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진보] 연찬: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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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곡 글
[인간의 역사를 대긍정하는 입장에서 보면 인류사는 자유확대의 과정입니다. 평화적인 발전은 물론이지만, 대립과 투쟁으로 점철되어 보이는 것마저 어떻게 보면 거칠게 정(正)반(反)합(合)으로 진행되는, 끝이 열려 있는 나선형 진화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는 거칠게 나아가는 과정은 인류라는 종(種)의 멸망까지를 내다보게 합니다. 그것은 인류의 엄청난 행위능력 때문이지요.
그러다보니 과거 성인에게나 가능했던 대화, 소통, 진리탐구와 실천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삶 속에, 정의를 추구하는 사회적 실천 속에 현현(顯現)되어야하는 시대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물질적 진보는 이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단계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인간의 최고의 의식을 무아(無我;에고로부터의 해방)에서 찾고, 그것이 모든 고등종교의 목표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이제는 그것을 사회화해야 되는 것이지요.
이것을 우리는 무어라 이름 붙이기가 어려워 연찬(硏鑽)이라고 부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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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찬이라하면 무슨 무슨 연찬회라는 이름의 모임들도 많지만, 아마도 우리가 사용하려는 의미는 20세기의 걸출한 인물인 일본의 야마기시에 의해서 정의(定義)된 연찬과 가장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영위(零位)에서의 철저(徹底)구명(究明)”을 말합니다. 어떤 선입관이나 고정관념 그리고 단정(斷定)이 없는 가운데, 진리를 철저히 밝혀 가는 방식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 야마기시 사후(死後)에 많은 사회적 물의마저 일으킨 실현지 중심의 실천 방법 때문에 보통 사람들에게는 권하기 힘든 특수한 소통 내지 의사결정 그리고 탐구와 실천의 방법처럼 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실 연찬(硏鑽)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연찬방식이라는 것은 야마기시의 독창적 창조물이 아니고, 이미 저 빛나던 축(軸)의 시대 모든 성인들에 의해 창시된 이래 계속 진화해 온 인류 지혜의 축적된 소산이라는 관점에서, 보편적인 내용으로 사용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 명칭을 그냥 사용하기로 했습니다.(더 좋은 이름이 있다면 언제든 바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공자와 소크라테스, 원효, 야마기시와 최근의 일본 스즈카에서의 실험들 그리고 제가 접한 것만 해도 파커 파머, 에크하르트 톨레, 바이런 케이티 같은 서양 사람들에 의해서도 끊임 없이 발전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누가 옳은가?’하고 서로 따지는 지금의 토론문화로부터 ‘무엇이 옳은가?’하고 함께 탐구하는 연찬문화로의 진보는 평화롭게 새로운 세상으로 이행하는 중요한 초석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이기적이고 차가운 사회를 넘어서려는 마을공동체운동이나 협동운동의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는 것에서도 여실히 보여지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는 이른바 진보 운동이 그 고질적인 분파주의를 넘어서 진정으로 새로운 비전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그 바탕이 ‘내(우리)가 옳다’는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전혀 근거없는 확신에 바탕을 둔 토론 문화가 아니라, ‘내(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나(우리)의 감각기관에 의해 파악된 것을 나(우리)의 뇌가 저장하고 있는 정보에 의해 판단한 것일 뿐으로, 진실 그 자체와는 별개“라는 자각을 바탕으로 한 연찬 문화에 의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연찬이라는 방식을 여러 운동 나아가 삶 속에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 가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