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7

초기 동학의 영적 기록: 회상영적실기 최종성

 

[기조발표 제 부2                2발표] 2020 한국종교학회 기조발표 요지문

초기 동학의 영적 기록: 회상영적실기

                                                                                                                                 최종성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1.     조선시대 민중을 위한 획기적인 문화 창달이 두 가지 있었다.[1]) 하나는 개국 후 50(1443)이 지나 면서 창제된 한글이고, 다른 하나는 망국 전 50(1860)에 창도된 동학이었다. 한글이 국가왕실의 프로젝트로 시작되어 민중에게 배달된 하향식의 문화성과로서 어문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면, 동학은 민간 차원에서 개발되어 지역의 민중에게 수평적으로 퍼지면서 영적 소통을 실현시켜 주었다 고 할 수 있다. 조선의 민중들은 한글 자모를 깨우쳐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원활히 할 수 있었고, 또 시천주(侍天主)의 주문을 통해 신인 간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었다.

2.     그런데, 동학 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이른바 갑오년(1894)의 동학이 그것이다.[2]) 당연히 동학년은 갑오년이고 녹두장군이 끈 전장,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타오른 농민군, 깃발 나부끼는 들판이 압도한다. 이보다 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수운(水雲)으로 대변되는 경신년(1860)의 동학 이 자리한다. 동학의 지리적 풍경은 피 끓는 함성이 가득한 들판이 아니라 촛불 밝혀 기도에 전념하 는 고요한 산중으로 바뀐다. 각기 저마다의 동학에 대한 풍경과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혁명(전 쟁 과) 영성이 제대로 화해되지 않는 한 경신년의 동학은 몇몇 종교인들만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그들의 기억마저도 희미해지고 말 것이다.

3.     주지하다시피 갑오년에는 1)한반도를 둘러싸고 청 일이· 각축하는 대외적인 흐름 정치적( 환경) 2)조 세 및 토지의 모순에 반발하는 농민운동의 물줄기 경제적( 환경 와) 3)영적인 스승이 입은 억울함을 해 소하려는 신원운동의 맥락 종교적( 환경 이) 한 군데에서 만났다. ‘동학란 이든’ , ‘동학혁명 이든’ , ‘농민전 쟁 이든어떤 명칭을 사용하더라도 동학의 영적 자원이 간과되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그러한 종교 적 원천이 어떻게 활용되고 배분되었는지 살피는 것이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브루스 링컨의 말 대로, 폭력적 수단만 가지고는 혁명이 성사되기 어려우며, 이데올로기적인 설득과 정서적인 환기를 제공하는 종교적 담론의 힘이 결부될 때 사회의 재구성이 용이해진다고 할 수 있다.[3]) 동학을 소수 지도부만의 문제로 혹은 형식적인 외피로 간단히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 적어도 자신들의 목소리 (vox populi)를 하느님의 소리(vox dei)로 믿으며 응집할 수 있게 했던, 그래서 저들의 목소리가 군현 단위를 넘어 전국적으로 확장될 수 있게 했던 원동력이 어디에 있었을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시 동학군을 이끌었던 전봉준이 서울로 잡혀와 공초했던 내용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동학을


수심경천(守心敬天) 하는 도()로 파악하고, 그러한 동학에 크게 매료되었다고 진술한다. 아울러 불 가항력적인 괴질 콜레라 로부터( ) 벗어나는 길도 동학의 경천수심(敬天守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4]) 녹 두가 동학의 핵심으로 파악한, ‘하느님을 공경하며 모시는 마음을 지켜내는 것 이야말로수운이 역설 한 시천주와 상통한다. 마른 땅의 녹두(綠豆)를 촉촉이 적셔주며 생장시킨 것이 최제우가 몰고 온 영 적 비구름(水雲)이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4.     초기 동학도들에게 기억되는 영적 천재의 자취는 어떠했을까? 시천교계열의 두 교단에서 발간한 두 도설서(圖說書), 『회상영적실기(繪像靈蹟實記) (』 시천교총부)와 『시천교조유적도지(侍天敎祖遺蹟圖志) (』 시 천교본부 가) 단연 주목된다. 그림과 문자로 교조의 자취를 설명하는 방식은 『석씨원류(釋氏源流),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 『관성제군성적도지(關聖帝君聖蹟圖誌)』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바이다. 아마도 동학 교조의 신이한 행적과 일대기를 주제별로 정리하고 신성의 감화, 영적 수련, 상서와 이 적 등을 도해로써 쉽게 설명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잊혀진 종교사를 새삼 일깨우고 그것을 영적인 삶 의 원천으로 삼도록 교화하려는 의도가 강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동학 2대 교주인 해월에게는 3, 즉 구암(龜菴), 송암(松菴), 의암(義菴)으로 대표되는 3 제자가 있었다. 송암 손천민(1857-1900)이 처형된 뒤 일본으로 망명했던 의암 손병희(1861-1922) 1906년 귀국하여 구암 김연국(1857-1944)과 손잡고 천도교를 창건하면서 동학은 본격적인 종교조직으로 발돋움하였다. 그러나 한때 의암의 측근으로서 고락을 함께했지만, 끝내 천도교로부터 출교를 당한 일진회 장 이용구(1868-1912)가 그해 시천교를 창립하고 대례사(大禮師) 직에 앉음으로써 동학의 분립이 본격화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천도교 대도주를 역임하던 구암 김연국이 1907년 손병희와 불화를 거 듭하다 결별한 뒤 자신의 손으로 출교시켰던 이용구의 시천교로 들어가 최고 교직인 대례사가 되는 얄궂은 운명의 반전을 겪으면서 동학 진영은 더욱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병세 악화로 일본 고베 지역 스마(須磨)로 건너가 요양하던 이용구가 1912 5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잠재되어 있던 시천교의 알력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하였다. 결국 1913년에 이르러 송병준이 이끄는 시천교본부 견지동의( 송파시천교 와) 김연국을 따르는 시천교총부 (가회동의 김파시천교 가)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서로 경쟁 관계에 있던 시천교 계열의 두 교단은 19155개월 상간으로 초기동학의 역사를 다룬 도설서를 앞 다투 어 내놓게 되는데,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회상영적실기(繪像靈蹟實記) (』 시천교총부, 1915 7) 가 그 하나이고 그 맞수격인 『시천교조유적도지(侍天敎祖遺蹟圖志) (』 시천교본부, 1915 2월 가) 또 다른 하나이다.

『회상영적실기 는』 총 51개의 도설을 다루고 있는데, 철저하게 영적 스승인 수운(1-24)과 해 월(25-51도 에만) 내용을 국한시키고 있다. 반면 『시천교조유적도지 는』 수운(1-25)과 해월(26 -54) 이외에도 해산 이용구(55-69도 와) 제암 송병준(70도 의) 도설을 추가하여 총 70개의 도 설을 구성하고 있다. 전자가 구암 김연국의 서사를 배제한 채 오로지 신앙적인 모델로서 스승들의 과거 이적에 주목하였다면, 후자는 과거의 종교적 유산을 이어받은 후예들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각 시키려 이용구와 송병준을 추가하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과거 해월과의 친연적 관계로 치자면 당 대에 시천교총부의 구암 김연국이 단연 압권이었을 테고, 그러한 도통적 연원에 취약했던 시천교본 부 입장에서는 이용구와 송병준의 행적을 교조들의 유적에 병행시키는 것이 여러모로 효과적이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책의 구성에 있어 『시천교조유적도지 는』 도설 전체의 목차를 제시한 뒤 곧바로 70개의 도설을 차례대로 설명하며 끝을 맺고 있을 뿐 서문이나 발문을 싣고 있지 않다. 반면, 『회상영적실기』는 51 개의 도설을 전개하기에 앞서 당시 시천교총부를 이끌던 지도부 6명의 서문을 제시하면서 발간 배 경과 맥락, 그리고 책의 취지와 가치 등을 역설하고 있어 참고할 만하다. 당시 『회상영적실기』의 서 문을 작성한 이는 교주인 구암(龜菴) 김연국(金演局)을 비롯해, 그를 따랐던 성도사(誠道師) 용암(龍菴) 김낙철(金洛喆), 경도사(敬道師) 인암(仁菴) 최유현(崔琉鉉), 경도사(敬道師) 청암(淸菴) 곽기룡(郭騎

), 신도사(信道師) 연암(淵菴) 김낙봉(金洛鳳), 신도사(信道師) 신암() 원용일(元容馹) 등이었다.

도설의 내용에 있어 『시천교조유적도지 는』 그림 이미지의 묘사가 정밀한 것에 비해 설명 내용이 다소 간략한 편이다. 반면 『회상영적실기 는』 도상이 다소 거칠지만 설명 내용이 상대적으로 긴 편이 다. 도설의 문헌만을 고려하자면 『시천교조유적도지 는』 한문 문장으로만 간략하게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 데 비해, 『회상영적실기 는』 한문으로 주제문과 찬문(贊文)을 작성하고, 연이어 국문의 번역(찬문 번역은 제외 을) 싣고 있다. 이러한 상호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책 모두 주제와 관련된 장면과 내용을 선택적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는 지면상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도설의 맥락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원천으로서의 역사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시천교조유적도지』의 경우에는 동일교 단에서 같은 시기에 출간한 『시천교종역사(侍天敎宗繹史) (』 시천교본부, 1915), 『회상영적실기』의 경 우에는 『시천교역사(侍天敎歷史) (』 시천교총부, 1920)를 각각 배경에 두고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바람 직하다고 본다.

5.     앞서 언급했듯이, 『회상영적실기 는』 6편의 서문과 51개의 도설로 이루어져 있다. 수운과 관련된 도 설이 24(1-24)이고 해월을 다룬 도설이 27(25-51)이다. 도설은 대개탄생-수도-각성-전발-피 체 죽음 묘역- - ’ 등의 순서로 전개되며 주제에 따라 초자연적인 상서, 현몽, 이적, 감응, 예시 등의 요 소들이 개입되어 있다. 『회상영적실기 에』 수록된 도설 목차는 아래와 같다.

