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7

08 박재순 연구소장이 다시쓴 진정한 한국의 대사상가 유영모 : 종교 : 사회 : 뉴스 : 한겨레



박재순 연구소장이 다시쓴 진정한 한국의 대사상가 유영모 : 종교 : 사회 : 뉴스 : 한겨레

박재순 연구소장이 다시쓴 진정한 한국의 대사상가 유영모

등록 :2008-07-31 18:16수정 :2008-07-31 19:35



‘다석 유영모’
박재순 씨알연구소장이 다시 쓴
‘다석 유영모’



사상가 유영모(1890~1981) 선생을 조명한 <다석 유영모>(현암사 펴냄)가 나왔다. 저자는 유영모와 그의 제자 함석헌의 사상을 공부하고 이를 널리 펴는 데 앞장서고 있는 씨알사상연구소 박재순 소장이다. 그의 사상은 오는 2~3일 열리는 세계철학대회에서도 논의된다.

저자는 유영모를 천문·지리·서양철학·동양철학·불경·성경 등에 능통한 대석학이요, 현자요, 우리말 우리글로 사고한 진정한 한국의 사상가로 꼽는다.

유영모는 16살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32살에 조만식 선생의 뒤를 이어 오산학교 교장이 되어 그곳에 정통 기독교 신앙을 전했다. 40대에는 월남 이상재의 뒤를 따라 기독교청년회(YMCA) 연경반에서 30년 넘게 강의했다. 교회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평생 <성경>을 읽고 예수의 가르침을 받들어 실천했다. 그러면서도 예수를 절대시하고 <성경>만이 진리라는 생각을 버리고 여러 성인을 모두 좋아했다.

저자는 1975년 세검정에 있는 유영모의 집에서 선생을 처음 만났는데, 80대 중반이던 선생은 신선처럼 보였다고 회고한다. 당시 유영모는 무릎 꿇고 않아서 그곳에 온 사람들 수를 헤아리면서 수에 대한 풀이를 했다.

“하나는 나누어지지 않은 온전한 것, 큰 것, 한울, 처음을 나타낸다.…셋은 선다는 말에서 나왔다. 다리가 셋이면 어디서나 잘 선다.…다섯은 ‘다 섰다’를 뜻하고 여섯은 ’이어 섬’이고, …열은 ’열린다’는 뜻이다.”

유영모는 당시 밥 먹을 때도 물은 잘 안 먹는데 늘 입 안에 물이 가득 고인다고 했다. 사흘 금식하고 50리를 걷고도 목마르기는커녕 입에 군침만 돌더라고 했다.

그때 받은 강렬한 인상이 마음에 와닿아 지금도 그의 사상을 받드는 저자는 우리 전통 사상과 현대 사상을 결합함으로써 함석헌의 싸알사상, 민중신학, 종교 다원주의 사상, 토착화 신학, 생명 철학의 선구자가 된 다석의 사상이야말로 지구화와 생태학적 위기 속에서 상생 평화의 세계를 지향해야 하는 인류에게 자극과 영감을 줄 것이라고 평한다.



조현 기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301773.html#csidx78fd0b0ef81dc58b6c9b5c37a602543

04 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박영호와 박재순 대담

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기독교사상

다석 유영모의 생활 모습

이 대담은 다석 유영모 연구가인 박영호와 박재순이 다석의 일상생활과 사상을 주제로 2004년
12월 12일 성천문화재단에서 한 것이다.

다석은 남강 이승훈이 설립한 오산학교 교사와 교장을 지냈고 서울YMCA 연경반(성서연구반)을 지도한 사상가였다. 대담은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 지원을 받은 한신대 프로젝트(“한국개신교가 한국근현대의 사회 문화적변동에 끼친 영향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한신대 학술원 신학연구소의 허락을 받아영호와 박재순의 대화두 회에 걸쳐 소개한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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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 다석 유영모 선생님의 가장 가까웠던 제자이신 박영호 선생님을 모시고 다석 유영모
선생님의 사상과 삶의 모습에 대해서 듣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다석에 대해서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깊숙한 그런 말씀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박영호: 반갑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씨의 소리」에 발표된 다석 선생님에 대한 박 교수님의 논
문을 봤습니다. “공부 많이 하셨다.” 했는데, 가까이 뵙게 돼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박재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유영모 선생님을 세상에 널리 알린 첫 번째 업적을 가진 분으로
저는 박영호 선생님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유영모 선생님의 강좌를 가장 충실하게 들으셔서 유영모 선생님으로부터 마침보람, 졸업장을 받으신 유일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제자로서 스승 유영모 선생님을 어떤 분으로 보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박영호: 제 나이가 다석 선생님하고 40년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오래 모신 편은
아닙니다. 다석 선생님이 69, 70세 되셨을 때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보
다는 한 30년 이상 늦게 다석을 만났지요. 제가 다석 선생님께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말은 옳
은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석의 만년에는 다른 분이 안 계시고, 김흥호 선생님만 계시고, 제가
자주 구기동 드나들면서 선생님 가르침도 받고 그랬습니다. 제가 다석의 전기(傳記)를 쓰기 위
해 자료를 수집하려고 하는데 다석 선생님께서 전기에 대한 것은 김흥호 교수님하고 두 사람이 의논해서 처리하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하나님에 대한 내 사상의 멀고 가깝고 바르고 거슬리는 것에 대한 것은 김흥호 님과 상의해서 해라.” 하는 공식적인 통보를 받고서 처음부터 김흥호교수님하고 둘이서 유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김흥호 선생님께서 그때 이대에 계시니까 바쁘셨어요. “난 바쁘니까 필요한 자료가 있다고 그러면 대학 도서관에서 다 뽑아줄 테니까 박 선생님이 전적으로 맡아서 하시오.” 그래서 제가 만년에 선생님하고 더 가깝게 지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박재순: 어떻게 박 선생님만 마침보람을 받으셨는지요?

박영호: 저만 받았다 그러니까 다른 분들께는 굉장히 송구스럽게 되었는데요. 마침보람을 받게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내가 선생님을 자주 집으로 찾아가고 편지를 하고 그랬습니다. 하루는 고향에 계시는 형님 내외분이 찾아왔기에 창경원 구경하시라고 모셔다드리고, 나는 또 구기동으로 선생님 뵈러 갔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뜻밖에, 선생님께서 “날 찾아올 생각도 말고, 편지할생각도 말아야 된다. 그걸 단사(斷辭)라 한다.” 하시면서, 찾아오지 말라 이거예요. 내게는 너무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박재순: 선생님과의 관계를 끊으라는 말이죠?
박영호: 그렇지요. 정신적으로 독립하란 말이죠. 보통 소들이 어미 소가 송아지를 잘 먹이다가
젖 뗄 때가 되면 발길질 탁 하면서 젖 떼는 것처럼 딱 이렇게 자르는 걸 느꼈어요. 나는 정신적
독립은 못 되었는데, 『주역』의 단사, 말씀 사(辭) 자 끊을 단(斷) 자 ‘단사’라 그러면서 그 단사를
하고 정신적 독립을 해서 다 흩어져서 각기 제 노릇을 해야 하지 않느냐 하셨습니다. “그냥 함
께 어리바리 있으면 뭐 되느냐, 너는 너대로 가서 너 한 사람 구실하고, 나는 나대로 하는 거지,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러셔요. 그래서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 말씀이 옳거든요. 함 선생님이 “자기 지어서 자기가 먹는 거다. 내가 생산하는 게 내 자신의 식량이되는 거다.” 하고 말씀을 하셨지만, 아직 나 스스로 정신적인 생산을 할 정도도 못 되었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제 선생님께서 우리 집 앞을 지나가더라도 선생님 만나러 안가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자 제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라고요.
그렇게 한 5년 정도 선생님을 찾아뵙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정병호 선생이라는
분을 보내서 박영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보라고 하셨어요. 그때 내가 상처(喪妻)했다는
소리를 들으셨던가 봐요. 정병호 선생이 이제 선생님이 찾으시니까 한번 가보라고 그래서, 다시5년 만에 구기동 선생님 댁을 찾아가 “저는 이제 선생님 곁을 떠나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어요. 선생님도 “나는 ‘은혜’라는 말을 쓰기 싫어가지고, ‘힘입어’라고 말하는데, 앞으로 힘입어서잘 사시오.” 하셨습니다. 이렇게 둘이 고별인사를 했어요. 그랬더니 뒤에 봉합 엽서에다 마침보람, 졸업장이라 그러고, 그 안에다 당신 한시를 적어서 우편으로 보내오셨어요.
그때 난 톨스토이를 좋아했는데 “대학은 학문의 묘지”라고 말한 톨스토이의 영향을 많이 받아
서 대학을 가지 않았습니다. 톨스토이도 대학 중퇴한 사람이거든요. 내가 톨스토이 영향을 너무많이 받았기 때문에 신앙도 비정통이 되다 보니깐, 비정통을 용납해줄 한국 신학교가 없잖아요 . 그래서 신학교도 못 갔지요.

「문화일보」가 처음에는 정치 기사를 못 쓰게 되어 있었어요. 정주영 씨 정치적 활동을 억제하
려고 그랬지요. 「문화일보」 이규영 회장이, 다석 선생님을 소개함으로써 「문화일보」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내게 글을 쓰게 했습니다. 그런데 나를 소개해야 할 텐데, 난 대학이라고는 안가봤고, 졸업장 하나 받은 게 있다면 다석 선생님께 졸업장 하나 받은 거 하나 있다고 하니까
그럼 몇 분이나 그런 졸업장을 받았냐고 묻더라고요. 글쎄 난 모르겠는데, 아마 다른 사람이 받
았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고, 그랬더니 그 말이 커져서, 다른 제자분들한테는 굉장히 송구스럽게되었어요.

박재순: 유영모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북두칠성처럼 빛나는 분이라고 생각하는데, 한
디로 다석 선생님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유달영 선생님은 다석을 공자 같은 분이라고
하셨지만, 공자하고는 다른 면도 느껴집니다. 공자는 유영모 선생님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분
로서, 유영모 선생님처럼 철저한 금욕과 영의 세계를 탐구한 분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공자는 제자가 3,000명이었다고 하니까 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현실에 큰 영향을 미친 분이었
습니다. 그러나 다석의 정신세계가 공자보다 내면적으로는 훨씬 더 깊은 거 아닐까요?
박영호: 성천 유달영 선생님도 다석 선생님은 공자 이상 가는 인물이라고 추모 모임 때 자주 말
씀하시곤 그랬어요. 저는 한마디로 다석 선생님은 우리에게,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업그레이드
어떤 고차적인 신관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의 모든 국부적이고
저차원적인 신관에서 보다 높은, 21세기의 정신을 이끌어갈 수 있을 만한 신관을 제시하셨습
다. 강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지내신 심일섭 교수가 “21세기에도 다석 사상 이상의 어떤 신학
이 나올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다석은 21세기에 두루두루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새
로운 신관을 제시해준 분이라고 봅니다. 모든 종교를 다 같이 아우르면서, 그야말로 회통할 수
있는 신관이지요. 그러나 혼합종교는 아니에요. 김흥호 교수님조차도 박영호처럼 그렇게 이야
기하게 되면 혼합종교가 되는 거 아니냐 그러셔요. 나는 그 소리를 듣고서 깜짝 놀랐어요. 그렇
지 않아요. 다른 종교들을 소화하면서 다석 선생 나름의 하나의 새로운 신관을 만들어낸 거지,
그냥 혼합만은 아니죠. 그것을 종합하고, 새롭게 하나의 신관을 제시하는 거죠.

박재순: 다석의 신관의 새로운 내용은 어떤 것일까요?
박영호: 하나님은 상대적, 부분적 존재가 아니라 지금 존재하는 모든 존재 그 자체, 전체가 하

님이다 이거예요. 상대적인 것은 하나님의 하나의 부속품이지, 하나님 자체는 아닙니다. 하나님한 분만 계시는 것이고, 그 하나님 영역 안에 우리 인간들도 있고, 별도 있고, 만물들이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모른다고 하는 것보다 더바보 같은 소리입니다.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은 있다 없다의 지경을 넘어서 없음(無)과 있음(有)을 아우르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본 정체는 허공이시며 성령이신 없이 계신 님입니다. ‘없이 계신 하나님’이지요. 그러니까 유신론 무신론을 다 넘어섭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계시고 허공으로 계시기 때문에 없이 계시는 것이고, 그게 말씀으로 만물이되었다고 그렇듯이, 성령의 일부가 절대성을 잃어버리면서 상대화되어서 만물이 되었다고 하니까 만물조차도 하나님의 영역 안에 있습니다. 성령과 허공으로 계시는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존재이고, 상대적인 만물은 자꾸 생겨나면서 변하는 존재니까 하나님은 변하는 모습을 가지고있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유와 무를 합한 이 전체가 하나님입니다. 전체로서는 하나님만 존재하는데,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인간이, 뭇 생명이 잠시 생겨나는 것입니다. 다석의 신은 인간적인 신화적 신도 아니고 범신론도 아닙니다. 성령과 허공으로 계시면서 만물을창조하고 생성하는 하나님입니다. 불교의 허공과 기독교의 하나님이 여기서 회통됩니다. 그게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거죠.
박재순: 하나님을 성령과 허공으로 표현하는 것도 아주 새롭게 들리고, 유와 무를 통합한다고
하는 말씀도 새롭게 들립니다 13 1
. 다석 선생님이 하나님은 유무상통(有無相通)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지요.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이 함께 쓰는 것을 유무상통한다고 하는데, 하나님을 유무상통이라고 하니까 더욱 새롭게 들렸습니다.
참 좋은 말씀인 것 같고, 두고두고 새기고 좀 더 생각을 이어가야겠지요. 그런데 유영모 선생님
의 사상은 남기신 글을 보고, 또 박영호 선생님이나 김흥호 선생님이 또 많이 풀이를 해주셨으
니까 그런 걸 연구하면 될 것 같은데, 유영모 선생님의 생활의 구체적인 모습, 그런 건 사실은
박 선생님이 안 계시면 어디 가서 여쭤볼 수도 없습니다. 그런 걸 꼭 여쭤봐야겠다 싶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건데요. 우선, 저희가 유 선생님을 보면 ‘1일 1식을 한국에서 처음 시작하신 분이다. 1일 1식을 통해서 건강도 유지하고 정신적인 깊은 세계까지 들어갔다.’고 알려져 있는데, 식사하는 모습에 대해서, 식사량이나 식사시간이나 반찬 가지 수나 그런 거를 자세하게 말씀해주세요.

박영호: 함석헌 선생님하고는 다르게 다석 선생님은 자신에 대해서나 집안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쓰신 일도 없고, 강연을 하실 때도 그런 얘기는 별로 말씀 안 하셨어요. 함석헌 선생님조차도, 다석 선생님이 장로 아버지의 아들이라서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는데, 사실은 다석선생님이 먼저 교회 다니고 그 뒤에 아버님이 교회 다니게 되었습니다. 다석 선생님이 성령을받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때가 쉰두 살 때입니다.
이때부터 생활 패턴이 확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부인하고 해혼하고, 금욕생활에 들어가고, 1일
1식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남이 알지 못하는 어떤 영적인 체험을 하신 것 같아요. 그전에도 알
만큼은 다 아셨어요. 그때 인간이라는 건 몸뚱이로는 완전히 동물, 짐승이라고 여기셨어요. 동
물들은 먹어야 하고, 싸워야 하고, 새끼 쳐야 하는데, 그걸 불교적 용어로 말하자면 ‘탐진치’거든요. 탐(貪)–탐욕부리고, 진(瞋)–성내고, 치(癡)-색욕인데, 그게 동물의 본능인데, 예수님과 부처님은 뭐냐면, 동물이면서 동물이기를 거부한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 아들 노릇하는 거거든요.
다석 선생님에 따르면 예수님 말씀대로 산 이가 부처님이고, 부처님 말씀대로 산 분이 예수님
이지요. 전구가 여러 개 있지만 전원은 똑같듯이, 예수나 석가의 인격체, 객체로는 다 다른데 영적인 근원은 다 같기 때문에 그렇게 똑같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나 부처님한테는 우리가 탐진치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잖아요. 식욕에서 모든 탐욕이 시작되니까 먹는 걸 절제해야 된다, 안 먹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완전히 안 먹으면 죽어버리니깐 하루 한 끼 먹는 거지요. 이 몸은 우리 머슴인데, 이걸 심부름 시키자면 안 죽을 만치만 먹는 게 한 끼 먹는
거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타고나기를 아주 평화적인 인물로 나셨기 때문에 자기와의 싸움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식색에 대한 금욕을 강조해요. 1일 1식 하면서 성생활 딱 끊어버린 것은 탐진치를 완전히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입니다. 그래서 해혼도 하셨지요.
다석 선생은 저녁을 잡수시는데, 그냥 젊은이 밥 한 그릇 정도 드셨어요. 나는 70세 때 만났는
데 그때도 젊은이 밥그릇 정도로 잡수셨습니다. 원래 소년 시절에 학교 다닐 때도 도시락 안 가
지고 다니셨거든요. 2식밖에 안 했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2식을 아주 오래 하셨죠. 1식하기 전
에는 생식도 하시고 솔잎도 잡수실 때도 있고, 콩이나 쌀 불려서 생식도 한 1년인가 하시기도
했어요. 육식을 좋아하시지도 않고, 그냥 반찬이 올라오면 ‘나 오늘 돼지고기 몇 점 먹었어.’ 할
정도로 공개하시고. 반찬 몇 가지 안 드셨어요. 워낙 살기를 그렇게 사셨으니깐요.
박재순: 저도 70년 중반에 딱 한 번 퀘이커 예배에 나오는 사람들하고 같이 세검정 유 선생님
댁을 찾아뵈었어요. 두세 시간 앉아서 여러 분들하고 말씀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너
무 강한 인상을 받았어요. 얼굴이 그냥 신선 같으시더라고요. 머리카락은 완전 하얗고, 볼은 발
갛고, 어린아이처럼 입술도 새빨갛고, 입에서는 늘 침이 고이신다고 하시는데, 정말로 입에는
물이 가득하시더라구요. 국이나 물은 많이 드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박영호13 : 그리고 또 국물이 있더라도 밥은 밥대로 먹고 1
, 국은 국대로 먹어야지, 같이 먹으면 덜씹힌다고, 밥만 먹어야 꼭꼭 씹힌다고. 또 비벼서 잘 드셨어요. 속에 들어가면 저절로 위 속에서 다 비벼지는데, 미리 비벼서 먹는 게 좋다고. 썩썩 비비시진 않고, 설설 비벼서 드셨지요.

