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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2

심광섭 교수의 '초월자의 감각' - 물이 흘러 생명을 일구는 곳! - 다중지성의 광장

심광섭 교수의 '초월자의 감각' - 물이 흘러 생명을 일구는 곳! - 다중지성의 광장

심광섭 교수의 ‘초월자의 감각’ – 물이 흘러 생명을 일구는 곳!
By 장효진 ❘ 연세대 종교철학 박사
By 2월 8, 2022


그동안 학술적인 논문, 연구 저술, 설교문 등의 글을 썼다. 이런 글은 모두 그 목적이 외부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 책은 전적으로 내부에 있다. 흔들리며 꺼질 듯한 생의 터전을 붙잡기 위해서 썼다. 어둠 속에서 어둠을 견디기 위해 썼다. 나 자신을 멸망시킬 태풍처럼 일어나는 슬픔과 고통을 끌어 안기 위해 섰다. 쓰면서 생의 용기, 존재의 용기를 얻었다. “존재의 용기란 하느님이 의심의 불안 속에서 사라질 때 나타나는 하느님 안에 뿌리내리고 있다”라는 폴 틸리히의 말을 가슴에 새길 수 있었다. 불안과 절망을 이길 원천은 나에게 성경이었고 그중에서도 복음서였다.
– <초월자의 감각> 책머리 中 –

심광섭 교수의 <초월자의 감각>은 한자리에 앉아 쭉 읽어내려 갈 수 있는 성질의 책이 아니다. 심 교수의 고백처럼 이 글에 담긴 정신(Geist)은 흐르는 물길과 같아서 상류나 중류 어디쯤에 있는 우리 독자들을 지나쳐 저 밑 하류 어딘가에 있을 법한 저자 자신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물길을 어찌 단번에 잡아낼 수 있으랴! 우리 독자들을 경유하여 다시금 저자 자신으로 회귀하려는 강력한 이 글의 본성을 무슨 수로 이겨낼 수 있으랴! 우리 독자들은 그저 시간을 두고 한절 한절을 음미하며, 저자로 향하는 이 글의 힘에 우리 정신을 내맡길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이렇게 흘러 흘러 주현절을 시작하는 렘브란트의 <예수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하시다>에 시선을 고정한다. 심 교수의 안내에 따라 이 그림을 우측에서 좌측으로 대각의 방향으로 훑으면 머뭇하는 제자들과 무릎 꿇은 나병환자 사이를 그 그림의 중심에서 분절하는 예수를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그림 속에서 나병환자의 나지막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렘브란트, <나병환자를 치유하는 그리스도>, 1655-1660

옛날부터
사람이 지은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벌을 받게 했다.

그러나 나를
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내세워놓고

죄명은 문등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한하운, <벌> (p. 218)

그림 속의 예수는 오직 나병환자의 목소리를 향해 있다. 나병환자의 외침과 다르게 다수를 구성하는 제자들의 수근댐은 외면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환자의 몸이 더럽지 않으며, 그의 내면 깊고 깊은 곳은 티 없이 고요하고 맑다는 것을 아신다. 어떤 악(惡) 어떤 상처도 침범할 수 없는 자리, 하느님이 고유하게 머무는 자리를 발견하고, 거기를 살며시 일깨우고 살포시 만지신다.”(p. 221) 이어 “예수님의 감각적 터치(감촉)와 함께 나온 말씀이 나병환자를 치유하고 구원한다.”(p. 221) 이제 마지막으로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위선자야!
눈먼 인도자들아!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회칠한 무덤!
믿음이 적은 자들아! (p. 225)

나는 좌측의 절규하는 나병환자인가 우측의 숙덕대는 제자들인가! 나는 분명 나병환자와 같이 고침받아야 마땅한 사람인데, 정작 저 우편에서 나의 이웃을, 아니 어쩌면 나 자신을 향해 숙덕이고 있는 자가 아닌가! 여기서 나는 분열한다. 그런데 이때 <초월자의 감각>은 나 자신의 마음을 나 스스로 만져볼 것을 권유한다. 그 권유에 따라 시간을 두고 눈을 지긋이 감으며 내 마음을 어루만지면, <초월자의 감각>은 그 자신이 향하던 그 흐름에 따라 나의 마음마저도 저 낮은 나병환자의 편으로 내려놓는다. 그리고 바로 그 곳에서 <초월자의 감각>을 소개한 저자를 다시금 만나고 나는 안도한다. 아! 나 역시 위선자가 아닌 예수가 향하고 있는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일 수 있구나!

