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역사의 의미
역사의 의미
1981.9.24 ' 9월회의' 일본 동경에서 세계 정신지도자 대회에서 하신 강연.
<오시다(押田成人) 신부(神父)의 소개말>
제가 함석헌님을 소개 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습니다만…
제가 처음 함석헌 선생님을 만나 뵌 것은 「禅(선)과 기독교 간담회」에서였습니다.
약 십년 전의 일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와 친하게 지내던 독일의 평화운동가에게 함 선생님을 소개 받은 것을 계기로 「禅(선)과 기독교 간담회」 에 참석하게 되셔서 저희들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부터 선생님의 존함은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다”라고 단순히 말씀하시기 때문에, 일본 정부로부터 여러 가지로 박해를 받으셨습니다. 그래도 민중의 입장, 시민들의 입장에 서서, 진정한 정신적 생명(精神的生命)을 살아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생님을 「한국의 간디」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진실된 분이십니다.
<강연>
저는 북한에서 태어났습니다. 조선 또는 한국이란 두 이름으로 계승되어 둘로 분열되어 있지만, 원래는 조선이었습니다. 저는 조선에서 태어나 지금은 서울시에 살고 있습니다. 1901년생 입니다.
여러분과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소개를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되도록 간단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퀘이커교도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해서 퀘이커가 되었는가라고 하길 래, 거기에 대한 답변으로 조그마한 책자를 썼습니다. 그 책자 이름이 좀 재미있습니다.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서(Kicked by God)』 라는 책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혼자 생각해 보아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성공한 일이 하나 없이 전부 실패만 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삶이 “실패의 연속이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인가 하면 저는 많이 생각하는 타입의 인간으로 행동을 많이 하는 타입의 사람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일은 다소 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시종 “글쎄”,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라고 말입니다. 확신이라고 하면 확신은 있지만, 막상 그것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려 할 때면 “글쎄” 하며 주저하곤 합니다. 여든 살이 된 지금도 시종 이런 걸림돌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 생각 저 생각 등으로 주저하고 있으면 주위의 사정으로 할 수 없이 그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발에 채여서 거기까지 오게 된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한의사였습니다.
조선에서 평안북도라고 하면 작물 경작을 주업으로 하는 일본의 시골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태어날 당시, 조선은 정치적, 종교적 모든 면에 있어서 타락한 상태였습니다.
청일전쟁은 내가 태어나기 직전에 일어났고, 4살 아니 5살 되는 해에 러일전쟁, 9살 되는 해에 나라가 망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장한 나는 80살이 된 지금까지 평안한 날이 별로 없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은 다행이도 서해 바닷가 조그만 농촌이어서, 나라가 망해가던 당시로는 비교적 평화로운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지역의 종교는 오랜 세월 동안 전통적으로 불교와 유교가 혼합된 것으로 그러한 종교는 활력이 없었습니다. vital force(활력). 그런 요소가 없었습니다. 그런 시골에 기독교가 들어왔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 그렇게 아주 동떨어진 시골에 기독교가 들어왔다는 것은 당시로는 아주 예외적인 일로, 기독교가 그렇게 빨리 들어온 곳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때부터 기독교 교육과 서양 지식, 민주주의적인 주장 안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런 관계로 저는 어렸을 때부터 민족주의, 내셔널리즘이 강했습니다. 그렇지만, 태어나면서 점잖은 성격으로 나쁘게 말하면 활발하거나 활동적이지 못했습니다. 용감하지도 못했습니다. 나라가 망해가는 지경에 태어났기에 그것이 나에게는 아주 강하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11살 때부터 강제적으로 모두 일본말로 교육을 받았기에 일본어는 '제2의 모국어'가 되었습니다.
대학 교육은 동경에서 받았습니다. 그 때, 우치무라 선생님의 집회에 참가하게 되어 저의 신앙생활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건 1923년, 동경 대지진이 있었던 때였습니다.
저의 소년 시절 때, 자기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경험을 겪었으니 보통이라면
매우 배일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 일반적인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저는 태어나서부터 점잖은 성격이라서인지, 일본에 대해 배일적인 감정을 가졌던 기억이 없습니다. 일본인이 싫었지만 증오한 적은 없었습니다.
또한,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신앙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것은 일본에서 우치무라(内村鑑三)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였습니다.
