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 우리가 몰랐던 원자과학자들의 개인적 역사
로베르트 융크 (지은이),이충호 (옮긴이)다산북스2018-Heller als 1000 Sonnen : Das Schicksal der Atomforscher. (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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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쪽
책소개
미국과 독일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다룬 최초의 간행물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과학·논픽션 고전. 한국어판으로 1961년에 번역되었다가 절판되어 이후로 한국 독자들이 접할 기회가 없었으나 이번에 재출간되었다. 이 책은 핵분열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도덕적으로 고민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자폭탄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과학자들의 개인적인 일상과 주변의 구체적인 정황들을 보여줌으로써 북한의 비핵화 움직임과 맞물려있는 이 시기에 국제 사회가 핵무기를 바라보는 시각을 시대 배경과 함께 좀 더 밀접하게 이해할 수 있다.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과학사적인 의미를 짚는 홍성욱 교수의 해제가 실려 있으며, 하이젠베르크가 보낸 편지 및 미국의 물리학자들이 원자폭탄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작성된 프랑크 보고서 등 유용한 자료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원자 폭탄은 무엇 때문에, 어떻게 개발되었나?” “그 ‘악마의 일’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어떤 시도를 했는가?” “독일과 러시아의 원자폭탄은 어떠했는가?” “정치인과 연구원의 관계는 무엇이었는가?” 수년간 해결되지 않았던 의문들을 해소해주는 이 논픽션은 출간되자마자 단숨에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목차
추천사
감사의 말
제1장 변화의 시대 1918~1923
제2장 아름다운 시절 1923~1932
제3장 정치적 갈등 1932~1933
제4장 예기치 못한 발견 1932~1939
제5장 신뢰의 붕괴 1939
제6장 예방 전략 1939~1942
제7장 병영으로 변한 연구소 1942~1945
제8장 오펜하이머의 부상 1939~1943
제9장 한 남자의 분열 1943
제10장 인재 영입 1944~1945
제11장 원자과학자 대 원자폭탄 1944~1945
제12장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1945
제13장 고뇌에 빠진 과학자들 1945
제14장 과학자들의 십자군 전쟁 1945~1946
제15장 고통스러운 시절 1947~1955
제16장 ‘조 I’과 ‘슈퍼’ 1949~1950
제17장 양심의 딜레마 1950~1951
제18장 ‘MANIAC’의 징표 1951~1955
제19장 오펜하이머의 추락 1952~1954
제20장 피고석에 서다 1954~1955
에필로그 | 마지막 기회 537
참고 목록
부록 A | 1944년 7월에 닐스 보어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제안서
부록 B | ‘프랑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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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제1차 세계 대전 마지막 해에 원자 연구로 이미 명성이 자자했던 어니스트 러더퍼드 Ernest Rutherford가 영국에서 열린 전문가 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적 잠수함에 대처하는 새 방어 체계에 관해 조언을 하는 자리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직 살아 있기 때문에, 나는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편지를 통해 그들로부터 직접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소련 과학자들로부터는 이와 같은 공개적이고 검열받지 않은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피사, 제네바, 로체스터 등에서 열린 물리학자들의 여러 국제 학회에서 그런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했는데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이 책은 서구 세계에서 일어난 성과와 실패만 다룰 수밖에 없었는데, 어쩔 수 없는 이 제약은 미래 역사가들이 바로잡아주리라고 기대한다. - 감사의 말(12p) 중에서 접기
프리슈는 그 당시 자신의 발견에 대해 여전히 다소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정글을 걷다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코끼리 꼬리를 잡은 기분이에요. 그리고 이제 그걸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마이트너와 프리슈가 한의 발견과 그것이 물리학에서 지니는 중대한 의미에 관한 소식을 터뜨렸을 때, 처음에 원자물리학자들은 대체로 당혹스러운 반응을 나타냈다. 프리슈가 스웨덴에서 코펜하겐으로 돌아와 한의 연구와 자신이 이모와 나눈 대화를 이야기하자, 보어는 자기 이마를 쳤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수 있었단 말인가!”라고 외쳤다. - 제4장 예기치 못한 발견(126p) 중에서 접기
유명한 과학자들 중에도 나치스에 의해 투옥되거나 추방된 사람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는 프랑스 물리학자 조르주 브뤼아(Georges Bruhat)를 들 수 있다. 제자 클로드 루셀(Claude Roussel) 이 격추당한 비행기에서 탈출한 미국인 파일럿들을 고등사범학교 부근에 숨겨준 일이 있었다. 게슈타포가 루셀을 의심하자, 브뤼아는 제자를 배신하길 거부하고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는 처벌을 받았다. 그곳에서 그는 동료 수감자들에게 천문학을 계속 강의하다가 결국 기아로 숨지고 말았다.
