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8

알라딘: 삶은 기적이다 현대의 미신에 대한 반박 웬델 베리 (지은이),박경미 (옮긴이)

알라딘: 삶은 기적이다

삶은 기적이다 - 현대의 미신에 대한 반박  
웬델 베리 (지은이),박경미 (옮긴이)녹색평론사2006-02-15원제 : Life Is A Miracle (2000년)



삶은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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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238쪽156*188mm452gISBN : 978899027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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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서평 형식을 통해 현대 과학문명 전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보여주는 책이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의 <통섭(Consilence)>이 주장하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통합이라는 개념을 면밀히 분석하고 비판했다.

저자는 삶의 신비로움과 알 수 없음, 기적적인 성격을 회복하고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면에서 <통섭>이 말하는 환원주의 과학은 그 기적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블레이크의 시를 수차례 인용하여 진정한 통섭/통합은 "한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듯이" 모래알과 들꽃이 세계와 천국의 수준으로 도약하여 '고양'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과학과 문명의 기계론적 사고, 산업주의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등에 관한 포괄적인 성찰과 비판을 가했다. 또한 인간을 물화(物化)하는 현대의 한탕주의적인 예술과 과학에 대한 대안으로 "붙박이로서의 삶"을 제시했다.
목차
Ⅰ 알지 못함

Ⅱ 타당성

Ⅲ 에드워드 윌슨의《통합》에 대하여
1. 물질주의
2. 물질주의와 신비
3. 제국주의
4. 환원주의
5. 기계로서의 피조물
6. 독창성과 “두개의 문화”
7. 뺄셈 없는 진보

Ⅳ 환원주의와 종교

Ⅴ 환원주의와 예술

Ⅵ 학교 밖에서의 대화

Ⅶ 기준 바꾸기

Ⅷ 결론을 대신하여

역자 해설 “살아 있음”의 신비,
“알지 못함”의 인식론

접기
책속에서
붙박이로서의 삶은 지금까지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존경과 충성스러움, 이웃간의 정, 충직함 같은 고대 인간이 지녔던 미덕으로 우리의 기억과 실천 속에 간신히 보존되었다. 그러나 현대사를 지배한 것이 한탕주의 뜨내기였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현대의 지배적인 예술과 과학이 한탕주의 뜨내기 예술과 과학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한탕주의 과학과 한탕주의 기업정신이 협력한 결과 이제 지구상의 모든 피조물은(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팔려갈 물건처럼 제 몸에 가격이 매겨지는 신세로 전락했고, 사실상 경제 전체주의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경제 전체주의에서는 모든 물질과 피조물, 생각들이 상품화되어 교환 가능하고 써서 없애버릴 수 있는 것이 된다. 사람들도 다른 것들과 함께 상품이 된다. 오직 그러한 경제만이 풍요로움과 피조물의 다양성으로 가득 찬 세계에 기술주의적 독재와 유전학적 획일 문화를 덮어씌우려 한다. 그러한 경제 전체주의 체제에서만 '삶의 형태들'이 특허대상이 되고, 자연과 문화의 재생가능성이 파괴된다. - 본문 192쪽에서  접기
현대과학의 가장 일차적인 환원주의는 인간 경험, 혹은 인간적 의미를 인간의 언어에 의해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가정은 잘못된 가정이다.-219쪽 -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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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델 베리 (Wendell Berry)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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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이자 철학자이며, 시인이자 소설가. 켄터키 주 농부의 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전통 방식의 농사를 배우며 자랐다. 켄터키대학교에서 문학 교수로 일하다가 마흔네 살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농부로 살기 시작했다. 농사짓는 작가, 글 쓰는 농부로 40여 년을 살아오면서 현대 문명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땅과 사람의 관계를 고찰해 왔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제들로부터 출발해 지구의 문제로 확장해 가는 근본주의적 시선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많은 성찰과 고민을 던져 주고 있다.
『생활의 조건』, 『희망의 뿌리』, 『포트윌리엄의 이발사』, 『삶은 기적이다』, 『지식의 역습』, 『온 삶을 먹다』 등 마흔 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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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오직 하나뿐>,<소농, 문명의 뿌리>,<온 삶을 먹다> … 총 254종 (모두보기)
박경미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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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성서신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신약성서학 교수이다.

저서
『예수 없이 예수와 함께: 요한공동체의 문학과 신학』(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행복하여라 하느님 나라의 사람들』(한울)
『신약성서, 새로운 삶이 희망을 전하다』(사계절)
『시대의 끝에서』(한티재)
『마몬의 시대, 생명이 논리』(녹색평론사)

역서
『요한복음 요한서신』(대한기독교서회)
『말씀을 믿다: 요한복음서 1-4장을 읽다』(대한기독교서회)
『서기관들의 반란... 더보기
최근작 :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행복하여라! 하느님 나라의 사람들>,<시대의 끝에서> … 총 29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녹색평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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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녹색평론 통권 178호>,<농본주의를 말한다>,<녹색평론 통권 177호>등 총 78종
대표분야 : 환경/생태문제 2위 (브랜드 지수 79,816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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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살 2009-01-0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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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좋은 껍데기를 벗고 참삶을 찾자 새창으로 보기

- 책이름 : 삶은 기적이다
- 글쓴이 : 웬델 베리
- 옮긴이 : 박경미
- 펴낸곳 : 녹색평론사(2006.2.15)
- 책값 : 7000원


 우리 나라에 참된 과학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과학뿐 아닙니다. 문학도 사상도 철학도 역사도 참답게 자리잡고 있을는지요? 글쎄. 그러면 책은 어떻습니까? 그림이나 사진은? 교육이나 사회는? 정치나 경제는? 노동은? 운동경기는 어떨까요?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즐겁게 맞이하면서 너나없이 고르게 함께할 수 있는가요?


.. 과학은 인간적 한계를 지니며, 늘 인간의 무지와 오류를 포함한다. 과학이 발명해내거나 발견해낸 해결책들이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또 그 자체가 새로운 문젯거리가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특정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핵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발견해냈지만, 핵의 사용은 우리 모두에게 대단히 위험하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핵폐기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까지 알아내지 못했다. (그들은 폐타이어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지 못한다) 항생제의 사용은 항생제의 남용을 가져왔고, 계속 이런 식이다. 우스꽝스럽게도 우리는 일상적 삶 속에서 황당한 과학지식에 매달린다. 가령 우리는 유전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지만, 우리 가운데 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식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  〈53∼54쪽〉


 한 달쯤 앞서, 서울역에서 전철을 탈 때입니다. 저는 멀리 가는 길이라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전철을 탔는데 마침 유모차를 끌고 계단 앞에서 허둥지둥하는 젊은 어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한쪽 어깨에는 자전거를 메고 있었지만 한쪽 손은 자유로워서, “아주머니, 같이 들어 드릴게요” 하고는 꽤나 긴 계단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저는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갔고, 아이 어머니는 표를 사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유모차를 어떻게 개찰구를 넘어 나오는가로 힘들어합니다. 아마, 전철역까지 오는 동안 꽤나 애먹고 힘들었는가 보군요. 그런데 서울역 개찰구에는 휠체어나 유모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뚫려 있는 다른 문’이 없습니다. 표를 끊고 지나가는 자리도 대단히 좁습니다. 그래, 하는 수 없이 유모차를 들어서 안쪽으로 옮겨야 했고, 아이도 누군가 들어 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까 계단에서도 그랬으나, 이 개찰구 앞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리기는 했어도 누구 하나 손을 거들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침 이날만 이렇게 돕는 손길이 없는지도 몰랐겠지만요.


.. 다행스러운 것은 과학자들조차도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말할 때에는 “한 여성”, “한 남성”, “한 아이”, “한 사례”와 같은 범주의 언어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정을 느낄 때 우리는 추상과 추상화의 범주들을 깨부수고, 고유한 생명과 장소를 지닌 피조물 그 자체와 대면하고 싶어한다 ..  〈65쪽〉


 아기를 제가 안고 있는 동안 젊은 어머니는 유모차를 낑낑거리며 개찰구 아래로 밀어서 가까스로 빼냅니다. 겨울이지만 얼굴엔 땀이 줄줄 흐릅니다. “아유, 서울 한번 나오면 힘들어서 못 다니겠어요. 다니기 너무 불편해요!” 하는 아이 어머니. 저는 4호선을 타고 아이 어머니는 1호선을 탑니다. 길이 엇갈려서 걱정스러운데, 저 어머니가 가는 길에 도와줄 사람이 있을는지…


.. 삶을 경험한다는 것은 뭔가를 “알아내거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고통받는 것이며, 동시에 있는 그대로 삶을 기뻐하는 것이다. 고통받으면서, 또 있는 그대로 기뻐하면서 우리는 삶을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서 우리는 생명을 이해했다는 누군가의 주장에 의해 생명이 소유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생명은 우리가 향유하는 것이지만, 우리 너머에 있다 ..  〈18쪽〉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양문), 《생활의 조건》(산해) 같은 책에 이어 우리 말로 번역된 ‘웬델 베리’ 님 책 《삶은 기적이다》입니다. 과학기술이라는, 또 물질문명이라는 허울좋은 껍데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제정신을 잃어버린 우리들한테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즐거운가를 자기 경험을 밑바탕 삼아서 들려주는 이야기책입니다. 소중한 나를 찾고, 내 삶터를 찾을 때는 우리 삶을 ‘기적’이라 할 만하지만, 나 자신을 소중히 느끼지 못하고 내 삶터를 소중히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를 억누르는 권력자들 배만 불려 주는 ‘기적’을 낳는다는 이야기도 담아요. (4339.3.9.나무.ㅎㄲㅅㄱ)

 

**

다만 번역은... 다른 녹색평론사 책과 마찬가지로 엉망입니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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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06-03-09 공감(1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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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기적으로 본다는 것은 새창으로 보기
 
삶은 기적이다. "Life is a miracle." 삶 중에서 기이한 일, 특별한 일, 초자연적인 일이 아니고 '그냥 삶'이 기적이다. 먹고 자고 씻고, 출근하거나 등교하거나 집안일하거나 공부하거나 일터에서 일하거나 놀거나 하는 것, 그런 일상이 바로 기적이다. 그럴 만도 하다. 자동차는 쌩쌩 달리지, 범죄자들은 수두룩하지….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이 풍진 세상, 별 탈 없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니면 달리 무엇이 기적이랴.



그런데, 그런 것 모두를 기적이라고 부르자니, (솔직히 말해) 기적이 좀 시시해지는 느낌도 없지 않다. '까'놓고 말해, 일상사를 기적이라고 부르면 '기적'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신비스러움이 어쩐지 반감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째서 그럴까?



우리는 일상의 삶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또 일상사를 신비롭다고 여기지 않는다. 먹고 마시고 울고 웃고 다투고…, 이런 일들이 신비롭다? 어떻든지 간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게 사실이다.



헌데, 지금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한 번 깊이 생각해보자. '과연 나는 일상의 삶에 대해 다 알고 있는가?' 웬델 베리는 우리가 삶에 대해 '안다'고 착각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기적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리하여 그의 책 <삶은 기적이다>는 '알지 못함(1장의 제목)'으로 시작한다.



삶을 경험한다는 것은 뭔가를 "알아내거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고통 받는 것이며, 동시에 있는 그대로 삶을 기뻐하는 것이다. 고통 받으면서, 또 있는 그대로 기뻐하면서 우리는 삶을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18쪽



베리의 책 <삶은 기적이다>는 에드워드 윌슨의 책 <통섭>이 바탕하고 있는 환원주의적 세계관에 대항한다. <통섭>을 다 읽어보지 못한 내가 이해하기로 환원주의적 세계관은, 모든 것을 기계로 보고 이해가능·설명가능한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를 일컫는다고 할 수 있다. 베리는 <통섭>의 저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물론 나는 윌슨의 과학적 지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마도 그의 지식은 인간이 알아낸 지식으로서 위대하고 경탄할 만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가 보여주는 태도이다. - 42쪽







우리는 삶을 알려고 하고 그 알아낸 지식으로 기대하고 예측하며 유형화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해서 삶을 더 쉽게 살고자 하고 덜 힘들게 살고자 한다. 그런데 삶을 대상화하여 알아내도 우리의 투덜거림은 변함이 없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거야!"