박재순: 밥을 제물이라고 하고, 식사하는 것을 진정한 예배라고도 하셨지요. 왜 1일 1식을 하냐.아침은 하나님을 위해서 드리고, 점심은 이웃을 위해 드리고, 저녁만 나를 위해서 먹는다고 그러셨다는데, 혹시 그런 말씀 들은 적 없으십니까?
박영호: 서울YMCA 총무 하신 현동완 선생님이 그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과일을 안 먹는 건 환자를 위해 안 먹는 거”라는 그런 소리를 자주 하셨어요. 도산 선생님이 ‘나는 밥을 먹는것도, 잠을 자는 것도 나라를 위해서 한다.’ 그러듯이, 유 선생님은 밥을 먹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먹고, 잠자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잔다고 하셨고, 어떤 의미에서 당신은 기도하기 위해 밥
먹는 것이고, 밥 먹는 것도 기도하기 위해서 밥 먹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유 선생님이 마지막 2
년 동안은 기억상실증에 걸리셨거든요. 사모님과 나를 보시고, “저 얼굴이나 이 얼굴이나 눈에
는 익었는데 시작을 모르겠다.” 말씀하시기도 하셨지요. 그러면 부인도, 제자도 못 알아보신 거죠.
박재순: 왜 그러셨을까요? 말년에 뇌를 한 번 다치셨던 것이, 그것이 재발하셨나요?
박영호: 낙상하셨는데, 그래서 그때 제가 의사이신 최태사 선생한테 물어봤었는데,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 것 같다 그래요. 요즘 의사들에 따르면 이하고 뇌하고 관계가 깊어서, 많이 씹어야
뇌의 혈액순환이 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석 선생님이 이가 안 좋으셔서 일찍 빠졌습니다.
박재순: 왜 그러셨을까요. 다른 데는 다 건강하셨는데.
박영호: 이를 해 넣지도 않았는데 그게 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만으
로 아흔한 살 사셨는데, 돌아가시기 2년 전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리셨어요. 부인이 6개월 먼저
돌아가셔서, 산에서 그날 밤을 새우는데, 왜 집에 안 가느냐고 하셨어요. 당신 부인 돌아가신 것도 모르는 거죠. 그러니 기억을 완전히 잃으셨는데도, ‘아버지~ 아버지’ 하고 간헐적으로 하나님아버지를 찾는 것은, 신앙이 잠재의식에까지 뿌리를 내렸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어요.
박재순: 그리고 그럴 때도 무릎 꿇고 계셨다고….
박영호: 늘 무릎 꿇고 계셨죠. 선생님은 한복을 안 입으셨어요. 선생님은 요가에 대해 일가견을
가지셨어요. 그래서 몸에 균형을 잡는 걸 굉장히 강조하고 그러셨는데, 그래서 마지막까지 일어서서 바지를 입으셨어요. 마지막에 일어서서 바지를 입으시다가 넘어지셨어요. 그래서 일주일동안 못 일어나시고,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그때만 오줌똥 받아내고 그랬지,깨끗하게 돌아가셨어요.
박재순: 대단하시네요. 완전한 기억상실 상태인데도 2년 동안 그렇게 깨끗하게 지내셨다니! 이가 빠진 것은 60대 때 빠진 건가요?
박영호: 내가 69살 때 뵈었는데, 그때도 앞니만 몇 개 있더라고요. 그런데 5년 뒤에 가니깐 몽땅
다 빠셔서, 저 어금니 한두 개만, 하하 웃으실 때 어금니 한두 개만 있더라고요.
박재순: 왜 그러셨을까요? 저작을 많이 안 하셔서 그런가요?
박영호: 그게 왜 그러셨는지 모르겠는데, 아드님들이 의치를 자꾸 하라고 해도. 어머님도 90 가
까이 사셨는데, 내가 어머니한테도 못 해드렸는데, 내가 뭐 틀니까지 해야겠느냐고, 그냥 살다
가 죽겠다고.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데, 잇몸으로 살면 되는 거지 하시며 그냥 사셨어요.
박재순: 잇몸으로도 식사는 잘하셨나요?
박영호: 그렇죠. 경제적으로 근검절약하는 거 몸에 밴 분들이지요. 함 선생님도 마지막에 서울
대학 병원에 계실 때, 하루는 홍익재 사장이 ‘선생님 가까이서 봬야지.’ 해서 내가 홍익재 사장
하고 함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화장실에 가야 되는데, 따님이 혼자 있어서 우리가 모시고
화장실 갔었는데 13 , 화장실에서 종이를 뜯어드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종이를 좀 길게 뜯었더니, 1

