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2

빌 게이츠가 제시한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 사회주의자

빌 게이츠가 제시한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 사회주의자: 빌


빌 게이츠가 제시한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글쓴이: 김민정
-2021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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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The Times]


[편집자 설명] 최근 기후위기 문제를 다룬 빌 게이츠의 책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이 출판되면서 책의 내용이 주류 언론과 정치인들을 통해 많이 회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김민정의 기고 글은 빌 게이츠의 주장이 가진 한계를 비판하고 있다. 이 글은 필자가 자신의 글 「빌 게이츠가 못 보는 기후위기 해법」(『진보평론』, 2021) 중 일부 내용을 가져와 재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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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류 정치인의 빌 게이츠 활용법

출간하자마자 교보 문고의 베스트셀러에 2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은 저자가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다소 벗어나, 한국에서는 핵발전소 옹호의 근거와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에 대한 비판의 근거로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주간조선」과 「중앙일보」의 입장과 주류 정치인의 행보 등이 있다.

민주당 K뉴딜 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광재 의원은 2021년 3월 30일에 주최한 ‘미래 대담’에서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 ‘0’을 달성해야 하는데,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자연 에너지는 땅을 많이 차지하고 효율이 떨어져서 새로운 에너지 생산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빌 게이츠가 제시한 소형 모듈러 반응로(SMR)를 대안으로 소개한다. 다른 한편 4월 15일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국민의 힘, 기후에너지 5대 정책 방향 제안”에서 “재생에너지와 미래형 스마트 원전의 조화”를 언급한다. 미래형 스마트 핵발전 개발의 근거로 빌 게이츠가 화석에너지 퇴출과 재생에너지 보완을 위해 SMR 소형 모듈러 반응로 개발에 투자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듯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협력하는 부분이 바로 핵발전 기술 개발이다. 빌 게이츠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주목한 기술도, 미 바이든 행정부가 지목한 차세대 첨단 핵발전소도 SMR이라면서, ‘혁신형 SMR’의 전략적 추진을 위해 4월 14일 국회‧정부‧산업계‧학계‧연구계는 ‘혁신형 SMR 국회포럼’을 출범했다.

빌 게이츠가 쓴 책의 한국어 번역본은 총 342쪽이다. “무탄소 전기 만들기”라는 소제목 장에서 핵분열, 핵융합, 해상풍력, 지열 등을 설명하고 있는데,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언급은 7쪽(그 중 핵융합은 대략 2쪽)분량에 불과하다. 책의 핵심 내용은 연간 510억 톤에 달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하고(여기서 사용하는 ‘0’(제로)는 탄소 배출이 0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거의 순배출 제로’(near net zero)혹은 순배출 제로(net zero)는 배출되는 양과 제거되는 양이 같은 상황인 탄소 중립으로 쓰인다. 이에 대해서는 황정규의 「‘순’배출제로의 문제점: 탄소 포집 기술은 사기다」를 볼 것[편집자]), 이를 위해서 태양광과 풍력 등 이미 보유한 수단을 더 빨리 그리고 더 현명하게 사용하고, 획기적인 기술 개발로 배출량 제로 달성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주류 정치인의 주장은 빌 게이츠의 책 내용 중 일부를 아전인수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차세대 핵반응로 개발의 위험성

물론 저서에서의 빌 게이츠와 달리 ‘투자자’ 빌 게이츠는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기술에 15년간 20억 달러를 투자했는데, 차세대 핵발전소 개발에 대한 비중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빌 게이츠는 차세대 핵반응로 개발을 위해 2006년 테라파워(TerraPower)를 창립했다. 이 회사가 개발 중인 나트륨 핵반응로는 열화우라늄을 원료로 사용하며, 냉각재로 끓는점이 높은 액체 나트륨을 사용한다. 테라파워는 이러한 기술 개발이 핵발전소 사고에도 폭발하지 않고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지 않은 안전성이 보장되며, 기존 핵발전소에 비해 건설비용도 4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이 핵반응로는 현재 컴퓨터 안의 시험(demo) 핵반응로로 존재할 뿐 공식적으로 가동하기까지 몇 십 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빌 게이츠 자신도 인정한다. (백번 양보해서 핵발전소의 반대여부를 떠나서) 기후위기를 대응하기 위해서 10년 안에 획기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데, 언제 실용화될지도 모르는 차세대 핵반응로를 기다리기 보다는 현재 진행 중인 재생에너지의 기술 개발을 촉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무엇보다 핵에너지는 기후위기에서 인류를 구하기는커녕 가장 심각한 환경 재난을 일으키는 주범이며, 기후위기에 대한 최악의 처방이다.

체제 유지의 기후 해법

빌 게이츠는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에 토대를 두고 있지 않고 무엇보다 화석연료와 직접적으로 관련성이 없는 업종에서 이윤을 획득한다. 그러다보니 기후위기를 보는 시각이 화석연료에 기초한 자본가보다는 이해관계에서 다소 벗어난 듯하다. 기후위기에 대한 빌 게이츠의 진단은 다른 자본가보다 현실적이다. 그는 “인류가 매년 배출하는 510억 톤의 온실가스를 2050년까지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기술자답게 현대 문명을 뒷받침하고 있는 과학기술 및 공학에서 탄소 저감을 위해 필요한 혁신적인 기술을 세부적으로 소개하고 정리한다. 그는 기술의 실효성을 우선에 두기에, 지구의 대양과 대기에 일시적 변화를 가해 지구 온도를 낮추는 지구공학 연구보다는 기후 ‘완화’와 ‘적응’에 대한 연구에 더 주목하는 듯하다.

구체적으로 그는 전체 사회를 조망하면서 전기 생산, 제조, 사육과 재배, 교통과 운송, 냉방과 난방 등의 배출원에 따른 온실가스 절감 기술 및 혁신의 방향을 제시한다. 기술 개발에 있어서 핵심이 “돈이 얼마나 들어갈까?”라면서, 탄소 저감 기술의 확대에 있어서 ‘그린 프리미엄’을 낮추자는 것이 주요 과제라고 설명한다. 가령 온실가스 배출 없는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할 때 들어가는 추가 비용을 꾸준히 낮춰 시장에서 친환경이 채택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각 분야에서 어떻게 그린 프리미엄을 낮추는 혁신이 가능한 지를 현실적으로 논증한다. 갑부이자 기술자의 이러한 현실적 방안 제시에 매력을 느낀 환경론자(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는 빌 게이츠의 행보를 다음과 같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 초창기에 함께했던 동료 두 명이 회사를 그만두고 환경운동을 하게 되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흘려듣다가 과학적인 데이터들이 전망하는 암울한 지구의 전망에 충격을 받고, 기후변화 문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약 10년간의 학습결과 가장 긴급하고도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는 기후 재앙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경영자로서, 창업자로서, 그리고 자선사업가로서 현실적인 대안을 정리한 책이다. …… 이 책의 미덕은 아주 현실적인 대안들이다. 탄소배출이 안 되는 자연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되, 아주 싼값에 빨리 저개발 국가에 제공해야 하며, 그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사업기회가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사업가라면 다양한 기후솔루션이 정확하게 정리된 이 책을 한 편의 신규사업 진출 기획안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경향신문』, 2021. 2. 6.)

기후 시대에 걸맞게 사업 투자도 탄소를 저감할 수 있는 사회 공헌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사업 수완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는 환경론자의 입장은 공해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동시에 가해자의 개과천선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사업가에 대한 이러한 관대함은 공해 산업에서 벗어난 정보통신기술에 토대를 둔 신흥 IT 자본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시각은 단일 사안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환경 문제‘만’으로 세상을 파악한다.

하지만 사회는 기후위기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착취와 억압, 천대 등의 문제가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화석연료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장이라도 다른 기업처럼 환경 비용을 외부화하며, 노동자가 만든 잉여가치를 착취한다는 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코로나19로 늘어난 택배를 감당하는 물류업체의 살인적 노동 강도 및 과로사의 이면에는 이들 업체의 영업이익 창출로 미소 짓는 기업가가 존재한다. 자본과 노동의 이해가 일치한다고 하거나 자유 경쟁의 결과로 전반적으로 조화와 국민 복리가 실현된다고 하는 주류 이데올로기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회 불평등을 체감하면 할수록 그 입지가 좁아진다.

재생에너지 개발의 장애물

기술 찬양론자인 빌 게이츠는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지만, 이런 태도는 분명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기술을 도입하려는 경제 및 사회 환경을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린 프리미엄이 낮춰지지 않는다면 현재 탄소 저감 기술이 존재하고 발전 가능성이 있더라도 현실화되지 않은 냉철한 사회 실상을 보여준 것이다.

재생에너지의 효율적 활용을 방해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재정과 정치다. 화석연료와 핵에너지는 수십 년 동안 천문학적인 보조금과 엄청난 규모의 투자 지원 및 법, 제도적 지원을 받아왔다. 그래서 화석에너지 및 핵에너지가 ‘저렴한’ 것처럼 평가되지만 이 평가 항목에서 제외된 부분은 외부비용으로 전가된다. 이 점을 파악한 빌 게이츠는 재생에너지에 투자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의 조성을 요구한다. 그는 가격 기제에 의해 기술이 도입되는 시장경제 체제의 운영 원리에 맞게 재생에너지의 기술 도입을 위한 가격 기제 장벽을 시장의 논리로 해결하는 방식보다 국가의 지원 방식에 중점을 둔다. 자유 시장 경쟁 체제에‘만’ 의존해서는 현행 화석연료에 기초한 에너지 산업을 혁신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도 인정하듯이 “에너지 산업은 5조 달러 규모의 거대한 산업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 중 하나”이기 때문에 개별 기업의 투자로는 에너지 산업을 혁신시킬 수 없다. 그래서 노골적인 국가의 지원과 재정 투입을 요구한다.

기업 육성을 위한 정부 정책

빌 게이츠의 책 10장은 “정부 정책은 얼마나 중요할까?”이다. 그만큼 재생에너지 확대와 탄소 저감 기술의 도입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다. 친시장주의자라고 알려진 빌 게이츠가 정부가 더 큰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에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 있다”라고 그 자신도 인정한다.

그가 제시하는 정부의 역할은 제로 탄소 기술 개발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고, 연구 개발비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민간 부문의 투자 갭을 메꿔줘야 하고, 화석연료로 인한 피해를 가격에 반영해서 상품을 비싸게 만들고, 저탄소 기술 도입에 있어서 불필요하고 낙후된 법률의 개정 및 규제를 허물고, 정부 규제에 최신 기술과 제로 탄소화의 시급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뒤처지지 말아야 하며, 탄소 없는 경제로의 전환에 있어서 공정한 경제구조가 될 수 있도록 계획해야 하고, 기존 산업 체계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도입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상의 정부 정책의 핵심은 기술, 정책, 시장이 상호 작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의 혁신이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에너지 체계 및 산업구조 전환이 필요한데, 이는 몇 개의 기업만으로는 수행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빌 게이츠도 기술 도입에 개입하여 기업의 이윤 창출을 원활하게 지원해줄 수 있는 보모 역할을 국가에 요구하는 것이다.

이 제안에는 아래로부터의 노동자와 인민이 기술을 통제하고 정책에 관여 할 수 있는 여지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입장에는 국가와 정부가 계급 중립적인 입장에서 정책을 수행한다는 전제가 있다. 하지만 계급 사회에서 국가는 지배계급의 일원으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벗어난 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정치인과 고급 행정 관료, 사업가 사이의 부패의 고리는 개인의 부도덕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 내의 이해관계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나눌 이해관계가 적어진다면 서로 폭로하는 관계에서 비롯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다.

기후 불평등

빌 게이츠는, 개인이 시민으로서, 소비자로서, 고용주 혹은 직장인으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실천을 제안한다. 시민은 기후변화 정책을 요구하는 유권자로서 정치적 압력을 가해 정치인이 실제로 행동에 옮기도록 해야 한다. 소비자는 저탄소 제품을 선택하는 수요자로서 정부와 기업이 혁신 기술에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청정 전기를 신청하고, 가정 내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고, 전기차를 구매하고, 인공 고기를 먹어야 한다. 직장인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 예를 들면 탄소를 상쇄하는 나무 심기 등과 같은 실천을 함으로써 회사가 더 중요한 일을 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기업은 친환경 혁신을 가져올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고, 내부적인 탄소세를 도입하고, 그린 프리미엄이 큰 분야(그리드 스케일의 에너지 저장, 전자연료, 핵융합, 탄소포집, 제로 탄소 시멘트와 강철 등)를 찾아내 시장이 형성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정부에게 요구하고 협력해야 한다.

