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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양 스스로 이같은 생각을 하되,(每自作是念= 매자작시념)
어떻게 하여 중생으로 하여금(以何令衆生=이하영중생)
무상도(無上道)에 들어(得入無上道=득입무상도)
속히 불신(佛身)을 이룩하게 할까 하노라.(速成就佛身=속성취불신)
3천여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단좌명상(端坐瞑想) 6년 수행으로 대우주의 진리를 체득하신 이래 50년간 오로지 모든 중생 교화를 위해 근념(勤念)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법화경(法華經)은 <한량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에 성불하신 본불 석가세존의 수명론 분상에서 설하신 경전 가운데 경전, 제왕경(帝王經)입니다. 法華經은 부처님께서 어떻게 해서든지 일체 중생을 *불도에 들어오게 해서 하루라도 빨리 성불의 문에 들게 하겠다는 부처님의 깊고 깊은 *대자대비의 마음이 들어 있는 *본회경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모든 중생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전제하고 법을 듣는 중생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시는 *시기ㆍ장소ㆍ법을 듣는 상대의 근기따라 얕은 데서부터 시작하여 점차로 깊이 들어가며 설하십니다.
중생의 속성은 상대가 변변찮아 보이면, 적당히 넘겨 버리는 버릇이 있지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정도가 낮은 *방편의 가르치심을 설(說)하실 때나, 정도가 높은 *진실의 가르치심을 說하실 때나 그 마음이 항상 한결 같으십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온 정성을 다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說하시여 마침내 부처님 경지에 이르도록 說하십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은 일상일미(一相一味)입니다. 한 모양ㆍ한 맛입니다. 다만 부처님 법을 듣는 중생의 욕망과 성격이 각각인지라, 각각 자기 잣대로 듣고 달리 해석하고 나름대로 깨닫습니다. 설혹 정도가 낮은 방편의 가르치심이라 하더라도 그 낮은 가르치심 가운데 높은 가르치심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이 부처님 법입니다.
*사실단 관점(觀點)에서 경전을 읽거나ㆍ불교에 관한 책을 읽거나ㆍ할 때에도 낮은 가르치심이지마는 이것을 통해 가장 깊은 부처님 자리 <큰 하나 한세계>에 이른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실행하면 언젠가는 큰 이익을 얻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일체는 찰나입니다. 찰나가 영원으로 이어집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합니다.
매양 스스로 이같은 생각을 하되(每自作是念= 매자작시념)
<매양 스스로 이같은 생각을 하되 어떻게 하여서 중생으로 하여금 무상도에 들어 속히 불신을 이룩하게 할까 하노라>고 하신 말씀을 줄여서 <매자(每自)의 비원(悲願)>이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50년간 중생 교화를 위해서 설하신 많은 경전 가운데는, 신앙상으로 등장하는 많은 부처님과 많은 보살의 *자비가 설해 있어 중생의 신심(信心)을 모았습니다. 아미타불의 마흔 여덟가지 서원, *사십팔원(四十八願)이라든가,·약사여래의 열두 가지 대원, *십이대원(十二大願)과 같은 것은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서원입니다. 물론 경전상에는 석가세존께서 과거 보살수행시에 세운 5백가지의 대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오백대원(五百大願)도 모두가 세존의 <매자(每自)의 비원(悲願)>에 일환입니다. 어떻게 하면 일체중생을 모두 *구원하여 불도에 들 게 할 것인가를 주야(晝夜)로 마음 쓰시는 공덕으로 뒤를 이어 오는 우리들이 구제의 길이 열립니다.
특히 관세음보살의 칠난(七難)과, 세 가지 해독이라는 삼독(三毒)과, 두 가지 요구(二求)에 대한 공덕들이 불교 신앙인들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모두가 *구원실성(久遠實成) 본불 석가세존의 <매자의 비원>으로 통섭(通攝)됩니다.
어떻게 하여 중생으로 하여금(以何令衆生=이하영중생) 중생이 다겁생을 두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끝없이 되풀이 하면서 무명업식(無明業識)으로 싸여 있다 하더라도 성불경(成佛經) 法華經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성불(成佛)한다는 말씀입니다.