그러면 되겠느냐 하시며 반을 뚝 잘라가지고 쓰시더라고요. 그런데 다석 선생님도 아주 근검절약 하세요. 달력 뒷치에 글 쓰시고, 시 쓰시고 하셨어요. 그렇게 물건 아끼는 것은 두 분이 똑같아요. 함 선생님 그 휴지 조금 많이 뜯은 거 딱 갈라서 쓰시는 거 보고 홍 선생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박재순: 선생님의 자제분들 얘기 들어보니까, 생선을 먹을 때는 가시 채로 먹으라고, 가시를 발
라내지 못하게 하셨대요.
박영호: 가시에 영양분이 있지요.
박재순: 함 선생님의 삶과 정신은 유 선생님에게 힘입은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함 선생님에
게 여자 문제가 있어서 유 선생님은 서운해하셨지만, 함 선생님의 많은 부분이 유영모 선생님
한테서 왔습니다. 유 선생님의 깊은 사상과 높은 정신세계가 있기 때문에 함 선생님의 사상과
실천이 깊고 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영호: 이기백 교수의 아버님 이찬갑 선생님이 왜 함석헌이 자꾸 유영모를 닮아가느냐고 공개적으로 비난을 했어요. 한동안 함 선생님도 한복 입고, 머리를 좀 깎으시고 그랬거든요. 유달영선생님에 따르면 함 선생님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석 선생님 닮으려고 애쓰신 분이다. 1일1식하고, 한복 입은 거나, 고무신 신고 다니는 거나. 다석 선생님은 가난한 사람 차림으로는 나가도 부르주아지 차림을 해서는 바깥에 못 나간다 그러셔요. 나도 이거 넥타이 맨 지 얼마 안
돼요. 넥타이 매다가도 선생님한테 갈 때는 풀고 가고 그랬어요.
박재순: 유 선생님이 잠은 어떻게 주무셨나요?
박영호: 잠은 보통 열 시 전후에 주무셔요. 드러누웠다고 하면, 코 소리가 아주 요란해요. 그래
서 코 곤다는 걸 글로 쓰신 것도 있어요. 당신도 모르시는데, 아마 코 곤다는 소리는 들으셨나
봐요. 그래서 코 고는 그걸 가지고 시조로 쓰신 것도 있어요. 아주 죽은 듯이 그렇게 주무셨어
요. 잠이 안 오고 그런 거는 없어요. 세 시, 네 시면 딱 깨셨어요. 그때 깨가지고 다석일지 쓰시
는 거예요. 저녁에 쓰는 게 아니에요. 아침에 생산하는 거죠. 암탉이 꼬꼬댁 하면서 새벽에 알
하나 낳듯이, 다석 선생님은 시 한 수 내놓는다고 서영훈 선생님이 자주 말씀하셨죠. 일기라 해
서 내가 뭐 했다는 것을 쓰지 않고, 전부 다 한시 아니면 시조를 쓰셨는데, 한시가 한 1,300수,
시조가 한 1,700수 됩니다. 쓸 게 없으면 그냥 날짜만 이렇게 써놓으셨어요. 여행을 하신 경우
에는 일지를 쓰지 못하셨지요.
박재순: 주무실 때는 어떻게 주무셨나요? 대 자로 주무셨나요?
박영호: 그렇죠. 선생님은 널판에 주무셨잖아요. 관 하나를 사서 관의 밑바닥 판만 갖다 놓고 그위에서 주무셨어요. 이만치 두꺼워요. 관에서 주무셨던 셈이지요. 죽기 전에 관 속에 들어가는체험을 하기 위해서, 죽음하고 가깝게 지내기 위해 그렇게 주무셨어요. 사람이 죽음을 잊어버리면 잡념이 자꾸 들어오거든요. 죽음을 마주해야 잡념이 안 들어오기 때문에. 쉰두 살 때부터 그렇게 주무셨습니다. 공자님은 송장 잠을 자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선생님은 송장 잠을 자야 한다는 거예요. 송장처럼. 인간들이 허리가 펴져야 하는데, 낮에는 자꾸 굽어지잖아요. 그러니깐허리가 딱 펴질 정도로 바로 자야 한다고 하셨어요. 선생님은 잠을 깊이 주무셨어요.
박재순: 선생님은 숨 쉬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셨는데, 자면서 숨을 깊이 쉰다고 했으니
까.
박영호: 숨은 자는 동안 더 활달하게 호흡을 한다고 그래요. 다석 선생님은 성령을 숨님이라고
했어요. 어떤 때는 기라고 하기도 하는데, 몸도 늘 숨을 쉬어야 되듯이, 잠자는 동안에 영적으로하나님의 성령을 숨 쉬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우리도 글 쓰다가 꽉 막혀서 안 될 때는 한잠 자고 깨면 이 잠재의식에서 다 풀어져서 글이 되는 그런 경험, 교수님도 잘 아실 거예요. 그게 잠재의식이 활동을 해서 영적으로 해결이 되는데, 그것을 선생님은 성령의 활동으로 생각하셨지요. 자고 나면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자는 동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내 의식에 13 1
, 잠재의식에어떤 역사를 하셔서, 어떤 영감(inspiration)을 받는 거라고.
박재순: 잠자는 게 수행이네요. 잠자는 게 기도고. 숨을 쉬어서 하나님의 성령과 통하는 것이군
요.
박영호: 낮에 기도할 때 왜 눈을 감느냐? 이 세상 보면서 하나님하고는 대화하기는 어려우니까
눈 감고 기도하는 거니까, 밤에 아무것도 안 보일 때에는 기도가 더 잘 되는 거지요.
박재순: 선생님이 한 서너 시에 일어나서 맨 처음 하는 것이 무엇이었나요? 냉수마찰이요?
박영호: 나중에는 마른 수건 마찰도 하시고, 수건이 없으면 손으로 빠닥빠닥 소리가 날 정도로
온몸을 문지르세요. 집에 계시면 대야에 물 떠다가 하셔요. 세숫대야 하나면 목욕 다 되는데, 목욕탕 갈 필요가 없다고 하셨어요.
박재순: 그러면 냉수마찰을 20대 때 처음 하셨다고 하는데, 밖에서 하셨다고 했는데.
박영호: 물이 꽝꽝 얼었는데, 그거 깨가지고 하셨죠. 그래도 감기 한 번 안 걸리셨어요.
박재순: 그래서 말년까지 냉수마찰을 밖에서 하셨나요?
박영호: 선생님이 물 길어다가, 그때 사랑방에 계실 때는 사랑방 안에서 하시고, 마당에서도 하
시고, 우물가에서도 하시고. 그다음에는 옛날 주택이 많이 들어서기 전에는 개울 앞에서도 하시고. 그래서 지금도, 평창 둘째 아드님 댁에 계실 때 개울에서 냉수마찰 하는 거 보신 분들이 많아요. 그 노인이 그렇게 훌륭한 분이신 줄은 몰랐다고요. 요즘 새벽사람 가르치지, 다석 선생님은 진짜 새벽사람이지. 아드님이 그러는데, 젊을 때는 늦잠 자고 그러셨대요. 원고 써놓고 늦게까지 주무셨는데, 쉰두 살 이후로는 완전히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져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셨어요.
다석 선생님에 따르면 정신이란 에너지, 호르몬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이 왕성해야 기도도 할
수 있고, 철학도 할 수 있고, 예술도 할 수 있는 거지요. 정력이 있어야 예술도 하고, 노동도 하
고, 기도도 할 수 있는 건데 왜 자꾸 그것을 방사로, 사정을 해버리고, 아까운 에너지를 낭비하
느냐는 겁니다. 새벽은 피로가 다 풀려서 제일 정력이 왕성할 때거든요. 그때 정신활동도 제일
잘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새벽 시간을 요긴하게 쓰신 거죠. 저도 나중에 그렇게 해보니까 하루
온종일 글 쓰는 것보다도 새벽에 하는 것이 더 성과가 좋아요.
박재순: 묵상을 어떻게 하시나요?
박영호: 언젠가는 내가 새벽에 가니까, 아직도 글 쓰고 있으면서 ‘내게는 쓰는 게 기도다.’고 하
셨는데, ‘내 기도는 참선에 가깝다.’ 그러셨어요. 명상을 하는 그런 타입이고, 그다음엔 글 쓰는
것 자체가 영감 받는 기도의 시간이었지요.
박재순: 시간을 정해놓고 참선과 묵상을 하셨나요?
박영호: 새벽마다 주로 무릎 꿇고 눈 감고, 몸을 이렇게 흔들흔들 하시면서 명상하셨지요. 선생
님은 하루 온종일, 전천후 비행기라고 하듯이, 전천후 기도예요. 하루 특별한 시간만 내놓고 기
도하는 분이 아니에요. 늘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분이지, 어느 시간만 딱 정해놓고 그 시
간에만 기도하는 분은 아니었어요. 하루 온종일 하나님하고 떨어지는 일이 없는 그런 생활을
하셨죠.
박재순: 선생님이 자세를 흐트러뜨리는 법이 있으셨습니까? 이를테면 다리를 쭉 뻗는다든지,
기댄다든지.
박영호: 그런 거 없어요. 다석 선생님은 앉는 자세, 무릎 꿇는 자세가 달라요. 보통 우리는 이렇
게 발을 깔잖아요. 다석 선생님은 안 그래요. 다리를 여덟 팔 자로 이렇게 펴고, 궁둥이가 땅에
닿게 해서 온종일 좌상에 앉으셔서 지내셨어요. 이 자세를 궤(跪) 자, 발족 변에 위험하다 위를
써서 궤 자라고 하는데, 온종일 이 자세로 똑바로 앉아 계셨어요. 늘 긴장이 되고 허리를 굽힐
수가 없는 자세로, 하루 온종일 이렇게 지내셨어요. 함 선생님하고 ‘「성서조선」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셨는데 13 1
, 간수들이 자꾸 무릎 꿇으라고 하는데 유 선생님은 시키지도 않는데 온종일무릎 꿇고 있으니깐 간수들이 탄복을 하더래요. 그러니 선생님이 무릎에 혹이 달릴 정도로 굳은살이 배겼어요. 그렇게 온종일 앉아있는 거예요. 낮에는 눕는 일이 없어요. 선생님이 그렇게꿇어앉으시니까, 우리가 편하게 앉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우리가 꿇어앉아 있으면 한 시간만지나면 아파서 이렇게 앉다 저렇게 앉다 그러는데, 선생님은 꿈쩍하지 않으셨어요. 참 기적 같
은 일이에요. 아까도 말했지만, 치매 상태가 되었는데도, 그렇게 앉는 것은 똑같아요.
박재순: 제가 70년대 중반쯤에 유 선생님 찾아뵙고, 참 짧은 말씀이었지만 큰 인상을 받은 것
중 하나는 ‘스스로 해야 한다. 손이 하는 일을 발이 도우면 안 되고, 발이 하는 일을 손이 도우면안 된다.’ 하시고 ‘이렇게 하는 거다.’ 그러면서 80이 넘은 노인이 무릎 꿇고 앉으셨다가 갑자기한쪽 발을 세우시더니 그 발로 번쩍 일어나시더라고요.
박영호: 그리고 누웠다가 손 안 대고 딱 일어나셨지요.
박재순: 그러니까 늘 앉아서 단전호흡을 이렇게 하시고 그러셨나 봐요. 또 영감이 나면 글을 쓰
시고, 시를 쓰시고. 그 당시에 정인보 선생님이나 최남선 선생이나 다 학자셨는데, 유영모 선생
님이 특별히 한학에 깊고 동양학의 대가라는 평판을 들으셨다고 그러는데, 유영모 선생님의 한문 실력이라고 할까, 또 공부법은 어떻게 하셨나요?
박영호: 오산학교 교장으로 오는데, 육당 선생이 두려워하는 분은 오직 이 분뿐이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니깐 춘원 선생이 지금 상명여대 있는 데 이사 왔을 때, 다석에게 노자 이야기를
들었다고 나와요. 김흥호 교수님도 정인보 선생님한테 물으니깐, 동양학에 대해서는 다석 선생님한테 배워라 하셨고, 그다음엔 춘원 선생님한테 가니까 또 다석 선생한테 가서 배워라 하셨대요. 보통 우리나라에 옛날 삼천재라는 분이 육당 최남선 선생하고, 춘원 이광수 선생하고, 원래 이북에 간 홍명희 선생인데, 그분 빼고 정인보 선생을 집어넣었는데, 김교신 선생님 하는 말이 삼천재, 사천재 하는데 다석 선생님도 포함하더라고요. 김교신 선생은 이 삼천재가 두려워하는 분은 유영모 선생이라고 하셨지요. 다석 선생도 천자 책을 집에서 아버님한테 배웠는데, 다섯 살 때 이미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도 하고, 뒤에서부터 거꾸로 암송을 했다고 해요. 다 알고눈에 환하게 보인데요, 천자 책이. 그러니 이래도 외우고 저래도 외울 정도로 비상한 머리를 타고나신 것 같아요.
박재순: 강의는 어떻게 하셨나요?
박영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 틀거리에 맞게 미리 구상을 해서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은 한 주제가 떠오르면 그에 대해서 아는 걸 다 말씀하시니까 끝이 없어요. 네 시간도 좋
고 다섯 시간도 좋고. 난 농사짓는 사람이니까 짐승들이 들에 있으니까 말씀을 듣다 말고 먼저
나와야 돼요. 세계대학봉사회에서는 일곱 시간 강의를 했다고 해요. 보통 오후 두 시에 모여서
겨울에는 컴컴할 때까지 했지요. 12월 한 달, 8월 한 달은 쉬고. 보통 두 시에 모여서 일찍 끝나
야 보통 여섯 시 또는 네 시에 끝났고, 보통 서너 시간 다 넘어요.
박재순: 혼자만 말씀하시나요? 질의응답 같은 건 없고요?
박영호: 없어요. 당신 혼자만 말씀하셨어요. 이따금 유승국 교수, 김흥호 교수님도 오셨지요. 당
신 혼자만 말씀하시기에도 시간이 없었는데요. 주소록 하나 만들지 않고, 인사시키는 일도 없고
얼굴은 얼굴대로 알고 지냈지요. 김흥호 선생님이 그러잖아요. 구기동 가서 『중용』을 배우는데
하루는 같이 나오는 분한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평안도 용천이라고 해서, ‘그러면 함 선생
님을 아세요?’ 그러니까 ‘내가 함석헌이요.’ 그랬대요.
박재순: 유 선생님은 언제부터 가르치셨대요?
박영호: 월남 이상재 선생님 돌아가시고, 1928년인가 YMCA 연경반에서 후임자를 구하는데, 최
남선 선생님이나 김정식 선생님을 비롯해서 여러 분들이 다석 선생님을 추천했다고 해요. 현동
완 총무가 집으로 왔더래요. 그래서 거기서 강의하시게 되었대요. 『노자』하고 『중용』은 집에서
강의했어요 13 . 선생님이 1
『중용』과 『노자』는 완역했고, 『장자』나 『맹자』는 발췌를 해서 가르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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셨거든요. 집에서 아침 일곱 시에 시작했는데 함 선생님은 오류동에서 구기동까지 걸어가셨다
는 거 아니에요. 김흥호 교수는 서대문에서 댁까지 걸어오셨고. 일곱 시에 시작하면 열두 시 될
때까지 말씀을 하셨어요. 서경덕 상서의 글을 번역해서 가르쳐주시고, 불경도 많이 가르치시고,
『반야심경』은 완전히 강의를 해주셨어요. 『반야심경』 번역도 있죠. 그러니까 우리 성경만 읽던
사람들이 불교를 알게 됐어요. 유승국 교수님도 다석 선생님을 만나서 불경도 읽게 되고 성경
도 읽게 됐다고 해요. 다석 선생님을 먼저 알아서 함 선생님을 알게 된 경우도 있고, 함 선생님
을 먼저 알아서 유 선생님한테로 넘어간 경우도 있지요. 물론 함 선생님 쪽에서 넘어간 사람이
숫자가 많지요. 네 그렇지요. 그렇죠. 머 넘어간 게 아니죠. 나는 넘어갔는지 몰라도.
박재순: 유 선생님이 집안일이나 농사일은 어떻게 하셨나요? 농사를 직접 지으셨나요?
박영호: 나도 체력이 약하지만 선생님의 손발은 나보다 크시더라고요. 키는 나보다 작고. 선생
님의 아버님이 선생님보고 ‘니가 뭔 농사짓느냐? 농사 감독이나 하면 하겠지’ 하셨대요. 그러나
당신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집안 청소에 이르기까지 제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셨어요.
다석 선생님의 가방을 받아드리려고 하면 안 시켜요. 어린아이들에게도 잔심부름 안 시켰어요.
양반들이 잔심부름 시키는 거, 안 한다는 거지. 잔심부름 시키면 둘 다 병신 된다는 거지. 사모
님이 다리가 아프실 때 당신이 가셔서 사골 뼈 사다가 고아드렸어요. 큰일 할 때, 다른 사람 힘
빌려야 할 때만 빌리지요. 첨에는 머 며느리 없을 때는 아예 물 한 컵도 안 주시고, 며느리 생기
면서 꿀도 타오고 차도 타오고 그런 일이 자꾸 벌어져요. 밥상을 당신이 부엌 앞에 갖다놓으셔
요. 당신은 아무것도 안 잡수셔요. 우리만 손님으로 왔으니까 마시지요. 설거지를 하시지는 않
았어요. 한번은 내가 구두를 신고 갔는데, 구두 위에 뭐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시고 가족들이
떨어뜨렸다 생각하고 선생님께서 내 구두를 닦아놓으신 일도 있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서민적이셔요. ‘귀족화되면 안 된다 이거야. 기독교가 상놈의 종교인데 귀족
종교가 되면 안 된다 이거야’. 권위는 전연 부리지 않으셨어요. 그래도 함 선생님은 그 앞에서
두려워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권위는 영적인 힘에서 오는 권위였지요. 겨울이 되어야 두루마기
입으시고, 두루마기 고름 아닌 단추 끼우시고, 여름에는 베 고이 입으시고. 아주 서민적이셨어
요.
세수할 때 비누 같은 것도 안 쓰시고 이는 소금으로 닦으셨어요. 아주 서민적이세요. 『주역』에 ‘
지천대통’(地天大通)이라는 말이 있지요. 지금 서대문의 독립문에 있는 천지비석처럼 하늘궤가
위에 있고 땅궤가 아래 있으면 답답하다는 거예요. 지가 위에 올라가고 하늘이 아래로 가면 확
트인다는 거예요. 시골서 사는 사람 서울서 살고, 서울서 사는 사람 시골서 살고. 그래서 왜 뭣
좀 안다는 사람들이 자꾸 시골로 내려가야 지천대통이 되지, 자꾸 권위만 부리고 있어서는 서
민들이 살지를 못한단 말이에요. 나는 맨 끄트머리가 되고 땅의 먼지하고 가깝게 되는 게 자기
라는 거예요.
박재순: 예수님 가르침하고 같네요. 예수님의 성육신하고 같네요.
박영호: 그렇죠. 땅의 권위를 부리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드님들도 대학공부 안 시켰죠. 하
기야 그때만 해도 중학교 한 고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시기예요. 사람들한테 떠받드는 사람
되면 하나님한테 미움받는다는 거예요. 공부를 많이 해서 지배층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서민들
을 수탈해먹는 죄를 짓게 되어서 하나님한테 미움받는 존재가 되는데, 왜 그렇게 자꾸 그렇게
되느냐 이거지. 사람들한테 떠받드는 존재가 되면 하나님한테 미움받는 거 누가복음 17장엔가
나와요. ‘왜 자꾸 자식들 공부 많이 시켜서 귀족 만들려 하냐, 지배계급이 되어서 자신도 모르게
서민들 피 빨아 먹는 존재가 되려 하느냐.’ 그런 서민의식이 철저해요. 그래서 내가 농사짓는 거
와 보시고, 내가 쓴 『새 시대의 신앙』이라는 책을 보시고 내 사상을 변질시키지는 않겠다고 여
기셔서 기특하게 여기지 않았나 생각해요.
박재순13 : 선생님은 어떻게 보면 기독교 신앙이나 성서로부터 자유롭게 나간 것도 같지만 1
,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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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유 선생님처럼 성서를 문자적으로 실천한 사람도 없다고 여겨져요.
박영호: 그렇죠. 선생님은 예수님하고는 아주 가까운데 현 기독교하고는 멀죠. 선생님은 오늘날
기독교하고는 가까울 수 없다고 하셨어요. 유교를 통해서는 공자나 맹자의 모습을 볼 수 없고,
지금 불교를 봐서는 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하셨어요. 진짜 예수님을 알려면 어떤 의미
에서는 다석 사상을 알아야죠. 그래서 지금 톨스토이 주장은 사도 바울은 자기의 도그마를 위
해서 예수님을 양념으로 써먹었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다
석 선생님이 톨스토이 영향을 받았지요.
박재순: 바울 얘기는 하지 않으셨나요?
박영호: 지금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얼굴마담 정도로 되어 있는 거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
하지는 않는 거죠. 다석 선생님은 몸으로, 삶으로 산제사를 드린 것 같아요. 평생이, 전부가 예
배였어요. 성경을 철저하게 생활화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예수님 가르침대로 사신 분이에
요. 내가 밥 먹는 거는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먹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상의 미사가 어
디 있습니까? 비정통이 아니라 정통이죠. 선생님은 식사하실 때 가족들이랑 같이 드시지 않고
따로 드셨어요. 손님이 오시면 겸상을 하죠.
박재순: 일상생활에서 유 선생님의 특징이 있나요?
박영호: 괴짜라는 말 많이 들을 정도로 생활 자체가 남다르셨지요. 걸어갈 수 있는 데는 다 걸
어가셨죠. 오류동 송두영 선생 모임에 가실 때도 몇십 리 되는 길을 걸어가셨죠. 인천까지 걸어
서 다녀오기도 하셨습니다. 김흥호 선생님은 <개성당일 왕복래>(開城當日 往復來)라는 한시가
「성서조선」에 실린 것을 보시고 유 선생님이 하루에 개성까지 걸어갔다 오셨다고 하는데, 그건
불가능해요. ‘개성당일’은 일본이 항복한다는 뜻을 함축한 말인데, 함 선생님만 그 뜻을 파악하
셨어요. 포천에 할아버지 산소가 있었는데, 하루 한 끼 먹는 일을 시작하고 새벽같이 가서 당일
에 오셨어요. 송두영 선생하고는 굉장히 가깝게 지내셨어요. 송두영 선생의 신앙은 정통적인데
도 두 분이 친하셨어요. 송두영 선생님과 함 선생님이 만나면 방에서 서로 큰절을 하고 “선생님
,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인사한 후 서로 대화를 나누셨다고 해요. 다석 선생님은 남한테 엎
드려서 큰절하는 걸 싫어하셨어요. 마을 젊은이들이 세배하러 왔는데 ‘그거 왜 하는지 모르겠다
.’고 하셨어요. 그래서 나는 세배 대신에 선생님 시를 암송하면 선생님이 좋으셔서 ‘아멘’ 하셨어
요. 일제 때 신채호 선생님이 세수할 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하셨다고 그래요. 일제에 굴하지
않기 위해서, 사대주의가 싫으니까. 자주정신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던 거지요. 오랜 세월 중
국 앞에 고개를 숙이고 살았으니까 그게 너무 분통해서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는 거지요.
박재순:: 유영모 선생님은 동양학의 대가로서 기독교 정신과 동양종교, 민족사상을 종합하고,
얼과 정신, 몸을 곧게 세우고 사신 분으로 압니다. 유 선생님의 사상을 한마디로 어떻게 말할
수 있나요?
박영호:: 유 선생님은 대단한 노력형이셨어요. 댁에 보면 고전 책이 많았어요. 다석 선생님은 정
적인 분이니까 골똘히 혼자서 연구하셨지요. 다석 선생님은 선생님이 없잖아요. 한문도 아버님
한테 배우고 서당에서 김인수 선생이라는 분한테 『맹자』 배운 거밖에 없죠. 그러고는 경신학교
한문 선생님이 김도희 선생님인데 다석 선생님의 한문 실력이 선생님 못지않았다고 해요. 한자
를 파자(破字)해서 한시도 쓰고 해서 김도희 선생님이 아주 탄복을 했대요. 나중에 『화엄경』을
어떤 스님한테 배웠다고 하지요. 타고난 천재에다가 대단한 노력형이라서 깊이 파고들 수 있었
지요.
박재순:: 안창호, 이승훈, 여준, 신채호가 모두 신민회의 중심인물들이지요. 안창호가 교육을 통
해 국민을 일깨우고 나라를 바로 세우자고 주장해서 이승훈 선생님이 오산학교를 세웠지요. 그
런데 유 선생님이 책을 읽으실 때 특별한 방법이 있었나요? 이를테면 주자는 글을 읽을 때 이
해가 안 되는 것이 있으면 밑줄을 그었대요 13 1
. 두 번째 볼 때도 이해가 안 되면 이해될 때까지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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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하다가 안 되는 건 또 밑줄 긋고, 세 번 읽을 때는 또 그래도 이해 안 되는 건 또 밑줄 긋고 해
서 마지막에는 이해 안 되는 게 없을 때까지 읽었다고 해요.
박영호:: 다석 선생님이 1971년에 저한테 성경책을 하나 주셨어요. 1909년도 판 신약성경인데
온통 빨간 방점을 찍어놓고 빨간 줄을 그어놓기도 했어요. 성경책이 거의 빨갛다 할 정도예요.
하루도 성경 안 읽을 때가 없었대요. 한창 젊을 때 30, 40, 50대까지도 거의 날마다 성경을 읽으
신 것 같아요. 형이상학이 약한 주희가 하나님에 대한 걸 잘 모르면서, 사서에다가 주석을 붙여
놓아서 그 영향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받아서 우리나라 유학자들이 거의 무신론자가 되었어요.
그런데 다석 선생님은 ‘공자, 맹자가 다 하나님만 아는 분들인데 그렇게 되느냐?’ 하시고, 유교
가 이렇게 잘못된 거는 하나님을 내버려서 그렇다고 하셨어요.
다석 선생님의 유교 해석은 주희와 달라요. ‘천명지위성’(天命之爲性)에서 천명이란 하나님의
명령이고 생명은 성령인데 그 성령이 내게 온 것이 생(性), 바탈이라는 겁니다. 바탈이라는 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내가 쓰는 것이고. 성령을 내가 모시고 따라가는 걸 ‘솔성지위도’(率性
之謂道)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 가운데 왔는데, 내게 오신 하나님, 성령의 뜻을 좇아서
가는 게 길입니다. 나만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보고 같이 가지고 하는 게, 그게 ‘수도지위교’(
修道之謂敎)라는 겁니다. 다석의 유교 해석은 기존 유학자들의 해석하고는 전연 달라요. 이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박재순:: 다석은 자신의 하나님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유교 경전을 해석하신 것이죠?
박영호:: 그렇죠. 공자도 하나님의 천명, 하나님의 생명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대인을 두려워한다고 하셨지요. 공자의 하나님은 상상 이상으로 인
격적인 하나님이에요. 그야말로 신격의 하나님이죠. 이 세상 사람은 날 몰라주는데 하나님만 날
알아준다고 공자가 말씀하셨지요. 공자는 그런 신격의 하나님을 믿은 분인데, 지금 유교인들은
효도나 하고 제사 지내는 게 유교인 줄 알아요. 천(天)을 그냥 원리로 생각합니다. 다석 선생님
의 공로가 있다면 오리지널 예수를 생각하고 드러내고 오리지널 부처님, 오리지널 공자, 맹자,
장자를 드러내고 맛보여준 것입니다. 함 선생님이 노자를 많이 하신 것도 그게 다 다석 선생님
의 영향이죠. 유 선생님이 다른 사람의 주석을 보긴 보셨는데, 의지하지는 않았죠. 당신이 독창
적으로 하셨죠.
박재순:: 다석 선생님은 일본에서 물리학을 하셨고, 천문학, 수학을 좋아하셨고, 서양 학문을 접
해서 과학이나 화학을 가르치셨다는데, 서양 학문에 대한 공부는 어느 정도 하셨을까요?
박영호:: 영어는 잘 못하셨어요. 영어에 약한 걸 그걸 아쉽게 생각하셨지요. 당신이 미션스쿨에
다니면서 일어를 알았기 때문에 빨리 서양 학문을 받을 수 있었죠. 춘원 선생님이 일본에서 중
학교 졸업하고, 오산학교에 톨스토이 전집을 가지고 왔다 그래요. 그때 톨스토이 전집을 읽어보
신 거죠. 20대 초에 톨스토이뿐 아니라, 읽을 수 있는 것은 일어를 통해서 거의 다 읽으셨어요.
그때만 해도 간디 책은 많이 번역이 안 됐을 때니까.
서양 철학자 중에서는 에크하르트를 좋아하시고, 김교신 선생하고 가깝게 지내면서 무교회에
서 칼라일을 워낙 좋아하니까, 칼라일의 『의상(衣裳)철학』도 읽으셨고. 철학도 뭐 읽으시긴 하
셨는데 워낙 당신이 신앙적인 사람이셔서 특정한 철학에 매이지는 않으셨지요. 헤겔의 정반합
이라는 거는 인류에게 공헌하는 소리다. 변증법 같은 거는 인정하셨지요. 그러나 그런 것은 당
신한테는 한 단계 아래잖아요. 그걸 우리한테 가르쳐 주려고 하지는 않으셨어요. 괴테도 인정하
시고 말씀하셨지요. 서양 사상에 대해서 전부 다 한 차례는 독서를 하셨는데, 당신 마음에 드는
거는 톨스토이하고 에크하르트하고 몇몇 영성에 뛰어난 분들이었어요. 교의신학에 갇힌 분들
은 그야말로 코드상 안 맞으니까 우리한테 언급을 하지 않았어요.
박재순:: 데카르트 글도 보셨을까요? 소개서가 아니라 직접 그 사람들의 책을 보셨나요?
박영호13 :: 그렇죠1
. 일본 책을 통해서 읽어보신 것 같아요. 6・25 때 책을 많이 잃어버렸잖아요. 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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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렸어도 많이 남아 있었는데, 거기서 대략 뭐를 읽으셨는지 짐작을 할 수 있죠. 거기에 그런
책들이 있어요. 일어를 하셨고, 영어는 좀 약하고, 에스페란토어는 잘 하시고, 중국말을 하셨죠.
김교신 선생님 모임에서 다 원어로 성서를 연구하기 때문에 희랍어도 조금 아시고 히브리어도
조금 아셨어요. 다석의 성경을 보면 희랍어로 된 문구가 나오고, 『다석일지』에도 많이 나와요.
우리말 성경을 많이 보시고 일어 성경도 보시고, 중국어 성경도 보셨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공동번역 나왔을 때도 선생님이 아주 연로하셨을 때인데 제일 먼저 가셔서 사가지고 오시더라
구요. 지금 성경에 잘못된 게 많으니까 옳게 번역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축소판 팔만대장경도
사다 놓으셨어요. 선생님은 될수록 우리말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한글, 우리말을 연구
하셨고 『천부경』이나 『삼일신고』를 많이 보셨지요.
박재순:: 일지에 보면 삼일철학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하시는데 혹시 선생님이 대종교와 가까이
하시거나 가까운 분이 계셨던가요?
박영호:: 대종교 총책임자였던 윤기복 선생은 만주로 피난 갔다 온 분인데 그분이 구기동에 찾
아오기도 하고 다석 선생님이 그분을 찾아가기도 하셨지요. 『천부경』, 『삼일신고』 같은 것도
윤기복 선생 쪽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천부경』은 우리말로 번역해서 『다석일지』에 실려 있
어요. 유승국 교수님은 다석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천부경』 풀이를 들었대요.
박재순:: 『천부경』을 풀이하면서 한보다 무에 초점을 두는 이들도 있습니다. 무에서 형이상학적
깊이를 본다는 거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한에서 시작해서 한으로 끝나는데, 그게 맞는 풀이 같
아요. 유무 이야기도 나오지만 결국은 한(하나님)으로 귀결된다. 그것이 『천부경』을 직역한 것
이면서 한(韓) 사상, 하나님 사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잘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유와 무보다 더
깊은 곳에 하나님이 있다.” “시작과 끝이 한이다.”
박영호:: 쉰두 살 때 유 선생님께 정신적 혁명이 일어나는데 완전히 자기 개체가 깨지고, 하나님
, 전체의식으로 의식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어요. 예수님도 “내 속에 하나님이 와서 말씀하시
는 것”이라고 하시잖아요. 하나님의 판단으로 판단하는 게 다 옳다고 하셨어요. 모든 걸 하나님
자리에서 생각하는 게 전체의 자리에서 생각하는 것이죠. 그렇게 사는 사람이 하나님 아들 아
니겠습니까? 그게 이루어진 게 쉰두 살 때였죠. 다석 선생님은 귀일(歸一), 하나로 돌아가자, 하
나님께로 돌아가자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노년에 빗자루질을 많이 하셨어요. 빗자루가 닳을 정
도로 청소를 하셨대요. 선생님은 깨끗을 말씀하셨지요. “끝까지 다 깨진 게 깨끗한 거다. 더럽다
는 것은 덜 없어져서 더러운 거다. 또 깨어서 끝내는 것이 깨끗한 거다.”라고 하셨어요. 우리말
을 살려내려고 애쓰셨지요.
박재순:: 말놀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말은 우리 무의식 깊은 곳에 박혀 있는 것이니까,
우리가 우리말을 수만 년 동안 써왔고 앞으로도 쓸 말인데 이 말을 다듬고 이 말에 새로운 의미
를 부여하면 민족이 새로워지는 거 아닙니까?
박영호:: 그럼요. 가장 친근한 게 말인데, 말에다가 의미를 부여해서 영향을 주는 게 얼마나 큽
니까? 한신대 채수일 선생님이 “신학을 독일어로 해야 되느냐? 우리말로 신학도 하고 철학도
하신 이가 다석 선생님이다.”라고 하셨어요.
박재순:: 강의하신 모습이나 강의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박영호:: 제가 농사짓다가 가면 나 한 사람 앉혀놓고 당신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씀하셨어요
. 당신은 점심을 안 드시지만 우리는 배가 고프잖아요. 그렇게 한 사람 앉혀놓고도 열강을 하시
고, 겨울에는 털 스웨터를 입으셨는데, 열강을 하시니까 더워서 벗어놓고 하시고, 어떤 때 신이
나면 당신 글에다가 가락을 붙여서 시조 읊듯이 설명하셨어요. ‘ㅣ’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당신
이 서서 “이~이~” 하시며 “이거는 세계적으로 공통어야. 이이 저이 하는 게 좋은 거지. 미스터니
김 상이니 하냐?”라고 하셨어요. 영어 ‘I’만 아니라 희랍어 이요타도, 중국어도 하나가 사람을 가
르킨다는 겁니다. 1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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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걸어오시니까 시간 늦으시는 법이 없어요. 낙상해서 하루 못 오실 때가 있었는데 기다
려도 안 오셔서 구기동에 찾아가니까 경황이 없어서 못 알렸다고 그러셔요. 다른 책은 아무것
도 안 가지고 오시는데 옛날 신구약 성경 하나만 천으로 만든 가방에 들고 다니니까 누가 사주
팔자 보냐고 하더래요. 그래서 “하나님 관상 본다.”고 하셨대요. 신구약 성경 하나만은 꼭 들고
오시고 다른 고전들은 노트에 쓴 것만 들고 오시지요.
다석 선생님은 함 선생님처럼 달변은 아니시지만 시적인 표현, 은유적인 표현을 잘하셨어요. 눈
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설명하려면 비유를 잘해야 하는데, 유 선생님은 나무에서 똑 따온 과일
같은 싱싱한 비유를 잘 하시죠. 말씀하시다가 한참 신이 나면 손짓 발짓으로 춤을 추셨어요. 보
통 음란한 춤은 하체를 많이 움직이잖아요. 선생님은 신이 나서 상체를 움직이시며 춤을 추셨
어요. “신앙 생활한다는 것은 기쁜 것이다.” 기쁨은 기를 느끼는 것이지요. 선생님은 기철학을
하시잖아요. 기쁨은 기를 뿜어내는 거지요. 배가 ‘고프다’, ‘슬프다’, ‘바쁘다’에서 ‘쁘다’는 느끼는
거예요. 성령이 뿜어져 나와야 되는 거지요. ‘인생이 만날 우울증에 걸려서 어떻게 사느냐, 기쁨
이 넘쳐야 신앙생활이지. 분열증 걸리고 우울증 걸리는 게 신앙인에게 있을 수 있느냐.’는 말입
니다. ‘기쁘다’에서 ‘쁘다’는 ‘느끼다’를 뜻하고, ‘기’라는 건 한자의 ‘氣’가 아닌 우리의 ‘기’라는 겁
니다. 그걸 성령으로 연결시켜서 기쁨이란 ‘그렇다, 옳다, 맞다’면서 성령을 느끼는 게 기쁨이라
는 겁니다. ‘인생이 기뻐야지 울상을 짓고 해서 되느냐 이거야. 신앙인은 당장 내일 죽는다 해도
기쁘다 이거야. 죽는 것처럼 기쁜 게 어디 있느냐.’ 이겁니다.
다석 선생님의 신앙생활에서 52세를 전후로 다른 것이 있어요. 「성서조선」에 다석 선생님이 3
8년 만에 믿음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쓰셨어요. 그전에는 지금 교회에서 말하듯이 육신의 예수
를 그대로 그리스도로 믿었는데, 52세 이후에는 예수님의 마음 가운데 온 하나님의 영이 그리
스도이지 예수님의 몸뚱이 그 자체, 마리아가 낳은 인간 자체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 예수님의 마음 가운데 온 영적인 생명인 하나님의 성령이 그리스도라는 겁니다. 다석 선생님
은 예수님도 영적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석 선생님은 2,000년 전 예수
나 석가한테 온 영원한 생명이 자신에게도 왔다고 하셔요. 그런 영적 체험을 한 것은 쉰 두살
때인 것 같아요. 그리고 영이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에 너, 나가 없다는 거예요. 영
으로는 예수 따로 있고, 석가 따로 있고, 유영모 따로 있고, 간디 따로 있고 그런 것이 아니고 영
적인 생명으로는 너, 나가 없기 때문에 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에 회통이 되는
데 그러나 교회에서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하니까, 교회하고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유승국
선생님에 따르면 다석 선생님은 유교에 대해 선생님이시고, 불교에 대해 선생님이시고, 기독교
에 대해 선생님이신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수나 석가나 공자, 맹자 중심으로 해서 그런 거지
현재의 기독교, 현재의 유교, 현재의 불교와는 안 맞는 거예요.
다석 선생님의 기조정신은 예수님의 속에 온 영이에요. 그것을 제일 잘 나타내고 실천해 보여
준 사람이 예수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은 나에게
신앙을, 하나님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 오직 한 분의 선생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
을 믿은 분인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하고 분별이 안 되지 않나요. 석가나 공자,
맹자 이런 분보다 더 분명하게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이야기한 것을 유 선생님은 굉장히
좋아하신 거예요. 결국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가르쳐주는 것이 종교거든요. 그 관계를,
가장 절대와 상대의 관계를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버지라는 거예요. 그것이 제
일 좋아서 예수님을 좋아하셨지요.
박재순:: 유 선생님이 예수님을 제일 좋아하고 가까이하신 것은 사실이지요.
박영호:: 그렇죠. 한 아버지 하나님을 우리한테 분명하게 가르쳐 준 분은 예수님이지요. 다른 분
들도 그것을 가르쳐줬는데 난삽한 데가 있어요. 예수님의 생애조차도 하나님 아버지한테 충성
하고 효도하는 것을 가장 잘 드러내셨어요 13 1
. 그래서 “나는 예수가 제일 좋다.”고 다석 선생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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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하게 말씀하세요.
박재순:: 혹시 유 선생님이 여성과 관련해서 특별히 하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빨래하고 청소하
는 여인네들이 한사귀족(閑士貴族)들의 속구주(贖救主)다.”라고 말씀하신 대목이 나옵니다. 여
성들이 더러움과 때를 씻어주는 구세주라고 하신 것을 보면 여성들에 대해 친애하는 마음이 있
으셨던 것 같은데, 혹시 남성보다 여성에 대한 특별한 시각 같은 것이 있으셨나요?
박영호:: 선생님은 좀 모순된다고 할까 이율배반적인 말씀을 하시는데 ‘기독교는 아버지종교’라
고 하셨어요. 말에서 ‘ㅏ’가 기본음이거든요. 영어의 ‘A’도 그렇고. 일본어도 ‘아이우에오’에서처
럼 ‘아’가 먼저 되고 애기들이 옹아리할 때 나는 소리도 아래아(ㆍ) 소리거든요. 유 선생님은 아
버지를 ‘아바디’라고 해요. 지금도 함경도에서는 아바디라고 하지요. 아바디에서 ‘아’는 모든 음
의 시작을 나타내고, ‘바’는 ‘밝아진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디’는 땅을 굳게 딛고 실천한다는 것
을 나타낸다고 풀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받아가지고 세상이 밝아지도록 그것을 디
디고 실천해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어–머니, 아–머니, 멀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필요 없다는 겁니다. 성숙한
사람은 어머니에게서 독립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성숙한 아들에게는 아버지 하나님만 있으
면 된다는 거지요. “우리가 오늘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는 것도 집에서 부인네들이 다 수고하기
때문이 아닌가. 여인네들에 대한 고마움을 알아야 된다.”고 늘 말씀하셨지요. 선생님이 레닌복,
노동복을 입으시기도 했고, 늘 간편한 옷을 입으셨는데 그 까닭은 여자들의 일손을 덜게 하려
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자기를 이기기 위해서 탈가족해야 된다는 거예요. 가족밖에 모르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셨지요.
또 국가주의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런 나라에 쫓아가서는 안 되고 하나님 나라를
쫓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국가 이기주의가 개인 이기주의보다 더 무서운 거거든요. 국가를 벗어
나 하나님 나라로 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국가 민주주의가 잘 되어야 하고, 가정도 유지
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지요. 가정이 다 깨져버리면 애들을 어떻게 키우느냐, 그리고
몸뚱이도 건강해야지 건강을 잃어버리면 이중으로 다치는 거라고 하셨어요. 이런 국가, 우리가
따라갈 필요가 없다, 그런 공무원 하지 말라 이거예요. 그러면서도 ‘이 우주가 얼마나 장엄하냐!
이 우주가 혼불 나는 거다.’ 하셨어요. 우주도 상대 세계를 초월해야 된다는 거예요. 상대적 우
주에 갇혀 있으면 감옥이라는 거예요. 다석 선생님 집 앞에 가면 지금은 현대빌라가 들어섰는
데 네모난 돌에 사람 인(人) 자를 써 놓았어요. 그것은 죄수 수(囚) 자거든요. 몸, 집, 국가, 우주
조차도 내 관이고 수의고 감옥이라는 것입니다. 다석 선생님은 몸, 가족, 국가, 우주를 늘 이중
적으로, 모순과 이율배반으로 보셨어요.
박재순:: 벗어나자고 할 때는 이 몸이 죄수복인데, 그러나 또 살자고 할 때는 이 몸이 굉장히 소
중한 존재가 되지요.
박영호:: 그렇죠.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해요. 몸이 병이 나버리면 이중으로 갇힌다는 겁니다
. 그러니까 몸 성해야 한다. 몸 성히, 맘 좋이, 뜻 태우를 말하셨어요.
박재순:: 어머니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어머니에 붙어 있는 나는 어린애이니까 독립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지요?
박영호:: 그렇죠. 상대세계를 멀리하고 절대세계로 가야 하는데, 아버지는 독립해서 절대세계로
나가는 것을 뜻하고, 어머니는 상대세계를 뜻하는데, 상대세계는 나를 키워주고, 나를 안고 있
는 어머니 탯집 같은 건데 이것을 벗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박재순:: 금욕을 강조하셨는데 다 금욕해서 애도 안 낳고 가정도 없어지는 것에 대한 말씀은 안
하셨나요?
박영호:: 선생님 말년에 함 선생님 스캔들이 있고 그때 인구폭발 된다는 이야기가 신문에 많이
나올 때여서 금욕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13 1
. 씨앗도 두루 흩어져서 나야 되는데 씨 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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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를 한 군데 쏟아 놓으면 다 죽는다는 거지요. 모든 짐승들도 스스로 수를 조절해서 인구폭발
로 자멸하는 일은 없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이것을 조절하지 못해서 자멸한다면 이
런 창피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셨지요. 될수록 결혼하지 말고 자식 낳지 말라고 하셨
어요. 옛날 같으면 이런 소리 하면 안 되는데 지금은 인구가 폭발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내 감
히 이런 소리 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생식하고 자식을 낳은 것은 영원한 생명을
버리는 것이니까 영원한 생명을 붙잡고 생식을 하지 말자고 하셨어요. 마하트마 간디도 정신적
인 아들인 제자를 길러야지 하나님의 나라를 번식시키는 거라고 했지요.
박재순:: 다석 선생님의 금욕사상을 젊은이들에게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성
적인 자유 속에 살아가니까 금욕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거든요.
박영호:: 다석 선생님도 ‘30대는 암만 가르쳐도 실천하기 어렵다. 40이 넘어야 그게 되더라.’고
하셨어요. 사람이 40-50이 되어야 철나는데, 그것도 30대에 아주 노력하는 사람이라야 40-50대
에 철이 나지 안 그러면 40-50대에 더 바람난다는 거요. 탐욕을 다스려 보시를 하고, 노여움을
다스려 자기를 이기고, 생식하고 자식 낳고 싶은 것을 참으라는 이야기요. 탐진치(貪瞋癡)를 다
스린 후에 정진하여 반야, 선정에 이르는데 그것은 절대자와 나와의 관계입니다. ‘에고’로서의
자아가 완전히 없어지고 절대 속에 내가 동화되는 것을 선정이라고 하고, 하나 되는 것, 귀일하
는 것, 개체의식이 완전히 소멸되고 전체의식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영적
인 생명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을 이야기하셨어요.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그래서 나는 ‘
예수님이 하나님이다.’라고 기독교에서 말하는데, 그게 아니고 영적인 생명으로 하나님이 주신
성령으로 내가 아버지와 하나 되는 거지 예수의 몸뚱이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와 나가 하나 되었다는 말씀이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말은 절대 아니라는 겁니
다.
박재순:: 마지막으로 다석 선생님과 관련해서 하실 말씀을 해주시죠.
박영호:: 다석 선생님이나 나는 비정통이기 때문에 교의신학자들을 인용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
습니다. 다석 선생님은 오직 예수의 참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하는
분들 가운데 나에게 욕할 사람이 많을 텐데 욕하는 사람이 한 분도 없고 오히려 몇 분은 찾아오
기도 하고 이제까지 예수밖에 몰랐는데 당신 책을 읽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다석 선생님은 교회 밖에서 나온 하나님의 큰 효자이다. 굉장히 고맙게 생각한다.”라
고 말하는 분도 계셔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는데 목회하는 분들은 교의신학을 따르기
때문에 다석의 책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김경재 교수님이나 정양모 교수님이나 심
일섭 교수님 이런 분들은 많이 이해해 주시고 당신네 글에 유영모라는 이름을 나타내셔요.
박재순:: 요새는 유영모 선생님의 말씀을 많이들 하세요.
박영호::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싶고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분들은 다석 사상을 참고하시
면 예수님을 바로 아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다석 선생님은 날 보고 찾아오지 말라
고 할 정도로 우리는 교단이나 조직을 만드는 데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다만 선생님의 사
상을 알고 싶은 사람은 성천 유달영 선생님이 세우신 성천문화재단에 사무실에 ‘다석 사상 연
구회’라고 간판을 붙여 놓았어요. 목회하시는 분들이나 스님들이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궤도 수
정을 하는 데 다석 사상이 참고가 된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대만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석 사
상을 공부해서 예수님의 본모습을 아는 데 참고로 하고, 앞으로 21세기 모든 종교가 회통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종교가 평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데, 앞으로
모든 종교를 회통해서 진일보한 자리에서 다석 사상을 공부한다면 잘 이해될 겁
니다.
예를 들어 불교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오늘날 불교에서 부처님이 신앙의 대상이 되어 있는데
부처님의 신앙은 불상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니르바나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13 1
. 적멸(寂滅)은 니
정연이네 집
10/7/2019 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기독교사상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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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바나를 의역한 것이고 열반은 음역한 것입니다. 절은 니르바나님을 모신 보배로운 궁전이라
서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같이 우상 배격한 사람 없어요. “부처님은 니르바
나라는 하나님을 믿은 분이다.”라고 발표를 했어요.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적멸보궁이라고 했
습니다. 앞으로 불교가 하나님 신앙에 가까워지고, 기독교가 예수님이 믿던 진짜 아버지 하나님
을 찾게 된다면, 그리고 톨스토이의 말대로 이슬람교를 기독교의 하나의 종파로 본다면 종교들
사이의 벽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높은 차원에서 종교는 정치인들을 가르쳐야 되는 거예요. 함 선생님이 다석 사상을 똑바로 지
켰다면, 함 선생님이 스캔들만 없었다면 함 선생님의 입을 거쳐서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질 않았을까 아쉽게 생각합니다. 현 정부의 정치인들이 어정쩡한 사상으로 지금 정치
하고 있는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부터 다석 사상을 한 번 읽으면 비전 있는 정치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선조 들어서면서도 유교를 기조정신으로 정치철학으로 하고, 고려시대에도 불교로
하듯이 민주정부도 기조정신이 있어야 되는데, 지금 386세대들은 젊을 때 민주화 운동할 때 좌
경 서적 봤을 텐데 그런 바탕으로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겠어요. 다석 사상 전집이라도 한 번
읽고 하면 올바른 정치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고, 오늘날 교회나 모든 종교의 분쟁도 다
석 사상에서 회통할 수 있는 21세기의 정치나 종교의 기조정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미국의 소로우가 물질적인 재산을 재산으로 생각하지 말고 정신적 재산의 총화가 진짜 우리의
국부라고 했습니다. 물질적인 GNP만 따지지 말고 정신적인 GNP를 따졌을 때 우리 다석 사상
의 무게가 우리의 국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유달영 선생님은 우리는 이제껏 사상을 수입만
했는데 예수님 사상도 수입했고, 부처님 사상도, 노장, 공자, 맹자도 수입만 했는데 이제는 다석
사상을 해외에 수출할 수 있는 사상이 아니냐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때가 한 번 왔으면 좋겠
어요. 외국과 국내에서 박사학위 받은 분이 여럿입니다. 석사학위 논문은 한 20여 편 나왔을 거
예요.
내가 다석 선생님을 호랑이를 고양이로 그리지 않느냐 하는 그런 생각을 할 때도 많은데, 선생
님의 생각을 크게 왜곡하거나 변질하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습니다. 교단에 계시는 교
수님들께서 많이 연구하셔서 종파의식에 갇혀 계시지 마시고 확 열린다면 한국 신학계가 확 달
라지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 한국에 신학 공부하러 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요. 진짜 Univ
ersity가 된다면 여기서는 불교 가르치고, 여기서는 유교 가르치고, 여기서는 예수님 가르치고.
그런 신학교가 생기지 않겠는가 꿈을 꾸는데 성천문화재단에서 그런 노력을 하고 있어요. 저도
70이 넘어서 바통 터치할 사람을 물색하려고 하는데 젊은 분들이 나타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
아요.