6.     동학의 영적기록으로서의 『회상영적실기 를』 이해하기 전에 동학의 영성에 대해 간략하게 생각해보고 자 한다. 서구 개념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간에 종교 전통의 동서를 막론하고 하나로 수렴되는영성 의개념을 도출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동학의 인간학적 견지에서 보자면 영성은 진정한 인간 되기, 곧 자기 진정성- (self-authenticity)을 모색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이는 생래적으로 자동적 으로 주어지는 인간(human being)이 아니라 어떤 각성과 공부를 통해 스스로 진정한 인간이 되려 는(being human) 노력과 관련된다. 불성(佛性), 천리(天理), 이마고 데이(imago dei) 등은 인간이 자기 진정성을- 찾아가는 데에 있어 모본과 준거가 될 만한 것들이었다. 동학으로 보자면 그것이 시 천주(侍天主)으로 응집될 수 있다. 수운이 설명했듯이, 하느님 모심은 단순한 숭배나 일반적인 시중 듦이 아니라 신성의 내면화(內有神靈), 내적 신비의 외재화(外有氣化), 그리고 신인합일의 영속화(各知不移) 등을 통해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이었다. 하늘을 모심으로써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의 경지를 체화하고, 기가 감응하고 심이 통하는 삶을 영속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7.     그렇다면 『회상영적실기 에서는』 영성, 혹은 영적인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동학의 영성과 관 련해 『회상영적실기 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얻기는 쉽지 않으나 몇몇 서()의 내용이 주목된다.

먼저, 시천교총부에서 경도사를 지낸 청암 곽기룡이 작성한 서문에는 천지영성(天地靈性)과 대성인 지영성(大聖人之靈性)을 언급하고 있다. 곽기룡이영성 이라는단어를 직접 사용하고 있어 주목되는 데, 당대 교단 내부에서도영성의 생활 과’ ‘세정 세속 의( ) 생활 을대비시키며 영성을 독립적으로 사용 하고 있는 사례가 있어 그리 낯선 표현은 아니었던 듯하다.[5]) 교조의 삶에서 상서, 감응, 비술, 이적 등이 계속된 것은 천지와 합덕한 교조의 품성이었기에 가능했고, 이러한 성인의 영적 본성을 『회상 영적실기 를』 통해 더듬어 볼 수 있다는 취지이다. , 교조의 인생은 천과 동행하는 삶이었고, 『회상 영적실기 는』 동학 후예들이 영적 표본으로 삼을 만한 원천들을 싣고 있다는 것이다.

! 이 책 중의 몇 개의 그림과 기록이 바로 두 성사와 대교주의 비밀스런 것과 신령스러움을 제시한 것에 지 나지 않으니, 즉 천지의 영성(靈性) 중 만분의 일일 따름이다. 오직 우리 후학 된 자가 이 그림을 공손히 우러 러보고 이 기록을 엄숙히 읽으면 숙연히 공경함이 일어나고 황홀하게 깨달음이 있을 것이니 곧 대성인의 영성 일부분만이라도 엿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구암문인.( 경도사청암 곽기룡 근서)

! 是卷中幾條繪像實記, 直不過兩聖師及大敎主秘題靈示也. 卽天地靈性萬分之一耳. 爲吾後學者, 拜瞻是圖, 莊讀是記, 肅然起敬, 然有覺, 則大聖人之靈性, 亦可以窺一斑矣.(龜菴門人 敬道師淸菴 郭騎龍 謹序)

두번째로 경도사 인암 최유현의 서문에서도 교조의 인생은 천지와 더불어 묘함을 공유하며 천지 와 동행하는 삶이었다고 진단하고 『회상영적실기 를』 통해 천인일치의 신비를 중생들에게 보편화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본 실기에 실려 있는 것은 곧 몇몇 예를 들어 후세에 전해줌으로써 단지 우리 스승과 천지가 그 묘함을 함께 했었음을 증명코자 하는 것이다. … 오직 우리 구암 장석만이 바로 이 근원에 접하여 그 종지를 홀로 얻었다. 따라서 선사 당시의 비밀스럽게 숨긴 유적을 모두 모아서 마음으로 온갖 법을 전달하여 종류별로 다 갖추게 함 으로써 이 책을 인쇄하게 되었다. 그런즉 두 스승과 지금 우리의 장석 구암 이( ) 그 체와 용이 서로 들어맞고, 앞 뒤로 일치하니 어찌 공경히 칭송치 않겠는가! 오호! 이로부터 오만 년을 지내는 동안 항하사와 같은 중생이 영 적의 여러 예를 볼 수 있게 되어 모두 천인의 한 이치를 우러르게 되었으니, 어찌 본서의 그림과 기록에 힘입 은 바 아니겠는가? (구암문인 경도사인암 최유현 근서) 而載在本記者, 則示以幾例, 遺諸後世, 而只證我師與天地同其妙矣. … 惟我龜菴丈席, 直接斯源, 獨得其宗, 先師當時之秘藏遺蹟, 咸蒐彙輯, 心授万法, 類別悉備, 乃有斯編剞劂之擧,然則兩師與今我丈席, 用相符, 前後一致, 豈不欽頌哉! 嗚呼! 自玆以往經五万斯年, 恒沙衆生, 得見靈蹟之數例, 咸仰天人之一理, 豈非賴乎本書之繪記也哉! (龜菴門人 敬道師仁菴 崔琉鉉 謹序)

세번째로 시천교총부를 이끌었던 교주 김연국의 서문은 『회상영적실기 를』 통해 성인의 영적 자취 를 공표하고 전수하게 된 동기와 과정을 싣고 있다. 스승을 지근에서 오랫동안 모셨던 경험이 있는 교단의 책임자로서 그는 교조의 참된 자취 영적 가( ) 수운과 해월을 경험하지 못한 후예들에게 잊히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대중들이 상상하고 공경하며 앙망할 수 있도록 영적을 그림으로 그리게 한 후 회상( ), 취지를 분명하게 밝힌 기록을 덧붙이게 해서 실기( ) 하나의 도설서를 완성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지금 성인께서 떠났으니, 참된 자취가 적막하니 후학들이 어찌 법을 본받을 수 있겠는가? 일찍이 그 참된 자취 가 후세에 전해지지 못함을 걱정하였고, 또 도유들이 알 수 없다고 여겨 탐탁지 않아 하며 버릴 것을 걱정하여 그 자취를 묘사할 것을 명하여 대강을 여러 제자들에게 주어 더욱더 지극한 자취를 마음에 새기게 하였다. 그 럼으로써 공경하고 앙망함을 만대에 전하여 영원히 법의 집의 하나로 삼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자취의 말미암 은 바를 그림으로 그려 완성하게 되었다. 그림이 비록 다 그려져도 세대가 점점 내려가고, 그 사람이 적멸에 따라 들어가게 된다면, 그림은 말을 할 수 없고 그 내용도 분명히 전해지지 않아 그 본래적인 취지를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또 다시 그 일을 기록하여 덧붙일 것을 명하였다. 이렇게 해서 자취의 말미암은 바를 기록 하여 덧붙인 것이다. 실기가 이미 완성되어 두세 명이 세상에 공표되기를 원하여 나에게 서문을 쓰기를 요구한 까닭에 마침내 서를 써서 그 만분의 일을 이를 따름이다. (구암 김연국 근찬) 今者聖人去, 眞跡寂矣. 後學烏可效法? 嘗憂其眞跡之不傳於後世, 而又悶於道儒之以爲不可知而等棄, 命其跡描寫之, 槪以授諸子益印至跡, 而敬仰傳於萬代, 而永爲法戶之一也. 圖之所由以成者矣. 圖雖成劃, 世愈降焉, 而其人隨寂, 畵不能語, 而傳不得明, 恐不能盡其旨. 又命其記事而付之, 記之所由以付者矣. 『實記』旣成, 二三子欲公於世, 而要余序之. 故遂序其萬一云爾.(龜菴 金演局 謹撰)

8.     『회상영적실기 는』 교조의 탄생에서 죽음 이후까지의 영적 자취에 대한 예조, 상서, 비술, 감화 등을 상세하게 싣고 있다. 그중에서도 천성산기도, 경신년득도, 도통전수도, 적조암기도 등에 관한 도설이 주목된다. 이들 도설은 신성의 예비 신승헌천서도( ), 신성의 체험(천성산기도도, 시수천명도, 궁을영부 도, 은암강관도, 조암강도도), 신성의 전승 도통전수도( , 하몽전발도 을) 담고 있으며, 이런 사건과 경험 속에 강렬한 신적 감응(降話, 降筆, 降管, 扶鸞, )이 내재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9.     동학은 경신년(1860) 산중에서 시작된 영적 각성, 들불 같은 갑오년(1894)의 혁명과 전쟁, 그리고 전인미답의 새로운 근대적 환경에서의 분열 등을 차례로 겪어야 했다. ‘영성-전쟁-근대성 으로점철 되는 초기 동학의 경험에 대한 이해와 기억도 제각각이었다. 이런 와중에 1) 동학은 영성보다는 전 쟁, 산중의 고요한 기도보다는 깃발 나부끼는 들판의 함성, 수운보다는 녹두장군이 대중의 이목을 받고 있다. 2) 그러나 동학의 온전하고도 균형 있는 이해를 위해서 신앙적 원천으로서의 영적 기록 들에 대한 발굴과 정리도 필요하다고 본다. 3) 그런 의미에서 주류교단으로부터 배제된 시천교 계열 에서 발간했던 영적 기록물인 『회상영적실기 와』 『시천교조유적도지 를』 주목할 만하다. 4) 여기에서 는 『회상영적실기 에』 실린 영적 천재의 자취에 주목하였고, 그 중에서도 천성산기도, 경신년득도, 도 통전수도, 적조암기도 등의 도설을 살펴보고자 했다. 6) 그것은 동학도들로 하여금 진정한 인간, 즉 자기 진정성을- 모색하는 동학적 영성의 모본이었으리라 짐작한다.



[1] ) 최종성, 『한국 종교문화 횡단기』, 이학사, 2018, 80-81.

[2]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미래사, 1992, 90.

[3] ) Bruce Lincoln, DiscourseandtheConstructionofSociet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9), pp. 3-11.

[4] ) 『全準供草』(17285), 재초.

[5] ) 『龜岳宗報』 4(侍天敎報社, 1915.2) <勸誘文林>란에 실린 임우탁의宗敎人의 立言이라는 글 속의靈性의 生活과 世情의 生活의 如何를 館라 는제하의 내용을 참조할 만하다.

