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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5

[빈섬 이상국의 알바시네]예수가 재림한다면 믿겠습니까, 넷플렉스 영화 '메시아' - 아주경제



[빈섬 이상국의 알바시네]예수가 재림한다면 믿겠습니까, 넷플렉스 영화 '메시아' - 아주경제


요르단에서 상영 금지 요청…무엇이 문제였나


[영화 '메시아'의 한 장면.]


'종교란 무엇인가' 묻는 영화

넷플릭스 영화 '메시아' 시즌1 10편을 본 뒤, 무엇인가 기록을 남기고 싶었으나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지금 신문(아주경제)에 연재하고 있는 '다석 류영모 시리즈'의 주제들과 메시지가 겹치면서,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것들이 복잡한 울림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20세기 벽두의 동서양 문명충돌 속에서 1800년된 기독교의 급속한 동방 전파가 이뤄졌고, 일본의 우치무라 간조와 조선의 다석 류영모, 러시아의 레프 톨스토이는 동양적인 지혜와 안목으로 기독교의 심각한 변질을 읽어냈다. 톨스토이의 통일복음서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류영모는, 우치무라의 동양적(일본적) 기독교의 실천에서 영감을 받으면서, 이 종교의 본질을 회복하면서 신성에 대한 심오한 확장을 이뤄낸다. 동양적 성찰과 예지가 서양기독교를 거듭나게 한 것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메시아(Messiah)는 구세주란 뜻으로 쓰이지만, 신약성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며 구약에서는 예지를 지닌 이스라엘왕을 뜻한다. 영화 촬영을 허락한 요르단 왕립영화위원회는 작품을 내놓기 이틀 전에 영화내용을 확인한 뒤 요르단에서의 스트리밍을 자제해줄 것을 넷플릭스에 요청했다. 종교의 신성함을 침해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 요르단의 법규를 위반할 수 있다는 설명을 붙였다.

허구의 내용이라고 밝힌 영화가 이렇듯 종교국가의 난색을 불러일으킨 것은, 영화가 내놓고 있는 질문인 '종교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 영화는 '메시아'처럼 행동하는 이란 출신의 남자 '알마시히(메흐디 데흐비 역, 알마시히는 메시아란 뜻으로 그를 따르는 대중이 붙인 별칭이다)'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긴장을 자아낸다. 그는 과연 메시아인가.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이가 있고, 부정하는 이가 있다.



[영화 '메시아'의 한 장면.]

물위를 걷는 기적, 예수를 떠올리다

영화 속의 군중들이 바라보는 관점들이 있지만, 영화 밖에서 그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관점도 있다. 영화 밖의 관객이라면, 영화 감독이나 작가의 생각을 기웃거리려 하거나 영화의 시나리오나 영화가 추구하는 의미를 짐작해보려할 것이다. 처음엔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던 알마시히가 갈수록 메시아의 심증을 높이는 건, 곳곳에서 보여준 초인적인 능력 때문이다.

우선 미사일 폭격을 앞둔 시리아에서 군중들에게 겁없이 설교를 펼치며 기적의 모래폭풍으로 전쟁을 물리치는 이적이 이뤄졌고, 군중이 모인 한복판에서 총을 맞은 아이가 되살아나는 기적이 있었고, 중동에서 미국으로 순간을 이동을 했고, 토네이도 속에서 교회 하나와 소녀를 구했으며, 사람들 앞에서 물 위를 걸어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의 이름과 행적을 알고 있었으며, 격추된 비행기 속에서도 멀쩡하게 살았을 뿐 아니라, 이미 추락사한 사람도 살려냈다.

영화는 이런 기적들을 섣불리 믿지 못하도록, 그를 추적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반론을 제기한다. 그가 마술을 터득한 사람으로 자신을 메시아로 착각하는 정신적 '장애'를 겪어온 과거가 그의 형을 통해 드러나기도 하고, 그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기적을 흉내내서 사회혼란을 꾀하려는 '신종 영성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흘린다. 그의 '테러'의 최종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높여놓기도 한다.



[프랑코 제퍼렐리 영화 '나자렛 예수'(1977).]

신은 인간에게 기적을 보여 설득할 이유가 없다?

알마시히의 기적들을 눈으로 보며, 사람들은 메시아의 재림을 확신하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 대목은, 현재의 대중이 '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예수 시대의 기독교가 어떻게 전파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톨스토이와 류영모는, 신이 '기적(초자연적인, 초인간적인 행위나 사건)'을 통해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증명하고자 했다는 것은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성서에 등장하는 기적은, 후세의 인간들이 신의 힘과 존재를 좀더 강력하게 믿고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 삽입한 '특수장치'같은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예수는 결코 기적을 행하지도 않았고, 기적으로 신앙을 끌어모으려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신은 자신의 '초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없는 존재다. 오직 인간에게 자신의 메시지인 '극기와 사랑'을 전파하기만 했으며, 그 자연스럽고 순수한 메시지로만 인간은 신을 따라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신의 뜻이었다.

신이 인간을 놀라게 하기 위해 '초능력'을 보이는 일은, 극히 인간적인 발상들이 조잡하게 '가필'된 결과라는 것이다. 류영모는 신은 '절대적 세계'의 절대적 존재이기 때문에, 상대세계에 숨쉬고 있는 인간이 동일한 '존재'로 만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허황된 것이라는 입장에 선다. 하느님은 '없이 계시는' 존재라고 그는 표현한다. 신과 인간이 만나는 것은 절대세계에 들어서는 그 순간이라고도 한다. 깨달음 또한 그 지점에서 온다고 주장한다.


'영성'을 무기로 삼는 테러리스트가 될 때 더 끔찍

영화 '메시아'는 성서에 기록된 기적들을 연상케 하는 초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대중이 오랫동안 잘못 지녀온 절대자에 대한 왜곡된 믿음들을 재현해 보여준다. 인간이 지니고 있지 않은 초능력을 가진 존재는 신이 되는가. 신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 이런 질문까지 덩달아 던진다. 기적을 보여준 존재라도 인간을 궁극적으로 구원하는 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또다른 확인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적을 행하는 존재라 할지라도 영화가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영성'을 무기로 한 더 끔찍한 테러리스트가 될 수도 있다.

알마시히는 예수의 풍자인가 조롱인가 재림인가. 영화 속의, '믿음에 대한 혼란'들은 이 수상하고 대단한 남자가 신인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알마시히의 능력이 눈속임이나 가짜여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 메시아가 '예수'가 보여준 '사랑'의 기적을 품고 왔느냐, 그 사랑의 힘으로 영성의 파탄지경에 이른 인간들을 다시 일으켜 새로운 믿음으로 거듭 나게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그가 전직 사기꾼으로 밝혀졌다 하더라도, 그 내면에 성서의 산상수훈에서 말했던 신의 메시지들이 흘러나온다면 그는 메시아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

(알마시히가 진짜 예수로 재림할 수 있는)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박홍규 옮김, 2016. 들녘출판사) 고 말한 이는 톨스토이다. 그가 가장 이 영화의 본질과 결말을 잘 알고 있는 사상가인지 모른다.

이상국 논설실장

알라딘: [전자책]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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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가 아닌 새로운 생활의 이해다  epub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은이),박홍규 (옮긴이)들녘2016-06-24

종이책
16,000원 14,400원 (마일리지800원)
전자책정가
11,200원


기본정보
제공 파일 : ePub(6.55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504쪽, 약 37.8만자, 약 9.5만 단어
ISBN : 979115925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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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톨스토이가 1891년 63세에 쓰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893년에 집필을 종료했으나 바로 검열에 걸려 러시아에서는 출판되지 못하고 1년 뒤인 1894년 독일과 영국에서 출판된 저작이다. “권력과 억압, 강제를 거부하고, 신의 계율인 사랑과 평화, 자유를 받아들여 개인의 인식을 바꾸고 생활을 바꾸어야만 인민 각자가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고, 특히 간디의 생활을 바꾼 것으로 유명하다.

톨스토이는 세 가지 인생관―개인적인(동물적) 인생관, 사회적인(이교도적) 인생관, 신적인(영성적) 인생관―에 따른 인류의 발달 과정과 각 차원에 수반되었던 모순들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하면 ‘신의 나라’라고 일컫는 고차원적인 삶에 이를 수 있는지 그 길을 안내한다.

권력의 악행을 비판하는 무저항 사상 소개를 시작으로 기독교 내부와 학자들에게 만연한 그리스도 가르침의 오해, 전쟁이나 병역의무 같은 국가 권력에 대한 복종 및 불복종, 그 결과로 인민들이 당면하게 되는 생활과 양심 사이의 문제 등을 거쳐 진정한 해방은 외부적 조건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더불어 인생관의 변화 아래에서만 가능함을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그리고 아름답고 풍성한 은유와 함께 보여준다.

