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09

** 수도원리, 방법, 계제의미 & 국내외 도의 단계 - 자천의학

수도원리, 방법, 계제의미 & 국내외 도의 단계 - 카페 이용하기 - 자천의학

수도원리, 방법, 계제의미 & 국내외 도의 단계
작약 12.05.24 
1,507


하늘공부하기


우리는 자천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이미 자천하고 있기 때문이죠
자천이란 수도나 수련, 수행을 말하는데 제가 나름으로 생각한 것이 었어서 굳이
자천이라고 말을 만들었어요
이말은 내가 나를 하늘이 되게 해야하고 또 다른 사람과 삼라만상들도 그렇게
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라는 말을 강조하는데 수도라는 것이 자기 돌봄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자기를 돌보는 것이죠 누구도 나를 돌보지 못해요 부모님이나 배우자가 돌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아, 즉 삶의 궁극적인 측면을 말해요. 우리는
결국은 혼자라는 고독을 떨쳐버리지 못해요.
내가 존재한다는 자각을 하자마자 외로움의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는데 이런한
내면의 심리적 고통을 타인이나 외부의 사물에서 위로를 받으려 다가는 근본적 해결은 아님을
알아야 해요.
왜냐하면 나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며 그래서 해결도 내가 할 수 밖에
없어요
내가 이 세상에 생존하는 과정중에 첫 시험이면서 첫 관문이 바로 이
시점이에요 내가 존재한다는 
그 당연한 사실이 그렇게 충격적이고 압도적 자아발견의 성장이면서 그 한계와
두려움도 함께 알게 되어요

이것이 인도나 불교등에서 말하는 고통의 시작이며 원인일 거에요
생로병사가 고라고 했지만 이 말이 생로병사 자체가 고가 아니라 그런 과정을
겪어야 하는 내 자아의 삶의 고됨을 말하는 것이에요
생로병사가 있든 없든 뭐가 문제에요 다만 내가 그것을 겪는다는 것이 문제지요
그러니 이 자신의 발견에서 죽는 것과 삶의 역경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개인적
처지를 힘겨워 하는거죠 그래서 이 자아를 고집하고 집착하면 할수록 더욱
세상은 고통스럽게 보일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지나친 자아집착을 풀고 여유를 가지고 넓고 현명한 판단을 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한가지 더 말해보면 굳이 내가 겪는 외로움과 생로병사나 인생의
역경을 고라고 할 필요는 없어요 이런 것이 힘듬이고 고통인 것은 맞지만 이렇게
고통을 고통이라고, 힘듬을 힘듬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힘듬과 고통과 내가 그것을 세상이나 삶이 힘들거나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구분할수 있어요

고통스러울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힘들기도 아니기도 하고 그렇게 지나가요
생각해보면 이런 감정적인 변화도 있지만 그런 변화를 지켜보는 또 다른 감정도
있어서 어떤 것이 자아인지 의아스럽기도 해요
여기까지 알면 자천이 상당히 되엇다고 하죠
나라고 말을 강조한 것은 나로부터 시작하고 나로인해 성취되는 시종일관 나의
문제라는 것을 말해요

하늘이라는 것은 신이나 하느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지만 신이나 하느님이 되는
을 말한다고 해도 될 거에요 
이때 신이 된다는 것은 그 무소부지나 전지전능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세우고, 
세운 뜻대로 행동하고 살아가는 그 자존을 말한다고 생각해요

또 하늘이란 독각자인데 홀로 깨우친 자입니다.
혼자 스승이나 도움 없이 깨우친 것이 아니라 아까 말한대로 우린 홀로 살고
홀로 수도하는 것이며 자기가 자기를 수도시키는 그것이며 스승과 도반과
주위의 여러 도움과 또 한편으론 모든 세상의 연관속에서 수도하는 것이어서 이
모두가 소중하지만 결론적으론 수도는 나의 일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뭘 깨우쳤냐가 또 관건이 되는데 자천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한다고 될것도 아니며
호흡이나 주문이나 명상이나 이런 방법적인 것을 오래한다고 될 것도 아닙니다.
자아확립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런 머리와 가슴과 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만의 가치관과 윤리관, 세계관을 가지는 것이에요
나만의 가치관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없는 가치관을 내가 새롭게 만드는
것이냐면 꼭 그럴거 까지는 없어요 해도 되지만......
근원적인 면에서는 우린 보편적으로 사람이면서 비슷한 윤리관이나 가치관이
있지만 또 제각각 나름의 것도 가지고 있을 것인데 이런 보편적인 것이든 나름의 것이든 내가
검토하고 증명하면서
자기 것으로 다시 확고히 결정해가는 것입니다.

보편적인 것이란 남의 것을 빼앗거나 도둑질, 강간, 살인등과 같은 것은 누구나
나쁘다고 하는 것들이고 나름의 것은 취향이나 성향에 따라
가지게 되거나 사소한 것들의 여러 차이나는 선택 들이겠죠 하지만 이렇게
단순히 쉽게 구분할 수 없는 더 많은 것과 근본적은 원리 이해와 관념규정을
해가야 하는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 바로 자천 입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든 스스로 가진 가치관에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어떤 가치관을 가지기 위해 심사숙고 해야 하고
비판적이고 현명한 방법을 통해야 하고 또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가치관만 고집하고 고착화하지 말고 항상 다시 검증하고 검토해서 새로운
사고나 변화에 적응 하기도 해야합니다.
정말 중요한건 윤리관이든 가치관이든 이것은 내 자아의 모습이 드러나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행동, 생각이나 판단, 말과 같은 내 삶의 하나 하나가 절실하고 진지한
근원적 발현이 자아이고 가치관과 윤리가 됩니다.
이것을 알고 신중히 자기만의 여러 관점, 즉 관법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자천이고 수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확고한 자기관이 있는 것이
하늘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영향에 책임과 의무를 다해가는 것을
의미하며 또 남과 세상의 만물을 그렇게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게 하는 하늘이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자천원리

과거부터 성명쌍수등으로 해왔는데 저는 두가지로 나누지 않고 세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성으로 머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정보나 지식을 뜻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입니다. 자천하기 전에 여러
전문서적들과 스승이나 선배나 도반들에게 듣고 배운것 기타 다양한 방법으로
각종 자천법들의 설명을 읽고 듣고 접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두 곳이나 방법을 고집하기보다 전체적 원리와 의미파악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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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며 시일이 꽤 걸리는 것이니 쉽게 생각하고 간단한 방법으로 자천하려고
고르지 말고 수도도 학문이고 공부이니 전문적 지식을 쌓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견성처럼 어떤 각성을 이루어지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이건
쉽지도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는 묘한 것이니 욕심 내기보다 각성의 진짜
의미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의 지식을 알게 되면 정보가 하나 늘어나는 것과는 다른 현상이
일어납니다. 정보는 양처럼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쌓는 것이라고 보면 지식은
사유체계 같아서 하나의 이치를 알게 되면 그 이치로 그 이전의 사유체계를
재구성하는 과정이 뛰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즉 전체 사유형태와의 관계에서
알아가는 것이 지식입니다.
이 과정이 철저할 수록 높은 지식을 얻은 것이고 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험을 과거부터 신비화와 의미화 하면서 과대포장했지만 내가 변하는 것을
말하며 그중에 사고방식의 변화를 말한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은 가슴, 즉 의지와 신념과 지조같은 감정적인 작용을 말해요
우리의 학교 교육과 일상생활에서 머리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배우고 습관
들어서 잘 이해가 안될 것인데 가슴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쩌면 생각의 강도나 깊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인데 헐리우드 영화에 형사
가제트를 보면 과학자가 로봇발을 뇌와 연결해서 움직이는 것을 실험하는데
실패를 하다가 실수로 성공하면서 생각이 아니라 의지로 움직여야 한다고
소리지르며 좋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글자막이 그랬는데 영어의 본래
의미가 그런지는 잘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의지로 생각하거나 생활하는 것을 이해하면 쉬운데 자천을 의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지가 내 진짜 모습이라고 전 보기 때문이며 이것이 나이니 내가
변할려면 의지로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자천이 이루어지면
자신이 이 가슴으로 행동하고 사유하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그뿐 아니라
신이나 초월적 세계의 존재들도 이렇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관들이나
상위존재들의 이런 존재방식을 모르니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이 많습니다.
무극이나 열반처럼 또는 신이나 환허등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이론적 논리로 보거나 자신의 욕구불만과 고통의 해소로 보거나 권력에
소속되고 도피처로 삼으려는 공부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삶의 실천이 배제된 공부는 결코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나라 사람이니 우리식으로 생각하고 우리식으로 공부하고 자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현실도피하며 자기의 안위만 위하고 초월을 추구하는
비뚤어진 심리에서 넘어 굳건하게 자기의 두발로 서고 내 손으로 할 일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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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해야할 일을 찾고 나와 인류와 세상을 위한 현명하고 바른 생각을 할 수
있었야 합니다. 이것을 목표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난 다른 종교나 수련법에서 말하는 것중에 자신만의 하늘이나 불성이나 신성을
다시 찾아 수도성공하라고 하며 여래가 되고 신선이 되고 뭔가 이루어 진다고
하기보다 그저 우리 민족이 고대에 꿈꾸던 나만의 거대한 내적 영토와
광활한 대지에 우뚝 서라고 하고 싶습니다. 오래사는 비열한 탐욕과
자신만 위하는 저급한 심리와 초월을 하려는 난삽한 의식에서 분연히
일어나 오직 시간적, 공간적 무한 자유와 이상을 견지하는 깊은 눈을
가지라고 하고 싶습니다.
난 배달을 말하고 한웅이나 그 이전의 사람들의 무용을 말하면서 퇴행해서
과거가 나았다고 말하기보다 앞으로 더 위대한 인물들이 이 땅 이 대지에 올
것이고 지금 이곳에서 크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정말 과거에 위대했다면 그 증거를 보이세요 지금 이글을 읽는 그대가 그
웅지를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그만큼 어두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다음 마지막은 배로 하는 것인데 이것은 순서이고 규율입니다.
자천에도 순서가 있어서 단전이 돌고 이 돌림이 내주천이 되고 이 내주천이
중심이 서는 중맥을 열고 하늘에 이어지는 그 순서를 밟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으로 행동하고 실천적으로 사는 모든 일상이 곧 자천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많이 중요한데 이치를 알고 견성을 하고 인식의 확장을 했어도 이
배공부가 안되면 소용없다고 생각해요. 생각이 변하고 지식이 상승되었으면 그
지식이 몸도 변화시켜야 합니다. 관념과 몸을 따로 보는 것이 과거의 불교나
도학자들의 병폐이고 이것이 심해서 성명쌍수라는 말이 있는 거겠죠. 거기다
이상하게 수도에선 의지, 즉 마음을 중요하게 가르쳐야 하는데 이부분이
없다는게 정말 이해가 안갑니다. 일부러 빠트린 것처럼 머리와 몸은 있는데
마음이 없어 주인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게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에게는 성향이 있다보니 유식함이나 형이상학적 공부를 우월하고 특별하게
생각하는 부류는 항상 있습니다. 그리고 몸공부나 자기와 다르게 하는 것을
배타적으로 탄압하고 멸시하는 못된 성격도 있기도 합니다.
아직 공부가 덜 된 이런 사람이 힘과 부가 있다면 그 사회는 더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배공부가 안되면 어떤 학문과 수련과 공부도 헛된 것이 됩니다. 뭔가 이루었으면
자기 것으로 획득해야 하는데 이것이 그 작용입니다.
또 이 배공부만 하는 단전호흡이나 기수련은 근래에 일어나는 병폐입니다.
그리고 형이상학이나 관념적 이치추구도 과거나 지금이나 많은 지식인들이
가지는 흉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일 것인데 마음공부나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을 많이
하지만 어떻게 해야하고 무엇이 마음공부인지 가르치는 것이 없고 가르쳐도
황당할 뿐입니다.
가치판단과 의미판단과 선택은 마음이 하지 않나요?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되게
하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차이는 마음이 만들지 않나요? 마음이 없다면 생각을
왜 하고 왜 살아가겠습니까?

그러한데도 수련하는분들이 왜 마음을 다루지 않고 기나 각성이나 초월적인것만
관심갖고 있을까요? 참 어이없다고 보는데 그래서 난 어떤 수련단체든 3-4단이
한계라고 봅니다. 이것도 가끔 나오는 천재들을 기준으로 한거고 대개는
단전이나 내주천이 다입니다. 내주천에서 좀더 나가면 자기가 대단한 줄 아는
거룩함의 교만에 빠지는 어이없는 상황이 됩니다.
설명하다보니 또 가슴공부를 말하고 있는데 배공부는 대의련법의 체법이상은
설명을 피합니다.
머리, 가슴, 배순으로 더깊고 높은 경지의 자천법이 되는 방법도 과거부터
있어왔습니다. 여기서 체법은 제욉니다. 진정한 배로하는 방법은 공개불가
입니다.
의지나 뜻이 없이 자천하는 것이 얼마나 우숩고 잘못인지 아직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더이상 가르치기 곤란합니다. 한마디 더하면 서원 세우거나
홍익인간이나 우리나라의 민족주의적 환상에 빠지는건 습관적 발상입니다.
그렇게 가르쳐오니 또 그렇게 하라고 하니 생각없이 의무감이나 주제넘은
근거없는 망상일 뿐입니다. 진정성이나 절실함이 없이 하는 것은 차라리 안
하는만 못합니다.
사고도 미숙하고 도의 의미도 관심없고 그저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의 사고방식의 흐름이 반영되어서 상당히 황당한 이론과 간결함만을
추구하는 수도가 우려를 하게 합니다.
자천은 의식과 심리와 실재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그 하나하나의 정확한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안그러면 기형적인 현상이고 성공도 보장 못합니다. 항상
명심하길 바랍니다.

자천하는 방법들

우선 의식 두는 곳부터 정해야 해요
뱀이 꼬리를 물고 도는 그림을 혹시 본적 있나요?
우라보로스뱀이라고 하는데 수미상접 시켜서 이으면 기운이 돌고 돌아 심력이
생깁니다.
심력은 의지로써 내 심지가 강화되며 살아가는데 큰힘이 됩니다. 이것이 자천의
효과입니다. 삶의 편리와 이로움을 위한 것으로 시작해서 함께사는 세상을 위한
힘과 지혜를 기르는 것입니다.
의식을 하단전에 두어서 육체와 의식을 서로 맞물리게 하는 것이며 꼬리를 무는
뱀으로 되어 돌고 도는 주천이 되는 것입니다. 
배에선 생의 운행이 그리고 내주천이 돌아갑니다.
이것이 하단전에 의식을 두는 이유이며 이 행동을 항상하고 어떤 자천에서든
기본으로 깔고 하는 기초 방법입니다.

