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2

「井筒俊彦『意識と本質』」の人気の記事一覧|note ――つくる、つながる、とどける。

「井筒俊彦『意識と本質』」の人気の記事一覧|note ――つくる、つながる、とどける。:

人気の記事一覧

【付箋】『意識と本質 精神的東洋を求めて /井筒俊彦』

2か月前

井筒俊彦氏の『意識と本質』>「言語的コミュニケーションの難問…は、言語の伝達機能に不相応な重点が置かれるところに起因する。…言語については意味分節的機能にこそ第一の重点が…」…伝達と意味分節の違いとは、いわば”静”と”静と動”の違い… https://note.com/way_finding/n/n950f534279bc

2か月前

井筒俊彦『意識と本質』(8)

1か月前

井筒俊彦氏の『意識と本質』p.117 無分節者の不断の自己分節の仕方は「限りなく自由」そして「人間が人間特有の感覚器官の構造と、コトバの文化的制約性とに束縛されながら行う存在分節は、無限に可能な分節様式の中の一つであるに過ぎない。それがいかに狭隘な一方向的なものであるか」φ(..

3か月前

井筒俊彦氏の『意識と本質』冒頭の一節>「表層意識にも逃げ道はある。他の一切の普通の対象のように、無分節の「存在」を概念化して、一つの対象として取り扱うことだ」>この「逃げ道」に走ることなく無分節に溶けつつそこから再生するの術を知っているのが「深層」意識を鍛え抜いた者であるという。

5か月前

井筒俊彦『意識と本質』メモ。 "本質"が発生してくるところ(空(仮))をどう意味づけるか。 「一者が内在する自己分節的性向に促されて積極的に分節展開する」存在一性論。「絶対一者があたかも多者であるかのように見える」不二一元論。本質なき分節の大乗仏教。積極/消極と有/無の二重分節。

6か月前

井筒俊彦『意識と本質』(7)

井筒俊彦『意識と本質』(2)

井筒俊彦『意識と本質』(5)

前に書いた記事をリライトしてみました。 "言葉は「意味の伝達」の道具ではない ー安藤礼二著『迷宮と宇宙』を読む" https://note.com/way_finding/n/n84173fa44646 井筒俊彦氏の『意識と本質』も、改めて精読してみたいところ。

10か月前

井筒俊彦『意識と本質』(1)

縁起、レンマ、事事無礙で、表層と深層の意識の中間地帯を浮かび上がらせる -井筒俊彦「事事無礙・理理無礙」を読む(5)

3か月前

井筒俊彦「事事無礙・理理無礙」を読む(1) -意味分節理論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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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か月前

井筒俊彦の『意識と本質』

主客未分について調査中

10か月前

意味分節理論とドーナツの穴 -井筒俊彦「事事無礙・理理無礙」を読む(3)

5か月前

井筒俊彦『意識と本質』(6)

井筒俊彦『意識と本質』(3)

表面的で一義的な意味と、深層的で多義的な意味が、分かれつつひとつに

1か月前

レヴィ=ストロースの”構造"とは? 『今日のトーテミズム』を"読む"意味分節理論の超実践編

3か月前

四元 康祐『日本語の虜囚』/シンポジウム「詩の翻訳、詩になる翻訳」

2か月前

「意味」を仮設しつつ、未完成のままに -意味分節を生きる

5か月前

どこにいたかなんて、これからには関係ない

2か月前

西平 直 『西田幾多郎と双面性 (東洋哲学序説) 』

8か月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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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か月前

"相互包摂"であらゆる「項」を両義的で中間的で媒介的にする ー 『今日のアニミズム』を読む

3か月前

意味分節理論とは -深層意味論の奥深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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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か月前

シンボルとシグナルの間でハビトゥス(あるいは言語アラヤ識)を建立する 【2021年の読書まとめ】

4か月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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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か月前

主客未分とサルトル

9か月前

リルケの詩集に触れて#402

創造とは分かり方(分け方)を進化させることである -井筒俊彦著『意識の形而上学 『大乗起信論』の哲学』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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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は線の集まりでもあり、ドーナツの穴でもあり -井筒俊彦『意識の形而上学』を読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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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言との対話」5月4日。井筒俊彦「すべてのものの一つ一つが輻輳する存在連関の糸の集中点としてのみ存在する」