제시한 각자의 역할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본주의에서 노동자 개인이 기술 혁신 과정에 참여하거나 결정할 구조보다는 기업과 정부의 역할을 크게 본다. 무엇보다 현행 제도에서는 기업과 정부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노동자 및 인민의 권한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기후 불평등적 관점에서 본다면, 기후위기를 일으킨 가해자인 기업과 정부는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를 일으킨 책임은 소비자, 노동자 등과 함께 져야 한다는 이러한 접근은 틀렸다.

기술 개발을 통한 기후 해법은 어떤 기술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결정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기술을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민주주의’를 주목하지 않는다. 또한 현재의 기후위기는 자본 축적을 위한 자본주의적 생산이 낳은 문제인데도 자본주의 생산 그 자체를 비판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생산에서는 개별 자본의 이윤 추구를 목표로 생산이 진행되기 때문에 사회적 필요에 바탕을 둔 생산의 민주적 계획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쪽에서는 팔지 못한 식료품이 버려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식료품을 구매하지 못한 이들이 굶는다.

체제 변혁의 필요성

국제적 보건의료 확대와 빈곤 퇴치, 그리고 미국의 교육 기회 확대와 정보 기술에 대한 접근성 확대를 목표로 제시한 게이츠 재단은 재단 유지를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운영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구조에서 발생하는 계급 관계, 사회 불평등, 기아 및 빈곤 등을 고려하면, 게이츠 재단이 빈곤 퇴치의 장애물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빌 게이츠 자신도 자본가 계급의 일부이다. 이는 그가 막대한 부를 소유한다는 것 이상으로 이 사회를 유지하고 지배하는 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현행 계급 관계와 사회 불평등을 생산 및 재생산하는 사회 구조를 문제의 핵심으로 주목해야 하지만, 빌 게이츠는 전혀 그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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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기고 | 대학 강사

제13강 함석헌과 『노자』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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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강 함석헌과 『노자』

◆ 함석헌의 ‘노자’ 읽기


▲ 천의 얼굴을 가진 노자

자, 오늘 제목은 “철학자인가 정치가인가”라고 되어 있는데, 그 동안 주로 읽었던 것이 하상공 주와 왕필 주를 소재로 하면서 어떤 식으로 변화돼 있는가.

달리 말하면 본래 정치가들 사이에서 읽힌 책이 지금에 와서 노자하면 철학자라는 타이틀이 붙게 된 거죠.

우리는 본질적으로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노장 사상 자체가 과연 철학적이냐? 정치적이냐? 당연히 섞여 있을 수 있지만 어떤 방식의 노자 읽기가 지금 우리들에게 주어져 있는가. 상식이 되어있는가를 검토하는 것.

사실은 노자 원전을 읽는 것보다 지금 우리들이 읽고 있는 노자에 관한 책들이 어떤 시선으로 쓰여졌는가를 이해하는 게 사실 더 중요한 일이거든요.

제가 중국철학을 전공했지만, 중국철학을 공부할 때 희한하게도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공부하다보니까 본격적으로 전공을 찾기 전에, 우리 사회에서 중국 철학과 관련된 내용을 생산하고 있는 현대신유가에 관한 부분부터 먼저 공부를 시작했어요. 세미나 팀에서.

그러니까 내 주변에서 혹은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까지도 어떤 시각과 입장을 갖고선 고전들을 읽고 있는지 이미 정체를 어느 정도 나름대로 판단한 다음에 어떤 식으로 읽어야 되겠다는 관점을 가지고 접근한 거죠.

현재도 상대화시키고 과거도 상대화시키고. 그러다보니까 노자가 어쩌고 저쩌고 라고 한 것 특히 논어나 노자를 비교해 보면 두 가지가 상당히 다르다. 다른 방식이 어떻게 다른가를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됐고.

그러다보니까 『철학에서 이야기로』와 같은 책을 쓸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런데 함석헌 선생님의 노자. 다 출판되어 있지 않고, 라는 책에 몇 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함석헌 기념사업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도덕경이라고 해서 한 두 장 누락된 게 타이핑돼서 실려 있어요. 그걸 출력해서 읽어보시면, 우리가 알고 있던 노장 얘기가 여기서 나왔구나 하며 새삼 감탄하게 되실 거예요.

그 중에 몇 가지도 오늘 확인하게 될 거고요. 그 중 상당 부분이 도올 김용옥 선생이 노자 강좌를 하면서 많이 채용하기도 하고 보태기도 하면서 어떻게 그것이 누적되었는가를 확인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의 노자 읽기를 본다” 뒤에 부제로 붙어 있는 것은 제가 함석헌 선생님의 노자 강의를 접하고 제가 처음 썼던 논문의 제목이에요. 이 양반의 노장 해석을 어떤 방식으로 붙여야 하는가.

이 양반의 노장 해석은 한국 땅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나오기가 어려워요. 독특한 지형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특성에 초점을 맞추는 건 별로 의미가 없어요. 노자에 대한 주석서는 다 독특하기 때문에. 다 다르단 말이죠.

그래서 제가 제안한 하나의 표현이 ‘천의 얼굴을 가진 노자’를 만들어보았거든요. 어떤 분이 논문을 쓰면서 이걸 쓰더라고요.

천 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것은 무한수를 말하는 거죠. 주석서가 나올 때마다 색다른 노자가 창조된다. 다른 얼굴이 들이밀어진다는 뜻에서 천의 얼굴을 가진 노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제가 학위논문을 쓰면서 제안했던 표현이죠.

그러다보니까 함석헌 선생의 노자읽기의 독특성은 정확한 질문의 방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노자를 다양하게 읽는다. 다원주의가 존중받는 시대에 백 명이 모이고 천 명이 모이면, 천 개의 노자, 백 개의 노자가 만들어진단 말인데 소통이 가능하겠습니까. 도대체 뭘 소통하느냔 거죠.

따라서 고전을 읽는다고 할 때 고전에 대한 정확한 번역. 번역자들은 정확한 번역을 해야 하죠. 하지만 정확성이라는 척도는 다를 수 있는 것처럼 노자를 의미 있게 읽는다는 작업은 충분히 다를 수 있습니다.


▲ 함석헌의 노자 읽기

제가 생각해낸 함석헌 선생의 노자 해석의 독특성 혹은 특이성이라는 것은 어떤 창조적 해석이 있다기보다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한국사람 대다수가 알고 있는 노자라는 사람과 노자라는 책과 관련된 말, 언설, 이미지를 창조한 데 있다.

그 당시에는 새롭지만 지금에 와서는 누구에게나 상식이 돼버린. 상식의 창조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게 제가 철학공부를 하는 모토예요. 저는 철학이 철학으로서 끝까지 있는 한 무의미하고 철학적인 방식이 언어와 내용, 삶의 양식이 상식으로 퍼져나갈 때 의미 있는 철학, 살아있는 철학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의 역할이라는 것이 불건전한 상식을 몰아내고 건전한 상식을 정초하는 과정이 철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고전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게 바로 그런 겁니다.

동아시아 철학자들이 철학적인 활동을 했다고 하면 어떤 진리를 발견했다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상식을 도출해내고 그러한 건전한 상식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그리고 행동에서 득될 수 있도록 하는 실천적, 이론적 노력이 동아시아 전통철학의 내용일 것 같아요.

오늘 그것을 바로, 함석헌 선생이 어떤 방식으로 했는가를 확인하는 것. 그리고 이와 같은 방식의 고전읽기는 우리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논어는 물론이고 노자는 물론이고 맹자, 중용, 다른 모든 문헌들에까지도 확장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논의의 주제는, 지금 여기에서 노자나 장자를 읽는다는 것은 우리 삶 속에 어우러진 노장을 읽는다는 것인데 그것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오늘의 가장 커다란 주제입니다.

그러면 함석헌 선생님의 노장읽기를 이야기할 때, 이 분이 어떤 위치를 갖느냐는 당연히 전제해야겠죠. 1페이지 맨 밑을 보면 시작됩니다.

함석헌의 노장 읽기는 19세기 이래 동아시아 전교의 특징인 서구 종교(기독교)와의 화해적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이게 특징적인 겁니다. 문제는 화해적 만남이 중요해요. 도올 김용옥 선생의 강의를 본 사람은 많이 느끼겠지만, 도올 선생의 노자 강의는 화해적이지 않습니다.

동양철학의 핵심 특징은 화해론. 자연과 인간의 화해. 인간과 인간의 화해. 지식과 삶의 화해. 이런 3대 화해를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노자 철학의 화해적 성격을 부각하기 위한 어둠의 세력으로 부각이 되죠. 대비시킨단 말이죠.

저는 그런 대비효과가 동양적 사유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인 방식으로 쓰였기 때문에 나쁘다, 좋다는 판단은 할 수 없죠, 하지만 읽는 방식이, 분명히 도올 선생의 입장에서는 기독교와 노장 사상을 대비시키는 방식이었다고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함석헌 선생의 노자 해석은 대비가 아니라 그 자체가 화해적 방식입니다. 노자를 만난 까닭 자체도 화해적이고. 원래 이 분이 노자라는 책을 읽어보지 못 했다가 스승이진 유은봉 선생님께 선물로 이 책을 받았죠. 그걸 평생 갖고 읽으셨다고 해요. 이때 비로소 함석헌 선생님은 비로소 동양학에 입문하신 거죠.

두 번째는, 조선조의 ‘노장’ 읽기 전통의 연장에 서 있다는 점입니다. 19세기부터 기독교와의 화해적 만남을 주선하는 이 분위기는 함석헌 샌생님의 고유한 특징이 아닙니다.

19세기 말부터 이미 서구 선교사가 시도했고 동아시아에서도 많이 이용을 했습니다. 불교도 이용했고 유교도 이용했지만 도교, 노자도 많이 이용했습니다.

그 다음에 이런 방식의 이해가 사실은 전통 조선사회에서는 사실 노자는 이지단서였습니다. 하지만 함석헌 선생의 머릿속에서는 사실 이단까지는 아니었죠. 동서 문명의 대화라는 축에서 양자를 소통시키려 하셨으니까. 특히 종교적인 내용까지 포함해서.

그런데 그 읽는 태도의 방식이 기본적으로 조선시대 유림이 노자나 장자를 읽고 대했던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겁니다.

그 다음 세 번째, 학계라는 좁은 울타리에 계시지 않았어요. 그래서 최초의 문제의식 자체가 한국의 현실과 대화한 하나의 ‘이야기’로써 출발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대중성을 가질 수 있었고 현실성을 가질 수 있었어요. 나름대로 개인의 진정성, 당신께서 갖고 있는 뛰어난, 함석헌 문체라고 함석헌 선생의 문장은 다르게 평가받기도 하잖습니까. 그런 등등의 것들과 그 분의 이력이 다 포함된 거겠죠.

이와 같은 점들은 사실 우리가 많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가서 연구해보시면 노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대체적으로 두 세 부류로 갈라져요.

하나는 동양철학을 하는 사람 가운데 도가를 연구하는 사람이 해요. 또 몇 권의 책들이 나와 있는데 그 분들이 누구냐. 신학대학 소속이 꽤 있어요. 그리고 목사님이거나.

잘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게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 누구지. 장자에 관한 주석서도 많이 내고, 갑자기 이름이 떠오르질 않네. 감리교 계통의 목사님이 신데, 이연현주 목사님.

그 분만의 독특한 개인적 기질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그리고 신학계에 계신 분 가운데서 그와 같은 주제로 학위논문을 따신 분들이 꽤 많아요.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신학 하시는 분들 가운데 노자를 연구하는 분들이 꽤 있다. 꽤 특징적이죠. 이게 함석헌 선생만의 독특성이라기보다는 한국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노장해석의 중요한 지류를 타고 계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현실성을 가질 수 있었던 거죠.


▲ 함석헌 노자 읽기의 특징

그런데 이와 같은 성격 때문에 함석헌 선생님의 노자 해석이 어떻게 다르냐. 노자 해석의 역사 과정 속에서 독특성, 차별성, 새로움은 무엇이냐고 묻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건 함석헌 선생의 해석방식의 기조와도 맞지 않습니다. 그 분은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함석헌 노자 해석에 접근해 나가야 하느냐. 그 다음 3페이지를 보시면.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물음을 제기해야 합니다. 첫 번째,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가 아니라
그가 말하고 던진 글, 내용, 화두들이 얼마나 우리와 닮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함석헌 선생님 말고 다른 사람들이 많이 다르단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우리는 이미 그가 해석해놓은 마당 위에서 노자를 읽고 있기 때문에 함석헌과 나와의 차이를 연구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 된다는 거죠. 내가 알고 있던 내 모습의 원주소가 여기 있었구나. 하지만 다 기억나는 게 아니잖아요.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를 따져 봐야겠죠.

그 다음에, 그가 말하고 있는 독창성은 얼마나 진리에 가까운가가 아니라 얼마나 사람들 사이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가이다. 노자를 통해 페미니즘이나 생태 사상의 접속을 시도합니다. 그럼 노장 철학에 생태주의나 페미니즘의 심오한 철학이 있느냐? 그게 아니라는 거죠.

