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초청 강연회가 풀뿌리운동에 던진 고민
by 새날 posted Jan 10, 2014
후쿠시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초청한 강연회가 어제(1월9일) 서울에서 무사히 진행되었다, 약 150여 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지만, ‘무사히’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강연회와 관련해 무척이나 많은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초청 강연회에 대한 비판들이 인터넷 일부 사이트에 올라왔고, 그 밑에 끝없이 이어진 문제제기 댓글들은 때론 폭력적 비난과 욕설을 동반했다. 이와 더불어 이 강연회를 준비한 이들, 특히 생협에서는 조합원들의 무수한 항의를 받았다.결국, 후쿠시마 사람들이 자립을 준비하면서 스스로 공동체를 만들어 생산하는 유기농 면티를 현장에서 판매하려는 계획이 전시로 바뀌었고, 그 전시계획 마저 다시 무산되었다. 이 사태는 우리 사회에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사태를 접하면서 때로는 황당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 사회 풀뿌리운동에 대한 현실 점검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 문제와 관련해, 현장에 참여한 많은 이들로부터 이 내용을 자세히 알았다면 그와 같은 문제제기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즉, 자세한 정보교환 없이 달랑 한 장짜리 포스터로만 접하는 정보로는 이 강연회의 취지나 그 내용을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방사능 피폭지역에서 생산된 목화로 만든 티를 국내에 들여온다는 것이 일파만파 번지게 된 것이리라. 물론, 그렇다고 준비한 이들이 잘못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어차피 강연회 홍보물에서 세세한 내용을 모두 담을 수 없었고, 또 무작위 대중들이나 생협과 같은 대중 조직의 모든 회원들에게 그 내용을 자세히 전달할 방법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서울의 강연회 자리에 분명 현지의 면티에 대한 것부터 강연회까지를 반대했던 이들도 일부 참석했을 것이지만, 특별한 문제제기가 없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사태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정보의 소통과 교환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강연회에 대한 비판은 강연회 자체보다는 피폭지역의 생산품을 들여온다는 것에 주로 집중되었다. 하지만, 그 생산품은 실상 그 지역 주민들의 공동체를 재건하려는 열망이자 그 주민들이 새로이 희망을 만들어가기 위한 조그만 하나의 가시적인 징표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정보 소통의 부재가 이러한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두 번째, 우리 사회의 풀뿌리운동에 대한 성찰을 제공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사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시민사회운동에 있어서 풀뿌리운동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어 오고 있는데, 이는 더 이상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를 주창하는 것만으로는 시민사회운동이 확산되고 영향력을 크게 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인식 때문이다. 이제는 시민들의 참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시민사회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그 사회변화의 동력과 저변을 확대할 필요가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일차적인 관심은 어떻게 시민들의 참여를 활성화시킬 것인가에 모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관심과 필요성은 점차로 풀뿌리운동에 주목하게 해왔고, 또한 다양한 풀뿌리운동의 사례들이 만들어지고 소개되기도 해왔다. 그런데, 시민들의 참여는 더 이상 당위와 명분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충분히 검증되었다. 사실, 참여는 명분과 당위보다는 각자의 개별적 이해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자신과 가족의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라는 이해가 생협에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일차적이고 가장 중요한 이유라는 것이다. 이는 풀뿌리운동의 다른 사례들에서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풀뿌리운동에서 강조하는 시민들의 직접 참여는 정체된 것이 아니다. 풀뿌리운동이 사회운동인 이유는 그리고 풀뿌리운동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비록 참여의 시작이 개별적 이해에 근거했다 하더라도 참여의 과정을 통해 참여를 통해 추구하는 욕구가 보다 확대되고 발전하는 과정을 밟아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바라볼 때, 이번의 후쿠시마 사람들 초청 강연회는 우리 사회 시민들의 참여가 애초의 동기에서 좀체 발전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의 일면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된다. 즉, 방사능이라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미칠 피해에는 생각이 미쳤으나, 피폭 지역에서 어렵게 공동체와 자립을 꿈꾸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연대'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풀뿌리운동에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사회적 가치들을 어떻게 보다 잘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던 중이었는데, 내 고민이 그리 쓸데 없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이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한 때의 소란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우리의 모습, 특히 생협을 비롯한 풀뿌리운동의 현재를 성찰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도록 보다 많은 논란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지난 광우별 파동 이후 가족의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사람들로 인해 생협이 짧은 기간에 큰 성장세를 이룬 것에 도취되어 협동의 가치를 심어주는 일에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참여한 이들이 주체적으로 스스로의 비전과 희망의 지평을 넗혀가도록 도와주기보다는 이들이 양적 참여에만 매몰되지는 않았는지 등을 충분히 비판적이고 신랄하게 성찰할 기회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성찰이 누가 누구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물론, 양적으로 참여를 광범하게 촉발하고자 하는 관심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에서 더 나아가 그 참여의 질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이 우리 내부에서부터 더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강연회에는 <정보공개센터>에서 발간한 우리나라 원전 및 방사능 위험 등에 대한 정보제공 자료집이 참석자들에게 나누어졌다. 그 중 한 페이지에 실린 글은 이 강연회와 관련한 논란을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입장에서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일본산 고등어를 먹지도 못하면서
핵발전소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당신은
우연으로, 재수로만 삶을 영위하는가?
수명이 다한 원전을 곁에 두고,
비리로 가득찬 원전산업의 실상을
날마다 전해 들으면서
고등어만 안 먹으로 안전한 것인가?
당신의 자식은 안녕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