우리는 신비 안에서, 기적에 의해 살아있다. 에르빈 샤르가프는 "삶은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71쪽



삶을 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죽음도 기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죽음은 단지 건강함의 종착역이자 불건강함의 표지가 아닌 것이다. 암환자가 건강하지 않아서(암세포 때문에) 죽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녀)가 죽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베리는, 죽음을 건강의 일부분으로만이 아니라 '신비'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212쪽)고 역설한다. 베리의 말처럼, 죽음에 대한 과학적 영웅주의의 표현으로 의료산업이 발달했겠지만,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삶은 기적이다. 그리고 죽음도 기적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맛보는 삶과 죽음 안에 있는 우리는 기적 안에 있다. 그런데 이 말, 가만히 묵상해보니, 참 신비롭다. 기적은 인간이 아닌 신의 작용이므로 '우리가 신 안에서 살고 있다'는 고백을 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 월간<새가정>, 오마이뉴스, 에큐메니안 등에도 같은 글이 실립니다.

- 접기
균형 2007-03-12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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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새창으로 보기
  대부분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이제는 도시생활이 대부분이다. 농촌에는 60대 노인이 청년 회장을 한다는 말이 사실이 되었다. 농촌은 도시에 비해 낙후되고 삶의 질이 결여되어 있다는 인식과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농촌으로 갈 수 있을까? 과학의 시대가 열리면서 가능한 모든 발전들은 우리 삶의 목표가 되었다. 세상은 진보와 발전의 수레바퀴 속에서 영속적인 진화가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인류는 이제 그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맹목적인 과학에 대한 믿음은 인류의 삶에 반성적 태도를 박탈했다. 현대의 미신에 가까운 과학에 대한 맹신은 인간의 가치 판단과 무관하게 발전되어 왔다.

  과학은 결국 가치 판단과는 무관한 기능만을 제공해왔다. 물론, 인문학과 예술과 종교는 과학기술의 시대에 적절한 가치관을 제공했는가 하는 비판과 반성도 아울러야 한다. 이러한 판단과 논의는 인류에게 영원한 숙제로 남아 있고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웬델 베리의 <삶은 기적이다>는 이러한 논쟁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저자의 생각과 주장은 분명하다. 과학기술의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과 삶의 경이로움에 대한 숭고함이다.

  현대과학의 방법론은 근본적으로 물질주의와 환원주의, 기계론적 사고와 산업주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론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과 비판이 이 책의 핵심이다. 그래서 저자가 택한 방법은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유오성이 선택한 ‘한 놈만 팬다’는 전략이다. 그 한 놈으로 선택된 것이 에드워드 윌슨이다. 최재천과 장대익이 옮긴 <통섭>으로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아 웬델 베리의 의견에 전반적으로 동의하거나 조목조목 반대의견을 비판하며 읽을 수가 없어 아쉬웠지만 전반적인 그의 견해와 논의의 초점은 특별하지 않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일반론 수준에 머물러 있지는 않다.

  윌슨의 통섭은 한자로 ‘統攝’이다. 큰 줄기로 끌어 당긴다는 한자 그대로의 의미보다는 전제주의적 지배적 성격이 강하다. 문제는 통섭의 주체가 과학이라는 데 있다. 웬델 베리가 윌슨에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이유도 과학적 환원주의의 입장에서 모든 학문과 인접 분야의 통합을 시도한다는 데 있다. 알 수 없는 세계는 없고 과학으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을 뿐이라는 주장을 웬델 베리는 수용하지 못한다. 살아 있음의 신비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인식은 과학의 잣대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삶은 그 자체로 기적이라는 인식이 기독교적 관점과 일치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구체적으로 과학적 방법론이 왜 타당한지 조목조목 따져 밝히고 있고 나름의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저자가 내세우는 대안은 없다. 오히려 신비주의와 모호한 태도로 보일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다만 과학적 환원주의에 대한 맹신을 돌아보고 경계해야할 전제임을 반성하는 정도로 읽는다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을 시도한다는 것은 분명 무리한 시도로 보인다. 그것은 학문간의 교류를 넘어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철학적 문제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단순하게 발전의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진보와 발전의 개념과는 다른 문제다. 이 책의 저자가 현대 문명 전반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삶의 방향과 목적도 없이 맹목적인 속도전을 치르고 있는 현대인을 위한 반성적 태도를 요구하는 내용으로 받아들인다면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저자는 책 첫머리에 라이오넬 베스니(1946-1999)의 “우리는 아무 대가 없이 무언가를 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걸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자신의 주장을 선언적으로 요약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이 말은 윌리엄 브레이크의 시

당신이 보는 대로 세상은 당신에게 현실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보는 당신에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다.
(Blake, Complete Writings, Oxford, 1966, 663쪽) - P. 16

를 인용하며 삶의 예측 가능성과 기계적인 방법론을 철저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이 비판이 비판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아전인수식 해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찰적 비판의 대안이 모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종교와 양립할 수 없는 과학의 대립이라는 관점은 아니지만 저자의 태도는 신비주의에 가깝다. 브레이크의 위대한 시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하다. 많은 책에서 인용되어 식상하기까지 한 이 시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곰곰이 음미해 보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해 준다. 그래도 ‘삶은 기적이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다.

한알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Complete Writings, 431쪽) - P.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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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신약성서학자인 박경미 교수가 ‘시대의 끝’에 대한 성찰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제국의 침략과 거기 결탁한 가신통치자들의 수탈, 그로 인해 하느님의 통치가 끊어지는 데 대한 예언자들의 분노와 심판의 선언. 이러한 것들이 성서의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처럼 삶을 파괴하는 것들에 맞서 환상가들은 옛 세계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선언했다. 신구약 중간시대와 초기 기독교시대에 융성했던 묵시문학의 근저에 깔린 생각은 이러한 의미에서 ‘시대의 끝’에 대한 의식이었다.”

이 책 『시대의 끝에서』는 성서와 역사, 그리고 현재의 깊은 대화이며, 시대의 운명을 염려해 온 실천적인 학자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독자들이 다시 만나는 구약과 신약의 시대, 인물과 사건들은 박경미 교수의 탁월한 이야기를 통해 바로 지금 이 시대 우리의 모습,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과제들로 되살아난다. 그 과제들은 비단 당면한 정치적·경제적 위기만이 아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사실은 근본적으로 우리 삶의 토대를 위협하고 있는 문명의 위기, 인류 생존의 위기로 나아간다. 위기에 대한 직시와 성찰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저자가 성서와 역사의 대화로 독자들을 초대하여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이 용기와 희망에 관한 것이다.

“세계의 파멸을 선포했던 환상가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종말에 대한 어두운 환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생각했던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악마적인 제국의 붕괴와 함께 도래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이었다. 구약성서와 유대교 문헌에서 종말론적 사고의 핵심은 하느님 없는 세상에 하느님이 오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약성서 복음서들에서 예수는 임마누엘, 곧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심’, 하느님의 현존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예수 자신은 삶과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 오심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저자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논문’을 발표하는 학자의 음성이 아니라, 마치 유장한 서사시를 읊는 시인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주제의 장중함과 어우러지는 문학적인 문체가 이 책의 매력을 드높인다.
목차
들어가며 | 나와 성서

하느님의 나라, 동무들의 나라
농부/장인 그리스도
헤롯의 나라, 민중의 꿈
요한의 성령 이야기, 하느님의 사랑 이야기
로마제국과 바울의 평등사상
전승, 살아 있는 삶의 역사
네로의 세상, 지식인의 초상
시대의 끝에서
책속에서
어릴 적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에 어린아이다운 의문을 품었던 기억이 새롭다. 한글을 깨치기 전 어른들이 방바닥에 신문을 펼쳐 놓고 읽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나도 ‘읽는 것’을 해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낀 이래, 성서는 내 문자생활의 가장 이른 시기에 자리잡은 책이다. 주일학교에서는 성서 구절을 암송했고, 집에서 가정예배를 드릴 때에는 복음서를 소리내어 읽었다. 구약성서의 예언서나 욥기, 시편의 소박하면서도 시적 은유가 풍부한 언어들은 문득문득 그 표현들이 혀끝에서 맴돌곤 했다. 자라면서 문학의 세계에 눈뜨고 그쪽에 빠진 시절도 있지만, 결국 성서를 공부하는 것을 업으로 삼게 되었으니, 싫으나 좋으나 평생 성서를 끼고 살아온 셈이다. 생각해 보면 개념적이고 분석적인 언어보다는 언제나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언어에 마음이 끌렸고, 수학이나 철학보다는 역사와 문학에 끌렸던 것도 성서의 언어와 닮은 쪽에 은연중 끌렸던 탓이 아니었나 싶다.


오래전 문학비평가 머레이 크리거는 비평가가 마주한 세 가지 본문의 세계를 구분했다. 그 세 가지 세계란 ‘본문 배후의 세계’, ‘본문 안의 세계’, ‘본문 앞의 세계’이다. (중략) 실제로 성서 해석을 할 때에는 이 세 가지 세계에 모두 관여하게 된다. 이 세 가지 세계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모든 반성적인 독서행위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본문이 독자에게 제기하는 해석학적인 물음들은 이 세계들 사이의 충돌로부터 생긴다. 해석자는 이 세계들, 즉 본문 배후의 세계, 본문 안의 세계, 본문 앞의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아 그것들이 수렴하는 지평을 발견해야 한다. 물론 이 세 가지 세계들 사이에는 긴장과 갈등도 존재하므로 종종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해석은 이들 사이의 수렴과 일치를 지향해야 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처음부터 어떤 체계를 가지고 쓴 글들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필요와 절박함에서 쓴 글들이다. 성서 본문을 탄생시킨 삶의 세계와 내가 속한 이 시대의 삶의 세계가 그때그때 조응하는 방식들을 따라갔다. 그 글들을 나중에 성서 순서대로, 그러니까 구약과 성서 전반에 대한 글에서부터 복음서, 바울, 요한묵시록 순으로 실었다. 모아 놓고 보니 그 글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은 ‘끝’에 대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성서에서 종말론적이라고 부르는 어떤 의식의 흐름이 글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말하자면 ‘끝’에 대한 성서의 생각과 나의 경험이 만났다고 할 수 있겠다.