처음으로 우치무라 선생님의 집회에 참석한 날, 우치무라 선생님은 예레미야서 강해를 하고 계셨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의 생애를 말씀하시면서 선생님은 “이것이 정말 애국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나는 두 길을 앞에 놓고 망설이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기독교를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서는 사회주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는 한국을 구하기 위해서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기독교 신앙을 지향할 것인가를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기독교로 나라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으나, 시대 풍조가 공산주의 쪽으로 기울어져 공산주의를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면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사범학교을 졸업하고 귀국한 이후, 10년간 오산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제가 직업에 종사했던 전부입니다.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중국을 침입한 후, 태평양 전쟁에 돌입했던 시기에는 교단에 계속 서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힘들어서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 두 번 정도 감옥에도 갔습니다. 제가 적극적으로 행동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말하자면 사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일본의 정책은 조선인을 모두 일본인으로 만들려고 하는 정책인데, 그것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감옥에도 다녀왔습니다.
한편, 세계 제1차 대전이 끝난 것이 제가 17살 때였습니다. 그때에 영국의 H・G・웰스의 『역사학 개요(Outline of History)』를 읽고 사상적으로 큰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 책을 읽은 이후, 저는 사상적으로는 아직까지도 코스모폴리탄(세계주의자)입니다. 역사를 보는 면에서도 이전과 꽤 달라졌습니다. 그 이후, 태평양전쟁이 시작되고 종전이 되었습니다.
전쟁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전쟁이 끝나면 세계 역사는 아주 크게 변화 할 것이라고, 지금까지의 전쟁은 국경을 변경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전쟁이 끝나면, 이 정도가 아닌 인류사회 그 근본이 변화할 것이라고…. 그렇게 되면, 종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종교는 변화하는 사회의 뒷모습만 쫓아갈 것인가? 당시, 나의 생각은 물론 종교는 그 진정한 의미로 볼 때에, 문명에 앞서가야 할 것이 당연하지만, 이번에는 아마 그렇게 되지 못 할 것이라고…. 기독교, 불교, 힌두교, 마호메트교를 포함한 종교 전반을 포함해서 말 입니다.
왜 이 새 문명을 리드 할 수 없을까? 그 이유는 현대의 종교는 모두 국가주의와 깊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되어집니다.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저는 거기에 각주를 답니다. 내셔널리즘을 한자로 번역하면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국가주의, 또 하나는 민족주의입니다. 민족주의는 괜찮습니다. 나쁜 것은 엄격한 의미로 말한다면 statism(국가주의, 정부주의) 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제 이야기의 중심점은 이것입니다. 지금까지 제 생각은 이것이었고 지금부터도 이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지금 현재 세계사에서 여러 나라가 직면한 문제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국가의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국가라는 것은 인류를 성장케 하기위해서는 매우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국가는 초등학교 선생님, 또는 후견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 국가라는 것이 없으면 인류는 지금 같은 성장점까지 자라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는, 성장할 수 있었어도 그 성장은 지금보다 더 늦어졌을지 모릅니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말 한다면, 국가지상주의 이것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발전합니다. 조직은 고정되어지면 변화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자라난 시대에는 국가 없이는 성장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이 국가보다 더욱 성장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국가란 제도는 국가지상주의가 계속되면 인간의 성장을 방해하게 됩니다. 지금 자유주의나 공산주의로 나누어져 있지만, 양쪽 다 국가주의란 점에는 다른 게 없습니다. 양쪽이 싸우고 있을 때에도 저는 이데올로기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 왔습니다. 지금은 이데올로기 등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데올로기가 달라도 양쪽 모두에 국가지상주의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사회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국가가 정말 인간의 논리적 생활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주의에 빠져있습니다. 그렇기에, 장래의 문제를 생각하면 우리들의 국가관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정치 없이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이상주의라 하더라도 불완전한 인간인 이상, 바른 의미의 정치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는 단체조직이 절대 권력을 가지고 지배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와 떨어질 수 없는 것이 경제문제입니다. 국가가 지배주의를 버리지 않으면 동시에 경제적으로도 같은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지금의 경제는 아주 거대한 대규모 경제로 원료(原料)가 되는 지하자원을 확보해 이것을 이용해 시판상품으로 판매하기 위해서는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는 세계의 자원이 평균적으로 저장되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제와 국가는 밀착되어져 있어, 국가는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 설 수 없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국가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여기에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인류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진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그것은 오시다 신부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무엇인가 기술적인 것에 의해서는 해결되지 않고, 그 해결은 반드시 정신적・도덕적인 방면으로 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명확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하면 당연히 종교에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현재 문명화된 종교란 종교는 모두 국가주의와 밀착되어져 있습니다.
