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4

Internet Archive: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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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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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Creator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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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 Islam in India; a social analysis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74
65

Towards a world theology : faith and the comparative history of religion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89
70

The faith of other men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72
44

Islam in modern history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57
33

Modern culture from a comparative perspective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97
16

Modern Islām in India, a social analysis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43
26

Faith and belief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79
35

Belief and history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77
54

Believing : an historical perspective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98
31

Questions of religious truth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67
30

Religious diversity : essays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76
48

Faith and belief : the difference between them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98
128

The faith of other men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63
17

Islam in modern history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57
147

The meaning and end of religion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78
38

Islam in modern history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77
6

What is scripture? : a comparative approach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93
156

What is scripture? : a comparative approach
Smith, Wilfred Cantwell, 1916-2000
1993
39









Title
Creator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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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알라딘: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지은이),이신철 (옮긴이)에코리브르202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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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나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MBA를 마친 뒤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가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는 몇십 년 동안 기후변화의 의미를 탐구한 매우 영향력 있는 역사가다. 그는 기후변화가 역사, 근대성, 지구화라는 오래 지속돼온 관념을 뒤집는다고 주장한다.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의 과제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하고, 인문학자들이 다시 생각해보기를 꺼리는 관념들, 즉 인간 행위의 변화한 본성으로부터 보편적인 것의 새로운 수용에 이르는 관념들과 대결하게 하는 것이다.

차크라바르티는 이 책에서 현대 인류가 부딪힌 기후변화 문제를 역사 연구와 결합한다. 기후변화는 인류의 역사가 우리 행성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너무도 분명히 보여주었으며, 그런 까닭에 역사가들은 더는 물질적 현실과 비인간의 세계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나 아렌트, 카를 슈미트, 브뤼노 라투르, 얀 잘라시에비치 등과 같은 사상가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역사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잘 근거 지어진 설득력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목차


서론 행성적인 것의 고지

1부 지구와 행성
1 네 가지 테제
2 결합된 역사들
3 행성: 인간주의적 범주

2부 근대적이라는 것의 어려움
4 근대적이라는 것의 어려움
5 행성적 열망: 인도에서의 한 자살 읽기
6 지속하는 우화의 폐허에서

3부 행성적인 것 마주하기
7 인류세 시대
8 인간학적 개간을 향하여

후기 지구적인 것은 행성적인 것을 드러낸다: 브뤼노 라투르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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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 서울신문 2023년 6월 2일자 '책꽂이'
조선일보
- 조선일보 2023년 6월 3일자 '한줄읽기'



저자 및 역자소개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Dipesh Chakrabarty)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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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나 콜카타 대학교 프레지던시 칼리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콜카타의 인도경영 연구소(Indian Institute of Management Calcutta)에서 MBA 학위를 받은 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에서 역사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시카고 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이다. 시카고 대학교 델리 센터장이고 시카고 현대이론센터 교수이며, 영문과 부교수이자 로스쿨 교수이기도 하다. 서벌턴 연구(Subaltern Studies) 집단의 창립 일원이며, 〈아메리칸 히스토리컬 리뷰(American Historical Review)〉와 〈퍼블릭 컬처(Public Culture)〉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 《근대성의 거처들: 서벌턴 연구의 여파에 따른 에세이들(Habitations of Modernity: Essays in the Wake of Subaltern Studies)》 《유럽을 지방화하기: 포스트식민 사상과 역사적 차이(Provincializing Europe: Postcolonial Thought and Historical Difference)》 《노동 계급의 역사 다시 생각하기: 벵골 1890~1940(Rethinking Working-Class History: Bengal, 1890~1940)》 등이 있다. 또한 《식민적인 것에서 포스트식민적인 것으로: 이행 중인 인도와 파키스탄(From the Colonial to the Postcolonial: India and Pakistan in Transition)》 《코스모폴리터니즘(Cosmopolitanism)》을 공동 편집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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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유럽을 지방화하기> … 총 35종 (모두보기)

이신철 (옮긴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관동대학교 VERUM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논리학》 《진리를 찾아서》 《철학의 시대》(이상 공저)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정치철학》 《조선사상사》 《헤겔 강의록 입문》 《미래 가능성》 《새로운 철학 교과서》 《트랜스크리틱》 《이성의 운명》 《헤겔 『논리의 학』 입문》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 《순수이성비판의 기초개념》 《학문론 또는 이른바 철학의 개념에 관하여》 《역사 속의 인간》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신화철학》... 더보기

최근작 : <뉴래디컬리뷰 2023.여름>,<철학의 시대>,<논리학> … 총 53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에코리브르
출판사 페이지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우아한 분자>,<어떤 죽음에도 당신의 책임은 있다>,<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등 총 140종
대표분야 : 환경/생태문제 1위 (브랜드 지수 152,491점), 과학 15위 (브랜드 지수 203,542점), 역사 27위 (브랜드 지수 38,412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인류세, 인간의 조건에 대한 새로운 성찰!

인간 중심의 지구화 역사로는 기후변화가 제기하는 인간적·정치적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없으며, 인류 역사와 행성의 길고 깊은 역사라는 불균형적 시간 척도 사이에서 새로운 이해의 방법을 모색한다

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나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MBA를 마친 뒤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가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는 몇십 년 동안 기후변화의 의미를 탐구한 매우 영향력 있는 역사가다. 그는 기후변화가 역사, 근대성, 지구화라는 오래 지속돼온 관념을 뒤집는다고 주장한다.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의 과제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하고, 인문학자들이 다시 생각해보기를 꺼리는 관념들, 즉 인간 행위의 변화한 본성으로부터 보편적인 것의 새로운 수용에 이르는 관념들과 대결하게 하는 것이다.
차크라바르티는 이 책에서 현대 인류가 부딪힌 기후변화 문제를 역사 연구와 결합한다. 기후변화는 인류의 역사가 우리 행성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너무도 분명히 보여주었으며, 그런 까닭에 역사가들은 더는 물질적 현실과 비인간의 세계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나 아렌트, 카를 슈미트, 브뤼노 라투르, 얀 잘라시에비치 등과 같은 사상가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역사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잘 근거 지어진 설득력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책의 구성

서론 “행성적인 것의 고지”로 시작하는 이 책은 1부 “지구와 행성”(1 네 가지 테제, 2 결합된 역사들, 3 행성: 인간주의적 범주), 2부 “근대적이라는 것의 어려움”(4 근대적이라는 것의 어려움, 5 행성적 열망: 인도에서의 한 자살 읽기, 6 지속하는 우화의 폐허에서), 3부 “행성적인 것 마주하기”(7 인류세 시대, 8 인간학적 개간을 향하여)와 후기 “지구적인 것은 행성적인 것을 드러낸다: 브뤼노 라투르와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논의는 간결하면서도 필수적인 정보를 망라하며, 논지를 논리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전개한다.

