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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8

"인류의 지질학(#Geology_of_Mankind)" 파울 크뤼첸(Paul J. Crutzen) / 이찬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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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Anthropocene)라는 화두와 같은 말을 처음으로 제기한 네델란드 대기과학자 #파울_크뤼첸(#Paul_J_Crutzen)의 짧은 글을 번역해보았다.
2002년 글이라 기후위기를 지금만큼 심각하게 느꼈던 것 같지는 않지만, 연구사적 의미가 워낙 지대하다.
곧 출판될 인류세 관련 내 논문에 부록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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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지질학(#Geology_of_Mankind)"
파울 크뤼첸(Paul J. Crutzen) / 이찬수 옮김

지난 3세기 동안 인간이 지구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확대되어왔다. 이산화탄소의 인위적인 배출로 인해 다가올 수천 년 동안 지구의 기후는 자연스러운 행태에서 크게 벗어나게 될 것이다. 현재는 여러 면에서 인간 지배적 지질 시대(human-dominated, geological epoch)이며, 여기에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용어를 붙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 이는 지난 10,000년에서 12,000년 사이의 온난기인 홀로세(Holocene)를 보완한다. 인류세는 지난 18세기 후반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극지방 얼음에 갇힌 공기를 분석해보니 그때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농도가 세계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때는 1784년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 설계 시기와도 일치한다.
인류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력의 증대는 오래전인 1873년에도 인식되고 있었다. 그때 이탈리아 지질학자 안토니오 스토파니(Antonio Stoppani)가 “힘과 보편성에서 지구의 더 큰 힘들에 필적할 새로운 대지의 힘(new telluric force)”에 대해 말하면서 “인류지배시대”(anthropozoic era)라는 언급을 했다. 그리고 1926년 베르나드스키(V. I. Vernadsky)는 증가하는 인류의 강한 영향력을 이렇게 인지한 바 있다: “진화의 과정이 진행되어야 하는, 즉 의식과 사유를 증가시키는 방향이어야 하며, 그 주변 환경에 더더욱 큰 영향을 미치는 모양새이다.” 떼이야르 드 샤르댕(Teilhard de Chardin)과 베르나드스키는 인간 두뇌력(brain -power)이 그 자신의 미래와 환경의 형성을 위해 맡은 역할이 계속 증가하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정신권’(noösphere, ‘사유의 세계’)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인류의 급속한 수적 팽창과 지구의 자원에 대한 일인당 착취는 급가속 되고 있다. 지난 3세기 동안 인구는 60억 명 이상으로 10배 증가했고, 이번 세기에 100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메탄을 생산하는 소의 숫자는 14억 마리로 증가했다. 지구(planet) 지표면의 30~50% 정도가 인간에 의해 착취되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방출하고 종의 멸종이 급증하면서 열대 우림도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댐의 건설과 하천의 유역 변경은 흔한 일이 되었다. 접근 가능한 모든 담수의 절반 이상이 인류에 의해 사용된다. 수산업은 용승 대양 지대(upwelling ocean regions)에서 일차 생산량의 25% 이상을, 온대 대륙붕에서는 35% 이상을 없앤다. 에너지 사용이 20세기 중에 16배로 늘어나 연간 1억 6천만 톤의 이산화황을 대기 중에 배출시켰는데, 이는 자연상태 총 배출량의 두 배 이상이다. 농업에서 사용되는 질소 비료는 전체 지상 생태계에 자연적으로 갖춰진 것보다 더 많다. 화석 연료와 양적 생물 자원(biomass)을 태우면서 발생하는 일산화질소도 자연 배출량을 능가한다. 농업과 화석 연료의 연소는 ‘온실’ 가스의 농도를 이산화탄소의 30%, 메탄은 100% 이상 증가시켜, 지난 40만 년 사이에 최고 수준에 이르렀고, 앞으로는 더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효과들은 주로 세계 인구의 25%에 의해서만 발생되었다. 그 결과는 무엇보다도 산성비, 광화학 ‘스모그’, 기후 온난화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최근 추정치에 따르면, 이에 따라 지구는 금세기 동안 1.4~5.8°C까지 따뜻해질 것이라고 한다.
많은 독성 물질들이 환경 안으로 방출되고 있다. 독성은 없다고 해도 심각한 손상을 일으키는 물질들이 있다. 가령 클로로플루오로카본은 남극 지역에 ‘오존 구멍’을 초래했다. (지금은 규제되고 있지만,) 사태는 더 악화될 수도 있었다: 할로겐이 오존층을 파괴하는 성질은 1970년대 중반 이래 연구되어왔는데, 만일 염소가 브롬처럼 화학적으로 반응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면, 그때까지 오존 구멍은 남극의 봄에 벌어지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연중 계속되는 현상이었을 것이다. 지혜보다 운에 더 의존했다면 이 파국적인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운석 충돌, 세계 대전 또는 대전염병과 같은 지구적인 대재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주요 환경적인 세력으로 남을 것이다. 과학자와 기술자들 앞에는 인류세 시대 동안 환경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관리하며 사회를 이끌어야 하는 벅찬 과제가 놓여있다. 그러려면 모든 범위에서 인간이 적절한 행동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여기에는 기후를 ‘최적화’하기 위한, 국제적으로 수용할만한 대규모 지구공학 프로젝트를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 대체로 우리는 여전히 ‘미지의 대지’(terra incognita)에 발을 디디고 있는 중이다.
Paul J. Crutzen, “Geology of Mankind”, #Nature vol.415 (2002), p.23(#이찬수 옮김)

