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7

Taechang Kim: 식물처럼 살기 - 우리가 동물처럼 살지 말아야 할 11가지 이유 최문형

Taechang Kim
チェムンヒョン著
《植物のように生きる: 我々が動物のように生きてはならない11個の理由》(ソンキュンカン大学校出版部、2017年6月23日初版一刷発行)

特に、本書の最後に書かれている著者の結論が記憶に残る.
"われわれは, '美しい生' を
語る. そのような 生を憧憬
する. '真理の生' や '善なる生' より美しい生を好む. だから美を創造する芸術家たちを憧憬し美しい人に憧れるのだろう. 何故そうなの
か? おそらく '美しい生' が
真理と善と聖をすべて包含
するからではないのか? 真理の生, 善なる生, 聖なる生
などは, ある一方に片寄る
こともあるだろうが, '美しい生' はこのすべてのものを
融合するものではなかろうか? " ( p. 228 )

알라딘: 식물처럼 살기


식물처럼 살기 - 우리가 동물처럼 살지 말아야 할 11가지 이유 
최문형 (지은이)사람의무늬2017-06-23






























Sales Point : 220

8.3 100자평(3)리뷰(3)

전자책
10,000원

256쪽
책소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하고 고민하는 수많은 현대인을 위한 철학·인문 교양서이다. ‘식물처럼 살기’라는 제목은 흔히 ‘동물처럼 살기’와 반대 개념으로 여겨져, 대강 어떤 내용의 책일지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저 단순히 ‘어떻게 살자’고 주장하며 답을 던지는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저자는 오랫동안 철학 연구와 강의를 해온 학자로서,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식물에 빗대어 친근하고 쉽게 접근하고자 애썼다.

흔히 동물은 강한 존재, 식물은 약한 존재라 여기기 쉽지만, 사실 식물은 어마어마한 존재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내지 못하고 무심히 살아왔을 뿐이다. 이제 관심을 식물에게 돌리고, 그 목소리에 귀를 가만히 기울여 보자.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 식물은 언제나 우리 곁에 가까이 있었다. 인류가 지구에 살기 훨씬 전부터, 공룡이 지구를 점령하던 시절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싹을 틔웠다. 또한 아프리카 초원부터 히말라야의 높은 산, 적도의 늪, 깊은 바다에도 황량한 들에도, 시골집 마당 한 모퉁이에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식물이야말로 지구의 진정한 주인이라 여겨질 정도로 오랜 시간, 모든 곳에서 굳건하게 살아남았다.


목차


들어가는 말

시선 돌리기

그들과 함께
나무가 말을 한다? | 신성한 그들 | 순결한 꽃, 고귀한 꽃 | 함께한 세월

아낌없이 주기
변치 않는 존재 | 생명의 근원 | 필요하면 가져가 | 즐겁게 행복하게 | 따라 해보기

향연의 합주
소문 없는 잔치 | 동물과의 합주 | 작은 독주회 | 먼 곳의 그대 | 풍성한 잔칫상

반격의 시간
평화로운 숲? 정글의 법칙! | 생화학 무기 공장 | 지원군과 주둔군, 권변 | 조기경보 체계와 2단계 전략 | 식물병법

더불어 사는 즐거움
난장판 축제 | 자연과 욕망 | 어울려 사는 혜택 | 가족들과 정답게 | 친척들과 잘 지내기 | 시애틀 추장의 편지

카멜레온처럼
변화의 기로에서 | 영웅과 모험 | 유목민처럼 | 인내와 수용, 변신 | 적응과 균형, 항상성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하늘바라기 | 햇빛 찾아 삼만 리 | 땅속으로 쭉쭉 | 균형잡기 | 여분의 수분과 양분

죽고 사는 일쯤이야
불로장생의 영원한 꿈 | 내 꿀을 돌려줘 | 죽음과 부활 | 묵묵한 장수의 화신들 | 찰나에서 영원으로

나를 찾는 모험의 여정
꽃들에게 희망을 | 잠에서 깨어 | 옹골차게 자라나 | 성인식 | 미지 세계로의 항해 | 연금술사

고고하게, 아름답게

식물처럼 살기 11계명
미주
감사의 말
접기


책속에서


식물은 어마어마한 존재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그걸 알아내지 못하고
무심히 살아왔을 뿐이다.

우리는 식물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들의 포용력과 넉넉함을,
그들의 뛰어난 생산능력과 생존기교를,
그들의 고독과 재활능력을,
그리고 그들의 기민성과 생활력을,
식물처럼 살기... 더보기 - 시우안미정


추천글
인문학의 열기가 식지 않고 계속 이어지려면 고전 다시 읽기 못지않게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인문학은 진부함에서 벗어나 참신함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에 따르면 지구의 지배자인 인간의 진화는 하찮게 보이는 식물들과 주고받은 공진화의 결과물에 불과하다. 우리가 식물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인간이 식물을 길들이며 살았다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식물들이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사랑하고 가꾸고 번식시키도록 우리들을 길들이며 살았다는 것이다. 지구상에 식물이 없었다면 먹이사슬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동물과 인간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자연의 이치는 그렇게 각각의 존재를 인연의 그물로 엮어준다. 식물들은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아름다운 꽃잎은 바람에게 빼앗기고 싱싱한 이파리는 곤충들의 먹잇감이 되지만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어제처럼 또 오늘을 살고 있다. 우리는 식물들의 단순한 삶 속에서 역설적으로 한없이 당당하고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생명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식물이 지닌 모든 속성과 식물이 겪는 모든 과정은 곧 생명의 아름다움 그 자체인 것이다. 인간의 삶도 식물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지금 밖으로 나가 사람들의 발에 밟혀 신음하고 있는 잡초들을 한 번 눈여겨봤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들은 억울하지만 이런 것이 바로 삶이라고 소리 없이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식물의 현명함과 고고함과 당당함을 배우자고 제안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조금도 없다. 식물들은 우리들에게 자기들처럼 고고하고 당당하게 그리고 용감하고 아름답게 살라고 손짓한다는, 것이 이 책이 던지고 있는 조용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저자 및 역자소개
최문형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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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면에 학문적 관심이 많은 동양철학 연구자이며 칼럼니스트이다. 식물생태적?사회생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마음과 윤리를 들여다보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곱씹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세명대학교, 부천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자의누리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이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 늦깎이 학생이기도 하다. <한국조경신문>에 칼럼 “최문형의 식물 노마드”, <KNOU위클리>에 기획 연재 “식물성의 사유로 읽어낸 역사 속의 여성”을 쓰고 있다. 최근 지은 책으로는 『식물처럼 ... 더보기

최근작 : <행복국가로 가는 길>,<식물에서 길을 찾다>,<겨레얼 살리기> … 총 15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눈부신 싱그러움이, 따뜻한 보드라움이
우리를 다시 행복하게 할 거야.”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하고 고민하는 수많은 현대인을 위한 철학·인문 교양서이다. ‘식물처럼 살기’라는 제목은 흔히 ‘동물처럼 살기’와 반대 개념으로 여겨져, 대강 어떤 내용의 책일지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저 단순히 ‘어떻게 살자’고 주장하며 답을 던지는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저자는 오랫동안 철학 연구와 강의를 해온 학자로서,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식물에 빗대어 친근하고 쉽게 접근하고자 애썼다. 이 책은 삶의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많은 독자들에게 따뜻하고 싱그러운 오아시스가 되기 충분할 것이다.

