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이찬수.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이찬수. Show all posts

2021/04/02

16] 【지구평화학】종교평화론을 통한 지구평화의 모색 원영상*

 16] 【지구평화학】종교평화론을 통한 지구평화의 모색 원영상*

37)

요약문   코로나19, 환경 재난, 대규모의 전쟁 등으로 인해 지구는 여명이 얼마 남지 않는 상태가 되었

다. 모든 것은 인간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특히 전쟁은 인간 자신을 파멸시키기도 하지만, 과학, 자본, 이념 등이 총동원되어 자기 파괴로 가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다. 지구가 멸망한다면 아마도 세계대전이 원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인간 간의 증오에 의한 전쟁을 막는 일이다. 물론 환경재난 등 시시각각으로 밀려오는 지구 붕괴의 위기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이 지구적 컨센서스가 필요하다. 그 럼에도 지구평화학이 시급한 것은 자기 파괴를 스스럼 없이 자행하는 몰인격적 무분별 행위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존적 인간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일이 무시간적으로 발생한다. 지구평화학은 모든 위기를 막는 지구적 차원의 지혜를 발산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지구평화학은 현대문명에 필 수적이다. 그리고 그것의 구조는 종교평화학이다. 즉, 폭력이 극대화되는 세계의 아노미 상태를 자기반성을 거친 종교평화학으로 새롭게 길을 놓아야 한다. 코로나19의 고통의 세계화에 대한 긴급한 진단과 처방을 위 해 도덕과 윤리를 소환하는 시점에서 동시에 또한 지구평화학이 요청된다. 이를 위한 종교평화학 구축을 통 해 세계의 분쟁만이 아니라 이성과 이성의 과잉으로 초래된 이 문명에 대해 새로운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물론 그 방법은 기존의 인문학적 종교연구, 사회과학적 평화연구를 융합하는 것이다. 서울대를 중심으로 평 화인문학을 개진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결국 종교의 ‘오래된 새길’에서 모색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 아와 우주가 합일되는 영성을 창구로 하여, 사회와 지구, 나아가 우주로 향하는 열린 인식을 종교 그 자체 의 본질을 기반으로 현실 사회에 대응 가능한 종교평화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지구평화학, 평화인문학의 기반 구축에는 종교평화학이 가장 핵심적 토대가 될 것이다.

차 례

Ⅰ. 머리말

Ⅱ. 지구위기와 종교의 복귀

Ⅲ. 종교평화론에 대한 담론

Ⅳ. 지구평화를 향한 종교평화론

Ⅴ. 맺음말

 

*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교수

Ⅰ. 머리말

지구의 미래는 있는가? 지구 온난화, 코로나19 팬데믹, 끊임없는 전쟁 등 지구는 질서보다도 무 질서가 증가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욕망에 의해 뒷받침된 자본주의의 세계화는 지구의 한계를 더 욱 명확히 하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자정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인간 개개인이 결정하고, 실천해 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 세계는 공동의 의지로 이 난국을 해결해 나가지 않는 한 결코 누가 구원해 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특히 현실적 삶을 불안으로 몰아넣는 폭력과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

상 무기의 발달로 인해 한 순간에 지구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익과 감정에 위배되면 상대를 절멸시키고야 말겠다는 야만적 본능은 인간만이 발현되며, 전쟁은 그 과 정이다. 전쟁만큼 인간을 불안으로 몰아넣는 일은 없을 것이다. 21세기는 과학과 자본에 힘입어 본 격적인 대량살상이 이루어졌다. 

1, 2차 세계대전은 물론, 중국 내전, 6·25전쟁, 남북베트남 전쟁,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 미국과 이라크 전쟁 등 이 외에 수없는 국지전은 손으로 헤아리기도 어렵다. 전문가들은 1~2억명이 20세 기 전쟁에서 죽었다고 한다. 강인철은 1999년도의 세계 분쟁 45건이 무력충돌 가운데 24건이 종교 분쟁으로 53.3%에 이른다고 한다. ) 이 외에도 언론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종교분쟁이 아닌 전쟁에 도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쟁과 종교는 유사 이래 서로 불가분 의 관계로 그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18 세계 군비 지출 동향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국가의 군비 지출액이 1조 8220억 달러(2,122조)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전세계 1인당 군사비 지출은 평균 239달러에 해당한다. ) 이는 더욱 늘고 있다. 첨단무기는 갈수록 살상성능이 강화된다. 국가와 자본은 결탁하여 전쟁마저도 외주화 하는 일이 일어난다. ) 이처럼 약육강식이 횡행하는 지구는 과 연 희망이 있는 것일까. 이를 비판하고, 이에 저항해야할 논리를 제공해야할 학문마저도 자본의 의 지에 눌려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에게는 희망을 걸 수 있을까. 필자를 비롯한 종교인, 학자들은 2015년부터 ‘종교폭력-평화-국가’의 관계를 중심 테마로 하여 토론하는 레페스(REligion and PEace Studies, 종교평 화연구)포럼을 개최해왔다. 그 목표는 ‘종교평화론 구축’이다. 그 토론의 성과를 묶어 종교 안 에서 종교를 넘어: 불교와 그리스도인의 대화(2017), 지속적 폭력과 간헐적 평화(2020)를 출판하 고 종교평화론 담론(가제)을 금년 4월에 출판할 예정이다. 세 번째 공저는 한일 간에 종교인, 학 자들이 양국을 오가며 토론한 내용이다. 금년에는 ‘아시아 종교평화학회(Asian Association For Rel igion and Peace)’를 출범시킬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무기한 연기되었다. 본 연구도 이 선상에 놓여 있다. 지구적 평화의 희망을 결국 다시 종교로부터 찾고자 하는 열망인 것이다. 

Ⅱ. 지구위기와 종교의 복귀

후기마르크스주의적 문학비평가인 테리 이글턴은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에서 계몽주의 이래 

신의 죽음을 기획했던 이성은 실패했다고 한다. 그는 신의 임시 대리역할을 했던 모든 지적 현상 이 담당했던 사회적 역할은 종교가 짊어졌던 이념적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종교는 세속화의 길을 통해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제 모든 것이 상대화되고, 무의 미해진 포스트모던사회에서 ‘전능한 신’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 하여, 자아의 증 폭과 폭주로 무질서해진 현대에 다시금 종교를 소환시키고 있다.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으로 서의 종교는 여지없이 비판하지만, 종교가 연마해온 실천적 삶, 존재의 혁명을 추종하는 종교의 

‘실천적’가치를 재조명하면서 현대문화에 대한 해독제를 종교에서 발견하고 있다. )  이에 “종교적 믿음이 사회 질서의 실존을 위한 일련의 근거를 제공하는 부담에서 자유로워진다

면, 종교적 믿음은 정치의 비판자로서 진정한 목적을 자유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6)라고 보며 종교를 현실로 이끌어 내고 있다. 인간의 주체성에 담긴 오만은 신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예 들 들어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해 점령했을 때, 미국은 자신들의 동맹들과 함께 1991년 1월 이 라크를 공격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는 전 세계를 향해 전쟁을 선포하는 TV연설에서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개시한다”고 했다. 신은 이 전쟁에 개입하라고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 도 그는 신의 대리자임을 내세워 전쟁에 개입했던 것이다. 

이후 2001년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 침공 등 주권을 가진 국가에 무력으로 침입하여 수많은 백성을 살상으로 몰아넣었다. 물론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나 테러를 일삼은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 알카에다에 일차적 문제가 있다. 그러나 전체적 상황을 분석해보면, 이 러한 국가 간 분쟁이나 테러리스트를 키운 세력은 미국이기도 하다. 현실의 한 면만을 가지고, 힘 센 나라가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며, 전쟁을 전쟁으로 막으려고 하는 악순환을 세계는 눈뜨고 바 라보아야만 한다. 전쟁은 무의미하다. 역사 이래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실 제 희생자들은 전쟁터의 힘없는 군인들, 노약자, 여성, 어린이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이유도 모른채 화염 속에 던져야 했다. 

여기에 새삼스럽게 통계를 제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군대는 인간을 죽이 기 위한 조직이다. 어떤 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국가와 전통에 속해 교육을 받고, 적을 인정 하고 유사시 전쟁터에 나간다. 과연 개인의 의지는 있는 것인가. 국가와 자본은 전쟁을 수행하는 양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념과 무기를 제공하는 한, 군대는 존속한다. 지구의 현실적 위기는 갈등 과 분열, 폭력과 전쟁이다. 

종교는 여전히 삶의 유용한 요소다. 정진홍은 종교란 “존재론적 차원에 이르는 모든 물음을 수 용하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해답을 수렴하면서, 바로 그 존재론적 차원으로부터 표상화 되는 물음과 해답의 상징체계이다” )라고 한다. 과거처럼 종교의 사회적 지배나 역할이 줄어든 현 재에도 종교는 다양한 형태로 삶에 침투해 있다. 정진홍이 말하는 존재론에 대한 물음에 답을 얻 고자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의 개인적 종교를 갖는다. 테리 이글턴 또한 “종교는 지금까지 인류가 이루어낸 가장 강력하고 끈질기며 보편적인 상징형식이다.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와 개별적 일 상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연결시켜주었던 상징형식이 어디 있었단 말인가” )라고 하며 종교의 복원 을 주장한다. 종교는 상징을 상징으로 해석하지 않고 사실로 해석하기 때문에 수많은 전쟁과 갈등 이 초래되었다 )고 한다.  과거에 집착된 종교를 역사로 보지 않고, 내적 초월의 세계와 일상의 삶 을 잇는 가교로 보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는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따라서 위기의 시대에 종교가 다

시 복원된다고 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미 종교적 차원에서 인간의 한계상황에 대한 물음을 종교는 지속적으로 해왔다. 문제는 이러한 한계상황이 개인적 차원만이 아니라 집단적 차 원, 지구적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종교는 이 세상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를 구축하는 데에도 기여해 왔다. 윤리나 도덕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인류가 현재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질서의 원천을 종교로부터 다시 얻고자 하는 것이다. 나아가 세계를 통합하 고, 새로운 가치를 주조해냄으로써 불투명한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종교가 소 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Ⅲ. 종교평화론에 대한 담론

세계의 많은 지성들은 종교와 평화의 관계에 대한 언설을 내놓고 있다. 특히 평화학의 창시자 

요한 갈퉁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에서 전쟁과 같은 폭력을 직접적 폭력, 전쟁이 없는 상태 의 간접적 폭력을 구조적 폭력이라고 본다. 전자가 없는 상태가 소극적 평화, 후자가 없는 상태가 적극적 평화이다. 그리고 이 폭력들의 이면에는 문화적 폭력이 존재한다. 이는 “모든 상징적인 것 으로 종교와 사상, 언어와 예술, 과학과 법, 대중 매체와 교육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 다. ) 그 중에서도 종교는 문화적 폭력의 제1순위에 놓여 있다. 