나병환자와 저자가 먼저 자리를 움트고 있는 이곳! 이 글의 흐름이 멈추어버린 낮고 낮은 이 곳에서는 어떤 불편한 시선도 나를 옥좨는 강박적인 무언가도 없다. 이곳에 진정 자유가 편안히 있는 것은 아닌지 싶을 정도다.

평소에 지극히도 종교에 치를 떨던 마음조차 누그러진다. 높이 자체가 없는 너무 낮기만 한 곳이기에 내 마음은 요동칠 그 어떠한 힘도 자극도 받지 않는다. 이것이 참 종교가 주는 평온함인가! 이것이 낮아진 자들만이 누리는 화평인 것인가! 이것이 구원이고 진리라고 했던 것인가! 사람들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향하는 것을 성공이요 구원이라고 칭송하지만, 이 낮은 곳에서 보니 높은 곳은 성공이자 구원이 아니라 언제 떨어질까 극도의 긴장 상태로 우리를 내모는 지옥과도 같은 곳이리라!

낮은 곳에서야 비로소 여럿이 함께 서 있을 수 있고, 아무런 긴장 없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 이 낮은 곳에서 평온을 느낄 수 있고, 이 낮은 곳에서 상호 이해가 발생한다. 이 낮은 곳에서야 비로소 내 이웃을 내 ‘몸’으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logos)이 새살을 돋게 할 수 있고, 이 낮은 곳에서야 비로소 싹이 나 생명이 움튼다. 물이 생명의 원천이라면, 결국 물이 머물러 있길 원하는 이곳, 이 낮은 곳에 우리 살과 생명의 원천이 있다.

<초월자의 감각>은 빨리 읽는 책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훈련하듯 매일 밤 읽어야 하는 스토아적 강령을 담고 있지도 않다. 이 책은 그저 언젠가 힘이 들 때, 삶의 높이가 주는 극도의 긴장감에 현기증이 날 때, 그럴 때 참답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이다. 그럴 때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참 인간 예수를 만날 수 있다.

예수가 광장의 대중들 앞에 세워졌을 때, 그리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뚜벅뚜벅 걸어갔을 때, 이윽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그 두 발을 땅에 지탱하지도 못한 채 십자가와 자신의 몸뚱이를 관통하는 피 묻은 못에 그 자신을 의지해야만 했을 때, 예수가 겪어야만 했던 십자가 위의 온갖 긴장들은 결국 저 낮고 낮은 곳으로만 향하려던 예수를 처벌한 세상과 사탄의 고유한 형벌이었던 것은 아닐까! 높고 높은 곳으로만 우리를 인도하려는 세상의 방식 그 극한으로 예수를 내몬 것은 아닐까! 빵으로 권세로 높은 곳으로 유혹했지만 현혹되지 않던 예수를 결국 강제로라도 가장 높은 곳으로 내몰았던 사건이 케리그마 사건이란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 <초월자의 감각>의 평온은 없다. 온갖 자극적인 높낮이, Potential Energy, 힘들의 경쟁만이 난무할 뿐이다! 그 모든 것을 다 이루고 난 후 예수의 정신이, 성령이 다시금 흐르는 곳은 언제나 이 낮은 곳이다.

저자가 신학적 작업들을 통해서, 그리고 <초월자의 감각>을 통해서 끊임없이 요청하고 초대하는 미감적 신학의 사유방식이 바로 이러한 종류의 것이 아닐까? 답이 필요없는 질문인 만큼 이 질문과 함께 <초월자의 감각>에 대한 서평을 마무리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렘브란트, <그리스도, 대중 앞에 서다>, 1655

[코리안아쉬람 TV토크쇼] 예술신학과 놀이신학의 만남 대담: 심광섭박사와 박재필 교수 사회: 이명권 박사 - YouTube

[코리안아쉬람 TV토크쇼] 예술신학과 놀이신학의 만남 대담: 심광섭박사와 박재필 교수 사회: 이명권 박사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QPFNSVbhADM

2013 PEDKOREA #2 초청특강 "예술신학, 예술목회" - 심광섭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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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PEDKOREA #2 초청특강 "예술신학, 예술목회" - 심광섭교수

PED KOREA
380 subscribers

888 views  Apr 6, 2014
2013.11.21~22. 효성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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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4 years ago
심광섭교수분...참.,
힘든 추문등 풀어가셨으면...