현대 세계는 본질적으로 인간만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전제하고 다른 어떤 중심을 상정하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우리는 중심으로부터 밀려났다고 느낀다.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중요하지 않은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사실들과 반복해서 마주한다. 반면 종교적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우주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까지도 포괄하는 보다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그 무엇이라고 본다.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그러한 중심적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보고, 자기 존재의 의미와 중요성도 그 관계 속에서 보기 때문에 자신이 왜소하다고 느끼지도 않고, 열등감이나 우월감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중심적 존재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는 흔히 자연과의 경험이 큰 영향을 끼친다. 내 경우 어린 시절 식구들과 함께 평상에 앉아 여름 하늘을 우러러보았을 때 그 많던 별들, 언젠가 풀밭에 앉아 풀대를 엮어 조리를 만들 때 땀에 젖은 얼굴을 부드럽게 간지럽히던 바람, 봄나물을 캘 때 맡았던 향긋한 봄내음과 흐르는 냇물, 어느 하나 고맙고 감격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런 경험들은 내가 나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했고, 그 무언가는 일차적으로는 자연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과 힘이었다. 그리고 성서는 이 모든 것들 뒤에 하느님이 계시다고 가르쳐주었다. 내 인생의 배후에 하느님이 계신다. 나는 이런 경험 속에서 실제의 나보다 더 깊이 있고 더 크게 만들어주는 매우 중요한 무엇인가가 내 속에 있다고 느꼈고, 그것은 결국 영혼이라는 말 외에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오늘날 자연의 파괴는 결국 근원적 존재와의 단절로 이어지고, 인간 영혼의 파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나의 존재의 끝, 이 끝에서 나는 모든 존재의 근원, 중심과 만난다. 개체의 경계를 넘어서서 보다 큰 전체와 하나가 되는 경험,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가능하게 되는 근거로서의 존재 자체, 무엇보다도 모든 생명은 관계성 속에서 존재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자연과 인간, 온 우주의 일치 경험. 아마도 이런 것들이 종교적 사유의 본질적 내용일 것이고, 분리된 개체적 생명의 차원이나 물질의 수준에서 생명현상과 인간현상을 파악하려는 현대의 정신이 본질적으로 결여하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성서는 하느님이 우리 존재의 일차적 근원이자 창조의 근원이며, 전면에 드러나지 않으면서 자연과 인간 삶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분이라고 알려준다. 아마도 이 하느님은 다른 이름으로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근원이라는 의미에서 ‘끝’만이 아니라, 다른 ‘끝’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은 앞서 말한 ‘끝’, 즉 근원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파괴될 위협 속에서 경험되는 ‘끝’이다. 이 두 번째 의미의 ‘끝’이 성서 세계의 특징과 더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제국의 침략과 거기 결탁한 가신통치자들의 수탈, 그로 인해 하느님의 통치가 끊어지는 데 대한 예언자들의 분노와 심판의 선언. 이러한 것들이 성서의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처럼 삶을 파괴하는 것들에 맞서 환상가들은 옛 세계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선언했다. 신구약 중간시대와 초기 기독교시대에 융성했던 묵시문학의 근저에 깔린 생각은 이러한 의미에서 ‘시대의 끝’에 대한 의식이었다. 세계의 파멸을 선포했던 환상가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종말에 대한 어두운 환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생각했던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악마적인 제국의 붕괴와 함께 도래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이었다. 구약성서와 유대교 문헌에서 종말론적 사고의 핵심은 하느님 없는 세상에 하느님이 오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약성서 복음서들에서 예수는 임마누엘, 곧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심”, 하느님의 현존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예수 자신은 삶과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 오심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결국 이 두 번째 ‘끝’에 대한 이야기는 ‘희망’에 관한 것이다.

_ 「들어가며 : 나와 성서」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박경미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성서신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신약성서학 교수이다.

저서
『예수 없이 예수와 함께: 요한공동체의 문학과 신학』(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행복하여라 하느님 나라의 사람들』(한울)
『신약성서, 새로운 삶이 희망을 전하다』(사계절)
『시대의 끝에서』(한티재)
『마몬의 시대, 생명이 논리』(녹색평론사)

역서
『요한복음 요한서신』(대한기독교서회)
『말씀을 믿다: 요한복음서 1-4장을 읽다』(대한기독교서회)
『서기관들의 반란』(한국기독교연구소)
『갈릴리: 예수와 랍비들의 사회적 맥락』(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생태학적 치유』(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접기
최근작 :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행복하여라! 하느님 나라의 사람들>,<시대의 끝에서> … 총 2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성서와 역사, 현재의 대화
시대의 끝,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

2016년 10월 19일, 이화여대 본관 앞에서는 이 학교 교수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학생과 교수들이 요구해 왔던 대로 최경희 전 총장이 마침내 사퇴를 선언함에 따라, 80일 넘게 농성을 이어 온 학생들의 노고를 격려하면서, 학생들의 안위 보장과 비리 규명 등 후속 과제 해결을 촉구하고 다짐하는 자리였다. ‘이대 개교 이래 최초의 교수 시위’라고 언론에서 보도했지만, 여러모로 이날 기자회견은 뜻깊은 장면이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박경미 기독교학과 교수는 “박근혜 정권의 가장 추악한 부분과 추잡하게 결탁한 최경희 총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여전히 비리 의혹들이 남아 있다”고 규탄했다. 박 교수는 “교수들이 눈을 똑바로 뜨고 박근혜 정권과 최경희 총장,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해왔는지 볼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박 교수의 발언 내용처럼, 그 후로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왔는지를 밝히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바로세우기 위한 역사의 물결에 합류하게 되었다. 천만 명이 넘게 참여한 ‘촛불 시민혁명’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국정농단 헌정유린 세력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진 거대한 물결, 그리고 대통령 선거와 정권교체를 거치며 그 물결은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자는 열망으로 우리 사회를 출렁이게 하고 있다.

그 격랑 앞에서, 신약성서학자인 박경미 교수는 오랫동안 자신이 연구해 온 성서를 역사의 물결에 비추어 다시 읽고, ‘시대의 끝’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 책 『시대의 끝에서』는 성서와 역사, 그리고 현재의 깊은 대화이며, 시대의 운명을 염려해 온 실천적인 학자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독자들이 다시 만나는 구약과 신약의 시대, 인물과 사건들은 박경미 교수의 탁월한 이야기를 통해 바로 지금 이 시대 우리의 모습,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과제들로 되살아난다. 그 과제들은 비단 당면한 정치적·경제적 위기만이 아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사실은 근본적으로 우리 삶의 토대를 위협하고 있는 문명의 위기, 인류 생존의 위기에 대한 성찰과 극복으로 나아간다. 위기에 대한 직시와 성찰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저자가 성서와 역사의 대화로 독자들을 초대하여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이 용기와 희망에 관한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저자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논문’을 발표하는 학자의 음성이 아니라, 마치 유장한 서사시를 읊는 시인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주제의 장중함과 어우러지는 문학적인 문체가 이 책의 매력을 드높인다. 접기

복음주의와 영성

복음주의와 영성

복음주의와 영성




목창균



서론

영성은 성장 산업(growth industry)의 하나로 취급될 만큼,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영성 훈련 및 세미나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기독교 출판사들은 영성에 관련된 원고가 아니면, 단행본으로 출판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심지어 영성이란 이름 아래 점술, 요가, 신비주의, 심리학, 과학적 픽션 등에 관한 책들이 출현하고 있다. 이제 영성에 대한 관심은 교단과 지역을 초월하여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반적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들어 영성의 의미가 재발견되고, 영성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어나게 된 것은 현대 사회, 즉 "대중적이며 도시 중심이요 기술 중심적인 사회에서 형성된 가치관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된다. 많은 사람들이 양적이며 물질적 기준 혹은 기능에 의해 삶을 평가하는 것에 회의적인 반면, 질적이며 정신적 가치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들은 무미 건조한 삶에 대한 반작용으로 종교적 경험을 갈망하게 된 것이다. 영성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인식은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 체험의 갈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영성은 기독교 고유의 용어도, 기독교가 독점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용어도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도 사용하고 있는 초종교적 용어다. 불교의 영성, 힌두교의 영성, 이슬람교의 영성, 동양의 영성이 있다. 일반적 의미의 영성은 자기 훈련이나 수양을 통해 어떤 정신이나 삶을 본받으려는 인간적 노력, 인간의 자기 초월의 능력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의미를 규정하지도 않고, 사람마다 제 각기 편리한대로 영성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영성 개념에 대한 오해도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영성을 어떤 종교적 제한을 초월하여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종교나 학문간의 대화를 위해 필요하고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서 논의하려고 하는 것은 기독교의 영성이다. 기독교 관점에서 영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영성이란 말은 항상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문자적으로 육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과 대비되는 내적, 정신적 본질을 뜻하지만, 시대와 정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경건, 기도, 금욕주의, 신비주의 등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어떤 종교 정신 혹은 어떤 인물의 사상이나 삶을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신학의 한 분야, 즉 영성신학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성신학은 영성의 본질을 밝히며, 그 다양한 형태들을 묘사하고 분류하며 영적 성장의 원리와 방법을 설명하는 신학의 한 영역이다.

영성(spirituality)이란 말은 본래 로마 카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에서 주로 사용되었으며, 18-19세기에 수덕신학(ascetical theology)과 신비신학(mystical theology) 또는 수덕적 영성과 신비적 영성으로 구분되었다. 따라서 수덕과 신비라는 두 별개의 초점을 가진 영성신학이 형성되었다. 수덕신학은 일상적인 기독교인의 영성 훈련에 대한 것이라면, 신비신학은 신비가들의 가르침을 다룬 것이다. 수덕신학과 신비신학의 구분은 영성에 이르는 두 가지 접근방법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금욕주의라는 저차원의 길과 신비경험이라는 고차원의 길이다. 20세기에 이르러 이 두 학문이 통합되어 영성신학 혹은 영성이 되었다.

한편, 현대 복음주의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요, 복음주의의 밝은 미래를 위협하는 위험스런 요소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독특한 영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복음주의는 현대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영적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신비주의, 금욕주의, 세속주의와 같은 다른 전통으로부터 영성 추구 방법을 빌려오거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복음주의자들은 영성에 대해 논하고는 있으나, 그들 자신의 영성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가 영성을 어떻게 이해해왔는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대와 중세교회, 특히 수도원운동과 신비주의운동에 대한 논의로부터 출발해야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영성에 관한 본격적 관심은 수도원운동과 신비주의운동에서 시작되었으며, 기독교에서 영성이란 말은 전통적으로 수덕신학이나 신비신학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수도원운동과 신비주의운동을 중심으로 영성의 전통적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복음주의적 영성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해명하고자 한다.

 

I. 수도원적 영성

신약성서에는 세상과의 분리와 세상 속에의 참여를 교훈하는 두 다른 경향이 있다. 전자는 자기 부정, 금욕적 삶, 이 세상보다 저 세상,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강조하며, 바울서신이 이를 대변한다. 후자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긍정적 태도, 창조 질서 내의 하나님의 활동, 행동하는 영성을 강조하며, 이를 대변하는 것이 마태복음, 특히 산상수훈이다. 이 중에서 세상과의 분리를 강조하는 부정적 영성은 수도원운동과 신비주의운동을 통해 고대 및 중세교회에 널리 확산되었다.

기독교의 영적 훈련 가운데 하나는 덕을 닦고 악을 피하는 것, 육체의 욕망을 제압하여 정결을 지키는 것이다. 이런 훈련들을 금욕 또는 수덕이라 부른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에 방해되는 장애물을 제거하거나 그 반대되는 것과 투쟁하는 것이다. 수덕신학은 기독교인의 훈련, 즉 삶 속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목격하고자 사용하는 수단과 관련되어 있다. 금식, 규칙적 기도, 묵주 사용, 성경 읽기, 자선 행위 등이 그것이다.

초대 교회는 금욕 훈련을 중요시했으며, 교인 중에는 수덕사 또는 금욕주의자들이 많았다. 세상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분리하고, 육과 영, 현실과 내세를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세상을 부인하는 것이 초대 교회의 일반적 전통이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인간의 노력으로 세속적, 육적 상태와 행위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고대 교부들 역시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아 세상과 영의 분리에 근거하여, 영성을 세상을 부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서방신학의 기초를 세운 터툴리안은 그 자신 세상과 기독교 신앙은 서로 대립적이라는 것을 체험하고 기독교인들에게 세상과 분리해서 살라고 권했다. 특히 [순교자들에게], [스펙타클즈](Spectacles), [여인들의 복장] 등의 저서에서 이교 세계로부터의 분리를 강조하고, "세상에 있는 것보다 감옥에 있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한편, 터툴리안은 영성이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할뿐만 아니라 영성을 성령의 은사로 간주한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과 헬라철학 사상 사이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양자 모두 영과 육을 대조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동일하다. 헬라 철인들은 육적이며 세속적 욕구에 따라 사는 삶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신의 영에 이끌려 사는 삶을 추구했다. 그러나 터툴리안은 헬라 철인들이 인간의 영으로 이해한 것을 세상의 육체성과 동일시하였으며, 성령의 은사로서의 영성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취급했다. 영성은 세상 물론 자연적 인간의 영과도 다른 것이다.