요한 갈퉁은 종교는 초월적 목표에 초점을 두는 강한 측면과 대중의 기본적 욕구 충족과 같은 현세의 문제에 초점을 두는 부드러운 측면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두 측면이 각각 문화적 폭력과 문화적 평화에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종교의 강한 측면, 즉 형이상학적 세계나 이를 담보로 한 권력적 측면이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갈퉁 은 종교의 생명 중시의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간디 사상 속의 생명의 통합(unity-of-life)과 수단과 목적의 통합(unity-of-means-and-ends)

의 원칙들을 존중한다. 그리고 이 원칙들은 모든 생명의 신성함을 존중하라는 것과 수단과 목적을 소중히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소중히 하는 것이 될 것이라는 교훈을 수용하라는 것이라고 한다. ) 갈퉁은 서양의 종교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이처럼 동양 종교들의 가르침 속에서 여러 가지 교훈을 찾아낸다. 이병욱은 문화적 폭력에 대한 처방으로써 불교의 공(空)사상은 모든 이데올로기 의 그물에서 벗어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불교에 대한 집착마저 벗어 날 때 진리의 눈을 얻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어떠한 이데올로기에도 집착하지 않는 유 연함과 개방성이 열리는 것이다”  )고 한다. 수행의 관점에서 평화와 관련한 동양종교의 본질을 꿰뚫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울리히 벡의 언설 또한 이 점에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그는 “종교란 수백 년 동안 거대한 초국적 장벽 쌓기 또는 허물기를 전문적으로 수행한 건설재벌이다”라고 하며, “종교는 서로에 대항하거나 서로 힘을 합쳐 종족, 민족, 아니 대륙을 넘어 장벽을 헐거나 세운다” )라고 비판한 다. 종교적 보편주의들 간의 충돌은 폭력을 양산한다. 이에 민족, 종교, 폭력의 상관성이 19세를 관 통하는 특징이었고, 20세기에는 세계대전을 통해 그 정점에 도달했다. 따라서 현재의 글로벌 위험 사회에서는 “평화가 진리를 얼마나 대신할 수 있는가에 따라 인류의 존속이 결정된다”며, “종 교는 세계정치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극한사회에 이른 인류는 신자유주의의 통로를 종교의 보편적 가치로 재포장해야 한다. 폭력이 

극대화되는 세계의 아노미 상태의 타개를 위해 약자나 소수자 문제 등에 종교적-세속적 경계를 넘 어선 협동을 통한 일상적 실용주의적 측면에서 그 유용성을 찾는다. ) 종교가 지닌 내적 연대, 나 아가 열린 종교의 외적 연대로까지 확장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제도 종교의 문제는 자기중심적 선교, 포교로 인해 갈등을 일으킨다. 밖으로도 배타적 분열을 일 으키는 한편, 안으로도 분리되어 진보와 보수, 전통과 혁신 등의 파벌로 나뉜다. 당연히 폭력이 배 태될 수밖에 없다. 밖으로는 정의의 전쟁론인 성전(聖戰)을 일으키며, 안으로는 권력을 향한 교단주 의가 횡행한다. 여전히 강한 뿌리가 남아 있긴 하지만, 종교의 권력화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실질적 으로 해체되어 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인 해방신학과 참여불교다.

해방신학은 남미에서 1960년대 말부터 정치적 억압과 경제 수탈에 대항해 신학이 사회에 참여하

여 고통을 극복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개진되었다. 60년대 전반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고 사회구조를 인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정, 위르겐 몰트만 등 신학자 들이 나치 독일과 유대인 대학살을 경험하고 나온 기독교 복음의 사회적 책임 주장, 마르크스주의 적인 경제사상 등이 배경이 되었다. 해방신학에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정치, 경제적인 폭력에 대 항하는 평화의 논리로써 대화, 비폭력, 중재 등의 평화적 수단이 들어 있다. ) 여전히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에 앞에 해방신학은 더욱 요구된다. 

참여불교 ) 또한 20세기에 일어난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불교계를 말한다. 불법승 삼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사회에 개입한다. 스리랑카 내전에서 불교계의 중재 와 화해의 역할, 일본 내 현대적 재가불교 단체들의 세계평화운동, 원불교와 정토회를 비롯한 한국 현대불교의 평화운동은 등은 매우 적극적이다. 오늘날 해방신학과 참여불교는 종교의 무정부적 차 원의 지평을 기반으로 지구적 차원의 신자유주의 하에서 전개되는 자본의 폭력적 상황과 그 하부 구조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갈등의 사회구조를 뛰어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Ⅳ. 지구평화를 향한 종교평화론

지구평화를 위한 종교평화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어떤 측면에서 종교는 지구적 차원의 갈등구조

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종교가 가진 다양한 가치는 지구를 실제로 통합시키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까. 종교를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종교적 가치를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는 데에 성 공할 수 있을까.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레페스포럼은 이처럼 거시적 문제 해결을 위한 첫 걸음이다. 이러한 담

론이 가능한 것은 한국사회가 다종교 사회이기 때문이다. 독점적 종교가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류 미래에 희망을 선사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노마드(nomad) 사회에서 지구 내에 영향력을 가진 종교들과 한반도 자생 종교들이 때로는 연합하여 사회문제 해결을 시도 하고 있다는 자체가 고무적이다. 최근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한국의 종교환경연대 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한반도가 고통 받는 곳에서는 종교의 일상적인 연대가 일어난다. 그렇다 면 타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러한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어떠한 측면인가? 종교의 심층적 차 원의 세계로부터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차원, 나아가 세계적 차원으로까지 종교평화론은 확장 가 능할까?

필자는 무엇보다도 종교가 가진 최초의 속성, 예를 들어 세계의 근원과 소통하는 통찰적 예지로

써 인류가 형제·자매라고 하는 하나의 가족, 또는 모든 존재는 연기(緣起)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가르침은 그 어떤 혁명보다도 근원적이며 보편적이다고 판단한다. 현재 평화는 이러 한 종교적 세계관이 실질적으로 투영되고 확장되어 가는 과정이다. 이는 종교가 지구적 차원에서 근본적 평화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는 증거에 다름이 아니다. 종교가 가진 인간적 연대는 그렇 다면 지구적 평화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까. 다음의 네 가지 측면에서 보고자 한다. 첫째, 정의의 전쟁론에 대한 대응을 위한 종교평화론이다. 

종교에서의 정당한 전쟁론은 동서 양 세계에서 진행되었다. 불교는 정법으로 다스리는 전륜성왕 은 불가피할 경우 전쟁에 참여할 수 있다. ) 그것은 불의와 악에 대항하는 상황에 해당한다. 그러 나 근본적으로 석존이 직접 부여한 불살생계에 의해 살상이 동반되는 전쟁은 허용되지 않는다. 석 존 또한 전쟁을 막기 위해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가톨릭에서는 중세에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불가피한 정당한 전쟁론이 주장되었다. 이러한 논리 또한 ‘나를 박해하는 자를 사랑하라’는 예 수의 언설에 비추어 본다면 모순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성전론이 가장 횡행하는 지역은 이슬람권이다. 지하드는 신앙의 원리를 위한 투쟁이었지

만, 이슬람 원리주의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지하드 또한 이슬람 신자가 정당방위에 해당하는 경우에 전쟁을 치르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성전 혹은 정당한 전쟁론은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역사를 통해 전쟁은 보복을 위한 악순환이 되고 있으며, 실제 큰 피해자는 전쟁 당 사자보다도 대부분 약자들이다. 역사적으로 정당한 전쟁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본다. 이는 종 교 근본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종교적 신념에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집착, 종교교단주의의 내적 구조화, 경전의 몰역사적이고 폐쇄적인 해석 등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종교평화론의 역 할이 있을 것이다.   둘째, 적극적 평화구현을 위한 감폭력의 종교평화론이다.

이는 종교평화론자 이찬수의 문제 제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평화와 평화들에서 요한 갈퉁 의 ‘적극적 평화’는 이상적 질서의 기독교적 표현인 ‘하느님 나라’, 유학에서 말하는 ‘대동 (大同)’, 한국 신종교들에서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개벽(開闢) 사상의 구조와도 비슷하다고 한다. ) 하느님 나라나 개벽은 적극적 평화에 대한 종교적인 표현 혹은 번역들이라고 본다. 개벽의 구체적 내용을 적극적 평화라고 해도 된다는 뜻이다. 그는 종교 연구는 평화 연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평화학에서의 평화는 종교적 이상과 상통한다고 한다. 

이찬수는 평화는 평화적 수단에 의해 이루어지며, 과정으로서의 평화 역시 평화라는 목적에서 

온다는 평화학의 기본 구상은 종교적 혹은 신학적 구조와 상응한다고 본다. 또한 종교적 혹은 신 학적 언어를 세속화 시대에 어울리도록 변형시키면 평화학이 된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평화학은 ‘세속화한 시대의 신학’, 혹은 종교적 세계관의 ‘세속적 변용’이라는 사실을 밝힘고자 하는 것이다. ‘평화는 종교의 본질이고 이상’이라는 근원적 사실을 주장한다. ) 그는 평화학과 종교적 이상 모두에 공통적으로 담겨있는 평화 개념을 중심으로 평화학과 종교가 결국은 평화를 지향하고 구현하려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평화는 폭력 줄이기, 즉 감폭력(減暴力)의 과정’이라는 지론을 통해 종교평화학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셋째, 보편윤리 제정에 종교평화론의 역할이다.