2023/04/17

Taechang Kim 한국 그리스도교 비평 - 그리스도교, 한국적이기 위하여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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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chang Kim

イチャンス著
《韓国キリスト教批評:キリスト教、韓国的になるために》(梨花女子大学校出版部、2009年10月23日1版1刷) 
読みながら今こそイチャンス博士の問題提起に真摯に応答する時代的-状況的要請が韓国社会、特に宗教界にあり、自由活発な対話を通じて市民的コンセンサス形成を試みる必要があるのではないか、という気がした. 韓国キリスト教はどの程度韓国的と言えるのか? 韓国キリスト教は宗教多元化社会としての韓国の社会的 問題提起に十分応答しているのか? 韓国キリスト教は
韓国仏教と相和-相生-共働を目指す対話を交わしているきたか? という問題意識と関係構築への相互努力が重要課題ではないか、という気がした.





한국 그리스도교 비평 - 그리스도교, 한국적이기 위하여 
이찬수 (지은이)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2009-10-23




Sales Point : 32

344쪽


책소개
그리스도교는 과연 한국적인 종교인가? 이 책은 다양한 문헌과 주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러한 물음에 답하고 한국과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정리한 연구서이다. 이 책에서는 한국을 그리스도교를 담는 무력한 공간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의 주체로 부각시키고 이를 통해 진정한 ‘한국 그리스도교’에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책 안에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한 한국 그리스도교 200여 년의 사상사가 그대로 농축되어 있다. 특히 이제까지 서로 다른 종교인 양 독자적으로 연구되어온 가톨릭과 개신교의 자료들을 한자리에 두고 대등하게 연구함으로써, 자기 종파 중심적인 연구 태도 및 자세를 지양하고 이들이 같은 종교 전통이라는 인식의 폭을 확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제1부 한국 그리스도교, 그 연구의 역사

제1장 한국 그리스도교, 어떻게 연구되어왔나
1. 한국 그리스도교 연구 현황
2. 연구의 시각 및 범위
3. 한국 천주교회 연구 100년사
4. 국학에서의 그리스도교 연구
5. 한국 개신교회 연구 100년사
6. 한국 그리스도교 연구 정착기
7. 신학 사상사 연구 및 비교 연구의 등장
8. 역사학적 ? 사회과학적 그리스도교 연구
9. 종교학으로서의 그리스도교 연구

제2장 한국 그리스도교, 얼마나 한국적인가
1. 그들만의 잔치
2. 모두의 잔치를 위하여
3. 천주교의 개신교관
4. 개신교의 천주교관
5. 천주교 연구서들의 한국 종교문화관
6. 개신교 연구서들의 한국 종교문화관
7. ‘한국적’ 연구를 지향하며

제3장 한국 그리스도교, 한국적이기 위하여
1. 한국이라는 주변, 서양이라는 중심
2. 대립 구조의 전복
3. 창조적 번역으로
4. 한국적이라는 것
5. 다중심의 탐구

제2부 한국 그리스도교, 그 구체적인 현장

제4장 한국 그리스도교, 과연 민족적인가
1. 한국 그리스도교는 민족적인가
2. 민족이라는 말의 기원과 민족주의의 성립
3. 민족-타자에 대한 대응 개념
4. 그리스도교의 민족성, 호교성, 기복성
5. 민족주의가 종교와 관계 맺는 근거
6. 신앙과 민족의 상호 매개성
7. ‘적的’의 논리

제5장 한국 그리스도교, 인권을 신장하는가
1. 세계인권선언 60주년과 한국
2. 인권 개념 형성사와 저항적 사회성
3. 인권과 종교적 인간론
4. 성서적 인간론과 인권
5. 하느님의 형상론과 인권 담론
6. 적극적 자유와 타권
7. 한국 그리스도교 인권 현실과 종교 교육
8. 한국의 다종교 상황과 인권

제6장 한국 그리스도교, 다원주의 신학자의 눈에 비친
1. 한국에서 신학을 한다는 것, 변선환의 근본 물음
2. 종교적 다양성과 콘텍스트로서의 한국
3. 한국 신학, 그 비정통의 길
4. 신학의 장, 한국
5. 신학의 대상, 한국
6. 한국이라는 감탕밭
7. 종교해방 신학, ‘복음’의 내용
8. 휴머니티의 전체성 회복
9. 한국을 믿는다

