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3

김지하로 가는 길

김지하로 가는 길

김지하로 가는 길

[김지하를 추도하며] 2
정지창 평론가·전 영남대 교수 | 
 기사입력 2022.06.18

김지하(金芝河), 뭇생명들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는 죽임의 문화에 온몸으로 저항한 비극의 주인공이 마침내 무대에서 퇴장했다. 1941년부터 2022년까지 그는 동학농민군의 마지막 생존자로,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에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새 하늘 새 땅'을 찾아 헤매었으나, 끝내 그가 갇혀 있던 감옥을 탈출하지는 못했다. "어두운 시대의 예리한 비수를 / 등에 꽂은 초라한 한 사내"(「1974년 1월」)의 이마에는 슬픔과 고통과 투쟁과 명예와 패배와 배신의 낙인이 찍혀 있다.

「황톳길」과 「타는 목마름으로」를 비롯한 빼어난 시편들을 절규처럼 토해낸 저항시인, 「오적(五賊)」을 비롯한 담시(譚詩)로 박정희 군사독재의 본질을 폭로하고 풍자하여 감옥으로 유폐된 민주투사, 희곡 「금관의 예수」와 마당극 「진오귀굿」으로 민중연극의 새 지평을 연 극작가, 「풍자(諷刺)냐 자살(自殺)이냐」,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 같은 독창적인 평론과 시(詩) 선집 『꽃과 그늘』의 후기인 「깊이 잠든 이끼의 샘」이 바로 그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학적 쟁점이자 미학의 준거가 된 민중문학의 도저한 이론가, 심오한 생명사상가이자 동학연구자, 전인미답의 생명문화운동을 열어젖힌 실천적 행동주의자.

'시인 김지하'는 그를 부르는 일반적 호칭에 불과할 뿐, 그의 본질에 부합하는 이름은 결코 아니다. 그를 따라다니는 숱한 찬사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김지하는 여전히 '활동하는 무(無)'이다.

김지하의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났으나 그의 혼은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그의 상상력은 끝을 모르고, 왕성한 '구라'는 여전히 생동한다. 첫 시집 『황토』가 독자들에게 당혹과 공포를 안겨주었듯이, 그의 담론들은 여전히 우리의 친숙한 고정관념들을 전복시킨다.

그는 언제나 참된 의미의 전위(아방가르드)였다. 서정시, 담시, 마당극, '대설(大說)', 그리고 생명담론으로, 그는 언제나 기존의 고정관념들을 깨뜨리고 상식을 뒤집어엎었다. 비난과 찬사는 의례 아방가르드에게 따라다니는 법, 그는 감옥에서 얻은 깊은 병에 시달리며, 병을 스승으로 삼아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헤쳐왔다. 그리고 "내 생명을 살리는 일로부터 나의 생명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이런 비난과 찬사 사이의 긴장과 고통은 평생 그를 편안하게 쉬도록 놓아주지 않았다.

1970년대 유신시대의 혹독한 죽임의 감옥 속에서 '빨갱이'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하여 자유와 민주주의를 갈구하던 저항시인에서 생명담론의 전도사로, 동학의 개벽사상과 증산교의 천지굿을 통해 한반도의 해원과 상생을 이룩하려던 문화운동가로, 그리고 마침내 현대 서구문명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개벽의 꿈을 실현하려는 문명개벽론자로 그는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기수였던 김지하가 감옥이라는 한계상황에서 '생명'이라는 화두에 눈을 뜨고, 동학을 비롯한 한국사상의 맥락 속에서 동서양의 생명사상을 녹여 자기 나름의 독특한 생명담론을 빚어낸 것은 20세기 후반부 한국문화사와 사상사의 중요한 사건이다. 그의 생명사상에 대해서는 비판과 옹호가 팽팽히 맞서고 있으나, 어쨌든 한 시대를 상징하던 시인이 민주화운동의 지평을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으로 끌어올린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의 생명담론이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은 그것이 고도의 농축된 시적 언어로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어떤 대목에서는 손에 잡힐 듯이 친근한 이야기로 생명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풀어내지만, 때로는 고답적인 상징언어와 천의무봉의 상상력으로 우리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태고의 시간대로 비약하거나 성층권을 벗어난 무한공간으로 질주하기도 한다.

어떤 개념의 그물에도 잡히지 않는 자유로운 유목민적 상상력, 어떤 장르로도 포괄할 수 없는 도도한 장광대설, 어거지를 쓰자면 '우리시대의 크나큰 민중광대'라는 이름이 그나마 그에게 어울릴 법도 하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민중문화운동을 선도한 가장 풍성하고 독창적인 노마드적 예술가이자, 우리시대 척박한 사상의 황무지에 새로운 민중사상·민중문화운동의 씨를 뿌린 아방가르드에게 붙일 수 있는 호칭은 '민중광대'가 제격이다.

사실 시인, 극작가, 평론가, 사상가, 운동가의 재질을 두루 갖춘 재주꾼이 곧 광대가 아닌가. 광대의 '삼삼구라 빙빙접시'를 어찌 서구적 미학 개념과 담론체계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바흐찐 식으로 구비(口碑)적 민중언어의 이야기꾼이라고 불러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비천하고 풍요로운 구비문학의 사육제'라는 표현은 그럴듯하지만, 김지하는 장편소설의 이야기꾼과는 생판 족보가 다른 사랑방의 이야기꾼이나 소리판의 광대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김지하 

그렇다. 넓고 큰 재주꾼, 광대(廣大)가 바로 그의 이름이다.

첫 시집 『황토』의 후기에서 김지하는 '악몽'과 '강신(降神)'과 '행동'의 시를 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그는 억눌린 민중의 절규와 원귀들의 한을 전달하는 무당으로서 시대의 어둠을 헐떡거리며 기어나가는 피투성이의 포복을 계속했다. 그런데 이러한 삶과 텍스트의 일치, 삶과 싸움의 일치는 "세계에 대한, 인간에 대한, 모든 대상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의 작품들은 모두 이같은 "사랑의, 뜨거운 사랑의, 불꽃같은 사랑의 언어"이다.

김지하 문학의 원형질은 바로 이러한 약동하는 뜨거운 사랑의 맥박, 뜨거운 육성의 생생한 느낌이다. 그의 삶과 문학은 늘 내면과 외면의 이중구속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간절한 염원으로 요동치고 있으며, "타는 목마름으로" 새 하늘 새 땅을 찾아 헤맨다.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
두 손엔 철삿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메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황톳길」 첫머리)


여기서 "나는 간다 애비야"라는 직접화법은 "나는 간다"라는 서술형과는 생판 다른 직접적인 호소력과 생동감을 가지고 독자에게 다가온다. '나'라는 시적 화자는 넋두리나 독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너'라는 '애비'에게, '가마니 속에서 죽은 애비'에게 직접 말을 건네고 있다.

독자는 여기서 폭염의 한낮에 시뻘건 황톳길을 따라 철삿줄에 묶여가는 '나'가, 죽어 가마니에 덮여있는 '애비'에게 던지는 마지막 하직 인사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순간 독자는 마당판의 관객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러한 직접적인 호소력은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이라는 구절의 반복에 의해 증폭된다. 이 구절은 마지막 연에서도 긴박한 호흡으로 반복됨으로서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관객의 반응을 계산하고 긴장감을 고조시켜 자신의 호흡에 일치시키는 솜씨는 바로 노련한 광대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황톳길」을 비롯한 서정시와 「오적」을 비롯한 담시, 「진오귀굿」을 비롯한 마당극(마당굿)은 장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민족적 정서를 바탕으로 판소리와 탈춤, 가사, 민요 등 민족전통의 형식을 원용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또한 대체로 구어체이면서도 독자나 관객을 향해 말을 건네거나 주고받는 '이야기체'로 되어 있다.

1970년을 기점으로 민중광대 김지하는 텍스트와 삶의 일치를 추구한 서정시와 독창적인 민족형식인 담시와 마당극,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생명사상을 바탕으로 한 민중문화운동의 질풍노도시대를 열었다. 그 영향력은 문단을 넘어 연극(채희완, 임진택을 중심으로 한 마당극운동, 인혁당 사건을 다룬 연우무대의 「4월 9일」이나 극단 아리랑의 「인동초」 같은 기록극), 미술(오윤의 민중판화), 음악(김민기의 민중가요), 영화(장선우의 「성공시대」 등), 카톨릭농민회와 한살림운동 등 여러 방면으로 확산된다.

1980년대 이후 김지하는 담시와 '대설'을 통한 왕성하고 다성적(多聲的)인 외향적 발언에서 점차 내향적 성찰과 침묵으로 이행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서정시와 담시, 희곡, 담론 등을 뭉뚱그려 보면 발언의 총량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시의 경우, 초기의 풋풋하고 피맺힌 절규와 중기의 무성한 '구라'가 점차 잦아들어 필경 잎 떨군 앙상한 가지처럼 짧은 시행 몇 줄만 남았다가 마침내 묵언(默言)으로 접근하지만, 이와 반비례하여 이른바 사상 담론은 풍성해지고 다양해진다. 초기의 김지하는 글을 통한 발언이 왕성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글의 양은 줄어들고 말의 양은 많아지는 것이다.

