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베드카르 평전 - 간디와 맞선 인도 민중의 대부
게일 옴베트 (지은이),이상수 (옮긴이)필맥2005-07-01
원제 : Ambedkar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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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도 사회의 최하층민인 불가촉민으로 태어나 불가촉민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회개혁가 암베드카르의 평전. 우리에게는 생고하지만 인도에서는 간디와 네루와 함께 널리 존경받는 인물, 암베드카르의 삶과 사상 그리고 당시 인도의 정치적 상황을 그린다.
암베드카르는 힌두교를 중심으로 인도의 통합을 꾀하던 간디를 비롯한 힌두 민족주의자들의 유화적 사회제도 개선책에 단호히 반대하고 불가촉민을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성장시켜 부당한 사회적 차별과 억압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인물.
암베드카르가 활동하던 독립 전후의 인도는 물론이고 현대의 인도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옮긴이의 자세한 해설과 주석이 이해를 돕는다.
목차
옮긴이의 머리말
들어가는 글
1장 교육과 불가촉민으로서의 자각
"교육이 없으면 수드라는 황폐하게 된다"
2장 달리트의 인권을 위한 투쟁에 나서다
"우리는 브라만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브라만주의에 반대한다"
3장 민족주의자들의 양면성에 대한 대응
"간디 씨, 나는 조국이 없습니다"
4장 개종 문제 및 간디와의 대결
"나는 힌두교도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5장 계급적 급진주의의 시기
"인도 노동자들에게는 자본주의와 브라만주의라는 두 개의 적이 있다"
6장 전쟁과 평화, 그리고 파키스탄 문제
"우리는 하나의 국민이 될 수 있다. 다만…"
7장 독립 인도의 건설
"그는 마누의 법을 마하르의 법으로 바꾸었다"
8장 독립 이후의 시기
"똥 더미 위에 궁궐을 지으려는가"
9장 마지막 몇 년간
"종교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부처의 종교일 수밖에 없다"
10장 암베드카르와 달리트의 자유투쟁
"그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옮긴이 후기
암베드카르 연보
주석
본문에 인용된 참고문헌
관련서적
접기
책속에서
1932년 이후 암베드카르는 간디를 결코 진정한 개혁가로 보지 않았다. 그 반대로 간디는 카스트 제도에 묶인 힌두교의 수호자이고, 시골마을을 미화하고, 근본적 변화 없이 약간 개칠된 기존 질서의 유지를 도모하는 낭만주의자라고 그는 생각했다.
1939년에 그는 '연방제와 자유'에 관한 강의에서 신랄한 평가를 내렸다. '내 생각에 간디의 시대는 인도의 암흑기임이 너무나 명백하다. 간디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미래에서 이상을 찾지 않고 먼 옛날로 회귀한다.' - 본문 121~122쪽에서 접기
계속해서 그는 새로운 민주주의에서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수단으로서 폭력과 사티아그라하는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민주주의에 더욱 위험한 것은 전통적 스승인 '구루'를 신과 비슷한 존재로 떠받드는 인도인들의 경향이라고 주장했다.
'종교에서는 영웅숭배가 영혼을 구제하는 길인지 모르지만, 정치에서 영웅숭배는 확실한 타락의 길이고 결국은 독재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 본문 188쪽에서 접기
추천글
내가 치른 국장(國葬)
-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저자 및 역자소개
게일 옴베트 (Gail Omvedt)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으나 인도 시민이 됐다.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사회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8년 이후 인도인인 남편 바라트 파탄카르와 함께 마하라슈트라 주 남부의 소도시인 카세가온에 정착해 살고 있다. 2005년 현재 사회운동 활동가이면서 뉴델리에 있는 네루 기념박물관 겸 도서관의 선임연구원이다.