 ( ‘기독교사상’ 2018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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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의 성령론



요한복음의 성령론


요한복음의 성령론
류기종 | rkchg@hanmail.net
입력 : 2010년 08월 15일 (일) 



신구약 성서를 통하여 성령에 대한 언급이 많이 있지만, 특히 성령이 어떠한 영인가에 대한 언급은 요한복음(14장,15장, 16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외에 는 거이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아마도 성령을 정확히 정의내릴 수 있는 분은 바로 성령과 같은 본질이신 예수님 자신 외에는 없기 때문일 것으로 사료된다. 그런데 이 사실은 우리가 성령을 바로 이해하는데 있어서와 또한 그에 관련된 다른 진리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을 바로 이해하는 일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바로 이해하고 또한 새롭게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계기와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성령을 바로 이해하면, 삼위일체의 신비 곧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본질과 그들의 하나됨(통일성) 그리고 그 각각의 역할의 의미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기독교 신앙의 진수를 한층 더 깊고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의 기본 진리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음으로 성령에 관해서 요한복음에 어떻게 말씀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요14:16,17,2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 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보혜사 곧 어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위의 말씀들에서 예수님이 정의내리신 성령은 어떤 영인가 살펴보자:
(1)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
(2)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나오는 영이시다.
(3) 성령은 예수님이 자기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영이시다.
(4) 성령은 예수님과 더불어 또 하나의/다른 보혜사(위로자)로서 성도들을 깨우치고 인도하고 돕는 영이시다.
(5) 성령은 영원토록 성도들과 함께 계시는 영잉이시다.
(6)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에 이 세상 사람들은 받지도 보지도 알지도 못한다.
(7) 성령은 모든 깊은 진리들을 가르치시(알게 하시)고, 특히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복음/진리의 내용들을 생각나게(기억하게) 하신다..
(8) 성령은 스스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과 예수깨로부터) 들은 바를 말하며 장래 일을 알게 하신다.
(9) 성령은 진리이신 예수에 대해서 증거하며, 바로 알게 한다.
(10) 성령은 성도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위의 말씀들에서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성령은 근본적으로 진리이신 하나남께로부터 나오는 영으로서, 성령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인 "진리"미며, 따라서 성령은 곧 "진리의 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진리의 영" 으로서의 성령은 성도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영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성령은 근원적으로 진리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오시는 영으로서, 그 본질은 바로 "진리"(Truth) 곧 "진리의 영"(the Spirit of Truth)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진리의 영으로서의 성령은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과 또한 그의 아들이시며 동시에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바로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한다. 또한 이 진리의 영인 성령은 성도들로 하여금 모든 깊은 영적 지리들을 깨달아 알게 하며, 동시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곧 진리의 삶을 살게 하시는 보혜사 곧 영적 도우미(진리의 도우미)란 점이다.

즉 위의 요한복음의 말씀들에서 볼 수 있는, 예수님의 성령관에 따르면, 성령은 우리 인간의 "진리 인식"(knowing the Truth)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은 바로 우리 인간들/성도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복음의 진수를 정확히 그리고 깊이/온전히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가장 귀중한 은혜의 수단이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성령은 곧 "초월적 지혜의 영"(Spirit of Transcending Wisdom)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 성령은 우리 성도들로 하여금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꼭 알아야 할 진리들, 특히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영적 진리들을 올바로 깨닫게 하며 알게 하시는 영적 교사 및 인도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깊은 내용들이 바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16:13)>란 말씀 속에 함축되어 있다. 요컨데 예수님의 성령관에 따르면, 성령은 바로 우리 인간/그리스도인의 진리 인식 곧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최상의 은혜의 선물이며 수단으로서, 진리 인식의 최상의/궁극적인 도우미 임을 알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님의 성령관 즉 그의 성령 이해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은사적 성령관과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성령의 신비 즉 신비지극하신 하나님에 대해서와 또한 그의 오묘한 구원 계획들을 깨달아 알게 하시는 성령의 역할에 대한 이치를 깊이 간파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전2:9-12)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 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위의 말씀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성령관의 핵심도 바로 진리 인식에 초점이 마추어져 있음을 알수 있다. 즉 성령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내려주시는 그의 은혜의 가장 귀중한 수단으로서, 신비 지극하신 하나님과 그의 창조와 구원 계획과 같은 깊은 진리들을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진리 인식>의 최고의 수단이란 점이다. 그런 점에서 사도 바울의 성령관은 위에서 본 예수님의 성령관과 근본적으로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유영모·함석헌 ‘씨알철학’ 본격 조명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유영모·함석헌 ‘씨알철학’ 본격 조명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유영모·함석헌 ‘씨알철학’ 본격 조명
등록 :2008-02-28 21:43


유영모(1890~1981·왼쪽), 함석헌(1901~1989·오른쪽)
올해 사유탐색 행사 잇따라
7월 세계철학대회 특별세션
5월 ‘사상포럼’ 만들어 첫 대회



나를 ‘하나님’으로 보는 주체적 인간관은 민초들을 역사의 주인으로 끌어올리는 씨알사상을 낳았다. 다석 유영모(1890~1981)가 이 사상의 모태라면 신천 함석헌(1901~1989)은 이 사상을 널리 알렸다. 함석헌의 스승인 다석은 특권적인 양반사상이 나라를 망쳤다고 보고 씨알(민중)을 주체로 세우고 섬기는 사상을 제시했다. 함석헌은 씨알을 역사와 우주의 중심과 주체로 세우면서 씨알의 철학운동을 펼쳤다.

동양과 서양 사상의 접합을 통해 민의 존귀함을 깨우치려 했던 두 한국 사상가의 사유에 대한 조명이 올해 본격화된다. 올해는 특히 두 사상가의 사유를 한데 묶어 탐색하는 행사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지난 10월 다석재단과 씨알사상연구소의 회원들이 씨알재단을 함께 꾸린 탓도 크다.

가장 관심이 가는 행사는 오는 7월 30일에서 8월 5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철학대회다. 둘의 사상이 ‘철학의 올림픽’이라는 이 대회의 특별세션에서 다뤄진다. 이는 한국 현대 철학의 계보 속에 두 사람의 사유가 당당하게 자리잡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 소장은 이 세션에서 20여 명의 연구자들이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 소장을 포함해 ‘우리말로 철학하기’를 강조해 온 이기상 한국외국어대 교수, ‘함석헌의 바울’이 되겠다는 김상봉 전남대 교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김해암 코넬대 교수, 김경재 한신대 명예 교수, 서유석 호원대 교수 등이 발표자로 나선다.

박 소장은 “세계 근현대사를 살필 때 동·서양의 정신이 창조적으로 만난 경우가 한국을 제외하고는 매우 드물다”면서 유영모와 함석헌은 이런 만남에서 가장 주목할 필요가 있는 사상가라고 밝혔다. 유영모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유·불·도를 회통하는 한국적이고 세계적인 사상을 형성했으며 함석헌은 기독교와 민족 정신의 참된 만남을 고민했으며 또한 민주화라는 시대 정신을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것이다.

이기상 교수는 “유영모와 함석헌은 최수운 한용운과 같이 우리 문제를 가지고 고민한 사상가이면서 우리말로 사유한 철학자”라고 두 사람 철학의 의미를 풀었다. 다석은 자작시 3천수 가운데 1700수를 우리말로 지었고 함석헌은 자신의 사유를 민중들에게 어떻게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지 고심했다고 했다.

씨알재단은 오는 5월에는 두 사상가를 연구하는 학자와 생명평화단체 중심으로 ‘씨알사상포럼’을 만들어 첫 행사를 열기로 했다. 공공성의 철학을 추구해온 일본 교토 철학 포럼의 대표인 김태창 박사가 ‘공공성의 철학적 토대와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주제로 발표하기로 했다.

다음달 11일에는 종교계와 생명평화운동 활동가 등이 참여하는 씨알생명평화 문화제를 연다. 7월에는 씨알사상에 관심있는 국내외 학자들이 참여하는 생명평화축제를 열어 두 사람의 사상을 톨스토이, 간디 등의 생명평화철학과 견줘 살필 계획이다. (02)2279-5157.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72691.html#csidx330f5c3574d5844b2c5b97124b3d025

류기종. 예수의 종교(Religion of Jesus)





예수의 종교(Religion of Jesus) - 당당뉴스





예수의 종교(Religion of Jesus)
류기종 | rkchg@hanmail.net





입력 : 2010년 03월 30일 (

현재의 기독교는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당시의 한 랍비(스승) 예수 그리스도가 설파한 가르침을 많은 시대를 걸치면서 지역의 특성과 교회 종단들의 다수의 의견(교리)들과 강조점에 따라서, 로마와 서유럽을 중심한 가톨릭교회 즉 서방교회와 그리스와 러시아 및 동유럽을 중심한 동방교회(희랍정교회),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Anglican Church) 그리고 16세기 이후에 등장한 개신교회(The Reformation/Protestant Church)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처음 설파한 종교는 어떠한 종교였는가? 즉 기독교의 원형은 무엇이었는가? 이러한 질문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한 마을처럼 좁아진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가 사분오열로 나뉘어져 있어서 사람들에게 어떤 교회가 참 기독교인지 즉 이상의 네 교회 중 어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복음에 가장 가까운(일치하는) 교회인지 의문을 일으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핵심 곧 복음의 본질적 내용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필자는 성경 특히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들을 지난 이천년에 걸쳐서 가장 깊이 사색하고 묵상(체험)한 영적 큰 스승들의 통찰과 이해에 의거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에는 20세기의 통섭의 사상가 화이트헤드의 통찰도 포함된다.

(1) 예수의 종교는 한 마디로 "우주적 종교"(a cosmic religion)이다.
예수는 “새 술은 새 부대에”란 표현과 같이, 당시의 종교인 유대교나 다른 어떠한 기성 종교들과 구별되는 전적으로 새로운 종교를 지향했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아주 새로운 하나님 이해 즉 만인 만유의 창조주 "아바 아버지" 신관에 기초하고 있다. 즉 온 우주 만물과 만인이 바로 한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사랑과 보호의 대상이란 사실이 예수의 신관이고 우주관이고 인간(인류)관의 핵심이다. 여기에는 인종과 지역과 문화와 종교의 구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의 하나님은 모든 존재/생명의 근원이고 또한 사랑 자체이시므로 모든 사람(존재)들을 차별 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예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수가성의 여인과의 대화"에서 잘 깨달을 수 있다.

예수의 이같은 인종과 종교의 구별까지를 초월하는 우주적 신관과 종교관을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도 한 분 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6). 이 말씀에 따르면 만유의 창조주 하나님은 이 우주만물과 모든 현상들에 대해서 내재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런 고로 만유의 창조주 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피조물과 세계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특히 나와 종교가 다른 타종교(인)들에 대해서까지도 지극히 관대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이 지구상의 모든 현상들이 한 하나님의 장중에 곧 한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의 종교(복음)의 핵심은 우주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 즉 올바른 신관의 정립에 집중되어 있다고 말 할 수 있다.(Whitehead).