 
하단전의 위치는 정확히 한점을 찍듯이 하지는 않습니다. 다른곳에서는 그렇게
하는데 난 별로 필요성을 모르겠어요. 그냥 털난데와 배꼽 그 중간 언저리쯤으로
어림잡아 합니다. 의식을 아랫배로 은근히 두면 됩니다.
조금은 여기에 의식을 두면서 일상생활 하는 요령도 터득해야 한다.
너무 강하게 집중하지는 말고 은근히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 장소에 뭉치듯이
기운을 모으거나 구슬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린 둥글게 말려있어
하나의 원으로 있는 것이 온전한데 이것이 팔다리로 몸이 만들어지고
길어지면서 떨어진 나머지 반을 의식으로 이어서 약해진 기운행을 확대
재생산하는 행위이다.
이런것을 우리삶의 바탕이 되도록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토대위에 반성이나 뉘우침과 회개나 참회를 하면서 자신을 되돌아 보는
것입니다.
사건과 과거의 잘못만 되새기며 따지고 후회하지 말고 이렇게 자기의 내면도
같이 보면서 합니다.
물론 좋을때나 기쁠때 내가 자랑스러울때 뿌듯할때 등등의 긍정적인 마음에서도
자기의 내면을 보면서 활력을 상승시키면 됩니다.
또 겸손과 수치심과 양심이 이러한 내면의 흐름을 기초로 해서 항상 나를 보고
나를 이해하는 와중에 생기는 바른 마음입니다.
남을 보고 비교하면서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이기려고 하기보다 나를
돌아보고 비추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규율이며 마음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렇게 자신을 바르고 힘있고 능동적으로 생활해가는 적극적인
활동의 바탕이 되게 해야 합니다. 너무 수동적이고 나만 바라보는 것에서 밖으로
나가고 보고 이해하면서 내 의지를 보이고 관철해가는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 사유하고 현명한 판단을 위한 지식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학문과
다양한 경험과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독맥과 임맥의 운행을
강화합니다.
이 주천이 일어나고 힘이 있으면 내 의지가 강화되고 옳은 길을 가기위한 뜻을
세움에 뒤받침 됩니다. 멀고 힘든일도 헤쳐나가고 굳은 결의가 있어 세상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해요
과거엔 무릎을 꿇고 앉게 하는 공부가 있었습니다. 훈계하기 위해, 꾸지람과
기죽이는 잘못된 이유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훈계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위를 위한 나쁜 의도로 사용할 뿐 진짜의미나 순수한 훈계는 별로 없습니다.
특히 요즘은 더 그렇습니다.
무릎을 끓고 앉으면 단전이 밝아집니다. 그래서 대맥이 돌고 독맥으로 흘러
임맥으로 돌아와 내주천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아이나 인간의 성장을 위한 이유로 이렇게 앉게 하였던 것입니다.
알려주려면 알고 해햐 겠지요 두발의 엄지 발가락이 닿듯이 해서 앉고 손을
합장해서 허벅지 사이에 둡니다. 너무 꽉 손바닥을 붙이지는 않아도 되고 또
붙여도 되고 꼭 손끝은 붙입니다.
더하고 오래하며 자천된다고 믿으면 중맥과 전신으로도 주천 됩니다.
자세가 발이 아프고 불편할 수 있으니 짧게 자주 앉는 방법을 해보심이
좋을듯하고 방석이나 두꺼운 이불을 깔고 하면 더 나을거에요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은 복종과 비굴이 아니라 자신의 웅지를 강화하는 바른
자세였던 것입니다.
함부로 무릎 꿇게 하면서 훈계하지 말고 그 뜻을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자천법중에 호흡을 하는 이유는 호흡은 육체적 단련이라 몸이 따뜻해지고
혈액순환과 생리활동이 좋아져서 건강해지고 몸이 편해지니 마음도
부드러워진다.
항상 육체와 연관 해서 단련하니 집중의 요령이 생겨 조절을 하기 쉬워 육체나
마음, 정신의 제어가 다른 자천법보다 수월하고 특별한 것이 있게 된다. 저는
자기호흡을 하라고 하는데 방법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주문을 하는 경우엔 집중적인 수도 방법이고 마음의 힘으로 하는 것이라
강력하고 본의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때는 자기가 원하는 그
수도의 종류나 목적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냐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봅니다.
다음은 명상인데 방법이 편하고 따로 해야 하거나 신경쓸일이 없어 저는
좋아합니다. 그리고 삼매나 선정에 들어가는 상태와 제일 비슷해서 선정을
유도하기 쉽고 명상자체가 선정이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앉아 있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자천법들은 제각각 특성과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해보고 자기가 원하고 해야 할거라고 생각하면 하면됩니다.
시킨대로나 이유나 원리 생각없이 하면 안되고 자신의 책임과 선택에 따라 하고
학교 교육처럼 선생님이 일일이 가르치고 준비된 과정이나 학습방법이 정해진
것이 아니니 이런것도 생각하면서 독자적 세계를 구축해 가기를 바랍니다.
여러 자천법들을 하는 것과 동시에 지혜 자천법으로 학문과 다양한 지식을
익히고 견문을 넓히며 지식에서 끝나지 않고 실천으로 이끌어내는 방법까지
깊이 있고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즉 통찰력을 얻고 지혜를 가지며 실천하는 덕으로 나가야 합니다.
또 자천하면서 경험하고 느끼는 정신적, 심리적, 육체적 현상들의 변화와
체험들의 해석과 의미 이해를 위해 또다시 책을 보고 사유하면서 자신을
이해하기위해 자천을 이해하기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 경우 자천 체험들이 항상 모든 원인이나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고
확정 지어 지식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섣불리 답을 찾아 일반화
하지 말고, 항상 새로운 이해를 위해 열어두고 관심 갖고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적성찰이 자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말해야 하고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가르쳐야 하며 사회에서 행하거나 실천하기 위해서 그 현명한
판단과 행동을 하기위한 것이며 또 그러면서 다시 되돌아와 내관하며 나를
성장시키고 성장된 만큼 세상에 돌려주기위해 방법을 찾고 의미를 알기위한
것입니다.

다음은 뜻입니다.
자천에 시작 할 때 제일 처음 해야하고 또 끝까지 해가야 하는 것이 이 뜻을 세우
고 관철하기 위한
인내와 노력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꿈을 가지고 이 꿈이 의지가 되며 의지를 기르고 펼쳐가는 것이
자천이 됩니다.
이러니 자천에서 뜻이 없으면 자천이 아니라고 합니다.
어떤 목적을 위해, 무엇을 하기 위해, 무엇 때문에..
자천을 하는지 정해야 합니다.
한번 정한다고 끝이 아니라 더 자세히 더 현실적이고 확실한 성공을 위해 계속
탐구하고 수정하면서 확고히 해갑니다.


원신(元身)

원신의 개념을 다시 정리해야하고 구분해서 이름도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헷갈리고 복잡해서 하는데
더 어렵게 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우리가 자연의 구성물질에서 오랜세월 지나면서 신령스러움이 서리게 되는데
왜냐하면 물질이란 존재한다는 뜻이고 존재는 자신의 성장을 추구합니다.
어떤 물질도 모두 이러하니 그 안에 결과로써 나타나는 것이 내적 성숙이고
사물에서 이것이 서리는 것을 [융]이라 하고 이렇게 생긴것을 [정령]이라고
합니다.
우린 이렇게 정령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의 모든 사물은 이것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때
이 정령이 사람의 모습을 할때 이것을 [원신]이라고 하고 이 원신 이전의 형태는
[원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혼이나 백도 원신의 일종으로 사람의 융이 된 것입니다. 즉 사람
정령이죠
이렇게 사람으로 살아가던 원신(혼, 백)은 또 다른 성장을 하게되고 결국 자신의
존재자각을 하는데 이때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입니다. 환희와 행복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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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야하는 결정적 상황인데 분명 고통의 시작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라는
것은, 뭐라 말하기 어려운 충격 그자체 이니까요
그래서 이때 또 이후에 신이나 법이나 다른 무언가에 의지하고 소속되려는
사람은 퇴행한거거나 도망친거거나 잘못공부한 것으로 저는 봅니다.
자신의 존재 자각은 이제 삶의 시작이고 이 세계에서 독립하는 그 위업을
이룬것인데 이것을 못하면 이미 끝난 것이지요 무한 자유와 무한 세계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이 자각을 하고 자각한 만큼의 성장을 또 해야하는데 이것이 자천의 한
길입니다.
그렇게 자각한 몸을 만들어 내면 바른몸이 됩니다.
자각을 하면 자각한 자신의 손과 발과 몸을 확인하고 또 행동하고 살게 되는데
이것이 바른몸입니다.
이것이 생성되면 그전에 있던 혼과 백과 육체를 바른몸에 융합시키는 고통을
겪습니다.
두통, 가슴아픔, 몸살과 심리적 고통등등 다양한 경험을 합니다. 이러면 온전히
바른몸이 된 것입니다.

이후에 몸에서 하나의 원신이 나가는데 이 나가는 것을 새로 이름 지으면 [애라]
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애라가 나가는 것을 자주하다보면 애라를 따라 다니고 애라를 보는
내가 있게 되는데 애라의 눈으로 보기도하고 애라를 보기도 하는데 이 또다른
보는자를 [마하]라고 합니다.
이중에 수시로 몸을 들고 나는 것과 의식적으로 하는 애라가 있는데 이 사이를
왕래하기도 합니다.
애라와 마애가 있는데 이둘의 사이를 왔다갈 수도 있습니다.
애라로 나가서 마애로 하고 난 내몸으로 돌아오거나 반대로 마애가 나가 있는데
내가 의식접촉을 해서 애라도 되기도 합니다. 애라와 마애의 차이는 간단히 내
의식이 접촉된건지 아닌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이 나가는 이유는 그전에는 우린 살기위해 노심초사하고 미래를 걱정하고
계획하고 불안해하며 최선의 방법과 이롭게 하려고 애를 쓰는데 이렇게
의식적으로 하는 것에서 이제는 의식넘어에서도
이런 것을 하고 있는 마애가 있게 됩니다.
간단한 것은 미리 내가 갈 장소를 사전답사하거나 만날사람을 미리 만나보거나
하는 사소한 것부터 복잡한 것이나, 내가 뜻이 있다면 그것과 관련해서 내가
앞으로 할일이나 세상의 변화에 맞게 살아
가는 많은 일을 계획합니다.
이 마애의 움직임과 하는 일을 전부 인식하기가 어렵습니다. 영감, 투시, 현묘한
꿈, 문득 드는 생각, 무언가 미리 느끼는 감정, 기시감, 등등 다양한 방법으로
마애의 하는 일을 감지하지만 항상 온전하게 알 수는 없는데 이건 하나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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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얼마나 자세히 알 수 있을지가 의문이고 접근 방법이나 설명하는 방법과
다각도의 해석이 가능한 것을 내가 원하는대로만 알려는 것에서부터 이미 서로
대화가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고 나의
현재 감정과 편견이 마애의 일을 모두 알 수 없는 상황이 되며 마애도 자세히
아는 것의 필요성도 생각해야하고 마애는 뇌로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에 사고
방식의 차이도 있고 또 많은 힘의 균형과
운의 흐름을 전부 자세히 알기도 사실 어렵습니다. 마애라고 만능은 아니라서요
아무튼 많은 이유로 인해 마애의 일을 모두 알지 못하는것이 사실이니 그런가
하고 살뿐입니다.
수련서나 전설에서나 그리고 지금의 수도하는 사람이 본다는 또는 봤다는 것이
대개가 이 마애입니다.
어떤 이유로 제자나 사람들의 꿈이나 현실에서 보이게 하는 것이고 보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뭔가 알려고 간 것이고 일을 꾸미는 것입니다.
애라는 의식을 나가고 들이는 방법인데 내가 몸을 떠나서 천원계를
돌아다느며 할일을 하는 것이다. 난 육체를 가사상태로 두고 혼이 분리되는 것은
안하는데 이유는 아무때고 원할때 일상의 생활에서 자주해야하고 낮이든 밤이든
길거리든 사람을 만나는 곳이든 어디서든 해야하기 때문이며 눈뜨고 아무렇게나
해야하는 것이라서 그렇다. 하는 이유는 나에게 접근하는 신관이나
어떤목적으로 오는 타존재와의 접촉을 하고 다른 존재나 기타 내가 해야할일을
하기위해서 이것을 한다.
이런것을 연습하고 자신의 영역확보와 자천에 광역구축을 해가는 것이다.

거대자아(마하라)

인간은 욕망으로 자아를 확인하고 이 욕망이 나이며 욕망을 바라보는 또다른
나도 역시 나이다. 우린 욕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욕망한다. 나는 나를
보고 또 보면서 자기의 상황을 항상 알려고 한다. 그리고 움직이고 머무는 것이
상대적이라 서로가 인지가 된다.
즉 , 욕망이 일어나면 일어나기전의 무언가가 일어나는 그 욕망을 본다.
그리고 욕망이 일어난후에 그 일어난 욕망에서 또다른 욕망이 일어나 그 이후에
일어나는 욕망을 본다. 거꾸로 그후에 일어나는 욕망이 보고 있기도 할 것이다.
가슴에서 욕망이 일어나면 머리에선 의식이 일어난다. 이것을 따로 보거나
한쪽만 보기도 하는데 우리몸은 한부위가 움직이면 온몸의 각부위는 나름으로
반복하며 같은 형상을 일으킨다.
머리에서 일어난 것은 가슴에서도 배에서도 다리나 손이나 아무데나 다
일어난다.
다만 부위적 특성이 그것을 다르게 작용할 뿐이다.

하나의 의식이나 하나의 욕망만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상관없다. 세상엔 확실한 것은 없어보여서 자기 나름으로 생각하면
그만이니까.
또 욕망의 일어남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인지못하는 부분에서 또다른 작용을
하지만 이것을 알기는 어렵다.
욕망이 일어나야 내가 존재하게 된다. 욕망이 일어나지 않으며 나의 확인이
안되며 생각도 욕망이라 모든 것이 이 무언가의 일어남으로 시작한다.
일어남이 있으면 자아가 있고 없으면 없다.
그래서 자아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일어남을 느낄때만 욕망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일어나도 일어난지 모를
정도로 미세한 것도 있이며 사람마다 느끼는 지점이 다르다. 누구는 약한
단계에서도 느끼지만 누구는 좀더 강력해야 느끼기도 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곳에서 욕망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의 성향이 모두 다른 것일거다
그리고 이것은 자천을 함으로써 변형이 일어나며 좀더 미세할때도 느낄 수 있게
된다. 예민해지는 거겠죠
하지만 욕망을 느끼기 전에도 자아라고 할수 있다.
이것을 뜻이나 의지라고 한다. 목적이라고 해도 된다.
뜻은 시간을 정하는 것도 되어서 어느정도의 시간에서 나의 의지가 지켜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10년, 100년, 10000년의 의지를 정한다. 그러면 이 의지가 내가 욕망을 하지
않고 느끼지 못하고 있을 때도 그 저변에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의지와
관련된 어떤 원인이 있다면 욕망으로 올라온다. 대의련법의 관찰중 시간성찰을
읽어보면 좋구요...
그리고 또 의지에는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여러개의 의지가 있는데 그래서 항상
무언가의 욕망은 일어나게 된다. 의지가 있고 의지를 이루기위해 욕망은
일어난다.
그래서 자기의 욕구를 관찰하면서 그 욕구의 이면에 어떤 의지가 있는지 봐야
한다. 어떤 욕망이 욕망을 일으키게 하고 있는지, 욕망의 욕망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아야지 진짜 관찰을 했다고 하고 자기를 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신성이나 불성이나 순수의식이나 태허나 태극이나 우주정신이나 하는
식의 상위개념으로 한다지만 이건 지나친 일반화이고 욕망의 이면에는 나의
시간범위가 다른 또다른 욕망이 있다는
것이고 이것이 의지라는 것이다. 즉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욕망이나 쉽게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있고 오랜세월의 경과로 인해서 은근히 알고 있는
자기의 저변에 흐르는, 느낌은 약하지만 내인생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며
결국은 내 삶을 이끌고 있는 저력이 있는 욕망을 알게된다. 이것이 의지이다. 즉
거대의지라고 한다. 우리말로 마하라 입니다.
이것이 의지이고 뜻이며 목적을 설정하는 이유이다. 이 거대의지(마하라)는 내가
언젠가 정한 것이고 한순간의 강한 결단력으로 하거나(이게 서원이나 뜻을
정하는 것이다.) 대개는 오랜세월의 바람으로 정해진 것이다. 오랜세월의
바람은 지금 자기의 살아온 세월이나 경험에 비추어볼때 가장 바라는 소원이나
진정으로 원하는 그 무엇이 계속 내 마음속으로 침잠되며 한이 되거나 진정으로
자기의 목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것이 대개는 무의식적으로 살면서
서서히 일어나는데 이것을 자천자는 자기의 관찰로 무엇이 응어리지고 있고 ,
무엇을 내가 원하고 있는지 알고 그것을
바람직하고 올바른 욕구나 의지로 변화시켜서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것을 거슬러 사유하면 내가 어떤 의지로 살고 있는지 과거, 전생에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내가 정한 시간속에 내가 정한 공간에서 내가 정한 그 어떤 뜻을 위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이며 이렇게 해야하는 것이다.
물론 일반인은 이런 것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것을 인위적으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하는 것이 자천이며
자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의 뜻을 정하기이다.
이 뜻이 거대 자아가 되어 그렇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며 이뜻에 맞는 욕망이
일어나 그런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그래서 자아가 두가지가 있다 지금의 욕망을 느끼고 알고 행하는 현재적
자아이고 그리고 이렇게 긴시간의 범위을 한정하면서 나도 모르게 흐르고 있는
저변의 거대한 자아이다.
그래서 자아란 내가 정하는 것이고 정해가야하는 것이며 그안에서 나가
살아가는 바탕이 되는 것이고 나의 홀로섬이다.
그래서 전생의 의지가 지금에 이르고 미래로 이르게 될것이다.
그리고 지금 정한 의지가 앞으로의 목적이고 미래의 삶이 될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것도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있어서 잠자든 기절하든 난 깨어나고
살게 되며 죽지를 못하는 것이고 의식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지는 과거 어느시점에서 정한 것이다.
이 거대한 자아를 알면 그이면에 또다른 의지가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사람마다 의지를 정해온 시간이 다르고 또 알고 한것이
아니라 피상적인 것도 많다. 단순의지 외에는 없는 사람이 더많기도 하다.
즉 누구를 원망하거나 뭔가 단순한 한의 욕심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뜻이라고 하기 뭐한 것이
많다. 이건 전생에 돈에 욕망을 가지고 이것을 채우는 것이 좋은거라고 강하게
생각했다면 이것이 이생의 의지가 되며 욕망의 가장 근저에서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돈에 해당하는
것이 주위에 보이고 거기에 생각과 감정이 일어난다. 어떤식으로든지.. 잘살게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또다른 작용이 있는 것이고 그런 어떤 성향으로 된다는 것이다.
이사람의 자아일 것이다. 사는 이유이고...
그래서 대개는 한두개의 거대의지가 전부이고 그 이면에는 내의지가 아니라
세상의 의지가 있다고 본다.
그 세상이란 자연일 수도 지구일 수도 태양계일 수도 있으리라 어디까지
내려갈수 있을지 모른다. 역시나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음미

음미라고 하니까 탐닉이 생각나는데 같은걸거에요
다만 음미는 자천법이지요
나를 관찰하는것, 보는것, 내가 나를 보는것, 무슨생각 하는지, 어떤 감정이 일어
나는지,
무슨 행동하고 있는지 이런 것을 음미해요, 자기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을
음미하는 거에요
생각을 음미하고 행동을 음미하고,,,
어디까지 음미가 가능할까요? 어떤 것까지 음미가 가능하구요?
음미하면 증폭도 되요
즐거운것은 음미하면 더 즐거워지고
슬픈것은 어떨까요? 슬플때 슬픈 음악을 듣는 거 같겠죠
난 그러는데 그러면 더슬퍼서 오히려 후련해요
내가 나를 음미해요
자아나 마하라도 음미하면 좋죠
생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평소에 관찰하나요? 이것을 음미해보세요 생각나는
것에 따라 감정이 일어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음미하면서 따라가요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가는지 나오고 사라짐을 음미하죠 느낀다고 해도 될거에요
과장과 증폭이 되니 감정을 지연도 시켜보고 생각도 그러고
자천하면서 경험하는 여러 현상들도 음미하면서 더 증가시키고요
천부경 해설에 쓴거 처럼 일어나는 자신의 순간의 감정과 생각과 행동의
일어나서 돌아와
사라지는 것을 차근히 음미하죠 평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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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마하라를 느껴야해요
이 마하라를 음미할 수 있으면 이것이 자천이 되죠 음미가 자천이니까요
음미자천이라고 할까요
자신의 내면을 음미하면서 사는 것이니 아무때고 할 수 있죠 누구나 자기를
음미하고 탐닉하면서 즐기자나요
그럴려면 긴시간을 염두에 두고 전체적으로 음미해야죠 그러한 마하라를
음미하면 먼가 뿌듯하죠
그리고 미래의 어떤 것이 음미가 어렵거나 뭔가 잘 안되면 마하라가 없다는
것이니 그런일은 안 일어난다는 것도 되어 이런걸 음미하면서 미래를 알 수도
있죠
사실 자신의 운명과 멀고 먼 미래를 이렇게 음미하면서 가늠하는 것이죠
그리고 외부의 것도 음미하면서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나 뭐가 일어나는지 어떤
것이 다가오는지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음미하죠 그것보다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을 음미하면서 자기
가슴으로 생각하고 알려는 그 작용입니다. 가슴으로 인지하기죠
마하라는 마음 가라앉기와도 비슷해요
가라앉은 만큼 의지를 세운것이니 그것이 마하라로 작용하겠죠
가라앉고 마음의 무게나 평온함을 음미하죠 그러면 다 된거죠 더더 실생활에서
음미를 할 수 있으면 많은 것을 알겠죠
생각나는 것들...

