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7

만다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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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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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계 만다라(Vajradhatu Mandala)가 그려져 있는 티베트 불교의 탕카
힌두교의 스리 얀트라(Sri Yantra)

만다라(산스크리트어मण्डल 만달라, 曼茶羅, 曼陀羅, 영어Mandala)는 다양한 개체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만다라"라는 낱말 자체는 "(圓 · circle)"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만달라(मण्डल Maṇḍala)를 음을 따라 번역한 것이다.

만다라는 원래는 힌두교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불교에서도 사용된다. 주로, 힌두교의 밀교(탄트리즘 · Tantrism)와 불교의 밀교(금강승 · Vajrayana)의 종교적 수행 시에 수행을 보조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정해진 양식 또는 규범에 따라 그려진 도형을 가리킨다. 힌두교의 얀트라(यन्त्र · Yantra)도 이러한 도형에 해당하는데 만다라의 일종이라 생각할 수 있다. 보통 "얀트라"라는 낱말은 만다라와는 구분하여 힌두교의 문맥에서만 사용되는데, 반면 "만다라"라는 낱말은 힌두교와 불교 모두에서 사용된다. 힌두교와 불교의 전통에서, 만다라의 기본 형태는 사각형의 중심에 이 있으며 사각형의 각 변의 중앙에 한 개의 이 있는 형태로, 이 때 각 은 주로 영어의 (T)자 모양을 한다.[1][2] (오른쪽에 있는 불교의 금강계 만다라와 힌두교의 스리 얀트라 그림을 참조하시오.)

한문으로 번역된 불교의 밀교 경전에서, 당나라의 현장(玄奘: 602~664) 이전의 번역인 구역(舊譯)에서는 만다라(曼茶羅)를 (壇)이라고 한역(漢譯)하였다.[3] 반면 당나라 현장 이후의 번역인 신역(新譯)에서는 취집(聚集)이라고 한역하였다.[3] 한편, 만다라를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 번역하기도 한다.[4]

한편, 불교에서, 만다라 꽃은 연화(蓮花: 연꽃)를 가리키며 불상(佛像) 앞에 놓인 제단을 만다라라고도 한다. 금강승(바즈라야나) 계열의 티베트 불교에서는 모래그림(sandpainting)을 사용하여 만다라를 제작하는 방법도 개발하였다. 이들을 모래 만다라(Sand-mandala)라고 한다.

불교의 만다라[편집]

불교의 밀교에서는 

사각형 또는 원형의 흙으로 만든 단(壇)을 만들어 여기에 불상과 보살상을 둔 후 수행 의식을 행하고 공양을 올렸다.[3] 이 (壇)을 만다라라고 하였는데, 또한 여러 부처와 보살이 충만되어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취집(聚集)이라고도 하였다.[3]

산스크리트어 "만달라(मण्डल Maṇḍala)"는 

원래는 본질을 뜻하는 만달(Maṇḍal)과 소유를 뜻하는 라(la)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낱말로, "본질의 것", "본질을 소유한 것", 또는 "본질을 담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3][4] 

이런 의미에서는, 불교의 본질은 보리(菩提), 즉 깨달음이기 때문에 만다라는 부처의 깨달음의 경지(境地)를 상징화하여 신성(神聖)한 단(壇)이라는 물리적 · 입체적 형태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3] 

중국 · 티베트 등의 불교 중 밀교에서는 대일여래(大日如來)를 중심으로 하여 여러 부처와 보살을 배치한 그림을 가리켜 만다라고도 한다.[3] 이러한 그림으로서의 만다라도, 다만 도형화하여 평면적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부처의 깨달음의 경지를 상징화하여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입체적인 단(壇)과 본질적인 의미가 동일하다. 이런 면에서, 만다라는 수행자가 명상을 통하여 우주의 에센스("불성")와 합일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깨달음의 안내도라는 의미가 있다.