(2) 예수의 종교는 근본적으로 "영성적 종교"(spiritual religion)이다.
예수의 종교는 이 세상의 모든 귀중한 가치들을 존중하지만 특히 영성적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영성적 종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종교에 있어서 의례주의(ritualism)나 문자주의를 배격했으며 영성적 의미와 가치를 존중하였다. 따라서 의식/형식과 제도와 교리와 전통 등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은 영시시므로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한다”고 말씀하셨고, “사람이 영적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Origen/Gregory of Nyssa)

(3) 예수의 종교는 영적 지혜(spiritual wisdom)를 통한 “깨달음의 종교”이다.
예수는 우리 인간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신비 지극한 하나님의 실재 즉 천지만물의 창조주(근원)이신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일”이라고 보셨다. 그래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진리는 모든 존재의 근원 즉 궁극적 실재며 또한 궁극적 진리인 하나님을 지칭한다. 그러면 이 궁극적 진리를 알 수 있는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 가? 바로 지혜와 지식의 근원인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통해서 이다. 고로 믿음은 참 지혜를 얻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믿음과 지혜는 분리된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알기 위해서 믿어야하며, (더 깊이/확실하게) 믿기 위해서 알아야하는 공식이 성립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점을 일찍이 우리 인류에게 알려주신 것이다.(Augustine)

(4) 예수가 알려준 성령은 신의 본성인 진리와 사랑과 지혜의 영으로서, 인간의 내면적 정화 곧 영적인 갱생(변화)과 성장의 신비한 인자(agent) 혹은 힘(divine energy)이며 또한 올바른 삶(right living)의 안내자임과 동시에 진리 인식의 가장 중요한 매개체이다. 그런 점에서 성령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초월적(영적) 지혜 곧 “그노시스”(gnosis)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그노시스”는 신의 본성인 아가패 사랑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깊은 사랑이 없이는 참된 지식(앎과 깨달음)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의 복음(종교)의 핵심인 이 아카패 사랑은 참 지혜(그노시스)의 근원적 능력과 요소 일 뿐 아니라 또한 지구상의 모든 인종과 문화(사상)와 종교 등 모든 대립관계를 극복시키는 궁극적인 화해와 통합과 조화의 원리로서, 전 인류와 모든 피조물을 한 몸의 지체로 통합시킨다.(엡1:10, Chardin)

(5) 이 세계와 우주는 진.선.미.애의 근원인 신의 자기표현의 일환인 (신의) 창조세계로서,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선하고 가치있는 세계이므로, 산천초목 하나까지도 지극히 소중히 여기고 돌보며 사랑해야 하며, 그들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어 전 인류가 함께 절제된 질서 안에서 축복돤 삶을 살아야 한다.(Eckhart, Maximus)

(6)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며 전인류가 형제로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타인이나 다른 피조물들에게 고통을 주는 악을 피하고 선을 지향해야 하며, 인류의 모든 억압과 속박과 무지와 죄악(거짓과 불의와 탐욕)으로부터의 해방 곧 온전한 자유와 평화실현을 위해 모두가(종파나 종교의 벽을 넘어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

(7) 구원은 어느 특정 종파 혹은 교파나 신념(교리) 이나 또한 인간의 공적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조건없이 용서(사랑)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신의 은총에 의해서 주어지며, 따라서 종교적 의례행위와 같은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 즉 인간의 삶과 존재의 가치(value/integrity)가 더 중요시 된다. (참조, 마7:21-23; 25:31-46). 고로 우리 인간은 자신의 존재의 가치 창조와 증진 및 완성에 더 관심해야 한다.

(8) 인간의 삶과 현상 세계는 유한하여 한계/종말을 안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겸손해야 하며, 현상세계 너머의 영원한 삶(세계)을 위한 준비과정 즉 각자의 인격 완성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항상 준비된(깨어있는) 삶 곧 선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

(9)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에게 신의 뜻을 가장 온전하게 전해준 계시자이며 동시에 참 스승이며 전인류의 이상(ideal)인 궁극적 평화의 실현과 구원의 "길(자기부정과 사랑의 극치인 십자가의 도)"을 알려준 구원자이다. 예수가 알려준 신의 뜻은 이 세상의 모든 분쟁과 싸움들을 종식시키고 모든 창조세계와 온 인류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참 평화를 누리는 일이다.

이 상에서 본 예수의 종교의 중심 가르침(사상)에 따르면 기독교(예수의 복음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제일과제는 전지구상 인류의 평화실현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기독교는 예수의 종교(복음)의 "우주성"(cosmic feature)을 바로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유대교와 이슬람교와 함께 이에 대해 역행해온 감이 없지 않다. 따라서 오늘의 신학의 제일 과제는 예수의 복음을 올바로 해석하여 재정립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바로 “과정신학”과 “영성신학”이이라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이들 두 신학이 이에 대한 대안(복음의 우주성에 대한 이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의 교회는 이들 두 신학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리라고 사료된다



▲ 류기종 목사


[ 약력 ]

- 충남 논산 출생
- 연세대학교 신학과 졸업
-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학석사
- 미국 두루대(Drew University)대학원에서 종교철학/조직신학으로 철학박사 취득
- 연세대, 동연합신학대학원, 호서대, 강남대, 서울신대 강사
- 목원대학교 신학과 교수
- 협성대학교 신학과 교수
- 미주감리교신학대학 교수 및 총장
- 조직신학, 영성신학, 기독교와 동양사상 등 강의
- 청원, 녹번, 이쿠넝, 유니온, 예담 교회에서 목회
- 현, 평화영성신학연구원 원장 및 교수

[ 주요 논문 및 저서 ]

- 논문 -
현대기독교 인식론 서설
성버나드의 신비주의와 이용도
Christianity Meets Eastern Philosophy
Tillich의 신(神)과 Nagarjuna의 무(無)
오리겐(Origen)의 신비주의 영성
마이스터 에크할트의 영성신학
화이트헤드의 종교관과 신관
한(韓) 사상과 기독교

- 저서 -
예수영성 시리즈 1(팔복), 2(주기도), 3(영성원리). (kmc 출판국, 2008)
영성에로의 초청 : 예수 영성 바로 알기(평화 영성신학 연구원, 2006)
기독교와 동양사상(황소와 소나무, 2003)
대화의 신학(은성, 2000)
기독교 영성: 영성신학의 재발견(열림, 1994; 은성, 1997)
과정철학과 과정신학(전망사, 1988, 공저)
Dialogue Between Christianity and Buddhism(Kyung Suh Won, 1986)

- 번역서 -
화이트헤드의 <종교론>(종로서적, 1986)
존 캅의 <과정신학>(열림, 1993; 황소와 소나무, 2003)
화이트헤드의 <종교와 신과 세계>(황소와 소나무,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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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한국신학 소고(溯考): 한국신학의 과거, 현재, 미래



의견나누기(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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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지킴이 (68.238.235.197)

2010-05-30 02:31:34




종교라는 말 부터 바꾸고 목사라는 직함을 써야 할것이다
목사라는 것들이 개신교를 종교라고 표현 한다면 교회의 기초인
예수그리스도를 다른 종교자들이 우상 숭배하는 모든 신과 같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인데 그러면 부디 교회에 나오라고 할 명분이 무엇인가? 아무거나 밑게 내 버려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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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


이승현 (61.255.180.249)

2010-05-04 00:26:47



쓰레기 2

(111.XXX.XXX.96)
2010-05-04 00:22:43

아버지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절 데려 가십시오.

(111.XXX.XXX.96)
2010-05-04 00:18:02

하나님 보십시오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인간을 기만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도 이렇게 배신 당하셨습니까.
너무 아픕니다.
그냥 저를 아버지께로 데려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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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아이피로 아이디만 바꿔서 글 달아 놓고서는 몇개는 지우고, 새로운 글로 도배하고........저러한 것이 당당뉴스 운영자가 바라던 것이겠지.
얼마전에 보니 익명성을 추구하겠다고 했던데 다 이런 뜻이 있었던 것인가?

리플달기 ▼
0 2














이승현 (61.255.180.249)

2010-05-04 00:24:54



쓰레기들...
앗싸라비아
(111.XXX.XXX.96)
2010-05-03 20:14:30

왜 그만두냐면
당신이 자유라고 해도
하나님이 갚아주실 것이라 그만두요.
내가 그만 둔다니 자유요.
사람을 두려워하오.
경고하는데
내 주위에서 떨어지시오. 스토커짓 하지말고. 가르치려 들지말고.
자유면 독립 좀 하시오. 제발
징글 징글하오.
꺼지삼
(111.XXX.XXX.96)
2010-05-03 20:00:01

왜 그만두냐면
인간 쓰레기 같은 먹사놈에게 상처 받았다 할려니 내 자존심이 상해서 그만두요.
율법, 권위주의, 형식은 당신의 대명사요.
사기꾼 저질 목사 같으니라구
참고로 꺼지삼은 목사가 성도에게 한 말입니다.
구역질
(111.XXX.XXX.96)
2010-05-01 18:31:54

인터넷으로
양심선언이라도 할 참이니 그 입 닫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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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 (211.106.155.40)

2010-05-01 17:57:38



이승현님 참 불쌍합니다.
이런 분들이 계시기에 그리스도가 단지 한국의 작은 종파의 구세주로 전락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 아집과 독선에 사로 잡혀서 살아가시니 불쌍합니다. 스스로 종파를 하나만드시지요. 신학이 필요없는 영해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종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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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84.101.163.247)

2010-04-01 23:02:30



이승현님의 댓글을 읽으니
성경문자주의를 대표하는 글 이라 여겨지는 군요.

댓글 서두에 하신 말처럼
신학이 필요 없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그냥 성경을 달달 외우시고 말씀하시면 된다는 생각이신데...

그러한 생각은 좋은데...결국 그것은
글 이든 말씀이든 이면의 뜻은 자기가 만드는 독선적인 생각으로 가득차게 되지요.

공부를 왜 할까요? 대 학은 왜 갈까요?
신학은 왜 하지요? 아집적인 자기가 만든영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그러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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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124.61.90.182)

2010-03-31 16:37:03



글쎄요
이승현 님은 신학으로 인해서 성경의 해석이 오히려 더 힘들다고 하신 모양인데

제 경험상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반지성적인 신앙을 가지면서
오로지 영빨(?)로 성경을 해석하려 하더이다.
히브리어, 헬라어에 정통해서
고대 사본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거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고.

나중에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였는데도 서로 안 맞아서 싸우고. 허허

성경에는 '인터넷'이란 단어도 없고 'mp3 플레이어'란 단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터넷이나 mp3 플레이어 안 쓰실 겁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에는 '우주적 종교'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이
글쓴이의 논증을 반박할 충분한 근거라고 보시는 것도
님이 신학을 거부함으로 말미암은 불상사라고 볼 수 있죠.

뭐 굳이 말리진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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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211.206.245.40)

2010-03-31 00:33:12



차라리 신학을 하지 않았다면....
성경적으로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상당히 어렵게 글을 쓰셨네요.
게다가 핵심내용은 다 빠졌습니다.
본래 학자라는 사람들의 특징이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자신의 유식함을 드러내기 위해 어려운 말투로 어렵게 풀이하곤 하죠.
신학을 배우고 공부하면 할 수록 예수 보다도 신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되죠.
어느새 예수는 사라지고 신만 남게 됩니다.
그러한 신학이라면 차라리 배우지 않는게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1) 예수의 종교는 한 마디로 "우주적 종교"(a cosmic religion)이다.

--> 성경에는 우주적 종교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학자들이 자신의 유식함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내는 단어에 불과하죠.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예수는 창세기 1장 1절에 등장하는 태초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하시는 분 입니다.
예수가 창조주입니다.

본문중에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 즉 올바른 신관의 정립"에 대한 해답은 "예수가 창조주"라는 것입니다.
길고 어렵게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2) 예수의 종교는 근본적으로 "영성적 종교"(spiritual religion)이다.

--> 본문중에 "예수는 종교에 있어서 의례주의(ritualism)나 문자주의를 배격했으며 영성적 의미와 가치를 존중하였다." 문자로 이스라엘민족에게 준 율법에 대해 예수님은 "일점, 일획 이라도 없어지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죠.

"영성적 종교"라는 문장은 틀린 말 입니다.
"영성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이십니다.
그 분의 말씀이 영이시고,
예수님의 육체도 영이십니다.
복음서에 예수님은 성령으로 기뻐하시고, 성령으로 슬퍼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예수의 종교는 영적 지혜(spiritual wisdom)를 통한 “깨달음의 종교”이다.

-->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어렵게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진리=예수"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은 예수가 없이는 자유로울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도 없는 "영적지혜"라는 말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지혜는 하나님의 것인데,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속사정을 알게 해 주며, 예수를 중보 하시며, 예수가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영적지혜"라는 듣보잡 단어를 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수도 없이 강조 하신 "성령을 받아라"를 말씀하셔야 합니다.



(4) 지구상의 모든 인종과 문화(사상)와 종교 등 모든 대립관계를 극복시키는 궁극적인 화해와 통합과 조화의 원리로서, 전 인류와 모든 피조물을 한 몸의 지체로 통합시킨다.(엡1:10, Chardin)

--> 예수님이 "누가 내 형제며, 자매냐?"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중에 "지구상의 모든 인종과 문화(사상)와 종교 등 모든 대립관계를 극복시키는 궁극적인 화해와 통합과 조화의 원리"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마치 범신론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도 나와 있지 않은 말 할 필요 없습니다.
저런 단어와 저런 주장은 인간의 귀를 간지럽히게 하는 선동적 주장에 불과 합니다.
성경적으로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됩니다.
"예수가 아니고서는 누구든지 천국에 갈자가 없느니라"
지구상에 있는 모든 종교와 기독교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와 같은 사회에서는 통합이 아니라 그냥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 밖에 못 합니다.

오늘날 이슬람교나 불교와 통합하기 보다는 2천년전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통합하는게 더 쉬웠을지도 모르겠죠.



(5) 이 세계와 우주는 진.선.미.애의 근원인 신의 자기표현의 일환인 (신의) 창조세계로서,

--> 제발 좀 성경에 없는 말은 하지 맙시다.
보다 더 근본적으로 성경을 왜곡시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지만 인간을 제외한 세상 모든 만물과 물질과 짐승들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모든 만물 중에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의 모양대로 지으셨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과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다시 복음서로 돌아와서 예수님은 천지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천지는 없어진다."



(6) 자유와 평화실현을 위해 모두가(종파나 종교의 벽을 넘어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

--> 인간적으로 볼 때 참으로 듣기 좋은 말 입니다.
자유와 평화라는 단어에서도 두가지 뜻이 있습니다.
마귀도 자유와 평화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모든 종교와 인종과 문화와 가난한 자나 부자나 차별없이 자유와 평화를 누리자고 마귀는 끊임없이 이간질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이, 사회가, 국가가, 국제사회가 목표로 해야 할 최고의 가치관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기에 있는 자유와 평화 속에 예수가 있고 구원이 있다면 저도 전적으로 동의할 것입니다.



(7) 구원은 어느 특정 종파 혹은 교파나 신념(교리) 이나 또한 인간의 공적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조건없이 용서(사랑)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신의 은총에 의해서 주어지며

--> 하나님이 아무 조건없이 용서 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데 어떤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던가요?
가장 핵심적인 것이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입니다.
아무에게나 은혜를 베푸시고 병을 고쳐주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살려고 예수 앞에 나오는 자들에게만 은혜를 베푸십니다.

본문중에 "인간의 삶과 존재의 가치(value/integrity)가 더 중요시 된다."고 나와 있는데 인용하신 마태복음 7장 21절에는 그러한 말씀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베드로의 고백처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참고로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작은 자"에 대해 오해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하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7: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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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종 목사.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1-7) - Rudolf Otto, Whitehead, 틸리히, Suzuki, 머턴, 류영모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7) - 류영모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6)-토마스 머턴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5) - D. T, Suzuki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4) -폴 틸리히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3) - A. N. Whitehead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2) - Rudolf Otto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1) - 
기독교와 불교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1)<기독교와 불교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류기종 | rkchg@hanmail.net

입력 : 2010년 04월 28일 (수) 17:59:29
최종편집 : 2010년 05월 04일 (화) 13:42:15 [조회수 : 6492]


* 류기종 목사가 발표한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6편을 소개한다. 성경, 특히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들을 지난 이천년에 걸쳐서 가장 깊이 사색하고 묵상(체험)한 영적 큰 스승들의 통찰과 이해에 의거해서 살핀 글이다. Rudolf Otto, A. N. Whitehead, Paul Tillich, D. T, Suzuki , Thomas Merton, 다석 류영모를 조명한다.


<기독교와 불교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1. 한국 사회의 종교적 상황과 특수성
한국 사회는 종교사적으로 볼 때, 매우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찍부터 동양의 삼대 종교 즉 불교 도교 유교가 들어와 한국인의 심성을 지배했을뿐 아니라, 한국의 고유문화를 창조했으며, 특히 불교와 유교는 한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유교와 불교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가까운 이웃 나라인 중국을 통해서 유입되기 시작했으나, 특별히 불교가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삼국시대부터 였으며, 통일 실라 시대를 거처 고려시대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15세기에 이르러 고려조의 붕괴와 함께 이씨 왕조의 등장으로 한국 사회는 불교의 영향이 뒤로 밀려나고 유교가 전 사회의 지배적 종교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한국의 근대사회는 유교중심의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에 서구문화가 동양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가 중국을 경유하여 한국 사회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18세기에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리고 19세기에는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와, 불과 1, 2백년 동안에, 기독교가 한국의 주요 종교 중의 하나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20세기 이후에는 불교와 함께 한국사회의 2대 종교로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인구통계에 따르면, 21세기에 들어선 오늘의 한국인의 종교인 분포 중 가장 특이한 점은 지구상의 여러 종교들 가운데 가장 심오한 종교 사상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동서양에 걸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쳐온 두 종교 즉 불교와 기독교가 대등한 분포의 종교로 자리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불교인 수와 기독교인(신 구교 합한)의 수가 각각 일천만 명에서 천오백만 명 선에 달하고 있다. 이 둘을 합하면 2천5백만 에서 3천만 명으로 한국인 전체인구의 과반 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아마도 이 지구상에서 기독교인과 불교도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또한 두 종교인의 수가 천만 명을 넘어서 대등한 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외에 어느 나라에도 없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종교사적으로나 인류 문화사적으로 매주 주요한 사실로 보여진다. 이 사실은 다른 말로 하면, 한국인의 두 사람 중 하나는 기독교인이거나 불교도란 사실을 의미하며, 따라서 한국인들은 길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즉 사회 전 분야에서 두 종교인들 즉 불교도들과 기독교인들은 수시로 만나고 관계를 가지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기독교인들과 불교들은 이렇게 매일 만나고 관계를 가지고 살고 있음에도 불고하고, 그들 사이에는 종교라는 벽이 가로 놓여있어서 그들 사이에 깊은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점이 오늘의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임과 동시에 이것이 오늘의 한국의 사회적 갈등의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들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요인들을 간추리면 (1)빈부의 갈등 즉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와의 갈등, (2)출신 지역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 그리고 (3)정치 이념적 갈등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모든 사회적 갈등의 가장 저변에 깔려 있는 요인은 바로 다름 아닌 종교적 신념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 즉 종교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종교적 신념이 우리 인간 생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사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예로, 불교인 시어머니와 기독교인 며느리, 기독교인 직장 상사와 불교인 하급 직원, 불교인 선생과 기독교인 학생, 그리고 한 직장 안에서 종교가 다른 개인 혹은 구릅 간의 불편한 관계 등을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는 한 사회 안에서의 종교적 신념의 차이에서 오는 사람들 간의 이러한 간격과 갈등들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가 오늘의 우리 한국 사회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회적 갈등의 중요 원인이 되는 종교인들 간의 대립과 갈등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대화의 채널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고 있으며, 특히 한국 사회 전체 인구의 과반을 차지하는 불교인들과 기독교인들 사이의 대화의 채널이나 소통의 길이 꽉 막혀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들 두 종교는 그들 두 종교 구성원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의 보수적 성향으로 인하여, 매우 배타적 성향을 띠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자기 밖의 다른 종교에 대해서 적대적 태도마저 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종교적 신념의 차이에서 오는 사회적 갈등과 대립들을 다른 문화권에서도 흔이 보게 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종교적 신념의 차이에서 오는 충돌로 인해서 집단적 분쟁 즉 전쟁이나 종족 살육과 같은 극단적 행위들까지 일어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런 행위들은 특히 종교적 신념의 대립이 종족이나 민족적 대립과 결부되었을 때 더욱 격열해 지며 때로는 참혹한 결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한국은 고래로 세계의 큰 종교들 즉 불교 유교 도교 그리고 근대에 들어와서 기독교 그리고 또한 한국의 고유 종교들인 천도교 증산교 원불교 등이 함께 어울려 있으면서도, 종교적 신념들로 인한 극열한 대립이나 집단적 투쟁 같은 것이 없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특히 현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가량을 점유하는 기독교인들과 불교인들 간의 내면적 갈등과 정신적 관계의 단절의 심각성이다. 즉 한 사회 안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 간에 종교적 신념의 차이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깊은 골 즉 간격이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우리 한국 사회 안에 잠재해 있는 보이지 않는 불행한 요소이며 또한 정신적 고통의 요인인 것이다. 특히 불교와 기독교의 경우 한 가족 공동체 안에서 종교가 다름으로 인해서 더없이 아름답고 행복해야 할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그로 인해서 가족 구성원들이 정신적 고통과 불행을 겪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종교인들 간의 갈등 특히 불교인들과 기독교인들 간의 종교적 신념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 대화의 통로가 닫혀 있으며, 그로 인해서 두 종교 간에 상호 이해의 길이 막혀있으므로 해서 상대방의 종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의 선입견에 의한 지극히 피상적 이해에 머물러 있거나 아니면 자신의 종교에 대해 무조건 적대적 종교로 이해하고 있는데 기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기독교인들은 불교를 전적으로 무신론 종교로 알고 있으며 따라서 불교는 기독교와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종교로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불교는 기독교를 인간의 감정을 지닌 신을 믿는 유치한 유신론 신관의 종교로 아니면 기복적 신앙의 종교로 곡해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이런 현상들은 두 종교 간에 상호이해의 기회나 대화의 통로가 전적으로 막혀 있는 데서 오는 필연적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가 기독교와 불교 간의 대화에 관심을 갖게 된 직접적 동기는 필자가 1970년대 중반에 미국 뉴저지 주에 있는 두루 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철학 과목을 공부하는 중에 대승불교의 창시자이며 동시에 이론 체계 수립자인 1세기 말의 인도의 대 사상가(철학자)인 나가주나(Nagarjuna, 한국명, 용수)의 “무”(無, Emptiness) 사상을 접하고서 이다. 담당 교수로가 필자에게 한 책을 주면서 그 책의 내용을 발표하라는 것이었다. 그 때 필자가 받은 책은 미국의 저명한 종교철학자 프레드릭 스트랭(Frederick Streng)이 풀이한 나가주나의 주저 <중도론/中道論>의 해설서였는데, 그 책의 내용은 주로 대승불교의 중심사상인 공(무)사상과 연기론(緣起論) 그리고 그것의 종교적 역할과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 나가주나는 그의 공(空) 사상을 설명함에 있어 불타가 설한 공사상의 핵심인 연기론에 기초해서 그것을 체계적으로 잘 설명해 준 까닭으로 해서 제 2의 불타로 불려지기도 한다.