국가폭력과 한국사회의 트라우마 김동춘

 국가폭력과 한국사회의 트라우마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1. 도입

20세기 한국인들은 일제 말 징용과 징병, 일본군 성노예 동원, 해방 후 좌우 대립과 분단, 한국전쟁, 이후의 베트남 전쟁, 그리고 군사정권의 억압과 폭력과 광주 5.18 등을 집단적으로 체험했다. 이 폭력 의 경험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혔으며, 그것이 한국사회의 건강성을 크게 손상 하였다. 분단, 전쟁, 군사독재 시간에 벌어진 국가폭력 피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여러 과거청산 기구 의 진상규명 활동, 사법당국의 재심과 보상 결정,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명예회복 등의 방법으로 진행 되어 왔다. 그러나 이들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이 겪어온 정신적 외상에 대해서는 아직 체계적인 실태 조 사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에 의해 공식적인 인정, 집단적 치유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모 든 상처는 오직 개인의 질병으로 간주되고 따라서 개인이 감당하고 치료해야할 일이다. 분단과 전쟁의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 증상이 의학적 사실을 넘어서 사회적 사실로 되고, 과거청산이 법적인 처리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의제가 되어야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남북한의 분단은 무엇보다도 좌우 이념 대립으로 동족, 심지어 가족 간에 죽고 죽이는 일들을 수 없 이 많이 만들어 냈고, 지금까지 그 적대의 상처를 남기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자기 눈앞에서 부모나 형제가 총 칼을 맞고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거나, 그러한 일을 직접 경험했던 남북, 좌 우 양측에 의한 피학살 유족들은 억울함과 분노, 수치심을 갖고 살아왔다. 즉 가공할만한 폭력현장에서 벌레 취급을 당한데서 오는 극도의 무력감과 자기 비하, 국가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겪고도 국가에 대해 가해 책임을 묻거나 가해자 처벌을 요구할 수 없는데서 오는 분노와 좌절감, 그리고 부모 형제가 억울 하게 죽게 되었는데도 그것을 막지 못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 등이 이들의 정신에 남아있다.

국가폭력 피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여러 과거청산 기구의 진상규명 활동, 사법당국의 재심과 보상 결정,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명예회복 등의 방법으로 진행되어 왔다.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와 PTSD 증상이 의학적 사실을 넘어서 사회적 사실로 되고, 과거청산이 법적인 처리의 차원을 넘어서 사 회적 의제가 되어야하고, 화해 치유의 과정이 사회적으로 전개될 필요성이 절실하다.

2.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의 정신적 상처

1) 집단학살 피해 한국전쟁당시 피학살자들과 그의 가족들, 군사정권 하의 고문과 폭력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 광주

5.18 당시폭도 로지목된 사람들과 가족들이 모두가 그런 말도 안되는 충격을 당한 사람들이다. 모든 국가폭력 피해 중에서 학살, 고문 피해는 가장 충격적인 것이며, 그것은 당사자들의 정신 도덕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려 그의 평생을 옥죈다.

한국전쟁 전후 자기 눈앞에서 부모나 형제가 총 칼을 맞고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거 나, 그러한 일을 직접 경험했던 피학살 유족들은 억울함과 분노, 수치심을 갖고 살아왔다. 즉 가공할만 한 폭력현장에서 벌레 취급을 당한데서 오는 극도의 무력감과 자기 비하, 국가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겪 고도 국가에 대해 가해 책임을 묻거나 가해자 처벌을 요구할 수 없는데서 오는 분노와 좌절감, 그리고 부모 형제가 억울하게 죽게 되었는데도 그것을 막지 못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 등이 이들의 정신에 남 아있다. 그래서 생존자들은원통하고 분한 생각이 솟구쳐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느낌을 갖고“, ” 식사를 하다가도 길을 가다가도 대화를 하다가도 그 생각만 나면 정신을 잃는증세를 보였다. .경에 의해빨갱이 로        몰려서 죽은 것도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지만, 사건 이후 수십년 동안빨갱이 가 족 으로        지목되어 번듯한 직장을 가질 수도 없었고, 계속되는 사찰과 감시, 사회적 차별을 당했다는 사 실 자체도 이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그래서              이들 유족들은 무기력감, 공포, 대인기피, 침묵, 그리고 과민증을 보였다.

그래서 한국전쟁 그 자체로부터 상처를 입은 5,60년대 한국인들은 대체로내부 망명[1])과 망각, 기복 주의 신앙에의 집착을 통해 전쟁 분단 트라우마를 극복하려 했고, 그 중 피학살자들은 가해자 즉 국가 의 편에 섬으로써 생존의 길을 갔다. 그것은신분정화 의   일종이었다. 피학살 유족들이 좌익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 교회에 간 것도 그 중 하나였지만, 남성의 경우 군 입대가 대표적인 신분정화, 신분세탁 행 동이었다. 한국전쟁기 제주도 4.3 피해자들의 군 입대 선풍도 그것이었다. 들은 자신의 가족을 국가 안 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국가가 공식 사용하는 빨갱이 담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일부 피학살 유 족들은 빨갱이를 성토하는 일에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은 국가의 눈 밖에 나지 않을까 두려워 선 거 때마다 무조건 여당을 지지하기도 한다.

이것은 자신의 정치 사회적 위치를 국가의 주류나 핵심에 두기 위한 자기방어, 자기변호의 몸부림이 었다. 즉 차별의 구조, ‘빨갱이 담론 을도저히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그 헤게모니의 제약 아 래서 행동의 반경을 설정하는 셈이다. 피학살 유족들이 희생자들이띠끌만한 잘못도 하지 않았던’ ‘순수 한양민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였다. 상당한 교육수준을 갖고 있거나 사회단체에 가담한 경력이 있 는 유족들도 별 차이가 없었다. 즉 그들은 스스로가 불순분자라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려 함으로써, 가 해자인 국가의 인정을 받으려 하였다. 여기서 바로 피학살자 진상규명 운동 과정에서 보도연맹 유족들 에 대한 여타 유족들의 거리두기가 시작되었다. 사실 학살사건 이후부터 보도연맹 가족들은 빨갱이라고 시골 동네에서는 이웃 사람들이 농사 품앗이에도 끼워주지 않았다. 그들의 자녀들은 공무원도 못되고 육사도 못가고 회사에 들어가도 인사발령을 내주지 않았다. 그런데 또 다른 피학살 유족들은 자신은 순 수양민이기 때문에 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들을 차별하였다. 즉 당신들 (빨갱이) 때문에 우리순수한 양민 이함께 빨갱이 취급받을 위험이 있다는 것이 이들순수 양민 들이좌익 활동가 유족이나 보도연맹 유족들을 물리치는 이유였다.

사건 이후 거의 60여년 지난 시점의 조사에서도 제주 4.3 피해자 중 설문에 응한 70명 중 68.6% PTSD 장애를 겪고 있었고, 52.9%가 우울증을 겪고 있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한국전쟁 중 군.

. 미군에 의한 피학살자 가족들의 대부분은 감정조절이 안되어 대인관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심리적 충격. 대인기피, 화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치료경험이 없는 사람이 85%에 달했다.

2) 고문 등 인권침해 피해

지난 군사정권 시절 고문 등의 현장에서 이들을 거의 짐승, 벌레와 같은 존재로 취급당했으며, 피해 자들은 스스로를 인간이하의 존재로 느꼈다. 고문은 권력에게 철저한 복종을 요구하는 일이고, 인간의 자존감과 자아를 철저하게 붕괴시키기 때문이다.켰다. 그리고 사건 이후 수십년 동안 권력과 사회가 이 들에게 가한 존재 부인( 빨갱이, 간첩 은) 이들을산 송장’, ‘금치산자혹은 국가 내의 식민지 백성, 천민 이나 노예처럼 살았다. 누구도 그들과 함께 하려 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반공지 상주의 사회에서 빨갱이, 폭도, 간첩으로 지목되어 산다는 것, 그것은 가족을 포함한 공동체로부터 퇴출 을 의미하였다.

고문을 당하고 살아나왔다고 하더라도 그 육체적 정신적 상처는 평생 따라다닌다. 그리고 고문 등 국 가폭력을 가한 국가가 이 문제를 인정하고, 그것을 가능케 했던 모든 법과 제도를 고치고, 관련자를 처 벌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병든 국가는 계속 사회를 병들게 한다. 조작간첩 사 건 피해자 김철씨는수개월 동안 밀폐된 고문실에서 일제강점기 일본 고등계 형사들이 독립군을 고문 했던 방식으로 고문을 당했다 고말했다. 그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끔찍했던 고문실은 그 자체가 공 포다.

이들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은 가족과 이웃을 불신하고,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여 자살하기도 했고, 가 족의 죽음이나 친구들의 고통을 보고서도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다. 즉 국가폭력이 계속 정당화되는 사회에서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수치심을 갖는다. 남들은 죽었는데 자기 손자 살아났다 는 수치심, 가족을 돕지 못했다는 수치심, 폭력에 굴복했다는 수치심, 고문 앞에 동료들의 이름을 불었 다는 수치심이 그것이다. 전쟁 기 피학살자 가족들도 그렇지만 민주화 운동 유가족들도 혈육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데 대해 자책감을 갖고 있다. 정보기관이 가족을 협박할 경우 수배자인 가족을 자수시키거 나 군 입대 시킨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삶과 생각은 전형적인 트라우마 증상, 즉 폭력을 당했던 그날 그곳에 머물러있다. “피해의 현 재성, 그 자리에서 한 치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이 갖는 고통의 극단이다.... 정신활동이 그곳에 멈추어 있다는 것, 어떤 자질한 행복이나 감정을 잘 느낄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조작간첩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의 절정이다”. 사실 베트남 참전군인과 성폭력 피해자들의 체험에 주로 기초한 미국의 PTSD 라는 지표자체가 한국에서 이들이 겪었던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과 고통을 측정하기에는 부적절한 지표 일지 모른다.

조작 간첩, 인권침해, 및 고문 피해자들의 경우는 본인이 직접 피해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더욱 심각 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모든 나라의 모든 형태의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공포와 피해의식, 사회의 냉대와 차별, 이웃과의 단절, 실질적인 불이익 때문에 자신이 겪은 일에 일체 발언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같은 종류의 피해를 겪고 있으면서도 완전히 개인으로 고립되어 있 다. 이들은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아도 언제나 죄인처럼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 과거 자신이 당했던 부당한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이 어느 정도 규명되고 이들의 명예가 회복되어도 여전히 정상적 사회적 관계를 맺는데 서투르다.

앞의 진실화해위 조사 중 피학살 가족의 경우 PTSD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20% 정도에 불과했으나, 군사정권 하의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경우 조사 대상자 58명 중 43% 25영이 PTSD 증상을 앓고 있 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중 심각한 증세를 보이는 사람도 8명이나 되었다. 이들 학살 피해자의 59%, 인권침해 피해자들 중 68%는 외상 경험에 대해 침투적이고 고통스러운 생각이나 기억이 났다고 답하고 있다. 한편 광주 5.18 피해자들 역시 사건 2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과잉경계에 의한 피해의식, 무기력 과 희망상실 등 만성화된 트라우마티즘으로 고통받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2006년의 조사에서는 당사자 들의 경우 41.6% PTSD를 경험하고 있으며, 부상자들의 경우 45.2%가 중간이상의 PTSD를 경험하 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의학연구소의/              고문피해자 213명 대상의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76 % 163명 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고문을 포함한 다른 형태의 국가폭 력을 입고 생존한 사람 중 48.8% PTSD로 고통받고 있다. 이것은 광주 5.18 민주화 운동 생존자 중 41.6% PTSD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과 비교해볼 때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한편 이 조사에서 조사 참여자인 고문피해자의 11.3%가 정신 분열증 진단을 받았다고 응답하였는데, 이는 한국인 평생 유별율 인 0.5%에 비해서 매우 높은 수치이다. 그리고 조사 참여자들 중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은 52 명으로 응답자의 24%를 차지하였다. 특히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은 전체 43 17(39.5%)이 자살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은 3,4 회 정도 자살을 시도했다고 하고, 10회 이상인 경우 도 2명이 있었다.