‘나라를 버리고도 나는 종교를 위해 순교한다.’ 라는 정신이 정말 살아있는가라고 말한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기독교인이므로 기독교인의 지식으로 말씀 드리지만, 기독교에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지만, 과연 기독교가 모든 것을 다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실제로는 거의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신앙의 문제뿐만 아니라, 믿음과 함께 현실의 문제를 연구해서 거기에서 비판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한 지식이 없습니다. 여기에서는 다만, 인간이 인간인 이상, 그 속에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바 입니다. 인간이 인간인 이상, 꼭 자기가 만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국가, 모든 종교가 과연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신앙적으로는 믿지만,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긍정적인 답변을 할 실력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그 다음에 당연히 오는 문제가 ‘그래도 당신은 종교를 믿는가?’ 라는 것입니다. 순서가 우왕좌왕이 되었습니다. 먼저 말씀 드려야 했는데, 저의 종교적 입장은 보편종교입니다. 종교의 본질은 파고 들어가면 똑같습니다. 「하나가 되는 신앙」 입니다. 인류의 장래를 생각하여 「그래도 너는 믿을 건가?」라고 묻는다면, 「믿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인류는 그 문제에 걸려 낙제돼 멸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나는 믿는다고.... 왜냐하면, 생명은 반드시 이 세상만이 생명의 전부가 아닙니다. 나는 이 세상이 끝난 다음에도 또 다른 생명이 있다고 믿습니다. 지구 위에 우리들이 경험하고, 알고 있는 이 생명이 유일한 생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이외에도 얼마든지 생명은 있을 수 있습니다. 있다고 단언하지는 못 하지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각오는 이 인류가 멸망해도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여유가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King of king(왕 중의 왕), King of heaven(하늘의 왕) 이라든가, 서방정토(西方浄土)라고 하는 것은 이런 시각에서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우리 인류의 결단의 문제입니다. 개인으로서의 신앙은 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물론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이 지구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책임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만일 되지 않는다면 다음에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의 종(種)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도 현재 그것이 제일 중요한 중점적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저의 지식이 협소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서양에서 근세에 들어올 때에, 문예부흥, 르네상스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장래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번에는 현재 가지고 있는 우리들의 고전을 새롭게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서양의 지금까지의 고전은 거의 모두 이용되지 않았거나, 오히려 동양의 고전을 연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식은 실제로 빈약하고 제한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바가바드기타』를 다시 한 번 읽어보기도 하고, 노자, 장자 등을 읽어 보고 생각해 보곤 합니다. 노자와 장자 등은 그런 마음으로 읽어보면 우리들에게 매우 도움이 되는 사상의 발아(萌芽)가 트일 것 같이 생각되는 것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꽤 길어지므로 여기서 제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질의응답>
오시다 신부; statism(정치 경제의 국가 통제주의, 국가 주권주의)에 대해서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국가 통제주의는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되는데, 선생님의 기나긴 고난의 생활의 결론인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함석헌;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그런 생각은 한국의 우리들의 역사를 깊이 생각해 본 결과, 나온 결과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두 아시다시피 한국은 조그마한 반도입니다. 조선 반도라고 불러도 좋고, 한반도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지금은 비극적으로 반쪽으로 나뉘어져 사람으로 말하면 허리가 잘린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하나의 반도, 하나의 민족, 하나의 도덕을 가지고 같은 말, 같은 풍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천 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민족입니다. 한마디로 한다면, 지금까지 수천 년의 역사 중에, 많은 시간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다소 역사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연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그런 것을 생각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전쟁은 거의 모두 국내에서 한(韓)민족이 살고 있는 그 영역 내에서 싸워 온 전쟁으로 정복하려고 밖에 나가 싸운 전쟁은 거의 없습니다. 서쪽에는 큰 중국이란 나라가 있어서 거기서 통일된 힘이 넘쳐날 때에는 시종 동쪽을 침략했습니다. 일본에서부터 침략해 온 적도 있었고, 북쪽에서는 만주족(만주에는 여러 작은 민족이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러시아가 북쪽에서 침략해 온 적도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제까지 역사 초기에는 남만주, 북만주에서 시베리아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소 민족이 살고 있었던 것이, 모두 없어지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 한민족입니다. 예를 들면, 조금 이전에는 여진족이 있었습니다. 중국 평원을 침입, 점령해 청(清朝)이라는 나라를 세웠지만 3백년 후에 멸망했습니다. 지금은 여진족이란 민족은 거의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게 보면, 한(韓)민족만 유일하게 남아있습니다. 그 점이 기이한 점입니다. 다른 것과 비교해 보면, 토지의 크기로 보아도 비교도 안 되는 그런 민족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지, 그러나 오늘은 그런 것을 자세하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제 자신이 역사를 옛날부터 지금까지 연구해 오면서 얻은 결론을 여러분께 말씀드리려 합니다. 그 역사라는 것은 사실은 제가 30살 때, 겨울이 되면 무 교회 신자들이 십여 명 모여 겨울 세미나를 했는데, 거기서 무릎을 맞부딪치고 앉아 함께 기도를 하면서 이야기한 것 입니다. 그것이 뒤에 책으로 출판 되었습니다. 지금은 일본어로도 번역되어져 있습니다.(金容鉉訳『苦難の韓国民衆史』新教出版社)。