식물에게 시선 돌리기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된 이후, 지구는 전쟁, 살육, 테러, 분쟁, 환경파괴 등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인간이 동물종의 하나라는 생각 또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탐욕, 공격성을 동물에 빗대어 포장했으며, ‘동물적 인간’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연스러운 속성으로 위장했다. 이러한 역사는 지구 생태계를 파괴했고,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물질적 풍요 속에, 엄청난 발전 속에서 인간은 과연 진짜 행복한가? 잘 살고 있는 걸까?
흔히 동물은 강한 존재, 식물은 약한 존재라 여기기 쉽지만, 사실 식물은 어마어마한 존재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내지 못하고 무심히 살아왔을 뿐이다. 이제 관심을 식물에게 돌리고, 그 목소리에 귀를 가만히 기울여 보자.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 식물은 언제나 우리 곁에 가까이 있었다. 인류가 지구에 살기 훨씬 전부터, 공룡이 지구를 점령하던 시절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싹을 틔웠다. 또한 아프리카 초원부터 히말라야의 높은 산, 적도의 늪, 깊은 바다에도 황량한 들에도, 시골집 마당 한 모퉁이에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식물이야말로 지구의 진정한 주인이라 여겨질 정도로 오랜 시간, 모든 곳에서 굳건하게 살아남았다. 인간을 비롯한 많은 동물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산소를 주고, 약을 주고, 그늘을 주면서. 지구상에 식물이 없었다면, 인간은 결코 지금처럼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벼와 과일 같은 식물들은 인간에게 길들여져서 재배되기도 하고, 그 수확물은 인간의 몫이 되었지만, 사실 식물이 인간을 길들였다. 인간이 거부반응 없이 식물을 사랑하고, 살리고, 널리 번식시키도록 식물이 긴긴 시간 동안 인간을 길들여온 셈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진화의 최고점이라고 자랑할지 모르지만, 그 진화는 식물과의 공진화였다.
이제 시선을 돌려, 나무와 꽃, 풀, 이파리와 열매가 들려주는 지혜를 배우자. 식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 우리의 고민에 대한 조언, 우리가 닥친 위기에 대한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식물에게서 포용력과 넉넉함을, 그들의 뛰어난 생산능력과 생존기교를, 그들의 고독과 재활능력을, 그리고 그들의 기민성과 생활력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식물처럼 살기’는 인류가 존속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식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식물의 지혜를 배우자. 그들이 험난한 지구에서 지금까지 살아 낸 것은 우리에게 할 말이 있어서 인지 모르지 않는가? 이제 나무와 꽃, 풀, 이파리와 열매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의 고민에 대한 조언이, 우리가 닥친 위기에 대한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식물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를 쉽게 정리해 담았으며, 다양한 사례와 삽화, 시를 통해 친근감 있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저자는 다정하고 쉬운 문체로 조곤조곤히 어떻게 식물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식물처럼 살아가면서 우리 삶을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꾸려나갈 수 있을지 그 답을 들려주고자 노력했다. 우리가 새롭게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볼 식물의 눈부신 싱그러움과 따뜻한 보드라움은 우리를 다시 행복한 삶으로 안내할 것이다.


식물처럼 살기, 고고하게 아름답게!
인간은 식물을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들여 애지중지 씨앗을 심고 키우고 가꾸어 왔다. 하찮아 보이는 풀들까지 식용으로 약용으로 다양하게 활용하고 이용했다. 따라서 인간은 오래전부터 식물의 생존과 번식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식물이 주는 유용함 때문일까, 희망과 감동 때문일까? 굳이 그 이유를 나누어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무가 신성시되고 꽃이 고귀하게 여겨진 것은 식물이 우리에게 정신적 평화와 육체적 만족을 모두 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식물의 작은 씨앗에서 인류의 문명이 싹텄다. 어린 묘목은 인류가 깃들 거처로 자라났다.
식물은 싹을 틔울 때 바깥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식물은 떡잎을 키울 때 그저 자기 본성을 키운다. 자기 삶을 산다. 과정은 험난하고 끊임없는 공격과 습격을 받지만 말이다. 때로는 어렵사리 키워낸 눈을 떨구어야 하고 사랑을 위해 피운 꽃이 그대로 시들어버리는 아픔의 시간도 참아낸다. 조금만 있으면 다 키울 열매가 태풍에 떨어져 버리는 순간에도 식물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왜 내가 싹을 냈고, 가지를 키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는지 속상해 하지 않는다. 그저 고고하게 묵묵히 살고 있을 뿐이다. 그저 당당하게 자기 자신 그대로를 산다. 그래서 식물은 제각각 모두 아름답다. 곤충에 갉힌 이파리도 예쁘고 바람에 꺾인 가지도 멋있다. 바람에 우수수 흩어져 날리는 꽃잎도, 신비롭고 덜 익은 풋열매도 사랑스럽다. 생명이기에, 생명이 지닌 모든 속성과 생명이 겪는 모든 사건을 안고 꼿꼿이 살아가는 식물은 아름답다.
우리는 ‘아름다운 삶’을 이야기하고 그런 삶을 동경한다. ‘진리의 삶’이나 ‘착한 인생’ 같은 것보다 ‘아름다움’을 선호한다. 그래서 미를 창조하는 예술가를 동경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좋아한다. 왜 그럴까? 아마도 ‘아름다운 삶’은 진리와 선함과 성스러움을 모두 포함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진리의 삶, 착한 인생, 성스러운 삶 등은 어느 한쪽에 치우칠 수 있지만 ‘아름다운 인생’은 이 모든 것들을 아울러 내는 것이 아닐까?
지금 집 밖으로 나가서 나무를 보자. 작은 풀, 발에 순순히 밟히는 잡초를 보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을 걸어보자. 나무둥치의 까진 껍질은 어떻게 생겼는지, 누렇게 뜬 이파리는 왜 그런지, 밟혀서 누워버린 잡초의 기분은 어떤지, 뜰의 조경을 위해 형제인 가지들을 잃은 식물의 심정은 어떤지. 아마도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삶이라고. 살아있음에 생기는 일들이니까 아무것도 아니고, 흔히 있는 일이라고. 용서가 그들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고 자신을 주는 것 또한 일상일 뿐이다. 그들의 열매와 꽃을 고마워하는 이가 없어도, 그들의 존재를 무심히 지나쳐도,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식물은 고고하다. 당당하다. 그들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식물처럼 살기 11계명

1계명 길가의 풀들에게 시선주고 귀 기울이기
2계명 신성한 나무, 고귀한 꽃과 희망과 감동 나누기
3계명 생명의 근원인 나무처럼 아낌없이 주기
4계명 꽃처럼 유혹하고 보답하며 살아남기
5계명 치밀한 전략전술로 전장에서 이기기
6계명 다른 생명들과 욕망 나누고 도우며 어울려 살기
7계명 환경에 자유자재로 적응하고 시련 속에서 인내하고 변신하기
8계명 하늘을 동경하고 땅에 굳건히 터 잡기
9계명 순응하고 자족하며 찰나와 영원을 살기
10계명 모험을 두려워 않고 적절한 때에 가능성의 씨앗을 싹틔워 키우기
11계명 영혼을 발화하여 당당하고 아름답게 살기