제7장 한국 그리스도교, 불교와 어떤 관계를 맺어왔나
1. 한국적 지평의 종교적 차원
2. 그리스도교의 정치·사회적 출발점
3. 외국 선교사의 불교관
4. 한국 그리스도인의 불교관
5. 솔직한 대화, 정교한 비교
6. 불교학과 신학을 조화시키는 그리스도인들
7. 훼불 사건과 불교권의 대응
8. 객관적 연구, 진솔한 만남 7
9. 21세기의 불교유신론

제8장 한국 그리스도교, 불교와의 조화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1. 길희성 신학의 의의
2. 길희성 사상의 구조
3. 학문적 여정과 지향점
4. 불교를 포섭하는 신학적 요지
5. 한국 종교문화론에의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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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찬수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일본의 사상과 문화, 동아시아의 종교와 평화 연구자.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거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일본의 철학자 니시타니 케이지와 독일의 신학자 칼 라너의 사상을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일본)코세이 가쿠린 객원교수, (일본)중앙학술연구소 객원연구원, (일본)난잔대학 객원연구원, 성공회대 대우교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일본정신』,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 교토학파와 그리스도교』, 『다르지만 조화한다』, 『평화와 평화들』, 『사회는 왜 아픈가』, 『아시아평화공동체』(편저), 『평화의 여러가지 얼굴』(공편저), 『근대 한국과 일본의 공공성 구상』(공저), 『北東アジア·市民社会·キリスト教から観た平和』(공저), 「비전(非戰), 반군국주의, 비핵화로서의 평화: 일본 평화개념사의 핵심」, 「平和はどのように成り立つのか」, 「北朝鮮の民間信仰」 등 80여 권의 단행본(공저서, 번역서 포함)과 90여 편의 논문을 출판했다.
현재 인권평화연구원 공동원장으로 일하면서 가톨릭대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메이지의 그늘>,<보훈과 교육>,<보훈, 평화로의 길> … 총 6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그리스도교는 과연 한국적인 종교인가? 이 책은 다양한 문헌과 주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러한 물음에 답하고 한국과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정리한 연구서이다.
그동안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한국’은 지리적인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주로 ‘그리스도교’라는 보편성에 의해 검증됨으로써 정당성이 확보되는 주변물 정도로 치부되어왔다. 이 책에서는 한국을 그리스도교를 담는 무력한 공간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의 주체로 부각시키고 이를 통해 진정한 ‘한국 그리스도교’에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리스도교와 민족주의의 관계, 그리스도교적 인권의 현실, 한국 문화와 신학의 관계 등 구체적인 주제들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한국 그리스도교 내지 신학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또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집중 조명함으로써 이들 종교의 만남을 지향하고 나아가 창조적 일치를 도모하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그동안 산출된 한국 그리스도교 관련 주요 문헌들을 총망라하여 정리함으로써 그 요지와 성격을 한눈에 파악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책 안에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한 한국 그리스도교 200여 년의 사상사가 그대로 농축되어 있다. 특히 이제까지 서로 다른 종교인 양 독자적으로 연구되어온 가톨릭과 개신교의 자료들을 한자리에 두고 대등하게 연구함으로써, 자기 종파 중심적인 연구 태도 및 자세를 지양하고 이들이 같은 종교 전통이라는 인식의 폭을 확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교를 교리적 혹은 신학적 차원에서 주로 다루었던 기존의 연구서들과는 달리 인문학적 ? 종교문화사적 시각을 견지하여 연구함으로써 그리스도교가 명실공히 한국학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기초를 다지고 있다.

▣ 이 책의 내용
이 책은 총 2부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3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1부에서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산출된 한국 그리스도교 관련 주요 문헌들의 내용과 성격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뒤 앞으로 어떤 자세를 가지고 한국 그리스도교를 연구해야 하는지에 관해 전망해본다.
특히 한국 그리스도교 관련 단행본의 요지와 특징을 한 권 한 권 정리하고 있는 1장을 통해 지금까지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이 어떠한 시각에서 한국 그리스도교를 연구하고 해석해왔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2장에서는 한국 그리스도교를 다룬 주요 문헌들이 지난 100여 년 동안 ‘한국’을 어떻게 보아왔으며, 가톨릭과 개신교는 서로를 어떻게 대해왔는지에 관해 분석해본다. 3장은 한국의 그리스도교가 참으로 한국적이기 위한 길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그리스도교는 한국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그 기본 시각과 자세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2부에서는 민족주의, 인권, 한국 문화와 신학의 관계,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관계 등 구체적인 주제들을 통해 여러 각도에서 한국 그리스도교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있다.
이 가운데 4장은 한국 그리스도교가 ‘민족적’이었다는 저간의 섣부른 평가를 비판적으로 반성해보기 위한 글이며, 5장은 선교도 개인의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인권을 존중하며 이루어질 때 한국적인 그리스도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도를 ‘타권他權’이라는 창작적 개념 안에 담아 정리한 그리스도교적 인권론이다. 6장은 한국에서 종교 간의 대화와 종교다원주의 신학에 불을 지핀 변선환이 ‘한국’이라는 현장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중심으로 한국적 신학의 성립 가능성에 대해 정리하고 있으며, 7장에서는 동서양 종교의 양대 산맥인 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역사적인 관계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8장은 종교들의 관계, 특히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철학적 혹은 신학적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 만날 수 있는지, 그리스도교 신학은 불교적 세계관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한국의 탁월한 불교-그리스도교 비교학자인 길희성의 신학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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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chang Kim 다르지만 조화한다 :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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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cha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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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chang Kim

日本 未来共創新聞社 山本恭司社長이 특별히 찾아서 우송
해준 책이 어제 오후에 배달되어 받아 보았다. 당장 읽기 시
작했는데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도 時中의 묘합을 실
감한다. 