静寂者ジャンヌ 10  井筒俊彦 と 『嘔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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量子力学と神話論理 -レヴィ=ストロース著『大山猫の物語』からの意味分節理論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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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平直『東洋哲学序説 井筒俊彦と二重の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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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츠키 슌히코 「의식과 본질」(3) | 미야케 유 | note

이츠키 슌히코 「의식과 본질」(3) | 미야케 유 | note



井通俊彦『의식과 본질』(3)
스키4

미야케2020년 4월 4일 11:56




이츠키 슌히코의 「의식과 본질」을 단지 읽을 뿐만 아니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다고 하는 생각으로, 장마다 자신 나름대로 개요를 정리해 본다, 라고 하는 시도.
【기본적으로 「의식과 본질」(이와나미 문고)의 본문을 인용하면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Ⅱ장의 정리는 이쪽


~이츠키 슌히코 「의식과 본질」Ⅲ장~


이통은 「본질」이라는 말을 서양 중세의 스콜라 철학의 수술어(quidditas)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사용하면서 그 의미를 가능한 한계까지 확장시켜 동양 철학의 컨텍스트에 도입하여 실험적으로 만들어 동서 사상의 만남의 장소에서 다양한 「본질」의 본연의 모습을 그린다.

무언가 (X)가 지금 여기에 현전하고있다. 우리가 그것을 인식합니다. 그래서 "…의식"이 우리 안에 태어난다. 「X의 의식」이란 「X의 존재의 의식」또는 「존재하는 X의 의식」이다. 그러나 스콜라 철학에서는 이러한 X의 지각이 성립되기 이전의 보다 원초적인 「X의 의식」을 생각한다.

그 원초적인 「X의 의식」의 단계에서는, 예를 들면 아직 「꽃」이 아니다. 아직 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혼연과, 무분절적으로, 「무언가」가 우리의 의식을 향해 스스로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 상태에서 X는 아직 말하자면 "어디에도 균열이없는 하나의 존재 론적 덩어리"이다.

균열도 접목도 없는 덩어리에 인식의 제2단계로, 이성이 균열을 붙여, 「본질」과 「존재」로 나눈다. 여기서 처음으로 X가 '존재하는 무언가'로 의식된다. 예를 들면 「존재하는 꽃」으로서. 이 「존재」와 「본질」의 조합은 「X는 실재한다」와 「X는…이다」라고 하는 2개의 명제가 여기에서 성립한다. X가 존재하지만, 단지 존재할 뿐만 아니라 「…로서(예를 들면 꽃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존재"는 X를 현실화하고 현전시킨다. X는 존재해서 가장 절실하게 현실이고 현실이다.
그러나 「존재」는 X를 리얼하게는 하지만, 결코 X를 꽃꽂이는 하지 않는다. X는 존재함으로써 꽃이 아니다. 거기 다른 원리인 "본질"가 작동한다. 꽃은 그 「본질」 즉 꽃성 때문에 꽃이다.

그러나 반대로, X의 「본질」은 X를 「…」로서 규정은 하지만, X의 존재를 보증하지 않는다. 꽃성은, 그 자체로서는, 어디까지나 단지 꽃성이며, 현실에는 한 바퀴의 꽃도 피지 않는다. 「본질」과 「존재」가 조합되어, 처음으로 X는 「존재하는 꽃」이 된다. '꽃'이라는 말은 X의 '존재'에 아무런 관련이 없고, 단지 '꽃'이라는 X의 '본질'을 조치하고 고정하는 것이다. 그것에 의해 유동해 버릇없는 「존재」의 혼돈의 가운데에, 꽃이라고 하는 하나의 응고점이 완성된다.

"존재"의 다양한 응고점, 즉 존재하는 다양한 X를 향해 우리의 "나"는 끊임없이 탈자적으로 달려간다. 그것이 그 때마다, 어느 일정한 대상에 초점을 맞춘 「X의 의식」이지만, 의식은 반드시 거기에 X의 「본질」을 감지하기 때문에 의식의 초점을 X에 맞출 수 있다. X 안에 어떠한 형태로 「본질」을 감지하지 않는 한, 의식은 X를 향해 탈자적으로 달리지 않는다.