접기

평점 분포

8.3





식물들의 예상치 못했던, 너무나도 다양한 생존방식들에 대해 놀랐고,
기존의 뻔한 내용들만 가득한 인문학 책들과는 달리 철학에 생물학, 진화심리학 등이 뒷받침 되어주는 책이다. 스트레스 가득하고 피곤한 동물적 삶들 속에서 식물처럼 살라는 저자의 제안이 고마웠다.
믹스넡 2017-06-24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식물의 삶은 치열한 태풍이었다



한여름이었다. 머그잔만한 화분에 담겨있던 초록은 하나도 남김없이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한동안 물주는 것을 잊어버렸던 탓이다. 바싹 마른 잎들은 뜨거운 햇살에 타들어간 종이인 양 손끝을 대자마자 재처럼 부스러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파트 화단에라도 옮겨 심을 걸. 굳이 집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저 지경을 만들다니. 이름도 모르는 식물에게 미안했다.

갈색의 부스러기들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고동색 철사 같은 가지가 삐죽삐죽 앙상하게 드러났다. 한참 늦은 뒷북이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물을 흠뻑 주었다. 혹시 기다리면 잎 하나라도 돋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대로 베란다에 며칠을 두었다.

무심코 화분을 들여다본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연둣빛 자그마한 잎들이 눈곱만하게 돋아있었다. 살아있었구나! 말없는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더 이상 집으로 들어온 화분들이 죽어나가지 않았다.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마법의 손이 드디어 봉인해제된 거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체가 내 가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식물처럼 살기』는 말없는 식물의 삶에서 드러나는 속성을 다각도에서 세밀하게 조명하며 우리 삶의 자세와 연결 지어 서술한 책이다. 생태계 먹이피라미드의 아랫부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중심을 잡고 있는 존재. 우리는 이 거대한 존재를 종종 잊어버린다. 저자는 식물의 지혜에 시선을 돌리자는 주장을 시작으로 식물처럼 살기 11계명을 제시한다.



여행지에서 오래된 나무를 보면 묘한 신비감에 사로잡힌다. 죽지 않고 몇 천 년을 살아가는 존재, 젊은 부분과 늙은 부분이 공존하는 존재, 죽어가는 동시에 살아가는 존재를 상상한다. ‘영원’의 의미가 새삼 와 닿는다. 또, 2천년이 넘는 씨앗이 싹을 틔웠다는 뉴스를 접하면 생명의 잠재력을 절감한다.

소설과 영화를 비롯하여 여러 기록에서의 나무는 신성함을 뿜어낸다. 오랜 옛날부터 인류가 상상해온 우주목으로부터 불교의 보리수, 성경과 신화 속에는 각종 나무들이 등장한다. 동양의 오행 ‘목화토금수’에서도 유일하게 포함된 생명체가 나무이다. 이처럼 나무는 인간 가까이에서 친숙하게 존재한 생명체였다.

짧으면서도 인상 깊은 감동을 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나무의 속성을 매우 적절하고 감동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은 뿌리에서 줄기, 잎, 열매에 이르기까지 버릴 것이 한 군데도 없을 정도로 우리 생활에 유용하다.



나이든 현자와 같은 나무가 있는가하면 인간에게 큰 행복을 주는 꽃들도 많다. 꽃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신중한 생존 전략의 소산이다. 다양한 향기와 색깔로 동물의 욕망을 활용하여 번식하는 생식기관으로서의 면모는 소름끼칠 정도로 치밀하다.

신중하고 지혜롭게 스스로를 방어하는 숲 속의 식물들은 동물 못지않은 무기를 지닌다. 특수한 화학물질을 분비하거나 열매의 맛으로 무장함으로써, 필요에 따라 모습을 바꾸거나 전기신호를 전달하거나 특정 곤충들과의 공생 관계를 이용한다.『식물병법』이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전략적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이용하고 땅에서 끌어올리는 물을 이용하고 공간에 흩어져있는 기체를 이용하는 식물은 이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된 존재이다.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단지 빛과 물과 이산화탄소만으로 말이다. 양분과 더불어 만들어지는 산소는 생명 활동의 원천이지 않은가. 광합성은 한 줄의 화학 반응으로 나타내기에 너무도 묵직한 존재감과 의의를 지닌다.

식물의 삶에서 높이 평가할만한 점은 더불어 사는 지혜를 지녔다는 점이다. 제 삶에 치열하되 저 혼자만 살아가지 않는다. 다른 종류의 동물이나 균류와도 멋지게 상생한다. 여분의 수분과 양분도 붙들어두지 않는다. 증산 작용으로 다시 돌려보내고 열매로 저장하여 동물에게 제공한다. 생태계에서 어머니와 같은 존재감을 뿜어내며 주변의 생물을 아우른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내용을 배열하는 방식이다. 이것저것 주섬주섬 잡다한 자료들을 널어놓은 느낌이랄까. 체계 없이 짜깁기한 논문을 보는 듯 산만했다. 내용이 뚝뚝 끊어지는 듯했다. 재료만 많이 들어간 어설픈 김치찌개가 연상되었다. 둘째, 미주 부분이다. 뒷면의 미주를 계속 왔다갔다 읽다보니 나중에는 짜증이 날 정도로 불편했다. 차라리 내용의 일부는 본문에 삽입을 하거나 해당 페이지의 아래 부분에 적었으면 나았겠다 싶다. 참고 도서는 책의 뒷부분에 놓더라도 말이다.

위의 두 가지를 제외하면 저자가 제시한 자료들은 식물의 삶이 생각보다 더욱 놀랍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식물에 대한 유용한 정보가 많아 상식이 풍부해진 느낌이다. 어디에 있는 어떤 식물은 이러이러 하다더라는 식으로 흥미 있는 대화의 소재로 말하기에 좋은 내용들이 많다.



멀리서 바라보는 식물은 그저 고요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껏 바라보았던 모습은 태풍의 눈에 불과했나 싶다. 식물의 삶은 치열한 태풍이었다. 움직일 수 없는 존재이기에 움직이는 동물을 뛰어넘는 삶의 전략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삶으로 살아가다보니 어느 식물학자가 했다던 말처럼 나중에는 움직일 필요가 없는 삶으로 자리매김 되었으리라.

