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tnSoerop2551ci3mf7u1f0ihcfht5335g498t4a21651lim1mgm59au6i0 · For the Beauty of the faithful Life
어느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신앙의 아름다움(美)’이라는 말이 화살처럼 나의 심장에 꽂혔다. 그것은 ‘신앙의 진리’나 ‘신앙의 행위’보다 더욱 어마어마하고 불가사의한 힘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나를 압도하면서 부추겼다.
그때 오랫동안 지속되는 팍팍하고 고단한 삶을 견디기, 그 원인의 절반은 밖에 있다는 불만과 저항, 좋은 길이 없어도 끝까지 가보자는 의지나 고집 같은 것. 나의 자존감은 陰으로 음산하고 음침하고 음울하게만 밑바닥을 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른 선택의 지혜가 떠오르지 않는 참 무모한 생활이었다. 어차피 이 세계는 생의 실험장(Experimentum Mindi) 아닌가.
어느 날(1997년 경) 피곤에 쩌든 몸을 뒤척이다가 우연히 처음 만난 아름다움(美), “하느님의 아름다움”(Schönheit Gottes)은 일단 새롭게 무한한 위로를 주었다. 신선한 산소 같았다. 높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 푸른 하늘을 손에 만지는 듯한 강렬한 마음의 감동이었다. 그렇지만 그때 만난, 아니 찾아온 아름다움은 현실의 질곡을 피해 달아나고 싶은 도피처였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삶을 껴안으면서 문득 도달한 그런 높은 경지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후 신앙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작업이 설레고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중세 신학자 안셀름의 명제 “지성을 찾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 faith seeking understanding)을 “아름다움을 찾는 신앙”(fides quaerens pulchrum, faith seeking Beauty)으로 바꿀 것을 스스로에게 명령했다. 안셀름의 명제가 지난 1,000년 동안 교회와 신학의 방향을 지배해 왔다면, 앞으로 천년은 “아름다움을 찾는 신앙”이 그러한 지위를 얻기를 바랬다. 그 후 나는 『기독교 신앙의 아름다움』(2003), 『예술신학』(2011), 『기독교 미학의 향연』(2018)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의 미학』(2021), 『초월자의 감각』 (2022)등을 통해 이 작업을 모색했다. 두 권 분량 쓴 글은 책으로 내지 않고 접었다. 그 전까지 하고 싶고, 내고 싶고, 알리고 싶었는데, 그런 열정이 서서히 식더니만 흐물흐물해진 것 같다.
사이 사이 좋은 책들을 만났다. 오래된 강력한 지원군은 의외로 1992년에 나온 방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였다. 머리말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우선 시대의 오류를 단죄하기보다는, 신앙 교리의 힘과 아름다움을 명쾌하게 드러내고자 노력했습니다”는 문구로 시작했다. “교리의 힘과 아름다움”이란 말! 교리에 힘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는 말, 모두 교리를 비판하고, 교리를 몹쓸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현대 지성인들에게 교리의 아름다움이라니.... 나는 교리학자가 아니었던가. 생각을 멈추고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았다. 그 문장을 떠나지 못하고 오랫동안 묵상했다. “신앙 교리의 힘과 아름다움!” 교리는 인간의 신앙과 삶을 얽어매는 족쇄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 교리의 힘과 아름다움이라니. 진짜 그럴까? 나는 교의학도로서 이 말에 매우 크게 고무되었다. 교리를 얼마나 씹고 밟고 녹여야 아름다움의 문이 열릴까.
그런데 이번에 안셀름 그륀의 『종교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더욱 고무되었다. 이 책은 교회에서 세례인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70개의 기본 교리를 아주 쉽게 풀이한 책인데 그륀은 여는 글에서 “신앙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신앙의 아름다움”, 누가 이 말 쓰는 사람 없나, 그동안 참 외로웠는데 드디어 동지를 만난 것이다. 그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신앙은 수백 년 동안 지어진 집과 같습니다. 우리 사회는 신앙의 집으로 가는 통로가 막혀 있습니다. 그래서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일상에서 작은 위안조차 받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편견 없이 살펴본다면 신앙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륀은 신앙의 아름다움과 신앙의 삶이 엮어내는 예술의 아름다움에 새롭게 매료되기를 바란다.
그륀은 닫는 글에서 “하느님의 감미로움을 맛보는 시간”이라고 쓴다. 그륀은 이 책에서 신앙의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드러나길 바란 것이다. “신앙은 모든 충격에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우리의 눈을 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든 아름다운 것 안에서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우리를 치유하고 해방시키며, 영혼에 이롭습니다.” 그륀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감각적이며 가시적으로 표현한 예술과 익숙해지길 권한다.
마지막으로 그륀은 신앙이란 “매 식사에서 ‘하느님의 감미로움’(dulcis Dominus; 벧전 2:3)을 맛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먹고 마시고, 듣고 보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것들은 신앙을 통해서 다른 차원으로 고양됩니다. ”하느님을 찾는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감미로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아주 게으르겠지만, 하느님의 감미로움 느끼는 사람은 기쁨 속에서 하느님을 찾게 될 것입니다.“(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그리고 이제 또 한 권의 책, 『한국의 미학』은 한국인의 미적 경험을 범주로, 개념으로 포착하려는 시도다. 더 나아가 하느님 경험을 표현하려는 궁리다. 한국인의 미적 경험은 얼마나 다르고 고유하면서 다른 것들과 공명하고 소통 가능한가? 신앙의 아름다움을 한국인의 미적 경험을 통해 다시 표현할 수 있을까?
최광진의 『한국의 미학』은 이 길을 성공적으로 달성한다.
미학책 치고 어렵지 않게 읽힌다.
한국인의 미의식을 서양, 중국, 일본과 다름을 비교하면서 찾아나간다. 비교미학이다.
비교를 통해 서로 다름을 파악할 수 있는 4가지의 실례를 들어 설명하는데, 설득력이 있다.
[한국사상-기독교 스터디]는 당분간 미학 공부를 하기로 했다.
2024년 마지막 시간
12월 30일(月, 128회) 10.00~12.00시
[주제] “한국의 미학”(1)
+ZOOM(ID: 380-389-5679); 충무로 사랑방(퇴계로 30길 29, 407호. 한국영성예술협회)
+교재: 최광진, 『한국의 미학』_서양, 중국, 일본과의 다름을 논하다.(4~77쪽)
서문: 비교미학을 위하여
1장: 서양은 분화의 미학이다
2장: 중국은 동화의 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