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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8

알라딘: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 -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이끄는 입보리행론

알라딘: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 -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이끄는 입보리행론
산티데바 (지은이),하도겸 (엮은이)시간여행2020-04-30


기본정보
256쪽


책소개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불보살님이 산티데바를 통해 주신 지친 삶을 위한 지침서다. 이 생에서 고통을 받다가 죽으면 그런 고통이 끝나기 때문에 좋아해야 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부처님은 늘 윤회 전생하면서 끝없는 고통의 바다를 겪게 된다고 하신다. 지옥은 물론 설사 천상에 태어나더라도 그 행복의 끝에 고통이 딱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말만 부드럽지 내용만을 보면 불교 경전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에게 보낸 ‘고통 예고장’ 아니, ‘독촉장’과 같다. 정말 어렵게 받은 ‘사람의 몸’을 소중히 여기고 나아가 우리네 인생을 정말 똑바로 살라고 보내는 매우 강력한 경고장이다.





목차
프롤로그 :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1. 공덕을 찬탄하라
2. 악업을 참회하라
3. 온전히 잘 지녀라
4. 까불며 놀지 마라
5. 계율을 잘 지켜라
6. 잘 참고 용서하라
7. 열심히 정진하라
8. 선정을 잘 닦아라
9. 지혜를 성취하라
10. 여법히 회향하라
에필로그: 인터스텔라를 벗어난 산티데바



책속에서

01. 공덕을 찬탄하라

이 법문은 스스로가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하여 선업(善業)을 닦기 위한 것일 따름으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기나긴 안목에서 보면 어쩌면 찰나와도 같이 짧은 시간이지만,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법문을 함께 하는 동안에, 좋은 인연이 닿아 제 믿음과 깨달음도 함께 잘 자라기를 희망해 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보다 더 뛰어난 인연 공덕을 지으셨을 여러분도 이 법문을 통해서 더 많은 성취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윤회하는 우리가 인간의 몸을 얻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겨우 인간으로 태어나서 비로소 부처가 되는 수행을 할 수 있는 온전한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이 고귀하고 완전한 기회를 이번에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고통받는 중생을 안락으로 이끌어 주신 대 스승이신 부처님께서 한량없는 지혜로 깊이 사유해서 찾아내신 고귀한 보석이 바로 이 보리심입니다. 따라서 윤회하는 중생들이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롭기를 바란다면 이 고귀한 보석인 보리심만은 언제나 제대로 굳건하게 잘 지켜야 합니다. 접기

02. 악업을 참회하라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 이래의 윤회 속에서 이번 생과 또 다른 모든 생에서 제가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연기법(緣起法)을 모르고 지은 허물과 남까지 시켜서 짓게 한 악업, 그리고 나중에 자신을 뒤엎고 짓누를 무명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허물을 보고도 오히려 기뻐한 것들에 이제야 비로소 눈을 뜨고 마주 보게 됩니다. 진심으로 보호자이신 불보살님께 깊이 참회합니다.
다만, 제가 지은 죄악을 제대로 참회하여 씻어내기도 전에 먼저 죽음이 찾아오면 상상도 못 할 고통의 바다인 윤회에 다시 빠져 버릴 것입니다. 부디 바로 당장 지금 어떻게든 여기서 확실하게 벗어날 수 있도록 속히 저를 보호하고 구원해 주소서. 접기

03. 온전히 잘 지녀라
지옥 등의 삼악도(三惡道)에 빠진 중생들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선업을 짓는 길[선도(善道)]을 걸어야 하는 것뿐입니다. 선업을 닦는 길을 걸어야 행복과 안락(安樂)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깨달음[보리(菩提)]의 씨앗[인(因)]이 있어야만, 이로 말미암아 공덕도 지을 수 있습니다.
제 몸은 물론 삼세에 쌓아 올린 모든 선업의 공덕까지도 중생의 행복과 성취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모두 다 보시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보시함으로써 고통을 넘어 열반을 이루게 된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저도 모든 것을 보시하여 열반에 이르고자 합니다. 중생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보시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보시입니다. 접기

04. 까불며 놀지 마라
보살들이 일으킨 보리심을 확고하게 지니고서[정념(正念)] 항상 흔들림이 없이 방일(放逸)하지 말고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수행에 힘써야 합니다.
이런 연유로 석가세존께서는 넓고 큰 바다 위를 떠다니는 나무토막 구멍으로 눈먼 거북이가 목을 내미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몸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접기

05. 계율을 잘 지켜라
수행자가 배운 계율을 잘 지키려면 오롯이 집중해서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이 마음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계율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수승한 법의 근본 핵심인 이 마음의 비밀을 알지 못한다면 고통을 없애고 행복을 얻으려 해도 안 되고 그저 그렇게 의미 없이 윤회세계를 떠돌게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잘 붙잡아 확실하게 제대로 다스리고 바르게 지켜야 합니다.
언제나 마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알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마음이 기둥을 떠나 ‘어디로 향하려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꼼꼼히 관찰하고 살펴야 합니다. 이처럼 항상 모든 번뇌와 쓸데없이 부질없는 일을 좇는 마음을 대하게 되면 바로 살피면서 적절하게 대응하며 다스리며[대치(對治)]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야 합니다. 접기

06. 잘 참고 용서하라
수천 겁 동안 지어 온 보시와 부처님께 올린 공양 등 그 모든 선행과 공덕도 단 한순간의 분노로 다 사라집니다. 분노보다 더한 악업은 없고 인욕보다 더 어려운 고행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인욕 수행을 해야 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덕을 칭찬할 때는 다른 사람도 함께 기뻐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다른 사람의 덕을 칭찬할 때는 자기는 그다지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이건 전혀 옳지 않습니다. 일체중생의 행복을 위해 깨달으려 한다고 하면서도 중생이 스스로 행복을 잘 구하고 있는데 기뻐해 주지는 못할망정 왜 시기하고 질투를 합니까? 접기

07. 열심히 정진하라
정진이란 선행을 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게으름과 나태로 악행에 빠지면, 자신에게 실망하고 나아가 하찮게 만들 뿐입니다. 우리는 게을러 그냥 편안하게만 지내려고 합니다. 잠에 취해 계속 자면서도 윤회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아 염리심조차도 내지 않고 있습니다.
어떠한 수행을 하든지 간에 제대로 할 수 있는지 미리미리 사전에 모든 것에 대한 준비를 해둬야 합니다. 늘 불방일(不放逸)의 가르침을 기억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이 모두 기꺼이 자연스럽게 하게 해야 합니다. 접기

08. 선정을 잘 닦아라
정진을 한 다음에는 마음이 삼매에 편안하게 머무는 선정(禪定)을 닦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마음이 산란하게 되면 번뇌의 먹잇감이 되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면 더 어떤 산란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세속을 떠나 망상과 분별심을 완전히 버리게 될 수 있습니다.
남이 잘못을 했어도 나 자신의 허물로 받아들이고 제게 작은 잘못만 있어도 여러분들에게 밝혀야 합니다. 남의 명성은 널리 칭찬하고 나의 명성은 조용히 감추며 나는 미천한 종처럼 여겨 모두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본래 허물을 많이 가졌다고 생각하며, 공덕이 조금 있어도 칭찬하지 말고 공덕이 있더라도 누구도 알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접기

09. 지혜를 성취하라
모든 수행의 방편들은 석가모니께서 공성의 지혜를 얻기 위해 설하신 것입니다. 모든 고통을 소멸시키려면 먼저 지혜를 일으켜야 합니다.
존재하는 것도 없으며 소멸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중생은 태어남도 없으며 죽음도 없습니다. 중생은 꿈속의 존재와 같아서 관찰하면 속이 텅 빈 파초와 같이 공허할 따름입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니, 열반이나 윤회 역시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허공과 같다는 것을 함께 깨달아서 윤회를 끊고 깨달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접기

10. 여법히 회향하라
제가 지금까지 드린 말씀인 이 『입보리행론』으로 인해 작은 선업의 공덕이라도 만약 있다면, 이로 인해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되는 보리 행에 들어가게 하소서. 모든 세상의 중생이 몸과 마음의 병에서 벗어나 이 작은 복덕으로 인해 기쁨과 행복의 바다에 이르게 하소서. 이들이 윤회 되는 동안에도 행복이 영원히 줄지 않게 하시고 중생 모두가 위 없는 보살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고통을 겪고 있는 수많은 지옥 중생까지도 모두 서방정토인 극락의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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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부처는 가능성이지만, 불가능의 영역이고. 보살은 덜 완성이라 해도 가능의 영역입니다. 더 낮은 데, 더 가까운 데 있으니 우리 범인들과 더불어 존재하면서 깨우쳐주고 이끌어 줍니다. 더 가치 있고 보람있는, 의미까지 있는 존재이니. 차라리 보살을 지향하고, 보살행 할 수 있도록 수행하는 일이 어떠할지.
선(禪)도 교(敎)도 아닌데 모두가 선지식(善知識)처럼 모두가 지자(知者)처럼, 구업(口業) 짓고 행업(行業) 짓고 심업(心業) 짓는 오염된 세상에 홀로라도 본분으로 회향하려는 보살들의 나타남을 목 빼고 고대하는 데….
그 바쁜 보살행 와중에 짬 내어 뭇 사람들을 편하게 이끌 또 다른 초록 연등 1개, 낡은 배 1척 같은 『입보리행론』을 펼쳤습니다. 하도겸 박사의 작은 보살행에 작은 고마움 느끼며 보살들의 길고 긴 행렬을 함께 만들어감이 어떠할지…. - 윤명철 (역사학자, 뗏목 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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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떼 코리아'라는 NGO를 이끌며 오랫동안 네팔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운 '행동하는 지식인', 하도겸 박사가 세계시민의식을 일깨워주는 좋은 인문학 서적을 발간하였습니다.
코로나 위기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져있는 지금 우리가 인간성 회복과 흐트러진 신뢰 재구축을 위해 꼭 읽어봐야 할 필독서입니다. - 안세영 (서강대학교 국제경영학부 교수, 국제통상학회 부회장) 
산모퉁이 바로 돌아 이 길로 쭉 가면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마음 닦아 가는데 붓다의 자리 없겠는가? 로드맵을 따라 찬찬히 쉬지 않고 가면 니르바나에 반드시 이르게 되어있습니다. 니르바나에 꼭 이른다는 굳센 믿음을 가지고 부지런히 가는 보디삿트바 행동(菩薩行)을 살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붓다의 길(道)을 돕는 가르침(助敎) 곧 조도(助道)입니다.
계·정 2학 또는 계·정·혜 3학의 길이 37 보리분법(조도품)으로, 10 바라밀 또는 6 바라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 곳으로 돌리(廻向)든 갈 곳으로 돌리(敎化)든 돌리는 것 또한 중요한 조도이거나 본도(本道)입니다.
하도겸 박사가 살펴 준 보리드는 길을 노라리 삼아 따라가며 봄 신명 내보면 좋겠습니다. - 무상 법현 (승려, 세계 선원장) 
단언컨대 보리심을 일깨우는 수행에서는, 『입보리행론』보다 좋은 지침서는 없을 것입니다. 보리심은 대승도의 관문이자 붓다의 깨달음을 이루는 근본 원인이기 때문에 대승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논서이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인도와 티벳의 불교전통에서 가장 많이 회자 되고 사랑받는 책이기도 합니다. 하도겸 대표가 새로 풀어쓴 이 위대한 적천보살의 가르침이 많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박은정 (사단법인 나란다불교학술원)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건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겁니다. 이 무상의 세계에 보리 행은 불자들의 지남입니다. 산티데바, 용수 등의 가르침은 대승불교 문학의 정수로 꼽힙니다. 하도겸 박사가 이 집단지성에 큰 보탬을 했습니다. 통찰이 번뜩이는 『입보리행론』 해제가 우리에게 불교의 핵심인 지혜로 다가옵니다. - 이석만 (불교닷컴 대표) 
저자 및 역자소개
산티데바 (Shantideva)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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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할 나위 없는 무량한 지혜를 갖춘 승자이신 부처님의 아들
속명은 산티바르마(Santi-varma)이며, 8세기 경 인도 날란다(Nālandā) 승원에서 나가르주나의 대승불교 가운데 중관학을 선양한 학자이며 승려이다. 남인도 사우라아슈트라 국의 왕자로 왕위에 오르기 하루 전 꿈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출가수행의 길을 걸었다. 문수보살로부터 목검을 하나 받고 여덟 가지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밀교 금강승의 무상요가 탄트라(anuttarayoga tantra) 수행을 하여 놀라운 신통력을 얻었다. 이 책의 제9장 “모든 것은 허공과 같다”는 곳에 이르자 갑자기 하늘 높이 솟아올라 모습은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아 암송을 끝까지 계속했다고 전한다.
저서로는 『대승집보살학론』(大乘集菩薩學論), 『제요경집』(諸要經集) 등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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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
하도겸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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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나마스떼코리아 대표로 노후에 네팔 히말라야 산골 오지마을 선생님을 꿈꾸는 철모르는 어린왕자(Big Baby)이다. 지유명차 성북점의 자원봉사자로 차를 우리는 팽주를 하며 차담을 나누면서 관(觀)이나 꿈 명상(잠 수행)을 이야기한다. 언제나 다시 일어서는 오뚜기처럼, 해야 할 것 가운데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오래된 미래”를 실현하는데 관심이 있다.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 등으로 활동했다. 시사위크 논설위원,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겸임교수 및 전시 개발자(Exhibition Developer)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행복한 돼지』, 『세대를 넘어-수제화장인』,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나마스떼 네팔어 회화첫걸음』(이하 공저), 『일본 신사에 모셔진 한국의 신』, 『동아시아의 종교와 문화』, 『동아시아 제 관계사』등이 있다.
<올해의 재가불자상>, <올해의 불교활동가상>, <여성가족부 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 www.facebook.com/hadogyeomcolumn 접기
최근작 :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지금 봐야 할 우리 고대사, 삼국유사전>,<나마스떼 네팔어 회화 첫걸음> … 총 5종 (모두보기)
SNS : //facebook.com/hadogyeom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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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우리 옆집에 사이코패스가 산다>,<마음을 담다, 참 괜찮은 말>,<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등 총 79종
대표분야 : 로맨스소설 41위 (브랜드 지수 4,90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인생은 다시 얻기 어렵다.

