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2

1407 일제강점기 조선땅에 온 벽안의 선각자들 ① 간호선교사 엘리자베스 셰핑

월간조선

일제강점기 조선땅에 온 벽안의 선각자들 ① 간호선교사 엘리자베스 셰핑
無冠의 聖女 서서평, 과부와 고아들의 어머니로 잠들다


글 : 양국주 서빙더네이션스 대표
⊙ 22년간 선교… 강냉이 가루 두 홉 남기고 영양실조로 殉職
⊙ 한국 최초의 여성신학교인 이일성경학교(現 한일장신대) 설립
⊙ 광주 제중병원 간호사로 봉선동 한센병 환자 돌봐… 한센병 아이 입양

梁國柱
⊙ 65세. 연세대 철학과 졸업. 연세대대학원 경영학과 석사.
⊙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회장, 한국학생연합회 의장, 이스라엘문화원장 역임.
⊙ 1987년 워싱턴으로 이주. 현재 미국 버지니아주 소재 NGO단체인 ‘서빙더네이션스’ 대표와
한국 내 사단법인 ‘서빙더피플’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 저서 : 《이스라엘 역사적 조명》 《조선교회사》 《제국의 무덤-아프간》
《바보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 외 다수.

간호선교사 엘리자베스 셰핑(서서평). 1934년 7월 7일, 전라도 광주에서 이색적인 추도식(追悼式)이 열렸다. 1912년 전라도 땅에서 22년3개월 동안 치열한 삶을 살았던, 1934년 6월 26일 53년9개월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처녀 선교사의 추도식이었다. 그의 한국식 이름은 서서평(徐舒平), 미국 이름은 엘리자베스 셰핑(Elizabeth Johanna Shepping·1880~1934)이다.

추도식은 그가 죽고 난 지 12일 만에 치러졌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시신을 의학 연구용으로 기증했다. 시신을 해부한 결과, 사인(死因)은 놀랍게도 만성 영양실조와 풍토병이었다. 선교사 생활비로 받았던 월급은 자신의 몸 하나 지켜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금액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소식은 선교사들뿐 아니라 광주 지역을 놀라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그가 남긴 재산이라고는 자신의 몸을 가릴 담요 반쪽, 노동자의 일주일 품삯에 지나지 않는 7전과 강냉이 가루 두 홉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를 아는 이들은 그가 남긴 재산의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서서평 자신이 가난함에 익숙할 정도로 근근이 살아왔기에 빈곤에 삶의 궤적(軌跡)을 맞춘 그에게 가난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요 동반자였다.

그는 한센인들로부터 아들 딸 13명을 입양해 키워냈다. 그는 가난한 아이들을 받아들여 한국 최초의 여성신학교인 이일성경학교(李一聖經學校·현 한일장신대의 전신)를 시작했다. 그의 제자들은 그를 “어머니”라 불렀다.

특히 이 학교의 학생은 광주 지역에서 공부하기 위해 통학하던 학생보다 서서평이 입히고 재우며 먹이던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서서평은 친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경제적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는 언제나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고 남자 고무신을 신고 살았다. 그가 죽자 언론들은 그의 죽음을 대서특필하여 “빈자(貧民)의 자모(慈母)” “환생(再生)한 예수(耶蘇)”라며 그의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영양실조로 죽은 선교사



1934년 6월 26일 53세의 나이로 그가 죽자 신문은 그를 ‘빈자(貧民)의 자모(慈母)’ ‘환생(再生)한 예수(耶蘇)’라고 추모했다.
《동아일보》는 1934년 6월 29일 자 사설로 ‘위대한 인류애, 서서평씨 영전에’라는 글을 올렸다. 보리밥 된장국에 고무신을 끌고 다녔던 서서평을 소개하며 큰 사역(使役)에 종사하는 몇몇 외국 선교사와 스스로 조선 여성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이들에게 조선 사랑의 진정성이 무엇인지를 울부짖으며 지적했다.

“백만장자의 위치에 지지 않을 집에 편히 앉아서 남녀 하인을 두고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어떤 선교사들의 귀에 서평양의 일생은 어떠한 음성을 가지고 들려질까? 그보다도 동족의 비참한 생활에는 눈을 감고 오직 개인 향락주의로 매진하고 있는 수많은 조선 신여성들의 양심에 과연 어떠한 자극을 주고 있을까? 서서평씨의 일생은 조선의 신여성 대중 앞에 일대 거화(炬火·횃불)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국의 여성으로서 감히 이러하거늘 조선의 여성으로 그 뒤를 따를 자 몇몇이뇨!”

서서평이 즐거이 택한 가난은 자신이 누리는 모든 부와 재물을 한국의 가난한 이들, 버림받은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 아낌없이 나눈 데서 비롯됐다. 그가 이 땅에 와서 행한 삶의 방식은 누가 강요해서 이행된 것이 아니었다.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였다. 그러기에 그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추도식은 단순히 기독교인들만의 모임이 아니었다.

당시 호남을 대표하던 식자층과 사회인사, 지방유지가 총출동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인 최원순(崔元淳) 선생, 광주 YMCA 창설자이자 ‘빈민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최흥종(崔興琮) 목사, 김신석(金信錫) 호남은행 취체역, 히비야(日比谷) 공원에서의 독립운동을 주동했던 동경 유학파 출신 김용환(金用煥) 선생, 전남도지사와 《호남신문》 사장을 지낸 언론인 최영욱(崔泳旭) 박사, 정광호(鄭光好) 제헌 국회의원 등이었다.