심광섭 원장, 신간 ‘초월자의 감각’ 출간 - 가스펠투데이

심광섭 원장, 신간 ‘초월자의 감각’ 출간 - 가스펠투데이



심광섭 원장, 신간 ‘초월자의 감각’ 출간

최상현 기자
승인 2022.01.06

말씀, 성화, 시, 아름다운 해설
예술 신학의 정수 드러내


예술신학자 심광섭 원장(예술목회연구원)이 신간 ‘초월자의 감각’을 출간했다.

이 책은 저자가 예술신학을 공부하며 감각적인 성경읽기를 시도한 결과물로, 교회력에 따라 성화와 함께 말씀을 묵상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대림절 기다리는 삶, 성탄절 기쁨의 삶, 주현절 모시는 삶’ 등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마다 말씀과 성화, 저자의 공감각적 해설이 어우러져 하나의 예술로서 독자에게 다가간다.

독자는 절기에 따라 천천히 말씀을 묵상하는 과정에서 성화를 감상하고, 저자가 들려주는 있는 깊이 있는 해설을 따라가며 잔잔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

손원영 교수는 추천사를 통해 “이 책을 통해 수많은 화가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미술과 문학의 대화가 돋보이는데, 저자는 성서화를 감상한 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감흥을 아름다운 시로 연결시킨다. 이 부분이 이 책의 백미”라고 소개했다.

옥성삼 박사(크로스미디어랩, 본보 편집위원)는 “저자의 미학적 신학은 가히 압권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예술 신학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며 “특히 교회력에 따른 시간 이해를 신학적이고 시적으로 제시한 부분이 탁월하다. 독자들은 그 깊고 섬세한 풍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심광섭 원장

저자 심광섭 원장은 감리교신학대학교,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베텔신학대학교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기독교 미학의 향연, 공감과 대화의 신학’외 다수가 있으며 현재 (사)한국영성예술협회 예술목회연구원 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초월자의 감각  | 교회력에 따른 감각적인 성경 읽기 1
심광섭 (지은이)예술과영성2021-12-25







기본정보
378쪽
책소개

성서와 성화를 통한 내면적 삶의 성찰에 목적이 있는 책이다. 성서를 읽되 설교를 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논문의 성서적 근거를 대기 위해 한두 구절을 인용하기 위함도 아니다. 다시 성서를 통째로 읽자. 성서 앞에 나를 세우고 그 속에서 한번 녹아보자는 심정으로 성서를 읽었다.

생의 긴장과 위협이 생길 때마다 보편적 지식과 주어진 도덕, 전례와 교리, 신앙의 관습으로써 생긴 틈과 허물을 꿰매면서 살지 않았나 싶다. 이번에는 서둘러 봉합하지 않고 아프지만, 피부 아래로 내려가 몸살을 앓더라도 내 몸과 살 속으로 스며오는 말씀을 읽고 싶었다. ‘삶을 배신하는 삶’(니체)이 아니라 태어난 삶을 보듬고 돌보고 양육하여 세우고 걸으면서 험한 세상 속에서도 체험적 생의 아름다움을 일궈내는 새로운 감각, 자기감정에 충실한 성령의 감각을 생각했다.



목차


제1부 대림절: 기다리는 삶
제2부 성탄절: 기쁨의 삶
제3부 주현절: 모시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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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심광섭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감리교신학대학 및 대학원 졸업(1985)
독일 베텔신학대학(Kirchliche Hochschule Bethel) 신학박사(1991)
(사)한국영성예술협회_예술목회연구원 원장

지은책
기독교 미학의 향연(2018)
공감과 대화의 신학 F.Schleiermacher (2015,2016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예술신학 (2011, 2011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기독교 신앙의 아름다움 (2003)
탈형이상학의 하느님. 하이데거, 바이셰델, 벨테의 신론 연구 (1998)
신학으로 가는 길 (1996)

최근작 : <초월자의 감각>,<십자가와 부활의 미학>,<기독교 미학의 향연> … 총 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내면적 성찰을 성경 읽기로