▶ 언어와 말은 머리의 해석 작용이며 언어 이전은 가슴의 욕구가 있다.
가슴의 움직임을 머리는 언어로 해석하려한다.
즉 개념을 규정하려 한다.
인식하려 하며 명확히 하고 싶어한다.
가슴에 말로 안해도 아는 가슴으로의 교류도 있다.
전이나 직관이나 전해오는 그 감응이 있다.
가슴 이전도 있는데 몸의 반응이 있다. 다양한 반응과 자연스러운 몸짓과 행동이
나도 모르게
일어난다.

▶ 서양식 찰학과는 달리 우리 자천학은 몸으로 직접 행동하며, 즉 자천하며
공부하는 것이다. 이성으로, 이치로, 논리로, 따져가는 것을 몸이 체득하고 이룬
상태에서 하는 것으로 몸의 진행과 이성의 진행이 비슷해야 한다. 이론만
앞서가면 오해와 알지 못하는 것이 있게 된다.
보편개념과 본체개념도 공을 알기위한 설정이다.
공을 안다고, 한순간에 뭔가 안거 같다고 각성해도 다 되는 것이 아니다.
한번 깨달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멀게는 아주 오래전의 자아인식을 한 이후
쌓여진 관념과 경험체계를 모두 지금 새롭게 깨우친 것으로 바꾸는 과정이
너무도 오래 걸리는 것이다.
만약에 전에 주역을 공부한적이 있다면 그리고 지금 공의 어떤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고 했을경우
다시 주역을 공부해서 그전에 인정하거나 배운 지식을 새로운 접근과 해석이
있어야 하며 그 잘못된 부분도 알아야 한다. 즉 자신의 학문, 지식, 관점의 밑바닥부터 다시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니다. 때론 그 학문자체의 한계마저도 알아야 공을
각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힘든 과정인데 자신이 어떤 의미체계를 자기고 있는지
알기도 힘들고 밑바닥까지 가기도 힘겹습니다. 이 기간이 평생이거나 몇생이
걸린다고 봅니다.
그리고 문제는 각성을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해야 합니다. 한번 뭔가 각했다고
다 된듯이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각성할 것도 깨우칠 것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또다시 깨달으면
또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해야하는 반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근본부터
재구성하기란
사실상 불가능 할지도 모릅니다.

님들은 무엇을 얼마나 깨우쳤고 또 그것을 실현시켰습니까?
저도 진행중인데 언제나 끝날런지....

▶심층의식이나 내적 깊이나 심역의 깊이가 무한히 깊어지며 영역도 무한하다.
불교의 유식학처럼 말나식이나 아뢰야식으로 근원으로 들어가며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 광활하고 확대되어야
할 이해불가의 세계가 끝없이 있다.

▶ 우리는 자신을 위하는 존재이고 자신을 위주로 행하는 존재이다. 나를
위함이 때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있는데 그 행위가 악이라 할 수 없고
자신의 행위만을 위하고 남의 처지를 이해못하는
배려가 부족함이 문제인데, 이것은 그 사람의 질적 낮음의 결과이다. 누구가
선함을 이해하지만 막상 행동은 그러지 못하고 행동도 그럴듯하지만 그 깊이가
다르다면 이런것도 역시 그 사람의 성숙의 문제이다. 이 성숙되어 가는 것이
생을 이어가고 수도를 하는 이유이며 방향이다.
그래서 윤회는 좋은 것이다. 내가 더 성장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을 포함한 존재들은 선이나 악으로 말할 수 없고 다만 아직
미성숙으로 인한 견해와 행동의 미치지 못함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윤회도 그렇고 우리의 삶도 항상 충실하고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 너무도
소중한 것이
자신이니 자신을 위해 항상 공부하고 노력한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살아가야
한다.
부족함을 알고 더 나아지려는 의지를 가져야하며 항상 부족함을 느끼니 겸허한
것이다.
이렇게 나의 성숙은 쉬지않고 매순간 이며 이렇게 성숙이 이루어지면서 내가
변해가는 것이 지식이다. 지식이란 나의 변화가 고정되는 것이다. 
이고정도 더나아질려고 하는 의지에 따라 또다른 것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보편도덕이 어려운데 우린 시작도 다르고 지금 있는 성숙의 시간적
과정의 수준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같은 규율을 지키게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규율의
의미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말을 이해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이면과 원리와 의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을 알려주면 하나를 겨우 알거나 그것도 모르는 경우와 둘, 셋
그이상을 안다는 것이 그 사람의 성숙됨을 알 수
있다. 이런것은 배워서가 아니라 시간과 오랜 숙성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자천하다보면 어느때인가 부터 쉽게 감정전이이지만 단순히 이런것이
아니라 머리의 의식에서 가슴의 자아로 내려오는 의식의 하강현상도 일어납니다. 그래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상대를 이해하게 되는 상황이 옵니다.
글을보든 대화하든 연상하며 떠올리든 상대의 마음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주의점이 몇가지 있는데 느끼기전에 혹은 느끼면서 미리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화가 났을 것이다. 기분이 언짢을 것이다. 즐거울 것이다. 걱정할 것이다.
등등 이런 의식적 판단을 미리 할 경우 감정전이도 왜곡되어 집니다.
내가 판단한 그것대로 감정이 전해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글이나 대화의 단어나 문맥이해로 미리 단정지어 상대를 이미 분별하는 실수를
하는 것도 됩니다.
이러면 자천자는 자신의 감정의 느낌을 더 신뢰하며 상대를 평가하고 인식하는
잘못을 하게 됩니다.
자천하는 사람이 이러면서 더 많은 오해와 편협함을 가지는데 자천의 결과로
생긴 능력으로 얻어진 정보를 지나치게 맹신하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전이 같은 것도 평가하고 점검하며 합리적 판단과 소급하여 원인을 명확히
알기전에는 다만 가능성으로 아니면 판단중지를 하시길 바랍니다.
또 한편으론 사람은 감정으로나 내면에서는 여러 다양한 심리과 욕구가 오르고
내려가며 요동치고 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그 감정대로만 행동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욕구가
나온다고 무턱대고 행동하거나 욕구나 감정을 신뢰하고 그것이 내것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욕구도 내가 선택하고 분별하면서 그중에 옳은 방향으로 이끌거나 긍정적으로
행동하기위해 애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망이 나이지만 여러 나 중에 하나이고 그중에 또다른 내가 그 여러
선택할 수 있는 욕구중에 하나를 선택합니다. 이것이 욕구하는 나와 선택하는
나인데 그래서 감정이 일어나도 그 감정을 선택하는 것은 다릅니다.
즉 , 분노가 일어난다고 그 분노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정전이가
있어서 상대의 감정을 그 사람의 실체라고 인정하고 선입견을 가지면 안됩니다.
다양한 시각과 접근법으로 사람을 알아가야 합니다.
이런 것은 상식인데 다만 자천하면서 감정을 조금 느끼기 시작하는 그하나로
심리적 방황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말과 행동만 보다가 그 내면의 감정까지
보게되면서 그 불일치나 그 심리적 느낌 자체도
너무 힘들고 혼란이 커서 그렇습니다. 현명하게 판단하고 조심해서 인간 관계를
하기를 바랍니다. 잘못하면 외롭고 힘겨운 생이 될 수 있습니다.

▶ 객관세계는 분명 중요하다.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다만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관법이 있을 뿐인데, 나도 자천하면서 또다른 객관을 타인에게 제시하는 것도
된다.
내가 살아야하고 자천으로 수도하고 덕행하는 곳이니 또 중요하다. 다만 객관도
그 무엇인가의 주관이라는 것도 있어서 어려운 뿐이다.

▶ 목적이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든지 그건 살아가는 본인의 결정이니 참견할 것은 아니다.
다만 자천을 하려면 어떤식으로든 목적을 정해야한다.
그래야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얼마나 했고 누구이고 왜이러는지 알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정한 목적에 비추어서 자신을 이해하는 근거나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내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내가 해야 하는 것이지 남이나 신이 할일이 아니다.
내가 나자신을 평가하고 분별하는 것일 뿐이다. 그럴려면 그 의미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또 목적이 그 사람의 그릇의 크기가 된다. 억지로 그럴듯하게 정하는 것은
거짓이고 대화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 내면의 진짜 목적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을 보고 그 사람의 근기를 보기도 한다.

▶ 자천의 모든 진행과정 그 초월적 효과는 하나하나 따져보면 결국은 자신의
내면의 욕구와 자아의 실체와 대면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진행의 더디고 빠름도 내 생각과 마음의 원인이 있고 보여지고 겪는 것들도
결국은 내 욕구의 투영일 뿐인듯 합니다. 가면 되돌아오고 또 아무리 밀고
나가고 외부로 치달아도 역시 돌아오는 곳은 내 욕망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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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보여도 내가 부른 것이고 내가 만든 상이며 그럴듯한 경험도 내가 원했고
내 심층의식의
현란한 시나리오였습니다.
수도가 더디어 고민해도 알고보면 내가 막고 있고 잘못알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오해와 무지가 진행을 못하게 한 원인이었으며 퇴보도 마찬가지로 내 욕망의
잘못인 것입니다.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다가오고 무엇이 느껴지는 그러한 것들도 내가 각색하고
내가 그림그리고 조합하는 나만의 무대연출인 것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뭐든지
추구해보면 내안으로 회귀하는
근원회귀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건 자신의 추악하고 비겁하며 음울함이 드러나는 것이라서 외부로 투
영하는 또다른
욕구이며 빠뚤어진 짓임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근원회귀는 인정하기가 너
무 어렵지만 보이는 것을 어쩌지도 못해요

결어

대의련법이나 자광신도법이나 이 글들은 지금껏 내가 나 자신을 관찰하면서 내
생각, 감정이나 행동을 연구한 것을 쓴 것입니다. 내가 하는 짓을 보고 원인과
원리를 알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무슨 감정이 일어나며
그 유래는 어디까지 알 수 있고 , 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 뭘 원하나? 하는
것을 고민했구요 행동의 여파나 결과가 어디서 나오고 어떻게 나오는지를 항상
알려고 했으며 이러한 나의 전체적 분석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이글을 보고 자천도 하겠지만,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구요, 즉 님은 누구 이던가요? 어떻게 하고 있던가요?
전 이러네요...


===

★ 계제의 의미_도의 각 단계적 설명 중 10단 까지

초단_기단

초단은 의미가 있다. 명부와 현문에 기록되며 수도인으로써 인정받는 것이다.
여餘기가 이루어져 단전이 확보되고 이것은 앞으로의 수도의 터전을
만드는 것이다.
수련을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1년이 지나면 기가된다. 느끼는 것과
상관없이 기의 수준에 이른것이다.
무엇인가 내안에 들어오고 무엇인가 나가며 오고 가는 것중에 내게 필요한것을
내안에 잡아두어 몸이 전체적으로 화평해지고 우리 몸을 수련하는 몸으로
만들기위해 끊어진 기를 잇고 부족한 기를 채우는 것이다. 하단전에는 많은 길이
있는데 이것을 조화시켜 그와 같은 효과를 얻는다.
이 초단에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이 견성같은 각성이다.
각성을 하면 바로 초단으로 인정받을 수 잇다. 이는 이제야 길을 잡고 해야
할바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신체의 상태와 정신의 상태가 어울리며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인만큼 몸이 변하면 머리도 변하여 지적능력의 향상이 있게된다.
반대로 인지능력이 향상되면 그에 따라 몸도 변하며 또 그렇게 유도해야 한다.
가끔은 이에 만족하고 점차 퇴보를 하여 신체와 조화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서구의 인식의 확장이나 견성이면 모든것이 끝나듯이 생각하는 부류가
그것이다.
이러면 수련은 퇴보하고 명부의 등록도 취소된다. 불퇴전의 의미는 확실히
중요하다. 끝없이 긴장이 있어야 하고 깨달음에 안주해서는 안되고 더 높은
깨달음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의 본성에는
깨달음이 있는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원하는 욕망이 있을 뿐이다. 오직 그
뿐이다.

수승화강

상부의 열이 아래로 내려와 아랫배로 가니 마음도 따라 내려간다.
발상의 전환이나 심리적 편안함같은 정신적이거나 심리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단전에 대한 많은 경험을 한다. 너무도 다양한 현상을 한두개나 몇개로 요약할
수 없다.
한 예로 보살을 보는 경험이 단전이 형성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사람도 보았다.
기수련한다고 단전에 기덩어리를 느끼듯이 하는 것은 심히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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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어리는 물질적 개념으로 마음의 응어리처럼 뭉친 것 뿐이다.

심리전환

처음 수련할때 호흡과 주문이나 명상을 하지만 이때 사고 전환이 있습니다.
학문적인 연구나 독서나 수련에 대한 글들이나 설명을 들으면서 그 전에 모르던
것을 이해해가고 지적영역이 넓어지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를 알면
그만큼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다가 비약적 이해가 오는데 이때를 인식의 확장이나 격물치지나 견성이라고
합니다.
깨우침이나 각성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견해가 넓혀지는 현상입니다.
지적추구가 재미있고 알고 싶고 하는 사람들은 빨리 오고, 억지로 하거나
학교에서 처럼하거나 의무감에서 하거나 다른 이유로 한다면 또는 너무
조급하게 이런 것을 경험하려고 한다면 더딜거라 생각합니다.
조금은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잘 될거
같습니다.
그리고 심리적인 전환을 경험하는 것도 있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이렇게 하고 있었나?
이런 생각하면서 살았구나!
이럴때 화를 내는구나! 내가 너무 내 위주로만 생각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까지 악착같이 할 필요가 있나? 너무 편협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나 하는 행동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경험들이
이외에도 많겠죠
그리고 세상과의 이질적인 경험 심리적, 감정적 전환이 일어나는 현상들이
있습니다.
강하게는 세상이 일체적으로 보이며 사람들의 움직임이나 자연이 전혀 다르게
다가오거나 정신이 나가서 돌아다닌듯한 경험, 사소한듯한 신비체험에서 확연한
신비체험, 작은 마음의 편암함에서
굉장한 황홀경까지 내가 나를 보고 남도 보고 세상도 보고 하는 신비한 듯한
체험들이 있습니다.
자천하다보면 몸사라짐이나 삼매같은 것도 해당하는 것입니다.
술이나 커피나 감기약처럼 어떤 신체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느끼며 묘한
경험도 해당합니다.
즉 자기가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 상태에 접어드는 그 상황을 알아챈 것 입니다.
이렇게 감성적적인 사람이 쉽게 할 수 있을거 같은 체험도 있습니다.
물론 이성적이거나 감성적이거나 하는 것은 초기에 대강 구분해 본거구
나중에는 어느정도
모든 분들이 경험 할거 같습니다.