불교의 밀교에서는 깨달음의 경지를 도형화한 만다라를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4] 윤원구족은 낱낱의 살(輻)이 바퀴축(轂)에 모여 둥근 수레바퀴(圓輪)를 이루듯이, 모든 법을 원만히 다 갖추어 모자람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4]

태장계 만다라[편집]

태장계 만다라: 가운데에 여덟 개의 연꽃 잎이 있는 원이 있는데 이 원의 중심부에 대일여래가 있으며 각 연꽃 잎에도 한 명의 부처 또는 보살이 있다

대일경(大日經)》은 7세기 후반에 인도 중부에서 성립되었는데, 여러 부처와 보살을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집대성하여 만다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 만다라를 태장계 만다라(胎藏界曼茶羅 · Garbhadhatu mandala)라고 하였다.[3] 태장계 만다라를 사용하는 태장계 밀교는 이론적으로 《화엄경(華嚴經)》에 나타난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의 교의를 받아들여 현실의 사상(事象)에서 곧바로 우주의 진실상(眞實相)을 직관(直觀)할 것을 주장한다.[3]

금강계 만다라[편집]

대일경(大日經)》이 성립된 때로부터 얼마 후에 인도 남부에서 성립되었다고 하는 《금강정경(金剛頂經)》은 유가행파의 교의에 의거하여 만들어진 금강계 만다라(金剛界曼茶羅 · Vajradhatu Mandala)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3] 금강계 만다라를 사용하는 밀교를 금강계 밀교라고도 한다.

갤러리[편집]

각주[편집]

참고 문헌[편집]

구카이의 종예종지원에 관한 연구 박균섭 - 종지원대학(種智院大学)

구카이의 종예종지원에 관한 연구
구카이의 종예종지원에 관한 연구
한국일본교육학연구
2008, vol.13, no.1, pp. 151-164 (14 pages)
발행기관 : 한국일본교육학회

연구분야 : 사회과학 > 교육학
박균섭 1
1성균관대학교

초록 

일본 진언종(眞言宗)의 개조 구카이(空海, 774~835)는 일본 천태종(天台宗)의 개조 사이쵸(最澄, 767~822)와 함께, 헤이안불교의 좌표를 뚜렷하게 제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구카이가 804년에 견당사를 따라 당의 장안에 들어가 공부한 후, 806년에 귀국하면서 들여온 것은 진언밀교(眞言密敎)를 포함한 종합적인 문화체계였다. 

구카이는 「삼교지귀(三教指帰)」와 「비밀만다라십주심론(秘密曼荼羅十住心論)」을 저술하여 유교, 도교, 불교에 대한 비교사상론을 보여주는 한편, 열 가지 마음의 존재 양상(十住心)을 단계적으로 풀이하면서 진언밀교의 교의가 최고의 단계이자 구극의 진실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구카이는 학교교육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교토에 사립학교 종예종지원(綜芸種智院)을 설립하였다(828. 12. 15). 당시의 교육은, 귀족의 자제를 대상으로 하는 등 일부에게만 문호를 개방했으나, 종예종지원은 서민의 자제에게도 문호를 개방한 획기적인 학교였다. 종예종지원은 학교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유교, 불교, 도교 등 모든 사상과 학예를 망라하는 종합적 교육기관이기도 했다. 그러나 종예종지원은 구카이가 입적한 후 10년 정도 지속되다가 폐교되었다(845). 

현재는 교토의 종지원대학(種智院大学)이 종예종지원의 교육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진언종의 개조 구카이의 학교교육에 관한 구상과 실천에도 드러난 바와 같이, 진언밀교는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그 안에서 큰 지혜와 구극의 진실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그 세속적 가치가 침략과 전쟁의 프로젝트로 구축되었을 때, 진언밀교 역시 큰 지혜나 구극의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일본의 영광과 번영을 기원하는 주술체계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

空海(弘法大師:774~835)は、平安時代初期の僧侶として、日本真言宗の開祖である。日本天台宗の開祖である最澄(伝教大師:767~822)とともに、奈良仏教から平安仏教へと日本仏教が転換していく流れに位置している。空海は、儒教、道教、仏教の比較思想論でもある「三教指帰」を通して、あらゆる思想を網羅した理解の地平を力說した。そして「秘密曼荼羅十住心論」を通して、真言密教の基盤を磐石化するとともに、その存続のために尽力した。空海は、遣唐使の留学僧として唐の長安に入って(804年)、惠果の下で佛敎を勉强した後、日本に真言密教をもたらした(806年)。その時、空海が請来したのは眞言密教を含めた總合的な文化体系であった。828年12月15日には、京都の東寺の東鄰に私立の學校である綜芸種智院を開設した。その時の教育は、貴族の子弟を対象にするなど、一部の人々にしか門戸を開いていなかったが、綜芸種智院は庶民にも教育の門戸を開いた画期的な学校であった。綜芸種智院の名前に表されるように、この學校は儒教、仏教、道教などあらゆる思想と学芸を網羅する総合的な教育機関でもある。現在は、京都の種智院大学が綜芸種智院の敎育精神を受け継いでいる。空海は、江戶時代にも明治時代にも、外来の不純な思想(眞言密敎)を日本に持ち込んだとして、そして廃仏毀釈という反佛敎運動によって、批判されたこともある。しかし、空海は、1930年代の後半に入ってから、外来の思想(眞言密敎)を日本流に紹介し、日本文化の形成に寄與した人物として評価されるようになった。中國と日本の戦争が開始しており、国民が団結して戦争に臨む必要があったのであり、そのために空海が日本の偉大な人物として再評価されたのである。