조선간호협회를 대표한 이효경(李孝敬) 선생, YWCA와 전국 여전도회를 대표한 김필례(金弼禮) 선생, 이일학교를 대표한 김윤식 장로 등이 추도자로 나섰다. 당시 원근 각처의 수많은 선교사가 참석하였건만, 추도예배에서 축도 순서 이외에는 맡기지 않았다. 그야말로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을 위한, 조선인의 ‘천국 환송 잔치’인 셈이었다. 1927년 월남 이상재(李商在) 선생이 죽은 후 광주 최초의 사회장(社會葬)이 거행된 셈이다.

그것도 한국 사람이 아닌 외국인 선교사요, 처녀의 신분임에도 말이다. 그것은 그에 대한 존경과 광주를 비롯한 호남 지역에 끼친 그의 선한 영향력이 었다. 그가 죽자 수백 명의 광주천(光州川) 거지들과 한센병 환자들, 과부들과 고아들이 어미 잃은 시름과 슬픔에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그 통곡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마치 비행기 소리 같았다고 한다.

오웬기념각(전라남도 최초의 선교사로 광주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클레멘트 오웬을 기념하기 위해 1914년 건립한 건물)에서 양림 동산의 장지(葬地)에 이르기까지 장례행렬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처럼 교회는 물론 지역사회가 함께 울고 가슴 아파했던 일대 사건이었다. 그의 죽음은 동료 선교사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동료 선교사 사회에서 ‘왕따’ 당하기 십상이었던 그가 조선인들과의 교감을 통해 이토록 높은 존경과 유대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은 것이다.

알렌과 언더우드, 그리고 아펜젤러 등 1884년 이래 수많은 선교사가 한국을 찾아와 각양각색의 공헌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세우기도 했고,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올리버 에비슨(Oliver R. Avison)이나 남장로교 선교사 조셉 놀란(Joseph W. Nolan) 등은 제중원(濟衆院)이라는 최초의 근대식 병원을 서울과 광주에 세우기도 했다.

선교사들은 오늘날 한국의 근대 교육이 가능했던 원동력인 수많은 교육기관을 세웠다. 1884년부터 선교사들의 파송이 없어진 1975년까지 90년 동안 장로교와 감리교 등 여러 교파를 망라해 2200명의 선교사가 그야말로 이름도 빛도 없이 헌신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수많은 선교사가 죽어갔다. 당시에는 스프루(sprue)라는 풍토병과 이질, 발진티푸스 등 전염병과 갖가지 돌림병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단이 없었던 탓이다. 선교는 고사하고 자신의 목숨 하나 부지하기 어려운 것이 당시 선교사들의 고단한 삶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평균 25년에서 30년씩 한국에서 선교했다. 남장로교 출신의 레이놀즈(William Davis Reynolds) 선교사 부부나 극히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개 25년 정도 일하고 고국으로 돌아간 뒤 3년에서 5년 이내에 죽었다. 인생의 황금 같은 시기를 한국에서 보내면서 진액을 쏟아부은 탓이다.


어머니, 개신교로 개종하자 “딸로 여기지 않겠다”며 연 끊어

서서평은 1880년 독일 비스바덴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직후 아버지는 사망하고, 어머니는 그를 할머니에게 맡긴 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고 말았다. 졸지에 그는 할머니 밑에서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서서평은 어머니의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고 무작정 뉴욕으로 향했다. 우여곡절 끝에 어머니를 만난 그는 가톨릭 계통의 미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민권을 받는다.

간호전문학교로 진학해 1901년 정식 간호사(R.N)가 된 그는 20세 무렵 뉴욕시립병원에 근무하게 된다. 간호학교 시절, 서서평은 동료 간호사와 함께 개신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됐고, 그때 개신교의 명쾌한 구원관(救援觀)에 매료된다. 이때의 감동으로 그는 하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는 가톨릭을 떠나 개신교로 개종했다. 이 때문에 당시 개신교를 이단으로 여겼던 어머니는 “다시는 너를 딸로 여기지 않겠다”며 모녀 간의 연을 끊었다. 서서평은 어머니와 떨어져 외로운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간호사로서 열성을 갖고 일했다. 유대인 요양소, 유대계 결핵 환자 수용소, 이탈리아 이민자 수용소 등지에서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사회봉사를 해나갔다. 이 경험은 훗날 조선에서 선교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서서평은 뉴욕시에 있는 성서교사 훈련학교를 다니며 밤에는 병원 일을 했다. 신학교 교육을 받으며 그는 “영적 세계가 내 앞에 펼쳐졌으며, 새로운 생명이 마치 포도주처럼 내 핏줄들을 가득 채웠다”고 고백했다. 이 공부를 통해 그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정에 불탔다. 실제로 서서평은 이미 ‘여행자를 돕는 선교회(Traveler’s Aid Missionary)’에서 사역했고, YMCA 운동에도 참여했다.

서서평의 이런 경험은 훗날 조선에서 최흥종, 김필례가 YMCA와 YWCA를 세울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힘이 됐다. 1911년 신학교를 졸업한 서서평은 동기생들이 일본, 뉴멕시코, 중국 등 곳곳으로 선교사로 나가자 진로를 고민했다. 이때 서서평은 남장로교 해외선교부에서 간호 선교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광주 제중원의 윌슨 선교사가 간호 전문 선교사가 필요하다고 선교부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서서평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원해 합격했다. 그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선교사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는 1911년 한국행 여객선을 탔다. 꿈에도 그리던 선교사의 길을 나서게 된 것이다. 조선으로 가는 배 안에서 20여 일 동안 뱃멀미에 시달리면서도 ‘조선 입문’ ‘조선 선교 역사’ ‘조선 교회 현황’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미국에서 간호학과 신학, 교육학을 이미 공부한 그였기에 한국에 와서도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서서평이 조선에 파송될 때는 한일합병(韓日合倂) 직후로 그녀의 나이 31세였다.