2단_광단
임독이 열려지면 2단이라 하지만 중맥이 열려야 진정한 계제로 인정한다. 이후
선계가 열리기 까지이다.
몸이 빛으로 화한다. 이는 기가 빛으로 변하게 된다.
임독맥 운행으로 몸에 있는 탁기와 독기를 빼내고 근육과 뼈, 살을 근저에서부터
재구성하여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바꾼다.
많은 고통과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며 정신적, 육체적시험, 현실 비현실의
혼란으로 사람의 근본부터 변화를 이루어간다.
포기하거나 낙오하는 사람이 많고 잘못된 길로 빠져가는 사람도 너무 많다.
포기는 아니지만 별 진전없이 다른 일거리로 외면하며 사는 사람도 많다.
진전없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의식적으로는 포기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른 사이 마음이 닫아지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스승의 도움과 도반들의 손길이 필요하며 강한 신념과
의지가있어야 한다.
기간도 오래 걸리고 얼마나 걸릴지도 알 수 없다. 또 편법이나 다른 어떤
도움으로 지나간다 해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돌아오게 된다.
이 단계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확실하게 거치면서 힘들고 괴로워도 참고 견디며
어떤 유혹도 이겨내야 한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없다.
하늘주천을 이루고 바른몸을 이루는 것은 순서적으로 밟아가면 저절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운명적 일체로 이루어진 개인과 이 나라,
이 지구. 이 우주 전체와의 긴밀한 작용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 이
단계가 중요하다, 이러한 나의 위치를 알고 때가 되고 모든
구비조건이 완비되는 것을 참고 기다리면서 희망을 갖고 자천해야 한다.
각성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결단이나 반성을 해야한다.
집착,,, 자천이나 근본에 대한 신념을 버려야한다. 이 말은 공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으로 전통적으론 언어의 한계를 알고 개념과 관념체계의 공을 알아야 한다.
즉, 과거에 역이론이나 유교나 불교나 지금의 철학이나 과학이나 모든 학문이나
우리의 지식이 하나의 설정이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수도를
위한 안내이지 진리나 진실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스승이나 지금 공부하는 가르침도 부정할 수 있고 이것도
방편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직 어리고 몰라 이런 고집이나 잘못된 신념이 없으면 천행이다.
이런것을 하지 못하면 다음단계로 가는것이 요원하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론 중맥이 열리고 시간이 흘러 몸이 변하고 적응되면 이
다음에 나를 넘어 전체와 하나되는 경험을 해가야 한다. 주위 환경과 물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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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합일, 몸사라짐, 피부호흡, 신비체험, 의식전환, 세상과 하나되기, 천인합일,
무호흡, 삼매, 무아경험, 이러한 나를 버리거나, 사라지거나, 없어지거나, 죽이는
경험을 어떤 식으로든 해야한다. 이런것이 일종의 원심력으로 밖으로 퍼져가는
것이고 중맥을 중심으로 내가 외부로 확대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자천자가 이 단계에서 신비한 체험이나 별별 경험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자기를
버리고 자기의 한계를 넘어 세상에, 외부에 마음을 확장하는 큰사람이 되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면 구심력이 작용하여 삼단전에 단이 생겨난다. 안으로 수축하며 새로운
기의 질을 넘어간다. 이후는 기라고 안하고 '올'이라고 한다.
이렇게 원심력과 구심력이 항상 같이 작용하는 것이고 원심력을 신인합일이라고
할 수 있고
구심력을 회광반조라고 할 수 있다.

3단_공단
아무나 오는 곳이 아니다.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고 방법적인 것도 아니다. 영의
무르익음과 삶의
체계, 굳은 의지, 실천으로 이어지는, 그러니까 자천자체의 공부보다 오히려
자천외적인 일상적
생활이 좌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면 깊은 곳 진정한 나의 참모습이 밖으로
나오며 형체를
이루는 것인데 이는 겉으로 보여지는 내가 아니라. 안보이는 진짜 모습이다.
숨길 수 없는
진정한 욕망이다. 욕망이 참되면 이룰것이지만 어두운 욕망만 있다만 성공을
장담하지 못한다.
나아가 실존적 당위가 중요하기 때문이며 개체적 존재로서의 지금까지의
자신을 초월하여
다른 세계, 다른 존재로의 재탄생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이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내 존재의 당위성을 나에게 스스로
증명하며 남이 있다하여 있고 없다고 하여 없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증명하는 것이다. 또
나에 의해 세상을 증명하지만, 내가 전부는 아니며 일부도 아닌 공이다.
하늘주천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이제 하늘과 섞이는 것이다. 하늘주천은 선계
와 연결된 것을 말하며
외부에서 오는 것이 모두 같은 기는 아니다. 이것은 기라고 하는 것이 아니
다. 자천의 정도에 따라
다른 것이 들어온다. 질이 다르며 그 질에 맞는 내 몸도 이미 일반의 몸은 아니
다. 하늘주천은 분명
천기이며 이것은 신의 허락이 있어야 하며, 이 허락을 얻어내기 위해 2단에서 그
렇게 힘든 과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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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쳤고 이제 그 결과를 증득해야 하는 단계이다. 허락은 내 마음에서 나오며 내
가 준비된 그 정신적
성숙이다. 하늘이 외부의 신이나 신성 따위는 아니다. 이것은 원천의 의미를 알
아야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들어오는 하늘을 내가 받을 수 있는가이다. 내가 그것을 내
것으로 할 수 없다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천기는 분명 들어온다. 하지만
들어올 뿐 그 무엇도 만들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금빛단(정상삼화가 되고 더 나아가 천일합일을 조금 경험 하게되면)이 만들어지고 바른몸(법신)을
탄생시킬 '태'가 만들어지며 그 안에 '바른몸'이 이루어진다. 시간이 흘러 내
모습과 같아지면 이제는 완벽한, 한 수도자로써 인정받는다.
이 때 아직 미숙한 바른몸을 뽑아내는 자천을 차이나에서 책으로 쓰고 있는데
이는 위험하며 잘못하면 내 것을 남에게 빼앗길 수도 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있다 내 것이 어떻게 빼앗기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고단자의 능력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보는 것 만으로도 상대의 크기, 도의 단계, 수준의 고저를 알아볼 수 있다.
얼마든지 속여 천사, 신선, 절대자의 모습으로 현혹시킬 수 있다. 이는 도의
높낮이로 하는 것이다. 언제나 위험하고 흔들리지
않는 단계는 없다.강자의 힘은 항상 위험하다.
전진교의 그 책들은 그 목적으로 유포하였다. 지금 왕중양이나 그 추종자
는 그 벌을 받고 제거 되었으며 능력이 이르면 확인해 보기 바란다. 그러니 여
기에 안주하지 말고 더 높은 과정으로 나아감이 옳다고 본다.
4단_영단
이는 또 다른 경지이다. 내 심장에서 나오는 올이 몸밖으로 확장해 나오고 내
몸을 감싼다. 내 몸을 막처럼 감싸면서 이것이 점점 확대되어 간다.
그러다가 10m, 20m, 30m로 내 몸 바깥의 사물이 내 일부인양 느껴지기도 하며
내 의식이 멀리
나아가듯 어떤일이든 할것 같다.
이제부터 몸의 개념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머리, 몸통 , 팔, 다리의 일반적 몸은 나의 일부이지 전체가 아니다. 내 몸의
전체적 크기는 그 보다 훨씬 크고 원형을 이룬다. 이 전에는 밤톨만한 작은 것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도 힘든 과정을 거쳤는데 이제는 그것이 300m 정도의
크기로 자라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도 이렇지는 않을것이다.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어도 받으려는 사람이 없으니 안타깝다.
많은 수도인이 이 경지에 많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 겨우 몸밖으로 나온 완주가 있는 경우가 많다.
나오는 것은 어떻게 했지만 확장을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 유명한 성철도 이 한계를 넘지 못했다. 그 모습이 회오리치며 강력한 영의
줄기가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이 모양이 안타깝게만 보이는 것은 
그의 수련의 집념이 이렇게도 강하건만 커지지 않고 한으로 남는 것이 아닌가 해서이다
대개의 자천법도 여기가 아닌가 한다. 연허 합도이며 허공분쇄가 나는 이렇게 내
주위 허공으로 확장하는 것을 말하는게 아닌가 한다.
봉우님은 원광호신이라고 한거 같다. 보살이나 부처그림의 방광을 그린 것처럼
몸을 감싸다가
이것이 점점 커지는데 이것이 내 몸 자체가 된다고 생각한다. 내 완주가 가는
곳까지 내 몸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는 차이나식으로 기수련적인 이해로 자천한 사람은 좀 힘들거라고 본다.
주천을 한다고 될것도 아니고 호흡이나 명상이나 주문을 아무리해도 된다고
보장 못한다.
사실 나는 자천법 자체가 없다고 본다. 최소한 세간에 알려진 자천중에 이
이상을 가게 하기위한
방법이 없다.
차이나의 수련서에도 오직 돈법 뿐이라고 했다.
몸으로 했던 호흡이나 주문이나 명상으로 하는 것은 이제는 부수적인 것이고
무얼 원하고 서원이 무엇이고 뜻이 무엇인지가 관건이다. 처음에 이것을
명확하게 정한 분은 잘나가지만 아직까지
확실치 않다면 명확하게 해야 한다. 즉 뜻을 정해야한다. 이 말은 마음, 즉
의지나 자신의 주체성을 어떻게 할것인가가 수도의 길을 가게 한다. 처음부터
이렇게 수도 했다면 쉬웠겠지만 요즘은 이걸 잘 못한다. 멀리보고 넓게 보는
그런 큰 마음이 있어야 쉽다. 이타성이나 세상에 내가 무엇인지를
항상 고민해야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애라유를 경험한다.
인위적으로 차이나 처럼 할 필요가 없고 이때가 되면 어떤식으로든 경험한다.
아주 다양하게 하기 때문에 책에서처럼 된다고 일부러 하다가는 오해가 되기도
한다. 애라유는 경험해 보면 안다.
자신이 나가는 것을 느낀다. 나가는 방법은 모두 다르니 마음의 여유를 두고
자신을 잘 관찰해야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신을 관찰하고 의식과 심리가 변화하는 것을 연구하면서
인위적 애라유도해보고 다른 것들도 연습해가면 된다.
이렇게 커지다가 어느 단계에서 내 머리 위에서 있던 환명 그 한참 위에 또 다른
환명이 거대한 크기로 만들어지며 엄청난 영역을 흡수하고 강력한 수축과 확장을 반복한다.
이러면 대단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5단_대단
여기 온 사람은 이제는 다른 사람 밑으로 들어가기 힘들다.
스스로 개파조사가 될지언정 남의 학설이나 도에 굴하지 않는 자신감과 능력이
얻어진다.
맹자가 여기서 부동심을 말했고 여기가 중용이 말하는 미발,이발의 묘용이 있는
것이다. 대인이다.
마음의 지평이 넓어져 아무것도 나의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일상적
탐욕, 성욕같은 오욕칠정이 사라진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이 때를 지나
익숙해지면 명에 따라 다시 생긴다. 왜냐하면 욕구가 없는 것이 바른 수도가
아니고 아무리 도가 깊어져도 욕구는 없어지지 않는다.
욕구는 존재의 근간이고 삶이며 도가 곧 욕구이다.
마음장상이라고 하며 성욕도 없어진다고 하지만, 이것은 그런 사람도 있지만
모두 그런것은 아니다.
불교에서 특히 이러한 것을 강조하는데 교리의 독특한 특성이지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오장의 욕망, 근원적 욕망은 내 몸의 구성이고 나의 또 다른 모습이지
제거하고 없애는 것이 아니다.
열반이 바로 이곳이고 여기서 알 수 있다. 대개의 가르침은 여기까지이고
이곳이 하나의 커다란 문턱이다.
마음 깊은 곳 그곳에 힘이 있고 그것이 분출하던 욕망을 잡고 있는듯하다.
이것이 무게로 느껴지며 유혹을 이기는 중심을 만든다. 그래서 욕망이 일어나기
전과 일어나는 시간차를 경험한다. 이것이 미발과 이발이며 감정에 이끌리어
대의를 그르치는 한계선을 넘지 않아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는 애써서 그리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하는 행동을 무심히 바라보게 된다.
어찌보면 무의식을 느낀다. 그 전에는 느끼거나 알아채지 못했던 깊은 욕망과
습관적 행동, 생각이 즉 무의식적인 것이 알아지는데 의식과 무의식의 일치가
느껴진다. 이는 욕망이 일어나는 것을 더욱
깊은 곳에서 더 근원적인 곳에서 일어남을 느낀다. 그래서 생각을 뇌가 아니라
가슴에서 한다고 했다.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느끼는 욕망이 더 밀접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미발과 이발을 상대적 동정으로 본 것이고 절대적 동정은 자천에서 있을
수 없다. 많은 사실이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천지창조론이 아니라 인간행동원리를 말한다. 천지의 창조와 운행의
절대적 객관성을 역시 인정할 수 없다. 주관적 객관성을 말하며 주관화한 정도를
수도의 깊이로 본다. 점점 천지를 먹어 치운것이 도의 진보이다. 이것 역시
주관성이다. 이유는 내가 존재하는 한 이 세상의 것은 나와의 관계속에서 이해될
뿐이고 행동할 뿐이다. 세계를 객관화하는 것은 나약함의 표시이다. 신명들도
자기 자신의 나약함을 탓하지 세상의 위대함은 관심 밖이다. 신이나 상제들은
나의 이용대상이지
내가 복종할 그 무엇도 아니다. 그들의 객관적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
나에게 그 무엇이 될 뿐인 나와의 직접적 관계속에서 파악될 뿐이다.

처음부터 이곳 이상에 뜻을 두고 있었던 사람들은 죽~~~ 오면 되지 단전이나
여러주천 따위를 생각하거나 바른 몸이나 하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오면된다.
이것을 어떻게 알려줄 것인가...
이 단계에서부터 분신이 생긴다. 하나뿐이던 애라가 두개, 세개 계속 늘어난다고
하는데
다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개 세개 그 이상도.. .
그리고 내 빛이 지구의 남극과 북극으로 뻗어간다.
북극신과 남극신이 와서 확인하기도 한다.

6단_종단
5단에서는 세간의 학설이나 도를 근거로 자신의 관념을 형성하고 새로운 창조를
하지만 이제는 전혀 세상의 도에 의지하지 않는다. 오직 진리를 진리에 근거해
구할 뿐이다.
없는 진리를 구하는 것의 모순을 알고 그 당위를 안다.
그래서 오히려 방황을 할 수도 있다. 땅과 하늘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나만의 것을 찾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5단은 땅이고 자신에 관심있다. 6단은 7단의 하늘에 관심있고 땅에도 관심있어
이 둘에 조화를 이룬다.
세상에 이로움을 주고 원하는 것을 나눠주며 작은 것에도 의미를 두고, 큰
것에도 의미를 두어 세상의평가가 극과 극일 수 있다.
소강절은 미신을 조장하는 말도 했고 남다른 논리로 세상을 놀라게도 했다.
서경덕도 몇몇의 술수를 만들고 획기적 이론도 만들었다.
과거의 유학에서 여기를 아성이라고 했다.
7단부터 성인이고 그 바로 아래라서 그렇다.
세상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기도 하는 것이다.
너무 치열하고 간교한 사회가 염증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내안에 천지를 두고 궁구하며 남모르는 능력을 키우는 듯하다.
자신의 내실로 자신감과 당당한 사람이 된다.
이것이 잘 되어야 실력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이다.

7단_천단

천 곧 하늘이다.
또 다른 하늘이 탄생한 것이다. 그대는 이제 하늘이다.
세상에 또 다른 하늘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주자가 여기서 성리학을 창조해 세상을 지배하는 하늘이 되었다.
최제우도 바로 여기서 상제의 계시를 받고 동학을 세웠고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늘이 되었다.
이제마도 한의학에서 우리만의 한의학 이론을 만들어 세상에 군림하고 또
할것이다.

왕수인의 양명학도 여기이다.
이렇게 이 자리는 많은 사람이 세상창조의 힘을 발휘한다. 지금 우리나라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 어설픈 서양철학과 이데올로기에 우리만의 하늘
체계를 보여야 한다. 바보처럼 저들의 말하는 것이 진리인양 혼을 팔아 치우고
얼을 넘겨주는 짓은 그만 두어야한다. 관법이 있다. 같은 사실, 사건도
얼마든지 재해석이 가능하며 거친 일반화된 일류학, 철학사조가 너무 많다.
나같은 문외한이 보아도 그들의 이론은 엉성하고 빈틈이 많다. 환원주의 폐단과
보편화의 무자비성, 통제의 엄밀성은 세상이 무섭게만 보인다.
자신이 스스로 구하는 것이지 누가 구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도 기댈
언덕이 있어야 기대듯이 외부의 작용과 내부의 의욕이 함께 만나야 한다.
법이 나의 지침이 되는 것은 굴욕적이고 타력에 의지하는 것이다. 자율적
도덕성은 분명 새로운 세대에 중요한 화두일 것이다.
이 자리에 와야 하늘에 비교하고 땅에 기대어도 자신의 도덕은 유일하다.
부끄러움을 이기는 것은 자신이 옳은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바르고 ,, 난 바를 수 밖에 없는 자라는 것이 서서히 내면을 울린다.