요즘 새삼 느끼는 것은 인생이 생각보다 길지 않고 매우 짧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죽습니다. 빠르고 늦음의 차이가 있을 뿐,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죽을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 책,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는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불보살님이 산티데바를 통해 주신 지친 삶을 위한 지침서입니다.
이 생에서 고통을 받다가 죽으면 그런 고통이 끝나기 때문에 좋아해야 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늘 윤회 전생하면서 끝없는 고통의 바다를 겪게 된다고 하십니다. 지옥은 물론 설사 천상에 태어나더라도 그 행복의 끝에 고통이 딱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말만 부드럽지 내용만을 보면 불교 경전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에게 보낸 ‘고통 예고장’ 아니, ‘독촉장’과 같습니다. 정말 어렵게 받은 ‘사람의 몸’을 소중히 여기고 나아가 우리네 인생을 정말 똑바로 살라고 보내는 매우 강력한 경고장입니다.
“고통에서 벗어나서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석가모니부처님이 그랬듯이, 불교 수행을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이런 질문이나 생각을 한 번쯤은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참선이나 명상 수행을 하다 보면 온갖 망상이 일어나서 대체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고, ‘하다가 막히면 그다음은 어쩌지?’ 하는 그런 수련이나 수행 과정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에는 다른 경전에서 찾기 힘든 특별한 해결책으로서의 기준으로 ‘보리행’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라한을 찾아간 보디사뜨바

“이제라도 부처가 되고 싶다면!”
이 책은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 아라한 아니, 우리는 부처 아니라 보살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다 대통령이 아니고, 아버지라고 해서 다 아버지가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아버지 모두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인정을 받고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통해서 불보살이 된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볼까요? 아니 스스로 어떻게 인가받을 수 있을까요? 그런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고통을 여읜 불보살처럼 오로지 보리심을 가지고 실천한다면 그가 바로 보살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책은 ‘보살되기’ 어쩌면 ‘보살 따라하기’의 매뉴얼[지침서]입니다. 이 삶이 연극무대와 같다면 이 책은 삶의 주연이자 조연으로서 주인공인 우리가 읽어야 할 ‘연기 교본’입니다. 이 책대로 완벽히 소화한다면 우리는 다름 아닌 이미 보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책은 이제라도 깨우친 사람으로서의 아라한을 넘어, 고통에서 벗어나 보살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 가장 중요한 책입니다. 그래서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예비 수행의 필독서로 정했나 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보살은 그냥 자기 혼자만 고통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깨달음을 가진 후에는 그 깨달음을 나누는 보시와 회향을 하며 중생구제를 하는 분입니다.
즉, 우리가 고통을 만났을 때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수호자이자 도우미 같은 존재입니다. 깨달음을 통해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거꾸로 가장 낮은 곳, 아니 가장 고통스러운 곳에 오셔서 우리를 치료하고 치유하는 자리가 바로 보살입니다. 여기서 당장 남들의 고통을 함께 하는 분이 바로 보살이기도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여러분은 보살인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정보의 바다에서 누구나 부처님 같은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처님이나 보살이 아니며 하물며 깨달은 아라한이나 선지식도 아닙니다. 요즘 깨쳤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입만 보살인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깨친 이의 실체는 그의 말이 아니라 행동, 나아가 일상의 실천이라는 습관에서 다 증명됩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삶이 이타행(利他行) 나아가 보리행이신 분이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습니다. 수십 년 암자에 틀어박혀서 공부하고 깨쳤다고 하는 못난 분보다 더 불보살 같은 자비로운 분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불교도 인가 여부를 떠나서 사실 여부가 증명이 안 되는 엘리트주의를 깨고, 재가불자를 포함하여 비구니는 물론 여신도 모두 삼보 가운데 하나인 승보가 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깨달은 자가 되고 싶습니까?
그런데 정말 깨달음을 얻게 되면 그다음 어떻게 할 것인지는 정하셨습니까? 대통령이 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되고 나서 어떻게 할 건지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이나 그중에 높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부처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적멸에 들어가 해탈 열반하면 되나요? 그런데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요? 이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해야겠지만 정말 해탈은 있는지, 있더라도 그 열반에 우리가 갈 수 있는지 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도 있습니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열반에 든 부처님보다는 우리와 함께 하는 보살이 더 반갑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알게 됩니다. 아라한을 찾아간 산티데바는 용수보살과 마찬가지로 보디사트바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이유를 이 책에서 꼭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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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절대자를 믿고 숭배하고 받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행하고 깨우쳐서 도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삶의 목적을 찾고, 고뇌를 벗어던지는 것이 불교의 세계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불릴 정도로 깨달음이란 말을 많이 한다. 깨달음이란 말은 열반, 해탈, 성불, 득도 등의 다른 표현으로도 사용되는데 불교의 교리는 열반에 든 부처님이 무엇을 깨달았으며, 참다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 주된 불교의 핵심이다.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우리도 성불하고 해탈할 수 있는가를 공부하는 것으로 믿음이라기보단 자아성찰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불교에선 깨달음을 중요시 하는데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보리심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대승불교의 본질이며 불도의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으로 널리 중생을 교화하려는 마음을 가르킨다. 보살은 보리심을 길러야만 성불할 수 있다. 보리심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고난을 당하더라도 그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 책에서는 보리심을 강조한다. 보리심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보리심을 일으키기를 원하는 마음인 원보리심이고 다른 하나는 보리심을 행하는 마음인 행보리심이다. 말하자면 보리심은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자 타자의 고통과 슬픔에 깨어 있는 마음인데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을 원보리심이라고 하고, 그런 마음을 기반으로 깨달음을 스스로 깨우쳐 실천하는 것이 행보리심이라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리행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것과 유사한 내용이다.



윤회하면서 고통받는 중생의 불행을 모두 없애고 행복해지고 공덕을 얻으려면 보리심이 필요하다. 혹은 보리심만 있으면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남을 도우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공덕보다 더 큰 공덕이라고 말해지는데 보리행을 통해 불행의 수렁 속에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행복하게 하려는 노력은 더 큰 공덕을 쌓게 되는 행동인 것이다. 악이를 품거나 나쁜 생각을 내지 말고, 아무런 보답을 바라지도 않고 선의를 베풀고 보리행을 행한다면 죄업은 일어나지 않고, 선업만 늘어나서 깨달음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이다.



불교인들의 최상의 목적은 결국 부처처럼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가 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깨우치고 고통에서 벗어난 보살은 부처보다 덜 완성된 존재지만 우리가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가능의 영역이므로 차라리 부처가 아니라 보살을 지향하여 범은들을 깨우쳐주고 이끌면서 보리행을 행하며, 선행을 쌓는 것이 더 가치있고, 보람있고, 의미있는 것이라고 새로운 시각과 목표를 제시한다. 책에는 보리행을 행하고 보살이 되기 위한 10가지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공덕을 쌓고, 악업을 행하지 않는 지혜와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범인과 함께 하는 보살이 될 수 있도록 정진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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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gosoda 2020-05-0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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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서평] 새창으로 보기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는 1300년 전 남인도의 한 승려가 어떻게 하면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해 설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그 승려의 이름은 바로 산티데바, 한자로는 적천(寂天, 고요한 하늘)이고 이 책의 원제는 그 유명한 <입보리행론>이다. <입보리행론>은 엄밀하게는 산티데바가 쓴 책이 아니라 그가 한 법문을 들은 대중들이 후에 모여 결집한 것이고 구전된 것이기에 다른 초기경전들처럼 운문체이지만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에서는 번역할 때 산문체로 바꾸었다. 이유인 즉슨, 운율이라는 것이 언어적 특성에 기인하기에 번역하면 본래의 느낌을 살리기가 어렵다. 거기다 시구들은 그 내용을 함축하고 있어 10장 971송으로 된 원전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난해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요기들이 많이 보는 힌두 경전 <바가바드 기타>도 운문체의 시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말로 번역된 것을 보더라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입보리행론>을 번역한 하도겸 역자는 문체와 같은 부분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바꾸었기에 단순히 '옮김'이 아니라 '편저'라고 했다.




불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 책의 원전인 <입보리행론>의 제목부터 생소할 것이다. 한자를 직역하면 '보리행에 입문하는 방법을 논한 책'이라는 뜻이다. 역자는 보리행에 대해 '대승의 깨달음을 구하는 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육바라밀'이라 했다. 육바라밀이란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는 6가지 방법이라는 뜻으로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6가지 수행법을 뜻한다. 혹, 생소한 종교적 용어에 너무 머리 아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본질은 어려운 말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보리행을 하는 사람이 곧 보살인데, 그래서 역자는 이 책을 '보살 따라하기 지침서'라고 했다. 금강경에 보살의 정의가 나오는데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고자 마음 낸 선(善) 남자, 선 여인'라고 했다. 보살이라는 말은 대승불교에서 나오는 개념으로, 소승불교가 자신의 해탈, 열반이 최우선인 것에 비해 대승의 보살에게는 자신의 해탈, 열반 못지않게 중생의 해탈, 열반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소승, 대승이라는 용어도 나만 탈 수 있는 작은 배(小乘),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타는 큰 배(大乘)라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대승의 지장보살은 당장 해탈열반을 할 수 있는 경지임에도 지옥중생을 내버려두고서 자신만 괴로움의 바다를 건널 수 없다며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나서 제일 마지막으로 해탈열반하겠다 서원한 보살로 대승의 사상을 극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불교서적이기에 불교용어나 윤회 같은 종교적 세계관, 개념들이 나온다. 불교서적이라 불교도들에게만 유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면 나는 이 책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역자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보라 했다. 1300년 전 인도에서 쓰여진 이 책은 현대 문화와 인식의 잣대로 보면 불편하거나 허황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부처님과 보살들에 대한 신격화된 표현이나 남성수행자 중심으로 언급된 부분을 예로 들수 있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도, 신화를 읽을 때도 우리는 가려서 읽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 문헌에는 비유와 은유가 많이 사용되어 있고 그 시대의 문학적 표현들이 담겨있기에 곧이 곧대로 믿거나 따질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고 있는 유익한 지혜를 잘 찾아내야 한다. 이 책을 읽을 때에도 그런 관점으로 읽는다면 얻어가는 것이 많을 것이다.




보리심은 깨달음의 지혜(Bodhi)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산티데바는 보리심을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보리심을 일으키기를 원하는 마음(원보리심)과 다른 하나는 보리심을 실천하는 마음(행보리심)이다. 신라시대 원효와 더불어 최고의 승려고 꼽히는 의상조사가 방대한 화엄경을 짧은 시구로 압축해서 표현한 법성게에는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보리행을 실천하며 살아야겠다는 그 첫 마음(초발심)만 내도 부처의 깨달음(정각)을 이룬 것이라 했다. 결론적으로는 실천이 중요하겠지만 그 실천은 근본적으로 마음을 먹어야 가능하기에, 원보리심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서술방식에서 조금 독특한 점은 의문문이 많다는 것이다. 심할 때는 페이지 문장의 반은 마침표고 반은 물음표로 끝나기도 한다. 대부분 수사의문문의 형식으로 '이렇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하는 물음인데, 서술이 진행될 만하면 연이어 나오는 질문공세에 처음에는 살짝 어색하기도 했는데 간화선이 떠올랐다. 스승에게 받은 화두로 자나 깨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간화선의 수행자처럼 독자들에게 계속 질문과 의심을 던져 스스로 참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 책에서도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도 없다'라는 연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연기사상은 불교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사상이다. 연기란 모든 것은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모든 현상에는 다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앞부분을 공간에 대한 연기라면 뒷부분은 시간에 대한 연기로 말할 수 있다. 공간에 대한 연기는 결국 너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 즉 '모든 것은 하나'라는 동체대비의 개념으로 연결되어 불교의 이타심과 자비심의 뿌리가 된다. 그리고 나와 당신이, 나와 우주가 하나라는 생각은 나라할 것이 없는 무아(無我)와 공(空)사상과도 연관된다. 시간에 대한 연기는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르고 결과가 있다면 분명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인연과보(因緣果報)와 이어지고 나쁜 원인을 차단하여 해로운 결과를 막는 계율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공간적 연기의 자비심과 시간적 연기의 인연과보는 불교사상의 근간이며 보살 수행법에 녹아들어 있다.




"모기나 쇠파리 등 해충에 물리거나, 굶주리거나 목마르거나, 옴 같은 가려운 피부병이 걸리는 등을 인내의 기회로 보지 못하고, 아무 의미 없는 하찮은 고통으로만 여긴단 말입니까?" 굶고 목마르고 아픈 것은 분명 큰 고통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피하고 싶은 기피 대상이 아니라 나의 인내를 키울 기회로 볼 것을 제안한다. 불교의 묘미는 저런데 있는 것이 아닐까. 부처님과 이름있는 보살님들에게 나를 구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고통스러운 일들 속에서도 나에게 이로운 점을 찾아 삶의 기회로 삼아버리는 '관점의 전환'이 핵심인 것이다.




이런 관점은 다음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염리심(厭離心)'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행복은 씨앗조차 좀처럼 쉽게 생기지 않지만, 고통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고통이 없으면 세속이 싫어져 멀리하는 마음인 염리심도 생기지 않아 해탈할 수가 없게 됩니다." 건강할 때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을 잘 지켜나가면 제일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다 작은 병이 찾아오면 그에 따른 고통과 불편으로 경각심을 느껴 더욱 건강에 힘쓰게 되고 큰 병을 예방할 수 있게 된다. 염리심은 '싫어하여 떠나는 마음'인데, 이 책에서는 닥친 불행이 너무도 힘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그 염리심을 고통이 아닌 오히려 해탈로 나아가는 변곡점으로 보면서 최악의 불행마저도 축복으로 만들어버리는 마법과도 같은 관점 전환의 힘을 이야기하고 있다.








화에 대해서 재밌는 표현이 있었다. "우리는 몽둥이에 맞았더라도 몽둥이가 아닌 때린 사람에게 화를 냅니다. 하지만 그 사람 역시 분노에 휘둘린 것이니 분노에게 화를 내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는 몽둥이가 나를 때렸지만 그것은 사람이 휘둘렀기에 사람을 탓하는데 까지만 생각이 미친다. 하지만 산티데바는 '휘둘린' 몽둥이가 아닌 '휘두른' 사람에게 화내듯, '휘둘린' 사람이 아닌 '휘두른' 분노에게 화내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 있다. 발상이 재밌지 않는가. 그리고 이 말은 뒤집어 보면 분노에 '휘둘린' 사람에게 화를 낸다면 사람에 '휘둘린' 몽둥이에 화를 낸 것과 같다는 말이되어 사람에게 화내면 몽둥이에게 화내고 있는 바보와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가 된다. 화를 내는 것은 자신도 해치고 남도 해치는 어리석은 행동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산티데바의 재치를 엿볼수 있었다.




성경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용서의 가르침이 있듯 불교에서도 같은 내용이 있다. 모든 종교는 '사랑'을 강조하기에 그런 공통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것 자체는 그다지 새로울 것 없으나 그 당위성을 말하는 논리에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그와 관련된 재미있는 표현이 있었다. "원수를 통해서 제가 인욕을 성취했다면 인내의 결과를 원수에게 먼저 보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큰 분노를 통해 인욕(인내)를 기를 수 있으므로 인욕을 가르쳐 준 원수에게 복수가 아닌 보답을 하라는 것이다. 죽일 놈의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애시당초 그는 나에게 인욕의 가르침을 준 스승이기에 용서할 것도 없고 오히려 내가 존경하고 감사해야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인 '정법'과 동일하게 공양해야 마땅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산티데바는 '남에게 이것을 주면 무엇을 먹어야 하나?'라는 우리의 질문을 '내가 이것을 먹으면 남에게는 무엇을 주지?'라는 보살의 질문으로 바꾸라고 말했다. 그것은 나가 아닌 남을 위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인데, 얼핏 들으면 너무 손해보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여기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괴로움, 두려움, 고통은 모두 '나'라는 집착에서 오는 것인데, 나를 온전히 버리는 이타행을 통해서 괴로움, 두려움, 고통도 함께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내 행복은 남에게 주고 남의 고통은 내가 받고" 라는 표현은 이타행의 끝을 보여준다.