조선땅에 도착한 그는 한국말을 열심히 배웠다. 발음도 좋고 말도 유창했다고 한다. 후에 정신여고 교장을 지낸 김필례씨는 “셰핑 선교사는 한국말 발음도 한국 사람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창했고, 웅변가였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는 한자도 배워 한자와 한글이 섞인 구약성경(舊約聖經)을 읽었다. 당시 일제강점기였던 상황을 감안해 일본어도 배웠다.

그는 뼛속까지 조선인이 되고자 애썼다고 한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가 옥양목 저고리에 검은 통치마, 남자용 검은 고무신을 신었다고 했다. 된장국은 그 독특한 냄새 때문에 서양 사람들이 가장 혐오했지만, 그는 된장국을 먹으면서 조선에 동화되기를 자처했다.

그는 고아들을 등에 업고 다녔다. 당시에는 한국의 고아, 병든 자를 양육하기 위해 미국에서 들어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간 처녀 선교사들이 광주 양림동 선교사촌에 살고 있었다. 서서평을 비롯해 수피아 여학교 교장이었던 플로렌스(Florence Root), 도슨(Dodson), 매퀸(Mcqueen Anna), 프리처드(Pritchard Margart) 등이 그런 분들이다.


換差益으로 여행 즐긴 선교사들



광주기독병원에서 일한 윌슨 박사(오른쪽 두 번째)가 자신이 잡은 멧돼지를 걸어놓고 일행과 포즈를 취했다.
선교사들의 삶의 행태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사역 현장인 한국에 와서 적당히 즐기면서 자신의 능력과 시간 범위 내에서 일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미국에서 즐기던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한국에서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광주의 기독병원에서 일했던 윌슨(Robert M. Wilson) 박사는 틈만 나면 자동차를 몰고 지리산과 무등산에서 사냥을 즐겼다.

이분은 도가 지나쳐 한번 사냥을 나가면 일주일 이상을 산에 텐트를 치고 사냥을 했다. 본인은 총을 갖고 다녔지만 총이 없었던 한국인들은 땅을 파고 그 위를 대충 덮어 위장을 해 곰을 잡았다. 한번은 윌슨 박사가 이를 모르고 발을 헛디뎌 곰을 잡기 위해 쳐놓은 위장 굴로 떨어진 일도 있었다.

일부 선교사는 환차익(換差益)을 악용, 여행을 즐기기도 했다. 1달러에 2엔의 고정 환율로 달러를 바꾸어주던 그때, 상하이(上海)나 다른 지역에 가면 3엔에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적당히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면서 일한 선교사들이 현장에서 오랫동안 버티며 일할 수 있었다.

대신, 그들은 현지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했다. 사역이 끝난 뒤 고국으로 돌아간 경우, 미국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람들, 미국식 사고에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현지 사역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하나의 부류는 일중독에 걸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선교 사역 이외에는 한눈을 파는 일 없이 밤낮없이 일했다. 현지인들과 같은 ‘삶의 방정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생활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들은 마치 내일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현지인들은 대개 이러한 부류의 선교사들을 존경했다.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삶을 산 사람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임재(臨在)를 경험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선교는 일종의 자기 포기다. 선교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품는 일이고, 그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는 행위인 것이다. 선교사 자신들의 조국에서 출세하고 더 나은 삶의 조건들을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희생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것이다.

목포를 거점으로 신안과 전라도 일대의 섬에서 사역했던 맥칼리(H. D. McCallie)는 “고국의 형제들이 학교에서 일하게 된 것이 매우 좋은 일”이라면서도 “나는 백 번을 고쳐먹고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한국을 선택할 것이다.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조국을 사랑하지만 조선을 더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1925년 그를 돕는 조사(助事)로 다섯 명의 한센인을 채용하기도 했다.


22년 동안 한 차례만 안식휴가 사용



조선땅을 밟은 지 3년째인 1914년 무렵의 서서평(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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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서서평의 삶은 후자에 속했다. 동료 선교사들은 광주선교부 구내에서 주말마다 모여 승마를 즐겼다. 서서평은 그런 유희나 도락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화순과 담양, 순창, 영광 등지로 전도여행을 떠날 때 항상 노새를 타고 다녔다. 요즈음처럼 아스팔트로 포장한 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진흙탕 길에 어쩌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빗길에 미끄러진 노새가 서서평을 팽개치고 광주로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를 도와 마부 노릇 하던 아이는 노새를 잡아오느라고 되돌아갔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 없는 처지라 진흙탕 길을 헤치고 인근 마을을 찾아다니며 조선 사람들이 내어주는 문간방에서 쥐벼룩을 마다하지 않고 지친 육신을 뉘었다. 두세 달에 걸친 시골 순회라도 다녀올 경우, 그가 도착하는 날은 입양해서 기르던 아이들의 온몸에 가득한 이와 서캐(이의 알)를 가려내느라 밤을 새워야 했다.