1부 “지구와 행성”에서 차크라바르티가 내세우는 주장의 핵심은 지구/행성의 구별이다. 그에 따르면 ‘지구온난화’와 ‘지구화’에서 ‘지구’의 의미는 서로 다르다고 한다. ‘지구화’에서 ‘지구’는 인간 중심적 구조를 가리킨다. 지구화의 역사는 인간이 탐험과 정복 및 기술을 통해 지구에 대한 감각을 만들어낸 역사이며, 지구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망으로 축소된 역사다. 반면 ‘지구온난화’에서 ‘지구’는 대지 시스템으로서 행성을 의미한다. 행성은 인간을 탈중심화하며, 따라서 인간은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 하나의 종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행성의 역사와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라 일컫는 최근의 인류 역사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서로 다른 것으로 다루어진다. 하지만 기후변화 문제에서는 서로 다른 시간성이 결합한다고 주장하는 차크라바르티는 이것이 역사와 인간 그리고 정치를 바라보는 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숙고한다. 탄소는 수십만 년 동안 대지 시스템에서 순환하며 기후와 다양한 형태의 생명체에 복잡한 결과를 초래했다. 나아가 현재의 기후변화는 인위개변적인 것이 분명하고, 같은 행성 시스템을 통해 모든 사람과 모든 생명체에 영향을 미친다. 사실 현재의 팬데믹, 재생 가능 에너지, 화석연료, 기후변화, 극단적 기후 사건, 물 부족, 생물 다양성의 상실, 인류세, 전 지구에 걸친 권위주의적·인종차별적·외국인 혐오적 정권의 부상 등은 우리의 행성 차원에서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고 그것이 인간의 행동과 관련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인간적 규모의 일상적 정치에서는 이러한 종류의 느리고 장기적인 과정을 고려하지 못한다. 차크라바르티는 우리의 정치 제도와 그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매우 인간 중심적이고, 따라서 기후 위기가 대부분 지속가능성과 인간 불평등의 문제로 다루어지고, 관련 담론이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를 스스로 성찰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두 가지 관점, 즉 행성적인 것과 지구적인 것에서 동시에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2부 “근대적이라는 것의 어려움”에서는 자유의 근대적 이념이 근대성과 근대화의 다양한 비판자들에게 도전받은 뒤에도 여전히 그 매력을 유지하는 이유를 탐구한다. 여기서 차크라바르티는 포스트식민 국가들의 자유 개념과 화석연료 및 증대된 에너지 필요 사이의 밀접한 연관, 정치적인 것과 인간 몸의 연관, 인간의 도덕적 삶과 동물적 삶의 구별 등이 현재의 생물권 위기에서 어떻게 실패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는 지구의 오랜 역사, 지구상의 다세포 생명체, 그리고 최근의 인간과 자본주의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문제 전체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물론 환경사학자들은 역사에서 비인간 행위의 중요성을 오랫동안 논의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배경이나 외부적 작용으로 파악되는 데 그쳤다. 차크라바르티는 우리의 일상과 복지가 비인간 세계와 대지 시스템의 거대한 과정과 내적으로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아울러 인위개변적인 지구온난화 시대에 인간의 번영과 인간 사이의 정의 물음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몸과 지구의 비인간 요소 사이의 연결을 축소하는 것은 인간의 번영이라는 목표 전체를 실패로 규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미 거대한 지질학적 과정을 우리의 정치와 얽어매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차크라바르티는 인류의 역사와 지구의 자연사가 서로 하나로 얽혀 있으며, 따라서 인간 중심의 지구화 역사로는 기후변화가 제기하는 인간적·정치적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2017년 출간된 윌리엄 코널리의 책에 대한 오마주인 3부 “행성적인 것 마주하기”에서 차크라바르티는 인류 역사와 행성의 길고 깊은 역사라는 불균형적인 시간 척도들 사이에서 새로운 이해의 방법을 모색한다. 그는 얀 잘라시에비치가 행성 중심 사유 양식이라 일컫는 것을 해명하는 가운데 그 모든 문제를 껴안고 있는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 시대 개념이 우리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적합한 개념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인류세를 논의할 때 ‘대지 역사와 세계사 사이의 항구적인 개념적 교통’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인류세’가 지질학적 시간의 척도일 뿐만 아니라 본래는 인간이 대지에 미친 영향의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 개념은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다. 물론 인류세와 관련해서는 무엇이 인류세를 초래했는지, 언제 인류세가 시작되었는지, 누가 이 시대의 개시에 책임이 있는지, 그리고 이 시대의 명칭으로 ‘자본세’나 ‘경제세’가 더 적절한 것은 아닌지 등 해결되지 않은 물음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인류세는 이제 대지과학자와 인문학자를 하나로 모으는 데 성공했으며, 차크라바르티는 바로 여기에 이 개념의 설명적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류세라는 용어가 현재의 기후 위기를 설명하는 데 널리 사용되는 유행어이지만, 차크라바르티는 이 개념을 능숙하게 분석하고 우아하게 논증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현재의 기후 위기는 인류의 가장 커다란 위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 위기는 문명을 통해 강력해진 인간의 힘이 대지 시스템 전체를 교란한 결과다. 인간이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 즉 ‘인류세’를 초래한 것이다. 또 그것은 문명을 번성하게 한 충적세의 온화한 조건들을 사라지게 하고, 이 지구에서 인간의 생존 조건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이러한 ‘인류세’는 환경을 지배함으로써 미래를 만들어가는 인간에 대한 근대의 믿음을 다시 반성하고, 이 지구에서 앞으로도 인류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과 지구의 미래에 대한 과학적인 파악, 윤리적·철학적 반성과 고찰, 그리고 그에 기반을 둔 정치적·실천적 전망이 필요하다.
따라서 디페시 차크라바르티의 이 책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는 인간과 자연환경의 상호작용에서 비롯한 기후변화의 위기 상황을 과학적으로 파악하고, 그와 관련한 윤리적·정치적·철학적 사유의 기본 원리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현재 상황을 총체적으로 살펴 미래를 위한 대안을 찾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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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limate of History in a Planetary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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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limate of History in a Planetary Age
Dipesh Chakrab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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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the past decade, historian Dipesh Chakrabarty has been one of the most influential scholars addressing the meaning of climate change. Climate change, he argues, upends long-standing ideas of history, modernity, and globalization. The burden of The Climate of History in a Planetary Age is to grapple with what this means and to confront humanities scholars with ideas they have been reluctant to reconsider—from the changed nature of human agency to a new acceptance of universals.

Chakrabarty argues that we must see ourselves from two perspectives at once: the planetary and the global. This distinction is central to Chakrabarty’s work—the globe is a human-centric construction, while a planetary perspective intentionally decenters the human. Featuring wide-ranging excursions into historical and philosophical literatures, The Climate of History in a Planetary Age boldly considers how to frame the human condition in troubled times. As we open ourselves to the implications of the Anthropocene, few writers are as likely as Chakrabarty to shape our understanding of the best way forward.
READ LESSABOUT THE CLIMATE OF HISTORY IN A PLANETARY AGE
296 pages | 2 halftones | 6 x 9 | © 2021

Earth Sciences: ENVIRONMENT

History: ENVIRONMENTAL HISTORY, HISTORY OF IDEAS

Literature and Literary Criticism: GENERAL CRITICISM AND CRITICAL THEORY

REVIEWS
















TABLE OF CONTENTS
Introduction: Intimations of the Planetary

Part I: The Globe and the Planet

1 Four Theses
2 Conjoined Histories
3 The Planet: A Humanist Category

Part II: The Difficulty of Being Modern

4 The Difficulty of Being Modern
5 Planetary Aspirations: Reading a Suicide in India
6 In the Ruins of an Enduring Fable

Part III: Facing the Planetary

7 Anthropocene Time
8 Toward an Anthropological Clearing
Postscript: The Global Reveals the Planetary: A Conversation with Bruno Latour
 
Acknowledgments
Notes
In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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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racing Divine Purpose - Sunrise Ranch

Embracing Divine Purpose - Sunrise Ranch

Open Windows

An Interfaith Soul Care Blog
Sunrise Ranch > Open Windows > Embracing Divine Purpose

Embracing Divine Purpose


This Week's Quotation:


You must not let your life run in the ordinary way; do something that nobody else has done, something that will dazzle the world. Show that God's creative principle works in you.

~ Paramahansa Yogananda

Embracing Divine Purpose




Bexx Biehl-Kashyap Reiki Master, Yogini/Certified Yoga, and Meditation Teacher

In this vast world of routines and conformity, it is the courage within us that enables us to rise above the ordinary and explore uncharted territories. Yogananda's words remind us that our lives were never meant to blend in—instead, they are destined to radiate as luminous expressions of the Divine within. Embracing this truth sets ablaze the flame of purpose, guiding us toward a life imbued with profound meaning and fulfillment.

Living purposefully does not require grand gestures or global recognition. It beckons us to align our actions with the deepest truths that reside within, allowing the creative force that flows through us to find its unique expression. Within the depths of our being lies a treasure trove of untapped talents, passions, and dreams waiting to be unveiled and shared with the world. As we summon the courage to pursue these aspirations, not only do we nourish our own souls, but we also inspire others to embark on their own extraordinary journeys. We radiate as beacons of hope, casting a luminous light that illuminates the paths of those who walk alongside us.

Discovering our unique path calls for introspection and self-discovery, attuning ourselves to the whispers of our soul while silencing the clamor of societal expectations. In the serene moments of inner stillness, we connect with the Divine wisdom that guides our steps. This connection creates self-awareness that empowers us to transcend fear, embrace uncharted realms, and place our unwavering trust in a higher power to illuminate each step along our journey.

As we fearlessly venture forth, we set in motion a ripple effect that reverberates throughout the world. Living in perfect alignment with our purpose, we extend an invitation to others, empowering them to do the same. Together, we create a symphony of harmonious souls; each engaged in their unique and sacred callings. Through our authentic existence, we kindle a flame that spreads, inspiring and empowering others to ignite their own lives with purpose.

Let us hold in our hearts the remembrance that life is an extraordinary gift bestowed upon us to be cherished and honored through purposeful living. As Yogananda's eloquence so beautifully conveys, our lives possess an inherent potential to dazzle the world, illuminating the creative principle of the Divine that resides within each of us. Together, we co-create a world where every individual's light shines brilliantly, and the uniqueness within us all is joyously celebr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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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the authors of this blog, dedicate it to the transparent exploration of the world's sacred scripture and enlightened spiritual thought. We believe that the original inspiration of all faiths comes from a common source, named and revered in a myriad of ways. With that understanding, the innumerable symbols, beliefs, and practices of faith cease to divide. They become open windows to a common reality that inspires and unifies us. We find deeper insight and nourishment in our own faith and from the expression of faith from others.

We hope these weekly quotations and meditations speak to your heart and soul.


Posted on: July 13, 2023

21세기 약사경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으로

 21세기 약사경  

http://www.silsangsa.or.kr/bbs/board.php?bo_table=dharmatalk1&wr_id=345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으로

 


 

 구업을 맑게 하는 진언 


〔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3번)



 땅을 편안하게 하는 진언


〔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3번)



 법의 창고 여는 진언


세상에서 가장높고 매우깊어 미묘한법

백천만겁 지나도록 만나뵙기 어려워라.

