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0

진언종 - J Wikipedia

진언종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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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종

출처: 무료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
공해

진언종 은 공해 (홍법대사)에 의해 9세기 ( 헤이안 시대 ) 초반에 열린 대승불교 의 종파로 일본불교 의 하나. 공해가 장안 에 건너 청룡사 에서 에과 에서 배운 밀교 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공해는 저작 ' 비밀 만다라 10주심론 ' ' 비장 보석 '으로 당시 전래하고 있던 불교 각파의 교학에 일단의 평가를 주면서도 밀교를 최상위에 두고 10단계의 사상체계 안에 통합했다. 최종적으로는 현교 와 비교해, 밀교(진언밀교)의 우위성, 현교의 사상 · 경전 도 진언밀교에 포섭되는 것을 설교했다.

천대 밀교를 대밀 이라고 칭하는 반면, 진언 밀교는 도지 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동밀 이라고 칭한다 [1] . 교왕호국사(도지진언종소본본산)를 총본산으로 하고 있다.

역사 편집 ]

릿쿄 개종 편집 ]

금강봉사, 주전(와카야마현 다카노초)
도지, 금당(교토부 교토시)

헤이안 시대 초기 대동 원년( 806년 ), 공해가 중국 (  )보다 귀조. 그 후, 공해는, 히로히토 7년( 816년 )에 고야산 금강봉사 를 수선의 도장으로서 개창. 히로히토 14년( 823년 )에는 사가천황 에서 칙사된 교왕 호 국사 를 진언종의 근본도장으로 종단을 확립했다. 같은 해 도지 에 대해 "진언종의 정액승 오십구를 두고 타종의 승려의 잡주를 금지한다"는 뜻의 관부를 받았다. 또한 준화천황에 '진언종 소학경률론 목록'을 만들어 헌상했다.

공해 입정 후 편집 ]

공해는 입정 에 즈음하여 주지하던 사원을 제자에게 부촉했다.

교왕 호국사는 실혜, 금강봉사는 진연 , 신호 사는 진제, 안상사를 혜운 , 관평 법황 ( 우타 천황 ) 이 개기한 니와지,醍醐寺는 성보 , 엔세이지 는 익신 등 이 사원에 연분도자 (국가공인의 승려의 양성)를 허가받았고, 각각의 사원 이 독립적인 경향을 가지고 갔다. 후에 도지장이 진언종의 최고권위자로 하는 제도가 확립된다.

도지와 고야산 (본말 다툼) 편집 ]

관현 이 도지장자 ·금강봉사 좌주 를 겸하고, 교왕호국사 도지를 본사  하고, 금강봉사를 말사 로 하는 본말제도를 확립. 금강봉사는 본말 다툼에 빠져 일시적이지만 도지장자가 진언종을 통괄하게 되었다.

고야산은 낙뢰 에 의해 가람 ·제당을 소실하거나 국사 에 의한 밀림 등에 의해 쇠미해 무인의 상태가 될 때까지 이르렀다. 이 상태가 헤이안 시대 중기까지 이어지지만, 후지와라 도장 이 고야산에 등산(야마카미의 사찰에 참배하는 것)에 의해 부흥이 진행되어, 황족 · 섭관가 · 공가 가 고야산에의 등산이 계속되었다.

그 후, 황족·섭관가·공가 등에 의한 경제적 인 지원도 있어, 고야산은 재정 에 있어서도 안정되어 갔다.

각오와 신의파교학 편집 ]

종단은 사자상승을 중시하기 위해 사상 (진언밀교를 실천하기 위한 작법. 수법 의 작법 등)의 차이에 따라 분파해 갔다. 다만, 교학 (교리) 그 자체는 공해에 의해 대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헤이안 시대 중반까지 종내 논쟁은 거의 없었다.

11세기 말 , 각우 (흥교대사)는, 대전법원 을 창건, 교학의 진흥을 위해서 대전법회의 부흥을 실시했다. 도지의 지배로부터 고야산의 독립을 도모해, 도지 장자가 금강봉사의 좌주를 겸직하는 관례를 폐지해, 금강봉사좌주에게 맡겨졌지만, 금강봉사방(혼지방)의 반발을 받아 실패 했다. 그 후 좌주를 그만두고 네래산 ( 와카야마현)에 은거했다. 이로부터 금강봉사방 (혼지방)과 각오의 흐름을 펌핑하는 대전 법원 방(원방) 사이에 긴 파벌항쟁이 이어졌다. 양파는 고의( 고의 진언종 )·신의( 신의 진언종 )로 나뉘어 갔다. 나중에 양파는 교리적으로도 일밀성불이나 법신설법 등에 대해 차이가 생기게 된다.

1290년 ( 정응 3년)에는, 요시유가 대전법원을 네래산으로 옮겨, 다이히여래의 가지법신설(신의)을 주창해, 신의진언종의 교리의 기초를 확립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의 보호를 받고 1601년 ( 게이쵸 6년)에 현유 가 네래사에 있던 토모적원 을 교토 히가시야마 시치조에 재건했다. 나중에 진언종지산파 의 총본산이 되었다.

고의파교학 진흥 편집 ]

남북조 시대 에 도지의 승,杲宝· 겐보 등이 도지 후지몬 교학을 대성시켰고, 대일 여래의 본지 가지설(고의)을 설교했다. 타카노 야마에서는 「응영 의 대성」이라고 불리는 고의파교학의 발전이 있어, 기성성 유쾌가 이니 몬의 교학 , 무량수원 장각 이 후지몬의 교학을 진흥시켰다 .

에도막부에 의한 통제와 계율에 대한 관심 편집 ]

에도시대 에 들어서자 에도막부 는 불교계에 대해 새로운 종교통제를 강구하여 1604년 ( 경장 14년)에 관동진언종고의법도가 나왔다.

1615년 (元元年) 7월 24일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 진언종 제법도 를 진언종 제본산·제사에 대해 내놓고 막부의 감시하에 놓이게 되었다. 동시에 막부 종교 정책인 사단 제도 가 확립되었다. 종문개 등을 실시함으로써 행정기관의 역할을 완수하고 막부의 지배체제에 완전히 통합되었다.

사단 제도는 제본산·스에데라에게는 재정적인 안정을 얻었지만, 일부 제본산·스에데에 줄다리의 느슨함도 일어났다. 이로부터 정엄 · 자운 등이 계율 에 관심을 갖게 하고 계율의 연루·연구에 의한 부흥을 실시했다.

폐불기석 타격과 여파 편집 ]

메이지 유신 이후, 신불 분리 가 추진되어, 궁중에서의 칙수법회가 폐지가 되어, 궁중 행사에 있어서의 불교색의 배제가 도모되었다. 이에 따라 폐불기석 도 일어나 진언종의 사원은 혼산 ·스 에 데라 에 관계없이 큰 타격을 받았다. 진언종에 속한 신궁 사가 폐해 져 신사 로 바뀌기도 했다. 승적 을 이탈하고 신사의 신직 이 되거나 환속 하는 승려 도 나타났다. 정부 는 사원이 소유한 토지의 반납을 요구하여 강제로 반납 또는 몰수 조치를 취했다. 칙 원소 · 문적 칭호도 금지되어 재정기반도 잃어 많은 사원관계가 폐사에 몰렸다. 폐불 훼석의 기운에 불교 각파도 위기감을 끌어들여 각파가 단결해 불교를 선양해 사론을 폐지하기 위해 각 종동맹회 를 결성했다. 1869년( 메이지 2년) 도쿄 의 대덕원각 종동맹회의 대회가 개최되어, 고야산 명왕원주의 다카오카 증류가 추려져 맹주가 되었다. 신장제가 번성했기 때문에 무주사원이 늘어나고, 그렇다고 해도 폐사는 계속되어 심각한 사태가 되어 갔다.