프랑스군을 위해 작동 속도가 특별히 빠른 기관총을 발명한 알자스 출신의 프랑스 물리학자 페르낭 홀벡(Fernand Holweck) 은 훨씬 가혹한 운명을 맞이했다. 그는 발명의 비밀을 실토하라고 강요하던 게슈타포의 고문을 받다가 결국 숨지고 말았다. - 제10장 인재 영입(268p) 중에서 접기
처음 이 무기를 만드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한 레오 실라르드는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어부처럼 자신이 해방시킨 사악한 ‘진’이 큰 난리를 피우기 전에 다시 붙잡아 병 속에 봉인시키려고 마지막 시도를 했다. 훗날 그는 그 당시에 자신이 느꼈던 심정을 놀랍도록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1943년과 1944년의 몇 달 동안 우리의 가장 큰 염려는 연합군이 유럽으로 진격하기 전에 독일이 원자폭탄을 완성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독일이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한염려가 사라진 1945년에는 우리는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들에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염려하기 시작했다.” - 제11장 원자과학자 대 원자폭탄(295p) 중에서 접기
그런데 갑자기 스크루드라이버가 손에서 미끄러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두 반구는 너무 가까이 접근해 우라늄은 임계 상태에 이르렀다. 방 전체가 순간적으로 눈부시게 파르스름한 섬광으로 가득 찼다. 이 순간에 슬로틴은 몸을 피해 자신을 구하는 대신에 양 손으로 두 반구를 잡아떼 연쇄 반응을 멈췄다. 이 행동으로 그는 그 방에 있던 나머지 7명의 목숨을 구했다. 자신은 과도한 방사선에 노출된 효과를 피할 수 없다는 걸 즉각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자제력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 동료들에게 그 재난이 일어난 순간에 있었던 곳으로 되돌아가 서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칠판에 그들의 상대적 위치를 정확하게 그렸는데, 이들 각자가 방사선에 노출된 정도를 의사들이 확인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 제12장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320p)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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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로베르트 융크 (Robert Jungk)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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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1913년 베를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막스 융(Max Jung)은 독일에서 유명한 배우로, 그는 아버지의 업적을 존중하는 뜻에서 자신의 이름에 ‘k’를 덧붙여 구분하였다. 히틀러가 집권하자 1933년 파리로 이민했고,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하며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1936년부터 1938년까지 프라하에 살면서 반파시스트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나치가 프라하를 침공하자 스위스로 망명했고 1945년까지 거기서 살았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서 《옵저버(Observer)》를 비롯한 몇몇 매체에서 일했다.
1950년대에 그는 그의 일생을 바쳐 탐구할 주제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바로 미래, 평화, 그리고 반핵 운동이다. 첫 번째 책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The Future Has Already Begun)』는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책 제목이 한동안 유행어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미래를 위한 연구소(Institute for Research into the Future)’를 만들었으며 그밖에 생태적, 정치적 사회 운동을 이끌며 수많은 기사와 저서, 라디오와 TV 출연, 강연을 통해 생명을 위협하는 체제와 구조, 기술에 평생 동안 저항했다. 1960년대에 로베르트 융크는 국제적 문제를 다루는 연설가로 널리 알려졌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과 함께 반핵 운동을 펼쳤고, 1967년에는 노르웨이 국제평화연구소 창설자이자 평화학자인 요한 갈퉁(Johan Galtung)과 함께 ‘미래 연구를 위한 세계 연합(International Conference on Futurism)’을 세웠다. 1987년에는 잘츠부르크에 미래지향적 정보를 다루는 학제 간 연구를 위한 최초의 공공 도서관인 국제 미래 도서관(International Futures Library)을 세웠다. 융크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에 인류가 직면한 시급한 문제에 대해 실질적이고 모범적인 답을 제시한 사람에게 수여해 대안 노벨상으로 불리는 ‘바른 삶 상(Right Livelihood Award)’을 받았다.