*법화경 제바달다품 제 12에 <축생 용녀의 성불>, 사갈라 용왕의 딸 용녀가 성불했다는 사례가 있습니다. 비록 용녀라고 하지만, 다겁생래로부터 성불수행하던 중, 인연따라 축생의 몸으로 있다가 금생에 성불인연이 무르익어 남방으로 가서 남자의 몸으로 바꾸어 성불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축생 용녀가 成佛하는 사례를 말씀하시면서까지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일체중생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전제로 한 구세경(救世經) 法華經을 說하셨습니다.
무상도(無上道)에 들어(得入無上道=득입무상도)
무상(無上)이란 위없는 도(道) ·최고의 경지, 더 이상 없는 최고의 깨달음의 자리를 말합니다. <무상도에 들다>라는 말씀은 불교 최고의 이상(理想)인 *부처님의 지혜를 얻어 일체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몸, 불신(佛身)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불신(佛身), 법신(法身)이라는 것은, 나고 죽고 흥하고 망하는 것이 덧 없고, 항상 변한다고 하는 그런 물질세계의 무상(無常)의 습격을 받지 않는 영원한 존재의 자리입니다. 미혹한 중생의 눈으로는 부처님의 몸, *법신(法身)을 볼 수 없지만, 부처님께서는 불안(佛眼)으로 중생을 다 보시고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몸으로 구제의 손길을 펴십니다.
--*아상주어차(我常住於此) 이제신통력(以諸神通力) 영전도중생(令顚倒衆生) 수근이불견(雖近而不見)이라.--곧 나는 항상 사바세계에 머물러 있어 모든 신통력으로써 *전도된 중생으로 하여금 비록 가깝게 하나 보이지 않게 하노라 --
부처님께서는 항상 우리 옆에 계시지만 우리는 미혹하여 법신(法身)을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중생이 부처님의 법신을 보게 된다면, 중생은 수행하지 않고 나태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중생의 게을러지는 속성을 부처님께서는 이미 *불안으로 아시고 보이지 않는 법신의 몸으로 우리들 일체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하십니다.
속히 불신(佛身)을 이룩하게 할까 하노라(速成就佛身=속성취불신)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나쁜 짓을 해도 불상(佛像)만 모시면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행여 불교신앙을 개인의 출세나 돈 버는 일에 이용물로 안다면 그것은 잘못 된 신앙입니다.
법화경 성불신앙이란, 착각(錯覺)에서 정각(正覺)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삼악도(三惡道)에 빠진 탐욕 중생에게 돈을 벌게 해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탐욕(貪慾)을 아귀(餓鬼)에 비유하셨습니다. 즉 아귀란 탐욕을 말합니다. 아귀는 몸체가 63빌딩만큼 큰 덩치인데도 불구하고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먹어도 양이 차지 않아 뱃속이 비였으므로 밤낮 배 고파서 헐덕거리며 고통 받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탐욕(貪欲)에서 벗어나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홍익 사랑으로 열반락(涅槃樂)을 얻게 해주시려고 *사바세계에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은 언제 어느 때 금생을 마감할지 모르는 유한(有限)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나오는 *숨은 들어오는 숨을 기다리지 않는 그러한 무상(無常)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무상(無常) 속에서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가를 찾아 영원히 사는, 상주(常住)의 원리를 깨닫게 해주겠다는 것이 본불 석가세존의 <매자의 비원>입니다.
<한량없는 과거세>에 성불하신 본불 석가세존의 수명론(壽命論) 분상에서 *일체중생구제론(一切衆生救濟論), <매자의 비원>을 떠나서는 불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교의 존재 이유는 본체 본불 석가세존의 <매자의 비원>입니다.