톨스토이는 ‘신의 나라’가 ‘네 안에 있다’고 말한다. 천국이나 천당이 있다면 그것은 곧 나의 실천, 나의 생활, 나의 삶 속에 있는 것으로, 이는 우리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도무지 접근 불가능하다는 뜻이다.‘기독교는 신비의 종교가 아닌 새로운 생활의 이해’라는 부제와 함께 생각할 때 한층 명확해진다.
목차
옮긴이 해제
머리말

제1장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의 사상사
퀘이커파의 무저항 사상 | 게리슨의 무저항 사상 | 발루의 무저항 사상 | 발루의 무저항 교리 문답 | 헬치츠키의 무저항 사상 | 디몬드의 무저항 사상 | 무서의 무저항 사상 | 러시아의 양심적 병역 거부

제2장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에 관한 비판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종교적 비판의 무책임성 | 진실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성직자와 당국의 잘못된 태도 | 여러 비판의 공통된 문제점 | 러시아 자유사상가들의 비판 | 외국인 자유사상가들의 비판 | 자유사상가들이 오해한 그리스도의 가르침

제3장 기독교도의 기독교 오해
대다수가 오해한 기독교 교리 | 그리스도 최초의 가르침 | 교회에 의한 기독교의 신비화 | 그리스도가 교회를 세웠을 리 없다 | 교리 문답에 따른 교회의 정의 | 교회는 언제나 여럿이고 서로 적대적이다 | 이단이란 무엇인가? | 이단에 관한 아놀드의 견해 | 교회들은 인민을 분열시키고 기독교에 적대적이다 | 러시아 교회가 하는 일 | 산상수훈인가, 사도신경인가 | 러시아 정교회는 기독교의 진정한 의미를 숨긴다 | 다른 나라 교회도 마찬가지다 | 교회 교리를 파괴하는 현대 생활의 외부 조건 | 교회의 최면술과 기만술

제4장 학자들의 기독교 오해
종교란 무엇인가? | 세 가지 인생관 | 기독교적 인생관에 대한 학자들의 오해 | 기독교의 무저항 교리에 대한 학자들의 오해 | 학자들이 주장하는 사회적 인생관과 신적 인생관의 차이 | 학자들의 첫째 오해_실천 불가능성 | 산상수훈의 다섯 가지 계율 | 학자들의 둘째 오해_신에 대한 봉사를 인류에 대한 봉사로 대체 | 인류란 무엇인가?

제5장 생활과 양심의 모순
생활을 바꾸어야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있다 | 기독교적 인생관은 생활의 진행에 의해 필연적으로 선택된다 | 빈부 갈등의 경제적 모순 | 정치적 모순은 더욱 심각하다 | 국제적 모순과 동시대인에 의한 인식_코마로프스키, 페리, 부스 | 국제적 모순과 동시대인에 의한 그 인식_파시, 로슨, 윌슨, 바틀렛, 디푸르니, 모네타

제6장 전쟁 비판
생활과 양심의 모순 | 평화회의 | 맥심 드 캄프의 주장 | 중재 법정의 가치와 군대의 감축 | 모파상의 전쟁관 | 로드의 전쟁관 | 두스의 전쟁관 | 클라레티의 전쟁관 | 졸라의 전쟁관 | 드 보그의 전쟁관

제7장 병역의무의 문제
병역의무는 사회적 인생관에 내재된 모순의 극치다 | 권력의 기초는 신체적 폭력이다 | 권력은 폭력을 수행하기 위해 특별한 기구를 필요로 한다 | 노동자 대중에 대한 권력의 태도 | 카프리비의 연설 | 군대는 지배 계급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 | 병역의무는 국가가 보존해야 하는 사회생활의 이로움을 파괴한다 | 국가는 과연 필요한가? | 국가에 대한 불복종과 복종의 비교

제8장 무저항 수용의 필연성
기독교는 새로운 인생관으로 소수에 의해 인정되었다 | 무저항 수용의 필요성에 대한 예언 | 분쟁을 조정하는 두 가지 방법 | 예수의 가르침_권력의 악행에 대한 저항 금지 | 폭력을 사용하는 네 가지 방법_협박, 매수, 최면, 군사적 강압 | 국가 폭력은 폭력적 국가 전복으로 억제될 수 없다 | 권력의 악행에 대한 저항과 무저항의 문제 | 구원의 시기와 방법 | 이교적 인생관의 사회는 반드시 사라진다 | 현대 모순의 극치인 징병제 | 이교적 생활은 극한에 도달해 전멸할 것이다

제9장 기독교적 인생관의 수용이 유일한 해방
기독교인의 외부적 생활은 아직도 이교적이다 | 인간은 오직 기독교를 통해서만 권력으로부터 해방된다 | 해방은 생활의 외부적 조건이 아니라 인생관이 변할 때 가능하다 | 국가에 의한 물질적 상태의 변화라는 구원 추구는 잘못된 것이다 | 인민은 스스로를 노예로 만든다 | 인민의 자유는 오로지 개인의 자유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 러시아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 다른 나라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 충성 선서, 세금 납부, 통행권, 경찰의무, 병역의무에 관한 러시아인들의 불복종

제10장 국가는 필요 없다
국가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 | 기독교인의 국가 불필요론 | 보수주의자의 국가 옹호론 | 가장 악한 자는 권력자다 | 권력자의 변명 | 폭력은 기독교에 의해 감소된다 | 외부적 방법에 의한 진리 인식 | 여론과 폭력 | 소위 야만인에 대한 기독교의 영향 | 범죄자에 대한 기독교의 영향 |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제11장 기독교적 인생관이 폭력을 끝낸다
폭력은 여론으로써 파괴될 수 있다 | 상류 계급의 변화 | 폭력 기관의 변화 | 폭력적 국가 기관을 두어야 하는가? | '벌거숭이 임금님'의 이야기 | 구원은 인민 자신에게 달려 있다