그는 스스로를 과학 저널리스트로 묘사했으나, 대중에게는 오스트리아의 반핵 운동을 이끌어낸 사회적 스승이자 정치 활동가로 기억되고 있다. 이 책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을 포함해 『원자력 제국(The Nuclear State)』을 쓰면서 반핵 평화 운동에도 깊이 관여했으며, 1992년에는 오스트리아 대통령 선거에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가 1994년 잘츠부르크에서 사망한 이후 국제 미래 도서관에서는 그의 정신과 노력을 기리기 위해 《미래를 위해(For the Future)》를 포함한 정기간행물을 발간해오고 있다. 접기
최근작 :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 총 23종 (모두보기)
이충호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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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과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1년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로 제20회 한국 과학 기술 도서 번역상을 받았습니다. 옮긴 책으로 《뇌과학자들》, 《천 개의 뇌》, 《통제 불능》, 《진화심리학》, 《사라진 스푼》, 《원소의 이름》, 《미적분의 힘》, 《수학으로 생각하는 힘》 등이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물리야> 시리즈에서는 번역과 더불어 ‘더 알아볼까?’, ‘Q&A’에 글을 썼습니다.
최근작 : <빅뱅>,<블랙 홀 여행> … 총 51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책 중 하나.
소설보다 흥미진진하면서도 새롭고 가치 있는 정보가 넘치는 책이다.”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
“전 세계적으로 반핵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세계인들을 핵 시대의 시작과 핵무기 경쟁에 눈 뜨게 했다”
-국제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
전 세계 반핵 운동의 기폭제가 된 20세기 최고의 과학 고전!
―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 비견될 단 한 권의 책!
원자폭탄 제작 관련 기록영화를 위해서 원자과학자들을 인터뷰하던 로버트 융크는 자신이 매우 중요한 책을 쓰고 있음을 깨달았고, 곧 인터뷰를 모아 책으로 출간했다. 그것이 바로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이다. 이 책은 원자폭탄을 만들고 사용했던 사람들의 개인적인 인터뷰를 바탕으로, 원자과학자들의 관점에서 원자폭탄의 탄생과 투하까지의 과정을 다뤘다. 핵무기 개발을 둘러싼 1, 2차 세계 대전의 역사를 당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생생하게 복원한 것이다.
1956년 독일에서 출간된 이 책은 2년 후인 1958년 영어로 번역해 출간되었고,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유대인인 융크가 이 책에서 하이젠베르크를 필두로 한 독일의 핵과학자들을 인류애를 위해 핵폭탄 개발을 포기한 것으로, 이에 반해 미국 측 핵과학자들은 승리를 위해 핵폭탄을 개발했다는 식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융크는 엄청난 인명피해가 일어날 것을 뻔히 예측하면서도 전쟁의 승리를 위해 무기를 개발한 과학자들의 도덕성을 향해 날카로운 물음을 던졌다. 융크의 이러한 도발적 주장은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군 측 사람들에게 큰 반발을 일으키며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고, 과학자들의 윤리 문제에 관한 논쟁에서부터 반핵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운동을 촉발시켰다.
물론, 90년대 이후 발표한 연합군 측 문서에 의하면 하이젠베르크가 도덕적인 이유로 핵폭탄을 개발하지 않은 것이 아님이 밝혀졌다. 하지만 융크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발견에 대한 희열로 가득했던 그들의 순수한 열정이 원자폭탄 투하라는 결과에 이르기까지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무엇을 놓쳤는가에 대한 통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도덕성 여부를 불문하고서라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융크가 책에서 던진 질문들은, 급박한 상황에서 이득이나 효율 그 이상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하여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현대 사회에 큰 울림을 준다.
개인의 역사가 모이면 시대의 역사가 된다
― 최선의 선택이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의문
이 책은 제1차 세계 대전의 마지막 해인 1918년 실험에 성공해 이듬해인 1919년 《철학 잡지》에 발표된 러더퍼드의 연구 결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당시는 정치, 신학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는 과학자들의 불문율이 있었다는 배경 설명과 함께. 그리고 러더퍼드가 있던 런던에서 물리학자들이 원자과학의 황금기를 일궈낸 괴팅겐의 ‘아름다운 시절’을 지나 코펜하겐과 파리, 빈, 레닌그라드를 거쳐 시카고의 7인의 과학자가 원자폭탄의 사용을 막기 위한 탄원서를 쓰기까지 각지의 서로 다른 분위기의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책은 거대한 서사를 이루고 있는데, 제1차 세계 대전의 마지막 해인 1918년부터 동유럽 국가들이 소련을 중심으로 바르샤바 동맹 체제를 구축하면서 냉전이 심화되었던 1955년까지의 일을 다룬다. 전쟁의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에 과학계도 큰 변화가 있었는데, 따라서 정치적으로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각 국가들이 어떻게 핵무기 개발 전쟁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전쟁억지력 개념이 생겨난 이래 냉전 시대에 핵무기가 전쟁억지력의 주체가 된 구체적인 정황이 무엇인지 포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가 거시적인 정치, 세계사가 아닌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는 연구 성과를 자유롭게 서로 교환하며 지내던 국제적 동업자 관계였다가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과 독일, 그리고 러시아 등 당시 전쟁국가로 뿔뿔이 흩어져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소속되었던 과학자들 개인의 이야기이다. 그 어떤 것도 자기 신변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없을 때, 아끼는 제자, 혹은 친구가 적국에 협력했다는 혐의를 받았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실험실에서 사고가 났을 때 동료 과학자들 여럿을 살리는 대신 자신을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도망쳐서 혼자 살아남을 것인가?