여기서 「X의 본질」을 성립시키는 「본질」이란 일반자이다. 꽃성은 이 꽃, 그 꽃이라고 하는 특정의 개별자에 한정된 성질의 것이 아니고, 어느 꽃에 공통되는 일반적인 성질이다. 그러니까 X는 꽃으로서 의식되는 것에 의해, 바로 그 순간에, 꽃 일반이라고 하는 클래스의 일성원이 된다. 클래스의 일성원이 된 꽃은 그 개성을 빼앗겨 버린다. 개별자를 진정으로 생생한 개별성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언어 표현의 차원으로 옮기려고 한 릴케의 고민은 여기에 있었다.

개개인의 존재 중에 '이것의 성'의 '본질', '이 꽃'을 일으키는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으로부터 이슬람의 스콜라 철학에서는 개체적 리얼리티의 본질을 '후위어'로 포착 , 일반적인 '본질'인 '머히어'와 두 가지에 걸친 '본질'을 잡았다. '이 꽃'의 '이'에 역점을 두는지, '꽃'에 역점을 두는지에 따라 '본질' 이론이 완전히 다른 두 방향으로 전개한다.

개개의 존재자 각각을 갈등 없는 독자적인 것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개인적 리얼리티 「후위야」를 철저히 추진한 경우, 다른 한편의 보편적 「본질」인 「마히야」는 이성의 추상 작용 가 가져온 개념적 일반자가 되어 그 실재성이 빼앗겨 버린다.

그러나 이러한 개체주의에 정면에서 반대하여 마히어의 실재성을 의심하지 않는 사상가가 동양, 서양에도 적지 않았다. 머히어, 보편적 「본질」을 추상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농밀한 존재도를 가진 리얼리티로서. 그 실재를 어느 의식의 층으로 파악할 수 있는지에, 이통은 그것을 3개의 유형으로 나눈다.

첫 번째는 보편적 「본질」·마히어는 존재의 깊은 부분에 실재하고 존재의 표면에는 나오지 않는, 즉 표층적 「…의 의식」의 「…」로서 인지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한다 주장하는 입장. 따라서 이러한 "본질"은 일종의 심층 의식적 현상으로 간주되며, 우리 인식 주체의 측도 물체의 표층 구조밖에 보이지 않는 일상 의식 대신 비일상적인 의식, 심층 의식에 의해 사물의 심층 당신은 구조를 볼 수 있을 필요가 있다. 동양 철학의 범위에서는 송학의 '격물 궁리'가 이 입장의 전형이다.

둘째,
마찬가지로 보편적 「본질」·마히야는 심층 의식 차원에 나타나지만, 샤마니즘과 신비주의를 특징짓는 「근원적 이마주」의 세계가 성립하는 의식 영역 그 장소가 된다. 모든 존재자의 보편적 「본질」이 농후한 상징성을 띤 아키 타입, 원형으로 나타난다. 이븐 아라비의 「유무중도의 실재」, 스프라와르디의 「빛의 천사」, 용이한 육십사경, 밀교의 만다라, 유대교 신비주의 커버러의 「세피 로트」 등 이 유형은 동양 철학에서 는 아주 많은 예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보편적 「본질」을 의식의 심층이 아니라 표층으로, 이지적으로 인지하는 곳에 성립한다. 다만 이성적으로, 표층의식적으로, 「본질」의 실재를 확인하는데 머무른다. 그 구조를 분석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이론적·실천적 귀결을 추구한다. 고대의 유학·공자의 정명론, 고대 인도의 니야야·바이셰시카는 특유의 존재범주론 등. 이 유형은 "본질"가 개념적인 일반인, 보편적인 개념이다에 가장 가까운 위치설정이 된다.

