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7

<야생초 편지> "황대권"이 전한 '생태 공동체' - Daum 카페

늙은 전사의 노래 권총이야기 | <야생초 편지> "황대권"이 전한 '생태 공동체' - Daum 카페

"황대권" 선생님 강연 오마이뉴스 기사
<야생초 편지> "황대권"이 전한 '생태 공동체'
"대전충남녹색연합" 주관 강좌..."미국의 패권은 비극"

▲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씨
ⓒ2004 박병춘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씨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유학 생활 중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완전히 발가벗긴 채 물고문과 몽둥이 구타를 당했습니다. 이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형되어 13년 2개월 동안 감옥 생활을 하면서 야생초를 키우며 자신을 다스렸던 사람입니다. 감옥을 나와 이제는 '생태 공동체'를 지향하며 또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는 그가 지난 5월 11일 저녁 대전충남녹색연합이 주관하는 강연을 하기 위해 대전에 왔습니다.

지독한 선민의식, 정복자 의식을 가진 미국의 패권은 비극이다

황씨는 자신이 "간첩의 "간"자도 모른 채 고문을 당한 것은 동족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라크의 경우는 미국이라는 타종족에 의해 당하는 유린이기에 더욱 가슴 아프다"고 말합니다. 대학 시절부터 반체제 운동을 하고 약간은 정치 지향적이었다는 황씨는 젊은 시절 미군 부대 카투사에 근무했습니다.

그가 카투사 이등병 시절, 미군과 함께 택시에 동승했다가 미터기 요금이냐 대절 요금이냐를 놓고 미군과 택시기사가 실랑이를 했는데, 억지를 펴는 미군을 보며 택시 기사에게 요금을 줄 것을 말했다가 무장 해제를 당하고 헌병대 영창으로 끌려갔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1970년대 중반 그의 군생활은 미군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바른 소리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벌로 지독하게 추운 겨울날 연병장에 참호를 두 개 파고 다시 묻으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다른 미군 병사들이 자신을 조롱하는 가운데 단단하게 얼어버린 땅이 곡괭이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이를 악다물고 울면서 꽁꽁 언 땅을 팠습니다.

자기 나라 땅에서 자기 나라 택시 기사를 위해 한 행위가 명령불복종 죄가 되어 벌을 받아야 하는 울분을 삭이며 참호를 팠고, 무덤 두 개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원상복구를 했습니다. 그는 수첩을 꺼내 "양키고홈"이라는 문구를 쓰고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200년 역사에 전쟁 150회, 베트남전을 빼고 패배을 맛보지 않은 종족, 그토록 지독한 선민의식과 정복자 의식을 가진 종족이 지구상에 패권을 쥐고 있다는 것이 인류의 비극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이라크 전 포로 학대는 그들의 그러한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단면이라고 안타까와합니다. 더구나 우리가 그들의 문명을 뒤쫓고, 패권주의를 뒤쫓고, 선민의식을 닮아가는 것은 답답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한국 문화는 구원 받은 문화

그가 출옥하여 1년 남짓은 산속에서 농사를 지었고, 2년 정도는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 머물렀습니다. 공원이나 박물관으로 유명한 영국에 머물면서 수많은 박물관을 견학했는데, 세계 각국의 유물을 보며 우리 한국 문화는 구원을 받은 문화임을 느꼈다고 합니다.

세계 각국의 현란한 문화 유물들이 전시된 대영박물관은 입장료가 무료입니다. 그것은 그들 나름의 제국적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파르테논 신전 유물을 비롯하여 이집트 문명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는 각국 유물을 보며 정복자나 착취자의 자기 전시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전세계의 소소한 유물을 다량으로 전시하고 있는 한 박물관에 갔을 때, 다양한 다른 나라 유물에 비해 우리 한국관은 한 기업에서 협찬한 정도의 소규모 유물이 전시된 것을 보며 그는 희망과 구원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우리 문화 유산은 드러나지 않은 듯 드러나 있으며, 멋이 없으면서도 멋이 있는 것이어서 지배자나 정복자의 문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세계 문명은 지배와 정복, 착취가 아니라 생태학적으로 인류학적으로 문명의 양태가 달라져야 한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자가 치유"는 21C 문명의 키워드