하이젠베르크와 보어의 만남에서 느껴지는 어긋남, 이제는 적국이 된 동료 과학자의 연구실에서 알게 된 하우드스밋의 비극, 오펜하이머 개인의 야망과 정부 관계자의 이익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아끼는 제자를 잃은 스승의 결정이 무엇이었는지, 그 밖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생경한 과학자들의 하나같이 드라마틱한 개인의 역사가 책 속에 빼곡하게 펼쳐진다.
“사실은 허구보다 낯설다”
―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기록한 최초의 논픽션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부제가 암시하듯이, 이 책은 원자과학자들의 개인적인 역사를 풀어낸 책이다. 핵무기 개발 관련 기록영화 제작을 위해 과학자들의 인터뷰를 진행했던 것이 이 책의 시작이었다. 융크는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과 수많은 인터뷰를 진행했고, 과학자들 각각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기술된 모든 페이지가 오늘날에도 바로 어제 일처럼 다가온다. 융크의 칼럼집 『지식 중개인(Der Wissensvermittler)』에 함께 실린 그의 아들 피터 스테판 융크(Peter Stephan Jungk) 의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집필할 당시 상황을 비교적 소상하게 알 수 있는데, 로베르트 융크의 첫 계획은 이를 바탕으로 원자폭탄 개발을 다룬 최초의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역사를 있는 그대로 말해달라는 몇몇 인터뷰 당사자들의 말과, 저자 스스로도 “사실은 허구보다 낯설다”는 것을 깨닫고 허구 대신 사실을 기술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기밀로 취급되던 문서들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공개되고 있지만, 저자가 책을 집필한 시기는 전쟁이 끝난 거의 직후였으므로 냉전 국가의 자료까지는 제대로 참조할 수 없었다. 또한 이번 한국어판에 삽입된 하이젠베르크가 보낸 편지 역시 초판본에는 실려 있지 않았으나 덴마크어 판본을 번역 출간하면서 새로 추가한 것이다. 그러나 이 한계는 다양한 주인공들의 즉각적인 기억들로 크게 보완된다. 동시에 한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료와 자원으로 복잡하고 다중적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서술함으로써 오늘날 반핵이라는 인류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에 대해 다룬 귀중한 증언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논란은 현재진행형이지만, 현대사에 대한 그의 기술과 감상은 매우 일관되고 분명하다. 융크는 “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현대 기술의 인간화를 향한 노력이다”라고 말한다.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는 과학자 공동체가 지구를 살릴 만한가? 우리가 만든 화학 물질과 방사성 물질을 처분할 의지가 있는가? 화석 연료의 개발과 사용을 제한하고 지구 온난화를 멈출 것에 동의할 수 있는가?
우리는 특히 국내에 핵탄두를 보유한 적도 있었고,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에 어느 나라보다도 핵무장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러시아와 미국, 일본이라는 원자폭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국가들과 제2차 세계 대전과 냉전을 겪었지만, 지금까지는 전쟁을 고스란히 겪어내느라 나라 밖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상대적으로 덜 주목한 것이 사실이다. 북한의 비핵화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지금 시기적절하게 번역 출간되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시대를 한 층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이 책은 놀랍도록 훌륭하다……. 지금까지 내가 아는 원자폭탄에 관한 역사적 연구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책이다.”
- 찰스 퍼시 스노 C. P. Snow, 『새로운 정치인 New Statesman』에서
“늦게나마 이 책이 다시 번역되어 독자들에게 소개되는 것이 무척 반갑다. 원자폭탄의 공포라는 유령이 떠돌아다니는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이해하기를 원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홍성욱(서울대학교 교수, 과학기술사) 접기
헐 대박 드뎌 나오는 군요
미네랄 2018-07-2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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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고통을 가까이해온 과학자들
1945년 7월 16일 새벽 4시, 미국 뉴멕시코 주 앨라모고도 부근 사막. ‘카운트다운 제로’와 함께 불덩어리가 치솟으면서 거대한 인공 햇빛이 떠올랐다.