내가이제 보고듣고 받아지녀 외우오니

부처님의 진실한뜻 알아지길 원합니다. 


〔 옴 아라남 아라다 〕(3번)



《 찬탄과 귀의 》


길을잃어 방황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질병으로 신음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가난으로 고생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외로움에 눈물짓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억울함에 가슴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증오심에 시달리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분노심에 몸을떠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복수심에 불이타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멸시당해 눈물짓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억압당해 절규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 업장을 참회하는 진언


예로부터 지금까지 내가지은 모든허물

그모두가 뿌리없는 탐진치로 인함이라

내가이제 정성모아 몸과마음 다바쳐서

쌓인허물 거듭거듭 지심참회 하옵니다


〔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3번)


 약사여래 치유광명 대다라니


가는이여 가는이여 광명의길 가는이여

어두움을 떨쳐내고 광명의길 가는이여


보는이여 보는이여 이 세상  모든존재 그물코로 보는이여

시방세계 부처님을 뵈옵듯이 뭇생명을 부처로 보는이여

오고가며 인사하는 우리이웃 우리친구 부처로 보는이여


아는이여 아는이여 그대가 나임을 아는이여

너와내가 둘이아닌 한몸임을 아는이여

하나속에 여럿있고 여럿속에 하나있음 아는이여

순간이 영원이요 영원이 순간임을 아는이여

순간순간 하나하나 저마다가 소중함을 아는이여


〔 옴 비살서 비살서 비살사 삼몰아제 사바하 〕(3번)



《 약사여래 21세기 큰 서원 》


21세기 큰 서원의 주인공인 

대자대비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발원하옵니다.


삶을 좋아하고 죽음 혐오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죽음도 빛나고 삶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젊음만을 좋아하고 늙어감을 싫어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늙음도 빛나고 젊음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남성만 존중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여성도 빛나고 남성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인간만을 사랑하고 자연생태 괴롭히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자연도 빛나고 인간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자기만을 내세우고 상대방을 내려보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상대도 빛나고 자기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개인만 앞세우고 공동체를 뒤로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공동체도 빛나고 개인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침묵은 금이고 대화는 흙이라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대화도 빛나고 침묵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대자대비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발원 하옵니다


소유만을 추구하고 존재가치 외면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존재도 빛나고 소유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부자만 떠받들고 가난한이 무시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소박함도 빛나고 풍족함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특별함만 좋아하고 평범함을 멸시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평범함도 빛나고 특별함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경쟁만을 좋아하고 협력상생 거부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협력도 빛나고 경쟁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내편만 좋아하고 상대편을 배척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상대편도 빛나고 우리편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서울에만 집착하여 지역사회 홀대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지역도 빛나고 서울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도시만을 좋아하고 농촌마을 방치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농촌도 빛나고 도시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출가불자 우대하고 재가불자 경시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재가도 빛나고 출가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절집안만 중시하고 이웃마을 방관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마을도 빛나고 절집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나무 대자대비 약사여래불 

나무 일광변조 보살마하살

나무 월광변조 보살마하살 (3번)


대자대비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발원 하옵니다


전쟁테러 생명파괴 어리석은 재앙이니 

무기없고 폭력없는 세계평화 원합니다.


국가민족 인종계급 이모두가 망념이니 

지구촌의 가족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인간만이 이세상의 주인이란 생각놓고 

인간자연 뭇생명들 화목하길 원합니다.


기후위기 불러오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산하대지 조화로운 밝은문명 원합니다.


성장이윤 집착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나누면서 서로돕는 밝은문명 원합니다.


기업노동 반목하면 모두에게 해로우니 

함께가는 노사문화 가꿔가길 원합니다


성현들은 한결같이 사랑평화 원했으니 

이웃종교 존중하는 종교평화 원합니다.


대자대비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발원하옵니다


소외박탈 커져가는 차별사회 넘어서서 

평등하게 주인되는 세상살이 원합니다.


앞만보고 달려가는 일등주의 멈추고서 

함께사는 협동문화 가꿔가길 원합니다.


윤리없고 사랑없는 지식정보 위험하니 

존재실상 바로보는 참된지혜 원합니다.


주의주장 사로잡힌 자기견해 집착않고 

참된변화 가져오는 중도실천 원합니다.


나와세상 둘로보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중도연기 밝은문명 가꿔가길 원합니다.


대자대비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발원하옵니다


획일성만 강요하는 미혹문명 넘어서서 

다양성을 꽃피우는 깨달음의 문명으로


인위조작 지배하는 미혹문명 넘어서서

자연모습 닮아가는 깨달음의 문명으로


최고만을 고집하는 미혹문명 넘어서서

단순하고 소박한삶 깨달음의 문명으로


죄의식에 시달리는 미혹문명 넘어서서

본래붓다 동체대비 깨달음의 문명으로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

차별의 문명에서 평등의 문명으로

분열의 문명에서 공존의 문명으로

업보중생 문명에서 본래붓다 문명으로

미혹의 문명에서 깨달음의 문명으로 

하루속히 전환되게 하옵소서

                                 

나무 대자대비 약사여래불

나무 일광변조 보살마하살

나무 월광변조 보살마하살 (3번)

                                 


 원성취진언


〔 옴 아모카 살바다라 사다야 시베 훔 〕(3번)

                                 


 광명진언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르타야 훔〕(3번)


부지런히 정진하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부처님의 열반유훈 가슴깊이 새깁니다

여래의뜻 삼학수행 원만하게 이루어서

한량없는 공덕으로 온세상을 장엄하니 

너도나도 모두함께 해탈열반 누리소서


〔 마하반야바라밀 〕(3번)



 네 가지의 큰서원을 세웁니다


가이없는 모든중생 제도하길 원합니다

다함없는 삼독번뇌 모두끊기 원합니다

한량없는 가르침을 다배우길 원합니다

위가없는 부처님도 이루기를 원합니다



 모든발원 마치옵고 삼보전에 귀의하네


시방세계 항상 계신 보배로운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시방세계 항상 계신 보배로운 가르침에 지성귀의 하옵니다

시방세계 항상 계신 보배로운 승가앞에 지성귀의 하옵니다 (3번) 


젊음도 빛나고, 늙음도 빛나라! |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을 여는 지혜, 지리산 실상사 '21세기 약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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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도 빛나고, 늙음도 빛나라! |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을 여는 지혜, 지리산 실상사 '21세기 약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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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2 views  Nov 5, 2020  #도법스님 #법인스님
전북 남원 실상사는 지리산 산골에 있다. 그러나 그곳에선 시대를 고민하는 이들이 늘 찾아든다. 대화가 끊이지않는 곳이다. 실상사를 주변으로 공부모임, 철학모임, 장담그기모임, 공방등 50여개의 동아리도 있다. 전국 시골에 빈집이 늘지만 실상사가 있는 산내면은 전국에서 귀농인이 가장 많다. 그 중심에 도법 스님이 있다. 그 실상사에 얼마전 조계종 교육부장과 참여연대공동대표를 지낸 법인스님과 함께했다.

그들이 최근 일을 냈다. 경전을 낸 것이다. ‘21세기 약사경’이다. 원래 약사여래불은 병을 고쳐주는 부처님이다. 그러나 어찌 병이 몸의 병뿐일까. ‘코로나’는 병든 문명을 말해준다. ‘21세기 약사경’은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을 여는 지혜의 경전이다. 이미 그 경전으로 실상사에 천일기도가 시작됐다. 시작은 미약하되 끝은 창대할만큼 심오한 내용이다. 이 경을 놓고 도법 스님과 법인 스님, 조현 기자가 실상사 툇마루에 앉아 격의없는 대화를 나눴다. #도법스님 #법인스님 #21세기약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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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와 예수, 한반도의 해법을 고민하다 _ 도법스님 미국 방문기 2013 | 실상사

부처와 예수, 한반도의 해법을 고민하다 _ 도법스님 미국 방문기 > 법회와 설법 | 실상사

부처와 예수, 한반도의 해법을 고민하다 _ 도법스님 미국 방문기

작성자 실상사 13-05-10 
조회9,621회 

'부처'와 '예수', 한반도의 해법을 고민하다
[대담] 도법 스님과 울리히 두크로 하이델베르크 석좌 교수

13.05.08


▲ 도법 스님
ⓒ 안희경
지난 4월 19일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 제임스 채플에서 도법 스님은 세계에서 모인 신학도와 불교도에게 질문을 던졌다.

"붓다가 도둑질을 했다면, 그를 무엇이라고 부르겠습니까?"

도법 스님의 답이다. "그렇다면 그는 도둑입니다." 이어서 "불교인은 오랜 시간 깨달음의 관념에 구속돼 고통 받아 오고, 기독교인은 신의 관념 속에 구속돼 고통 받아 왔다"고 꼬집었다. 도법 스님은 "붓다의 뜻, 예수의 뜻은 관념이 아니라 행위로써, 실천으로써 좇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순간의 침묵 뒤에 청중의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도법 스님은 "지금 당장 붓다처럼 행동하고, 예수처럼 실천하자"라고 강하게 당부했고, 이는 환경 파괴, 여성·인종 차별, 전쟁과 폭력, 경제적 불평등, 내면의 성찰 등 세계의 석학과 활동가들이 발표하고 토론해 온 '세계 불교 기독교 콘퍼런스'의 여러 의제를 압축적으로 모아낸 본질적 메시지가 됐다.