억울하게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된 사람들은 그 억울함을 벗어나기 위한 일에 병적으로 집착을 한다. 즉 폭력의 트라우마는 자신의 해결되지 않는 원통함, 분노를 풀기위해 피해자임을 벗어나기 위해 집착 을 가져오게 된다. 자신이나 가족이 간첩이나 빨갱이로 몰려 학살을 당하거나 고문을 당한 사람들은나 는 간첩이 아니다’, ‘는 빨갱이가 아니다 라고계속 외치면서, 오직 그 멍에에서 벗어나는 일에만 사력을 다한다.

3) 가해 군인들이 겪는 트라우마

전쟁에서 동료가 죽는 것을 목격한 군인 일반, 상부의       명령을 받아서 할 수 없이 살인과 고문을 저 지르는 군인. 경찰도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는다.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군인 중 20% 2004년 당시 의 조사에서도 부정적인 심리적 충격에서 고통받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 수백만명 중 몇 퍼센트가 외상에 시달려왔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정부가 한번 도 조사조차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트남 전 첨전 한국군도 공포증에 시달린다는 증언이 있 다, “풀밭 위를 걷다가 다리를 잃은 수 많은 동료 부하를 봤기 때문에 풀밭을 걸어가지 못하는 증세가 있다 고                 한다.        미군의 경우 이라크와 아프칸 전쟁에 투입된 군인들 30%PTSD 증후군을 보인다는 보고서가 있고, 10만명당 미군 자살률은 이들의 2005년의 12.7명에서 2008년에는 20.2명으로 두배가 까이 늘었다.

전투 현장의 군인들에게 적은 사람이 아닌 존재, 즉 괴뢰, 빨갱이, 오랑캐 공비, 개 등으로 비인간화 됨으로써 살인에 대한 심리적 거부반응을 완화한다. 그리고 적군의 사살하는 것은 전우인 내 동료를 죽 인데 대한 복수 행위로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어 살인의 부담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다. 군인들에게 전쟁은 승리하고 정복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적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생존을 위한 전투로 기 억되고 있으며, 공포 그 자체다.

학살 현장의 가해 군인이 겪었던 트라우마도 상상 이상이다. 80 5.18 당시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 입되었다가 이후 시민에게 총을 겨눴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시민을 사살하라는 상관의 지시에 반항하 다 구타를 당한 군인이 이후 29년째 정신병원을 전전하였다. 보훈처는 군 복무로 인해 정신병이 생겼다 는 객관적 근거가 없다고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법원은 정신적 피해를 인정하고 불법행위로 동원된 데 대해 보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5.18 진압 63대대 출신 임00씨는 "5.18에 투입된 63대대 제대 장병 350명 중 적어도 150명에서 100명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 고" 말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상이군인이 된 사람들 역시 소모품으로 간주되었던 것에 대한 분노, 존중받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존심의 상실로 우울증을 겪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상관에 대한 분노도 있다. 그것은 전쟁 이후 이들이 버려지고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태에 빠지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부상당한 자 신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무가치한 존재로서의 느낌, 죽음에 대한 공포와 미래에 대한 상실감 때문에 이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을 보였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분노를 폭력을 표출하기도 했다. 5,60년대까지 우리 국민들은 손목에 쇠갈코리를 달거나 의족에 의지해 절둑리거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폭언을 하는 상이군인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을 버린 국가에 대한 분노의 표 출이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달라는 외침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국가는 아직 이들 군인의 정신적 피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후 참전군인, 상이 군인에 대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졌지만, 이들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상이군인의 고통은 물 리적 자원 연금 과( ) 교환되고 국가수호의 상징적 자본이 된다. 따라 고통의 정도가 국가에 의해 관리되고 (등급화), 전유됨으로써 전쟁의 참상에 대한 도덕적 호소가 금기된다. 상이와 용사가 국가에 의해 대중 의 기호로 표상됨으로써 개개인의 존재는 가려져 있다. ... 전우들이 전사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데 대 한 양심의 가책을 갖고 있다. 대중매체는 전쟁의 폭력성에 대한 그들의 기억을 상흔의 이야기로 전도시 켜 버린다. 이들의 육체적 상흔은 국가에 의해 반공주의 혹은 국가주의를 정당화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내세워진다. 그러나 전쟁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군인들에게도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베트남 파병 군인이나 한국전쟁 참전군인 등 국가를 위해 전투에 나섰으나 지휘관 급 사람들은 부와 명예를 누려도 이들은 사실상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상징에 더욱 집착을 한다. 특히 민주화 이후 이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이들은 자신의 과거의 활동을 정당 화하고 자신의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국가에 더욱 집착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민주화 이후 5.18 항쟁의 주도세력이나 민주화 세력이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는 것에 대해 더욱 강한 피해의식과 소외감을 가진 나머지 반공, 발전, 국가주의에 더욱 집착을 하게 된다(윤충로, 2007). 국가 를 위해 싸우다가 피해를 입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로부터 제대로 인정을 받기를 열망하는 참전 군인 은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들처럼 국가 폭력의 행사에 가해자의 일부로 참여하기도 한다. 그것이 국가라 는 정체성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에서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해서는 물론 참전자들 대상의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 기 때문에 속단하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한국에서는 사건이후 오래 시간이 지속되어도 만성적인 트라우 마를 겪는 사람이 많고, 학력이 낮거나 계층적으로는 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즉 사회적으로는 그러한 사건 자체를 부인하는 정치체제가 분단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 고, 사회적 배제나 무관심이 지속되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국가나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들의 트라우마가 지속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상이군인의 경우도 그렇지만 자신이 사회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학력, 경제력,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지 못한 경우 더욱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광 주 5.18 피해자의 경우도 항쟁에 끝까지 참여했던 주로 바닥 출신 사람들, 사건 이후에도 노동자나 사 무판매직에 종사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당시 학생이었던 사람 등에 비해 훨씬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 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국가, 사회전체 차원의 트라우마와 도덕적 아노미

개인뿐만 아니라 굴욕적인 식민지 체험, 외적으로부터의 공격, 대규모 재해나 따돌림 등을 집단적으 로 겪은 국가나 민족, 사회일반 그리고 특정 지역사회도 그와 유사한 정신 상태, 즉 공포와 슬픔, 과민 한 반응과 공격성, 과거 부정과 기억의 삭제, 자기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과도한 집착 증세를 보일 수 있고, 또 위축 불신 희망 상실 등 도덕적 손상을 입을 수 있다. 20세기 한국인들은 일제 말 전시 동원, 해방 후 좌우 대립과 분단, 한국전쟁, 이후의 베트남 전쟁, 그리고 군사정권의 폭력과 광주 5.18 등을 집단적으로 체험했다. 이 폭력의 경험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었을 것이며, 그것 이 한국사회의 도덕적 손상을 가져온 큰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국가나 사회 전체가 전쟁이나 폭력의 상처를 입고 이후에도 그와 같은 전쟁 폭력이 지속되거나, 이후 에 가해 국가나 가해 세력이 그것을 부인할 경우에는 피해 국가의 트라우마는 지속된다. 일본의 한국 과거사 부인이 한국인들에게 이와 같은 영향을 줄 것이고, 광주 5.18 가해세력이 5.18에 대해 사과하지 않거나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이 여전히 승승장구 하면서 권력과 부를 누리고, 항쟁이 북한군의 소행이 라고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매체가 존재할 경우 광주 시민 일반은 더 큰 상처를 입는다.

한국사회 전반의 사회적 정신병리, 특히 반공주의 콤플렉스는 20세기 최대의 재앙이었던 한국전쟁에 서 기인하는 것이기는 하나, 남북한의 분단과 주기적인 적대 관계에 의해 강화 유지되었고, 멀리는 식 민지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있다. 식민지의 억압, 전쟁의 공포는 모든 한국인에게 원초적인 상처를 안겨 주었는데 한국전쟁과 분단은 바로 식민지의 미청산 즉 국민국가 건설의 실패라는 점에서 연결되어 있

. 서구적 표준을 설정하고 식민지를결핍 으로만보는 태도, 식민지를예외적 일탈 로보면서 돌아보 지 않으려는 태도가 모두 여기에 대당한다. 식민지와 분단은 민족과 국가의 좌절. 분단은 서로가 민족 = 국가를 자처하는 과잉 상징화하게 된다. 분단 상태에서 남북한 자신과 민족을 동일시함으로써 상대방 을 적으로 돌리게 된다.

특히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코리안이나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도 모두 식민지 트라우마, 역사 적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의 경험은민족적 리비도 의흐름이 단절, 억압되는 것을 의 미한다. 그래서 역사적 트라우마는 집단 전체의 성향이나 인격을 왜곡시키고 집단적 광기와 같은 현상 을 만들어 낸다. 오늘의 한국은 식민지, 전쟁, 분단의 한 세기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심각한 외상을 입 은 사회라 볼 수 있고, 그것이 국가와 국민의 행동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북한, 빨갱이에 대한 공포와 공격성은 강자인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심리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영어구사능력에 따라 지위가 좌우되고 능력이 평가받는 것, 미국의 유명대학 졸업장이 한국에서 대학교수의 보증수표가 되는 것은 일종의 식민지적 멘탈리티가 지금까지 한국에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력이나 주류매체가 여전히빨갱이’, ‘종북 담론을구사하는 것은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며, 사회전반으로도 이들 희생자들에 대한 공감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가 평행하는 두 개의 세계로 구분되면, 한 쪽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세계의 고통에 대해 아무련 연관 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들도 도덕적인 아노미 상태에 서 벗어날 수 없다. 정의의 훼손, 국가 범죄에 대한 분노도 일어나지 않고, 피해자에 연민의 감정도 생 겨나지 못하도록 사회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설사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 다는 생각 때문에 심각한 무력감을 갖게 된다.

트라우마가 국가나 사회 전체 차원에서 발생하면 피해자 가해자/ , 처벌 보상의/ 구분을 넘어서 법적 정 치적 도덕적 문법으로 거론되어야 하며,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사회전체가 치료, 치유의 대상이 될 것 이다. 정치가 가장 중요한 치료제가 될 것이다.