식물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삶이 아니었다. 단순하게 보이기까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시간을 건너야 하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묵직하고 상상 이상으로 커다란 포용력이 필요한 삶이었다. 주방 창가의 화분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초록의 잎 사이로 점점 박힌 연보랏빛 꽃잎들이 가볍게 흔들렸다.
- 접기
나비종 2021-03-28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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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처럼 살기

언제나 항상 주위에 늘 있던 식물과 나무들. 하지만 그것들에 대해서 잘 알지못했다. 식물들의 살아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다.한자리에서 수백년을 살아낸 나무들 앞에서면 숙연해진다. 그런 식물들처럼 조용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보자.
석파더 2021-07-1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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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chang Kim: 성명에서 생명으로 - 서구의 그리스도교적 인문주의와 동아시아의 자연주의적 인문주의 양명수

Taechang Kim

ヤンミョンス著
《性命から生命へ:西欧のキリスト教的人文主義と東アジアの自然主義的人文主義》(梨花女子大学校出版部、2012年3月16日初版一刷発行) 

特に、著者の序文の
次の文言に惹かれて一読. 大変刺激を受け、更なる思考発展の契機になった.
"性命とは、人文主義の道徳命令を示す. それは性の命であり人間の本性の命令を示す. 元来性命は、儒学で使用した概念であるけれど, 本書では, 東西洋人文主義に共通する概念として使用した. 東西洋の人文主義者たちは人間本性を善であると見たので, 性の命は結局善なる良心の命令を指す. 彼らが言った
善なる良心は生の命即ち生命の声を飼い慣らしめ、内面の克己と自己修養を要求する. さらに、純粋なる善の理念を追求し, 道徳的完成を目指す. '性命から生命へ' という書名は、道徳命令の名の下で抑圧されてきた生きようとする心を再評価しようとする意図を含んでいる.
それはからだの声に心を傾けるということであり, 自然主義的な視角を要請する. 意味と無意味を超え、ただ生きる生の生命力を活かそうとすることである. しかし
無意味の脅威を前にして, 生の意味を探ろうとする限り, 人文主義を脱することはできない. 如何なる形態であれ
人間は責任的主体の役割を担当するべきであるという点でそうなのだ. ...'性命から
生命へ' という題名は, 必ずしも,人文主義を脱し、自然主義に移行しようというのではない. むしろ生命の角度から性命を再定義できたら
よいのではないかということである". (pp. 7-8 )

알라딘: 성명에서 생명으로


성명에서 생명으로 - 서구의 그리스도교적 인문주의와 동아시아의 자연주의적 인문주의  | 이화학술총서
양명수 (지은이)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2012-03-16





488쪽
책소개
서구의 사상들은 역사를 위해 자연을 희생한 측면이 있다. 그로 인해 자연은 파괴되었으며, 의미 있는 삶만을 중요시함으로써 사람들은 죄의식과 도덕적 강박 관념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점에 주목하면서 서양과 동양 인문주의의 사상적 특징을 살펴보고 ‘생명’이라는 담론 안에서 현대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연구서이다.

특히 서구의 인문주의와 기독교 문화를 동아시아의 자연주의적 인문주의와 비교하고 각각의 본질을 살펴봄으로써, 인문주의의 도덕 명령인 성명(性命)을 넘어, 살라는 명령인 생명(生命)에서 문명의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도덕 명령, 곧 성명은 공동체를 위해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동안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그냥 사는 삶의 생명력 또한 재조명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구의 사상만으로는 부족한 부분과 다양한 문제점들을 보완하고, 생명 그 자체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자연주의적 인문주의의 특성을 지닌 성리학에 주목하고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여는 생각

제1장 도덕 당위와 생명 당위

1. 인문주의의 도덕 당위
2. 생명 당위

제2장 ‘있음’과 ‘의미 있음’ : 서구 인문주의와 기독교의 의미 추구

1. 의미의 기원, 인문주의의 정치적 관심
2. 서구 형이상학과 신학의 의미 문제
3. ‘있음’과 ‘살아 있음’- 하이데거의 ‘존재’에 대한 비판적 고찰

제3장 ‘업신여김’을 넘어: 서구 인문주의와 기독교의 비판 정신

1. 업신여김의 문제
2. 서구의 형이상학과 기독교의 공헌
3. 과학의 비판 정신
4. 홉스: 자연법에서 자연권으로
5. 애덤 스미스: 이기심의 정당화

제4장 ‘살아 있음’, ‘그냥 있음’ : 동아시아의 자연주의적 인문주의

1. 한국의 자연주의 미학: 자연주의적 수동성
2. 성명을 생명으로 푸는 성리학
3. 성리학의 자연 내재주의

나가는 말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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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양명수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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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이자 인문주의자로서 영성과 지성, 신앙과 윤리, 개인과 사회, 서양과 동양을 아우르는 통합적 사유와 정신세계를 이루어 낸 사상가다.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배재대학교 신학과 교수를 거쳐 1999년부터 2020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교목실장과 대학교회 담임목사로도 일했다. 2018년 제14회 이화학술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기독교윤리학회(Society of Christian Ethics)의 Global Scholar에 선정되어 2020년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66회 연례학술대회에 초청되었다. 일본 교토 대학교와 스위스 제네바 대학교 및 로잔 대학교에서 동서양 사상을 강연했다. 현재는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명예교수다.
청년 시절, 누구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었다. 그 열망을 갖는 데에는 기독교 정신이 큰 역할을 했다. 신학자가 된 후에도 기독교가 사회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은 그의 연구의 중요한 배경을 이루었다. 그의 저술은 기독교 신앙이 한 개인의 삶을 위로하고 자유케 할 뿐 아니라, 정의와 사랑과 평등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발전시키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 언어로 욥기를 풀어내면서도 그의 깊은 영성과 탁월한 지성을 맛보게 한다. 그 밖에 『아무도 내게 명령할 수 없다』『성명에서 생명으로』『퇴계 사상의 신학적 이해』(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외에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읽기』(세창출판사), 『녹색윤리』(서광사), 『어거스틴의 인식론』(한들출판사), 『기독교 사회정의론』『호모 테크니쿠스』(한국신학연구소) 등을 저술했다. 옮긴 책으로는 『하나님이냐 돈이냐』(대장간), 『악의 상징』(문학과지성사), 『인간현상』(한길사), 『윤리와 무한』(다산글방)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큰글자책] 폴 리쾨르의 <해석의 갈등> 읽기>,<욥이 말하다>,<[큰글자책]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읽기 > … 총 3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 책 소개