노자를 통해서 태와 페미니즘 문제에 관심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노자 철학 자체에 무슨 대단한 얘기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만약 들어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해석하고 있는 그 분의 철학이 되는 거예요. 우리는 그걸 구분해야 하거든요. 대한민국에 철학자가 나오지 못 하는 이유는 단순해요. 새로운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아니라 원전 중심으로 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자, 아까 수박 주고 가신 이진경 선생님, 『자본론 읽기』그건 자본론을 얼마나 제대로 읽었느냐 아니냐를 얘기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한국이라고 하는 공간에서 현실 속에서 이진경이라고 하는 사상가가 자본론을 어떻게 읽었는가 라고 하는 점에서 평가해야 하잖습니까. 『노마디즘』도 마찬가지고. 그런 문제로 요즘 여러 지면에서 논쟁이 붙기도 하는데.


그 질문의 토론가운데 가장 난감한 경우가, 번역을 할 때 어떤 텍스트의 어떤 용어는 이렇게 번역해야 한다는 건 분명히 원전의 맥락을 쫓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번역 용어를 어떤 방식으로 선택하고 쓰는가 하는 것은 여기 듣고 있는, 프랑스 사람을 위해서 한국어로 번역하는 게 아닌 이상, 한국 사람을 위해서 번역하기 때문에 번역어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의 파장도 고려해야 하고 그 의미의 파장을 어떤 방식으로 고려하는가가 바로 그 책을 내고 쓰는 사람의 자기 생각이 들어가는 거죠. 그가 이 땅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땅과 호흡하는 철학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그런 방식의 질문을 던지는 데 인색하다고 생각해요. 많이 좋아 졌어요 요즘에는. 저를 소개할 때, 동양철학자라고 하거든요. 옛날에는 철학가냐, 철학자냐, 철학인이냐를 가지고 대학 강단에서 별의별 논쟁을 많이 했거든요.

대한민국에 철학자는 없다, 철학가가 있거나 철학인이 있을 뿐이라고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방송가 같은데서 소개할 때,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에게 소개할 때는 철학하는 사람, 주로 철학자라고 편하게 불러요. 많이 언어의 민주화가 된 거예요. 그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거든요.


▲ 함석헌의 해석학

마지막으로 함석헌 선생이 노자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였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귀 기울였는가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중요한 이야기예요. 이 지점은 뭐와 다르냐면, 제가 『철학에서 이야기로』 책을 쓰면서 첫 번째 챕터 제목이 ‘철학 만들기에서 철학하기’ 라는 걸 구분했습니다. 즉, 동양철학은 철학이 아니에요. 하지만 철학이 아닌 그 무엇의 내용을 근대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철학적인 방식을 부여함으로써 철학적인 위상을 획득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두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그런 책들을 쓰신 분들이 하는 이야기예요. 서양의 철학하는 사람들이 관심 있게 읽는다. 그 다음에, 하이데거 같은 사람들이 철학적 관심으로 대해줬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무게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달리 말하면, 서양 철학적인 용어들, 쉽게 말하면 도(道하)라고 하면 이게 실체라고 하는 용어로 해석될 때만 이게 철학이 되는 거예요. 도 자체는 철학이 안 된다는 거죠. 이게 바로 신빙성입니다.

실체라는 말은 노자에 안 나오잖아요. 해석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해석을 통해서만 우리는 철학이라고 인정한단말이에요.

그냥 도만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되죠? 불합리하다, 비과학적이다. 그래서 하는 얘기가 ‘안녕히 계세요’ 그렇잖아요. 도망가야 하잖아요. “도에 관심 있으십니까?” 신비주의로 빠지게 되는.

달리 말하면, 도와 실체가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실체가 되는 거고, 가까이 있지 않으면 철학이 아니라고 하는 판단의 근거는 사실 판단의 기준이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니라 저쪽에 있다는 거죠.

중요한 건 뭐냐. 노자라는 텍스트에 대해서 실체니, 로고스니 하는 어려운 용어들을 자꾸 결합시키는 노력도 중요하죠. 새로운 재해석을 제공하는 행위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 자체가 텍스트의 맥락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고 당시 사회의 어떤 결들을 전해주고 있는지를 먼저 귀 기울여보는 것. 이것이 먼저 돼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은 그런 것 때문에 과거를 보세요. 과거에는 주석사 연구를 안 했어요. 90년대 들어서 비로소 주석사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바로 그런 것들이 철학이라는 개념 지형도가 바뀌는 것과 맞닿아 있는데.

뭐가 달랐느냐.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동양철학을 하는 분들은 철학자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 했습니다. 90년대 넘어서면서부터 동양철학도 대등하다고 얘길해요.

같은 과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서양 철학 하시는 분들이 동양철학 하시는 분들에 대해서 “동양철학은 비논리적이기 때문에 좀 문제가 있어.” 했다는 거죠.

하지만 장구한 기간 동안 논문이 축적되고 어려운 용어들이 동원되고 해석이 쌓이게 되니까 이제는 “아”

이것만 가지고는 이해를 못 하거든요. “실체, 로고스” 하니까 “오” 이렇게 되는 거죠. 사실은 이게 선생님들이 그랬다기보다도, 그렇게 이야기해야지만 듣는 사람들이 철학이라고 인지한다는 겁니다.

저는 그런 것들은 이제는 아니라고 보는 거죠. 옛날 선생님들도 생각이 많이 바뀌어서 그렇지 않고, 도 자체에 맥락적 의미가 무엇이냐.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방식으로 질문의 방식이 바뀝니다.

하지만 함석헌 선생님의 읽기는 그와 같은 ‘해석적 읽기’가 아니라 ‘참여적 읽기’예요. 삶 속에서 대화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이 분은 귀를 기울인다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인데, 해석이라는 말은 헤르메스가 말을 보여주는 거잖습니까.

달리 말하면, 말 하는 자에게 권력의 무게가 실려 있어요. 해석학의 특징은 거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그 무게가 듣는 사람에게 있어요. 말하자면, 노자에 대해 이야기한다하더라도 함석헌 선생 당신이 새로운 노자를 창조해서 그걸 들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가 귀를 기울이는 자고 또 자기 앞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자들에게 전해주는 거예요.

무게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삶이라고 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함석헌 선생의 해석은 다른 겁니다. 바로 이러한 부분들이야말로 전통동아시아철학이 갖고 있었던 나름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이러한 접근 방식을 따라 읽을 때야말로 함석헌을 따라서 함석헌을 해석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함석헌 선생이 당시에 페미니즘을 말했다, 과학을 말했다고 하지만 무엇을 말했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단 말입니다. 즉, 함석헌 선생이 어떤 방식으로 귀를 기울였고 그가 어떤 방식으로 말했는가.

그럼 우리가 노자를 가지고 페미니즘이나 과학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는 거죠. 우리는 그 방식에 대해서 배우는 겁니다. 즉, 철학 용어가 아니라 철학하기의 모델로서 함석헌을 읽는 게 더 타당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들은 상당히 함축적으로 이미 하고 계세요, 직접.

3페이지를 보면, 특히 이 두 단락은 다른 분야를 연구하시는 분들에게 상당히 도움 되는 구절입니다. 제가 왜 말하기가 아니라 귀 기울임으로 해석했는지도 이걸 보면 맥락이 나옵니다.

[사실 이날까지의 옛 글에 대한 모든 해석은 권위주의, 절대주의, 귀족주의, 고정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사실 강의라고 하는 공간만큼 권위적인 게 없어요. 만약에 제가 노자 전문가라고 하는 소문을 못 들었으면 여기 오실 리가 없잖아요. 강의를 들을만한 이유가 없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옛글을 고쳐 씹는 데 하나 더 생각할 것은 지금 있는 종교로부터 올 반대이다... 그럴 때 제일 문제되는 것은 권위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점에서는 석가나 예수의 태도를 배우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결코 형식에 거리끼지 않았다. 또 저쪽을 숭인시키자는 것이 목적 아니었다. 그들에게 권위는 영(靈)에 있었지 글이나 제도에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새 해석을 하고 깨쳤다. 그리고는 옛날의 전통을 한 점 한 획도 무시하지 않노라고 했다. 눈으로 경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전체의 자리에서 읽었다.”(, 21-22쪽)]

이 표현은 그 시대 전체의 자리에서 읽는다는 한 마디는 서구에서 그 유명한 해석학자들의 논의와 동일한 격에 속하는 무게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문장은 더 재밌습니다.

[나는 노자·장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숲 속에 깃들인 뱁새’ 같이 ‘시냇가에서 물 마시는 두더지’ 같이 날마다 그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고전이라고 하는 것이 어려운 개념을 파악하는 게 아니라 책을 읽고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고전과 나의 대화고 그 자체가 삶의 과정이다.

이런 말들은 지평융합이 이미 돼 있는 경지가 아닐까요. 가다마가 말한 지평융합이 이미 돼 있는 거예요. 지평융합은 인식의 차원이 아니라 삶의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하는 새로운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종교 해석학은 신앙도 삶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내용이 당연히 섞여 있는 거죠. 하지만 말이 쉽잖습니까. 함 선생님의 말이.

[나는 일제시대에 구약성경의 이사야, 예레미야를 많이 읽었다. 그 압박 밑에서 낙심이 나려 하다가도 그들의 굳센 믿음과 위대한 사상에 접하면 모든 시름을 다 잊고 다시 하늘을 향해 일어설 수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 몇 십 년의 더러운 정치 속에서도 내가 살아 올 수 있는 것은 날마다 노자·장자와 대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5-6쪽)다.]

멋있잖습니까. 말을 이렇게 멋있게 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그러니까 사람의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외모가 잘 생겼는가 못 생겼는가가 아니라 그가 하는 행동이 아름다워야 하고 그가 하는 행동, 그가 하는 말, 입 속에서 향기가 나와야 해요. 향기 있는 말과 향기 없는 말은 마음으로 구분이 됩니다.

그런데 말을 하는 데 향기가 난다, 한 가지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지금 앞에 읽었던 단락에서 “ 그들에게 권위는 영(靈)에 있었지 글이나 제도에 있지 않았다”라고 하는 이 말은 왕필이 뜻을 해석하기 위해서 문자를 버릴 수 있다, 이건 득의 망상. 이미 장지를 원용해서 왕필이 말하는 해석학의 태도와 동일합니다. 이런 점들이 놀라운 거예요.

경전에 대한 해석 태도라는 것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고도로 발전돼 있어요. 우리는 서양의 논리 방식에만 익숙해 있다보니까, 동아시아는 그걸 논증적으로 하는 방식이 적었잖습니다. 하지만 이미 들어있다는 거죠.

이 때 “권위는 영(靈)에 있다”고 하는 것을 성인 공자의 뜻, 오경 속에 살아 숨 쉬는 성인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체득한다면 오경 속에 들어있는 문자, 글자는 잊어도 된다. 이게 왕필의 태도입니다.

마찬가지의 태도를 지금 함석헌 선생이 갖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게 성서 해석학과 관련해서 자유분방하게 하는 것과도 연관 있지만 적어도 그 맥락 없이 이런 건 통하는 자세라는 거죠.

제가 여태까지 했던 얘기들이 왜 그렇게 높이 평가하고 대단하다고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인 근거를 가지고, 말하자면 저는 배우거든요, 이런 구절들을 통해서. 되게 쉬운 말로 적혀 있지만 나름대로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는 게 드러나니까요.

다른 한편에서 보면, 노자에 대한 번역서나 해석서는, 요즘에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이렇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제가 노자를 처음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만 하더라도 함석헌 선생의 노자만큼, 저는 최근에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읽은 것들과 비교해봤을 때 함석헌 선생이 훨씬 더 일관되고 진솔하고 쉽고 공감이 되고 나름대로의 근거도 있고. 그래서 굉장히 훌륭한 작품, 철학적으로도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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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 ‘노장 읽기’의 역사적 연속과 불연속


▲ 한국 사회에서 노장 해석의 갈래

자, 그럼 이제 함석헌 선생님이 상식을 창조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의미를 부여하면 다 끝이냐? 그게 아니라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역사적인 시각으로 전향해보면, 상식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굉장히 중요한 한국 땅이라고 하는 지형도와 맞닿아 있는 중요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

그 점이 그의 위대함을 더 위대하게 만든다는 것이겠죠. 즉 그 연속과 불연속을 한 번 찾아보는 것이 그 다음 부분입니다.

6쪽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앞의 부분들은 앞 시간에 많이 한 얘기이기 때문에 반복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정리 차원에서 현재는 조금 달라졌는데 제가 이 글을 쓸 당시가 몇 년 전이었으니까, 처음 학위 논문을 시작할 때 이런 식의 제안을 했으니까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중복되는 것도 있고.