세계종교자평화회의(WCRP)는 1970년 함께 사는 세계를 위해 행동해야할 내용을 7개 항으로 정 리했다. 공동의 인간성, 공동의 안전, 상호의존성, 공동의 미래, 공동의 삶, 포괄적 교육, 희망과 헌 신이다. 이 내용은 세계보편윤리를 확립하는 기초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유네스코 철학· 윤리국에서는 보편윤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1997년 파리에서 ‘보편윤리를 위한 개념적, 철 학적 기초’를, 1999년 한국에서 ‘보편윤리와 아시아 가치’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가졌다. 이러 한 논의는 지구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시급한 과제이다. 또한 지구 전체의 헌법 제정을 위한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 보편윤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며, 존중하는 가운데 모두에 게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확립해야 된다. 특히 다양한 문화, 국가, 민족, 종교들의 특수한 가치 를 넘어서 이들 가치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 보편윤 리는 전체의 공동 이익과 함께 개인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경우에 그 당위성이 성립한다. 이를 위 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모든 문제를 포용하는 초월적인 가치에 서 있는 종교성에 기반 할 필 요가 있다. 따라서 종교적 가치에 기반한 지구 차원의 평화를 위한 논의가 요구된다. 

넷째, 평화인문학, 녹색평화학과 종교평화론과의 관계 정립이다.

최근 서울대학교 평화인문학단에서는 평화인문학을 주제로 다양한 연구 성과를 도출했다. 지금

까지 사회학의 영역이었던 평화학을 인문학의 영역으로까지 깊숙이 끌어들인 것이다. 홍정호 또한 「한반도 평화인문학의 기초 과제로서의 종교평화학 형성 방안 연구」 )에서 기독교의 신학(선교)적 차원에서 한반도를 필드로 종교평화학을 시도하고 있다. 평화인문학에서는 지구의 실질적 평화구 축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심층적이고 근원적이며 다차원적인 대응과 치유, 평화형성을 지향 하는 실천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책적 차원과 구별되는 삶의 종합적 차원을 고려해야 한

다.” )고 한다. 사실 이러한 차원은 이미 일상의 종교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구조, 제도 이 전에 삶에 깊이 침윤된 종교를 근간으로 평화학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나아가 종교평화론의 구체적인 모습인 녹색평화론적 관점이다. 녹색평화는 환경과 평화, 생태적

인 것과 평화의 관계를 설정하고, 탐구해 가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환경과 사회의 공존과 화해를 지향하는 것이 동원된다. 이렇게 될 때, 평화론의 실질적인 개방인 동시에 지구 내 모든 존재의 공존이 가능하게 된다. 녹색평화는 생태적 질서에 기초한다.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관계성’의 영역이 바로 녹색평화의 지향점이자 목표이다. 타자를 어떻게 환대할 것인가, 타자가 곧 나임을 확인하는 작업이 녹색평화론의 궁극인 종교평화론의 세계인 셈이다. 종교의 이상이 곧 전 지구적 차원의 모든 존재의 이상이자 현실이 되는 것이다.  

Ⅴ. 맺음말

지금까지 시도되었지만, 현실화되지 않았던 종교평화론은 지구가 한계상황에 이른 지금에야 비 로소 조명받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종교 자체의 집단적 속성이나 현실적 상황으로 인해 경원시되고, 논의의 무용함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종교 스스로도 진화하여 자신의 문제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통해 지구적 차원의 평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오고 있 다. 이 점을 박충구는 기독교윤리사 시리즈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해방신학이나 퀘이커의 평화주의 등을 통해 그들이 고난 속에 걸어온 평화노선을 보여주고 있

다.23) 이슬람의 영성주의, 불교의 수행담론 등은 이에 못지않은 일상의 평화를 지향하며, 사회와 지구적 차원의 평화 구축을 위한 이론과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 탈종교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를 미처 평가하지 않았을 뿐이다.

종교평화론은 지구의 마지막 남은 평화론이 될 것이다. 양육강식을 강요하는 인간의 무지와 무

명의 한계를 근본으로부터 파헤치고, 현실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유대를 통한 연대가 가능하다면 종교평화론은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선결되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교의를 넘어서 종교다원주의가 확립되어야 한다. 이는 종래 논의되었던 것처럼 종교 자신의 입장에서 개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고난, 사회적 모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다원주의가 하나의 기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종교신다원주의’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두 번째는 국제정치에 있어 종교의 역할 비중을 높여가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미얀마 군대의 

쿠데타로 비폭력 저항에 가담한 민중들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UN은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강 대국 중심의 논리는 지구의 평화는 물론 한 국가의 군대에 의한 민중살상을 막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해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한 선택적 개입에만 신경 쓰고 있다. 종교 개개의 힘은 약하지만, 인권이나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연대는 언제든 가능하다. 실질적인 정치의 힘을 종교적 연대 를 통해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이를 필자는‘생명평화 종교연대’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지구의 한 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종교권도 예외는 아니다. 종교연합(UR, U nited Religions) )창설도 하나의 좋은 방안이다. 특히 종교는 이미 국경을 초월하여 활동하는 실질 적인 평화적 조직이자 집단이다. 인류가 이를 어떻게 적절히 활용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결정될 것 이다.  

참고문헌

大山宗師法語 大薩遮尼乾子所說經(T9)

강인철, 전쟁과 종교, 오산: 한신대학교출판부, 2003.

김명주, 「테리 이글턴의 종교적 전회」, 문학과 종교17권2호, 한국문학과종교학회, 2012.

박충구, 기독교윤리사Ⅲ,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8. 서울대학교 평화인문학연구단 지음, 평화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서울: 아카넷, 2013. 요한 갈퉁 지음,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강종일 등 옮김, 서울: 들녘, 2000.

울리히 벡, 자기만의 신, 홍찬숙 옮김, 서울: 길, 2013.

이병욱, 「불교의 평화관의 재구성: 요한 갈퉁의 평화개념을 중심으로」, 대동철학51호, 대동철학 회, 2010. 이찬수, 평화와 평화들, 서울: 모시는 사람들, 2016.

천주교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해방신학의 이해, 광주: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1984.

크리스토퍼 퀸 외 지음, 평화와 행복을 위한 불교지성들의 위대한 도전 (아시아의 참여불교), 박 경준 옮김, 서울: 초록마을, 2003.

테리 이글턴,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 조은경 옮김, 서울: 알마, 2017.

홍정호, 「한반도 평화인문학의 기초 과제로서의 종교평화학 형성 방안 연구」, 선교신학59호, 한 국선교신학회, 2020.

Terry Eagleton, Reason, Faith, and Revolution : Reflections on the God Debate,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9.

<SIPRI Military Expenditure Database>,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https://www.sipri.org) 


13] 【지구수양학】개인의 완성과 지구적 연대의 통합적 실천 이주연*

 13] 【지구수양학】개인의 완성과 지구적 연대의 통합적 실천 이주연*


요약문   

인류세에 대한 논의를 기점으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성찰이 일어나고 있다. 바이러스와 기후 온난화 문제, 소외와 혐오 등 지구적 차원의 위험현상들은 그간의 인간중심주의를 지양하며, 전 지구적 존 재들의 상생과 조화를 추구하는 지구인문학적 사유를 필요로 한다. 그 중 지구수양학은 개인의 마음을 닦는 행위와 지구적 연대를 통합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사상 및 방법론을 다루는 학문이다. 한국 신종교 사상들은 한국인이 근본적으로 추구해온 종교적 심성, 즉 만물 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들은 담론 제시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마음바탕을 수양하는 일에 있어서도 개인의 인격성장만이 아닌 전 지구적 존재 와 덕을 나누는 방식을 추구하기 때문에 지구인문학적인 수양학, 즉 ‘지구수양학’으로서의 특성을 보인 다.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됨으로 인해 개인주의가 더해졌고, 탈종교 현상과 아울러 종교 본연의 역할에 대 한 회의와 반성이 일어난다. 이러한 급변의 시대에 종교는, 하비 콕스가 강조했듯, 교리적 지식이나 도덕주 의를 중심에 두지 않고 유기체적으로 모든 생명의 연대성을 강조해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이 점에 주목하 여 한국의 신종교 사상들에 담긴 지구수양학으로서의 사상, 그리고 이들 사상을 반영한 지구적 수양법, 즉 개인의 완성과 아울러 지구공동체의 연대를 함께 추구해가는 방식을 탐색하고자 한다.

===

차 례

Ⅰ. 머리말 

Ⅱ 지구위험시대의 수양학

Ⅲ. 지구수양학의 윤리와 방법론

Ⅳ. 맺음말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Ⅰ. 머리말

종교학자 류병덕은 “한국인의 종교혼은 자연을 지배 대상으로 보지 않고 생명의 근원, 무한 생 성력, 고맙기만 한 자연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한다.1) 이 연구는 한국의 동학과 천도교, 그리고 원불교가 제시한 지구중심적 사유와 실천법에 주목하여, ‘은(恩)적 네트워크’ 기반의 ‘공경과 불 공의 윤리’, 나아가 수양법을 종교적 이념에 국한시키지 않고 지구위험시대를 극복할 실천적·보 편적 담론으로 사회화하기 위한 시론적 연구이다.

동양의 수양학은 마음을 닦는 일과 존재의 근원적인 진리에 관심을 두었으며, 이 관심을 바탕으로 인격의 완성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개인의 마음 닦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삶에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는 자연 본연의 생명성이나 당시 사회문제들을 함께 궁구함으로써 개인 의 단독적 진화가 아닌 주변과의 공진화(共進化)를 실천하려 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지금 시대의 수양학, 즉 지구위험을 극복하려는 수양학으로서 ‘지구수양학’은 그 명맥을 이어 인간중심주의 에 대한 성찰적 사유를 바탕으로 개인의 심성 도야와 지구적 공경을 함께 지향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동학·천도교, 원불교가 제시했던 지구수양학적 특성에 주목한다. 이들 종교의 공공성 은 외세의 침입과 불안정한 시국, 신분차별로 고통 받던 근대 한국에 요청되던 ‘민중적 공공성’ 이었다. 근대에 필요했던 이 공공성은 지금의 지구위험시대에 이르러 ‘지구적 공공성’으로 새롭 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 

지구적 공공성은 전 지구적 존재들로 구성되는 ‘은(恩)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발현된다. 은 (恩)적 네트워크는 인간과 비인간, 사사물물 등 모든 존재들이 긴밀한 은(恩)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전제한다. 은(恩)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이들 종교는 ‘지구에 대한 공경과 불공의 윤리’를 제시 한다. 그리고 수양방법들은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을 해체하는 방식을 따른다. 이들 수양법이 지구 수양학의 방법론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개인의 심성을 도야하는 과정이 지구 구성원들에 대한 공경 및 불공과 통합적으로 실천되기 때문이다. 이 통합적 실천으로 물질과 정신, 인간과 비인간, 땅과 하늘, 문명과 자연, 남성과 여성의 이원화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지구수양학, 즉 은(恩)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공경과 불 공의 윤리, 수양 방법론에 대해 논의한다. 지구수양학은 곧 개인의 심성 도야와 지구적 공경·불공 을 통합적으로 실천하는데 필요한 윤리와 방법론, 나아가 지구공동체를 위한 수양학의 사회화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인류의 실질적 변화를 필요로 하는 지구위험시대에 유의미한 연구가 될 것이 다.

