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1

알라딘: 내 인생의 탐나는 영혼의 책 50 - 50 Spiritual Classics by Tom Butler Bowdon

알라딘: 내 인생의 탐나는 영혼의 책 50


내 인생의 탐나는 영혼의 책 50 - 마음의 평화에서 진리의 깨침까지 동서양 영혼의 탐색 
톰 버틀러 보던 (지은이),오강남 (옮긴이)흐름출판2009-03-30

원제 : 50 Spiritual Classics by Tom Butler Bowdon





Sales Point : 646 

 10.0 100자평(1)리뷰(2)




- 절판 확인일 : 2022-12-21


546쪽
책소개

영혼의 세계에 눈을 뜨고 진정한 삶의 목적을 찾게 해주는 명저 50권을 담은 책으로, 영국의 인성계발 전문가 톰 버틀러 보던의 자기계발 3부작의 완성편으로 '내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내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에 이어 완간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자아완성에 이르는 길을 밝히기 위해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 동양의 노장사상과 선사상, 신비주의와 뉴에이지 종교 철학은 물론 심리학 물리학 문학 등 2000년의 시공간을종횡무진 누비며 마음의 평화와 진정한 삶의 목적을 깨우치는 과정을 보여준다.


목차


이 책의 구성 ── 4
들어가는 글 ── 8

│1부│인식의 문을 열다 :그대 자신이 되라
chapter 1 리처드 바크, 『갈매기의 꿈』 ── 31
chapter 2 프리초프 카프라, 『물리학의 도』 ── 39
chapter 3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익스틀란 기행』 ── 49
chapter 4 장자, 『장자』 ── 57
chapter 5 G. I. 구르디예프,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 ── 67
chapter 6 올더스 헉슬리, 『인식의 문』 ── 77
chapter 7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이런 일을 생각하라』 ── 87
chapter 8 로버트 M. 퍼시그, 『선과 오토바이 정비술』 ── 97

│2부│행동하는 영성(靈性): 지금 이 순간, 나를 살아라
chapter 9 페마 초드론, 『그대에게 두려움을 주는 곳들』 ── 109
chapter 10 모한다스 간디, 『자서전』 ── 119
chapter 11 칼릴 지브란, 『예언자』 ── 129
chapter 12 댄 밀먼, 『평화로운 전사의 길』 ── 139
chapter 13 틱낫한, 『마음 다함의 기적』 ── 149
chapter 14 돈 미겔 루이스, 『네 가지 약속』 ── 159
chapter 15 스즈키 순류, 『선심 초심』 ── 167
chapter 16 에크하르트 톨레,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 177
chapter 17 쵸감 트룽빠, 『영적 물질주의를 해부하다』 ── 187

│3부│경험의 다양성 : 그들이 만난 신들

chapter 18 존 니이하르트, 『블랙 엘크 말하다』 ── 201
chapter 19 에픽테투스, 『엔키리디온』 ── 209
chapter 20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 『안식일』 ── 219
chapter 21 윌리엄 제임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 227
chapter 22 카를 구스타프 융, 『기억, 꿈, 성찰』 ── 237
chapter 23 C. 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 247
chapter 24 존 오도나휴, 『아남 카라』 ── 255
chapter 25 헬렌 슈크먼·윌리엄 테트포드, 『기적 수업』 ── 265
chapter 26 이드리에스 샤, 『수피의 길』 ── 275
chapter 27 스타호크, 『나선무(舞)』 ── 283
chapter 28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어느 요기의 자서전』 ── 293

│4부│위대한 영적 삶 :그들은 어떻게 깨달았나
chapter 29 무함마드 아사드, 『메카로 가는 길』 ── 305
chapter 30 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 315
chapter 31 G. K. 체스터튼,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 325
chapter 32 람 다스, 『지금 여기 있으라』 ── 335
chapter 33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 345
chapter 34 마저리 켐프, 『마저리 켐프의 서(書)』 ── 355
chapter 35 말콤 엑스, 『말콤 엑스의 자서전』 ── 365
chapter 36 W. 서머싯 몸, 『면도날』 ── 377

│5부│신과의 관계 및 삶의 목적 : 신에게 이르는 길
chapter 37 가잘리, 『행복의 연금술』 ── 389
chapter 38 다그 함마슐드, 『이정표』 ── 399
chapter 39 다니엘 C. 매트, 『에센스 카발라』 ── 407
chapter 40 마이클 뉴턴, 『영혼들의 여행』 ── 417
chapter 41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城)』 ── 427
chapter 42 마더 테레사, 『단순한 길』 ── 437
chapter 43 닐 도널드 월쉬, 『신과 나눈 이야기』 ── 447
chapter 44 릭 워렌, 『목적이 이끄는 삶』 ── 457
chapter 45 시몬 베유, 『신을 기다리며』 ── 467
chapter 46 에마누엘 스베덴보리, 『천국과 지옥』 ── 477

│6부│인류의 영적 진화: 우주 속의 한 영혼
chapter 47 리처드 모리스 벅, 『우주 의식』 ── 489
chapter 48 제임스 레드필드, 『천상의 예언』 ── 499
chapter 49 켄 윌버, 『모든 것의 이론』 ── 507
chapter 50 개리 주커브, 『영혼의 자리』 ── 517

연도별로 살펴본 탐나는 영혼서 50 ── 527
옮긴이 에필로그 ── 529
옮긴이가 추천하는 ‘영혼을 일깨우는 고전 50선’ ──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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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자기연민의 무게를 줄이세요
- 이미령 (번역가, 책 칼럼니스트) 




저자 및 역자소개
톰 버틀러 보던 (Tom Butler Bowdon)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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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권의 고전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이자 큐레이션.
1967년 호주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영국 옥스퍼드에서 거주하고 있다. 시드니대학교와 런던정치경제대학교를 졸업했다.
현대인의 삶에 가치와 깊이를 더하는 지식의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는 톰 버틀러 보던은 철학, 경제학, 영성을 망라한 다양한 분야에서 명저들을 가려 뽑은 ‘50권의 고전 시리즈’로 유명하다. 《USA 투데이》는 이런 그를 두고 “이런 종류의 문헌에 대한 진정한 학자”라고 평했다. 현재 이 시리즈는 전 세계 23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5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다.
이 책 《세계 경제학 필독서 50》은 2018년 북미 최고의 출판 시상식인 엑시엄 비즈니스 북어워드에
서 비즈니스 레퍼런스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또한 이 책의 첫 번째 시리즈인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은 2004년 미국 벤저민 프랭클린상을 수상하며 미국 주간지 《포워드》 선정 ‘올해의
책’이 되었다. 접기

최근작 : <세계 경제학 필독서 50>,<세계 철학 필독서 50>,<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 … 총 72종 (모두보기)

오강남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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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종교학과 명예 교수. 우리 시대 대표적 비교종교학자인 오강남은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McMaster University)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 등의 객원교수, 북미 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으며,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의,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로 문자주의에 빠진 한국 기독교... 더보기

최근작 : <오강남의 생각>,<살아 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코로나 이후 예배 설교 미래 리포트> … 총 70종 (모두보기)
인터뷰 : 예수는 없지만 예수는 있다 - 2002.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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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진화사고>,<어린이의 문장>,<라이팅 유니버스>등 총 243종
대표분야 : 마케팅/브랜드 6위 (브랜드 지수 60,764점), 리더십 9위 (브랜드 지수 40,830점), 에세이 14위 (브랜드 지수 411,072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마음의 평화에서 진리의 깨침까지 동서양 영혼의 탐색
영혼의 세계에 눈을 뜨고 진정한 삶의 목적을 찾게 해주는 불후의 명저 50권을 담은 책, 영국의 인성계발 전문가 톰 버틀러 보던의 자기계발 3부작의 완성편으로 '내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내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에 이어 완간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자아완성에 이르는 길을 밝히기 위해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 동양의 노장사상과 선사상, 신비주의와 뉴에이지 종교 철학은 물론 심리학 물리학 문학 등 2000년의 시공간을 종횡무진 누비며 마음의 평화와 진정한 삶의 목적을 깨우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는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을 겪지만 원하는 것을 얻어도 고통을 겪는다.”
- 댄 밀먼 -

자아완성에 이르는 마지막 길, 영혼에 눈뜨기
영혼의 세계에 눈을 뜨고 진정한 삶의 목적을 찾게 해주는 불후의 명저 50권을 담은 책, 『내 인생의 탐나는 영혼의 책』이 출간되었다. 영국의 인성계발 전문가 톰 버틀러 보던의 자기계발 3부작의 완성편으로 『내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내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에 이어 완간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자아완성에 이르는 길을 밝히기 위해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 동양의 노장사상과 선사상, 신비주의와 뉴에이지 종교 철학은 물론 심리학 물리학 문학 등 2000년의 시공간을 종횡무진 누비며 마음의 평화와 진정한 삶의 목적을 깨우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는 야망이나 목표를 성취하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잘나가는 젊은 심리학과 교수로 명예와 직위 돈까지 쥐었던 리처드 앨퍼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삶에 뭔가 빠져있다는, 삶의 껍데기만 긁어대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다른 이들은 이러한 내면의 소리를 애써 외면하지만 그는 내면의 길을 따라 하버드 교수에서 람 다스란 이름을 가진 정신적 지도자, 영혼의 구루로 다시 태어났다'지금 여기 있으라'. 성아우구스티누스 역시 그러했다. “학문이나 지성이란 질문하고 의심받게 하는 법만 가르칠 뿐 진리를 알게 하지 않는다는 것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행복은커녕 더 불행해질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백록'
이처럼 인류는 계속 진화해 왔고 발달하고 있지만 1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 지점에서 방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책은 물질의 안정도 방대한 지식도 우리 삶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 우리는 더 크고 중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