필자는 그 책을 접하고 큰 충격과 감동을 느꼈다. 왜냐하면 필자는 그 때 까지 불교의 중심사상에 대해서 체계적인 지식을 갖지 못하였었으며, 따라서 기독교와 대화할만한 확실한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책을 통해서 불교 특히 대승불교의 중심 사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으며, 따리서 불교에서 말하는 공(무) 사상이 무신론이나 부정주의 철학 원리가 아니라 서양철학 혹은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런 점에서 불교와 기독교는 앞으로 깊은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깨달음은 그후 현대의 많은 대승불교 학자들의 나가주나 연구서들을 접하면서 한 층 더 큰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이 글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기독교와 대비되는 불교의 사상은 불교의 경전들에 의존하기 보다는 바로 이 대승불교의 중심사상(Central Philosophy)에 해당하는 나가주나(Nagarjuna)의 중도론에 나타나 있는 공사상과 연기론에 주로 의존하고 있음을 미리 말해 두고자 한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4) -폴 틸리히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3) - A. N. Whitehead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2) - Rudolf Otto
한국신학 소고(溯考): 한국신학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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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2) - Rudolf Otto
류기종 | rkchg@hanmail.net

입력 : 2010년 05월 10일 (월) 16:00:35
최종편집 : 2010년 05월 11일 (화) 20:11:05 [조회수 : 2804]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2)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의 선각자들

20세기에 들어와서 우리 지구촌 인류가 경험한 중대한 사건들은 먼저 1, 2차에 걸친 세계대전이었으며, 그 후에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등장과 함께 생겨난 이념적 대립에 의한 세계질서의 극한적 대립과 거기에서 파생한 긴장과 전쟁이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서 전 인류는 큰 고통을 경험했으며, 그 직접적 피해는 이 지구상 어느 민족이나 국가들 보다 더 우리 한국국민들이 가장 심각하게 경험한 바이였으며, 아직도 그 상처의 후유증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20세기의 대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의외로 20세기에 지구상에 일어난 가장 중대한 사건으로서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의 시작의 사건을 지목했다. 그는 20세기에 들어서서 싹트기 시작한 기독교와 불교와의 접촉과 대화의 시작을 이 지구상(역사상)에 발생한 어느 사건들 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으로 본 것이다. 그 이유는 전 세계 인구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기하고 있는 두 종교 즉 동서양을 대표하며 또한 동서 문화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종교 그리고 가장 심오한 인간의 도덕적 가치체계와 구원의 이론체계를 가지고 있는 두 종교가, 지난 2천년 동안 서로 담을 높이 쌓고 문을 굳게 잠근 채 남남으 로 지내대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굳게 닫친 문을 열고 서로 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인류 역사의 정신적(내면적) 의미의 중대성을 간파한 토인비 박사의 예리한 판단과 통찰력에서 나온 결과로 사료된다. 뿐만 아니라 토인비 박사는 그의 <세계 종교 속의 기독교>란 소책자에서 인류의 평화 증진을 위해서는 기독교와 세계종교들과의 긴밀한 대화의 필요성과 함께 기독교의 오만(교만)의 포기와 겸손의 필요성을 강력히 피력하고 있다. 토인비 박사의 지적대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기독교와 불교는 비록 소수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대화가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동서양의 종교 사상가들의 주 관심사가 되다 시피 하였고, 현대에 와서는 주류 신학자들의 주 관심사의 하나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종교사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 볼 때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으며, 특히 우리 한국 사회에 있어서는 심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동안 꽉 막혀있던 우리 한국 사회의 두 주류 종교인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상호이해와 소통의 길이 열리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음으로 지난 20세기 동안에 불교와 기독교의 간의 대화의 물꼬를 터준 선각자들은 누구인가 살펴보기로 한다.


(1) 루돌프 옷토(Rudolf Otto, 1869-1937)

▲ 루돌프 오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의 가능성을 암시한 최초의 인물은 아마도 1917년에 <성스러움의 의미, Das Heilige) 란 책을 저술한 독일의 신학자며 종교철학자인 루돌프 옷토 일 것이다. 이 책은 현재 종교학이나 종교철학 분야에서 하나의 고전이 되다 시피 하였다. 옷토가 기독교 사상을 넘어서 다른 종교 특히 동양의 종교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가 1910년에서 1911년까지의 2년에 걸친 긴 여행을 통해서라고 보여진다. 그는 이 기간 동안에 북아푸리카와 이집트, 팔레스타인을 거쳐서 인도와 중국과 일본을 방문하였으며, 15년 후인 1925년과 1927-1928년 사이에 다시 중동과 인도를 방문하여 동양의 종교전통에 대한 그의 지식을 한층 심화시켰다.

거룩함의 경험: 옷토는 기독교의 성서가 말하는 종교적 진리의 핵심은 우주의 근원적 실재인 하나님 곧 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중심한 것인데, 이 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은 우리 인간의 이성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신비적 차원의 것으로 보았으며, 그것을 그는 “거룩함에 대한 경험”, 혹은 "초월적 실재"(numen/the numinous)에 대한 경험으로 보았다. 그 한 예로서,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임재 체험을 할 때,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는 음성을 들은 것은 초월적 실재인 하나님의 임재경험을 들어내는 것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이 때 모세에게 준 신의 명칭 즉 “스스로 존재하는 자”란 뜻을 지닌 “야훼” 혹은 “여호와”라는 신의 명칭은 이 세상 만물과 전적으로 구별되는 신비 지극한 초월적 실재라는 뜻을 암시한다고 옷토는 이해하고 있다. 이 신비 지극한 존재로서의 신을 기독교 신비가들이나 신학자들은 이 세상 만물 즉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과 전적으로 구별되는 존재라고 해서 “전적 타자”(the Wholly Other)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신비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 루돌푸 옷토가 현대의 기독교계와 종교계에 공헌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비주의"(Mysticism)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제공한 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옷토는 유한자인 우리 인간이 초월자/무한자인 신의 임재를 경험할 때,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1)극치의 신비에 대한 “두렵고 떨리는 마음”(tremendum majestorum)과 (2)감당하기 어려울 만한 “매혹적인 황홀한 마음”(tremendum fasinosum)이다. 이러한 경험이나 느낌과 깨달음은 신비주의의 특색을 잘 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옷토는 종교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가 바로 신비주의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으며, 따라서 신비주의는 기독교 종교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임을 잘 표현해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신비주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비주의에서 말하는 “저 넘어"(beyond) 라는 것도 역시 모든 종교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비합리적 요소가 극도의 긴장상태를 이룬 것을 의미한다. 신비주의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의 누멘적 대상을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 극단적으로 대립시키되, 단순히 자연적이고 세상적인 모든 것과의 대립으로 만족하지 않고 급기야는 “존재 자체(Being itself)”와 모든 “존재하는” 것 과 대립시킨다. 결국 신비주의는 그것을 무(無)라고 부른다. 여기서 무라는 것은 단지 어떤 것으로도 말할 수 없다는 뜻할 뿐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혹은 생각될 수 있는 모든 것과 단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이질적이며 반대적이라는 뜻이다.....우리 서양의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독특한 “무”(nihil)에 대한 고찰은 불교의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공”(空)한 것 혹은 “공”(Sunyata)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타당하다. 신비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신비적 언어나 지시어(ideogram, 상징적 표현)에 대하여 아무런 내적 감정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불교적 신비주의자의 "공"과
"공화"에 대한 추구는 일종의 어리석음으로 보일 것이다....그러나 사실은 동양의 “공”(무)은 서양의 "없음"(nothing)과 마찬가지로 “전혀 다른 것”(the wholly other)에 대한 누멘적 지시어인 것이다. 공이란 “기이한 것”(mirum) 그 자체,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언급하게 될 "역설"(paradox)과 “이율 배반적인 것으로 까지 고조되는 것이다.(거룩함의 의미, 길희성 역, 분도, 1987, pp.71-72).

위의 글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점은 옷토가 불교의 “무“ 혹은 “공”의 개념을 서양이나 혹은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이 파악한 “전적 타자” 혹은 “이질적인 것”에 대한 신비적 방법에 의한 인식, 다시 말하면 궁극적 실재인 신에 대한 신비적 경험의 내용과 동일하게 보았다는 사실이다. 옷토의 이러한 생각은 매우 중요한 사실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이때까지 서구인들이나 기독교인들에게 너무도 이질적으로만 느껴지고 심지어는 일종의 허무주의 내지는 부정주의 종교철학 원리로만 인식되던 불교의 “공”사상을 새롭게 보았을 뿌 아니라, 기독교 신비가들이 경험하고 체득한 신(하나님) 체험의 내용과 동일한 차원의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옷토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의 첫 물고를 터 준 사람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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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3) - A. N. Whitehead
류기종 | rkchg@hanmail.net

입력 : 2010년 05월 16일 (일)  [조회수 : 2721]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3) - 계속 -

▲ A. N. Whitehead


(2) 알프레드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 1833-1947)

20세기 들어와서 기독교와 불교의 긴밀한 관계성과 상호이해의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이다. 그는 런던 대학에서 하버드 대학으로 옮겨온 해인 1924년 2년 후인 1926년에 발표한 그의 종교론 <형성과정에 있는 종교>란 책에서, 불교와 기독교 두 종교의 특색과 함께 두 종교의 대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1) 최고의 합리적 종교로서의 불교와 기독교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두 개의 주된 합리적 종교가 있는데, 이들은 곧 기독교와 불교이다. 즉 기독교와 불교는 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 중에서 가장 발전된 우주관에 적합한 합리화의 과정에 진입한 종교들이다. 이 들 두 종교의 주변에는 경쟁적 종교들이 있었지만, 이 두 종교는 이념의 명료성, 시유의 일반성, 도덕적 품위, 존속의 능력, 그리고 세계로의 확대의 폭 등을 고려할 때, 이런 성질들을 골고루 구비한 점으로 해서 그들의 경쟁자들을 훨씬 능가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이들 두 종교를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서 판단한다면 현재 쇠퇘(퇴보)의 국면에 들어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두 종교는 현재 세계에 미치는 과거의 위력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 두 종교의 특색:
(1)화이트헤드에 따르면 기독교와 불교는 두 위대한 이물인 불타와 그리스도의 영적 체험에 기초한다. 그러나 불교는 인간의 구원의 도리를 인간과 우주 만물의 본질에 대한 형이상적 이해를 통해서 도달하려는 반면에 기독교는 인간의 삶과 역사 안에 활동하는 신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달성하려고 한다.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불타는 인류에게 위대한 교리를 준 반면에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주었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 표현이 불교와 기독교의 특색을 가장 잘 들어내는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불교는 다분히 혹은 본래적으로 철학적/형이상학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불교를 응용된 형이상학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사례라고 말하며, 따라서 불교가 종교를 탄생시키는 형이상학 즉 종교적 기능을 하는 형이상학/철학 원리인 반면 기독교는 항상 형이상학을 추구하는 종교 즉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정항에서 시작해서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종교의 특색을 지녔다고 말한다.

(2)화이트헤드가 이해한 기독교와 불교의 또 하나의 특색(유사점과 차이점)은 악의 문제에 관해서이다. 기독교와 불교 둘 다 우리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두 위대한 종교인 기독교와 불교는 이 중대한 악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즉 악의 극복의 방법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불교는 물질적 또는 감정적 경험의 세계의 본성 자체 안에 악이 본질적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따라서 그것을 깨닫게 하는 지혜는 그러한 경험의 방편이 되는 개체적 성격들로부터 “놓임”을 받도록 깨닫게 하며 또한 그렇게 삶을 살도록 유도한다.

기독교도 역시 악 혹은 악의 세력으로부터의 “놓임”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악의 문제에 있어서 불교보다 형이상학적인 관점으로는 덜 분명하지만, 반면에 더 구체적인 사실들을 담고 있다. 즉 기독교는 처음에는 악이 세계 전반에 내재한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악은 개개인의 삶/사실 그 자체의 필연적 결과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개개인의 숭고한 이상의 실현과 선을 지향하는 삶을 통해서 즉 선으로서 악을 극복하려 한다고 본다. 따라서 화이트헤드는 악의 문제이 있어서 즉 악에 대한 이해와 그것의 극복의 방법에 있어서 두 종교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3. 두 종교의 퇴보의 원인과 대화의 필요:
화이트헤드는 기독교와 불교는 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 중에서 가장 진보된/발전된 위대한 종교들이지만 현재의 상태는 그들의 발생 초기에 비해서 쇠퇴의 과정에 들어서 있다고 보고 있다. 두 종교의 쇠태/퇴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을 두 종교의 폐쇠성 즉 두 종교가 각각 배타주의와 우월주의에 빠져서 상대방에게서 더 배우려 하지 않고 자기만족에 빠져 안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두 종교가 초기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두 종교가 문을 열고 대화하며 상대방에게서 배우려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현대 사상에 있어서 결정적 영향을 끼친 기독교와 불교의 퇴보는 부분적으로는 이들 각 종교가 지나치게 상대방으로부터 피해 숨어버린 상태에 기인한다. 배움에 대한 자기 충족의 폐쇄성과 무지한 열광주의자들의 확신이 결합하여 각 종교를 자기 자신의 사유의 형식 속에 갇혀 있게 만들었다. 더 깊은 의미를 찾기 위한 상호간의 탐구와 고찰 대신에 그들은 자기만족과 메마른 상태로 머물러 온 것이다.(Whitehead, 종교론, 류기종 역, 제4장, 진리와 비판, p.111).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와 불교가 각각 자기 종교의 쇠퇴(퇴보)적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족에 머물러 있지 말고 보다 높은 단계로의 성숙을 위해서 자기 종교의 문을 열고 상대방에게서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두 종교 간의 긴밀한 상호 교류와 대화가 요청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화이트헤드는 두 종교 간의 관계를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 즉 서로에게서 배워야 하는 상보의 관계로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와 상호교류는 양 종교를 위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하나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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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의 만남(4) -폴 틸리히
류기종 | rkchg@hanmail.net

입력 : 2010년 05월 23일  [조회수 : 3899]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3)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

▲ 폴 틸리히

20세기에 들어서서 기독교 신학자로서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태도를 나타낸 이는 아마도 폴 틸리히일 것이다. 틸리히의 불교에 대한 깊은 관심은 그가 1960년에 일본을 방문하여 수개월 간(5월에서 7월까지 약 8주간을) 도꾜와 교도에 머물면서 일본의 저명한 불교 학자들과의 깊은 교제와 대화를 나눈 점을 보와도 알 수 있다. 그의 일본 방문은 야사카 다까기(Yasaka Takagi) 교수의 초청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때 그가 만난 사람들은 선불교의 대가인 스즈키(D. Suzuki) 박사를 비롯하여 교도학파(the Kyoto School)의 철학자 및 불교 학자들과 또한 일본의 고유 종교인 신토(Shinto)의 스님들과 선승들(Zen Masters)도 포함되어 있었다. 틸리히는 그들과의 대담과 토론을 통하여 동양 사상 특히 선불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증거로서 틸리히는 그의 일본 방문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기독교와 세계종교들과의 만남”이란 책을 저술하였으며, 그 책에서 그는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의 문제를 직접 취급하였다.

종교 간의 대화의 요건: 틸리히는 위의 책에서 기독교와 불교를 비교 고찰함에 있어, 불교를 모든 종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낫 설며, 동시에 가장 경쟁적인(most greatest, strangest, and competitive) 종교라고 칭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는 현재까지는 매우 미미했지만, 앞으로 두 종교의 대화는 가까운 장래에 가장 중심적 문제로 등장하게 될 것으로 보왔는데, 그 이유는 현대 세계에 나날이 확산되어가는 세속주의와 그것의 영향을 받은 유사종교들(quasi-religions)의 발흥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보았다.

한편 틸리히는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 문제를 취급함에 있어서 대화자가 취해야할 기본자세에 대해서 다음 네 가지로 언급하였다. (1)상대방 종교의 신념의 가치에 대해서 존중하고 인정할 것, (2)대화자는 지신의 종교적 신념에 대해서 깊은 이해와 확신을 가지고 임할 것, (3)대화가 유익되게 하기 위해서는 상호 간에 공통분모(common ground)를 찾아낼 것, (4)상대방의 비판에 대해서 열린 자세를 가질 것 등을 제시했다. 그는 이런 요소(자세)들을 가지고 대화에 임한다면, 서로에게 지극히 유익하며(extremely fruitful), 또한 그것을 계속한다면, 자신의 일본에서의 경험에 비추어서 볼 때, 두 종교 및 다른 종교 간의 대화는 우리 역사에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인격주의 대 비인격주의: 틸리히는 기독교와 불교를 비교함에 있어 가장 크게 부디치는 문제로서 기독교의 인격주의적인 특성과 불교의 비인격적인 특색을 지적했다. 그 대표적인 개념이 기독교의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나라” 개념과 불교의 “절대무"(Absolute Nothingness)와 “열반"(Nirvana)의 개념이다. 즉 기독교의 궁극적 실재를 나타내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특성으로 표현/상징화(symbolized)하는 반면에 불교에서는 궁극적인 것을 나타내는 표현(상징)인 “공"(Void)이나 “절대 무”(Absolute Non-Being)는 비인격적 혹은 초인격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사실 이것은 틸리히가 기독교와 불교의 특징을 비교 고찰함에 있어서 정확한 진단이며 지적이라고 사료된다. 왜냐하면 불교는 인격주의적 표현이나 개념들은 인간의 감정이나 성질을 나타내는 표현들이기 때문에 궁극적 실재를 나타내는 데 있어서 부적합하다고 보는 반면에, 기독교는 오리혀 그것을(인격주의적인 접근이나 표현을) 궁극적 실재 혹은 신의 실재를 표현하는데 있어 더 적극적(긍적적)이고 적합한 표현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는 넓은 의미로 표현하자면 “인격주의”(personalism)와 “비인격주의” 혹은 “초인격주의”(trans-personalism)와의 대화라고 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틸리히의 하나님 이해: 틸리히가 기독교와 동양종교 특히 불교와의 대화에 크게 공헌한 점은 그가 기독교의 인격주의 중심의 신관을 초인격주의적인 신관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틸리히는 하나님을 인격적 존재로 부르는 것은 “절대자”(혹은 절대 타자)인 하나님을 여러 존재들 중의 하나로 즉 비록 모든 존재들 중 최고의 존재라 하더라도 무한자를 유한자의 범주로 격하시키는 일이 때문에 부적합하다고 보왔다. 그래서 그는 신의 존재를 “하나님”(God)으로 호칭하지 않고, 모든 존재들의 근거가 되는 의미에서 “존재 자체”(Being-Itself) 혹은 “존재의 근거”(Ground of Being)으로 불렀다.