이 책의 목적은 성서와 성화를 통한 내면적 삶의 성찰에 있다. 성서를 읽되 설교를 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논문의 성서적 근거를 대기 위해 한두 구절을 인용하기 위함도 아니다. 다시 성서를 통째로 읽자. 성서 앞에 나를 세우고 그 속에서 한번 녹아보자는 심정으로 성서를 읽었다. 생의 긴장과 위협이 생길 때마다 보편적 지식과 주어진 도덕, 전례와 교리, 신앙의 관습으로써 생긴 틈과 허물을 꿰매면서 살지 않았나 싶다. 이번에는 서둘러 봉합하지 않고 아프지만, 피부 아래로 내려가 몸살을 앓더라도 내 몸과 살 속으로 스며오는 말씀을 읽고 싶었다. ‘삶을 배신하는 삶’(니체)이 아니라 태어난 삶을 보듬고 돌보고 양육하여 세우고 걸으면서 험한 세상 속에서도 체험적 생의 아름다움을 일궈내는 새로운 감각, 자기감정에 충실한 성령의 감각을 생각했다.
이 책은 세 가지로 그 특징을 말할 수 있다. 첫째, 이 책은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집이다. 그래서 각 장은 교회력과 관련된 말씀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책을 읽을 때 먼저 교회 절기에 따른 성경의 말씀을 오감을 총동원하여 천천히 읽고 묵상하면서 독서를 하면 좋을 것 같다. 둘째, 이 책은 성서화이다. 소개된 그림은 모두 본문 말씀과 관련된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수많은 화가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될 것이다. 셋째, 이 책은 미술과 문학의 대화 특히 시와의 만남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성서화를 감상한 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감흥을 아름다운 시로 연결시키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우리에게 시각의 호사를 누리다가 어느 순간 홀연히 시를 읽어주는 시인의 음성에 귀를 세우면서 교회력의 말씀 속으로 더욱 깊게 침잠해 들어가도록 만든다. 접기


















교회와신앙 모바일 사이트, “기독 신자가 했다고 기독교 예술은 아니다”

교회와신앙 모바일 사이트, “기독 신자가 했다고 기독교 예술은 아니다”

“기독 신자가 했다고 기독교 예술은 아니다”

기사승인 2010.11.25

- 문화선교연구원 학술 심포지엄 ‘미학의 시대, 기독교 미학을 말한다’




“기독교 미학은 오늘날 더 이상 진(眞)과 선(善)과 형이상학적 통일선 상에 있는 깨어지지 않는 미(美)의 이론으로 다루어질 수 없다. …형이상학적 전체성의 미학과는 달리 예수의 삶과 정신은 십자가의 고난에서 ‘추(醜)의 미학’으로 인도된다”(심광섭 교수·감신대 조직신학)

미학(美學)이란 ‘감각적 지각’에 관한 이론이다. 텍스트를 중시하는 정통기독교에서 과연 감성과 감정에 대한 담론이 가능한 일일까? 문화선교연구원(이사장 장경덕 목사, 원장 임성빈 교수)이 11월 20일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에서 개최한 ‘2010 기독교문화 학술심포지엄-미학의 시대, 기독교 미학을 말한다’는 이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였다.

이날 심포지엄은 최근 문화현상을 다루는 많은 비평과 실천들에서 ‘미학’이라는 범주가 중요한 문화해석의 키워드로 등장하고 있어 기독교문화운동에 있어서도 미학에 대한 이해, 특별히 ‘기독교 미학’에 대한 이해와 실천방안을 제시하고자 마련됐다.

심포지엄에서는 
  • 감신대 심광섭 교수가 “기독교 미학-감성을 통해 읽는 기독교 신앙”을 주제로 예술적 감성론이 미래 신학 방법론에 가능한지 살펴보고, 
  • 백석대 최태연 교수가 “기독교 예술의 존재이유-to be or to do well”를 주제로 기독교예술의 정의문제와 평가에 대한 문제를 정리했다. 
  • 또한 실천적 측면에서,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정시춘 교수가 “교회건축의 미학과 실천”이라는 주제로 예술적 가치를 지닌 목회도구로서의 교회건축이 감당해야 할 역할과 방향성을 제시하고,
  •  서울기독교영화제 프로그래머인 윤성은 박사가 “한국기독영화의 현주소와 과제-미학적 관점에서”라는 주제로 한국 기독영화의 과제에 대해 제언했다.



