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2

Park Yuha이화여대가 주최/주관하는 위안부문제국제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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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책정리하면서 서울시와 이화여대가 주최/주관하는 위안부문제국제포럼을 별 기대없이 듣다가 꽤 놀랐다. 이제까지의 연구와 운동의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김은실, 야마시타영애, 정희진 선생.
줌으로 진행하면서 서울시 유튜브로 현장중계 하던데, 재공개하지는 않는다고. 왜 그래야 했을까.
반가우면서도 너무나 늦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내가 <제국의 위안부>에서 운동방식에 의문을 던진 게 벌써 9년전이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큐<침묵>을 제작한 박수남 감독은 정대협 대표였던 윤정옥 교수등이 자신을 입국거부하도록 했다면서 격앙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위안부할머니들을 불러 공청회를 열기도 했던 일본인 여성조차 아시아여성기금 관계자라는 이유로 입국거부당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정대협이 ‘정의’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입국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입막음에 가담하는 식으로 누군가를 억압해 온 세월도 벌써 사반세기다. 이들이 사과하는 날은 언젠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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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위안부 연구사에서 내가 알기론 처음인,중대한 전환의 국면을 만든 오늘의 면면들이 내가 법정에 갇힌 지 8년이 넘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정희진 선생은 한때 나를 비판했는데 반론 이후론 소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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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표자가 갑자기 ‘<제국의 위안부>사태’ 운운하며 비판적으로 언급하던데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게 분명한 언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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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진에 참석자의 불만 가득한 댓글이 있다. 오늘 포럼의 분위기를 아실 수 있을 것.

















205You, Soon Ae Choi, 이동해 and 202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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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ng Hwan Park
    정영환씨가 국적 문제로 입국거부 당한건 그렇게 비난하던 사람들이 자기들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입국은 또 막았군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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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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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지숙
    [오늘도 무사히 ]란 사람은 아주 불만족스러운가 봅니다. 혼자 도배를 했네요 ㅎㅎ
    그래도 제대로 발을 디딘것이라면 점차 변화가 생기길 기대해도 좋을듯합니다.
    3
    • Park Yuha
      임지숙 네, 많이 늦었지만 민족문제 이전의 여성문제로 보자는 제안이기도 했죠.
      2
  • Soon Ae Choi
    야마시타영애씨의 이번에 나온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위안부 문제에 민족주의 프레임을 덧씌운 페미니즘운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네요.
    5
    • Park Yuha
      Soon Ae Choi 네.야마시타 선생이 그간의 심경을 말했는데, 글 아닌 말로 이렇게 기탄없이 얘기하는 건 처음 들었네요.
  • 홍승기
    미리 알았다면 들었을 텐데 ... 아쉽습니다
  • Alexander Park
    한 시기를 지배하던 에피스테메가 변화 하기 시작했다는 징후로 읽힙니다
    시대가 과거 안식 체계와 단절되기 시작했다는 바람이 불기 시작한 듯 싶습니다
    박선생님이 여린 나비 날개로 일으킨 미세 공기 흐름이 이제 바람이 되어 불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언제고 여린 나비 날개 짓이 태풍이 되어 수구 파시즘 민족주의를 극복한 새 시대를 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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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00:002,727 읽음








우파계 종교의 결집, 일본을 지키는 모임

“아사히나 씨는 본래 평화운동에 열심이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세 신궁(伊勢神宮)을 참배한 후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메이지 신궁의 다테 다쓰미(伊達巽) 신관과 도미오카하치만 궁(富岡八幡宮)의 도미오카 모리히코 신관, 그리고 다니구치 마사하루(谷口雅春) 선생님 같은 분들에게 ‘일본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자고 호소했습니다. 그 모임이 커지면서 각 종교단체 지도자나 사상가, 문화인이 가세했고 결국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결성된 것입니다.”