동방 교회 최대의 신학자 오리겐은 후대 신학뿐만 아니라 동, 서방의 수도원 운동과 신비주의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헌신적 학문연구, 엄격한 생활방식, 성적 쾌락의 회피 등은 기독교 금욕주의의 모범이 되었다. 그는 기독교인의 삶을 세 단계로 나눈다. 도덕적, 본성적, 관조적 단계다. 도덕적 단계는 행위, 본성적 단계는 지적이며 관찰 가능한 행위, 그리고 관조적 단계는 하나님과의 영적 합일에 관련된 것이다. 그는 영성 생활을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그의 사상은 영적 성장을 정화, 조명, 합일의 단계로 구분하는 후대 신학에 반영되었다. 그가 금욕적 생활방식과 육체적 순결을 권장한 것, 성경의 문자적 의미보다 영적 의미를 강조한 것, 영적인 것을 계발한 것 등은 초기 기독교 영성으로부터 수도원적 영성으로의 전환을 예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방교회의 영성의 특징은 묵상과 침묵이다. 특히 해치키아(hesychia), 즉 침묵은 홀로 거하기 위해 사막으로 가는 것을 말한다. 세상을 피하여 은거하는 것을 영성 훈련과 연관시키는 사상이다. 3세기 후반, 일부 금욕주의자들은 엄격한 금단을 통해 기독교적 완전을 이루려 했으며, 금욕과 고해의 표시로 은둔생활을 했다. 특히 그들은 세상을 완전히 피하여 마귀가 살고 있는 곳으로 여겼던 사막으로 들어가 영적 훈련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들의 훈련에는 침묵, 기도, 금식 및 복종 등이 포함되며, 훈련과정은 은둔, 정화, 변화로 이어진다. 한편, 사람들이 사막으로 그들을 찾아가 교훈을 받게 됨에 따라, 이들 사막교부들의 영성 이해가 고대 교회에 널리 수용되었다. 그들의 금욕생활 형태는 점진적으로 발전되었으며, 4세기에 출현한 수도원 제도와 운동의 모체가 되었다.

금욕생활을 위해 최초로 사막에 들어간 자 중 한 사람이 이집트의 안토니(Anthony, 250-353)였다. 그는 마을 근처에서 고립하여 살면서 자신을 연단하는 생활을 하다, 모든 소유물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사막에 들어가 철저한 금욕훈련을 시작했다. 그의 훈련은 마귀 세력과 싸우는 것이었다. 그는 버려진 성채에 들어가 20년 동안 홀로 살면서 죽음의 권세를 극복하려 했다.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는 한편, 암송한 성경말씀을 묵상했다. 그의 생애는 자신을 연단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삶이었다. 이런 그의 개별적이며 은둔적 수도로부터 수도원 운동이 시작되었다.

공동체로서의 수도원운동 역시 이집트에서 파코미우스(Pachomius)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수도원을 세우고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 최초로 수도원 규칙을 만들었다. 4세기에 수도원 운동은 로마제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공동체적 수도원을 만든 가장 유력한 인물로는 가이사랴의 바실과 루니시아의 베네딕트 등이 있다. 바실은 두 개의 수도원 규율집을 저술했으며, 감사의 생활, 영적 은사, 순종의 중요성 등을 강조했다. 그는 영적 성장 혹은 성화의 전 과정을 아담의 타락으로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생각했다.

서방의 수도원 운동은 동방과 같은 형태로 발전된 것은 아니었다. 서방은 은둔적 형태보다 공동체적 수도원이 발전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서방의 기후 조건이 홀로 은둔생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동방의 수도원은 마을주민들이 사막에 들어가 금욕생활을 한데서 시작되었으나, 서방의 수도원은 감독들이나 유식한 엘리트 계층 기독교인들이 자신들과 성직자들을 위한 고상한 형태의 삶을 장려한 데서 시작되었다.

베네딕트는 이탈리아에서 베네딕트 수도회를 세웠으며, 그것은 지금도 가장 큰 가톨릭 종교 공동체이다. 그는 홀로 독거 생활을 한 후에, 상호토론과 충고를 주장하면서도 수도원장에게 많은 권위를 부여하는 수도원 조직법, [규율]을 만들었다. 그 기본적 영성 원리 중 하나는 기도와 육체적 노동을 결합한 것이다. 그 표어는 "노동은 기도다"이다. 수도사들은 매일 4시간씩 성경과 초대 기독교 작가들의 저서를 읽고 조용히 그리고 일을 하면서 그것을 묵상해야 했다. 육체 노동, 절도 있는 식사와 수면, 하루 일곱 차례의 기도는 오늘날까지 서방 수도사들의 기준이 되고 있으며, 수도사와 수녀들의 수도 서원에도 그의 영향이 반영되고 있다.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 전역에 수도원을 세우고 대단히 엄격한 금욕주의를 실시했다. 날마다 150편의 시편을 낭송하며, 개인적 죄 고백을 실천하며 특정의 죄에 대한 보속 행위가 정해져 있다는 것 등이다.

13세기에 탁발교단의 출현은 수도원 운동 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탁발교단은 교회와 사회의 욕구를 충족시킬 목적으로 이루어진 교단이다. 그것은 한 수도원 안에 머물면서 공동 기도와 개인 기도를 하는 제한된 생활 대신, 우선적으로 세상에서의 봉사를 요구했다. 도미니크 수도회, 프란치스코 수도회, 갈멜회 등이 여기에 속하며, 토마스 아퀴나스,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 등이 탁발교단이 배출한 대표적 인물들이다.

한편, 이그나티우스 료욜라(1491-1556)가 세운 제수잇 교단은 새로운 형태의 수도원 운동이이다. 그것은 탁발교단들보다 더 사회봉사를 강조했다. 제수잇 회원들은 자기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는 것을 의무로 여겼다. 이그나티우스는 묵상을 지도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범으로 [영적 훈련]을 저술했다. 그것은 대단히 합리적이면서도,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감정에 호소한다. 예를 들어, 묵상자가 성경에 등장하는 광경을 재구성하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한다.

요약하면, 세상과 영을 분리시켰던 초대 교회 전통이 고대 교부들을 거쳐 사막교부들과 수도원운동을 통해 세상을 부인하거나 세상으로부터 은둔하는 영성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수도원적 영성이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영성이 되었다. 그것은 수도자가 그리스도의 정신을 이어받는 수덕 또는 완덕의 생활을 의미한다. 수도원적 영성은 기독교적 완전에 이르기 위하여 세상으로부터의 도피, 성적 금욕 및 금욕주의와 더불어, 명상, 묵상, 기도, 성경 읽기, 노동 등 영적 실천의 종교생활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수도원 운동은 일부 기독교인들에게 참회와 기도, 성경연구,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 체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데 그 큰 의의가 있다. 또한 그것은 서방교회의 신비주의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초기 기독교의 수덕적이고 신비적 경향을 신비주의를 전달하기에 적합한 생활방식과 교리 전통으로 전환시켰다.

한편, 금욕주의가 기독교 영성의 일면인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와 피조물사이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극단적 금욕주의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무시하는 태도로 이어지며, 율법적 금욕주의는 개인의 공로를 중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시하기 쉽다.

 

II. 신비주의적 영성

신비주의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과의 합일을 목표로 하는 영성의 형태다. 신비신학은 기독교 신비가들의 교훈, 그들의 하나님 임재 경험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신비주의적 영성은 직접적 하나님 임재의 경험을 목표로 하며, 그것은 인간의 영혼이 세계로부터 격리되는 경험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그 준비 과정으로는 금욕적 관습, 성례전 예식, 여러 형태의 기도 등이 있다.

고대 기독교는 신학을 항상 지성적 훈련 이상으로, 그리고 신학자는 성육신의 신비를 묵상하고 반성할 수 있는 경험의 소유자로 간주했다. 기독교인은 신비의 친교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을 알게 된 자를 말한다. 따라서 기독교인의 삶의 일부가 신비주의였다. 또한 교부들은 지식과 영성 혹은 신비신학을 별개의 영역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이런 통찰이 6세기에 디오니시우스의 저술과 신플라톤적 요소와 융합하여 신비신학을 형성하게 되었다.

플라톤과 플라톤 전통이 기독교 신비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신플라톤주의(neo- platonism)의 창시자, 플로티누스(Plotinus, 205-270)는 서양 신비주의에 근원을 간주되기도 한다. 그의 사상은 이원론을 배격하고 일원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로 대립된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존재물로 계급 구조를 이룬 하나의 거대한 존재 계열만이 실재한다. 이 존재 계열이 의존하는 것, 즉 존재의 근원이 일자(一者)다. 일자 아래 단계에 정신, 그 다음에 영혼이 위치한다. 모든 존재자는 더 높은 단계의 존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일자 자체와 연합하기를 열망한다. 인간 영혼의 임무는 육체의 속박을 견디며, 높은 단계로 상승하여 일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 영혼은 정화의 과정을 통해 정신의 단계로, 그리고 황홀경에 의해 일자와 연합하는 단계로 상승한다. 이 상승운동의 수단이 신비주의적 도취와 금욕주의적 윤리다. 플로티누스의 사상은 고대 동, 서방의 기독교 신비주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 신비주의는 세속적 교회에 대항하여 일어난 운동으로 자기와 세상에 대한 포기, 죄로부터의 정화, 초월적 경험을 강조하는 부정적 영성의 전통에 토대를 두고 있다. 기독교 신비주의는 어거스틴과 아레오파고 사람 디오니시우스와 더불어 시작된다.

어거스틴은 신학자요, 교회 지도자요, 설교가였으나, 기독교의 신비적 요소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의 신비사상은 고백록], [시편 설교집], [삼위일체론] 등의 저서에서 발견된다. 특히 [고백록]은 그의 내면 생활이 고백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육욕을 버리고 영혼이 상승하여 하나님을 보는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플로티누스가 제시한 상승 모델을 사용하여 영혼의 상승 단계를 설명한다. 육체적인 것으로부터의 분리, 영혼 내부에서의 진행, 그리고 신적 단계를 향한 상승이 그것이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플로티누스의 단순한 추종자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을 기독교적 맥락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이 서방 기독교 신비주의에 공헌한 것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영혼이 상승하여 하나님을 보는 경험에 대한 설명이다. 둘째, 이 경험의 근거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본성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 경험을 위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디오니시우스는 500년경 시리아의 수도사로 사도행전 17:34에 언급된 아레오바고의 디오니시우스라는 이름으로 글 쓴 익명의 작가였다. 그는 흔히 슈도 디오니시우스(the pseudo-Dionysius) 또는 위 디오니시우스로 불리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천상의 계층구조](The Celestial Hierarchy), [교회의 계층 구조](The Eccliasstical Hierarchy), [신의 명칭들](The Divine Names), [신비신학](The Mystical Theology)등 4권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그것은 사도적 권위에 준하는 것으로, 그리고 그 자신은 사변적 신비주의의 근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디오니시우스의 주요한 공적 중 하나는 영혼의 상승을 정화, 조명, 합일, 세 단계로 공식화한 것이다. 이 형식은 그 후 서방 신비주의의 표준이 되었다. 정화의 단계는 영혼을 정결케 하는 것을, 조명의 단계는 하나님의 빛이 영혼을 비추어주는 것을, 그리고 합일의 단계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말한다. 정화의 단계는 유한한 본성과 관련된 것으로부터 영혼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조명의 단계에 속하는 것이 관상이다. 그것은 창조의 계층 구조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능력이다. 합일은 신화와 동일한 것이다. 영혼은 에로스에 의해 하나님과 연합되고 신화(神化)된다.

디오니시우스의 신적 합일의 개념은 모든 관념과 지식을 초월하여 몰아적 상태에 이르는 것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의 신학의 특징은 무정념(apatheia), 즉 정욕으로부터 해방된 상태를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로 형용하거나 설명할 수 없으며, 이성적 추론으로 도달할 수도 없는 신비한 분이다. 인간의 관념들은 하나님에게 적합치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제한하고 멀리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려면 그것들을 마음에서 제거해 버려야 한다. 디오니시우스는 하나님을 묘사하는 데는 긍정보다는 부정의 방식이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정념은 우리의 상상력과 감정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그려보려고 시도하는 긍정적 방법이며, 영성의 길을 처음 시작한 사람에게 유익하다. 무정념은 하나님에게 합당치 못한 모든 관념들을 제거하는 부정적 방법이다. 무지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며, 무지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 하나님과 합일에 접근하고 있는 사람은 무정념의 방법이 필요하며, 지적 능력을 완전히 부인하는 수동적 상태가 요구된다. 이 수동성은 인간적인 것이 하나님과 융합되는 사랑의 엑스타시(ecstasy)로 이어진다. 디오니시우스의 신학방법은 하나님과 합일을 위해 하나님에 대한 긍정적 논의와 부정적 논의를 결합하고, 마지막에는 긍정과 부정을 초월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 특징이다.