진정한 삶의 호흡, 영혼으로의 숨쉬기

스스로 분투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다 어느 정점에 이르면 반드시 묻게 되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내 삶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영혼의 길을 따라갔던 이들은 이러한 질문이 영혼의 창을 여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창조하려 하는지를 알면 알수록 우리의 성공은 더욱 진실하고 오래갈 수 있게 된다”<신과의 대화 451p>는 사실을 말해준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호흡을 해야 한다. 지금껏 우리는 생물학적인 숨쉬기만을 알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영혼으로의 숨쉬기(Spiriual), 즉 영성의 회복이 우리의 본질을 회복하여 살아나게 할 뿐 아니라 정말로 인간답게 하는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만약 자신의 삶에 숭고하고 신비한 그 무엇이 빠져있다고 느끼고 있다면, 살아가는 것이 일정한 틀에서 몽유병 환자처럼 배회하게 하는 습성을 지녔다고 느끼고 있다면 이 책에서 모두가 목말라 하는 더 큰 풍요로움에 이르는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인식의 문에서 인류의 영적 진화까지
책은 먼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는 인식의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하여 2부에서는 ‘지금 여기에 충실하라’는 틱낫한과 돈 미겔 루이스의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 법과 올바른 원칙에 충실하는 매일의 노력을 소개한다. 이어 3부에서는 요가난다의 요기, 인디언 블랙엘크의 경험, 에틱테투스의 스토아, 이드리에스 샤의 수피 등이 만난 신을 통해 영적경험의 다양성을, 4부에서는 영적 깨달음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람 다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등을 통해 살펴본다. 5부에서는 <영혼들의 여행>과 <신과 나눈 이야기> <목적이 이끄는 삶>을 통해 신과의 관계 및 삶의 목적을 탐색해보고 끝으로 6부에서는 ‘우리가 인간의 경험을 가진 영적 존재들’이라는 <영혼의 자리>, 의식이 열리면서 직접적인 신의 계시를 받는 이가 늘어갈 것이라는 <우주의식> 등을 통해 인류의 영적 진화를 얘기해준다. 우리는 이를 통해 만물이 분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 우주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 오만과 무지의 틀을 벗어날 때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색적인 영적 지도자들
책을 보면 이러한 영적 체험을 하는 이들이 종교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나 상담심리학 출신들 (영혼들의 여행의 마이클 뉴턴, 기적수업의 헬렌 슈크먼, 지금 여기 있으라의 람 다스, 우주의식의 리처드 모리스 벅) 물리학(프리초프 카프라 )이나 화학(캔 윌버), 인류학(카를로스 카스타네다) 법학자(행복의 연금술의 가잘리)들에게도 찾아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영혼들의 여행>은 정신과 의사로서 뉴턴이 내담자와의 상담을 기초로 전생과 환생 사이를 주제로 우리가 여러 생을 거듭해서 태어나고 있음을 말해주고 우리가 이 삶을 시작할 때 이미 과제를 갖고 태어난다는 것을 말해준다.
'선과 오토바이 정비술'의 저자는 생화학 중퇴였다. 그는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기계와 쓸모없는 잡동사니의 차이는 모두 질에서 비롯되지만 정작 우리는 세계를 실제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사랑과 질 같은 것은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옵션처럼 취급한다는 것을 호소력있게 말한다. 의식을 포함한 우주의 설명체계를 모색한 '모든 것의 이론'의 저자 캔 윌버 역시 의과대 생화학 출신이다.

과학자와 영적 에너지의 만남
현대과학의 극단으로 가면 영적이고 신비한 개념과 만나게 되며 또한 현대과학이 이를 해석해주는 방편이 되고 있다. 먼저 물리학의 도를 보자. 프리초프 카프라는 입자물리학 연구를 하다가 물리학과 동양 종교에서 제시하는 물질과 실재의 유사성에 충격을 받아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미 2400년 전의 노장사상이 첨단 물리학에서 발견한 사실들을 오래전부터 신화와 시의 방식을 빌어 창조세계의 구조를 묘사했음을 알게 되었다. 양자물리학 관점에서 보면 사물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에너지로서, 세계의 본성이 고정성이 아니라 영원한 움직임을 밝힌다. 그리고 원자핵과 원자 크기의 질량을 통해 물질 허공 사이의 장을 의식하게 되고 허공은 살아있는 것이 되고 물질이란 허공의 일시적 발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아원자가 입자와 파동으로 되어 있으며 이것이 현대 정신세계에서 밝히는 에너지, 기氣의 이론적 근거를 설명해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영적인 길에서 마주치는 이정표들
보이지 않는 질서를 인정한다 : ‘보이지 않는 질서’와 조화를 이룰 때 삶이 더 좋아지고 의미있게 된다
삶의 목적을 인지한다. : 사실은 우리가 신의 창조를 돕는 동역자라는 것, 신의 도구가 됨으로써 오히려 잠자던 잠재력을 극대화 할수 있다는 것, 자신을 아는 지식이란 신이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는지 발견하는 것
작은 나를 버린다. : 이기적 자아를 잃어버리는 것만이 가장 큰 힘을 얻는 길이라는 것
현재에 살아있으라 : 삶의 단순한 기쁨을 되찾는 것,
이분법 너머를 본다 : 선과 악, 행 불행의 이분법을 넘어 ‘하나됨’을 인식할 때 세계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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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찾는 영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방황하던 사람들에게,이 책은 우리보다 앞선 자들이 만난 가르침 혹은 지혜의 말씀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어 무지로 인해 에둘러 돌아가는 고생을 피할 수 있게 할 것 같다.  
매화향기 2016-12-17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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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50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아니 젊은 사람도 자기계발을 위해서 책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지금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위사람을 찾아가 이야기를 해본다. “제가 지금 이런 상황인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죠?”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훈계조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개인적인 수다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서점을 찾아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수많은 책들이 모두 자기를 사가라고 어우성치는 상황에서 어떤 책이 좋은 지 알 길이 없다. 게다가 책 소개나 서문을 읽어보면 이건 정말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귀하고도 귀한 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막상 책을 사서 몇 장을 읽다보면......쩝. 그러다보니 책을 사기가 부담스럽고 서점을 간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요인이 된다. 내 돈 내고 책 사면서 스트레스 받는다는 것. 짜증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자기계발도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책은 실제 생활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 말도 안 되는, 다시 말하면 내용은 그럴듯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책이며, 책을 팔기 위해 쓰잘 데 없는 말만 번지르르하게 적어놓은 책이란 선입감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두 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신문광고나 베스트셀러라고 하기에 책을 샀다가 재미 못한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실천하려고 했지만 도중에 실패한 사람들이다. 뭔가 하겠다고 했다가 실패한 경우에 그 책임을 어딘가에 넘겨야 하는데 많은 경우 자신의 의지보다 책 내용이 허망하다고 그 원인을 책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책을 권할 경우, 대부분 자기계발서를 추천한다. 이런 종류의 책에는 기존에 나온 내용을 저자가 한번 되씹어 현실에 적응 가능하도록 해석한 것들이 많고, 그렇기에 독자가 책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중에는 말 같지 않은 내용으로 범벅이 된 책도 있긴 하지만, 다른 종류의 책은 안 그런가. 어차피 어떤 종류의 책이든지 간에 모든 책이 다 자신에게 맞는 경우는 없다.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50> 이 책에는 기존에 나온 자기계발서 중에 독자가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는 책이 많다. 아니 많다는 것 조금 잘못된 표현인 것 같고, 책에 소개된 책 중에서 내가 읽어 본 책들은 모두 다 그렇다. 책 내용들이 자기계발분야에서 거의 고전처럼 대우받는 책들이고, 내용도 무척 알찬 것들이다. 이런 책들은 저자가 한두 가지의 요령을 정리한 게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연구하고, 조사한 방대한 자료와 경험들을 책 한권에 압축해 놓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책을 사서 아까운 경우는 책 내용의 깊이가 없거나, 자신이 원하는 주제와는 다른 저자의 신변잡기 같은 내용들로 가득 차 있을 때다. 그러나 책 한권을 읽고 가슴 뿌듯한 경우는, 비록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 내용일지라도, 책 내용에 깊이가 있고, 자신의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이 많은 경우다. 이 책에 소개된 책들 대부분이 바로 그런 책들이다.

왜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냐고? 다행히도 한국말로 번역된 책들이 많아 대부분 다 읽어본 책들이고, 누군가 나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반드시 자신 있게 추천하는 책들이기 때문이다.

뭔가 좋은 책을 찾고 싶으면 큰 서점에 가서 발 아프게 돌아다니지 말고(물론 그것도 운동에는 좋기에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선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아마 여기에 나와 있는 책 제목들과 요약내용만 알아도 어디 가서 책 안 읽는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 이다.

- 접기
일열 2009-04-0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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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 여전히 나는 누구인가? 



심리학 - 여전히 나는 누구인가?
파릇한 꿈으로 가득했던 내 청춘의 시기에 어디에서 적절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 아직도 의문이지만 책에 푹 빠져 지낸 시절이 있었다. 나고 자랐던 고향을 떠나 처음 시작하는 타향살이에서 오는 공허함도 한몫했겠지만 광주 518이라는 시대적 상황도 무시하지 못할 내 인생의 특별한 경험이었다. 바로 그 시기 한 계절을 도서관 구석에서 책에 빠진 것이다. 인간, 심리, 철학 등 그때 읽었던 책들이 그 후 내 삶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

대학 진학을 생각하며 전공을 선택할 때 고민의 범주에 있었던 분야가 철학, 역사, 심리학이었다. 모두 사람과 관련된 분야라 그리 오랜 시간 고민하지 않고 심리학을 선택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의문이 당시 가장 큰 관심사였기에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내가 접한 심리학은 고등학교 생물시간의 연장으로 뇌구조, 신경발달과정, 파플로프의 조건반사와 같은 하등의 관계도 없어 보이는 수업시간이 지루하지만 했다. 정작 관심이 있었던 사람의 마음과 정신활동에 대해 이해를 하기에는 너무나 내 준비가 부족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의 영향인지 아직도 심리학이라고 하면 다가서기 벅찬 무엇인가가 버티고 있는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내 관심사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활동의 결과 그리고 사람이 특정한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인지에 멈추어 있는 지금 이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일지 모른다.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은 바로 멈추어 있던 관심사를 다시 한발 내딛게 하는 동기부여를 하고 있다.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은 출발한지 100년이 되는 심리학에 대해 전반적 이해를 돕도록 그동안 심리학에 관련된 저서들을 모우고 선택해서 우리에게 소개하는 책이다. 이 책은 인간의 본성과 동기에 감춰진 열쇠를 찾는 나는 왜 이렇게 행동하는가, 행복과 정신 건강의 함수관계 기분을 바꾸면 행복이 보인다, 자아와 성격이란 무엇인가의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무의식을 깨워라, 인간관계에 대한 나는 왜 그 사람을 사랑하는가, 뇌와 관련된 뇌가 마음을 결정한다, 21세기 창의성과 의사소통 능력에 대한 대화와 설득의 시대 이렇게 일곱 가지로 50권에 이르는 책을 분류하고 있다.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은 한눈에 심리학의 관심사가 어떻게 변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탁월한 성과를 이룩한 심리학자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심리학 전공자들을 위한 책이 아닌 심리학이 무엇인지 알고 싶거나 심리학의 흐름에 관심이 있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일반인의 관점에서 대중적인 심리학 저서들을 소개하고 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 인간의 성생활과 관련된 알프레드 킨제이의 연구나 새롭게 심리학의 주요 관심사로 중심으로 등장한 가드너, 길버트, 골먼, 셀리그먼 등의 연구 성과를 이 책 한권으로 볼 수 있다.