제12장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폭력에 기초한 특권 | 군대 | 권력의 노예에서 탈출하라 | 과학적 개선 방법의 문제점 | 참된 자유 | 반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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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사람은 혼자서 살인을 하지 않는다. 그가 같은 인간을 죽인다면 그는 살인자다. 만일 2명, 10명, 100명이 그렇게 한다면 그들 역시 살인자들이다. 그러나 국가나 국민이, 그들이 좋아하는 만큼을 죽인다면 그것은 살인이 아니라 위대하고 고귀한 행위가 된다. 사람들을 대규모로 함께 모은다면 수만 명의 학살은 무죄의 행위가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정확히 몇 명의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다. 혼자서는 약탈하거나 강탈할 수 없으나 전 국민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려면 정확히 몇 명이 필요한가? 왜 1명, 10명, 100명으로는 신의 율법을 깨어서는 안 되는데, 엄청나게 많은 수의 국민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_1장 <발루의 무저항 사상> 중에서  접기
어린이의 의식이 가장 먼저 일깨워질 때부터 교회는 그를 속인다. 그들 스스로도 믿지 않는 것을 최고의 엄숙함으로 포장하여 어린이들에게 주입시키고, 이것이 어린이의 본성 안에 습관으로 고착될 때까지 계속해서 주입하고 또 주입한다. 즉 그들은 매우 교묘하게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에 대하여 어린이를 기만하고, 그 기만이 어린이와 함께 자라게 하여 그것을 뿌리 뽑기조차 어렵게 만든다. 물론 그런 다음 그들에게 전체 세상의 학문과 현실을 보여주지만, 이것은 결코 어린 시절 이미 주입된 믿음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교회는 이제 인민들 각자가 이러한 모순으로부터 최선을 다해 자기 길을 찾아가도록 책임을 돌려버린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려면, 특히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주입한 두 가지 반대되는 이론 때문에 영혼이 혼미하여 명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생각 자체를 할 수 없게 만들려면,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 사회에서 교육받도록 권유하면 된다. 아마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_3장 <교회의 최면술과 기만술> 중에서  접기
그러나 인간의 삶은 우리 안에 있는 동물적 존재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신의 뜻에 오롯이 부합한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다. 인간의 삶은 동물적 삶과 신적인(또는 영성적인) 삶의 합성이다. 이러한 합성이 신적인(또는 영성적인) 삶에 접근하면 할수록 인간의 삶은 더더욱 신적인(또는 영성적인) 삶 속에서 더욱더 커지게 된다. 기독교에 의한 삶은 신적인(또는 영성적인) 완성으로의 꾸준한 전진이다. 따라서 어떤 상태가 다른 것보다 높거나 낮을 수 없다. 이 모든 각각의 상태는 도달할 수 없는 완성을 향한 길 위에 있는 특정한 단계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자체로서 위대하다거나 초라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우리가 신적인(또는 영성적인) 생활의 완성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는 길만이 삶의 향상을 가져올 따름이다. 그러므로 세리 삭개오나 간통녀,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렸던 강도가 완성을 향해 떼었던 그 발걸음들은 바리새인의 정체된 정의보다 더 높은 정도의 생활임을 암시해준다. 따라서 이 종교에는 반드시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계율이 없다. 낮은 단계에 있더라도 완성을 향하여 계속 움직이는 사람은 완성을 향해 계속 움직이지 않는 비록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갖춘 사람이라 해도 사람보다 더욱 도덕적이며, 더욱 나은 삶을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더욱 많이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양이 잃어버리지 않은 양보다 아버지에게 더욱 소중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나 잃어버린 몇 푼을 다시 찾은 이야기 등도 마찬가지다._4장 <학자들의 첫째 오해_실천 불가능성> 중에서  접기
압제자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비록 스스로는 원한다 할지라도 압제자들은 압제를 끝낼 수 없다. 그들이 압제의 강도를 늦추는 그 순간에 바로 그들 스스로가 멸망하리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노동 계급의 복지, 8시간 노동제, 연소자와 여성의 노동, 저축은행과 연금에 대해 배려해주는 척하면서 한편으로 압제를 늦추지 않는다. 이 모든 기만은 그저 사탕발림이거나, 노예들이 그들의 일을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도록 제자리에 잘 묶어두려는 제스처일 뿐이다. 그러나 노예는 여전히 노예이고, 노예 없이 살 수 없는 주인은 이전보다 더욱 단단하게 그를 얽매고자 한다. 노예를 자유롭게 풀어줄 마음을 가진 주인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동자에 대한 지배 계급의 태도는 적을 땅에 넘어뜨린 뒤 꽉 붙잡고 있는 사람의 태도와 같다. 그러나 이는 그에게 적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 1초라도 적에게 자유를 허용할 경우, 손에 칼을 든 채 성이 잔뜩 난 적이 자신을 찔러 죽일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_5장 <빈부 갈등의 경제적 모순> 중에서  접기
애국적 미신은, 인민으로부터 거두어들인 돈으로 국경일 행사라든지 구경거리, 기념물 제작이나 축제 등 행사들을 벌여 인민이 자신의 국가와 통치자들의 권위를 느끼고 이에 중요성을 부여하도록, 그리고 자기 국가를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자국과 그 통치자들이 위대하다고 인식시키며, 다른 국가에 대해 반목하고 증오심을 느끼도록 유도하고 장려하는 제반 행동에 있다.
이런 목적을 가진 독재 국가에서는 인민을 계몽하는 책을 인쇄하거나 배포하거나 연설하는 것을 금지하게 마련이다. 인민을 무감각으로부터 깨우려는 사람은 누구든 추방되거나 투옥된다. 어디 그 뿐인가? 모든 국가에서 예외 없이 인민을 해방하여 자유롭게 만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억제되고, 인민을 부패하게 만드는 것은 도리어 장려된다. 가령 종교적 및 애국적 미신 같은 야만주의에 그들을 묶어두는 것은 문학 작품, 모든 종류의 감각적 오락, 구경거리, 서커스, 극장, 그리고 심지어 중독을 초래하는 담배나 술 같은 육체적 수단 같은 것인데, 이것들은 대개 국가의 주된 수입원이다. 심지어 매춘도 인정되고 장려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가 앞장서 조직하기도 한다._8장 <폭력을 사용하는 네 가지 방법_협박, 매수, 최면, 군사적 강압>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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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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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남러시아 툴라 지방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가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 밑에서 성장했다. 1844년 카잔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교육에 실망하여 삼 년 만에 자퇴하고 귀향했다. 고향에서 새로운 농업경영과 농민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1851년 큰형이 있는 캅카스로 가 군대에 들어갔다. 1852년 「유년 시절」을 발표하고, 네크라소프의 추천으로 잡지 『동시대인』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농업경영과 교육활동에도 매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잡지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대작을 집필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얻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뒷부분을 집필하던 1870년대 후반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는다. 이후 원시 기독교에 복귀하여 러시아 정교회와 사유재산제도에 비판을 가하며 종교적 인도주의, 이른바 ‘톨스토이즘’을 일으켰다. 직접 농사를 짓고 금주와 금연 등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빈민구제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1899년에 발표한 『부활』에서 러시아정교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1901년 종무원으로부터 파문당했다. 1910년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부인과 불화가 심해지자 집을 나와 방랑길에 나섰으나 폐렴에 걸려 아스타포보 역(현재 톨스토이 역)에서 82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접기
최근작 : <인생이란 무엇인가 3>,<예술은 무엇인가>,<안나 까레니나 3-2 (큰글자도서)> … 총 1195종 (모두보기)
박홍규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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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학교, 노팅엄대학교, 프랑크푸르트대학교에서 연구하고, 오사카대학교, 고베대학교, 리츠메이칸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영남대학교에서 1991년부터 2018년까지 노동법 등을 가르쳤고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법은 무죄인가』로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주요 저서로『내 친구 빈센트』,『자유인 루쉰』,『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조지 오웰』,『아나키즘 이야기』,『자유란 무엇인가』,『철망 속에서도 희망을』,『함석헌과 간디』, 『몬테베리타... 더보기
최근작 :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놈 촘스키>,<존 스튜어트 밀> … 총 207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러시아 교단은 이 책을 읽고 톨스토이를 파문했고,
마하트마 간디는 이 책을 읽고 비폭력운동을 시작했다!
모든 권력과 억압, 강제를 거부하고, 우리의 의식 앞에 소환된 사랑과 평화, 자유의 계율을 받아들이라고 권면하는 사상가 톨스토이의 명저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국내 최초 완역판!
이 책은 톨스토이가 1891년 63세에 쓰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893년에 집필을 종료했으나 바로 검열에 걸려 러시아에서는 출판되지 못하고 1년 뒤인 1894년 독일과 영국에서 출판된 저작이다. 사실 톨스토이가 1880년대 집필했던 저서 가운데 대다수는 그의 조국 러시아에서 출간 금지를 당했다. 그 바람에 그는 러시아보다 유럽에서 먼저 유명세를 타게 되었는데, 그중 특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이다. “권력과 억압, 강제를 거부하고, 신의 계율인 사랑과 평화, 자유를 받아들여 개인의 인식을 바꾸고 생활을 바꾸어야만 인민 각자가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고, 특히 간디의 생활을 바꾼 것으로 유명하다. 간디는 1894년 막 영국에서 출판된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남아프리카에서 읽은 뒤 비폭력운동을 시작했고, 그것은 곧 20세기의 마틴 루서 킹을 비롯한 많은 비폭력운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이후로도 종교인은 물론 다양한 위치에서 활동하는 여러 사람들에게 국가와 종교, 진리와 자유, 평등과 평화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 책에서 톨스토이는 세 가지 인생관―개인적인(동물적) 인생관, 사회적인(이교도적) 인생관, 신적인(영성적) 인생관―에 따른 인류의 발달 과정과 각 차원에 수반되었던 모순들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하면 ‘신의 나라’라고 일컫는 고차원적인 삶에 이를 수 있는지 그 길을 안내한다. 권력의 악행을 비판하는 무저항 사상 소개를 시작으로 기독교 내부와 학자들에게 만연한 그리스도 가르침의 오해, 전쟁이나 병역의무 같은 국가 권력에 대한 복종 및 불복종, 그 결과로 인민들이 당면하게 되는 생활과 양심 사이의 문제 등을 거쳐 진정한 해방은 외부적 조건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더불어 인생관의 변화 아래에서만 가능함을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그리고 매우 아름답고 풍성한 은유와 함께 보여준다. 이 책의 1장은 비폭력에 관한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고, 2장은 러시아 정교회의 기독교 복음에 대한 해석에 대한 반론이다. 3장은 기독교에 대한 기독교도의 오해를 비판한 것이며, 4장은 학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비판한 것이다. 5장에서는 생활과 양심의 모순에 대해 말한 뒤, 6장과 7장에서는 각각 전쟁과 병역의무를 비판한다. 그리고 8장에서는 무저항 수용의 필연성, 9장에서는 기독교적 인생관의 수용이 해방의 길임을 강조한다. 이어 10장에서는 국가를 거부하고, 11장에서는 폭력을 끝내기 위해 기독교적 인생관을 다시 강조한다. 마지막 결론인 12장에서는 앞의 여러 장을 요약하며 그 요지를 반복하고 있다. 톨스토이의 사상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을 위한 옮긴이의 친절하고 명쾌한 해제, 당대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게 해주는 관련 이미지들은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줄 것이다. 국내 인문학자들 가운데 톨스토이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가장 뛰어난 영남대 박홍규 교수는 ‘고전 중의 고전’인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상황을 애통해하던 끝에 2016년 5월 이를 국내 최초로 완역하여 소개하게 되었고, 이어서 톨스토이가 경제 불평등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번역·출간할 예정이다.