1) 류병덕, 근·현대 한국 종교사상 연구, 서울: 마당기획, 2000, 18쪽.

Ⅱ. 지구위험시대의 수양학

1. 시대에의 응답 최근 들어 지구를 향한 시선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08년 에콰도르는 신헌법에 ‘자연권’ 을 명시했고, 2010년에 볼리비아는 ‘어머니 지구법’을 채택했다. 이밖에도 2017년 왕거누이강(Wanganui)에 법인격을 부여한 뉴질랜드의 움직임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한국에서도 2020년에 지구 를 위한 법학이 출간되는 등, 인간중심적이던 법적주체를 지구중심적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일 어나고 있다. 그밖에 의학 및 생태 분야에서도 ‘원 헬스(One Health)’, 즉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 의 긴밀한 상호의존성에 주목하는 접근방식이 등장했다. 원 헬스는 ‘인간-동물-환경을 아우르는 건강(health)은 하나(one)’라는 믿음 아래 인간 중심의 건강 관점에서 탈피하여 동물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균형 잡힌 건강과 안녕(well-being) 확보를 목적한다. ) 이러한 변화들은 신종 감염병 과 기후문제 등 전 지구에 닥친 위험들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지구의 권리, 인간과 지구의 관계성에 주안점을 두는 이 시도들은 지구인문학적 사유에서 비롯 된다고 볼 수 있다. 지구인문학은 그간의 인간중심주의를 반성하고 ‘지구’를 사유의 중심에 두 고자 하는 인문학을 말한다. 지구인문학적 관점을 지닌 대표적 지구신학자로 토마스 베리(Thomas Berry)는 ‘지구공동체’로의 전환이 필요함을 역설하며, 땅·생물·인간이 지구의 구성원으로서 가족 같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지구인문학은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문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던 관점을 해체함으로써 그간의 위계적 사고로 인한 타자화와 폭력을 지양한 다.4)

지구인문학으로서 지구수양학에 대한 선행 연구는 아직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다만 이 연구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근대 한국 신종교 사상의 지구인문학적 요소에 대한 논의는 2020년부터 있어왔다. 지구인문학 연구들은 이들 사상가들이 제시하는 인간관과 우주론을 지구 구성원의 상호 의존관계나 지구중심주의에 연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들은 어디까지나 지구인문학 이라는 상위 범주를 구축하는 논의이기 때문에, 수양학적 관점으로 이들 종교에 접근하거나 지구 수양학적 윤리와 방법론을 세부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다. 

한편 근대 한국 신종교의 생태담론에 관련해 현재까지 진행된 연구들은 이들 종교에 담긴 생태

적 요소가 이원론적 사유를 극복하고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추구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생태담론을 담은 사상적 특이성을 다루고 있어도 실제 수양과의 연계를 시도하는 경우는 미미하 다. 또한 근대 한국 신종교 사상을 수양학적 측면에서 논의해온 결과물은 다수가 있다. 그러나 지 구위험에 대한 인식 아래 직접적인 실천을 요하는 수양학적 논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보편적 방법론으로 재탄생시키려는 시도는 과제로 남겨져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지구 위험시대에 적용하기 위한 수양학으로서 지구수양학의 윤리와 방법론을 새롭게 모색하고자 한다.  

2. 지구수양학의 방향성 수양(修養)은 몸과 마음을 갈고닦아 품성이나 지식, 도덕 따위를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이

다. ) 동양의 학문은 사물의 이치에 대한 탐구 못지않게 실천의 문제를 중시  )해왔고, 그래서 이성 중심의 서구에서와 달리 수양은 주된 과제로 자리매김해 왔다. 수양은 인간에게 실재하는 ‘경 험’으로부터 비롯된다. 인간은 사유 이전에 실재하는 경험이란 것을 일회적인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하니, 이것이 바로 수양이다.  ) 

수양에 대한 논의를 주로 많이 다루어 온 유학에서는 마음의 구조를 이해하고 마음을 닦는 것을 수양의 기본으로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학이 개인의 인격 수양만을 주장하진 않았다. 군자의 과업인 ‘수기치인(修己治人)’은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통합을 강조했다는 장점을 가 진다. 개인적 수양과 사회적 실천을 함께 추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이러한 ‘수신제가치국 평천하’의 사상은 사실 유학적 전유물이 아니며, 중국 제자백가의 학설 중에도 ‘수신’과 ‘치 국’, ‘평천하’ 중 하나라도 부정한 경우는 없었다. 

노자의 수양론도 도덕허무주의가 아닌 현실사회를 최종 지향점으로 하며, 무욕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여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 그리고 노자철학을 이은 장자 또한 허정(虛靜)의 수양을 통한 무위(無爲)의 통치론을 제시, 개인의 자유를 위한 수양론을 사회적·정치적으로 구성 하였다.10)

불교의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위로는 깨달음을 얻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라는 뜻이며, 존 재 간의 연결 관계에 주목하는 연기론은 사회 갈등은 물론 생태적 공공성을 살릴 수 있는 개념이

다. 이런 이념적 기반을 바탕으로 불교에서도 수양은 사회적, 대중적 성격을 병행해 왔다. 근대기 우리나라 불교잡지들을 검토한 결과 1919년 3.1운동 전후로 불교계의 혁신과 개혁운동을 지향하는 대중운동이 활성화 되면서 불교교화를 위한 대중의 수양론이 등장했었다는 연구 보고 )도 있다. 어쨌든 동양의 수양학이 근본적으로 수양의 주 대상으로 삼은 것은 마음이며, 이에 따라 수양인

은 수심(修心)을 하고자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 존재론이나 인식론에 중점을 둔 서구적 사유법 과 달리 동양의 수양학은 마음을 닦는 일과 존재의 근원적인 도달점에 관심을 두었으며, 이 관심 을 바탕으로 인격의 완성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개인의 마음 닦는 일에 멈추지 않고, 인간의 삶 에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는 자연 본연의 생명성이나 당시 사회문제들을 함께 궁구함으로써 개인의 단독적 진화가 아닌 주변과의 공진화(共進化)를 실천하려 했다.

개인 내적인 완성과 더불어 사회 참여를 지향했던 학문으로서 수양학은 정치·경제·인간관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가치관과 방향성을 제시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들 수양학을 혁신적으로 계 승한 근대한국 신종교들은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부딪히는 가운데 민중의 주체성을 보존할 수 있 는 수양학을 제시해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의 위험이라는 새로운 테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동양의 수양학의 명맥을 이어 새로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버전의 수양학으로서 그 역할 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근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와 과학문명의 발달 속에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지구적 위험, 그리고 차별과 소외, 혐오 등이 발생해왔다. 이러한 지구위험의 주된 요인인 ‘인류세’에 대한 논의와 성찰이 활발해짐에 따라 요즘의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지구중심주의를 추구하는 지구인문학으로서의 수양학, 즉 지구수양학은 개 인의 내적 완성과 더불어 지구적 연대를 지향하게 된다. 이때 지구적 연대는 인간과 비인간, 자연 과 사물을 포괄하는 전 지구적 존재들 간의 연대를 의미한다. 그간 동양의 수양학이 개인의 완성 과 더불어 사회적 실천을 병행해 왔다면, 지구의 위험을 기점으로 출발하는 이 지구수양학은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성찰적 사유를 바탕으로 개인적 심성 도야를 통한 내적 완성 및 지구적 연대를 함께 추구한다. 

지구수양학은 전 지구적 존재들이 지구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긴밀한 상호의존관계에 있으

며, 따라서 수양을 통한 개인의 완성도 단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지구공동체의 조화로운 운용과 더불어 진행된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한다. 본 연구에서 다루려는 두 종교 외에도 근대한국 의 신종교 사상은 이와 같은 지구수양학적 윤리와 방법론을 담지하고 있다. 동학·천도교에서 ‘천지부모는 일체’라 하여 지구가 곧 모든 존재들의 부모이자 포태임을 강조했던 점, 정역이 ‘十五一言’과 ‘十一一言’을 통해 하늘과 땅과 사람의 조화가 필요함을 주장했던 점, 대종교의 ‘삼일(三一)사상’, 그 중에서도 ‘사물사상’에서 사물이 내재한 신성을 드러냈던 점, 원불교의 삼동윤리 등은 지구수양학적 해석이 가능한 부분들이다. 