8단_혼단
혼이다
하늘에 있지만 보이지 않고 근거로서 하늘이 의지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의지하여 자신을 돌이키고 학문을 세우며 검증을 했다.
말없이 모든 사물을 응시하며 무언의 조화를 이룬다.
여성적 원리가 있는듯 품에는 세상의 경륜을 가지고 있지만 원하는 사람에게만
하나씩 하나씩 꺼내주며 무엇이 있는지 전부는 안 보여주는 은밀함이 있다.
자신이 얼마나 큰지 작은지 개념치 않으며 세상사람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여유와 관대함이 있다.
정명도가 그랬고 가까운 곳에 권태훈님도 그랬고 그러고 보면 이 자리의 사람은
역사에 그리 이름이 안 보인다. 그것은 무심하기 때문이지 업적이 없어서는
아니다.
업적을 남에게 넘기고 자신은 뒤로 물러나기 때문이다. 오자서가 여기인데
예외인가 아니면 손무(6단)에게 많은 것을 주었는가
조선의 정기룡은 비운의 룡일런가.....
남이 안하면 내가 한다.
그리고 항상 하고 있다.
하지만 남들은 쓸데 없다고 한다.
그 겉으로 보이는 성과보다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남모르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우직함이 있다.

9단_신단
여기다! 여기가 신이다. 오직 신이다.
스스로 책임지며 어떤것에도 의뢰함이 없이 외롭고 고독한 자리이며 자신의
역량을 나눠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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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싶고 퍼주고 싶은 마음은 넓고 한량 없지만 알아주는 사람도 보아주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실망함이 없이 어디에서인가 어느곳에서인가 제 일을 하고
있으며 홀로 모든것을 감내하고 이후의 사람과 현재의 사람들에게 물질적,
정신적 풍요와 안락을 위해 적극적으로 희생하며 알아주지도
않는, 나중에 기적이라고 찬탄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며, 그들의 사업이 세상을
움직이는 기준이
되어져 있지만 조명은 재빠른 자가 가로채가는 억울함도 웃으며 산다.
서산대사는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마음을 움직이는 한숨이 있다.
주염계는 몇 자 안되는 무극론으로 지금껏 성리학의 기준이 되고 있다.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길을 가며 신으로써 인류의 앞날을
책임지는 거대한
어깨가 있다.
우리나라에 좌도방이나 우도방의 방주가 여기였고 지금은 그 구분을 없애고
있는데 나관중의
후신이 이 일을 맡고 잇다.
사람들과 세상 만물의 최후의 보루이고 마지막 정점이다.
이는 구심점이고 중심이다.
기준이 되어 세상을 움직이는 축이다.
그 축이 있어야 일이 생긴다.
그러니 있는 것으로도 족하다.
우러름을 받아야 한다.
어쩌면 여기가 마지막 자리이겠죠 이후는 격이 다르고 이곳이 이 세상에서
가지는 힘의 끝이구요
결국 어떤 자도 아무리 세상을 뒤엎을 듯한 능력을 행사해도 이 계제의 힘일
뿐입니다,
여길 넘어 50단이든 100단이든 그 이상이든 이 세상에서는 9단의 힘
정도입니다.
왜냐면 힘은 자기의 신체나 가진 능력이 아니라 이 땅이 허락한 만큼 감당하는
만큼이기 때문이죠
그럼 그게 얼마만큼이냐면 일반인이 아는 전설적 신화적인 것들이죠
물론 그 이상의 능력을 하는 편법도 있죠 이건 우리나라만 있죠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거라서요
근데 이 계제에 오면 다 그런 능력이 있냐면 아니죠 그건 다른거죠 능력에 대한
이해를 못한거죠
여기서 딱 잘라 말하지만 능력행사는 없습니다. 과거 했던 많은 얘기는
가짜이거나 잘못 이해한
겁니다.
시간과 신화적 이해를 모르는거죠 판타지에서 벗어나요 안 그러면 도의 증진은
물건너 갑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허락하지 않아요 왜냐구요? 알거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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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사람들이 보고자하는 사람들이 없어지면 되겠죠 도의 능멸과 기만은
사라져야 합니다.
신단자는 책임자이구 어떤 한 방면에 우두머리입니다 분명 이 계제에 오면 그
권리가 있습니다.
신이라는 것은 신묘함인데 그 사람이 신묘하고 세상의 신묘함을 압니다 알아야
여기 옵니다.
그래서 신묘한 일을 하는거고 그 능력이 있는겁니다. 능력상의
최고봉입니다. 오고가는 것을 알고 있고 없는 것을 알고 살고 죽는것을
압니다. 창조와 소멸을 압니다. 아는 것은 행한다는 것이구요
결국 시작과 끝을 알고 행한다는 것이 신이구 이 단계가 그겁니다. 다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는 못합니다. 설계자이겠지요
아하 덧붙이자 능력이 다르다는건 그러니까 음~ 어떤 신단자가 산을
들어 던질수 있다 하자
적이 또 9단이고 근데 이자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 그냥 신단일 뿐 별볼일 없다.
그래서 그 구단을 산을 들어 던져 죽이려면 가능하냐 안되요 안죽어요 어떻게든
살아요 왜요?
절대로 비슷하거나 위단계자에게는 아무것도 안통해요 정면대결 외에 암것도
안되죠 정면대결이란
내 정신과 상대 정신의 크기로 인한 힘의 집중이죠 검은 은빛 몸과 거대한
신체의 힘을 구사하는
강력한 투지 그 시합을 보아야죠 아~~ 무시라!!!
그외의 능력은 이땅과 이생의 인연으로 하는 일시적 현상이죠 본인의 순수함은
아니죠
능력은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그런 무기가 안되요
이건 주관적이고 제약이 심한 것이지 만능도 원하는대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니고
어떤 인연적
원리가 있다.
무엇보다 이건 하찮은 능력이고 진짜 능력은 따로 있다 이능력은 그 각각의
계제자는 모두 가지는 일반적인 것으로 이것이 진짜다.
이외의 것은 난 인정하지도 관심도 없고 그런자는 필요없다

10단_허단

허이다.
이는 사람도 신도 아니다. 그런 구분이 없다.
이 지구이다. 일체이며 모두이고 또 아무도 아니다.
하나의 행성, 하나의 의미로만 보며 우두머리 지배자의 의미는 필요없다.
우주의 한 별로써 구분하며 , 그래서 인정하는 부류가 다르다.
공자가 여기이고 조여적이 여기이고 크로노스도 여기이다.
이들은 이 지구에서 절대적이며 만능이다.
배달도 여기서부터 인정하며 또 다른 수도의 문턱을 넘는 발판이다.
그래도 여기는 존재이고, 지구라는 행성의 의지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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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후 11단부터는 존재가 아니며 시공간 모두를 넘어 하나의 흐름이고
그때 그때에 따라 시공을 정하며 작용하고 사라지는
있으면 그이고 없으면 그래도 그이다.
세상에 책임도 없고 의미도 없고 일도 없다.
왜냐하면 10단이 그것이고 세상이고 의미이고 일이다.
더이상 자신의 일에 자기가 왈가왈부 하지 않는다.
자신을 돌이켜 바르면 세상은 바르다. 그렇다.
여기까지 명부에 기록된다. 이후는 현부에 기록 된다.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모르는 자는 7단 이하이다.
7단부터는 스스로 알고 명부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
그전에도 가능하지만 원할때 원하는 것을 보는 것은 이때 부터이다.
백단까지 나누었었다. 이후 얼마전에 오십단까지만 하기로 천중과 협의했었다
. 그래도 우선
백단까지 썼는데
황당하다는 반응이 있다. 그리고 터무니없게 이런 몇십단의 계제를 우습게
보는 상황도 생긴다.
10단 이상을 가는 사람은 내가 이생에서는 못보았고 우리나라에 조선
중기 이후 없는 것으로 안다.
꿈은 크게 가지라고 했지만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허황된 꿈이고 더불어 말할 수 없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비난은 괜찮다.
그리고 계제를 단순히 태권도 단 따는것 쯤으로 이해하는 것도 아쉬움이 크다.
높을수록 좋지만 겸허히 생각해보면 자신이 합당한지 곰곰히 그리고 냉철히
생각해 보아야한다.
숫자가 편하고 현대는 이것이 일반적인 것같아 사용했지만 그 오해가 더 큰
듯해서 다시 숫자보다는
원래의 말로 다시 돌아갈까 한다.
그리고 이 허단이 끝이다 이 이상은 논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경솔
하다.
또, 숫자는 어디쯤인지는 알아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게 하는 반바보
로 만든다.
반은 바보라는거다.
그래서 이렇게 또 한마디를 하게된다. 허,,,,,
허가 무엇인지 알고 이에 그것이 되는 것인데
말은 입으로 의사소통하는 수단이 아니라 주문으로 강력한 힘이 있다.
말을 주문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하며 받아들일까? 말의 무서움
과 의미를 모른다.

아직 이걸 아는 사람은 못보았다.
이건 문제가 있다. 수련을 이해 못
한다는 것인데 이러고도 수련이 된다면 왜 그럴까?
이 부분이 점점 근심이 된다.
의지의 표현이고 목적을 지향하며 절제와 결단을 한다. 자신이 말을 깨우치지
못한다면
남에게 묻기는 창피하니 스스로 자숙하고 생각하면서 알게 될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
허를 알면 허단이 된다. 허단이 되면 허를 안다.
그래도 광활한 편인 우주에서 하나의 존재로써 인정되는 것이 이곳인데 이유
는 하나의 개체가 되어진다.
우주에서는 이정도는 되어야 보인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미약하여 그저 그럴
뿐이다.
그래서 이 이전에 우주를 논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제를 알라고 말하고 싶다.
우주는 그대를 모릅니다.
그대까지 알 정도로 그대는 중요하지도 않고 힘도 없고 의미도 없습니다. 작은거 하나도
알거라는
착각은 버려요 약자의 변명입니다.
영이 움직이면 사람 모습을 한다.
하지만 본래의 형상은 원형인데 영단부터 이것이 되고 허단부터 우주의 구성
원이 된다.
도덕경의 허이불굴(맞나몰라?)은 아래에서 허의 큼을 말한 것이다.
위에서 보면 작지만 아래에서 보면 크다.
허이니 무한해 보이기도 하다. 자신이 작은 것인데...
태허라고 말하나를 더 붙여 다르게 말하지만 그래봐야 이 다음의 무단을 말한
것이다.화엄경도 여기까지이나 아쉬움이 있어 무단을 논하기도 한다.
지은이의 능력을 넘은 말이다. (부처를 말하는것이 아니다.)


추가.

도의 단계는 1-100단 까지이다.
이것은 배달의 전간을 근거로 한 것이다.
100단까지인 이유는 우주와 동등하여 크기가 같고 이 이상은 이 우주에서
수련이 어렵다.
80단부터는 우주 바깥과 함께하는 것인데 100단 부터는 이 우주의 몸의
체계와는 다른 것으로 본인에게 이득이 없다.
100단이 넘은 우주인은 이 우주 본인과 이 우주를 만드신 분과 증산님
인정상관님 이들 네분 뿐이다.

 
과거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었으니 다음과 같이 했다.
0단 의-기 마음을 정하기
1단 기-빛 임독유통이나 중맥이 열리기 전까지
2단 빛-공 중맥이 열려 정계와 교류할 때부터 선계가 열리기 전까지
(대주천전까지)
3단 공-영 선계가 열려 금빛이 있고 바른몸이 완성될때까지
4단 영-대 심장의 빛이 밖으로 나와 보호막처럼 나오고 그리고 300m 정도의
크기로 될때까지
이를 완주(完珠) 라고 한다.
모계가 열린다.
5단 대-종 완주가 우리나라 두배정도 크기까지,, 천계가 열린다.
6단 종-하늘 지구3분지 일까지,, 허계가 열린다.
7단 하늘-혼 3분지이,, 인계가 열린다.
8단 혼-신 지구와 같은 크기,, 대인계
9단 신-허 대기권 반정도까지,, 방계
10단 허-무 지구권역전부------ 100단 해-서
이런 식이었으며 1단은 기, 2단은 빛등등 단순한 말이 아니다. 그 계제의 단서가
있는 말이다.

1단은 기수련이고 ,2단은 빛수련이고, 3단은 공을 각해야한다.
명부에서 10단까지 기록되고 그이상은 현부에서 한다.(현부와 천부는
통합되었다.)
현문에서도 어떤 목적을 두고 한다.
옛 선조들의 계제를 나열하면
최제우 7단으로 생을 마감 이후 선계에서 14단까지 수련 지금은 명부책임자
이제마 7단으로 생을 마감 이후 선계에서 14단까지 수련 지금은 제주도 천신
권태훈 8단 나관중 10단
송구봉 22단 나철 7단
남명 44단 정약용 5단
남사고 7단 달라이라마 5단
서경덕 6단 2대 단군부루 25단
북창 5단 을보륵 20단
47대 단군 고열가 7단 유위자 13단
왕검 40단 지금은 마고(79단)의 뒤를 이어 우주신임
부처 99단 을지문덕 9단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22단 주자 7단
라즈니쉬 9단 왕양명 7단
이율곡 1단 평강공주(원경왕후:조선) 9단

퇴계 3단 정도전 9단
서산대사 9단 사명당 7단
한당 5단 제갈량 7단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11단 밀라레빠 8단
앙산 20단 조주 14단 동중서 18단 황벽 18단
아미타불 18단 관세음보살7단
서왕모 9단 계백 9단 문정왕후 5단 인현왕후 5단
김시습 9단 이준경 6단 태고 보우 7단
이갑룡 3단 마하 가섭 7단
야곱(이자가 성경의 신 야훼이다, 창세기의 신은 아니다) 5단
예수 4단으로 생을 마치었고 얼마전에 8단으로 승격되어 북남미 대륙의 신으로
성철 4단 숭산 4단->3단 크로노스10단 제우스 8단 공자 10단
조여적 10단

무진장사오 유우중군상
언세송용강 새절소수호
요전몬손하 주후문고제
임성열구인 자산옹조묘융......
(여기 50단까지 적혀있다. 11단은 무단 12단은 진단 13단은 장단 ....)

배달도 그렇고 이 계제를 보이고 또 다른 역대 고단자들을 조금 알려준건 꿈을
꾸게 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누구는 자기도 몇십단의 고단자가 될거라고 하고 그들과 비교하면서 관심을
보이기도 하는데 또 말이지만 허영이다. 공단부터 이룬 다음 오라고 하고싶다.
대단이 넘으면 백만분의 일의 확률이다. 자기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지
냉철하고 묻고 싶다.
또 부처의 계제나 맘에 안드는 분도 있나보다. 아마 자신이 숭배하는 분의
계제가 생각보다 못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느정도의 계제라야 만족 할런지
모르겠다.
그래봐야 남의 계제일 뿐 자신과는 상관없지 않나? 자신의 계제나 신경쓸
일이다.
자기의 스승이나 숭배자의 계제가 자기 것이 되는 것이 아니고 나중에 도움될
일도 없다. 자기 길은 철저히 자기 길이다.

========

국외 도계

이홍지... 종단->의단 : 법륜공
왕력평... 광단
곽종인... 종단 : 차이나 화산파 장문
달라이라마 ...대단
틱낫한... 의단
칭하이 무상사... 기단
에크하르트 톨레... 의단 : 서양 영성가
조상정 ...기단(내주천) : 화산 남천문23대 장문
김대식...광단 : 천기도법
라마나 마하리쉬...공단
디팍초프라...기단(내주천) : 초프라 행복센터
끼란바바...기단 : 오쇼제자
켄 윌버...의단 : 초개인/자아초월심리학자
엄신...의단 : 중국기공사
남회근...의단 : 중국학자
요가난다...대단 : 인도 요기(크리야 요가)
헬레나 블라바츠키...의단 : 신지학
헨리 스틸 올코트...기단 : 신지학
애니 베산트...의단 : 신지학
리드비터...의단 : 신지학
바하 울라...의단 : 바하이교 창시
u,g크리슈나무르티 ...의단 : 인도 구루
무묘앙 에오...의단 : 일본 영성가
니사르가닷따 마하리지...의단 : 인도 구루
아난도...기단 : 오쇼제자
묵타난다...기단 : 인도 구루
조곡쉬...의단 : 프라닉힐링
다카하시 신지...의단 : 일본 영성가
구르지예프...의단 : 러시아 영성가
라마크리슈나...의단 : 힌두교 수행자
비베카난다...의단 : 힌두교 수행자
마(maa)...의단 : 수행자
제임스 레드필드...의단 : '천상의 예언' 저자
닐 도널드 월시...의단 : 신과 나눈 이야기
해리 팔머...의단 : 아바타프로그램
데이비드 호킨스...의단 : '의식혁명' 저자
제이지 나이트...의단 : 람타깨달음 학교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기단(내주천) : TM명상
담석청(잔스추앙)...기단 : '도교와 여성' 저자
다스칼로스...영단->공단 : 키프로스 신유가
바바지...천단 : 요가난다 스승
만탁 치아...의단 : 힐링타오
다니구찌 마사하루...의단 : 일본승려(책'생명의 실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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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도계

박현... 신단 : 바나리
이승헌... 기단 : 단월드
문화영... 의단 : 수선재
김충규(도백)...공단 : 도화재(석문도문)
허경무(도운)... 영단 : 세계 국선도 연맹
허천우... 공단 : 한단회(한국단전호흡수련회)
최병주... 공단 : 금선학회
민정암... 광단 : 태극기공회
이동호(순일) ... 기단 : 원음종
청월스님... 의단 : 청심선원
박석... 기단(내주천) : 교수
마덕스님... 기단(내주천) : 붓다마을
유종열(원아)... 의단 : 봄나라
정도령... 의단 : 단군성전, 대천우주성
유인학...기단(내주천) : 세계국선도 연맹
윤홍식...의단 : 홍익학당
죽림(천선자)...광단 : 도인학교
게이트(신종현)...광단 : 붓다필드
김성갑...광단 : 고신도(한국 선도회)
현동 ...기단(내주천) : 태극선법
한바다...기단(내주천) : 해피타오인터네셔널
비로영우 스님...기단 : 불가기공
임경택...기단(내주천) : 국선도
조규일(칠통)...기단(내주천) : 수행자
김열권...의단 : 법사(위빠사나 수행자)
김일훈(인산)...영단 : 신약본초 저자
우혈...의단 : 혈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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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안재찬)...의단 : 시인, 명상가
홍신자...의단 : 무용가, 명상가
손민규...기단 : 번역가, 명상가(명상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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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동(상월원각)...의단 : 천태종 중흥조
손규상(회당)...의단 : 진각종 개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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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정(좌산)...의단 : 원불교
장응철(경산)...의단 : 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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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규(정산)...의단 : 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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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창국...기단 : 기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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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기단(내주천) : 도현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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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공단 : 법사, 퇴마사
의단이란.. 단전생성전의 단계, 의지를 내서 수련하는 단계
<편집자 주 : 광룡정 현일 박재봉님의 이론과 점검 결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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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전공 적합書 | 한의학과, 동양철학 이해하고 한의학 개념 세우는 책 읽기

다시 보는 전공 적합書 | 한의학과, 동양철학 이해하고 한의학 개념 세우는 책 읽기:


다시 보는 전공 적합書 | 한의학과, 동양철학 이해하고 한의학 개념 세우는 책 읽기



다시 보는 전공 적합書 | 한의학과

동양철학 이해하고 한의학 개념 세우는 책 읽기

취재 김지영 리포터 janekim@naeil.com
도움말 조동욱 편집자(와이겔리)
참고 커리어넷 학과 정보

전공 파헤치기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탐구하는 한의학

한의학은 음양오행을 비롯한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질병을 예방하고 증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정상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한약과 침술을 사용한 치료법을 연구한다. 예과 2년 동안 기초의학을, 본과 4년 동안 임상의학을 배운다. 일반적이고 표준화된 치료 방식보다는 개인의 체질과 특성에 근거해 처방하고 그에 따른 임상 효과도 다르다. 개인의 의학이라고 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한의학의 과학성에 대한 논쟁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서양의학이 개선하지 못하는 질병 분야에서 침·뜸·한약 등의 치료 방식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졸업 후에는 한방병원, 한의원, 연구소, 보건 관련 공공기관 등에서 일한다.