사상가 톨스토이의 진수를 만나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세상사 전반에 관한 톨스토이의 사상을 집약한 책인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를 국내 최초로 완역한 것이다. 톨스토이는 우리나라에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굵직한 작품을 쓴 ‘세계문학전집’용 작가로, 혹은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등의 짧고 교훈적인 소설을 쓴 계몽적인 작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읽을 게 별로 없는,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톨스토이”라는 기형적 이미지와 함께. 하지만 톨스토이는 대중이 곧잘 오해하는 것처럼 ‘앞뒤가 꽉 막힌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다. 박제된 도덕과 계몽을 강조하는 ‘꼰대’도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귀족 신분이라는 현실과 자신의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던 인간적이고 소박한 인물이며, 자연에 반하는 인위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인간 각자의 개성을 찾아가는 진정한 교육에 헌신했던 인류의 교사였다. 따라서 톨스토이의 진면목은 소설이 아니라 그가 쓴 일련의 저작에서 더욱 명징하게 드러난다. 이를 테면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비롯하여 <교의 신학 비판>,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전쟁을 끝낼 것인가> 등의 저작들이 바로 그 예이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종교서일까?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라는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종교서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책은 무조건 기독교를 찬양하는 흔한 종교서가 아니다. 오히려 국가 권력과 결탁한 부패한 기독교, 특히 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제멋대로 왜곡하여 이를 널리 퍼트림으로써 군대로 상징되는 국가 권력을 어떻게 옹호하는지, 그리스도 가르침의 정수인 사랑과 용서, 평화와 평등, 폭력 거부와 무저항 등의 진리를 어떻게 변색시켰는지 보여주는 가장 반(反)기독교적인 책이다. 19세기 말 러시아 정교에서 톨스토이를 파문시킨 것도 이해 가능한 일이다. 톨스토이가 이 책에서 예수의 가르침에 따르면 가능해진다고 하는 ‘새로운 생활’이란 곧 비폭력 무저항, 반(反)권력의 자유와 평등 및 평화의 삶을 말한다. 그것은 모든 폭력 특히 전쟁을 거부하는 삶이며, 군대에 가거나 무기를 드는 것조차 거부하는 삶이고, 국가기구와 관련된 모든 법제와 억압을 거부하는 삶이다. 그러므로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톨스토이가 당대 러시아의 국가 종교였던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국가의 무용성과 아나키즘을 강조한 책인 동시에 그가 개인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었던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를 잇는 사회적 확대판이자 학문·예술·사회·문화·경제 등 세상사 전반에 걸친 톨스토이 사상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는 저작이라 할 수 있다.

신의 나라는 개인의 삶이 변할 때 비로소 열린다
톨스토이는 ‘신의 나라’가 ‘네 안에 있다’고 말한다. 천국이나 천당이 있다면 그것은 곧 나의 실천, 나의 생활, 나의 삶 속에 있는 것으로, 이는 우리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도무지 접근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즉 기독교를 아무리 열심히 믿는다 해도 각자의 삶이 그대로라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삶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은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가 아닌 새로운 생활의 이해’라는 부제와 함께 생각할 때 한층 명확해진다. 핵심 내용인 ‘권력에 대한 비폭력 저항’의 문제 역시 신의 존재나 하늘나라의 유무와 관계없이 “새로운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와 연결되는 탓이다. 톨스토이는 위선과 억압으로 자신과 세상을 더럽히지 말고, 그리스도의 본래 가르침에 따라 각 개인이 사랑과 평화·평등의 관계를 유지하며, 병역의무나 전쟁·사형과 같은 국가 권력에 봉사하지 말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탐욕에서 벗어나야만 ‘새로운 생활’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점은 그가 ‘산상수훈’과 ‘사도신경’ 간의 모순을 지적하는 일련의 기독교적 논의에 대한 비판, 날아가고자 애쓰는 벌 떼의 비유, 그리고 무력하게 징병당한 러시아 민중의 예 등에서 가감 없이 드러난다. 현대인이 겪는 다양한 차원의 모순과 갈등의 단초를 분석하고, 역사상의 실책과 오류 비판을 통해 더 나은 삶 즉, ‘신의 나라’로 일컬어지는 이상적인 사회를 제안했던 톨스토이의 ‘고전 중의 고전’을 만나보자.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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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새창으로 보기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으로 <전쟁과 평화,부활,안나카레리나 가 있다. 톨스토이의 작품들은 대체로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한 채 많은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었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읽혀왔다 하지만 <신의 나라는 내 안에 있다> 이 책은 최근에서야 처음 들어본 책이다. 톨스토이가 세상을 떠난지 10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이 책이 등장하였고 소개되었는지 궁금하였다. 그리고 기존의 톨스토이의 작품보다 더 위험하고 더 사회적이면서 우리 사회에 큰 파급효과를 주는 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종교적인 색을 보여주는 책..제목만 본다면 기독교적인 느낌을 얻게 된다.그렇지만 이 책은 종교적이면서 종교적이지 않다.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현재 우리의 사회 시스템은 기독교과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 들이지 못하면서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특히 기독교와 가톨릭에 있어서 교회에 대한 의미와 교회가 있음으로서 우리는 세상에 권위를 부여하고 그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성경의 말씀을 왜곡해 왔다.


한편톨스토이는 전쟁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으며, 국가의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여기에 사형제 폐지,병역의무에 대해 거부할 권리를 국민이 기본 권리에 추가하고 있었다. 종교가 만들어지고 종교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가운데 자본주의 사회로 바뀜으로서 국가는 기독교의 교리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왜곡하였으며, 국민을 통제하고 다스리는데 악용하고 있는 것에 비판하고 있다. 국가가 존재함으로서 국가지상주의,권력지상주의,독재지상주의,자본지상주의가 생겨났으며, 전쟁은 불가피해졌다. 수천년간 수많은 전쟁의 중심에는 종교가 있으며, 지금 테러가 자행되고 잇는 그 가운데에 있는 IS 또한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에서 서방세계가 개입됨으로서 발생하는 것이다.여기서 사람 사이의 갈등을 임의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기독교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왜곡시킨다.



톨스토이는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으며, 국가가 존재하고 종교가 존재함으로서 전쟁이 발생하였으며, 모든 가치를 국가를 중심으로 연결지음으로서 국민들을 탄압하는 구실이 되어왔음을 비판하고 있다.여기에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 책은 러시아에서 금서로 묶이게 된다. 한편 이 책은 이후 간디와 마틴루서킹의 비폭력,비저항 운동으로 연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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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6-07-19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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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 톨스토이 새창으로 보기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톨스토이의 작품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이라면 읽어봤을 만큼. 문학에 있어서 톨스토이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사상가이기도 하다. 톨스토이를 '인류의 교사'라 부를만큼 실제로 가난한 농노들의 자제를 위해 학교를 세우기도 하고, 러시아 문학의 주류와 문명 중심 사상을 끊임없이 비판하기도 하였다. 하여 톨스토이의 사상과 작품은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현재까지도 주고 있다.



지금까지 문학 작품으로만 보아왔던 톨스토이의 세계를 이번에는 전혀 다른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

지극히 기독교적인 느낌이 난다.

톨스토이가 기독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문학 작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라고 말하였지만, 다르다기보단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바탕을 이루는 사상을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먼저 나는 '악에 대한 무저항'이라는 문제의 역사에 대해 내가 얻은 정보를 말하겠다. 이어 종교계, 즉 기독교를 믿는다고 공헌하는 사람들이 지지하는 견해, 그리고 보통사람들, 즉 기독교를 믿는다고 공언하지 않는 사람들이 갖는 견해에 대해 말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의 역사적 사건들에 비추어 이 보든 것에 의하여 내가 이르게 된 결론을 말하겠다. p 29



톨스토이가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쓰게 된 이유를 밝힌다.