[100년 동안 이어져온 심리학의 계보를 한눈에 꿰뚫고 인간 이해의 혜안을 주는 탁월한 책이다. 특히 인간을 탐험했던 다양한 연구자들의 활동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즐거움은 이 책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이다. 심리학이 무엇인지 알고 싶거나 현대 심리학의 연구 흐름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라고 이 책을 추천한 황상민(연세대학교 심리학과)교수의 말에 나 역시 적극 공감 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이러한 심리학 관련 저서를 소개하며 그 저서들의 핵심을 담고 있는 문장을 통해 저서를 집필한 인물, 중심주제, 심리학 발전에 미친 영향 등을 전해주고 간추린 평을 통해 저자가 그 책을 보는 종합적인 분석을 내 놓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권의 책으로 심리학자의 다양한 관심사와 그의 업적을 한꺼번에 살필 수 있다는 장점이 돋보인다. 심리학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안내서라 생각된다.

역사 이래 수천 년을 이어온 관심사인 사람의 마음, 정신활동, 행동의 결정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심리학자나 현대 심리학이 어떤 결론을 내리든지 여전히 한 개인으로서는 자기 인식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을 올바로 이해하려는 이러한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과 범위가 늘어났다는 점은 대단한 성과라 생각한다.

이 책은 사람이나 인간관계, 심리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볼 만한 책이다.


-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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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계발 분야에서 주목받는 전문 집필가. 그의 첫 번째 책인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은 “가능성의 학문에 결정적인 길잡이가 됐다”는 호평과 함께 벤야민 프랭클린 상을 수상했으며 ‘Forward’지가 선정한 ‘올해의 책’에 뽑혔다. 자기계발과 성공철학, 심리학, 영혼을 울리는 고전 등 인간의 삶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학문 분야의 명저들을 가려 뽑고 그 안내서를 만들기 위해 수백 권의 책을 읽고 분석하는 데만 10여 년을 보냈다. 이후 ‘내 인생의 탐나는 영혼의 책 50’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큰 반향과 함께 전세계 17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런던경영대학과 시드니대학을 졸업했으며 영국과 호주를 오가며 꾸준히 집필과 세미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기계발 및 성공철학에 대한 웹사이트(www.butler-bowdon.com)를 운영하고 있다.

○ 책 속으로

일반적으로 개인의 발달을 자기계발이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기적 자아를 만족시키는 수준에서 끝나는 수가 많다. 참된 개인의 진화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화상, 정신적 습관, 틀 같은 것을 없애나가는 것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런 것이 주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 평화로운 전사의 길

뭔가를 움켜잡으려는 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추상적인 미래를 위해 살아가지만, 영적인 성취를 이룬 사람은 지금의 소중함을 안다. – 서문

자신을 바라보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다른 가능성들이 있음을 알아볼 수 없다. 조나단은 깨닫는다. 멋지게 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신의 섬광 같은 갈매기의 진정한 본성을 표현하기 위한 발걸음이라는 것을 – 갈매기의 꿈

돈 후안이 전하는 지혜의 핵심은,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며 살면 명예나 체면이 상실되는 시기에 쉽게 감정을 상하고 나약해진다는 것이며 이 한계를 벗어나면 인생을 가볍게 변화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 자신을 중요하게 느끼는 자는 무겁고 서투르며 헛되기 때문에 전사가 되려면 가볍고 유연해야 한다. – 익스틀란 기행

(올더스 헉슬리에 의하면 ) 상상력이나 창조성은 개인의 인격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베일을 걷어 올려 자아 너머를 볼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결과였다. – 인식의 문

우리 마음은 여러 세기 동안 쌓인 먼지, 말하자면 지식과 경험의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쓰고 있다. 만약 마음을 매일 씻어 어제의 기억에서 자유롭게 해준다면 우리는 모두 싱그러운 마음, 삶의 문제를 헤쳐나갈 능력이 있는 그런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 이런 일을 생각하라

우리는 저항정신을 가져야 한다. 사회제도 내에서 무엇을 뜯어고치라는 뜻이 아니라 보고 생각하는 기존의 방식에 저항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정한 혁명가는 감옥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맥락으로 보기 위해 감옥의 창살을 뚫고 밖을 바라본다. … 우리는 마음을 이런 식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 마음이 질투와 증오와 야망으로 가득 찼다는 것을 인정할 때 이런 것들과 구별되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생각하는 마음 바깥에 놓여있는 창조의 샘터에서 물을 길을 수 있는 자유인의 첫걸음이다. – 이런 일을 생각하라

우리는 늘 우리에게 알맞은 삶의 허구를 만들고 있다. 도도한 삶의 강줄기에 파놓은 작은 수영장(가족, 일, 야망, 종교 등)이 안전하다는 믿음이 크면 클수록 삶의 진정한 본성, 그 끊임없는 변화에 대해 알지 못한다. 우리는 알고 있는 것에 집착하고 그 집착 때문에 두려움에 떠는 사람이 된다. … 만약 적극적으로 사물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빠르게 죽어갈 수밖에 없다. – 이런 일을 생각하라

이성적인 마음으로만 해답을 얻으려고 하면 삶의 진리에 이를 수 없다. 과학이나 철학은 모두 진리에 이르는 지도에 불과하다는 것, 진리에 이르는 길은 오로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자연을 경험하는 데서, 신과 가까움을 느끼는 데서 가능하다 – 선과 오토바이 정비술

우리는 감정적으로 안전과 영원에 집착하지만 삶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불확실하다. 두렵다는 느낌이 들 때 우리는 그 느낌의 실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피하려고 하는 바를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영적인 성장의 열쇠다. ‘인정받지 못하거나 배신당할 때 느끼는 아픔’ 혹은 다른 고통스러운 느낌이 들 때 … 어떤 감정의 무게와 강도를 정말로 느끼게 되면 그것이 엄청나게 무서울 것 같지만, 사실 해방감으로 주는 것으로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행동이다.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겠다고 억제하면 결국 이기적 자아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기적 자아는 자기만의 고유영역이라는 환상을 보호하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과감히 도전하여 오히려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 그대에게 두려움을 주는 곳들

고통과 무지는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다른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생긴다. – 그대에게 두려움을 주는 곳들

보통의 갈등은 감정싸움인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간디의 무저항 비폭력 운동을 이끈) 사타그라하의 행동은 아힘사 원칙의 특질인 자비에서 힘을 얻은 결과 유지할 수 있는 객관적 완강함에서 나온다. – 간디의 자서전

예언자는 말한다. 슬픔은 우리의 존재를 칼로 도려내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것이 만들어주는 공간은 삶의 다른 계절에 이르렀을 때 기쁨을 더 크게 만들어준다. … 당신의 아픔은 깨달음을 가두고 있는 조개껍질 깨기입니다.

우리는 실패가 불운이고 성공을 행운이라고 여기지만 이 둘은 모두 그대로 현실일 뿐이다. 불행에 의연해야 한다는 것은 다만 현실을 애정을 가지고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 평화로운 전사의 길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자기의 욕심을 충족시켜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바보의 행복이다. 전사는 이유없이 행복하다. 댄은 자신의 야망에 발목잡혀 삶 그 자체를 즐기지 못했음을 알게 된다. 마음의 평화를 얻고 진정으로 삶을 사랑하는 유일한 길은 ‘이유없는 행복의 철학을 지니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 평화로운 전사의 길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이고 같이 일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같이 있는 사람이며,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 마음다함의 기적

말로써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의 먹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 : 사람들이 하는 말은 우리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말하는 사람의 마음상태나 상황과 관계가 있다.

무엇이나 나와 관련된 것이라 여기지 말라는 두 번째 약속은 다른 사람의 비판이 나에 대한 것이 분명하더라도 나의 진실과 직접 연결짓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 네 가지 약속

참된 영성은 좋은 것 나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을 전체의 부분으로 여기고 모두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모두 경험하기를 원해야 한다. – 영적 물질주의를 해부하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스스로 뭔가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그저 흥미로운 문화적 체험들을 주어 모으는 사람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영적인 것에 오히려 ‘엄격한 지성’으로 접근하고 지나치게 경건하거나 카리스마 넘치는 구루를 경계해야 한다.

사건 자체는 반드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겪는 고통에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느낄 때 비참해진다. – 엔키리디온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어떤 실제적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보고 내리는 우리의 해석이다. 다리를 저는 것은 다리에 장애가 있는 것일 뿐 우리의 의지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융은 참된 연금술이란 알려진 것처럼 값싼 금속을 금으로 만드는 것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성을 변화시키는 것, 깨우침을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 기억 꿈 성찰

수피의 길은 한 가지 종교나 철학만이 진리라고 믿는 착각에서 벗어나 나의 생각과 다른 생각들을 조화시킬 수 있는 열린 자세를 키워나가는 것을 뜻한다. – 수피의 길

요가난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우주를 순수 에너지나 빛으로 줄였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물질이란 결국 에너지가 집약된 것, 사물의 고체성은 어느 정도 허상이라고 했다. … 요기나 성자들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도 이와 관계가 있다. 이들은 자신의 세포구조를 물질에서 광 에너지로 바꾸고 이렇게 하여 두 장소에 동시에 있을 수 있는 것과 같은 능력을 얻게 된다. 우주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인력의 법칙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대상을 물질화할 수도 있고 비물질화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어느 요기의 자서전

영혼들은 자연 세계에서 육체를 가지고 사는 경험을 통해서만 자신을 정화할 수 있다. “여러 육체를 겪어보고 여러 가지 환경에 처해보는 일이 우리가 가진 참된 자아의 본성을 확대시켜 준다” – 영혼들의 여행, 우리가 거듭 태어나는 이유

고통은 고통 자체를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족하지 못하는 현재상태를 딛고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도록 고무하기 위해 존재한다. 삶은 쉽게 통과되도록 디자인되지 않았다. 도전은 우리가 거기에 잘 응전만 하면 영혼이 자라도록 해준다. – 영혼들의 여행, 왜 신은 고통을 허락하는가

언제나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돌아갈 것인지 잊으면 안된다. 우리는 왜 여전히 삶에 만족하지 못할까. 이 세상은 결코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하며 우리의 참된 고향은 영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 목적이 이끄는 삶

갈등과 악의는 우주의 에너지 흐름을 막는 마찰을 만들어내고 무조건적인 사랑은 에너지와 함께 움직이며 은총과 능력을 받는다. 사랑하는 상태에 있으면 우리는 실제적으로 더 높은 지적 영적 진동속에 존재하게 된다. – 천상의 예언

과학의 끝에는 영성이 궁극적으로 과학과 종교는 둘다 완전히 통합된 우주 이해를 향해 나아가는 진리의 표현들이다. – 모든 것의 이론

○ 출판사 서평

– 자아완성에 이르는 마지막 길, 영혼에 눈뜨기

영혼의 세계에 눈을 뜨고 진정한 삶의 목적을 찾게 해주는 불후의 명저 50권을 담은 책, ‘내 인생의 탐나는 영혼의 책 50’이 출간되었다. 영국의 인성계발 전문가 톰 버틀러 보던의 자기계발 3부작의 완성편으로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에 이어 완간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자아완성에 이르는 길을 밝히기 위해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 동양의 노장사상과 선사상, 종교 철학은 물론 심리학 물리학 문학 등 2000년의 시공간을 종횡무진 누비며 마음의 평화와 진정한 삶의 목적을 깨우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는 야망이나 목표를 성취하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잘나가는 젊은 심리학과 교수로 명예와 직위 돈까지 쥐었던 리처드 앨퍼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삶에 뭔가 빠져있다는, 삶의 껍데기만 긁어대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다른 이들은 이러한 내면의 소리를 애써 외면하지만 그는 내면의 길을 따라 하버드 교수에서 람 다스란 이름을 가진 정신적 지도자, 영혼의 구루로 다시 태어났다(지금 여기 있으라). 성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그러했다. “학문이나 지성이란 질문하고 의심받게 하는 법만 가르칠 뿐 진리를 알게 하지 않는다는 것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행복은 커녕 더 불행해질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백록)