서서평, 그는 몸과 마음뿐 아니라 자신의 영혼조차도 조선에 바친 사람이었다. 당시 선교사들은 결혼한 부부는 7년마다, 처녀 총각 등 단신으로 온 사람들은 5년마다 1년씩 안식년 유급휴가를 주었다. 일하면서 지친 몸과 향수병을 달래려는 의도였다. 그동안 현장에서 일할 때 헌금을 보내 일을 도운 후원자들에게 보고(報告)도 하고 지속적인 후원을 약속받기 위한 목적도 있다. 군 복무 중인 병사들이 휴가를 목놓아 기다리듯, 선교사들에게 안식년이란 금쪽같이 귀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서평은 22년 동안 사역하면서 단 한 차례밖에 휴가를 사용하지 않았다. 아마 규정대로 네 번에 걸친 안식년 휴가를 제대로 누렸더라면, 그의 생명 역시 조금은 더 연장됐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그는 계산적이지 못했고, 한편으로는 한없이 미련한 사람이었다. 이런 미련함이 서서평을 서서평답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서서평의 주된 관심은 언제나 조선인들이 걸머진 짐을 어떻게 하면 덜어줄 수 있느냐 하는 데 있었다. 1930년 8월, 그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낸 일 년간의 안식년을 마치고 조선을 향해 태평양에 오르면서 후원자들에게 이런 편지를 쓴다.

<이번 출국에는 처음 선교사로 부임하던 때와는 달리 미지(未知)의 세상에 대한 위대한 모험심 같은 큰 흥분은 없었습니다. 대신, 제가 선교사로서 부적합한 것은 아닌지 불안했습니다. 오히려 조선의 생활방식에 더 순응하겠다는 큰 결심을 하였습니다.

조선에서 보낸 지난 17년6개월을 돌아볼 때, 조선인들의 높은 이상과 생활방식을 과소평가하는 큰 실수를 범했던 것 같습니다. 비기독교 동양인의 생활상태가 얼마나 비천한가와는 상관없이, 서구문명을 나름대로 이상화한 까닭에 과거에는 동양인들을 저평가했지만, 사실 조선에는 아름다움, 사랑, 그리고 훌륭한 것들이 많습니다. 한 해 동안 고향에 있으면서 총체적으로 부족함을 깨달았습니다. 미국인으로서의 제 사고(思考)란 조잡함과 결점투성이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이르신 대로 조선으로 돌아가서 조선의 짐을 기꺼이 덜어주려고 합니다. 조선은 지난 4년 연속 흉년(凶年)을 맞았고, 우리가 일 년여 동안 일본 정부에 학교 승인을 요청했지만, 아직 받지 못한 학교 건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번 방문 기간에 이일성경학교를 위한 후원금을 확보하기를 원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이 빚에 쪼들리고 있는 (미국) 교회 앞에서 지어야 할 많은 건물에 대한 말을 하지 못하고 침묵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여성들의 담배 구입비용을 조선의 모든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은 사회적 정신을 거의 잃어버렸기에 조만간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심각한 영적 가난을 들었고 목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봉선동에서 한센병 환자 돌봐



1910년대 한센병 환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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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평은 조선에 처음 들어와 광주제중병원(현 광주기독병원)에서 간호사로 봉선동(鳳仙洞)의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맡았다. 1926년 광주에 몰리기 시작한 한센병 환자들은 130km 떨어진 여수의 율촌면(栗村面)으로 옮겨갈 무렵에는 그 숫자가 630명에 달했다.

조선총독부는 광주 시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2만5000엔의 한센병 시설 이전 비용을 지불했다. 그 무렵 조선에는 2만명의 한센인들이 있었다. 주로 전남·경남 등에 많았다.

소록도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수용시설은 선교사들이 운영했다. 호주장로교가 운영하던 부산 감만동의 상애원(相愛園), 북장로교가 운영한 대구, 남장로교가 운영한 광주와 여수의 애양원(愛養園)이 그것이다. 특히 소록도가 위치한 고흥은 외딴 섬으로 이곳에 유치된 한센인들은 그들을 사람으로 대접해 주는 여수 애양원으로 가고 싶어 영화 <빠삐용> 같은 탈출을 시도하다 거친 바다에 빠져 죽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1926년 광주 봉선동에서 한센인촌이 여수로 옮겨간 이후로도 광주에는 여전히 한센인들로 차고 넘쳤다. 서서평이 봉선동 교회를 맡았을 때, 광주의 한센인촌에는 241명의 남성과 185명의 여성과 어린이들이 있었다.

지원금 가운데 한센인을 위한 치료와 숙식비용이 매달 1인당 3달러50센트가 들어갔다. 한센인들은 영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였다. 하지만 서서평은 그들을 설득해 하루에 한 끼를 굶어 모은 돈으로 제주도 모슬포와 추자도에 전도인을 파송하기 시작했다. 이는 성경에 쓰인 대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기독교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한센인들을 위한 봉사나 섬김을 교회 개척과 분리해 불필요한 사역으로 여겼다. 그런데 아무도 돌보지 않는 이들을 위한 사역에 교회가 나서자,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존경도 덩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1909년 4월 포사이드(Wiley Hamilton Forsythe) 선교사가 동료 선교사인 오웬(Clement Carrington Owen)의 죽음을 앞두고 목포에서 광주로 진료 차 오던 중 길거리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한센인 여성을 구해준 사건은 지역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포사이드 선교사는 한센인 여성을 자신의 말에 태워 광주로 데리고 와서 살 집을 마련해 주고 병을 고쳐주었던 것이다.

그동안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한센인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핀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포사이드 선교사의 행동은 지역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덩달아 선교사들의 사역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 시설을 위해 영국 에든버러 나환자협회와 뉴욕 나환자협회가 거금을 지원했고, 훗날 일본의 왕실에서조차 정기적인 후원금을 보내왔다.


한센인들의 대행진



한센인 아이 요셉을 등에 업은 서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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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평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은 1932년 ‘한센인들의 대행진’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나 3·1운동, 6·10만세 사건, 1907년에 일본의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인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 등은 독립운동과 일맥상통한다. 반면 ‘한센인의 아버지’ 최흥종과 더불어 서서평이 지도한 ‘한센인 대행진’은 순수한 민권운동으로 기록된다.