어떤 면에서는 보통 세상 살이의 상식과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 같고 그런 것은 책에서나 가능한 소리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쩌면 우리가 삶의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이런 것을 동떨어진 소리로 여기는 것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그 병에 대한 약입니다" 하고 이미 약을 받아 손에 지녔음에도 먹지 않고 '누가 이런 약을 먹겠어' 하며 계속 병으로 괴로워하는 것이 우리 삶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우리는 몰라서 길을 못가는 것이 아니라, 알지만 길을 안가서 못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영화 <두 교황>을 봤었다. 거기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인류적인 문제에 대해 기가막힌 대사를 날리는데, 너무도 인상적이라 따로 적어놓았었다. "그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다면 그것은 모두의 책임입니다.(When no one is to blame, Everyone is to blame.)" 진리에 가까이 간 사람들은 그 과정과 경로만 다를 뿐 결국은 한 곳으로 수렴하는 것일까. 한 종교의 최고 지도자가 했던 저 명언은 1300년 전의 다른 종교 수행자의 법문에서도 그대로 나온다. "그 고통이 누구의 것이라 할 수 없다면, 우리 모두의 고통과 다르지 않습니다." 산티데바는 자비심과 연민을 이야기하며 저런 명언을 남겼다. 앞의 프란치스코 교황의 어록과 산테데바의 경구가 묘하게 서로 닮아있지 않은가. 진리에 가까이 간 사람들은 너와 내가 따로 없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진리에 이르는데 종교의 구분이란 그저 방법론의 차이에 지나지 않음을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종교적 배타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얼마나 비종교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산티데바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조금 해보자면 그의 삶은 부처님의 삶과 묘하게 닮아있다. 그도 부처님처럼 고대 인도의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난다. 왕위에 오르기 전날 밤 꿈에서 문수보살을 만나고는 홀연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여 훌륭한 수행자가 된다. 산티데바의 어머니는 바즈라요기니로 소개되어 있는데. 바즈라는 한역하면 금강을 뜻하며 요기니는 요가수행자를 의미한다. 이 책의 중간에 요가나 요기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나오는데, 아무래도 불교든, 요가든 결국 인도 고대 철학인 베다의 사상적 풍토 위에서 탄생한 것이니 상호간 연관성이 있기에 책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책의 중간중간에는 인물사진, 풍경사진들이 담겨있는데 '나마스떼코리아'가 주최한 히말라야사진공모전 수상자들이 재능기부를 해준 것이라 한다. 네팔의 히말라야 산의 장엄함과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들이 담겨있어 책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사진 중에는 들판에서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있는데, 이 책의 인세는 전액 NGO로 기부되어 네팔 안나푸르나 산골 오지마을 어린이들을 지원하는데 쓰인다 하니, 이 책 자체가 보리행의 실천을 몸소 보여주는 것 같다. 나도 과거 네팔에 갔을 때 아이들이 그곳에서 얼마나 열악하게 공부하고 있는지 직접 보았던 경험이 있어 역자의 기부가 더 따뜻하고 훌륭하게 느껴졌다.




이 책의 제목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는 표현은 윤회사상과 무상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교의 윤회론에서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려면 과거에 엄청나게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선업을 쌓아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게 전생의 인연으로 어렵게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괴로움의 윤회를 끊어버릴 지혜를 얻기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소중한 목숨을 함부로 여기고,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불행하게 살며 나와 남을 해치고 있지 않은가 하고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삶의 무상함을 통해서 늘 지금 여기서 만족하고 행복할 것을 가르쳐주려 하는 것 같다.




달라이라마도 이 책의 원전인 <입보리행론>에 대해 언급하길 "일체중생을 위해 깨닫겠다는 마음인 보리심에 대해 설한 책 중 이보다 더 뛰어난 논서는 없다"고 했다한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이끄는 1300년 전의 지혜 <입보리행론>의 우리말 번역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 책의 내용도, 책으로 인한 수입도 보리행, 보살행으로 가득 차있는 이 책에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보면 어떨까. 지혜로운 삶을 살고자 결심한 그 첫 마음만으로도 이미 부처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라던 '초발심시변정각'을 다시한번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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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부시향덕 2020-05-0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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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이 책을 읽고 생전 안쓰던 책 후기를 쓰게 되었다. 최근 여러 일로 힘들어하던 내게 마음을 단단히 지키도록 이 책이 도와주었기에,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불자가 아닌 나에게도 책 내용은 감명 깊었고 마음에 와닿았다. 이 책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를. 힘들어하는 다른 이들에게도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다. 
Cat.noir 2020-05-0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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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심을 발현하는 삶 새창으로 보기




어느 한구절 버릴 곳이 없었다.

불교 신자만이 보고 느낄 책이 아닌

대다수에게 받아들여질 내용을 담고 있다.

보리심이란 자애.

그것으로써 전하려고 하는 

지혜의 확대와 발현을 

불교적 의미로써 풀이하는 책.

이런 책은 사실 서평이 불가능하다.

그냥 문장 하나하나가 물안개처럼

가슴과 뇌속에서 피어나고 스며드는데

이를 스토리처럼 전달한다는게 어려우니까.

불교의 윤회라는 말을 예전엔

그나마 단어적으로는 공감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냥 사전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러나, 이 말을 꺼내는 건, 윤회의 의미를

거짓이나 믿기 어렵단 의미로 꺼낸 건 아니다.

그저, 윤회란 단어마저도 자꾸 깊게 생각한다는 건

개인적으론 미련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뿐.

책이 나름 심도있게 불교적 지혜를 전하는 책이라

그냥 에세이처럼 읽히는 부분들만 있는건 아니지만,

그중 편하게 다가오면서도 진중한 느낌으로 남는

그런 부분들을 소개해 보려한다.

선업과 악업.

선업을 쌓았다, 악업을 쌓았다.

그럼 이 둘은 어떤 발자국을 남길까.

선업은 쌓아도 그 발자국의 흔적을 지속시키기가 어렵다,

하지만, 악업은 잠깐의 일탈 정도일지라도

그 흔적을 오래 그리고 깊게 남긴다.

맥빠지는 얘기다, 좋은게 오래가고

나쁜게 쉬이 증발해야 희망적인데 말이다.

하지만, 이 아쉬운 표현은 살다보니 

참으로 진리임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선업은 공기와 같다.

하지만 악업은 미세먼지와 같다.

공기는 그냥 마셔지고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존재감은 너무 미비하지만,

악업은 미세먼지처럼 오감을 자극하고

그 악영향이 치명적이고 할퀴듯 흔적을 남기는 거 같다.

그렇기에 책속 악업과 선업의 표현에 있어 

난 공감의 고개짓만 끄덕일 뿐.

현대적 감각으로 잘 풀이된 불교서적이라

전혀 불교적인 내적동의 없이도 

매우 잘 읽히는 신기함을 경험할 수 있을 책이다.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는 책 제목도

이미 이 책을 어떤 사람이 읽어야 할지

이리 오라 손짓하고 있는 듯 하다.

지나가면 그만인 한 순간이니 현재를 탓하지 말고 

누군가와 어긋나지 않게 그 인연을

잘 누리라는 충고같은 글귀들.

글들을 읽으며 계속 생각이 정화되고 있다는 

구도적 편안함에 그 감사함을 지울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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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타 2020-05-1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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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 새창으로 보기


 

 

  입보리행론을 전에도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하도겸 박사님의 번역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건국대학교 사학과 겸임교수이며 나마스떼코리아 대표이신 하도겸 박사님.



 입보리행론을 읽어본 바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 들었는데 이해하기 쉽고 핵심을 짚어 우리들에게 필요한 가르침을 적어두어

감명깊게 읽었다.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두기가 아까워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불보살님이 산티데바를 통해 전해주시는 가르침이라고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다시 만나기가 어렵다는 입보리행론을 다시 번역한 책이라는 점에서 불교서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불교이기 이전에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에

대해서 방향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인문학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에서는 10가지로 나누어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는데

다 깊은 뜻이 있고 마음에 새겨두고 실천해야할 내용들이고 읽을수록 울림이 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절을 하고 있는데 절을 마친 후에는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이 가난,질병, 전쟁 등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큰 깨달음을 얻어 만중생 다 구제하게 하소서. 하는 발원을 한다.

오래 전부터 하던 발원인데 이 책에서도 이런 내용을 만날 수 있었다.



 절하고 공양 올리고 참회하는 등의 모든 선행으로 지금까지 제가 쌓은 공덕으로 모든 중생의 고통이 남김없이 사라지게 하소서.

 이 세상의 병든 중생들 모두가 완치될 때까지 제가 약이 되고 의사가 되고 간병인이 되어 이들과 함께 하소서.

 (p. 56)



 요즘은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래서인지 이 부분이 더 와닿았다.



 우리들은 번뇌의 노예가 되어 끌려다니는 것이 보통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속의 온갖 생각들.

내가 끌려다니지 않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알아 바른 행동을 하겠다고 다짐해보았다.

마음이 해이해질 때

마음대로 먹고 입고 놀고 마음의 방황을 하게 될 때

항상 곁에 두고 읽고 쓰면서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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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네 2020-05-0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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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7

“자원봉사자로만 운영한다는 원칙을 정토회가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 스님의하루

“자원봉사자로만 운영한다는 원칙을 정토회가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 스님의하루


자원봉사자로만 운영한다는 원칙을 정토회가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새로 지어지는 정토회 본부 건물은 주차장, 공연장, 소방시설, 승강기, 전기안전시설 등을 갖추고 있기에 대단히 많은 전문가들이 요구되는 큰 건물입니다. 자원봉사의 원칙을 지키며 이 큰 건물을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됩니다. 현재의 3층짜리 법당을 유지해온 것과는 판이하게 상황이 달라질 것 같아요. 물론 스님께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정토회는 자원봉사자로만 운영한다는 원칙을 확고하게 말씀하셨습니다만, 실제 운영을 생각하면 과연 가능할지 우려가 더 큽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과 단체가 전문 노동자를 고용해서 모든 것을 운영합니다. 그러면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는 사찰을 어떻게 운영했을까요? 그 시대에는 하인을 데리고 사는 시스템이 있었어요. 즉, 사찰이 운영될 수 있게 하인을 국가가 공급해 주었습니다.

사람을 고용하는 순간 정토회는...

가령 신라시대에 국가에서 의상 조사를 화엄사 주지로 임명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국가는 화엄사 운영을 위해 땅 천 마지기와 그것을 운영할 하인 50명을 주었습니다. 그 하인들이 농사를 지었고, 그걸 기반으로 해서 사찰을 운영했습니다. 옛날에는 국가에서 주는 하사품이 주로 두 종류였습니다. 첫째는 소출이 나올 수 있는 땅이고, 둘째는 그것을 운영할 사람이었어요.


오늘날에는 어떻습니까? 대부분의 사찰이 땅 대신에 돈을 갖고 운영하고, 하인 대신에 노동자를 고용해서 모든 것을 운영합니다. 큰 절은 물론이고 어느 절이든 다 월급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가 그 사찰을 운영합니다. 절마다 농사짓는 사람도 고용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공양주도 고용하고, 청소하는 사람도 고용하고, 수위도 고용하고, 전기 문제를 담당하는 전문가도 고용합니다.

부처님은 어떤 삶을 사셨을까요?

그런데 부처님은 그런 생활을 하지 않으셨어요. 출가하시기 전 속세에 사실 때는 말 모는 하인이 따로 있고, 잠자리 봐주는 하인이 따로 있는 등 여러 명의 하인을 항상 거느리고 있었지만, 출가를 하신 이후로는 하인을 전혀 두지 않았습니다. 늙어서 병이 들었을 때는 같은 수행자인 아난다가 역할 분담을 해서 좀 도와 드렸지만, 이것은 하인을 부리는 것과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어요. 부처님은 신분제 사회 속에서도 신분을 뛰어넘은 삶을 사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붓다의 법을 그대로 지키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비록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 속에 산다는 미명하에 사람을 고용하게 되면 붓다의 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고용을 하는 순간 사람 간의 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와 질문자는 수행자와 수행자 또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지금 만나고 있지만, 만약 월급을 주고 제가 질문자를 고용하는 순간 질문자는 저를 ‘스님’이라고 부르더라도 사실은 스님이 아니라 고용주가 됩니다. 고용주와 고용인이라는 세속적 관계로 바뀌는 거예요. 이런 관계에서 만약 제가 월급을 지불하지 않으면 질문자는 굶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면 질문자는 자신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니까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법적 투쟁까지 하게 되는 관계가 됩니다.


이것이 과연 수행 공동체에서 올바른 것일까요? 만약 부득이하게 회관을 운영하기 위해 이런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면, 정토회는 애초에 이런 건물을 짓지 않았어야 해요. 이렇게밖에 운영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 건물을 포기하는 게 맞습니다.


지금까지는 정토회가 이런 원칙을 지켜냈습니다. 그래서 문경 수련원과 두북 수련원을 비롯해 그 어디에서도 운영이나 생활 면에서 사람을 절대 고용하지 않았어요. 건물 자체를 지을 때 전문가가 짓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운영을 위한 일체의 일들은 모두 정토회 회원 여러분들의 자원봉사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새로 건물을 짓게 됨으로 해서 사람을 따로 고용하지 않고는 운영을 할 수 없다는 난관에 부딪힌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면서까지 이 일을 할 필요가 있는가


이 상황에서 저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울 때부터 제가 이 점에 대해 주의를 줬습니다.

‘고용을 하지 않고 자원봉사 방식으로 건물을 운영할 수 있으면 짓고, 그렇게 못 하면 건물을 짓지 맙시다. 건물을 짓고 나서 고용을 하게 되면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에 어긋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우리 정토회의 이념에 큰 손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겁니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러나 이것은 신라시대에 승려가 절에 노비를 고용해서 농사를 짓고 살았던 것과 다름없는 것이에요.’


이렇게 말하면서 건물 짓는 것에 반대를 했을 때, 고용하지 않고 건물을 운영할 수 있다고 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그런데 막상 건물을 다 짓고 나니 전기기술자며 열관리사며 전문가가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거예요.