1884년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였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많은 기독교 교회의 교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의 결여'라고 지적하고 바로 이 부분에서 교회 교리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왜곡하였다고 하였고, 이에 대한 많은 비판들에 대해 새로운 결과와 결론을 드러내고자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의 부제는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가 아닌 새로운 생활의 이해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삶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총 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 1장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의 사상사에서는 퀘이커파, 게리슨등의 무정한 사상사에 대해 들려주고 러시아의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서 말한다.

제 2장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에 관한 비판으로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종교적 비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러시아 정교회의 기독교 복음에 대한 해석에 대한 반론을 볼 수 있다.

제 3장 '기독교의 기독교 오해'에서는 대다수가 오해한 기독교 교리와 그리스도의 최초의 가르침, 이단, 러시아 교회가 하는 일, 교회의 최면술과 기만술에 대해 말한다. 3장에서의 소제목들만 보더라도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기독교들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복음의 진정한 의미는 이처럼 믿는 사람에게는 교회에 의해,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학문에 의해 숨겨져 있다. p 99



제 4장 학자들의 기독교 오해에서는 종교란 무엇인지, 기독교적 인생관에 대한 학자들의 오해와 기독교의 무저항 교리에 대한 오해등에 대해 말한다.

학자들의 오해 두 가지.

첫째 오해, '실천 불가능성'. 이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실천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의무적인 것이 아니고 반드시 우리 사회 안에서 실천 가능한 한계에 맞게 변형되고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둘째 오해 ' 신에 대한 봉사를 인류에 대한 봉사로 대체'. 이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모호하고 신비스러우며 막연한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그들은 신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의무를 배제하려 하는 것이며, 이는 인간과 인류를 위한 사랑의 교리가 훨씬 더 명료하고 설득력이 있으며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제 5장 '생활과 양심의 모순'에서는 빈부갈등의 경제적 모순과 정치적 모순등에 대해 말한다.

제 6장과 제 7장에서는 전쟁과 병역의무를 비판한다.

제 8장에서는 무버항 수용의 필연성을, 제 9장에서는 기독교적 인생관의 수용이 유일한 해방임을 . 제 10장에서는 국가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제 11장에서는 기독교적 인생관이 폭력을 끝낼 수 있음을 말하고, 제 12장에서는 앞의 여러 장을 요약하고 요지를 반복하여 주는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로 이 책의 결론을 내리게 된다.



참된 의미의 기독교는 국가를 파괴한다. 기독교의 시초부터 그렇게 인식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국가라는 것을 굳이 인정할 필요가 없었던 기독교인들이 언제나 깨달은 내용이었다. 다만 여러 국가의 수뇌들이 명목상의 형식적인 기독교를 택하면서부터 기독교가 국가와 공존할 수 있다는 불가능한 이론을 교활하게 고안하기 시작했을 따름이다. p 336



국가의 기반을 다지는데 기독교가 이용되었다. 아니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든 힌두교든 종교들이 권력을 갖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용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권력을 사용하여야 하고, 권력을 유지하여야 하고, 국가를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기독교를 이용하여 잘못된 기독교 교리와 예수님의 가르침이 왜곡되어 국민들에게 인식시켰다는 것이다.



당신이 어느 순간에라도 그분의 뜻에 따라 돌아가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영원 뒤에 무의식으로 숨어 있는 그분의 뜻에 따라 불려나온 피조물로서, 존재로서의 영원한 당신의 진정한 지위에 대해 생각해보라. 당신의 의무에 대해 생각해보라. 당신의 토지에 대한 지주로서의 의무, 당신의 사업에 대한 상인으로서의 의무, 황제, 장관, 또는 관리의 국가에 대해 가상의 의무로서가 아니라, 당신의 진정한 의무, 이 세상에 부름받고 이성과 사상을 부여받은 존재로서의 진정한 지위에 따르는 의무를 생각해보라. p 491



톨스토이는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에서 권력을 거부한다. 전쟁을 거부한다. 국가를 거부한다.

이 모든 것이 신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런 이유로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정작 톨스토이의 나라인 러시아에서는 출판되지 못했었다고 한다.

'비폭력 무저항'을 말하고 있는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간디에게 영향을 끼쳤고 하여 '비폭력 민족해방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기독교에 관한 책이지만 더 넓게는 세계의 인류를 위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 갔다는 논리가 아닌, 기독교 교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닌..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복음의 진리를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권력자들의 이익에 맞게 왜곡되어졌는지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행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하나님의  진리와 얼마나 모순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게 해준다.



100년 전에 쓰여진 톨스토이의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이지만 지극히 현실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책이 아닌가 싶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깨닫게 해주고, 기독교인들의 실상과 권력과 기독교, 국가와 기독교에 대한 관계와 모순등에 대해서도 알게 해준다.

간디에게 영향을 준 것처럼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가 많은 이들에게 좋은 깨달음을 줄 것이라 기대한다.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리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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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소망 2016-07-1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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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금지된 사상, 마침내 소개되다 새창으로 보기
이 책은 톨스토이가 63세 되던 해인 1891년에 집필을 시작했다. 2년후 완성된 원고는 검열로 인해 러시아에서 출판되지 못하다가 1894년에 독일과 영국에서 출판되었다. 간디는 이 책의 영어판 출간 직후 읽고, 남아공에서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시작했다. 간디의 운동은 마틴 루터 킹에게 영감을 주었고, 실천적 모델이 되었다. 그 전설 속의 책이 100년도 넘는 시간이 지나서 새롭게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이 책은 톨스토이의 신학과 실천적 관심을 치열하게 논증하는 내용이다. 산상수훈의 원리에 근거한 기독교는 과연 폭력을 용인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전쟁과 폭력에 관한 비폭력 평화주의가 기독교적 원리이자 대안이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군대와 국가의 존재가 기독교 신앙과 어떻게 양립 가능한가? 이런 질문을 놓고 톨스토이는 동시대 신학자와 사상가들과 논쟁하고, 역사와 문헌을 뒤져 자신의 논지를 입증한다. 100년 전에 이토록 방대한 지적 네트워크를 가동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이 책의 번역자 박홍규 교수는 톨스토이를 ‘아나키스트‘의 반열에 놓고 접근한다. 그러나 톨스토이가 다루는 주요한 관심사는 ‘아나뱁티스트‘ 맥락에서는 낯이 익은 것이다(간간이 기독교 관련 내용에서 오자나 역자 설명의 미진함이 엿보이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 책을 통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나 ‘시민 불복종‘ 등의 사안에 톨스토이는 매우 강력한 논거를 제공하지만, 정작 그의 글을 구해 읽기는 어려웠던 그간의 갈증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어서 고맙다. 아울러, ‘기독교 신앙의 정수란 이런 것‘이라고 불을 뿜는 100년 전의 독자적 지성인이자 신앙인의 한 면모를 확인할 드문 기회가 허락되었다는 것도 기쁜 일이다. http://ichungeoram.com/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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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asmus 2016-07-0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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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쓴 소리, 권력층에 대한 비판 새창으로 보기
톨스토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로서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 카레니나”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겨서 러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작가로서 그 명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해서는 별로 듣지 못했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이는 원래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을 톨스토이가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신의 나라가 언제 올 것 같은가?”라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언제 온다라고 답하지 않고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천국에 가야 한다는 목적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해법을 말씀하신 것으로 믿음도 중요하지만 실천을 강조하신 것으로 보인다. 아마 톨스토이도 실천을 강조했으리라.



이 책은 톨스토이가 에세이 형식으로 쓴 글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비폭력 무저항, 반권력의 자유와 평등 및 평화의 삶을 말한다. 군대에 가거나 무기를 들고 사람을 죽이는 것도 거부한다. 그리고 전쟁도 반대하며 사형도 반대한다. 이러한 반대는 기독교의 본질이라 주장한다. 비판적인 그는 러시아 정교회를 철저히 비판하다가 파문까지 당한다. 물론 이 책도 러시아에서 출간이 금지되어 독일과 영국에서 먼저 출간되었다고 한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톨스토이가 살던 당시 러시아의 상황에 대해 비판한 고전서일 뿐이라고 선입견을 가졌었다. 그러나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1893년에 이런 급진적인 사고가 들어있는 글을 썼다니,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비폭력에 관한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대해 말하며, 2장은 러시아 정교회의 기독교 복음에 관한 해석에 대해 반론을 펼치며, 3장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기독교도의 오해를 비판하며 4장에서 학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비판한다.

5장은 생활과 양심의 모순에 대해 말하며 6장은 전쟁을 비판하고 7장은 병역의무를 비판하다. 8장은 무저항 수용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9장은 기독교적 인생관의 수용이 해방의 길임을 강조하며 10장은 국가를 거부하고 11장은 폭력을 끝내기 위해 기독교적 인생관을 강조한다. 12장에서는 그 요지를 반복한다.