천 개의 태양의 빛이 하늘에서 일시에 폭발한다면,
그것은 전능한 자의 광채와 같으리라.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현장에서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의 전 과정을 지켜보던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의 책임자 오펜하이머(Oppenheimer)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가 읽었던 고대 인도의 경전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ītā)》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이제 이것과 똑같은 폭탄이 24일 후 일본의 한 도시 상공에서 투하될 것이었다. 미국 정부는 투항하지 않는 일본을 쓰러뜨리기 위해 이 ‘세계의 파괴자’를 내던질 계획이었다. 나가사키 주민들은 ‘팻맨(fat man)’라는 이름이 붙여진 원자폭탄이 터지면서 쏟아낼 비극의 태양을 맞게 될 운명이었다. 눈부신 섬광, 무시무시한 버섯구름과 함께 이날 이후 인류는 자신을 파멸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되었다.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원자력이 이렇듯 막대한 인류의 재앙을 초래할지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과거의 명저가 다시 태어났다.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은 원자핵의 실체를 밝히려는 과학자들의 지난한 여정과 원자폭탄이 만들어진 과정을 그린 논픽션이다. 이 책의 국역본은 1961년에 출간됐지만 절판되었다. 저자 로베르트 융크(Robert Jungk)는 과학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물리학자들의 ‘아름다운 시절’과 ‘고통스러운 시절’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그들의 삶과 업적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러더퍼드(Rutherford), 아인슈타인(Einstein), 하이젠베르크(Heisenberg), 닐스 보어(Niels Bohr) 등 여러 과학자가 원자력 연구에 나섰지만, 누구도 원자핵의 힘이 엄청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미지의 에너지를 발견한 기쁨을 느낌과 동시에 원자폭탄이 가져올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두려워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우라늄을 핵무기의 수준으로 농축하는 일이 당시 독일의 상황에서는 매우 무리라는 것을 알고서는 안심했다. 그는 원자력 연구의 방향이 ‘전쟁터’가 아닌 ‘연구소’로 향해지길 바랐다. 하지만 독일에서 히틀러(Hitler)가 권력을 잡으면서 물리학자 사이에 두려움은 더 커졌다. 하이젠베르크도 원자폭탄을 이용한 독일의 승리를 바라지 않았다. 한편 미국의 물리학자들은 히틀러가 틀림없이 원자폭탄을 개발해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심지어 보어는 자신의 절친한 제자이자 동료인 하이젠베르크가 나치(Nazis) 정부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에 개입했다고 의심했다.
1941년 하이젠베르크는 보어가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강연하게 되었고, 자신의 내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보어를 만나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책은 이렇게 설명했다.
불행하게도 코펜하겐에서 하이젠베르크와 보어 사이에 중요한 면담은 처음부터 꼬이고 말았다. 보어는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을 위해 열린 리셉션에서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옹호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사실,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사교계에서는, 특히 외국에서는, 개인적으로 말할 때와 다르게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보어는 전체주의 정권하의 강압적 환경에서 터득한 이중적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중략]
하이젠베르크는 독일 물리학자들이 느끼는 강압적인 압력을 이해해달라고 호소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서서히 조심스럽게 대화의 방향을 원자폭탄 문제로 돌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상대방이 같은 행동을 하기로 동의한다면 그런 무기의 제조를 막기 위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것이라고 솔직하게 선언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두 사람이 과도하게 신중한 태도로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바람에 결국 대화는 목표했던 것에서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pp. 175)
보어는 하이젠베르크의 발언을 통해 독일이 원자폭탄 제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독일 물리학자들에 대한 보어의 불신은 미국 정부에 원자폭탄을 설계해야 한다는 확실한 명분을 주었다. 진주만을 공격당한 미국의 입장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종전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원자폭탄을 선택했다.
제2의 전운이 감돌기 전에 유럽의 물리학자들은 지적인 모험을 연구의 가장 큰 목적으로 삼았다. 그때야말로 학자들의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시절’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정치 세력 간에 대량파괴 무기를 만들기 위한 경쟁이 불붙으면서 이들이 쌓아 올린 연구 성과는 원자폭탄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탄생시키는 데 활용됐다. 책은 역사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자신의 연구가 무기로 현실화하는 악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물리학자들의 고뇌와 시대적 아픔을 전달한다. 당시 과학자들이 지녔던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 과학기술의 새로운 도약을 향한 열정, 원자력의 힘에 대한 두려움 등은 가치의 우열을 가릴 틈 없이 하나의 용광로에 던져졌다. 원자폭탄은 어느 한 사람의 독창적 발명품이 아니라 혼돈의 시대가 만들어낸 현대과학의 총체였다. 이 책에 나오는 과학자들은 역사의 주인공이자 피해자였다. 혼돈의 시대는 과학자들을 연구실에서 불러냈고, 그들을 괴롭게 만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사는 냉정하다.
