하고 춤을 추며 혹시라도 한도를 넘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小學之方, 灑掃應對, 入孝出恭, 動罔或悖. 行有餘力, 誦詩讀書, 詠歌舞蹈, 思罔或逾) 그러나 주자가 말하는 영가무도는 아동의 정서함양과 관련된 교육 방법이다. 김항이 말하는 영가무도는 주자가 말한 것과 같지는 않다. 다만 심성수양의 한 방법이요 정감에 호소하는 것이라는 점은 같다. <정역>을 보면 ‘금화송(金火頌)’, ‘구구음(九九吟)’, ‘십오가(十五歌)’와 같이 각 편의 제목부터 ‘영가’를 암시한다. 이밖에도 ‘일곡(一曲)’, ‘가악(歌樂)’, ‘율려성(律呂聲)’ 등 영가와 관련된 말들이 등장한다. 영가무도는 김항의 학문 방법을 드러내는 중요한 화두요, <정역> 나오는 ‘우우이이(于于而而)’ 같은 것은 영가무도의 실체를 직접 드러낸 경우다. 김항이 영가무도를 중시하였음은, 후일 김항의 가르침을 따르는 집단에서 김항을 ‘영가무도교(詠歌舞蹈敎)’의 창시자로 받들었던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유ㆍ불ㆍ선 합일을 추구하는 가운데 불교를 그 중심에 놓았던 남학에서도 영가무도를 매우 중시하였다. 노래와 춤을 통한 이 수련법은 연담 이운규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를 확증할 만한 기록은 없다. 전해 받은 정도가 얼마 만큼인지도 알기 어렵다. 이를 볼 때, 영가무도를 ‘궁리진성하기 위한 방법’만으로 이해하는 것 류남상ㆍ임병학, <一夫傳記와 正易哲學>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유가 쪽으로만 초점을 맞추어 해석할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정역>이나 김항의 학문 경향을 보면 ‘독서학역(讀書學易)’의 합리적 측면이 있는가 하면, 고무진신에서 유래한 영가무도의 신비적 측면이 공존한다. ‘철학과 종교의 공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김항이 창교(創敎)는 하지 않았지만, 근대 민족종교에서 자교(自敎)의 지도자와 함께 받들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동학과 남학, 그리고 김항이 공통적으로 중시하는 영가무도는 어찌보면 우리 고유의 선맥(仙脈)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성리학이 성행함에 따라 그 맥락이 희미해졌던 한국사상의 종교성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최 교수는 “김항의 <정역>이 우리 고유사상의 전통을 계승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중요한 암시는 있는 것 같다”면서 초치원이 말한 현묘지도와 접화군생과 풍류도와 접점을 이렇게 제시했다.

 “궁리진성의 차원에서 보면 ‘신이명지(神而明之)’, 즉 신령하여 사물의 본질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데 지나지 않지만, 종교적 차원에서 보면 하늘과 소통하는 신비한 경지를 말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과의 소통이 한 경지에 이르고, 그 경지가 고조되면 영가(詠歌)를 하고 무도(舞蹈)를 한다. 그와 반대일 수도 있다. 즉, 영가를 하고 무도를 하는 가운데 한 경지에 이르고, 그 경지가 고조되면 하늘과의 소통(교섭)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기(靈氣)가 주어지고 통할 때 완전 다른 사람이 되고, 다른 사물이 된다. ‘기’로 표현할 수 있는 정감성과 ‘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영험성이 이 지점에서 하나로 만나게 된다. 이처럼 ‘접(接)’ 자에는 한국사상의 특성이 함축되어 있다. 필자는 김항의 영가무도에는 재래의 ‘접화군생’의 사상적, 종교적 맥락이 숨어 있다고 판단한다.”




 최 교수는 특히 <정역>에 제시한 황극역이 새 시대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특성으로 제시했다.

 “<정역>은 ‘황극역(皇極易)’으로도 일컬어진다. 그 만큼 황극을 중시한다는 의미다. 김항은 ‘삼극(三極)’을 말하면서 황극을 무극과 태극의 중심에 놓았다. 본디 ‘황극’은 <서경>의 주서(周書), ¢홍범(洪範)」 편에서 나왔다. <서경>에서의 ‘황극’은 홍범구주(洪範九疇) 가운데 하나로,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표준[準極]을 말하는 것이었다. 황극의 도는 ‘대중지정(大中至正)’ 넉 자로 요약된다. 그러나 김항이 말하는 황극은 임금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 아니다. <정역>에서의 황극은 완성된 인간상, 즉 ‘후천군자(後天君子)가 거할 중심처(中心處)’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선천의 황극과는 대비되는 후천의 황극이다. 대중지정한 황극의 도를 임금만이 아닌 모든 인간들에게까지 끌어올려 ‘인간완성’의 의미를 부여하였다는 점에서 인간존중사상의 극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일부(一夫)가 만부(萬夫)요 만부가 일부인 것이다. 황극을 무극과 태극의 중심에 놓았다는 것은 미래세계가 ‘인존(人尊)’의 시대가 될 것임을 예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김항이 ¢포도시(布圖詩)£에서 ‘수식천공대인성(誰識天工待人成)’, 즉 하늘이 하시는 일(造化)이 지인(至人)을 기다려 이루어진다고 한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지인’은 하늘을 닮은 완전한 인간을 말한다. 결국 인간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또 “천지가 일월이 아니면 빈 껍데기이고 일월도 지인이 없으면 헛 그림자다”(天地匪日月空殼, 日月匪至人虛影)라고 한 말 역시 천공(天工)을 대신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는 것임은 물론, 인간 완성의 후천시대를 여는 지인(至人: 眞人)의 등장을 알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이전 시기 반곡(盤谷) 성이심(成以心: 1682~1739)의 <인역(人易)>에 담긴 사상으로부터 민족종교에서 말하는 ‘인존사상’까지 맥락이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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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