어느 부유한 지주의 영지안에서 농민들이 지주와 공유하는 목장에서 숲을 키웠다. 농민들은 숲을 키우는데 많은 기여를 했고 그래서 공유한다고 생각했는데, 지주는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벌채를 하였고 농민들은 소송을 제기했으나 당시 러시아 법원은 숲을 지주의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러자 농민들은 판결에 승복하지 않았고 벌채하러온 인부들을 쫓아내자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서 농민들을 협박하고 법의 이름으로 처벌을 한다. 기존 질서가 상류계급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행사하고 하류계급을 기만한다.

이 책에서 이러한 사례뿐만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통해 폭력, 권력을 비판하며 반성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의 번역을 담당했던 박홍규 교수는 이 책이 사실 아나키즘에 대한 책이라고 주장한다. 톨스토이는 아나키즘을 비판하지만 그것은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폭력주의적 테러리즘의 일종인 아나키즘을 비판한 것이고 실제 책의 내용은 권력주의 비판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아나키즘에 관한 책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 고위 관료, 판검사, 경찰 및 세무공무원 등을 받들고 있고 그러한 지위에 올라야 인생에 성공한다고 칭찬하고 있다. 사실 그러한 권력은 없는 것이고 국민의 위임에 의해 봉사하는 자리일 뿐인데 법의 이름으로 권력의 이름으로 칼을 휘두르고 있다. 톨스토이가 현재의 우리나라를 보면 혀를 내두를 상황이다. 게다가 권력을 가진 자가 교회에 나가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찾는걸 보면 기가 막힌 상황이지만 우리에게는 오랫동안 익숙한 모습이다.

이 책을 권력을 가진 자들이 필히 읽어가며 가슴으로 새겨 들어야겠지만, 실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권력층에 대해 감시와 견제를 한다면 세상은 하나씩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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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권력층에 대한 비판 (톨스토이 지음) : 네이버 블로그


[서평]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권력층에 대한 비판 (톨스토이 지음)

슈퍼울트라맨

2016. 8. 1. 0:57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작가레프 톨스토이출판들녘발매2016.05.20.평점


톨스토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로서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 카레니나”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겨서 러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작가로서 그 명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해서는 별로 듣지 못했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이는 원래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을 톨스토이가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신의 나라가 언제 올 것 같은가?”라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언제 온다라고 답하지 않고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천국에 가야 한다는 목적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해법을 말씀하신 것으로 믿음도 중요하지만 실천을 강조하신 것으로 보인다. 아마 톨스토이도 실천을 강조했으리라.



이 책은 톨스토이가 에세이 형식으로 쓴 글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비폭력 무저항, 반권력의 자유와 평등 및 평화의 삶을 말한다. 군대에 가거나 무기를 들고 사람을 죽이는 것도 거부한다. 그리고 전쟁도 반대하며 사형도 반대한다. 이러한 반대는 기독교의 본질이라 주장한다. 비판적인 그는 러시아 정교회를 철저히 비판하다가 파문까지 당한다. 물론 이 책도 러시아에서 출간이 금지되어 독일과 영국에서 먼저 출간되었다고 한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톨스토이가 살던 당시 러시아의 상황에 대해 비판한 고전서일 뿐이라고 선입견을 가졌었다. 그러나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1893년에 이런 급진적인 사고가 들어있는 글을 썼다니,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비폭력에 관한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대해 말하며, 2장은 러시아 정교회의 기독교 복음에 관한 해석에 대해 반론을 펼치며, 3장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기독교도의 오해를 비판하며 4장에서 학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비판한다.

5장은 생활과 양심의 모순에 대해 말하며 6장은 전쟁을 비판하고 7장은 병역의무를 비판하다. 8장은 무저항 수용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9장은 기독교적 인생관의 수용이 해방의 길임을 강조하며 10장은 국가를 거부하고 11장은 폭력을 끝내기 위해 기독교적 인생관을 강조한다. 12장에서는 그 요지를 반복한다.



어느 부유한 지주의 영지안에서 농민들이 지주와 공유하는 목장에서 숲을 키웠다. 농민들은 숲을 키우는데 많은 기여를 했고 그래서 공유한다고 생각했는데, 지주는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벌채를 하였고 농민들은 소송을 제기했으나 당시 러시아 법원은 숲을 지주의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러자 농민들은 판결에 승복하지 않았고 벌채하러온 인부들을 쫓아내자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서 농민들을 협박하고 법의 이름으로 처벌을 한다. 기존 질서가 상류계급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행사하고 하류계급을 기만한다.

이 책에서 이러한 사례뿐만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통해 폭력, 권력을 비판하며 반성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의 번역을 담당했던 박홍규 교수는 이 책이 사실 아나키즘에 대한 책이라고 주장한다. 톨스토이는 아나키즘을 비판하지만 그것은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폭력주의적 테러리즘의 일종인 아나키즘을 비판한 것이고 실제 책의 내용은 권력주의 비판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아나키즘에 관한 책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 고위 관료, 판검사, 경찰 및 세무공무원 등을 받들고 있고 그러한 지위에 올라야 인생에 성공한다고 칭찬하고 있다. 사실 그러한 권력은 없는 것이고 국민의 위임에 의해 봉사하는 자리일 뿐인데 법의 이름으로 권력의 이름으로 칼을 휘두르고 있다. 톨스토이가 현재의 우리나라를 보면 혀를 내두를 상황이다. 게다가 권력을 가진 자가 교회에 나가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찾는걸 보면 기가 막힌 상황이지만 우리에게는 오랫동안 익숙한 모습이다.



이 책을 권력을 가진 자들이 필히 읽어가며 가슴으로 새겨 들어야겠지만, 실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권력층에 대해 감시와 견제를 한다면 세상은 하나씩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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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4

레프 톨스토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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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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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
Лев Толстой
L.N.Tolstoy Prokudin-Gorsky.jpg
작가 정보
출생1828년 9월 9일
러시아 제국 야스나야 폴랴나
사망1910년 11월 20일 (82세)
러시아 제국 아스타포보
직업소설가
국적러시아 제국의 기 러시아 제국
장르사실주의
주요 작품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서명
Signature of Leo Tolstoy.jpg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백작(러시아어Граф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이 소리의 정보듣기 문화어: 레브 똘스또이, 영어Leo Tolstoy 또는 Lev Nicolayevich Tolstoy1828년 9월 9일 ~ 1910년 11월 20일)은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였으며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전쟁과 평화》(1869년), 《안나 카레니나》(1877년)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러시아 문학과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생애[편집]

톨스토이는 1828년 9월 9일에 러시아 남부 툴라 근처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니콜라이 일리치 톨스토이 백작과 마리야 톨스타야 백작부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자랐다. 카잔 대학교 법학과에 다니다가 중퇴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억압하는 대학교 교육 방식에 실망을 느껴서라고 한다.[1]그는 부모의 유산 가운데 자신의 몫이 된 야스나야 폴랴나로 돌아간다. 영지에서 농노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계몽 실험을 벌이던 톨스토이는 1848년에 다시 고향을 떠난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는 방탕한 생활에 빠져 빚을 많이 졌다(급기야 1855년에는 도박 빚 때문에 야스야냐 폴랴나의 저택을 매각하고 말았다.
젊은 시절의 톨스토이는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쾌락주의자였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이다. 톨스토이의 주요 작품으로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의 장편 소설과 《이반 일리치의 죽음》, 《바보 이반》 등의 중편 소설이 잘 알려져 있다.