그래서 현재 새롭게 제안이 올라온 내용은 건물 관리를 한시적으로 위탁회사에 맡기자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정토가 직접 노동자를 고용하지는 않아도 되니까요. 위탁회사가 건물을 관리하는 동안에 옆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전문적인 업무를 배우면서 그에 필요한 관련 자격증도 획득해서 그 이후에는 자원봉사자로만 운영을 하자는 제안입니다. 그래서 은퇴한 정토회 회원들 중에서 누구는 전기 관련 업무를 맡고, 누구는 열관리 업무를 맡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좋겠다고 해요. 처음부터 자원봉사자가 전문 업무를 맡기는 지금 어렵다고 하면서요. 이런 제안이 들어왔는데, 이것도 제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건물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개원 기념 100일 법문도 새로 지은 건물에서 하지 않고 두북 수련원에서 온라인으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랬더니 지금 불사팀에서 자원봉사 운영팀을 구성해서 연구 중에 있습니다. 아무런 대책이 세워져 있지 않은 것은 아니고 이미 팀을 구성해서 엄청나게 연구하고 있어요. 그러나 지금은 불사 책임자가 건물 짓는 일과 건물 운영하는 일을 동시에 신경 쓰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운영 면에는 조금 소홀하게 된 것 같아요. 건물이 완공되기 전에 빨리 운영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일반 건물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안 돼요. 그냥 위탁관리를 맡기든지 사람을 고용해서 관리를 하면 됩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현하고자 하는 수행공동체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예요. 고용을 하는 순간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를 맺게 되니까요.

다소 편법이긴 해도 위탁관리를 6개월 맡기는 방식이 새로운 제안으로 올라왔는데, 짧은 시간 동안 임시로 위탁관리를 허용할 것인지, 그것조차 거부하고 차라리 건물의 문을 닫고 사용을 안 할 것인지, 조만간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이 일어난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그 건물에 안 들어갈 생각입니다. 새로운 건물의 문 앞에도 가지 않을 생각이에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충분한 노력을 했지만 현실이 어쩔 수 없어서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건물을 지어놓으면 스님도 어떡하겠느냐. 설마 안 들어오겠어?’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그러면 개원 기념 백일 법문도 모두 취소할 생각이에요.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려고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아왔는데, 건물 하나 때문에 그것을 어기고 살 수는 없잖아요.

어쨌든 지금 다양한 고민을 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이 일에 자원봉사자로 적극 참여해 주시고, 다른 자원봉사자들도 좀 구해 주세요. 지금 이 법문을 듣고 있는 거사님들도 은퇴한 분이시라면 돈 몇 푼 더 벌려고 하지 마시고 정토회에 와서 건물 운영을 좀 봐주시면 좋겠어요. (웃음)


이 점을 처음부터 얘기했는데도 다른 일로 바쁘다 보니 준비가 좀 미비해요. 얼마 전에 저에게 마지막으로 들어온 요청은 전기기사 한 명만 고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거예요. 그러나 한 명이나 열 명이나 똑같습니다. ‘건시나 곶감이나’ 이런 속담도 있잖아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긴 건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현재는 그런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말씀 주신대로 열심히 자원봉사자를 구해 보겠습니다. 이것저것 걱정이 좀 됐었는데 뻥 뚫린 기분입니다. 잘 들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서초 정토회는 기존 업무에 본부를 운영하는 역할도 있어 활동가들이 어떤 활동을 중심에 두고 해 나가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전법의 길을 떠나라고 하실 때 둘이 의지해서 함께 가라고 하지 않고 왜 혼자서 가라고 하셨나요?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되고 법당이라는 공간이 없어지면 지역 정토회는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토회 통일의병들이 소임을 2-3개씩 하는데 행복학교 진행까지 하려니 부담이 됩니다. 또 지인들에게 불교대학 홍보 시즌 때마다 홍보문자를 보내고 요즘은 행복학교까지 홍보하니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스트레스를 받는데 어떤 마음으로 활동을 해야 할까요?

질문에 대해 답변을 다 해준 후 마지막으로 스님은 다시 한번 정토회가 지켜나가고자 하는 원칙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스님이 너무 까다롭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부처님이 살아가신 삶에 비교하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삶은 초호화판입니다. 지금과 같은 온라인 시대에는 제가 있는 이곳에 폐교 하나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잖아요. 우리가 온라인 시대의 도래를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건물을 짓긴 했습니다만, 새로 지은 건물도 활용 가치가 굉장히 많을 겁니다. 앞으로 정토회 활동이 확대될 것을 예상하면 금방 건물 안이 가득 찰 겁니다.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그러나 이 세상에서 정한 법규에는 이런 건물은 자격증 있는 사람이 업무를 맡아야 한다고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법의 원칙과 세상의 원칙이 지금 안 맞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그런 업무를 능히 맡아서 할 수 있다고 해도 ‘당신한테 자격이 있느냐’ 이렇게 됩니다. 법륜 스님이 이렇게 법문을 하고 여러분들이 다 스님을 좋아해도 동국대 교수 자격은 없어요. 대학도 안 다녔고, 박사 학위도 업으니까요. 환자를 잘 보는 사람이 있어도 의사 자격증이 없으면 의료행위를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 것처럼 새로 짓는 건물 운영에도 이런 한계와 모순이 있습니다. 세상의 규칙을 따라가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훼손되고, 여기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고집하면 세상이 정한 법을 어기는 행위가 돼요. 지금 이런 모순에 놓여 있습니다.

이 모순을 해결하려면 여러분 중에서 전문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큰 뜻을 내어서 새로운 건물 운영에 참여해줘야 해요. 부처님의 가르침도 지키면서 세상의 법규도 지킬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잖아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 중 누군가의 헌신적인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안 그러면 건물 문을 닫아 놓아야 해요. 다른 사람들은 그 건물에 들어가 살더라도 저는 밖에서 살 생각입니다.


다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서


어떤 분은 스님이 타고 다니는 차가 지금 상태로 계속 다니면 위험하다고 하면서 더 좋은 차를 사야 한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금 타고 다니는 봉고만 해도 부처님에 비해 초호화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에 무엇을 더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죠.

부처님이 그렇게 살아가셨기 때문에 저도 조심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것처럼 제가 이렇게 살아야 미래의 정토회 수행자들도 주의를 하게 된다는 겁니다.


저부터 남이 주는 것 다 받아먹고 살면 후대 사람들도 그 모습을 다 본받게 돼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따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는 항상 도에 지나치지 않도록 살아야 해요. 여러분도 이렇게 관점을 갖고 수행정진해나가시면 좋겠습니다.”

합장으로 인사를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정토회 정회원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오늘 법문을 들은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점심 식사를 한 후 여유 시간이 생겨서 농사팀 행자님들에게 산행을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오후에 다들 뭐 하세요? 산행을 같이 다녀올까 하는데...”

“저희는 요즘 행복학교 진행자 교육을 받고 있어요. 시간을 내기가 어렵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무도 시간이 나지 않아서 산에는 가지 못하고 오후 내내 여러 업무들을 처리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하루 종일 공동체 법사단과 정토대전 편찬에 대해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2020/10/26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 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 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김철수
2012.05.11 | 조회 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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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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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나라, 일본
필자가 일본에 대해 얘기할 때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속은 모른다’는 한국 속담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 속담에는 자연에 대한 신뢰와 사람에 대한 불신의 의미가 담겨 있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때문에 사람을 만날 때는 조심하고 조심하란 경구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일본사회에서는 그 반대의 경우가 맞는 것 같다. 자연에 대한 믿음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화산, 지진. 자연은 언제 어디서 사고(?)를 칠지 사람들은 가늠하지 못한다. 곧 믿지 못한다. 대신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끼리 믿음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자신이 속한 집단 내부 구성원끼리의 믿음이지만.

작년에 일본열도 동북지방에서 큰 쓰나미가 덮쳐 일본 역사에 전무한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런데 사람들은 슬픔을 딛고 조용히 사후대처를 해 나가고 있다. 소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메이와쿠 문화’라 칭송도 들으면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일본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이를 종교에서 찾고 있다. 필자는 일본종교에 대한 여러 편의 글을 써왔다. 왜? 일본사회를 이해하는데 종교(문화)는 필수라 보기 때문이다. 종교만큼 미지의 세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거기에는 반드시 발견되는 중요한 주제가 있다. 인간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는가라는 주제이다. 이 주제에 답할 수 없다면 그건 종교가 아닐 것이다. 섬나라인 일본에는 해외로부터 갖가지 종교가 흘러들어왔다. 자생적 종교라 믿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종교인 신도(神道)도 그 중 하나이다. 일본인의 의식 저변에는 신도 등 갖가지 종교문화에서 구성되어진 사고방식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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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가. 일본사회에는 종교도 참 많다. 마치 ‘종교의 전시장’ 같다. 그러나 일본사람들에게 “당신의 종교는?” 하고 물으면 “무종교”라고 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본은 세계에서도 예를 찿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종다양한 종교를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종교들이 단지 병존하여 있는 전시장이 아니라, ‘토착적이고 외래적인 종교적, 문화적 전통들이 일본인의 고유한 신앙, 감정, 접근방식에 따라 서로 섞이고 짜인 일종의 직조물’과 같은 모습이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신의 나라, 곧 수많은 가미[神, 精靈]로 가득 찬 나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일본인은 종교에 이상스럽게 무관심’한 것이다. 이는 분명히 사실이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특정 종교를 갖고 있다고 응답하는 일본인의 비율은 30% 전후에 지나지 않는다. 2005년 8월,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이 조사한 〈종교에 관한 여론조사〉에서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고 답한 사람이 75%에 달했고(그러나 ‘신불神佛에 의지하고 싶은 사람’은 54%였다), ‘종교를 믿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23%였다. 곧 ‘종교를 가진 인구’는 1979년 조사에서 34%였던 것과 비교하면 11% 감소한 것이다. 이는 근 30년 간 거의 일관된 경향을 보인다. 미국인의 91% 정도, 그리고 한국인의 50% 이상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종교를 갖고 있다’라고 응답하는 비율과 비교해 본다면, 일본인의 종교 귀속의식은 희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현세적이며, 풍부한 종교적 생활
그러면 도대체 일본인의 종교관은 어떤 것일까?
일본사회에는 신도, 불교, 기독교, 신종교 등 각종 계통의 종교단체가 400개를 넘고, 그 활동도 사회 전체의 여러 방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은 여러 면에서 ‘종교적’인 심성과 행위를 보여준다. 경제나 정치, 문화,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종교를 제외해버리면 그 의미(meaning)가 상실되어 버릴 정도로 일본인들은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게 되면 유명한 신사를 찾아 참배한다. 불교의 성지인 고야산(高野山) 등에서 특정 기업의 번영을 기원하는 기업공양탑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가정이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장상이나 불단, 신단(神棚, 가미다나)들, 그리고 각종 종교시설에서 이루어지는 출생, 결혼, 장례식 등 각종 통과의례들.

그 뿐만이 아니다. 일본사회에서 공양(供養)의 확대현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선조나 죽은 자에 대한 공양, 그리고 유산, 중절, 사산된 태아[水子みずご, 미즈고]에 대한 수자공양(竪子供養). 그러한 공양시설도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다. 전국유산아(流産兒) 무연(無緣) 공양탑(生長의 家에서 1961년 건립), 오사카에 세워진 73미터나 되는 수자공양탑[辯天宗冥應寺] 등은 모두 낙태아의 위패를 제사하고, 지장(地藏)을 만들어 제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쿄에는 페트(애완동물)공양탑도 있고, ‘00家愛犬之墓’라 적힌 납골당도 흔하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는 인형공양도 있으며, 최근 못쓰게 되어버린, 곧 생명력이 다한 게임기 공양도 있다.

14110_p132_07현대사회는 합리화 및 효율화를 지향한다. 반면에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특히 보이지 않는 음(陰)적인 세계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신세계를 찾고 있다. 이러한 마음의 갈망이나 불안감을 종교는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종교를 일러 ‘위협산업’이란 말까지 들릴 정도이다. 종교가 인간 삶과 죽음을 다루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 여러 지역에 동물묘지[動物靈園]가 설립되어 번성하기까지 하고, 심지어 인형, 게임기의 생명까지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소(小)가족화 된 오늘날 개나 고양이 등이 자녀 형제와 똑같이 가족의 일원으로 다루어지고 있고, 그 대행 역할을 종교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 종교의 특이성에대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이다. 일본인들은 특정 종교에 귀속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풍부한 종교 생활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에도(江戶)시대(17~19세기 중반)부터 이 세상에 태어나면 신사(神社)에 가서 신에게 출생을 알리고, 일상생활은 유교윤리에 따르다가, 죽었을 때는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대개 남자아이는 출생 후 31일째, 여자아이는 33일째, 그리고 ‘7-5-3’이라 하여 남자아이는 3, 5살, 여자아이는 3, 7살 되는 해 11월 15일 신사참배를 한다.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씨신(氏神, 우지가미: 지역공동체가 숭배하는 신)에 대한 출생신고로 씨자(氏子, 우지코: 지역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구성원)의 일원이 되었음을 인정받기 위함이다. 신에게 아이의 성장을 보고하고 신의 가호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으며, 지역공동체로서는 공동체의 일원을 맞아들이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유교적 일상생활이 근대 서구적 양식으로 바뀌어 결혼식은 교회에서 치루고 싶어할 뿐이다. 그래서 새해 첫날의 인사(初詣, 하츠모우데)는 신사에서, 결혼식은 교회에서, 장례식은 절에서 올리는 모습을 흔히 접하게 된다. 이러한 다중신앙은 일본인에게 종교란 현세를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것임을 보여준다. 일본인에게 진리란 현실 그 자체이며, 현실을 넘어선 이념이나 법칙이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절대라든가 보편이라든가 불변성 혹은 영원성이라는 관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 모두가 그대로 진리일 뿐이며,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일본인의 사유방식은 이 세상에 완전히 절대적인 것은 없고 가미(神)조차 오류를 범한다. 진리의 절대성을 신봉하는 문화에서는 옳고 그름, 선과 악, 흰 것과 검은 것을 분명히 하려 든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싸울 때에도 양쪽 모두 이기고 졌다는 식의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 이런 관점이 곧 일본인이 고대로부터 형성하여온 ‘화’(和)의 관념과 통해 있다. 오갈 데 없는 섬나라에서 평화는 상이한 것들의 공존, 그것을 허용하는 관용성이 가장 현실적인 화(和)라고 보는 것이다.


신불습합(神仏習合)으로 이뤄진 신관
이런 화(和)의 정신이 종교에도 스며든 것인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헤이안(平安) 시대(794~1185)부터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이전까지 신불습합(神仏習合)이 일반적이었다. 신도와 불교가 나눠지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불교사원(寺院) 내에 신사의 토리이(鳥居)가 있고, 하지만 대보살(八幡大菩薩), 신사의 신을 불(仏, 호토케)이라 부르는 사례도 있다. 일본의 대표적 근대소설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는 이러한 일본인의 종교관을 적절하게 지적하였다. 곧 일본은 고래로부터 ‘팔백만 신’을 숭배하는 독특한 종교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석가도 예수도 일본에 오면 여러 신들 중 하나로 취급되어 버린다. 동시에 일본인은 해외의 사상을 변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바꿔 만드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려 보라. 여기에 나오는 수많은 신들, 썩음의 신, 강의 신….