키워드
구카이, 사이쵸, 진언밀교, 비교사상론, 종예종지원
空海, 最澄, 真言密教, 比較思想論, 綜芸種智院.

空海의 如來藏思想에 관한 小考 -卽身成佛義를 중심으로-

空海의 如來藏思想에 관한 小考 -卽身成佛義를 중심으로-



空海의 如來藏思想에 관한 小考 -卽身成佛義를 중심으로-A Study on the Tathāgata-garbha Thought of Kukai: Mainly Focused on Jeuksinseongbuleui(卽身成佛義)




동서철학연구

약어 : S.P.E.W

2017, vol., no.84, pp. 115-138 (24 pages)

DOI : 10.15841/kspew..84.201706.115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연구분야 :
인문학 >
철학
이석환 /Lee, Suk-Hwan 1


1동국대학교
이 논문은 한국연구재단 지원과제의 연구결과물입니다. [KRM 바로가기]
[2014년 시간강사지원사업] 空海의 如來藏思想에 관한 小考

초록


본 연구는 일본 진언밀교의 개산조인 쿠카이(空海)가 중국유학에서 돌아와 진언종을 개창했을 때 당시 중국불교의 경향인 여래장사상이 진언밀교 사상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관한 연구이다. 쿠카이는 헤이안(平安) 초기의 승려로서 일본불교가 성립되는 시기에 중국의 밀교를 직접 도입한 인물로 일본불교사상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쿠카이는 그의 저작인 『비밀만다라십주심론(秘密曼茶羅十住心論)』의 십주심체계를 통해 밀교의 수승함을 밝히고, 삼밀수행을 통한 가지에 의해 성불할 수 있다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성불론을 바탕으로 체계화 된 사상이 진언밀교이고, 진언밀교의 교학이 완성되는 배경에는 『대승기신론』과 『석마하연론』을 중심으로 한 여래장사상이 기반이 된다. 또한 그는 『즉신성불의(卽身成佛義)』를 통해 즉신성불의 원리를 완성했는데, 『즉신성불의』에서는 삼대사상을 바탕으로 육대·사만·삼밀의 사상을 구성하고, 중중무진(重重無盡)·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다[心佛衆生是三無差別]는 사상을 받아들여 현세의 몸으로 바로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즉신성불사상은 『대승기신론』과 그 주석서인 『석마하연론』과의 관계가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서 그의 사상체계가 형성되는데 여래장사상이 큰 영향을 준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즉신성불의 원리는 당시의 중국 밀교에서는 완벽하게 갖추지 못했던 내용으로서 쿠카이의 성불론과 수행체계가 명확하게 나타나는 진언밀교의 특징이다. 이와 같이 쿠카이의 저서를 통해 그의 사상적 흐름을 살펴보면, 진언밀교 교학은 전통적인 밀교사상을 바탕으로 여래장사상의 영향을 받아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쿠카이는 당시의 사상들을 체계화하여 자신의 밀교교학을 완성시켰으며, 그 기저에는 여래장사상을 바탕으로 한 즉신성불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진언밀교의 즉신성불사상을 주창한 것이다.