종단의 현대화 편집 ]

영운사, 야마몬(도쿄도 분쿄구)

1872년 (메이지 5년) 고의 진언종을 통괄하기 위해 관장직 이 설치되어 금강봉사 주직의 강마연창이 명령되었다. 1873년 (메이지 6년) 3월 29일, 태정관들이 내려, 교왕호국사 도지와 금강봉사의 양사가, 고의 진언종의 총본사로 정해졌다.

정부의 종교정책인 일종일관장제가 고의·신의진언종 각 혼산에도 요구되었다. 고의진언종에서는 교왕호국사 도지와 금강봉사가, 신의진언종에서는 지적원과 하세지가 각각 교체로 진언종의 관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관장은 전진언종을 통괄하여 종무에 해당하게 되었고, 진언종에도 일종일관장제가 도입되게 되었다.

그러나, 1878년 (메이지 11년), 니와 지· 대각사 · 히로류지 · 신호사 · 니시다 이지 · 호류지 · 당초제사  고의 진언종으로부터 이탈해, 니와지 내에 서부 진언종이라고 칭하는 종파를 세워, 독자 의 관장을 둔다. 또, 신의 진언종의 토모적원·하세사도 이탈해, 진언종신의파라고 칭해 독자적인 관장을 두고, 고의 진언종의 금강봉사·도지는 합병해, 고의 진언종으로부터 진언종이라고 칭해 독자의 관장을 놓았다. 이처럼 진언종은 일종일관장제가 기와해 서부 진언종·진언종신의파·진언종이 되어 3명의 관장이 존재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것은 정부가 아는 곳이 되어 내무성 으로부터 일종일관장제를 채택하도록 통달 이 있었다. 이를 받아 영운사 에서 고의파·신의파로 합동회의가 열렸다. 결과, 1879년 (메이지 12년)에 정식으로 합동이 도모되었다. 아울러 교왕호국사 도지를 총본산 으로 하여 장자 의 칭호를 복귀하게 되었다.

화일종파와 분리독립파의 항쟁 편집 ]

1896년 (메이지 29년), 묘묘사가 진언종으로부터의 분리독립, 금강봉사도 같은 청원이 진언종종회에 제출되었다. 이 청원은 내무성에서 심의되었지만 결국 불인가가 되었다.

1899년 (메이지 32년) 10월, 진언종종회에서, 화이치 종파(카쿠언츠슈는. 고의·신의 진언종 각파가 합동 협력해, 전 진언종을 통괄해 간다)과 분리 독립파 (고의·신의 진언종의 각 혼산에는, 역사적 경위나 사상 (진언 밀교의 수법·의례)의 유파의 차이 등으로부터, 각 혼산마다 독자적인 종파를 세워, 종단을 유지해 이쿠)의 2파에 의한 대립이 있어, 분규했다.

진언종의 해체와 「고의팔파·각파」의 분리독립 편집 ]

醍醐寺, 금당 (교토 부 교토)

1895년 (메이지 28년) 6월, 진언율종 (西大寺)에 대해 독립이 인가된다.

1900년 (메이지 33년) 9월, 진언종 고야파 (金剛峯寺)・진언종교실파 (仁和)진언종 대각사파 ( 대각사 )・진언종묘파 (醍醐)・신의진언종지산파 지적원 )· 신의 진언종 도요야마파 ( 하세지 )· 리츠무네 에 대해서 독립이 인가되었다. 게다가 1907년 (메이지 40년), 진언종동사파 ( 도지 )· 진언종산계파(권수사)·진언종천 학사파 ( 센쿠 이지 ) · 진언종 오노  ( 수심원 )가 독립해, 진언종은 해체되었다.

진언종 각파의 독립에 의해 도지를 진언종의 총본산으로 하는 제도가 종말된다.

고의 진언종계 종파는 고의 팔파(진언종 고야파·진언종어실파·진언종대각사파·진언종동사파·진언종산계파·진언종천 학사파·진언종 醍醐派·진언종 오노파)이 되어 고의 팔파연합제도를 조직했다.

1925년 ( 다이쇼 14년), 고의팔파연합제도는 해체되어 종파의 자주독립제가 채택되었다.

1926년 (타이쇼 15년), 진언종 고야파·진언종어실파·진언종대각사파는 합동하여 고의진언종을 조직했다. 고의진언종은 다른 고의진언종계 종파와의 사이에 진언종 각파 협약 을 체결하고 교사·주직의 인재교류·상호협력을 실시했다.

대진언종(전시하·전후 종단) 편집 ]

일중전쟁 하의 1941년 ( 쇼와 16년) 3월, 정부의 종교 정책에 의해 고의 진언종·신의 진언종계의 종파가 합동해, 대진언종이 성립한다. 정부의 주도로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위와 교리의 차이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합동시켰다. 전시중에는, 적국 항복의 기도가 다이진언종의 각 혼산·스에데라에서 종종 행해졌다.

전후 대진언종과 독립해 가는 고의진언종·신의진언종의 종파가 잇따른다. 새로운 종교법인 제도가 제정되어 그 움직임이 가속되었다. 고의·신의의 여러 종파로부터 더욱 헤어지고, 수험도 · 유교 · 도교 등과 조합되어 독자적인 교리를 주창해 진언종계 신종교로 분류되는 종교단체가 몇 가지 성립했다. 진언종묘파에 속해 있던 이토 마사루 는 마나엔 을 열었다. 이 단체는 다른 불교계 신종교와 달리 진언종과의 관계는 대체로 양호하다.

대사 신앙 편집 ]

종조·공해(홍법대사)에 대한 경모가 컸고, 10세기에는 고야산에서 공해의 입정 신앙이 일어나 홍법대사신앙(대사신앙)을 설고 있다.

홍법대사 신앙의 고조 속에서 치아대사, 수행대사, 입정대사, 사바대사, 비키대사, 일륜대사 등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종조·공해는 사누키 국 병풍포(현· 가가와현 젠도 지시 )의 출신으로 불교자인 동시에 사상가, 저술가, 또 “ 삼필 ”의 1명으로 꼽히는 능서가 로서, 후의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는 연기 23년(804년), 견당사 선에 동승해 당에 건너, 장안·청룡사의 에과로부터 밀교의 비밀을 받았다. 또 당나라에서 많은 불전, 불구, 불화 등을 얻어 일본에 청래했다.

히로히토 7년(816년)에는 고야산( 와카야마현 이토군 타카노초 )의 땅을 얻고, 여기에 금강봉사 를 개창, 히로히토 14년(823년)에는, 헤이안쿄의 관사였던 도지 를 사가천황보다 하사되어 이들 양사를 진언밀교의 근본도장으로 했다.

835년 ( 승화 2년) 3월 21일 에 62세에 고야산에서 입정 했다. 공해가 입정한 지 86년 후인 연희 21년( 921년 )에 홍법대사의 사호 가醍醐天皇보다 주어졌다.