이찬수박사의 역작인 《다르지만 조화한다》에서 한국인학자가 기독교와 불교
의 연계를 한일공관적 입장에서 심층분석 비교해명한 것과 맞무려서 
일본인 원로학자 (2차례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음) 가네코 하루오 선생의 
기독교와 일본불교와의 대화를 영성의 측면에서 비교해명한 것하고 
공명공진하는 바가 많고 의미깊게 느껴져서 이다.

이찬수박사의 저서에 접할 수 있었기에 가네코 하루오씨의 동서 영성론의 핵심이해가 한일철학대화를 계속하고있는 나 자신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고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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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만 조화한다 :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 -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기 
이찬수 (지은이)모시는사람들2015-08-31






320쪽

책소개

기독교 신학자, 목회자이면서 화엄철학과 선불교를 공부한 저자가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하며 내면에서 상통하는 종교적 본질을 밝힌 책. 불교적 언어가 불자에게 주는 의미와 기독교적 언어가 기독교인에게 주는 의미의 정도가 다르지 않음을 말하면서 서로를 통해 자신에게 더 깊어지는 종교 공부와 수행을 이끌어 내고, 신앙의 거룩함을 일깨운다.

불교와 기독교가 표면상 외형상 전혀 다른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심층에서 서로 통하는 면이 더 크고 깊다는 사실을 해명한다. 기독교가 절대유의 차원에 서 있다면 불교는 절대무의 차원에 서 있으나, 절대는 절대로 통하는 법이다. 불교와 기독교의 종착점은 결국 동등한 체험의 깊이를 나타내며, 붓다와 예수가 말하고자 했던 세계도 결국 동등하다는 것이다.


목차


1부_ 깨달음의 길에 서다
01 인연에 따르다 : 불교의 인간론
02 믿음과 용기, 그리고 깨달음 : 지눌의 신심론과 틸리히의 신앙론

2부_ 불교와 기독교 서로 만나다
03 법신불 일원상과 범재신론 : 원불교의 일원주의와 세계주의
04 모두 절대무 안에 있다 : 니시다의 철학과 기독교
05 창조적 만남과 궁극적 일치 : 길희성과 타나베의 신학과 철학
06 두 종교를 동시에 살아가다 : 불교적 그리스도인 니터의 고백
07 신학을 불교화하다 : 야기의 불교적 신학
08 불교를 수용하며, 신학을 변호하다 : 발덴펠스의 자기 비움의 신학

3부_ 두 세계를 다시 보다
09 종교는 해석이다 : 스힐레벡스의 신학적 해석학: 모든 종교는 해석이다
10 오늘 우리의 구원과 해탈 : 어느 불교적 신학자의 구원관
11 비종교적인 그러나 종교적인 : 비종교인 리영희가 보는 기독교와 불교
12 90점 불교와 70점 기독교 : 두 종교에 대한 애정어린 요청과 희망