유바바 : “여기는 말이야, 인간이 올 곳이 아니야. 8백만의 신령님들이 지친 몸을 달래러 오는 목욕탕이란 말이다.”

일본에서 신을 ‘가미’(カミ)라 한다. ‘가미’는 선악, 귀천, 강약, 대소 그리고 초인적이냐 아니냐 하는 구분도 의미 있지만, 그보다 어떤 의미에서든 위력 있는 존재를 뜻한다. 우주 삼라만상 가운데 위력을 발현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미가 될 수 있다. 때문에 가미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일본에는 실제로는 1천이 좀 넘는 신들이 보이고, 『고사기』에도 300개 이상의 신이 등장한다.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는 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정의이다.

“가미는 우선 옛 기록에 나타나는 하늘과 땅의 신이며, 또한 그 신들을 숭배하는 장소인 사원에 거주하는 정령들이다. 거기에 인간도 포함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 조차 없다. 그리고 조류, 짐승, 수목, 초목, 바다 같은 것도 포함된다. 옛날 관례로는 비일상적인 것, 초월적인 덕목을 지닌 것,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엇을 막론하고 ‘가미’라고 불렀다.”

‘팔백만 신’에서 알 수 있듯, 일본에 신의 수는 무수히 많다. ‘가미’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 다수라는 뜻이다. 가장 많은 것은 천체, 산, 들, 강, 바다, 바람, 비 등 지수풍토 등을 비롯하여 새, 짐승, 벌레, 수목, 풀, 금속, 돌 등 자연현상이나 자연물에 붙여진 가미의 명칭이다. 위인, 영웅, 귀족 등이 가미로 여겨지기도 했다. 근세 말기에는 인간 자체를 가미로 모시는 이키가미(生き神) 관념까지 나타났다. 이 과정을 통해 신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없어졌고, 신을 절대적 존재로 보지 않는 종교의 세속화와 세속의 종교화 토양이 조성되기도 했다.

일본인은 고대로부터 신과 부처들을 여러 가지로 짜 맞추면서 모셔왔다. 그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 독점적으로 믿는 태도는 발달되지 않았다. 구미에서는 기독교도이면서 이슬람교도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일본인은 다르다. 앞서 말했듯이, 한 집안에 불단과 신단이 동시에 모셔져 있다. 출생해서는 신사에 가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기를 바라며, 죽어서는 불교식 장례식을 거치는 것이 보통 일본인의 삶이다.

일본인의 생활 속에서도 이러한 종교적 행동을 볼 수 있다. 종교적 혼합이나 절충현상이 심하다. 정월에 신사를 참배하고, 춘분 추분을 중심으로 한 7일간이나 백중맞이(盆:봉. 8월 15일 조상을 제사하는 불사)에는 사찰, 크리스마스에는 교회, 때로는 신종교의 레크리에이션에 참가한다. 그래도 그들은 별로 모순을 느끼지 않는다.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종교가 없다’는 사람이 많으면서도 또 대다수는 ‘종교심은 중요하다’고 답한다. ‘무종교이지만 종교심은 중요하다.’ 어쩌면 종교가 생활 속에 파고들어 습관화되어 버려 더 이상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무종교라는 의미는 교단 종교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의미로 파악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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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역사연구가이자 작가인 이자와 모토히코(井沢元彦)는 일본인의 무의식에는 강렬한 원령(怨霊)신앙과, 원령을 발생시키지 않는 ‘화’(和)의 신앙이 있고, 신도는 그 위에 성립했다고 지적하였다. 불교도 결국은 원령을 진혼(鎮魂)하기 위한 도구로서 활용되었으며, 일본인의 독특한 ‘언령’(言霊, 우리가 내뱉는 말속에도 영이 깃들어 있어 말을 삼가야 된다는 믿음)신앙도 일본인이 무의식 내에 ‘화’(和)를 이루려는 사고구조의 한 형태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원령 신앙을 우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히메』(원령공주)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모노노케’(もののけ)는 사람을 괴롭히는 사령(死靈), 원령이다. 무차별한 환경파괴로 인해 사라지는 숲의 원한이 낳은 재앙의 신 다타리 신의 저주, 그 저주를 풀기 위한 등장인물들의 노력은 일본 원령신앙의 한 단면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사회의 종교현황
14110_p132_04그러면 교단종교를 중심으로 일본사회의 종교현황을 살펴보자. 문부과학성의 종교통계조사에 의하면, 일본에서 종교 신자수는 신도계가 약 1억 580만명, 불교계가 약 8,900만명, 기독교계가 약 200만명, 그 외 약 900만명으로 합계 2억 600만명이 된다. 일본의 총인구가 1억 2천명 정도이므로 2배 정도의 신자수가 되는 것이다. 신도계와 불교계만으로도 거의 2억명이 된다. 이는 조사가 설문조사로 행해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기 단체의 신자수를 많게 신고하는 경향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아야 할 다른 이유도 있다. 일본에서는 신도, 불교의 신자가 대다수를 점하고 있다. 전술한 대로 오랫동안 신불습합이 행해졌기 때문이다. 메이지 초기에 신불분리(神仏分離)가 이루어진 후에도 신도와 불교 사이의 구별이 애매한 면이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신단[神棚]을 모신 가정에 불단이 있는 경우가 많고, 불교사원의 단가(檀家)인 동시에 신사의 씨자(氏子)인 가정이 많다. 이처럼 신도를 신앙하는 자와 불교에 귀의하고 있는 자를 포함하면 2억명을 넘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 생각하면, 신도와 불교 2개의 종교가 일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도가 불교를 흡수하여 혼연일체가 되어 토착신앙이 되었다고 파악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울 수 있다. 신도와 불교는 하나의 종교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신도
신도는 크게 나눠 신사를 중심으로 한 신사신도(神社神道), 막말(幕末) 이래 형성된 교파신도(敎派神道) 및 종교단체를 결성하지 않고 가정 및 개인이 운영하는 민속신도(民俗神道)가 있다.

14110_p132_05신사신도는 명확한 교의(教義)가 없고(교파신도계의 교단들은 명확한 교의가 있다), 엄밀한 입신(入信) 규정도 없다. 씨자(氏子)로 들어가는 것이 이에 가깝지만, 신단[神棚]을 설치하거나 신사에 기부 및 제사(祭事)에 참여하는 경우를 신자로 보는 경우도 많다. 현재 종교법인이 된 신사는 약 8만개이며, 또 종교법인으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숭경(崇敬)을 받고 있는 신사도 다수 있다. 이러한 신사에서 받들어지는 제신(祭神)은 흔히 팔백만 신이라 불리는 것처럼 실로 다양하며, 또 제신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사 중에는 신궁, 대사 등의 명칭을 갖고 있는 신사들도 있으며, 이 중 신궁은 일본왕실과 관련된 신사이거나 역대 일본왕을 제사하는 신사이다.

교파신도계의 교단들은 신도의 종교전통 내에서 특정 조직자 창교자의 종교체험을 중심으로 교리를 만들고 신자가 형성되는 조직종교이다. 때문에 신종교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흑주교(黑住敎), 출운대사교(出雲大社敎), 부상교(扶桑敎), 어악교(御嶽敎), 신리교(神理敎), 금광교(金光敎), 천리교(天理敎) 등이다.

불교

일본의 불교는 대부분 대승(大乗)불교이다. 불교는 일본역사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현재까지도 많은 신자수를 보유하고 있다. 불교는 6세기에 일본에 전래되었다. 나라(奈良)시대(710~794)에는 ‘남도육종’(南都六宗)이라 하여 삼론종(三論宗), 성실종(成実宗), 법상종(法相宗), 구사종(倶舎宗), 율종(律宗), 화엄종(華厳宗) 등이 널리 퍼졌다. 가마쿠라(鎌倉)시대(1185~1333) 초기까지 일본불교는 8종이었다. 남도육종에 천태종, 진언종이 더해졌다. 그러나 가마쿠라 시대에 정착한 불교문화를 배경으로 호넨(法然)의 정토종, 신란(親鸞)의 정토진종, 일련(日蓮)의 일련종 등 일본인 자신에 의해 독자적인 불교가 형성되었다. 또 이 시기에 중국으로부터 임제종과 조동종도 전해졌다.
2차대전 이전에 종교단체법이 성립될 때 28종파로 정리되었지만, 2차대전 이후 종교법인령이 성립되고 정부 인가제가 시행되면서 다수의 불교 교단이 분파 독립되어 2007년 말 현재 154개의 불교종파가 존재하고 있다.

기독교
기독교의 일본 전도는 1549년 로마 가톨릭의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에르(F. Xavier)가 일본에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7세기 초두에는 수십만 명의 신자가 있었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기독교를 금지하였고, 도쿠가와(德川) 막부도 철저하게 탄압을 하여 기독교도는 이후 거의 전멸하다시피 되었다. 일본에 기독교의 본격적인 재포교가 준비된 것은 막말 경(19세기 초 중반)이었다. 서구 열강이 일본의 개국을 요구하면서 선교사들도 일본열도에 상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독교 신도수는 현재 세례를 기준으로 하여 공식적으로 전인구의 0.8%이다. 사비에르가 일본열도에 최초로 포교했던 직후의 시기에도 1%를 넘었었다. 현재 신자수가 1%를 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일본의 기독교 관계자는 이를 ‘1%의 벽’이라 부르고 있다. 이 비율은 구미를 중심으로 한 선진국가들과 비교하면 당연히 낮다. 또 한국 등 아시아 전체와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낮은 비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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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자수가 적다고 해서 기독교가 일본의 문화, 사회에 점하고 있는 위치가 낮은 것은 결코 아니다. 일본 기독교의 위상은 그 공식적인 신자수를 능가하는 위치에 있다. 일본에서 기독교는 불교에 이어 제2위의 종교이며, 기독교를 제외하고 일본의 종교를 말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기독교는 일본사회에서 문화적 사회적인 활동을 활발히 함으로써 일본 근대화의 추진동력을 만들어 주었고, 때문에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왔던 것이다. 다만 일본사회에서는 예로부터 명확한 입신(入信) 의례를 거쳐 종교조직의 회원이 된다는 습관이 정착되지 않은 점 등 때문에 공식적 신자수가 적게 보고되고 있을 뿐이다.

교파별로 나누어 보면, 신자수가 제일 많은 교파는 가톨릭(구교)이다. 가톨릭의 총수는 45만명 정도로 일본 총인구의 0.3%이다. 프로테스탄트(신교)의 최대교파는 일본기독교단이다. 또 프로테스탄트 중에서 복음파라 불리는 교파는 구미권의 기독교에 비해서도 성서신앙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또 특정 교회에 속하지 않고 자기 집에서 성서만을 보는 ‘무교회 운동’(지도자는 内村鑑三, 우찌무라 간산이 유명하다)도 있다. 그리스정교(일본정교회)의 신도수는 일본에서 1만명 전후로 추정되며, 또 여호와의 증인도 많은 신자를 확보하고 있다.

신종교, 일본사회의 종교 붐
지금으로부터 20년 전(1991년), ‘행복의 과학’이 돌연 일본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를 주도한 자는 일본인들의 동경하는 도쿄대학의 법학부 출신이었고, 그가 쓴 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도쿄돔에서는 그의 탄생제가 거액의 비용을 들여 성황리에 치러져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행복의 과학’은 신종교였다. 소위 신종교가 종종 쓰는 수법인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포교전략’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1990년대는 세기말적 흐름이 일본사회를 지배하면서 제4차 종교 붐이 일어난 시기였다. 일본사회에서 이러한 종교 붐 현상은 몇 차례 있었다. 제1차가 막말유신기, 제2차는 2차 대전 패전 직후, 제3차가 1970년대였고, 바로 제4차가 1990년대였던 것이다.

19세기 막말유신기, “에에쟈나이까”
19세기 일본사회에는 역사적인 거센 조류가 몰아치고 있었다. 19세기 초반부터 러시아와 영국 군함들이 통상을 요구하며 다가왔으나 막부는 쇄국을 고집해 문을 열지 않았다. 백성들의 생활은 불안했다. 1853년에는 미국의 페리제독이 군함[黑船] 네 척을 이끌고 와 개항을 요구했다. 아니 위협했다. 결국 막부는 미국의 강화 요구를 받아들여 이듬해 일미화친조약을 체결했고, 이후 일본의 문을 개방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의 정치와 경제는 혼란스러웠고 민중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이 때 민중들 사이에서는 구원을 바라는 심리에서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참배하는 것이 대유행하였다. 이를 ‘오카게마이리’(お陰參り)라 한다. 이세신궁에 모신 신의 음덕을 바라는 참궁(參宮)이었다. 1830년의 오카게마이리는 약 500만명의 인파가 들끊었다. 오사카에서 이세(伊勢)에 이르는 길가에는 참궁을 위한 인파가 혼잡하였고, 그 사람들은 아마테라스 오오미가미(天照大神)의 신위(神威)를 받들어 미친 듯 “에에쟈나이까(いいじゃないか)”로 쓴다. 곧 “(세상바꿈이)좋지 아니한가”를 노래하고 춤추며 이세신궁으로 향했다. 이러한 참배물결의 큰 파도가 지나가면서, 봉건체제의 틀을 깨트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1867년 막부는 정권을 천황에게 반납[大政奉還]했고, 조정은 천황정치의 부활을 정식 공포했다[왕정복고]. 이듬해 천황은 수도를 쿄토에서 도쿄로 옮기고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했다. 이것이 메이지유신(1868)이다. 이에 따라 신정부는 1869년에 다이묘(大名)들의 영지와 영내 백성들을 천황에게 반납하게 하고[版籍奉還], 1871년에는 종래의 번을 폐지하고 대신 전국을 현으로 나누어 중앙정부에서 관리를 파견했다[廢藩置縣]. 또한 메이지정부는 신사신도를 ‘국가의 종사(宗祠)’로 불교, 기독교와 달리 취급하여, 이세신궁을 정점으로 한 국가신도 체제를 확립하였다.
그래서 신사는 국가가 제사 및 보호 유지해야만 하는 시설이 되었다. 이러한 막말유신기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흑주교(1814), 천리교(1838), 그리고 금광교(1859) 등 많은 신종교들이 출현하였다.