▲ 심광섭 교수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심광섭 교수는 “오늘날 신학과 교회가 아름다움을 찾는 신앙, 감성을 통해 표현되는 신앙을 절실하게 느끼고 요청한다”고 전제하고 “새로운 시대에 펼쳐가야 할 신앙과 신학은 ‘아름다움을 찾는 신앙, 감성(感性)을 추구하는 신앙, 광적(廣的) 감성의 신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아름다움과 신앙이 하나로 묶이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도래했음을 인식해야 하며, 이것이 기독교 신학이 걸어야 할 새로운 방법론, 곧 ‘예술적 방법론’이라는 주장이다.

심 교수는 또 
이단에 맞서 교회를 지키고 세울 필요성이 있었던 고대 교회나, 
교단의 고백을 공고히 하려고 했던 종교개혁 이후의 고백주의와 
정통주의에서 정통 교리를 강조했다면, 
정치신학이나 최근의 다양한 해방신학 운동에서는 
정통교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정통행위를 강조한다”면서 

“정통행위의 강조는 분명 오늘의 신앙과 교회로 하여금 
  • 교회의 근거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있으며, 
  • 신앙은 사회적, 생태적 실천에까지 이르러야 함을 일깨웠다”고 강조했다.



▲ 최태연 교수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최태연 교수는 “기독교 예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일은 기독교 미학의 중요한 과제”라면서 “기독교 예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기독교 예술의 내용과 범위가 달라지고 더 나아가서 기독교 예술을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 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기독교 예술의 정의 문제와 평가에 대한 문제를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프로테스탄트적 정의’와 캘빈 시어벨트(Calvin Seerveld)의 ‘기독교세계관적 정의’를 각각 소개하고, 이 두 정의를 중재할 수 있는 ‘어거스틴적 정의’에 대해 소개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은 어떤 예술작품의 작가가 크리스천인지 또는 작품의 주제가 기독교와 직접 관계된 것인지를 따지지 않는(하나님이 모든 미와 진리의 근원이므로) 방법이며, 시어벨트의 정의는 작품에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담겨 있어야만 기독교 예술로 규정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또한 어거스틴적 정의는 미국의 루터교 학자 진 에드워드 비스(Gene Edward Veith, Jr)가 제안한 방법론으로, 기독교 예술은 비기독교 예술가의 작품의 형식적 측면에서 기독교의 로고스를 찾아낼 수 있으며, 기독교 예술가의 작품에서는 그 내용과 기독교세계관의 측면을 아울러 평가할 수 있다는 방법론이다.

최 교수는 이어, 좋은 기독교 예술과 나쁜 기독교 예술을 나누는 기준을 세 개의 부정문과 한 개의 긍정문으로 요약해 의견을 제시했다. 그것은 첫째, “기독교 신자가 만들었다고 해서 기독교 예술은 아니다.” 둘째, “기독교의 주제나 내용을 다루었다고 해서 기독교 예술은 아니다.” 셋째, “예배와 선교를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기독교 예술은 아니다.” 넷째, “기독교세계관으로 인간과 세계를 해석한 예술이 기독교 예술이다.”라는 것이다.



▲ 정시춘 교수
세 번째 발제자인 정시춘 교수는 ‘최근의 한국교회 건축’에 대해 “매너리즘적 포스트 모던 형태들이 교회건축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은 교회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또 하나의 우려스러운 현상이다”면서 “이러한 교회당들의 모습은 질서와 조화의 하나님의 창조 원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건축에 나타나고 있는 포스트 모던적 현상들은 실용적 또는 미학적 원리와는 무관하게 새로운 것을 찾는 대중의 기호를 쫓아 일그러뜨리거나 변형시키고 과장하고 현혹시키는 데 급급하여 오히려 매너리즘적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모습은 교회의 본질과 의도를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 교회예술로서의 교회건축과도 구별된다는 설명이다.



▲ 윤성은 박사
마지막으로 발제한 윤성은 박사는 “한국 기독영화에 대한 국내의 학술적 논의가 부족한 현시점에서 한국 기독영화를 미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는 모모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전제하고 “한국 기독영화에서 미학의 접근법은 ‘미학을 영화에 둘 것인가-매체적 차원에서 다룰 것인가’, 아니면 ‘미학을 기독교-신학적 차원에서 다룰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박사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고취시키고, 비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갖도록 하기위해 제작되는 기독영화는 현실에 미치는 파급력이 높은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특성과 잘 부합된다”고 강조하는 한편, “한국 기독영화가 앞으로 기독영화미학의 발전을 위해 창작적 측면과 반드시 기독교 영화비평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정희 기자 gasuri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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