4. 진상규명, 재심판결 등과 트라우마 극복의 가능성

학살사건, 고문 등 피해가 포함된 조작간첩 사건 등에 대한 국가차원의 진상규명,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민사상의 보 배상이. 어느정도 진행되었다. 국정원(NIS), 국방부, 경찰청의 과거사 기구들과 진실화 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The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의 조사는 그동안 은폐된 인권침해 사건들의 실체를 규명함으로써 피해자들의 구제와 명예회복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특히, 이 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지난 수십년 동안의 학살, 고문 피해자들의 주장과 인권단체들 의 고문조작 피해 자료들이 상당수 진실로 밝혀졌다. 그 결과 피해자들이 부분적으로 구제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고, 일부는 재심을 통해 배상을 받았다.

한국의 대다수 학살, 고문피해자들은 검찰이나 공안기관의 강압적인 수사와 이후 판결이라는 절차를 거쳐간첩 이되었고, 장기간 감옥 생황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들이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 음은 우선 의문사 위원회(The Presidential Truth Commission on Suspicious Deaths) 혹은 진실화해 위원회 활동을 통한 사건의 진상의 규명이고, 이렇게 얻어진 진실을 통해 재심 판결을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는 것이다. 즉 이들 피해자들은 검찰과 법원이라는,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국가기관의사법절차 를통해 간첩으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에, 피해를 구제받기 위해서는 그 절차를 거 꾸로 되밟아야 한다. 이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지 않는 한 이로 인한 법적, 심리적, 사회적 고통은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진상규명 사건에 대하여 재심권고를 하였다. 검찰이 과거사 사 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들의 피해회복을 위해 직접 재심을 청구한 사례가 500여명에 육박했다. 많은 사건이 무죄로 확정되었고, 나머지는 무죄판결 후 상급심에서 진행 중이거나 재심을 청구하였으나 아직 개시결정이 나지 않거나 개시 결정 후 재심 진행 중에 있다. 재심법원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여 재심사유인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 호7 , 422조에 의해 재심개시결정을 하였고, 실체 판단에 들어가서는 전부 무죄 선고를 하였다. 그리고 무죄 확정 판결 후 진행되는 민사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도 법원은 위원회의 결정 및 재심법원의 판결을 증거로 채택하고 1)체포, 구속과 정의 위법, 2)경찰과 검찰 수사과정의 위법 고문( ), 3)공판절차 및 형사판결의 위법으로 세분화하여 국가 배상 판결을 인정하고 있다.

즉 한국에서 과거의 고문사건 자체와 그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후유증에 대해 국가차원의 체계적인 조사나 예방조치는 거의 없지만, 개별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무죄 결정이 나오고 있고, 피해 자들에 대한 배상 작업은 비교적 잘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보도연맹 학 살 사건, 제주 4.3 사건에 대해 사과했으나 군, , 국정원 등 가해기관은 제대로 과거 사실을 인정하거 나 공식적인 사과하지 않았고, 그리고 재판과정에서의 법원이 여러 가지 방식의 태도 변화가 있어서 피 해자들에게는 또 다른 상처를 안겨주고 있다.

재심재판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은 고문, 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자신을 고통에 빠트린, 국가에 의 해 조작되어 공식화된 진실을 뒤집는 과정이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이 간첩으로 조작된 구체적인 상황에서부터 당시의 정치적 맥락, 법적 논리,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짚어나가야 한다. 재심 에 이르는 과정은 이와 같이 불법감금과 고문, 고통스런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해야 하는 과정이다. 물 론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문수사실의 고통스런 상황을 재연해야 했다. 그 리고 고문에 굴복하여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허위자백을 한 그 순간의 그 무력감과 비참함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그런데 당시의 사건 조작, 고문, 기소, 판결 등을 통해 이들을 간첩으로 만들어낸 가해자나 정치적 목 적으로 그러한 일을 기획하거나 명령을 한 사람 상당수가 아직 살아있는데, 당시의 지휘 명령계통예 있 었던 사람들에 대한 수사를 하지는 않고, 오직 피해자들이 수십년 전의 상황을 복기해서 무죄를 증명하 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가해자 중에서도 수사기관에 의한 고문사실을 고백해도 오히려 피해자들을 윽박 질러 그러한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있던 검사나 판사들이 경찰이나 공안기관의 수사관보다 훨씬 더 무거운 책임을 갖고 있지만, 이후의 재심사건에서는 이들에 대한 수사를 거의 생략하고 진행된다.

무죄판결은 한국사회에서 비시민(non-citizen), 사실상불가촉천민’(untouchable)과 같은 존재인 간 첩에서 인간으로, 이름 석자를 가진 보통 시민으로 되돌아오는 결정이다.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면 외상 경험으로 인해 무력감과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던 이들이 이제 자신의 내적인 힘에 눈을 뜨면서 외상이전의 삶보다 높은 자존감과 가치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정서적 둔감함 예민함 이 줄어들면서 타인에 대한 친밀감, 연민, 동정 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타인을 수용하게 되고 깊이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공감을 바탕으로 이들을 외면했던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들 중 일부는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도움을 주는 활동까 지 하게 된다.

그런데 재판과정에서 이들의 상처를 덧나게 만드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사건 당시에서 고문 조 작을 통해 이들을 간첩으로 만들었던 검찰이 사과나 반성을 하기는커녕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항소, 상 고를 하는 일이다. 재심 법정을 목격한 사람들은 "법정에서는 '할 말 없다 거나' 고개를 푹 숙이던 검사 가 돌아서서 항소 상고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라며" "굳이 상급심 판단을 받을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도 기계적으로 항소 상고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 말한다. 즉 검찰은 자신의 과거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 겠다는 말이다. 검찰의 이러한 태도는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행위이고, 그들의 상처를 더 깊게 만드는 행위다.

그러나 재판을 통한 재심은 국가가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조치일 따름이다. 고문이나 잔학행위 가해자 인 국가는 사건 별로 유족들이 재심을 하도록 하기 이전에 일괄적으로 이런 사건을 처리했어야 한다. 의문사위원회나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상규명 결정을 내리면서 국가차원의 공식 공개 사과, 그리고 포괄 적 배상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국가차원의 공개 공식 사과나 가해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피해자나 생존자들은 개별적으로 법원에 재심을 신청하게 되었고, 무죄결정을 받은 이후 국가에 손해배 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였는데 여기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법원은 국가기관이지만, 행정부가 아 니므로 개인 소송 당사자의 사건에 대해서만 심리와 판결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배상 역시 판사의 판 단에 의존한다. 여기서 국가차원의 일관되거나 형평성 있는 조치를 기대할 수 없다. 둘째로 법원은 오 직 권리행사를 한 피해자들의 요구에 반응할 따름이며,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적용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다. 따라서 과거 고문 피해를 당하고도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신청을 하지 않았거나 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겪은 진실과 일치하는 진실규명 결정을 얻지 못한 피해자, 그리 고 그것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법원으로부터 무죄결정을 받기를 원하지 않아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사람 들은 법원으로부터 무죄 결정을 받지 못한다. 즉 피해는 동일한 것이지만, 국가의 공식적인 인정은 사 람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즉 법원은 일관성과 보편성의 관점에서 국가차원의 공식적인 결정이 되기에는 결함이 있고, 배상액수 에서는 판사마다 판단의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배상액수가 합리적이거나 공평한 기준에서 결정되 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법원은 과거의 잘못된 판결의 주체이기도 하므로 가해의 주체가 자신의 과오에 대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반성이 없이, 또다시 과거의 판결을 뒤집는다는 것도 모순인 측면이 있다. 개별 판사들이 사과를 하더라도 그것이 국가의 공식사과, 즉 사법부의 공식사과는 아니기 때문이 다.

그래서 피해자 유족이나 생존자들이 법원을 통해 재심을 요청하거나 배상을 청구할 때는 법원의 이 러한 한계를 미리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즉 피해자 개인의 차원에서는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몰라 도, 국가가 공직적으로 이 결과를 받아들어 어떤 법과 제도, 관행을 고치는 것이 아니므로 유사한 피해 자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아무런 보장이 없다.

어떻게 하면 학살, 고문 등 국가의 잔혹행위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약간이라도 원상회복의 느낌을 가질 수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회가 복원될 수 있을까? 진상의 규명과 무죄의 결정, 국 가의 잘못 인정, 피해자 배상은 그것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지언정 원상회복, 진정한 과거사 정 리와는 거리가 멀다. 가해자 처벌이 없다면 정의의 수립을 기대할 수 없고, 피해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치유의 과정이 결합되지 않는다면, 피해자의 상처는 치유될 수 없음은 물론 사회의 도덕적 질서의 복원 도 기대할 수 없다.

우선 법원의 무죄판결이 국가의 사과를 의미하는지가 의문이다. 일부 법관의 개인적 사과표시가 국가

의 공식적 사과와는 거리가 멀다. 국가가 이렇게 내키기 않은 방식으로 사건의 실재를 인정하기 때문에 가해자의 처벌은 말도 꺼내기 어렵다. 가해자를 규명하기도 처벌하기도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 을 규명할 의지도 처벌할 의지도 없는 국가는 여전히 그것은 사실상 범죄라고 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국가가 그러한 잘못을 앞으로도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과 같다. 2000년대 이후 국정원 등 이 국민을 사찰하거나 간첩조작 사건을 일으키고, 선거에 개입하는 일이 재발한 것이 바로 그것을 말해 준다. 특히 이명박 정부 하에서 국정원과 검찰은 탈북자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조작되기도 했으나 관련 자들 중에서 처벌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과거 인권침해나 조작사건의 피해자들은 가해자 처벌 없이는 진정한 과거청산이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가해자가 처벌되지 않거나 가해 기관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잘못된 관행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들 개인이나 기관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적반하장 격으로 가해 사실을 부인하거나 오히려 이들에게 2차 가해를 가하기도 한다. 고문사건 재심 사건에서 검찰이 항소나 상고를 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 들어선 이후 검찰이 과거 방식 으로 권력자의 입김에 따라 정치적인 수사를 계속하거나 국정원과 보조를 맞추어 간첩조작에 가담하는 것도 그 예이다.