인도에 관한 책을 많이 저술했다. 지은 책으로는 <인도의 불교 -브라만주의와 카스트에 대한 도전>(2003), <달리트의 전망>(1995), <달리트와 민주주의혁명>(1994), <혁명의 재창조 -인도의 신사회운동과 사회주의 전통>(1993), <식민지사회의 문화적 도전 -마하라슈트라의 비브라만 운동>(1966) 등이 있다. 최근에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마라티어 문헌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암베드카르 평전> … 총 20종 (모두보기)
이상수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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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알리미 신청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쳤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후 최대권 교수의 지도 아래 같은 대학원에서 법사회학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한남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고, 2007년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옮겨 와 「법조윤리」, 「기업과 인권」, 「법사회학」, 「국제인권법」(일반대학원) 등의 강의를 맡아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다. 2003년 인도 방갈로르의 ‘인도 국립로스쿨’에서 방문교수로 1년간 활동했으며, 2015년 프랑스 ‘파리 제1대학’(소르본 대학)에서도 방문교수로서 연구와 강의를 했다.
‘기업과 인권’(혹은 인권경영)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한 것이 대략 2010년경부터이니, 이제 이 주제만으로도 10여 년의 연구 경력이 쌓인 셈인데, 그동안 매년 두 편 정도의 관련 논문을 꾸준히 발표했다. 물론 논문만 쓴 것은 아니었다. 법학연구소를 이끄는 동안에는 이 주제로 매년 대형 국제학술대회를 조직했다. 특히, 글로벌에서도 흔치 않은 「기업과 인권」이라는 과목을 법학전문대학원에 개설, 강의하여 현재 저자의 지도 아래 관련 학위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원생이 거의 열 명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공익적 활동으로 국가인권위원회 및 법무부의 인권경영 관련 정책 자문에 수없이 응했고, 다수의 정책 과제를 직접 주도하거나 참여했으며, 공공기관의 인권경영위원을 맡거나 인권영향평가에 참여하기도 했다.
인권경영 현장 활동으로는, ‘밀양 송전선 분쟁’을 둘러싼 공익소송에 서강대 로스쿨 학생들과 함께 참여한 것, 그리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의 산업재해 관련 공익소송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여 결국은 승소하는 데 일조한 것을 꼽을 수 있다. 한편, 전국의 공공기관, 대학교, 시민단체, 로펌 등을 대상으로 한 인권경영 특강을 60여 차례나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인권경영 확산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 책은 이 모든 연구 및 대외 활동의 총결산이다.
인권경영 이외의 분야에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서강대로 이직하기 직전 3년 정도는 로스쿨 도입 운동을 포함한 사법개혁 운동에 힘썼고, 2017년에는 법사회학회 회장을 맡아 2년간 학회를 이끌었다. 정부와도 깊이 연결되어 활동했는데, 특별히 많이 교류한 국가인권위원회뿐만 아니라, 대법원(양형위원회), 법무부(인권정책자문위원, 변호사징계위원회), 외무부, 검찰청(검찰시민위원회), 노동위원회(대전충남), 법조윤리협의회 등에서도 자문 등의 공익 활동을 했다. 그 밖에 전국의 중고등학생을 위한 진로특강도 20여 차례나 했다.
저서로 『법조윤리의 이론과 실제』(서강대학교 출판부, 2009), 『법사회학』(공저, 다산출판사, 2013), 『교양법학강의』(필맥, 2017), 『법조윤리』(공저, 박영사, 2022)가 있고, 번역서로 『암베드카르 평전』(게일 옴베트, 필맥, 2005), 『기업과 인권』(존 러기, 필맥, 2014)이 있다. 접기
최근작 : <법조윤리>,<인권경영, 세상을 바꾸는 패러다임>,<교양법학 강의> … 총 11종 (모두보기)
암베드카르는 간디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
“우리가 고양이나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고
먹을 물을 구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내가 이 땅을 나의 조국이라고 부르고
이 종교를 나의 종교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1. 서평
간디와 싸운 혁명가.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책 제목에 ‘평전’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암베드카르라는, 약간은 생소한 이름을 가진 사람의 일대기이다.
간디가 힌두교라는 큰 정신적 틀 안에서의 인도인들의 독립을 추구했다면,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의 입장에서 인도에 새로운 질서를 추구했다. 불가촉천민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 안에서 가장 낮은 지위를 가지고 있던 이들로, 말 그대로 만지는 것 자체가 불결해지는 사람들이다.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 성장과정에서 여러 멸시와 고생을 하면서 자신과 같은 불가촉천민들을 해방하고자 평생을 바쳤던 인물이다.