전공 적합‘생’ 되려면?

통합 진료 위한 소통과 공감 능력은 필수

한의원에서 이뤄지는 진단과 처방을 떠올리면 전공에 필요한 역량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진단 기기를 활용해 몸 내부를 직접 보는 서양의학과는 달리, 한의학은 신체 전체의 조화, 내적 요인 등을 살피며 증상을 비교해 처방한다. 의사와 환자의 소통이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체질과 상황에 맞는 통합적인 진료를 할 수 있어 소통과 공감 능력은 필수다. 대부분 침과 한약으로 처방해 인체의 구조와 다양한 약재에 관심이 있으면 좋다. 또 한의학의 근간은 동양철학이므로 동양사상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한자가 익숙하면 관련 의학서적이나 외워야 할 약초의 이름을 익히기 좋다.





ONE PICK! 독어독문학과 전공 적합서


음양이 뭐지?
지은이 전창선·어윤형
펴낸곳 와이겔리



“한의학 이론의 시작, 동양철학을 향한 첫걸음 <음양이 뭐지?>”

한의학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은 학문의 배경이 되는 동양사상이 낯설고 어렵다고 한다. 그럴 땐 <음양이 뭐지?> <오행은 뭘까?>를 읽어보자. 동양철학의 기본 사상인 음양오행의 이해를 도와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책이다. 제목처럼 음양과 오행에 단순하게 접근하고, 일반적이고 쉬운 예시를 들어 설명했기 때문에 이론에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다는 평이다.

두 책을 펴낸 와이겔리 조동욱 편집자는 “한의학자들은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음양오행을 이해하는 것이 동양학을 이해하는 나침반이 된다고 한다. 이 책은 한의학을 시작하고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던 한의사가 쓴 동양학 입문서다. 음양오행을 너무 과학적이거나 미신적인 시각이 아니라 이치에 맞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 동양사상 책들과 차별화된다. 출간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한의학 입문서로 추천되는 이유같다”라고 덧붙였다.

동양사상에서 ‘음양(陰陽)’은 우주의 원리다. 2장 ‘우주를 낚는 그물’을 인용해 이해를 돕자면, “언덕에 빛이 비추면 음양의 작용에 의해 양달과 음달로 나뉘지만 언덕은 여전히 하나다. 그 하나가 태극이며 음양은 하나 속에 들어 있는 둘”이다.

그렇다면 한의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음양오행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왜 중요할까?

조 편집자는 “단정지어 말하긴 어렵다. 다만 한의학에서는 인간의 몸을 우주의 축소판 ‘소우주’라고 한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질병, 감정, 심정을 해석하고 의학으로 치료하는 데 있어 음양오행적인 접근이 타당하기에 한의학에서 음양오행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한의학은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몸을 체질에 따라 나눠 적용한다. 사람에게는 한열조습(寒熱燥濕)의 성질이 섞여 있는데 병이 발생하면 이 네 가지 성질 중 어느 한쪽으로 쉽게 치우친다. 음양오행을 익혀 체질을 이해하면 질병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배가 들려주는 나의 독서와 진로 이야기

한의학 이론의 정립을 도운 <한의학 소담> <한의학 탐사여행>

조현승
원광대 한의학과(예과) 2학년


Q 한의학과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A 예전에 다리를 다쳐 한의원에서 침과 뜸 진료를 받은 적이 있어요. 이때 제가 다친 건 다리인데 팔에도 침을 놓아 신기했어요. 치료 후 다리의 상태가 훨씬 호전됐다는 것이 무엇보다 놀라웠어요. 한의학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시작됐던 것 같아요. 신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어떤 한 부분에 이상이 생기면 그 부분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신체의 전반적인 부분을 치료하는 방식이 신기하게 생각돼 한의대에 지원했어요.


Q 고교 때 읽은 책 중 진로와 관련해서 도움이 된 책은?

A 대학 졸업 후 한의대에 다시 입학해, 현직 한의사로 일하며 다수의 방송에도 출연 중인 김민정 한의사님의 <한의사라서 다행이야>가 흥미로웠어요. 한의원 개원 당시의 얘기가 생생히 묘사돼 있어요. 한의사는 단순히 병실에서 환자들에게 침을 놓는 역할뿐만 아니라 한의원 운영, 환자 관리, 홍보, 간호사 관리 등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부분이 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한의학이 어떤 학문인지 소개할 뿐만 아니라 입시를 어떤 태도로 준비했는지, 수험생으로서의 고충도 담아 도움이 됐어요.


Q 후배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A 한의학 이론이 익숙하지 않아 진로를 결정하기 두려웠을 때 도움을 받은 책들이 있어요. 우선 <한의학 소담>은 한의학 교수님들이 전공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책이에요. 질문과 답을 통해 한의학적 지식과 이론을 배울 수 있어요.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한의학적 관점에서 신체를 보는 것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어 큰 수확이었어요. 한의대의 교과과정과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도 자세히 적혀 있어서 한의대생이 된 지금도 가끔 꺼내 봐요.

<한의학 탐사여행>은 의사와 한의사 둘 다 면허가 있는 윤영주 교수님이 의대생들과 한의학에 대해 주고받은 문답을 바탕으로 정리한 책이에요. 한의학의 이론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진료나 치료 방식에 대해 배울 수 있었어요. 의학과 한의학의 차이가 확실히 와닿았고, 의학 용어와 한의학 용어가 완벽하게 일대일로 대응되지 않는다는 점이 새로웠어요. 특히 한의학은 ‘체질의학’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모든 사람이 다르다’는 의미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윤영주현대의학 따라가기가 한의학의 살길일까?

한의신문 펌]  현대의학 따라가기가 한의학의 살길일까? 

현대의학 따라가기가 한의학의 살길일까?
10년 후의 한의학을 위한 미래 발전 과제 (2) 
 윤영주 교수
·서울대 의대·동의대 한의대 졸업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한동서의학회 학술이사

최근에는 ‘근거중심의학’이 현대의학의 대명제로 대두되면서, 한의학 연구에도 현대과학과 현대의학의 연구방법이 주로 사용되고 있으며, 한의대 교육은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의대 교육을 점점 더 닮아가고 있다. 한약 성분을 원료로 한 신약 개발, 한의 진단기기 개발 등을 한의학 과학화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의학 따라가기’가 한의학의 살길일까? 이런 방법으로 현대의학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의학 연구는 한의학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연구 방법론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한의대 교육 또한 의대 교육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더욱이 한방 신약이나 진단기기가 아무리 많이 개발된다 해도 현대의학의 각종 신약이나 진단검사기기와 경쟁 상대가 될 수 있을까? 현대의학이 지향하는 ‘더 많은 의료’ 즉 더 많은 검사, 더 많은 수술, 더 많은 투약과 같은 방식으로 한방 검사도 더 많이 하고, 침·뜸 시술도 더 많이 하고, 한약도 더 많이 복용하게 하는 것이 한의학의 발전일까? 
물론 한의학에는 시급히 정량화·표준화·과학화되어야 하는 많은 영역과 과제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의 창출과 그 속에서 자기 위치를 정립하는 것을 통해서 한의학의 장기적인 발전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많은 이들이 현대 의학과 의료의 문제점에 관해서 지적하고 있다. 현대의료는 더 많은 검사, 더 비싼 검사를 통해 병을 진단하고, 병의 진단기준을 변화시킴으로써 더 많은 환자를 만들어내고, 이전에는 정상 범주에 속했던 상태를 병명을 붙여 새로운 질병으로 만들어 내어 더 많은 약을 판매하고 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수술과 투약의 증가는 한국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전반적인 사회 환경의 변화로 평균 수명은 획기적으로 늘어났지만 사람들은 과연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현대의료의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의학적인 상담, 생활습관 교정을 통해 평소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관리하며,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 병이 걸린 후에는 수술, 투약 등의 방법 외에 자연치유력을 최대로 강화하여 환자 스스로 병을 치료할 수 있게 하는 방법 등이 그 핵심 내용이 될 것이다. 질병 치료와 건강 유지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는 침습적 의료 행위들을 최소화하고, 환자를 치료의 주체로 만드는 의료로 변해야 한다. ‘더 많은 의료’가 아니라 ‘더 좋은 의료’로 고민의 중심이 이동해야 하고,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영역에서도 ‘더 좋은 의료’에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러한 영역은 한의학이 현대의학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점을 가진 분야이다. 보완대체의학도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는 있지만, 일부 요법에 국한되고 총체적인 이론 체계가 미비하기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염담허무(염  虛無)’, ‘이도요병(以道療病)’ ‘치미병(治未病)’ 등을 강조하는 한의학은 이러한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 창출에 필요한 의철학과 실천 방법론 모두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현대의학 모방하기’의 방법은 물량공세의 경쟁 속에서 일정기간 동안 일부 한방의료기관의 성장을 가능하게 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의료 전체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하지 않고서는 한의학의 장기적인 생존과 발전을 기한의학연구 현황과 미래


한의신문 펌]
현대의학 따라가기가 한의학의 살길일까?
이제마뛰어넘기
2010. 6. 7. 
 윤영주 교수

한방내과전문의 임정태의 근거중심한의학 대하기는 힘들다.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는 결국 사회 전반의 변화와 그 속의 개개인의 의식 변화를 필요로 한다. 한의학이 의술, 의학, 의료의 틀을 넘어서서 새로운 삶의 양식, 새로운 문화와 가치관을 제시하는 의식과 사회문화 개조 운동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명한 의료 소비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하는 의료 소비자 운동에도 앞장서야만 한다.

2)한의사상의 변화 
80년대, 90년대 한의계는 급성장과 호황의 시기를 누렸고, 그 결과 2006년 조사된 인기유망 직업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성장과 부의 축적에 비례하여 사회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넓히지는 못했다. 혹자는 국회의원, 공무원 등 공적 영역, 정치권에 한의사들이 많이 진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라고  보인다.  빠른  신분  상승에  비해  노블리스  오블리제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했던  것이 더 큰 원인이라 생각된다. ‘(의사에 비해 교육기간이 짧기 때문에) 쉽고 편하게 (보약을 팔아) 더 많은 돈을 버는 한의사’라는 것이 현재 일반 대중이 한의사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가 아닐까?
한의사의 사회적 위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한의사들이 개원 이외의 다양한 영역으로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더 많은 기부와 봉사이다. 부를 축적한 한의사들이 여러 형태로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모범을 보이는 것, 모든 한의사들이 일상 진료와 생활에서 소외된 이웃에 대한 봉사와 기부를 실천하는 것이 절실하다. 
또한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여러 가지 사안들에 대해서 한의사 집단의 고유한 목소리를 내고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출산율 저하, 고령화, 흉악 범죄의 급증, 게임 중독, 인터넷 중독, 도박 중독 등 비물질적 중독 병증의 증가 등에 관해 보건 정책, 복지 정책의 관점에서 의견과 대안을 제시하고 한의사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이 마련된다면 한의학에 대한 친근감, 호감도가 한의사 집단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3)한의학에 우호적인 세력과 한의학의 외연을 넓히는 것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한의학의 명맥이 이어지고 이만큼 성장하게 된 데는 민족 문화와 생활 전반에 한의학 전통이 뿌리 깊이 내려 있었던 것의 힘이 컸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설 <동의보감>, TV 드라마 <허준>, <대장금> 등이 대중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전통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의계는 전통 한의학에 대한 대중의 친근감을 현대 한의학에 대한 접근성과 친화력을 높이는 것으로 발전시키는데는 부족함이 많았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역사학, 한학, 철학, 인문학 등 한의학에 우호적인 인접 학문의 지식인 집단을 적극적으로 한의학의 우군으로 만드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유학을 기본으로 하면서 한의학을 유학의 일부로 학습하던 과정에서 환자에 대한 임상 진료를 하면서 명의로 이름을 떨치게 된 유의(儒醫)의 전통이 뿌리 깊다. 현대에도 서양의학의 횡포에 염증을 느끼며 대안을  모색하는  지식인들  중에는  여러  가지  경로와  방법으로  한의학  이론과  실기를  습득하는  사람이  많고,  그들 중 일부는 자신과 가족을 넘어서 치료를 해보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지기도 한다. 그간 한의계는 이러한 사람
들에 대해 무면허자의 돌팔이 의료를 경계하는 눈길과 움직임만을 보였을 뿐, 한의학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측면에서 활용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뜸사랑, 수지침협회 등은 이런 욕구와 일반인들의 자기 치료 욕구를 적절히 활용하여 조직적인 세를 갖추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물론 면허제도가 엄연한 상황에서 한의사들의 업권은 보호되어야 하고, 국민 건강 측면에서도 무면허 무자격자의 시술은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의계는 돌팔이와의 싸움이라는 차원에서 내 밥그릇 지키기에만 급급했고, 결국 밥그릇 지키기에도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오히려 발상을 전환하여 침구사를 정식으로 제도화하여 한의학의 우군으로 만들 수는 없었던 것일까? 침구사의 자격 요건을 엄격히 하여 제한된 인원만을 배출하고, 물리치료사나 의료기사처럼 한의사의 지도 감독 하에서 한방의료기관 내에서만 시술할 수 있도록 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필자가 이런 견해를 피력하면 많은 분들이 이미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현
재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보완대체의학의 제도화 과정에서 침구사 제도에 대한 요구와 압력은 지속될 것이고, 그 제도를 요구하는 이들의 한의학 폄훼, 한의계와의 갈등 또한 더욱 증폭될 것이므로 이에 대한 중장기 대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한약분쟁의 결과 탄생한 한약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처음부터 장기적인 계획 하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한방의료기관에 한약사를 의무 고용하도록 제도를 만들고 추진해 왔다면 이제까지 배출된 한약사들은 차별화된 한약 품질과 한약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한의계의 주요한 세력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오히려 수지침협회나 뜸사랑에 못지 않게 한의사들을 공격하는 집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양방과의 갈등 상황에서 양방에 대한 피해의식, 돌팔이에 대한 피해의식으로만 똘똘 뭉쳐 지금 쥐고 있는 밥그릇을 어떻게든 뺏기지 않겠다는 식으로 협소하게 대응할 것이 아니라, 한의학에 우호적인 지식인, 대중, 한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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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내과전문의 임정태의 근거중심한의학

산업 관계자 등 광범위한 사회 계층을 우군으로 만들어 전선을 확대하며, 한의계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식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도 이렇게 생각을 바꾸어야만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세 가지가 역사적 전망 속에서, 전체 사회 속에서 한의학의 10년 후를 내다보는 차원의 장기적인 발전 전략이라면 다음은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당면 과제를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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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이 추적해온 인체의 비밀 통로 
김훈기 (지은이)한국학술정보202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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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14,000원