한센인 대행진은 일제가 한센인들을 강제로 정관수술토록 해 이들의 씨를 말리려고 했던 정책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됐다. 150여 명의 한센인들이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 조선 총독에게 항의하기 위해 광주를 떠났다.

서울로 향하던 도중에 이 소식을 들은 지방 동조자들이 가세해 대열은 무려 400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은 총독부 앞에서 꽹과리를 울리고 온몸으로 울부짖으며 항의 집회를 이어갔다. 우가키 총독은 하는 수 없이 이들에게 더 이상의 정관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만 했다.

이들을 위한 후생 시설을 소록도 안에 지어주기로도 약속했다. 한센인들의 처절한 생존 싸움은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다. 한편으로 짚고 넘어갈 일은 단순히 조선인들만의 저항이나 대행진이었다면 일본 정부가 어떻게 대했을까 하는 점이다. 일본 관헌이 사회적 기강을 내세워 강압 정책을 펼쳤더라면 대행진이 과연 무혈(無血)로 끝날 수 있었을까.

이미 서서평은 1919년 독립운동 인사들을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가 옥바라지 한 경력이 있어 일본 정부는 서서평을 껄끄럽게 여겼다. 이처럼 서서평 같은 외국 선교사가 가세함으로 외교적 문제가 발생할 소지를 없애려 했던 총독부가 이를 서둘러 무마한 것이 아닌가 짐작할 수 있다. 최흥종은 1912년부터 1934년에 이르기까지 서서평과는 동지적 관계로 힘을 합친 믿음의 사람이었다. 여하튼 사회적 약자를 향한 서서평의 관심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였다.


과부와 고아들의 어머니로



1930년대 서서평의 모습. 1911년 조선땅에 도착할 때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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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국 사회는 여성과 아동에 대한 인권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이름조차 없던 여성들은 갖가지 이유로 천대받기 일쑤였다. 더욱이 딸을 낳게 될 경우, 개천에 내다버리던 일이 비일비재했다. 서서평은 지방 나들이에서 여성의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현장을 목격했다. 그가 만났던 500명의 여성 가운데 본인의 이름을 갖고 있거나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을 거두어들여 이들을 먹이고 가르쳐 ‘전도부인’을 삼았다. 삶의 나락에서 구원을 받았던 이들은 서서평을 어머니로 섬겼다. 그들은 서서평의 선교를 도와 복음 전파 사역의 첨병으로 변했다. 그가 1922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몸져 누운 병상에서 불우한 여성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이일학교(李一學校)의 시작이다. 서서평 사후(死後) 이일학교는 전주로 옮겨져 오늘날 한일 장로교신학대학교로 변신을 하게 된다.

천대받는 여성과 고아의 어미로서 서서평은 우리나라에 여성운동의 기폭제 역을 감당한다. 이 일은 주로 1922년을 정점으로 이뤄졌다. 광주에서 만난 여장부 김필례를 지도해 YWCA를 조직하도록 했다. 광주 YWCA가 서울 YWCA보다 먼저 조직되는 계기다.

또 김필례와 더불어 광주 제일교회 내에 여전도회를 조직한다. 이 여전도회를 시작으로 호남 전 지역과 제주 지역의 여전도회를 통해 교회가 살고 여성이 사는 큰 틀을 만들었다. 현재 한국 기독교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여성들은 서서평 선교사가 세운 이 조직의 성원이다.

이러한 여성운동이야말로 여성 자신을 일깨우고 교회를 살리며 민족 계몽을 통해 나라를 변화시키는 촉매 작용을 했다. 그러나 진정한 서서평의 관심은 그늘지고 소외된 여성과 고아들이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올곧은 관심사인 줄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여성운동에는 한결같이 수피아와 정신 여학교 교장을 지낸 김필례와 호남 여성운동의 대모 조아라(曺亞羅)가 든든한 우군(友軍)이었다.

서서평은 1919년 여름까지 서울의 세브란스에 머무르며 간호사를 양성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의 간호사 양성에 대한 꿈은 아쉽게도 군산 병원에서부터 세브란스에 이르기까지의 4년간이 전부였다. 군산에서 가르치던 학생들을 이끌고 세브란스로 옮겨와 간호사들을 가르치기 전 이미 스프루라는 풍토병에 걸린 것이다.

간호사를 교육하는 소망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이다. 대신 조선에 와 있던 간호 선교사들의 모임인 ‘재선기독교 간호사회(在鮮基督敎看護士會)’를 조선인들까지 참여하는 조선간호부회(朝鮮看護婦會)로 발족시키고, 내리 11년 동안 회장을 맡았다. 오늘날의 대한간호협회의 전신이다.

당시는 예방 간호나 방문 간호라는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을 유교적 예법으로 치던 시절이라 부녀자가 간호사가 돼 외간 남정네의 상처를 치료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간호사를 구하고 이들을 교육시킨다는 것 자체가 난관이었다. 지금은 해마다 새내기 면허 간호사가 1만4000명에 이르고, 국내에 머무르는 간호사 숫자가 40만명에 이르는 대형 단체에, 간호사가 교사와 더불어 결혼 상대 0순위라는 사회적 인식이 세상의 변화를 말해준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記章’은 없으나…

1934년, 서서평은 병상에서 죽기 전 이렇게 기도했다.