일견 굉장히 과격한 투쟁을 전개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암베드카르는 적극적인 입법투쟁을 통해, 또 그 자신이 국회의원으로, 정당 활동을 통해 불가촉천민들을 엄격한 신분적 제한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하지만 간디를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국민회의 측의 반발, 기득권자들의 적대활동으로 사실상 그의 투쟁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제한적으로 제제의 완화는 있었지만(공동우물의 물을 마실 수 있다던가, 저수지를 이용할 수 있다던가 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못했다. 여전히 불가촉천민이 만든 학교 급식을 먹지 않겠다고 반발을 하는 인도인 학생들이 있다는 뉴스가 해외토픽에 올라오는 것이 현실이다.
독립 후 인도의 초대 법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인도 헌법의 기초를 놓기는 했으나, 그 때는 그의 투쟁력이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후였다. 오죽하면 늘 부딪혀왔던 간디의 국민회의 측의 지원으로 국회의원 의석을 차지하고, 법무장관이 되었을까. 정적들은 그가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을 때에야 그에게 ‘자리’를 주었다. 개혁의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베드카르는 여전히 마하르들의 정신적인 지도자로 남아 있다. 열성적인 운동가, 정치가, 행정가, 종교지도자. 불가촉천민이라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유럽 등지에서 몇 개의 학위를 따 냈고, 복잡한 문제들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학술적인 연구를 통해 논문을 발표했던 학구열에는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자연과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지나치게 영적인 부분을 가볍게 다루는 그의 태도는 주의해야 할 것이다. 마치 기독교를 합리주의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던 구(舊) 자유주의자들의 시도를 보는 듯 했다. 이런 점이 그의 또 다른 한계가 아니었을까? 암베드카르는 간디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2. 종합평가
인도의 또다른 영혼
힌두교를 중심으로 인도 민족의 단결과 독립을 주장한 간디와 달리 암베드카르는 계급적 억압을 구조 짖는 힌두교를 비판하면서 불가촉천민의 단결을 주장했습니다. 철저히 소외계급에 기초해서 사회를 변혁하려 했던 그는 현실 정치 속에서 사회주의에서 사민주의로, 사민주의에서 불교로 사상적 변화를 이어갑니다. 암베드카르의 정치적 행보에 집중하다보니 사상적 깊이나 얇아졌고, 거대한 인도가 너무 작은 신생 독립국처럼 그려진 것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바람소리 2010-05-3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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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사회의 최하층민인 불가촉민으로 태어나 불가촉민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회개혁가 암베드카르의 평전. 우리에게는 생고하지만 인도에서는 간디와 네루와 함께 널리 존경받는 인물, 암베드카르의 삶과 사상 그리고 당시 인도의 정치적 상황을 그린다.
암베드카르는 힌두교를 중심으로 인도의 통합을 꾀하던 간디를 비롯한 힌두 민족주의자들의 유화적 사회제도 개선책에 단호히 반대하고 불가촉민을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성장시켜 부당한 사회적 차별과 억압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인물.
암베드카르가 활동하던 독립 전후의 인도는 물론이고 현대의 인도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옮긴이의 자세한 해설과 주석이 이해를 돕는다.
목차
옮긴이의 머리말
들어가는 글
1장 교육과 불가촉민으로서의 자각
"교육이 없으면 수드라는 황폐하게 된다"
2장 달리트의 인권을 위한 투쟁에 나서다
"우리는 브라만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브라만주의에 반대한다"
3장 민족주의자들의 양면성에 대한 대응
"간디 씨, 나는 조국이 없습니다"
4장 개종 문제 및 간디와의 대결
"나는 힌두교도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5장 계급적 급진주의의 시기
"인도 노동자들에게는 자본주의와 브라만주의라는 두 개의 적이 있다"
6장 전쟁과 평화, 그리고 파키스탄 문제
"우리는 하나의 국민이 될 수 있다. 다만…"
7장 독립 인도의 건설
"그는 마누의 법을 마하르의 법으로 바꾸었다"
8장 독립 이후의 시기
"똥 더미 위에 궁궐을 지으려는가"
9장 마지막 몇 년간
"종교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부처의 종교일 수밖에 없다"
10장 암베드카르와 달리트의 자유투쟁
"그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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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베드카르 연보
주석
본문에 인용된 참고문헌
관련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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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932년 이후 암베드카르는 간디를 결코 진정한 개혁가로 보지 않았다. 그 반대로 간디는 카스트 제도에 묶인 힌두교의 수호자이고, 시골마을을 미화하고, 근본적 변화 없이 약간 개칠된 기존 질서의 유지를 도모하는 낭만주의자라고 그는 생각했다.