This study is to look into what kind of effect the tathāgata-garbha thought had on the Kukai’s thought of Shingon Buddhism, on the premise that when Kukai, a founder of the Japanese Shingon Buddhism, went to China to study the tathāgata-garbha thought which was the Buddhist thought of the Chinese Buddhism at the time was used as a basis for the formation of his esoteric teachings. Kukai is an early figure of the Heian period who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history of Japanese Buddhism. He himself brought Chinese esoteric Buddhism into Japan at the time of the formation of Japanese Buddhism. Kukai shed light on the excellence of Esoteric Buddhism by presenting the system of ten stages of security of mind(十住心體系) in Bimilmandarasipjusimron(秘密曼茶羅十住心論), and presented ‘the thought of attaining Buddhahood with one’s own body(卽身成佛)’ which claims that one can attain the Buddhahood in the practice of three secrets(三密修行). Based on this theoryt of attaining Buddhahood is Shingon Buddhism, and the background of Shingon Buddhism is based on the tathāgata-garbha thought centered on the Discourse on the Awakening of Faith in the Mahayana(大乘起信論) and Seokmagayeonlon(釋摩訶衍論). Kukai asserts in his Jeuksinseongbuleui(卽身成佛義) that Jeuksinseongbuleui is possible through the principles of six greatness(六大), four mandala(四曼), three secrets(三密). In this way, Kukai ideally systemized the principle of attaining Buddhahood with one’s own body(卽身成佛)’. It is also possible to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Discourse on the Awakening of Faith in the Mahayana(大乘起信論) and its commentary Seokmagayeonlon, and this clearly shows that the system of his philosophy was effected by the tathāgata-garbha thought. The thought of attaining Buddhahood with one’s own body was incomplete in Chinese esoteric Buddhism in those times, but Kukai’s theory of Enlightenment and practice system clearly show it as a distinct characteristic of Shingon Buddhism. Thus, the completion of Kukai’s Shingon Buddhist teachings was influenced not only by the traditional esoteric Buddhist thought but also by the tathāgata-garbha thought. In other words, Kukai systematized the ideas of the time and completed his teachings of esotericism. And he was able to advocate the idea of attaining Buddhahood with one’s own body(卽身成佛) in Shingon Buddhismt as there was the thought of attaining Buddhahood with one’s own body which is based on the tathāgata-garbha thought.


키워드
쿠카이(空海),
여래장사상,
『즉신성불의(卽身成佛義)』,
『비밀만다라십주심론(秘密曼茶羅十住心論)』,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Kukai(空海), Tathāgata-garbha thought, Bimilmandarasipjusimron(『秘密曼茶羅十住心論』, The mandala of ten stages of security mind), Jeuksinseongbuleui(『卽身成佛義』, The principle of becoming a Buddha immediately), Discourse on the Awakening of Faith in the Mahayana(『大乘起信論』)

공해(空海)의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에 관한 소고(小考) -『즉신성불의(卽身成佛義)』를 중심으로- < 한국동서철학회

공해(空海)의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에 관한 소고(小考) -『즉신성불의(卽身成佛義)』를 중심으로- < 한국동서철학회 < KISS


KCI등재

공해(空海)의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에 관한 소고(小考) -『즉신성불의(卽身成佛義)』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Tath□gata-garbha Thought of Kukai: Mainly Focused on Jeuksinseongbuleui(卽身成佛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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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환 ( Lee Suk-hwan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84권0호
간행물구분 : 연속간행물
발행년월 : 2017년 06월
페이지 : 115-138(24pages)
동서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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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글
2. 空海의 眞言密敎와 如來藏思想
3. 『卽身成佛義』에 나타나는 如來藏思想
4. 나오는 글
참고문헌

키워드 보기
쿠카이(空海) 여래장사상 『즉신성불의(卽身成佛義)』 『비밀만다라십주심 론(秘密曼茶羅十住心論)』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 Kukai Tath□gata-garbha thought Bimilmandarasipjusimron; The mandala of ten stages of security mind) Jeuksinseongbuleui; The principle of becoming a Buddha immediately) Discourse


초록 보기

본 연구는 일본 진언밀교의 개산조인 쿠카이(空海)가 중국유학에서 돌아와 진언종을 개창했을 때 당시 중국불교의 경향인 여래장사상이 진언밀교 사상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관한 연구이다. 쿠카이는 헤이안(平安) 초기의 승려로서 일본불교가 성립되는 시기에 중국의 밀교를 직접 도입한 인물로 일본불교사상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쿠카이는 그의 저작인 『비밀만다라십주심론(秘密曼茶羅十住心論) 』의 십주심체계 를 통해 밀교의 수승함을 밝히고, 삼밀수행을 통한 가지에 의해 성불할 수 있다는 즉 신성불(卽身成佛)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성불론을 바탕으로 체계화 된 사상이 진언밀교이고, 진언밀교의 교학이 완성되는 배경에는 『대승기신론』과 『석마하연론』 을 중심으로 한 여래장사상이 기반이 된다.
또한 그는 『즉신성불의(卽身成佛義) 』를 통해 즉신성불의 원리를 완성했는데, 『즉 신성불의』에서는 삼대사상을 바탕으로 육대·사만·삼밀의 사상을 구성하고, 중중무 진(重重無盡)·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다 [心佛衆生是三無差別]는 사상을 받아들여 현세의 몸으로 바로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즉신성불사상은 『대승기 신론』과 그 주석서인 『석마하연론』과의 관계가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서 그 의사상체계가 형성되는데 여래장사상이 큰 영향을 준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즉신성불 의 원리는 당시의 중국 밀교에서는 완벽하게 갖추지 못했던 내용으로서 쿠카이의 성 불론과 수행체계가 명확하게 나타나는 진언밀교의 특징이다.