광대는 언제나 관객과 몸짓과 사설로 댓거리한다. 김지하도 언제나 관객에게 직접화법으로 호소하기를 좋아한다. 그가 글보다 말 쪽으로 쏠린 것은 광대의 체질상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지하는 1980년대 이후 주로 시사적 화제의 대상으로만 주목을 받았다. 그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침묵은 이유야 어떻든 우리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현상을 간과하는 직무유기일 것이다. 이제는 그의 말과 글, 즉 텍스트 전체를 차분하게 검토할 때가 되었다. 김지하가 없었다면 20세기 후반부의 한반도는 얼마나 쓸쓸하고 헐벗은 적막강산이었을까.

그러나 김지하라는 큰 산은 틈이 많은 빈 산이다. 노년의 김지하는 청년 김지하 자신을 부인하는 듯한 자기모순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필화사건을 일으킨 문제의 장시 「다라니」와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같은 시론(時論)들, 심지어는 그의 난초 그림과 병(病)과 침묵까지도 함께 거두어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그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 30년 군사독재의 격랑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과 거기서 태어난 자들이 할 일이 아닐까.

이 글은 2002년 2월 문예미학회에서 염무웅 선생 회갑기념 특집호로 발간한 논문집 『민중문학』에 실린 졸고 「광대(廣大)의 상상력과 장광대설(長廣大舌)」을 축약, 수정한 것이다. 앞으로 이 논문을 수정, 보완하여 본격적인 김지하론으로 발표할 생각이다.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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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허
2022-06-18 13:16:2300
인간의 오만함이 어떻게 스스로를 망가뜨리는지 온몸으로 보여준 광대입니다. 박원순과 더불어 삶의 씁쓸함을 크게 던져주신 분입니다. 아무리 추어올리려고해도.... 억압에 의한 것도 아닌 그저 개인의 욕심으로 스스로 어둠으로 걸어들어간 이 시대의 다스베이더로 기억할렵니다.

[김삼웅] 김지하 평전 | 72화절필선언과 은둔ㆍ칩거ㆍ투병 - 오마이뉴스

절필선언과 은둔ㆍ칩거ㆍ투병 - 오마이뉴스


[김삼웅의 인물열전] 시인 김지하 평전 | 72화

절필선언과 은둔ㆍ칩거ㆍ투병[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72] 그는 늘 심한 병환에 시달렸다
22.08.21 
김삼웅(solwar)



▲ 우리 옛 신화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강조하는 김지하 시인 우리 옛 신화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강조하는 김지하 시인
ⓒ 정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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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시집 <흰 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의 출간과 함께 절필을 선언한 그는 원주의 자택에서 은둔, 칩거, 투병생활로 여생을 보내었다. 2019년 11월 25일 아내 김영주를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는다. 아내는 그동안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아왔다.

시인의 사후 추모문화제에서 '미발표 시 8편'이 소개되었다. 절필선언 후에 쓴 것인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교감>, <헌화>, <열리리>, <심화(心火)>, <사랑은 공경>, <처용>, <살아라>, <하늘세계> 등이다. 하나 같이 짧은 내용을 담고 있다. 네 수를 소개한다.

교감


내가 멀리서
너를 부르면

청산이어라

강물이어라
구름이어라.

헌화

뜨겁고
붉은 사랑이로라
이 늙음
아니 부끄리시면
절벽 위
꽃 꺾어
고이 바치리
뜨겁고
붉은
어허, 사랑이로라.

열리리

열리리 열리리
꽃 같은
한 사랑이면
천지 장벽
사람 그늘
열리리 열리리
꽃 같은
한 사랑이면.

심화

밤은 꿈속에 타고
꿈은
몸 속에 타고
아아
불타는 하늘
불타는
님의 눈빛. (주석 7)

▲ 김지하와 그의 신간. 김지하와 그의 신간.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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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심한 병환에 시달렸다. 1991년 2월에 쓴 '고백'을 들어보자.

"나의 병명은 심한 정신분열증이었고, 두 번이나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치료는 끝났다. 그러나 이것이 내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정신분열은 결코 유전이 아니다." (주석 8)

사형선고를 받고 얼마 후 무기형 그리고 다시 얼마 지나서 석방한 박정희 정권을 향해 "내가 미쳤는지 시대가 미쳤는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할 만큼 그는 광란의 권력과 최전선에서 맞서다 광기를 갖게 되고, 그런 중에서도 담시, 서정시, 희곡ㆍ생명사상ㆍ울려사상 등 빼어난 작품과 철학사상을 남겼다.

"얼마간의 광기가 없으면 시인이 되지 못한다." - (M.T. 키케로)고 했던가. 세계문학사에 큰 별이 된 문인ㆍ철학자ㆍ사상가 중 병고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 시인 김지하 <유목과 은둔> 마산문화문고 시인 김지하 <유목과 은둔> 마산문화문고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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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문학의 거장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에서 몇 사람의 사례를 찾는다.

무엇보다도 정신의 생명력이 이 병들고 쇠약한 육체를 이겨낸, 이러한 인간승리는 유례없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병자였고, 그의 청동 같은 불후의 명작은 부서지고 무력한 팔다리에서, 경련을 일으키며 가물가물 타오르는 정신의 불꽃에서 얻어낸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의 몸 한가운데 가장 위험한 병이 도사리고 있었고, 이는 영원히 현현하는 무서운 죽음의 표상인 간질병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가 예술활동을 펴온, 삼십 년간 간질을 앓았다. (주석 9)

병리학적으로 볼 때 횔덜린에게는 명백하게 드러난 파멸은 없었고, 건강한 정신과 병적인 정신 사이의 명확한 경계선도 없었다. 횔덜린은 아주 서서히 내면으로부터 불이 붙은 것이다. 광기의 힘은 깨어 있는 그의 이성을 산불처럼 눈깜짝할 사이에 태워 버린 것이 아니라,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타고 있는 불마냥 서서히 태웠던 것이다. 그의 존재의 일부인 신적인 부분만이, 다시 말해서 시와 가장 잘 결합되어 있는 부분만이 석면(石綿)처럼 저항했다. 그러니까 그의 시적 통찰력은 광기를 극복했고, 선율은 논리를, 리듬은 언어를 극복했다. 어쩌면 횔덜린은, 시가 이성보다 더 오래 지속되어 파멸의 상황에서도 절대적 완성에 이른 유일한 예가 될 것이다. (주석 10)

머리를 마비시킬 정도로 지끈지끈 쑤시는 두통으로, 니체는 비틀거리며 몇날 며칠 동안 감각을 잃고 소파와 침대의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각혈을 동반한 위경련ㆍ편두통ㆍ신열ㆍ식욕부진ㆍ무력감ㆍ치질ㆍ변비ㆍ오한과 밤이면 식은땀을 흘리는 증세, 그리고 오싹할 정도로 나쁜 혈액순환이 끔찍한 병마령들이다. 게다가 거의 장님에 가까울 정도로 나쁜 혈액순환이 그 끔찍한 병마령들이다. 게다가 '거의 장님에 가까울 정도로 나쁜, 두 눈'은 조금만 무리를 해도 곧 부어오르며,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정신노동자인 그는 두 눈의 시력으로는 '하루에 한 시간 반' 이상 일할 수 없었다. (주석 11)


주석
7> <추모문화제 자료집>, 76~77쪽.
8> <뭉치면 죽고 헤치면 산다>, 37쪽.
9> 슈테판츠바이크, <천재와 광기>, 97쪽.
10> 앞의 책, 265쪽.
11> 앞의 책, 3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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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삼웅의 인물열전] 시인 김지하 평전 | 73화

마지막 산문집 '우주생명학'[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73] 76세이던 2017년 초 절필을 밝히면서 그동안에 남긴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22.08.22 
김삼웅(sol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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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김지하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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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후반이면 건강한 사람도 기력이 크게 쇠약해진다.

긴 옥살이와 고문을 겪고 정신적 고뇌, 여기에 시대와 불화 그리고 거듭된 필화ㆍ언화로 입은 마음의 상처는 쉬이 씻기지 않고 쇠약해진 영육을 갉아먹다.

76세이던 2017년 초 절필을 밝히면서 그동안에 남긴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하나는 앞에 소개한 마지막 시집 <흰 그늘>이고 나머지가 신작 산문집으로 정리한 <우주생명학>의 원고였다. 마지막 저서 두 권을 펴낸 손정순(시인ㆍ<쿨트라> 발행인)의 증언이다.

2017년 1월 지하 선생님께서는 나를 원주로 부르셨다. 홍용희 교수와 함께 원주 댁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시내 카페로 갔다. 선생께서는 2014년 갑오(甲午) 12월 15일부터 2016년 12월 31일까지 2년에 걸쳐서 쓴 원고뭉치를 내밀었다. 1권의 시집 노트와 우주생명학에 대해 당신의 생각을 매일 쓴 노트 4권이었다. 선생께서는 매체에 한 번도 발표하지 않은 미발표 신작 시집 <흰 그늘>과 신작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내게 맡기며, 생전에 펴내는 '마지막 저서'라고 선언하셨다.