처음, 제가 그 역사를 쓰던 때는『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그 외의 사람들도 매우 기쁘게 읽어 주셔서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 기독교적인 것만 고집하기는 싫어, 조금 넓은 뜻으로 책의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뜻으로 본 한국역사』라고 했습니다.
「뜻」이라고 하는 것은 저의 역사철학입니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어떤 민족이 지내온 사건, 그것을 기술한 것 입니다. 서양역사에서는 되도록 그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파악해 그 맥락 즉, 원인과 결과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역사를 기술하는 목적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와는 다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중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조금 전에 오시다 신부가 언급하신 것처럼, 역사에는 이벤트도 필요하지만, 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학자들은 객관적 사실에는 개인의 의견을 넣지 않는 것이 진실 된 객관적 사실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한 의미로 볼 때 객관적이란 것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저의 생각입니다. 누군가의 '주관'이란 필터를 거치지 않은 사실이라고 말을 하지만, 그 사실은 언제나 선택된 사실인 것입니다. 모든 사실을 모두 완벽하게 기술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가 성립되기 위한 중요한 사실만을 선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주관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사건에 부딪히면, 그것에 반응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어떤 일정한 반응을 한 이 후에도, 전체의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를 생각합니다. 그 사실의 해석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뜻'이라고 바꿨습니다.
참 죄송한 말씀이지만, 때에 따라서 저는 '하나님'이란 이름 대신에 '뜻'이란 말을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영어의 meaning 입니다. Meaning 안에는 어떤 사실의 '뜻' 이라는 것도 있고, '의지', will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역사가 가지는 의미는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믿고 있는 종교의 교리, 또는 의식, 제도와 과학이 서로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신앙을 희생하더라도 과학의 쪽에 섭니다. 제가 믿는 교리와 교의 때문에 과학을 반대하는 일은 비겁한 일입니다. 이러한 신념이기 때문에, 비과학적인 태도를 취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또한 민족의 한 사람이기에 민족의 전통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딜레마에 빠져 역사를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었으나 정직하게 사실 그대로의 역사를 살펴보면, 청년들을 실망하게 만들 수도 있는 비관적인 역사가 되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역사는 실패가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피한 일이 많아서 말하자면 항간의 영광의 민족의 역사라든가, 그런 것은 거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런 주장을 하라는 역사가들도 있지만, 저는 굳이 그런 비겁한 일은 할 수 없었습니다. 보았으니 가르칠 수밖에 없고, 가르쳐서 학생들을 비관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끝에 머릿속에 번쩍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로 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죽으셨다, 그것이 인류의 구원이란 원리입니다. 그것이 밖에서 보면 33살의 청년이 한 번에 실패한 것으로 끝난 역사입니다. 더군다나 그것은 창피하고 아주 많이 괴롭힘을 당한 그런 사건이었으나, 그것이 세계 모든 사람의 구원이 된다는 그 원리, 즉 이스라엘 역사의 배경이 된 메시아 개념, 그것을 역사 안에 넣을 수는 없을까? 한 민족에 그것을 적용할 수는 없을까? 거기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성서의 입장에서 본 한국역사란 즉, 고난의 예수가 구원자로서 영광의 예수가 되는 그 원리를 민족역사에 적용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낸 것입니다. 그제야 처음 안도의 숨을 쉬고, 10년간 계속해서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국 역사를 쓸 때,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역사가가 어떠한 주관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의 시점이 어떠한 것인가가 확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나는 기독교 신자이기에 그리고 또한 그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연구한 성과보다 진정한 의미로서의 역사철학은 성서뿐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경과된 후, 그 점을 조금 수정 했습니다. 성서 만에 역사철학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편협한 교파적인 생각은 아닐까? 조금 깊은 생각, 넓은 마음으로 읽어 보면, 힌두교의 철학에도 역사철학이 존재하며, 공자, 맹자, 중국철학에도 역사 철학은 존재하므로 다른 종교에는 역사가 없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성서를 주장하면 안 된다고 생각되어, 넓은 마음으로 「뜻」이라고도 해보고 「의지」라고도 해 보았던 것입니다.