42년설에 등장하는 *아미타불ㆍ*약사여래--등의 모든 부처님이 각각 존재하는 줄 알지만, 실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방편불이라고 법화경 여래수량품을 통해 대선언을
하시므로써, *유유일승법(唯有一乘法), 불교 신앙의 정체성(正體性)이 세워졌음을 이미 공부하였습니다. 아미타불도ㆍ약사여래도 어떤 부처님도 석가모니 부처님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분명코 <매자의 비원>으로 대우주에는 본불 석가세존 한 분 뿐이라는 정체성이 세워졌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중생의 몸인지라, 탐욕은 아니지만, 부처님께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막문동서남북(莫門東西南北)이라, 내가 처한 바로 이 자리가 기도처라고 하셨습니다. 구태여 동서남북을 가리지 말고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지극정성으로 *대승참회(大乘懺悔)하고, 정념으로 법화경 염불독경하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승참회하고, 정념으로 법화경 염불독경을 하면 법열(法悅)이 생기니까, 법열이 생긴 바로 그 자리에서 부처님께 소구소원(所求所願)을 말씀드리고 아울러 감사기도 드리면, 바로 그 자리가 탐욕을 버리는 자리며 구제의 자리라고 하셨습니다.
*법화경 보현보살권발품(普賢菩薩권發品) 제 28에,-----*보현아, 만일 이 법화경의 가르치심을 받아 가져(受持)ㆍ읽고(讀)ㆍ외우고(誦)ㆍ바로 기억하여 생각하고ㆍ닦고
ㆍ익히고ㆍ옮겨 쓰는(書寫)자는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곧 석가모니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이 경전을 들음과 같음이라. --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공양(供養)함이니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부처님께서 착하다고 칭찬하심이니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석가모니불께서 손으로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심이 되느니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석가모니불의 옷으로 덮어 줌이 되느니라.(衣之所覆= 의지소복)
이와 같은 사람은 다시 세속락에 탐착하지 아니하며, 외도(外道)의 경서(經書)나 수필(手筆)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또는 그 사람들과 모든 악한 자의 혹은 백정ㆍ혹은 돼지ㆍ양ㆍ닭ㆍ 개를 먹이는 자나ㆍ혹은 사냥하는 자ㆍ혹은 여색을 파는 자들과 친근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이 사람은 마음과 뜻이 곧고ㆍ정직하고ㆍ바로 기억하고ㆍ생각하여 복덕(福德)의 힘이 있느니라. 이 사람은 삼독(三毒)에 뇌란되지 아니하며 또한 질투ㆍ아만(我慢)ㆍ사만(邪慢)ㆍ증상만에 뇌란되지 아니하느니라. 이 사람은 욕심이 적고 족(足)함을 알아서 능히 보현의 행을 닦으리라. 보현아, 만일 여래가 멸도한 후, 후오백세에서 혹 어떤 사람이 법화경을 받아 가져ㆍ읽고ㆍ외우는 자를 보거든, 마땅히 이런 생각을 하되, 이 사람은 오래지 아니하여 도량에 나가서 모든 마(魔)의 대중을 파하고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어 법륜(法輪)을 전하며ㆍ법고(法鼓)를 치고ㆍ법소라(法螺)를 불며ㆍ법비를 내리고ㆍ마땅히 하늘과 인간의 대중 가운데 사자법좌 위에 앉으리라. 보현아, 만일 후세에서 이 경전을 받아 가져ㆍ읽고ㆍ외우는 자는, 이 사람은 다시 의복(衣服)ㆍ와구(臥具)ㆍ음식(飮食) 등 자생(資生)의 물품을 탐내지 아니할지라도 소원이 헛되지 아니하고, 또한 현세에서 그 *복(福)의 *과보를 얻으리라.
만일 사람이 가벼이 여기고 헐어서 말하되, 너는 미친 사람이라, 헛되게 이와 같은 행을 하여도 마침내 얻는 바가 없으리라 하면, 이같은 죄보는 마땅히 세세에 눈이 없으니라. 만일 공양하고 찬탄하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이 세상에서 과보의 나타남을 얻으리라. 또는 이 경전을 받아 가지는 자를 보고서 그의 허물을 내면, 혹은 사실이거나ㆍ혹은 사실이 아니거나ㆍ이 사람은 현세에서 백라의 병을 얻으리라. 만일 이를 가벼이하여 웃는 자는 마땅히 세세에 이가 성글고 이지러지며ㆍ입술이 추하고ㆍ코가 납짝하며ㆍ손과 발이 비틀어지고ㆍ눈이 비뚤어지며ㆍ몸에서 더러운 냄새가 나고ㆍ나쁜 부스럼의 피고름이 나며ㆍ고창병에 숨가쁘고 여러 가지의 악한 중병이 있으리라. 이런 고로 보현아, 만일 이 경전을 받아가지는 자를 보거든 마땅히 일어나 멀리서부터 맞이하되 마땅히 부처님을 공경함과 같이 할지니라.