중세에는 기도와 묵상생활에 전념한 사람들을 흔히 신비가라 불렀으며, 신비주의는 두 흐름으로 나뉘게 되었다. 감정적 신비주의와 지적 신비주의다. 전자에 속한 대표적 인물이 버나드(St. Bernard)라면, 후자에 속한 대표적 인물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였다. 한편, 이 두 흐름을 통합한 인물이 루이스브렉이다. 특히 루이스브렉은 전통적으로 사용되어온 신비적 성장 단계를 활동적 생활, 내면생활, 관상생활로 수정했다. 그리고 각 단계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순서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에 다음 단계가 추가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기독교 신비주의와 신비적 경험은 단지 한 두 사람이나 운동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상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신플라톤주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신과의 교제를 목표로 한다. 그것은 여러 성장 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며, 세상을 피하여 순결한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가능하다. 신비주의 운동은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강조한 반면, 세상에서의 교회의 의미와 사명을 소홀히 한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금욕주의와 신비주의는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영혼과 육체, 명상 혹은 내면적 삶과 일상생활을 이분법적으로 분리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영성을 인간 내면적인 것, 완전히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한편, 세상을 부인하거나 세상에서 도피하는 삶으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훈련과 규칙들을 통해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실천을 강조한다. 따라서 영성은 수도사나 독신자, 종교적 엘리트에게만 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다. 수도원 운동은 육체와 세상을 피하거나 부정하는 영성을 산출했다고 할 수 있다.

금욕주의와 신비주의는 완전히 서로 분리된 별개의 것도 서로 배타적도 아니다. 금욕적 훈련의 위대한 실천자들이 또한 위대한 신비가들이었다. 사도 바울을 비롯하여, 초기 기독교 순교자들은 그러하다. 자아 부정과 극기를 목표로 하는 수덕생활은 신비주의자들에게 신적 합일을 위한 예비 단계다. 신비주의자들이 흔히 영혼 상승의 첫 단계로 간주하는 정화의 단계는 세상의 염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금욕적 훈련을 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영성은 전통적으로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과 대조를 이루는 영적이며 신비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그것은 중세의 수도원적 경건, 금욕생활이나 개인의 내면적 신비체험 등을 포괄하는 인간의 영적 활동을 총칭하는 용어였다. 즉 그것은 일상생활과 구별되는 금욕주의나 신비주의를 의미했다. 수덕신학은 자아 부정이나 극기가, 그리고 신비신학은 신과의 합일, 혹은 교제를 통한 궁극적 자아실현이 목표였다. 따라서 그것은 수도사나 신비주의자 같은 특정인 또는 소수의 집단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III. 복음주의적 영성

기독교는 16세기 종교개혁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도원운동과 신비주의운동을 통해 풍부한 영적 자원을 마련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가톨릭 교회가 마리아, 성자 및 유물숭배, 성체(聖體) 예배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등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수도원 운동과 신비주의 운동의 영성 대부분을 상실하고 영적 생활이나 영성에 대해 체계적으로 접근하거나 논의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특히 복음주의자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영성을 가톨릭 교회적인 것으로 간주했으며, 가톨릭적 영성추구 방법은 복음주의에 심각한 해악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영성과 복음주의적 신앙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최근 몇십 년 복음주의 신학자들 역시 영성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제임스 패커(James Packer)는 "의학도들에게 생리학의 연구가 필요한 것처럼, 복음적 목회를 바라는 우리에게 영성에 대한 연구는 대단히 필요하다. 우리는 영성에 대한 연구 없이 참으로 목회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렌츠(Stanley Grenz)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복음주의 신학은 영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왜냐하면 신학은 신자의 지적 신념의 변화뿐만 아니라 인격과 삶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맥그라스(Alister McGrath)는 복음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인의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룰 수 있는 복음주의적 영성을 개발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하였다.

복음주의는 성서 메시지로부터 유래한 신학체계인 동시에 신앙운동이다. 그것은 종교개혁, 청교도 운동, 경건주의, 부훙 운동을 그 역사적 유산으로 하고 있다. 복음주의적 영성은 성경과 복음주의 유산에서 발견되는 풍부한 자원에 근거하여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주의적 영성이란 무엇이며, 영성에 대한 복음주의적 접근방법은 무엇인가? 수도원적 영성과 신비주의적 영성과 비교하여, 복음주의적 영성을 정리해 보자.

1. 전인적 삶

영성은 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육체와 영혼의 결합체로, 그리고 영을 육체와 독립된 것으로 간주한다면, 영성은 이 세상적인 것으로부터의 도피를 의미하게 된다. 영성을 신비적인 것과 금욕적인 것으로 이해한 가톨릭 전통적 견해가 이를 대변한다. 금욕주의나 신비주의는 영성을 인간 삶의 내면적 혹은 개인적 부분에 관련된 것으로 취급한다. 반면, 인간을 육체와 영혼의 통일체로 간주한다면, 영성은 인간의 삶 전체를 포괄하게 된다. 영성은 기독교인의 삶 일부가 아닌,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구성의 한 요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에, 그리고 인간의 활동 영역의 한 부분이 아니라 인간 삶의 근본적 방향성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복음주의 학자들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대립적인 것으로 보거나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 영적인 것은 선하고 물질적인 것은 악하다는 견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한다. 왜냐하면 양자 모두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영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을 포함하는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은 영적인 것의 장애물이 아니다. 따라서 영성을 인간 존재나 삶의 일부가 아닌, 육체를 포함한 인간 전체에 관련된 것으로 취급한다. 영성은 완전히 영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것도 물질 세계와 전적으로 단절되는 것도 아니다. 신령한 사람은 마음이나 영만이 아니라 전인적으로 초월적인 것, 거룩한 것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뱅크스(Robert Banks)는 영성을 "하나님과 함께, 동료 기독교인 중에 그리고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의 성격과 성질"로 설명한다. 영성은 우리의 영이 분명히 "성령의 사역 속에 빠져드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영만 아니라 지성, 의지, 상상력, 감정, 몸과 관련된 것이다. 블로쉬(Donald Bloesch)는 영성을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나오는 삶의 스타일 또는 양태로 정의한다. 영성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형상과 일치하는 것이다.

라이스(Howard L. Rice)는 [개혁주의 영성]에서 영성을 "하나님에 대한 경험에 따라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양식"으로 정의한다. 영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의 모든 일에 중심이 되도록 살아가는 것"이다. 웨인라이트(Geofrrey Wainwright)는 영성을 기도와 삶의 결합으로 이해한다. 그것은“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하며 사는 것이다. 인간 심령이 성령에 의해 사로잡히고 유지되고 변화되는 것이다. 윌리암즈(Rowan Williams)는 영성을 인간 내부적인 것, 즉 영적이며 개인적 경험에 제한하는 것을 거부하고, 그것을 인간 경험의 모든 영역에 관계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영성이 기독교인의 전인적 삶에 관련된 것이라는 것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입장 변화에 의해서도 반증된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를 계기로 가톨릭 신앙을 재정립했으며, 영성을 기독교인들의 모든 삶을 포함하는 것으로 그 폭을 확대했다. 영성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이해하고 느끼며 깨닫고 결단을 내리는 완전한 삶"을 의미하며 영성신학은 "성숙한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온갖 노력과 더불어 신앙적인 체험과 이를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다.

이상의 견해를 종합하면, 복음주의의 영성 이해는 전인적이며 통전적인 것이 특징이다. 영성은 인간 존재의 일부, 즉 영적 혹은 내면적 영역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간 전체에 관련된 것이다.

2. 인격적 관계성

영성은 흔히 지성, 도덕성 등과 나란히 하는 인간의 경건한 성품이나 품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영성은 인간의 성품에 대한 추상적 개념보다 오히려 하나님과의 심원한 관계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가리킨다. 신령한 사람은 세상 속에 살면서도,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복음주의자들은 영적 훈련과 실천을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해한다. 그것은 인간의 활동이 아닌,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강조하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기도한다는 표현보다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표현을, 고해한다는 말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한다는 말은 선호한다. 왜냐하면 전자는 인간의 활동에 초점이 있다면, 후자는 하나님과의 교제에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영성에 대한 현대적 이해의 특징은 영성을 관계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은 물론 인간,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이는 현대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의 영성 이해에서 증거된다.

보이어(Louis Bouyer)는 프로테스탄트 교회 영성을 "복음서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인격과 신자의 개별적 인격 사이의 공존과 상호관계로부터 전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설명한다.

홈즈(U. T. Holmes)는 [목회와 영성]에서 영성을 총괄적이며 경험적인 면에서 정의한다. 영성은 인간의 관계성 형성능력, 즉 전인을 포함한 우주적 인간 능력을 말하며, 감각 현상을 초월하는 존재가 그 관계 대상이다. 그것은 고양된 의식으로서 인간주체에 의해 인식되며 역사적 상황 속에서 본질을 받고, 세계 속에서 창조적 행위를 통해 그 자신을 드러낸다. 홈즈는 영성을 하나님과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으로 이해하고, 그것은 단지 인간의 내면적이거나 신비적 경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구체적 역사 상황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사는 인간의 삶을 말한다.

홀트(Bradley P. Holt)는 [기독교 영성사]에서 성서적 영성의 특성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교회라는 공동체의 중요성, 세상에서 개인의 생활을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관계와 통합하는 것 그리고 온갖 종류의 기도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상호 작용하는 것이다. 다라서 기독교 영성은 "심리학적 건강을 구하는 내성적(內省的) 추구 이상의 것"이며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연합하는 것"이다.

샤우척(Norman Schaawchuck)은 기독교 영성을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교제 가운데 경험하는 삶의 변화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영성이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교제며, 그것은 삶의 변화를 가져오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프랭크 신(Frank C. Senn)은 [프로테스탄트 영적 전통]에서 영성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성, 즉 그 관계성이 고려되고 표현되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쉘드레이크(Philip Sheldrake)는 [영성과 신학]에서 영성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내주를 통하여, 신자의 공동체 내에서 하나님과의 의식적 관계에서 본 인간 삶의 전체"로 정의한다.

복음주의 신학자들 역시 영성을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면에서 이해한다. 휴스톤(James Houston)은 [복음주의 신학사전]에서 영성을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성의 상태"로 기술하고 있으며, 웨이크필드(Gordon Wakefield) 역시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복음주의는 일반적으로 영성을 기독교인의 전인적 삶과 하나님과의 관계성, 모두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의 삶과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는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의 삶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의 삶이다.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의미한다. 이는 최근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는 현대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영성 정의에서도 발견된다.

그렌츠는 영성을 "성령의 지도 아래, 그러나 신자의 협력과 더불어 거룩함을 탐구하는 것,"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성령에게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을 추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맥그라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에 대한 고백에 우리의 마음과 삶을 일치시키는 것을 기독교 영성의 시금석을 간주한다. 따라서 영성은 신령한 사람과 관련된다. 그것은 신령한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능력을 주며, 그를 성숙시키는 것이다. 그는 신령한 사람을 "세상 속에 살면서도 하나님과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영적인 것을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향하는 삶"으로 정의하고 있다.

오든(Thomas Oden)에 따르면, 신약 성경적 의미에서 영성은 도덕적 프로그램도, 일련의 규칙들도, 윤리적 성취의 단계도, 철학이나 웅변도, 개념이나 전략도, 명상의 이론도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이다. 영성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즉 성령의 능력을 통해 성육하시고 부활하신 주와의 관계성 안에서의 인격적 삶을 뜻한다.