“내가 품고 있는 포부는 하늘만큼이나 원대한데, 풍토병 때문에 천직으로 알았던 병원 일도 그만두어야 했고, 이일학교 경영도 못 하고 있습니다. 3년만 더 시간을 주신다면 하나님의 사업을 더하고, 끝맺음을 짓지 못한 조선간호부회의 국제 간호협의회 가입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 하나님, 아픔을 덜어주시고 3년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서평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에 대해 감사했다. 그가 생각할 때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은혜가 너무 많고, 감사할 조건도 많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히 여겼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죄 씻음 받을 기회를 주시니 감사했고, 조선 백성들이 자신에게 베풀어준 사랑에 감사했다. 그는 또 자신의 몸을 의학연구 자료로 제공할 수 있는 마음까지 주신 것도 감사히 여겼다.

그의 나이 쉰넷, 평범한 간호사로 살다 간 그에게는 간호사 최고의 영예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기장’도 없고 ‘국제 간호대상’도 없다. 살아생전 그가 받은 상이라고는 거친 들판에서 구슬땀 흘리며 나누던 해맑은 웃음뿐이다.

그런 그가 살다 간 이 땅에서 몸서리치는 감동과 가치 있는 삶을 살았던 덕에 제2, 제3의 서서평이 되려는 간호사가 줄을 잇는다. 그는 살아생전 아무런 상도 명예도 누리지 못했지만 지금도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 땅의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쏟아부은 그의 아름다운 청춘 스물두 해, 그의 올곧은 헌신과 섬김을 최고의 것으로 만들었다. 서서평, 우리 시대의 작은 영웅은 아무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흉내 낸다고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제 우리는 흉내라도 낼 작은 용기라도 가졌으면 좋겠다.⊙

2021/04/21

알라딘: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 이기상

알라딘: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 | 살림지식총서 24
이기상 (지은이)살림2003-08-30







정가
4,800원


8.5 100자평(2)리뷰(2)
96쪽
책소개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는 몸으로 부대끼며 사는 삶의 세계에 바탕한 우리의 고유한 철학을 세워보려는 시도이다.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여 우리의 역사와 문화, 현재의 삶의 세계와 문법을 우리의 철학으로 체계화시켜서 제시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

지은이는 21세기 한국의 학문계가 기업의 벤처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우리의 생활세계를 서양 이론의 중독에서 우리 자신을 구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하며, 지은이는 '사이 존재'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이를 통해 '살림살이의 철학'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목차


우리의 생활세계에 바탕을 둔 이론 모색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
21세기의 화두 '생명': 생명과 더불어 철학하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기상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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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그 뒤 독일 뮌헨 예수회철학대학에서 철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로 1984~2012년까지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의 초대회장이었으며, 현재 우리사상연구소 소장이다. 1992년 열암학술상을 수상하였으며, 1994년 한국출판문화상 번역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저서로 『하이데거의 실존과 언어』, 『하이데거의 존재와 현상』, 『철학노트』, 『콘텐츠와 문화철학』, 『지구촌 시대와 문화콘텐츠』, 『글로벌 생명학』 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존재와 시간』(M. Heidegger), 『하이데거의 예술철학』(F. W. von Hermann)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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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소통과 공감의 문화콘텐츠학>,<동서양 철학 콘서트: 서양철학 편 (대활자본)>,<동서양 철학 콘서트: 서양철학 편> … 총 31종 (모두보기)


평점
분포

8.5




유명모를 알 수 있는 좋은 글..
밭고랑 2011-12-16 공감 (1) 댓글 (0)



눈물이 앞을 가린다.
시시프 2011-04-04 공감 (1) 댓글 (0)



마이리뷰


이땅에서 철학하기

이 땅에서 철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의 자기성찰적인 책들은 꾸준히 나왔다. 많은 철학자들이, 인문학자들이 이에 대해 고민하고, 자기의 밥그릇 문제 때문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철학이 없는 사람들, 철학이 없는 국가의 현재 상태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대로 그 해결책을 내놓으려 시도하고 있다. 한국외대 철학과 교수 이기상의 <이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 역시 이와 같은 고민에서 비롯되어 나온 하나의 작은 결실이다. 그는 "우리가 몸으로 부대끼며 사는 삶의 세계에 바탕한 우리의 고유한 철학이론을 세워보고자 시도해본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의 '철학하기'는 구체적인 생활세계와 그 언어인 일상 언어를 떠나서 행해질 수 없다.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여 우리의 역사와 문화, 현재의 삶의 세계에서 무늬와 결로 아로새겨져 있는 삶의 문법을 우리의 철학으로 체계화 시켜서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책에서 그 첫걸음을 내딛어 본다." 라고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지은이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철학, 대다수의 철학자들이, 철학을 공부한다는 이들이 하고 있는 철학이라는 것은, 서양의 것이고, 우리만의, 이땅에서 필요한 철학이 부재중이라고 진단한다.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외국의 이런저런 석학들을 모셔와 이야기를 듣고, 우리의 문제를 그들에게 진단내려달라 한다. 1996년에 리처드 로티와 위르겐 하버마스가 내한했을 때, 한국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내려달라는 우리 학자들의 요구에 그들은 당사자인 한국의 학자들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정답이다. 우리의 문제를 이제 한 번 내한한 그들에게 물어보는 것은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 우리의 문제는 지금 이 땅에 발붙여 살고 있는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한 진단과 처방 역시 우리 스스로가 내려야 한다. 나의 문제를 내 고민 없이 타인에게 맡겨버린다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짓이다.

저저는 이와 같은 한국 철학의 문제를 지적하고서 우리 생활 세계에 바탕한 철학이론 세우기를 시도한다. '사이이론'이라고나 할까. 자연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문명과 사람 사이가 극도로 파괴되는 혼돈의 시대 속에서 사이의 철학을 강조한다.