작품세계[편집]

리얼리즘[편집]

톨스토이는 ‘인간의 심리 분석’과 ‘개인과 역사 사이의 모순 분석’을 통하여 최상의 리얼리즘을 성취해 냈다. 이 작가는 일상의 형식적인 것을 부정하고 인간의 거짓, 허위, 가식, 기만을 벗겨내고자 했다. “톨스토이 이전에는 진정한 농민의 모습이란 없었다”는 레닌의 말처럼, 톨스토이는 러시아 제국에서 혁명이 준비되고 있던 시기를 적확(的確)하게 묘사하면서, 그의 문학과 사상을 사회혁명에 용해시켰다. 나아가서 전 인류의 예술적 발전을 한 걸음 진전시키는 데 그의 문학과 사상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두 개의 톨스토이[편집]

톨스토이의 작품에는 ‘삶을 사랑하는 톨스토이’와 ‘청교도적 설교자로서의 톨스토이’라는 ‘두 얼굴의 톨스토이’가 있다. 톨스토이의 세계에서는 두 얼굴을 가진 분열된 자아가 계속해서 서로 싸운다. 후기로 갈수록 톨스토이는 ‘삶을 사랑하는 시인’에서 ‘인생의 교사’이자 ‘삶의 재판관’이 되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두 얼굴을 가진 분열된 자아가 계속해서 서로 싸우는 그의 세계를 이원론적으로만 볼 수도 있지만, 주제적으로 긴밀하게 얽혀 있는 전일성이 드러난 세계로도 파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작가·사상가로서 톨스토이를 이분법적 사고로 나누지 말고, 영적인 탐구심에 기초한 도덕적 태도의 통일성에 기초해서 그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그의 창작 세계의 전일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구원[편집]

톨스토이는 삶과 죽음, 육체와 정신, 사랑과 진리에 대한 관념들을 일반적·보편적 형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는 예술가이자 인생의 교사로서 이런 관념들에 대한 해답을 인류에게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톨스토이의 예술 세계에서는 자족적 관념이 만들어내는 자기 완결적 순환 구조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관념을 통하여 그리고 그 관념의 실천을 통하여 절대적 자각자로서의 자기완성에 이르고자 하고, 자기 구원과 인간 구원에 도달하고자 했다.

활동[편집]

비판적 지식인[편집]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민중들에게 무관심한 교회(러시아 정교회)를 비판하여 교회로부터 미움을 받고 1901년 러시아 정교회의 교리감독기관인 종무원으로부터 파문당했을 정도로 톨스토이는 교회와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활약하였다.

행동하는 지식인[편집]

톨스토이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내용은 몸으로 실천하는 지식인이어서, 귀족들의 방해로 폐교되기는 했지만 1860년 고향 툴라에서 농민학교를 운영하여, 부모의 강요로 아동노동을 하는 게 전부였던 농민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재미있게 놀기도 하게 해주었다. 당시 부모들은 처음에는 일할 사람이 없어질 것을 걱정하여 자녀들이 학교에 가는 것을 싫어했지만, 톨스토이가 진심으로 농민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는 아이들을 기꺼이 학교에 보냈다. 농민학교는 자유로웠는데, 이는 자유로운 교육을 통해서 진짜 교육이 진행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1871년에는 직접 교과서를 쓰기도 했는데, 농민과 귀족이 평등하게 교육받도록 한 내용 때문에 자기들보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농민을 멸시하는 귀족들은 농민들과 평등한 교육을 받을 수 없다며 거센 반발을 일으켰지만, 자신들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한 농민들에게는 칭찬을 들었다.

기독교 신앙[편집]

톨스토이가 1894년에 저술한 <하나님 나라는 당신 안에 있다> 에서 그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을 돕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개개인의 진실에 대한 깨달음과 선포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 고했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은 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핵심이었다. 
또한 그는 죽기 전 며칠 전인 1910년 11월 1일 자신의 딸 사샤에게 보내는 편지에 "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시다. 모든 사람들은 그를 부분적으로 이해할 뿐이다. 진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존재한다..."고 말했다. (“God is the limitless All of which man realises himself to be a limited part. The truth exists only in God…”) 또한 그는 기독교의 영성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가난한 사람과 죄인들까지 모두 사랑하며,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복음서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실제로 그의 단편소설인 《사랑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도 있다》는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마태복음서 25장 40절의 가르침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불을 놓아두면 끄지 못한다》라는 단편소설은 폭력은 문제를 더 심하게 만들 뿐,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 평화주의의 대표적 인물이기도 하다.

극작가로서의 활동[편집]

톨스토이는 1850년대에 이미 이반 투르게네프나 알렉산드르 오스트롭스키의 영향을 받아 극작을 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근대 연극사에서 유명하게 한 것은 주로 <어둠의 힘>(1886), <교육의 열매>(1891), <산송장>(1911) 등의 작품이라 하겠다. <어둠의 힘>은 실화에 의거해 러시아 농민의 음산한 생활을 그린 것으로 자연주의 희곡으로 뛰어난 작품이며 러시아에서는 상연이 금지되어 프랑스에서 초연했다. <교육의 열매>는 시골 귀족의 무의미한 생활을 풍자한 것. <산송장>은 기독교적 자기 희생과 결혼법의 문제를 다룬 희곡으로 유럽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소설 <안나 카레니나>와 <부활>은 '모스크바 예술극단'이 각색, 상연한 바 있다.[2]

각주[편집]

  1.  웅진위인전기 외국편-《톨스토이》/김명수 지음/최달수 삽화/웅진출판
  2.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2020/05/06

알라딘: 소태산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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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평전 - 원불교 교조 박중빈 일대기
이혜화 (지은이)북바이북2018-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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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25,000원
판매가
22,500원 (10%, 2,500원 할인)


소태산 평전 - 원불교 교조 박중빈 일대기
22,500원 (10%, 2,500원 할인)


양장본
516쪽
152*224mm
851g




책소개
젊은 시절부터 평생에 걸쳐 원불교 교조 박중빈(법호 소태산)의 자료를 모으고 글을 써온 저자 이혜화가, 『소태산 박중빈의 문학세계』, 『원불교의 문학세계』, 『소태산 박중빈』 등에 이어 박중빈의 일대기를 그린 『소태산 평전』을 출간했다.

『소태산 평전』은 한 종교단체의 우두머리 박중빈이 아닌, 누구보다도 인간적이고 인류와 세계를 사랑했던 교조 박중빈의 생애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악한 장난꾸러기 아이였던 박중빈이 구도자의 길에 이르기 위해 정진하고, 교조가 되어 교인들의 마음과 삶을 세심하게 살피는 모습에서, 이 시대의 지도자가 지녀야 할 덕목과 종교단체가 가져야 할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목차


Ⅰ. 서장–하늘·땅·사람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없다/ 출세와 후천개벽/ 출세의 공간–호남/ 영광, 그 땅의 의미/ 가계와 혈통

Ⅱ. 아동기–맹랑한 싹수
춘삼월 호시절/ 달을 잡으려는 아이/ 퇴학 맞은 방화범/ 산신령을 찾아라

Ⅲ. 청년기–찬란한 귀환
15세에 결혼하다/ 도사를 찾아라/ 뒤뚱거리는 홀로서기/ 주막으로 혹은 파시로/ 다시 구도의 길로/ 노루목의 폐인/ 노루목에 피는 우담바라

Ⅳ. 영산에서–땅을 열고 하늘도 열고
에루화 낙화로다/ 최초법어와 방편 교화/ 처음을 함께한 제자들/ 문학가 소태산과 『법의대전』/ 여봐라 처자야 말 들어라/ 개교 표어와 남다른 생각/ 무모한 도전/ 벽해상전 꿈을 이루다/ 아홉 번째 제자 송규/ 개벽의 상두소/ 산상기도/ 땅공사 하늘공사

Ⅴ. 변산에서–숨어서 그물을 짜다
월명암 답사/ 모악산 금산사 탐방/ 일원상과 김제경찰서/ 내변산으로 숨다/ 봉래정사 석두거사/ 교법의 그물을 짜다/ 불교를 혁신하려면/ 정산 송규와 변산 제자들/ 하산을 준비하다/ 하산과 상경/ 익산 새미르/ 구타원과 그 일행

Ⅵ. 익산에서–일원화 꽃을 피우다
갑자년 이후/ 강약의 도리/ 도둑고개에서 피는 일원화/ 간이하게 비근하게/ 세상에 드러나는 불법연구회/ 불법연구회를 찾은 도산 안창호/ 소태산의 여행 일기/ 소태산의 금강산 탐방 ①/ 소태산의 금강산 탐방 ②/ 소태산의 경상도 여행/ 황정신행이란 인물

Ⅶ. 수난기–그래도 적은 없다
신종교의 수난/ 안도산 이후/ 일제 탄압의 대응법/ 감화되는 일경들/ 벼랑에 선 불법연구회/ 소태산을 따른 여자 제자들/ 인간 소태산의 아픔/ 서대원의 기행

Ⅷ. 입멸–소태산의 만고일월
열반 준비/ 불교정전/ 열반 전야/ 열반 ①/ 열반 ②/ 열반 이후 ①/ 열반 이후 ②

Ⅸ. 대단원–춤추는 니르바나
이제 다 이루었다/ 뒷이야기

후기
소태산 박중빈 연보
참고문헌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박중빈朴重彬,. 법호 소태산少太山.