332쪽

책소개

정체 상태에 놓인 봉한학설의 재현 연구를 매개로 봉한학설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한다. 비록 현대 연구진의 성과가 과학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최근까지의 논문을 볼 때 봉한학설이 거짓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최근까지의 연구성과만으로도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인체의 새로운 구조와 기능에 대해 과감한 탐구가 본격적으로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선 현대 연구진의 성과에 대한 검토를 통해 봉한학설이 어느 정도까지 증명됐고, 어떤 한계점을 가졌는지에 대한 탐색이 필요하다. 또한 봉한학설 자체가 어떻게 형성됐는지에 대한 역사적 검토 역시 요구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침으로써 한때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부상하다 불가사의하게 사라진 봉한학설에 대해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목차


I. 머리말

1. 봉한학설의 재현 연구에 대한 검토의 의미
2. 책의 구성과 연구방법
참고문헌

II. 1960년대 봉한학설의 내용과 변천

1. 봉한체계의 기본 구조
(1) 새로운 생체 구조물의 해부학적 특성
(가) 표층 생체물질의 형태와 성분
(나) 표층 생체물질이 경혈과 경맥인 이유
[박스 1] 양의학자 김봉한은 왜 한의학을 연구했을까
(다) 심층 생체물질의 형태와 성분
(2) 기존 생체조직과 명확히 구별되는 이유
(3) 새로운 구조물의 몸속 분포
(4) 해부학적 근거, 어디까지 제시됐나

2. 봉한체계의 생리적 기능
(1) 내부 물질의 정체
(가) 과립, 핵양ㆍ호염기성 구조물, 세포
(나) DNA+RNA=산알
(다) 호르몬과 히알루론산
[박스 2] 김봉한이 히알루론산에 주목한 이유
(2) 세포의 갱신, 손상된 조직의 재생
(3) 전기적 정보전달과 기계적 운동
(4) 새로우면서 근원적인 순환체계
[박스 3] 고등생명체의 두 가지 순환계, 혈관계와 림프관계
(5) 기존 세포 발생설과의 차이
(6) 기능의 근거, 어디까지 제시됐나
참고문헌

III. 외국 과학계의 엇갈린 반응

1. 북한의 대대적인 지원과 국제적 재현 시도
2. 소련에서 재현 시도를 막은 사상적 이유
참고문헌

IV. 2000년대 국내 과학계의 재현과 성과

1. 기본 구조의 재현
(1) 림프관
(가) 현미경으로 ‘떠 있는’ 장면 포착
[박스 4] 세포 안의 다양한 생체물질
(나) 염색처리 전후 비교에 성공
(2) 혈관
(가) 소의 심장에 분포한 구조물
(나) 혈전과의 차이를 규명하다
(3) 장기의 표면
(가) 내장 안쪽으로 파고드는 모습 확인
(나) 주변 조직과 구별하는 염색약 개발
(4) 신경계
(가) 뇌에 그물처럼 퍼져 있다
[박스 5] 뇌척수액의 흐름과 기능
(나) 혈전과 구별하는 염색약 발굴

2. 생리적 기능의 재현
(1) 면역세포와 줄기세포 존재 확인
(2) 암의 전이 통로로서의 가능성

3. 과거와 현재의 실험방법 비교
(1) 실험순서와 장비의 차이
(2) 아티팩트의 가능성

4. 논문출판의 경향과 한의학계의 반응
(1) 출판 학술지의 분야와 특성
(2) 국내 한의학계의 다양한 참여와 반응
참고문헌

V. 글을 마치며

1. 현대 연구진이 확인해온 봉한학설의 주요 내용
2. 봉한학설을 넘어
3. 남은 과제
참고문헌

[보론 1] 과학이 규명하는 생명의 근원적 순환계
[보론 2] 교과서를 바꿔온 인체 순환계의 발견들

[부록] 봉한학설 논문 5편의 제목별 목차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김훈기 (지은이)


스스로 ‘과학기술 커뮤니케이터’라고 생각하면서 과학기술계의 성과를 인문사회학과 시민사회의 시각에서 고민하며 집필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석사학위(과학사),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과학관리학)를 받았다. 동아사이언스가 발행하는 월간 ≪과학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과학면 팀장, 인터넷신문 ≪더 사이언스≫ 초대 편집장을 역임하며 과학저널리즘 분야에서 13년간 활동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을 거쳐 현재 홍익대학교 교양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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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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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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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한(1916년 ~ 1966년?)은 한국의 의학자이다.

생애[편집]

1941년에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야전병원 의사로서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산알의 존재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

이후 김봉한은 월북하여 평양의과대학에서 동물실험 등을 통해 인체에 존재하는 경락의 실체에 대해 연구한 결과 몸안에 많은 수의 ‘산알’과 이것을 잇는 그물망같은 물리적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만들고, 이를 ‘산알이론’으로 확립하고, 1961년에 경락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김봉한은 1960년대 중반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국에게 반당분자로 몰려 숙청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연구결과는 신소재 섬유인 비날론 등과 함께 1960년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의 3대 업적으로 꼽힐만큼 칭송을 받았으며, 당시 동구권 과학자들 사이에서 선풍적 관심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이론에 대해 ‘비인도적인 생체실험을 통해 연구된 것’이라는 소문과 국제적 의혹이 제기되자, 입장이 난처해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정치적 판단에 따라 김봉한과 그의 '산알이론'을 매장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내용은 70년대 후반 일본을 통해 국내에 소문으로 흘러들어왔으며 이를 소개한 책자가 1992년과 1997년 국내에서 작가 공동철에 의해 발행됐다. 공동철의 책 "김봉한"[1][2]은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 일본에서 먼저 발행된 도서 등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각주 및 참고 자료

↑ 공동철 (1992년 9월 1일). 《김봉한》. 학민사. ISBN 10 - 8971930187, ISBN 13 - 9788971930182. 2016년 3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9월 10일에 확인함.
↑ 공동철 (1997년 1월 31일). 《김봉한 2》. 학민사. ISBN 10 - 8985656856 , ISBN 13 - 9788985656856. 2016년 3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9월 10일에 확인함.

藤原知,芹澤勝助 (2001년 8월 25일). 생활의학연구회, 편집. 《경락의 대발견:김봉한 학설의 경이와 지압법대계(일월건강 3)》. 일월서각. ISBN 10 - 8974400278, ISBN 13 - 9788974400279. 2016년 3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9월 10일에 확인함.
한승섭 (2006년 4월 19일). 《응급처치 동의보감》. 중앙생활사. pp.70-71쪽. 경락은 생명체에서 바로 이들 기와 혈이 순환하는 이동통로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 몸 속에는 이러한 기혈의 통로가(중략) 눈으로 볼 수 없고 단지 한의학적 개념으로만 인식되었던 경락이 북한의 의학자 김봉한에 의해 그 실체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오래전에 발표되어 세계 의학계에 굉장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을 이른바 '봉한학설'이라 부르고 있다. (중략) 김봉한은 서울 의대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후 고려대 의대 전신인 경성여자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6.25사변으로 월북하게 되었고, 그 후 평양의과대학 생물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양의학의 과학화 산업의 중심인물로 부각되어 1961~1965년까지 다섯편의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하여 세계의학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1967년 북한의 최대 정변 중 하나인 갑산파 숙청사건에 연루되어 그의 학설은 하루아침에 매장되었다.
김지하 (2008년 1월 29일). 《율려란 무엇인가》. 한문화. pp.93쪽. 북한의 기 연구가 김봉한이 숙청을 당했는데요, 그는 한때 일본에서 유명했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전부 거짓말이 아니고 숙청된 가장 큰 이유가 인민군을 산 채로 실험했다는 데 있습니다. 도덕적인 문제가 걸린 것이지요. (중략) 중요한 것은 기가 물질이 아닌데도 물질화한다는 것입니다. 미묘하게 그것을 어떤 순간에 포착하느냐가 문제인거죠. 김봉한이나 화담(서화담)을 보면 일치하는 것이 있는데 기는 일종의 물질이면서 물질적인 생성 전체의 條理, 즉 그것이 그렇게 되는 까닭이 바로 이치이고 그 움직임, 바로 끝없는 생성의 功能을 靈이라고 하고 그 오묘함을 神이라고 합니다.
김지하 (2008년 1월 29일). 《율려란 무엇인가》. 한문화. pp.220쪽. 이제마 식으로 하면 장기 세포가 四象입니다. 이것은 코스모스, 드러난 질서입니다. 허준에 의하면 삼재론에 입각한 3단전-이것은 신선도에 꾸준히 내려오던 것인데, 상중하단전-을 중심으로 해서 780여개의 경락이 있습니다. 이것은 숨겨진 질서입니다. (중략) 거기에 수많은 카오스 혈들이 있어요. 북한의 김봉한이 보고한 겁니다. 780경혈, 경락 이외에 30여가지 혼돈혈이 열려있다는 거예요.
고진석 (2007년 4월 20일).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 있다》. 천케이(TRC). pp.144~148쪽. 봉한학설에서 말하는 봉한관은 투명한 까닭에 이를 확인하려면 주변조직과 구별할 수 있게 하는 염색약이 중요한데, 김봉한 교수는 논문에서 '특별한 청색 염료'같은 식으로 모호하게 표현했을 뿐 약물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략) 성과물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의 소광섭 교수팀이 연구에 뛰어들면서부터인데, 우선 김봉한 교수가 논문에서 사람의 혈관내에 있다고 주장한 '내봉한관'의 실체를 확인하기로 한 소 교수팀은, 여러나라를 돌며 김봉한 팀의 연구자료를 수집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얻은 자료를 참조해 새로운 염색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고, 2002년 6월 마침내 형광현미경을 통해 흰쥐의 혈관에서 내봉한관으로 추정되는 실체를 구분해냅니다. 현관 안에서 근육 또는 피부 안쪽 세포에서나 발견되는 '막대모양'의 핵을 가진 전혀 새로운 조직을 발견한 것입니다. (중략) 소 교수는 이를 정리해 2004년 미국 해부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해부학 기록' 5월호에 발표했고, 논문은 표지에 올랐습니다. 2004년 여름에는 흰쥐의 간 표면에서 유사한 조직이 발견되었고, '봉한관'뿐 아니라 관끼리 만나는 봉오리인 '봉한소체'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소 교수팀은 설명하는데, 이 내용은 그해 9월 벨기에에서 열린 국제 침구수의학회에서 발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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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도서관
일본

분류: 1916년 출생
몰년 미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생물학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의학자
침구사
연구부정행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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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한학설

최근 수정 시각: 

분류

 
1. 개요2. 발단3. 상세4. 기타

1. 개요[편집]

동물의 몸에는 신경과 혈관, 림프계 이외에 제 3의 관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설.

2. 발단[편집]

순환계통(혈관+림프관)과 신경조직 외의 제3의 미세관이 전신(앞서 말한 혈관과 림프관의 내강을 포함해서)에 있다는 주장. (이 문서 아래의 내용 참조)

처음 주장한 것은 북한의 김봉한 박사로, 이 미세관을 '봉한관'이라고 이름지었다. 처음 발표 당시 이는 의학계에서 상당한 센세이션이었고, 서양 과학계를 엿먹였다는 것에 고무된 북한은 대대적으로 김봉한 박사의 연구를 지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의 논문답게(...) 실험 방법에 대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로 일관한 논문이었던지라, 덕분에 진위 논란이 더 가열된 측면이 있다. 현대 과학에서 모든 논문은 기본적으로 실험을 통해 증명이 재현될 수 있어야 하는데, 원본 논문부터가 이 지경이었기 때문에(...) 재현자들은 실험 방법을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불확실한 실험을 해야 했던 것. 원본 논문에 게재된 사진을 보면 진짜같긴 한데 꽤 오랫동안 아무도 재현 실험에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봉한관을 염색하기 위해 사용한 것은 의외로 구하기 쉬운 메틸렌블루로 추정. 실제로 이후 일본과 한국에서 이를 사용해 염색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김봉한 박사의 연구가 진행되며 봉한학설은 점점 더 기존 과학과 충돌하게 되었고, 때마침 정치적인 숙청이 이루어지면서 줄을 잘못 선 김봉한 박사 본인도 숙청되어버렸다,[1] 이에 대해서는 봉한관 연구가 숙청당하는 죄인 등을 이용한 인간 생체실험을 통해 이루어졌고, 북한이 이것이 세계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연구 자체를 덮고 연구진을 숙청했다는 견해도 있다.

이후 봉한학설은 절반쯤 묻힌 상태로 몇십 년간 잠자게 된다.

그러다 20세기 말, 일본에서 이 논문을 발견하고 실험한 결과 정말 '이상한 관이 있다'라는 것을 발견하고 발표하여, 봉한학설을 연구하던 그룹에는 난리가 났다.

3. 상세[편집]

봉한학설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하 새로운 명칭은 모두 이봉한 박사 명명)
  • 생물체의 몸에는 봉한관이라는 또 다른 순환체계가 있다. 이는 경락과 일치한다.
  • 봉한관은 봉한소체라는 특정 지점을 기점으로 하여 뻗어나간다. 이 봉한소체가 바로 경혈의 위치와 같은 곳에 위치한다.
  • 봉한관과 봉한소체에는 산알(살아있는 )이라는 것이 흐른다.
  • 산알은 미분화 줄기 세포와 유사하여, 상처가 난 곳 등에 공급되어 그 부분을 재생한다.
  • 생물체가 사망하면 봉한관은 사라진다. 즉 해부로는 검증이 불가능하다.

2010년 물리학자인 소광섭 명예교수와 서울대학교 연구진이 봉한관과 비슷한 특성을 가진 관을 특수기법으로 염색하여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 연구진은 이 관을 프리모(primo)로 명명했다. 프리모는 중심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염색법은 트라이판 블루를 이용한 것이라고. 하지만 관은 림프관에서 나타나는 특정 마커가 나타나지 않아 림프관과도 다르고 혈관과도 다른 제3의 체계임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4. 기타[편집]

한때는 많은 관심을 받았으나, 2022년 시점까지 확실히 발견된 것이 없어서 학설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학계의 연구도 정체된 상태이다.

[1] 이때쯤 '사실 김봉한 박사는 살아서 한국에서 복귀한다'는 대체역사물이 발표되기도 했다.

봉한 학설 -《김봉한》,《경락의 대발견》,《몸속 기 여행》

봉한 학설 -《김봉한》,《경락의 대발견》,《몸속 기 여행》




# 동양 의학(침뜸)/침뜸 관련 책들
봉한 학설 -《김봉한》,《경락의 대발견》,《몸속 기 여행》
최정 / 모모 2011. 1. 3. 15:27


봉한 학설 관련 책들



* 봉한학설에 대해 - 김봉한은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 의학부를 졸업하고 한국전쟁 당시 월북, 야전병원 의사로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경락선이 봉합되면 더 쉽게 치료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북한 정권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에서 당시에도 드물었던 최첨단 고밀도 전자현미경을 통해 동물 실험을 하면서 경락의 실체를 연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14경락보다 더 다층적이고 심층적으로 우리 몸에 더 많은 경락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전을 뛰어 넘어 제 3의 고유명사로 봉한관(경락), 봉한소체(경혈)로 명명한다. 깊은 곳은 깊은 대로 경락선이 있으며, 오장육부의 표면과 속에서 경락이 존재하고, 경혈점이 다발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입증한다. 특히, 서양의학의 세포학설을 뒤집는 '산알이론'을 새웠는데, 세포 핵 생성 이전에 산알(살아있는 알갱이)이, 즉 최소한의 경락 조직이 먼저 만들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 몸은, 모든 생명체는 氣조직(경락조직)부터 생성되는 것이다.

몸은 氣의 프랙탈(fractal)이며, 우주도 기의 프랙탈(fractal)이다.

- 이 글은 [내 몸에 침뜸하기] 강좌 내용의 일부를 기록,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







* 참조 - 프랙탈이란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 되는 구조를 말한다. 즉 부분과 전체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자기 유사성' 개념을 기하학적으로 푼 것으로, 프랙탈은 단순한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복잡하고 묘한 전체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출처-네이버 사전]





1) 공동철,『김봉한』(집문당, 1999) - 품절

품절 상태라서 따로 빌려서 읽었다. 국가적으로, 정책적으로 얼마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서 연구했는지 알게 된다. 지금도 전자현미경 하나에 천만 원 이상이라는데, 당시에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최고의 기기들을 충분히 지원받으며 가지고 마음껏 놓고 연구할 수 있었다는 것은 김봉한의 개인적 뛰어남만이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목차

(추후 기재)



* 책소개(출판사)

북한의 동의학자 김봉한은 인류사상 최초로 60년대 초에 경락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검증하였고, 경락이 생명발생에 있어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60년대 중반까지 북한 당국의 적극적 뒷받침으로 주목할 만한 후속 연구 성과를 보여 오다가, 북한내 정치상황의 변화, 서구의학계의 외면, 동의학계 보수파들의 반발로 유폐되고 만 봉한학설의 탄생과 개요, 그리고 유폐와 재평가 과정을, 세계화시킬 수 있는 경탄할만한 우리 민족의학의 복원이라는 관점에 강조점을 두고 기술하고 있다.