하지만 중요한 결들을 잡는다면은 대략 지금에 와서도 노자나 장자를 해석하는 절, 특히 노자를 해석하는 절이 훨씬 더 복잡한데 한 여덟가지 정도로 분류를 할 수가 있어요.

첫 번째는, 제왕지술(帝王之術) 혹은 법가적 해석 특히 무위를 치술적 개념으로 해석하는 갈래가 소수이긴 하지만 있습니다.

[“무위를 실천하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爲無爲, 則無不治.); 2장, “성인은 무위의 일에 처하고, 말없는 교령을 행한다.”(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 새롭게 발견된 『황제사경』(黃帝四經), 韓非子, 申不害 등등]

특히 이러한 건 황로학 붐과 더불어 일어나면서 이러한 정치적 재해석이 상당히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말하는 황로학은 정치사상으로서의 황로학을 중심으로 이야기 합니다. 한나라 초기를 지배했던 통치사상으로서요.

그 다음에 두 번째는, 황로학이 앞에도 뒤에도 껴 있지만 여기서는 황로라는 말이 한 대에서의 전반기의 황로와 후반기의 황로라는 말이 조금 달라요. 즉, 동일한 황제의 노자라고 하는 두 문헌군, 혹은 황제와 노자를 숭앙하는 시조를 따지는 학문 풍토 혹은 학술 운동이라고 규정하더라도 적어도 그 글자 자체만 놓고 본다면 한 대와 후 한 대에 이것이 의미가 많이 바뀌는데 그 의미가 바뀌는 과정이 도교적인 성격이 충분히 더 강화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상공 주석의 경우도 철학적인 입각점, 방향은 한 초에 청정무위 사상을 중심으로 돼 있다고 했죠. 하지만 치신 사상등과 같은 것이 굉장히 깊이 들어가 있고, 표현 중에 불사(不死)가 나옵니다.

불사라고 하는 사상은 사실은 고대 중국 도가 사상에는 없던 거예요. 나중에 신설술기라고 하는 신선사상이 들어오고 나서 그 영향으로 인해 이 전통에 들어오게 됩니다.

선진 도가의 중요한 용어는 뭐냐. 불사가 아니라 장생(長生)이에요. 우린 이걸 구분해야 해요. 장생과 불사는 다릅니다. 그럼 뭐가 다르냐. 특히 불사를 이야기할 때 두 가지 방식의 불사가 있어요.

하나는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끔 하는 영혼, 영혼불멸론과 연결되는 겁니다. 두 번째는 몸 자체가 죽지 않는 거예요. 신선이 되는 거죠. 서구에서는 영혼불사로서의 immortality가 중심이었다면. 동아시아에서는 영혼과 몸은 뗄 수 없는 거잖습니까. 그러니까 몸이 죽으면 안 돼요. 그래서 신선이라고 하는 건데, 장생은 달라요.

장생은 몇 년 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생존연령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저녁에 죽을 사람이 대낮까지 활달하게 활동하는 날 죽는 날 갑자기 죽는 거예요. 물론 수(壽)를 다하고 나서. 대략 한 120년. 의학적으로 가능한 수가 한 120살 정도라고 합니다. 유명한 사람을 보면 다 꽤 오래 살았어요.

황로학(黃老學) 및 도교적 해석은 치신치국(治身治國之道) 및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추구하는 전통입니다. 이렇게 불어버려요. 장생과 불사가.

노자에 나오는 유명한 말을 가져다가 유덕화가 나오는 영화의 제목으로 할 때 ‘천장지구’라고 했잖습니까. 천지는 장구하다고 할 때 천장지구. 그게 천지가 장구하다는 것은 무지하게 오래간다는 거잖습니까. 그것처럼 인간도 오래 간다는 것은 명 안에서의 생이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저걸 하기 위한 노력이 바로 양생에 해당하는 겁니다. 양생이라는 의미도 전한 시대에서 후한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특히 신선술과의 결합과정에서 의미의 폭이 상당히 바뀌게 딥니다.

그래서 도교 전공하는 분들 가운데서도 이 구분을 못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구분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죠.

그 다음 세 번째로 등장하는 게 현학(玄學) 혹은 형이상학적 해석입니다. 특히 왕필이 노자를 해석했던 방식을 후대의 학자들이 기무론이다, 무를 중시하는 철학이라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 때 무가 형이상학적 절대 무가 아니라는 걸 지적하고 싶어요.

특히 이런 걸 추적할 때 중요한 점은, 아라비아에서 발명한 게 0이잖습니까. 0이라는 개념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진짜 개념이거든요. 고대 중국의 수학책을 보면, 제가 뒤져봤어요. 중국에서 0이라는 걸 개념적으로 흡수하게 되는 건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입니다.

즉 공(空)개념을 흡수한 다음에 일어난 일이라는 거죠. 하나는 막대기 하나놓고, 막대기 두 개 놓으면 2고 막대기 세 개 놓으면 3이에요. 그럼 0은 막대기 없다. 이게 0이에요.

개념으로 정립돼 있지 않는다는 거죠. 0이라는 개념이 정립돼 있을 때 형이상학적 무라는 개념이 이해되거든요. 조사를 해보니까 중국에서 상당히 늦게 0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입니다.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만 가능하다는 거죠. 특히 회남자 책을 보면 유와 무를 둘러싸고 겹쳐놓고서 복잡한 논리식을 만들어놓은 게 꽤 있는데 그때 무에 관한 규정이 나와요. 넝쿨 있죠, 만물이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뒤엉켜 있는 상태를 무라고 이야기합니다.

유와 무라는 개념은 존재론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식적이고 개념적인 틀이라는 거죠. 무엇이라 규정한 수 없다. 그래서 무명유형이라는 말이 쓰이는 까닭이 분명한 형체가 지각되지 않으면 거기에 대해 이름 붙일 수 없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왕필이 도를 해석하면서 무명유형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쓰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거든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많이 가미된 건 사실이에요. 왕필 대에 들어가서.

특히 이 도가 주역의 태극으로 해석됩니다. 제가 엊그저께 서점엘 나가보니까 조선시대 서명 선생이 지은 『도덕지귀』라는 책이 있는데 아주 꼼꼼한 주석과 더불이 번역이 돼 있어요.

굉장히 연구를 많이 하신 전공자들이 했기 때문에 참고가 될 만한데, 거기서도 도를 태극이라고 해석합니다. 그건 왕필이 없었으면 불가능한데, 바로 이 왕필 식의 새로운 형이상학적이고 현학적인 해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왕필 식의 현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해석이 노자의 주이고 노자의 원이라고 확장합니다. 그게 문제가 있다고 하는 거죠. 이것도 있었지만 다른 부분도 있었다고 말하는 거죠.

그 다음에 네 번째는 처세술 혹은 권모술수라는 이단으로서의 해석. 이 얘기는 사실 앞에 나와야 하는데, 제왕지술과 같은 건데. 제왕지술로 읽는 사람은 노자를 읽을 때 의리적으로 읽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읽고선 말 안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와 같은 권모술수적 성향을 비판하면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단이라는 말과 붙어 있게 되는 겁니다. 이때 이단은 종교적 이단이 아니라, 말하자면 온전한 삶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거죠.

그 다음 다섯 번째, 신과학 혹은 신비주의적 해석. 80년대에 노자가 유행하게 된 중요한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함석헌 선생이 무위를 해석할 때 엔트로피를 이용해서 해석하시죠. 우리나라에서는 신과학 운동과 연관 있고 특히 프리쳐 카프라 같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

문제는, 과학을 얘기하지만 이때 주장되는 동아시아의 사상들은 과학이 아니라 신비주의로 이해된다는 것을 놓치면 안 돼요. 신비주의는 불합리하다는 거죠. 불합리하지만 뜬금없이 갑자기 통찰을 준대요. 많은 책들이 그렇게 돼 있어요. 우린 이런 논리에 조심해야 한다는 겁니다.

서양 사람들이 신비주의라고 몰아붙일 때, 종교학 하는 사람들은 몰라도 철학하는 사람들이 신비주의라고 표현하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이거든요. 그럴듯하게 높여주면서 철학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거고, 아마존에 들어 가고 ‘노자와 타오이즘’ 이라고 쓴 책들을 보면 mysterious 혹은 mystericism religious 라고 붙어 있는 책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실 거예요.

왜냐하면 노자 속에 철학적인 내용이 있다고 말하지 노자라는 텍스트가 철학책이 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드물어요. 얼마 전에 독일 출신 학자 가운데 욀러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분이 도덕경을 번역하면서 굉장히 재미난 책을 썼어요.

읽어보니까, 노자에 나온 테마를 상당히 새롭게 재해석하는 문인인데, 나중에 세미나 하게 되면 그런 세미도 느끼실 거예요. 장자에 나오는 우화를 해석하는 게 무지무지하게 어려운 것이거든요.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되는데.

그걸 근원학적으로 접근해 들어가서 그럴듯하다 싶을 정도로 해석하는 게, 사실 그런 것을 위해 주석서를 보는 건데, 외국인들이 가끔씩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경우들이 많다니까요. 고문헌에는 해박하기 때문에.

그런데 그 사람이 하는 얘기가, 출간된 책이에요. 『노자의 철학적 종교적 측면들』『Religious and Philosophical Aspects of the Laozi』(Csikszentmihalyi, Mark (Edt)) 라고 하는 편집된 책이 있어요. 이 책에 대한 서문을 써달라고 제안 받았다가 그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읽느냐. 그건 곤란하다.

즉, 이 사람들은 노자에 대해 Philosophy를 붙이는 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그 다음에 여섯 번째, 문화사적 종교사적 해석. 이 부분이 굉장히 넓은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묶어버린 까닭은 우리나라 학자층이 좁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이런 식의 해석을 하는 사람은 중문과에 계신 분들이거나 전문번역가인데. 예를 들면 소병(簫兵), 『노자와 성』과 같은 책이 대표적입니다. 문제는 뭐냐. 노자에도 나오는 용어들이 당시의 문화적 지형도와 동격으로 해석해버리면 노자라고 하는 텍스트의 주석학적 전통에서 나오는 용어의 전통과 틀릴 수도 있어요.

반드시 고문자학이 주석사와 꼭 일치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사전을 갖고 공부하던 시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와 조건이 다르다는 거죠.

이런 부분은, ‘아 저런 방식으로 읽을수도 있구나’라고 하는 게 좋지, 철학과 곧바로 연결시켜서 왜 저기랑 여기가 다르냐고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섯 번째와 관련해 소개할만한 책이 있는데, 노먼 J 지라드라고 하는 사람이에요. ‘혼돈신화’를 해석한 책이에요. 고대 중국에도 이른바 창조, creation myth가 있었다는 걸 논증한 책인데. ‘창조신화’ 이 사람이 그 다음에 두꺼운 책을 썼는데 제임스 레게라고 하는 동아시아 고전을 많이 영역했던 사람을 다룬 책이에요.

그런데 제임스 레게 같은 사람이 어떻게 출현할 수 있었는가를 당시 빅토리아 시대를 훑으면서 쓴 책이거든요. 굉장히 비중있는 사람이고, 콜로라도 대학인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사람 얘기를. 그리고 『철학에서 이야기로』에 약간 소개돼 있기도 하죠.

일곱 번째가 소박한 유물변증법과 역사유물론의 중국적 기원, 즉 마오이즘. 193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대륙중국에서 많이 강조했던 노자를 보는 해석이었죠.

여덟 번 째, 유가적 다윈적 해석. 함석헌 선생님이 포함되기도 하고 저도 포함돼 보고 싶은 부류에 속하는데. 이게 조선시대 노장읽기의 방식입니다. 특징이 두 가지입니다.

첫 째는 유가적이다. 왜 그러냐.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노자라고 하는 텍스트는 절성기지, 절인기의 즉 도덕성을 의존하지 마라. 그 다음에 지적, 합리적, 반성적인 삶의 방식은 최고로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잖아요.

그런데 유가적 해석이라고 붙일 수 있는 까닭은, 그와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는 책을 갖다가 유학의 타락한 점, 사회의 불투명하고 불합리한 점을 비판하는 방식의 논리적 무기로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절성기지나 절인기의를 말하지만, 그런 도덕성을 가지고 사회의 도덕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그 용어를 쓴다는 게 역설적이라는 거죠. 이게 유가적인 겁니다. 왕필이 유가적인 이유도 그런 점에서 성립되는 거예요.

지난 번에도 봤잖아요. 상현, 불상현. 노자 연구는 현명하다고 판단되는 놈들을 정치나 행정관료로 임용하지 말라는 것이거든요. 하상공은 말 번지르르하게 하는 부류에 속한 사람을 임용하지 말라고 그대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왕필은 어떻게 했었죠? 제대로 될 사람을 임용하면 다툼이 없을 거니까 숭상하지 않게 된다고 말을 바꾸잖아요. 그럼 무슨 뜻입니까. 재능있는 사람을 임용해라.