바로 그 붓다의 행동, 예수의 실천이 현재 고통 받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해 봤다. 도법 스님과 독일의 행동하는 석학이자 신학자인 울리히 두크로 교수와의 대담이다.

"평화 운동의 진짜 열쇠는 긴장 해소에 있어"

울리히 두크로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조직신학과 석좌교수로서, 사회·경제적 문제를 연구해온 석학이며, 금융 세계화에 따른 폐해를 비판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국제조직인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의 독일 지부를 만든 활동가이기도 하다. 이번 콘퍼런스에서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고통'이라는 주제 발표를 했으며, 국내에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대안>, <성서의 정치경제학> 등 그의 저서가 소개돼 있다.

도법 스님과 울리히 두크로 교수의 대담은 지난 4월 19일 오후 9시 유니언 신학대학 소셜홀에서 필자의 사회로 진행됐다.



▲ 울리히 두크로 교수.
ⓒ 안희경
- 두 가지 큰 줄기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한국인들이 당면한 안보 문제로, 위협적인 갈등에서 벗어나 평화를 키워가는 해법이고요. 두 번째는 평화 문제를 포함해 모든 갈등의 바탕을 이루는, 점점 더 치열해지는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환경적인 재앙까지 빈번하게 이어지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이기에 공포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울리히 두크로 "두 가지는 하나로 연결돼 있지요. 평화 역시 자본주의와 관계되니까, 하나를 짚어도 전체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우선, 50년 넘도록 초강대국들의 게임장이 돼버린 한반도와 그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한국인에게 안타까운 제 마음을 전합니다.

미국은 한국을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오래된 전진기지에서, 중국을 에워싸는 기지로 바꿔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1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태평양에 군사력을 새롭게 배치했죠. 800여 개의 미군부대가 세계에 퍼져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미국이 서방에 자신들의 이런 군사 계획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카운터 파트너로 북한이 필요하겠구나 싶습니다.

한반도는 미국의 관심이 가장 고조된 지역입니다. 여기 얽혀 있는 중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인 관점까지 포괄적으로 비판하지 않고는 한반도 긴장을 풀기 어렵죠. 바로 이런 국제적인 관점에서 미국과 강대국들의 전략과 선전을 해체해내야 합니다. 서구 사람들도 한국인들과 연대하며 일할 수 있습니다."

도법 스님 "한반도 문제는 당사자가 남과 북이잖아요. 현재 상황에서 보면 북한에 비해 남한이 경제력을 위시해 국력이 월등하니까, 대한민국이 주체적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이 서로 갈등하고 있습니다. 진영을 넘어서서 민족의 문제를 함께 풀려는 입장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 종교인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식민지 아래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경험이 있어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기독교 입장, 천도교 입장, 불교 입장을 내려놓고 하나로 행동했죠.

왜냐하면, 그때 민족의 최우선 과제는 기독교도, 천도교도, 불교도 아니었기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종교계가 한반도의 평화,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 나서야 합니다. 각 구성원들에게 교육하고, 한국 사회에 공론화시켜야 합니다. 우리 국민이 사안을 절실하게 바라보도록 바탕을 만들어놓게 된다면, 정부와 대통령도 그런 방향에서 바라보게 된다고 봅니다.

이 바탕 위에서 중국을 설득하고, 미국을 설득하고, 일본과 러시아를 설득해 우리 입장을 관철할 힘을 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런 주체의 자각 없이는 결국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또다시 분단 초기처럼 흘러가리라 봅니다."

- 국제적인 관계 속에서 보려는 두크로 선생과 달리 도법 스님은 한국인 내부의 인식과 노력을 강조하며 그 속에 분산돼 있는 역량의 대립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미 통일을 경험한 독일의 경우 역시 강대국들 속에서 주체의 역량을 키우기 어려웠던 환경이었다고 보는데요. 어떻습니까?

울리히 두크로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냉전시대 동독과 서독은 강력한 평화운동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평화운동에서 '보편적인 안보 개념'을 키워야 한다는 겁니다. 세계의 열강들은 한국과 북한이 서로를 적대시하며 긴장 속에서 지켜가는 안보를 원합니다.

독일에서도 그랬죠. 그러나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세력들은 안보란 '동독과 서독이 협력해서 이뤄내는 평화'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어요. 적대시하는 대립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는 상태가 진정한 안보라는 입장을 키워갔습니다. 평화운동의 진짜 열쇠는 긴장을 해소하고 사람들이 함께 하는데 있습니다."

GNP 200배 성장한 지금의 한국, 왜 길을 잃었을까



▲ 참여불교 심포지엄에서 발표하는 도법 스님과 이를 통역하는 혜민 스님.
ⓒ 안희경

- 한국인들의 입장 가운데 대등한 군사력으로, 힘의 균형을 통해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자는 입장도 있고, 또 통일 자체에 대해 혼돈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부담스러워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어쩌면 '전쟁으로도 내 삶을 흔들지 말고, 통일로도 부담을 주지 말라'는 피로감일 수도 있겠습니다. 현재 그만큼 살기 힘들다는 호소입니다.

도법 스님 "그건 이분법적인 접근입니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의 생활 깊숙히 파고 들어온 '너를 이겨야 내가 산다'는 문화입니다. 이분법적 세계관과 적대적 방법론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반응하는 한 끊임없이 죽임과 죽임을 당하는 불안과 공포가 생산될 수밖에 없어요. 이미 우린 역사 속에서 그걸 확인했습니다.

미국의 국익 논리, 대한민국의 국익 논리, 한반도 우리 민족의 이익 논리에서 진짜로 바라본다면, '지금의 분단 상황이 돈 벌기에 더 좋고, 내 기득권을 지키기 더 좋다'는 입장은 몇몇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국익이라고 할 때는 국가 구성원 전체를 염두에 둬야 하고, 한반도의 이익도 민족 구성원 전체의 이익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큰 방향과 기본 원칙을 확고하게 해서 단계별로 접근해 나가야 합니다. 평화를 일궈내는 일을 종교계가 풀어내면, 지역적인 사안과 개별적인 사안들도 많이 풀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 여기서 현재 경제시스템의 조건을 바라볼 때라고 봅니다. 울리히 두크로 교수께서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교회가 나서서 성경의 근본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보면 한국의 최대 교파인 장로교의 근간인 칼빈을 비롯해 후기 기독교가 자본주의의 개발 경쟁을 지원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 신이 주신 선물이다'라는 말도 자주 듣곤하는데, 기독교 정신이 자본주의의 대안이라는 주장에 의문이 생깁니다.

울리히 두크로 "칼빈주의 기독교가 자본주의와 관계가 깊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실상은 아닙니다. 부는 '모든 사람이 충분히 소유하고 풍성하게 갖도록 공유돼야 한다'는 것이 칼빈의 가르침입니다. 자본주의는 루터가 나온 15, 16세기보다 훨씬 전인 13, 14세기에 출현했어요. 루터 이전에도 와잇 클릭비라는 기독교인은 자본주의 때문에 고통받는 농민들과 함께 운동을 해왔고, 나중에 나온 루터도 자본주의에 반대했습니다.

자본주의의 뿌리는 기원전 8세기 화폐가 거래되기 시작한 그 시점에 있는데, 나중에 후기 자본주의시대만 확대해서 자본주의라고 강조되고 있죠. 옛날 종교인들, 노자, 공자, 예수, 부처,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이들 모두는 이 탐욕적인 돈에 대해 거리를 두도록 가르쳤습니다. 루터도 성경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정신을 당시 교회에 불어넣었습니다. 개혁가들은 이후 출현하는 발전된 자본주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죠. 다만 그 이후에 등장한 미국 청교도주의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기독교를 제압하고, 자본주의와 하나로 연결돼 나갔던 겁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요구하는 건 우리가 피부로 경험하는 지구의 파괴를 막기 위해 모든 공동체가 다같이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경제와 개발의 탐욕에서 개인들도 벗어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일을 최후의 심판 때 핵심 기준으로 삼아 가난한 자들과 예수님을 완전하게 동일시했습니다. '칼빈주의를 신봉하는 교회라면 그 교회는 무엇보다 자발적인 분배 현상이 일어나야 하고, 그럼으로써 평등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칼빈을 비롯해 칼빈을 따르는 이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자본주의는 제도화된 탐욕이 개인적인 욕망과 하나로 엮어져 축적돼 왔습니다. 자본주의는 사람의 욕심과 탐심을 필요로 하고, 그 탐심으로 계속 강화되고, 그것이 더 거세지는 제도입니다. 그리스도 정신과는 반대입니다."