2) 생활의학연구회,『경락의 대발견』(일월서각, 2001.(초판 1999))





* 목차

제Ⅰ부 경락의 발견

제1장 경락과 경혈
1. 머리말 / 2. 경락에 관하여 / 3. 장부에 관하여
4. 기(氣)에 관하여 / 5. 음양 오행 학설에 관하여 / 6. 경락학설에 근거한 침구 치료(경락치료)


제2장 김봉한 학설과 경락체계
1. 김봉한 학설의 탄생과 그 전개 / 2. 김봉한 학설의 전체상
3. 경락 계통의 구성 요소 / 4. 경락 체계를 구성하는 제 체계
5. 순환로로서의 경락 계통 / 6. 봉한액의 화학
7. 자극 전도로로서의 경락 계통 / 8. 산알에 관하여
9. 봉한 산알. 세포환에 관하여 / 10. 산알과 세포 분열
11. 봉한 산알. 세포환과 경락 계통 / 12. 생체의 자기 갱신 문제 / 13. 혈구의 '봉한 산알.세포환'


제3장 봉한 학설의 미래적 전망
1. 봉한 학설과 침구 의학 과학화의 문제 / 2. 봉한 학설과 고전적 경락학설
3. 봉한 학설과 침구 치효 이론 / 4. 봉한 학설에서 본 경혈의 의의
5. 봉한 학설과 임상 의학 / 6. 봉한 학설과 피로의 문제 / 7. 봉한 학설과 장수의 문제

제Ⅱ부 증상별 경혈 지압 요법
- 경혈의 위치 전면도 / 경혈의 위치를 나타내는 단위 / 증상별 경혈 지압 요법
제1장 반건강(半建康)상태의 질병 / 제2장 뇌.신경 계통의 질병
제3장 뼈.관절.근육 계통의 질병 / 제4장 소화기 계통의 질병
제5장 호흡기 계통의 질병 / 제6장 순환기 계통의 질병
제7장 비뇨기 계통의 질병 / 제8장 대사(代謝)계통의 질병
제9장 여성의 질병 / 제10장 어린이의 질병 / 제11장 기타의 질병



* 책소개(출판사)동양 전승의학의 현대적 재현을 목적으로 시도된 김봉한 교수의 연구성과와 질병의 증상에 따른 지압치료의 요령을 담은 책이다. 사회적·시대적 제약으로 인하여 몸의 조직을 실증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연구수단을 갖지 못했던 전승의학은 이제 경락계통의 발견위에 구축된 봉한학설(경락학설)로 서구의학의 한계를 뛰어 넘고 있다. 또한 봉한학설과 접맥되는 경혈 지압치료는 생활인의 질병퇴치에 과학적인 방법을 제공할 것이다.



이 책의 1부에서는 김봉한 교수와 경락의 연구진에 의하여 그 실체가 드러난 '경락 계통'에 관하여 소개하고 있다. 실험 과정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경락이 단순한 선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온몸 자체가 경락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 주었다. 김봉한은 산알학설(1965년, 조선의학)을 통해 세포가 세포분열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산알-세포-산알의 순환을 통해 생성되고 소멸된다는 이론을 발표해 서양의 세포생리학 이론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셈이기도 해서 당시에는 인정을 받을 수가 없었다.

김봉한은 산알이 봉한관(경락)을 타고 흐르다가 피부 봉한소체(경혈점)에서 빛을 통해 활성화된다고 하여 동양의학의 경락 이론을 현대의학의 생리학과 통합시켰다고 볼 수 있다. 비과학으로 몰리던 경락의 실체를 현대과학을 통해 입증하고 한 발 더 나아갔다고 볼 수 있는데, 당시 정치적인 이유로 북한 내에서 봉한학설의 폐기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아무튼 그 이후에 어찌어찌해서 일본에서, 한국에서 다시 봉한 학설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3) 김훈기, 『몸속 기氣 여행 : 물리학자와 함께 떠나는』(동아일보사, 2008)





* 목차

1부 경락의 해부학적 실체

1. 미지의 생체 조직

2. 한의학은 신과학 운동

3. 손에 잡히는 증거

4. 국제 해부학계 데뷔



2부 현대 물리학과 한의학

5.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그 요원한 통합

6. 현대 물리학이 던지는 화두

7. 한의학이 대안이다



3부 경락 연구의 미래

8. 산알의 정체는 줄기세포?

9. 봉한 체계는 정신활동과 신체 기능을 연결하는 고리

10. 에필로그 : 물리학자가 해석하는 인체 시스템



* 책소개(출판사)

1960년대, 북한의 학자 김봉한은 경락과 경혈이 우리 몸에 실제로 존재한다며 그것의 해부학적인 증거를 제시해 세계 의학계를 놀라게 했다. 봉한 학설에 따르면 우리 몸에는 혈관계와 림프계 말고 제3의 순환계가 더 있다는 것. 그는 이 미지의 순환계를 이루는 것을 ‘봉한관(경락)’과 ‘봉한소체(경혈)’라 부르고, ‘산알’이 각 기관의 조직에서 만들어져 봉한관을 통해 인체 곳곳을 순환하면서 새로운 세포를 생성해낸다고 주장했다.
서울대학교 한의학물리연구실을 이끄는 소광섭 교수는, 1960년대 세계 의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등장했다가 역사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 봉한 학설을 지난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해 오고 있다. 물리학 전공자인 소 교수는 인체의 생명현상인 경락과 경혈을 해부학적으로 증명해 ‘눈에 보이는 조직’으로 염색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로써 2005년 5월엔 세계적인 학술지 『해부학 기록(Anatomical Records)』에 그 연구 결과를 ‘특별 논문(Feature Article)’으로 발표하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해 『해부학 기록』 학술지는 ‘봉한관(Bonghan Ducts)’이라는 용어를 공식 채택하기도 했다.



이 책은 과학 기자가 소광섭 교수 연구진의 연구 성과를 쉽고 간략하게 쓴 글들이다. 소광섭 교수는 물리학자로 봉한관을 재현하고자 연구를 시도한 사람이다. 수년 간의 연구 끝에 '봉한관'과 '봉한소체'에 대한 이들의 연구가 저명한 학회지에 발표되면서 국내외에 봉한 학설이 실질적 존재임을 다시 한번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서양의 해부학을 뛰어 넘는 것을 발견했다니, 이 연구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지 궁금하기도 하다.

비과학으로 치부되던 기氣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밝혀내려는 나름의 성과를 인정할 만하다. '한의학의 과학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동양의학의 틀을 서양과학의 구조와 언어로 설명하여 동서양의 통합적 사고로 나아가려는 시도도 일정한 효과가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는 또한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동양의학적 사고를 서양적인 사고틀로 접근하는 것 자체에 이미 일정한 한계가 있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는 시작부터가, 몸을 보는 시작 자체가 정반대의 길을 향해 걸어왔다. 이것도 극으로 치달으면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지만...

온전한 동양의학적인 사고로 접근해야, 경락도, 기氣도, 몸도 제대로 보고 통합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알라딘: 한의학 탐사여행 - 서울대 의대생 한의학을 만나다, 개정판 윤영주

알라딘: 한의학 탐사여행


한의학 탐사여행 - 서울대 의대생 한의학을 만나다, 개정판 
윤영주 (엮은이)부산대학교출판문화원2022-04-04







이 도서는 <한의학 탐사여행>의 개정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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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368쪽

목차


총론 한의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
1부 한의학의 과학화 논쟁
2부 한방 의료의 실제
3부 한국 의료제도 속의 한의학
4부 한의학을 이해할 때 의사들이 얻을 수 있는 것




저자 및 역자소개
윤영주 (엮은이)


서울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의사의 꿈을 키워왔다.

1981년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했고, 80년대 상황에서 학생운동, 노동운동 투신이라는 길을 걸으면서 1985년 의대를 스스로 그만두었다. 1987년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한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1994년 동의대 한의대에 입학해서, 2001년 2월 수석 졸업했다. ‘동서의학의 소통 ? 협력’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서울대 의대에 재입학하여 졸업하고 2004년 3월 의사면허도 취득하였다.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에서 의과학석사와 한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의사로서 요산한의원과 해마한의원에서 4년간 진료하였고, 2009년에는 한국한의학연구원 침구경락연구센터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침치료 임상연구를 수행하였다. 2006년부터 서울대 의대, 경북대 의대, 동국대 의대, 단국대 의대, 경희대 의대, 아주대 의대, 한림대 의대, 제주대 의대, 충북대 의대 등에서 한의학을 강의하였다.

현재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동서협진의학 교수이며, 복수면허자 학회인 대한동서의학회 학술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산대학교 한방병원 알러지면역클리닉, 동서협진클리닉에서 진료하고 있으며, 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사업으로 “양한방 공동연구와 협진 활성화를 위한 의사 대상 한의학 교육과정 및 교재 개발” 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한의사로서 또 의사로서 주된 관심사는 ‘한약 안전성과 효과에 대한 임상연구’, ‘한의학 임상연구 방법론의 개발’, ‘한의학을 올바로 알리는 교육’ 등이다. 양한방 협진 임상을 계속 하면서 바람직한 협진 모델과 프로토콜을 연구 개발하고,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좋은 의료’의 내용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꿈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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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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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적 입장에서 의학적 질문에 대해 답변하기!!! 좋습니다.  구매
newglare 2010-01-0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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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볼만합니다.  구매
hope 2009-12-14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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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설명은 틀에 박힌 답변이었지만 전체적으로 한의학에 대한 편견은 사라짐  구매
아자 2008-10-1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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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재미있게 읽은 책.. Q&A 형식으로 전개가 쉽고 내용또한 알차다.  구매
코니 2008-09-19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한의학 탐사여행 새창으로 보기
현 의료체계를 보자면 양방과 한방으로 나뉘어있다.
한의학적인 관점으로는 양방의학에 대한 비판 일색이고,
서양의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한의학을 비과학적이고 미신이라며 맹비난을 한다.
각자 자신이 속해있는 분야라든가, 익숙한 분야의 편을 들며, 반대부분은 불신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양쪽 다, 한쪽으로 치우쳐진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의료이원화는 그렇게 상호보완적이지 않고 배타적인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 책 <한의학 탐사여행>은 일단 ’의사를 위한 한의학’ 책이라는 점에서 솔깃했다.
의사,한의사 복수 면허를 가지고 있는 저자가 서울대 의과 대학에서 2006년 한의학을 강의한 내용이 이 책에 담겨있다.
의과대학에서의 한의학은 어떤 모습일지, 의대생들은 한의학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의문점을 갖는지 궁금한 마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을 모아놓은 글들을 보니 
"아,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을 할 수 있겠구나."
등등의 생각이 들었다.

의학이나 한의학 분야에 있어서 정답이라는 것이 없고,
어느 부분이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이 없으니 
그런 현실에서는 최선의 선택만이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과학에 대해 작은 질문을 던지는 저자의 강의 내용이었다.
이 질문을 보고 나도 생각에 잠긴다

소아과 강의 시간에 미음이 ’손상된 장 점막의 재생을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이 설사를 심하게 할 때는 죽보다도 훨씬 묽게 미음을 끓여 먹이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런 연구 결과가 있기 전에는 설사를 심하게 했는 데도 링거액을 맞히지 않고, 미음을 끓여 먹인 어머니들은 ’무식하고’, ’비과학적’인 육아를 한다고 비난 받지는 않았을까요? (소아과학의 역사 가운데서 모유가 분유에게 빼앗겼던 위치를 다시 차지하는 과정, 신생아를 엎어 재우기에서 똑바로 재우기로 지침이 바뀐 과정 또한 마찬가지 상황을 떠올리게 합니다.)

감기 예방을 위해서는 차가운 기운이 인체의 후면을 타고 들어오므로 날씨가 차가울 때는 특히 뒷목과 어깨, 등을 따뜻하게 해주라는 것이 한의학의 감기 예방법입니다.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질환, 감염질환인데 이런 처치법은 정말 ’비과학적’인 이야기겠지요? 
그런데 정확히 몇 년도 인지는 모르겠으나, 흔한 감기 바이러스 중의 하나인 라이노 바이러스가 33~34도씨에서 가장 잘 증식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목도리로 목을 감싸는 것이 바이러스의 일차 침입 장소이면서 증식장소인 인후두 부위의 온도를 높여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한다는 과학적인 기전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서 한의학의 이러한 처치법을 ’근거없는’, ’비과학적인’ 행위라고 하면서 비난하거나 금지해야 하는 걸까요? (91~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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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라스 2010-06-09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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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으로 한의학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

의학과 한의학을 모두 전공한 저자가 서울대 의대생들을 상대로 한의학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게시판을 통해 문답식으로 나눈 내용들을 실은 책입니다.  한의학을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의대생들이 한의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의학을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한의학에 대해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를 줄 수 있을만한 책입니다.   다소 한의학적 입장에서 방어적으로 쓰

이 책은 한의사(동의대한의대 졸업)이면서 의사(서울의대 졸업)이기도한 독특한 경력을 가진 저자(복수면허)가  서울의대 본과4학년을 대상으로 한의학에 대한 수업을 한 내용이다. 

처음 50페이지 정도되는 한의학에 대한 개론은 특별한 것이 없고, 이책의 특색이자 중심을 이루는것은 본과4학년들과 저자의 질의응답부분이다. 

질의응답의 내용을 보면 현대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한의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고, 왜 그런질문이 나왔는가를 잘 생각해 보면 부딪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수있는 실마리가 많이 있다. 

가장 크게 부딪치는 부분은 서양학문의 논리전개방식과 동양학문의 논리전개방식이 다르다는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양학문의 논리전개방식으로 동양학문을 들여다 봐서 나오는 부분들이다. 저자가 이것에 대해 언급하고는 있지만, 콕 집어서 명확하게 얘기하지 못한것이 아쉽다.  

침에 대한 부분은 원리는 모르겠지만 효과가 나는것은 신기하다... 정도의 내용이 많고, 

한약에 대한부분은 질문들이 전혀 감을 못잡고 있다는 정도.... 한약에 대한 이해도가 정말 형편 없다는 느낌이다.  

 

이 책은 한의사가 의대에가 직접 대화를 시도한 책이라는 것에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다.  

한의학을 교육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한의학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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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 2009-08-2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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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jmedi.com/news/articleView.html?idxno=14509

[인터뷰] ‘한의학 탐사여행’ 펴낸 한의사 윤영주 씨

승인 2008.09.19 


“한·양 의학 소통 권유가 내 소명”

40대 중반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줍은 미소와 사근사근한 말투가 아름다운 윤영주(46·사진) 씨의 이력을 보면 새삼 놀라게 된다. 서울대 의대 입학 후 학생·노동운동에 투신, 투옥과 이혼을 거치면서 좌절감을 느끼고 방황, 이후 불교·동양철학과 한의학에 심취하면서 동의대 한의대 입학·수석졸업, 서울대 의대에 재입학하여 의사면허 획득, 한의학 강사 및 한의사로 활동….

다채로운 이력의 윤영주씨가 최근 책을 한 권 냈다. ‘한의학 탐사여행’은 서울대 의대 본과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의학과 보완대체의학’ 강좌가 개설된 지난 2006년 쏟아졌던 한의학에 대한 질의 및 응답을 모아 엮은 책이다. 나온 지 이제 갓 한달을 넘겼는데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 “한의학에 관한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어요”

서울대 의대를 비롯, 여러 의대에 강의를 다니면 의학생들이 갖는 한의학과 한의사에 대한 궁금증은 비슷했다. 문답 역시 반복됐다. 아예 책으로 내는 것이 효율적이겠다 싶었다는 윤영주씨는, 한의사들 역시 의사들이 갖는 궁금증이 어떤 것인지 알게 돼 유익했다는 서평을 건넨다며 웃음을 보였다.

그는 양 의학계가 서로간 몰이해로 인해 생겼던 오해를 풀고,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하자고 권유하는 일이 자신의 소명인 것 같다고 말한다. 복수면허를 따면 더 효과적일 것 같아 뒤늦게 의사면허까지 취득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양 의학이 서로 소통하기에는 그동안의 반목과 오해의 골이 너무 깊었다. 특히 양쪽에서 ‘박쥐’ 취급을 하며 민감한 반응을 보일 때면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책 발간에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습니다. 제 의견에 공감해주시는 양 의학계 분들도 있고요. 이런 분들 때문에 제가 할 일이 많고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이해해주는 든든한 조력자들이 항상 주변에 있기에 힘을 내지만 진심을 알아주는 동료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것이 그의 속마음이다.

책의 내용 대부분은 한의학에 대한 의사들의 오해를 푸는 데 할애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는 한의사들에게도 ‘한의학의 과학화’에 대한 고민을 이제는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조심스럽게 전한다. ‘최소한’의 과학화가 필요한 이유는 한의학의 ‘발전’이 아닌 ‘생존’을 위해서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의학계가 ‘과학화’를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며 이해와 동감을 구한다.

■ “두 의학계 간의 통역자 되고 싶다”

소통과 협력에 힘을 보태기 위해 아직 윤영주씨는 할 일이 많다. 책의 발간을 계기로 양 의학계의 소통과 만남이 그를 통해 보다 활발해질 수 있으리란 세간의 기대가 크지만, 자신의 책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양 의학의 통역자이자 코디네이터”라고 자부하는 윤영주씨는 오히려 한·양방 협진을 통해 환자들의 병을 더 잘 치료하고 싶다는 바람을 비쳤다. 언젠가는 미국 유학도 가고 싶다는 꿈을 살짝 귀띔해 주기도 했다.

걷기와 등산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美드라마 ‘CSI’와 추리소설을 보며 여가를 즐긴다는 윤영주씨는 대한동서의학회 학술이사와 한의학미래포럼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산책하기 좋은 한강변 단독주택에서 대입시험을 준비하는 아들(20)과 함께 살고 있다.

민족의학신문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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