뿐만 아니라 틸리히는 기독교의 전 역사를 살펴보면 신과 인간에 관해서 불교의 사상에 매우 유사한 신비주의적 요소를 발견할 수가 있다고 말하고, 특히 오리겐, 어거스틴, 에크할트 등이 사용한 고전적 신개념인 “존재 자체”(esse ipsum)란 개념은 불교의 “공”(空) 개념이나 “절대무”(絶對無)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단서를 제공하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즉 틸리히에 의하면, 존재 자체로서의 신은 어떤 하나의 위대한 존재나 혹은 모든 존재들의 총체가 아니라 모든 존재들을 초월하면서 또한 모든 존재들을 존재 가능케 하는 “존재의 기반” 혹은 “모체”(Matrix)로서, 우리 인간의 언어나 상징이나 어떠한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절대계”(the Absolute) 즉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를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아마도 틸리히의 이러한 신관(하나님 이해)은 불교의 “공”사상과 “절대무”(Absolute Nothingness or Emptiness) 혹은 “열반”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되며, 이런 점에서 틸리히는 기독교와 불교의 상호 이해와 대화에 있어서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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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5) - D. T, Suzuki
류기종 | rkchg@hanmail.net

입력 : 2010년 05월 30일 (일) [조회수 : 4065]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5) 계속

(4) 다이세츠 스즈키(D. T. Suzuki, 1870-1966)




▲ D. T, Suzuki


일본의 경도학파의 창시자 니시다 기다로(1870-1947)의 친구이자 선불교의 대가인 스즈키 박사는 대승불교(Mahayana Buddhism) 특히 일본의 선불교(Zen Buddhism)를 서방 세계에 알린 인물이며, 또한 동-서의 철학과 종교 사상을 잇는 가교역할을 한 인물로 유명하다. 현대의 한 역사가인 린 화이트(Lynn White, Jr)는 1927년에 영문으로 출판된 스즈키 박사의 “선불교의 논문들”(Essays in Zen Buddhism)이란 책의 출현은 오는 세대에 있어서 마치 13세기의 윌리엄 모어베크(William Moerbecke)에 의한 아리스토틀의 라틴어 번역과 또는 15세기에 피치노(M. Ficino)에 의한 플라톤의 번역에 비견될만한 의미를 지닌 한 위대한 지적인 사건이라고 말한바 있다. 그만큼 스즈키 박사의 이 책은 기독교 문화권인 서방 세계에 대승 불교의 사상을 알리며 그들에게 큰 관심을 끌게 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즈키 박사의 여러 저서들 중에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작품은 기독교와 불교의 긴밀한 관계성을 말한 책으로 1957년에 출판된 <신비주의: 기독교와 불교>(Mysticism: Christian and Buddhist)이다. 스즈키는 이 책에서 기독교와 불교 특히 선불교와의 관계를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스즈키는 기독교의 많은 사상가들 중에서 특히 14세기에 독일의 도미니크 수도회 수장으로 활동한 마이스터 에크할트(Meister Eckhart)의 신비주의 사상이 대승불교와 많은 유사점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나는 처음 마이스터 에크할트의 설교문들이 수록된 소책자를 읽고서 큰 감 명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과거나 현대에 걸쳐서 어느 기독교 사상가도 이 들 설교문들에 나타나 있는 사상들을 따라 갈만한 그런 기독교 사상가는 기 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설교문이었는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거기 에 나타난 사상들은 확실히 불교적 사상들에 접근하고 있었으며, 너무도 가 깝게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들이 거의 확실하게 불교적 사 유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나의 판단으로 는 에크할트는 특이한 ‘그리스도인’인 것 같다>(스즈키, 신비주의, 제1부 제1장, “에크할트와 불교”에서 인용)

절대무(Absolute Nothingness)와 신성(Godhead): 스즈키 박사가 발견한 마이스터 에크할트의 신비주의에서 대승불교와 가장 가까운 개념은 에크할트가 이해한 “신성” 으로서의 하나님관이다. 에크할트에 의하면,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활동에 직접 간여하는 신(God)과 모든 창조활동에 전적으로 초월에 있는 “신성"(Godhead)의 두 면이 있다. 이것은 신의 “내재성”과 “초월성”의 양면성에 대한 언급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신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개념은 신구약성서 전반에 들어 있으며, 오리겐을 비롯하여 어거스틴을 포함한 거의 모든 교부들과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칼 발트 등 현대 신학학자들에 이르기 까지 줄기차게 주장되어 온 개념이다. 그들 중에서도 특히 에크할트는 신의 내재성과 초월성의 차이를 강하게 언급하고 있다. 에크할트는 "신"(하나님)과 "신성"의 차이는 하늘과 땅 만큼 큰 차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무엇을 이룩하신다. 그러나 신성은 그렇게 하지 않으며, 그럴 필 요도 없으시다. 신성은 어떠한 행위도 추구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하나님과 신성의 차이는 행위와 행위의 부재로서 구별된다. 나는 전에 말해 본 적이 없는 바, 하나님과 신성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 하고자 한다. 사람의 내면성과 외면성도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르다. 그러 나 신과 신성과의 거리는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크다>. (Matthew Fox, Breakthrough, pp. 76-77)

에크할트는 “신(창조의 하나님)”은 무엇을 이룩하기 위해 활동하지만 “신성”(신의 본래 모습)은 그럴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신성”은 어떠한 행위도 부재한 상태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에크할트는 신의 참 모습은 그의 초월성인 “신성”에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신성”으로서의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신에 대한 바른 지식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에크할트가 여기서 말하는 신의 초월성을 의미하는 행위의 부재로서의 “신성”은 대승불교에서 의미하는 “공”이나 “절대무”와 매우 유사한 개념임을 나타낸다고 스즈키는 보고 있다. 왜냐하면 불교의 “무”는 이것과 저것, 행위와 무행위, 있음과 없음 등의 모든 상대적 개념을 다 초월하며, 따라서 어떠한 상대적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절대계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와 불교의 가장 큰 차이로 여겨지는 불교의 "공"(空) 특히 선불교의 “절대무” 개념과 기독교의 하나님 이해 사이에는 비록 신비주의자들이나 혹은 영성가들의 이해에 의해서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상호이해와 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지적해 준 이가 바로 20세기에 들어서서 불교와 기독교 및 서구철학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 다이세츠 스즈키 박사이다. 그런 점에서 스즈키 박사는 기독교와 불교(특히 선불교)와의 대화에 있어서 중요한 공헌자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겠다.

[관련기사]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3) - A. N. Whitehead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2) - Rudolf Otto
한국신학 소고(溯考): 한국신학의 과거, 현재, 미래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1)
예수의 종교(Religion of Jesus)


제이 씨 (184.146.115.16)

2012-04-27 08:08:18



기독교와 불교는 진정한 의미에서 상호 이해와 대화가 가능한가?
종교란, 수평/竪直적 의미에서 “절대무” 찾기나 “존재자체” 찾기를 말한다면,
사람들에 의하여 아래로부터 위를 향한 상향식↑추구라고 사려되며,
기독교는,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 “인격적 하나님” 의 垂直적 계시↓에 의한
특수한 만남 (현현과 응답) 에 대하여, 신뢰↑함으로 “인격적 하나님” 과의
상응관계 곧 위로부터 아래를 향한 하향식↓의미가 전제 되어 상하↕관계
형성이 된다는 인과성의 체험적 의미가 부여 된다는 생각입니다.
“인격적 하나님” 의, 사람 존재 (창조) 이 전의, 그 분의 “인격” 이란,
어떤 분의 말을 빌리면,
“내적 개념내용과 고유한 자 의식,
The inner content and unique self-conteousness,” 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인격” 으로의 내적개념내용이란, 하니님의 정체 (영, 스스로 존재
하는 창조자) 를, 그리고 하나님의 고유한 자의식이란, 자기 계시와 타자인식
(사랑) 을 의미한다고 보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된 사람의 인격을 해석 함은,
내적개념내용인 사람의 정체를 영과 육체 곧 피조자로, 그리고 사람의
고유한 자 의식을, 자아 발견 의식과 타자 인식 으로 이해 됩니다.
그러므로 인격주의? 적인 체험(하나님 만나는 경험) 과 비 인격주의? 적인
궁구한 발상적 초월과의 대화적 공통점을 찾을수 있을까 라는 풀리지
않을것 같은 의문을 제기 합니다.


창공 (121.162.90.34)

2010-05-26 08:32:52




기독교와 불교를 하나님과 절대무, 인격과 비인격으로 표현한 것을 읽으며 실제 종교의 표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면 불교는 부처(인간모습의 불상)이고, 기독교는 형상을 만들지 말라 하셔서 만들지 않아 오히려 역으로 보이고 있다. 재미있지 않은가? 세상의 많은 것들이 아렇게 뒤바뀌어 보이니 진리를 알아채고 전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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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6)-토마스 머턴

류기종 | rkchg@hanmail.net
입력 : 2010년 06월 06일 (일)  [조회수 : 4120]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6) -계속-

(5) 토마스 머턴(Thomas Merton, 1916-1968)


▲ 토머스 머튼


20세기 중반 이후에 기독교와 불교 특히 기독교와 선불교와의 대화에 큰 관심을 보인 사람은 아마도 20세기의 “사막의 교부”(a Desert Father)라고 불리는 토마스 머턴일 것이다. 머턴은 1941년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자마자, 어렵게 얻은 뉴욕의 한 대학교의 영문학 교수직을 포기하고, 켄터키 주에 있는 겟세마네 수도원에 한 수도사로 들어가 일생동안 명상수행에 전념했으며, 자신의 체험에 기초해서 “명상” 및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편으로 세계 평화의 문제와 빈곤과 폭력과 사회악 등 사회정의의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머턴은 오랜 동안의 자신의 명상수행의 과정에서 불교의 명상 의 방법 특히 선수행(Zen Practice)의 방법과 매우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즉 머턴은 기독교 신비가들의 영적 체험의 방법과 선불교의 영적 체험의 방법이 본질적으로 깊이 통하는, 다시 말하면 인간의 심오한 영적 체험과 깨달음을 표현하는 형식들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1967년에 <신비가와 선의 대가들> (Mystics and Zen Masters>이란 저술을 발표하였다. 이 책에서 머턴은 6세기 이후에 중국에서 발전된 선의 역사와 내용 그리고 발전 과정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선(禪/Zen)불교는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인도에서 들어온 달마대사(Bodhidharma)에 의해 처음 중국에 소개되었고, 도교와 결합하여 발전된/꽃피운 대승불교의 한 지류이며, 그후 한국과 일본에 널리 소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불교(Zen Buddhism)와 기독교 신비주의(Christian Mysticism): 달마대사에 의해서 소개된 선의 기본정신은 “교외별전 불입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이란 4개의 한자성어로 된 내용이다. 이 시는 선불교(Zen)의 핵심을 집약적으로 들어내는 시이다. 즉 우리 인간이 진리를 깨닫는 득도에 이르는 길은 경전의 문자나 교리나 추상적인 개념들에 의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의 내면을 직시함으로써, 즉 마음(인간의 영혼 혹은 정신세계)의 신비(본질)를 깨달음으로써, 참 진리(실재)의 인식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선종(선불교)은 선의 5대조 홍인(弘忍)의 두 제자 혜능(慧能)과 신수(信秀)에 의해서 남종과 북종으로 갈라지게 되었는데, 6대조의 선발과정에서 5대조 홍인의 수제자 신수의 시가 혜능의 시에 뒤떨어짐으로서 혜능이 6대조로 선택 되게 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신수의 시: (신수는 최고령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홍인의 후계자로 보였었다)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깨끗한 거울 같구나,
항상 갈고 닦아서 한 올의 먼지도 묻지 않게 하려네>.

혜능의 시: (혜능은 홍인의 절에서 계도 받지 못한 채 부엌에서 일만하던 시골뜨기 도반중 하나에 불과 했으나 선의 참뜻을 나타내는 탁월한 시를 썼다)
<보리수 나무 원래 없고, 깨끗한 거울 또한 아무데도 없는데,
어느 곳에 때가 끼고 먼지가 일까?>

혜능은 바로 이 시 때문에 신수 대신 홍인을 이어 선의 6대조가 되었다. 머턴은 이러한 선의 방법들이 기독교의 여러 상이한 신비체험들과 어떻게 연관되고 교류될 수 있는 지를 말해주고 있다. 머턴(Merton)은 선불교와의 접촉에 있어서 선승이며 동시에 대학자인 다이세츠 스즈키와의 교제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두 사람 간의 서신교환은 1959년부터 시작하였는데, 머튼은 고대 사막교부들의 관상적 영성과 선불교의 선승들의 영성의 유사성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으며, 이로 인해서, 이점에 대해 큰 관심을 지녔던 스즈키와 깊은 교분을 나누게 되었다. 두 사람은 1964년에 뉴욕의 콜롬비아 대학 교정에서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눈 이후 깊은 교제를 나눴는데, 스즈키는 머턴을 가리켜서 선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한 서양인(기독교인)이라고 평한바 있다.

스즈키와의 교제 이후, 머턴은 1965년에 <장자의 도>란 책을 출간했으며, 1967년에는 자신의 선불교 연구서로 볼 수 있는 앞에서 언급한 <(기독교)신비가와 선의 대가들>이란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 머턴은 장자를 통해서, 언어와 개념을 넘어선 “실재”에 대한 체험적 인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머턴은 기독교의 문제점은 언제나 개념화와 교리화에 집착하는 약점이 있음을 깨달았다. 머턴의 동양종교에의 깊은 관심은 1968년 태국 방콕(Bangkok)에 열린 종교회의에의 참석으로 절정에 달했다. 그는 이 기회를 불교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종교성과의 접촉의 기회로 삼으려 했다. 마턴은 이를 계기로 인도, 태국, 스리랑카를 방문하려 했고, 다라이 라마와의 만남과 일본의 선승들과도 만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머턴은 회의 도중 갑작스런 사망으로 그 뜻을 다 실현하지 못했다.

머턴과 깊은 교제를 나눴던 틱낫한(Thich Naht Hahn)은 머턴에 대해 평하기를 대부분의 서구 신학자나 영성가들이 이원론적 사고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데 반해서 머턴은 그런 틀에서 벗어서 있다는 사실이라고 평했다. 데이비드 스타인들 라스트(D. S. Rast)가 머턴에게 묻기를, 불교와의 접촉 없이 기독교의 가르침들 을 잘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머턴이 한참 생각하다가 대답하기를, “나는 불교의 빛으로 조명하지 않고는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머턴의 이 말은 불교의 진리들은 기독교의 깊은 영적인 진리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머턴은 <신비가와 선의 대가들>의 서문에서 “선은 추상적인 형이상학도 아니며, 신학도 아니며, 이론적인 명제도 아니고, 의식과 앎의 굴레(속박)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행위로서, “구체적인 살아있는 존재론”이라고 정의 내렸다. 머턴은 이 책에서 기독교 전통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교부시대, 초기 수도원제도(사막의 수도자들), 영국의 신비주의, 17세기 신비주의, 러시아 동방정교회 영성 그리고 개신교 수도원 공동체 등도 소개하고 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머턴은 선불교 즉 불교의 선(Zen)의 방법에 매혹된 기독교 명상수도자로서, 영성주의 혹은 신비주의의 측면에서, 기독교와 불교와의 깊은 대화의 길을 모색한 사람이란 사실은 부인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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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7) - 류영모 - 당당뉴스

류기종 | rkchg@hanmail.net
2010년 06월 13일 (일) 18:38:37 [조회수 : 3945]


(6) 류영모(柳永模, 1890-1981)



▲ 다석 유영모

다석(多夕) 류영모는 젊은 시절 한 평번함 과학도로 시작하여, 끊임없는 연구(진리탐구)와 스스로의 수행에 의한 깨달음을 통해서 세계(인류) 정신문화의 원천인 유, 불, 선, 기(기독교)의 회통과 창조적 조화를 이룩해 낸 인물로서, 20세기의 탁월한 통섭의 사상가인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에 비견될만한 특유의 사상가이다. 그는 소년시절에 접한 기독교 신앙을 일생동안 자신의 삶의 근거로 견지 하면서도, 단순한 교리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지 않고, 동양의 전통 종교 사상들과 또한 한국고유의 전통종교 사상들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서, 그리고 그들의 창조적 만남과 조화 회통을 통해서, 한층 더 깊은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심층적으로 이해한 참으로 희귀하고 독특한 사상가이다.




<류영모와 연경반>: 류영모는 서울 YMCA 총무였던 현동안의 초청으로 일종의 종교 강좌에 해당하는 “연경반” 강좌를 맞게 되었는데, 1928년에 시작하여 1963년 까지 35년간 지속되었다. 박영호씨의 기록에 의하면, 연경반은 많이 모일 때는 수백명이 참석할 때도 있었지만, 적게는 십여 명씩 모였으며, 평균 20명 정도가 참석하였다고 한다. 류영모는 이 연경반에서 기독교의 성경뿐 아니라, 유불선의 경전들즉 동양의 고전들도 강의하였으며, 따라서 그는 기독교와 유불선의 종교적 가르침들과의 조화 속에서, 즉 기독교를 그 자체에 의해서만 이해하지 않고, 동양의 지혜를 통해서 이해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한 예로 류영모는 1959년에 영경반에서 <노자>를 강의 했고 같은 해에 불교의 중요 경전인 <반야심경>을 강의하였다. 박재순 교수는 다석의 불교에 대한 친밀성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다석은 공(空) 사상에 기초해서 만물을 공으로 보고 하느님의 본성도 공으로 보았다. 그는 23세 때부터 빔(空)이 맘 안에, 맘이 빔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늘 빈탕한테를 말한 것도 불교적이고, 해혼 후 하루 한 끼 먹은 것도 금욕적인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한 것이다. 모든 집착과 욕심을 끊고 자유로운 삶을 살려는 것은 불교의 해탈을 추구한 것이다. 날마다 무릎 꿇고 앉아서 생각과 명상에 잠긴 것은 불교의 선(禪)을 수행한 것이다,...사람 노릇을 하려면 불교를 알아야 한다고 했고 불교를 모르고는 이 세상을 바로 살 수 없다고도 했다. 다석은 자주 예수와 석가를 나란히 언급했다. 다석은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진리인 불성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믿는 것으로 보았고, 하느님이 진리의 근원이라는 것을 말함으로써 기독교와 불교를 연결시켰다. (박재순, 다석 유영모, 현암사, pp. 313-314)




그런 점에서 류영모는 단순히 기독교와 불교(특히 선불교)의 대화나 만남의 차원을 넘어서, 두 종교를 한 생명인 자신의 삶으로 직접 실천한, 다시 말하면 기독교와 불교 두 종교의 창조적 일치를 실행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그는 기독교를 통해서 불교를 보고 불교를 통해서 기독교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에게는 그리스도와 불타가 따로 있지 않고 둘이 진리의 스승으로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진리의 스승인 점에서 그 두 분은 둘이면서 하나이며 하나이면서 둘인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통찰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필자는 류영모의 이러한 통섭의 정신은 바로 우리 한국인의 고유 철학인 “한사상”(韓思想) 즉 일즉다(一卽多)의 궁극적 조화와 일치의 원리인 “한사상”에서 비롯한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참조, 류기종, 기독교와 동양사상, 황소와 소나무, pp. 12-37)




<탐진치 3독과 인간의 죄성>: 류염모는 인간의 실존 이해에 있어서도 불교와 기독교의 양측의 입장을 함께 종합해서 본 듯하다. 즉 기독교는 인간의 현존재를 최초 인간 아담의 타락에 의한 원죄의 유전으로 인한 죄성이 만인에 보편적으로 깃드려 있다고 보는데 대해서 불교는 인간이해의 핵심으로서 탐(貪,탐욕), 진(瞋,분노/시기/질투/미움), 치(痴,무지/어리석음/치정-성적충동) 3독을 보편적 성질로 이해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탐진치는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동물이나 생물들의 삶의 본능적이고 자연적인 모습이다. 우리 인간의 자연적 특성을 탐진치 3독의 내재성으로 보는 불교적 인간 이해는 바로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언급한 인간의 죄성(롬1:29-31,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거림, 우매, 배약, 무정함, 무자비)에 대한 진술과 매우 유사함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참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이 동물적 요소인 탐진치의 속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참조, 박영호 풀이, 다석 류영모 명상록, 두레, pp. 472 이하).




따라서 류영모는 우리 인간이 득도 해탈의 경지에 이른 참 자유인 즉 진리를 깨달아서 참 자유함을 얻은(요8:32) “얼나” 곧 영적인 존재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 3독을 제거하고 거기에서 자유함을 얻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류영모의 인간실존 이해에 있어서도 불교적 요소와 기독교적 요소가 함께 공재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없이 계시는 하나님>: 류영모의 기독교와 불교의 친밀성(공통점) 이해의 또 다른 중요한 점은 바로 불교의 공(空/빔/없음)과 기독교의 하나님(하느님/한님/한얼)을 그 근본(본질)에 있어서 매우 밀접한, 어떤 의미로는 동일한 내용(개념)으로 이해한 점이다. 류영모에 따르면 허공(空)은 곧 하나님의 마음을 지칭한다. 즉 허공의 상징은 진선미 곧 순수하고/깨끗하고 아름다움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하공을 알고 허공을 존중하여 맘에 품고 살 때 아름답고 깨끗한 삶을 살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와 인간의 바탕이 허공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석이 공 혹은 허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만물의 근거로 본 것은 불교의 가르침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즉 류영모는 공(空)을 참된 실재로 보는 불교의 공의 철학 곧 공의 신비와 의미를 깊이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석가는 “빔”(공)이 맘 안에, 맘이 “빔” 안에 있음을 깨달았고, 예수는 내가 아버지(하나님) 안에 아버지(하나님)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여, 석가의 공 이해와 예수의 하나님(아버지) 이해를 대비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류영모는 이 “빔”(공/허공)을 최고로 높고 밝고 거룩한 것으로 보았다. 즉 류영모는 공 혹은 허공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신령한 허공을 하느님으로 이해했으며, 허공, 마음(얼) 혹은 영(靈), 절대자가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인 허공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였다. 즉 그는 허공과 하나로 되어 하늘에 머물러 사는 사람은 물질과 허공을 하나로 보는 공색일여(空色一如)의 자유함을 얻는 다고 하였다. 그러나 류영모는 공(허공)을 참된 실재로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이라 이해하면서도 불경에 하나님이란 말이 없음을 못내 아쉽게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의 마음의 저변에 기독교의 신관과 함께 한국인의 고유 종교성인 하느님 신앙이 흐르고 있음을 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참조, 박재순, 앞의 책, pp. 316-319)




요컨대, 류영모가 이해한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마음의 욕심(3독)을 뽑아내서 “빔”에 이르러 공색일여(공즉시색 색즉시공)의 진리를 깨달음에서 오는 참 자유 곧 궁극적인 자유(해탈)에 이르는 것이다. 물론 다석이 허공을 진리 곧 참 실재로, 만물의 바탕으로 본 것은 불교의 중심 진리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공(허공)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본 것은 불교의 기독교적 이해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점에서도 류영모의 기독교와 불교의 조화와 통섭의 측면을 읽을 수 있다.