따라서 한국의 신종교를 단순히 민족, 민중 운동의 틀 안에 매몰시킬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

적 종교심성을 바탕으로 한 보편적 종교운동으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 종교적 이념이라는 틀 내에서가 아닌, 근대에 등장한 한국의 자생적 담론으로서 ‘지구위험에 대응하는 한국 發 윤리와 방법론’으로 조명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종교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는 신영성운동14)에서 도  인간과 자연의 친화를 강조하며 비인간 존재들과의 연대를 언급하고 있다. ) 한국의 신영성운 동 단체들의 경우 기수련을 통한 명상과 함께 타자, 나아가 전 지구를 배려하고 연대하고자 한다 는 점에서 지구인문학적 사유에 근접해 있다. 그럼에도 일부 신영성운동을 가리켜 ‘인류의 보편 적인 가치나 윤리 덕목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이 개인의 육체적·정신적인 건강과 안녕, 그리고 심리적 평화만을 강조’ )한다는 비판은 외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비판을 받는 것은 신영성운동의 핵심이자 실천적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수련 체계가 개인의 내적 자아완성에 방점을 찍음으로 인해 지구공동체를 향한 이타적 사랑의 강조는 단지 ‘도덕적 강령’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하여 세션스(Sessions)는 신영성운동이 근본 생태론과 정반대라 고 지적한다. 신영성운동가들은 인간을 지구 진화 과정의 정점에 있는 존재로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 이는 비인간 존재와의 연대를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인간의 위치를 위계 중심적으로 설정함으로 인해, 결국 ‘인간중심적인 지구중심주의’라는 오류 로 환원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지구화시대의 위험에 관련하여 지구적 차원의 바이러스나 환경문제, 소외와 차별, 혐오문제,  인

간중심주의나 자본주의로 인한 양극화 현상 등이 존재한다. ‘지구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이 아닌 ‘지구의 중심에 위치한 존재’로 인간을 위계화 하는 방법으로는 지금의 패턴을 벗어나 전 지구 적 존재들의 연대를 이룰 수 있을지는 재고해 볼 문제다. 지금의 지구위험시대에 필요한 수양학은 개인의 심성도야, 그리고 이러한 이원론적 사유의 해체를 함께 실천하는 방법론을 필요로 한다.

Ⅲ. 지구수양학의 윤리와 방법론

1. ‘은(恩)적 네트워크’ 기반 공경의 윤리

 

 1) 은(恩)적 네트워크 동학의 교조 수운은 1860년 음력 4월 5일에 도를 이루었고, 그로부터 1년 후에 「포덕문(布德文)」

을 냈다. 「포덕문」에는 그의 득도 과정과 함께 ‘잘못되어 가는 나라를 바로잡고 도탄에서 헤매는 백성들을 편안하게 만들 계책이 장차 어디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우려가 담겨 있다. 그가 구도에 몰입했던 것은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였고, 그래서 득도 후 제시한 21자 주문,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과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는 누구나 이 주문으로 천인합일을 이룰 수 있게끔 하는 대중적 수련법이다. 수양의 출 발점은 백성과 함께 하는 데 있었다.

원불교 수양학의 특징도 시대상황과 맞물려 나타난다. 대산은 마음공부를 가리켜 ‘마음공부로 도덕을 살리고 세상을 구원하는 근본을 삼아야’ )한다고 하여, 개인의 내적 수양력이 외부로 확 산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렇듯 원불교의 수양학이 대사회적 성격을 띠는 이유는, 「물질이 개벽되 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개교표어에서도 알 수 있듯 외세의 침략과 분단의 아픔, 그리고 도탄에 빠진 창생, 개화라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정신개벽’이라는 변혁을 이루고자 했기 때문 이다. 

동학·천도교, 그리고 원불교의 공공성은 ‘개벽(開闢)’이라는 기치 아래 ‘민중 스스로의 공공 성’ )으로 발동되었으며, 이에 따라 각 수양법도 민중적 공공성을 기반으로 한다. 동학과 천도교 에서 매일매일, 매 끼니 매 순간을 모두 의례의 연속이라고 보아 이를 역행하는 제천의례를 중시 하지 않는다거나 ), 원불교 ‘무시선법(無時禪法)’이 ‘괭이를 든 농부도 선을 할 수 있고, 마치를 든 공장(工匠)도 선을 할 수 있다’22)고 하여 누구나 실천 가능한 방법을 제시한 점을 보면 확인되 는 부분이다.

이러한 공공성은 당시 시대상에 요청되던 사회적 공공성으로 설명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동학·천도교, 원불교 모두 ‘지구’라는 공동체의 공공성을 지향한다. ‘시천주’는 인간뿐 아니 라 모든 존재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음을 뜻하고, ‘일원상의 진리’에서도 ‘일원은 우주 만유의 본원’이라 하여 사사물물에 전부 일원의 진리가 갊아 있음을 의미한다. 전 지구적 존재 모두가 곧 진리의 실상이라 본다는 점에서 공공성의 영역을 사회를 확장한 지구로 설정할 수 있고, 따라 서 민중적 공공성을 지구적 차원의 공공성으로 확대하여 실천할 필요가 있다.

베리가 말한 지구공동체는 지구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가이아 가설’을 전제한다. 지구는, 그리고 지구의 존재들은 인간을 위한 도구적 존재가 아니며 각자의 권리를 가진다. 반면 인간은 그간 지구를 약탈해 왔다는 게 그의 견해다. 마찬가지로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도 인간이 자 연과 사회를 이원화함으로 인해 부주의하게 하이브리드를 양산해왔고, 이로부터 지구의 손상이 발 생했다고 본다. 베리와 라투르의 이 견해들을 통해 지구적 공공성의 발현 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바로 유기체로서의 지구와 개별 구성원으로서의 전 지구적 존재들이 일방적 ‘약탈’이 아닌 ‘상 호작용’을 해나갈 때, 지구적 차원의 공공성이 실현된다고 볼 수 있다.

전 지구적 존재들의 상호의존성에 대해서는 현대 서구 이론가들도 다양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 다. 특히 라투르는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을 통해 인간과 사물이 어 떻게 동맹을 맺을 수 있는지 밝힌다. 그에게 ANT는 ‘이질적 존재자들의 연합의 전개를 묘사하는 방법’ ), 즉 인간과 비인간을 막론한 ‘행위소’들이 하이브리드 공간인 연결망에서 서로 ‘관 계’를 형성한다는 관계론이다. ANT 이론은 모든 존재들이 이 연결망에서 서로에 의해 규정된다 고 보기 때문에 자연과 사회 중 특정한 무언가가 우선시 될 수 없게 된다. 라투르와 같은 신유물 론자의 견해는 인간이나 비인간 내지는 사물이 지니는 상호의존성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지구공동체 구성원들의 이 연관성은 일찍이 동학의 2대 교주 해월의 사상에서 다뤄진 바 

있다. 그는 ‘천지부모는 일체’, ‘천지는 만물의 아버지요 어머니’ )라고 말하여, 지구는 곧 모 든 존재들의 부모와 같은 ‘포태’임을 강조한다. 나아가 ‘천지가 아니면 나를 화생함이 없고 부 모가 아니면 나를 양육함이 없을 것이니, 천지부모가 복육하는 은혜가 어찌 조금인들 사이가 있겠 는가.’ )라고 하여, 지구와 개별 존재간의 관계를 ‘은혜’로 표현한다. 

소태산의 ‘사은(四恩)’에서도 이 관계성을 천지은·부모은·동포은·법률은의 네 가지 은혜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하늘의 공기, 땅의 바탕, 일월의 밝음, 풍운우로의 혜택, 금수초목 등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존재들도 나에게는 은혜로운 존재이며, 이들과 주체의 관계를 가리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한다. ) 또한 정산이 언급했던 ‘삼동윤리’의 ‘동기연계(同氣連契)’ 강령에서는 인류뿐 아니라 금수 곤충까지 다 같은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이니 대동화합해야 함을 주장한다. 전 지구적 존재들 간의 긴밀한 상호의존성, 나아가 ‘은혜로운 관계’라고 설명되 고 있는 이 관계성, 집약하여 표현하건대 ‘은(恩)적 네트워크’는 지구수양학이 추구하는 윤리의 기반이라 할 수 있다.

동학·천도교, 그리고 원불교가 지구의 ‘은(恩)적 네트워크’에 중심을 두었다면, 라투르와 같은 이론가들은 –비유적으로 표현하건대- ‘연합 네트워크’에 중심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은(恩)적 네트워크 중심의 관점은 이 지구를 모든 존재를 키워주는 부모 같은 존재임을, 그리고 전 지구적 존재들 각자가 서로를 먹이고 받쳐주는 형제 같은 존재임을 전제하는 데 반해, 연합 네트워크 중 심의 관점은 각 존재들이 부모나 형제가 아닌 ‘행위자’로 작용한다고 본다. 지구 구성원 간의 관계 구조를 사유하는 데 있어 어떤 부분에 무게를 두느냐의 차이라 여겨진다.

2) 공경과 불공의 윤리 수운이 여종을 수양딸과 며느리로 삼았던 일화, 그리고 해월이 베 짜는 며느리를 한울님이라 이 름 했던, 또는 소태산이 어느 노부부에게 불효하는 며느리를 부처님 공경하듯 위해주도록 권유했 던 일화가 있다. 이 일화들은 공경 또는 불공의 키워드로 요약된다. 해월의 ‘삼경(三敬)’ 사상은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세 가지를 말한다. 삼경사상은 그의 ‘우주적 연 대성에 대한 공감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타자의 개체적 존재를 절대적으로 긍정하고 본질적 화(和)의 관계를 정립한다. ) 해월신사법설에는 공경의 윤리에 대한 언급이 상당수 보인다. 해월 은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라 하거나, ‘사람을 대할 때 언제나 어린아 이 같이 하라’거나, ‘물건을 공경하면 덕이 만방에 미친다.’고 말한다. 특히 「내수도문」에서는 밥을 하거나 방아를 찧을 때, 식사하거나 다른 집을 왕래하는 등 일상생활을 영위할 때 공경의 윤 리를 실천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원불교의 경우 곳곳에 위치한 모든 존재를 부처로 정의하고 일마다 불공할 것을 권장하는 소태 산의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事事佛供)’ 사상을 기반으로 ‘불공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 다. 정전 「불공하는 법」에서는 ‘우주 만유는 곧 법신불의 응화신(應化身)이니, 당하는 곳마다 부 처님(處處佛像)이요, 일일이 불공 법(事事佛供)’이라고 하여, 전 지구적 존재들이 전부 법신불이라 는 궁극적 실재의 응화신이므로 등상불이 아닌 각 실재에 사실적인 불공을 할 것을 강조한다.