만일, 그 뜻으로 한국의 역사를 보면 어떨까? 예를 들면, 음악이 있다고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음악을 지도해 가는 키노트 즉 기조(基調)가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를 음악으로 예를들자면, 그 기본이 되는 키노트는 무엇일까? 기조는 무엇일까? 그 결론이 즉 고난, 창피하지만 이 고난의 진정한 의미를 파헤쳐 가면 오히려 예수의 고난이 인류의 구원이 된 것과 같이, 그런 역사의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역사를 썼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여러분과 만난 것은 처음이지만, 이에 상관치 않고 마음을 열고 장래의 인류를 위해 서로 대화를 하는, 이런 경우에는, 제일 먼저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초면에도 불구하고 『Kicked by God』란 소책자를 여러분께 나눠 드렸던 것입니다.
한국 역사는 한 마디로 고난의 역사입니다. 왜 고난의 역사인가 하면 한(韓)민족 자신의 결점, 그것은 사심(私心)이 강한 탓이지만, 세계인류 전체의 고난을 짊어지는 고난입니다. 왜냐하면 한국 역사는 중국 민족을 빼놓고는 쓸 수 없습니다. 또는 러시아 민족, 만주에 거주하던 그 많은 민족, 지금은 미국, 러시아, 세계 여러 민족이 행한 것을 빼놓고 한국의 역사를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인류전체의 고난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또 조금 넓게 말하자면, 우리는 옳았었다, 틀렸다, 맞고 그름(是非), 선과 악 등을 말하지만, 세상에는 개인적 선(善)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의미를 부정하고 무시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도 순수한 개인의 악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도둑이라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 그 안에 도둑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 안에 있는 도둑은 이것은 천 년, 이천 년의 것이 아닙니다. 인류 이래, 몇 만 번, 몇 십만 번을 반복하고 있는지 모르나, 모두가 해 왔던 일입니다. 간디가 13살에 부인과 결혼, 아버님이 위독하셔 돌아가시려 하는 밤에 부부가 함께 동침한 것을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간디가 부인과 결혼준비를 하고 있을 당시, 결혼하면 이렇게 여자를 대하는 것이라고 자기 형수님이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부인에게는 누가 가르쳐 주었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가르쳐 줄 필요가 없습니다. "태어나기 전에 카르마를 통해 몇 만 번도 반복해 왔던 것이므로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이다." 라는 것이 간디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선악과 옳고 그름은 모두 그런 역사적이며 진화적인 것으로, 나 혼자 되어 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악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서 성립 하는가, 선이라는 것은 어떻게 성립 하는가, 하는 것을 뿌리 깊게 알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그 유명한 가라지의 비유의 교훈도 그것입니다. 좋은 씨를 뿌렸으나, 자라난 새 싹들을 보면 가라지가 자라나 있습니다. 제자들이 “선생님, 이 가라지를 모두 뽑아 버릴까요?” 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아니다, 너희들은 이 가라지를 뽑으려다가, 알곡까지 뽑아 버리게 된다. 이 일은 너희들이 할 수 없다. 마지막 날까지 기다려라. 그러면,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그의 천사들로 하여금 알곡은 알곡 단에, 가라지는 가라지 단에 완전히 분리해 심판하실 때가 올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천사, 또는 하늘의 심부름꾼을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된 이후의 즉, 다음 시대의 인간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만, 어쨌든 선악 모두 개인적인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종족적이고 민족적인 것이며, 폭 넓게 이야기 하자면, 인류전체가 하나이므로 당연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이 체험하는 속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 철학, 여러 역사, 여러 사상이 과학까지 포함해서 한국에 전해졌지만, 우리의 지리학적 위치가 그렇기에, 우리 민족은 예부터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한국에 이익을 주기 보다는 해를 끼치는 점이 많았습니다. 유교는 좋지만 한국은 유교의 폐해로 말미암아 멸망했습니다. 불교가 전해져 와 한 때는 아주 왕성했기에 불교의 좋은 영향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만, 그 폐해로 말미암아 삼국시대가 끝나게 되었습니다. 근세에 이르러 민주주의라는 것이 한 때는 매우 좋은 사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일본은 이 민주주의에 의해 낡은 껍질을 벗어버리고, 근대국가 일본성립에 성공하였습니다만, 그것이 한국에는 오히려 역사를 새롭게 하기 보다는 그 폐해로 인해 결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말씀 드리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어쨌든 그런 의미로 우리들의 잘못이 근본이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이것은 세계인류 모든 죄를 짊어진 결과입니다.