<“얼나”의 현시자로서의 불타와 그리스도>: 류영모의 사상에서 또 하나의 독특한 개념은 “얼나”의 개념이다. “얼나”는 인간의 자연적 상태인 “제나”(selfish ego) 즉 인간의 죄성인 탐진치 3독을 제거하지 못한 인간에서 “빔”(공)의 진리를 깨우쳐서 신의 본성인 "빔"(空性)과 하나가 된 영원한 자아, 즉 시공을 초월하는 공한 마음(空心)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참 자아를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삶의 목표는 바로 이 동물성(獸性) 곧 죄성으로 인하여 죽어 없어질 존재인 “제나”(육적인 자아 곧 땅의 존재)에서 영원한 생명과 광채를 지닌 “얼나”(하늘의 존재)로 거듭나는 일이다. “제나”가 “얼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제나”가 완전히 죽어야 하는데, 이 제나의 죽음이 바로 십자가의 의미이다. 류영모에 있어서 완전한 자기부정의 길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불타(불교)의 진각(眞覺)에 이르는 4대 진리인 고집멸도(苦執滅道)의 완성/성취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얼나”는 득도 진각을 이룬 초월적 자아 곧 영적인 자아(enlightened/spiritualized self)라고 말할 수 있다.




류영모에 따르면, 불타와 그리스도는 둘 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인류에게 득도 해탈의 길 곧 구원의 길을 제시해준 위대한 참 스승이며,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진인(眞人) 곧 “얼나”의 모형이다. 그런 점에서 불타와 그리스도는 이 “얼나”의 현시자요 화신(incarnation)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즉 불타는 공(빔)의 진리와 또한 공과 만물이 그 근본에 있어서 하나라는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의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모든 집착과 속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해탈의 길을 제시해 주었고, 그리스도는 참 빔(참 실재)이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길, 하나님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그리고 아버지와 내가 하나 되는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죽음까지도 포함된 모든 속박과 억매임으로부터 완전히 놓임 받는 참 자유함에 이르는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류영모에게는 불타와 그리스도 두 구원자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러나 실은 이 둘은 하나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타와 그리스도 두 분이 다 참 "빔"(공/허심/태일太一/하나님/궁극적 실재)과 하나가 됨으로써, 즉 “빔의 신비"(mystery of emptiness) 곧 “없이 있으며 참으로 있음”의 신비를 깨달음으로써, 궁극적 자유함(해탈)인 구원에 이르는 길(진리)에 있어서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류영모에 있어서 불타와 그리스도의 관계는 태극의 음양 리기의 관계처럼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의 관계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류영모는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와 만남을 넘어서 두 종교의 아름다운 조화와 상보관계를 실현한 독보적 사상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류영모는 불교를 통해서 기독교를 이해하고 또한 기독교를 통해서 불교를 이해하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볼 때,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의 시기라 할 수 있는 20세기에 있어서 두 종교의 관계를 류영모 처럼 깊이 통찰한 사람은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맺는말>: 이상에서 지난 20세기 동안에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에 크게 기여한 즉 두 종교 간의 대화의 개척자들의 견해들을 살펴보았는데, 필자는 그들 중에서 우리 한국의 기인(奇人) 다석 류영모의 방법이 가장 탁월하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는 단순히 두 종교의 대화를 넘어서서, 양 종교를 친밀한 형제와 친구의 관계로 즉 자신을 위해서 상대방이 꼭 필요한 (태극의 음양과 리기의 관계처럼) 필수적 동반자의 관계로 연결시키는 방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기독교를 보다 깊이 알기 위해서는 불교를 필요로(알아야)하고, 또한 불교를 보다 깊이 알기 위해서는 기독교를 필요로(알아야) 하는 상보의 관계이다. 이런 점에서 류영모는 기독교와 불교의 상호이해와 대화에 있어서 최대의 공헌자로 평가되리하고 사료된다.




[류기종의 영성강좌]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요약) [새창] 류기종 2010-06-20
[류기종의 영성강좌]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7) - 류영모 [새창] 류기종 2010-06-13
[류기종의 영성강좌]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5) - D. T, Suzuki [새창] 류기종 2010-05-30
[류기종의 영성강좌] 한국신학 소고(溯考): 한국신학의 과거, 현재, 미래 [새창] 류기종 2010-04-28
[류기종의 영성강좌]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1) [새창] 류기종 201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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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요약)
류기종 | rkchg@hanmail.net
2010년 06월 20일 (일) 16:42:46 [조회수 : 3801]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과정사상과 영성적 관점에 본-

이 글은 지난 20세기 동안에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와 상호이해에 크게 기여한 사상가들의 중심사상을 고찰해 봄으로써 두 종교 간의 사상적 연대성과 협력방안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불교와 기독교를 지구상 모든 종교들 중에서 가장 발전된 합리적 지적 체계를 지닌 종교라고 보았는데, 그러나 두 종교가 서로 문을 닫고 자기만족에 빠져 있으므로 해서 현재 쇠퇴의 과정에 들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한편 역사가 Arnold Toynbee는 20세기에 일어난 사건들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기독교와 불교가 서로의 닫힌 문을 열고 대화를 시작한 사건으로 보았으며, 오늘에 와서는 동서의 많은 철학자/종교가 및 신학자들이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 문제를 중요 이슈로 다루고 있는 실정에 있다.

한국사회의 종교적 사항과 특수성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유불선 3대 종교의 영향 하에 있었으며, 현대에 와서는 기독교와 불교 두 종교가 양대 종교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두 종교는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지녔으면서도 전혀 대화의 챈널을 찾지 못한 체 기름과 물처럼 높은 담이 그어져 있다.

1. 로돌프 옷토(Rudolf Otto, 1869-1937)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의 물고를 터준 사람은 독일의 신학자며 종교철학자인 옷토이다. 그는 1910-11년의 2년에 걸쳐서 북아프리카, 이짚트, 팔레스타인을 거처 서 인도와 중국과 일본까지를 방문하여 동양의 종교와 사상들을 접하는 기회를 가졌으며, 이를 토대로 하여. 1917년에 <성스러움/Das Heilige-영역 the Idea of the Holy>란 책을 저술하였는데, 여기에는 동서양의 신비주의적 경험과 직관의 공통적 요소를 언급하였다.

1). 옷토는 동서양의 신비주의적 방법과 경험(mysticism) 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고했다..
옷토에 따르면, 신비체험은 거룩함/신/전적타자/초월적 실재(numen)에에 대한 체험/인식으로서 (1)심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tremendum majestorum)과
(2)심히 매혹적인 황홀한 경험(tremendum fasinosum) 을 동반한다.
2). 동양 종교(불교)의 공(空/Sunyata) 체험과 서양종교(기독교)의 신神 체험은 공히 절대타자 즉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절대계 혹은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에 대한 경험(혹은 깨달음)의 표현들이다. 이로써 옷토는 신비주의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의 길을 열어주었다.

2.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

화이트헤드는 런던대학에서 은퇴하고 하버드 대학 철학교수로 옮겨온 그 다음해인 1926년에 과정사상의 종교이해의 기초가 되는 책 <종교의 형성/Religion in the Making>이란 책을 발표했는데, 이 책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관계를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종교란 처음부터 분리되어 나온 것이 아니고, 인간의 자아와 세계에 대한 의식(우주관)의 고양과 함께, 원시종교에서 고도의 지적/합리적인 종교로 발전해 왔는데, 그 과정에는 여리 지역의 문화(종교, 철학, 윤리체계)들의 교합작용(mutual assimilation)을 통해서 발전해왔으며, 지금도 그 작용은 진행되고 있다. 그에 따르면,

1) 기독교와 불교는 모든 종교들 중에서 가장 발전/진화된 최고의 합리적 종교이다.
2) 불교는 종교의 기능/역할을 하는 형이상학 즉 철학적 종교인 반면, 기독교는 형이상학을 추구하는 종교이다(불교는 응용된 형이상학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사례이다)
3) 불타와 그리스도는 둘 다 깊은 영성체험에 기초하고 있으며, 불교는 악의 문제를 형이상 학적 원리로 해결하려 하는데 반해서 기독교는 선한 행위로 악을 극복하려 한다. .
4) 두 종교는 현재 쇠퇴의 과정에 들어있는데, 그 이유는 두 종교가 각기 상대방에게서 더 배우려 하지 않고 자기만족/자만과 자신의 사유의 틀 속에 안주하려하기 때문이다.

특히, 화이트헤드의 사상 중 불교의 사상과 유사한 개념들은 다음 셋으로 요약된다:
1)신의 존재를 무한한 잠재성(absolute wealth of unlimited potentialities)의 세계로 보아 불교의 공사상과 유비되는 점(그 본질은 언어나 개념으로 설명 불가능하다),
2)모든 현상들이 잠정으로 발생했다 살아지는 계기적 존재들로서, 또한 한 사물은 다른 사물의 자료와 원인이 되는 점(인과관계)을 들어, 사물의 비실체성(non-substance)을 말함으로써 불교의 연기설과 비자성성(제행무상/제법무아)과 유비되는 점을 들 수 있다.
3)신(제일 본성)과 우주(제이 본성)는 한 실재의 양면의 관계이다(색즉시공/공즉시색)

3. 다이세츠 스즈키(D.T. Suzuki, 1870-1966)

일본의 경도학파의 창시자 니시다 기다로(1870-1947)의 친구이자 선불교의 대가인 스즈키는 대승불교 특히 일본의 선불교를 서방세계에 알린 인물이며, 또한 동서의 철학/종교 사상을 잇는 가교역할을 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특히 1957년에 발표한 <기독교와 불교의 신비주의/Mysticism: Christian and Buddhism> 라는 책을 통해서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접근성과 상호교류의 가능성을 피력하였다. 스즈키는 기독교의 많은 영성가/신비가들 중에서 특히 14세기의 독일의 신비가 Meister Eckhart의 사상에서 선불교의 방법과 너무도 일치하는 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에크할트는 神(God)과 神性(Godhead)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다고 말했는데, 그에 따르면 “신성”은 모든 언어적 표현과 어떠한 상대적인 개념으로도 설명 불가능하며, 또한 거기에는 어떠한 행위(action/motion)도 부재한 절대 태허의 세계를 지칭한다. 따라서 스즈키는 에크할트의 “신성”의 개념은 선불교의 “절대무”의 개념과 너무나 가까운 개념으로서, 그는 에크할트가 기독교인지 선불교인이지 분하기 곤란하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독교의 신비가들이나 영성가들의 방법이 선불교와의 대화에 중요한 촉매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4.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

20세기 중반에 들어서 기독교 신학자로서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에 지대한 관심을 기우린 사람은 폴 틸리히이다. 그는 기독교의 인격주의적 신관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존재론적인 신관으로 바꾸었다. 그에 따르면 신은 모든 존재들 중의 최고 존재가 아니라, 모든 존재를 존재 가능케 하는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를 지칭한다. 그래서 그는 신을 "존재 자체"(Being-itself), "존재의 근거" (Ground of being), “존재의 심연”(Abyss of being) 등으로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존재자체로서의 신은 “이것이다 저것이다. 있다 없다” 란 어떠한 상대적인 존재론적 개념이나 언어로도 설명하기 블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어떠한 최상급의 개념이나 언어로 표현해도 그것은 신의 절대성을 훼손하거나 제한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신에 대한 모든 표현들은 상징에 불과하다.(예를 들면, 아버지, 왕, 심판자, 구원자 등등). 틸리히의 신의 존재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이해는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틸리히는 1960년에 8주간에 걸친 일본 방문을 통하여 스즈키 박사를 비롯하여 불교학자 및 선승들과 신토교의 지도자들과 교제면서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1960년에 <기독교와 세계종교들과의 만남>이란 책을 저술했으며, 거기에서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 문제를 심도있게 취급했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와 불교의 특색 및 큰 차이점은 기독교의 인격주의적 성향과 불교의 비인격주의적 성향을 들수 있는데, 그는 기독교의 신비주의자들에서 초인격주의적 색체를 발견할 수 있음을 말하고, 동시에 기독교 역사 속에는 불교의 “절대무”를 지칭하거나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개념들이 다분히 있음을 언급했다. 이로서 신비주의가 양 종교의 공통성/접촉점임을 알수있다.

5. 토마스 머턴(Thomas Merton, 1916-1968)

20세기 사막의 교부라 불리는 머턴은 1941년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어렵게 얻은 뉴욕의 한 대학교 교수직을 포기하고, 켄터키 주에 있는 엄률수도원(Trappist Monastry)에 들어가 일생도안 명상과 수도생활을 하며,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에 관한 많은 저술을 하는 한편, 전쟁과 폭력의 근절/평화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종교간의 대화 특히 기독교와 선불교와의 대화와 상호교섭의 문제를 숙고했다. 머턴은 스즈키 박사와 틱낫한과의 교제를 두텁게 가지면서, 장자의 도사상과 선불교를 깊이 연구하여, <(기독교)신비가와 선의 대가들> 그리고 <장자의 도>란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영성수행의 경험을 통하여 기독교 신비가들의 영적 수행의 방법과 선불교의 수행의 방법이 근본에 있어서 다른 것이 아님을 발견했다.

선불교와 기독교 신비주의: 선불교는 중국의 당나라 시대(6세기)에 인도의 달마 대사에 의해서 처음 소개되었으며, 후에 중국의 도가 사상과 결합하여 동북아 지역의 토착불교로 발전하여, 중국, 한국, 일본에서 꽃을 피우게 되었다. 선불교의 근본정신은 불입문자, 교외별 전, 직지인심, 견성성불(不立文字, 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로 요약된다. 중국의 선불교는 일대조 달마를 필두로 혜가, 승찬, 도신을 거쳐 5대조 홍인에 이르러, 6대조를 뽑는 과정에서 혜능의 선시가 신수의 것을 능가하여 혜능이 6대조로 피택됨으로써 절정에 이른다.

머턴은 선(Zen)은 추상적인 형이상학도, 신학/철학도, 이론적인 명제도 아니며, 의식과 앎의 굴레(속박)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행위로서 “구체적인 살아있는 존재론”라고 정의내렸으며, 이러한 방법은 기독교 영성가/신비가들이 추구하던 방법들과 매우 유사 내지 일치함을 발견했다. 머턴은 불교와의 접촉없이 기독교를 잘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자신은 불교의 조명 없이는 기독교의 진리들을 잘 설명하기란 불가능할 것임을 피력하기도 했다. 머턴은 기독교 영성가로서 선불교에 매료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6. 류영모(柳永模, 1890-1981)

다석(多夕) 류영모는 한 평범한 과학도로 시작하여, 동서의 종교 사상들에 대한 부단한 연구와 수행에 의한 깨달음을 통하여, 세계(인류)의 정신문화의 원천인 유.불.선.기(기독교)의 상호 회통과 창조적 조화에 의한 웅대한 영성적 고봉을 이룩해 낸 특이한 인물이다.

류영모와 연경반: 류영모는 16세의 소년시절에 기독교를 접한 후 신앙인의 삶을 견지하면서도 그 울타리에 갇혀있지 않고, 한국의 전통종교들과 특히 불교에 깊이 심취하여, 궁극적인 진리에 도달하려는 구도자의 길/삶을 살았다. 그는 서울 YMCA 총무였던 현동안의 초청으로, 일종의 종교강좌에 해당하는 “연경반”을 맞게 되었으며, 1928년에 시작하여 1963년까지 약 35년간 지속했다. 거기서는 기독교의 성경만이 아니라, 동서의 고전들도 강의했는데, 1959년에는 <노자>를 강의 했고, 같은 해에 <반야심경>을 강의했다. 그리고 그가 남긴 글들은 대부분 한시 형식으로 일기처럼 쓰여졌는데, 그의 제자들 중 하나로 연경반에 참여했던 박영호씨에 의하여 풀이되어 <다석전집>으로 출판되었다.

1) 공(空)과 하느님: 공(빔)과 하느님은 참(영적/궁극적/영원한) 실재를 지칭한다
류영모는 불교의 공(空)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그 근본에 있어서 동일한 내용으로 이해했다.그에 따르면 공(허공/빔/하늘)은 하나님의 마음을 지칭한다. 즉 공/허공의 상징은 진선미 곧 지극히 순수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움이다. 따라서 인간이 공/허공을 알고 마음에 품고 살 때 진실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석가는 빔이 내맘 안에, 내맘이 빔 안에 있음을 깨달았고, 예수는 하느님(아버지)이 내 안에, 내가 하느님(아버지) 안에 있음과 그 둘은 그 근본/본질에 있어 하나/같음을 깨달았다고 보았다. 이것을 깨달음이 참 깨침이다.

2) 탐진치 3독과 인간의 죄성: 다석은 인간의 고통/불행의 근본 원인은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수성(동물성)인 탐진치 3독으로 보았는데, 이것은 인간의 불행/타락의 원인을 교만과 탐욕/이기심에 근거한 죄성에 의한 것으로 보는 기독교적 인간이해에 대비된다.

3) 제나(selfish Ego)와 얼나(spiritual/enlightened Ego)
제나는 공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탐진치 3독을 버리지 못한 옛 인간, 옛 자아, 이기적 자아를 물적/육적인 자아를 지칭힌다. 반면에 공과 무상/무아의 진리를 깨닫고 탐진치 3독에서 해방된 자아를 얼나, 즉 영적인 자아, 득도 해탈 즉 참 깨침에 이른 자아로 보았다. 따라서 인간의 종교적 수행의 최종 목표는 제나에서 얼나로 다시 태어나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구원받은 존재가 되는 일이다.

4) 얼나의 현시자로서의 불타와 그리스도
류영모에 따르면 불타와 그리스도는 진정한/완전한 “얼나”의 경지에 도달했으며, 또한 얼나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알려준 지고한 스승/현자들이며, 따라서 참 얼나의 현시자들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이들의 가르침과 삶의 모범을 통해서 “얼나”로 태어나야 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류염모에 있어서는 불타와 그리스도는 대등한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5) 요컨대 류영모는 동양종교 특히 불교를 통해서 기독교를 이해하고 또한 기독교를 통해서 동양의 종교들과 특히 불교를 이해한 특이한 모델을 제시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현재 활동 중인 인물들: 아베 마사오, 한스 발덴펠스, 틱낫한, J. Hick, Marcus Borg 등.

결론: 불교와 기독교의 깊은 대화를 통한 두 종교의 접근과 제휴 및 융합의 가능성 모색

(1) 기독교와 불교를 친밀한 형제 종교로 만드는 일, 그래서 기독교적 불교도/불교적 기독교도(Christian Buddhist/Buddhist Christian)의 길을 가능케 함(류영모 모델),
(2) 여기에 유교와 도교 및 한국의 고유종교들을 융합하고 또한 유대교의 카발라, 이스람의 수피즘, 힌두교의 아드바이티즘(不二학파)도 포함시켜서 범세계영성종교(Universal Spiritual Religion)를 탄생시키는 일(한국의 고유철학인 한(韓)사상의 일즉다의 원리를 적용해서). 이것은 곧 종교간의 담을 헐고 전인류의 평화실현이란 큰 목표를 위해서 종교들이 긴밀히 협력/교류/ 연대함을 의미한다.

한국이란 나라에 일찍이 유불선이 들어왔고 근대에 기독교의 복음이 들어와 현재 불교와 기독교가 양대 종교로 자리하게 된 것은 이들의 영성을 융합하고 고양시켜서 범우주적인(전인류를 포괄하는) 영성적 종교를 탄생시키라는 사명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사료된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류의 평화실현의 가장 중요하고 바람직한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우주 전체를 하나의 몸(유기체/생명체)으로 보는 과정사상과 영성주의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이것은 곧 만유/만인을 차별없이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빠 하나님 신앙과 사도 바울의 만유안에 내재하시는 하나님 신앙(롬11:36, 엡4:6)의 귀결이 아닐까 사료된다.







기독교의 사랑(agape)과 불교의 자비(karuna)의 비교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아가페 "사랑"과 불교에서 강조하는 "자비"는 어떤 차이가 있으며, 또한 이 두 개념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공통점이란 자기 사랑이 아닌 철저한 "이타성"과 사랑의 대상에 대한 "무조건성"( unconditionality)과 "무제한성"(unlimitedness), 그리고 그 힘의 "강렬함" (intensity)으로 요약 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기독교의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과 그리스도의 마음에 근거하고, 불교의 자비는 불타의 마음과 깨달음의 지혜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하나님 및 그리스도의 마음과 불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며 어떻게 다른가? 하나님의 마음은 만인을 구원하시려는 무한한 사랑의 마음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만인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를 아낌없이 주는 자기 희생적 사랑의 마음이고, 불타의 마음은 색계(현상세계)와 공계(본질세계)의 동일성 즉 불이(non-difference)의 진리인 "연기의 법측"을 간파한 무한한 지혜로부터 나오는 마음으로서, 만인을 무지와 고통으로부터 제도(구원의 길로 인도)하려는 마음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의 "사랑"인 하나님(그리스도)의 마음과 불교의 자비인 불타의 마음은 다 같이 "만인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는 마음"이란 외연적인 공통점/유사성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