도법 스님 "20세기 100년을 보면, '더 많이 갖자, 더 편해지자, 그러면 세상은 더 좋아질 것이다'라며 달려왔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는 그렇게 해서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이뤘죠.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국민총생산(GNP) 100달러 수준에서 지금은 2만달러이니 200배 더 커졌지만, 사람 관계는 극단적으로 불신하고 미워하면서 결국은 젊은이들의 자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연 생태까지 심각하게 파괴하고 오염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농촌 사회는 해체되고, 농업은 무너지고, 그것이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병들고 위험하게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어디에서 우리가 길을 잃은 것인가?' 저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그 심층적인 원인이 잘못된 세계관에서부터 나옵니다. 이 세상은 한 사람, 한 사람 존재들이 다 연결돼 있고, 의지해 있고, 영향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 전통 속에는 이런 세계관과 정신으로 살았던 마을 공동체가 있었죠. 그 마을 공동체의 내용을 단순화시키면 이웃과 이웃이 서로 믿고 협력하고 나누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문화가 됐고, 마을의 운영 체계로 제도화돼 살아왔습니다."



▲ '불교인은 오랜 시간 깨달음의 관념에 구속되어 고통 받아 오고, 기독교인은 신의 관념 속에 구속되어 고통 받아 왔다'고 관념을 벗어나야 한다고 발언하는 도법스님.
ⓒ 안희경

- 공동체적인 삶이 지속가능한 대안이 되려면, 그 안에는 안정된 일자리가 마련돼야 한다고 봅니다. 과당 경쟁은 모두가 소유하기 어려운 제한된 조건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 아닐까요?

도법 스님 "우리에겐 소유도 필요하고, 생활의 편리를 위한 기술도 필요합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심각한 모순과 위험에 직면했어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중심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 관계에서 서로 신뢰를 회복했을 때, 자본주의의 이기주의, 경쟁주의, 정복주의를 넘어서거나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나온다고 봅니다."

울리히 두크로 "행복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느 정도까지만 충족되면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그 상태에서 더 많이 가질수록 행복이 증가하지는 않다고 나옵니다. 그럼 무엇이 진정으로 행복하게 우리를 만들어 주느냐 하면, 그것은 좋은 관계에서 나와요. 단 둘의 사이뿐만 아니라, 자연이나 사회와의 관계도 원만해야 행복합니다.

이는 종교적인 신념과도 연결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자본은 증식한다'라고 정의되는 그 믿음만이 중요합니다. 자본은 환금 자산을 말하는데, 이는 더 많이 가지면 늘어날 것이라는 정의죠. 자본은 반드시 증식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산업화 사회는 우리에게 에너지와 자원도 투자의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제한적인 지구에서 제한없이 증식될 거라는 아이디어입니다. 그런데, 만약 모든 지구 사람들이 미국인처럼 생활하려고 한다면 지구가 6개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유럽 사람처럼 살려면 지구가 3개 더 필요하죠. 이 의미는 자본주의가 수학적으로 가능성이 없는 제도라는 걸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모든 사람을 충족시켜줄 경제가 필요합니다. 이는 불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며, 성경에도 나와있는 내용입니다. 나누는 겁니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것을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눈다면, 모두 충분하게 소유할 수 있습니다. 지구의 생산량은 120억 사람에게 충분하다는 UN 연구자료에 따르면, 현재 70억 지구 인구가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양이 되고, 우리 손자들도 이 지구를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됩니다."

도법 스님 "그런데,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들은 끊임없이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감각적으로 물질적 풍요를 갈망합니다. '왜 계속 인간이 탐욕을 부리는가?'에 대한 해답이 없다는 것이 현재의 문제입니다."

울리히 두크로 "자본주의는 탐욕을 반겼고, 탐욕이야말로 경제의 동력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가 근본적 문제입니다. 환경 문제, 사회 문제에 대한 해답을 자본주의에서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변화를 가져갈 수 있을까요? 시스템과 개인의 욕망을 다스리는 새로운 협동경제가 필요합니다. 오스트리아에서 2년 전에 15개 중소기업들이 '공동의 선'을 향한 착한 경제를 주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재투자하도록 이윤을 내지만, 기업 정신은 이윤을 내는 것이 주요 목표가 아니라 좋은 기업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2년 뒤에 800개 이상의 중소기업들이 이 운동에 동참하겠다고 모여들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우리 시대의 경제를 치유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기서 스님에게 익숙한 인도의 예를 들어 봅시다. 농사가 기업형 농업으로 바뀌었습니다. 기업으로 바뀌고 나서 매일 평균적으로 54명의 농부가 자살했습니다. 자본화된 농업으로 인해 빚 때문에 죽은 겁니다. 그리고 작은 기업들이 새로운 협동의 양식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착한 경제를 위해서죠. 건강한 먹거리 이런 경제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경제입니다. 동시에 사회 운동도 신자유주의가 증진하려고 했던 수자원, 에너지, 교통의 사유화를 막고자 나서고 있습니다."

도법 스님 "네, 이 욕망이 제도화되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죠. 왜 이기적 욕망에 매몰될까? 불교의 세계관으로 보면, 이 세상의 어떤 존재도 따로 홀로는 살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동시에 어떤 누구도 온전히 함께만 살 수도 없게 되어 있죠. 어떤 측면은 함께 살아야 할 부분이 있고, 어떤 측면은 또 따로 살아야 할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함께 하는 부분은 거의 사라지고, 온통 개인으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따로'와 '함께'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생명의 법칙, 존재의 법칙에 대한 집중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더불어 함께 사는 개인의 주체적 역할도 중요하고, 이런 세계관이 사회의 시스템과 문화로도 반영돼야 합니다. 협동과 나눔의 삶을 문화와 철학으로 그리고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 울리히 두크로 교수의 대안은 경쟁의 틀을 협동 틀로 바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착한 경제를 지향하자는데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도법 스님께서 무게를 더 두는 부분은 '주체의 자립이 결국은 타인의 협조 속에서 가능할 수 밖에 없다'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명 본질에 대한 이해를 높여 인식 전환으로 현실적 방법을 모색해 나가자는 데 있다고 볼 수 있구요.

하나의 지향을 향해 나아가는 방식에서 집중하는 부분이 교차하지만, 이 둘이 하나가 될 때 보다 지속가능한 변화를 이루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여겨집니다. 이 시간이 계기가 되어 더욱 활발한 동서 교류, 종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연대가 이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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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두크로(Ulrich Duchrow) 하이델베르크 석좌 교수

울리히 두크로는 조직신학과 에큐메니칼 신학 교수로서 사회·경제적 문제를 집중 연구해온 석학이다. 경제와 생태적 정의를 키워가고자 조직된 세계 교회주의 풀뿌리 네트워크인 카이포스 유로파 공동 창업자고,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 따른 폐해를 비판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창립된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을 독일에 창설하였다.

울리히 두크로는 금융자본을 통한 종속적 세계화 반대 및 대안 세계화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여러나라 언어로 번역된 여러 책을 펴냈다. 국내에 출간된 저서로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대안>, <성서의 정치경제학> 등이 있으며, 2012년에는 독일어와 영어로 <탐욕의 돈 초월하기>를 써서 화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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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 스님(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추진본부' 화쟁위원회 위원장)

18살이 되던 해 출가했고, 1990년 불교 결사체인 선우도량을 만들어 청정불교 운동을 이끌었다. 1995년 지리산 실상사 주지로 부임해 귀농학교, 대안학교, 환경운동 등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동을 펼쳤다. 2004년 실상사 주지 소임을 내려놓은 후, 생명평화 탁발순례의 길을 떠났다.

이후 5년 동안 3만 리를 걸으며 8만 명의 사람을 만나 생명 평화의 가치를 전했다. 현재 지리산 실상사 회주이자, 대한불교 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추친본부' 화쟁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으며, 다툼 없고 평화로운 사회로 가는 길을 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지금 당장>, <내가 본 부처>, <망설일 것 없네 당장 부처로 살게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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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붓다로 살자 _ 국제컨퍼런스 강연소식과 강연문전문 [2013 ] 실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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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붓다로 살자 _ 국제컨퍼런스 강연소식과 강연문전문
작성자 실상사 13-04-25


도법스님, "지금 당장 붓다로 살자"
美유니온신학대학원 강연서 세계 종교인들에 역설

2013년 04월 22일 (월) 박봉영 기자 budgate@hanmail.net

▲ 도법스님의 강연모습.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도법스님은 19일 세계적 참여불교인과 해방신학자들 앞에서 화엄경의 본래부처론과 동체대비행에 바탕을 둔 생명평화 사상을 역설했다.
강연은 미국 유니온신학대학원 국제 컨퍼런스에서 이뤄졌다. 도법스님은 '나의 불교수행, 화엄세계관과 생명평화운동-지금 당장 붓다로 살자, 붓다로 행동하자'는 제목으로 강연에 나섰다. 결사추진본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날 강연 소식을 전했다.
도법스님은 "붓다란 먼 훗날 도달해야 할 저 멀리 있는 신비하고 특별한 어떤 목적지나 경지가 아니다. 지금 당장 그대와 내가 본래 거룩한 붓다임을 알고 서로를 지극 정성으로 잘 모시고 섬기면 그 자체가 붓다로 살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 밖에 또 다른 무엇이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생명평화무늬를 소개하는 것으로 강연은 시작됐다.
도법스님은 "온 우주의 유형‧무형의 모든 존재들이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며 살도록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생명평화무늬가 인류 역사의 많은 지성들에 의해 파악되고 제시된 보편적 세계관의 총화”라며 “모든 존재들이 나의 생명을 낳고 길러내는 거룩하고 신비한 모체이므로 당연히 지극 정성을 다하여 서로 잘 모시고 섬겨야 한다"고 역설했다.
도법스님은 자신의 삶과 수행의 역정 속에서 어떻게 생명평화사상에 도달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을 벌여왔는가에 대해서도 말했다. 실상사를 중심으로 한 대안적 운동, 생명평화결사, 생명평화탁발순례, 천성산, 새만금, 봉은사,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등 갈등해결 노력, 종교평화선언 발표와 자성과쇄신결사운동등을 세계의 참여 종교인들에게 소개했다.