이상 이통은 '존재'와 '본질'이 '의식'을 낳는 프로세스(혹은 순서가 반대)를 통해 '본질'의 다양한 형태, 유형을 그려냈다. 다음 장은 첫 번째 유형, 송료의 '격물 궁리', 그리고 말라루메의 시를 통해 심층 의식 차원에서 파악할 수 있는 보편적 '본질', '마히야'에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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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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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독.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제작. 매일 느낀 것, 프로젝트, 영화의 감상, 공부에 대해 등을 써 갑니다. 공식 페이지 https://www.kukkyofilm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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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筒俊彦『意識と本質』(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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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筒俊彦『意識と本質』(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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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筒俊彦『意識と本質』(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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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筒俊彦『意識と本質』(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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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筒俊彦『意識と本質』(1)|三宅 流|note

井筒俊彦『意識と本質』(1)|三宅 流|note



井筒俊彦『意識と本質』(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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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宅 流2020年1月4日 11:57




井筒俊彦著『意識と本質』。ただ読んでいるだけでも刺激的ではあるが、より体系的に理解したいと思い、章ごとに自分なりにまとめを書くことでより理解を深めたいと思った。このトピックは個人的な勉強と備忘を兼ねたものなので、語の使い方や解釈に誤りがあるかもしれないが、まずは気楽に書いてみたい。
【基本的に『意識と本質』(岩波文庫)の本文を引用しつつ纏めています】


〜井筒俊彦「意識と本質」Ⅰ章〜
私たちがこの世界の中でいろいろなものと出会う場合、これは「花」これは「机」として意識の中でとらえていく。それは「花」を見た時にそれを「花」と意識させる「本質」が花の中にあるからであり、もしこの「本質」がなければ私たちはそれを「花」と意識することはできず、また「花」と他のものを区別することはできず、渾沌とした世界のなかで頼りなく漂うのみであろう。そして「花」と名付けているのも、その「花」の本質と結びついているからであろう。だから例えば実際に目の前に「花」がなくても「花」という言葉を聞いたり読んだりすると、意識の中で「花」のイメージを思い浮かべることができる。これが私たちの生きている経験的世界である。=
しかしもし眼前の花から「花」の「本質」「名」を失った時、私たちの意識は方向性を失い、ある「ねばねばとした」目も鼻もない不気味な存在の渾沌の泥沼にはまりこんでしまうだろう。井筒はその事態をもっとも見事に描いた例としてサルトルの「嘔吐」をあげている。=
「ついさっき私は公園にいた。マロニエの根はちょうどベンチの下のところで深く大地に突き刺さっていた。それが根というものだということは、もはや私の意識には全然なかった。あらゆることばは消え失せていた。そしてそれと同時に、事物の意義も、その使い方も、またそれらの事物の表面に人間が引いた弱いめじるしの線も。背を丸め気味に、頭を垂れ、たった独りで私は、全く生のままのその黒々と節くれだった、恐ろしい塊に面と向かって座っていた。」(井筒俊彦によるサルトルの引用)=

「しかしこれは表層意識の立場からの発言であって、深層意識に身を据えた人の見方ではない」と井筒は言う。確かにサルトルがあの瞬間体験したのは深層意識で起きたことだが、あくまでも表層意識の側に立ちそこから垣間見えた事態であり、だからもはやそこでは「嘔吐」するしかないのだ、と。
これに反して東洋の精神的伝統では、深層意識が拓かれ、そこに身をおいているので、このような場合に「嘔吐」に追い込まれない、と井筒は言う。
ここで井筒は主に3つの例を挙げる。1つ目は大乗仏教、2つ目はシャンカラの不二一元論、3つ目はイスラムにおけるイブン・アラビーの存在一性論。
まず1つ目の大乗仏教から。経験的世界において「花」を「花」として名付け、「花」として意識を向かわせる「花」の「本質」は本当は実在せず、実在しないものがあたかも有るもののように見えてくる「妄念」に過ぎない、と言う。深層意識に立ち、絶対的無分節者がそのまま現れてくれば経験的世界においてあらゆる存在者を互いに区別する「本質」はことごとく消え失せてしまう。その絶対的無分節者のことを「真如」というが、それは「空」であり「無」である。(その経験的世界の「本質」を通さずに存在を実践的に捉えなおそうとするのが「禅」であるが、それは後に詳述)=