저는 물론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을 그렇게 봅니다. 만일, 인도 사람이라면 당연히 인도는 세계의 죄를 짊어졌다고 결론적으로 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사람이라면 일본도 세계의 죄를 짊어졌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야기가 본론에서 좀 샛길로 샛지만, 그것을 태평양전쟁 초기에 역사로 집필해 '사상이 불건전하고 일본 총독부의 정치에 반대하는 자'라 하여 잡혀 감옥에도 갔었습니다.(1942년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를 게제한 성서조선사건 등으로 미결수로 1년간 복역했다). 당시, 담당 검사의 배려로 한국에서 일본에 소환되지 않고, 결국에는 제소되지 않고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담당 검사가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 시간에는 나를 세워놓고 “당신은 한국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고 했지. 만일 그렇다면, 결국 인류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에 나는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이 재미있습니다. “그럼, 그 관점으로 일본의 역사를 한 번 써보는 게 어떤가.” 라고 하면서 서로 웃으며 헤어지고 석방되었던 일이 있습니다. 물론 내가 일본인이라면 멋있게 일본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라고 쓸 수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볼 때, 고난의 역사처럼 동양에서 영광의 역사는 없다고 생각되어 집니다만, 저의 관점으로 보면 일본의 역사도 고난의 역사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앞에서 내 개인이 아니라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호언장담한다면, 한국은 실로 지금까지 고난에 처한 민족입니다. 왜 고난을 당하는가 하면, 세계의 죄를 짊어졌기에 성경에 나오는 세례요한이 걸어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적하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 고 말한 그 그림이 시종 눈에 어른거립니다. 한국은 영국처럼 해가 지는 토지가 없는 나라를 만들자 라든가, 중국처럼 동양의 주인인양 큰 나라가 된다는 가능성도 없습니다. 미국처럼 지금 현재 매우 풍요로우며, 또한 세계를 이분(二分)해서 러시아와 함께 싸울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될 자격조차 없습니다. 먼저는 위치가 그렇고 천연자연을 보아도 그렇고, 어떤 점으로 보아도 그런 대국은 될 수 없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의 이상은「大(큰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도 이전에는 대일본 제국이라 칭했었습니다. 영국도 대영국이라 말했었습니다. 모든 나라가 모두 「大」, 그 국가주의의 목적은 절정에 서서 세계를 정복하려는 이상, 즉 국가주의 입니다. 그것이 민족 지상주의, 혹은 국가지상주의, 혹은 absolute nationalism(절대 민족주의), 뭐라 말씀드려야 될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문제, 그런 점에 있어서 우리는 처음부터 그런 경우에 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잘못해서 그런 사람을 부러워해서 우리들도 그러한 문명, 그러한 나라를 건설하고 싶다고, 사람의 뒤만 계속 따라가려는 생각을 가지고 한국은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요점이었습니다.