1939년에 그는 '연방제와 자유'에 관한 강의에서 신랄한 평가를 내렸다. '내 생각에 간디의 시대는 인도의 암흑기임이 너무나 명백하다. 간디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미래에서 이상을 찾지 않고 먼 옛날로 회귀한다.' - 본문 121~122쪽에서 접기
계속해서 그는 새로운 민주주의에서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수단으로서 폭력과 사티아그라하는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민주주의에 더욱 위험한 것은 전통적 스승인 '구루'를 신과 비슷한 존재로 떠받드는 인도인들의 경향이라고 주장했다.
'종교에서는 영웅숭배가 영혼을 구제하는 길인지 모르지만, 정치에서 영웅숭배는 확실한 타락의 길이고 결국은 독재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 본문 188쪽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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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관한 책을 많이 저술했다. 지은 책으로는 <인도의 불교 -브라만주의와 카스트에 대한 도전>(2003), <달리트의 전망>(1995), <달리트와 민주주의혁명>(1994), <혁명의 재창조 -인도의 신사회운동과 사회주의 전통>(1993), <식민지사회의 문화적 도전 -마하라슈트라의 비브라만 운동>(1966) 등이 있다. 최근에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마라티어 문헌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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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쳤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후 최대권 교수의 지도 아래 같은 대학원에서 법사회학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한남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고, 2007년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옮겨 와 「법조윤리」, 「기업과 인권」, 「법사회학」, 「국제인권법」(일반대학원) 등의 강의를 맡아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다. 2003년 인도 방갈로르의 ‘인도 국립로스쿨’에서 방문교수로 1년간 활동했으며, 2015년 프랑스 ‘파리 제1대학’(소르본 대학)에서도 방문교수로서 연구와 강의를 했다.
‘기업과 인권’(혹은 인권경영)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한 것이 대략 2010년경부터이니, 이제 이 주제만으로도 10여 년의 연구 경력이 쌓인 셈인데, 그동안 매년 두 편 정도의 관련 논문을 꾸준히 발표했다. 물론 논문만 쓴 것은 아니었다. 법학연구소를 이끄는 동안에는 이 주제로 매년 대형 국제학술대회를 조직했다. 특히, 글로벌에서도 흔치 않은 「기업과 인권」이라는 과목을 법학전문대학원에 개설, 강의하여 현재 저자의 지도 아래 관련 학위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원생이 거의 열 명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공익적 활동으로 국가인권위원회 및 법무부의 인권경영 관련 정책 자문에 수없이 응했고, 다수의 정책 과제를 직접 주도하거나 참여했으며, 공공기관의 인권경영위원을 맡거나 인권영향평가에 참여하기도 했다.
인권경영 현장 활동으로는, ‘밀양 송전선 분쟁’을 둘러싼 공익소송에 서강대 로스쿨 학생들과 함께 참여한 것, 그리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의 산업재해 관련 공익소송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여 결국은 승소하는 데 일조한 것을 꼽을 수 있다. 한편, 전국의 공공기관, 대학교, 시민단체, 로펌 등을 대상으로 한 인권경영 특강을 60여 차례나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인권경영 확산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 책은 이 모든 연구 및 대외 활동의 총결산이다.