진언 팔조 편집 ]

밀교가 인도 에서 일어나 중국을 거쳐 공해(홍법대사)에게 전해지고, 일본에서 독립한 종파로서 진언종을 열기까지 팔조를 거쳐 전해졌다고 하는 전승이 있어, 진언 팔조(신곤은 그래)라고 한다.

부법(후호)의 팔조 와 전지(덴지)의 팔조 의 2개가 있어, 공해는 저작 「비밀 만다라 교부법전」 「진언부법전」으로, 진언 밀교의 기원과 부법 의 칠조·전지의 칠조(부법·전지의 팔조 중, 홍법대사를 제외한 칠조)의 전기나 부법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다.

진언종의 대부분의 사원은, 본당 등에 진언 팔조(전지의 팔조)·그림에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가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의 하나이다.

부법의 팔조 편집 ]

진언종의 법류의 정계를 나타내고 있다. 교주 대일 여래의 설법을 김강사가 듣고 교법이 일어나 진언종의 가르침이 전해진 계보이다.

  1. 대일 여래
  2. 金剛薩埵(굳셀 경, 굳셀 경)
  3. 龍猛菩(용맹스러울 규)
  4. 龍智菩(사나무 규, 사츠나리 규)
  5. 金剛智三蔵(곤고 우치 산조)
  6. 불공 삼장 (후쿠 산조)
  7. 恵果阍梨 (갓끈 굉, 굳셀 경)
  8. 홍법대사

전지의 팔조 편집 ]

진언종의 가르침이 일본에 전해질 때까지의 역사에 관련된 8명의 조사. 부법의 팔조 중 대일 여래 금강사랑은 실재하지 않는 인물이므로 제외하고 두 명의 조사를 더했다. 팔조대사(하소다시)라고도 불린다.

손에 표시를 맺거나 불구 등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깨달음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다.

  1. 龍猛菩薩 : 대일여래 의 직제자金剛薩埵로부터 밀교경전 을 받고 세상에 전했다고 한다(三鈷杵(산코쇼)를 오른손에 가지고 있다).
  2. 류지 보살 : 용맹으로부터 밀교를 받았다(경문을 오른손에 가지고 있다).
  3. 金剛智三蔵 : 인도에서 용지에서 밀교를 배운 후 당나라로 건너 ' 금강정경 '을 전한다(수주를 오른손에 가지고 있다).
  4. 불공 삼장 : 서역 출생. 무역상인 삼촌에게 데리고 당나라로 가서 장안으로 금강지에 입문. 『금강정경』을 한어로 번역하고 관정 도장 을 열었다 (외박인을 맺고 있다).
  5. 善無畏三蔵(젠무이 산조우 : 인도 태생. 대승불교 를 배우고 한층 더 밀교를 계승한다. 80세가 되어 당나라에 건너서 「대일경」을 전한다(오른손의 사람 손가락을 세우고 있다).
  6. 一行禅師(이치교젠지): 중국 출생.  이나 천대교학 , 천문학, 수학을 배웁니다. 장안으로 善無畏에 입문하고 善無畏의 구술을 바탕으로 『 대일경료(大日経疏)』를 완성시켰다(法衣 속에서 표를 맺고 있다).
  7. 에과 아린 배 : 중국 출생. 금강계 · 태장계 양부의 밀교를 계승했다(의자에 앉아 옆에 동자를 기다리고 있다).
  8. 홍법대사 : 에과아람 배에서 금강·태장계 양부를 수여받아 일본에 전해 진언밀교를 열었다. 공해(五鈷杵(고코쇼)를 오른손에 들고, 왼손에는 염주 를 가지고 있다).
팔조대사 (광림사)

교리 편집 ]

진언종은 즉신성불과 밀엄 국토 를 그 교리로 한다.

중심으로 하는 본존은, 우주의 본체이며 절대의 진리인 대일 여래 .

교리로서 4개. 육대(육대연기)의 가르침, 만다라의 가르침, 삼밀수행과 위의 즉신성불이 있다.

교학으로서 대일경의 교학과 금강정경의 교학, 2개의 경으로 설교되는 가르침이 근본소의로 된다.

  • 소의의 경전(기본의 중요 경전)
    • 대일경』(정식으로는 『 대장노 차 나성 불신 변가지경』/다이비루샤나조부츠진펜카지쿄 )
    • 금강정경』(정식에는 『금강정 일절 여래 진실섭대승현증 대교왕경』, 또는 『금강정 瑜伽真実大教王経』)
    • 소오지지경』(소지츠에쿄)
    • 瑜祗経』(유기쿄)
    • 요약 염간경
    • 이취경』(리슈쿄) 등.
  • 論疏 (논문 류)
    • 『 보리 제 심론』(보다이 신론)
    • 사카마 訶論』(샤쿠마카엔론)
    • 『 대일경 』(다이니치쿄쇼) 등.
  • 공해 저작
  • 삼밀 (「신밀・손에 제존의 인계(인상)을 맺는다」, 「 구밀( 어밀 )・입에 진언을 독서한다」, 「심밀・마음에 만다라 의 제존을 관상 한다”)의 수행에 의해 본존 과 일체가 되어 즉신성불 이 실현된다고 한다.

사상과 교상 편집 ]

진언밀교를 배워가는 데 사상 (지소)과 교상( 쿄소 )이 중요시된다.

사상이란, 진언밀교를 실천하는 방법, 즉 수법의 작법( 관정 · 호마 · 관법 · 인계 · 진언 등의 행법)을 가리킨다. 이에 반해 교상이란 진언밀교의 이론이다.

교상을 배우는 것으로, 진언밀교의 이론을 이해하고, 이론을 실천하는 방법을 실시하기 위해 사상을 배운다. 교상의 뒷받침이 없는 사상은 무의미한 동작이 되어 버린다고 한다.

사상·교상을 모두 배우지 않으면 진언밀교가 이상으로 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사상·교상 양쪽을 습득하는 중요성을 설득하는 비유로, 사상·교상을 차의 양륜으로 옮겨설 수 있다. 또 자운 은 “사상을 떠나 교상 없이, 교상을 떠나 사상 없이, 사교일치하고, 밀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9세기 중반(헤이안 시대 중기)부터 사상의 연구가 활발해졌다. 익신에 시작되는 히로사와류(히로사와류), 성보를 조로하는 오노류(오노류)가 일어났다. 양파는 각각 6류로 나뉘어 노자와 12류(근본 12류)가 되어 곧 36류가 되었다. 그 후, 법류는 아울러 100여개를 세었다. 진언밀교의 사상의 유파는 모두, 광택류·오노류의 2류로부터 나뉘었다.

히로사와류·오노류(노자와 12류) 편집 ]

헤이안 중기에 익신으로 시작되는 광택류, 성보를 시조로 하는 오노류가 일어났다. 양파는, 각각 6류로 나누어져, 노자와 12류(야타쿠쥬니류), 또는, 근본 12류라고 불린다.

노자와 12류의 정의에서는, 지명원류를 광택류에 넣지 않는다. 또, 중원류 를 오노류에 넣지 않는다. 어느 법류도 고야산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칠일 어수법 등 공청의 수법에 관여하지 않기 위해서 구별되었을 뿐, 노자와 12류는 동밀사상의 법류를 모두 보여준 것은 아니다.

광택류 편집 ]

특징은 의궤를 중시한다. 관조 가 건립한 교토시 우쿄구 사가 광택 에 있는 히로사와 연못 의 남쪽에 있는 편조사 의 소재지명이 어원이다.