책속에서


P. 37지눌 선사상에서 믿음과 앎은 깨달음, 즉 돈오와 다르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지눌이 믿음과 앎의 해석에도 깊은 주의를 기울였던 이유를 알 수 있다. 지눌은 『신화엄경론』과 만나는 체험 후에 원돈신해문, 즉 원돈교에서의 믿음과 앎으로 들어가는 문을 상세히 밝혔다. 다시 말해서 전통적으로 선에서 강조하던 돈오를 믿음과 앎이라는 언어로... 더보기
P. 69법신불은 구체적 “상징” 또는 “나타낸 바”의 차원과 단순히 동일시할 수 없다. 법신불은, 경험적으로는 불타에게서 알려졌으되, 논리적으로는 그 불타 및 다양한 불보살들의 존재론적 근거로, 또는 다양한 불들을 정말 불이게 해 주는 원천으로 상상된 개념이다. 상상되었다고 해서 그저 허구라는 뜻은 아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 더보기
P. 151한국인은 기독교인이기 이전에 다양한 종교 사상들을 녹여 내고 있는 한국 안에서 한국인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 종교 사상들을 매개로 해서 기독교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 안에 녹아들어 가 있는 한국의 종교가 한국의 기독교를 기독교되게 해 준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한국 종교가 이미 온전히 담아 왔던 그리스도성이 기독교 안에서 자기부정적으로 고스란히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종교는 그저 기독교를 토착시켜 주는 단순한 매체나 고리가 아니라, 기독교가 말하려고 했던 것을 이미 충분히 말해 주는 한국적 매개가 된다. 물론 기독교 역시 한국 종교가 말하려고 했던 것을 이미 충분히 말해 주는 또 다른 매개가 된다. 이들 간의 차이는 도리어 서로에게 생명력을 부여해 주는 ‘절대매개’로 작용하는 것이다. 접기
P. 186(일본의 신학자) 야기는 이러한 불교와의 만남에서 인간은 성서와 십자가의 직접적 도움 없이도 본래성을 획득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아무리 죄 없는 사람(=예수)이라 해도 한 인간이 타인의 죄를 짊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략) 십자가는 본래적 실존으로 이끄는 매개이고 성서는 실존의 근저의 표현이다. 따라서 인간은 “선교의 말씀 안에서만 그리스도와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근저에서도 그분을 만난다.”고 야기는 말한다. 그러한 신념으로 야기는 실존의 근저, 통합에의 규정의 장을 제시하면서, 장의 신학을 세웠다. 모든 개체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관계하고 조화한다는 불교적 가르침을 야기는 장이라는 개념을 빌려 신학적으로 전개했다. 접기
P. 254차별적으로 존재하는 듯한 불교와 기독교의 개개 ‘형식’ 내지 ‘제도’를 벗기고그 내면으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불교와 기독교란 따로 없다. ‘너’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원천적 삶에는 종파가 따로 없는 것이다. 범아일여(梵我一如)라고 하는 원천적 사실에 종파 간, 성별 간, 지역 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미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있는 인간의 원천적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이미 깨달아 있어 부처와 하나 되어 있는 원천적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이미 천주를 모시고 있어(侍天主) 있는 그대로 하늘과 같은 존재인 인간(人乃天)의 원천적 실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찬수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일본의 사상과 문화, 동아시아의 종교와 평화 연구자.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거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일본의 철학자 니시타니 케이지와 독일의 신학자 칼 라너의 사상을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일본)코세이 가쿠린 객원교수, (일본)중앙학술연구소 객원연구원, (일본)난잔대학 객원연구원, 성공회대 대우교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일본정신』,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 교토학파와 그리스도교』, 『다르지만 조화한다』, 『평화와 평화들』, 『사회는 왜 아픈가』, 『아시아평화공동체』(편저), 『평화의 여러가지 얼굴』(공편저), 『근대 한국과 일본의 공공성 구상』(공저), 『北東アジア·市民社会·キリスト教から観た平和』(공저), 「비전(非戰), 반군국주의, 비핵화로서의 평화: 일본 평화개념사의 핵심」, 「平和はどのように成り立つのか」, 「北朝鮮の民間信仰」 등 80여 권의 단행본(공저서, 번역서 포함)과 90여 편의 논문을 출판했다.
현재 인권평화연구원 공동원장으로 일하면서 가톨릭대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메이지의 그늘>,<보훈과 교육>,<보훈, 평화로의 길> … 총 6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기독교 신학자, 목회자이면서 화엄철학과 선(禪)불교를 공부한 저자가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하며 내면에서 상통하는 종교적 본질을 밝힌 책이다. 이 책은 불교적 언어가 불자에게 주는 의미와 기독교적 언어가 기독교인에게 주는 의미의 정도가 다르지 않음을 말하면서 서로를 통해 자신에게 더 깊어지는 종교 공부와 수행을 이끌어 내고, 그리고 신앙의 거룩함을 일깨운다.

■ 출판사 서평

깨달음에서 서로를 경유하여 다시 자신에게로
이 책은 ‘세계적 차원의 종교들이 균질적인 세력을 형성하면서도 대립과 조화 사이를 오가는 기이한 종교 왕국’인 한국에서 태어난 한 신학자의 자기 고백과 그에 관한 부연이다; “나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출발했다. 나는 나 자신이 한국인임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임을 그만두지 않은 채 한 사람의 불자가 되어서 돌아왔다.” 인도의 신학자 파니카의 말을 빌려 표현한 대로 불교와 기독교가 궁극적 차원에서는 만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저자는 신학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소통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과정에서 고립되고 배척당하는 고난을 겪기도 했으나 그의 신학 역정과 신앙 모색은 멈추질 않았다.

다르지만 조화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심층
이 책은 불교와 기독교가 표면상 외형상 전혀 다른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심층에서 서로 통하는 면이 더 크고 깊다는 사실을 해명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종착점, 가령 공(空)과 하느님, 열반과 하느님 나라, 그리스도와 보살, 기도와 염불 등은 결국 동등한 체험의 깊이를 나타내며, 붓다와 예수가 말하고자 했던 세계도 결국 동등하다는 것이다. ‘다르지만 조화한다’라는 말은 “군자는 상대와 조화하면서 차이도 인정한다(君子和而不同)”는 공자의 말씀을 염두에 둔 것으로, 언어와 관념을 넘어서는 근원의 세계, 궁극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기독교가 절대유의 차원에 서 있다면, 불교는 절대무의 차원에 서 있으나, 절대는 절대로 통하는 법이다.