무라카미가 말하는 다니구치 마사하루는 신흥종교단체인 ‘생장의 집(生長の家)’의 교조다. 1893년 효고 현(兵庫縣)에서 태어났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30년에 생장의 집을 창설한 괴인물이다. 전쟁 때는 ‘일본 정신의 현현(顯現)’을 호소하며 군부의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급속히 신자를 늘려나갔다. 전후에는 한때 신자 수가 300만 명을 웃돌 정도로 교세를 자랑했고, 1964년에는 정치조직으로서 ‘생장의 집 정치연합’, 약칭 ‘생정련’을 조직하여 정계 진출을 도모하기도 했다.


생장의 집 교조, 다니구치 마사하루(谷口雅春)



다시 말해 생장의 집은 우파 경향이 매우 강한 거대한 신흥종교단체로, 한때는 현실 정계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사실 무라카미 마사쿠니 자신도 과거 ‘생장의 집’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자민당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한 ‘생장의 집’계 정치가였다.

생장의 집 교조인 다니구치 마사하루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의 결성에 크게 공헌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 점에 관해서는 좀 더 정확하게 전후 관계를 확인해두고자 한다.

다음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의 설립에 크게 이바지한 도미오카 모리히코의 뒤를 이어 도미오카하치만 궁의 신관이 된 사와타리 모리후사(澤渡盛房)가 1985년, 《조국과 청년》(같은 해 8월호)에 게재한 글을 인용한 것이다. 《조국과 청년》은 생장의 집 출신자들로 이루어진 우파단체 ‘일본청년협의회’가 발행한 기관지다. 내용이 조금 길지만, 생장의 집이라는 신흥종교와 신도(神道) 일본 고유의 민족종교. 민간신앙에 외래종교인 유교•불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했으며, 신사(神社)와 왕실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계 종교단체가 전쟁 후 일본 우파 운동의 원류로서 어떻게 자리 잡아가는지 그 과정을 엿볼 수 있으므로 꼭 읽어주기 바란다.




1973년경의 일이었다. 도미오카하치만 궁의 선대 도미오카 모리히코 신관이 신도 이세의 숙소에서 가마쿠라 엔카쿠지의 아사히나 소겐 관장과 함께 묵을 때였다. 그들은 일본의 현재를 걱정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중략)

두 사람이 앞으로 행동을 일으키려 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무엇보다 메이지 신궁 신사의 경내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다테 다쓰미 신관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다테 신관은 도미오카 신관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유식자 여러 사람을 찾아뵙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방문한 이가 바로 생장의 집 다니구치 마사하루 총재였다.

당시 나는 도미오카 신관을 따라다니는 일이 많았는데 어느 날, 아사히나와 도미오카 두 신관이 하라주쿠(原宿) 본부로 다니구치 총재를 방문했을 때 나도 함께하였다. 두 신관께서는 다니구치 총재에게 방문 목적을 교대로 이야기하면서 세상을 걱정하고 종교심의 환기를 논하였다. 정신운동의 필요성에 관해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때 다니구치 총재 입에서 강력한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생장의 집이 두세 개쯤 사라지더라도 조국 일본이 본래 모습을 되찾기만 한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 우리는 그런 각오와 굳은 결의로 생장의 집을 거점으로 종교활동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협력해야 할 일일 뿐만 아니라 생장의 집 활동 자체가 목표하는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실로 애국자의 잠언이었다. 이에 힘을 얻은 두 신관은 이후 각자 여러 유식자를 방문하여 설득한 결과, 1974년 4월 2일 메이지 기념관에서 ‘일본을 지키는 모임’을 발족하게 되었다.




신도 종교의 중심적 존재라 할 수 있는 메이지 신궁. 그리고 전후 일본 우파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다니구치 마사하루가 이끄는 거대 신흥종교 ‘생장의 집’. 양대 진영의 지도자들에게 우파계 종교인이 호소함으로써 두 진영의 두터운 지원을 받으며 발족한 ‘일본을 지키는 모임’. 거듭 말하지만 이 구도는 지금도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다.

즉, 일본회의라는 존재의 배후에는 신사본청을 축으로 하는 신도 종교단체와 생장의 집의 그림자가 조직과 인맥에 드리웠고, 어쩌면 자금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일본회의의 정체>시리즈 연재 보러 가기 ▼



일본회의의 정체

저자 아오키 오사무

출판 율리시즈

발매 2017.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