20세기 세 번의 종교 붐, ‘신들의 러시아워’
20세기에는 1945년, 일본의 패망 직후와 1970년대 오일쇼크 직후, 그리고 1990년대 세기말적 분위기에서 세 번의 종교 붐 현상이 있었다.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직후 일본사회에서 국가신도가 폐지되었다. 천황 스스로가 신격(神格)을 부정(인간선언)하였고, 정교분리와 신교자유를 보장하는 신헌법이 시행되었다. 일본종교사에 미증유의 변동이 일어난 시기였다. 히도노미찌, 대본, 혼미찌, 창가교육학회(1946년에 창가학회로 개칭) 등이 조직을 재건하여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그동안 국가신도에 종속되었던 천리교와 금광교도 재출발하고 있었다. 또 생장(生長)의 가(家), 대일본관음교단(오늘날 세계구세교), 지우(璽宇, 1945), ‘무아(無我)의 춤’으로 인해 ‘춤추는 종교’로 일약 유명한 천조황대신궁교 등이 재건 재발족 개교되었다. 이처럼 전후부흥기는 여러 신종교들이 난립 경쟁 발전한 소위 ‘신들의 러시아워’ 시기였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는 대체적으로 평온한 시기였다. 경제적으로 낮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수출호조에 힘입어 일본 국내에서 풍요의 사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시기 시작된 신비 주술 붐은 소위 ‘신신종교’ 및 ‘작은 교단’의 유행현상으로 나타났다.

이전과 비교하여 다른 점은 상대적으로 많은 젊은이가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번화가에는 ‘파친코점보다 그 수가 많다’라고 언급될 정도로 소교단이 배출되고 얼마 안돼 신신종교로 불리워질 정도로 대교단으로 급성장하는 예도 있었다.
그리고 1990년대의 4번째 종교 붐은 세기말적 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세기말 때마다 찾아오는 종말론 이야기, 특히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종말예언 등은 서두에 보았듯이 행복의 과학 등과 같은 신종교들을 탄생시켜 주고 있었다.

현재 일본사회에서 활동하면서 종교단체로 등록된 신종교 교단수만 보더라도 300여개가 넘고 있고, 신자수도 대략 인구의 1~2할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신종교 교단들은 각종 교육기관 및 의료기관을 설립하고 출판 문화사업 등을 전개하면서 일본사회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일본의 대표적인 신종교 단체인 창가학회의 정계진출은 일본사회를 놀라게 하였고, 이 이외에도 PL, 영우회(靈友會), 입정교성회(立正校成會), 생장의 가 등의 신종교 단체가 정치와 끊임없이 관련을 맺어왔다. 또한 이러한 신종교 교단들은 일본 국내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남미,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활발한 포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식의 종교관
일전에 이름있는 한국의 기독교계 인사가 일본사회는 격조가 낮은 여러 잡신들을 모시기 때문에 벌을 받아 자연재해가 휩쓴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일본사회, 아니 일본의 종교문화를 잘 모르고 말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본인들은 종종 ‘풀 한포기, 나무 한 조각, 심지어 우리가 내뱉는 말[言] 한 마디에도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의식조사에서 ‘믿는 종교(교단)는 없으나 신불(神佛)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일본인이 응답이 다수라는 결과도 이러한 일본인의 종교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곧 현대 일본인의 대다수는 실제로 종교의례에 참가하면서도 특정 종교조직에 대한 귀속의식은 희박하고, 스스로는 ‘무종교’(無宗教)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일본인이 신 및 불(仏)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믿고 있지만 특정의 교단종교에 귀속하고 있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일본인의 종교관과 일본사회의 종교 실태를 보고 있노라면, 필자는 차라리 ‘일본교’(日本敎)라 부르고 싶을 때가 많다. 일본의 신사를 중심으로 한 신도신앙, 팔백만신, 일상생활을 신도 불교 기독교 등 여러 종교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들, 어떤 종교가 들어와도 수용하고 녹여내는 습합(習合)신앙 등은 ‘일본교’라는 명칭을 무색치 않게 할 것 같다. 그래서 ‘일본인은 무종교라기보다 일본교라는 종교의 신도’ 라고 주장하는 편이 더 옳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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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비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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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乘非佛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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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이 1967년 12월 7일 해인사 방장 취임으로 한 백일 법문에서 한 대승비불설[1]

1. 개요[편집]

대승불교 경전은 성립 시기가 늦기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으로 볼 수 없어서 대승 불교의 가르침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주장. 불교는 부처를 신이라고 하지 않으나 오히려 정각자로서 다신교적인 여타 신을 뛰어넘는 존재로 여긴다.[2] 또한 석가모니에게서 승려들의 법맥이 시작하고 석가모니의 가르침으로 깨달음의 길에 이른다 하므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설하는 경전이 실제로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그리하여 대승비불설이 나오자 불교계에 큰 파란이 일어났다.

2. 논의[편집]

대승비불설의 기초는 대승불교와 상좌불교의 경전(팔리어 경전)은 아함경을 제외하면 공통성이 없다는 것이다. 대승불교에서 가르침의 근간으로 삼는 금강경·반야심경·화엄경·법화경 등은 상좌불교에는 해당하는 경전이 없다. 전통적으로 대승불교에서는 아함경은 석가모니 전기의 가르침, 법화경 등은 후기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였으며, 전자는 근기가 낮은 자들을 위한 수준 낮은 것, 후자는 근기 높은 자들을 위한 우월한 것으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근대에 문헌학에 기초해 연구해보니, 상좌불교의 (아함경 등) 팔리어 경전의 성립시기가 더욱 빠르다는 결과가 우세하게 나타났다. 다른 설도 존재하지만 대승불교 경전의 성립은 아함경 등 초기경전보다 몇백 년은 늦는다는 것이 일반론이 되었다. 여기에 기초하여 근대적인 '대승비불설'이 나타났는데, 대승불교 경전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승불교 측의 반론/호교론은 다음과 같다.
  • 구전론: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경전으로 결집된 것 이외에도 다른 경로로 구전이 존재했고, 상좌불교 경전은 대승불교 경전과 전승한 집단과 경로가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즉, 대승불교 경전의 성립이 늦은 것은 단지 문서화가 늦었을 뿐이라는 것. 또한 인도에서는 이미 구전전통이 있었고 대승불교 경전의 가르침도 구전으로 전해졌음이 드러난다.
    • 말하자면, 문헌학에 기초한 비판이나 본문을 비평해 연대를 추론한다고 해도 '대승불교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다'라는 증명은 할 수 없다. 성립연대가 늦었다는 것이 곧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필요충분적인 증명이라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물론, 이 주장도 현재로서는 확고한 증거가 없기에 증명이 불가능하다. 문자로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석가모니는 대승불교의 가르침도 전파했다는 '믿음'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인도나 티베트의 일부 사람은 석가모니와 몇몇 지배계급 출신 제자들이 산스크리트어에 정통했으므로, 소수 제자들에게 대승의 가르침을 전하고 이 법맥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비밀스럽게 전승하다가 후대에 문자로 기록했다고 믿기도 한다. 다만, 일부 출토된 프라크리트어 문헌을 볼 때 처음부터 산스크리어 전승되었을 가능성보다는 프라크리트어로 전승되다가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더욱 높다. 또한 모든 대승경전이 소수에게 전승되었다고 보기에는 대승경전의 양이 너무 많다. 또한 대승경전 중에서도 일부만이[3] 이른 시기에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 집단론: 유교의 가르침이 공자 이외에도 맹자주자 등에 힘입어서 성립됐듯이, 역사상 석가모니 개인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해도 그 가르침을 이어받은 집단과 제자들이 완성해 낸 가르침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다.[4]
  • 불성론: 대승불교의 특수한 관념으로, 모든 중생은 불성(佛性)이 있고 대승불교 경전도 불성에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다. 예컨대 수행자가 명상으로서 만난 부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것이다. 가령, 무착(아상가)의 경우 수행 중 도솔천의 미륵보살에게 가르침을 받아 그 내용을 논서로 기록하였다.

이전부터 상좌불교에서는 대승불교 경전은 본래 없던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대승불교 측에서는 이상과 같은 논리로 반박했다. 근대 문헌학상으로 이것을 지지하는 근거가 나타나자 새로운 논의가 필요해졌다. 위경 관련으로 중국 불교 내부에도 많은 논쟁이 있었다. 중국에선 아함경, 법구경 등의 경전은 석가모니의 활동 초기에 근기가 낮은 중생을 위한 가르침으로 방편이었다고 하고, 후대에 나온 화엄경, 금강경, 법화경 등은 어느 정도 단계가 오른 중생을 대상으로 한 수승한 가르침이라는 식으로 정리했다. 당연하지만, 이런 분류는 실제 역사와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더구나 중국 불교 내에서도 후발 주자인 선종이나 유교나 도교 등에 공격받을 시기에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많은 위경/위조 문헌이 만들어졌다.

3. 맹점[편집]

대승경전이 역사적인 불타의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에 불교를 믿지 않는다면 이는 참다운 신앙이 아니다. 그리고 신앙의 확립은 대승비불설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무라카미 센조(1851~1928). 출처 아이러니하게도 대승비불설을 처음 제기해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힌 당사자다.

대승비불설이 본격으로 처음 등장한 일본의 대승비불설 주장 세력은 초기 경전(숫타니파타법구경자설경아함경)만이 진실한 경전이고 다른 불설은 전부 부처의 직설(直說)이 아니라고 단정하여 결론하면서 많이 비판받았다. 당시 일본의 불교계 전체가 이 설을 내세운 학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그 학자들도 이 탓에 평생 고생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때의 비판은 당시 불교계가 최신 문헌고증학의 연구 결과를 수용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았던 것이 더욱 컸으나 그 후 다음과 같은 비판들이 등장하였다.

1. 대승불교 경전이라고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관련이 전무한가?

대승비불설을 향한 가장 오래된 비판이다. 물론 현대에는 정말로 대승불교 경전들을 전부 석가모니가 설했다는 걸 믿는 학자는 없고, 승려들 중에서도 학문을 많이 연구하거나 이쪽에 관심있는 이들은 믿지 않는다. 현대에 이 비판은 대승불교 경전의 설립과 유관하다. 우리나라 조계종의 승려용 교육교재로 쓰이는 책이나 자료에도 학자들이 연구해 낸 경전 형성과정은 당연히 언급된다. 즉 현대 기준으로 제대로 교육받은 한국 승려라면 대승비불설이나 관련된 정보를 최소한 들어보기는 했어야 정상이다.

물론 대승불교 경전이 초기 경전보다 한참 뒤에 성립되었음은 사실이지만, 대승불교도 결국에는 석가모니의 제자들이 만든 것이고 기존 불교문헌과 연구를 근간으로 형성된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승불교에서 강조되거나 보이는 공 사상이나 불법승 삼보를 향한 공양사상이나 정토염불 신앙은 초기불전 중 아함경에도 나타나며, 초기 불교를 기반으로 생겨난 것이지 그냥 짠하고 독자스럽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2. 상좌부 불교 문헌들은 비불설에서 자유로운가?

이것은 현대적인 문헌연구학을 이용한 불교문헌연구가 더욱 발달하자 나타났다. 남전불교 문헌도 연구 결과, 초기 경전이 대승불교보다 잘 전수되고 중시되어 왔음은 사실이지만, 상좌부 불교에서 전래되는 불경을 비롯한 불교의 여러 문헌 또한 후대에 여러 차례 첨삭과 증보개정을 거쳐 현재까지 이른다는 것은 문헌연구학상으로는 이미 정설이다. 이 때문에 일부 극단적 연구자들은 상좌불교 문헌이나 대승불교 문헌이나 학술상 정통성 면에서는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거 이 문제 때문에 한국에서 논쟁이 일어났다. 당시 팔리 경전의 정통성을 비판하는 쪽은 동국대학교 권오민 교수를 비롯한 기존학계였고, 팔리 경전을 옹호하는 사람은 마성 스님과 전재성 박사였다. 대체로 한국과 일본 학계에서는 권오민과 비슷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대승불교가 주류라는 점을 필히 감안해야 한다. 그러니 국제학계의 학설들을 알아보는 것이 더 객관적이다.

호주국립대학교의 J. W. de Jong은 팔리 경전의 상당부가 부처의 가르침을 잘 보존하였으나 후대에 전래되면서 일부가 변형됐다고 주장한다. 옥스퍼드대학교의 A. Wynne은 팔리 경전이 초기 불교의 가르침을 담고 부처의 가르침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방법이라고 주장한다.[5] 반면 페어필드의 Ronald Davidson은 후세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현재 불경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정확히 재구성하기는 불능하다고 주장한다. 캘리포니아의 Gregory Schopen처럼 아예 원시불교를 다룬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에 현재로서는 석가모니의 본 가르침을 다룬 추론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러한 논의들에서 알 수 있듯, 팔리 경전도 과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는 국제 학계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거리이다. 현재로서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만한 고고학상 근거가 부족하기에 명확히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참고로 현존하는 불경 중 가장 오래된 간다라 불경 중에 대승경전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6][7] 다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간다라 불경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불경을 기록한 문헌 중 그 존재가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이지 불경의 내용 자체가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인도에 남아 있는 왕 아쇼카의 비문을 보면, 현존하는 팔리어 경전 일부가 인용된다.

4. 관련 문서[편집]

[1] 물론 성철스님이 대승비불설을 말했다기 보다는 소승비불설도 더불어 이야기하고 하여 부처님 중도사상을 불교가 어떻게 찾아낸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2] 불교는 무신론이 절대로 아니고 기독교다운 유일자로서의 신과 다를 뿐 천룡팔부 등 신들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리고 부처는 이러한 신들을 뛰어넘었다고 믿는다.[3] 이를테면 소품반야경이나 금강경아미타경 정도가 초기 대승불교 경전으로 가능성이 있다.[4] 다만 종교보다는 철학의 성격이 깊은 유교와의 비유가 적합한지는 생각해볼 문제이며, 오늘날에는 유교의 패악에 대해 논하는 경우 유교를 옹호하는 쪽이 도마뱀 꼬리 자르듯 공자님 말씀은 그런 것이 아니며, 주자가 유교를 열화시켰다며 논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5] A. Wynne은 심지어 팔리 경전의 몇몇 부분은 부처가 실제로 말한 원형 그대로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6] 2012, Harry Falk과 Seishi Karashima이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으로 서기 75년이라는 결과가 나온 소품반야경 조각을 출판. https://en.wikipedia.org/wiki/Prajnaparamita[7] Edward Conze는 소품반야경이 기원전 100년경에 기원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불교평론 대승불교 정체성 논쟁 / 이홍구

불교평론


대승불교 정체성 논쟁 / 이홍구
특집 | 현대 한국불교 10대 논쟁
[62호] 2015년 06월 01일 (월) 이홍구  dagamsa27@hanmail.net
1. 머리말

   
이홍구
동국대 강의교수

현대 한국불교에서 대승불교의 정체성 논쟁에 대해서는 시기별로 크게 3시기로 구별할 수 있다. 첫째, 제1기에 해당하는 박경준의 논쟁은 대승불교 흥기 배경과 인도와 중국, 근대 일본의 대승(大乘) 불설·비불설론 논쟁의 대두와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 나서, 우리나라에서는 본격적인 연구 논문과 저술이 거의 없음을 지적하고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대승경전관의 정립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제2기의 대승불교 정체성 논쟁의 흐름은 김용표가 〈법보신문〉 647호에 “초기불교 지상주의를 경계한다”라는 특별기고를 투고하면서 촉발되었다. 제2기 대승불교 정체성 논쟁의 주요 쟁점은 대승불교의 다불다보살 신앙에 대한 논쟁, 대승불교의 기복신앙, 대승 위경설에 대한 관점 차이, 대승경전의 저자 문제, 한국불교의 정체성 등이었다. 제2기 논쟁에서 홍사성, 마성 스님, 조준호, 전재성 등은 초기불교적 관점에서 주로 접근하고 있으며 김용표, 진현종, 김성철, 주명철 등은 대승불교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나름대로 대승불교와 한국불교의 정체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하지만 논쟁의 주제가 너무나 큰 담론이고 논쟁의 범위와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의 부재와 논쟁의 장이 교계 주간지라는 제약적인 한계로 더 큰 성과를 도출해내지 못한 것은 아쉽다.