인권경영 이외의 분야에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서강대로 이직하기 직전 3년 정도는 로스쿨 도입 운동을 포함한 사법개혁 운동에 힘썼고, 2017년에는 법사회학회 회장을 맡아 2년간 학회를 이끌었다. 정부와도 깊이 연결되어 활동했는데, 특별히 많이 교류한 국가인권위원회뿐만 아니라, 대법원(양형위원회), 법무부(인권정책자문위원, 변호사징계위원회), 외무부, 검찰청(검찰시민위원회), 노동위원회(대전충남), 법조윤리협의회 등에서도 자문 등의 공익 활동을 했다. 그 밖에 전국의 중고등학생을 위한 진로특강도 20여 차례나 했다.
저서로 『법조윤리의 이론과 실제』(서강대학교 출판부, 2009), 『법사회학』(공저, 다산출판사, 2013), 『교양법학강의』(필맥, 2017), 『법조윤리』(공저, 박영사, 2022)가 있고, 번역서로 『암베드카르 평전』(게일 옴베트, 필맥, 2005), 『기업과 인권』(존 러기, 필맥, 2014)이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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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베드카르는 간디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
“우리가 고양이나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고
먹을 물을 구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내가 이 땅을 나의 조국이라고 부르고
이 종교를 나의 종교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1. 서평
간디와 싸운 혁명가.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책 제목에 ‘평전’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암베드카르라는, 약간은 생소한 이름을 가진 사람의 일대기이다.
간디가 힌두교라는 큰 정신적 틀 안에서의 인도인들의 독립을 추구했다면,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의 입장에서 인도에 새로운 질서를 추구했다. 불가촉천민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 안에서 가장 낮은 지위를 가지고 있던 이들로, 말 그대로 만지는 것 자체가 불결해지는 사람들이다.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 성장과정에서 여러 멸시와 고생을 하면서 자신과 같은 불가촉천민들을 해방하고자 평생을 바쳤던 인물이다.
일견 굉장히 과격한 투쟁을 전개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암베드카르는 적극적인 입법투쟁을 통해, 또 그 자신이 국회의원으로, 정당 활동을 통해 불가촉천민들을 엄격한 신분적 제한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하지만 간디를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국민회의 측의 반발, 기득권자들의 적대활동으로 사실상 그의 투쟁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제한적으로 제제의 완화는 있었지만(공동우물의 물을 마실 수 있다던가, 저수지를 이용할 수 있다던가 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못했다. 여전히 불가촉천민이 만든 학교 급식을 먹지 않겠다고 반발을 하는 인도인 학생들이 있다는 뉴스가 해외토픽에 올라오는 것이 현실이다.
독립 후 인도의 초대 법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인도 헌법의 기초를 놓기는 했으나, 그 때는 그의 투쟁력이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후였다. 오죽하면 늘 부딪혀왔던 간디의 국민회의 측의 지원으로 국회의원 의석을 차지하고, 법무장관이 되었을까. 정적들은 그가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을 때에야 그에게 ‘자리’를 주었다. 개혁의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베드카르는 여전히 마하르들의 정신적인 지도자로 남아 있다. 열성적인 운동가, 정치가, 행정가, 종교지도자. 불가촉천민이라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유럽 등지에서 몇 개의 학위를 따 냈고, 복잡한 문제들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학술적인 연구를 통해 논문을 발표했던 학구열에는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자연과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지나치게 영적인 부분을 가볍게 다루는 그의 태도는 주의해야 할 것이다. 마치 기독교를 합리주의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던 구(舊) 자유주의자들의 시도를 보는 듯 했다. 이런 점이 그의 또 다른 한계가 아니었을까? 암베드카르는 간디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2. 종합평가
인도의 또다른 영혼
힌두교를 중심으로 인도 민족의 단결과 독립을 주장한 간디와 달리 암베드카르는 계급적 억압을 구조 짖는 힌두교를 비판하면서 불가촉천민의 단결을 주장했습니다. 철저히 소외계급에 기초해서 사회를 변혁하려 했던 그는 현실 정치 속에서 사회주의에서 사민주의로, 사민주의에서 불교로 사상적 변화를 이어갑니다. 암베드카르의 정치적 행보에 집중하다보니 사상적 깊이나 얇아졌고, 거대한 인도가 너무 작은 신생 독립국처럼 그려진 것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바람소리 2010-05-3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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