이처럼 인류는 계속 진화해 왔고 발달하고 있지만 1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 지점에서 방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책은 물질의 안정도 방대한 지식도 우리 삶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 우리는 더 크고 중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

– 진정한 삶의 호흡, 영혼으로의 숨쉬기

스스로 분투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다 어느 정점에 이르면 반드시 묻게 되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내 삶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영혼의 길을 따라갔던 이들은 이러한 질문이 영혼의 창을 여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창조하려 하는지를 알면 알수록 우리의 성공은 더욱 진실하고 오래갈 수 있게 된다”(신과의 대화 p.451)는 사실을 말해준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호흡을 해야 한다. 지금껏 우리는 생물학적인 숨쉬기만을 알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영혼으로의 숨쉬기(Spiriual), 즉 영성의 회복이 우리의 본질을 회복하여 살아나게 할 뿐 아니라 정말로 인간답게 하는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만약 자신의 삶에 숭고하고 신비한 그 무엇이 빠져있다고 느끼고 있다면, 살아가는 것이 일정한 틀에서 몽유병 환자처럼 배회하게 하는 습성을 지녔다고 느끼고 있다면 이 책에서 모두가 목말라 하는 더 큰 풍요로움에 이르는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 인식의 문에서 인류의 영적 진화까지

책은 먼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는 인식의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하여 2부에서는 ‘지금 여기에 충실하라’는 틱낫한과 돈 미겔 루이스의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 법과 올바른 원칙에 충실하는 매일의 노력을 소개한다. 이어 3부에서는 요가난다의 요기, 인디언 블랙엘크의 경험, 에틱테투스의 스토아, 이드리에스 샤의 수피 등이 만난 신을 통해 영적경험의 다양성을, 4부에서는 영적 깨달음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람 다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등을 통해 살펴본다. 5부에서는 ‘영혼들의 여행’과 ‘신과 나눈 이야기’ ‘목적이 이끄는 삶’을 통해 신과의 관계 및 삶의 목적을 탐색해보고 끝으로 6부에서는 “우리가 인간의 경험을 가진 영적 존재들”이라는 ‘영혼의 자리’, 의식이 열리면서 직접적인 신의 계시를 받는 이가 늘어갈 것이라는 ‘우주의식’ 등을 통해 인류의 영적 진화를 얘기해준다. 우리는 이를 통해 만물이 분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 우주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 오만과 무지의 틀을 벗어날 때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이색적인 영적 지도자들

책을 보면 이러한 영적 체험을 하는 이들이 종교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나 상담심리학 출신들 (영혼들의 여행의 마이클 뉴턴, 기적수업의 헬렌 슈크먼, 지금 여기 있으라의 람 다스, 우주의식의 리처드 모리스 벅) 물리학(프리초프 카프라)이나 화학(캔 윌버), 인류학(카를로스 카스타네다), 법학자(행복의 연금술의 가잘리)들에게도 찾아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영혼들의 여행’은 정신과 의사로서 뉴턴이 내담자와의 상담을 기초로 전생과 환생 사이를 주제로 우리가 여러 생을 거듭해서 태어나고 있음을 말해주고 ?리가 이 삶을 시작할 때 이미 과제를 갖고 태어난다는 것을 말해준다.

‘선과 오토바이 정비술’의 저자는 생화학과 중퇴였다. 그는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기계와 쓸모없는 잡동사니의 차이는 모두 질에서 비롯되지만 정작 우리는 세계를 실제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사랑과 질 같은 것은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옵션처럼 취급한다는 것을 호소력있게 말한다. 의식을 포함한 우주의 설명체계를 모색한 ‘모든 것의 이론’의 저자 캔 윌버 역시 의과대 생화학 출신이다.

– 과학자와 영적 에너지의 만남

현대과학의 극단으로 가면 영적이고 신비한 개념과 만나게 되며 또한 현대과학이 이를 해석해주는 방편이 되고 있다. 먼저 ‘물리학의 도’를 보자. 프리초프 카프라는 입자물리학 연구를 하다가 물리학과 동양 종교에서 제시하는 물질과 실재의 유사성에 충격을 받아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미 2400년 전의 노장사상이 첨단 물리학에서 발견한 사실들을 오래전부터 신화와 시의 방식을 빌어 창조세계의 구조를 묘사했음을 알게 되었다. 양자물리학 관점에서 보면 사물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에너지로서, 세계의 본성이 고정성이 아니라 영원한 움직임을 밝힌다. 그리고 원자핵과 원자 크기의 질량을 통해 물질 허공 사이의 장을 의식하게 되고, 허공은 살아있는 것이 되며 물질이란 허공의 일시적 발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아원자가 입자와 파동으로 되어 있으며 이것이 현대 정신세계에서 밝히는 에너지, 기氣의 이론적 근거를 설명해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영적인 길에서 마주치는 이정표들

.보이지 않는 질서를 인정한다 : ‘보이지 않는 질서’와 조화를 이룰 때 삶이 더 좋아지고 의미있게 된다.

.삶의 목적을 인지한다 : 사실은 우리가 신의 창조를 돕는 동역자라는 것, 신의 도구가 됨으로써 오히려 잠자던 잠재력을 극대화 할수 있다는 것, 자신을 아는 지식이란 신이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는지 발견하는 것.

.작은 나를 버린다 : 이기적 자아를 잃어버리는 것만이 가장 큰 힘을 얻는 길이라는 것

.현재에 살아있으라 : 삶의 단순한 기쁨을 되찾는 것.

.이분법 너머를 본다 : 선과 악, 행 불행의 이분법을 넘어 ‘하나됨’을 인식할 때 세계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알라딘서재][마이리뷰] 행복의 연금술 알 가질리 The Alchemy of Happiness

[알라딘서재][마이리뷰] 행복의 연금술


행복의 연금술 
알 가질리 (지은이),안소근 (옮긴이)누멘2009-09-30


Sales Point :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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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판 확인일 :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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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쪽
목차


이슬람 신비사상가 알-가잘리

머리말
도입

자신에 대한 인식
신(神)에 대한 인식
현세에 대한 인식
내세에 대한 인식
종교생활에 도움을 주는 음악과 춤
자신에 대한 성찰과 신(神)을 기억함
종교생활에 도움 또는 장애가 되는 결혼
신(神)에 대한 사랑

역자 후기



저자 및 역자소개
알 가질리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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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신학자, 신비주의자.
이란의 마슈하드에서 태어났다. 셀주크 왕조의 재상 니자무르 무르크의 후원으로 바그다드 니자미야 학원의 교수가 되어 신학과 법학을 가르쳤다. 그 후, 기존의 학문체제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여 합리적인 철학 ·신학에 회의를 품고, 1095년 교수직과 가족을 버리고 메카 순례 등 유랑생활에 나서 다마스쿠스 ·바그다드 등에서의 은거적 신비생활로 1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1105년 니샤푸르의 학원에서 다시 교편을 잡았으나, 곧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은둔생활을 하였다. 학문적으로는 정통파 이슬람 교학(敎學) 속에 신비주의를 도입하여 신앙의 내면적 충실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정통파 교학의 개혁은 그 후에 정착하였으며, 신비주의는 이론적인 뒷받침을 통하여 정통파 신학 속에 그 위치를 굳혔다.

《종교학의 부흥》 《철학가의 모순(矛盾)》 등 많은 저서가 있는데, 그 라틴어 역은 중세 유럽의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접기

최근작 : <행복의 연금술>

안소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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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 수녀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서울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과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고 성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부터 서울 가톨릭 교리신학원에서, 2013년부터는 대전 가톨릭대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한국 대표이며 주교회의 용어위원회 총무, 신앙 교리 위원회 위원, 성서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학대전』번역·간행위원이기도 하다. 2017년(연구상), 2019년(번역상), 2021년(본상) 한국 가톨릭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그간 약 50권의 저서와 역서를 출간했다. 접기

최근작 : <사랑에 취하여라>,<가톨릭교회는 성경을 어떻게 읽는가?>,<구약의 역사 설화> … 총 46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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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가잘리라는 걸출한 수피주의 신학자의 저서. 아니 읽으면 아니될 듯. 이 책은 대중들을 위해 가잘리가 직접 편집한 거라서 나와 같은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도 전혀 부담이 없다.
헛헛헛헛 2012-02-06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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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행복의 연금술

자신에 대한 인식은 신께 대한 인식에 이르기 위한 열쇠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신을 안다˝고 말한다.(p23)... 진정한 자기 인식은 다음을 아는 것이다. 네 자신 안에서 너는 무엇이며, 너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너는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으며, 어떤 목적을 위하여 여기에 왔고, 너의 진정한 행복과 불행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네가 지니고 있는 속성들 가운데 일부는 동물들의 것이고, 일부는 악마의 것이며, 일부는 천사의 것이다. 너는 이러한 자질들 가운데 어떤 것이 우연적인 것이며 어떤 것이 본질적인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p24)

인간에게서 최고의 기능은 이성이며,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신을 관상할 수 있게 해 준다. 어떤 사람에게서 이것이 우위를 차지한다면, 세상을 떠날 때에 그는 격정과 분노의 모든 성향들을 뒤로 하고 천사들과 결합할 수 있게 될 것이다.(p28)

신에 대한 사랑은 가장 고귀한 주제이며, 지금까지 우리가 향해 온 최종 목적지이다... 인간의 완성은 신에 대한 사랑이 그 사람의 마음을 정복하고 완전히 차지하는 데에 있다.(p121)... 이 사랑의 본질은 유쾌한 것을 향하는 성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은 오감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데, 그 각각이 감각에 즐거움을 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음 안에 심어져 있는 인지 능력은 동물에게는 없다. 이로써 우리는 영적인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인식하게 된다.(p123)

11세기 이슬람 사상가 알-가잘리의 <행복의 연금술>은 신을 향한 사랑을 드러내기 위한 영혼의 담금질을 강조한다. 이성을 통해 짐승과 다른, 신을 향한 선택을 할 때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그의 사상은 이슬람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저자의 <행복의 연금술>은 우리에게 이슬람-기독교-유대교 공통된 지혜가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사실, 이들 종교는 타나크(Tanakh, Hebrew Bible)를 공유하기에 통하는 바가 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할 것이다. 이러한 헤브라이즘(Hebraism)의 세계관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사상이 더해지면서 이들 사상의 공통점은 더 많아졌을 것이다.