셋째, 제3기의 대승불교 정체성 논쟁은 권오민이 〈법보신문〉 1008호에 “대승 불설 부정은 무지탓”이라는 특별기고를 투고하면서 촉발되었다. 대·소승의 공통된 불설 기준에 대한 그의 주장은 전통이나 권위에 의지하지 말고 법성[진실]에 의지할 것을 전제로, 소승이나 대승 등 종파적 입장에 근거한 오늘날의 비불설 논쟁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했다. 제3기 권오민이 촉발한 대승불교 정체성 논쟁의 주요 쟁점은 정법 기준에 대한 논쟁, 불설·비불설에 대한 관점 논쟁, 제 부파불교의 불설·비불설 논쟁, 대·소승 간의 불설·비불설 문제, 아가마와 니까야의 친설 논쟁 등이었다.

권오민이 아함과 니까야는 부파에 의해 찬집(纂集)된 불설로서, 상좌부에서 편찬 전승한 경전이라는 주장에 대해 친설론을 가지고 반대하는 마성, 전재성, 황순일 등과 앞의 관점과는 별개의 입장에서 논평하는 조성택, 조인숙, 안성두, 이영철 등의 의미 있는 글들이 있었다. 이 논쟁과 논평은 불교학계에서 보기 드문 이변의 논쟁이었으며, 학자의 범위를 넘어 불교 일반에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권오민의 불설·비불설에 대한 논문의 본래 여러 주제와는 상관없이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의 친설·비친설론으로 변질되어 종파적 입장에서 다루어진 것은 크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제1기부터 3기까지의 전체적 흐름을 보면 대승불교의 정체성 논쟁이 결국은 21세기의 새로운 교판으로서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과 역할을 위해 필요한 접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주제, 범위, 방법 등에 많은 구체적 접근이 결여된 것이 아쉽다. 즉 대승불교의 정체성 논쟁의 핵심은 첫째, 불설·비불설 논쟁에서 경전은 특수한 사상 성향을 지닌 그룹에 의해 각기 별도로 편찬 집성되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둘째, 불교권 내적인 문제 제기로 교학과 신행의 체계성과 조직성의 결여를 해결해야 한다. 셋째, 불교권 외적인 문제 제기로 현대사회의 다기한 문제를 해결할 열쇠에 대해 불교 신행의 역할을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2. 근대불교학의 역사적·문헌비평학적 접근

1)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의 우월적 가치

고래로 불교의 제 경론을 그 뜻이 불완전한 것[不了義]과 완전한 것[了義], 은밀한 것[密義]과 분명한 것[顯了], 나아가 방편설(方便說)과 구경설(究竟說) 등으로 분별하게 되었고 급기야 후자로 해석된 경전에 근거하여 불교교파나 종파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불교경전은 특수한 사상 성향을 지닌 그룹에 의해 각기 별도로 편찬 집성되었으며, 이에 따라 불설·비불설의 문제는 불교사상사에서 필연적인 것이었다.이러한 불설·비불설의 문제의 흐름에 대해 김호성은 반복사관(反復史觀), 퇴보사관(退步史觀), 발달사관(發達史觀)으로 분류한다.

즉 퇴보사관은 초기불교의 우위적 관점에서 대승불교를 바라보는 것이고, 발달사관은 대승불교의 우위적 관점에서 초기불교를 바라보는 것이고, 반복사관은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를 동등한 선상에 놓고 이해하는 것이다. 불설비불설의 문제는 종파적 견해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마성 스님은 초기불교 지상주의자는 아니지만 퇴보사관적 관점에서 “불교의 정통성과 기준은 오직 석가모니 부처님이다.”라고 한다. 또한 그는 “현재의 한국불교 현상들은 오히려 대승불교의 본질 혹은 정신을 크게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붓다의 원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마성 스님의 이와 같은 관점에 대해 김성철은 발달사관적 입장에서 “대승불전이 설혹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교리는 아함이나 니까야, 율장과 같은 초기불전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다.”라고 한다.

이러한 퇴보사관이나 발달사관과는 달리 권오민은 “대·소승 경전 또한 모두 불설을 담고 있는 불교의 경전으로서, 같은 위상을 갖게 된다”고 하면서 문헌적 사료와 경전 형성의 역사적 한계를 근거로 삼아 자신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권오민의 이러한 주장은 반복사관적 관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3가지 다른 관점에 대해 제1기부터 제3기까지의 학문적 접근방법을 역사적·문헌비평학적 접근, 경전해석학적 접근, 양 접근으로 구분하기가 애매한 경우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역사적·문헌비평학적 접근이란 불교의 정통성과 정법의 기준 그리고 신앙의 문제를 다루는 근대불교학적 관점으로 합리주의(rationalism) 사상과 실증적 방법론을 활용하는 것이다.

2) 아가마와 니까야의 친설 여부

대승경이 비불설이라면 아함과 니까야 또한 비불설이라고 하는 권오민의 주장에 대해 마성 스님은 대승경전은 후대의 대승불교도들이 붓다의 가르침을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불설로 가탁한 것이라 보면서, 아함이나 니까야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붓다의 친설임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권오민은 마성 스님의 비평을 학문보다 상식에 기댄 것이라 비판하면서 아함과 니까야에 대해 “초기경전인가, 유부 혹은 상좌부 경전인가?”라고 반문한다. 또한 상좌부에 대한 정통성의 이해 부족에서 비롯되었다는 마성 스님의 주장에 대해 상좌부가 전승한 니까야만이 불설이고 정법이며 정통불교라는 맹목의 폐쇄적 신념은 사대주의라고 논평했다.

전재성은 아함이나 니까야도 부처님의 친설이 아니고 설일체유부나 상좌부에서 취사선택 편찬·결집된 것이라는 권오민의 주장에 대해 고고학·문헌학적 입증 사실을 토대로 아함과 니까야는 창작 아닌 리얼리티 자료로서 역사적 부처님의 친설이 담긴 고층의 경전이라고 논박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권오민은 전재성의 논리 근거인 고고학·문헌학적 입증 사실에 문제를 제기하며, 불설/비불설(혹은 친설/비친설)과 고층/신층의 문제를 서로 개입시키는 것은 전혀 엉뚱하다고 보았다. 뒤이어 황순일은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을 친설이라는 잣대를 통해 동일선상에 놓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제를 놓고, 초기경전이 고타마 붓다의 말씀을 가감 없이 기록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구전이라는 부파불교의 경전 전승의 전통으로 볼 때 어느 정도 붓다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였다. 권오민은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을 동일선상에 놓고 보기는 어렵지만 양 경전은 편찬 시기(BC.1~AD.5)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동일선상에 놓고 이야기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하였다. 또한 부파불교의 경전 전승 전통에서 왜 전문 암송 집단이 필요하였고, 부파마다 그러한 집단이 존재한 까닭은 무엇이며, 그들에 의한 의도적 개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의 다양성의 시대에 법성의 획일적 사유, 교조적 획일화, 믿음의 한계 등에 대해 지적하며 현대의 새로운 불교학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3) 다신적 신앙과 기복설 문제

〈법보신문〉 648호에서 홍사성은 김용표를 세 가지 관점에서 비판하면서 대승의 다신적 신앙은 불설과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불교의 정통성과 정법의 기준은 다양한 시각의 통찰이 필요하다는 김용표의 주장에 대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둘째는 대승불교가 깨달은 사람의 말을 불설로 인정하는 경전관을 반대하는 관점이다. 셋째는 모든 종교 현상은 역사적 문화적 산물이며 따라서 대승 시대에 제시된 관음·정토·지장·미륵신앙을 정법주의 잣대로 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반대하는 관점이다.

그리고 뒤이어 〈법보신문〉 649호에서 진현종은 부처님 친설 고집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초기불교의 이성-합리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마성 스님은 역사적 붓다를 외면하면 외도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대승불교의 포용과 관용성 때문에 순수불교가 갈수록 희석되고 있다고 하였다. 심지어 그는 한국불교는 타락한 대승불교라고 지적하면서, 한국불교에 대해 ‘대승 옷 입은 힌두교’라고까지 신랄하게 지적했다.

김성철은 홍사성과 마성 스님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면서 기복-다불 사상도 엄연한 불교이고, 초기불교의 논리가 대승으로 귀결되었으며, 대기설법 정신이 새 사상을 탄생시킨 원동력이라 보았다. 조준호는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 대승이 아니며, 기복을 대승이라고 보는 김성철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초기불교는 초기불교로서 대승불교는 대승불교로서 각각 ‘불교의 귀결’이라고 보고, 기복을 죄악시하지는 않지만 다만 기복에서 작복으로 지향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전재성은 대승경전이 무상, 고, 무아의 니까야 정신을 계승하고 있으므로 대승경전은 초기불교 정신을 계승한다고 보면서 대승을 비불교로 보는 것은 역사·사상에 대한 이해부족이라고 진단했다. 주명철은 대승은 새로운 발명이 아니라 석존 정신에 충실한 재해석이라고 전제하고 대승유신론의 폄하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면서 대승의 여래 또한 깨달음으로 이끄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나중에 김호성은 초기경전에 나타나는 ‘과거7불’의 존재를 소개하고, 이러한 ‘과거7불’ 사상은 고타마 붓다라는 일불(一佛)에서만 불교를 찾는 것이 바로 불교의 본의가 아님을 상징한다고 분석했다.

3. 현대불교학의 경전해석학적 접근

1) 불설론과 정법의 기준에 대한 논쟁

마성 스님은 대승경전의 친설론을 부정하고, 상좌부 아가마와 니까야만이 친설이자 정법이라고 한다. 또한 그는 대승경전의 정통성과 정법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승경전이 붓다의 가르침에 합치하느냐 합치하지 않느냐를 따지는 두 가지 전개 방향을 설명한다. 하나는 불설의 기준과 해석에 의해 대승경전이 참된 불설임을 논증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파교단이 전승한 니까야와 아가마의 정통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라고 하였다. 아가마와 니까야의 친설 여부는 앞에서 설명했고, 대승경전이 참된 불설임을 증명하는 사의(四依)와 사대교법(四大敎法)에 대해 살펴보겠다. 이러한 접근은 역사적·문헌비평학적 접근에 반해 현대학자들의 경전해석학에서 불교란 붓다의 가르침에서 발로하였지만, 그 가르침을 각 시대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고 실천해 온 노력의 역사적 총체로 보는 관점이다. 먼저, 박경준은 친설론과 정법론에 대해 《대승열반경(大乘涅槃經)》을 토대로 종파와 교판적 관점을 벗어난 법(法)·의(義)·지(智)·요의(了義)로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한마디로 불교는 붓다보다도 진리 그 자체를 지향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불교의 근본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경전의 권위는 ‘붓다의 직설(直說)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내용이 진리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해서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대승열반경》에서는 “사람과 말과 식(識)과 불료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말고, 법(法)과 뜻[義]과 지혜와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친설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법론의 의미에 대해 사람[人]의 종파적 입장이 아니고 불법 자체의 관점, 말[語]의 언어적 입장이 아니라 의미론적 관점, 식별적 입장이 아니라 지혜의 관점, 불료의적 입장이 아니라 요의(了義)로 판단된 경의 진실의(眞實義) 관점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 권오민은 불설의 진위를 판단하는 잣대는 원래 4대교법이었지만 그들은 여기에 “법성에 어긋나지 않으면 불설이다”는 말을 더하여 수정하였고 나중에 다시 이를 근거로 “4의[依: 人·語·識·不了義]에 의지하지 말고 법(法)·의(義)·지(智)·요의(了義)에 의지하라”를 추가하였다고 설명했다. 즉 이 4가지를 통합하여 갖춘 것이 법성을 갖춘 것으로 불설 편찬의 근거는 불설이 아니라 법성이라고 하였다.

2) 대승경전의 역사적 필연성과 신화적·설화적 가공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불법을 펴신 이후로 승가와 재가는 시대에 따라 불교 신행의 정체성 내지 이상적인 신행 행태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여 왔다. 그러나 대·소승의 유부, 경량부(성실론), 중관, 유식 계통의 논서가 표면의 학설은 달리하였지만 불설의 정의에 관한 한 정확한 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에는, 먼저 신행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한 확고한 이해의 기반 위에 시대적인 요구를 수용한 적극적인 대응을 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세 확장을 목적으로 신행활동을 강조하는 종단의 소아적인 발상이나 이익집단 결성을 목적으로 하는 개인들의 신행생활은 타파되어야 한다. 결국 불교 학문을 토대로 하는 신행 시스템 구축은 불교 고래의 그리고 불교 본연의 자리이타 지향적인 교리를 구현하는 자발적인 믿음과 수행을 촉발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흐름의 대표학자 가운데 한 명인 김용표는 대승경전의 본성에 대한 해석학적 탐색을 기초로 하여 현대 불교를 위한 창조적 대승해석학의 방향을 사상의 역사성 문제, 경전적 진리의 상황과 맥락적 진리(contextual truth) 성격, 무한히 열린 자유로운 해석 정신[불의 四種釋義]의 세 가지로 제시한다. 특히, 진리란 세간의 전통이나 언어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간 언어의 형태로 나타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론의 해석도 언제나 현대 서양해석학에서 말하는 선이해(先理解)와 일련의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al circle)에 조건 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김호성은 대승경전에는 신화적·설화적 가공(架空)의 이야기가 많으므로, 이성적인 초기경전보다는 믿을 만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2가지로 반박하였다.

