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함석헌 선생을 생각한다
최근 불거진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접하면서 문득 함석헌 선생이 떠올랐다. 함석헌, 그는 누구인가? 현재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는 어떤 인물로 기억되고 있는가? 필자는 함 선생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그 분을 지척에서 모신 것도 아니고 그분의 종교적 신념이나 씨사상에 매료돼 깊이 연구한 것도 아니다. 개인적인 기억이라면 대학생 시절 종로에 있던 흥사단 강당에서 연설하실 때 한 번 먼 발치에서 뵈었던 것이 전부다. 그렇지만 1970년대 암울했던 유신독재시절 불굴의 용기로 혈혈단신 독재에 대항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함 선생은 진정한 선비정신과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준 분으로서 한국 근대사에 지워지지 않는 족적을 남기신 분이라 생각한다.
함석헌 선생은 역사학자는 아니다. 필자가 기억하는 한 함 선생은 유영모 선생이 남강 이승훈 선생의 부탁으로 평양의 오산고등학교 교장 직을 맡고 계셨을 때 오산고등학교에서 선생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데, 아마 이 때 역사를 가르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함 선생의 유일한 한국역사 관련 저서라 할 수 있는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선생께서 일제하에서 우리 역사에 대해 강연했던 것을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라는 제목으로 잡지 <성서조선>에 게재했었는데, 이 내용을 토대로 몇 차례에 개편 작업을 한 끝에 탄생한 책이다.
이 책의 모태가 된 강연 제목에 드러나 있듯이 이 책은 종교적 사관의 관점에서 한국역사를 기술하였다. 주지하다시피 함 선생은 기독교인이었으므로 자칫하면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적 관점에서 한국역사를 기술한 것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다. 함 선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기독교가 홀로 참 종교라는 생각에서도 아니요, 기독교에만 참 사관이 있다 해서도 아니다. 전날에는 내가 그렇게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와서 보면 역시 종파심을 면치 못한 생각이었다. 기독교가 결코 유일한 진리도 아니요, 참 사관이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진리가 기독교에는 기독교적으로 나타났을 뿐이다.”(50쪽, 한길사(2006년))
현재 한국역사에 대한 견해는 극단적인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정도는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분열적이고 파행적이다. 이것은 이성적인 사회에서는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역사란 학문이 자연과학처럼 정밀한 분석과 엄격한 논리를 바탕으로 객관성을 추구하는 분야는 아니므로 어느 정도 개인의 사관에 따라 역사에 대한 서술이 달라질 수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역사 서술에 있어 다양성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동시에 누구도 과거의 역사를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기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이 백퍼센트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과대망상증 환자이거나 오만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서로 협력해야 한다. 자신이 발견한 사료나 고고학적 발견을 서로서로 공유하는 가운데 각자의 제한된 지식과 경험을 통합해 더 높은 수준의 역사 인식에 도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것이 역사라는 학문을 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함 선생의 저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영국 역사학인 카아(E.H. Carr)가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는 간결한 표현이 널리 인용되어왔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것은 역사의 본질에 대한 표현으로서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다. 역사가 대화인 것은 맞다. 그런데 단순한 대화가 아니다. 과거가 현재의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호소하고 있는, 그러나 감춰진 진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움으로써 그것의 의미를 이해한 후 이를 바탕으로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역사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함 선생은 이 책에서 한국역사는 ‘고난의 역사’임을 강조하였다. 수천 년 동안 여러 가지 고난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에 만신창이가 되었음을 통렬하게 지적하였다. 이런 고난의 실상을 이 책 곳곳에서 때로는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표현한 것은 우리에게 자극을 주기위한 방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제는 우리가 고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더 이상 끌려 다니는 노예의 역사가 아니라 세계사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다름 아니라 지(知), 즉 앎이라고 선언하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 책의 맨 마지막 구절에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어려워진 나라에서는 결국 악순환인데, 가지가지 잘못이 서로 얽혀서 무엇부터 풀어야 할지를 알 수 없는데, 지혜와 용단은 그 어느 고리에서 자르느냐 하는 데 있다. 한 고리가 풀리면 전체가 풀릴 줄 아나, 그 어느 고리에서 자르냐가 문제다. 모험이라면 모험이다. 그러나 마땅히 모험해야 하는 올바른 점은 지(知)에 있다. 나라를 바로 잡기 위하여 한번 모험을 할 전략적인 지점이 셋이 있다 할 수 있다. 부(富)가 그 하나요, 권(權)이 또 하나요, 그 다음은 지(知)다. 그러나 이 셋 중에 반드시 골라야 하는 것은 지(知)라는 말이다.”(496쪽)
이 책의 마지막 개정작업이 이루어진 것이 1960년대 이므로 그 후 벌써 50여 년이 지났다. 현 시점에서 돌아보면 한국은 상당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달성했으므로 부(富)와 권(權)이라는 면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지(知)라는 면에서는 어떠한가? 그 동안 교육수준이 상당히 높아졌고 사람들이 보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게 되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공동선(common good)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건전한 사회규범이 실종되었으며, 불평등이 악화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심하게 부족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진정한 의미에서 ‘지’를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여기서 ‘지’는 단순한 지식을 넘어서 지혜에 가까운 진정한 앎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함 선생은 이 책을 통해 지금도 우리에게 깊이 생각하는 국민이 되라고 충고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에서 함 선생은 우리 고대사와 관련해 현재 주류 강단사학자라 불리는 일단의 사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설치된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선생이 책을 집필할 당시 이와 관련된 자료가 부족한 탓에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인지, 아니면 고난의 역사라는 관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문제가 갖는 중요성에 비추어 아쉽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여기에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 파일과 함께 우리 고대사 연구에서 독보적 존재로 알려진 윤내현 교수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쓴 <우리 고대사>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 파일을 첨부하니 10월 24일 함석헌 기념관 방문 행사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덧붙여 함석헌 선생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다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함 선생을 오랫동안 사사(師事)했던 박재순의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을 권하고 싶다.
이영환 ∥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