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9

남편, 자식과 접촉 끊고 1천일 수련 끝에 깨달음 얻은 문화영 2000 여성동아

마이다스 동아일보[매거진:여성동아12월호] 2000
문화영(文花英)1951~2012 (age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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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자식과 접촉 끊고 1천일 수련 끝에 깨달음 얻은 문화영

"수련을 하면 누구나 신선이 될 수 있습니다"
□ 글· 안영배(신동아 기자)


“황진이, 이율곡, 신사임당, 서경덕, 이지함 등은 모두 선계(仙界) 수련을 했던 선인(仙人)들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우주의 선계나 다른 별에서 기적(氣的)인 존재로 살아 있으며, 후손들인 우리도 선계 수련을 하면 이들 선인과의 만남이 가능합니다.”

‘기공수련’이 아닌 ‘선계수련’이라는 독특한 수련법을 보급하고 있는 한 수련단체의 파격적인 주장이다.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영계(靈界)보다 한차원 높은 선계(우주를 다스리는 곳)가 존재하고, 위에서 말한 인물들은 육신의 옷을 입고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문득 자신이 선계 출신이었음을 깨달아 선계수련을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수련법을 주창하는 이 단체의 이름은 ‘수선회(樹仙會)’·선도(仙道)의 나무를 가꾸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또한 놀랍게도 이 수련단체의 지도자는 올해 마흔아홉살의 주부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수련단체 중 여성이 수련 지도자로 나선 전례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 창덕궁 앞 원서빌딩의 수선회 수련장소인 수선재(樹仙齋)에서 수련 지도자 문화영씨를 만났다. 뜻밖에도 문씨는 산속에서 수행해 득도한 뒤 그 뜻을 펴기 위해 하산했을 것이라는 분위기는 별로 풍기지 않았다. 조용조용한 말씨에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도시의 아줌마’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는 대학 동창생인 공무원 남편과 살고 있으며 사회 초년생과 대학생인 두 딸을 두고 있다.

그의 이력을 봐도 수련생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문씨는 1951년 함남 원산 앞바다 모도에서 출생해 1·4후퇴때 월남한 피난민 출신. 전쟁중에 아버지를 잃었지만 어머니(85)가 이화여대 출신이어서 비교적 학구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 강원도 원주와 춘천에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뒤 73년에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홍일점으로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의 사회활동 경력도 화려하다. 대한적십자사에서 국제협력 전문 인력으로 일했고, 적십자간호전문대학에서 교양영어 강사로, 국회에서 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83년에는 한국여성개발원 창립멤버로 들어가 6년간 국제협력담당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해외를 내집 드나들 듯이 했다.

하지만 89년 그는 미련없이 직장생활을 그만두었다. 이유는 당시 단전호흡을 배웠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수련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 오늘에 이르게 됐다.


남편과 성관계는 물론 자식과도
접촉하지 말아야 하는 고난도 수련

― 남보기에는 화려한 직장생활까지 집어치울 정도로 수련이 재미있던가요?

“수련에 맛을 들이고 나면 재미있긴 하죠. 그런데 수련이란 자신의 본성(생명의 근원 자리)을 찾아가는 힘든 일이에요. 외롭고, 서럽고, 미아 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그 원인을 자신 속에서 찾아보려 할 때 수련이 시작되지요. 그런 구도심이 너무나 강렬해 저는 직장까지 포기했습니다.”



― 결혼한 여자가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산속으로 들어가 수련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왜 수련을 산속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수련은 산속에서나 도심에서나 마찬가지예요. 저는 집에서 수련했습니다. 집에 있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수련하기가 더 좋아요. 여성 생활이 예전에 비해 훨씬 편리해진데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없는 집안에서 홀가분하게, 여유롭게 수련할 수 있잖아요. 오히려 남자들은 직장 생활에서 스트레스받느라 수련하기가 더 힘들지요.”

문화영씨는 여성들이 수련하기가 더 좋아진 것은 우주의 기운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까지는 양(陽)이 지배하던 시대로 모든 것이 남성 위주였는데, 양과 음이 균형잡히는 시대가 되면서 그간 침체됐던 음의 기운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문씨는 자신이 여성의 몸으로 ‘선계 수련의 안내자’가 된 것도 이런 기운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 한 수련단체의 지도자가 되기까지 수련에 남다른 인연같은 건 없었나요?