한편 피해자 개인의 상처의 치유는 결국 그들을 따돌렸던 사회가 그것을 반성하고 이들을 다시 품어 줄 때 가능하다. 이웃과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은 이들 피해자들에게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다. 재심 무 죄결정을 담은 판결문은 간첩 혹은 '간첩의 가족 이라는' 누명을 벗겨주는 유일한 입증자료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판결문 하나로 이들의 트라우마가 치유되기는 어렵다. 이웃은 오히려 "보상금을 얼마나 받으 려고 그러느냐 식의" 싸늘한 시선만 보내는 경우가 많다. 진실화해위는 간첩조작 사건이 발생한 곳에서 주민들을 참여시킨 다음 위안잔치를 주선하곤 했다. 자치단체, ·, 마을주민이 참여하는 잔치는 당사 자들의 수십 년 된 응어리를 푸는데 법원 판결 이상의 효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웃들은 이들를 흔 쾌히 받아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내 형을 간첩으로 몰아세운 사람들에게 거짓이라도 좋으 니 사과 한번 받는 것이 유일한 바람 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재판을 통한 무죄 결정, 배상결정은 고문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사회로 복귀시키기 위한 필요한 절 차이기는 하나 그것은 잘못하면 2차 가해가 될 수도 있고, 국가나 사회가 진정한 반성을 통해 거듭하는 절차를 차단하는 바람막이 장치일 수도 있다.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주장, 그리고 사회정의와 도덕성 회복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지 않으면 재판을 통한 구제는 이런 한계에서 벗 어나지 못할 것이다.

5. 시민사회와 사회적 치유

반공 반북,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자행된 과거의 잘못된 공권력 행사의 모든 진실이 알려지고, 가해자 가 사과를 하거나 응분의 처벌을 받으면 피해자의 트라우마는 어느정도 극복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 했듯이 군, 경 등 말단의 가해자도 일종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사법 정의, 피해자 보배상 조치를 통해서 전체의 트라우마가 극복되기는 어렵다. 피해자 보상이나 배상은 하나의 치유와 복원이 될 수 있지만, 권력이나 가해자가 제대로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고 사과하지도 않은 채 이들을 포섭하기 위해 보상조치 를 실시할 경우 그것은 상처를 지속시키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적대와 폭력을 가져왔던 바로 분단 체제 아래의 힘의 불균형이 시정되고, 피해자들 간에 불신도 해소되어야 한다. 억울한 처지에 대한 사 회적 인정과 공감이 일어나면 모든 피해자의 닫힌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끊어진 관계가 회복될 수 있 다.

한국처럼 식민지와 내전이라는 대참사를 몸으로 겪었고, 여전히 분단 상태에 있는 경우에는 국가나 사회의 욕망 자체가 크게 좌절된 이력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국가나 사회 전체 차원에서의 사회적 치 유가 중요하다. 거시적으로 보면 정의, 특히 응보적 정의보다는 복원으로서의 정의가 중요하다. 억울한 피해자나 말단 병사 등 폭력의 하수인이었던 가해자들의 상처는 우선 국가가 사실을 인정하거나 잘못된 일에 대해 사과를 하고, 그에 합당하는 응분의 조치를 취해 줄 때 어느정도 치유될 수 있다.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상처는 분단극복, 평화, 통일을 통해서만 궁극적으로 치유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역사적 판문점 정상회담, 그리고 남북한 화해와 평화의 시도는 최고의 분단 트라우마 치유제라 할 수 있다. 남북간의 군사정치적 적대가 해소되고, 지난 70년 동안 남과 북에서 분 단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남북한 정부로부터 적절한 위로를 받게 된다면 우리는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남북 간의 화해 이전에 남남 간의 화해가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남한 내부의 화해는 분단과 전쟁이 초래한 각종의 부정의를 바로 잡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남한 사회 내에서의 국가와 국민,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관계의 회복, 민주주의의 질적인 심화를 통해 서 가능하다.

그러나 사회 내에서의 화해와 치유의 노력도 계속되어야 한다. ‘진실의 힘같은 단체는 고문피해자들 에 대한 치유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광주와 제주의 트라우마 센 터의 역할도 의미심장하다. 행안부에서는 국가적 트라우마 센타 설립을 위해 용역도 발주했으나 구체적 으로 착수하지는 않고 있다.

특히 종교단체나 종교지도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불교, 기독교 등 중교 종교단 체는 과거의 국가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도 그것을 막는 역할을 하지 않거나 오히려 가해의 편에 섰듯 이, 사건을 해결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에도 언제나 비켜서 있었다. 특히 6.25 한국전쟁 기간 동안 동족 간에 전쟁이 발생하여 수만, 수십만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발생했는데, 종교기관 혹은 종교자들이 자신이 어느 한쪽의 편에 선 피해자라는 이유로 권위주의 정권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면서, 화해보다는 적대의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한국의 제도권 교단이 얼마나 우리나라 대중들의 고통, 우리 민족의 진정 한 평화 통일에 무관심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교단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런 정도의 고통 과 비극이 있었다면, 적어도 민족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풀자고 제안하는 종교 지도자, 그러한 담론 정도는 본격적으로 나와야 하는 것이 맞는 일이다. 용서 화해 등과 관련된 주제에 기여하는 데서 남아 공화국은 물론이고 독일 등 외국에서는 종교학자나 신학자들의 역할도 매우 컸다. 그런데 한국의 각 종 교단체의 성직자들 중에서 한국전쟁으로 이렇게 사회가 심각하게 찢어져,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 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일까?



[1] ) 최인훈의 [회색인 에서] 전후 젊은이들의 사고를 지칭할 때 사용한 용어.

종교와 영성, 그 사회적 치유 김경재

 

종교와 영성, 그 사회적 치유



김경재(한신대학교 명예교수)



1. 들어가는 말

한국 종교학회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면서 학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오늘 모임의 주제가종교와 영성, 그 사회적 치유 라고했다. 제안을 받아든 필자는 맘이 참 착찹했다. 착찹한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유는 셋으로 압축되었다.

첫째 건강한, 상태의 살아있는 종교라면 마땅히 그 모습이영성적 이라야할 터인데 오늘의 한국 종교가 영 성적임을 잃어버렸다는 자괴감이다 함석헌이. 비유로서 정곡을 찔러 말했듯이종교는 구슬이 아니요 씨다.”1) 그런데 한국의, 종교인들은 자기가 귀의한 종단은 만고불변한 진리의 금은보화 상자를 간직 보관한진리의 궁 궐 이요인류를 먹여 살리는영적 양식 창고 라고자임한다 자라나는. 나무로서 끊임없이 새싹과 새 꽃을 피어 낸 후엔 아름다운 꽃마저 떨구어 버리고 뭇 생명이 먹도록 열매를 맺는 나무이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 치유는, 건강한 의사가 병들고 신체부위가 고장난 환자를 고치는 일인데 이, 시대 한국 종교가 과연 감 히사회적 치유 기능 감당 이라는생각을 할 자격이 있는가의 부끄럼이다 일반사회. 중평이 오히려 병든 한국 종교를 염려하고 한국종교계가 치유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 아닌가? 예수께서 이르시기를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루가복음서11:35)고 하셨는데 종교계,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분렬시 키고 미움과 증오심을 가중시킨다 심지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선가(禪家)의 가 르침이 무색할 정도로 손가락에, 금반지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내 손가락만 보라!”고 우중을 기만한다. 알 고 보면 사찰 성당 교회당 경전 수도원 교의 성직자 등등, , , , , , , 그 모두가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 한 것 아닌가?

셋째, 문명사적으로 볼 때, 21세기 시대사조는 엄정하게 말하면 종교시대가 아니고 과학시대요, 인간의 모 든 경험과 가치판단을 경험과학적이고 물질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설명하려 든다 인간의. ‘마음’, 정신, 신비체 험, 영성등도 두뇌기능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 인류역사에서 종교의 빛과 그림자를 철저 하게 폭로하고, 역사학과 진화생물학을 융합시켜 베스트셀러 책 『사피엔스 와』 『호모데우스 를』 저술한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 Harari)의식은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수수께끼이며 신비로운 것이다2)고 고백하 고 있다.

인간의 마음 의식이, 수수께끼이며 신비한 것이라면 그것의 드러나는 현상인영성 도신비한 인간생명 현상 이다 세속화. 물결에 휩쓸려가면서 생물학적이고 기계론적 실재관에 점점 쇠뇌당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영 성이란 무엇인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오늘 우리들의 학회모임 주제가 난감

1)   『함석헌 전집』(한길사, 1983), 3, 197.

2)   유발 노아 하라리 지음, 전병금 옮김, 21    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김영사, 2018), 477

한 세 번째 이유다. 이상에서 언급한 우리들의 주제가 던지는 난감함과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와 씨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한국 종교계가 본래 갖추어야 할 영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분열되고, 적대적 갈등 속에 시달리는 한민족 과 한국사회의자해적 자살경련 을치유하기 위하여, ‘종교화 된 과학의 탈선 과’ ‘빅데이터 알고리즘의 감시와 통제 에서자유하기 위해서다.

2. 종교현상학 입장에서 인간의 영성 을 이해하는 의미

종교와 영성 그, 사회적 치유 라는오늘 우리모임의 주제자체에서 보면 종교와 영성이라는 두 단어가 어떤 관계인지 나타나 있지 않다. 영성(靈性) 어휘가 한자어로서 있어 왔고 한국인들 언어생활에서도 사용되어 왔 지만 그 어휘의 개념파악은 단순하지 않다.

영성(靈性)이라는 한자어에서 영() 이라는 글자는 [1]층 구조로 구성되어있는데비가 내리니 무당이 춤을 추는 형국 으로표현되었다. 은유적으로 말해서, 신기 신령( , 至氣, 계시, 은혜 가) 사람 마음에 접해오니, 대극 적인 두 가지 실재 곧 하늘과 땅 초월적인, 것과 내재적인 것 영원과, 시간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정신 과 물질 등등 온갖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어있던 것이 하나로 통전되고, 그 전일성 체험에서 무당(종교인, 사 람 은) 엑스타시 가운데서 신명나서 춤추는 형국이다.

영성(靈性)을 이해할 때, 인간 품성의 3가지 현상으로서 요약하는 지성(知性), 감성(感性), 덕성(德性)에 한 가지 특성을 더하여 주로 종교적 영역과 관련된인간 마음 정신 의( ) 특수기능”(a special funtion of human mind)이라고 보면 안 된다 영성은. 종교인들만 발달된 인간정신의 특성이 아니라 모든인간 생명의 본래적 존재양태’(authentic mode of human life)로서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영성을, 이해하되 방법 론적으로 말하자면 종교현상학적 방법(method of religious phenomenology) 입장에서 이해하고 설명하 려한다 게라르두스. 반 댈 레에우(Gerardus van der Leeuw)는 그의 명저 『종교현상학 입문 에서』 다음같이 말했다.