그동안 전 세계는 서구의 사상과 문화의 주도하에 움직여왔다. 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 정신과 인간의 도덕적 가치 실현을 통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고 본 서구의 인문주의와 악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기반으로 발전한 기독교 사상은 그동안 사회의 안녕과 발전을 이끌어왔다. 특히 서구의 인문주의는 ‘업신여김’에 대한 저항 정신을 발전시킨 기독교의 영향을 받으며 강력한 비판 사상을 형성했다. 이렇듯 서구의 사상은 내면의 자기 수양에만 머물지 않고 외부적인 권력을 견제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이러한 비판적이고 과학적인 사유는 구조악에 대한 통찰로 이어져 사회 정의론을 발전시키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그러나 이러한 서구의 사상들은 역사를 위해 자연을 희생한 측면이 있다. 그로 인해 자연은 파괴되었으며, 의미 있는 삶만을 중요시함으로써 사람들은 죄의식과 도덕적 강박 관념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이것은 의미와 무의미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사는’ 삶에서 생기는 자연 그대로의 생명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점에 주목하면서 서양과 동양 인문주의의 사상적 특징을 살펴보고 ‘생명’이라는 담론 안에서 현대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연구서이다. 특히 서구의 인문주의와 기독교 문화를 동아시아의 자연주의적 인문주의와 비교하고 각각의 본질을 살펴봄으로써, 인문주의의 도덕 명령인 성명(性命)을 넘어, 살라는 명령인 생명(生命)에서 문명의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도덕 명령, 곧 성명은 공동체를 위해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동안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그냥 사는 삶의 생명력 또한 재조명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구의 사상만으로는 부족한 부분과 다양한 문제점들을 보완하고, 생명 그 자체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자연주의적 인문주의의 특성을 지닌 성리학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600년 간 우리 조상들의 지도 이념 역할을 해왔던 성리학이 현대 문명에 줄 수 있는 교훈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성리학은 마음의 수양을 강조하는 인문주의이지만, 자연이 이미 말없이 덕을 실현하고 있다고 보는 자연주의적 요소를 아울러 지니고 있다. 그 덕의 중심에 생의(生意)가 있다고 보아, 생명 자체를 중요시하는 측면이 있다. 즉 성리학은 성명을 생명으로 푸는 시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성리학은 서구의 인문주의와 달리 자연 생명에서 덕을 보았고, 서구의 과학과 달리 자연을 자원으로 보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주희, 퇴계, 율곡 등의 인물을 통해 성리학에서 어떻게 자연주의와 인문주의가 결합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이렇듯 이 책에서 서양과 동양의 인문주의를 비교 분석하면서 논하고자 하는 진정한 ‘생명’에 대한 고민은 무한 경쟁 체제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각박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살아 있음’을 위해 필요한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책 내용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에 해당하는 ‘여는 생각’에서는 왜 인간의 생명을 논할 때 도덕적인 가치나 의미 또는 무의미라는 논의를 떠나 자연 그대로 그냥 있을 줄 아는 동아시아의 사유를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제1장에서는 동서양 인문주의의 공통된 문제의식과 지향점을 밝히고 있다. 동서양의 인문주의자들은 도덕 당위를 통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지향했다. 이러한 도덕 당위와 비교할 때 생명 당위라는 것은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최근의 경향과 함께 풀어나가고 있다.
제2장에서는 서양의 인문주의에서 추구하는 의미의 기원을 탐구하고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을 살펴본다. 그리고 이러한 서구의 사상들에는 ‘그냥 있음’의 감각이 부족하다는 한계점에 대해 논하고 있다. 또한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 곧 ‘있음’을 분석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생명의 ‘살아 있음’이나 ‘그냥 있음’과의 차이를 밝힌다.
제3장에서는 서구의 인문주의와 기독교의 비판 정신이 ‘못살게 구는 힘’에 대한 저항의 측면에서 사회적 발전과 정의 구현을 위해 큰 기여를 했음을 밝히고, 생명 곧 ‘생의 명’이 업신여김에 대한 저항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특히 서구 인문주의의 공헌을 홉스와 스미스를 중심으로 고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4장에서는 성리학의 자연주의적 인문주의의 특징을 서구 사상과 비교해본다. 생의 명에 충실하기 위해 자연주의적 상상력을 살리면서 동시에 자기 수양을 강조하는 성리학은 성명을 생명으로 풀기 때문에, 인문주의와 자연주의의 결합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자세히 설명한다. 또한 퇴계의 태극생양의(太極生兩儀) 해석과 기독교의 창조론을 비교함으로써 동서양 자연관의 차이를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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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chang Kim 알라딘: 나는 친북좌파다 - 親BOOK 座派 이태곤의 세상 이야기

Taechang Kim

只今(2023.4.6.木曜日、15:
11) 著者のイテゴン先生からご著書《私は親ブック座派です:親BOOK座派イテゴンの世間話し:イテゴン随筆集》(図書出版スピルIN、初版1刷2022年12月12日)郵送されたのが配達され受け取った. 予想外の嬉しいプレゼントである. 多謝感謝.
冒頭の <私の随筆美学> のなかの次の文言に惹かれて即座で一読. 
"社会参加としての物書きは、社会に対する新たな解釈でありながら、同時に希望としての未來を夢見る. 私はそのような文章を書きたい. それが私の随筆美学である."( 19頁 )何故か
著者と読者の一人であるわたくし自身との呼吸が合うような気がしながら、終わりの <脱真実の時代> と<幸福なシーシュポス>では共感共鳴の意識融合を実感した.


알라딘: 나는 친북좌파다


나는 친북좌파다 - 親BOOK 座派 이태곤의 세상 이야기 
이태곤 (지은이)수필in2022-12-12






























272쪽
책소개

친북(親BOOK) 좌파(座派) 이태곤의 세상 이야기. 1부 '이건 뭐냐?', 2부 '호랑이가 물러나자 늑대가 나타났다', 3부 '푸코를 꿰매다', 4부 '영등포의 빛과 어둠'으로 구성되었다.


목차


서문-나의 수필 미학 4

1. 이건 뭐냐?
등 따시고 배부른 게 최고야 16
사돈의 농막 21
삶의 태도 26
생활의 현장에서 알아가는 것들 31
생후 50일의 기념사진 36
술 당기는 날 42
아내와 전복요리 47
어머니의 빈자리 52
이건 뭐냐? 56
자연과 함께 하는 힐링의 공간 61
코로나 시대의 막내딸 결혼식 67
팔당대교를 다녀오다! 71
풀뿌리 민주주의 76

2. 호랑이가 물러나자 늑대가 나타났다
30년 된 소파 83
개혁의 어려움 88
공동체 몰락의 징조 93
공장 사람들 98
나는 ‘친북좌파’다 103
눈뜨고 코 베어가는 세상 108
당위가 우리의 덫이다 112
도시 텃밭의 경계 116
돈이 중심인 세상 120
민주화! 아직도 진행 중이다 125
보수의 텃밭에서 130
사공이 많으면 배가 어디로 갈까? 134
학자도 학자 나름인 세상 139
호랑이가 물러나자 늑대가 나타났다 144

3. 푸코를 꿰매다
리좀적 사고 150
동물농장과 푸코 153
민족 통일국가의 꿈 158
비곗덩어리 164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171
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 177
예술계의 무서운 힘 181
올드 보이는 ‘오이디푸스 누아르’인가? 186
포퓰리즘 세상 191
푸코를 꿰매다 196