이렇게 제1원인이신 분께 돌려야 할 것을 이차적인 원인들에게 돌리는 것의 흔한 예는 소위 나태함에서 볼 수 있다.(p45)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 prime mover)의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 가잘리의 문장 속에서 우리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신에게로 이르는 다섯가지의 길 중 운동을 통한 증명(via ex motu)도 함께 연상하게 된다. 중동의 지혜문학의 토대 위에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 사상의 영향을 공통적으로 받은 두 종교. 이들은 형제 종교라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이들 2대 종교를 통해 상생이 아닌 대립으로 세계사를 써왔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아쉬움을 짙게 느끼게 된다. 이러한 대립과 갈등이 그들의 신, 야훼와 알라가 원하는 길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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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연금술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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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연금술
알 가질리 지음, 안소근 옮김 / 누멘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자신에 대한 인식은 신께 대한 인식에 이르기 위한 열쇠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신을 안다˝고 말한다.(p23)... 진정한 자기 인식은 다음을 아는 것이다. 네 자신 안에서 너는 무엇이며, 너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너는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으며, 어떤 목적을 위하여 여기에 왔고, 너의 진정한 행복과 불행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네가 지니고 있는 속성들 가운데 일부는 동물들의 것이고, 일부는 악마의 것이며, 일부는 천사의 것이다. 너는 이러한 자질들 가운데 어떤 것이 우연적인 것이며 어떤 것이 본질적인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p24)

인간에게서 최고의 기능은 이성이며,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신을 관상할 수 있게 해 준다. 어떤 사람에게서 이것이 우위를 차지한다면, 세상을 떠날 때에 그는 격정과 분노의 모든 성향들을 뒤로 하고 천사들과 결합할 수 있게 될 것이다.(p28)

신에 대한 사랑은 가장 고귀한 주제이며, 지금까지 우리가 향해 온 최종 목적지이다... 인간의 완성은 신에 대한 사랑이 그 사람의 마음을 정복하고 완전히 차지하는 데에 있다.(p121)... 이 사랑의 본질은 유쾌한 것을 향하는 성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은 오감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데, 그 각각이 감각에 즐거움을 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음 안에 심어져 있는 인지 능력은 동물에게는 없다. 이로써 우리는 영적인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인식하게 된다.(p123)

11세기 이슬람 사상가 알-가잘리의 <행복의 연금술>은 신을 향한 사랑을 드러내기 위한 영혼의 담금질을 강조한다. 이성을 통해 짐승과 다른, 신을 향한 선택을 할 때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그의 사상은 이슬람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저자의 <행복의 연금술>은 우리에게 이슬람-기독교-유대교 공통된 지혜가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사실, 이들 종교는 타나크(Tanakh, Hebrew Bible)를 공유하기에 통하는 바가 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할 것이다. 이러한 헤브라이즘(Hebraism)의 세계관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사상이 더해지면서 이들 사상의 공통점은 더 많아졌을 것이다.

이렇게 제1원인이신 분께 돌려야 할 것을 이차적인 원인들에게 돌리는 것의 흔한 예는 소위 나태함에서 볼 수 있다.(p45)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 prime mover)의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 가잘리의 문장 속에서 우리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신에게로 이르는 다섯가지의 길 중 운동을 통한 증명(via ex motu)도 함께 연상하게 된다. 중동의 지혜문학의 토대 위에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 사상의 영향을 공통적으로 받은 두 종교. 이들은 형제 종교라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이들 2대 종교를 통해 상생이 아닌 대립으로 세계사를 써왔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아쉬움을 짙게 느끼게 된다. 이러한 대립과 갈등이 그들의 신, 야훼와 알라가 원하는 길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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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섭 신비주의] 기독교 미학: 감성을 통해 읽는 기독교 신앙 : 자료실 : 베리타스