동학·천도교의 공경과 원불교의 불공은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존재들까지 그 대상으로 삼고 있 다는 점에서 ‘지구에 대한 공경과 불공의 윤리’를 제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토마 스 베리 외에 래리 라스무쎈(Larry L. Rasmussen)도 ‘지구를 공경하는 신앙’ )을, 마찬가지로 신 학자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는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윤리로 책임과 연민 )을 제 시한 바 있다. 이로부터 한국의 신종교뿐 아니라 신학에 있어서도 지구중심주의적 공경의 윤리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지구의 모든 존재들을 공경하거나 불공하는 건 타자를 ‘한울님’, ‘부처님’으로 여길 때 그 

극치를 이룬다. 천도교 사상가인 이돈화는 ‘한울은 범신관적(汎神觀的)이며 만유신관(萬有神觀)으 로 해석’ )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김용준은 이돈화의 이 견해를 가리켜 ‘범신론적 일신관’으로 정의했다. 수운이 신비체험 때 신과 대화한 것은 일신론의 근거이고, 이돈화는 ‘물물천사사천(物物天事事天)’등의 구절은 범신론의 뜻을 가진 것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는 ‘반대일치’의 원 리를 써서 일신론과 범신론을 조화하고 통합하려 했다고 본다. ) 궁극적 실재를 초월적인 존재로 만, 또는 내재적인 존재로만 보는 것이 아니며, 초월성과 내재성을 모두 담지한 존재로 보고 있다. 원불교 신앙의 대상인 ‘법신불 사은’에 대해 노권용은 ‘범재불론적 내지 범재은론적 성격’

을 띤다는 의견이다. 그는 ‘법신불’이 절대유일의 총상 또는 총덕이며 ‘사은’은 그 구체적 별 상 또는 별덕이라고 해석한다.  ) 전체를 총괄하는 유일무이의 궁극적 실재인 ‘법신불’, 그리고 이 법신불의 개별적인 나타남으로서 ‘사은’은 하나로 통합되는 동시에 구분될 수도 있는 ‘일이 이(一而二)’의 방식으로 구성된다는 견해다. 이찬수도 유사한 견해를 보인다. 그는 정산의 ‘동기 연계’에서 ‘동기성(同氣性)’이 범재신론의 기초가 된다고 설명한다. ‘동기’ 자체가 만유를 살 리고 포섭하는 선행적 근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은사상도 범재신론적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 다.33)

이와 같이 동학·천도교, 원불교는 초월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공경 또는 불공의 대상을 내 앞에 현현하는 존재로 설정할 수 있다. 개별 존재 각각이 궁극적 실재인 동시에 전 지구적 존재들을 품어 안는 법신불에, 한울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이들 사상이 범신 (불)론적 관점에 국한되었다면, 법신불이나 한울과 동일한 위격의 궁극적 실재가 수 없이 많이 등 장했을 것이다. 그리 된다면 개별 신들을 숭배하는 샤머니즘적 신앙 체계를 갖추게 될지언정, 지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을 한 기운으로 연결된 형제, 즉 상호의존적 관계의 존재들로 인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동학·천도교, 원불교가 사사물물을 공경과 불공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개별자들을 각각 한울님, 부처님으로 봄과 동시에 서로간의 긴밀한 연결 관계도 함께 고려함을 의미한다. 이는 주체가 ‘자신이 곧 부처’라는 진리 아래 단독적으로 자신의 인격 완성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 완 성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공동체 구성원들과의 관계, ‘은(恩)적 네트워크’에서라 야 완성을 이룰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동학·천도교, 원불교의 지구수양학이 개인의 완성만을 추구 하지 않고 전 지구적 연대를 함께 지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자기완성과 지구적 연대의 통합적 실천 동학과 천도교의 수양이 지향하는 방향성은 수심정기(守心正氣), 즉 마음을 잘 보존하여 기운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 이는 마음과 기운을 함께 다루고자 함으로, 수심(守心), 즉 마음을 보존하는 것과 정기(正氣), 즉 기운을 바르게 하는 것이 밀접하다는 걸 의미한다. 수심정기를 지향한다는 것 은 ‘마음과 기운’을 지닌 자라면 누구나 수양을 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지식의 유무 나 계급의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수심정기를 추구할 수 있다. 성리학의 수양법이 ‘독서행위 에 기초한 학습행위’로 변질되고, 이에 고급관료가 되기 위한 교과과정으로 고착화된 것에 대한 수운의 대응이 이렇게 수심정기 수양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 

원불교의 수양도 누구나 실천 가능한 방법을 지향한다. 원불교 개교표어인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물질과 정신을 병행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의지를 그대로 반 영한 수양법들을 제시한다. 원불교 표어, 즉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 ‘무시선 (無時禪) 무처선(無處禪)’, ‘동정일여(動靜一如)’, ‘영육쌍전(靈肉雙全)’, ‘불법시생활(佛法是生活) 생활시불법(生活是佛法)’은 심성의 도야를 통해 실제 삶을 바르게 운용하고, 삶을 바르게 운용 하는 일이 곧 심성 도야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남성, 고용인, 부유층, 지식인들만이 아 닌 여성, 피고용인, 지식이 적은 사람도 수양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이를 위해 ‘일상수행의 요 법’과 ‘일기법’을 비롯한 생활 속 수양법들이 존재한다.

동학·천도교, 원불교의 수양은 이와 같이 민중 누구나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개벽종교로서의 경향 자체가 모든 존재들의 평등성을 지향하기 때문이기도 하거 니와, 정신적 영역뿐 아니라 물질적·신체적 부분을 함께 가꾸어 간다는 점에서 데카르트식의 물 질과 정신 이원론을 지양하고 있다고도 해석 가능하다. 

원불교는 창립 초기에 방언공사 외에도 작농과 양잠, 축산, 원예 등 산업과 더불어 황무지를 개 간하거나 과원을 경영했는데, 이러한 과정들을 단지 종교 산업만이 아닌 영육쌍전, 이사병행(理事並行), 동정일여(動靜一如)의 수양으로 보았다. 소태산은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여 참 문명 세계가 열리게 하며, 동(動)과 정(靜)이 골라 맞아서 공부와 사업이 병진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 질과 정신의 이원론적 구분을 지양함으로써 도학과 과학, 이치와 일, 동과 정을 구분하는 것을 반 대한 것이자, ‘인격의 완성을 위하여 수련을 쌓는 생활과정이 세간을 떠난 데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이 물질과 정신에 대한 이원론적 접근을 지양함으로써 일상 속에서 심성을 도야하게 하는 대중적 수양을 추구한 것은 곧 ‘개인적 심성 도야와 공경·불공의 통합’ 이라고 정리된다. 

동학과 천도교의 주문 수련이 어떻게 해서 개인적 수양에 한정되지 않고 지구 구성원들을 향한 

공경의 실천과 통합이 가능한지는 다음의 견해로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주문 수련을 열심히 한 결과 내 안에 한울님을 확실히 모시게 되면,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은 존재 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한울님처럼 모실 수 있는 것(事人如天)이다. 다른 사람을 한울 님처럼 모시면 그 사람 또한 감응하여 나를 한울님처럼 모시게 된다. 그래서 나를 중심으로 사람들 이 모이고 기화(氣化)가 상통하므로, 하는 일도 원만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관계를 사람들에 게만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들에게도 실천하면 세상 만물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게 된다.38)

원불교의 경우 지구공동체의 은혜에 주목하는 사은(四恩) 사상을 ‘일상수행의 요법’을 통해 직 접 실천하도록 한다. ‘일상수행의 요법’ 중 다섯 번째 조목인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

자.’는 사은에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도 이것이 곧 내 마음을 요란하게 하는 ‘경계(境界)’임을 알아차려 즉시 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환시키자는 실천법이다. 정산은 이러한 ‘일상수행의 요 법’을 가리켜 ‘자성 반조의 공부’로서 ‘천만 경계에 항시 자성의 계정혜를 찾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 즉 개인이 일상 속에서 원망할 일이 생길 때 본래 성품을 회복함으로써 원망심을 버리고 감사심을 얻는 수양법으로, 후일 대산이 설명했듯 ‘전 생령이 구원을 받는 방법, 세계 평 화의 근본, 온 인류가 서로 잘 사는 묘방’ ), 개인의 마음을 닦는 수양이 곧 ‘전 생령의 구원’ 과 통합되도록 하는 방법론이다.

이와 같이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을 지양하는 방식 아래 개인의 심성을 도야하는 수양, 그리고 지구공동체 구성원을 향한 공경과 불공의 실천이 통합되는데, 이로부터 인간과 비인간, 땅과 하늘, 문명과 자연을 이원론적으로 분리하는 관점 또한 수양을 통해 해체할 수 있게 된다.  해월의 ‘이 심치심(以心治心)’은 자신이 지닌 한울의 마음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면 ‘화가 바뀌어 복이 되고 재앙이 변하여 경사롭고 길하게’ ) 됨을 강조한다. 지극한 수양으로 한울을 모시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면 실제로 복이 넘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복’이라는 가시적인 결과물을 얻 게 된다. 

이는 ‘날짐승 삼천도 각각 그 종류가 있고 털벌레 삼천도 각각 그 목숨이 있으니, 물건을 공경

하면 덕이 만방에 미친다’고 한 해월의 설명과 연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수양으로 내게 한울의 마음이 자리를 잡으면 사사물물이 전부 시천주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날짐승이건 털벌레건 모 두 공경하게 되고, 이는 곧 지구적 공공성의 실천으로 이어져 그 ‘복’이 나에게로 돌아오게 된 다. 