▲ 강연에 앞서 열린 세계 참여불교인들과의 대화 모습.

도법스님은 결론적으로 모든 종교가 갈 길은 생명평화의 길이라고 역설하며 지구촌생명평화공동체를 만드는데 모든 종교인들이 힘을 합치자고 제안했다.
"인류문명사를 성찰적으로 살펴볼 때 존재법칙에 어긋나고 생명가치를 망각한 채 상대에 대한 불신과 분노, 증오와 공포의 마음으로 온갖 그럴듯한 명분으로 편 가르고 싸우고 이기고 지배하는 방식의 그 어떤 길도 우리가 갈 길이 아닙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오늘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인내와 관용과 비폭력 평화의 마음으로 온 우주의 모든 것들이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한 몸 한 생명임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생명평화무늬의 길입니다. 생명평화의 삶, 생명평화의 세상은 모든 인류의 영원한 염원이며 21세기 시대정신입니다. 우리 종교가 나서서 실현해야 할 21세기 절체절명의 화두는 바로 ‘지구촌 생명평화 공동체’입니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할 때 비로소 종교가 종교다워집니다."
한편, 도법스님은 17일, 18일 진행된 각종 토론회에 참여했으며 19일에도 참여불교 동서양의 대화에 법륜스님(정토회 지도법사), 슐락시바락사 등 세계적인 참여불교인들과 함께 토론 패널로 참여했다. 울리히 두흐로브(독일 하이델베르그대 교수), 폴 니터(미국 유니온신학대학원 교수) 등의 종교인들과도 단독 대담을 가지기도 했다.
도법스님은 21일에는 뉴저지 소재 원각사(주지 지광스님)에서 현지 불자들을 대상으로 법문을 진행했으며, 22일부터 24일까지 미국 동부의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 시크교 등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종교간 대화를 나누고 종교간에 사회적 실천을 공동으로 벌여나가는 방안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 도법스님과 법륜스님.

다음은 강연문 전문이다.

[법문] 사람들과 관계에서 힘들고 괴로울 때...해강스님 법회와 설법 | 실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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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사람들과 관계에서 힘들고 괴로울 때...해강스님(5월첫주 서원법회)
작성자 실상사 12-06-09 10:17 조회8,7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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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서원법회


사람들과 관계에서 힘들고 괴로울 때


해강스님 (실상사 주지스님)


“그가 나에게 거친 말로 욕하고 비방하며
내 마음을 아프게 했네.
나를 때리고, 나를 누르고, 이겼네”
이렇게 마음에 간직하면 괴로움은 더욱 커지고
이렇게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미움과 원한 사라지고 마음은 고요해 진다네.

미움을 미움으로 갚으면
끝내 미움은 사라지지 않나니
오직 참음과 사랑으로 대할 때
미움은 사라지나니 이것은 영원한 진리라네.

아무리 교묘한 말로 남을 비난하더라도
깨끗한 사람은 더럽히지 못하나니
바람을 거슬러 먼지를 뿌리는 짓처럼
비난은 도리어 자기를 더럽힌다네.

“남의 허물만 꾸짖지 말고
힘써 내 몸을 살펴보자”
사람들이 만일 이렇게 알고 행하면
누구와도 다툼 없이 고요하리라.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큰 바위는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어진 마음 지니고 뜻을 굳게 세우면
비방과 칭찬에 흔들리지 않는다네.

예로부터 경쟁하는 사람들은 서로 헐뜯어
이러하면 이렇다고 비난하고
저러하면 저렇다고 헐뜯나니
경쟁하며 비방 받지 않는 사람 세상에 없네.

너와 내가 다퉈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이긴 사람은 원한을 불러와 괴로워지고
진 사람은 슬픔에 빠져 괴로워지나니
이기고 지는 다툼을 떠나 사는 사람 늘 평화롭네.

백만의 적과 싸워 이긴 승리보다
나 하나와 싸워 이긴 승리가 더욱 값지네
아무리 강한 상대와 싸워 이긴 승리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거둔 승리는 더욱 고귀하다네.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잘 가꾸어가라
잘 참고 너그러우며, 잘 베풀고 인자하라
미움에 사랑으로 대하고 원한을 자비로 감싸라
평화와 행복은 그대의 것이리라.
『법구경』



눈 내리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연초록이 보기가 좋지요? 아무리 바쁘게 사시더라도 가끔씩 지리산 쪽을 쳐다보세요. 연초록은 눈만 맑게 해줄 뿐 아니라 마음도 아주 맑게 해준다고 합니다. 아마 산색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때가, 산에서 뿜어내는 색깔이 우리 마음에 가장 크게 파장을 일으킬 때가 이때쯤이 아닐까 싶어요. 아기손만큼 이렇게 쭉 나온 새잎의 연초록 빛깔이 눈도 정화를 시켜주고 마음도 정화시켜준다고 합니다. 틈틈이 하늘도 한번씩 쳐다보시고 산도 한번씩 쳐다보셔서 하늘색으로 마음도 맑히시고 산의 연초록색으로 눈도 맑히시길 바라겠습니다.

앞자리에 서울 사시다 남원으로 귀향하셔서 오늘 첫 법회에 참석하신 분들이 계시네요. 잠시 일어서서 인사하실까요? 얼마 전에 첫손주도 보셨다고 합니다. 축하의 박수 부탁드립니다.(대중 박수) 용춘란 보살님은 이사하셨다면서요. 이사 떡공양도 올리셨고, 어디로 이사하셨어요? 중기로 이사오신 거예요? 중기가 터가 좋은가봐. 다들 중기로 모이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집짓는다고 집터를 봐달라고 해서 가서 봤는데 중기 쪽이 상당히 건방진 터더라구요. 이 골짜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 실상사입니다. 그런데 중기 땅이 이 실상사를 내려다 보는 곳이더라구요.(대중웃음) 그래서 그런가 중기로들 많이 모이는 것 같아요. 또 복덕행보살님은 어제부터 오셔서 자원봉사를 하시고 오늘 과일공양도 올려주셨네요. 고맙습니다. (대중박수)

일요일마다 어린이법회를 하는데 십여년전만 하더라도 2~30명씩 모였거든요. 요즘에는 시골에 아이들도 별로 없구요. 있더라도 일요일에 잘 나와놀지 않는 것 같아요, 시골마저도. 그동안 절에서도 제대로 신경써주지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린이법회때 아이들이 몇 안나오는데요, 그래도 몇 년간 꾸준히 어린이법회에 무구행보살님을 비롯해 몇몇 선생님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일요 법회가 이어지고 있고요, 아이들 생일 때마다 광주보살님들이 아이들 위해 케잌을 사다주십니다. 고맙습니다.

아시다시피 얼마 안있으면 부처님 오신 날이죠. 부처님 오신 날을 위해서 절에서 준비하고 있는 행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실상사 홈피에 들어가 보시면 뭘 하는지 자세히 안내되어 있으니 살펴보시길 바라고 그렇지 않으신 분들은 나누어드린 실상사 안내문을 참고하셨다가 일부러라도 시간 내셔서 참석하시길 바랍니다. 재미있는 것도 많습니다. 노래자랑 참석들 많이 하세요. 이번에는 마을대항으로 마천까지도 참석한답니다.


지리산댐, 왜 문제인가

제가 오늘 여러분들께 긴히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이곳저곳만의 문제는 아닙니다만 어쨌든 인간은 자기 이해관계와 딱 부딪혀야만 눈을 뜨는 못된 습성이 있습니다. 우리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천년넘게 실상사가 의지해 온 이 지리산에 총체적 위기가 닥쳤지요. 골프장, 스키장, 케이블카 등등의 문제가 있는데, 두 차례에 걸쳐서 지리산댐 건설을 막아냈습니다만 이번에 또다시 지리산댐이 시작되었습니다.