"다만 남의 말이나 자기가 들은 것에만 의지하는 사람은 더불어 학문을 말할 것이 못된다. 하물며 평생토록 마음의 작용과 자연의 현상에 생각이 미치지 못한 사람이랴."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 中)

이땅은 외국철학이론의 전쟁터가 되었으며, 우리의 생활에 바탕한 철학이론을 세워야 한다는 지은이는 열하일기의 한 대목을 통해 이를 강조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우리만의 토대가 있어야 하며, 이를 우리 스스로 중심을 잡고 굳건하게 서있을 수 있기 위해서 우리만의 터전이 필요하다(공간성, 영토성), 중심을 잡기 위해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어야 한다(정체성, 동질성), 우리의 생활 세계와 문화, 역사에 대해 주인이 되어야 한다(주체성), 또 잊지말아야 할 것이 세계상황이다(세계성, 보편성) 라고 하며 몇 가지를 이야기한다.

이어 그는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를 지적하며 서양은 있는 것(존재)에 대한 놀라움으로 철학을 시작했고, 우리는 없는 것에 대한 경외심에서 철학을 시작했다고 하며, 철학의 시작이 다르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 서양철학의 이성중심, 인간중심적 사고관에서 벗어나 감성과 자연중심적 사고를 해야한다. 이성중심적 세계관은 히로시마의 원폭,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대량학살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고, 우리는 이성중심의 하나의 세계가 아닌 문화, 종교, 언어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인정하는 다양성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란 결국 '사이'의 존재이며, 첫째, 빔-사이(공간). 노동이 도구, 기술, 예술, 생산, 거주라는 방식으로 이어지며 인간은 사이에 있음으로써 빔-사이를 채워나가며 사이를 나름대로 인간적인 과정으로 만들어 나간다. 공간이라는 빔-사이를 없애는 것은 기술로 이루어지는데, 교통과 통신이 그것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둘째로, 인간, 즉 사람 사이에 있음을 이야기하며, 이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행위는 '말'이며, 말의 실천에서 관습, 윤리, 도덕, 사회, 국가가 생겨난다, 사람 사이의 간격을 없애는 것이 평등이며 인권이다. 사람 사아에 있음이 무너지게 되면 도덕,윤리가 무너지게 된다고 말한다. 셋째는, 때 사이에 있음, 즉 시간이다. 이는 역사, 학문, 지평이 생겨나는 공간이며, 인간은 시간적인 존재로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과거의 전통을 세우고, 현재가 과거에 의해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도록 하며,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시각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넷째, 천지간, 하늘과 땅 사이를 말한다. 기도, 감사, 초월, 성스러움, 신, 종교 등으로 이야기되는 차원이며, 인간은 우주적 인 사이에 있음을 책임져야 할 뿐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의 사이에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그는 때- 사이에 있음(주체성), 빔-사이에 있음(공간성,영토성), 사람-사이에 있음(역사성), 하늘과 땅-사이에 있음(보편성)을 논한다.

또한 그는 이땅에서 철학하기 위한 조건으로 우리말을 이야기한다. 언어는 세계를 보는 시각이며, 영어공용화나 한자병용과 같은 논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지은이는 철학함을 이끌고 있는 언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열 가지 명제를 소개한다.

첫째, 언어는 세계를 보는 눈이다. 둘째, 언어는 민족을 묶는 끈이다. 셋째, 언어는 사고방식을 형성해주는 틀이다. 넷째, 언어는 의식의 밑바탕을 이루는 무의식이다. 다섯째, 언어는 정서의 공감대이다. 여섯째, 언어는 자주와 자율의 바탕이다. 일곱째, 언어는 자유와 평등의 조건이다. 여덟째, 언어는 학문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제이다. 아홉째, 언어는 사람 사이의 다리이다. 열번째,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우선 그의 한국 철학의 현 세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땅에서 학문하기 위한, 이땅에서 철학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고민이 묻어나는 짧은 글이었다. 이땅의 철학이 중심을 잃고 이성중심적인 서구적 세계관을 바탕으로한 서양철학의 전쟁터가 되었다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를 대체하기 위해, 우리말로 철학하기 위해 그가 제시하고 있는 그만의 처방엔 언뜻 동의하기 힘들다. 아니 동의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동감은 하기 힘들다. 그의 처방은 적절해보이면서도 어딘가 허전하다. 그것은 그가 제시하고 있는 우리철학이라는 것이 이땅에 발붙여 사는 우리의 구체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추상적이고 뜬 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이미 들어온 서양의 문화, 서양의 철학도 결국 우리의 것이다라는 탁석산의 진단이 더 적절하고 현실성 있어 보인다. 탁석산은 <한국의 주체성>과 <한국의 정체성>에서 우리 것이란 과거에 우리 선조들이 누렸던, 선조들이 말하고 글로 남겨왔던 그것과는 다르다고 말하며, 외국의 것이라도 일단 우리에게 접수된 이상 그리고 우리식으로 변질된 이상 그것은 더이상 외국의 것이 아니고 우리의 것이라고 했다. 헐리우드 액션영화를 본 딴 영화 <쉬리>를 서양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의 고민과 시도는 좋았으나 너무나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독일에서 하이데거를 전공한, 서양의 철학을 한 철학자가 서양철학의 지배를 받고 있는 우리네 현실을 지적한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그의 한국철학에 대한 고민에 꼬투리를 잡을 수는 없을 터. 그는 이를 의식한 탓인지 책의 중간에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일본어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우리말 번역어를 전혀 모르면서 독일에서 독일어로 독일식으로 사유하며 철학 공부를 시작한 나에게는 한국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한 다른 사람에게 없는 장점이 하나 있음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논의가 되고 있는 철학적 사태를 일본어적인 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우리말의 언어적인 상황에로 옮겨 놓고 우리의 일상세계적 맥락에서 이해해 보려고 시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것이었다. "

