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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의 『흰 그늘의 미학』과 심광섭의 『십자가와 부활의 미학』
“흰 그늘”을 처음 만난 시기는 김지하의 『예감에 찬 숲 그늘_김지하 미학 강의』(1999년)을 읽은 때였다. 책 머리에 수원농대 앞길 가로수를 새벽 1~2시에 걸으면서 느낀 감회를 적은 부분이다. “수원농대 앞길이 가로수가 죽 서 있고 아주 먼 지평선까지 일자로 곧게 난 길이었습니다. 거기에 달빛이 환하게 미쳐서 길이 하얗고 숲과 나무들은 까맣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 흰 길이 검은 지평선을 넘어서 아주 멀고 먼 우주 저편까지 끝없이 뻗어 나가는 것 같은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환상을 “흰 우주의 길”이라고 이름 짓는다.
나는 이 부분을 추체험하면서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어느 날인가 지인에게 나의 체험까지 곁들여 약간 흥분한 어조로 설명한 적이 있다. 시인의 체험은 한국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체험이기도 하거니와 한 번 이상 그와 유사한 경험이 있기 때문인데, 다만 김지하가 그 경험을 꺼내어 해석하고, 그는 계속 이 체험과 생각을 꾸준히 집요하게 발전시켜 “흰 그늘의 미학”으로, 한국의 고유한 미학 사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흰 그늘”이 들어간 서적과 시집은 다음과 같다.
『1999 예감에 찬 숲 그늘: 김지하 미학강의』(실천문학 2003)
『흰 그늘의 길: 김지하 회고록 1-3』(학고재 2005)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미학강의』(실천문학 2006)
<시집>으로 『꽃과 그늘』(실천문학1999)
『흰 그늘의 산알소식과 산알의 흰 그늘 노래』(천년의 시작 2010)
『흰 그늘(작가 2018)
나는 김지하의 미학을 통틀어 “흰 그늘의 우주생명미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김지하는 “‘그늘’이 판소리에서와 같이 온갖 신산고초의 어두운 중력의 그림자 영역이라면 ‘흰 빛’은 초월적인 아우라일 것이니 흰 그늘은 신체학과 영(靈)의 이중적 교호결합”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십자가와 부활”은 한편으로 그늘과 고난, 다른 한편 빛과 희망의 교호결합이었다. 십자가는 부활의 십자가이며 부활은 십자가의 부활로서, 이 둘은 불가분리의 관계,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不一不二), 둘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의 알(생명)에서 태어난 쌍생아라고 비유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 책은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의 고통만을 드러내기보다는 고통과 고난은 창조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의 열정임을 강조하고자 했다. 생명은 고통 자체보다는 고통하는 사랑을 통해 태어나고 자라며 성숙된다고 생각했다. 십자가는 고난과 죽음이지만 사랑 때문에 선택한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로마와 예루살렘의 권력은 예수님을 파괴했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파괴하지 못했다. 사랑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 있으며 생명의 근원이며 힘이다. 부활은 바로 이 생명의 나타남이다. 사랑의 십자가를 정직하게 대면하고 진지하게 돌파하는 자만이 부활생명의 환희에 이른다. 이런 이유로 십자가와 부활을 동시에 표현한 성화를 원했다. 표지 그림으로 얼굴과 온몸에 고통만을 표현하는 십자가형 대신 사랑의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고갱의 ‘노랑 그리스도’(yellow Christ)와 바탕색으로 부활을 상징하는 흰색을 선택했다.
신학적인 “십자가의 그늘”은 김지하의 미학적인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과 통한다.
성경과 찬송가에서 십자가와 부활은 “흰 그늘”이다.
십자가는 그늘이다.
찬송가 415장은 “십자가 그늘 아래”이다. 십자가 그늘은 쉼터이다. 햇볕이 심히 뜨겁고 무거운 짐을 지고 광야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에게 선사하는 십자가 나무 그늘이다. 십자가 그늘은 생명의 그늘이다. 그래서 3절은 “십자가 그늘에서 나 길이 살겠네”하고 찬양한다.
부활은 흰색이고 빛이다. 예전에서 부활절에 흰색을 사용하는 전거이다.
변화산에서 변모한 예수(마태복음 17:1-13)는 흰옷을 입고 나타난다. 부활절의 천사는 흰옷을 입은 천사들이다(요한복음 20:12-20)
십자가는 생명의 삶살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고난이며, 부활은 새로운 삶, 새로운 우주생명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復活은 復生이고 복승(複勝)이다. 김지하는 경락학에서 말하는 몸 안의 경락이 교차하며 생기는 새로운 현상이나 기운의 흐름을 의미하는 '복승(復勝)' 개념을 불교 화엄사상과 동학사상을 접목한 '복승 개벽'과 같은 새로운 문명 전환의 의지로 확장하여 사용한다. 김지하는 자신의 저서와 사상 전반에서 이 개념을 활용하여, 개인의 내적 변화를 넘어 우주적 생명과 문명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십자가와 부활의 신학의 주지(主旨)가 생명이라면, 김지하의 흰 그늘의 미학은 그의 생명사상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고 본다. 생명학과 결부된 김지하의 미학은 “흰 그늘의 생명미학”이라 할 것이다. 김지하는 생명학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1991)
『생명과 자치』(1997),
『생명학 1-2』(2003),
『생명 평화의 길: 김지하 산문집』(2005)
『우주생명학』(2018)
왜 내가 오래 전 김지하의 “흰 그늘”에 이유 없이 끌렸는지,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의 미학』을 구상하게 되었는지, 최근 다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를 꺼내 읽으면서 알아차리게 되었다. 김지하의 『흰 그늘의 미학』과 심광섭의 『십자가와 부활의 미학』은 서로 통한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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