계획상, 서류상에는 실상사가 수몰되지는 않습니다. 만수위 때에는 실상사 끄트머리, 경상도와 전라도 경계선까지 물이 찬다고 합니다. 댐의 크기가 빌딩 50층 높이입니다. 140미터가 넘습니다. 높이로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댐이고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이가 긴 댐이 진주 남강댐이라고 합니다. 진주 남강댐에 이어 길이로는 두 번째로 긴 댐을 만든다고 합니다. 높이는 가장 높구요. 그런데 아시겠지만 댐은 일단 만들어지면 국가보안시설이 됩니다. 함부로 접근할 수도 없구요. 그러고 나서 높이를 보강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그런데 이 댐이 명목은 홍수조절용이라고 하는데 홍수조절용은 그렇게 만들지 않습니다. 홍수조절용 댐이 아니라, 4대강사업으로 해서 낙동강의 취수원이 다 없어졌습니다. 낙동강 취수원을 통해서 물먹고 사는 부산사람들을 위해서 5개의 댐을 만드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지리산댐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산쪽 시민들의 식수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5개의 댐을 다 합해도 낙동강 취수원에서 취수했던 물보다 적습니다. 그러니까 계속 취수하는 곳을 넓힐 수밖에 없고 취수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곳의 댐은 일단 지어놓고 다음에 보강해서 물을 더 많이 담게 하기 위해서 댐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봐도 뻔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처음 만들 때는 실상사가 안 잠기지만 거기서 2~3미터만 높이면 실상사는 수몰됩니다. 실상사뿐만 아니라 산내 전체가 수몰됩니다. 이것은 뻔히 보이는 수순입니다. 1단계로 짓고 2단계는 실상사를 중심으로 산내전체가 잠기는 수순입니다. 이것은 실상사나 이 지역에 사시는 우리에게 닥친 매우 중요한, 그야말로 생존의 문제입니다. 이 점에 대해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지역민들은 대부분 나라에서 한다는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마치 큰 죄를 짓는 일인양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나라를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앞장서 나서기를 꺼려합니다. 물론 지금도 많은 분들이 동참하고 있습니다만 2002년도에 댐을 물리칠 때에도 실상사가 중심이 되어 시작해서 좋은 성과를 얻었습니다. 이번에도 실상사가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 역할은 스님들만의 일은 아니지요. 또 산내면에 사는 실상사 신도들만의 일도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우리가 불사를 위해 천일기도를 올리지만 불사를 아무리 잘 해놓으면 뭐합니까. 함부로 속단할 수는 없지만 일단 댐공사가 이루어지고 나면 그다음에는 아마 십년 안팎에 2차 보강공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합니다. 그러니까 댐이 일단 완공되고 십년 이쪽저쪽에는 산내가 수몰될 수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점을 잘 인지하셔서. 지금 단계에서 못 막아내면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일단 공사가 시작되어 버리면 막기 어렵습니다. 지금 공사가 시작되기 전이니까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동참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가 돈 벌어서 내 돈 내고 밥 사먹는다고 생각하세요?

오늘날 우리나라 뿐 아니라 자연환경 파괴문제는 지구촌의 총체적 위기문제입니다.
어제 서울 동대의 부총장 부부가 오셨는데 부인께서 이혼상담 일을 하신다네요. 요즘에 이혼률이 매우 높답니다. 이혼 상담하는 연령층도 많이 내려오고 황혼이혼도 많다네요. 그리고 황혼이혼에서는 대개 남자들이 버려진다네요. 거사님들 조심하세요. (대중 웃음) 눈치도 보시고 더욱 잘하세요.

그런데 실제로 얘기를 들어보면, 상담하시는 분은 60이 다 되신 옛날 세대분이잖아요. 당신이 자랐던 시대와 세대차이가 엄청 나는 거예요. 당신 가치로 보면 아무 문제도 아닌 것이 지금 이혼하고자 하는 세대에게는 매우 중요한 거예요. 그런데 한걸음 물러나서 보면 사실 얼마든지 서로 양보할 수 있는 문제들도 많이 있답니다. 실제로 헤어지는게 좋겠다는 부부도 없잖아 있지만 그렇다는 것이지요. 이혼문제도 사회문제이지만 오늘날 보면 성인뿐 아니라 학생들의 자살, 인간성 상실에 따른 많은 사회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류미래를 걱정하는 선지자들은 오늘날 지구촌의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지요. 하나는 환경오염, 자원고갈 등의 환경생태문제, 또 하나는 인간성 상실에 따른 문제.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눈답니다. 인간성 상실에 따른 문제는 아주 폭이 넓습니다. 전쟁부터 시작해서 종교간․세대간․빈부간의 갈등 같은 것들도 인간성 상실에 바탕하고 있는 것들이지요.

어쨌든 지구촌이 이대로 굴러가서는 미래가 암담하다고 하는 것에 공감하고 많은 눈 밝은 선지자들이 고민을 하고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문명은 서구문화 중심입니다. 서구 문명이 현 인류전체 문명을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도 한번 보세요. 여러분 삶의 방식을 보면 김치나 된장국을 빼고는 입고 있는 옷을 시작해서 거의 서구문명식이지요?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들이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문제들인데 이런 문제들의 원인은 바로 서구문명을 이끌어 낸 사상과 철학의 문제로 귀결합니다. 다시 말해서 서구적 세계관의 문제입니다. 근본원인은 세계관의 문제, 즉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오늘날의 이 문명이 만들어진 것이고 그 문명에서 오늘날 현대문명의 위기가 초래된 것이라는 것이죠.

전문가들은 17세기 이후로 지구촌을 이끄는 문명의 세계관을 기독교적 세계관과 물질적 세계관, 이렇게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그런 세계관들이 오늘날 현대의 찬란한 문명을 만드는데 선두적 역할을 하고 토대가 된 것입니다. 매우 큰 장점도 있지요. 그러나 또한 그런 세계관이 오늘날 현대문명의 위기 역시 초래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명의 위기, 현대 삶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안의 세계관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대체로 보면 천장에 먼저 닿은 공이 먼저 떨어지죠? 또 땅에 먼저 넘어진 사람이 먼저 일어서잖아요? 그렇듯이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어서도 사실 서양 사람들이 더 앞서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식의 문명과 세계관으로써는 인류의 미래가 암담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그에 대한 대안들을 찾아왔었죠.

종교계․철학계․학계․시민사회계 등 각계각층에서 찾아왔는데 오랫동안 다른 장에서 찾다가 매듭을 짓는 단계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 공통점은 자유주의, 분리주의, 경쟁주의, 자본주의로는 안된다는 것이에요. 반대로 공존과 상생주의로 즉, 오늘날의 세계관과 문화는 개인의 자유를 매우 중요시 여기죠. 그래서 대체적으로 오늘날의 문명을 개체주의 문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개인주의, 자유주의는 경쟁을 전제합니다. 오늘날 사회는 경쟁을 요구하고 1등만을 최고로 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젊은이들, 학생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그 경쟁에서 밀려서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런 경쟁이 아니라 공존과 상생만이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라고 그들은 답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공존과 상생의 세계관의 사상을 찾다 보니까 그들은 동양사상에서 답을 찾고요. 동양사상 중에서도 특히 불교에서 그 답을 찾는다고 합니다. 불교에서 희망을 본다는 것이지요.

불교의 사상은 매우 폭 넓은데 그 중 무엇에서 그들은 현대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의 찾는가. 그것은 연기법입니다. 공존과 상생을 얘기하는 세계관은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이지요. 아시듯이 연기법은 어느 것 하나도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지요. 생겨나는 것도 존재하는 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 무엇도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생겨날 수도 존재할 수도 살아갈 수도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뭐, 내가 돈 벌어서 내 돈으로 내 밥 사먹고 사는 것 같지만 한걸음 물러나서 보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존재 없이는, 내 옆에 다른 사람 없이는 우리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다른 존재에 의지하지 않고는 우리의 삶은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세상은 사람과 더불어서 뿐만 아니라 사람 아닌 다른 모든 자연과 더불어 존재합니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다른 존재에 대해서 고마워할 줄 알고 또 그 존재가 소중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산이 비록 저렇게 말없이 있지만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고 만들어 준 소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뭐든지 편한대로 챙기고 많이 가지면 좋다고 하는 그런 잘못된 세계관과 가치관에 의해서 함부로 다뤄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지리산댐도 생기는 것이고 그런 문명의 흐름과 생각의 흐름에 실상사는 잠기는 것입니다. 산내는 잠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지리산댐이 생겨서 실상사가 수몰위기에 처한 이 시점에서 밖으로는 이것을 막아내도록 힘을 합해야 할 것이며 또 이걸 계기로 안으로는 나와 우리의 삶, 사상, 정신들을 되돌아보며 살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바람입니다.

어쨌든 살면서 누구나 다 행복하고 잘살고 싶어하잖아요? 말씀드렸듯이 사람도 다른 존재에 의지하지 않고는 생겨날 수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또 삶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 핵심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입니다.

역시 사람의 삶에서도 다른 어떤 존재보다도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삶의 성격과 내용과 질을 만드는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내가 관계하고 있는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내가 얼마나 어떻게 관계를 잘 이끌어 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가만히 한 번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면 그런 줄을 봅니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가 그렇듯이 인간존재 자체가 관계에 의해서 비로소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삶 자체가 관계입니다. 삶이란 다른 말로 관계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삶이 관계니까 그 삶을 풍부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관계를 잘해야 되는 것이지요. 이 세상 모든 유정, 무정의 다른 존재와도 관계를 잘 해야겠지만 일단 우선은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내는 것, 나와 인연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요.