동일한 노자의 구절을 하상공과 왕필은 전혀 다른 방식의 의미로 바꾸어 버립니다. 왜곡이 아니라, 그가 유가이기 때문에. 달리 말하면, 절인기의, 절성기지와 같은 반문명적 혹은 반주지주의적 혹은 반도덕적 이런 식의 표현을 통해서 오히려 도덕성을 세우고 사회성을 높이는 데 이용한다. 그래서 이건 분명 유가적입니다.

그리고 다원적이죠. 노자의 기본적인 뜻. 공자를 얘기하면서 성인의 뜻을 이야기하지 왕필의 책을 읽어가면서 성인의 뜻과 같은 얘기 안 나옵니다.

물론 노자지략이라는 책 속에서 노자의 핵심저인 내용을 숭본의식말이라는 표현으로 집약하고 있긴 하지만, 그건 방법론적인 차월인 뿐이에요.

즉, '공자와 같은 성인의 위대한 뜻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와 같은 태도가 노자를 읽는 데에는 없습니다.


▲ 비판 무기로서 노자

따라서 노자라는 책은 얼마나 새롭고 의미 있는 통찰을 얻어낼 수 있느냐는 정도만 중요하지, 도덕성과 같은 핵심적인 부분은 이미 있는 거예요.

이렇게 비유하면 될 것 같아요. 노자라는 프로그램이 있고 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사람들이 과거에 도가겠죠. 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활용하는 게 아니라 이 프로그램을 깔아서 상대되는 다른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못 하도록 제어하는 장치로서만 이용한다는 거죠. 내용은 상관없이.

그래서 이 유가적, 다원적 해석의 특징은 바로 비판철학의 기능. 유가철학 자체에는 비판철학으로서의 논리적 무기가 상당히 적어요.

즉, 사회비판으로서의 무기는 많지만 철학 대 철학이 싸울 때 그걸 비판하는 논리적 무기는 상당히 적어요. 왜냐. 이미 진리의 말씀들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실천의 문제예요.

그런데 도가 쪽이나 장자를 한번 읽어보세요. 자기 철학은 무엇이다고 하는 것보다는 수많은 타자에 대해서 다른 족에 대해서 비판하고 조소하고 풍자하고 은유하는 내용이 훨씬 많잖습니까. 당연히 비판의 논리가 더 많이 들어있죠.

그래서 노장철학의 기본적인 특징은 유학자끼리 싸울 때 유학을 가지고 유학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노장을 가지고 상대방을 비판할 때만 써요 주로. 이것이 바로 노장전통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용당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요, 유학은. 노자는 이용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많지만, 유가는 상대적으로 이념지향성격이 분명한 데 비해서 노장철학은 이념지향적인 성격이 모호해집니다.

충과 효를 굉장히 중요한 가치로 이야기 하는 유가가 충효를 비판할 수 없잖습니까. 그래서 노자를 원용해서 비판하는 건데. 그런데 그때 비판하는 게 제대로 된 충효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판하는 거잖아요.

같은 용어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상대방을 비판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생각하시면, 노장이 얼마나 효과적인 전술적 무기였는가. 그래서 노장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노자와 장자의 도가 무엇인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걸 하나의 도구처럼 사용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는 게 훨씬 더 정확한 판단입니다.

노자나 장자를 이용하고 활용했지 노자나 장자라는 철학 자체를 승화하거나 그걸 펼치려고 했던 바가 적었다는 겁니다. 그건 도가, 예술철학으로 가면 쫙 펼쳐지죠.

◆ 함석헌 ‘노장 읽기’의 역사적 연속과 불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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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 ‘노장 읽기’의 역사적 연속과 불연속


▲ 한국 사회에서 노장 해석의 갈래

자, 그럼 이제 함석헌 선생님이 상식을 창조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의미를 부여하면 다 끝이냐? 그게 아니라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역사적인 시각으로 전향해보면, 상식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굉장히 중요한 한국 땅이라고 하는 지형도와 맞닿아 있는 중요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

그 점이 그의 위대함을 더 위대하게 만든다는 것이겠죠. 즉 그 연속과 불연속을 한 번 찾아보는 것이 그 다음 부분입니다.

6쪽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앞의 부분들은 앞 시간에 많이 한 얘기이기 때문에 반복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정리 차원에서 현재는 조금 달라졌는데 제가 이 글을 쓸 당시가 몇 년 전이었으니까, 처음 학위 논문을 시작할 때 이런 식의 제안을 했으니까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중복되는 것도 있고.

하지만 중요한 결들을 잡는다면은 대략 지금에 와서도 노자나 장자를 해석하는 절, 특히 노자를 해석하는 절이 훨씬 더 복잡한데 한 여덟가지 정도로 분류를 할 수가 있어요.

첫 번째는, 제왕지술(帝王之術) 혹은 법가적 해석 특히 무위를 치술적 개념으로 해석하는 갈래가 소수이긴 하지만 있습니다.

[“무위를 실천하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爲無爲, 則無不治.); 2장, “성인은 무위의 일에 처하고, 말없는 교령을 행한다.”(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 새롭게 발견된 『황제사경』(黃帝四經), 韓非子, 申不害 등등]

특히 이러한 건 황로학 붐과 더불어 일어나면서 이러한 정치적 재해석이 상당히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말하는 황로학은 정치사상으로서의 황로학을 중심으로 이야기 합니다. 한나라 초기를 지배했던 통치사상으로서요.

그 다음에 두 번째는, 황로학이 앞에도 뒤에도 껴 있지만 여기서는 황로라는 말이 한 대에서의 전반기의 황로와 후반기의 황로라는 말이 조금 달라요. 즉, 동일한 황제의 노자라고 하는 두 문헌군, 혹은 황제와 노자를 숭앙하는 시조를 따지는 학문 풍토 혹은 학술 운동이라고 규정하더라도 적어도 그 글자 자체만 놓고 본다면 한 대와 후 한 대에 이것이 의미가 많이 바뀌는데 그 의미가 바뀌는 과정이 도교적인 성격이 충분히 더 강화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상공 주석의 경우도 철학적인 입각점, 방향은 한 초에 청정무위 사상을 중심으로 돼 있다고 했죠. 하지만 치신 사상등과 같은 것이 굉장히 깊이 들어가 있고, 표현 중에 불사(不死)가 나옵니다.

불사라고 하는 사상은 사실은 고대 중국 도가 사상에는 없던 거예요. 나중에 신설술기라고 하는 신선사상이 들어오고 나서 그 영향으로 인해 이 전통에 들어오게 됩니다.

선진 도가의 중요한 용어는 뭐냐. 불사가 아니라 장생(長生)이에요. 우린 이걸 구분해야 해요. 장생과 불사는 다릅니다. 그럼 뭐가 다르냐. 특히 불사를 이야기할 때 두 가지 방식의 불사가 있어요.

하나는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끔 하는 영혼, 영혼불멸론과 연결되는 겁니다. 두 번째는 몸 자체가 죽지 않는 거예요. 신선이 되는 거죠. 서구에서는 영혼불사로서의 immortality가 중심이었다면. 동아시아에서는 영혼과 몸은 뗄 수 없는 거잖습니까. 그러니까 몸이 죽으면 안 돼요. 그래서 신선이라고 하는 건데, 장생은 달라요.

장생은 몇 년 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생존연령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저녁에 죽을 사람이 대낮까지 활달하게 활동하는 날 죽는 날 갑자기 죽는 거예요. 물론 수(壽)를 다하고 나서. 대략 한 120년. 의학적으로 가능한 수가 한 120살 정도라고 합니다. 유명한 사람을 보면 다 꽤 오래 살았어요.

황로학(黃老學) 및 도교적 해석은 치신치국(治身治國之道) 및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추구하는 전통입니다. 이렇게 불어버려요. 장생과 불사가.

노자에 나오는 유명한 말을 가져다가 유덕화가 나오는 영화의 제목으로 할 때 ‘천장지구’라고 했잖습니까. 천지는 장구하다고 할 때 천장지구. 그게 천지가 장구하다는 것은 무지하게 오래간다는 거잖습니까. 그것처럼 인간도 오래 간다는 것은 명 안에서의 생이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저걸 하기 위한 노력이 바로 양생에 해당하는 겁니다. 양생이라는 의미도 전한 시대에서 후한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특히 신선술과의 결합과정에서 의미의 폭이 상당히 바뀌게 딥니다.

그래서 도교 전공하는 분들 가운데서도 이 구분을 못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구분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죠.

그 다음 세 번째로 등장하는 게 현학(玄學) 혹은 형이상학적 해석입니다. 특히 왕필이 노자를 해석했던 방식을 후대의 학자들이 기무론이다, 무를 중시하는 철학이라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 때 무가 형이상학적 절대 무가 아니라는 걸 지적하고 싶어요.

특히 이런 걸 추적할 때 중요한 점은, 아라비아에서 발명한 게 0이잖습니까. 0이라는 개념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진짜 개념이거든요. 고대 중국의 수학책을 보면, 제가 뒤져봤어요. 중국에서 0이라는 걸 개념적으로 흡수하게 되는 건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입니다.

즉 공(空)개념을 흡수한 다음에 일어난 일이라는 거죠. 하나는 막대기 하나놓고, 막대기 두 개 놓으면 2고 막대기 세 개 놓으면 3이에요. 그럼 0은 막대기 없다. 이게 0이에요.

개념으로 정립돼 있지 않는다는 거죠. 0이라는 개념이 정립돼 있을 때 형이상학적 무라는 개념이 이해되거든요. 조사를 해보니까 중국에서 상당히 늦게 0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입니다.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만 가능하다는 거죠. 특히 회남자 책을 보면 유와 무를 둘러싸고 겹쳐놓고서 복잡한 논리식을 만들어놓은 게 꽤 있는데 그때 무에 관한 규정이 나와요. 넝쿨 있죠, 만물이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뒤엉켜 있는 상태를 무라고 이야기합니다.

유와 무라는 개념은 존재론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식적이고 개념적인 틀이라는 거죠. 무엇이라 규정한 수 없다. 그래서 무명유형이라는 말이 쓰이는 까닭이 분명한 형체가 지각되지 않으면 거기에 대해 이름 붙일 수 없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왕필이 도를 해석하면서 무명유형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쓰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거든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많이 가미된 건 사실이에요. 왕필 대에 들어가서.

특히 이 도가 주역의 태극으로 해석됩니다. 제가 엊그저께 서점엘 나가보니까 조선시대 서명 선생이 지은 『도덕지귀』라는 책이 있는데 아주 꼼꼼한 주석과 더불이 번역이 돼 있어요.

굉장히 연구를 많이 하신 전공자들이 했기 때문에 참고가 될 만한데, 거기서도 도를 태극이라고 해석합니다. 그건 왕필이 없었으면 불가능한데, 바로 이 왕필 식의 새로운 형이상학적이고 현학적인 해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왕필 식의 현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해석이 노자의 주이고 노자의 원이라고 확장합니다. 그게 문제가 있다고 하는 거죠. 이것도 있었지만 다른 부분도 있었다고 말하는 거죠.

그 다음에 네 번째는 처세술 혹은 권모술수라는 이단으로서의 해석. 이 얘기는 사실 앞에 나와야 하는데, 제왕지술과 같은 건데. 제왕지술로 읽는 사람은 노자를 읽을 때 의리적으로 읽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읽고선 말 안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와 같은 권모술수적 성향을 비판하면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단이라는 말과 붙어 있게 되는 겁니다. 이때 이단은 종교적 이단이 아니라, 말하자면 온전한 삶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거죠.

그 다음 다섯 번째, 신과학 혹은 신비주의적 해석. 80년대에 노자가 유행하게 된 중요한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함석헌 선생이 무위를 해석할 때 엔트로피를 이용해서 해석하시죠. 우리나라에서는 신과학 운동과 연관 있고 특히 프리쳐 카프라 같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

문제는, 과학을 얘기하지만 이때 주장되는 동아시아의 사상들은 과학이 아니라 신비주의로 이해된다는 것을 놓치면 안 돼요. 신비주의는 불합리하다는 거죠. 불합리하지만 뜬금없이 갑자기 통찰을 준대요. 많은 책들이 그렇게 돼 있어요. 우린 이런 논리에 조심해야 한다는 겁니다.

서양 사람들이 신비주의라고 몰아붙일 때, 종교학 하는 사람들은 몰라도 철학하는 사람들이 신비주의라고 표현하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이거든요. 그럴듯하게 높여주면서 철학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거고, 아마존에 들어 가고 ‘노자와 타오이즘’ 이라고 쓴 책들을 보면 mysterious 혹은 mystericism religious 라고 붙어 있는 책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실 거예요.