4. 영등포의 빛과 어둠
같은 소비, 또 다른 얼굴 202
권력과 성 209
나의 내면에 있는 화성인 216
마음이 아픈 사람들 221
시를 쓰는 여인 226
아내와 엄마 232
영등포의 빛과 어둠 237
인명은 재천인가? 242
자살을 방조하는 사회 250
착각 속에 사는 인생 258
탈 진실의 시대 262
행복한 시시포스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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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오늘도 차로 딸과 사위의 출근을 도와주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라디오를 털어놓았는데, “나는 종북좌파다”라고 도발적인 말을 하는 어떤 스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스님의 이야기는 기발했다. 절에는 종과 북이 많고, 자신은 종과 북을 가까이 두고 지내기에 ‘종북’에 가깝다고 한다. 또한 수도승이기에 하루 종일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았기에 ‘좌파’라는 이야기이다. 그 순간 나도 ‘친북좌파’ 정도는 되겠다고 생각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엉뚱한 생각들이 나의 머리를 휘젓고 다녔다. 막내딸을 시집보내고 나서 나는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온종일 앉아서 책을 본다. 개인 사무실이 있기는 하지만 귀찮아서 잘 나가지 않는다. 사무실에 있든, 집에 있든 주로 앉아서 생활하니 나도 좌파이다. 나는 종과 북은 가까이하지 않는다. 하지만 절에 있는 북이 아니라 서점에 있는 책은 좋아한다. 책은 Book이다. 책을 좋아한다는 의미에서 나는‘친북’에 가깝다. 그 둘을 합하면 나는 ‘친북좌파’이다. 이런 내 생각을 친구들 카톡방에 올렸다. 경상도가 고향인 60대 중반인 내 친구들에게 “나는 친북좌파다”라는 외침은 미친놈의 헛소리임이 분명했다. 폭탄을 가슴에 안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 격이었다. 나는 곧이어 여기에서 ‘친북좌파’는 책을 좋아하고 앉아서 생활한다는 의미를 가진 새로운 개념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친구들의 뒤통수를 한 대 갈긴 거나 진배없었다. 반전의 즐거움이다. 접기
언어의 유희는 다양하다. 어느 작가가 페이스북에 집을 나간 영감님을 기다리는 글을 올렸다. 제목만 읽고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할머니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영감님이 집을 나갔을까?”, “할아버지가 가출하기 전에 좀 잘하지!” 선입견은 사람을 시각장애인으로 만든다. 여기에도 반전이 있었다. 그 글에서의 영감님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inspiration이다. 영감! 발음은 같지만, 의미는 다르다. 뮤즈의 여신을 기다리는 마음을 집 나간 영감님을 기다린다고 표현했다. 플라톤에 의하면 시인은 뮤즈 여신의 영감을 받아서 시를 쓴다. 그 글을 쓴 작가는 뮤즈의 여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상상의 날개는 배를 산으로도 올려놓는다. 나는 집 나간 영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멀뚱히 먼 산을 바라보다가 문뜩 거울 앞에서 화장하는 그런 모습이다. 예쁘게 꽃단장하면 집 나간 할아버지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간절함도 함께 그려 보았다. 벌은 향기로운 꽃향기를 찾아 날아온다. 집 나간 영감님도 아내의 향기에 취해 다시 집으로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뮤즈의 여신도 수동적인 기다림은 싫어하고 무언가 미친 듯이 열중하는 사람을 즐겨 찾을지도 모른다. 집 나간 영감님을 찾는 글 속에는 단순한 말장난 이상의 것이 내포되어 있었다. 접기
“노년의 사랑에서 배우자를 대하는 태도는 낡아빠진 헌신이 아니라 연민의 정을 담은 헌신의 자세이어야 한다.” 이것 역시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의 유희이다. 전자의 헌신은 낡은 신발이며, 후자의 헌신은 영어로 devotion이다. 헌신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몸과 마음 바쳐 있는 힘을 다함이다. 어느 심리학자의 이론에 따르면 사랑하는 관계에는 열정, 친밀감, 헌신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사랑은 첫눈에 반해 매일 만나는 열정에서 시작하여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서로에 대한 친밀감에서 사랑이 성숙해 간다. 하지만 말년의 사랑은 상호존중과 배려의 의미가 담겨 있는 헌신으로 무르익는다. 열정과 친밀감, 그리고 헌신이 어우러지면서 사랑은 완벽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간혹 주변에 열정이 식어버려 상대방을 헌신 버리듯이 내팽개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낡아서 버려지는 헌신과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의미가 담긴 헌신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고 깊다. 이와 같은 언어의 유희에서도 또 다른 의미를 담아본다. 노년의 사랑에서는 낡은 신발이라는 사물적인 사고보다는 존중과 배려라는 공감적 사고를 해야 한다.
_‘나는 친북좌파다’ 중에서 접기


추천글
이태곤 선생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텍스트들에서 글감을 건져 올린다. 어떤 것은 쉽게 접근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지만, 다른 것은 오랜 독서와 사색을 요구하는 것들도 있다. 이런 글감들을 요리하는 선생의 글은 맛깔스럽고 재미가 있으며, 비판이 있고, 성찰이 있고, 이론적인 탐구와 사색을 유도한다. 선생의 글을 읽다 보면 그가 지향하는 수필 미학이 결코 낯설거나 오르기 힘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이종철




저자 및 역자소개
이태곤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1958년 7월 마산 소방서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한동안 울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김천 소방서장으로 발령이 나면서 김천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 김천중앙초등학교, 김천중학교, 김천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아버님의 힘으로 한 해 일찍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 1976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집안이 기울었다.
(무일푼 신세로 전락)

• 방황과 함께 삶과 사회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1982년 뒤늦게 충북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학문에 뜻을 가졌으나 삶이 허락하지 않음)

• 1986년 한독약품에 입사하여 병원 영업을 시작하였다.
2008년 퇴사 이후 다양한 사업으로 삶을 꾸려가다가 대학 시절 꾸었던 강단의 꿈을 지금은 친북좌파로 달래고 있다.

• 2017년 [에세이스트]에서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2020년 [더 수필] 올해의 수필가 60 선정되었다.
2021년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수상하였다. 접기

최근작 : <나는 친북좌파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親BOOK 座派,
이태곤의 세상 이야기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정하는 데에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나는 친북좌파다.” 너무 과격하지 않을까? 지나치게 선동적이지 않을까? 그러나 그 선언의 내용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책의 제목을 그렇게 정하기로 하였다. 나의 선언은 책을 좋아하고(친북親BOOK),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좌파座派) 생활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낯설게 하기이다. 더 나아가서 개념에 불과한 것이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면 국민을 분열시킬 수 있다는 철학도 함께 담고 있다. 나의 글쓰기의 바탕에는 철학과 미학이 깔려있다. 나의 철학과 미학은 다분히 사회적이다. 문학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시작을 내가 생각하는 수필의 미학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예술작품에 대한 해석은 해석자가 자신의 견해를 투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100% 객관적인 해석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비어즐리에게는 작품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을 드러내는 작업이고, 마골리스에게는 외적인 내용을 부과하는 작업이다. 나의 생각은 어쩌면 마골리스의 생각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바르트나 데리다에 있어서도 예술작품의 해석은 참이나 거짓, 혹은 타당성과 부당성의 문제가 아니라 불확정적이거나 미결정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예술작품의 해석은 미결정적인 것을 채워주는 새로운 창조에 가깝다. 바르트는 텍스트의 의미를 부여하는 권한이 저자에게 없다는 의미에서 저자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텍스트의 의미는 끝없이 생산된다고 보았다. 데리다는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자유로운 유희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단어의 의미는 다른 단어들과의 차이에서 생기며, 이 차이는 무한하게 변화한다고 보았다. 예술작품의 해석에 유일한 하나의 해석이 없다고 보는 입장에서 예술작품의 해석에는 참과 거짓이 없고 해석자의 유희만 있을 뿐이라는 입장에 공감한다.