그는 박정희 정권때부터 대한민국의 유니폼을 다 입어 보았습니다. 교복, 교련복, 군복, 예비군복, 민방위복, 죄수복 등 군사주의와 전체주의, 싹쓸이 문화를 경험했습니다. 농학도로 출발했으나 정치를 바로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정치학에 심취했습니다. 그는 미국 유학 중 어느 날 갑자기 간첩이 되어 온갖 고문으로 골병이 들었고 수감 생활 6년만에 죽음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죽지 않고 사는 법은 없을까? 그는 망가진 몸을 추스리기 위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자가 치유"를 개발했습니다. 그는 이 자가 치유를 통해 병든 몸을 고쳤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야생초를 기르며 자가 치유를 하였습니다. 수많은 야생초꽃에 벌과 나비가 어우러져 새끼를 치고 번식하는 과정을 보며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야생초로 물김치를 해먹고, 차를 달여 마셨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여 야생초를 그리면서 스스로 야생초가 되고 대상과 하나가 되는 무아의 경지를 느꼈습니다. 파리와 모기 등 작은 생명체의 세계관을 인식하면서 생태학 교과서 한 권 읽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태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생태주의란 우주의 축소판인 자기 자신의 몸부터 다스리는 일입니다. 이 우주 안에서 내 몸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깨닫는 과정에 야생초는 존재했습니다. 그는 그러한 자가 치유를 통하여 단 1년만에 그 많던 병치레를 극복하였습니다. 그리고 1991년 이래로 지금까지 단 한 알의 약도 몸에 넣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맑게 하고 몸으로 견디다 보면 자연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자연 치유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명은 갈수록 자연 치유력을 떨어뜨립니다. 현대 문명은 우리 인간에게 병 주고 약을 주고 있습니다. 지구 전체가 문명에 의해 깨지고 있습니다. 생산과 소비 속에 끊임없는 재생산을 반복하는 것이 자본주의 원리입니다. 지구 자원의 한계 속에 지구 멸망은 시간 문제인 것입니다. 대안은 없을까요?

"생태 공동체"는 문명의 대안이다

그는 인류 문명의 발전은 생태주의에서 출발한다고 말합니다. 생태주의는 인간의 기본 이념이며 인간이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사는 한 생태주의는 기본 상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생태주의적 사고 방식을 토대로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자연과 사람에 대한 희생과 파괴를 강요한 것이 국가주의입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경쟁에 맡겨 결국 힘센 사람이 독식하게 되는 것이 개인주의입니다. 그는 국가주의와 개인주의의 중간 단계를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마을(Village)"을 사회 발전의 기본 단위로 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생태계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공생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물론 도시 안에서도 아파트 공동체, 생태 공동체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태 공동체를 건설함에 있어 걸림돌이 있다면 토지 구입의 어려움이라고 합니다. 진정으로 땅이 필요한 사람들이 땅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미 투기꾼들의 발길이 닿아 있고, 토박이 마을 사람들의 배타적인 감정도 문제라고 합니다.

그가 말하는 생태 공동체는 이상향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꿈꾸는 생태 공동체의 구체적인 모습을 아직 볼 수는 없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야생초 편지를 쓰며 터득한 생태주의가 어떻게 실현될지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깨끗이 몸을 다스려 오줌을 받아먹었다는 요로법으로 유명한 그가 감옥에서 나온 후 잠시 오줌 먹는 일을 멈추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도시 생활 속에서 더러워진 몸을 추스려 요로법을 이어가고, 하루라도 빨리 그가 꿈꾸는 생태 공동체를 건설했으면 합니다.

차디찬 감옥 안에 피어난 이름 모를 풀 한 송이, 고문 후유증과 감옥 스트레스, 내면의 화로 인해 망가진 몸을 고쳐준 야생초는 그에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생명 안에 깃들어 있는 신성을…. 이제는 감옥을 벗어나 생명 공동체 운동가로 살아가는 그의 녹색꿈을 엿봅니다.

* 생태공동체센터 홈페이지 www. commun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