근본부터 잘못된 국가주의, 거기에서는 국민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국가라는 것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국가는 괴물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민족은 모두 역사의 처음을 보면 왕권신수설(王権神授説), 즉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동양에서도 왕의 위치에 올라가는 사람을 천자(天子)라고 하늘의 아들,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으로 부른 것처럼, 그 때는 국민을 압박, 착취하는 그런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점점 발전해 가면서 처음에 있었던 종교적인 면은 점점 약해지고, 종교와 정권이 완전히 분리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국가는 결국 괴물이 되어 국민은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고 일컫게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사회에서 국가처럼 그렇게 큰 우상은 없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지위에 오른 것처럼, 모든 인간을 자기 밑에 고개 숙이게 하는 그런 국가적 우상 말입니다. 어느 나라를 가서 물어보아도 그들은 언제나 정의라고 주장하며 국민에게 행복을 약속합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그런 것은 온 우주의 주인이며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것인데, 그런 것을 어느 국가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것이 잘못된 국가지상주의 입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그것이 벽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모순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이 아닌 것을 정말인 것처럼 자기의 지식과 자신의 역량과 자신의 힘, 그런 것으로 지배하고 있는 나라인데, 꼭 하나님으로부터 정치를 위임받은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가지고 있던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현재의 국가는 어떠한 국가이든 경쟁하지 않고는 보존해 나갈 수 없습니다. 죽기까지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성으로 전쟁은 결코 없어질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나는 물론 평화를 외칩니다. 전쟁을 없앤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없어지든지, 그렇지 않으면 전쟁을 없애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보통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결코 그들은 전쟁을 끝내지 않습니다. 이 국가라는 것이 바뀌지 않으면 말입니다.
그런 때에,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말입니다. 젊었을 당시, 저의 주장을 말씀 드리면, 현재의 종교는 모두 국가와 야합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실제로 좋지 않은 말입니다만, 성경 말씀에 지금의 종교는 사탄의 비밀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사탄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서로 떨어지지 못하는 상태에 처해져 있기에 어떻게 해서든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먼저 구원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사회의 어느 종교도 그 특징은 「세계구원」「인류의 장래를 구하는」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명목상으로는 그럴 수도 있지만, 자기의 세계를 구원하는 명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데에 있는 것이고, 실제적으로는 세계를 구원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종교는 하나도 없는 것처럼 저에게는 보입니다. 그것보다도 어떻게 해서 이 물질적인 문명, 국가지상주의의 안에서 교회 자신을 보존해갈까 하고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급급한 종교입니다. 적극적으로 세계를 구원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생기 있는 종교라는 것은 강물의 흐름이 적을 때부터 그런 것처럼, 처음부터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한다는 강하고 고상한 사명감을 바탕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생기 있는 종교의 힘이 없다는 것은 어느 종교도 모두 성장해 노년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생생한 힘이 없는, 그래서 당연한 결론으로 새로운 종교가 필요하다, 물론 종교라는 것은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변화한다든가 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므로 그 현상의 세상에 있어서는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반드시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종교가 살아있는 종교이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혁명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제도가 그만 경직되어 버렸습니다. 거기에다가 문명의 이 세상에서는 이것도 경직되어 자기 자신이 스스로 개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먼저 말씀드린 것처럼, 국가주의와 밀착되어 야합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생사를 같이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종교가 필요합니다. 종교의 근본원리에 새로운 것이 있으리라 만무하지만 영원보편의 진리를 현시대의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새로운 말씀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종교는 어느 때의 시대에도 모두 자기의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가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시작했을 때에는 '율법'이란 것이 그 말씀이었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을 때에는 '믿음으로만'이란 말이 그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게 같은 진리이면서도 그 진리의 체계가 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초점이 언제나 필요합니다. 현대에 있어서는 그 초점을 잡아 어느 누구도 그것에 반항할 수 없는, 곧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는 그러한 힘을 가진 종교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이미 성장이 완성되어, 꼭 저와 같이 생의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늙은이처럼, 늙어 나이가 들어버린 것 같은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초점, 다른 말로 하자면, 현시대의 말씀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종교를 주장하지만, 새로운 종교는 만들면 안 됩니다. 