[심광섭] 기독교 미학: 감성을 통해 읽는 기독교 신앙 : 자료실 : 베리타스
[심광섭] 기독교 미학: 감성을 통해 읽는 기독교 신앙
2010년 제 7회 기독교문화 학술 심포지엄 발제문
입력 Dec 06, 2010 02:10 PM KST
글자크기
심광섭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조직신학/예술신학)
1. 아름다움을 찾는 신앙
우리는 예술에 대한 통찰, 예술적 감성과 신앙의 감성이 한국의 개신교에서 시급하게
회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에 모였습니다. 선언문처럼 보이는
이 문장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오늘날 신학과 교회가 “아름다움을 찾는 신앙”(fides
quaerens pulchrum), 감성을 통해 표현되는 신앙을 그만큼 절실하게 느끼고 요청하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미학'(美學, Ästhetik)으로 번역되어 통용되는 이 용어를 그리스어 어원에 따
라 옮기면 감각적 지각에 관한 이론이다. 미학의 물음은 고대 희랍 철학의 역사만큼이
나 오래되었지만 18세기에서야 비로소 철학의 한 분과로 다루어지게 된다. ‘미학’의 개
념은 지성의 인식과 감각적 인식 사이를 구분한 바움가르텐(A.Baumgarten)에 의해 세
워진다. 칸트(I.Kant)는 판단력비판에서 미학 이론을 처음으로 높이 세운 사상가로 평가
된다. 계몽주의 시대에 미학 이론이 정립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감성과 감정에 대한 관
심은 인간의 인식능력과 한계에 대한 물음의 이면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특히 낭만주
의자의 큰 관심사였다. 감성과 감정(정감)에 대한 관심은 기독교 신학에서는 슐라이어
마허(F.Schleiermacher), 조나단 에드워즈(J.Edwards), 존 웨슬리(J.Wesley), 윌리엄 제임스
(W.James) 등에 의해 주목받게 되나 신학의 주류에 의해 외면당해 왔다. 근대 미학은 반
성적 감각지각에 관한 이론과 생산적인 상상력 혹은 환상에 관한 이론, 자연과 예술에
서 느끼는 감정들과 아름다움의 이론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근대의 전형적인 현상인
삶이 각 영역으로 독립되고 분할되는 경향에 따라 예술도 문화의 고유하고 자율적 영
역으로 분리됨으로써 근대 예술은 종교적인 콘텍스트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게 되었고
고전 형이상학의 해체와 더불어 하나님 개념 안에서 진․선․미(眞․善․美)가 통합되었던
것도 해체되기에 이른다.
‘기독교 미학’을 말하려고 할 때 종교개혁과 계몽주의 이후 전개된 신앙과 예술의 소원
한 관계로 축소될 수 없다. 대부분 기독교와 예술의 관계를 다룬 서적들이 교회와 예술
의 소원하고 불편한 관계를 지적한다. 힐러리 브랜드는 예술에 대한 개신교의 태도를
한 마디로 “개신교의 역사에서 너무나도 빈번히 강조된 것은 예술의 기쁨이 아니라 예
술의 폐해였다”고 딱 잘라 판정했다. 특히 계몽주의 시대의 기독교는“기독교의 합리
성”(존 로크, The Reasonableness of Christianity, 1695), “신비적이지 않은 기독교”(존 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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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23, 9:45 PM [심광섭] 기독교 미학: 감성을 통해 읽는 기독교 신앙 : 자료실 : 베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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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 Christianity not mysterious, 1696)에 이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칸트,
Religion innerhalb der reinen Vernunft, 1793)로 축소되었고, 자유주의 시대인 19세기에
기독교 신학은 특히 독일에서 변증법적 이성과의 논쟁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세워나
갔다. 감성과 인간의 경험이 배제되거나 주변화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종교
개혁 원리 중에 “오직 성경으로만”(sola Scriptura)의 전통은 계몽주의 시대의 역사비평
을 만나 성서의 역사비평으로 발전되었고, 한국교회에서는 선교 초기부터 성경읽기, 성
경쓰기(필사), 성경공부 등을 통해 성서원칙이 “하나님 말씀” 강조의 신앙으로 독특하게
계승되었고, 신학적으로는 20세기 칼 바르트(Karl Barth) 등 신정통주의자들의 ‘말씀의
신학’의 영향으로 감성과 경험 배제의 신앙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기독교의 역사에서 예술과 미를 제한적이지만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씨름한 역사도 만만치 않다. 예술 혐오자요 엄격하고 금욕적인 기독교를 조성한 자로
알려진 존 칼빈조차 심미안이 결여된 사람으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꽃의 아름
다움에 우리의 눈이, 향긋한 내음에 우리의 오관이 끌리게 만드신 주님이 아니신가? 그
렇다면 그것들에 도취하는 것이 죄란 말인가? [...] 주님은 실로 단순한 필요를 넘어 우리
가 주의를 기울일 만큼 가치 있는 것들을 많이 만드시지 않았던가?”
근대 개신교 교회와 신학의 교부인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
는 종교를 심미적 과정으로 이해한다. 그에게 종교의 본질은 “사유나 행위가 아니라 직
관과 감정”이며, “무한자에 대한 느낌과 취향”이다. 그는 종교를 지식이나 윤리가 아닌
제3의 독립적인, 미학적 범주를 사용하여 정의한 것이다. 이것은 이성이 학문과 사회
의 유일한 입법자로 군림하기 시작한 계몽주의 시대에 나온 통찰이라 더욱 새로운 정
의라 할 것이다. 슐라이어마허는 예술과 종교 사이에서 유비적 관계를 보았다. 낭만파
시인 슐레겔(F. von Schlegel)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낭만주의의 대표적 화가 카스퍼 프
리드리히(Caspar D.Friedrich)의 관계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슐라이어마허는 『신앙론』 3절에서 기독교 신앙(경건)을 지식(Wissen)이나 행위(Tun)가
아니라 감정(Gefühl)혹은 직접적 자기의식(unmittelbares Selbstbewußtsein)의 규정성으
로 정의한다. 슐라이어마허는 경건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있는 공동체로 교회를 재정립
하고자 했다. 여기서 경건은 “감정의 규정성”으로서 교회의 처음과 나중이다. 감정의 규
정성이란 감정의 정조를 말하는 것으로서 감정이 어떠어떠한 상태의 색체를 띄고 있다
는 것이다. 감정의 근본규정성이란 감정이 자기 자신, 하나님 그리고 세계와 만나 울리
는 모양의 근본구조를 말한다. 감정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직접적 자기의식”을 목
표로 하며, 감정이 직접적 자기의식 안에서 세계와 만나면 자유와 의존의 상호작용의
모양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러한 현실을 수용하는 의식이
“절대 의존의 감정”으로 나타난다. 감정의 규정성으로서의 경건은 원칙적으로 지식과
행위에 앞서는 것이긴 하지만 경건을 지식과 행위로부터 분리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
다. 슐라이어마허는 경건의 본래적 자리를 앎과 행위가 아닌 감정으로 제시함으로써
경건을 교리 및 윤리적 행위나 합리적 가르침과 동일시하려 했던 정통주의나 계몽주의
자들과 거리를 둔다.
종교적 경험을 신학, 특히 구원론에 연관시켜 전개한 탁월한 신학자는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이다. 웨슬리는 자신의 신학을 경험의 차원으로 명백하게 연결시킨
최고의 인물이다. 테오도어 러년은 서양 신학사에서 웨슬리의 독특한 공헌으로 “정통
경험”(orthopathy), 곧 바른 종교경험을 꼽는다. “바른 종교경험”은 웨슬리의 신학적 특
성을 드러내기 위해 만든 신조어로서 “정통교리”(orthodoxy)와 “정통행위”(orthopraxy)
6/11/23, 9:45 PM [심광섭] 기독교 미학: 감성을 통해 읽는 기독교 신앙 : 자료실 : 베리타스
https://veritas.kr/news/9324 3/13
와 대비되면서 이들을 보충하는 개념이다.
정통교리란 바른 믿음을 의미한다. 교회사는 바른 믿음을 얻기 위한 논쟁사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바른 믿음을 얻기 위한 논쟁은 초기 교부시대와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 정통주의 진영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단에 맞서 교회를 지키고 세울 필
요성이 있었던 고대 교회나 교단의 고백을 공고히 하려고 했던 종교개혁 이후의 고백
주의와 정통주의에서 정통교리를 강조했다면, 정치신학이나 최근의 당양한 해방신학
운동에서는 정통교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정통행위를 강조한다. 복음의 수
위성은 사회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질병을 드러내 알리고 그것을 바로 잡아가기 위해
실천하는 정통행위에 있다는 것이다. 정통행위의 강조는 분명 오늘의 신앙과 교회로
하여금 교회의 근거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있으며, 신앙은 사회적, 생태적 실천
에까지 이르러야 함을 일깨웠다.
웨슬리는 종교인이 된다는 것,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지적 차원에서의 교리적 승인이
나 실천적 차원에서의 선행과 자비행 이전에 일어나야 할 존재의 사건, 곧 하나님의 영
이 일으키는 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경험을 포함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 그럴 때에만 신
앙이 살아있는 실재가 되고 생동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경험은
그것이 올바르게 해석되고 전달되기 위해서 정통교리의 말씀이 필요하며 세상을 성화
하는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정통 행위의 실천이 필요하다. 그러나 말씀과 행위는 그것
을 이끌어내는 성령의 능력으로 채워지고 충격을 받아야 하며 더 나아가 경험을 통해
매개되고 수용되며 소통되어야 한다. 웨슬리는 ‘죽은 정통교리’를 통렬히 비난하면서
살아있는 종교의 자리를 이렇게 제시한다.
“한 사람이 모든 점에서 정통이어서 바른 의견을 신봉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열심히 변호할지도 모릅니다. 그는 우리 주님의 성육신에 대하여
또는 영원히 복되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포함되어 있
는 다른 교리에 대하여 바르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세 가지 신조 모두 -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이라고 호칭되는 것 -에 동의할지도 모릅니
다. 그러나 그것 역시 유대인, 터키인 혹은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전혀 종교를 갖지 않았
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참된 종교, 참된 기독교 신앙이란 무엇인가? 웨슬리는 정통교리보다는 정통행위에 우
선성을 둔다. 그렇지만 웨슬리는 올바른 것을 승인하는 것과 올바른 것을 행하는 것도
기독교적인 ‘믿음’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제삼의 것을 찾았
고, 그것을 러년은 ‘정통체험’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정통체험이란 “진정한 믿음의 표
시인 영적 실재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과 그것에의 참여를 의미한다.”
20세기 이후 넓은 의미의 하나님 말씀의 신학은 미학적 경험에 대한 신학적 이론을 필
요로 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으로 지시된 하나님 말씀과의
실존적 만남의 경험은 감각적으로 중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
육신의 말씀, 곧 몸이 된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선 감각적 지각
을 전제한다. 몸을 얻지 못한 말들은 주르르 미끄러져 내리고 말뿐이다. 기독교조차 하
나님이 만든 피조물의 물질적 측면을 단지 그것이 물질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평가절하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연의 실재 한 조각을 취하여 행위와 접
합시켜 의식과 물질성을 이음매 없는 구조로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능력이 있다. 인간
을 통해 자연은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이 없으면 말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 말
6/11/23, 9:45 PM [심광섭] 기독교 미학: 감성을 통해 읽는 기독교 신앙 : 자료실 : 베리타스
https://veritas.kr/news/9324 4/13
씀의 신학은 종교 개념과 종교 심리학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과 거부를 재고해야 한다.
기독교 미학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언어뿐만이 아니라 언어 외에 어떤 방식으로든
지 그의 지각가능성과 현상의 형태를 통해 나타난다는 점을 새롭게 주시해야 한다. 여
기서 기독교 미학은 풍경이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우렸던 창조론의 한계를 넘어 감성과
아름다움 일반에 대한 신학적 반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최근 한국 기독교 안에서 예술과 신앙, 미학적 경험, 신학적 미학에 관한 저술이
국내외 안팎에서 저술되거나 번역되고 있음을 눈여겨본다. 기독교 신앙은 지정의(知情
意)로 받아들이고, 지정의를 통해 다시 표현되어야 한다. 개신교회와 신학은 신앙의 참
(眞)과 선(善)을 설교하고 신학화하는 일에만 주력하였지 신앙의 아름다움(美)을 깊고
넓게 성찰하지 못했다. 아름다움이 없는 세계에서는 혹은 최소한 “그것을 더 이상 발견
하거나 사유할 수 없는 세계에서는 도덕적 선도 또한 왜 그러해야 하는지의 자명성과
매력을 잃게 될 것이다."
중세의 신학자 안셀무스(Anselmus, 1033-1109)는 “지성을 찾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이란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안셀무스 이후, 신학과 교회는 1,000년 동안 이
명제를 금과옥조로 받들면서 성서와 교회를 통해 전승된 기독교 신앙을 개념적이고 지
성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며 해석하는 데 일방적으로 주안점을 두었다. 그 결과 신앙
을 삶을 통해 느끼고 실천함이 없어도 바르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만 있다면 좋은 신앙
인이 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기독교 신앙은 공동체의 교리적 진술에 치우쳐 지나치
게 논리적이고 윤리적이 됨으로써 공동체의 감성을 소홀이 하거나 간과했다. 이런 이
유로 나는 새로운 시대에 펼쳐가야 할 신앙은 “아름다움을 찾는 신앙”(fides quaerens
pulchrum), “感性을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sensum), “광적(廣的) 감성의 신학”이
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신앙이 하나로 묶이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도래했음
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 신학이 걸어야 할 새로운 방법론, 곧 “예술적 방법
론”이다. 들음과 이해의 신앙에서 통전적 봄과 통합적 느낌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 나는
기독교 미학의 새로운 명제로서 “아름다움을 찿는 신앙”(fides quaerens pulchrum)을 제
시한다. 이 명제는 안셀무스의 명제인 “지성을 찾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을
보완하고 넘어서 신앙의 구체성과 초월성을 동시에 드러내기 위함이다.
학문분류와 명칭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사색과 연구가 필요하지만, 나는 기독교 미학
을 신학적 미학과 미학적 신학으로 구분하여, 신학적 미학은 한 그리스도인이 예술과
실재(實在)의 미적 차원을 바라보는 방식 즉, 예술과 미적인 것은 기독교 신앙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탐구하는 분야로 정의하고, 미학적 신학은 예술적 사유를 통해 기독
교(기독교 신학)를 알고 표현하는 과제를 담당한 분야로 정의한다. 본 글에서는 “기독교
미학”이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할 것이지만 우리는 다음 절에서부터 엄격하게 말하여
미학적 신학을 전개할 것이다.