이 보현보살권발품을 설하실 때, 항하사 등의 한량 없고 가이 없는 보살은 백천만억의 *선다라니를 얻었으며, 삼천대천세계 미진 등 의 모든 보살들은 보현도(普賢道)를 갖춤이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실 때 보현 등의 모든 보살과, 사리불 등의 모든 성문과, 모든 하늘ㆍ용ㆍ인비인ㆍ -- 등의 일체 대회가 다 크게 환희하며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 가지고 예배하고 물러가니라.---고 하는 이 경문은 보현보살권발품 제 28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잠깐 ! 매자(每自)의 비원(悲願)
<매자(每自)의 비원(悲願)>은 대우주의 본체 본불의 조화작용으로 일체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하신다는 부처님의 참마음을 표출한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16의 일체중생구제 원력입니다. 어떻게 하면 중생이 불도에 들어와서 부처님의 몸을 얻게 하는가만 생각하시는 것이 한 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량없는 과거세·백천만억나유타겁에서부터 미래영겁까지>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세월을 쉬지 않고 중생 구제에만 마음을 쓰신다는 부처님의 참마음을, 법화경 여래수량품 자아게(自我偈)에 오셔서는 <매자의 비원>으로 표출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몸(佛身)은 우리의 육신과 다릅니다. 중생의 육신은 불완전체(不完全體)입니다. 자칫하면 감기가 걸리고 소화가 되지 않는다며 소화제를 먹어야하는 무상체(無常體)입니다.
우리가 法華經을 공부하고 실행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무상체에서 부처님의 몸 · 불신(佛身)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성을 쏟아서 수행하여 불신을 얻으라는 것이 법화경세계입니다. 법화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매사를 법화경의 시각으로 보고, 법화경과 우리의 삶을 링크 시켜서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인간의 근본문제에서 *해탈하라는 것입니다.
*인간팔고(人間八苦)에서 벗어나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은 영원한 자유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부처님 재세시 가전연존자가 부처님께 --어째서 중생이 고통을 받습니까-라고 여쭈니까, 부처님께서는 다겁생래에 짓고 받는 *과보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무명하여 본인도 모르게 잘못을 저지릅니다. 무릇 잘못을 저질렀으면 거듭 * 참회하고 또 참회하라는 것이 부처님 가르치심입니다.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진(百劫積集罪 一念頓蕩盡)이라·-곧 백겁 천겁을 두고 지은 죄, 한 생각 진참회(眞懺悔)로 없어진다고 하셨습니다.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이라·--시뻘건 불화로에, 눈 송이 몇 개 떨어진다 해도 흔적이 없듯이, 중생의 죄업장이라는 것은, 한 생각에 진참회하면 흔적도 없이 녹는다고 하셨습니다. 양심은 개인의 법정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잘못을 참회하고 뉘우칠 줄 알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실천에 옮기면 그것이 법화경 수지신앙이라고 하셨습니다.
분명코 석가모니 부처님의 <매자의 비원>은 탐욕 중생을 구제하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진정으로 인간이 추구할 것은 빵도 아니요ㆍ돈도 아니요ㆍ권력도 아닙니다. 오로지 성불입니다. 탐욕을 버리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어디던지 훨훨 날아갈 수 있습니다.