히로요시에서는, 동밀 사상을 2분했을 경우, 오노류의 쌍을 이루는 법류. 협의에서는 광택류내의 법류, 인화삼류, 광택삼류를 아울러 광택육류라고 칭한다. 그러나 육류에 속하는 법류는 일정하지 않고 관음원류·인화어류계의 북원류·자존원류 등을 넣는 설도 있다. 보수원류·니와 어류·니시인류(니시노 린류)를 니와 3류라고 칭하고, 화장원류·닌욕 산류(마늘 쿠엔류)·전법원류를 히로사와 삼류라고 칭한다.

  • 광택류계 유파 약계보
    • 인화어유략계보(파조·각법) 공해 - 마아- 원인 - 익신 - 관평 법황 ( 우타천황 )- 관조 - 제신 - 성신 관조 - 각법
    • 니시인 유략 계보
    • 보수원 유략계보(파조·영엄) 공해-마야-원인-익신-관평법황(우타천황)-관조-제신-성신-관조- 영엄
    • 화장원 유략계보(파조·성혜) 공해-마야-원인-익신-관평법황(우타천황)-관조-제신-성신-관조- 성혜
    • 닌교산 유략계보(파조·관편) 공해-마아-원인-익신-관평법황(우타천황)-관조-제신-성신-관조- 관편
    • 전법원 유략계보(파조·각둔) 공해-마아-원인-익신-관평법황(우타천황)-관조-제신-성신-관조- 각둔

오노류 편집 ]

오노류는, 진언종 선통 사파 오모토야마 수심원 (구칭·만다라사)이 있는 교토시 산과구 오노 가 어원이 되고 있다. 성보를 오노류 원조, 수심원을 개창한 인해를 오노 유류조로 하는 경우도 있다. 口伝口訣을 重める 것이 특징이다.

히로요시에서는, 동밀 사상을 2분했을 경우, 광택류의 쌍을 이루는 법류. 협의에서는 오노류내의 유파, 醍醐三流(이성원류, 三宝院流, 金剛王院流)과 겐슈지 삼류(수심원류, 안죠지류, 쿠슈지류)를 가리킨다. 단순히 수심원류만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 오노류계 유파 약계보
    • 안 상사 유략 계보 _ _ _ _ _ _ _ _ _
    • 모쿠즈지 유략 계보
    • 슈심원 유략 계보
    • 미호원 유략계보 (파조·정해) 공해-마아-원인-성보-관현-인해-성존- 의범 - 승각 - 정해
    • 이성원 유략계보 (파조·현각) 공해-마아-원인-성보-관현-인해-성존-의범-승각- 현각
    • 금강왕원 유략계보(파조·성현) 공해-마아-원인-성보-관현-인해-성존-의범-승각- 성현

고의파·신의파 편집 ]

진언종은 일본의 불교종파 중에서 분파가 많은 것 중 하나이다. 13세기 말에 고의진언종 과 신의진언종 으로 헤어져 거기에서 다종다양한 교리가 전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의파 편집 ]

대일여래 의 본지법신설 의 교학(고의)에 의한다. 현실세계의 일사일물이 법신 (진리 그 자체를 부처의 신체로 본다)의 대일여래의 설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의파 편집 ]

각오(흥교대사)를 파조로 삼고, 대일여래의 가지 신설 의 교학(신의)에 의한다. 현실세계의 일사일물은 가지신의 대일여래의 설법이라고 설고 있다.

진언종 각파 총대본산회(각산회) 편집 ]

쇼와 14년( 1939년 )의 종교단체법 성립에 의해, 진언율종 이외의 종파는 진언종으로서 통합되었다. 그러나 전후 에는 분파독립이 상속되어 현재는 약 50개의 종파가 있다. 그 중 주요한 16파의 18의 총대본산 이, 1958년( 1958년 ) 6월 15일 에, 진언종 각파 총대본 산회(각 산회)를 각산의 연락 친목·공통 사업의 주재를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이 사원을 진언종십팔본산 이라고 한다.

  • 진언종 각파 총대본산회 사무국 - 총본산 지적 원내 (사무국장·주사·서기를 둔다)
    • 대표 총무
    • 상임위원회( 의장 을 둔다. 또한 상임위원에 대해서는 대리 출석 이 허용된다)
    • 사무국장 각 산회가 사무국을 두고 있는 지산파로부터 선출하는 것이 관례가 되고 있다.

진언 종장자 편집 ]

  • 진언종내 최고의 명예직. 진언종을 대표하여 진언종 내외의 중요한 법회, 여러 행사에 참석한다.
  • 임기는 1년간. 그 해 후 칠일 어수법 (어수법)의 오아리 배가 진언 종장자가 된다.
  • 매년 각 산회에 속하는 진언종십팔본산의 관장·산주 중에서 추대하며, 매년 어수법(후7일 어수법)의 오아리 배를 선출한다.
  • 수법이 성만한 후 각 산회에서 장자 지팡이가 주어진다.

진언 종장자 역대 편집 ]

  • 1968년 히라노 류법(센와쿠지 제150세 장로)
  • 1969년 나스 마사타카 (지적원 제60세화주)
  • 1970년 기무라 맑음(교왕호국사 제254세장자)
  • 1971년 호리타 마사키
  • 1972년 히라바야시 유타카(하세지 제74세화주)
  • 1973 년 모리사키 히로시
  • 1974년 마츠모토 히로미치(다카라야마 절 제18세관주)
  • 1975년 이시도 에토시(나카야마데라 장로)
  • 1976년 관상도(네코지 제38세좌주)
  • 1977년 연생선 다카시(선통사 제55세 법주)
  • 1978년 가와다 세이미(하세지 제76세화주)
  • 1979년芙覉良順(치적원 제62세화주)
  • 1980년 다나카 마사히로(아사고 손자사 제131세 법주)
  • 1981년 고마쓰미치 아키라 (센와쿠지 제151세 장로)
  • 1982년 立部瑞祐(仁和寺第43世門跡)
  • 1983년 우에노 요시에이(치적원 제63세화주)
  • 1984년 마츠모토 히로미치(니시다이지 제69세 장로)
  • 1985년 코미네 순예(치적원 제64세화주)
  • 1986년 고바야시 타카히토(仁和寺第44世門跡)
  • 1987년 무라주 혜쾌(나카야마지 장로)
  • 1988년 카츠마타 슌교 (하세지 제79세화주)
  • 1989년 후지이 류신 (지적원 제65세화주)
  • 1990년 스즈키 료나가(아사고 손자사 제132세 법주)
  • 1991년 이케다 루이(나카야마지 장로)
  • 1992년 히로사와 준효(네래사 제39세좌주)
  • 1993년 다케우치 다카미네(金剛峯寺第408世座主)
  • 1994년 고바야시 해창(센와쿠지 제152세 장로)
  • 1995년 요시다 슌예(하세지 제81세화주)
  • 1996년 요시다 유노부(仁和寺第47世門跡)
  • 1997년 노자와 밀엄(아사고 손자사 제133세 법주)
  • 1998년 아소 후미오 (묘묘지 제102세좌주)
  • 1999년 이나바 노부타카(네래사 제41세좌주)
  • 2000년 와다 아리겐(金剛峯寺第410世座主)
  • 2001년 다카요시 청순(젠도지 제56세 법주)
  • 2002년 호리 토모범
  • 2003년 가와다 성정(하세지 제83세화주)
  • 2004년 카타야마 유오(대각사 제60세문터)
  • 2005년 미야자카 히로카츠 (치적원 제68세화주)
  • 2006년 사토 레이지(니와지 제48세문 자취)
  • 2007년 오오야 실원(호야마데라 제19세관주)
  • 2008년 우에무라 사다로(이즈미와쿠지 제154세 장로)
  • 2009년 아베 용문(치적원 제69세화주)
  • 2010년 마쓰나가 아리케이 (금강봉사 제412세좌주)
  • 2011년 남양도(仁和寺第49世門跡)
  • 2012년 樫原禅澄(젠도지 제57세 법주)
  • 2013년 가메야 효영(고심원 제43세문터)
  • 2014년 가토 세이이치 (하세지 제86세화주)
  • 2015년 입부 유도(닌와지 제50세문 자취)
  • 2016년 나카타 준와
  • 2017년 코미네 일루 (치적원 제71세화주)
  • 2018년 쿠로사와 전소(대각사 제63세문 자취)
  • 2019년 타시로 홍흥(하세지 제87세화주)
  • 2020년 세가와 대수(니와지 제51세문 자취)
  • 2021년 천시정혜(치적원 제72세화주)
  • 2022년 오이케 태도(대각사 제64세문터)
  • 2023년 히타카 전 다카시(교왕호국사 제258세장자)

