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성자들] 원불교 레겐스부르크 교당스탑나우 교무 전북 익산시 원광대학교 캠퍼스 정문 왼쪽, 기와로 된 돌기둥을 지나니 원불교 총부가 보인다. 그 앞에 바람에 펄럭이는 “평화를 생산하는 한 해가 되자”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온다. 새해인사로 복을 받기보단 복을 짓는 평화가 더욱 간절하다는 뜻일까. 스탑나우 원법우 교무님을 만나러 독일까지 가려고 마음먹었던 참에 운좋게 한국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내려온 길. 마주앉으니 처음 만나도 처음 같지 않은 사람이다. 모든 걸 비운 듯 느긋한 만면에 미소를 머금어 천진난만하다. 그러나 있어야 할 자리에 당당히 있는 사람처럼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치고 몸가짐에선 강한 확신이 배어 나온다. 법명이 원법우(圓法雨), 독일 본명은 페터 스탑나우(Peter Stabnau)다. 1957년 도르트문트 근처 멘덴에서 태어났다. 바이에른으로 이사했을 때 한국 유학생을 만나 원불교를 처음 접했다. 이후 한국 땅 밟기를 수십번, 1996년부터 정식으로 익산 총부에서 4년간 교육과정을 마치고 2002년 출가식 후 교무가 되었다. 그 후 고향인 레겐스부르크로 돌아가 자신의 집을 교당 삼아 원불교 포교를 하고 있다.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교무님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를 불교로 이끌고, 결국 불교를 전파하게 만든 배경에는 ‘전쟁’이라는 차가운 현실이 있었다. “공군 조종사였던 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에 나가 싸우다 큰 부상을 입고 돌아왔어요. 전쟁의 참혹함을 아버지를 통해 배우게 되었지요. 어린 마음에 ‘전쟁은 파괴하고 아프게 하는 것’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11살 위인 형마저 또 군대에 불려 가자 전쟁이 정말 미웠어요. ” 교무님이 불교에 더욱 끌린 것도 불교는 성전(聖戰)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따른다. 히틀러나 조지 부시가 단 5 분간만 명상을 했어도 전쟁은 안 났을지도 모른다며 권력자들에게 인과응보의 이치를 전하고 싶어한다. 힘있는 자들이 이 단순한 진리를 알면 전쟁은 없을 것이라며 씁쓸한 미소로 어린 시절의 아픔을 마감한다. 문득 전생을 기억하느냐 물으니 놀라운 답변이 돌아온다. “독일인으로 태어났지만 난 독일 문화, 음식, 언어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어요. 꼭 외계인처럼 살았지요. 나 자신 전생에 한국사람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까지 혼란 속에 성장했어요. 꿈을 꾸면 항상 얼굴에 가면을 쓰거나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춤추는 사람들만 자주 보였어요. 한국 와서 보니 꿈에서 본 그것들이 바로 굿과 탈춤이었고 된장, 김치, 나물 음식냄새에 내 전생이 완전히 되살아나기 시작했어요.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도 이미 익숙해 자연스러웠지요.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기억을 모조리 되찾은 사람 같았어요. ” 이어 전생의 일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해인사에 갔을 때 절 입구에 있는 비석을 보고 ‘여기가 내 집이었구나’ 했는데 지금은 없어진 옛 화장실 터까지 기억났고, 해인사에 60년 사신 노스님이 그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그 이후 자신의 고향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외계인에서 한국인으로 돌아와 드디어 마음이 정착되었다 한다. 교당이 있는 레겐스부르크는 뮌헨에서 동북쪽으로 120km 떨어진 인구 14만의 작은 도시로, 98%가 가톨릭 신자인 고도(古都)다. 이 교당에서 교무님은 매주 한 번 법문을 하고 매일 좌선시간을 열어 정신수양으로 마음공부를 하며 사리연구·작업취사를 한다. 전체 50여명 되는 신도는 불교에 관심도 있지만, 세상에서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에 해답을 구하는 사람들이라 한다. 독일 신도들로부터 무슨 질문이 많은지, 원불교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또 원불교가 다른 불교와 다른 점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묻자 교무님의 반응은 의외였다. “이 불교, 저 불교 차이를 두고 구별하지 않아요. 개인적으로는 불상을 모시지 않는 것이 좋아 일원상(一圓相·윈불교의 근본이 되는 가르침을 형상화한 것)에서 진리 자체를 마주 대하지요. 단지 부처님이 신격화되어 기도의 대상으로만 보는 점이 안타까워요. 원불교는 부처님 가르침 있는 그대로, 처음의 본질로 들어간 생활 불교라고 할까요. ” 화제는 다시 전쟁으로 돌아갔다. 문득 자신과 같은 사람이 없어야 한다며 슬픈 얼굴을 한다. 무슨 뜻인지 몰라 긴장하는 순간에 교무님이 한 구절로 풀어준다. “나 같은 성직자와 군인이 없는 세상, 거기가 극락일 거예요. ” 군대가 없으면 전쟁이 없고 성직자가 없으면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다는 증거라 한다. “내가 아는 한, 행복을 거머쥐는 데 한 가지 방법이 있어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불평불만이 없어요. 일원상 법신불로 쉽게 풀면 사은(四恩)이 있지요. 천지의 은혜, 부모의 은혜, 동포의 은혜, 법률의 은혜를 생각하면 조건 없이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네 가지나 있으니 감사해야지요. ” 지금 교무님은 원불교 경전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교전만큼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것도 없기에 현재 진행 중인 번역을 빨리 마치려 한다. 덧붙여 나오는 교당의 기타활동에는 한국문화를 알리는 전도사 역할도 있다. 중·고등학교 종교시간에 불교를 대표해 나가 강의도 하고 한국요리 강습도 한다. 매년 원광대학에서 한의사를 초청해 한의진료를 하고 그 보답으로 원광대 ‘동그라미 재활원’을 위해 전 독일 규모의 자선 음악회를 열어 후원도 한다. 교무님에겐 두 가지 소망이 있다. 장차 독일 청소년을 위한 원불교 교육기관을 세우는 것과 남북한이 독일처럼 통일되는 것이다. “대종사님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했어요. 사람들이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살지만 이젠 정신을 개벽할 때입니다. 변하고 사라지는 물질은 절대로 행복을 주지 못해요. 가지면 또 가져야 하니까요. 욕심은 그 정도로 끝내세요.난 또 한 사람의 스승을 만났다. 원불교는 1916년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가 개교해 한국에서 뿌리 내린 민족종교이다. 생활불교, 대중불교의 기치를 내걸고 교화·교육·자선을 핵심 사업으로 불법을 펴고 있다. 국내 15개 교구, 550여개 교당과 180여개 기관, 국외에 5개 교구, 14개국 51개 교당, 9개 기관이 있다. 서울, 부산, 익산에 라디오 원음 방송국을 개국했고, 현재 한방 위성 방송을 설립 중이며, 평양 빵 공장 설립, 캄보디아 무료 구제 병원 개원, 6개의 대안 중·고등학교 운영, 미주 선학대학원 설립, 21개 국어로 교전번역 작업을 진행 중이다. 원불교 독일 레겐스부르크 교당 Eigenheimweg 23 93051 Regensburg, Germany 전화: 094195372 팩스: 0941947718 [출처] 푸른 눈의 성자들(꼰솔라따 수도원)|작성자 youraisemeup |
2016/12/11
나미의 종교 이야기 : 원불교 스탑나우 교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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