2. 기독교 미학의 인식론: 영적 감각론
1) 하나님 경험과 영적 감각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이미 항상 세계경험과 연관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계와 관
계하며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존재방식은 세계관계성 속에 있다. 하나님은 세계
안에서 행동하였고, 행동하고 있으며 행동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세계 안에서 경
험가능하고 경험 가능해야 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모든 가르침과 교리
6/11/23, 9:45 PM [심광섭] 기독교 미학: 감성을 통해 읽는 기독교 신앙 : 자료실 : 베리타스
https://veritas.kr/news/9324 5/13
들 중 어느 것도 반 경험적인 것은 있을 수 없다. 가령,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사역, 예수
의 성육신과 부활 등의 가르침은 경험 가능한 행위이며 가르침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나님을 세계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행위는 세계의 일상
적인 경험 밖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경험 속에서만 인식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된다
면 하나님은 세계의 한 대상이나 한 사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고립된, 별도의 특별한
세계영역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세계 전체 안에서 만나져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에서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경험되어야 한다. 슐라이
어마허도 종교의 본질에 관하여 말하면서,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한 하나
님의 행위로서 표상하는 것, 그것이 종교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인간은 하나님을 일부 사건이나 혹은 특정한 대상이나 특별한 순간에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경험 가능하다. 위르겐 몰트만(J.Moltmann)은 아우구
스티누스의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라는 물음의
대답을 변형시켜 이렇게 답한다. 몰트만의 아름다운 시적인 표현으로 서술된 답변을
통해 영적 감각이 하나님과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를 이어주고 서로 교감하고 사귀게
하며 하나님과 온 피조물이 서로서로 거하게 하는 매개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나는 육체의 아름다움과 활동들의 리듬과 눈들의 광채와 포
옹들과 느낌들과 냄새들과 형형색색의 이 창조의 소리들을 사랑합니다. 나의 하나님
당신을 내가 사랑할 때, 나는 모든 것을 껴안고 싶습니다. 당신의 사랑의 피조물들 속에
서 나는 나의 모든 감각들을 가지고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내가 만나는
모든 것 안에서 나를 기다립니다.
오랫동안 나는 당신을 내 안에서 찾았고, 내 영혼의 달팽이 집 속으로 기어 들어갔으며,
접근할 수 없는 장갑차를 가지고 나를 방어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의 바깥에 계
셨으며, 내 마음의 좁은 데로부터 나를 삶에 대한 사랑의 넓은 영역 속으로 이끌어 내
셨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내 밖으로 나왔으며, 나의 영혼을 나의 감각들 안에서 발견하
였고, 내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찾았습니다.
하나님 경험은 삶의 경험들을 더 깊게 하였고, 그것을 위축시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경험은 삶에 대한 절대적 긍정을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나
는 더욱 더 여기에 있고 싶습니다. 내가 보다 더 직접적이며 전체적으로 여기에 있으면
있을수록, 나는 더욱 더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의 무한한 원천을, 삶의 영원을 느낍니
다.”
몰트만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온갖 피조물 속에서 모든 감각들
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내면적 인간 영혼의 비
좁고 견고한 달팽이 집 속으로만 들어갈 것이 아니라 인간 영혼 바깥으로 나와 찬란하
게 펼쳐지고 끊임없이 생성하는 삼라만상을 보고 듣고 느끼며 체험하는 감각들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사랑하는 접촉점을 찾으라는 것이다. 인간의 일상적인 형편은 영적
실재에 무감각하며, 영적 감각에 둔감하며, 신적인 실재에 무지하고 한마디로 이 모든
것에 무관심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찬란하게 펼쳐지고 끊임없이 생성하는 삼라만상을
보고 듣고 느끼며 체험하는 감각들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일상적인 경험에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고 그 경험을 하나님과 연관된 경험으로 만
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적 감각이다. 기독교 미학에서 감성의 복권을 진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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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하는 이유는 신적 실재를 머리로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
로 느끼고 표현함으로써 신앙의 생동성과 역동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신학은 전
통적으로 거론되었던 영적 감각을 통해 감성의 복권을 시도할 수 있다.
영적 감각이란 무엇인가? 시편 115편은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포로 생활하던 시기를 반
영하고 있는 본문이다. 이방인들은 어마어마한 신상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랑한다. 그
러나 이들 신상에는 감각이 없다. “신상은 입은 조각해놨지만 말하지 못하며, 눈도 그려
놨지만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
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고,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
하니라”(시 115: 5-7). 그렇게 크고 웅대하고 화려하지만 보고 듣고 냄새 맡을 수 있는
살아있는 감각이 신상에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상은 말을 못하는 벙어리라는 것
이다.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은 다 그와 같으니라”(시 115:8).
성서에서 무감각은 우상이고, 따라서 우상을 만드는 자들은 결국 감각이 죽어있고, 감
각이 죽어 있으니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죽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다. 예수께서는
귀먹고 말더듬는 사람을 고친다(막 7:31-37). 귀먹은 것이 고쳐짐으로써 그는 세상의 소
리를 들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말더듬이가 고쳐짐으로써
그는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이제 그
는 세상과 방해받지 않고 소통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자기 힘으로 그리면서 살
수 있게 된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감각을 회복시킴으로써 한 사람을 생동감 있는 인격이 되게 한다.
살아 있는 사람이란 세상과 살아있는 소통을 할 수 있는 감각과 감성이 살아있는 사람
을 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육신의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
신다. 예수께서는 한 때 제자들에게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
다”(막 8:18)고 책망하신 적이 있다. 제자들만이 아니라 대개 일반 사람들은 새로운 실재
를 보지 못한 채 사는 데 그것은 “마음의 완악함”(막 3:5)과 “마음의 둔함”(막 8:17)때문이
다. 그들이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은 새로운 감각, 곧 믿
음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예수께서는 육적인 감각만이 아니라, 영적인 감각이 열리길
원하고 있으며, 영적인 감각은 믿음을 통해 열린다는 것이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자라
도 보게 하고, 불신은 보는 자라도 맹인이 되게 한다(요 9:39).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부활한 예수의 말씀 안에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각할 수 있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
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2) 기독교 미학과 기독교 윤리
기독교 미학은 오늘날 더 이상 진(眞)과 선(善)과 형이상학적으로 통일선 상에 있는 깨
어지지 않은 미(美)의 이론으로 다루어질 수 없다. 근대 형이상학의 근본 위기를 언급하
지 않더라도 아름다움의 범주는 기독론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종말론적 개념이다. 자
연 역시 직접적으로 소박하게 하나님의 좋은 창조로서 경험될 수 없으며 유의미성과
무의미성 혹은 반의미성의 모호한 경험의 원천이다. 창조로서의 자연의 경험을 그리스
도의 창조 중보직(요 1:3; 고전 8:6; 골 1:16f.; 히 1:2. 계 3:14)에서처럼 기독론적으로 정초
할 수 있는 것처럼 창조의 미학도 십자가의 신학으로부터 보아야 한다. 신약성서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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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서 53장의 야훼의 종의 노래로부터 그리스도를 해석했다. 고난받는 야훼의 종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며 흠모할만한 아름다움이 없어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척
당한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
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3). 형이상학적인 전체성의 미학과는 달리 예수의 삶
과 정신은 십자가의 고난에서 “추(醜)의 미학”으로 인도된다.
우리는 십자가의 아름다움에서 “미학을 미에 대한 학설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별로 의
미가 없다”는 아도르노(Th.Adorno)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그는 만일 “미학이 아름답다
고 칭해지는 것들의 체계적인 목록일 뿐이라면 그것은 미의 개념 자체 속에 포함된 생
명에 대해 아무런 관념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실 철학자 헤겔이
말한 것처럼, “채찍질을 당하고 가시관을 쓰고 형장으로 십자가를 끌고 가 십자가에 매
달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순교적인 죽음의 고통 속에서 죽어 가는 예수의 모습은 고대
그리스의 미의 형태로는 표현할 수 없다.”
왜 인간은 추한 것을 표현하는가? 침묵이 때로는 위대한 발언인 것처럼, 아름다움의 부
정인 추함이 어떤 것에 생기를 주는 표현적 서술일 때가 있다. 추함이 아름다움의 배경
또는 둘레가 될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직접 미적 존재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아
름다운 것이 주는 쾌감은 언제나 자유로운 자기활동의 감정을 주지만, 추한 것이 주는
불쾌감은 자기충동의 감정을 준다. 예술은 미적인 것만 말하는 게 아니라, 숭고, 비극
그리고 희극과 같은 성격적인 것(das Charakterische)을 포함한 미적인 것을 말한다. 십
자가의 추는 비참하고 참혹한 현실, 죄악과 한과 폭력에 저항하는 예술적 형상화일 수
있겠다. 아도르노는 히틀러의 참혹한 통치를 몸소 겪은 다음 이런 말을 했다: “예술의
형태는 인간역사를 문서보다 더 합당하게 기록한다. 참혹한 형식은 참혹한 삶을 부정
하는 것으로 읽히지 않는 일이 없다”. “예술은 추한 것으로 배척당한 것을 자신의 사안
으로 삼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와 같은 것들을 통합하거나 온건하게 만들거
나 혹은 가장 역겨운 것을 유모를 통하여 그것의 존재와 화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
술이 그림으로 창작하거나 재생산하는 세계를 그러한 추를 통해 단죄하기 위해서이
다.”
그러나 십자가 밑에 드리운 어둠과 침묵에서 어떤 빼어난 은유와 상징으로도 그릴 수
없는 현실을 만난다. 시인 송경동은 2007년 10월 11일 일산 주엽역 태영프라자 앞에서
일어났던 노점상 철거에서 죽음에 이르게 한 붕어빵아저씨 고(故) 이근재 선생님 영전
에 바친 詩에서 어떤 그럴듯한 표현으로도 그릴 수 없는 삶, 어떤 그럴듯한 은유로도
보여줄 수 없는 현실, 어떤 아름다운 수사로도 형상화 할 수 없는 그 밤, 어떤 상징으로
도 새겨줄 수 없는 그 아침을 이런 말로 노래한다.
당신의 죽음 앞에서
어떤 아름다운 시로 이 세상을 노래해줄까
어떤 그럴듯한 비유와 분석으로
이 세상의 구체적인 불의를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구조적으로 덮어줄까
[...]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보다 잔인하진 않았으리
이렇게 일상적이지는 않았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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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편적이지는 않았으리
이렇게 평범하지는 않았으리
송경동, <비시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중에서
기독교 미학은 은유와 상징 등 그 어떤 수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언어의 불모지인 십자
가에서 나타난 참혹한 형식인 ‘추’를 예수의 수난사를 통하여 읽고자 한다. “수난”
(Passion)이라는 단어는 고통(고난)과 열정, 격정, 열애 곧, 열정적 사랑이라는 두 가지 의
미를 갖고 있다.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는 하나의 큰 수난, 한 열정적인 사랑의 이야기
라는 말이다. 일본의 가톨릭 작가 엔도 슈사쿠는 박해와 고문을 통해, 그리스도의 얼굴
을 밟는 것이 교회의 교리가 정한 배교일지언정 그 분이 행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버리
는 것이 아닐 것이며, “성직자들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신과 나의 주님이 다름”을 한 성
직자 페레이라의 고백을 통해 이렇게 증언한다. “그것은 신부가 오늘날까지 포르투갈
이나 로마, 고아, 마카오에서 수없이 보아온 그리스도의 얼굴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위엄과 자랑스러움을 지닌 그리스도의 얼굴이 아니었다. 아름답게 고통을 견디
는 얼굴도 아니었다. 유혹을 물리친 강한 의지의 힘을 보여주는 얼굴도 아니었다. 그의
발치에 놓인 그분의 얼굴은 바싹 마르고 지쳐 빠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밟은 탓으로,
동판이 박힌 판대기에는 거무스레한 엄지발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
도 너무나 밟힌 탓에 움푹 파이고 마멸돼 있었다. 움푹 파인 그 얼굴은 고통스럽게 신
부를 쳐다보며 호소하고 있었다. ‘밟아도 좋다. 밟아도 괜찮다. 너희들에게 짓밟히기 위
해 나는 존재하고 있다.’”
십자가의 고난과 사랑은 사실 예수의 삶 전체를 수놓았던 삶이다. 미학이 지각능력과
판단능력에 관한 이론이라면 기독교 미학은 예수의 미의식에 기초해야 한다. 예수께서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보고 이러한 판단을 내린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보고 옳고 그름, 온당함과 온당치
못함에 대해 내리는 판단을 미의식 혹은 미적 판단이라고 한다. 가다머(H.-G. Gadamer)
에 의하면, “건전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란 특수한 것을 일반적인 관점에서 판단할 능