종교는 두 가지 양성으로 나타난다. , 종교는 삶을 확장시키고 고양시키고 심화 시켜서 그 극한에까지 혹은 그것을 초월하는 것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가 하면, 그것은 종교는( ) 또한 삶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어떤 다른 것이 삶 속으로 침 입하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어떤 경우에는 전자가,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후자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수평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수직적인 선이 있다. 곧 종교성이 있 고 계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도 다른 것을 동반하지 않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양자를 우리는 구원이란 이름으로 종합한다. 인간은 이 구원을 자신의 종교 (종교성 에서) 찾으나 그 구원은 다른 곳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3)

위 인용문에서 우리는영성 도종교와 같은 성격을 지닌 것으로서 즉 곧 본래적 인간본성의 구원상태요 건 강한 인간적 삶의 존재양식이라고 보고자 한다. 영성은 인간 마음속에 내재한 본연의 가능태가 현실태로 실 현되면서 고양되고 심화, 확장되고 자기초월을, 하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영성은 인간이소유형태 로간직하 고 활용하는 정신기능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롭게 초월로 부터 그 밝음, 맑음, 하나임, 어짐(), 새로워짐, 미 래개방성을 선물로서 받아드려야 하는 것이다.

현상학적 방법이 존재론적 형이상학이나 논리실증주의 방법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인간적 삶이란 그 무 엇을 체험하는 것과 체험된 것을 이해하고 파악하고 언어로 표현하여 낸다는 것이다. 종교현상학적 방법은지극히 근본적인 경험론’(Max Scheler)이다.4) 그러므로 필자는 본론으로 들어가서종교적 영성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종교학적 명제나 교의적 공식보다는참된 영성적 사람은 이렇게 삶을 살아가더라라는 삶의 존 재양태를 주목할 것이다. 다른 말로하면 참된 영성적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스타일(Life style)을 서술할 것 이다.

3. 영성은 본래적 인간의 존재양태요 존재방식: 참된 영성적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

첫째특징: 영성적 사람은 주체적 자아의식을 확실히 갖되 그것이연기적 실재임을 안다.

영성을 인간 본성의 심성이 갖추고 있는 존재론적 특성이라고 보든지 혹은 초월적인거룩한 것’(Das Heilige)이 인간의 심성 혼() 속에 접촉함으로서 발생하는 계시 응답적 특성이라고 보든지 관점 견해에 두 가지 입장이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 결실로서 영성이 밝아진 사람은 또렷한 주체의식을 갖되, 개인의 주체성이 소라껍질 속에 속살을 감춘 어폐류 같은 실재가 아니고 관계적 참여 속에서 생기(生起)한 실재라는 것을 동시에 자각한다.

불교적 표현으로 하면 깨달음의 근본적 본질인因緣生起論이 말하려는 진실의 가르침을 깨닫고, 세상 살아 가면서 피할 수 없는 ‘’주체 객체- 이분법 ‘(主體 客體- 二分法)을 끊임없이 초극하려는 삶을 산다. 주객이분법의 초극은 말같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원론상 인정하면서도 구체적 생활 속에서는 참 어려운 것이다. 현대 적 용어로 말하면 실존적 자기의식을 가지면서도 그 실존은 이미 사회성을 전제하고 사회성 안에서만 형성되 는 실존임을 자각한다는 말이다. 영성적 사람은 고고한 유아독존적 자유인이 아니다. 동시에 영성적 사람은 전체에 몰입되거나 집단사회를 구성하는 몰인격적 원자단위가 아니라 주체적 자아의식을 또렷이 갖는다.

둘째특징: 영성적 사람은 각각 개성이 다른 구체적 마음들을 갖고 살지만, 마음은 본시하나임을 깨닫 고 한마음을 성취하려는 삶을 지향한다.

한자경은한국인의 심성과 철학적 지향 이라는주제의 첫 문장에서 다음같이 선언적으로 말한다: “일심(一心)은 한마음이다. 한은 하나()라는 뜻과 크다()는 뜻을 동시에 내포한 단어로서 일과 대를 합해 천()이 되므로 일심은 곧 천심(天心)이다....각각의 개별자 안에서 개별자를 생명체로 유지하는 그 힘이 곧 무한한 일 심인 것이다.... 이 일심을 통해 각각의 개체는 자기경계를 넘어 다른 개체와 하나로 숨쉬고 하나로 느낄 수 있다.”5)

시천주(侍天主) 해설에서 수운, 최제우는하늘님 모심 의의미와 현상을 세가지로 압축했다: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各知不移者也⌟. 해설하면모심이란 안으로는 신령함이 있고, 밖으로는다른 개체와 하나로 숨쉬고 하나로 느낄 수 있고’, 뭇 사람들이 하늘님을 한시도 몸에서 옮겨놓을 수 없는 존재자체라는

4)      dnldhk rkxdms cor, 25-28Whr.

5)      한자경, 『한국철학의 맥』, 제 장3              . 한국인의심성과 철학적 지향 (이화여대 출판부, 2008), 58.

것을[2] 즉각적으로 아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아레오바고 법정에서 증언하기를하느님께서는 천지의 주제시니 손으로 지은 전(殿)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 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사도행전 17:24-28). 바울의 증언을 들어보면 서구 기독교가 발전시켜온초월적 유신론 는처음 기독교인의 신앙을 대표하는 사도 바울과 매우 큰 차이가 있음을 알수 있다.

함석헌은 1970 4월 그의, 개인 월간지 『씨의 소리 를』 간행하면서 우리가 내세우는 것선언문 안에 서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은 너 나가 있으면서도 너 나가 없습니다. 네 마음 따로 내 마음 따로가 아닌 것이 참 마음입니다 우리는. 전체 안에 있고 전체는 하나하나 속에 있습니다.”6)

위에서 살펴본 한자경 최수운 사도바울 함석헌이, , , 말하듯이 참다운, 영성적 인간의 존재방식과 삶의 지향 성은생명이란 개체적이면서도 전체적 하나요 한, 마음 이라는 자각 이뚜렷한 사람을 말한다 그. 사람이 어 떤 종파 어떤, 학파 어떤, 정치정당 어떤, 이데올로기를 갖고 사는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생명은 본시 하나이며, 분리 독립되어있는 개별자가 아니라 하나다 라는의식, ‘한 마음 의식 이있느냐의 여부로 그 종교 인, 그 정치인, 그 지식인 그, 노동자의 사람됨과 영성적임의 정도가 판가름 난다는 말이다. 오늘 한국사회의 정파싸움, 종파간 배타적 우월결쟁의식, 경제적 빈부격차에서 계층간 불통, 남북정치 이념적 갈등을 보면 결 국 한국인은 본시 한국인의 삶의 철학의 본질인하나의 영성 을상실해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인들의 모든 심성속에 있는하나의 마음 이쪼개지고 편린처럼 작아지고 갈등 속에 빠지는 이유중 가장 큰 이유를 다른 논리로서 말하면 인간이란해석학적 동물 이기때문이다. 사물을 이해하고 사회현상을 바라 볼 때 이미 사람마다 플라톤이 비유로서 말하는동굴에 갇힌자의 편견 이나바울이 경험한눈의 비늘 을지 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문학적으로 말하면 영혼의 눈을 덮고있는無明의 백태(白苔)’(具常) 때문이다. 태어 난 이후 자라면서 각 사람이 처한 삶의 조건과 경험이 사물을 보고 사건을 이해하는해석학적 지평 을형성한 다 자기의. 제한적이고 상대적인해석학적 지평 을절대적인 것이라고 확신하면 할수록 그는 독단, 독선, 광 신, 이념노예가 되면서 사회갈등의 원인이 된다. 영성적 인간이란 누구나 함몰되기 쉬운 상대적이고 제한적 인 자신의해석학적 지평 을끊임없이 비판적으로 극복초월하면서 진리의 보편성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셋째특징: 영성적 사람은 신비적 활홀감 속에서 망아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지성은 더 밝아지고, 덕성은 더 맑아지고, 특히 감성이 더 예민해져서작은자, 낮은자, 눌린자 의희비애락을 예민하게 공감

(compassion)하고 고난의 동반자(suffering companion)[3])되기를 짐스러워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유마거사가 앓는 것은 중생들이 앓기 때문이라 했다.[4]) 중생의 병은 무명(無明)에서 오고 보살의 병은 대비 (大悲)에서 온다 는아름답고도 위대한 깨우친 자의 말은 결코, 앞서 깨우친 자가 아직 깨우치지 못한 중생들 을 향한 동정, 시혜, 가르침 등등의 우월감이나 자만의식은 털끝만치도 없는 것이다. 대비(大悲)는 글자 그대 로큰 슬픔 이지대자대비(大慈大悲)이 줄임말이 아니다. 자녀가 병들어 고통하고 아프면 부모는 그 자녀의 고통과 아픔보다 더 크게 아프고 고통을 느낀다. 왜 그런가? 부모자식관계는 일심동체이기 때문이다.

일부 타락하거나 변질된 기독교 영성운동사를 보면 기사이적 능력을 통해 방언과 신유능력을 가진 자를 영 성가라고 오해하는 것을 많이 본다. 그런 초능력자도 있을 것이나 그런, 초능력자를 모두 영성가라고 보아서 는 위험하다 초능력의. 유무를 떠나서 타자 특히 한몸 생명공동체를 이루는 생명체들 중에서낮고 천대받고 억압받는 자들 의고통과 인간비애가일심동체 심정으로서곧 나의 아픔으로 느낄 뿐만 아니라 그런, 정신적 육체적 개인과 사회의 질병고통 원인제공과 책임의 일부를 자기도 피할 수 없는 자임을 진지하게 자각하는 데서 온다.

함석헌은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 논설문에서 다음같이 말하고 있다 : “하나님과 민중, 둘이 하나다 하나님이. 머리라면 그의 발은 민중에 와 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발이 땅을 디디고 흙이 묻은 것, 그것 이 곧 민중이다 그. 민중을 더럽다 하고 학대하는, 자는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아프게 하는자다[5]) 한국의 민중 신학이 말하려는 요지도 그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전래되던 초기의 초심을 잃어버리고, 오늘날 한국 기독교 는 중산층 이상의 종교가 되었고 기득권자과, 더불어 자기를 강화하는 부자들이 모여 제일 큰 교회당을 짓는 종교가 되었고, 인간본성의 본래적 측은지심으로서 우리사회 어려운 겨레들을 위한 보편복지정책을좌파정 치 이데올로기 라고몰아붙였다. 그러한 교회들의 교회강단과 목회자들이 영성을 말하고 영성적임을 강조하 는 것은 넌센스이다.

영성적 사람의 셋째특징으로서 예민한 감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참종교인은 교리나 법 문의 암송이나 지식에 있지 않다 신앙. 곧 믿음을 반지성과 병행하는 것인 줄 착각하는 반지성적 종교와 바리 새이즘에 병든 경직화된 도덕종교는 미래가 없으며, 종교로서 인간의 비판적 지성과 덕성을 마비시키는대 중의 아편 이될 뿐이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의 내수도문(內修道文) 제 조목에1 다음 같은 말이 나온다. “하인을 내 자식과 같이 여 기며 육축, (六畜) 이라도 다 아끼며 나무라도, 생순을 꺾지말며 어린자식을 치지말고 울리지 마소서[6]) 말 못 하는 육축이라도 아끼며, 추운 겨울을 이기고 갓 돋아난 새로 벋어나온 나뭇가지와 새순을 농경사회라고 해 서 함부로 꺾거나 낫으로 베어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알버트. 슈바이쳐이생명외경 사상보다더 예민한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감성이다 이런. 것을 영성적 감성이라 부른다 다음시대에. 열리는 생태학적 문명의 단초는 이런 예민한 감수성에서 부터 시작될 것이다.