P. 49~50 박중빈의 모친은 옥녀봉에 뜬 태양이 갑자기 가슴에 안기는 꿈을 꾸고 그를 잉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박중빈은 제자들에게 태몽의 신비로 교조를 장엄하는 따위의 섣부른 짓을 하지 못하도록 엄히 당부하였다. 이 점은 박중빈의 의도를 톺아볼 필요가 있다. (…) 신비화되고 미화된 성자의 탄생담이 발심 단계에 있는 후세인의 의욕을 꺾고 아예 꿈조차 꾸지 못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니 그럴듯한 태몽도 없는 사람은 시작 단계에서 자포자기하는 좌절을 겪을 수 있다. 접기
P. 408 소태산이 돈암동 회관(경성지부)에 가자 산부처님(생불)이 온다고 소문이 나서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점심 식사 때 소태산은 상추쌈을 맛있게 들었는데 이를 보고 주민들이 실망했다. 식사가 끝나자 소태산은 변소에 일을 보러 갔다. 이 모습을 본 주민들은 모두 속았다고 하며 돌아갔다. 소태산은 익산 본관(총부)으로 돌아와서 황이천에게 말했다. “이천! 내가 경성 가서 부처님 시험을 보고 낙방했다. 나보다 더한 사람도 다 낙방하겠더라. 사람들이 나를 보고 다 도망갔다.” 설마 생불에게 공중부양이나 오병이어(五餠二魚,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였다 함)의 기적까진 기대하지 않았겠지만, 최소한 보통 사람처럼 먹고 배설하면 안 된다. 미숫가루에 생수 한 잔이면 합격했을까? 용변은, 꾹 참고 있다가 아무도 몰래 일을 보았더라면 합격했을까? 접기
P. 424 소태산은 여성의 권리를 인권 차원에서 심각하게 인식하였다. 교법상 남녀 차별을 용납하지 않았던 소태산으로서도 난감한 일은 적지 않았다. 강연 훈련 때면, 남녀노소가 똑같이 연단에서 강연 발표를 하도록 했어도 여자 제자들은 너무나 수줍어하여 연단에 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경우에도 소태산은 커튼을 치고라도 강연을 하도록 조처하였다. 교무 양성도 남녀를 함께하였고, 새파란 애송이 정녀를 지방 교무로 파견하는 일도 꺼리지 않았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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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혜화 (지은이)


일찍부터 소태산 박중빈에 관심을 가지고 국문학을 전공(고려대 문학박사)하면서 관련 저술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소태산 박중빈의 문학세계』(1991), 『‘새로 쓴’ 소태산 박중빈의 문학세계』(2012), 『원불교의 문학세계』(2012) 등의 연구서 외에 장편소설 『소태산 박중빈 1, 2』(2004)가 있다. 이 밖에 다수의 논저와 교양서로 『책, 꽃만큼 아름답고 밥만큼 소중하다』(2007), 『미르』(2012), 『설화, 욕망을 품다』(2018) 등을 냈다. 다년간 여러 대학에 출강했고, 고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했다. 현재는 연... 더보기


최근작 : <소태산 평전>,<설화, 욕망을 품다>,<미르> … 총 8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젊은 시절부터 평생에 걸쳐 원불교 교조 박중빈(법호 소태산)의 자료를 모으고 글을 써온 저자 이혜화가, 『소태산 박중빈의 문학세계』, 『원불교의 문학세계』, 『소태산 박중빈』 등에 이어 박중빈의 일대기를 그린 『소태산 평전』을 출간했다.『소태산 평전』은 한 종교단체의 우두머리 박중빈이 아닌, 누구보다도 인간적이고 인류와 세계를 사랑했던 교조 박중빈의 생애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악한 장난꾸러기 아이였던 박중빈이 구도자의 길에 이르기 위해 정진하고, 교조가 되어 교인들의 마음과 삶을 세심하게 살피는 모습에서, 이 시대의 지도자가 지녀야 할 덕목과 종교단체가 가져야 할 정신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소태산의 생애가 온몸으로 구현한 가르침은
인류와 세계를 구원할 수 있을까?
누구보다도 인간적이었던 원불교 교조 박중빈의 일대기

박중빈(朴重彬), 법호 소태산(少太山), 존칭 대종사.
1891년 전남 영광에서 나서 고행 수도 끝에 1916년 깨달음을 얻은 후,
불법연구회(원불교 전신)를 창건하여 전북 익산을 중심으로 포교하다가 1943년에 사망.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교조를 만나다
대개 종교단체에서는 지도자를 ‘교주(敎主)’라고 부른다. 그러나 원불교에서는 ‘교조(敎祖)’라고 부른다. 교주가 종교단체의 지도자나 우두머리를 뜻한다면, 교조는 종교단체나 종교를 처음 세우거나 이끈 사람을 뜻한다. 이는 소태산이 인간과 세계를 대하는 자세와도 맞닿아 있는 호칭이다.
소태산은 자신이 종교단체의 우두머리라고 해서 극진한 대접을 받거나 존경받길 원하기보다, 교인들이 상처받거나 어려워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길을 찾기 위해 함께했다. 종교단체를 만들 당시에도 교인들의 도움을 무작정 바라기보다, 함께 일(방언공사)하고 돈을 벌어 교인들의 생계와 종교의 존립을 감당했다. 나아가 교리로서 ‘부부권리동일’이나 ‘남녀권리동일’ 등을 내세우며 여성의 권리를 인권 차원에서 진지하게 인식했다.
한 종교단체의 우두머리가 아닌, 그저 종교단체를 세우고 이끈 사람이 소태산이다. 『소태산 평전』에서는 소태산의 이런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마음의 문제를 가진 교인의 짐을 우스갯소리로 덜어주는 모습이라든지, 금전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는 모습이라든지, 교인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는 모습 등은 어느 시대에나 있을 법한 한 믿음직한 어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태산의 삶을 열 단계로 나누어 보다
원불교에서는 소태산의 삶을 열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를 대종사십상(大宗師十相) 혹은 십상이라 부른다. 『소태산 평전』은 소태산이 나서부터 열반할 때까지의 생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려나가면서, 삶이 변화하는 각 시기를 십상으로 알기 쉽게 정리한다.
① 하늘을 보고 의문을 일으키는 모습(관천기의상), ② 삼밭재에서 기원하는 모습(삼령기원상), ③ 스승 찾아 고행하는 모습(구사고행상), ④ 강변에서 선정 상태에 몰입한 모습(강변입정상), ⑤ 노루목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 모습(장항대각상), ⑥ 영산에서 조수막이 둑을 쌓는 모습(영산방언상), ⑦ 피 지장으로 진리계의 인증을 받는 모습(혈인법인상), ⑧ 봉래산에서 교법을 만드는 모습(봉래제법상), ⑨ 신룡에서 법륜을 굴리는 모습(신룡전법상), ⑩ 계미년에 열반을 보인 모습(계미열반상).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고, 교인들의 생존과 종교의 존립을 위해 경제활동을 함께하고, 많은 이들과 소통하며 교법을 만들고, 자신이 세운 종교의 미래를 위해 끝까지 노력하다 열반하는 단계 하나하나에서, 현대인들이 바라는 리더의 참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소태산의 생애가 온몸으로 구현한 가르침
“1943년에 열반한 박중빈은 21세기 원불교 안에서 생전보다 더욱 강력한 영향력으로 살아 있다. 한국 현실만 보더라도 그의 교법이 갖는 시대적 수요는 더욱 불어나고 있다. 한강의 기적으로 경제 성장과 물질적 풍요가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지만, 삶의 만족도나 행복지수는 오히려 떨어져 젊은 층은 ‘헬조선’을 입에 달고 산다. (…) 소태산의 생애가 온몸으로 구현한 가르침은 개인 구원과 더불어 사회와 국가의 구원, 더 나아가 인류와 세계의 구원을 담보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필자는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러 독자와 동행하는 짧지 않은 여행길에 나서려 한다.”
저자의 이 짧지 않은 여행길은 2년여 동안 계속됐다. 평생에 걸쳐 모아둔 자료와 인터뷰를 토대로 소태산의 생애를 정리하는 데만 2년여가 걸린 셈이다. 『소태산 평전』을 쓰며 저자는 기록자로서의 냉정함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태산의 신화 비슷하게 남아 있는 이야기에 대한 나름의 현실적인 해석과 분석을 내놓은 것은, 이야기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애쓴 흔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저자의 노력은 결실을 거두었을까. 확신하긴 어렵지만 독자에게 여러 가지 힌트를 준 것만은 분명하다. 소태산이 만들고 싶었던 종교단체의 모습이나, 교리, 그가 살아온 삶이 그것을 입증한다.
『소태산 평전』을 읽으며, 소태산의 생애를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구원이라는 것이 현실세계에서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