왜냐하면 노자 속에 철학적인 내용이 있다고 말하지 노자라는 텍스트가 철학책이 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드물어요. 얼마 전에 독일 출신 학자 가운데 욀러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분이 도덕경을 번역하면서 굉장히 재미난 책을 썼어요.

읽어보니까, 노자에 나온 테마를 상당히 새롭게 재해석하는 문인인데, 나중에 세미나 하게 되면 그런 세미도 느끼실 거예요. 장자에 나오는 우화를 해석하는 게 무지무지하게 어려운 것이거든요.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되는데.

그걸 근원학적으로 접근해 들어가서 그럴듯하다 싶을 정도로 해석하는 게, 사실 그런 것을 위해 주석서를 보는 건데, 외국인들이 가끔씩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경우들이 많다니까요. 고문헌에는 해박하기 때문에.

그런데 그 사람이 하는 얘기가, 출간된 책이에요. 『노자의 철학적 종교적 측면들』『Religious and Philosophical Aspects of the Laozi』(Csikszentmihalyi, Mark (Edt)) 라고 하는 편집된 책이 있어요. 이 책에 대한 서문을 써달라고 제안 받았다가 그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읽느냐. 그건 곤란하다.

즉, 이 사람들은 노자에 대해 Philosophy를 붙이는 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그 다음에 여섯 번째, 문화사적 종교사적 해석. 이 부분이 굉장히 넓은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묶어버린 까닭은 우리나라 학자층이 좁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이런 식의 해석을 하는 사람은 중문과에 계신 분들이거나 전문번역가인데. 예를 들면 소병(簫兵), 『노자와 성』과 같은 책이 대표적입니다. 문제는 뭐냐. 노자에도 나오는 용어들이 당시의 문화적 지형도와 동격으로 해석해버리면 노자라고 하는 텍스트의 주석학적 전통에서 나오는 용어의 전통과 틀릴 수도 있어요.

반드시 고문자학이 주석사와 꼭 일치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사전을 갖고 공부하던 시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와 조건이 다르다는 거죠.

이런 부분은, ‘아 저런 방식으로 읽을수도 있구나’라고 하는 게 좋지, 철학과 곧바로 연결시켜서 왜 저기랑 여기가 다르냐고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섯 번째와 관련해 소개할만한 책이 있는데, 노먼 J 지라드라고 하는 사람이에요. ‘혼돈신화’를 해석한 책이에요. 고대 중국에도 이른바 창조, creation myth가 있었다는 걸 논증한 책인데. ‘창조신화’ 이 사람이 그 다음에 두꺼운 책을 썼는데 제임스 레게라고 하는 동아시아 고전을 많이 영역했던 사람을 다룬 책이에요.

그런데 제임스 레게 같은 사람이 어떻게 출현할 수 있었는가를 당시 빅토리아 시대를 훑으면서 쓴 책이거든요. 굉장히 비중있는 사람이고, 콜로라도 대학인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사람 얘기를. 그리고 『철학에서 이야기로』에 약간 소개돼 있기도 하죠.

일곱 번째가 소박한 유물변증법과 역사유물론의 중국적 기원, 즉 마오이즘. 193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대륙중국에서 많이 강조했던 노자를 보는 해석이었죠.

여덟 번 째, 유가적 다윈적 해석. 함석헌 선생님이 포함되기도 하고 저도 포함돼 보고 싶은 부류에 속하는데. 이게 조선시대 노장읽기의 방식입니다. 특징이 두 가지입니다.

첫 째는 유가적이다. 왜 그러냐.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노자라고 하는 텍스트는 절성기지, 절인기의 즉 도덕성을 의존하지 마라. 그 다음에 지적, 합리적, 반성적인 삶의 방식은 최고로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잖아요.

그런데 유가적 해석이라고 붙일 수 있는 까닭은, 그와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는 책을 갖다가 유학의 타락한 점, 사회의 불투명하고 불합리한 점을 비판하는 방식의 논리적 무기로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절성기지나 절인기의를 말하지만, 그런 도덕성을 가지고 사회의 도덕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그 용어를 쓴다는 게 역설적이라는 거죠. 이게 유가적인 겁니다. 왕필이 유가적인 이유도 그런 점에서 성립되는 거예요.

지난 번에도 봤잖아요. 상현, 불상현. 노자 연구는 현명하다고 판단되는 놈들을 정치나 행정관료로 임용하지 말라는 것이거든요. 하상공은 말 번지르르하게 하는 부류에 속한 사람을 임용하지 말라고 그대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왕필은 어떻게 했었죠? 제대로 될 사람을 임용하면 다툼이 없을 거니까 숭상하지 않게 된다고 말을 바꾸잖아요. 그럼 무슨 뜻입니까. 재능있는 사람을 임용해라.

동일한 노자의 구절을 하상공과 왕필은 전혀 다른 방식의 의미로 바꾸어 버립니다. 왜곡이 아니라, 그가 유가이기 때문에. 달리 말하면, 절인기의, 절성기지와 같은 반문명적 혹은 반주지주의적 혹은 반도덕적 이런 식의 표현을 통해서 오히려 도덕성을 세우고 사회성을 높이는 데 이용한다. 그래서 이건 분명 유가적입니다.

그리고 다원적이죠. 노자의 기본적인 뜻. 공자를 얘기하면서 성인의 뜻을 이야기하지 왕필의 책을 읽어가면서 성인의 뜻과 같은 얘기 안 나옵니다.

물론 노자지략이라는 책 속에서 노자의 핵심저인 내용을 숭본의식말이라는 표현으로 집약하고 있긴 하지만, 그건 방법론적인 차월인 뿐이에요.

즉, '공자와 같은 성인의 위대한 뜻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와 같은 태도가 노자를 읽는 데에는 없습니다.


▲ 비판 무기로서 노자

따라서 노자라는 책은 얼마나 새롭고 의미 있는 통찰을 얻어낼 수 있느냐는 정도만 중요하지, 도덕성과 같은 핵심적인 부분은 이미 있는 거예요.

이렇게 비유하면 될 것 같아요. 노자라는 프로그램이 있고 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사람들이 과거에 도가겠죠. 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활용하는 게 아니라 이 프로그램을 깔아서 상대되는 다른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못 하도록 제어하는 장치로서만 이용한다는 거죠. 내용은 상관없이.

그래서 이 유가적, 다원적 해석의 특징은 바로 비판철학의 기능. 유가철학 자체에는 비판철학으로서의 논리적 무기가 상당히 적어요.

즉, 사회비판으로서의 무기는 많지만 철학 대 철학이 싸울 때 그걸 비판하는 논리적 무기는 상당히 적어요. 왜냐. 이미 진리의 말씀들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실천의 문제예요.

그런데 도가 쪽이나 장자를 한번 읽어보세요. 자기 철학은 무엇이다고 하는 것보다는 수많은 타자에 대해서 다른 족에 대해서 비판하고 조소하고 풍자하고 은유하는 내용이 훨씬 많잖습니까. 당연히 비판의 논리가 더 많이 들어있죠.

그래서 노장철학의 기본적인 특징은 유학자끼리 싸울 때 유학을 가지고 유학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노장을 가지고 상대방을 비판할 때만 써요 주로. 이것이 바로 노장전통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용당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요, 유학은. 노자는 이용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많지만, 유가는 상대적으로 이념지향성격이 분명한 데 비해서 노장철학은 이념지향적인 성격이 모호해집니다.

충과 효를 굉장히 중요한 가치로 이야기 하는 유가가 충효를 비판할 수 없잖습니까. 그래서 노자를 원용해서 비판하는 건데. 그런데 그때 비판하는 게 제대로 된 충효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판하는 거잖아요.

같은 용어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상대방을 비판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생각하시면, 노장이 얼마나 효과적인 전술적 무기였는가. 그래서 노장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노자와 장자의 도가 무엇인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걸 하나의 도구처럼 사용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는 게 훨씬 더 정확한 판단입니다.

노자나 장자를 이용하고 활용했지 노자나 장자라는 철학 자체를 승화하거나 그걸 펼치려고 했던 바가 적었다는 겁니다. 그건 도가, 예술철학으로 가면 쫙 펼쳐지죠.

사마천은 노자한비열전에서 노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노자老子는 누구인가?

노자의 맨 얼사마천은 <노자한비열전>에서 노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노자한비열전>에서는 노자와 한비자 외에도 장자와 신불해를 함께 소개한다. 그래서 이 편을 <노장신한열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노자, 장자, 신불해, 한비자의 이름을 따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헌데 어째서 사마천은 이 넷을 하나로 묶은 것일까. 노자와 장자를 묶고, 신불해와 한비자를 묶는 것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각각 도가와 법가의 인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자와 한비자를 함께 묶었다는 것, 도가와 법가를 하나로 묶었다는 것은 많이 낯설다.




노자老子는 누구인가?

노자의 맨 얼굴 #2
by기픈옹달Nov 26. 2020





사마천은 <노자한비열전>에서 노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노자한비열전>에서는 노자와 한비자 외에도 장자와 신불해를 함께 소개한다. 그래서 이 편을 <노장신한열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노자, 장자, 신불해, 한비자의 이름을 따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헌데 어째서 사마천은 이 넷을 하나로 묶은 것일까. 노자와 장자를 묶고, 신불해와 한비자를 묶는 것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각각 도가와 법가의 인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자와 한비자를 함께 묶었다는 것, 도가와 법가를 하나로 묶었다는 것은 많이 낯설다.


도가는 자유로운 자연적인 삶을 추구했고, 법가는 억압적인 법과 형벌을 이야기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반대의 인물을 함께 묶어놓았다는 뜻이다. 하나 참고해볼 수 있는 것은 한비자가 <노자>의 최초 연구자였다는 점이다. <한비자>의 <해노解老>편은 제목처럼 <노자>에 대한 해석이다. 일단은 도가와 법가, 혹은 노자와 한비자의 연속성에 주목하는 연구자가 있다는 점만을 짚어두도록 하자.




<노자한비열전>에 기록된 노자의 행적은 매우 복잡하다. 일단 노자로 지칭되는 인물이 여럿이다. 사마천은 시대도 이름도 다른 세명을 소개한다. 노자가 둔갑술을 익혔기라도 했던 걸까? 그게 아니라 사마천 스스로도 노자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기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셋은 <노자>를 썼다고 전해지는 노자老子라는 인물의 후보군이라 할 수 있다.




주나라의 이이李耳, 초나라의 노래자老萊子, 주나라 태사 담儋. 사마천은 이 세 인물을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생몰 연대도 분명하지 않다 말한다. '160살 또는 200살을 살았다'는 소문을 전한다.




노자의 전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공자가 노자를 만나 예를 물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노자한비열전>이외에도 다른 글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공자세가>, <장자>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많은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래서 노자가 공자의 스승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이 사건이 있었을까? 후대의 학자들은 이 기록에 많은 의문을 품었다. 만약 <사기>의 기록처럼 공자가 노자에게 가르침을 청했고, 큰 감명을 받았다면 어째서 <논어>에서는 이에 대한 기술이 전혀 없는 것일까. 노자의 제자로 기술되는 것을 피하고자, 공자의 후예들이 그 사실을 삭제해버린 걸까. 대체로는 그와 반대로 해석한다. 노자를 공자의 스승으로 소개하면서 도가의 위상을 높이려 했다는 뜻이다.




이보다는 뒤에 이어서 기록된 두 사건에 더 주목해보자. 하나는 앞서 언급한 함곡관을 넘어 서쪽으로 사라지며 5,000자의 글을 남겼다는 내용. 다른 하나는 진秦 헌공을 만나 예언을 남겼다는 내용이다. 이 둘은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둘 모두 진나라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함곡관을 넘어간 이야기를 살펴보자. 사마천은 노자가 주나라의 쇠락을 보고 서쪽으로 건너갈 때 함곡관을 지났다고 말한다. 함곡관은 '관중', 즉 진나라로 들어가는 길목을 상징하곤 했다. 따라서 노자가 서쪽으로 떠난 것은 주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들어갔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동쪽 주나라의 입장에서는 함곡관을 넘어 노자가 사라진 것이겠지만, 서쪽 진나라의 입장에서는 함곡관을 넘어 노자가 찾아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자는 왜 진나라로 간 것일까? 진헌공을 만난 이야기를 보자. 노자는 주나라와 진나라가 본디 하나의 나라였으나, 현재는 나뉘었고 나뉜 지 500년 만에 다시 합쳐질 것이며, 합쳐진 뒤 70년이 지나 패왕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일종의 예언이다. 노자는 지금 진나라가 주나라, 나아가 춘추전국을 통일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어서 패왕, 새로운 통치자가 도래할 것이다.