출판계약서에 사인하시는 선생님께 글을 안 쓰시면 많이 외로우실 텐데 앞으로 어떻게 지내실지 여쭈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제 그림만 그리시겠다고 하셨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믿지 않았다. (주석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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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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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생명학>은 1부 <궁궁弓弓 유리 화엄 대개벽>, 2부 <우주생명학(1)>, 2부 <우주생명학(2)>, 3부 <우주생명학(3)>으로 구성되었다. 서문이다.

나는 최근 누군가를 나도 모르게 더듬어 찾고 있었다.
누굴까?
잃어버린 선생 수운(水雲)이시다.
그런데 겨울 어느 날 선생님이 오셨다.
그래서 이 책이 시작된다.
모른다.
나는 이 책이 이제부터의 이 나라와
세계의 길이라는 것, 그것뿐!
그리고 짧은 '시김새'와 함께
나는 이제 어릴 적의 한(恨)〈그림〉으로.
그리고 저 산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뿐! (주석 13)

마지막 저서 <우주생명학>은 240쪽에 불과한 산문집이지만 그의 사유와 사상ㆍ철학이 오롯이 담긴 역저이다. 주제에 따라서는 섹트와 픽션이 섞이고 실제와 상상력이 부딪치는 등 논리성은 부족하지만, 그만이 갖고 있는 사유의 세계를 여전히 식지 않은 입담과 필력으로 종횡무진한다. 다음 대목을 보자.

미국 노암 촘스키가 인정했듯이 한국은 지난 60여 년 동안에 어렵게도 그 엄혹한 분단 속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였다.

이제 새로운 국가목표가 제시되고, 근본적인 요구인 '남녀ㆍ음양ㆍ빈부'등의 본질적 해방과 평등이 성취되는 '통일'과 '동서사상 화합'과 세계 인류의 새 길을 이끌어 갈 '참 메시지 민족의 길'을 창조해야 하고 우주와 생명의 큰 변화 속에서 참다운 '선후천융합대개벽(先後天融合大開闢)'을 이루어야만 한다.
그것이 '궁궁弓弓 유리 화엄 대개벽'이다.

이미 다 공언되어 있듯이 '궁궁(弓弓)'은 동학의 진정한 세계상이요, '유리'는 정역(正易)의 앞으로 올 춘분ㆍ추분 중심의 4천년 유리세계와 '세계 여권운동'의 상징적 목표인 '유리천정'의 그 '유리'다. 그리고 당나라 여자 임금 측천무후가 창안한 상업시장인 '유리창'의 표현이다. (주석 14)

김지하가 말년에 쓴 원고를 정리하여 마지막 책으로 엮은 손정순의 견해이다.

김지하 시인 스스로가 2여 년의 시간을 통과하며 그의 시학과 미학사상을 정리하며 펴낸 시집 <흰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은 한 개인의 문학사적 위치와 작품의 성과를 묻기에 앞서, 온갖 모순과 혼돈으로 점철된 21세기 속에서 우리의 동질성과 주체성을 어떻게 세워갈 것인가 하는 새 길, 새 문명에 대한 질문과도 맞닿아 있기에 더욱 의미 있는 작업이라 믿는다. (주석 15)


주석
12> 손정순, <김지하의 시학과 미학사상을 정리한 마지막 저서>, <쿨투라>, 2022년 7월호.
13> <우주생명학>, <작가의 말>, 작가, 2018.
14> 앞의 책, 12쪽.
15> 손정순, 앞의 책, 81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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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is classic text, Thomas Merton offers valuable guidance for prayer. He brings together a wealth of meditative and mystical influences-from John of the Cross to Eastern desert monasticism-to create a spiritual path for today. Most important, he shows how the peace contacted through meditation should not be sought in order to evade the problems of contemporary life, but can instead be directed back out into the world to affect positive change.

Contemplative Prayer is one of the most well-known works of spirituality of the last one hundred years, and it is a must-read for all seeking to live a life of purpose in today's world.

In a moving and profound introduction, Thich Nhat Hanh offers his personal recollections of Merton and compares the contemplative traditions of East and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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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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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Readers] will find Contemplative Prayer valuable. Merton shows that all living theology needs to be rooted in exercises where men somehow happily establish contact with God." --New York Times Book Review

From the Inside Flap
This is Thomas Merton at his contemplative best, applying ancient wisdom to the longings of our age through his thoughtful commentary on Scripture and important writers of the Western spiritual tradition.

About the Author
THOMAS MERTON (1915-1968), Trappist monk, author, and peace activist, came to international prominence at a young age with his classic autobiography, The Seven Story Mountain. Over the rest of his life he wrote prolifically on a vast range of topics, including prayer, interior growth, social responsibility, violence, and war. Toward the end of his life he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introducing Eastern religions to the West. He is today regarded as a spiritual master, a brilliant religious writer, and a man who embodied the quest for God and human solidarity in the modern world.

THICH NHAT HANH is an internationally respected Zen poet and teacher. He is the author of numerous bestselling books, including Zen Keys and Living Buddha Living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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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details
Publisher ‏ : ‎ Image; New edition (31 January 2000)
Language ‏ : ‎ English
Paperback ‏ : ‎ 1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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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Merton



Thomas Merton (1915-1968) is arguably the most influential American Catholic author of the twentieth century. His autobiography, The Seven Storey Mountain, has millions of copies and has been translated into over fifteen languages. He wrote over sixty other books and hundreds of poems and articles on topics ranging from monastic spirituality to civil rights, nonviolence, and the nuclear arms race.

After a rambunctious youth and adolescence, Merton converted to Roman Catholicism and entered the Abbey of Gethsemani, a community of monks belonging to the Order of Cistercians of the Strict Observance (Trappists), the most ascetic Roman Catholic monastic order.

The twenty-seven years he spent in Gethsemani brought about profound changes in his self-understanding. This ongoing conversion impelled him into the political arena, where he became, according to Daniel Berrigan, the conscience of the peace movement of the 1960's. Referring to race and peace as the two most urgent issues of our time, Merton was a strong supporter of the nonviolent civil rights movement, which he called "certainly the greatest example of Christian faith in action in the social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For his social activism Merton endured severe criticism, from Catholics and non-Catholics alike, who assailed his political writings as unbecoming of a monk.

During his last years, he became deeply interested in Asian religions, particularly Zen Buddhism, and in promoting East-West dialogue. After several meetings with Merton during the American monk's trip to the Far East in 1968, the Dali Lama praised him as having a more profound understanding of Buddhism than any other Christian he had known. It was during this trip to a conference on East-West monastic dialogue that Merton died, in Bangkok on December 10, 1968, the victim of an accidental electrocution. The date marked the twenty-seventh anniversary of his entrance to Gethse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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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J. Robinson
5.0 out of 5 stars Not a 'How to' book but an insight into a traditionReviewed in the United Kingdom on 11 May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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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ton's writings (1915-1968) inspire us to understand more about the depths of early Christian life. This prolific writer could take a lifetime to read and his insights into the spiritual life (not only in the Christian tradition) are profound. This book on contemplative prayer is not a 'how to' book on how to pray in a contemplative way - for that you will need to seek elsewhere among the bookshelves. This book explores the history of monastic prayer and contemplation and provides a comprehensive background for anyone who wishes to gain an insight into what prayer and meditation means. The first half of the book (up to chapter XI) is more about the history of contemplation and has an academic flavour.

The second half of the book from page 82 onwards (Chapter XI) is perhaps the core of the work. As it states on the back cover Merton stresses we shouldn't look for a 'method' or a 'system' in meditation but cultivate an 'attitude' or 'outlook'. Chapter XI (page 82) begins 'What is the purpose of meditation in the sense of "the prayer of the heart"?' and from this moment on Merton unfolds to the reader what contemplation should really be about. Some key words and phrases are 'purity of heart', 'surrender', 'listening in silence', 'the incomprehensibility of God'. There is so much more for each reader to mine from this short but deep work (144pp). The second half of this book requires short bursts of reading and contemplation on each concept in order to fully appreciate what Merton is saying to the hopeful contemplative in this modern day. It is not an easy path and a lonely one but one worth following and one that is sorely needed at this time. A worthwhile read particularly the second half of the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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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
5.0 out of 5 stars An amazing book- a fantastic resource particularly for those who practice ...Reviewed in the United Kingdom on 24 Decemb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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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amazing book- a fantastic resource particularly for those who practice contemplative or centering prayer. Merton's insights about the process of contemplative practice is both informative and capable of occasioning new developments in one's practice itself. His explanation of the history and development of contemplation places the practice in its theological and liturgical context, and allows one to relate contemplation to the wider experience of th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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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B.
5.0 out of 5 stars Contemplative prayer made easierReviewed in the United Kingdom on 25 April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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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ellent explanation of the approach to Contemplative Pr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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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zel
5.0 out of 5 stars ExcellentReviewed in the United Kingdom on 4 Octo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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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ted to read more of Thomas Merton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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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Cullaigh
5.0 out of 5 stars Excellent. Exactly what I was looking forReviewed in the United Kingdom on 28 Octob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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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ellent. Exactly what I was looking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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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장자의 평화 공동체와 평화 경제