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예수는 한 구체적인 사건을 보고 일반적인 관점에서 판단한 것이 아니라 진
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판단을 내린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
내고자 하심이라!” 모든 사람들은 관습, 전통, 조상이나 본인이 지은 죄 때문이라고 이
렇게 일반적인 관점에서 판단한다. 그러나 예수는 가장 중요한 것, 사물의 근본을 보고
판단한다. 그에게서 나타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 그것이 예수의 미의식이고 미적 판
단이다.
성서는, 특히 요한복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영광’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 나사
로의 병을 보고도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요 11:4) 영광
은 요한복음의 중요한 용어이다. 영광이란 하나님이 자기를 계시하는 능력과 힘이다.
그 영광은 그와 하나가 된 아들 안에 나타나며, 아들을 통하여 교회에 전달된다. 영광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일을 드러내는 집약적인 개념이면서 동시
에 미학적인 개념이다. ‘영광’이란 말의 일반적인 뜻은 찬란, 찬연, 휘황하게 빛난다는
뜻이다. 영광이란 ‘아름다움’이란 말의 성서적 표현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아
름다움이다. 성서는 하나님의 영광에서 기독교 신앙의 지고의 아름다운 경지를 본다.
그리스도인은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고, 말과 행위로 표현하고 그 아름다움을 온 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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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산다. 요한은 주님의 영광을 이렇게 설파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
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았다”(요 1:14)
예수는 세상의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일을 보는 심미감을 갖고 있다. 예수의 그 같은
미적 판단은 그의 아가페적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엔도 슈사쿠는 다시 『침묵』에서 그
리스도의 사랑을 이렇게 증언한다. “성경에 나오는 인간들 중 그리스도가 찾아 헤맨 것
은 가버나움의 하혈병 앓는 여인이라든가, 사람들에게 돌로 얻어맞는 창녀처럼 아무
매력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존재였다. 매력 있는 것,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끌린다면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니다. 빛이 바래 누더기가 다 된
인간과 인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사랑이다.”
기독교 미학이 포괄적인 신앙의 지각의 이론이라면 그것은 윤리적 지각의 이론을 포함
한다. 신앙의 말씀은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응답과 책임을 요구받는다는 것이다. 산
상수훈의 말씀처럼 “예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마 7:24), 다시 말해, 말씀에 따라 살
고 행동하는 자라야 지혜 있는 사람이다. 신앙의 응답은 “예-예-남발”, “주여-주여-부르
짖음”이나 “입술고백” 속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입으로 시인하며 마음으로 믿으며
(롬 10:10), 이에 상응하는 몸짓과 삶의 행위로써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행
하는 자여야지 듣는 자로 그쳐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는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된
다(약 1:22). 이러한 인식은 바로 신학적 미학에 속한다.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린다”(약 1: 23-24). 신앙으로부터 나온 행위가 없다면
이 신앙은 새로운 자기 인식의 방식이 아니라 자기망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3. 기독교 미학의 근본개념 :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
미학과 윤리는 삶을 영위하는 태도와 삶의 형식을 보는 두 가지 형식이다. 이 두 형식
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포섭하거나 어느 한 쪽으로 환원될 수 없으나 서로 밀접하게 연
관되어 있다. 나는 미학과 윤리의 상호관계를 고린도후서 3장의 예를 통해 서술하면서
기독교 미학의 근본개념을 제시하려고 한다.
바울의 편지들은 처음 기독교의 가장 오래된 문서이다. 바울은 후기의 복음서와 달리
예수에 대하여 거의 이야기 하지 않는다. 바울은 예수의 삶과 사역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의미에 더 역점을 두어 서술한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 2절에서 고린도의 남녀 그
리스도인들을 사도를 위한 편지(추천서)요 심지어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한다. “너희
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
이라”(고후 3:3).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하나의 텍스트인 바, 그 텍스트의 저자
는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 살아 있는 편지는 모세가 돌판에 기록한 율법과 차
원이 다른 것으로서, 이 차이는 영과 문자의 차이이며 복음과 율법의 차이이다. 벗어야
할 수건은 옛 계약 문서에 덮인 수건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덮인 수건이다.
그리스도인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
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그러나 구약이 가릴 수 있었듯이 우리의 복음도 가릴 수 있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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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
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4-6). 구약의
텍스트, 다시 텍스트가 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발견하는 그리
스도인의 삶 사이에 해석학적 순환이 결성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상을 우리에게 펼쳐 보임으로써 구약성서의 궁극적 의미를 완성한다. 그리스도의 얼굴
은 구약성서가 설명하고 찬양했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모상이다. 이 하나님의 영광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빛난다. 하나님의 영광에 감촉된 신앙은 인식론적
과정만이 아니라 감성적 과정이며 이 과정을 통해 접촉되고 설득당하고 사로잡힌 그리
스도인들의 생활 전체를 붙잡는다. 복음의 말씀 속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하
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는 자는 그 자신 그리스도 상에 자신의 이름을 기입할 것이고 그
상으로 변할 것이다. 말로 선포되고 문자로 기록된 복음의 의미는 인간의 삶 속에서 만
나는 역사적 결단 속에서 마침내 완성된다. 복음을 듣고 읽는 행위는 삶의 실현 속에서
완성된다. 성서로 문자화된 그리스도의 초상이 그의 실재의 모방이듯이 신앙의 삶은
그리스도의 모방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고 권면한다.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얼굴은 곧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얼굴이다(갈 3:1). 십자가에
달린 자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난다. 그러나 이것은 나사렛 예수의 자연적인 초
상이 아니라 신앙의 눈으로 보는 부활의 빛에 의해 조명된 그리스도의 얼굴이다. 신앙
은 십자가에 달린 자를 다른 눈 곧, 밝은 눈으로 관찰한다. 신앙은 눈앞에 전개된 사실
너머를 본다. 그러므로 신약성서에서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예수의 삶과
인격의 부분적 특징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와 사역 그리고 죽음이 신
앙에 새로운 빛, 즉 새로운 창조의 빛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
이다(고후 5:16-17). 신앙의 눈으로 보는 그리스도상은 단지 발명품이나 종교적 환상이
아니라 신앙인에게 인상을 주고 감동시킴으로써 그 삶을 변화시키고 참되게 만든 발견
된 진리이다. 미학적 성경 읽기는 그리스도에 대한 찬반(贊反)에로의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린 자 앞에서 새로운 삶으로 변하기를 원한다.
‘영광’은 성서와 신학에서 하나님의 자기계시 때 나타난 현상과 경험을 제시하기 위한
개념이기 때문에 기독교 미학의 근본개념으로 삼아도 좋다고 본다. 기독교 정통주의의
마지막 가르침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끝난다. Soli Deo gloria!(오직 주님께만 영광!) 웨스
트민스터 간추린 교리문답이 말하듯이 인간의 중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이며 그를 영원히 즐기는 것이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인간의 이기적인 삶을 넘어서 하
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살아야 한다. 존 웨슬리에게 이것은 마음과 삶의 성화
로 전개된다. 사실 초기 교부들 이래로 신학 전통은 항상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 때문임을 말해 왔다. 주님의 영광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이 창조의 목적
이요, 인간의 최고의 목적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히 향유하는 것, 이것
이 인생과 창조의 궁극적 목적이다. 모든 사물이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은 모든 열락(悅樂)의 궁극 원천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인들 가운데서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누
릴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하여 아버지의 부름을 받는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체적으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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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 얼굴에서 보며 이 빛이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가운데 비추었다고 말함으로써 영광
을 삼위일체론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고 그것을 새창조론과 연결하여 해
석할 수 있는 착상을 제공한다.
4. 기독교 미학 : 반(反)하나님 나라에 저항하고 하나님 나라를 맞이하는 환희
신학함이란 오늘 여기에서 일어나는 온갖 反하나님의 나라의 행태에 분노하고 저항하
며 그럴수록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를 열망하며 그리는 환희(歡喜)와 열락(悅樂), 곧 기
쁨과 즐거움이다. 독일의 여신학자 도로테 죌레(Dorothe Sölle)는 하나님을 그리는 이유
를 복음에 대한 환희와 反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노로 요약한 바 있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의 본래적 언어는 예언자적 저항과 분노의 언어이기보다 기쁨과 평화의 언어이다.
그녀는 저항은 아름다움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덧붙인다. “성 프란치스코나 튜링엔의
엘리자베스 혹은 마르틴 루터 킹의 저항은 아름다움의 지각에서부터 자란 것이다. 가
장 오래되고 가장 위험한 저항은 아름다움에서 태어난 것이다. 월터스토프도 “평화의
가장 고등한 수준은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항은 하나님의 사랑의 감미
로움과 달콤함의 맛을 가직할 때 단지 파괴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창조로 나아갈 수
있다. 시편에서 ‘기쁨’은 ‘찬양 시’의 직접적인 동기이고, ‘고난’은 ‘탄식 시’의 직접적인
동기이다. 기쁨과 탄식, 이것은 생리적으로 나오는 인간의 대극적 근본 감정이며 열정
이다. 감정과 열정을 담아낸 신학의 언어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내
가 나의 하나님을 사랑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하고 질문했다. 나는 ‘아름다운
힘’을 사랑한다고 답하고 싶다. 성 프란체스코, 디트리히 본회퍼 그리고 마르틴 루터 킹
의 저항의 힘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인지하고 체험함으로부터 자란 것이다.
개신교인들은 “예술품이 언제나 작가가 믿는 종교의 표현이거나 종교를 표현하는 것이
라고 주장”하거나 또는 “작가는 자신의 종교를 표현하기 위해 예술을 창작한다는 논제
를 개발해 왔다.” 그러나 예술과 신앙(신학)의 관계에서 예술은 단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성서의 이야기와 교리를 설명하거나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한 수단과 도구로써만이
아니라 예술 자신만이 가지는 독특함과 고유함으로 신앙(신학)과 관계해야 한다. 신학
의 역사가 옛 것, 본질적인 것, 같은 것, 동일한 것을 고수하는 정통의 역사, 동일성의 역
사라면 예술사는 새 것, 다른 것, 창조적인 것, 본질의 변형적 표현, 차이를 추구해 온 이
단의 역사이다. 신학에서는 이성의 논리를 통해 동일성이 확고하게 자리 잡혔다면 예
술에서는 감성을 통해 차이가 배양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미학은 신학과 교회가 예
술을 통해 자기혁신의 시각에 눈뜨는데 기여할 것이다.
미래의 신학 방법론에는 예술적 감성론이 추가되어야 한다. 인류 문명은 최근 새로운
세계문화(Weltethos)를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과학기술과 경제개발이 많은 공헌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생태계의 위기와 빈부 격차의 심화, 인간성의 파괴, 생활세계의
파편화 등 인류를 파멸의 벼랑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인류는 당혹하고 있다. 이
제는 인간과 자연을 착취하면서까지 물질적 편리와 풍요를 바라보는 성장 이데올로기
를 넘어선 본래적인 인간성의 실현과 성취를 바라보아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자연과학적 사유는 세계를 대상화, 사물화하고 물질의 표피적 차원에만 머물러 있었다.
생명공학과 뇌과학 등 고도의 과학기술 문명 속에서도 인간성을 하나님과 잇대어 이해
할 수 있는 전체적 감성으로써 신학하기가 요청되고 있다.
계몽주의와 근대화 이후 신학과 교회는 올바르고 지적인 교리의 형성(정통 교리), 성서
6/11/23, 9:45 PM [심광섭] 기독교 미학: 감성을 통해 읽는 기독교 신앙 : 자료실 : 베리타스
https://veritas.kr/news/9324 12/13
에 대한 역사-비평적 분석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행동(정통 행위)에만 지나치게 전
념함으로써 전일적(全一的) 기독교 영성 형성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인간, 자연 및
우주의 전체성은 큰 이야기나 이성적 체계로써만이 아니라 작은 이야기, 느낌과 체험,
곧 미학적 감성을 통해 감지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미감적 경험(느낌, 체험)은 물
질의 깊이 안에서 생동하는 영을 찾고,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의 성례전성이 드러나게
된다. 기독교 미학의 힘은 성령 안에서 역사하는 감수성과 상상력, 이성을 해방하여 기
존 리얼리티의 독점을 타파하고 하나님 나라 곧,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는 데 있다.
출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