그런데 잘 안되는게 그것이죠 ? 이상하게도 조금 먼 사람하고는 관계가 잘 되는데 가까운 사람과는 더 안되는 것 같아 ! 왜 그럴까요? 아마 잘 안되는게 부부간이죠 ? 가장 잘 맞을 것 같으면서도 또 가장 잘 통해야 되는 대상이면서도 잘 안통하고 잘 안맞는게 누구에요 ? 웬수 놈의 서방이고 웬수 놈의 마누라지요 ? (대중 웃음) 허허허. 그렇지 않아요 ? 저는 안가봐도 알아요. 가봐서 그런게 아니고. (대중 웃음) 그러나 그 관계를 떠나서는 나의 삶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관계로 이루어진 삶은 관계를 잘 만들어야 행복하고 아름답고 삶이 즐거운 것입니다.

관계를 어떻게 해야 잘 만들까? 여러 가지 길이 있고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요. 그런데 그 중에서 저는 관계와 인연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사실 결혼할 때, 뭐 부부관계를 자꾸 얘기해서 그런데… 서로 죽고 못살아서 한거잖아요, 그렇잖아요 ? 결혼하고 연애할 때는 이쁘고 멋지고 좋았잖습니까. 그 이쁘고 멋지고 좋은게 그게 지나다가 수퍼마켓에서 구멍가게에서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입니까 ? 아니잖아요.

흔히 인연을 얘기하면서 옷깃만 스치기 위해서도 5백생의 인연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이 생에서 부부로 만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생의 인연을 필요로 할까요 !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소쩍새는 봄부터 그렇게 피를 토하고 우는데 너와 내가 이 세상에 부부로 만나서 한평생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전에 얼마나 많은 인연의 공든탑을 쌓아왔겠어요. 그렇게 해서 만난 인연입니다. 엄청나게 소중한 인연입니다. 그리고 내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인연입니다.

부부가 그렇듯이 가족이, 형제가, 친지가, 이웃이, 직장 동료가, 내 삶의 동선에서 걸리는 모든 존재들이, 이쁜 놈이든 미운 놈이든 사실 따지고 보면 내 삶을 이렇게 살게 하는 내 삶을 존재케 하는 매우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주변의 인연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늘 마음속에 새겨야 합니다. 그냥 ‘아, 소중한 거야’라고 그냥 하고 말면 안되지요. 소중하다는 것을 마치 최면 걸듯이 자꾸 되뇌어야 합니다. 인연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야만이 타인에게, 다른 인연 존재들에게 함부로 하지 않으며, 그래야 관계가 부드러워지고 아름다워지고 좋아지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불자는 관계를 늘 소중히 생각하고 늘 잘 만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수행이지 수행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와 가까운 존재와 관계를 잘 만들어내지 못하면서도 무슨 도력이 있는 양하고, 팔만사천경 좔좔 외우고 하는 것, 이것은 다 뻥입니다. 허풍선이에요. 자기 주변의 관계를 잘 만들어내는 것이 수행입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부처는 자신의 삶의 동선에서 만나지는 모든 관계와 더불어서 아름다운 관계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게 부처에요. 그러니까 그 부처는 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보는 사람은 다 환희롭고 기쁘고 행복한 거잖아요. 만나는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언제 어디가 되었든지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 이게 부처지요. 안그래요?

불자의 수행이라는 것은 내 주변의 존재들과 관계를 잘 만들어내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을 버려두고 다른 어떤 것, 참선을 하루에도 열 시간씩, 금강경을 하루에도 몇 번씩 독송한다, 이게 다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걸 뭐할라고 합니까 ? 그런 것은 내 주변 삶의 존재들과 관계를 잘 만들어가서 내 삶을 행복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방법이고 기술을 익히는 것입니다. 그게 목적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불자는 늘 관계를 살펴야 합니다. 어떻게 살펴야 하느냐. 내가 나 아닌 다른 존재,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상대에게 어떻게 다가서고 있는가. 이 점을 늘 살펴야됩니다. 부부관계에서는 내가 부인을 내가 남편을 어떻게 보는가. 또 내가 그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고 있는가. 이 점을 늘 살펴야 돼요. 이 점을 살피지 않고 놓쳐버리면 관계를 제대로, 자기가 원하는대로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걸 늘 살펴야 돼요. 수행은 찰나 찰나 자신을 살피는 것이고 자신을 살핀다는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이 점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교과서적 정답으로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가장 불자다운 시각일까요 ? 그렇죠. 부처로 보는 겁니다. 다른 모든 존재를, 내 주변에 관계 맺는 모든 존재를, 미운 놈이든 고운 놈이든, 비록 지금은 어찌어찌해서 미워질지라도 부처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로 보고 부처로 모시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으로 타인을 바라볼 적에,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은 절대로 관계가 헝클어질 수가 없지요.

그럼 어떤 모습으로 상대에게 다가서야 할까요? 교과서같은 정답으로 얘기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상대에게 다가서야 할까요? 립스틱 짙게 바르고? (대중 웃음) 맞아요, 립스틱 짙게 바르고. 립스틱 왜 발라요? 나도 좋지만 상대에게 예쁘게 잘 보이려고 바르지요 ? 그것을 불교에서는 보살이라고 합니다.

상대에게 다가설 때는 보살의 자세와 보살의 마음과 보살의 태도로 다가서야 됩니다. 보살이 뭔지 모르겠어요? 어려우면 괄호치고 어머니라고 쓰고 괄호 닫습니다. 자식을 대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다가서는 겁니다. 그렇게 상대를 바라보고 이렇게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의 관계는 당연히 아름답고 부드럽고 행복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거 하루아침에 안되지요 ?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라면 제가 여기 앉아서 이런 얘기 할 필요도 없겠지요.

세상에 하루아침에 제 마음대로 되는 것, 없습니다. 늘 반복해서 계속 노력하는 것, 이 길 밖에는 없어요. 그게 곧 삶이지요. 그런데 늘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들고 괴로워합니다. 그랬을 때 어떻게 할까. 그랬을 때 부처님은 뭐라고 했을까. 부처님 말씀 중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들고 괴로울 때 새겨볼 만한 말씀들을 모아봤습니다.

오늘 나눠드린 법회자료 다 받으셨죠? 먼저 제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주지스님, '사람들과 관계에서 힘들고 괴로울 때 새겨보는 부처님 말씀' 낭송>

법구경 말씀입니다. 말씀은 들을 때는 좋아. (대중웃음) 그런데 미운 놈, 사랑하기가 그렇게 쉬워요? 미운 놈 미워하기는 대단히 쉽습니다. 그렇잖아요? 미움은 마음 일으키는 동시에 상대에게 화살이 되어 쏘아져 갑니다. 밉다는 생각과 동시에 내 미워하는 마음의 화살이 상대에게 쏘아져 갑니다. 이 화살을 멈추고 꺾고 쏘지 않기란 매우 힘듭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이건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백만의 적과 싸워 이긴 것보다 나 하나와 싸워 이긴 승리가 더욱 값지다’고 하신 것이지요. 그렇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바로 된다면 부처님이게? 하고 또 하는 거에요. 그리고 또 한 가지, 하고 또 하는 과정에 뭔가 지침이 있어야 해요.

그럴 때 이런 부처님의 말씀을, 미운 놈 있을 때, 미운 놈 있어서 내 마음속에 증오가 끓고 분노가 끓을 때 가만히 앉아서 가부좌를 하고 허리를 곧추 세우고 심호흡을 계속해서 반복하면 체온의 온도계가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체온의 온도계가 싸악 내려가면 그때 조용히 이런 법구경 말씀들을 읽어 보세요. 비싼 종이 그냥 드린 것 아니에요. 갖다 똥 닦을 때 쓰지 마시고 뒀다가 조용조용하게 읽어보시면요.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부처님 말씀의 신비한 힘입니다. 가라앉아지고 그런 것들이 한 번해, 두 번해 할 적마다 힘으로 쌓입니다. 한번 하면 한 번의 힘으로 열 번 하면 열 번의 힘으로 쌓입니다. 계속 반복하면 그만큼의 힘이 쌓이구요. 그 힘에 의해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입니다. 그걸 불교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도력’이라 하고 ‘법력’이라고 합니다. 그게 도력이고 법력이에요. 아시겠지요?

이 자리의 누구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금 현재 힘들고 괴롭지 않은 사람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 힘들고 괴로울 때 남을 미워하기 쉽고 남을 증오하기 쉬운데 남을 미워하고 증오한 만큼 자신의 마음은 깎여 나갑니다. 헐벗어집니다. 상처받습니다. 그것을 잘 다듬고 상처를 없애는 것은 사랑과 자비뿐입니다. 사랑과 자비로 내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다는 생각으로 다 같이 읽어보고 마치지요.

<모두 함께 '사람들과 관계에서 힘들고 괴로울 때 새겨보는 부처님 말씀' 합송함>

이렇게 하여 여러분의 삶이 평화롭고 행복하고 아름다워지시고 나날이 웃음꽃 피는 그런 시간 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밥 먹으러 갑시다. (대중 큰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