노자, 장자의 평화 공동체와 평화 경제


평화연구(이론)-평화학/평화공동체(도시, 마을)
노자, 장자의 평화 공동체와 평화 경제
김승국 2009. 5. 22. 20:17



김승국

Ⅰ. 무위의 평화 공동체

노장(노자․장자)은 임금도 관리도 없는 문명 이전의 무위자연(無爲)을 선망한다. ‘무위’는 ‘무인위(無人爲)’ 또는 ‘무치(無治)’를 뜻하며, ‘자연’은 문명 이전을 의미한다. 노장이 살았던 당시의 민중들은 수백 년간 지속된 전쟁과 착취로 유랑민이 되어 도둑이 되지 않으면 처자식을 노예로 팔아 먹는 난세에 진저리를 내고 있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천하에 무엇을
요구하기보다는 자신들을 괴롭히지 말고 잊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소망은 자유와 해방이었다. 이것은 ‘격양가(擊壤歌)’의 소망이기도 하다. 그들의 소망이란 지극히 소박하여 임금이 누구인지, 관장이 누구인지 모르고 아무 간섭 없이 농사를 짓고 우물을 파서 등 따뜻하게 먹고 마시는 것 뿐이었다.(기세춘, 2006, 407-408)

임금이 누구인지, 관장이 누구인지 모르고 아무 간섭 없이 농사를 짓고 우물을 파서 등 따뜻하게 먹고 마시며 격양가를 부르는 ‘무위의 평화 상태’를 고대 중국의 민중들이 염원했다. 이러한 ‘무위의 평화 상태’를 민중들이 집단적으로 실현하면 ‘무위의 평화 공동체’가 이룩되며, 이게 잘사는 것의 요체이다.

노장의 무위의 평화 공동체는, 유가․법가의 ‘유위(有爲, 부국강병)에 의한 평화 공동체’와 큰 차이가 있다. 무위의 평화 공동체는 무치를 기본 덕목으로 삼는다. 노장이 말하는 무치의 평화 공동체는 공동소유제를 필수조건으로 삼는다. 국유제나 사유제는 공동체 사회를 이룰 수 없다. 공동체론에서 소유의 문제가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소유 문제와 관련된 노장의 아래와 같은 논술을 통하여, 무위의 평화 공동체가 갖춰야 할 평화 경제체제를 모색한다.

① 무위자연의 성인은 재물을 사유하지 않는다. 남을 위할수록 자기는 더욱 부유하고, 남에게 덜어 줄수록 자기는 더욱 많아진다.({노자(老子)} 81장) ② 순임금이 그의 스승인 승(丞)에게 물었다. “도를 터득하여 소유할 수 있을까요?” 승이 답했다. “네 몸도 네 소유가 아니거늘 어찌 도를 소유할 수 있겠는가?” 순임금이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면 누구의 소유란 말입니까?”라고 묻자, 승이 말했다. “이것은 천지가 너에게 맡겨 놓은 형체이다. 생명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 놓은 음양의 화합이다. 본성과 운명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 놓은 순리(純理)이다. 자손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 놓은 허물이다.”({장자(莊子)} 외편(外篇) / 지북유(知北遊)) ③ 남월(南越)에 한 고을이 있는데 이름을 건덕(健德)이라고 했다. 건덕의 백성은 어리석고 순박하며, 사심이 없고 욕심이 적었으며, 경작할 줄은 알지만 사유(私有)할 줄은 모르며, 남에게 주는 것은 알지만 보답을 구하지 않고, 의(義)에 따르는 것도, 예(禮)에 순종하는 것도 모른다. 제멋대로 함부로 해도 결국은 대도(大道)로 나아갔다. 살아서는 즐겁고 죽으면 장사 지냈다. 원컨대 군주께서도 나라를 버리고 세속을
털어버리고 무위자연의 대도와 더불어 서로 손잡고 나아가기 바란다.({장자} 외편/ 산목) ④ 대동(大同)세계에서는 사사로운 자기가 없다(無己). 자기가 없는데 어찌 소유를 얻으려 하겠는가? 소유를 가르치는 자는 옛 군자요 무소유를 가르치는 자는 천지의 벗이다.({장자} 외편/ 재유)

위의 논술을 읽고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노장의 무소유․무위 평화 공동체를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는 있는데, 이를 집단적(공동체적)으로 실현하는 경제체제가 가능한가? 무위의 평화 공동체를 지탱하는 평화 경제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한 대답, 즉 ‘무위의 평화 공동체를 위한 평화 경제의 길’이 노자 80장에 제시되어 있는데, 그 전문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小國寡民(나라는 작고 백성도 적어야 한다)
使有什伯之器而不用(백성들이 갖가지 기계를 가졌다 한들 사용하지 않으며)
使民重死 而不遠徙(백성들은 죽을 때까지 공동체에서 멀리 쫓겨나지 않는다)
雖有舟輿無所乘之(비록 배와 수레가 있으나 탈 일이 없고)
雖有甲兵無所陳之(비록 무기와 병사가 있다 한들 배치할 곳이 없다)
使人復結繩而用之(사람들이 옛날처럼 새끼줄로 의사표시를 하게 하고)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음식을 달게 먹고 옷을 아름답게 입고 거처를 안락하게 하며)
樂其俗(법이 아니라 옛 풍속대로 즐거워한다)
隣國相望(이웃 나라를 서로 바라보며)
鷄犬之聲相聞(개와 닭의 울음소리를 서로 듣지만)
民至老死 不相往來(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1. {노자} 80장 분석

홍성화는 「老子小國寡民論의 社會經濟史的 기원」에서 {노자} 80장을 네 가지로 분류하며 설명한다.

1) ‘使民重死而不遠徙…民至老死 不相往來’는 농업공동체 사회를 지향한다

이 구절은 두 가지 측면에서 파악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① ‘遠徙(이주를 멀리한다)’가 의미하는 것 ② ‘不相往來’가 의미하는 것이다. ‘使民重死而不遠徙’라는 구절은 전국 시대에 횡행했던 徙民(民의 이주)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된다. 전국 시대의 사민(徙民) 정책은 ‘작(爵)’과 ‘복(服)’을 통한 새로운 읍제적(邑制的) 질서의 확립, 병농(兵農) 분리 등을 목적한 ‘부국강병책’이었다. 결국 ‘遠徙(이주를 멀리한다)’의 의미는 ① 백성들이 ‘사(徙)’하지 않을 정도로 생산의 안정이 담보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② 당시에 횡행하던 사민정책, 즉 전국 시대 각국 부국강병책에 의해 백성의 거주지를 이리저리로 옮기거나, 국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재편되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 다음으로 ‘民至老死 不相往來’의 의미이다. 이 구절은 거주지를 빈번하게 옮기는 상업 종사를 지양하고, 바로 백성이 정주함으로써, 농업을 영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민(民)’은 ‘공(工)’․‘상(商)’을 포함한 일반 피지배자 전체를 막연하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한정적으로 농민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자} 80장의 ‘雖有舟輿,無所乘之’는 거주지를 빈번하게 변동시키는 상업의 종사에 대한 우려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民至老死 不相往來’라는 구절은 ① 상업의 종사로 인한 주곡(主穀) 생산에 대한 방해와 향촌 공동체의 유대의 파괴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는 것이고 ② 주곡 생산에 집중함으로써 농업생산력의 안정을 도모하였던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민(寡民)’의 의미는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재생산 단위가 축소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구성원 역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적극적으로는 당대에 활발하게 시행되었던 사민정책과 같은 인위적인 거주지 재편을 반대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 빈번한 사민정책의 실시와 백성들의 상업 종사로 인한 거주지 변동을 지양하고, 정주를 통해 소규모 농업 공동체로의 복귀를 지향
한 것이다.

2) ‘使有什伯之器而不用…雖有舟輿無所乘之, 雖有甲兵無所陳之, 使人復結繩而用之’는 이기(利器)와 문자에 대한 성찰을 나타낸다

전국 시대 이후의 경우, 이기(利器)의 사회적 기능은 생산력의 증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방 단위에 보급을 통하여 향촌의 통치를 공고히 하고, 보다 풍요한 삶의 보장을 통해 국가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여, 여기에 다시 수탈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문자 역시 그 사회적 기능은 의사표현과 그 소통의 수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사물의 질서를 이념적으로 정당화하였다. 그러한 문자의 보급은 지식의 보급으로 연결되었고, 지식에 의해 ‘노심자(勞心者)’와 ‘노력자(勞力者)’의 구분을 성립시켰다. 문자와 마찬가지로 지식 역시 사회․경제적 재생산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필수적인 기제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자 에서는 이미 문자와 ‘什伯之器’ 그 자체의 폐기는 이미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인식하였으며, 그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도로 축소 ― 의사소통의 경우 ‘結繩’ ― 함으로써, ‘자연’으로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인식하였다.