이와 같이 쿠카이의 저서를 통해 그의 사상적 흐름을 살펴보면, 진언밀교 교학은 전 통적인 밀교사상을 바탕으로 여래장사상의 영향을 받아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쿠카이는 당시의 사상들을 체계화하여 자신의 밀교교학을 완성시켰으며, 그 기저에는 여래장사상을 바탕으로 한 즉신성불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진언밀교의 즉신성불사상 을 주창한 것이다.

This study is to look into what kind of effect the tath□gata-garbha thought had on the Kukai`s thought of Shingon Buddhism, on the premise that when Kukai, a founder of the Japanese Shingon Buddhism, went to China to study the tath□gata-garbha thought which was the Buddhist thought of the Chinese Buddhism at the time was used as a basis for the formation of his esoteric teachings. Kukai is an early figure of the Heian period who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history of Japanese Buddhism. He himself brought Chinese esoteric Buddhism into Japan at the time of the formation of Japanese Buddhism. 
Kukai shed light on the excellence of Esoteric Buddhism by presenting the system of ten stages of security of mind(十住心體系) in Bimilmandarasipjusimron(秘 密曼茶羅十住心論), and presented `the thought of attaining Buddhahood with one`s own body(卽身成佛)` which claims that one can attain the Buddhahood in the practice of three secrets(三密修行). Based on this theoryt of attaining Buddhahood is Shingon Buddhism, and the background of Shingon Buddhism is based on the tath□gata-garbha thought centered on the Discourse on the Awakening of Faith in the Mahayana(大乘起信論) and Seokmagayeonlon(釋摩訶衍論). 
Kukai asserts in his Jeuksinseongbuleui(卽身成佛義) that Jeuksinseongbuleui is possible through the principles of six greatness(六大), four mandala(四曼), three secrets(三密). In this way, Kukai ideally systemized the principle of attaining Buddhahood with one`s own body(卽身成佛)`. It is also possible to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Discourse on the Awakening of Faith in the Mahayana(大乘起 信論) and its commentary Seokmagayeonlon, and this clearly shows that the system of his philosophy was effected by the tath□gata-garbha thought. The thought of attaining Buddhahood with one`s own body was incomplete in Chinese esoteric Buddhism in those times, but Kukai`s theory of Enlightenment and practice system clearly show it as a distinct characteristic of Shingon Buddhism. 
Thus, the completion of Kukai`s Shingon Buddhist teachings was influenced not only by the traditional esoteric Buddhist thought but also by the tath□gata-garbha thought. In other words, Kukai systematized the ideas of the time and completed his teachings of esotericism. And he was able to advocate the idea of attaining Buddhahood with one`s own body(卽身成佛) in Shingon Buddhismt as there was the thought of attaining Buddhahood with one`s own body which is based on the tath□gata-garbha thought.
UCI(KEPA)
I410-ECN-0102-2018-100-000555315

대일여래, 극락교주 아미타불 < 배광식의 세상 속 경전읽기 < 현대불교신문

대일여래, 극락교주 아미타불 < 배광식의 세상 속 경전읽기 < 지난연재보기 < 기사본문 - 현대불교신문


대일여래, 극락교주 아미타불
기자명배광식
입력 2020.01.29 

4. 삼신일불(三身一佛) 아미타불

삼신(三身)이란 붓다의 삼신을 말하니, 법(法)ㆍ보(報)ㆍ응(應) 삼신은 세친(世親)의 〈법화경〉 주역서인 〈법화론(法華論)〉에서 취한 천태종의 삼신이다.