“저는 나이 삼십이 넘어서야 기를 알고 도의 바다로 향하게 됐지요. 처음에는 저 역시 수련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헤맸습니다. 어느 선원에 나가 기수련도 해보고 중국 용정에서 온 조선족 여기공사에게서 특이공능(特異功能;특수한 기공 능력)을 배우려고 수련하던 중에 내게 영적(靈的)인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전부터 누군가가 나를 보살펴주고 있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데, 바로 그 분이 선계의 스승인 천강선인(天降仙人)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과의 텔레파시 대화가 통하기까지 많은 수련이 필요했고, 결국 그 분으로부터 선계수련의 맥을 전수받았던 것이지요.”

말하자면 문씨에게는 처음부터 육신을 가진 스승이 아니라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선계의 스승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 스승과 초능력으로 알려진 텔레파시로 대화를 나누며 수련법을 전수받았다는 것이다.



― 집에서 그런 수련을 하면 남편과 아이들이 좀 이상하게 보지 않던가요?

“남편이나 아이들은 제가 직장생활하는 것을 좋아했고 ‘이상한 세계’에 빠져드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직장을 그만두고서도 식구들이 없을 때나 새벽에 수련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식구들도 제가 수련하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지요.”

문씨는 94년에 본성을 만나기까지 선계의 스승으로부터 ‘금촉(禁觸) 지감(止感) 수련’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금촉수련이란 일상생활속에서 부부간 성관계는 물론 자식을 포함해 그 어느 누구하고도 기운을 섞지 말아야 하는 최고난도의 수련법이고, 지감수련이란 사람의 감각적인 면을 모두 차단시키는 수련을 말한다.

문씨는 그것을 90년부터 시작해 무려 1천일 이상 실천해야 했다. 말이 1천일이지, 3년 내내 가장 가까운 사이인 남편과 자식들을 소 닭보듯이 무심하게 보아넘기는 식으로 기운을 섞지 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수련은 자신을 맑게 가꾸고 다듬어나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지만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속가(俗家)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가족들의 어떠한 행동에도 반응하지 않는 겁니다. 사실 수련을 하다가 너무 힘겹게 느껴져 울기도 했습니다. 또 수련 중에 악령(惡靈)들이 나타나고 남자들이 나타나 저를 유혹하기도 했어요. 이 모든 것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 수련하는 사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남편은 3년간 어떻게 참고 지낼 수 있지요?

“남편은 매우 일이 바쁜 곳에서 공직자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묘하게도 그 3년간 남편은 더 바빴고, 술을 엄청나게 마셔댔습니다. 술을 연거푸 마실 때는 집에 2, 3일 씩이나 안 들어오면서도 연락도 없었습니다. 옛날 수련하기 전의 저 같았으면 왜 연락도 없이 안 들어왔는지 악착같이 따져서 어떤 대답이든 받아냈을 텐데, 수련하는 동안에는 일절 묻지 않았습니다.



― 딸들은 어땠습니까?

“그때 아이들이 고등학교,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금촉 지감 수련 중에 연락도 없이 밤 늦게까지 안 들어오는 때가 종종 있었어요. 저는 아이들이 거짓말하는 것을 듣기 싫어서 ‘몸 건사 잘해라’라고만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매우 철저한 성격이라서 아이들도 철저하게 관리해왔는데 완전히 풀어놓은 셈이지요. 그것은 아이들이 내 분신이 아니라 내 몸을 빌려 태어난, 독립된 별개의 영체(靈體)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들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영체들이지요. 홍신자씨가 자기 딸이 자신보다 영성(靈性)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듯이, 요즘에는 영성이 뛰어난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하면 거짓말을 하게 되지요.”

문씨는 이렇게 수련하는 동안 남편과 아이들을 모두 풀어놓아도 가족들이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밖으로 나돌아다니지 않고 집에서 수련을 하거나 공부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보이지 않는 고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아내가 집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으면 남편과 아이들이 밖으로 나돌게 마련이라고 한다.



― 딸들이 공부는 잘 했습니까?

“딸 선생님들이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한다고 해요. 저는 참 공부를 잘 한 편이었는데, 두 딸들을 보니까 현생에 공부하는 인연이 아니었습니다. 큰 애는 쉬운 말로 딴따라 기질이 있고, 기운이 그쪽으로 쏠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 방면으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 동의했습니다.”

문씨는 수련을 하면서 가족들의 전생을 파악했다. 따라서 아이들에게도 무리한 기대를 하지 않았다.