3) ‘甘其食,美其服,安其居,樂其俗’은 이상(理想)사회론을 반영한다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은, ‘(王이 백성들에게) 그 고을(其)의 음식을 달게 여기게 하고(甘其食), 자기 고을(其)의 복장을 아름답게 여기게 하며(美其服), 그 풍속에 편안하게 하고, 그들의 주거지를 즐기도록 해 줘야 하는 이상사회’를 지향한다.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은 모두 동사와 목적어 사이에 ‘其’를 넣고 있다. 이 ‘其’는 원래 스스로 그러한, 다시 말해서 개별적인 자연 향촌의 고유한 ‘그 지역의 음식’․‘그 지역의 복식’․‘그 지역의 주거 형태’․ ‘그 지역의 풍속’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즉 ‘소국과민(小國寡民)’을 통해 인간의 고유한 감각 등이 회복될 뿐만 아니라, 인위적으로 변형된 제국(帝國)의 통일정책에 따른 파괴에서 벗어나서, 자연촌락의 각각의 개별적 고유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고, 그 ‘其’됨의 회복이야말로 ‘자연’의 회복인 것이다. 통치자의 사민정책과 사회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스스로 그러한(自然)’ 인간의 제 감각과 향촌의 고유한 질서가 사라졌는데, ‘소국과민(小國寡民)’을 통해 인간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국 시대의 국가는 경제적으로는 ‘사민분업(四民分業)’을 기반으로, 사회적으로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차이를 조정하고 매개하는 것을 통해 그 정당성을 획득하였다. 그러므로 ‘소국과민(小國寡民)’을 통한 백성들의 농업으로의 집중은 이 모든 차이를 무화(無化)시킴으로써, 기존 국가 지배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처럼 국가의 향촌 지배의 정당성이 사라질 때, 비로소 원래의 향촌이 지녔던 ‘자연’을 회복할 수 있다.

4) ‘小國寡民…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의 규모

‘소국(小國)’이라고 할 때, 그 규모는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가 추론해 볼 수 있는 단서는 ‘隣國相望’하는 거리를 ‘닭과 개가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는 정도’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국(國)’의 규모는 닭과 개의 소리가 들리는 정도로 상정하고 있다고 해도 무리는 없으리라. 닭과 개가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는 거리는 현실적으로 ‘인읍(隣邑)이 상망(相望)’할 정도의 거리, 즉 읍(邑) 정도의 규모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 시대에 들어와 邑과 ‘國’의 규모가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되었을지라도, 노자 에서 상정하였던 ‘國’의 규모는 실제로는 邑 정도의 규모였던 것이다. 邑의 구조는 예전의 촌락보다 우월한 것이어서 백성들이 즐겨 이주할 수 있는, 그 당시로서는 모범적인 촌락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邑 내에 이(里) 단위로 부락이 편성되어 있고, ‘천맥(阡陌)’으로 경지가 바르게 구획되어 있으며, 가옥과 생활용구가 잘 구비된 형태가 전국 시대의 모범적인 邑의 구조였던 것이다.
이처럼 재생산 단위가 邑 정도로 축소된다면, 국가라는 상급 공동체에 대한 공납이 현저히 줄어들게 되며 단지 邑 공동체를 유지하는 정도, 즉 邑 단위의 공동작업에 대한 정도로 필요노동 부분의 잠식은 그치게 될 것이다. 그 나머지 부분은 백성들의 재생산 부분으로 투하될 수 있을 것이다. 재생산 단위가 축소되면서 상급단위에 대한 공납이 줄어드는 효과뿐만 아니라, 국내의 노동력 재분배와 지휘를 둘러싼 여러 행정처리 역시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는 행정처리의 양 때문에 분리될 수밖에 없는 노심자(勞心者)와 노력자(勞力者)가 분리될 여지를 축소시키는 것이며, 그에 따라 서주(西周) 이래 지배층으로 군림해 온 관료층의 존립 근거가 소멸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다면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의미는 국가라는 형태를 완전히 배제한 아나키스트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급 공동체라는 형태를 유지하면서, 다만 재생산 규모를 가능한 한 최소한 규모로 축소하는 정책이라고 보아야 한다.

Ⅱ. 지역 공동체가 해답

위와 같은 노자 80장 분석에 나오는 지역 공동체(小國․邑․향촌․자연 촌락)는 ‘인간답게 두루 잘살 수 있는 평화 공동체’를 가리키며, 이 평화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평화 경제가 가능함을 일러준다. 국가가 아닌 지역 공동체에 평화 공동체․평화 경제의 해답이 있음을 암시한다.

노장(노자․장자)이 말하는 지역 공동체의 단위는 ‘속(屬)’이었다. 屬은 삼향(三鄕) 또는 십현(十縣)을 묶어 그 경내의 백성들이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공산(共産)․공생(共生)함으로써 유랑하는 일이 없도록 한 것이다. 장자의 ‘연속기향(連屬其鄕)’은 노자 19장의 ‘영유소속(令有所屬)’과 같은 맥락이다. 屬이란 원래 인구 5∼10만의 오늘날 군(郡) 정도의 지역 자치 단위를 말하는 것이다. 당시 군사 조직도 속 단위로 편성되었는데 한 소속(所屬)은 약 3,000명 정도였던 것 같다.(기세춘, 2006, 419, 421쪽)

노자의 ‘영유소속’은 당시 수백 년간 지속되어 온 전란으로 땅을 잃고 유랑하는 백성이 넘쳐나는 실정에서, 이들 유랑민을 속 단위의 지역 공동체에 수용하여 부양을 책임지게 함으로써 구제하는 정책이었다. 이러한 정책은 백성들 각자가 소속 공동체를 떠나거나 다른 공동체로 유입되는 것을 통제할 필요에서 시행되었다.(기세춘, 2006. 423)

{장자} 外篇/ 馬蹄에 “덕이 지극한 세상에서는 거동이 편안했고 생활이 순박하고 한결같았다. 당시에 산에는 길이 없었고 못에는 배와 다리도 없었고 각기 마을을 지역 공동체인 屬으로 결집하여 살았다. 가족처럼 만물과 어울려 벗이 되었으니, 어찌 군자와 소인의 차별을 알겠는가? 그러나 성인(군왕)이 나타나 절름발이가 뛰듯 인(仁)을 만들고 발꿈치를 들고 달리듯 의(義)를 만들어 천하에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는 문구가 나온다.

군왕․국가가 나타나 屬이라는 지역 공동체에 갈등을 유발했는데, 갈등유발의 주범이 유가의 인(仁)․의(義) 이데올로기임을 이 문구는 강조한다. 이 문구는 평화 공동체의 단위가 국가가 아닌 지역 공동체(屬)라는 무정부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노장은 공맹(공자․맹자)의 왕도를 반대하고 무정부주의적 소국연합 내지 연방제를 선호했다.(기세춘, 2006, 424)

노장(노자․장자)은 소규모 지역자치 공동체를 지향했다. 이 점에서 부국강병 주의를 주장한 법가(法家)는 물론이거니와 소국 연방제적인 왕도주의를 주장한 유가들과는 첨예하게 대립된다. 2400년 전 노장의 무정부적 공동체는 너무도 혁명적인 것으로 19세기 서양의 아나키즘을 연상하게 한다. 이것은 19세기에 푸리에(F. M. C. Fourier)가 시험한 1,620명 소규모
산업공동체인 팔랑주(Phalange)의 효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노장이 성인과 왕도를 부정하고 소규모 지역 공동체의 자주독립을 주장한 것은 마치 국가는 인격이 없는 팔랑주의 ‘연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아나키스트들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기세춘, 2006. 417)

Ⅲ. 난제들

노장은 屬이라는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大同(큰 도리가 행해지는 공평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대동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노장의 세계관을 현대 사회에 적용할 때 아래와 같은 난제가 뒤따른다.

① 현대와 같은 대국과민(大國過民)의 세상에서 노자 80장의 ‘소국과민(小國寡民)․무위(無爲)의 평화 공동체’ 및 이를 위한 평화 경제가 가능한가? 노장의 농업공동체인 屬과 푸리에의 산업공동체인 팔랑주를 중심으로 21세기의 평화 경제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가? ‘21세기의 屬․팔랑주’가 성립 가능하다고 가정할 경우, 시장경제라는 복병을 이겨낼 수 있는가?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시장경제가 아닌 어떠한 대안경제체제로 ‘屬․팔랑주의 평화 경제’를 이룩할 수 있는가? 현대 경제의 시장 구조와 노장의 무위-무소유 평화 경제가 어울리는가? 평화․지역 공동체의 가장 큰 장애물은 시장 및 (시장을 엄호하는) 국가가 아닌가?

② 인간은 욕구하는 동물인데, 무위-무소유의 평화 공동체․평화 경제를 이룩할 수 있는가?

③ 노장의 소국과민의 생산관계를 통해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가?