실제로 역사는 노자의 말처럼 흘러간다. 진은 나머지 나라를 차례로 정벌하여 무너뜨리고 천하를 통일한다. 진왕 영정은 자신의 업적을 기리며 새로운 호칭이 필요하다 말하였다. 그는 황제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고, 스스로를 짐이라 일컬었다.




주나라의 몰락 이후 등장한 새로운 권력, 이를 예언한 인물이 노자라니. 어지러운 세상을 뒤로하고 조용히 사라진 노인의 모습은 어디 간 것일까. 새로운 제국과 새로운 통치자를 예언한 노자의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기만 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거꾸로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노자의 모습이 일종의 가면은 아니었을까. 노자의 본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비자가 <노자>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한비자 역시 장차 등장할 통일 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진시황이 한비자의 글을 읽고 감탄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노자가 실존하는 인물이었다면 진시황은 노자를 자신의 곁에 두고자 하지 않았을까?

노자
한비자
철학


[도올김용옥] 노자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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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1 노자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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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2 노자를 공부한다는 것은? - 노자는 공자를 가르친 위대한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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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3 아주 철저한 부쟁의 철학 - 원래 인간은 이렇게 평화롭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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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4 가장 래디컬한 아나키즘 - 노자철학은 문명철학이고 무지막지한 정치철학이다 - 노자는 문명의 기술이고 최고의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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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5 진정한 인류의 철학 - 도가도비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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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6 상 - 불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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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7 조선유학자들의 노자주석 - 노자를 통해서 주자학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려고 노력 - 이율곡 박세당 서명응 이충익 홍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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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8 안병무의 갈릴레아의 예수1 - '늘'이 철학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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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9 안병무의 갈릴레아의 예수2 - 예수운동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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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 안병무의 갈릴레아의 예수3 - 신으로 부터 해방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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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1 무명천지지시 유명천지지모 - 길 옳다 길 늘 길 아니고 - 무욕하면 묘한 세계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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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2 현지우현, 내 평생 철학의 알파 오메가 - 박세당의 노자1장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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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3 추석과 남한산성 - 상식과 몰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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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4 양명학 전통과 초원 이충익의 노자주석 '담노' - 최명길, 원교 이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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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5 '진실로 없다'라는 건 없다 - 존재와 무 - 인식론의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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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6 나는 서구인이 아니다 -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불선 - 내 철학 인생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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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7 콩트 '실증주의', 러셀 '서양철학사' - 철학은 철학사가 없이 철학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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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8 형태의 미학과 체험의 미학 - 미추는 희노다 - 러셀 "인간이 편견이 없으면 재미난 책을 쓸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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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9 생이불유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하는 인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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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0 다투지 않게 하라 - '쟁의 문명'을 만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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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1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위무위 즉무불치 - 마음을 어떻게 비우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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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2 종교교육과 인문교육, 존 듀이의 교육론 - 노자의 가장 위대한 프레임, 선과 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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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3 있는 듯 하다, ~ 인 것 같다 - 확실성보다 회의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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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4 허虛, 차면 넘친다 - 허가 없는 상태가 종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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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5 [노자가 옳았다] 나의 마지막 노자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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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6 노자를 모르면 불교를 이해할 수 없다 - 니체 "초인은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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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7 "세계사에 사기 당했다" - 인류는 자연상태에서 '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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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8 국가 없는 사회 Stateless Society - 노자는 고조선의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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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9 고인돌과 고조선, "마한은 고구려의 전신이었다" - 역사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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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30 천지불인 - 코로나는 우리에게 프라이드를 주었다 - 자본과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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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31 곡신불사, 천장지구 - 대승불교는 노자화 된 불교 - 정치는 깡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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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32 내 일생의 테마 '노자와 동경대전' - 상선약수 - 내가 너무 非노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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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33 태일생수 - 시간은 곧 물이다 Time is Water - 자식은 부모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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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34 공수신퇴, 공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는 것 - 정확한 카이로스에 그치는 것이 노자철학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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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35 몸에서 하늘과 땅이 분리되는 것이 죽음 - 재영백포일 능무리호 - 도올의 고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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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36 몸의 철학 - 코로나는 우리에게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 전기치유 능영아호 - 운동의 최고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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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37 제환공과 수레공 - 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 - 전 인류를 리드하는 위대한 민족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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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38 거피취차,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 - 오색 오음 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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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39 - 몸이 무엇인지 너무 모르고 산다, 총욕약경 귀대환약신 - 실밥과 바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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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0 몸철학의 바이블 - 건강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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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1 우리는 도덕을 축적해 왔다 -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 것 - '몸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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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2 다산 정약용과 노자 - 여유당 - 유가와 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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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3 모든 것은 지속이다 - 우리 사유의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역사가 진보한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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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4 - 21세기는 노자적인 인간을 만들어내야 할 시기 - 가장 좋은 정치의 핵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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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5 현소포박 소사과욕 - 노자가 말하는 우리 인생관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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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6 노자 20장을 읽으면서 삶의 위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 노자라는 인간의 진정한 실존적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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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7 하나님은 황홀하다 - 이것으로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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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8 곡즉전, 꼬부라지면 온전해진다 - 전관全觀의 인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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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9 희언자연, 말이 없는 것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 옛 사람들을 깔보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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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50 발뒤꿈치를 들고는 오래 못 서있는다, 기자불립 -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적인 협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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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51 어떻게 역사가 진보를 하냐? 쌩 그짓말! - 우주는 창조도 없고 종말도 없는 '생성의 과정' 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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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52 도법자연,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 받는다 -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 - 총체적인 노자사상의 핵심은 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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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53 우리의 자녀들이 스스로 그러한대로 자기의 모습을 따라서 자라날 수 있도록 우리는 도와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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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54 천하가 내꺼다? 택도 없는 소리 - 천하신기 불가위야 - 경주 최부자집과 동학의 수운 최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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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55 노자의 군사철학, 불이병강천하 - 한국인이 정의로운 깡다구를 부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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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56 모든 전쟁은 졸속으로 끝내는게 최고다 - 전쟁은 상례로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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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57 우리나라를 법제적으로만 몰아가고 있는데... - 지지불태, 그침을 알아야 위태롭지 않다 - 우리의 통나무를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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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58 내가 죽을 때까지 할일은 그저... - "지성사회가 썩어 있는 이유는 민중의 소리를 듣는 학문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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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59 대상을 잡고 있으면 천하가 움직인다! - 도올은 지금 천지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 동학 김일부 강증산 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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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0 숭본식말 - 근본을 숭상할 줄 알면 그 말엽이 번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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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1 "재미의 지속성"이 있어야 건강해진다 - 노자를 공부해야 근원적인 교만성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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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2 포일 득일 - 하나를 얻은 사람들은 이런 이치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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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3 반자도지동 - '다시개벽'의 당위성을 우리 현실의 문제점에서 발견 - 하나님의 뜻을 "그럴리가 있겠나? 의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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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4 하삐리가 깔깔 웃지 않으면 내 도는 도가 아니다! - 큰 그릇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대기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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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5 조금 손해보고 조금 덜어낼 줄 아는 지혜 - 코로나와 노자 -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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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6 이름과 몸, 몸과 돈 어느 것이 내게 더 가까운 것이냐? - 집권세력이 깡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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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7 만족을 모르는 것처럼 큰 '화'는 없다 - 일본 군국주의의 원본 - 우리민족이 살아온 모습, "반드시 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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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8 우리나라는 대중이 위대하다. 대중이 안 속아... - 문 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 수 있다, 불출호 지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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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9 동학을 "한다" - 도대체 동학이 뭐냐? - 고조선의 노자를 21세기에 부활시킨 사람이 ❤️ 수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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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70 이것은 진짜다! 진짜!! - 동학은 오천년의 지성사를 압축시킨 우리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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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1 천지는 아는데 귀신을 모른다. 그 귀신이 '나' - 죽음과 삶을 같이 살아가는 것이다 - 출생입사, 지천지이무지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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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2 죽음의 자리가 없는 인생을 살자 - 우리의 민주주의는 노자와 동학 - 경주 최부자집과 동학 최수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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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3 "후학들이 나를 비판 할 수 있도록 제 책은 동학의 원 사료집 자료집 역할을..." - 최초의 우리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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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4 무한한 욕망의 성전을 지어 놓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불가능한 짓들을 하고 있다 - 수렵 채집 경제는 인류의 이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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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5 몸은 몸으로, 집은 집으로, 마을은 마을로, 나라는 나라로, 천하는 천하로써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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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6 페미니즘과 힙합 - 생명력의 발랄함이 있는 젊은 래퍼들의 토론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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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7 허황된 성장병과 아파트 - 정해진 미래, 지금의 인생설계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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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8 그깟 국회의원 떨어지면 어때~~ - 우리는 하나님을 귀화시켜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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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9 스스로 통나무가 된다 - 모든 병법의 원조, 노자는 병가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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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0 '아낌' 만한 것이 없다, 치인사천막약색 - '인간의 어리석음'이 너무 오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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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1 수운을 만남으로서 내가 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지를 알게 됐다 - 종교를 부정하는 종교를 만든 우리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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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농촌문제!!! 어떻게 되겠지~ 라구요? 농촌이 망하면 대한민국도 끝장이다 -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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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2 - 귀신과 정치인이 우리민족을 괴롭히고 상하게 하지 않아야... '수운은 조선문명의 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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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3 '대국'은 '하류'다 - 정말 재수도 드럽게 없었던 남북문제 - 북핵문제의 해결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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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4 붉은 꽃잎의 붉음이여! - 도의 정치학 - 서양사상은 2천년 동안 유치무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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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5 노자와 예수가 같은 뿌리? - [동학의 시대가 온다]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알려면 동경대전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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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6 노자가 말하는 고조선 철학 - 동양철학의 가장 상식적인얘기, 천부경 - 고조선은 상식적인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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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7 서양은 역사의 터닝이 어렵다, 서양역사는 어떻게 도둑질을 잘하느냐? - 자유의 핵심은 '재산권' - 행복? "잘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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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8 매년 10%씩 발전한다고!! 그럼 어떡할거야? - 쭈~욱 행복한 건 없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과대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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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9 "수운의 삶 자체가 부활" - 어려서부터 '너는 죄인이다'라는 종교 교육을 받는다면... - 인생을 경쟁으로 생각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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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90 나에게는 세가지 보배가 있다, 자*검*불감위천하선 - 최고 정치가의 두가지 덕성 - 정말 잘싸우는 사람은 화를 안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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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91 미국에 대한 실망감, 이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서양의 자만감과 우리의 자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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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92 "나는 옥을 품고 산다"는 프라이드, 미래를 낙관하는 믿음 - 예수와 바울의 결정적 차이 - 해월 최시형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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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93 성 경 신, 동학의 핵심 - 종교의 본질에 대한 고민 - 신이 정의를 상실하면 우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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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94 "참새도 안 믿는 걸 2천년 동안 전 인류가 믿고 있다" "정말 겸손해야 할 것은 '신' 입니다" - 원불교와 박중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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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95 들들볶고 쥐어짜지 마라 - 정유재란은 임진왜란과는 다른 또 하나의 전쟁 - 전쟁을 민중의 삶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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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96 내가 도법자연의 삶을 살면 모든 행운이 나한테 온다 - "나는 도올TV가 있어서 행복합니다" - 천망회회 소이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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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97 "제인생의 50년 이상을 지배해 온 동경대전, 이 책으로 최소한의 학자로서의 의무와 나의 양심을 지킬 수 있는 행위를 일단은 했다"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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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98 임진왜란과 동학 - "이순신의 역사는 이순신 개인의 역사가 아니잖아요, 민중의 눈에서 본 역사가 필요하다"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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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99 여러분들은 하바드 석사학위를 받으실 만하다 - 백성이 굶주리는 이유는? - 노자사상은 철저하게 삶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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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0 화이트헤드의 이성과 노자 76장 - 76장의 이해가 노자사상 전체와 노자의 우주론을 이해하는 것 - 죽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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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1 "노자와 수운과 화이트헤드가 하나다" - 유약한 인간이 돼라!! - 죽음과 삶의 동시성, 고조선과 우리의 동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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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2 우리 사회의 자본주의는 도덕성이 없다 - 어떻게 부족한 것을 더 덜어서 남는 자들을 받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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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3 훌륭한 인재는 많았으나 리더십이 저열했다 - 임진왜란은 우리의 승전의 기록 - 선조 고종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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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4 초대교회의 최대 사기는 '대속', 내 죄를 왜 딴 사람이? - 나라의 주인이 될려면 그 나라의 모든 죄를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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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5 거대한 원한은 아무리 화해해도 원망의 앙금이 남는다 - 갑질하지 마라 - 하늘의 도는 편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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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6 역사를 다시 알아야 할 때다 - 임진왜란부터 지금까지 전시작전권이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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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7 소국과민, 나라의 크기를 작게 하고 나라의 인구를 적게 하라 - 중국에서 노자가 환영 받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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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8 노자철학의 총결,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락기속 - 플라톤의 '폴리테이아'와 노자의 '소국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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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9 [종강] 거짓말을 하지 말라 - 퍼내라! 