불교적 그리스도인, 폴 니터의 불교
저자는 두 종교 사이를 넘나들며 스스로를 완성시키는 신학자로 미국의 신학자 폴 니터(Paul F. Knitter, 1939- )를 예로 든다. 니터 또한 불교를 창조적으로 소화해낸 대표적 신학자이다. 니터는 신학자로서 불교 언어를 치열하게 소화해, 신학적 양심에 솔직하게 녹여내어 고백하는 데에 독보적인 성취를 이루었다. 저자는 태생이 기독교인이고 일급 신학자이지만, 두 종교를 단순 병렬식으로가 아니라, 하나로 녹여내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웅변적이고 체험적으로 보여준 니터를 종교다원주의 신학자이자 불교학자라고 명명한다. 그 밖에도 원불교 사상과 기독교, 쿄토학파와 기독교, 한국의 길희성과 타나베 비교 등을 통해서도 이점을 구명한다.

90점의 불교와 70점의 기독교
저자는 종교의 깊이와 넓이를 수치화해서 불교가 90%쯤 완성된 종교라면, 기독교는 70%쯤 완성된 종교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세속적 수치를 넘어서서 불교가 정말로 깊고 넓다면 ‘밖’의 것을 소화해 받아들이는 태도를 좀더 확연히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밖을 받아들이려면 관심을 갖고 공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모자라는 30%를 채우려는 기독교인의 노력 이상으로 공부를 심화하여 부족한 10%를 채워야 한다. 기독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 보면, 종국에는 딱히 ‘성인이랄 것도 따로 없는 확연무성(廓然無聖)의 진리’를 공유하며 인류 정신계를 선도할 수 있는 공동의 길에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접기

2023/04/16

이찬수 왜 교토학파인가 - 에큐메니안

왜 교토학파인가 - 에큐메니안


왜 교토학파인가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1)
이찬수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승인 2019.03.

앞으로 이어질 이찬수 교수님의 “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는 지난 2월16일 한국문화신학회ㆍ기독교통합연구소ㆍ난잔종교문화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동계학술회의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한 주신 일본 난잔종교문화연구소 김승철 소장님과 이찬수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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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학파(京都學派, Kyoto School)는 불교적 입각점 위에서 서양철학을 창조적으로 소화해냄으로써 지금까지는 없거나 미미했던 새로운 논리를 창안해냈다. 그로 인해 서양 철학자의 눈에는 가장 대표적인 동양철학 학파로 자리매김했고, 일본의 철학 수준을 세계적 차원으로, 보기에 따라서는 그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단순히 철학자들의 순수한 연구 모임으로 그친 것은 아니다. 본의든 본의 아니든, 교토학파 사상가들은 20세기 초반 일본의 군국주의 혹은 침략전쟁의 정당화에 기여했다는 비판적 평가도 받고 있을 만큼, 이들의 사상은 일본 및 동아시아 근대의 정치 지형의 변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정치적 영향에 대한 분석도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교토학파의 사상적 흐름

하지만 교토학파는 어디까지나 학자들이 이끈 철학적 ‘학파’이다. 따라서 그 학문적 넓이와 깊이에 대한 분석과 사상적 영향력에 대한 평가가 더 중요한 작업이라는 뜻이다. 교토학파의 사상적 특징부터 요약해보자.

교토학파는 서양의 존재(Being) 혹은 실체(essence/substance) 중심 논리의 한계 내지 불철저성을 비판하면서, 불교적 공(空, Emptiness) 혹은 절대무(絶對無, Absolute Nothingness)의 입장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반야심경』(般若心經, Heart Sutra)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Form is Emptiness, Emptiness is Form)에 담긴 “즉(卽)의 논리”(Logic of Soku)를 서양철학의 언어로 규명해낸 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교토학파의 개조로 일컬어지는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Nishida Kitaro, 1870-1945)는 “공(空)의 장(場)”(Field of Emptiness) 안에서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이른바 “장소적 논리(場所的 論理, Logic of Place)”를 창안했다. 이러한 니시다(西田)의 언어와 사상이 제자들에게 계승되면서 일단의 학문적 흐름이 형성되었다.

▲ 교토학파의 개조로 일컬어지는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Nishida Kitaro, 1870-1945) ⓒGetty Image