위의 ①은, 인류평화의 영원한 난제이며 평화 경제의 영원한 숙제이다. 난제의 근원에 있는 시장․국가는 끊임없이 평화 공동체를 위협한다. 더욱이 21세기의 벽두에 횡행하는 신자유주의는 지구촌 차원에서 평화 공동체를 파괴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평화 파괴의 주범임이 세계 곳곳에서 증명되고 있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평화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운동가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들 운동가들은 ‘신자유주의 때문에 파괴된 평화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는 암호가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지역․평화 공동체에 있음을 절감’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시장․국가의 암초에 걸려 노자 80장과 같은 대동세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소국과민-국가-세계화의 3각 관계의 중간에 있는 국가를 건너뛰어 소국과민에서 세계화로 직행하는 전략이 요청된다. 계륵과 같은 국가를 우회하여 지역화(지역 공동체를 통한 평화 만들기)와 세계화를 연결하는 통로를 만드는 전략 없이 평화 경제체제 수립은 난망이다. 이 통로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평화 공동체 만들기 작업(몬드라곤 공동체, 지역화폐 사용하기, 제3세계 중심의 內發的 발전 모델 등)이 진행 중이다. 이들 작업이 아직은 암중모색이지만, 지역 공동체가 해답이라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는 것같다. 이미 ‘지역 공동체가 세계평화 공동체의 발신지라는 믿음체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 믿음체계를 중심으로 ‘소국과민-無爲 평화 공동체의 세계화’를 이루어 내고, 이 바탕 위에서 평화 경제체제를 수립하는 길만 남아 있다.

그러면 ②의 난제에 대답할 차례이다. 욕심덩어리인 인간이 무위-무소유의 평화 공동체․평화 경제를 이룩하는 것 역시 난제 중의 난제이다. 인간의 소비욕구가 어우러진 시장을 통하지 않고는 생존이 불가능한 현대 경제체제에서, 무위-무소유의 평화 공동체․평화 경제는 엄감생심(焉敢生心)인 듯하다. (욕구 및 욕구 충족의 체계로서의) 시민사회와 무위-무소유의
평화 공동체․평화 경제는 상충된다. 욕구의 확대 재생산을 중심적인 가치로 생각하는 근현대의 경제학을 근원적으로 수정하지 않고 무위-무소유의 평화 공동체․평화 경제를 내오는 것은, 동굴 속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암중모색이 가능하다. 암중모색의 차원에서 무소유의 사원(寺院) 경제, 사원 내의 무소유 평화 공동체, 소욕지족(少欲知足)의 경제학, ‘연기(緣起) 평화 공동체의 경제학’을 생각할 수 있겠다.(菅谷章, 2000, 44-56) 단순히 생각에 그치지 않고 타이의 사회참가형 불교 공동체 운동, 스리랑카의 사르보다야 운동, 간디(Gandhi)의 스와라지(swaraj) 운
동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반 일리치(Ivan Illich)의 ‘고유한(vernacular) 노동’을 즐기는 공생(conviviality)사회론, 폴라니(Karl Polanyi)의 시장 자본주의 비판에서도 이론적인 전거를 찾을 수 있겠다.

③의 난제와 관련하여 노장이 강조하는 소지역(마을․촌락․향촌․邑․屬) 공동체를 통해 생산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몬드라곤 공동체의 ‘생산관계를 통한 생산력 제고’를 거론할 수 있다. 이러한 ‘소지역 평화 공동체의 세계화(세계적인 연결망, glocal peace network)’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국가라는 상위의 공동체가 ‘소지역 평화 공동체의 세계화’를 저해하는 게 문제이다. 국가체제가 있는 한, ‘소지역 공동체 경제’가 국가경제의 희생물이 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국가가 장애물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국가라는 장애물을 넘어 풀뿌리 지역 공동체의 세계화를 이룸과 동시에 평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평화’라는 관문을 거쳐야 한다. 이 관문을 열기 위한 ‘지역의 평화’론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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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기세춘 {동양고전 산책(1)} (서울, 바이북스, 2006)
* 홍성화 「老子小國寡民論의 社會經濟史的 기원」 {대동문화 연구} 제35집, 1999
* 菅谷章 {社會科學と佛敎思想} (東京, 日本評論社,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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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311호에 실린 필자의 글「잘사는 평화 (10)」(2008.2.25)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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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eacemaking.tistory.com/171 [평화 만들기:티스토리]

2022/08/22

무라타 사야카 「신앙」──우리는 컬트 신자보다 「신자」일지도 모른다 - 사토 미나코 | 논좌 - 아사히 신문사의 언론 사이트

무라타 사야카 「신앙」──우리는 컬트 신자보다 「신자」일지도 모른다 - 사토 미나코 | 논좌 - 아사히 신문사의 언론 사이트

무라타 사야카 「신앙」──우리는 컬트 신자보다 「신자」일지도 모른다

사토 미나코 편집자·비평가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믿음이란?

 아베 전 총리 총격 사건의 용의자의 어머니가 구통일교회(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열심한 신자인 사실이 밝아지면서 이 교단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 사건의 야마가미 테츠야 용의자가 범행동기로서 인생과 가정을 망치게 된 것에 의한 교단에 대한 원한을 말하고 있는 이상, 주목받는 것은 당연하고, 이른바 종교 2세가 안고 있는 고통에는 더 더 빛이 맞으면 좋겠다. 또 영감상법이나 법외의 헌금액을 둘러싼 트러블 등으로 형사적발되어 온 교단이기 때문에 정치인과의 관계가 추궁되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사건의 충격이 크기 때문에 그 영향에 압도되어 우리 자신의 발밑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만들 수 없을까? 그 걱정에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특정 교단=악, 그 이외의 사람들=선' 혹은 '신흥 종교 신자는 특별하고, 자신들은 매우 보통'이라는 알기 쉬운 이원론에 빠지는 것이 무섭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포스트 트루스 시대에 들어갔다고 하는 요즈음은 객관적인 사실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콘텐츠, 보다 알기 쉬운 스토리, 가짜 뉴스 쪽이 큰 얼굴을 하고 있다. Q아논에게 해 카리스마 정치 지도자에게 해, 어떠한 대상을 「신앙」하는 행위·공기감은 점점 폭을 들게 해, 강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Shutterstock.com확대Orlowski 디자인 LLC/Shutterstock.com

 "특정 대상을 절대의 것으로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디지털 대사천)이 신앙의 하나의 의미라면 믿는 대상은 종교자(종교 조직)는 아니다. 「〇〇을 신앙하고 있다」등과 자각하지 않는 채, 실태로서 있는 대상에의 「신앙」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종교와는 보기에 무관하게 보이는 공간이다.

무라타 사야카의 '신앙'(문학 봄과 가을)확대무라타 사야카의 '신앙'(문학 봄과 가을)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서점에 발길을 옮겨 눈에 뛰어든 것이 무라타 사야카의 신간이다. 즈바리 『신앙』(문예춘추) 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단편&에세이집이다. 야마가미 용의자의 사건을 비롯해, 마음 흔들리는 뉴스의 충격에 무너지게 될 불안을 조용하고, 현재 일본에서 사는 사람들의 발밑을 비추는 작품으로서 추천하고 싶다. 무자각 가운데 빠져 있는 '신앙'의 세계를 그려, 그러한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도 깨닫게 해주는 작품집이기 때문이다.
쉽게 당길 수없는 자타 경계
무라타 사야카
확대작가·무라타 사야카
 서두의 표제작 「신앙」은, 주인공 「나」가 현지의 동급생·석모로부터 「새롭게 컬트 시작하지 않는다?」라고 초대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작품에서는, 컬트는 이미 돈벌이의 수단인 것으로 전제로, 석모는 그렇게 나누고 나서 「나」를 권유한다. 한편 '나'는 '원가 얼마?'가 입버릇의 현실주의자이며, '어린 시절부터 '현실'이야말로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진실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주위의 친구뿐만 아니라 어른에게까지, 상품과 원가의 카라쿠리를 폭파해, 설명해 돌린다.

 조금 높아도 좋아하는 브랜드품이나 기호품을 사고 싶은 친구들은 '나'의 충고를 점점 연기하고 싶어지게 되어, 그로써 주위가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나'도 느끼도록 되었다. 연인이나 소꿉친구와의 관계도 파탄하고, 여동생으로부터는 「언니의 「현실」은, 거의 컬트군요」라고 말해지는 시말. 여동생은 '나'와 달리 '꿈꾸기 쉬운 성격'으로 대학 중퇴 후 끌어당겼지만,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기업하기 위해 고액 세미나에 다녔다. 그런 여동생을 구출할 목적으로 친가로 돌아가 세미나 다니기를 막으려는 화살, 여동생이 던진 것이 앞의 대사다. 게다가 그 날 이후 여동생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

 '나'는 자신감을 없애고 '현실'에 대한 믿음에 흔들림이 생긴다. 또, 「사이카와씨」라고 하는 등장 인물은, 컬트에 빠져 가족에게 부담과 폐를 끼친 과거를 가지면서, 돈벌이가 목적이라고 알면서 석모와 함께 다시 컬트에 관여해, 한층 더 주재자로서 카리스마성을 발휘한다 . 흔들림을 안은 「나」는, 일찍이 놓친 동급생들의 고급 지향의 가치관에 종속하는 흔들림을 하거나, 사이가와씨에 접근하거나…

 계속은 꼭 본서에서 확인되고 싶지만, 우리가 무자각 가운데 너희를 묶고 있는 '신앙'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컬트 신자는 특별하고 자신은 보통 등으로 자신의 경계를 쉽게 당길 수 없는 일상 세계도 떠오른다.