각 산회에 참가하는 진언종십팔본산(순부동) 편집 ]

고의 진언종 계
신의진언종 계
진언율종

밀교학예상·밀교교화상 편집 ]

각 산회의 사업으로서 후 7일 수법 외에 밀교학예상 및 밀교교화상 수여가 있다.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밀교학예상 편집 ]

  1. 1961년, 하세 호우 히데,栂尾祥雲, 오노 다테 묘, 아마 타치오, 카미바야시 타카요시
  2. 1962년, 스즈키 토모지, 나스 마사타카 ( 다이쇼 대학 학장), 도모토 인상
  3. 1963년, 오야마 공준· 카츠마타 슌교 ·이토 히사
  4. 1964년, 이와하라 사키노부, 와타나베 테루히로 ( 도요대학 교수), 츠지이 히로스
  5. 1965년 다나카 카이오쿠, 갯벌 용상, 문화재 보호위원회 고문서 조사 특별조사반
  6. 1966년 모리야마 세이진
  7. 1967년, 사와 타카켄 ( 교토시립 예술대학 교수)
  8. 1968년 오다 자선( 고야산 대학 교수)
  9. 1969년, 아오키 융광 ( 엔도지 주직 )・핫토리 여실( 종치원 대학 교수 )
  10. 1970년 구시다 요시히로(타이쇼대학 학장)
  11. 1972년, 카지요코 구름(다이쇼 대학 교수)·나카가와 요시교(타카노야마 대학 교수)
  12. 1973년, 타쿠보 주예(후쿠세이지 주직)・야마모토 토모교(타카노야마대학 교수)
  13. 1974년, 사카이 진전(고야산대학 교수)
  14. 1975년, 다카하시 송순(관지원 주직)
  15. 1976년, 호리우치 히로히토(타카노야마 대학교수)・미야자카 히로카츠 ( 나고야 대학 교수)
  16. 1977년, 카토 쇼이치(다이쇼 대학 교수)·오모리 켄지((재)건축 연구 협회)
  17. 1978년, 가나오카 히데토모 ( 도요 대학교수)· 마츠나가 아리케이 (타카노야마대학 교수)
  18. 1980년, 타카다 인각(타카노산 대학 교수)·타카기 신모토(타카노산 대학 교수)
  19. 1981년, 이하라 테루렌( 규슈대학 교수)・하모다 요시토( 콜롬비아 대학 교수)
  20. 1982년, 마츠오 요시카미( 교토대학 명예교수)·요시하라 료카쿠( 고베상선 대학교수)
  21. 1983년, 와타 히데승(고야산 대학 교수)
  22. 1984년, 타카이 다카히데 (타치인 대학교수)・타무라 타카테루(교토시립 예술대학 교수)
  23. 1985년, 후지이 류신 (타치인 대학교수)
  24. 1986년, 나가이 요시노리( 대부 여자 대학 교수)
  25. 1987년 (재)미술원 국보수리소
  26. 1988년, 요시이 요시유키(키요미즈데라 주직)・테시마 센토시(오무로류 화무장(재) 교토시 예술 협회)
  27. 1989년, 타카미 료쿄 (만후쿠지 주직)
  28. 1990년, 카토 히로오(종지원 대학 교수)・야마자키 야스히로(종지원 대학 교수)
  29. 1991년 슈토 마오(林藤寺雄)(삼창사 주직)・미카미 에이오(토야마 강전소)
  30. 1992년, 벽세 관웅(종지원 대학 조교수)·히노니시 마사요시(타카노산 대학 교수)· 우에다 레이죠 (연명사 주직)
  31. 1993년 가와하라 유미네( 와세다대학교 수)
  32. 1994년 마키오 료카이(타이쇼대학 학장)·무라주 혜쾌( 추수문학원 대학교수)·미나미라 봉주(고야산대학교수)·히가시 토모카쿠(고야산대학교수)
  33. 1995년, 사토 요시모리(토야마 강전소, 야마가타·지조지 주직)· 가토 세이이치 (다이쇼 대학 교수)· 요미토모혼 히로시 (타치토인 대학 교수)
  34. 1996년, 와다 히토미(용화사 주직)· 사토 타카켄 (다이쇼 대학 학장)·카시와모토 히로오( 마쓰사카 여자 단기 대학 교수)· 가와사키 신정 ( 쓰쿠바 대학 교수)
  35. 1997년, 도리코시 쇼도(진센인 주직, 타치치인 대학 교수)· 요시다 히로시 (타이쇼 대학 교수)·가토 슌쵸(나고야 대학 교수)
  36. 1998년, 우에야마 하루헤이 ( 교토대학 교수)・사이토 아키토시(다이쇼 대학 교수)・하시모토 하츠코(오타니 대학 교수)・쓰다 마아( 국제 불교학 대학원 대학 교수)
  37. 1999년, 우에시마 유( 하나조노 대학교수)· 오노츠카 기스미 (타이쇼대학 교수)·오카무라 케이진( 고치대학 교수)· 시즈코 케이(타카노야마대학 교수)
  38. 2000년, 가네다 이치하루히코 ( 다마가 와 대학 객원 교수)・호조 켄조(타이쇼 대학 교수)・하마다 타이스케 (일본 화가)・무라카미 호수( 야마구치 대학 교수)
  39. 2001년, 마츠자키 에미즈(다이쇼 대학 교수)·무라오카 하늘(광명사 명예 주직)· 후쿠다 료세이 (다이쇼 대학 교수)·기타무라 태도(타치치인 대학 교수)·마나베 슌쇼(보센 단기 대학 학장)
  40. 2002년, 츠지이 히로(구 사가고쇼 화도 총사소 부총재)· 이케구치 에칸 (최후쿠지 법주)
  41. 2003년 이나바 요시히로(타카노야마모토 각원 주직)
  42. 2004년, 요시다 히로요(정흥사 주직)
  43. 2005년 해당 없음
  44. 2006년 해당 없음
  45. 2007년, 고치야마 히토히토(다카노야마 대학교수)· 코미네 야히코 (다이쇼 대학 학장)
  46. 2008년, 고다마 요시타카(타치인 대학교수)
  47. 2009년 우메하라 맹 (교토시립예술대학 명예교수)
  48. 2010년 해당 없음
  49. 2011년 메구로 종광(만젠지 주직), 후시 세이 에이(토야마 강전소), 나카무라 유키진(타치토인 대학 교수), 하세 호스(켄쇼조 불소 소주)
  50. 2012년, 오카다 와카츠(사가 미유카도 총사소 화무장), 히로사와 타카유키 (다이쇼 대학 교수, 토야마 전법원장)
  51. 2013년, 마츠모토 테루케이( 다이토 문화 대학 명예 교수), 호시노 에이키 (타이쇼 대학 학장)
  52. 2014년, 마호 류 아키라(젠요지 주직), 오자와 세이미(도요야마파 종합 연구원 교수), 이쿠이 토모사오(고야산 대학 명예 교수)
  53. 2015년, 마츠모토 슌아키(미에・마후쿠지 주직), 다카하시 나오오(다이쇼 대학 명예 교수, 도야마파 종합 연구원 종학 연구소 소장), 도마이치 세이이치(다이쇼 대학 교수)
  54. 2016년, 키난 탁이치( 테즈카산 대학 명예 교수, 히라이 유케이(다이쇼 대학 명예 교수), 오야마 노리 용(다이쇼 대학 명예 교수), 시오히로 헌(종치원 대학 특임 교수), 나카가와 위키코(신의 진언종) 소모토 야마네 네지 문화 연구소 소장)
  55. 2017년, 나가무라 마키(일본 여자 다이묘 명예 교수), 후지타 미츠히로(타카노야마 다이묘 명예 교수), 혼다 다카히토(다이쇼 대학 전 교수), 오오츠카 히로시(다이쇼 대학장)
  56. 2018년 미야자카 히토시 홍 (토야마 전 법원 원장), 기무라 히데아키(타이쇼 대학 명예 교수)
  57. 2019년, 사카키 요시타카(다이쇼 대학 전 부학장), 산인 카하루오(고야산 대학 명예 교수)