복음주의적 영성의 기본 전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기독교인의 영성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며, 그의 삶과 정신을 따르는 것이 영성이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와 사귐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복음주의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영성을 이해하는 것은 복음주의의 정체성과 조화를 이루는 접근방법으로 평가된다. 복음주의의 주요 특징은 회심주의, 성서주의, 활동주의, 십자가 중심주의로 요약된다. 특히 회심은 기독교적 삶의 시작에 절대 필요한 개인적 체험이요, 세상으로 향하던 삶의 방향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근본적 변화다. 복음주의가 개인적 회심의 필요성과 거룩한 삶에 대한 열망을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기독교인의 삶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오늘의 상황과 현실 속에서 구현해 가는 기독자의 삶 전반을 의미한다.

3. 말씀과 은총

복음주의의 표준 가운데 하나는 종교개혁 신앙이다. 종교개혁의 표어, 오직, 성경, 오직 은총, 오직 믿음의 원리가 복음주의 정체성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복음주의는 신자의 영적 성장과 성숙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은총을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복음주의적 영성은 거의 전적으로 성경에 의존한다.

한편, 복음주의는 수도원적 영성을 영적 실천과 같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 하나님에게 도달하려는 시도로 취급하며, 수덕신학과 신비주의 신학은 인간의 업적을 통한 구원론으로 오염된 것으로 보고 있다. 영성은 금욕적 훈련이나 신비적 경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경 말씀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종교개혁자들로부터 내려오는 신앙 전통이다.

루터는 금욕적 훈련과 신비주의 전통을 존중했다. 그는 수도원을 떠난 뒤에도, 금욕 훈련을 생활화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인의 자유](1520)에서 영혼이 그리스도와 결혼한다는 신비적 상징을 중시하고, 인간의 수동성을 강조했다. 루터는 슈도 디오니시우스로부터 시작하여 엑크하르트로 이어지는 지적 신비주의 전통을 거부한 반면, 버나드, 보나벤추라(St. Bonaventura)로 이어지는 감성적 신비주의를 높게 평가했다. 쯔빙글리는 오직 말씀의 영성을 강조한 반면, 가톨릭 교회의 금욕적, 성례적, 신비적 관습들을 거부했다. 칼빈의 영성의 출발점은 신자와 그리스도의 신비적 합일이었으나, 그 의미는 가톨릭 교회와 달랐다. 신비적 합일은 믿음에 의해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요, 여러 성장 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도달되는 것이 아니다.

복음주의는 영성 훈련의 일반적 체계를 개발하거나 발전시키지 않았다. 그것은 훈련이나 발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초점을 두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성을 위한 일체의 수단이나 방법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적 영성 추구방법이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해악, 즉 하나님의 은총보다 인간의 노력이나 공적을 중시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복음주의는 영성,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위해 다양한 수단들을 활용한다. 파커(David Parker)에 따르면, 복음주의적 영성 훈련은 큐티(QT), 친교, 봉사, 훈육으로 요약된다. 특히 큐티는 말씀 묵상과 개인 기도로 이루어진다. 복음주의는 신자의 영적 성장과 성숙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말씀에 대한 묵상을 강조한다. 말씀 묵상은 하나님의 은총에 이르는 통로와 같은 것이다. 한편, 기독교 삶의 성숙 조건 가운데 하나가 친교와 봉사다. 기독교인의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세상으로 확대된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 자기 희생적인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사는 것이 복음주의적 영성의 징표다. 운동하지 않는 사람은 육체적 힘을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영적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 즉 주를 위해 활동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 힘을 유지할 수 없다. 영성이 깊은 사람은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는 사람이요, 봉사하는 기독교인이다.


결론

영성이란 말은 애매하고 모호하다. 그것은 항상 동일한 것을 의미하지 않고,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영성에 대한 오해를 경계해야 하는 한편, 영성에 대한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기독교적 영성은 역사적으로 수도원 운동과 신비주의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영성을 기독교인의 내면 생활, 즉 신비적인 것이나, 금욕적인 것 또는 영적인 것으로 이해했으며, 영적 훈련과 실천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가톨릭 전통적 영성 이해는 영성을 기독교인의 삶의 일부분으로, 기독교인의 본질이나 경건한 성품으로, 그리고 수도사나 신비가와 같은 소수의 집단에게만 개방된 것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고 내면적이며, 세상에 대해 부정적인 것이 특징이다.

현대 들어, 영성의 의미가 재발견되고 있다. 영성은 기독교인의 삶의 일 부분이 아닌,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의미가 확대된 것이다. 또한 기독교인의 본질이나 경건한 성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기독교인과 하나님, 이웃, 사회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기독교 영성의 핵심은 신자들의 경건한 성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와 그리스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인격적 교제를 개발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에 일치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 그의 삶을 닮아가는 삶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도피하는 삶이 아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향하는 삶,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는 삶이다.

복음주의자들 역시 영성에 대한 현대적 이해와 맥을 같이한다. 복음주의는 영성을 기독교인과 하나님의 관계성으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 전인적 인간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그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실천에 의해 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세상과의 분리와 세상 속의 참여 가운데 어느 하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양자가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즉 복음주의적 영성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저 세상적인 것도, 단지 개인적, 내면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로부터 삶의 현장으로, 그리고 이웃과 사회로 역동적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복음주의는 신학적 신념인 동시에, 영적 갱신과 부흥운동이다. 따라서 영적 풍요를 누려야 할 역사적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복음주의는 영적 활력을 상실하고, 영적 빈곤을 겪고 있다. 독특한 영성이 부족한 것이 복음주의의 위기라고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영적 활력을 회복하는 것이 복음주의가 당면한 긴급한 과제다. 복음주의는 성서는 물론, 종교개혁, 청교도 운동, 경건주의 및 부흥 운동을 비롯한 그 역사적 근원들로부터 영성에 대한 풍부한 자원들을 발견하여 특유의 영성을 개발해야 될 것이다.

한편, 복음주의는 가톨릭적 영성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취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하나는 가톨릭적 영성 추구방법이 복음주의 신앙에 심각한 해악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앞서 논의한 가톨릭적 영성의 문제점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가톨릭적 영성에 대한 공정한 평가다. 종교 개혁자들은 중세 가톨릭 교회가 성서적 진리를 왜곡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가톨릭의 전통적 유업들 가운데 지속적 가치를 지닌 것들도 폐기했다. 종교적 질서, 퇴수, 묵상, 침묵 등에 대한 강조도 그에 속한다. 복음주의는 복음주의적 영성 실천들을 개발하는 과정을 통해 고대 교회의 유산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동양의 전통적 교육철학과 서양의 전통적 교육철학 수덕

동양의 전통적 교육철학과 서양의 전통적 교육철학 - 인문/교육
동양의 전통적 교육철학과 서양의 전통적 교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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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동양과 서양의 환경과 문화가 다른 만큼 전통적 교육철학에서도 많은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또한 비슷한 점도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동양과 서양의 교육철학을 비교해 보겠다. 동양의 전통적 교육철학을 논하는데 꼭 빠져서는 안 되는 건 불교의 교육철학이다. 

불교는 불타가 창시한 종교이다. 불타는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지혜의 밝음과 자비의 따뜻함을 구현하는 것을 중시했다. 즉 불교교육의 기본이념은 짧게 말해 불타가 되도록 일깨우고 자극하여 돕는 것이다. 불교의 교육원리는 성덕수덕의 두 원리로 나뉜다. 

성덕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중생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인식하고 모든 사람이 다 깨달아 알아 통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수덕은 후천적 실천의 원리로서 불성을 끌어당기고 불성을 묶음의 원인으로 하여 본성을 완전히 드러나야 함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세 가지 기르는 삼육이 있는데 먼저 지육은 실생활을 통해서 선지식을 몸에 지니게 하는 일이며, 체육은 고행을 버리고 슬픔과 고통, 슬픔과 즐거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바른길을 가는 걸 원칙으로 하고, 적당한 음식섭취, 몸의 청결, 고른 호흡, 선정으로 건강한 육체를 가꾸는 일이며, 덕육은 사섭법으로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함으로써, 마음을 닦는 일이다. 

불교의 교육방법은 교의 설법에 일정한 방식은 없으나 불타는 성도 후에 다음과 같은 방법을 썼다. 첫째는 신족교화법이다. 자신이 신통력을 나타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믿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방법이다. 둘째는 설법교화방법이다. 사체, 십이인연, 팔정도 등 이치에 맞는 이야기로 상대방을 설복시키는 방법이다. 셋째는 훈회교화법인데 이것은 취해야 할 일, 버려야 할 일 등을 훈계․교화로 지도 하는 방법이다. 교육내용으로는 오명과 경전연구로 구분된다.

<생략>

Life Is a Miracle: An Essay Against Modern Superstition: Berry, Wendell: 9781582431413: Amazon.com: Books

Life Is a Miracle: An Essay Against Modern Superstition: Berry, Wendell: 9781582431413: Amazon.com: Books

Life Is a Miracle: An Essay Against Modern Superstition Paperback – May 1, 2001
by Wendell Berry  (Author)
4.4 out of 5 stars    76 ratings
176 pages
“[A] scathing assessment . . . Berry shows that Wilson's much–celebrated, controversial pleas in Consilience to unify all branches of knowledge is nothing more than a fatuous subordination of religion, art, and everything else that is good to science . . . Berry is one of the most perceptive critics of American society writing today.” —The Washington Post



“I am tempted to say he understands [Consilience] better than Wilson himself . . . A new emancipation proclamation in which he speaks again and again about how to defy the tyranny of scientific materialism.”—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In Life Is a Miracle, the devotion of science to the quantitative and reductionist world is measured against the mysterious, qualitative suggestions of religion and art. Berry sees life as the collision of these separate forces, but without all three in the mix we are left at sea in the world.


Editorial Reviews
Review
"A new emancipation proclamation in which he speaks again and again about how to defy the tyranny of scientific materialism." -- Colin C. Campbell, Christian Science Monitor
About the Author
Wendell Berry is the author of fifty books of poetry, fiction, and essays. He was recently awarded the Cleanth Brooks Medal for Lifetime Achievement by the Fellowship of Southern Writers and the Louis Bromfield Society Award. For over forty years he has lived and farmed with his wife, Tanya, in Kentucky.
From The Washington Post
"[A] scathing assessment... Berry is one of the most perceptive critics of American society writing today."

Customer Reviews: 4.4 out of 5 stars    76 ratings

Wendell B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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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Wendell E. Berry (born August 5, 1934) is an American novelist, poet, environmental activist, cultural critic, and farmer. A prolific author, he has written many novels, short stories, poems, and essays. He is an elected member of the Fellowship of Southern Writers, a recipient of The National Humanities Medal, and the Jefferson Lecturer for 2012. He is also a 2013 Fellow of The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 Berry was named the recipient of the 2013 Richard C. Holbrooke Distinguished Achievement Award. On January 28, 2015, he became the first living writer to be ushered into the Kentucky Writers Hall of Fame.
Bio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Photo by Guy Mendes (Guy Mendes) [CC BY-SA 3.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via Wikimedia Commons.

Customer reviews
4.4 out of 5 stars

Top reviews from the United States
S. Nachalo
5.0 out of 5 stars society ended and no one noticed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July 7, 2016
Verified Purchase
“We are not getting something for nothing. We are getting nothing for everything,” the epigraph with which Berry opens Life is a Miracle, is apt and concise. Modern society appears miraculous, the product of man's industry and ingenuity. It looks (and is advertised largely as) a kind of perpetual motion machine, powered by little other than human inventiveness. Attentive observers have noticed that appearances are, as usual, deceptive: we are living on fossil fuels, energy created over eons by geological processes, and in a matter of decades, we've used up more than half of what's available. But there are problems even greater than the depletion of our main energy sources, destroying our ability to perpetuate our society and culture without much notice from anyone. We (and many other animals) have been passing our knowledge and ways of life the old fashioned way (and the only way) from parent to child as long as we've been on this planet without giving it a thought, but it appears that this simple and irreducible aspect of our species existence can be interrupted. When this happens locally, tribes and cultures die. It's not clear whether it is possible for this to happen globally, but it seems that this is the direction we are heading. Globalization and the “market economy” have been at work disrupting and destroying local cultures and replacing them with a universal mono-culture known to its practitioners and captives variously as “capitalism," "market economy," or “democracy” in the west, “communism” or “socialism” elsewhere. Whatever name it goes by, its effects on the living beings and the environments they inhabit is the same.