이렇게 물질과 정신의 이원화를 지양할 뿐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의 이원론적 구분을 해체하게 

되는데, 지구수양학이 가지는 이러한 성격은 하나의 특이성이자 시사점을 지닌다. 바로 지구 구성 원들과 궁극적 실재 간의 수직적이던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전환시킨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환은 ‘지금껏 하등하다고 여겨진 생명체나 기계를 향한 성찰’ )에서 시작된 탈인간중심주의에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한다. 제인 베넷(Jane Bennett)이 강조한 ‘정치생태학’ )은 비인간 존재들의 권리 에 주목하여 그들을 민주주의의 주체로 등장시키고, 그래서 인간과 비인간의 수평적 관계를 확립 하려 한다.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소중한 타자성’ ) 또한 인간과 비인간의 위계화를 거부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반려종이 될 수 있는 수평적 관계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동학·천도교, 원불교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이 수평적 관계의 대상을 한울 또는 법 신불까지로 확장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수운에게 한울은 절대자이자 초월적인 존재였다. 그러면 서도 ‘내 마음이 곧 네 마음(吾心卽汝心)’임을 깨달아 각자가 궁극적 실재를 모시고 있음을 밝혔 다. 초월성과 내재성을 함께 인정했던 한편으로 초월성보다는 내재성을, 믿음보다는 깨달음이 강조 되는 방향으로 한울에 대한 함의가 더욱 풍부해졌고 깊어졌다. ) 해월의 ‘베 짜는 한울’ 이야기 는 이러한 수평적 관계를 반영하며, 궁극적 실재의 영역을 수직적으로 한정하지 않고 수평적으로 확장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소태산은 진리의 실상인 ‘일원상의 진리’를 ‘제불 제성의 심인’이자 ‘일체 중생의 본 성’으로 믿는 것이 곧 신앙임을 말하여, ‘일원상의 진리’는 모든 존재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되 는 것임을 천명하였다. 어느 노부부에게 ‘그대들의 집에 있는 며느리가 곧 산 부처’라고 했던 소태산의 설득은 ‘하늘만 높이던 사상을 땅까지 숭배하게’ ) 한다는 대산의 설명과 더불어, 궁 극적 실재와 지구 구성원들의 관계를 수직적으로 보는 동시에 수평적으로 구축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지구수양학은 전 지구적 존재들의 수평적인 관계를 궁극적 실재와의 관계로까지 확장

한다. 그래서 탈인간중심주의가 그 동안 하등하다고 여겼던 비인간 존재들과의 관계를 수평적인 것으로 전환했다면, 지구수양학은 이들 존재를 평등한 동시에 ‘공경과 불공을 받아 마땅한 존 재’로 정의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즉 비인간의 주체성과 상호작용에 중점을 두는 탈인간중심주의 에 지구수양학이 공경과 불공이라는 실천성을 보완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과 비인간의 수평적 관 계를 인간·비인간·궁극적 실재의 수평적 관계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동학·천도교와 원불교가 지닌 지구수양학적 특성은 개인적인 수양이 지구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공경과 불공과 통합된다는 점이다. 개인의 심성을 도야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해가 는 과정이 다른 존재를 향한 공경과 불공을 실천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이는 동학·천도교와 원 불교가 인식하듯 지구 존재들 간의 관계가 ‘은(恩)적 네트워크’, 즉 긴밀한 상호의존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공경과 불공을 실천함으로써 이 네트워크를 더욱 원활하게 운용할 수 있음을, 이로부터 연대를 실천할 수 있음을 함의한다. 

연대는 다른 존재와 함께 더불어 하는 것을 주된 요소로 삼는다. 강수택은 자유, 평등, 박애 같

은 관념들이 연대의 전제가 된다고 말한다. 즉 연대 자체가 수평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 수평적 관계에서 구성원들의 집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 그리고 김용해는 연대에 대해 인류를 위한 상호책임을 지는 것, 재난재해 같은 위험을 줄여나가는 예비적 상호보험으로 볼 수 있다고 본다. ) 전 지구적 존재들을 향한 공경과 불공, 이를 통한 ‘은(恩)적 네트워크’의 활성 화는 지구위험에 대비하는 상호보험, 수평적·집합적인 노력으로서 지구적 연대를 위한 하나의 실 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수양과 통합되는 공경과 불공’은 자유, 평등, 박애와 더불어 지구 위험시대 연대의 새로운 전제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Ⅳ. 맺음말

이 연구는 지구위험시대에 대응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출발한 지구인문학적 사유와 그 맥을 함께 

한다. 특히 자연을 도구화하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해체하고 비인간 존재들을 공경과 불공의 대상 으로 삼는 것이 결국 인간 스스로의 내적 도야와도 분리되지 않는 일임을 논의하고자 했다. 또한 그만큼 모든 존재가 빠짐없이 긴밀한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개인이 단독으로 심성 을 도야하여 그 결실을 맺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따라서 관계 속에서 타자를 위한 공경과 불 공을 실천하는 행위가 곧 자신의 심성을 도야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 이 점은 지 구위험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지구위험을 기점으로, 우리는 전 지구를 대상으로 개인의 수양과 지구적 윤리 실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동학·천도교, 원불교가 지닌 지구수양학적 요소들은 후일 서구적 사유에서 제시하지 않은 관점 들을 이미 담지하고 있었다. 이는 지구위험시대에 부응하는‘한국적 독창성’이라고 명명할 수 있

다. 금수초목과 공기를 비롯한 물질들에 이르는 비인간 존재들까지 주체적 존재, 긴밀한 관계성의 존재로 본다는 점은 서구에서 출발한 신유물론이나 포스트휴머니즘과 유사한 입장을 취한다. 하지 만 이들 서구적 사조에서 중점을 두지 않는 윤리와 방법론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은(恩) 적 네트워크’, 공경과 불공의 윤리, 개인적 수양과 이 윤리 실천의 통합에 따른 한국적 독창성이

다. 이 독창성은 지구위험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생활 속에서 쉽게 수양을 실천할 수 있을 때 구현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종교적 이념의 울타리 내에서가 아닌 보편적, 대중적 성격의 윤리와 방법론으로 보완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원전

동경대전

해월신사법설

정전

대종경

정산종사법어

대산종사법어

2. 단행본 및 논문 

가타오카 류 외,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서울: 모시는사람들, 2020.

강수택, 「연대의 개념과 사상」, 역사비평102, 2013. 

고남준, 국선도, 단전호흡의 모든 것, 서울: 청어, 2018. 

공혜정, 「새로운 변화-기후변화와 원헬스(onr-health) 패러다임 고찰」, 생태환경과 역사5, 2019. 

김경희, 「장자 외·잡편에 나타난 군주 통치론」, 선도문화9, 2010. 

김도공, 「원불교 초기 전개과정에 나타난 공공성의 변모양상」, 신종교연구28, 2013. 

김용준, 「동학의 신관과 생명관: 이돈화의 해석을 중심으로」, 동학학보18, 2009.

김용휘, 「동학의 수양론」, 도교문화연구22, 2005.       , 최제우의 철학,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12.

김은주, 「포스트휴먼은 어떻게 지구 행성의 새로운 유대를 만드는가?」, 이감문해력연구소 기획, 21 세기 사상의 최전선, 서울: 이성과감성, 2020.

김용해, 「연대의 가능성과 인간의 의무」, 생명연구45, 2017. 

노권용, 「원불교의 불신관 연구」,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50, 2011. 

도나 해러웨이, 해러웨이 선언문, 황희선 역, 서울: 책세상, 2019. 

래리 라스무쎈, 지구를 공경하는 신앙, 한성수 역, 고양: 생태문명연구소, 2017. 

레오나르도 보프, 생태공명, 황종열 역, 세종: 대전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8. 

류병덕, 원불교와 한국사회, 서울: 시인사, 1977. 

      , 근·현대 한국 종교사상 연구, 서울: 마당기획, 2000.

류성태, 동양의 수양론, 서울: 학고방, 1996.

박석, 「≪논어(論語)≫의 `학(學)`의 용례를 통해서 본 공자(孔子) 수양론(修養論)의 특징」, 중국문학

58, 2009. 브뤼노 라투르 외, 인간·사물·동맹, 홍성욱 역, 서울: 이음, 2010. 

송봉구, 동학을 배우다 마음을 살리다, 서울: 모시는사람들, 2020. 

신진식, 「노자의 수양론 체계」, 윤리교육연구25, 2011. 이규성, 최시형의 철학,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1.

이기운, 「한국 근대불교잡지에 나타난 사회인식의 근대적 전환」, 禪學24, 2009.

이길용, 「수양론으로 본 한국 신종교의 구조적 특징: 동학과 증산교를 중심으로」, 동학학보25, 2012. 

이돈화, 신인철학, 서울: 일신사, 1963. 

이승헌, 지구인의 꿈, 서울: 한문화, 2002. 

이재헌, 「한국 신종교의 생태담론과 생태사상: 동학, 원불교, 금강대도를 중심으로」, 신종교연구15, 2006.

이재호, 「유학의 수양론과 대순진리의 수도론에 관한 고찰: 성, 경, 신을 중심으로」, 대순사상논총

12, 2001. 이찬수, 「대산의 일원주의와 세계주의」,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61, 2014.

전명수, 「신영성운동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고찰」, 한국사회5, 고려대학교 한국사회연구소, 2004. 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문성재 역, 서울: 현실문화, 2020.

조성환, 「현대적 관점에서 본 천도교의 세계주의: 이돈화의 지구주의와 지구적 인간관을 중심으로」,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84, 2020.

      , 「동학에서의 제천의례의 일상화」,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기획, 한국 근현대 민족중 심 제천의례 조명, 서울: 모시는사람들, 2021. 

조지 세션스, 「세계관으로서 근본 생태론」, 세계관과 생태학, 메리 이블린 터커, 존 A. 그림 엮 음, 유기쁨 역, 성남: 민들레책방, 2003.

토마스 베리, 위대한 과업, 이영숙 역, 서울: 대화문화아카데미, 2009.

3. 홈페이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https://stdict.korean.go.kr/main/main.do 수선재 공식 홈페이지, https://www.suseonjae.org/.


화엄철학 : 쉽게 풀어쓴 불교철학의 정수 The Buddhist Teaching of Totality 이찬수

싸니까 믿으니까 인터파크도서 - 화엄철학

화엄철학 : 쉽게 풀어쓴 불교철학의 정수[양장]

저 : 까르마 C.C. 츠앙, 이찬수
출판사 : 경서원발행 : 1990년 08월 20일
쪽수 : 428
[중고] 화엄철학  중  9,000원

-----

목차
머리말
일러두기
들어가는 말

제1부 총체성의 세계

부처의 무한한 경계
총체성에 관한 대화
무애-총체성의 추축
거울로 둘러싸인 방
총체성의 근본원인
보살이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열 단계
부사의한 불법
삼매, 신통력, 법계

제2부 화엄의 철학적 기초

머리글

제1장 공의 철학
공-불교의 핵심
반야심경의 요지
무아설과 자성공
절대공
쑤냐타와 논리학
쑤냐타의 의의

제2장 총체성의 철학
상즉과 상입-화엄철학의 두 기본 원리
상즉에 대한 검토
사법계 철학

제3장 유심론
마음과 외부의 세계
알라야식과 총체성

제3부 화엄 문헌 몇편과 조사들의 전기

[보현행원품]
[반야심경약소]
[법계관문]
[금사자장]
조사들의 전기

맺음말
옮긴이의 말
낱말풀이
찾아보기

펼쳐보기
--------------------------
저자소개
까르마 C.C. 츠앙 [저]
펜실바니아 주립대학 종교학과 불교전공 교수.
저서로 [선수행],[티벳 요가의 가르침] 등이 있다.
-------------------------------
이찬수 [저]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불교학과 신학으로 각각 석사학위를, 칼 라너(Karl Rahner)와 니시타니 게이지(西谷啓治)를 비교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학교 교수, (일본)WCRP평화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화문화아카데미 연구위원 등을 지냈고, 종교철학에 기반한 평화인문학의 심화와 확장을 연구 과제로 삼고 있다. 저서로 [평화와 평화들: 평화다원주의와 평화인문학], [다르지만 조화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 [사람이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가: 사형폐지론과 회복적 정의](공역), [아시아평화공동체]가 있고, 논문으로는펼쳐보기
저자의 다른책
--------------------------------------------
이 책의 기대평(한줄평)을 간단히 남겨주세요.
등록하기
기대평10.0최근순평점 높은순
kang***

화엄철학의 진수!!