넷째특성: 영성적 인간은 인간 심성에 본유적으로 주어져있는 초월적인 영() 그 자체가 사람의 영성 (靈性)으로서 맑고 밝게 발현되기 위해서 삶 속에서 명상과 수행(修行)을 일상화 하는 사람이다.

『중용 에』 이르기를천이 명한 것이 곧 성이다”(天命之謂性)고 헸다 주희는. 이 구절에 두 가지 의미를 보았 다 첫째는. 도의 본원은 하늘에서 나왔기 때문에 바뀔 수 없다는 것 둘째는. 도의 본원실체가 사람 자기 몸에 갖추어져 있어 떠날 수 없다는 뜻이다.[7]) 유교나 불교에서 위대한 현인들은 신성, 천리, 본연지성, 도심, 불 성 진여등, 무엇이라고 부르던지 간에 그것들이 본유적으로 주어져 있을지라도 실현시켜야하는 실재이며, 또 한 사욕과 탐욕으로 덮이고 변질되기 쉬운 것이므로 끊임없는 수양과 명상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영성 또한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의.              본연적 심성을 유학자들은                 허령통철’(虛靈洞徹/권근) 하고허 령불매(虛靈不昧/ 정도전)라고 보았고[8]), 불교 고승들은성자신해‘(性者神解 / 원효))하고 공적영지(空寂靈智 / 지눌) 한 것으로 보았다.[9]), 그 모든 언표들은 사람의 마음의 본래적 실재성, 당위성,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지 현실성, 구체성, 사실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 마음의 본연지성은 본디 신령스러우며 맑고 밝으며 신령하게 자신과 만물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가능태로서 갖추어 있지만 가능태는 아직 현실태는 아닐 뿐만 아 니라 끊임없이, 탐진치 삼독(三毒))과 기질지성(氣質之性)과 죄업으로 침윤당하고 변질되고 있다,

현대 한국 종교계의 위기 특히 세인의 질타를 받고 있는 한국 기독교 개신교 의( ) 위기는 수행과 명상이 신앙 인의 삶속에 체질화 되어있지 않고 성경문자주의, 교리주의, 성직자가 집례하는 예배를보는예전객관주의 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수행과. 명상은 반드시 특정장소에서 일정기간 집중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한국. 불교계 의 큰 자산은 하안거 동안거 기간 중 용맹정진 엘리트 젊은 불자 3,000여명이 해마다 좌선명상 수행에 정진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럴 형편 이나 여건이 않되는 직장인 가정부는 영성수련이 불가능할가? 잠들기 전 짧은 명상 좋은, 종교시나 음악을 들으면서 평소 일에 집중하기, 홀로 있는 시간 갖기 가벼운, 등산길과 동내 재래시장 돌아보기도 좋은 명상과 수행의 방편이 된다. 맘챙기기가 중요하지 여건이나 때와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섯째 특징: 영성적 사람의 특징으로서 꾸밈없는 소탈함, 단순성, 어수룩함, 모나지 않음, 별나지 않음 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영성적 사람의 풍기는 외모는 비범하지 않음에 있다.

스승엔 3종류가 있다는 말 우리는 듣는다 첫째부류. 선생은 자기가 아는 것과 연구한 것을 부지런히 제자들 에게 가르치는 선생이다 둘째부류. 선생은 이론이나 말로서 훈계보다 모범으로 보이고 삶으로써 교화를 끼치 는 스승이다 셋째는. 존재함 그 자체가 풍기는 감화가 있고 함께있는 자들이 예기치 않는 영감을 받는 스승이 다 첫째 둘째 셋째를. , , 교사등급 기준으로 삼는 것은 잘못이지만 인생여정에서, 평균 20년 동안 집중으로 배 우는 과정을 뒤돌아보면 세, 번째 선생님들 안에서 영성적 품성이 영글어져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노자 도덕경엔 정말로 완성된 것은 어딘가 모자라는 것 같고(大成若缺), 참으로 가득찬 것은 비어있 는 것처럼 보이고(大盈若沖), 참으로 교묘한 것은 서툰 것 같고(大巧若)), 참 잘하는 웅변은 더듬는 것처럼 들린다(大辯若訥)고 글을 남겨 우리를 충고했을 것이다. 발제자는 , 국내외 기라성 같은 석학들을 논외로 하 고, 직접 인격적 감화를 많이 받은 3분 선생이 계신데 장공 김재준, 신천옹 함석헌, 소금 유동식 선생님이시 다. 그런데, 그 세분이 한결 같이 남기신 글을 보면 놀라운 내용들인데 말씀하시는 것이나 생활하시는 걸 가 까이에서 보면 하나같이 눌변이요, 평범이요, 어리숙함이 공동특징이다. 세상의 전문직종 중에서 비교적 많은 말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들라면 정치인, 교직 종사자(교사, 교 수), 언론인 그리고, 종교인 성직자 일( ) 것이다 그들이. 참으로 영성적 수행과 품성도야에 실패한다면, 가장 세 상을 어지럽게 하고, 분란을 일으키며 참 도()를 왜곡시키며, 그것으로 밥을 먹고사는 불쌍한 지식도매자 들이 될 것이다 국회의사당에. 정치는 없고 정쟁만 소란하며, 상아탑 대학엔 철밥통 지식판매자는 많아도 문 명 살리는 지혜자는 없고 신문, 방송 유튜브엔 편파적 선동뉴스기사는 차고 넘치는데 정론이 드물고, 종단의 설교단과 법문강론 단상엔 만고찬란한 교리강론은 번지르르 한데 민생의 맘은 강팍해지고 황폐해지고 머리 둘 곳이 없다.

道常無爲而無不爲[10])는 만고의 진리다. ‘영성 이()는 아니지만, 위리엄 스미스가 신비체험의 현상학적 특징으로서 열거하는 4가지 특성 곧 언표불능성(ineffability), 인식론적 특성(noetic quality), 일시성 (transiency), 수동성(passivity)중에서 영성특징으로서 언표불능성과 수동성은 겹치는 면이 있다고 보인 다.15)

여섯째특징: 영성적 인간은, 특히 21세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우주창공에 떠있는 지구 녹색행성에서 호모사피엔스가 갖는 생태학적 자리매김에 대한 각별한 자각과 함께, 진화과정 속에서 점증해가는 진 선미의 창발현상에 경외감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며 녹색행성 지구 살리기와 생태문명에로 전환에 힘쓴 다.

찰스 다윈의 진화이론이 발표된 지 150년이 지났다. ‘진화이론 은생명의 출현 생명종의, 다양화, 돌연변이, 자연선택등에 관한 본래적 의미에서 과학적가설 이므로’ “진화이론은 진화한다.” 무릇 모든 과학이론은 좀 더 정밀하고 정확한 이론에 의해 보완되어 가거나 대체되어 간다 진화론을. 받아드리면 필연적으로 무신론자 가 되거나 물질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도킨스( ) 과학이론을 종교적 도그마로 변질시키는 일종의 형 이상학이다. “다윈 과학과 유물론이데올로기는 구분되어야 한다.”16)

종교와 영성 이라는주제를 놓고 생각해야 할 점은 21세기 인류는 전통적으로 생각해왔듯이 인간 본연지성 (本然之性)으로서 혹은신의 형상’(image of God)로서 인간성 속에 본유적으로 갖춘 영성함양에 관심 가질 뿐 아니라생태론적 영성’(ecological spirituality) 함양에 맘을 써야한다. '생태론적 영성의식 이란유기체 적지구생명‘(Global Life) 또는온생명 장회익‘( ) 이라는 패러다임 안에서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가 갖는 바른 정위치를 자각하는 영성이다.17)

떼이야르 샤르뎅에 의하면 지구는 45억년동안 크게 지질권형성(Geosphere), 생물권형성(Biosphere), 정 신권형성(Noosphere)을 단계적으로 이뤄가면서 성장해가는(진화해가는) ‘전일적 생명 이라고본다. 장회익 은 생물권과 정신권 개념을 통전하여 유기체적 온생명 혹은 지구생명(global life)라고 부르고, 지구생명을 하나의 유기체적 몸에 비유할 때, 인류는중추신경계 에해당하는 위상이 자기의생태론적 정위치 라고보 았다 사람. 몸에서중추신경계 는몸의 일부이며 신체를, 구성하는 구성소이지만 유일하게, 자기 몸의 현상전 체를몸으로서 자각하는자기 의식적 신체기관이다 중추신경계는. 몸을 환경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예방하 고 신체메카니즘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건강하게 지탱되도록 봉사해야 한다.

21세기에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생태학적 영성 이란바로 그러한 생태계 안에서 인간의 바른 위상과 그 에 걸맞은 책임을 감당하려는 자기의식을 가진 영성이다. 동시에 생명현상 특히 인간생명현상은 유물론적 다윈주의자가 생각하듯이 긴긴 시간의 과정 속에서 우연히, 물질분자들의 합성에 의해 아무 목적도 없이 발 생하고 진화한다는 순수 유물론적 진화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생태학적. 영성이란 오늘날 주류적 진화과학자 들이 주장하듯이 지구생명이 진화가이기적 유전자 들의단순한 생존과 번식욕구로서 설명되어지는 것이라 고 보는 단순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21세기 생태학적 영성은 생명계에 나타난 비극, 아픔, 어두운 그림자들을 이겨내면서 녹색지구 온생명은

아름다움의 심화확장을 향한 끊임없는 추동”(universe's incessant impetus toward the intensification and expansion of beauty)"18) 이라고 보는 영성을 말한다 그래서. 길가에 핀 사소한 들꽃을 경외감을 가지 고 사랑하며 삶을 비관하거나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진리와 정의를 위해 힘쓴다. 진보신학자 김재준은

15) 위리엄제임스 지음, 김성민 정지련 옮김, 『대한기도교서회, 1998 , 414-415』 쪽.

16) 존 F.호트지음, 박만 옮김, 『다윈 이후이ㅡ 하느님: 진화의 신학』,(한국기독교연구소, 2,000) 35Whr.

17) Teilhard de Chardin, TheFutureofMan,(Harper and Row,1964), p. 163. ; 장회익, 『삶과 온생명』(솔, 1998), 182-187쪽.

18) 존 F. 호트, 위와 같은 책, 2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