※ Trivia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이 점령한 코펜하겐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그는 이 일을 기화로 자연스럽게 옛 스승이자 친구인 닐스 보어를 찾아갔다. (pp. 173)
→ ‘기화로’를 ‘기회로’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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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9-04 공감(18) 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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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이면
모든 과학적 발견이 인류의 복지증진에 적극적으로 기여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아마도 과학의 역사에 있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지금도 논쟁이 되고 있는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그렇고, 그 이전의 시험관 아기, 원자력 개발, 노벨의 다이너마이트 발명도 그러했다. 인류의 과학·기술 혁신은 대부분 당대 윤리와 충돌하며 발전해 왔다. 그것은 비단 획기적인 과학적 성취를 이루어 온 20세기 이후의 과학계에만 존재했던 일은 아니다. '진화론'을 발표했던 멘델은 종교계로부터 '사탄'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으며,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역시 종교 재판정에서 자신의 주장이 거짓이었다고 말해야만 했다. 이러한 충돌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진보는 계속되었고, 인류의 절멸을 가져올 수도 있는 과학 기술의 부정한 사용을 경험하면서도 과학자들은 정치인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할 뿐 자신들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로베르트 융크가 쓴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은 미국과 독일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다룬 최초의 간행물로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미국과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핵무기 개발과 관련을 맺은 60명이 넘는 과학자들과 30명이 넘는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과학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이지만 책을 읽는 독자들은 과학자들의 사회적 책임이 과연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버트런드 러셀과 함께 반핵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던 저자를 생각할 때 책을 쓴 목적이 분명해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바이츠제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물리학자들이 하나의 가족을 이루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구성원들에게 징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제단체여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과연 그런 일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할까?"" (p.145)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전쟁이 종식된 후,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했던 과학자 오펜하이머는 피고석에 앉아 조사를 받게 된다. 1854년 4월 12일에 시작되어 꼬박 3주일 동안 계속되었다는 행정부 차원의 청문회는 원자력위원회를 대표한 로저 로브와 증인으로 나선 오펜하이머의 질의응답 형식으로 이어졌지만 그것은 마치 죄인을 취조하는 검사의 심문과 변호인의 변론처럼 읽힌다.
"내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지요. 로스앨러모스에서 나는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폭탄을 다른 형태로 만드는 것을 포함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요청받은 일은 어떤 일이라도 했을 겁니다." (p.524)
모든 역사는 승리자의 입장에서 기술되기 마련이다. 전쟁의 종식과 승리를 안겨준 원자폭탄 개발자들에 대한 기록도 다르지 않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는 것처럼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역시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물론 그 모든 게 제국주의 일본의 야욕에 의해 빚어진 일이며 전쟁의 종식과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의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원폭 희생자 중에는 징용으로 끌려간 우리나라 국민도 다수 섞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아무리 장래에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연구 분야의 추가 발전을 자발적으로 멈추고 절반만 탐구된 상태로 남겨둔다면, 그것은 현대 과학의 정신에 반하는 행동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 변화에도 불구하고, 원자 무기 연구소들에서 연구를 계속하는 행위를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새로운 근거가 필요했다." (p.286)
책에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연구 성과를 자유롭게 서로 교환하며 지내던 당시의 과학자들이 전쟁이 발발하자 독일을 탈출한 물리학자들과 독일에 남아 있는 물리학자들 사이에는 동업자 의식은 사라지고 반목과 갈등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오해의 소지는 남는다.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하여 독일에 남았던 과학자들이 도덕적인 이유로 정부 몰래 태업을 했기 때문에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기술한 대목이다. 과학사가들은 저자의 해석이 하이젠베르크의 진술을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평가한다.
"인류는 우리가 발견하고 개발한 것과 같은 새로운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장래에 이것을 파괴적 목적이 아니라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하도록 조심하는 것뿐이다." (p.287)
최근에도 어린이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우디 군에 의한 예맨 스쿨버스 폭격에 쓰인 폭탄이 미국산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미국의 사과는 없었다. 흔히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라고는 하지만 과학자들의 명예욕이나 경제적 욕구마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자의 연구가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지라도 마지막까지 그 순수성을 유지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그 이면에는 어쩌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보편적인 인간의 추악하고 더러운 속성들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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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8-08-20 공감(1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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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과학 고전!
두 사람은 태양 에너지가 가벼운 원자들의 파괴가 아니라 융합을 통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처음으로 내놓았다. 이 개념의 발전은 오늘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소폭탄 개발로 곧장 이어졌다.