여기에서 법신은 본래 있는 이체(理體)이고, 보신은 수행공덕의 과보로써 드러난 붓다의 지혜(실지ㆍ實智)이다. 보신을 둘로 나누면, 붓다 스스로 법락(法樂)을 누리는 자수용(自受用)보신과 초지 이상의 보살이 법락을 누리도록 하는 타(他)수용보신이 있다.

응신이란 응화신(應化身)이라고도 한다. 이지(理智)가 둘이 아닌, 곧 법보신(法報身)의 묘체(妙體)로부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나투는 몸이다. 이 응신을 둘로 나누면, 승(勝)응신과 열(劣)응신이다. 보살 초지 이상에 나투는 승응신이 위의 보신 중 타수용보신과 동일하다. 열응신은 성문ㆍ연각ㆍ범부를 위해 나툰다.

법신불이 곧 비로자나불이니 일체 모든 곳에 두루하다. 보신불은 곧 노사나불이니 정만(淨滿), 곧 청정하고 원만하다. 응화신불을 석가모니불이라 하니, 그 뜻의 번역은 도옥초(度沃焦)이다. 도옥초의 ‘옥초’란 연옥 위 바다 속에 있는 만류(萬流)를 흡입하는 바위산으로 곧 욕망에 불타는 중생을 의미하고, ‘도(度)’는 이러한 욕망에 불타는 중생을 제도하여 건네주는 것으로, 이 ‘도’와 ‘옥초’를 합성한 도옥초는 중생을 제도하는 붓다를 말한다.

친광(親光)이 짓고 현장이 번역한 〈불지론(佛地論)〉과 세친이 지은 〈유식론(唯識論)〉 등 법상종에서는 자성(自性)ㆍ수용(受用)ㆍ변화(變化)의 삼신을 말했고, 이는 각각 위의 법(法)ㆍ보(報)ㆍ응(應) 삼신과 유사하다.

법(法)ㆍ응(應)ㆍ화(化) 삼신은 〈최승왕경(最勝王經)〉에 나오는 것으로, 자성신과 자수용신을 합한 것이 법신, 응화신을 세분하여 타수용신을 응신이라 하고, 변화신을 화신이라 한다.

법(法)ㆍ보(報)ㆍ화(化) 삼신은 대승과 소승에 그 명칭이 통용되며, 다만 소승의 법신은 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탈(解脫)ㆍ해탈지견(解脫知見) 오품(五品)의 공덕을 법신이라 하고, 왕궁에서 태어난 붓다의 32상(相) 80수형호(隨形好)를 보신이라 하고, 원숭이, 사슴 등으로 화현(化現)함을 화신이라 한다.

진언종은 지수화풍공식(地水火風空識)의 6대(大)를 법신이라 하고, 이 6대는 현상과 사물이니만큼 법신에 현상과 사물을 갖추고 인격이 있으므로, 현교(顯敎)의 보화불(報化佛)과 같다. 그러나 이 6대는 서로 걸림이 없으므로 차별하기 어렵고, 식(識)을 제외한 전(前)5대를 자성신인 이법신(理法身) 곧 태장계의 대일(大日)여래라 하고, 제6의 식(識)대를 자수용신인 지법신(智法身) 곧 금강계의 대일여래라 한다.

기독교에서는 CE 381년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 성부(聖父)ㆍ성령(聖靈)ㆍ성자(聖子)의 삼위일체설을 의결 채택하였다. 이는 불교의 삼신불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사료된다.

각번(覺?)이 지은 〈오륜구자명비석(五輪九字明秘釋)〉에서는, 밀교의 입장에서 아미타불관과 정토관을 밝히며 아미타여래와 대일여래가 동체라고 하였고, 극락세계와 밀엄국토가 같은 곳이라고 하였다. 아래 그 대목을 인용한다.

“밀교 경전 중에 대일여래는 곧 극락교주 아미타불이다. 마땅히 알라. 시방정토는 모두 대일여래 법신불의 화토(化土)이며, 일체 여래는 그 모두가 대일여래 법신불로서 비로자나불이나 아미타불은 동체(同體)의 다른 이름이며, 극락세계나 밀엄(密嚴)국토 또한 이름은 달라도 한 곳이다.”


금타 대화상과 청화 스님께서 주창한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을 통한 염불선(念佛禪)’ 수행에서, 법보화(法報化) 삼신은 ‘우주의 총대명사인 아미타불’의 세 가지 측면이다. 따라서 삼신일불(三身一佛)인 아미타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