2つ目のシャンカラの不二一元論も経験的世界の「本質」を否定するところから始まり、現実の世界を「名と形」の世界として「妄念」によってもたらされた虚構である、とするところも大乗仏教と共通している。しかしその終着点は大乗仏教と正反対で、大乗仏教では深層意識における頂点、絶対的無分節者を「空」「無」として捉えるのに対し、シャンカラの不二一元論ではその頂点を「ブラフマン(梵)」という絶対的一者、有的充実の極限、最高度にリアルな実在として捉える。経験的世界で私たちが見るものは、私たち自身の意識によって様々に分節されて現れるブラフマンの仮象的形姿にすぎない。=

3つ目、イスラムにおけるイブン・アラビーの存在一性論でも、経験的世界は、絶対的無分節の「存在」が様々な「限界線」によって様々に分節された形で私たちの表層意識に現れたものであり、私たちの側の意識の次元転換によって「限界線」が全部取り払われてしまえば、「存在」が絶対的無分節な存在のまま捉え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点で先の2つと共通している。逆に大きな違いとしては、経験的世界の目の前の事象は、私たちが絶対的無分節者をいわゆる「妄念」的に捉えたものではなく、その絶対的無分節者が自ら分節的に自己展開していき、多者となって存在として私たちの眼前に現れる、とするところである。そしてこの絶対的一者から多者に至るこの存在展開の過程の途中にイブン・アラビーはひとつの中間領域を置き、それを「有無中道の実在」の領域と呼ぶ。この「ある」とも言えず、「ない」とも言えない中間的な存在範型が「存在」の原形、つまり「本質」の原初的形態である。言い換えると「有無中道の実在」が、もう一段下位の存在領域である日常経験的世界において、「本質」として私たちの意識に映る、というものである。=

いずれにしても表層意識でとらえる存在たちは「妄念」や「有無中道の実在」によってもたらされる「本質」によって規定され、上記の思想は、この「本質」を否定するところから始まる。「本質」を否定し、その存在を深層意識によって捉えようとしたときに、大乗仏教で言うところの「空」や「無」としての「真如」あるいは「ブラフマン」、あるいは「絶対的一者」にたどり着く。さらにそれらから経験的世界に向けてどう変質し、あるいはどう展開するか、のメカニズムを明らかにしようとした思考体系と言えるだろう。=

否定的な意味合いで使われてきた「本質」だが、井筒は東洋哲学の伝統の中にはこれとは正反対の「本質」の実在性を全面的に肯定する思想家たちがおり、また、それを語るためには、やや漠然として使われてきた「本質」という言葉をよりはっきりと規定し直す必要がある、として次章に向かっていく。

〜이통 슌히코 「의식과 본질」Ⅰ장~ 

우리가 이 세계 안에서 여러 가지를 만나는 경우, 이것은 「꽃」 이것은 「책상」으로서 의식 속에서 파악해 간다. 그것은 '꽃'을 보았을 때 그것을 '꽃'이라고 의식시키는 '본질'이 꽃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본질'이 없으면 우리는 그것을 '꽃'이라고 의식하는 것은 할 수 없고, 또 「꽃」과 다른 것을 구별할 수는 없고, 혼란한 세계 속에서 의지하지 않고 감돌 뿐일 것이다. 그리고 「꽃」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도, 그 「꽃」의 본질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실제로 눈앞에 '꽃'이 없어도 '꽃'이라는 말을 듣거나 읽으면 의식 속에서 '꽃'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살아있는 경험적 세계입니다. 하지만 만약 눈앞의 꽃에서 '꽃'의 '본질' '이름'을 잃었을 때, 우리의 의식은 방향성을 잃고, 어느 '끈적끈적한' 눈도 코도 없는 소름 끼치는 존재의 혼돈의 늪 에 마리코 버릴 것이다. 이통은 그 사태를 가장 훌륭하게 그린 예로 살틀의 '구토'를 들고 있다. =