물론 그 당시 원자를 연구하던 이 두 젊은 학생은 그 연구가 이처럼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p.60~61
올해 있었던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의 핵심의제는 북한의 비핵화였다. 그리고 미국 국무부는 남북이 9월 안에 남북정상회담을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한 것과 관련, 대북 문제에 대한 한미 간 공조를 강조하며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의 비핵화 문제 해결은 분리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연히 남북관계의 개선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문제 해결과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 이런 시점에 미국과 독일의 핵무기 개발과정을 기록한 최초의 간행물이었던 로베르트 융크의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이라는 책이 출간된 것은 의미 심장하다. 1956년 처음 출간될 당시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이 책은 1961년 한국어판으로 번역되었다가 절판된 후 이번에 재출간됐다. 이 책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에게 국제 사회가 핵무기를 바라보는 시각을 이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원자폭탄을 만들고 사용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과학자의 관점에서 원자폭탄의 탄생과 투하 과정까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하지만 어려운 과학 이론이나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이 난무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읽기에도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1945년 미국에서 첫 번째 원자폭탄 실험이 있었다. 산을 환하게 비춘 섬광과 함께 폭탄이 폭발하고, 거대한 화염 덩어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 오펜하이머는 이 순간 경전의 한 구절을 읊는다. '천 개의 태양의 빛이 하늘에서 일시에 폭발한다면, 그것은 전능한 자의 광채와 같으리라.'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융크는 원자폭탄의 역사에 대해 쓰면서, 이 문구를 이용해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이라고 제목을 지었다. 천 개의 태양보다도 밝은 에너지를 가졌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져서 수십만 명의 인명을 살상했으며, 냉전의 시대를 열면서 미국과 구 소련 사이의 군비경쟁을 낳음으로써 인류를 절멸시킬 위기로 까지 몰고 간 원자폭탄이란 존재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화창하고 따뜻한 어느 가을날 저녁, 두 사람은 어둠이 깔리고 나서 한참 지날 때까지 천천히 거닐면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주위에는 나무들이 높이 솟아 있었고, 산들거리는 바람은 노래를 부르며 새빨갛게 물든 가을 단풍을 잠재웠고, 졸졸거리며 흐르는 시냇물은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인류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를 파괴하거나 위태롭게 할 권리가 있을까? 1939년에 바이스코프는 실라르드와 함께 긴급한 행동을 요구한 집단의 일원이었지만, 군인에게 무기를 주면 군인은 그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유혹을 억누르기 어렵다는 교훈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p.451
1920년대 유럽의 물리학자들은 서서히 베일을 벗던 원자와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 뮌헨과 괴팅겐의 젊은 물리학자들은 원자의 실체를 놓고 논쟁을 하고 이론을 만들었고, 이들의 이론과 실험에 의해서 원자는 숨겨놨던 강력한 힘을 조금씩 드러냈다. 이 책은 원자폭탄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과학자들의 개인적인 일상과 주변의 구체적인 정황들을 보여줌으로써 당시의 시대 배경과 원자폭탄의 탄생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로베르트 융크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미국과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핵무기 개발과 관련을 맺은 60명이 넘는 과학자들과 30명이 넘는 관계자들을 인터뷰했으며, 이를 통해 이들의 개인적 경험과 견해를 생생하게 담을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원자 폭탄은 무엇 때문에, 어떻게 개발되었는지, 그 ‘악마의 일’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어떤 시도를 했는지 등등의 의문들을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해소할 수 있다.