니시타니 케이지(西谷啓治, Nishitani Keiji), 타나베 하지메(田邊元, Tanabe Hajime), 히사마츠 신이치(久松眞一, Hisamatsu Shinichi) 등 후학들은 스승인 니시다(Nishida)의 사유를 계승하면서도 저마다 독특한 입장을 펼쳤다. 이들의 입장을 한 마디로 획일화시킬 수는 없지만, 각자의 사상적 특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니시타니(西谷, Nishitani)는 니시다의 철학적 틀을 이용해, 니체(F. Nietzsche)의 허무주의가 도달하지 못한 그 극단의 지점을 “공의 장”(Field of Emptiness)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세계가 허무주의적 방랑에 머물지 않고 도리어 허무를 관통해 철저하게 긍정될 수 있는 논리를 확보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선사(禪師, Zen Master)이자 학자인 히사마츠(久松眞一, Hisamatsu)는 일체의 유신론적 형태를 거부하고 자신의 깨달음 체험에 근거해 철저한 무신론을 확립하고자 했다. 그는 세상만사의 근원이라고 여겨지는 최후의 의지처를 타파함으로써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선사상-“萬法歸一歸何處”(『碧巖錄』 第45則)-의 현대적 표현이 철저한 무신론이라고 해석했다.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는 『금강경』(金剛經, Diamond Sutra)에서 따온 표현인 “즉비”(卽非, Sokuhi)의 개념을 활용해 “즉비의 논리”(Logic of Sokuhi; Logic of self-identity in self-negation)를 창안했다. 이를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대립과 차별[非]을 넘어선 절대긍정의 세계, 다시 말해 ‘즉(卽, 긍정, identity)’이 그대로 ‘비(非, 부정, negation)’인 세계를 규명하고자 했다.

이들이 대체로 선(禪의, Zen) 입장에서 서양철학을 포섭하고자 했다면, 타나베(田邊元)는 정토진종(淨土眞宗, Jodo Shinshu)의 시각을 중시했다. 그는 공(空)과 역사를 직접 동일시하기보다는, 공이라는 보편적 진리와 역사적 구체화 사이의 ‘매개’(媒介, mediation)를 통해 인간의 사회적 실천을 부각시켰다. 공이 그대로 색(空卽是色)일 수 있는 근거, 절대 진리의 세계와 구체적 현실 세계 사이의 상즉성(相卽性, inter-identity)은 인간의 자기부정적(自己否定的, self-negational) 개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매개’의 철학(philosophy of mediation)을 전개했다. 그의 입장은 제자 타케우치 요시노리(武內義範, Takeuchi Yoshinori)를 통해 계승되었다.

교토학파의 사상적 기반, 선불교

이들 간에 강조점의 차이는 다소 있지만, 전체적으로 교토학파는 불교적 입각점, 특히 공(空)의 입장에서 서양 사상을 창조적으로 수용하면서 세상과 역사의 존재 원리를 긍정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서양철학의 언어를 사용해 불교적 세계관을 살리면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철학을 시도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방식으로 서양철학 안에서 불교적 정신을 찾기도 했다.

니시타니(西谷, Nishitani)와 우에다(上田, Ueda) 등 많은 이들이 에크하르트(M. Eckhart)의 신비주의와 같은, 선(Zen)과 통할 수 있는 부정신학적(否定神學, negative theological) 흐름을 중시하고, 성서를 자주 인용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서양 사상의 근간에 있는 그리스도교 전통의 ‘배후’(背後)를 드러내면서, 그곳에서 동양 전통과의 유사성을 보되, 동양 사상의 우월성, 그리고 일본 철학의 보편성을 강조하려는 내심도 들어 있다. 서양적 정신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논리의 바닥까지 내려가 보지 못했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경향이 컸다.

그런 까닭에 이들이 종횡무진 사용하는 서양의 언어 속에서도 빛나는 것은 언제나 동양적, 불교적, 특히 선적(禪的) 정신이다. 그것도 좁혀 말하면, 일본 안에 흐르고 있는 대승불교적 정신이다. 공(空, Emptiness)의 철학을 통해 현실세계, 즉 색(色, Form)의 세계를 긍정하는 논리를 현대화시켰다는 데에 이 학파의 사상사적 의미가 지대하다.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chansuy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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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 입체적이지 못하다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 입체적이지 못하다

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2)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승인 2019.03.22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교토학파는 존재 중심의 서양적 논리가 전제하고 있는 그 최종적인 지점을 서양철학의 언어로 타파했다. 그리고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는 동양적 논리를 정립했다. 서양의 종교 및 철학자들은 교토학파 사상가들이 서양철학의 언어로 구체화시킨 동양적 논리를 통해 특히 불교철학의 심원함을 다시 보게 되었다.

교토학파의 철학은 불교의 사상적 영향을 지대하게 받아오던 한국의 일부 종교학자들에게도 한국의 사상적 전통을 계승하면서 서양적 세계관까지 통합할 수 있는 한국적 논리를 고민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가진 한국의 연구자는 아직 소수에 그칠 뿐만 아니라, 교토학파 수준의 논리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지는 못한 상태이다. 존재 중심의 서양적 사유와 존재에 매이지 않는 동양(특히 불교철학적)의 사유가 별도의 장에서 공존하고는 있지만, 공존의 ‘논리’가 충분히 성립되었거나 온전한 ‘융합’의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교토학파의 연구 분야, 종교계가 압도적