예술작품의 근본적인 가치는
우리의 정신 능력을 확장시키고,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

우리가 예술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작품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작품의 평가에도 하나의 기준이 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지만, 현대 미학자들은 그러한 견해에 회의적이다. 이들은 예술 전반에 걸쳐 적용될 평가기준은 없으며, 만일 있다고 해도 그 기준은 단지 주관적이거나 사회계급이 주입한 개념의 결과물이라고 본다. 만약 예술작품 속에는 미적 속성이 있으며, 그러한 미적 속성을 밝힘으로 해서 작품이 평가되어야 한다면 이상적인 비평가의 존재도 가능하다. 이상적인 비평가는 예술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편견 없는 자세, 미적 가치를 알아채는 정서적 감수성을 두루 갖춘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셰익스피어의 문학이 진부하다고 했다. 톨스토이는 이상적인 비평가인가? 괴테는 낭만주의 문학을 병든 문학이라고 했다. 괴테는 이상적인 비평가인가? 예술작품의 근본적인 가치는 우리의 정신 능력을 확장시키고,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에 있다고 본다. 그러한 가치 때문에 우리는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우리의 정신을 몰입시킬 수 있는 작품이 훌륭한 예술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몰입도 어쩌면 우리와 취미를 같이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몰입이기도 하다. 예술작품의 해석을 유희로 보는 태도와 유사하게, 예술작품의 평가 역시 같은 사물에 대한 취미나 감상을 공유함으로써 유대감을 높이려는 사람들끼리의 유희라고 보는 견해에 공감한다.

예술작품에 대한 비평은 해석과 평가를 함께 하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바대로 작품의 해석과 평가가 유희에 불과하다는 입장에서는, 비평가의 비평 역시 하나의 유희일 뿐일 것이다. 멋있는 비평도 있다. 새로운 창작물로서의 비평이다. 그런 비평은 작품에 충분히 몰입하고, 작품을 진정으로 사랑할 경우에 탄생한다.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술작품의 등급을 매기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내게 감탄을 주지 못하는 예술작품들에 관해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열렬한 팬이자 지지자로서 글을 쓴다.” 이런 자세가 진정한 비평가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수필 미학을 정립하고자 하는 몸부림

나의 글쓰기에는 수필이 하나의 창작물로서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해석되기 위해서 어떠한 글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깔려있다. 이 글은 나의 수필 미학을 정립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예술적인 글쓰기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다. 예술이란 가족 유사성이란 용어로 정의하기도 하고, 또한 미술관에 걸린 그림만 예술작품이라고 정의 내리기도 한다. 예술은 인간이 행하는 의식적 행위이지만, 그 속에 작가의 의도, 수용자의 효과, 사물과의 관계, 가치 등 다양한 관점을 포함한다. 그 모든 것이 예술이다. 타타르키비츠는 예술이 다른 것과 구별되는 특징을 여섯 가지로 설명한다. 간단하게 옮기면 다음과 같다. 미를 산출한다. 실재를 재현한다. 형식의 창조다. 표현이다. 미적 경험을 낳는다. 충격을 낳는다. 이 중 어느 하나만 진정한 예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이런 예술을 추구한다”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예술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아방가르드,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장르들이 등장한다. 예술적인 글쓰기에 있어서의 새로움이란 무엇일까? 특히 수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답을 찾기가 쉬운 질문은 아니다.

누군가는 글쓰기가 깃발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신문이 황색 저널리즘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글쓰기도 깃발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칼라스 사건을 재조명한 볼테르의 용기가 깃발일 수는 없다. 뒤레프스 사건에 대해 ‘나는 고발한다’를 외친 에밀 졸라가 무슨 깃발을 흔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식인의 사회참여일 뿐이다. 예술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술로서의 글쓰기도 다양할 수 있다. 그 다양함 속에서 나는 사회참여로서의 글쓰기를 추구한다. 사회참여도 예술이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인간이 만든 예술 작품 역시 우리의 현실을 떠날 수 없다. 타타르키비츠가 이야기하는 충격은 결국 낯설게 하기와 접목된다. 글은 새로운 충격을 안겨줄 수 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은폐되어 있는 그 무엇을 밝히려는 시도로써의 글이 수필의 장점이기도 하다. 권력과 기득권의 횡포를 들추어내고, 전체주의로의 진행을 막고자 하는 것은 깃발이 아니다. 사회참여로서의 글쓰기는 사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면서, 동시에 희망으로서의 미래를 꿈꾼다. 나는 그런 글을 쓰고자 한다. 그것이 나의 수필 미학이다.
-저자 이태곤 접기

Taechang Kim 한국 그리스도교 비평 - 그리스도교, 한국적이기 위하여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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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chang Kim

イチャンス著
《韓国キリスト教批評:キリスト教、韓国的になるために》(梨花女子大学校出版部、2009年10月23日1版1刷) 
読みながら今こそイチャンス博士の問題提起に真摯に応答する時代的-状況的要請が韓国社会、特に宗教界にあり、自由活発な対話を通じて市民的コンセンサス形成を試みる必要があるのではないか、という気がした. 韓国キリスト教はどの程度韓国的と言えるのか? 韓国キリスト教は宗教多元化社会としての韓国の社会的 問題提起に十分応答しているのか? 韓国キリスト教は
韓国仏教と相和-相生-共働を目指す対話を交わしているきたか? という問題意識と関係構築への相互努力が重要課題ではないか、という気がした.





한국 그리스도교 비평 - 그리스도교, 한국적이기 위하여 
이찬수 (지은이)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2009-10-23




Sales Point : 32

344쪽


책소개
그리스도교는 과연 한국적인 종교인가? 이 책은 다양한 문헌과 주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러한 물음에 답하고 한국과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정리한 연구서이다. 이 책에서는 한국을 그리스도교를 담는 무력한 공간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의 주체로 부각시키고 이를 통해 진정한 ‘한국 그리스도교’에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책 안에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한 한국 그리스도교 200여 년의 사상사가 그대로 농축되어 있다. 특히 이제까지 서로 다른 종교인 양 독자적으로 연구되어온 가톨릭과 개신교의 자료들을 한자리에 두고 대등하게 연구함으로써, 자기 종파 중심적인 연구 태도 및 자세를 지양하고 이들이 같은 종교 전통이라는 인식의 폭을 확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제1부 한국 그리스도교, 그 연구의 역사

제1장 한국 그리스도교, 어떻게 연구되어왔나
1. 한국 그리스도교 연구 현황
2. 연구의 시각 및 범위
3. 한국 천주교회 연구 100년사
4. 국학에서의 그리스도교 연구
5. 한국 개신교회 연구 100년사
6. 한국 그리스도교 연구 정착기
7. 신학 사상사 연구 및 비교 연구의 등장
8. 역사학적 ? 사회과학적 그리스도교 연구
9. 종교학으로서의 그리스도교 연구

제2장 한국 그리스도교, 얼마나 한국적인가
1. 그들만의 잔치
2. 모두의 잔치를 위하여
3. 천주교의 개신교관
4. 개신교의 천주교관
5. 천주교 연구서들의 한국 종교문화관
6. 개신교 연구서들의 한국 종교문화관
7. ‘한국적’ 연구를 지향하며