종교라는 것은 위로부터 부름을 받는 것이지 누군가가 인간의 지식과 인간의 어떠한 규율을 통해 만들어 내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만들어내려고 하는 마음을 갖지 아니하고 정말 기도하는 심정으로 자기 자신을 뺀 인류의 장래를 기원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계속해 나가겠다는, 어떠한 시기에 다다르면 우리들은 그 계시를 받게 되겠지요. 어떠한 진짜 종교도 모두 처음에는 계시로 시작되는 것으로 인간이 만든 종교는 아닙니다. 지금의 현 세계, 다른 것은 몰라도 한국에는 특히 인간이 만든 종교가 많이 나옵니다. 새로운 진정한 종교가 필요하지만 거짓 종교가 많다는 것은 진정한 종교를 원하는 아주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게 된 후, 저는 비상한 희망을 가졌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와 같이 인도주의, 평화주의가 높아져 가리라고 생각했으나, 속았습니다. 왜 속았나?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은 그동안 매우 고등한 기술이 발달되어 그로 인해, 제1차 세계대전 후와 같이 인도주의가 고양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그러한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저 자신은 한국의 고난의 역사를 짊어지고 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러한 궁지에 자기가 처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가주의에 반대한다는 결론은 그 때부터 시작된 것 입니다. 어쨌든 모두 서로 간에 개인이나 자기 나라뿐만 아니라, 인류의 장래를 함께 생각해 그것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가 된 오늘날, 여러분과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인간이 무엇이든지 기쁨이나 슬픔이나 나눌 때에 우리들의 마음은 매우 열려져 가고, 힘을 쓰며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올 때부터 매우 큰 기대를 가지고 왔지만, 이런 모임이 생각하기보다 실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매우 흔한 일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장래를 보면 하루나 이틀, 10년이나 20년에 될 것 같은 문제가 아닌 듯 합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이런 상태에서 인간은 지금까지 자기가 해 온 것이 너무나 끔찍해서 이 국가주의를 버리지 않으면 그 결과로 멸망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저는 그러한 것을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그래도 오로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인간의 인간성을 믿고 있는 이상, 희망은 버리지 않습니다.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는 것은 인간은 비관할 자격을 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살해서 문제가 해결되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렇지만 하나의 민족도 자멸하는 것으로 인해 문제가 해결되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보다 괴로운 경험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아, 그리고 자기가 희생될 각오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살아가는 길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으므로 이 정도에서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박수)
조금 전에 너무 급하게 서둘러서 아마도 제가 말씀드린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우셨으리라 생각되어 덧붙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지금까지 대국주의(大国主義), 국가절대주의(国家絶対主義)가 세계 각국에서 팽창하고 있을 때, 우리들은 말하자면, 창피하게도 참패하여, 패배한 국민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정직하게 한국 내에서 역사를 가르칠 때에는 우리나라를 세계의 하수도로 비유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세계의 쓰레기장이라고 비유할 때도 있습니다. 나이들은 창녀라고 비유할 때도 있구요. 이러한 창피한 역사가 오히려 플러스가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계속해서 세계를 지배하려고 했던 대국주의가 패배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상 계속 유지할 수 없는 때가 되었기에, 뒤에서 처졌던 나라가 「뒤로 돌아,앞으로!」를 해서 반대 방향으로 전진하면 플러스가 되는 것처럼, 그러한 상태에 처해져 있는 것이라고, 이것이 저의 역사를 보는 관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여러 나라에서 오신 여러 종교 관계자 여러분과 만나는 이러한 모임은 저에게는 처음입니다. 오시다 신부님이 처음에 말씀하신 것처럼, 크게 역사의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땅 밑 지하의 이러한 모임이 좋은 모임인 것 같습니다만, 이것이 이번 모임에서 받은 저의 소감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음에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말씀드리지만 저는 제 자신이 보편종교라고 떳떳하게 말씀 드리는 바 입니다. 옛날처럼 저희들의 종교가 제일 뛰어난 종교라고 하는 그런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종교라도 모두 진리 그 자체라고는 오히려 말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진리를 체득했지만은, 이것이 전부라고 자신을 절대화 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가 자기를 절대화하는 일이 없도록 종교도 자신을 절대화하는 일은 하면 안 됩니다. 이러한 뜻에서, 이렇게 많은 분이 참석해 주셔서 각각 자기가 하기 좋은 형태로 묵상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으로는 종교 혼합주의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다른 종교를 존경합니다. 다른 종교를 존경하지만, 여러 종교를 혼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2016.11.5 번역 박현숙
박현숙(朴賢淑)
* 일본 관서학원대학 (関西学院大学) 신학부 졸업(1992).
* 관서학원대학 대학원 신학박사(2012).
* 일본 오사카 여학원 대학 부교수(기독교학,철학 2014- ).
* 박사논문: “연재논문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통해 보는 함석헌의 씨알사상 성립과 그 전개에 관해”
1992-1996 남미 파라과이 델 에스떼 감리교회 한인이민자 및 원주민 사역.
1998-2001 일본에서 재일 대한 기독교회 오사카 영광교회 사역.
2001-현재 부군 조영철 목사와 재일 대한 기독교회 오사카 북부교회 사역.
1981.9.24 '9월회의' 일본 동경에서 세계 정신지도자 대회에서 하신 강연.
저작집30; 없음
전집20;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