― 1천일간의 수련 끝에 본성을 만났다고 했는데,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94년에 본성을 만난 이후 스승인 천강선인도 떠나셨고, 지금까지 혼자 계속 수련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수련을 한 이후 제도권으로부터 이탈한 삶을 살다보니까 심한 좌절감과 소외감이 닥쳐왔어요. 늘상 수련만 하고 살 수도 없었고요. 다행히 문학수업으로 돌파구를 찾아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라디오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하며 계속 수련중

그는 <현대문학>을 통해 늦깎이 희곡작가로 등단했으나 희곡은 쓰지 않고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1995년 KBS라디오 ‘KBS무대’로 데뷔한 후 그해 KBS라디오 광복50주년기념 특별기획인 <다큐멘타리 홍범도>를 집필했는데, 이 작품은 1996년 제23회 한국방송대상에서 라디오드라마 부문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사회생활로 돌아와서도 재기에 성공했던 것.

이후에도 그는 KBS라디오 드라마(50회)와 KBS라디오 사회교육방송 드라마(37회)를 집필했고, KBS라디오 한국외교비사 <남북외교의 시작과 끝>(90회)을 집필했는데 이 작품은 KBS가 선정한 1997년 상반기 라디오부문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1998년부터는 KBS라디오 다큐멘터리 국회속기록을 집필중인데 <가족법 개정 40년>(42회)과 <돈과 명예는 함께 갖지 말라:공직자재산등록>(52회) 등의 작품이 있다.



한편 그는 방송작가로 활동하면서도 선계 수련 체험기인 <선계에 가고 싶다>에 이어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들>(6권)을 집필, 수련계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선계에 가고 싶다>는 책을 읽은 사람들이 문씨에게 수련을 배우고 싶다고 간청해 오늘의 선계수련모임인 수선회가 98년에 탄생했던 것.



재미있는 점은 수선회의 수련장인 수선재 외부에는 우주 기운을 지구의 주파수에 맞게 바꾸어주는 안테나가 달려 있고, 내부에는 수련생의 수련을 도와주는 기(氣) 방석이 설치돼 있다는 것이다. 이 안테나와 방석은 천기(天氣) 및 우주 기운과 그에 따른 정보를 송수신하는 장치라고 한다. 그런데 수련에 필요한 안테나와 방석은 기적(氣的)인 물건이므로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또 문씨가 99년에 펴낸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들>이란 책에는 문씨가 선계 선인들과 텔레파시 통신을 한 내용들이 기록돼 있다. 이 중에서 여성으로서 선계의 선인인 황진이, 신사임당과 나눈 문씨의 통신기록을 보면 재미있다. 먼저 조선시대 기생으로 이름을 떨친 황진이는 자신이 인간 세상에서 기생이라는 신분을 가진 것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저의 할 일은 지상에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파장을 좀더 가까이에서 느껴보고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양가의 규수로는 불가한 일이었으므로 인간의 파장 중 가장 솔직한 답이 나오는 곳을 찾아다녔던 것입니다. 그래서 천민에서 수도승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성스러움과 속됨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모두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스케줄은 고급 차원의 수련법으로서 상당히 신속한 진도를 볼 수 있습니다.”

황진이는 자신을 사모하다가 죽은 총각의 상여에 옷을 던져 준 이후, 자신이 선계 출신으로 지상에 공부하러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한편 신사임당과 그의 아들 이율곡 역시 대선인이었다고 한다. 신사임당은 율곡 선인의 청에 의해 지상에서 모자관계의 인연으로 나오게 됐다는 것. 특히 신사임당은 어려서부터 호흡법을 알아 일찍이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있었으며, 이를 율곡에게 지도해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신사임당이 남긴 시(詩)·서(書)·화(畵)는 우주의 파장을 전하기 위한 도구였다고 한다.

현재 문씨가 이끄는 수선회는 출범한 지 1년 만에 회원들이 1백50여명으로 불어나는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했고, 진천에다 폐교를 구입해 야외 수련장까지 조성했다.

그렇다고 수선회가 아무나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선계 수련에 몰두할 수 있는 사람들만 받아들인다는 것. 즉 혼자 수련을 해나갈 수 있도록 정서적으로 독립해 있고, 자기 몸을 남한테 의탁하지 않고 관리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남한테 신세지지 않는 정도의 세가지 여건을 갖춘 사람들만 회원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수선회 회원들은 수련에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수련단체에서 수행하다가 갈증을 못 이겨 찾아온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수선회는 그 운영도 독특하다. 이 단체의 회원들이 직접 살림을 챙기고 꾸려나간다. 회원들 사이에서 선출된 1년 임기제 임원들이 회원 관리나 회비 등 수선회 운영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자체적으로 꾸려 나간다. 선생님인 문씨는 수련 지도 외에는 모임 운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씨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수선재에서 빠져나왔을 때, 기자는 선계에 놀러갔다가 지상으로 다시 하강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로 이상하고 흥미로운 체험을 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