밀교교화상 편집 ]

후 칠일 수법 편집 ]

진언종 각파 총대본산회 소속의 각 종파관장·산주와 진언종 각파 총대본산회 소속의 각 종파로부터 선택한 정액승 에 의해, 매년 1월 8일부터 1월 14일까지의 일주일(21 자리)에 걸쳐, 도지·관정원에서 후칠일 어수법(고시치니치미시호)을 실시하고 있다. 진언종 최고의 비의로 여겨진다.

연혁 편집 ]

후칠일 어수법은 진언원 어수법(신곤인 미시호) 등으로 불리며, 통칭은 어수법(미시호·미슈호)이라고 불리고 있다. 진언종 최고의 비의·엄의로 여겨진다.

정월 1일부터 7일까지 미야나카 에서 행해지고 있는, 신사인 미야나카마에 칠일절회 에 대한 행사. 834년 ( 승화 원년)에 인명 천황 의 훈을 봉사 하고 공해(홍법대사)가 미야나카 진언원 에서 국가안태· 옥체 안온·고곡 풍양 ·만민 토요라쿠(반민부라쿠)를 기도해 행해진 뒤, 매년, 미야나카의 항례 행사로서 정월에 행해지고 있었다.

남북조 시대의 전란기나 지진 등을 포함해, 몇도, 중단하는 시기가 있었지만, 후미오 천황 과 醍醐寺主演의 진력에 의해, 1623년 ( 원화 9년)에 170년만에 부활되어 했다. 1871년 (메이지 4년)에 폐불기석의 영향으로 폐지될 때까지 행해지고 있었다.

석운 데루 등의 탄원에 의해, 1883년 (메이지 16년) 1월 8일에 부활했다. 그 때부터, 수법을 실시하는 장소를 미야나카에서 도지·관정원으로 옮겼다.

1920년 ( 다이쇼 9년) 이후에는 고의진언종과 신의진언종의 각 혼산이 협동하여 수법을 하게 되었다.

1968년 부터 각 산회의 사업이 되었다.

점차 편집 ]

수법은 총 21 좌석으로 이루어진다. 권수 사류(금강계법)와 서원류(태장계법)의 양계를 1년 놓고 교대로 수리하고, 숨결·증익의 호마와 5대 명왕, 12천, 성천법 등을 아울러 수리한다.

전날인 7일, 수법에 출사하는 공승이 , 도지의 집회소에서 습례를 실시한다.

첫날(개백)의 1월 8일에는, 미야우치  에서, 천황 의 옷을 납입한 당나라 를 바친 칙사 를 도지·관정원에 보내고, 옷을 도지 관정원 도장의 내당의 瑜伽壇상에 안치 한다.

11일(중일)·14일(결원)은 칙사가, 도지·관정원의 도장에 있어서 구이 해, 참배를 받는다. 같은 날 14일, 칙사에게 의복봉환의 의식을 도지 관정원의 전당에서 실시해, 후 7일 어수법은 성만한다.

수법 에서 사용하는 염주 ·고둔기· 등호 등은 공해(홍법대사)가 당(중국)보다 가져온 법구 이다. 이전에는 도지 장자 가 대아람 배를 맡고 있었다.

결원 후에만 도지 관정원 도장에 대한 일반 참배가 허용된다.

  • 구성 (진언종 각파 총대본산회 소속의 각 종파에서 선출된 자)
    • 법무법인 대아람 배(1명)
    • 교환(1명)
    • 숨재 호마공(1명)
    • 증익호마공(1명)
    • 오대존공(1명)
    • 12천공(1명)
    • 성천공(1명)
    • 신공(1명)
    • 이간 관음공(1명)
    • 건물 이수(1명)
    • 기침(1명)
    • 반승(4명)
  • 사무국
    • 별당(1명)
    • 대행사(1명)
    • 소행사(1명)
    • 국장(1명)
    • 총무(1명)
    • 용도(1명)
    • 승무(16명)
    • 수행(17명)
    • 종제자(2명)
    • 정액 스님
    • 수법사무국원

진언종계대학 편집 ]

진언종계 고등학교 편집 ]

진언종계 중등학교 다른 역사지 편집 ]

진언종계 제파 총본산·오본산(각 산회 소속 종파 이외) 편집 ]

이 종파들은 대부분 전후 분리 독립이지만, 사원 자체는 옛부터 있었던 것과 신설된 것 등 다양하다.

고의 진언종계
신의진언종계
기타 · 진언종계 신종교교단

각주 편집 ]

각주 사용법 ]

관련 항목 편집 ]

외부 링크 편집 ]

진언종십팔본산 링크 편집 ]

진언종계 제파·혼야마 링크 편집 ]

진언종계대학 편집 ]

입정 - Wikipedia

입정 - Wikipedia

입정

출처: 무료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

입정 (뉴조)은 진언종 에 전해지는 전설적 신앙.

원의는 단순히 ' 젠정 에 들어간다 '는 뜻이지만, 홍법대사 공해 가 영원한 명상에 들어가 있다는 신앙을 가리킨다.

공해의 입정 신앙 편집 ]

공해는 835년 (승화 2년)에 입정했지만, 생사의 경계를 넘어 미륵 보살 출세 때까지, 중생 구제 를 목적으로 영원한 명상에 들어가 현재도 고야산 오쿠노인 의 홍법대사 어묘로 입정 하고 있다고 믿어진다.