제3장 한국 그리스도교, 한국적이기 위하여
1. 한국이라는 주변, 서양이라는 중심
2. 대립 구조의 전복
3. 창조적 번역으로
4. 한국적이라는 것
5. 다중심의 탐구

제2부 한국 그리스도교, 그 구체적인 현장

제4장 한국 그리스도교, 과연 민족적인가
1. 한국 그리스도교는 민족적인가
2. 민족이라는 말의 기원과 민족주의의 성립
3. 민족-타자에 대한 대응 개념
4. 그리스도교의 민족성, 호교성, 기복성
5. 민족주의가 종교와 관계 맺는 근거
6. 신앙과 민족의 상호 매개성
7. ‘적的’의 논리

제5장 한국 그리스도교, 인권을 신장하는가
1. 세계인권선언 60주년과 한국
2. 인권 개념 형성사와 저항적 사회성
3. 인권과 종교적 인간론
4. 성서적 인간론과 인권
5. 하느님의 형상론과 인권 담론
6. 적극적 자유와 타권
7. 한국 그리스도교 인권 현실과 종교 교육
8. 한국의 다종교 상황과 인권

제6장 한국 그리스도교, 다원주의 신학자의 눈에 비친
1. 한국에서 신학을 한다는 것, 변선환의 근본 물음
2. 종교적 다양성과 콘텍스트로서의 한국
3. 한국 신학, 그 비정통의 길
4. 신학의 장, 한국
5. 신학의 대상, 한국
6. 한국이라는 감탕밭
7. 종교해방 신학, ‘복음’의 내용
8. 휴머니티의 전체성 회복
9. 한국을 믿는다

제7장 한국 그리스도교, 불교와 어떤 관계를 맺어왔나
1. 한국적 지평의 종교적 차원
2. 그리스도교의 정치·사회적 출발점
3. 외국 선교사의 불교관
4. 한국 그리스도인의 불교관
5. 솔직한 대화, 정교한 비교
6. 불교학과 신학을 조화시키는 그리스도인들
7. 훼불 사건과 불교권의 대응
8. 객관적 연구, 진솔한 만남 7
9. 21세기의 불교유신론

제8장 한국 그리스도교, 불교와의 조화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1. 길희성 신학의 의의
2. 길희성 사상의 구조
3. 학문적 여정과 지향점
4. 불교를 포섭하는 신학적 요지
5. 한국 종교문화론에의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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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찬수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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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상과 문화, 동아시아의 종교와 평화 연구자.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거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일본의 철학자 니시타니 케이지와 독일의 신학자 칼 라너의 사상을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일본)코세이 가쿠린 객원교수, (일본)중앙학술연구소 객원연구원, (일본)난잔대학 객원연구원, 성공회대 대우교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일본정신』,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 교토학파와 그리스도교』, 『다르지만 조화한다』, 『평화와 평화들』, 『사회는 왜 아픈가』, 『아시아평화공동체』(편저), 『평화의 여러가지 얼굴』(공편저), 『근대 한국과 일본의 공공성 구상』(공저), 『北東アジア·市民社会·キリスト教から観た平和』(공저), 「비전(非戰), 반군국주의, 비핵화로서의 평화: 일본 평화개념사의 핵심」, 「平和はどのように成り立つのか」, 「北朝鮮の民間信仰」 등 80여 권의 단행본(공저서, 번역서 포함)과 90여 편의 논문을 출판했다.
현재 인권평화연구원 공동원장으로 일하면서 가톨릭대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메이지의 그늘>,<보훈과 교육>,<보훈, 평화로의 길> … 총 6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그리스도교는 과연 한국적인 종교인가? 이 책은 다양한 문헌과 주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러한 물음에 답하고 한국과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정리한 연구서이다.
그동안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한국’은 지리적인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주로 ‘그리스도교’라는 보편성에 의해 검증됨으로써 정당성이 확보되는 주변물 정도로 치부되어왔다. 이 책에서는 한국을 그리스도교를 담는 무력한 공간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의 주체로 부각시키고 이를 통해 진정한 ‘한국 그리스도교’에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리스도교와 민족주의의 관계, 그리스도교적 인권의 현실, 한국 문화와 신학의 관계 등 구체적인 주제들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한국 그리스도교 내지 신학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또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집중 조명함으로써 이들 종교의 만남을 지향하고 나아가 창조적 일치를 도모하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그동안 산출된 한국 그리스도교 관련 주요 문헌들을 총망라하여 정리함으로써 그 요지와 성격을 한눈에 파악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책 안에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한 한국 그리스도교 200여 년의 사상사가 그대로 농축되어 있다. 특히 이제까지 서로 다른 종교인 양 독자적으로 연구되어온 가톨릭과 개신교의 자료들을 한자리에 두고 대등하게 연구함으로써, 자기 종파 중심적인 연구 태도 및 자세를 지양하고 이들이 같은 종교 전통이라는 인식의 폭을 확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교를 교리적 혹은 신학적 차원에서 주로 다루었던 기존의 연구서들과는 달리 인문학적 ? 종교문화사적 시각을 견지하여 연구함으로써 그리스도교가 명실공히 한국학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기초를 다지고 있다.

▣ 이 책의 내용
이 책은 총 2부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3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1부에서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산출된 한국 그리스도교 관련 주요 문헌들의 내용과 성격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뒤 앞으로 어떤 자세를 가지고 한국 그리스도교를 연구해야 하는지에 관해 전망해본다.
특히 한국 그리스도교 관련 단행본의 요지와 특징을 한 권 한 권 정리하고 있는 1장을 통해 지금까지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이 어떠한 시각에서 한국 그리스도교를 연구하고 해석해왔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2장에서는 한국 그리스도교를 다룬 주요 문헌들이 지난 100여 년 동안 ‘한국’을 어떻게 보아왔으며, 가톨릭과 개신교는 서로를 어떻게 대해왔는지에 관해 분석해본다. 3장은 한국의 그리스도교가 참으로 한국적이기 위한 길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그리스도교는 한국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그 기본 시각과 자세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2부에서는 민족주의, 인권, 한국 문화와 신학의 관계,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관계 등 구체적인 주제들을 통해 여러 각도에서 한국 그리스도교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있다.
이 가운데 4장은 한국 그리스도교가 ‘민족적’이었다는 저간의 섣부른 평가를 비판적으로 반성해보기 위한 글이며, 5장은 선교도 개인의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인권을 존중하며 이루어질 때 한국적인 그리스도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도를 ‘타권他權’이라는 창작적 개념 안에 담아 정리한 그리스도교적 인권론이다. 6장은 한국에서 종교 간의 대화와 종교다원주의 신학에 불을 지핀 변선환이 ‘한국’이라는 현장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중심으로 한국적 신학의 성립 가능성에 대해 정리하고 있으며, 7장에서는 동서양 종교의 양대 산맥인 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역사적인 관계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8장은 종교들의 관계, 특히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철학적 혹은 신학적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 만날 수 있는지, 그리스도교 신학은 불교적 세계관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한국의 탁월한 불교-그리스도교 비교학자인 길희성의 신학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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