① 연기이므로 허(虛)이고 실(實)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가공의 형식-예술적 형식-을 통해서 더욱더 잘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보인다는 점에서 대승경전은 미학적으로 이해되어야 함을 시(詩) 〈그림자 극〉을 통해서 말해보았다. ②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현실의 이야기는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지만, 가공의 이야기는 불변의 것으로서 더 진실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허와 실이 서로 역전될 수 있음을 다시 시 〈드라마〉와 〈극락에서 온 메일〉을 통해서 중송(重頌)해 보았다. 시로 말한 것 역시 형식에 사로잡혀서는 안 됨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즉 대승경전의 신화적/설화적 가공을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 “극락이나 아미타·지장·관음의 존재는 실로 초기경전의 교설에 반(反)하는 것이 아니라, 아공(我空)·법공(法空)으로 인해서 그 세계는 실재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3) 초기경전과 대승경전 저자 문제

원래 경(經)의 원어(原語)인 Sūtra는 동사 siv 또는 sīv(꿰매다의 의미)에서 파생된 말로 실, 끈, 줄 등을 뜻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위로는 진리와 성현의 말씀을 꿰고[貴穿] 아래로는 중생(의 고통과 미망)을 거둔다는[攝持] 것이 경의 ‘근본 기능이요, 존재이유’인 것이다. 부처님이 자신의 가르침을 상류층의 언어인 베다(Veda)어가 아니라 각 지방의 민족어(民族語)로 전하게 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즉 초기불교가 친설이라 하더라도 완전한 언어 인식과 표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언어가 되어 중생들의 개아적 언어 인식과 한없는 거리와 간격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따라서 붓다는 자신의 언어를 통해서 제자들로 하여금 법[진리]을 자각게 하려고 했을 뿐이지 자신의 말을 절대시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가르침을 뗏목에 비유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박경준은 “본래가 성전 암송가로서 원시경전의 내용을 해박하게 꿰고 있었고 찬불승[讚佛乘: 佛傳文學]을 발전시켜 오기도 한 법사[法師: 다르마바나카]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체험에 근거하여, 내용적으로는 원시경전의 근본사상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구성과 형식, 문체와 체제를 달리하는 새로운 대승경전을 편찬하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김호성은 철학적, 해석학적 관점을 기반으로 4가지 다른 관점에서 대승경전의 저자 문제를 논증하고 있다. 첫째, 초기경전은 저자가 있고 대승경전은 저자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저자의 표기에 의해서 저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유명사를 실체의 드러남으로 바라보는 미망일 뿐이며, 초기경전의 내용 즉 연기의 관점에 서게 되면 고유명사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둘째, 대승경전의 저자들이 대승경전을 제작해서 후대에 많은 평지풍파를 가져왔다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하이데거-가다머 사제(師弟)의 철학적 해석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시간성/역사성의 개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보르헤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저자, 삐에르 메나르를 살펴봄으로써 전 주장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함/니까야를 똑같이 베낀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시공간의 컨텍스트가 반영되어서 이해될 수밖에 없으므로, 아함/니까야와는 다른 텍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렇게 다르게 이해된 의미의 생성을 문자화(文字化)한 것이 대승경전이다.

즉, 대승경전의 제작은 시간성/역사성의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셋째, 대승경전을 불설이라 칭한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에 대해 보르헤스의 또 다른 소설 〈틀뢴, 우크바,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를 전거로 내세워 “모든 책은 익명이며, 오직 한 사람의 저술”이라는 점을 말하였다. 넷째, 대승경전의 저자들이 스스로 이름을 당당하게 밝히지 않은 것은 붓다의 권위를 빌려서 그 책의 권위를 넓히고 자설(自說)을 좀 더 쉽게 널리 펼치기 위한 사욕(私慾)에서였다는 주장에 대해 심성사적(心性史的) 방법론과 ‘정황증거’를 가지고 논박하였다.

4. 바람직한 논쟁의 방향을 위한 조건과 과제

1) 화엄원융의 언어인식적 접근

앞에서 언급했던 대승경전이 참된 불설임을 증명하는 사의(四依)와 사대교법(四大敎法)에 대해 화엄에서는 언어인식적 관점으로 3가지 관점을 제공한다. 첫째, 법(法)과 의(義)에서 법 자체의 언어론과 의미론적 입장에 대해 상입(相入)의 무아론적 언어인식의 관점을 제공한다. 즉 무아적 언어인식의 경계는 수십전법에서는 중문(中門)의 상호포섭적 관계로 능구(能具)와 소구(所具)처럼 명칭[名稱: 言說]과 내포[內包: 意義] 간의 상호 주관적인 관계[否定的 同一視]를 가지고 무아의 의의를 나타낸 것으로, 주체와 객체의 상호 경합적 관계이다. 그러므로 명칭은 의의를 가지고 언설을 삼으므로 언설이 의의 아님이 없다. 그러므로 언설이 언설이 아니다. 내포도 언설로써 의의를 삼으므로 의의가 언설 아님이 없다. 그러므로 의의가 의의가 아니다.
둘째, 지(智)와 요의(了義)에서 지란 자신의 아뢰야식에 의거한 알음알이를 지양하고 지혜로 보는 개인적 깨달음의 언어적 표현이라고 하면 요의는 깨달음 자체가 되는데, 여기에 대해 상즉(相卽)의 중도론적(中道論的) 언어인식의 관점을 제공한다. 즉 언어적 표현과 깨달음의 중도적 언어인식의 경계는 수십전법에서는 즉문(卽門)의 상호 환원적 관계로 근본[根本: 깨달음]과 지말[枝末: 언어] 간의 상즉인 관계[肯定的 同一視]를 가지고 중도의 의의를 나타낸 것으로, 근본과 지말의 상호 협력적 관계이다. 그러므로 지말은 오증(悟證)된 의의(意義)가 언어에 속한 것으로 고요하면서도 끊임없이 작용하고,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설명한 것이다. 근본도 언설이 오증(悟證)의 표상(表象)에 속한 것으로 작용하면서도 늘 고요하고, 설명하면서도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 언어 매개를 통한 자비 실행이 교분(敎分)의 입장이라면, 언어가 단절되고 증득해서 얻는 경지가 증분(證分)의 입장이다. 하지만 증분의 침묵은 중생에게 들리지 않고, 교분의 언어는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의 의미를 담고 표현되는 언어이다. 그러므로 제불보살의 대자비 본원력의 바탕이 되는 부주중도적(不住中道的) 언어는 중생들의 눈높이에 따라 침묵과 언어가 공존하는 언어표현이다. 즉 연기분과 증분의 관계에서 언어의 궁극적 역할과 의미가 드러난 것이 부주중도의 언어인식이다. 따라서 초기불교가 친설이고, 대승불교가 불법이라고 하면 친설은 일(一)이자 증분, 법설은 다(多)이자 교분이 되어 상입상즉의 원융적 관계를 이룰 수 있다.

2) 학제간 연구와 한국불교의 실용적 좌표

현시대까지 초기불교와 아비달마, 소승과 대승, 상종(相宗)과 성종(性宗), 교종과 선종 등은 서로 다른 영역으로 인식되거나 다만 어느 일방에 의한 요의(了義)와 불요의(不了義), 방편(方便)과 구경(究竟)의 관계로서만 논의되고 있을 뿐 서로 간의 허심탄회한 논의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불교권 자체 안에서 이러한 문제를 확인하는 방법도 좋겠지만, 초기불교의 가치와 대승불교 및 대승경전관 및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논쟁의 방향 설정을 위해 학제간 연구도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불교와 학제간 연구에는 다양한 분과가 있겠지만, 앞에서 언급했던 화엄원융의 3가지 언어인식적 관점을 바탕으로 3가지 접근을 제안한다. 첫째, 4대교법 가운데 법과 의의 의미를 보다 객관화하기 위해 개아와 무아의 언어인식적 관점을 토대로 하는 심리언어학과의 학제간 연구이다. 인지과학적 관점을 기초로 하는 신경·심리언어학의 접근법에서는 1968년 초개인심리학 이전의 서양철학과 서구심리학의 개아를 강화하는 언어인식의 심리언어학적 의미를 평가한다. 그리고 무아의 언어인식적 관점 제공을 위해 유식불교의 12연기 언어인식 메커니즘과 무아의 정문훈습을 통한 제8식의 변화 양상을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학제간 연구를 통해 개아와 무아의 의식 및 무의식의 관점에서 언어인식의 긍정성과 부정성의 양면성과 한계성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둘째, 4대교법 가운데 지와 요의의 의미를 보다 객관화하기 위해 개아와 무아의 통합적 언어인식적 관점을 토대로 하는 통합심리학과의 학제간 연구이다. 이러한 연구는 서양과학의 심리학과 동양문화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인 불교학의 만남이자 진정한 융합을 시도하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통합심리학에서 말하는 의식의 각 층에 대한 개념과 범위를 한국불교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설정하고 접근할 것이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즉 인간존재의 구성 요소인 의식의 스펙트럼에서 1차원적 상호침투의 이질적 등계층의 홀로그래프적 언어인식, 다차원적 상호침투의 홀로키적 온우주론의 언어인식, 절대정신 등이 중요한 테마이다. 1차원적 상호침투는 화엄의 상입, 다차원적 상호침투는 상즉, 절대정신은 법성과의 비교고찰이 의미 있는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4대교법을 아우르는 법성의 현시대적 의미를 보다 객관화하기 위해 집단의 언어인식적 관점을 토대로 하는 과학철학과의 학제간 연구이다. 왜냐하면 현시대에 경험주의적 과학지상주의자와 유물론적 실증주의자의 전통 경험과학적 진리관이 일반인들을 혼미하게 오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불교 정체성 정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학제간 연구 가운데 하나인 과학철학(科學哲學, philosophyofscience)은 과학을 대상으로 하는 철학으로, 철학과 과학을 대비해 생각해볼 때 몇 가지 점에서 고려의 대상이 된다.

3) 교학과 수행의 통합모델 필요성 제기

오늘날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에 대한 통합시각을 제안하고 교학과 수행의 통합모델 개념 설정을 위해 신행(信行)의 의미를 교학의 관점에서 평가할 수도 있고, 신행의 관점에서 교학을 평가할 수도 있으며, 양쪽 모두 동등한 가치 선상에 놓고 평가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신(信)·해(解)·행(行)·증(證)의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현대 한국에서 제기되는 ‘신행’ 관련 논의의 틀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불교권 내적인 문제 제기로서 통불교적인 한국불교의 속성으로 야기되는 신행의 체계성과 조직성의 결여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불교권 외적인 문제 제기로, 현대사회의 다기한 문제에 대한 불교 신행의 역할과 역량 정립이다.

한국불교의 정체성 정립을 위해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유용한 접근이 문화(심리)학이 될 수 있다. 원래 문화학이 발생한 의의는 개별 학문들로부터 나온 개별사건들을 다시각적 관점에서 네트워킹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조정자 역할을 담당하는 초과학적 프로그램으로 학문들 간, 학문과 실천 간을 연결하는 지평과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불교문화학의 한 범주로서 ‘믿음과 실천’의 연구목적은 ‘문화적 지향’의 인문철학으로서 불교학에서 자신의 학문영역과 이론적 태도의 한계를 넘어 ‘문화적 전체’ 속에서 ‘믿음과 실천’의 의미를 추구하고 동시에 사회적 실천을 위한 방향타의 구실을 떠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란 좁은 의미로 본다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지만 넓은 의미로 본다면 불교란 “석존을 개조로 하여 열반 혹은 깨달음을 구하는 것을 최고 구극의 가치 또는 목적으로 하고, 그 실현을 목표로 하여 세계 각 지역에서 전개되는 문화의 종합적 체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불교는 문화로써 존재하고 문화로써 표현되며, 문화로써 기능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21세기 ‘한국불교문화’라는 프리즘은 현대 신행생활의 기본방향으로 첫째, 불교권 내적인 문제는 자리행적 신행생활의 관점으로 개인수행 및 정신건강의 측면과 종교 의례문화적 신행 방법 등의 접근이다. 그리고 둘째, 불교권 외적인 문제는 이타행적 신행생활의 관점으로 사회적·역사적·철학적·교육적·예술적 신행 방법 등의 접근이다. 여기서 불교권 내적인 문제는 정신수양과 종교적 행위의 특수적 접근 방법의 신행생활의 성격을 지니며, 불교권 외적인 문제는 사회실천 행위의 보편적 접근 방법의 신행생활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5. 맺음말

대승불교의 정체성 논쟁에 대해 역사학적, 문헌학적, 고고학적, 철학적, 해석학적, 종교체험과 신행적 접근 등을 통한 선행연구들이 있었다. 대승불교(경전)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전제조건의 논쟁을 주제별로 보면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불설·비불설, 대승불교와 대승경전의 개념 정의와 범위 설정, 초기경전과 대승경전과의 관계, 대승불교(경전)가 지녀야 할 가치와 속성 및 기능, 존재론·인식론·실천론 등의 다각적 관점들이 있었다. 시기별로 보면 대승불교 정체성 주요 논쟁의 제1기에는 대승 불설·비불설에 대한 문제 제기와 논의방향 제시, 제2기에는 대승불교의 비불교적 요소에 대한 관점 차이, 제3기에는 상좌부의 아가마와 니까야 친설 여부가 주요 쟁점이었다.

이 글에서는 3기에 걸쳐 펼쳐진 이러한 논쟁에 대해 2장, 근대불교학의 역사적·문헌비평학적 접근에서는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의 우월적 가치, 아가마와 니까야의 친설 여부, 다신적 신앙과 기복설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3장, 현대불교학의 경전해석학적 접근에서는 불설론과 정법의 기준에 대한 논쟁, 대승경전의 역사적 필연성과 신화적/설화적 가공, 초기경전과 대승경전 저자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4장의 한국불교 정체성 확립을 위한 통합적 접근에서는 첫째,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화엄의 언어인식을 기저로 하고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에 대한 원융적 시각을 제공하였다. 둘째, 심리언어학, 통합심리학, 과학철학을 보조적 활용하여 한국불교의 실용적 좌표 확인을 제안하였다. 셋째, 교학과 수행의 통합모델 제공을 위해 문화학과 문화심리학의 활용을 통해 불교권 내적인 문제와 외적인 문제 해결을 제안하였다.

결국, 이 논문은 경전해석학적 접근을 기반으로 하는 화엄원융의 언어인식적 접근을 통해 불교경전이 현대의 다원주의와 통합사회에서 가져야 하는 정체성과 역할을 재정립하자는 것이다. 즉 경전해석학적 관점을 전제로 하고, 무분별적 화엄원융의 언어관을 배경으로 하는 언어인식적 관점을 중심으로 하여 현대의 심리언어학, 통합심리학, 과학철학, 문화심리학 등의 접근을 보조로 하는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해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과 신대승불교 운동의 방향 모색을 위한 통합적 접근을 제안하였다.

이 밖에도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바람직한 논쟁의 방향을 위한 조건과 과제는 더욱 많겠지만, 이 글에서 제대로 보지 못했거나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은 차후 과제로 남겨둔다. ■

 

이홍구 / 동국대 강의교수. 대구대학교 국어교육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졸업(석사·박사). 대한불교 조계종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 선임연구원, 동국대학교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원 등 역임. 주요 논문으로 〈의상 화엄관행의 연구〉(석사논문) 〈신라 의상의 엄정융회적 신행 연구〉(박사논문) 〈의상계의 엄정융회적(嚴淨融會的) 일승정토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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