공포 정치를 자행하는 독재 정권 하에서 독일의 핵물리학자들이 양심의 목소리에 따라 원자폭탄 제조를 막으려고 시도한 반면, 두려워할 만한 강요를 전혀 받지 않은 민주주의 국가의 동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신무기 개발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사실은 역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로베르트 융크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발견에 대한 희열로 가득했던 그들의 순수한 열정이 원자폭탄 투하라는 결과에 이르기까지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무엇을 놓쳤는가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통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과학자들은 예전부터 국가들의 안녕을 증진시키는 대신에 국가들의 상호 파괴를 위한 신무기를 제공한다는 비난을 자주 받았다. 과연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사심 없이 한 발견을 인류가 다른 목적에 사용한 용도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것일까. 제1차 세계 대전의 마지막 해인 1918년부터 동유럽 국가들이 소련을 중심으로 바르샤바 동맹 체제를 구축하면서 냉전이 심화되었던 1955년까지의 일을 그리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다. 최선의 선택이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그 아이러니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핵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에, 그 어느 나라보다도 핵무장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서 한번쯤 고민해봤다면, 핵무기 개발에 관한 놀라운 논픽션인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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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 2018-08-14 공감(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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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핵무기 개발 과정을 기록한 최초의 논픽션
"연금술사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그 비결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물질 변환'이 이제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전체 세계를 자신들의 영역으로 여긴 현대 과학의 선구자들은 변환된 물질뿐만 아니라 그런 성과에 따를 도덕적 결과까지 깊이 생각했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 발명을 통해 인류 역사를 업그레이드 한 공헌을 했지만 인류 전체를 없앨 수도 있는 살상 무기를 개발했습니다. 노벨은 유언으로 인류의 복지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수요되는 '노벨 상'을 만들어 공헌하기로 마음먹었는데요. 이처럼 과학자의 발명은 때론 명과 암이 공존하는 딜레마가 되기도 합니다.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은 핵분열 가능 이론을 발견하고 도덕적 딜레마에 고민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이들은 2차 세계 대전까지는 성과를 자유롭게 교환하고 자문을 받던 사이였지만, 전쟁 발발 후 독일 탈출 과학자와 남은 과학자 간의 분열이 생기며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특히 원자폭탄의 위험성을 경고한 하이젠베르크의 편지와 미국 물리학자들의 보고서는 새 이론 발견의 흥분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심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꼼꼼히 기술되어 있죠. 책은 1961년 번역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는데. 북한과의 화해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 속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책은 원자폭탄의 탄생 배경부터 핵을 가진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와의 갈등, 규제 협약 등 드라마틱 한 과정을 기록한 논픽션입니다. 부제처럼 우리가 몰랐던 원자과학자들의 개인적 역사를 다룬,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쉽게 써 내려간 가독성도 높으며 흥미롭게 탐구해볼 만한 벽돌 책입니다.
현재 북한의 비핵과 움직임과 관련해 다뤄볼 과학적 이슈가 많습니다. 과학자들의 사회적 책임, 양심의 호소, 그리고 무엇보다 동전의 양면 같은 과학기술, 그 미래의 인류 모습도 그려볼 수 있는 과학계의 고전이란 생각이 듭니다. 위험한 지성들의 대립과 갈등이 조금만 더 선을 넘었더라면..이란 아찔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네요.
현재 북한의 비핵과 움직임과 관련해 다뤄볼 과학적 이슈가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전의 양면 같은 과학, 그 미래의 인류 모습도 그려볼 수 있는 과학계의 고전이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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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na09 2018-08-11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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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핵무기 개발 과정을 기록한 최초의 논픽션이자
연구에 대한 열정과 도덕적 고뇌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그 시대 과학자들의
실제적인 경험을 녹여낸 20세기 과학 고전!!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은
'세상을 바꾼 과학서 4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책이다.
책이 가지고 오는 중압감만으로도 책장을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읽기에는 책의 내용이나 두께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기 때문에
마음을 잡고 앉은 자리에서 읽어나가야 한다.
마음을 잡고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어려운 용어들이 난무하는 그런 책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인간의 고뇌가 어우러지니
그냥 그들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아인슈타인은 깊이 후회했다.
"만약 독일이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하리란 사실을 알았더라면
나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았을 것이다."
니시나는 다음 날 두 번째로 히로시마행 비행기에 탑승함녀서 자신의 추측이 제발 틀리길 바랐다.
애국자로서 느끼는 슬픔 외에, 만약 이런 종류의 슈퍼무기가 정말로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다면,
오랫동안 자신과 친구 사이였던 서양 과학자들이
이제 일본인의 눈에 잔혹한 괴물로 보이리란 두려움도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 이 사건에 대해 스스로 그러리라고 생각했던 것만큼
전문적으로 반응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들은, 평소에 종교적 신앙이나 심지어 그런것에 기우는 성향조차 없던 사람들조차,
모두 신화와 신학의 언어분야에서 빌려온 단어들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예를 들면, 패럴 장군은 이렇게 기술한다.
"한낮의 태양보다 훨씬 강한 세기의 타는 듯한 빛이 온 나라를 환하게 밝혔다....
폭발이 일어나고 나서 30초 뒤, 먼저 사람들과 물체들을 세게 짓누르며 강한 바람이 지나갔고,
바로 그 뒤를 이어 강하고 지속적이고 무시무시한 굉음이 따라와 종말을 경고하면서
하찮은 우리가 지금까지 절대자의 영역에 속했던 힘들을 감히 건드리는
신성모독의 죄를 저질렀다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핵무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맞물리면서 현실이 되는 기분이다.
핵무기를 만든 사람도, 이용한 사람도,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도,
모두 인간이기에 시간이 지나도 그 속에서 자유로울수는 없는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인간에 의한 그 어떤 잔혹한 살상이나 파괴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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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정 2018-08-09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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