선두  이전 12삼다음  끝
신앙을 지지하는 세상이란?

 무자각적인 ‘신앙’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에 이 책은 알아차려 준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각 편이 가지는 완만한 연결과 관련되어 있다. 발표순으로 늘어선 것은 아닌 이 배열은 각각 다른 설정이 사용되면서 한 권 전체를 바라보면 연속된 세계가 그려져 있다고 독자에게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 연결을 의식하는 것으로, 무자각적인 「신앙」과 친화성이 큰 요소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힌트를 준다.

 두 번째 작품 '생존'은 '65세 때 살아있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수치로 나타낸 것' = '생존율'이 생활의 지표가 된 일본이 무대이다. 그 수치는 “본인이 얻을 수 있는 수입 정도의 예측과 거의 비례하고 있다”. 80% 이상이 'A', 50% 이상이 'B', 10~49%가 'C', 9% 이하가 'D'로 순위가 매겨져 초등학교 성적표에 이미 이 랭크가 기록된다.

 주인공 여성 '나'는 'C'로 'A' 남자친구가 있지만 '생존율 어드바이저'라는 직업의 사람에게 만약 결혼해서 아이를 하면 65세가 되었을 때의 생존율 가 부부 모두 30% 이하가 된다, 등이라고 한다. 남친은 그래도 결혼에 대한 길을 찾지만 '나'는 조언을 담담하게 받아들여 이별 이야기를 잘라낸다. 「나」는 한층 더, 「야인」(일이 계속하지 않고 산에서 알몸 그대로 살게 되었다, 대부분이 구 「D」의 인간으로 차지된 존재)가 되려고 결심해…

 격차 사회가 도달하는 지점의 희화화, 라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지만, 「나」가 친구에게 말하는 다음의 말은 그러한 세계가 어떤 종류의 「신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받는 것도 가능하다.

「어쩐지, 우리, 어느새인가, 행동도 번식도 사고 회로도, 전부 「생존율」에 지배되고 있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바이러스에 침식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거야」
 여기에서는 '생존율'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다. 현대 세계가 비슷한 가치관에 침범하지 않는다면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야인」이 된 「나」의 그 후를 그린 듯이 읽을 수 있는 것이, 다음의 「토이 윤기【도미쿠쿠루오이오코루】」이다. 주인공의 언니는 3년 전 갑자기 '야생으로 돌아간다'고 말해 집을 나온 설정이 되고 있다. 이미 '야인'으로 '둥지'에 사는 언니를 찾는 주인공은 여성 친구 2명과 거리에서 계절감 없는 아파트에 살고 있어 3명의 아이를 원하기 때문에 내봄부터 인공 수정을 시작할 예정이다. 인간의 말을 풀고 있는지 의심해진 누나에게 주인공은 '둥지'로 자신의 근황을 보고하고…

 더 이상 같은 종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때까지 개가 엉망이 된 세계가 그려지는 것으로, 알게 된 신경이 쓰이는 이웃, 가족상이 상대화된다. 무자각단에 안는 이웃 신앙, 가족 신앙이 깨지는 것과 동시에, 다른 종이 되는 것으로 태어나는 관계성도 그려진다.

 어린 시절부터 '이미지 우주인'이라는 존재를 어떤 의미에서 신앙해온 작가 자신을 그리는 에세이 '그들의 행성으로 돌아가는 것'에서는 '나'에게 있어서는 그들(이미지 우주인)이 '인간보다 친숙한 존재였다”고 밝힌다.

 이어지는 단편 '컬쳐 쇼크'는 '컬쳐 쇼크 타운'을 여행중인 '나'와 '아빠'를 그린다. 평소 사는 도시의 이름은 '균일'으로, 이 세계에는 '균일'과 '컬쳐 쇼크'의 두가지 밖에 거리가 없다. 양세계의 말은 거의 통하지 않지만, 고생하고 통치하면 서로가 상대의 세계를 싫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컬쳐'=문화에 있어서 '균일'은 기분이 나쁘고 반대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 섞일 때는 메스꺼움을 교환할 수밖에 없고, 그 때 동시에 생기는 노래는 기분 나쁨에서 오는 절규와 종이 일중인 모습이 그려진다. 무자각 가운데 당연히 간주하고 있는 세계('신앙'적 세계)에서 벗어나려면 기분 나쁨을 맛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분 나쁜 것이 테마의 작품 뒤에 놓이는 것이 '기분 좋은 죄'라는 제목의 에세이이다. '다양성'이라는 말의 기분에 지고 다양성과는 상반되는 행위에 가담해 버린 것에 대한 작가 자신에 의한 후회와 참회가 철자된다. '안전한 장소에서 이물질을 캐릭터화하고 안심한다'는 '수용에 보여준 라벨링'이라는 것이다라는 말이 직계로 강도를 가진다.

 자신의 클론 4명과의 공동생활을 그리는 「쓰지 않았던 소설」은 「토이 윤기」와의 연속성이 강해, 동질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의 사이에 달리는 균열을 통과해, 동종이란? 이종이란? 라는 질문이 파헤쳐진다. 마지막에 놓인 '마지막 전람회'는 문화와 예술을 테마로 하는 점에서 '컬쳐 쇼크'를 시공간의 스케일을 확대해 전개시킨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무라타 사야카의 문장은, 예를 들면 주인공의 감정의 주름과 주름 사이에 들어가, 그 기복이나 정신의 운동을 간절히 그려 가는, 같은 세계는 아니다. 두께와 깊이를 갖춘 역사극이나 군상극을 그린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 세계를 그리는 것이 문학이라고 믿는 가치관을 오히려 상대화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안정된 자아, 같은 것을 자명의 전제로 주위의 현실을 모사하는 것이 소위 재래의 근현대 소설이라고 하면, 그러한 세계가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편의점인간』(분춘문고) 도 『생명식』(가와데 분고) 도 자연 스럽다.

 소설과 에세이가 혼재해, 기묘하게 사막으로 한 「신앙」의 작품 세계는, 「야인」 「우주인」 「번식」 「토기」라고 하는 말이 입체감을 가지고, 읽는 사람은 무심코 멈춘다. 완만한 ​​연결을 가진 본서의 각 편이 나타내는 것은, 「신앙」의 현재 형태와 그것을 성립시키고 있는 우리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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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일본 근세의 공공적 삶과 윤리 - 주자학 수용 이후 
고희탁 (지은이)논형2009-10-12



일본 근세의 공공적 삶과 윤리

대학교재.토익.자격증.취업 - 피너츠 굿즈, 분철 당일배송/분철 500원 쿠폰!
정가
22,000원

책소개

근세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책은 이 시기에 유입 된 주자학의 수용과 반발, 변용, 절충주의적 모색이나 해체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상적 패러다임을 모색했던 움직임을 살펴본다. '공'에 관한 문제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던 토 진사이, 오규 소라이, 모토오리 노리나가 등 주요 실천적 사상가들을 고찰하고 있다.

이 책은 근세 일본 사상과 그동안 깊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근세일본의 '공공성'담론과 민중의식에 관한 심화된 분석뿐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근대'를 재고하고 근대 전후의 서양 및 비동아시아 사상 등과의 비교사상사적 지평을 넓히는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목차
책을 펴내며

서장

1부 유학적 구도의 재편
1장 이토 진사이 ? 생활세계와 공공성 탐구
1. 생활세계의 발견과 유학적 구도의 재편
2. ‘천하공공의 도’와 정치 ? 사회에 대한 참가 ? 비판
3. 낮은 데서 높은 데로
2장 오규 소라이 ? 정치세계와 공공성 탐구
1. ‘정치’의 발견과 초월자로서의 ‘천’
2. 정치조직의 공공론
3. 공공적 주체형성론과 신국가질서의 구상

2부 유학적 구도를 넘어서
3장 이시다 바이간 ? 경제사회와 공공성 탐구
1. 상업세계의 사회적 위치
2. 초월적 ‘자연’의 내재화
3. 도시생활과 공공적 주체 ? 사회형성론
4장 안도 쇼에키 ? 자연경제사회와 공공성 탐구
1. 농촌세계의 현실과 수탈적 지배체제의 부정
2. 초월적 ‘자연’과 공공성 탐구
3. ‘자연’에 대한 고착과 풍토론