「생신공(쇼신구)」은 입정 후부터 현재까지 1200년간 계속되고 있는 의식의 하나로, 오쿠노인의 유나 (유나)라고 불리는 사무라이 스승이 하루 2회, 묘의 공해에 의복과 식사를 전하는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 영묘내의 모양은 유나 이외가 엿볼 수 없고, 유나를 맡은 자도 다 말하지 않기 때문에 외부인에게는 불명한 채로 있다.

전진 제철 [ 주1]공해승도전』에 따르면 공해의 사인 은 병사 로 여겨진다. 속일본 후기』에 의하면, 시신 은 소바에 붙은 것 같다. 그러나 후대에는 입정했다고 하는 문헌이 나타난다. 현존하는 자료로 공해의 입정에 관한 초출의 것은, 입후 100년 이상을 거친 야스호 5년( 968년 )에 인해 가 저술한 「금강봉사 건립 수행 연기」로, 입정한 공해는 49일 지나도 용색에 변화가 없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 옛 이야기』에는 타카노야마가 도지와의 싸움으로 일시 황폐하고 있던 시기, 토지 장자 였던 관현 이 영묘를 열었다는 기술이 있다. 이에 따르면 영묘의 공해는 석실과 마코로 이중으로 지켜져 앉고 있었다고 한다. 관현은 일척 별로 뻗어 있던 공해의 윤발을 면도 옷과 수주 綻び를 깎아 정돈한 뒤 다시 봉인했다.

또, 입정한 후에 제국을 행각하고 있는 설도 있어, 그 증거로서, 매년 3월 21일에 고야산의 호우메인 이 실시하는 공해의 의상을 바꾸는 의식시, 의상에 흙이 붙어 있는 것이 들 수 있다 된다 [1] .

기타 "입정" 편집 ]

후세, 금식·살아가는 등 고행 끝에 절명하고 그대로 미이라 화하는, 이른바 ' 즉신불 '이 되는 행위도 공해의 입정신앙에 급속히 속에 '입정'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언밀교의 교리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신앙의 영역이며, 공해의 입정신앙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각주 편집 ]

주석 편집 ]

  1.  진제에 가탁하고 10세기경 쓰였다고 하는 것이 통설.

출처 편집 ]

  1.  『진언석석집』 제3

참고 자료 편집 ]

관련 항목 편집 ]

홍법대사·공해의 생애~지금도 일본인의 마음에 사는 가르침 - 가족장의 패미유

홍법대사·공해의 생애~지금도 일본인의 마음에 사는 가르침 - 가족장의 패미유

홍법대사·공해의 생애~지금도 일본인의 마음에 사는 가르침
2022년 5월 10일 갱신

홍법대사·공해의 생애~지금도 일본인의 마음에 사는 가르침


이 기사는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공해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다.
공해는 진언종의 개조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홍법대사(고우다다시) 공해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견당사로서 당(중국)에 건너, 밀교를 배우고 나서 귀국한 후, 일본에서 진언 밀교의 가르침을 설해, 개종한 것이 진언종입니다. 본 기사에서는 공해란 어떤 인물인지, 그 생애를 탄생부터 쫓아갑니다.


목차

  1.  진언종의 기반을 확립한 공해의 생애
  2.  공해의 가르침과 진언종의 경
  3.  공해와 모스미와의 관계
  4.  일본문화에 영향을 준 공해의 공적
  5.  공해와 관련된 명소
  6.  공해는 불교 이외에도 일본의 발전에 공헌한 인물


진언종의 기반을 확립한 공해의 생애
앉아 승려
세상에 침투하고 있는 “공해”라는 이름. 그러나 태어났을 때는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우선, 공해라고 불리게 되었던 인사를 그의 생애를 통해 밝힙니다.
가가와현에서 출생
774년 6월 15일, 공해는 사누키국(=현재의 가가와현)에서 3남으로서 탄생했습니다. 유명은 「마오(마오)」라고 하며, 어렸을 때부터 사토아키였습니다. 계무천황의 황자의 교육계를 맡은 백부, 아도대족(뒤의 오오오리)로부터 시나 한어, 유교를 배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15세가 되면 아도대족에게 초대되어 도시로 올라가 학문에 정진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대학중퇴와 '공해'의 탄생
18세가 된 공해는 대학에 입학합니다. 그러나, 거기는 관료 양성을 위한, 이른바 출세를 위한 공부로, 공해가 요구하고 있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곤란한 사람을 돕고 싶다면, 불교의 가르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공해는 대학을 중퇴하고 승려의 길로 나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대학 중퇴 후의 공해는, 수행의 여행에 나옵니다. 나라현이나 도쿠시마현 등 시코쿠 각 현에서 연루를 거듭해, 20세에 스님이 되기 위한 수계를 해, 22세로 이름을 공해에 바꾼 것으로 알려집니다. 고치현의 무로토곶에는 그 이름의 유래라고 불리는 동굴 「미쿠로도」가 있습니다. 수행을 마친 대사가 이 동굴에서 나왔을 때 보이는 하늘과 바다에 마음을 찍어 「공해」라고 자칭했다고 합니다. 다만, 개명의 연령이나 유래는 제설이 있습니다.
송당사로 당나라로
수행을 계속하고 있던 공해는, 나라현에 있는 구메지에 납입되고 있던 밀교의 경전, 「대일경」과 만남. 밀교의 가르침은 경전을 읽은 것만으로는 모르겠다고 생각한 공해는 당(현의 중국)에 건너는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31세(만연령 30세) 때 공해로 전기가 방문합니다. 견당사의 1명으로서 염원의 당나라에 건너게 된 것입니다. 804년 7월 6일, 나가사키현의 타우라를 출항해 당을 목표로 하는 선단의 배에는, 공해 외에 최청도 타고 있었습니다. 모스미는 나중에 일본에서 천대종 을 여는 인물입니다.
불과 반년 만에 밀교를 습득
수행중인 스님
당나라에 들어간 공해는 밀교의 이해에 필요한 산스크리트어(범어)도 배우면서 밀교의 공부에 격려합니다. 당나라에 들어 약 반년 후에는 당나라 국사로 진언밀교를 정식으로 계승한 스님인 에과(에카, 케이카)를 만나러 갔다고 합니다. 에과는 한눈에 공해를 인정하고 자신의 제자로 밀교의 모든 것을 전수. 이 안에는 만다라(만다라)의 비법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불과 반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공해는 스승인 혜과로부터 '진언밀교의 스승'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진언 밀교를 유포
당나라로 건너간 약 2년 후, 806년에 공해는 일본에 귀국하고 있습니다. 귀국 후의 공해는, 다자이후에 있는 관세음사에 2년 정도 체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809년에는 교토의 가오슝 산지(타카오산지)=현재의 신고지(곤고지)에 들어가, 다음 해의 810년에는 사가 천황의 책을 받아 진언밀교의 포교가 정식으로 허락되어 네. 덧붙여서, 개종의 타이밍은 806년과도 810년이라고도 합니다.
진언종의 탄생과 공해의 입정
816년, 공해는 고야산 ‘소모모토야마 금고봉사(곤고우부지)’를 수선의 도장으로 개창했습니다. 그 후, 823년에는 도지를 사가 천황에서 받고, 「교왕호국사(쿄오고쿠지)」라고 칭해 고야산과 늘어선 진언종의 기반을 확립하고 있습니다.
835년 공해는 자신의 사기를 깨닫고 제자들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21일(음력), 62세에 입정(뉴조). 진언종에 있어서, 입정이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공해가 영원히 깊은 선정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선정이란 마음이 정해진 상태에 있어 동요하지 않는 경지에 있는 것입니다.
공해의 입정 후 80년 이상이 경과한 921년에는 醍醐天皇로부터 생전의 공적에 대해 ‘홍법대사’의 시호를 받았습니다.