 "마침내 나는 공원에 있었다. 말로니에의 뿌리는 단지 벤치 아래에 깊숙이 땅에 꽂혀 있었다. 그것이 뿌리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내 의식에는 전혀 없었다. 모든 말은 사라져 버렸다.그와 동시에, 사물의 의의도, 그 사용법도, ​​또 그 사물의 표면에 인간이 끌어당긴 약한 뒤틀림의 선도.등을 둥글게 기색에, 머리를 늘어뜨리고, 단지 혼자서 나 는, 완전히 생 그대로의 그 흑색으로 절절했다, 무서운 덩어리에 면을 향해 앉아 있었다.」 , 심층의식에 몸을 둔 사람의 견해가 아니다”라고 이통은 말한다. 
확실히 사르트르가 그 순간 체험한 것은 심층 의식으로 일어난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표층 의식의 측에 서서 거기서 엿볼 수 있었던 사태이며, 그러니까 더 이상 거기에서는 「구토」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이에 반해 동양의 정신적 전통에서는 심층 의식이 개척되어 거기에 몸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 "구토"에 몰리지 않는다고 이통은 말한다. 

여기서 이통은 주로 3개의 예를 든다. 

첫 번째는 대승 불교, 두 번째는 샹카라의 불이 일원론, 세 번째는 이슬람에서의 이븐 아라비의 존재 일성론. 우선 첫 번째 대승 불교에서. 경험적 세계에서 '꽃'을 '꽃'으로 명명하고 '꽃'으로 의식을 향하게 하는 '꽃'의 '본질'은 사실은 실재하지 않고, 실재하지 않는 것이 마치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망망' 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심층의식에 서서 절대적 무분절자가 그대로 나타나면 경험적 세계에서 모든 존재자를 서로 구별하는 '본질'은 사라지게 된다. 그 절대적 무분절자를 「진여」라고 하지만, 그것은 「하늘」이며 「무」이다. (그 경험적 세계의 「본질」을 통하지 않고 존재를 실천적으로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 「선」이지만, 그것은 나중에 상세히 설명한다.) 

두 번째 샹카라의 후지일 원론도 경험적 세계의 '본질'을 부정하는 곳에서 시작되어 현실의 세계를 '이름과 형태'의 세계로 '망망'에 의해 초래된 허구이다. 그런데 대승불교와 공통되어 있다. 그러나 그 종착점은 대승 불교와 정반대로, 대승 불교에서는 심층 의식에 있어서의 정점, 절대적 무분절자를 「하늘」 「무」라고 파악하는 것에 반해, 샹카라의 후지일 원론에서는 그 정점을 「블러프만(梵) )」라는 절대적 일자, 유적 충실의 극한, 최고도에 리얼한 실재로서 파악한다. 경험적 세계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식에 의해 다양하게 분절되어 나타나는 브라프만의 가상적인 모습에 불과하다. =

셋째, 이슬람에서 이븐 아라비의 존재 에 나타난 것이며, 우리 측의 의식의 차원 전환에 의해 「한계선」이 전부 빼앗겨 버리면, 「존재」가 절대적 무분절인 존재인 채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의 2개와 공통하고 있다. 반대로 큰 차이로서, 경험적 세계의 눈앞의 사건은 우리가 절대적 무분절자를 이른바 '망망'으로 포착한 것이 아니라 그 절대적 무분절자가 스스로 분절적으로 자기 전개해 나가, 다자가 되어 존재로서 우리의 눈앞에 나타난다고 하는 곳이다. 그리고 이 절대적 일자로부터 다자에 이르는 이 존재 전개의 과정의 도중에 이븐 아라비는 하나의 중간 영역을 두고, 그것을 「유무중도의 실재」의 영역이라고 부른다. 이 「있다」라고도 말할 수 없고, 「없다」라고도 말할 수 없는 중간적인 존재범형이 「존재」의 원형, 즉 「본질」의 원초적 형태이다. 바꾸어 말하면 「유무중도의 실재」가, 또 한층 하위의 존재 영역인 일상 경험적 세계에 있어서, 「본질」로서 우리의 의식에 비친다는 것이다. 어쨌든 표층의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존재들은 「망망」이나 「유무중도의 실재」에 의해 초래되는 「본질」에 의해 규정되고, 상기 사상은 이 「본질」을 부정하는 곳에서 시작된다. 「본질」을 부정하고, 그 존재를 심층의식에 의해 파악하려고 했을 때에, 대승 불교로 말하는 곳의 「하늘」이나 「무」로서의 「진여」 혹은 「블러프만」, 혹은 「절대적 일자」 에 도착한다. 게다가 그들로부터 경험적 세계를 향해 어떻게 변질하고, 혹은 어떻게 전개할지, 의 메카니즘을 밝히려고 한 사고 체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온 「본질」이지만, 이통은 동양철학의 전통 중에는 이것과는 정반대의 「본질」의 실재성을 전면적으로 긍정하는 사상가들이 있어, 또, 그것 를 말하기 위해서는, 다소 막연하게 사용되어 온 「본질」이라는 말을 보다 명확하게 다시 규정할 필요가 있다, 로서 다음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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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宅 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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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筒俊彦『意識と本質』(2)|三宅 流|note