3부 ‘생’의 재편을 위한 틀의 모색
5장 모토오리 노리나가 ? 문학세계와 황국이야기
1. 문학적 내면세계의 탐구와 국학에의 계기
2. 문학세계의 주체형성론과 만세일계
3. 신도적 ‘자연’으로서의 황국 질서
4. 황국질서에 대한 귀의와 풍아
6장 니노미야 손토쿠 ? 자치세계와 공공성 탐구
1. ‘인위’의 재발견과 농촌 자활
2. 초월적 ‘자연’과 ‘왕도’론
3. 자치세계와 공공성 탐구

종장

참고문헌/찾아보기

접기
책속에서

근세 일본에 있어서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은 학문의 일반적 보급을 가져왔다. 17세기 중반 무렵 출판혁명이라고도 불리는 상업출판의 성립과 급성장에 따라 주자학적 구도의 수용 및 변용을 비롯하여 ‘공(公)’적인 것을 둘러싼 사상운동이 전개된다. 상층의 공적의식의 고양과 하층으로부터의 주체 형성 및 사회참가의식이 어우러져 생활세계 및 각 세계의 현장에 뿌리를 두면서도 공공적 세계로 바꾸어가려는 다양한 공공론적 탐구가 시도된다.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는 ‘천하공공의 도’라는 명제를 제기한다. 진사이의 ‘리’는 자타관계에 있어 협동적 실천을 매개로 하는 주체를 구상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천하공공의 도’는 생활세계 속에서 개인의 성실과 타자에 대한 관용의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주체형성론이며, 타자에 대한 열린 보편성을 추구하는 대화적, 협동적 공공탐구의 동시대적 제안이었다. 생활세계에서 나아가 공공적 ‘생(生)’이 가능한 사회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오규 소라이(荻生?徠, 1666~1725)는 과거제도 및 예치시스템이 부재한 일본사회의 구조적 한계와 경제사회화로 인한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 그리고 이어지는 공동체 의식의 해체 속에서 주자학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소라이에게 ‘정치의 발견’은 사회의 구조 변동과 체제의 위기를 초래하는 ‘경제사회화’의 흐름에 대한 대응책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그는 정치국가론을 정리하면서 경제사회화에 기반한 대책은 배제하고 ‘유학으로의 복귀’를 제시한다. 경제사회화 대책은 결국 경제, 상인들의 강력한 움직임에 의해 오히려 무력해질 것이기에, 이를 배제하고 유학적 구도에 의한 ‘천’과 ‘생’을 재편하여 공공적 정치 실현을 지향한 것이었다. 아울러 주자학의 도덕낙관주의적인 자연성을 넘어 정치의 목적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인위성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토 진사이와 오규 소라이의 공공성 탐구는 유학적 도에 대한 재편을 통해 이루어졌다. 즉 진사이는 주자학의 사서(四書)중심주의에서 논어 ?맹자중심주의로, 소라이는 육경(六經)중심주의로의 이동이라는 ‘텍스트의 교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텍스트 중심의 변화는 결국 텍스트 자체의 가치에 대한 동요를 초래하여, 결국 가치판단이 상대화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다. 저마다의 존재기반이나 체험적 확신에 근거한 사상적 모색을 추진하게 되고, 특히 동아시아 국제사회의 정치적 변동은 이러한 가치상대주의화를 가져온다. 따라서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유학의 독점성은 약화되고 새로운 가치들이 제기된다. 특히 학문이 대중화되면서 ‘민’ 스스로 주체 ? 사회 형성의 사상적 모색에 의욕적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 1685~1744)은 경제사회를 사회적으로 위치지우고 공공적 윤리를 세워 서민의 생활세계를 되찾을 대안을 모색한다. 그 근거로 현세 내부에서의 초월자 ‘천’을 상정하는데, 이러한 ‘천’과 ‘인’의 자연성에 근거하여 그는 이윤 추구를 ‘천’의 윤리적 명령으로 합리화한다. 이는 무사 중심의 신분질서에서 경제사회 및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상하고, 그에 맞는 윤리의식과 사회의식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새로운 체제를 인정하고 그 내부에서 자신의 위치와 관념성을 확보하여 새로운 원칙을 제시함으로서 사회 참가를 유도한 것이었다.
안도 쇼에키(安藤昌益, 1703~1762)는 ‘자연’의 생활양식을 제시한다. 기근과 경제적 고통이 지식의 대중화와 맞물려 몽민 봉기로 이어지자, 그는 ‘지’적 관심과 거리를 두더야 한다고 보고, 서적과 문자의 배제와 반권력성을 주장한다. ‘직경(直耕)’ 이외에는 철저히 제한하여 토지에 근거한 자연적 삶을 꿈꾼 것이다. 그러나 ‘직경’ 중심의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반권력성에 대한 구상은, 결국 절대주의적인 권력을 필요로 하게 되는 역설을 낳는다. ‘직경’의 주체에 대해 자각은 결국 감성적 토착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고, 이것이 독단화로 이어지게 되면서, 결국 보편적인 ‘지(知)’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시각이었기에 현실에 대한 더욱 날카로운 긴장을 갖게 하여, 그의 유토피아적 의식은 비현실적이나 오히려 현실적인 힘을 갖게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근세 후기에 이르면 경제와 생활세계와의 갈등이 보다 위기적인 양상을 띠면서 새로운 경학 및 경세론적 전망의 차원이 구축될 것이 요구되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의 공공성 탐구는 공동세계의 재구축, 즉 국학(國學)의 정비였다. 그의 국학은 생(生)의 실존적 그리고 미학적 감정에서 비롯된 문학적인 것을 구성하여 ‘황국(皇國)’의 세계를 기초짓는 것이다. 기근 및 봉기가 부각됨에 따라 한층 더 세상 질서의 재구축 문제가 전면화되는 상황 속에서, 노리나가의 국학은 생활세계를 재구축하는 것이자, ‘지(知)’와 그 지평을 은폐하면서 신도(神道)적 ‘자연’질서로서의 ‘신위(神爲)’ 세계를 절대화하여 그것을 황통 중심의 국가로 수렴시키는 일본중심주의의 면모를 띠는 것이었다.
니노미야 손토쿠(二宮尊德, 1787~1856)는 경제사회의 심화에 의한 위기에 대하여 농촌 및 각 번(藩) 등을 자치적인 세계로 바꾸기 위한 주체 및 사회의 형성을 제시하였다. 즉, 조합 등의 계획을 세워 구체화, 제도화, 습관화에 의한 재구축을 논하였다. 이는 강한 자립정신이 강조되면서도 연대성과 함께 순환성을 내포한 지속가능한 개발로서, 자연과는 다른 차원인 인위로써 구축하려고 한 것이었다.
일본 근세 사상에 있어서 공공론적 탐구는 ‘생(生)의 충실에 대한 욕구와 그 실조, 그리고 그 회복에 대한 희망’이라는 인간학적 문제의식이 일관되어 있다. 그 ‘생’에 경제 및 정치가 얽히게 되고, 삶의 보람과 미의 문화적 측면도 관련된다.
이러한 공공론적 탐구의 양상은 기존의 공사 관계 및 공공론을 둘러싼 여러 유착 및 기만을 반성하기 위해, 그리고 자타 협동적인 주체 및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서도 긍정성과 부정성을 포함하는 다면적인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접기

 
고희탁 (지은이)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자학의 확립과 전파 이후 일어난 정치사회사상사적 변화가 동아시아 각국의 근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다. 주요 저서로 ≪일본 근세의 공공적 삶과 윤리≫, ≪국학과 일본주의≫, ≪公共する人間1 伊藤仁齋≫(공저), ≪公共する人間2 石田梅岩≫(공저) 등이 있다. ≪교양으로 읽는 일본사상사≫(공역), ≪일본 ‘국체’ 내셔널리즘의 원형≫(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겨 소개했다.
최근작 : <국학과 일본주의>,<일본 근세의 공공적 삶과 윤리> … 총 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본의 근세는 기존의 무사지배의 봉건시대와는 달리 ‘민’이 주체로서 등장하고, 시장경제의 본격화에 따른 경제사회화로 인한 사회적 변동과 출판혁명 등으로 이어진 학문의 보급을 통해 다양한 사상적 모색의 기반을 형성한다. 중화권으로 이어진 전통적 세계관의 동요가 더해져 가치상대주의적 공간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근세 일본에 주자학이 대중적으로 수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주자학적 사고방식에 대한 반발 및 변용, 그리고 절충주의적 모색이나 해체를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이라는 사상사적 변동을 가져온다.

이 책은 근세 패러다임 변환기에 직면한 일본 근세의 사상가들이, 새로운 주체로 등장한 ‘민’과 경제사회화에 대한 대응으로 ‘공공성’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이들의 ‘공공성’에 대한 고민은 당대 지식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이후로 이어지는 사상가 뿐 아니라 후속세대의 삶을 모색하는 데에도 작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공공성’ 탐구는 ‘타자와의 대화’의 모색이기도 하였다. 단순히 계층 또는 사회체제의 변혁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와 대화, 상대화와 협동성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환경에 대한 배려, 후속세대에 대한 책임이라는 요소도 경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동아시아 현장 속에서의 그림을 그려나가야 할 우리가 이 주제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다.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