이 글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교토학파가 한국 종교 및 종교철학 관련 학계에 어느 정도 소화되고 있는지, 연구의 전망은 어떤지, 그리고 교토학파 연구와 관련하여 어떤 과제에 직면해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가늠해보고자 한다. 정치학 및 문학자 등에 의한 교토학파 관련 논문들도 일부 출판되어 있지만,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사상에 대한 연구는 종교 관련 학자들에 의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많다. 실제로 관련 단행본들은 대부분 종교 및 종교철학적 저술이나 번역서들이다. 이것은 교토학파가 기본적으로 종교 혹은 종교철학의 언어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는 신학적 배경을 지닌 연구자들의 작업이 불교적 배경을 지닌 연구자들에 의한 것보다 더 많다. 한국에서 교토학파 연구는 ‘종교간 대화’에 관심을 두던 신학자들이 먼저 시도했고, 신학적 지평을 불교적 세계관에 어울리도록 확장하면서 ‘한국적 신학’을 확립하려는 의도의 표현이기도 했다.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형식과 언어를 넘어서는 더 보편적인 언어를 추구하는 이들에 의한 모험적 시도들도 있었다.

교토학파의 난해한 언어 이해가 관건

그렇기는 하지만 교토학파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교토학파 연구는 질과 양 모두에서 여전히 초보 단계이다. 무엇보다 교토학파를 입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한국인 전문 연구자는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이다. 아직 한국인에 의한 교토학파 전반에 대한 종합적 연구는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여타의 일본 사상 연구에 비해, 교토학파에 대한 한국인의 연구 성과나 연구자들은 소수에 머물고 있다.

▲ Nishida Kitaro with staffs and students around 1913(K. Nishida, Nishida Kitaro Zensyu, Vol.14 [Tokyo: Iwanami Syoten, 1951]) ⓒhttp://www.kyoto-u.ac.jp/cutting-edge/cutting_edge/page32.html


이것은 순수한 종교철학 연구가 학계의 주류에서 더 주변으로 밀려나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교토학파 사상가들의 심층적이고 종합적이며 난해한 언어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서양의 철학적, 불교적, 신학적 이해가 종합되지 않고서는 교토학파의 논리의 심층을 이해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불교적, 신학적, 순수 철학적 연구들이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류에 편승한 실용주의적 연구가 주류를 형성해가고 있으니, 앞으로도 교토학파 전문 연구자들이 더 등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교토학파의 사상사적 의미가 종교나 철학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교토학파의 일본 및 동아시아의 정치사적 의미가 적지 않고, 전술했듯이, 한국에서도 일부 정치학 혹은 문학자들이 이 부분에 관한 연구를 내놓고 있기도 하다. 교토학파의 시대적 의미와 정치 사회적 영향력을 고찰하는 연구도 그 자체로 중요한 작업들이다.

하지만 교토학파는 기본적으로 종교 및 철학적 연구 체계로서, 이 학파의 철학 및 논리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런 영향력의 근원을 간과하는 표층적 연구에 머물 수밖에 없다. 교토학파의 종교철학적 논리와 학문적 종합성 및 정치사회적 영향력까지 두루 소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에 부족한 점

그런 척도로 본다면,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는 여전히 그 심층까지 들어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일부의 영역에 머물고 있거나 각종 연구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종교 관련 연구자조차 교토학파의 내밀하고 심오한 철학적 언어를 충분히 소화하기는 간단하지 않은 마당에, 종교 관련 연구자들이 교토학파의 일본 및 동아시아의 정치사적 의미까지 입체적으로 파악하기는 현실적으로 힘에 부치는 일이다.

일본의 정치사적 언어에 익숙한 정치학자가 대승불교의 공(空)사상을 서양철학의 존재론과 일치시키는 교토학파의 논리와 섬세한 언어를 충분히 따라가기는 더욱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 글에서 한국 내 종교 관련 연구자들에 의한 연구를 중심으로 보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종교철학자 중에서도 대체로 신학적 배경을 지닌 이들에 의한 연구가 좀 더 많다. 일부 불교학자들이 교토학파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지만, 불교학자는 교토학파의 서양철학적 혹은 신학적 언어를 충분히 소화하기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 신학자는 대승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교토학파의 엄밀한 언어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는, 연구자의 관심에 따라 단편적으로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종합적이고 심층적으로 정리한 본격적인 단행본 출판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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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안에 연재하기 시작한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 현황" 서론을 페북에 공유했더니, 이름이 좀 알려진 어떤 진보적 정치경제학자가 그 글을 공유하며 교토학파에 대해 쌩 비판을 해댔다. 천황제를 찬양한 니시다에 대한 비판은 한 마디도 안했다며(한마디 이상은 했는데...^^), 니시다를 두고서 '하이데거를 읽고 참선 흉내내는 원숭이'라며....
그 글을 재공유한 어떤 사람은 니시다를 소개하는 나까지 철학하는 원숭이라며 사람이 먼저 되라고 비난한다.^^ 흔히 자기 관심사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글의 의도나 취지와 상관없이,
자기가 조금 아는 비판적 선입견에 따라 험한 비판부터 해대는 모양새는 좀 그렇다.
괜찮은 실천적 학자라고 생각했는데 실망스럽다.
니시다의 한계를 보려면 그의 철학이나 논리부터 이해해야 하지 않겠는가...쩝...




202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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