井筒俊彦『意識と本質』(2)|三宅 流|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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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筒俊彦『意識と本質』(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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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宅 流2020年3月19日 21:15

井筒俊彦の「意識と本質」をただ読むだけではなく、体系的に理解したいという思いで、章ごとに自分なりに概要をまとめてみる、という試み。
【基本的に『意識と本質』(岩波文庫)の本文を引用しつつ纏めています】
→Ⅰ章のまとめはこちら

〜井筒俊彦「意識と本質」Ⅱ章〜

井筒俊彦は、「本質」には二つあり、この二種類を意識的、方法論的に明確に分けた哲学の例としてイスラーム哲学を挙げている。神を唯一の例外として、あらゆる存在者に二つの「本質」を認め、区別している。ひとつは「マーヒーヤ」(māhīyah)、もうひとつは「フウィーヤ」(huwīyah)である。簡単に言うと「マーヒーヤ」は普遍的リアリティのこと、「フウィーヤ」は個別的リアリティのこと。
「マーヒーヤ」は語源的には「それは・何であるか・ということ」を意味する。例えば目の前に花がある時、「それは・花・である」つまり、目の前の「花」を「花」として成立させている「花」性のことを指す。
「フウィーヤ」は語源的には「これであること」いわば「これ性」を意味する。先の例で言えば、目の前の「花」自体がもたらす存在感、リアリティー、そのものの実感を表す。
井筒はこの二つの「本質」に対する異なる向き合い方をする作家や詩人を例に論を進めていく。

まずは本居宣長の「もののあはれ」。宣長は抽象的・概念的な思考を極度に嫌った。宣長にとって普遍的な「本質」つまり「マーヒーヤ」はひとかけらの生命もない死物に過ぎなかった。目の前の生きた事物を生きるがままにとらえること。自然で素朴な実存的感動を通じて「深く心に感」じることしか道はない。物にじかに触れ、その物の心を、外側からではなく内側からつかむこと、それが「もののあはれ」を知ることであり、そういうことのできる人を宣長は「心ある人」と呼ぶ。

次にリルケ。彼にとって、物をその普遍的「本質」すなわち「マーヒーヤ」を通して見ることは、その物から一回限りの独自性を奪ってしまい、「花」は「花」という個物ではなく、どこにでもある無数の「花」になってしまう。こうしてリルケは「マーヒーヤ」に背を向けて「フウィーヤ」に赴く。
リルケは「意識のピラミッド」について語っている。その頂点の表層意識は言葉の意味分節が支配する次元。そして底辺の深層意識はそのものが言葉以前にものとしてのリアリティーを開示する領域。
言葉の意味分節の力の及ばぬ深層領域に開示される「もの」の「フウィーヤ」を詩人は改めて言語化しなければならない。言語は基本、表層意識に属するものである。深層体験を表層言語によって表現しようとするというこの悩みは、表層言語を内的に変質させることによってしか解消しない。それはある意味、禅における「転語」のような状態。ここに異様な実存的緊張に充ちた詩的言語、一種の高次言語が誕生する。