너를 비워라! - 모든 것은 변화 속에 있다 - 상, 허, 자연(스스로 그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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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도올 노자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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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1 노자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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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2 노자를 공부한다는 것은? - 노자는 공자를 가르친 위대한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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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3 아주 철저한 부쟁의 철학 - 원래 인간은 이렇게 평화롭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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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4 가장 래디컬한 아나키즘 - 노자철학은 문명철학이고 무지막지한 정치철학이다 - 노자는 문명의 기술이고 최고의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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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5 진정한 인류의 철학 - 도가도비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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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6 상 - 불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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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7 조선유학자들의 노자주석 - 노자를 통해서 주자학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려고 노력 - 이율곡 박세당 서명응 이충익 홍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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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8 안병무의 갈릴레아의 예수1 - '늘'이 철학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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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09 안병무의 갈릴레아의 예수2 - 예수운동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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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 안병무의 갈릴레아의 예수3 - 신으로 부터 해방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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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1 무명천지지시 유명천지지모 - 길 옳다 길 늘 길 아니고 - 무욕하면 묘한 세계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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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2 현지우현, 내 평생 철학의 알파 오메가 - 박세당의 노자1장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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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3 추석과 남한산성 - 상식과 몰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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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4 양명학 전통과 초원 이충익의 노자주석 '담노' - 최명길, 원교 이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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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5 '진실로 없다'라는 건 없다 - 존재와 무 - 인식론의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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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6 나는 서구인이 아니다 -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불선 - 내 철학 인생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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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7 콩트 '실증주의', 러셀 '서양철학사' - 철학은 철학사가 없이 철학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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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8 형태의 미학과 체험의 미학 - 미추는 희노다 - 러셀 "인간이 편견이 없으면 재미난 책을 쓸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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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9 생이불유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하는 인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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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0 다투지 않게 하라 - '쟁의 문명'을 만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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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1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위무위 즉무불치 - 마음을 어떻게 비우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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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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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2 종교교육과 인문교육, 존 듀이의 교육론 - 노자의 가장 위대한 프레임, 선과 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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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3 있는 듯 하다, ~ 인 것 같다 - 확실성보다 회의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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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4 허虛, 차면 넘친다 - 허가 없는 상태가 종말이다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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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5 [노자가 옳았다] 나의 마지막 노자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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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6 노자를 모르면 불교를 이해할 수 없다 - 니체 "초인은 나무다"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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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7 "세계사에 사기 당했다" - 인류는 자연상태에서 '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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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8 국가 없는 사회 Stateless Society - 노자는 고조선의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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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29 고인돌과 고조선, "마한은 고구려의 전신이었다" - 역사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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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30 천지불인 - 코로나는 우리에게 프라이드를 주었다 - 자본과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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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31 곡신불사, 천장지구 - 대승불교는 노자화 된 불교 - 정치는 깡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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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32 내 일생의 테마 '노자와 동경대전' - 상선약수 - 내가 너무 非노자적이다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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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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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33 태일생수 - 시간은 곧 물이다 Time is Water - 자식은 부모를 만든다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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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34 공수신퇴, 공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는 것 - 정확한 카이로스에 그치는 것이 노자철학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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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35 몸에서 하늘과 땅이 분리되는 것이 죽음 - 재영백포일 능무리호 - 도올의 고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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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36 몸의 철학 - 코로나는 우리에게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 전기치유 능영아호 - 운동의 최고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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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37 제환공과 수레공 - 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 - 전 인류를 리드하는 위대한 민족이 되자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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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38 거피취차,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 - 오색 오음 오미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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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39 - 몸이 무엇인지 너무 모르고 산다, 총욕약경 귀대환약신 - 실밥과 바이든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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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0 몸철학의 바이블 - 건강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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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1 우리는 도덕을 축적해 왔다 -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 것 - '몸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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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2 다산 정약용과 노자 - 여유당 - 유가와 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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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3 모든 것은 지속이다 - 우리 사유의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역사가 진보한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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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4 - 21세기는 노자적인 인간을 만들어내야 할 시기 - 가장 좋은 정치의 핵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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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5 현소포박 소사과욕 - 노자가 말하는 우리 인생관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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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6 노자 20장을 읽으면서 삶의 위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 노자라는 인간의 진정한 실존적 고민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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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7 하나님은 황홀하다 - 이것으로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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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8 곡즉전, 꼬부라지면 온전해진다 - 전관全觀의 인간이 되자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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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49 희언자연, 말이 없는 것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 옛 사람들을 깔보지 않게 됐다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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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50 발뒤꿈치를 들고는 오래 못 서있는다, 기자불립 -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적인 협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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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51 어떻게 역사가 진보를 하냐? 쌩 그짓말! - 우주는 창조도 없고 종말도 없는 '생성의 과정' 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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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52 도법자연,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 받는다 -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 - 총체적인 노자사상의 핵심은 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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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53 우리의 자녀들이 스스로 그러한대로 자기의 모습을 따라서 자라날 수 있도록 우리는 도와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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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54 천하가 내꺼다? 택도 없는 소리 - 천하신기 불가위야 - 경주 최부자집과 동학의 수운 최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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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55 노자의 군사철학, 불이병강천하 - 한국인이 정의로운 깡다구를 부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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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56 모든 전쟁은 졸속으로 끝내는게 최고다 - 전쟁은 상례로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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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57 우리나라를 법제적으로만 몰아가고 있는데... - 지지불태, 그침을 알아야 위태롭지 않다 - 우리의 통나무를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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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58 내가 죽을 때까지 할일은 그저... - "지성사회가 썩어 있는 이유는 민중의 소리를 듣는 학문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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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59 대상을 잡고 있으면 천하가 움직인다! - 도올은 지금 천지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 동학 김일부 강증산 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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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0 숭본식말 - 근본을 숭상할 줄 알면 그 말엽이 번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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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1 "재미의 지속성"이 있어야 건강해진다 - 노자를 공부해야 근원적인 교만성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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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2 포일 득일 - 하나를 얻은 사람들은 이런 이치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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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3 반자도지동 - '다시개벽'의 당위성을 우리 현실의 문제점에서 발견 - 하나님의 뜻을 "그럴리가 있겠나? 의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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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4 하삐리가 깔깔 웃지 않으면 내 도는 도가 아니다! - 큰 그릇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대기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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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5 조금 손해보고 조금 덜어낼 줄 아는 지혜 - 코로나와 노자 -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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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6 이름과 몸, 몸과 돈 어느 것이 내게 더 가까운 것이냐? - 집권세력이 깡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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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7 만족을 모르는 것처럼 큰 '화'는 없다 - 일본 군국주의의 원본 - 우리민족이 살아온 모습, "반드시 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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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8 우리나라는 대중이 위대하다. 대중이 안 속아... - 문 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 수 있다, 불출호 지천하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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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69 동학을 "한다" - 도대체 동학이 뭐냐? - 고조선의 노자를 21세기에 부활시킨 사람이 ❤️ 수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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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70 이것은 진짜다! 진짜!! - 동학은 오천년의 지성사를 압축시킨 우리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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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1 천지는 아는데 귀신을 모른다. 그 귀신이 '나' - 죽음과 삶을 같이 살아가는 것이다 - 출생입사, 지천지이무지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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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2 죽음의 자리가 없는 인생을 살자 - 우리의 민주주의는 노자와 동학 - 경주 최부자집과 동학 최수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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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3 "후학들이 나를 비판 할 수 있도록 제 책은 동학의 원 사료집 자료집 역할을..." - 최초의 우리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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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4 무한한 욕망의 성전을 지어 놓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불가능한 짓들을 하고 있다 - 수렵 채집 경제는 인류의 이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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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5 몸은 몸으로, 집은 집으로, 마을은 마을로, 나라는 나라로, 천하는 천하로써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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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6 페미니즘과 힙합 - 생명력의 발랄함이 있는 젊은 래퍼들의 토론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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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7 허황된 성장병과 아파트 - 정해진 미래, 지금의 인생설계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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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8 그깟 국회의원 떨어지면 어때~~ - 우리는 하나님을 귀화시켜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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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79 스스로 통나무가 된다 - 모든 병법의 원조, 노자는 병가의 할아버지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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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0 '아낌' 만한 것이 없다, 치인사천막약색 - '인간의 어리석음'이 너무 오래 되었다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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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1 수운을 만남으로서 내가 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지를 알게 됐다 - 종교를 부정하는 종교를 만든 우리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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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농촌문제!!! 어떻게 되겠지~ 라구요? 농촌이 망하면 대한민국도 끝장이다 -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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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2 - 귀신과 정치인이 우리민족을 괴롭히고 상하게 하지 않아야... '수운은 조선문명의 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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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3 '대국'은 '하류'다 - 정말 재수도 드럽게 없었던 남북문제 - 북핵문제의 해결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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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4 붉은 꽃잎의 붉음이여! - 도의 정치학 - 서양사상은 2천년 동안 유치무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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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5 노자와 예수가 같은 뿌리? - [동학의 시대가 온다]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알려면 동경대전을 읽어야 한다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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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6 노자가 말하는 고조선 철학 - 동양철학의 가장 상식적인얘기, 천부경 - 고조선은 상식적인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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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7 서양은 역사의 터닝이 어렵다, 서양역사는 어떻게 도둑질을 잘하느냐? - 자유의 핵심은 '재산권' - 행복? "잘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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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8 매년 10%씩 발전한다고!! 그럼 어떡할거야? - 쭈~욱 행복한 건 없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과대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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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89 "수운의 삶 자체가 부활" - 어려서부터 '너는 죄인이다'라는 종교 교육을 받는다면... - 인생을 경쟁으로 생각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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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90 나에게는 세가지 보배가 있다, 자*검*불감위천하선 - 최고 정치가의 두가지 덕성 - 정말 잘싸우는 사람은 화를 안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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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91 미국에 대한 실망감, 이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서양의 자만감과 우리의 자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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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92 "나는 옥을 품고 산다"는 프라이드, 미래를 낙관하는 믿음 - 예수와 바울의 결정적 차이 - 해월 최시형은 누구인가?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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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93 성 경 신, 동학의 핵심 - 종교의 본질에 대한 고민 - 신이 정의를 상실하면 우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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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94 "참새도 안 믿는 걸 2천년 동안 전 인류가 믿고 있다" "정말 겸손해야 할 것은 '신' 입니다" - 원불교와 박중빈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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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95 들들볶고 쥐어짜지 마라 - 정유재란은 임진왜란과는 다른 또 하나의 전쟁 - 전쟁을 민중의 삶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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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96 내가 도법자연의 삶을 살면 모든 행운이 나한테 온다 - "나는 도올TV가 있어서 행복합니다" - 천망회회 소이불실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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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97 "제인생의 50년 이상을 지배해 온 동경대전, 이 책으로 최소한의 학자로서의 의무와 나의 양심을 지킬 수 있는 행위를 일단은 했다"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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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98 임진왜란과 동학 - "이순신의 역사는 이순신 개인의 역사가 아니잖아요, 민중의 눈에서 본 역사가 필요하다"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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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99 여러분들은 하바드 석사학위를 받으실 만하다 - 백성이 굶주리는 이유는? - 노자사상은 철저하게 삶의 철학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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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0 화이트헤드의 이성과 노자 76장 - 76장의 이해가 노자사상 전체와 노자의 우주론을 이해하는 것 - 죽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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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1 "노자와 수운과 화이트헤드가 하나다" - 유약한 인간이 돼라!! - 죽음과 삶의 동시성, 고조선과 우리의 동시성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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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2 우리 사회의 자본주의는 도덕성이 없다 - 어떻게 부족한 것을 더 덜어서 남는 자들을 받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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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3 훌륭한 인재는 많았으나 리더십이 저열했다 - 임진왜란은 우리의 승전의 기록 - 선조 고종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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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4 초대교회의 최대 사기는 '대속', 내 죄를 왜 딴 사람이? - 나라의 주인이 될려면 그 나라의 모든 죄를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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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5 거대한 원한은 아무리 화해해도 원망의 앙금이 남는다 - 갑질하지 마라 - 하늘의 도는 편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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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6 역사를 다시 알아야 할 때다 - 임진왜란부터 지금까지 전시작전권이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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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7 소국과민, 나라의 크기를 작게 하고 나라의 인구를 적게 하라 - 중국에서 노자가 환영 받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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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8 노자철학의 총결,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락기속 - 플라톤의 '폴리테이아'와 노자의 '소국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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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노자 109 [종강] 거짓말을 하지 말라 - 퍼내라! 너를 비워라! - 모든 것은 변화 속에 있다 - 상, 허, 자연(스스로 그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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