*롱계(籠鷄)는 다식(多食)이나 화탕근(火湯近)이요, 야학(野鶴)은 무량(無糧)이나 천지관(天地寬)이라 하였습니다. - 가두어 놓고 기르는 닭은 먹이 걱정하지 않아서 좋지만, 끓는 물속에 들어갈 날이 멀지 않습니다. 그러나 쌓아 놓은 양식이 없는 야학(野鶴)은 마음대로 창공을 훨훨 날
으며 어디를 가든지 항상 천지(天地)가 너그럽고 유유하다고 하였습니다.
*천태대사께서는--저물어 가는 허공의 구름과 ㆍ 먼동이 트는 새벽 달빛조차도 마음을 나타내는 듯 하거늘,-- 무슨 일을 하든지 어느 때라도 후세(後世)를 생각하라. 꽃피는 봄날이나 ㆍ 눈 내리는 아침에도 이를 생각할 것이며, 거센 바람이 불거나ㆍ 구름이 이는 저녁에도, 잠시도 잊어버리지 말라. 나오는 숨은 들어오는 숨을 기다리지 않는다. 어느 때인들 <매자작시념(每自作是念)의 비원(悲願)>을 잊으리오. --라고 하셨습니다.
칠난(七難) 삼독(三毒) 이구(二求)
칠난(七難)이란, ① 화난(火難) ② 수난(水難) ③ 풍난(風難) ④ 도난(刀難) ⑤ 악귀난(惡鬼難) ⑥ 가쇄난(枷鎖難) ⑦ 원적난(怨賊難)을 말합니다. ① 화난→ 집이 불타는 것, 오늘날은 방사능 사고 같은 것도 화난입니다. ② 수난→ 태풍이 폭우를 몰고 와서 문전옥답이 침수되고 가옥이 유실되는 그런 것입니다. ③ 풍난→ 태풍이나, 아프리카 해안에서 일어나는 토네이도, 강한 폭우·우박을 곁들인 회오리 바람이 나무나 사람을 휘감아서 넘어뜨리는 그러한 무서운 바람을 말합니다. ④ 도난→ 칼에 찔리거나 몽둥이로 맞어 죽거나 하는 재난을 말합니다. ⑤ 악귀난→ 집안에 우환이 생겨서 엄청난 일을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⑥ 가쇄난→ 수갑이나 족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재난을 말합니다. ⑦ 원적난→ 뜻하지 않은 곳에서 원수나 도적을 만나는 것을 말합니다.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무진의보살이 부처님께 여쭙기를, 관세음보살이 사바세계에서 어떻게 중생을 교화하시느냐고 하니까, 부처님께서는 관세음보살은 부처님의 몸으로부터 나타나서 설법하신다는 것을 비롯하여 *삼십삼응신(三十三應身)으로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고 하셨습니다.
,삼독(三毒)이란, 중생의 착한 선근(善根)을 해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을 말합니다. 이구(二求)란, 첫째 득구(得求)입니다. 재(財)ㆍ색(色)ㆍ식(食)ㆍ수(睡)ㆍ명(名)ㆍ *오욕(五欲)을 구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명구(命求), 생명을 구하여 오래 살기를 욕구하는 것입니다.
기원 전 3세기. 중원천지를 통일한 중국의 진시황제는 만리장성을 쌓고 화려한 아방궁을 짓고, 풍요한 음식과·예쁜 미희에 묻혀 향락에 도취했어도 죽음이 두려우니까 전국에 방을 붙이기를, ---늙지 않고 천세 만세 영원히 살 수 있는 불로초(不老草)를 구해오는 사람에게는 원하는대로 주겠다. 땅을 달라면 땅을 떼어 주겠다. 서쪽을 달라면 서쪽을 떼어주고 동쪽을 달라면 동쪽을 떼어주겠다. 은화(銀貨)를 달라면 은화를 주고, 금화(金貨)를 달라면 금화를 줄 것이다.-라며, 오로지 불로초를 구해오기를 바랬으나 끝내 무상(無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이렇듯 이구(二求)가 영원한 것인 줄 착각하고 욕망을 일으키는 것이 중생의 속성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비롯하여 중생의 못 된 속성까지도 모두 法華經으로 구제하려고 *사바세계에 *일대사인연, 법신(法身)으로 오시여 성불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