Life is a Miracle is about this process, the loss of the ability to perpetuate the culture we've built over millenia. Wendell Berry looks to science for a culprit, because science is our culture's founding myth, governing paradigm, and much more, and he picks E. O. Wilson's Consilience as the book through which to analyze the subject. The choice is appropriate for a number of reasons: Wilson is a mainstream scientist, and in Consilience, he tackles questions like ethics, religion, art, and culture in general- necessarily, since his stated goal is to bring the different disciplines together into a working whole. He is also a conservationist, as is Berry.

Science approaches all questions as problems to be solved, and all unanswered questions as questions yet to be answered. “(Consilience) reads as though it was written to confirm the popular belief that science is entirely good, that it leads to unlimited progress, and that it has (or will have) all the answers.” (p. 24) This means that mystery, an essential and critical part of human culture, is an impossibility: Wilson attributes it entirely to human ignorance. Without mystery, reverence and propriety are impossible, leading to a society governed by profit and raw power as we've arrived at today, whether the power is cloaked in the accoutrements of “democracy,” “socialism,” or more transparent forms. What Wilson calls “consilience” turns out to be an invitation (or an ultimatum, taken more broadly) for religion and the arts to take on the goals and methodology of science, an impossibility if the words mean what we all think they mean. “Like a naïve politician, Mr. Wilson thinks he has found a way to reconcile two sides without realizing that his way is one of the sides... One cannot, in honesty, propose to reconcile Heaven and Earth by denying the existence of Heaven.” (p.99)

The crisis we face can't be solved with more science or technology, since these are part of the cause. We have to address the way we think and talk about the world and ourselves.

The language we use to speak of the world and its creatures, including ourselves, has gained a certain analytical power (along with a lot of expertish pomp) but has lost much of its power to designate what is being analyzed or to convey any respect or care or affection or devotion toward it. As a result, we have a lot of genuinely concerned people calling upon us to “save” a world which their language simultaneously reduces to an assemblage of perfectly featureless and dispirited “ecosystems,” “organisms,” “environments,” “mechanisms,” and the like. It is impossible to prefigure the salvation of the world in the same language by which the world has been dismembered and defaced. (italics in original) (p. 8)

Berry's solution to this crisis, if there is to be any solution to it, is for scientists, artists, and religious people, whether they can work together in the end or not, to root their work in local considerations and return to such considerations at their works' end, as well as, ideally, throughout the process.

Directly opposed to this reduction or abstraction of things is the idea of the preciousness of individual lives and places. This does not come from science, but from our cultural and religious traditions. It is not derived, and it is not derivable, from any notion of egalitarianism. If all are equal, none can be precious. (And perhaps it is necessary to stop here to say that this ancient delight in the individuality of creatures is not the same thing as what we now mean by “individualism.” It is the opposite. Individualism, in present practice, refers to the supposed “right” of an individual to act alone, in disregard of other individuals. (p.42)

Any new invention or idea or practice should, in the end, be weighed on the merits of its impact on our communities. “Suppose we learn to ask of any proposed innovation the question so far only the Amish have been wise enough to ask: What will this do to out community?” (p.134) Obviously, most people don't have the benefit of living in anything resembling a community, so we would have to break up the corporate capitalist society into local communities first.

Life is a Miracle elicits some hysterical reviews on Amazon, as one would expect with books that challenge our most basic assumptions about ourselves and the world. I expect that if it were more widely read, the greater part of our country would be foaming at the mouth over this book. God I wish it were. This is likely one of the most important books of the decade, or century, or however long we plan on living miserable lives governed by anti-human precep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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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S. Frady
4.0 out of 5 stars A Helpful Corrective for Our Times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July 9, 2016
Verified Purchase
This book is a response to E.O. Wilson's "Consilience", a book which purports to bring all academic disciplines under the rubric of scientism. Berry strongly objects, pointing out the slippery slopes abounding in academia and culture when scientific pursuits are given preeminence. Berry is at his best in this book when he critiques the university system, particularly its penchant for specialization and the funding streams within which mitigate against the good of the community. This book was written at the turn of the 21st century and it is apparent to this reader that in the intervening years the problems Berry addresses have gotten worse. Berry's theme of community may be the most important and most needed theme for our world today, as we live in an isolated, divided culture where ideologies are at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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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ers Martinson
5.0 out of 5 stars A challenging, thought-provoking, and valuable piece of writing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July 12, 2009
Verified Purchase
Having read many of Wendell Berry's work I can say that this is probably not to use as your introduction to his writing. Better to start with a collection of his agrarian essays. This is one of his most difficult essays to come to terms with, and a review that attempts to analyze it would almost work in opposition to the (anti-reductionist) points Berry tries to convey.

In a way I think Berry made an error in choosing his subtitle. The use of the word superstition is unnecessarily inflammatory, and the word against distracts the reader from the fact that Berry's work in general and this essay in particular focus largely on things that he is for.

A casual approach to this book could leave the reader unfamiliar with his other work feeling that Berry is a Luddite polemicist. A more careful reading of the, somewhat uncharacteristically, dense prose here will reveal Berry's thoughtful passion for what it means to be human. One needn't agree with every point Berry attempts to make in order to use this book as a way to simply stop and think.

In the chapter A Conversation Out of School Berry quite plainly asserts that science and art are not inherently at odds with one another. He clearly sees limits in what science can help us know and accomplish, but he doesn't dismiss entirely the pursuit of empirical knowledge. This is a provocative and challenging piece of work, but well worth the effort.

Reasonable people can disagree. Read it with an open mind and see where the discussion takes you. The very fact that it has led to pointed discussions on all sides of the issue just among these reviews shows that it touches on crucial issues for our society and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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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ta S. Hyland
5.0 out of 5 stars First Wendell Berry Book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February 19, 2014
Verified Purchase
Wendell Berry has come up often enough over the last couple of years that I finally had to buy one of this books. I have to admit, I was kind of put off by the reverence that his readers showed when talking of him, but once I read his book, I could understand the fanfare. This book is clearly written, thought provoking, and one that made the most compelling argument for the limits of science...and I am a science buff. I have since ordered two more of Berry's books. I know I will return to my highlights in the book over and over again.
9 people found this help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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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a Miracle: An Essay Against Modern Superst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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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a Miracle: An Essay Against Modern Superstition
by Wendell Berry
 4.19  ·   Rating details ·  1,063 ratings  ·  132 reviews
"[A] scathing assessment…Berry shows that Wilson's much-celebrated, controversial pleas in Consilience to unify all branches of knowledge is nothing more than a fatuous subordination of religion, art, and everything else that is good to science…Berry is one of the most perceptive critics of American society writing today." --Lauren F. Winner, Washington Post Book World

"I am tempted to say he understands [Consilience] better than Wilson himself…A new emancipation proclamation in which he speaks again and again about how to defy the tyranny of scientific materialism" ---Colin C. Campbell, Christian Science Monitor

"Berry takes a wrecking ball to E. O. Wilson's Consilience, reducing its smug assumptions regarding the fusion of science, art, and religion to so much rubble. --Kirkus Reviews

In Life Is a Miracle, the devotion of science to the quantitative and reductionist world is measured against the mysterious, qualitative suggestions of religion and art. Berry sees life as the collision of these separate forces, but without all three in the mix we are left at sea in the world. (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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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back, 176 pages
Published April 19th 2001 by Counterpoint (first published 2000)
Original TitleLife Is a Miracle: An Essay Against Modern Superstition
ISBN1582431418 (ISBN13: 9781582431413)
Edition LanguageEnglish
Other Editions (4)
Life Is a Miracle: An Essay Against Modern Superstition 
Life Is a Miracle: An Essay Against Modern Superstition 
Life is a Miracle: An Essay Against Modern Superstition 
Life Is a Miracle: An Essay Against Modern Superst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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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S WITH THIS BOOK
Papyrus by John GaudetA Sand County Almanac and Sketches Here and There by Aldo LeopoldEcology, Community and Lifestyle by Arne NæssSoil and Soul by Alastair McIntoshDeep Ecology for the Twenty-First Century by George Sessions
Deep Ecology
70 books — 34 voters
The New Testament Documents by F.F. BruceApologetics to the Glory of God by John M. FrameMere Christianity by C.S. LewisChristianity and Liberalism by J. Gresham MachenBeyond Death by Gary R. Habermas
Desiring God Recommends #2
96 books — 1 vo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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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rner
Mar 18, 2008Werner rated it really liked it
Recommends it for: All readers who care about serious questions
Shelves: other-nonfiction
Wendell Berry is a well-known author of prose and poetry; sometimes a college teacher of English (a field in which he has a graduate degree); a Kentucky farmer who tills land that's been in his family for several generations and who advocates for sustainable farming practices and environmental stewardship; and a public intellectual who thinks seriously about important social and philosophical issues. To date, this is the only one of his numerous books that I've read (though I definitely intend to read more!); but I've now read it three times, most recently because I've long really wanted to review it, and felt that because of the depth and complexity of the thought, it deserved a review written with the benefit of the freshest possible engagement. Even so, it will be a challenge to summarize it within the scope of a review.

Berry is a classical Christian believer, whose faith shapes his view of the world and universe around him and undergirds his thought. Moreover, in the present book, he's making the case that human life in the world is essentially miraculous, and that it has an inescapable spiritual dimension. That said, however, he does not base his arguments here on appeal to religious authority as such, nor present them in narrowly "religious" terms. Rather, he's arguing for a basic philosophical position, and a basic way of living in the world on the basis of that position, that can be shared by persons of a wide variety of faiths, and even by persons who have no specific faith as such, but who approach the natural and human world from an existentially humble perspective that recognizes the mystery and complexity of the universe and values individual humans, communities, and natural spaces. For this reason, although I originally shelved the book with "Christian life and thought," I think "Other nonfiction" would be the more accurate classification --not because his thought isn't Christian, but because he's writing from the perspective of philosophy, not theology, and writing to all of his fellow humans who share the common graces of conscience and ability to reason.

While this is a short book (153 pages), addressed to general intelligent readers rather than academic specialists, not burdened with scholarly apparatus and expressed in as clear a style as possible, and although it is a relatively quick read, it's not AS quick as one might initially expect. The content is pithy, and covers a lot of ground at short length, but significant depth. Berry illustrates and supports his points with examples from literature, especially Shakespeare (the first chapter has an extended discussion of King Lear --which I have never read-- and the book's title comes from Edgar's words to his suicidal father, "Thy life's a miracle...."), references to history and current events, and quotes from other serious thinkers. While he's primarily concerned with the concrete and practical side of life, he necessarily addresses some significant abstract ideas that bear on how we approach the concrete and the practical; the writing demands thought and attention. Full engagement with it can be demanding.

Published in 2000, the book is a specific response to the 1998 book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by Edward O. Wilson, much-honored Harvard Univ. biologist, secular humanist philosopher (and avowed "environmentalist") and general pillar of the intellectual establishment. In that book (which I admittedly have not read; I believe Berry represents it accurately and that his numerous quotations from it are not out of context, but in any case the viewpoint Berry describes is a common establishment party line that most readers have already encountered frequently) Wilson argues for the equation of "science" with positivist materialism and denial of the existence of anything not empirically material, for the ability of Science thus defined to ultimately explain all of reality, and for the reorganization of all human knowledge and academic disciplines into a supposedly "consilient" whole subordinated under the overarching philosophic guidance of this super-competent Science. Berry begs to differ; but while he develops his own position in response to Wilson's, his book has value, IMO, as a positive statement on its own terms, not simply as a refutation of Wilson (so it can be appreciated on its own terms whether you've read Wilson or not).