공해의 가르침과 진언종의 경
목어를 두드리는 스님
공해의 가르침은 진언종으로서 현대에 뿌리를 둔다. 이곳에서는 진언종의 본존과 가르치고, 경을 소개합니다.
공해가 전한 진언종의 가르침과 본존
공해가 열린 진언종에서는, 대일 여래(다이니치로 요라이)가 본존, 즉신성불(소쿠신조부츠)이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즉신성불은 지금 이 세상에 몸이 있는 동안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신(身)=몸의 행동」, 「입(く)=말」, 의「(い)=마음」의 3개를 정돈해, 본래 가지고 있는 불심(부신)을 불러 일으킨다 「삼밀(산미츠)」의 수행을 합니다. 자신을 깊게 바라본 후 부처님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진언종의 경
홍법 대사·공해를 숭배할 때는, 호호호(호호고)를 주창할 수 있습니다. 고호호란, 진언종에서 가장 중요한 경의 하나. 구체적으로는 「미나미 무대사 유테루 금강(나무다이시 엔조 곤고우)」라고 소리로 합니다. 「미나미 무대사 편조금강」의 7문자로 「홍법대사 공해에 귀의한다」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류조 금강」은 공해의 관정명(칸조메이)이며, 다이니키 여래의 별명이기도 합니다.

진언종의 장례에 대해 해설. 참렬 때 알아야 할 매너란? - 가족장의 패미유【Coeurlien】
진언종의 장례에 대해 해설.  참렬 때 알아야 할 매너란?  - 가족장의 패미유【Coeurlien】

불교의 장례는 종파에 따라 내용이 달라 진언종에도 독자적인 흐름과 매너가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진언종의 장례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과 "참렬할 때의 매너"를 정리했습니다. 진언종의 장례에 대해 불안한 분은 꼭 참고하십시오.

공해와 모스미와의 관계
공해가 견당사로 건너온 당나라로, 가장 번성했던 불교의 유파 중 하나가 밀교입니다. 공해는 견당사로 건너온 당나라로 밀교를 완전히 습득했지만, 실은 밀교를 일본으로 가져온 것은 공해만이 아닙니다. 천대종의 개조로 알려진 모스미도 밀교를 비롯한 다양한 경전을 당에서 가져왔습니다.
진언종을 연 공해에 대해, 최스미는 호케 사상과 밀교를 바탕으로 천대종을 열었습니다. 함께 견당사로서 동시기에 당나라로 밀교를 배운 두 사람은 일본 불교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고 있습니다.
최스미는 천대종의 개조. ~그의 생애나 일본에 준 영향은~~ 가족장의 패미유
최스미는 천대종의 개조.  ~그의 생애나 일본에 준 영향은~~ 가족장의 패미유
모스미는 천대종의 개조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밀교와도 깊은 관계가 있는 모스미는 일본에서의 불교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집행되고 있는 불식 장례는 그의 영향을 적게 받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서는, 최청의 생애나 밀교와 천대종과의 관계, 그가 지금의 일본에 준 영향을 전합니다.
일본문화에 영향을 준 공해의 공적
밖을 바라보는 스님
공해는 진언종의 포교뿐만 아니라 문화활동에 힘을 쏟고 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공해가 일본에서 남긴 큰 공적을 소개합니다.
만노이케의 제방을 만들었다
가가와현에 있는 만노이케(만노우이케)의 수축 공사에, 공해가 관련되어 있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821년 사가 천황의 목숨을 받은 공해는 만노이케의 개수 공사에 종사하기로 했다. 수압에 대해 아치형을 그리는 제방은 공해가 제안한 것입니다. 약 1200년 전에 만들어진 제방은 현재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많은 저서와 글을 남겼다.
공해는 다채로운 문화활동에 정성을 내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비밀 만다라 십주심론(히미츠만다라쥬주신론)」이나 「비장 보석(히조우야야)」 등, 수많은 저서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 외, 「전예 만상명의(텐레이반쇼메이기)」라고 하는, 일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자자서를 만들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또 「홍법필을 선택한다」라고 하는 속담에 나타내듯이, 국내 제일이라고도 불리는 책의 팔로, 일본의 삼필의 1명이기도 합니다.

일본 최초의 서민교육기관을 설립
828년, 공해는 교토에 「열예종 토지인(슈게이슈치인)」을 창설하고 있습니다. 綜芸種智院은 헤이안 초기 서민교육기로 일본 최초의 사립학교입니다. 당시의 대학이나 국립 대학에의 입학은, 엄격한 신분 제한이 있어, 일반 서민에게는 어려운 것이 있었습니다. 공해는 綜芸種智院을 설립하여 교육을 받을 기회가 누구나 평등해지는 것을 실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綜芸種智院은 공해 사후 후계자가 발견되지 않고 폐절. 현재 교토부 후시미구에 있는 사립종치원대학은 綜芸種智院의 전통을 계승하여 설립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공해와 관련된 명소
고야산 금강봉사의 참배길
공해는 일본 각지에서 수업을 쌓고 있었기 때문에, 공해에 관련된 명소는 풍부합니다. 이곳에서는 특히 인연이 깊은 명소를 2곳 소개합니다.
홍법대사 묘묘
현재도 육신을 이 세상에 머물러 깊은 선정중으로 여겨지는 공해. 선정을 행하고 있는 장소야말로, 고야산의 안쪽에 있는 「코우보다이시고비」입니다.
이곳에서는, 현재도 하루 ​​2회, 공해에 식사를 전하는 「생신공(쇼신구)」의 의식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공해는 현재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구하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어, 밤낮을 불문하고 항상 많은 참배자가 방문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지
교토역에서 보이는 오층탑으로 유명한 도지. 공해가 진언종을 확립시킨 도지는 일본 최초의 밀교 사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밀교를 전파하기 위해 건립된 강당 내에는, 밀교의 가르침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가쓰마 만다라」, 통칭 「입체 만다라」가 진좌하고 있습니다. 이 동상은 공해가 만든 것입니다. 실제로 보는 것으로, 공해의 살아있는 간증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공해는 불교 이외에도 일본의 발전에 공헌한 인물
고양이와 스님
견당사로서 당에 건너, 가져온 밀교를 바탕으로 진언종을 연 공해. 불교의 발전에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등, 모든 방면에서 일본의 발전에 공헌한 위대한 인물입니다. 공해 연고의 사원에서 숭배할 때 '미나미 무대사 편조 금강'이라고 주장해 보면 그 존재를 친밀하게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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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eurlien(클리앙)』은 가족장의 개척자인 파미유가 전달하는 종활과 장례에 관한 정보 미디어입니다. 사이트명은, 프랑스어의 "coeur"(마음)과 "lien"(정)을 잇는 조어. 가족의 유대, 사람과의 유대의 "배턴"을 연결하는 계기가 되면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