2016/09/07
eunis***

저술이 탁월하여, 화엄경을 읽기 전에, 그리고 읽은 후에 각각 읽어본다면 가슴에 와닿을 것입니다!

2011/04/07
==============
The Buddhist Teaching of Totality: The Philosophy of Hwa Yen Buddhism, 1971
by Garma C.C. Chang (Author)
4.3 out of 5 stars    9 ratings
---
The Hwa Yen school of Mahayana Buddhism bloomed in China in the 7th and 8th centuries A.D. Today many scholars regard its doctrines of Emptiness, Totality, and Mind-Only as the crown of Buddhist thought and as a useful and unique philosophical system and explanation of man, world, and life as intuitively experienced in Zen practice. For the first time in any Western language Garma Chang explains and exemplifies these doctrines with references to both oriental masters and Western philosophers. The Buddha's mystical experience of infinity and totality provides the framework for this objective revelation of the three pervasive and interlocking concepts upon which any study of Mahayana philosophy must depend. Following an introductory section describing the essential differences between Judeo-Christian and Buddhist philosophy, Professor Chang provides an extensive, expertly developed section on the philosophical foundations of Hwa Yen Buddhism dealing with the core concept of True Voidness, the philosophy of Totality, and the doctrine of Mind-Only. A concluding section includes selections of Hwa Yen readings and biographies of the patriarchs, as well as a glossary and list of Chinese terms.
300 pages
--------------------
4.7 out of 5 stars 11
Paperback
$24.00
---

Editorial Reviews
Review
“That The Buddhist Teaching of Totality is a unique and long-needed contribution to Buddhological literature in English cannot be denied. Not only is it one of the very few introductions to a school of Chinese Buddhism other than Ch’an, it is one of the few attempts in any language to present systematically the essential features of the Flower (Hwa Yen) Garland School, perhaps the most philosophical sophisticated example of Buddhist syncretism ever to be produced.”
—Journal of the American Oriental Society

“Chang’s style is easy and concise, enjoyable, and stimulating. . . . This would be a useful book for any college or university library. Highly recommended.”

—Choice

“[This] is indeed a most welcome addition to the literature on the most comprehensive and most profound branch of Chinese Buddhism, the Hwa Yen School. . . . [It is] a work of real and present value.”

—Main Currents in Modern Thought

“The Western student of Buddhism should be grateful for this first full-length treatment in English of an important and interesting school of Buddhist thought.”

—Philosophy East and West

“This book is highly recommended to advanced students of Buddhism and to Westerners whose interests in Buddhism incline toward the metaphysical and phenomenological.”

—Philosophy and Phenomenological Research

About the Author
Renowned for his English translation of The 100,000 Songs of Milarepa, Garma Chen-Chi Chang was also the author of The Practice of Zen and The Teachings of Tibetan Yoga, and the editor and translator of A Treasury of Mahāyāna Sūtras. At the time of his death in 1988, Dr. Chang was Professor Emeritus of Religious Studies at The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oduct details
Publisher :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1st edition (September 1, 1971)
Language : English
Paperback : 300 pages
-----------------------
Customer Reviews: 4.3 out of 5 stars    9 ratings
--------------
Top reviews from the United States
Tay Yong Meng
3.0 out of 5 stars The book is well written with very good and clear explanations and examples/parables to enhance the meanings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January 5, 2017
Verified Purchase
The book is well written with very good and clear explanations and examples/parables to enhance the meanings. However, the ereader version has many typo errors.
One person found this helpful
---------------------
richard hunn
5.0 out of 5 stars An authoritative study by an experienced Buddhist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April 3, 2002
For an easy ride, visit Disneyland. C.C. Chang's study of the Hua Yen is a demanding work, because it presuposes that the reader wishes to find such insight - through practice. The Hua Yen Ching is said to have been expounded immediately after the Buddha's own enlightenment. It is one of the few sutras that actually endeavour to hint about the enlightened state itself- positively, rather than obliquely, by referring to it in relation to what it is not (viz. asrava, klesa defilements, trsna, dualism) - the 'neither-nor' aspect. Hua Yen deals with the 'mutually inclusive' dimension(s) of totality. Beware! Too many Western writings on Hua Yen (Kegon) jump straight into shih-shih wu ai - the 'non-obstruction between thing-events.' But actually, without insight into li-shih wu ai, seeing 'form' as grounded in the kung or 'void' aspect, nobody knows anything about shih-shih wu ai. C.C. Chang had the best Chinese and Tibetan teachers. He writes with authority - because he writes with eperiential insight into what the Hua Yen teaches. I've savoured Chang's work for 25 years, yet it remnains as inspiring and stimulating, as the day I first saw it. A lifelong study this. Find the meaning in your own experience. Candy is for the kids!
31 people found this helpful
-----------------
Barnaby A Thieme
3.0 out of 5 stars Good Intro, though sectarian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May 29, 2002
The Hwa Yen school, which drew chiefly from the Avatamsaka Sutra (translated by Cleary), emphasizes Dharma from the perspective of realization, or enlightened mind. Like the Lotus Sutra, The Avatamsaka Sutra is equally an evocation of a state of mind as a presentation of information. The Hwa Yen thinkers of Sung China used this as their starting point to paint a dazzling portrait of our universe filled with mind-blowing images and rich ideas.
This is a pretty good introduction to Hwa Yen Buddhism, although the reader will have to wade through a fair amount of unapologetic sectarianism. Hwa Yen, we learn, is the "highest" and "most advanced" form of Buddhism, and Chang clearly considers himself to have full knowledge of what Buddha "really meant" in his teachings. Despite this sometimes tedious lack of modesty, the book is a good overview of the history and doctrine of this school. Given the unfortunate paucity of material on this intriguing movement, that is a welcome addition.
19 people found this helpful
--------------
accwai
5.0 out of 5 stars Don't skip this one...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August 1, 2002
The first reviewer says skip this and go to Thomas Cleary. I would assume that means "Entry into the Inconceivable". I have both actually, and I like "The Buddhist Teaching of Totality" better.
To me, the Cleary approach seems to be just to pick you up and dump you right into the middle of things. By page 24, you're already into the four dharmadatu's. These are very subtle concepts that require serious preparation to understand deeply. They may be interesting doctrines if you're into that kind of thing, but I personally like to see how all the pieces fit together. In that sense, I'm totally lost. The Garma Chang book covers a lot more basics before going into the heavy stuff. The pace may be slower, but in the end, I have a much clearer picture. And after that, the Cleary book becomes much more palatable.
Another reviewer mentioned that Garma Chang seems to think he knows everything. I don't know, but from the writing, it's clear that he has a great deal of personal experience on the subject at hand. His discussion on emptyness, for example, is particularly subtle and insightful. Thomas Cleary, on the other hand, doesn't seem to show much opinion of his own. Much of the "Entry into the Inconceivable" text is translated from Chinese works. Same goes for his translation of the Avatamsaka Sutra itself as well. Even the introduction is paraphrasing of Chinese text. Not that translation is not useful of course...
A bonus included in the Garma Chang book is an almost complete translation of "The Great Vows of Samantabhadra". It is important because it's supposed to give one a good feel for what the complete Avatamsaka is like. It is the last part of the Forty Hwa Yen and is often treated as a separate sutra on its own. (It's also classified as one of the Five Sutras of Pure Land) And it's not in Cleary's English translation of Avatamsaka Sutra, which is strictly a translation of Eighty Hwa Yen.
In any case, I'd probably get both books. They serve different purposes. Seems to me that the person who says to skip this one is treating the meaning of the books as self-existent and real and therefore their relative merit should be completely self-evident. We all know that is not true right?
Read less
43 people found this helpful
---
Frank J. Boccio
5.0 out of 5 stars A justifiably classic "Classic."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March 24, 2007
Chang has done something really important and necessary in writing this concise and comprehensible overview of Hwa-Yen philosophy. I'd recommend this to any student who wishes to cultivate a deeper understanding of the Avatamsaka Sutra and the elements of Mahayana thought that culminates in Hwa-Yen.
3 people found this helpful
------------

Write a review
Peter Kalnin
Apr 13, 2020Peter Kalnin rated it it was amazing
This was another writer whom Professor Francis Cook introduced to a very small class of students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Riverside in 1971. I felt honored and privileged to have been a part of that group and very lucky to have Professor Cook as a guide to an esoteric but beautiful part of the Buddhist cannon.
----
Thank you Professor Cook.
flagLike  · comment · see review
Greg
Mar 30, 2009Greg rated it really liked it
Shelves: buddhism
This is an excellent introduction to the doctrines of Hwa Yen Buddhism. The author does a good job of distinguishing that school from other schools of Chinese and Japanese Buddhism. One thing that the author stresses is that although there is a large doctrinal literature, really what the doctrine is meant to do is not build philosophical systems, but rather to explain the experiences that practitioners have while meditating - i.e., enlightenment.



2021/02/27

알라딘: 검색결과 김승혜 18권

알라딘: 검색결과 ''
 

1.
2.
3.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3월 3일 출고
    (중구 중림동) 지역변경
4.
5.
6.
9.
11.
12.
1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