次に『古今集』『新古今集』における「ながめ」。
『古今』的和歌世界は一切の事物、事象がそれぞれの普遍的「本質」において定着された世界。春は春、花は花、恋は恋というふうに自然界のあらゆる事物、存在者が普遍的「本質」的に規定され、もしその「本質」の網目から外れたりすれば、その意外性自体がひとつの詩的価値を帯びるほどの強力な規定性がそこにある。
いわゆる「マーヒーヤ」的「本質」が、ぎっしりと隙間なく充満するこうしたマンダラ的存在風景にあきたらぬ詩人たちは、王朝文化の雅びの生活感情的基底であった「ながめ暮らす心」を普遍的「本質」の消去の手段として、ひとつの特殊な詩的意識のあり方にまで昇華させた。「眺め」は『古今集』ではどちらというと淡い性的気分を表すものであったが、『新古今』的幽玄の世界では「眺め」とはむしろ事物の「本質」的規定性を朦朧化し、そこに生まれる情緒空間の中に存在の深みを得ようとするものではないだろうか、と井筒は言う。
「ながむれば我が心さへはてもなく、行へも知らぬ月の影かな」
「帰る雁過ぎぬる空に雲消えていかに詠めん春の行くかた」
(いずれも式子内親王)
月は照り、雲は流れ、飛ぶ雁が視界をかすめる。しかしこの詩人の意識はそれらの事物に鋭く焦点を合わせていない。それらは限りなく遠いところに眺められている。
「眺め」の焦点をぼかした視点の先で事物はその「本質」的限定を超える。そこに存在深層の開陳がある。だから「眺め」は「マーヒーヤ」の否定ではなく、「マーヒーヤ」を肯定するからこそあえてそれをぼかそうという態度が出てくる。

そして最後に松尾芭蕉。
全ての存在を存在たらしめているもの、永遠不易の普遍的「本質」、すなわち「マーヒーヤ」を芭蕉は「本情」と呼んだ。この「本情」を井筒は、花は花、月は月といった『古今』的な、感覚表層に現れる「本質」ではなく、事物の存在深層に現れる「本質」であると言う。
「物と我と二つになりて」つまり主体と客体が二分してその主体が自己に対立するものとして客観的に外から眺める次元を存在表層とよぶとして、ここで存在深層とはこの主客二分以前の根源的存在次元である。
「…の意識」はすでに主体客体が二分された存在表層の次元。これに対して根本的な変質が起こらないといけない。この変質を芭蕉は「私意をはなれる」という言葉で表現する。つまり二極分節的ではない主体として「もの」を見るということ。このような方向に自己を絶えず修練していくことを「風雅の誠」と芭蕉は言う。
しかし、美的修練をつんで存在深層が垣間見えるようになった人たちに、必ずしもあらゆるものの「本情」がつねにあらわれているわけではない。人はつねに「…の意識」で事物に接している。しかし『内をつねに勤めて物に応』じる特別な修練を経た人の実体験として、ものを前に突然「…の意識」が消える瞬間がある。そういう瞬間にだけものの「本情」がちらっと光る。「物の見えたる光」という一瞬のひらめく存在風景「物に入りてその微の顕れ」ること。
人の側では二極分裂の主体が意識の中で消え、ものの側では、普段深部にかくれて見えない「本情」が自らを現す。この時自己を開示するものは「本情」つまりは普遍的「本質」でなければならない。
この永遠不変の「本質」すなわち「マーヒーヤ」が芭蕉の実存体験において突然、瞬間的に生々しい感覚すなわち「フウィーヤ」に変わって現れる。「マーヒーヤ」が突如として「フウィーヤ」に転成する瞬間。この「本質」の次元転換の微妙な瞬間を間髪入れず詩的言語に結晶する。俳句とは芭蕉にとって、実存的緊迫に満ちたこの瞬間のポエジーであった。

いずれにしても普遍的本質である「マーヒーヤ」をそのまま受け入れるのではなく、個体的リアリティー「フウィーヤ」との関係性においていかに手触り感、実体感を得ていくか、という点で共通しているように思える。しかし、一方で「マーヒーヤ」をそのイデア的純粋性において直観しようとする人々がいる、と井筒は言う。詩人であるマラルメ、宋代の儒者による理学「格物窮理」を例に井筒は次に論を進めてい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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