To summarize some of Berry's main positions in capsule form, he maintains: that human knowledge is not solely rationally deductive-empirical, but can be intuitive, emotional, and/or the product of wholistic experience over time that's not reducible to mathematical formulas or "data;" that organisms and machines are two distinctly different things, and that the former, and the world and the universe generally, are not properly conceived by trying to reduce them to the latter; that the "scientist" is not a detached observer of the "environment" but a part of it, and that the instant you set up a false dichotomy between the two you're fatally undercutting any genuine commitment to the "environment;" that humans are not mechanically or chemically determined but have genuine free will (not the "illusion" of it), which means that we make choices, and that if we don't, appealing to us to make environmentally-friendly choices makes no sense; and that while the proper goal of all sciences and arts is the healthy flourishing of humans and their communities, the goal of science as practiced in contemporary academia is maximizing the profits of the wealthy corporations that pay for the research, with results generally inimical to human flourishing. He devotes a chapter to the concept of "propriety," which he defines as "the fittingness of our conduct to our place and circumstance" (and which has a wealth of applications to present-day behaviors); and he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commitment to the local and particular, rather than grandiose subordination of the local and particular to 'globalized" operations. But there's much more content, and more food for thought, here; I've only scratched the surface rather briefly!

My read of the book this time, and writing of this review, was of course in the shadow of the current pandemic, a situation that heightens and accentuates the urgency of some of Berry's themes. The virus is a "problem" that many people are looking to Science to "solve;" but of course science had a great deal to do with creating the "problem" and the conditions under which it's spread, and deified "Science" isn't going to give us moral and spiritual resources for getting through the "problem," explaining it or making sense of its consequences in anything but a reductionist sense, or helping us decide what sort of social reality we want to build or rebuild in its aftermath. Those are things that don't call so much for technical expertise as for virtue, faith, wisdom, and community. A blog post written 20 years after this book was, and which doesn't mention Berry or this book, may seem an odd thing to link to in closing; but that's what I'm going to do, because I think Billy Coffey's conclusion there puts in simple words much of what Berry is saying here. https://www.goodreads.com/author_blog... . (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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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Aug 05, 2012David rated it really liked it
As a scientist and a university faculty member, I found some parts of this essay stinging. Nevertheless, I found, on the whole, much of the commentary cogent and useful. At first, this essay seemed like some form of Luddite treatise. But what actually emerged was a well thought out challenge to the primacy of science in the modern world. Although the author issues this challenge directly at the Ecologist E. O. Wilson, in response to Wilson's thesis entitled Consilience, Wendell Berry rarely misses an opportunity to broaden his attack against Science (with a capital S). Nevertheless, I found the points of attack well articulated and rarely gratuitous.

In sum, this text made me (actually, allowed me) to look at science from a fresh perspective. Such opportunities are rare, when one has been in a given field for many years. For this, I am indebted to this author. (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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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son
Feb 04, 2008Karson rated it really liked it
Wow. I didn't think the whole thing totally ruled, but there are certain quotes that are probably going to stick with me forever. He just has a different point of view than i have ever been exposed to. He really values the particular. Particular places, particular people, particular animals, particular things. This is across the spectrum from me. Like most Americans I value big, novel things. I think big trips rule, big mountains, big states, even big animals. I like moose more than birds. Mountains more than streams. Adventurous trips more than everyday life. I want to love particular "mundane" things, and Berry knows a lot more about that then I do. He'd rather stay one place his whole life and fully appreciate its depth and richness, than briefly skim all the world without a deep understanding of any one place. The particular and mundane scare the shit out of me, but this guy revels in it. Holy crap. (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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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
Dec 19, 2008Jon rated it it was amazing
Gotta give this one 5-stars just for sheer audacity. Berry takes on modern science and its materialistic and mechanistic world view, and he has E.O. Wilson and his book Consilience in his sights. Berry suggests that something is lost when we only focus on the reductionist perspective at the root of modern science. We are, he is suggesting, more than can be explained by modern science, and he suggests the dominance of the modern scientific paradigm represents a threat to those ineffable or irreducible characteristics that make us uniquely human.

We are, he is suggesting, more than machines:

"The most radical influence of reductive science has been the virtually universal adoption of the idea that the world, its creatures, and all the parts of its creatures are machines--that is, that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creature and artifice, birth and manufacture, thought and computation" (p. 6).

In response to that model he suggests that, "life, like holiness, can only be known by being experienced" (p. 8), and that "Our daily lives are a daily mockery of our scientific pretensions" (p. 33). And again, "Directly opposed to this reduction or abstraction of things is the idea of the preciousness of individual lives and places" (p. 42).

The book does bog down a bit in the middle, but then there will be a line like this to catch your attention:

"To define knowledge as merely empirical is to limit one's ability to know; it enfeebles one's ability to feel and think" (p. 103).

Or this:
"'Survival value', it seems to me, must deal in minimums, since any species dependent upon maximums would be too vulnerable to survive. The human race has survived because of its ability to survive famine, not because of its ability to survive feasts" (p. 110).

Or this:
A work of art says what it says in the only way it can be said. Beauty, for example, cannot be interpreted. It is not an empirically verifiable fat; it is not a quantity (p. 117). (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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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 Bianco
Feb 15, 2018M.G. Bianco rated it it was amazing
Shelves: non-fiction
One of the best book of essays from Wendell Berry that I've read. Intriguing and compelling at every point, he hits his biggest home run (for me) when he considers the different kinds of knowledge and then the distinctions between art and science, and the necessity for both to work together from a common ground.

For those of you who have heard his speech on Wallace Stegner's idea of the "boomers" and "stickers," he elaborates on that more in this book as well. (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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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n
Nov 06, 2008Evan rated it it was amazing
Berry continues to astonish me. This is not a fast and easy read; you have to work and pay attention. But Berry writes as a prophet of our times and has put his finger on a core - maybe the root - cause of dis-ease in our century.

He writes a critique of rationalism and scientific thought that we need to pay attention to.

A few memorable passages:

"For a while I proposed to myself that the only things really explainable are explanations. That is not quite true, but it is near enough to the truth that I am unwilling to forget it.

"What can be explained? Experiments, ideas, patterns, cause-effect relationships and connections within defined limits, anything that can be calculated, graphed or diagrammed. And yet the explanation changes whatever is explained into something explainable. Explanation is reductive, not comprehensive; most of the time, when you have explained something, you discover leftovers. An explanation is a bucket, not a well.

"What can't be explained? I don't think creatures can be explained. I don't think lives can be explained. What we know about creatures and lives must be pictured or told or sung or danced. And I don't think pictures or stories or songs or dances can be explained. The arts are indispensable precisely because they are so nearly antithetical to explanation." (p113)

"The time is past, if ever there was such a time, when you can just discover knowledge and turn it loose in the wold and assume that you have done good.

"This, to me, is a sign of the incompleteness of science in itself - which is the sign of the need for a strenuous conversation among all the branches of learning."

"In our present economic predicament, ethics, ecology, environmental law, etc. won't as specialties have much corrective force. They will be used to rationalize what is wrong." (p145)
(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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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l
May 18, 2011Joel rated it really liked it
Wendell Berry: my constant antidote to graduate school.

Berry dislikes scientific reductionism, argues for the uniqueness of art and religion as ways of knowing, being, doing, etc, and adds some important objections to the "scientific" enterprise as it is carried out today: it is essentially colonial, imperialist, and in bed with a number of environmentally destructive forces.

He also comes down pretty harshly on the way academic disciplines are organized and the way universities are run. This makes a lot of sense to me, but leaves me with some questions about how to proceed with my own chosen field. I am so surrounded by people who do research and scholarly publishing as their livelihood that I forget it's something I've never wanted.

Berry writes in another book, Standing by Words:

"If one wishes to promote the life of language, one must promote the life of the community—a discipline many times more trying, difficult, and long than that of linguistics, but having at least the virtue of hopefulness. It escapes the despair always implicit in specializations: the cultivation of discrete parts without respect or responsibility for the whole."

I'm knee-deep in theory about language and social worlds, yet too much of it, in the end, for me feels like a spinning out into nothing. It is not too late, perhaps, for me to imagine getting much more involved with language and literacy teaching at local, grassroots levels. For all our talk about the Local, currently fashionable ideas in applied linguistics seem rarely to be produced by scholars who are genuinely committed to living and working in a place, rather than an archipelago of universities.

Obviously, this book has provoked thinking beyond its subject. Which I suppose is another thing it has going for it. (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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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7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 Editor's Pick - 동학 입문자를 위한 책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 Editor's Pick - 동학 입문자를 위한 책

Editor's Pick - 동학 입문자를 위한 책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은 1994년 시작했고 출판사의 이름을 달고 정식으로 책을 출간한 것이 1997년입니다.
그동안 출간한 책이 2021년 6월 기준, 거의 400종에 이릅니다.

그간 출간한 책들을 분야별로 골라 차근차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그 첫 번째로 동학, 그중에서도 동학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을 위한 입문서와 동학 경전, 고전에 관한 책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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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입문서


『표영삼의 동학 이야기』, 그리고 『표영삼의 동학혁명운동사』

저자인 고(故) 삼암 표영삼 선생(1925~2008)은 ‘최후의 동학인’, ‘걸어 다니는 동학’으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평생을 동학 연구에 몸바쳐 온 학자이며, 몸소 실천하고 수양하는 천도교인이었습니다. 그의 연구와 실천은 도올 김용옥 선생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바 있습니다.

이 책은 삼암 표영삼 선생의 저작선 제1권과 2권입니다.
제1권인 『표영삼의 동학 이야기』는 동학의 역사와 사상, 수행 방법에 관한 것을, 제2권인 『표영삼의 동학혁명운동사』는 지역별 동학혁명 전개 과정에 대한 글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이 갖는 장점 중 하나는, 쉽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동학에 갖는 부담감에는 '동학 =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선입견과 함께 한자와 옛 문체에서 오는 난해함이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저자는 특유의 이야기체로 쉽게 써내려 갔습니다. 동학과 천도교에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미덕은 발로 뛰어 쓴 글이란 점입니다.
사료나 역사적 정황에 의존해 쓴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직접 현장을 답사한 체험과 직접 채집한 증언을 기반 위에 사료로부터 얻어지는 정보를 추가하여 써내려 간 글입니다.
그의 글에는 책상 머리 맡에서 만들어진 글과는 다른 생생함이 담겨 있습니다.

『표영삼의 동학 이야기』
표영삼 지음 / 신영우 감수
448쪽 /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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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영삼의 동학혁명운동사』
표영삼 지음 / 신영우 감수
448쪽 /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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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경전 공부하기(증보2판)

이 책은 초판에 해당하는 『천도교경전 공부하기』(2007, 274쪽, 15000원), 그리고 『천도교경전 공부하기(개정판)』(2010, 784쪽, 30000원), 『천도교경전 공부하기(증보판)』(2013, 808쪽, 30000원)에 이은 네 번째 책입니다.
여러 차례 개정을 거듭해 온 만큼 더 풍부해지고, 더 다듬어졌습니다.
동학·천도교의 주요 경전인 동경대전, 용담유사, 해월신사법설, 의암성사법설의 원문을 충실히 담아내고 중요한 어구에 주석을 달아 풀이와 공부할 때 착안해야 할 점을 제시하였습니다.
특히 이 책은 이론·학술적인 접근보다 신앙·정서적인 접근의 방향을 취하고 있으며, 전체 경전에 대한 충실한 해석으로 동학 경전 공부를 처음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지침서가 되어 줄 것입니다.


『천도교경전 공부하기』(증보2판)
라명재 주해
848쪽 / 3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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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mosinsaram.com/577?fbclid=IwAR2KCayk2KSQXl8vKljqV1xPGNzh57LLY89oNPapixj-IbUNg6FKkrdEIHg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