우리네 철학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철학과에 개설된 '한국철학'이라는 수업에서는, 지눌과 불교, 권수정혜결사문, 성학십도, 동몽선습, 격몽요결, 사소절, 우주문답, 서유견문, 동경대전과 같은 우리네 선조들의 서적을 읽으며 한국철학을 논하지만, 그것이 한국철학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단지 편의상 철학의 과목을 나누고 이름붙이기 위해 '한국철학'으로 분류했다면 동의하겠지만 말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이땅에서 철학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책을 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그들의 책을 읽고 이것이 정답이다 라고 무릎을 칠만한 적절한 진단과 처방을 보진 못했다. 기존의 학자들의 주장과 철학자 이기상의 주장이 별반 다를 것이 없는데 비해, 철학자 탁석산의 주장은 그나마 신선하기라도 했다.

이 책과 더불어 조동일의 <이땅에서 학문하기>, 최종욱의 <이땅에서 철학하는 자의 변명>, 탁석산의 <한국의 주체성> <한국의 정체성> 을 읽는다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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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3-26 공감(11)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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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드니 철학이 좋아...
  • (며칠전 이책에 대한 느낌을 길게 썼다가 막판에 둘째가 '톡' 건드리는 바람에
  • 영 허무 하게 되버렸다. 해서 의욕상실의 연장 선상에서 간단히...ㅠㅠ)

  • 1. 나이 드니 철학이 좋다.(평균수명에 비추면 겨우 반 살았지만..)
  • 2. 이기상 선생님 카톨릭 신부에서 하이데거에 반해 철학자가 되었다는게 넘 매력있으셔~~~
  • 3. 우리말로 철학하기라는 주체성이 너무좋다.
  • 4. 물론 서양철학자의 읊조림도 경청해야 하겠지만 우리정신에는
  • 서양 철학이라는 옷이 맞으면 몰라도 맞지도 않을 경우는 우겨입히지 말자.

  • 5. <존재와 시간>도 샀다.
  • 6. 이 책 값 봐라. 3000원도 안된다.
  • 7. 뜬금없이 요새는 공자님의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까정 와 닿는다.
  • 8. 이기상 교수의 글을 읽으면 글씨, 공자님이 말하는 도를 아침에는 못 얻어도
  • 죽기전에는 얻지 않을까. ㅋㅋ..

  • 9. '인문학 열전' 에서 김갑수씨와 대담하시는걸 봤는데 철학이 너모깊어
  • 학의 날개와도 같은 고고한 인품이 자체 발광~~~ 이런 교수님 많아야 대학이 맑아지고
  • 지성의 전당이 되지 않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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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2009-04-24 공감(1) 댓글(0)


여울 2005-12-12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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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low Got It Wrong. It turns out that Abraham Maslow took… | by GatherFor | Apr, 2021 | Medium

Maslow Got It Wrong. It turns out that Abraham Maslow took… | by GatherFor | Apr, 2021 | Medium

Maslow Got It Wrong

By Teju Ravilochan




GatherFor


Apr 5·6 min read




Photo by Ehud Neuhaus on Unsplash. The tipi symbolizes the Blackfoot view Maslow borrowed from: each pole requires every other to stand.

Some months ago, I was catching up with my dear friend and board member, Roberto Rivera. As an entrepreneur and community organizer with a doctorate and Lin-Manuel-Miranda-level freestyle abilities, he is a teacher to me in many ways. I was sharing with him that for a long time, I’ve struggled with Maslow’s Hierarchy of Needs.
The traditional interpretation of Maslow’s Hierarchy of Needs is that humans need to fulfill their needs at one level before we can advance to higher levels.

As often happens, Roberto was deeply studied on the subject and revealed to me something I had no idea about: Maslow appropriated the concept from the Siksika (Blackfeet Nation) and got it backwards. He sent me a few articles to read. I learned that Maslow spent six weeks in the summer of 1938 living among the Blackfeet near Alberta, Canada. And, as the Wikipedia article on Maslow’s Hierarchy of Needs shares:


Maslow’s idea emerged and was informed by his work with Blackfeet Nation through conversations with elders and inspiration from the shape and meaning of the Blackfoot tipi. Maslow’s idea has been criticized for misrepresenting the Blackfoot worldview, which instead places self-actualization as a basis for community-actualization and community-actualization as a basis for cultural perpetuity, the latter of which exists at the top of the tipi in Blackfoot philosophy.
The Blackfoot Tipi
This is a slide from a presentation by Cindy Blackstock, a University of Alberta Professor, found at Karen Lincoln Michel’s blog here.

The Blackfoot model describes the inverse of Maslow’s Hierarchy:
Self-actualization. Where Maslow’s hierarchy ends with self-actualization, the Blackfoot model begins here. In their view, we are each born into the world as a spark of divinity, with a great purpose embedded in us. That means that we arrive on earth self-actualized.
Belonging. After we’re born, imbued with a divine purpose, the tribe is there to love and care for us.
Basic Needs & Safety. While in Maslow’s model, we find love and belonging only after attending to our basic needs and safety, the Blackfoot model describes that our tribe or community is the means through which we are fed, housed, clothed, housed, and protected. The tribe knows how to survive on the land and uses that knowledge and skill to care for us.
Community Actualization. In tending to our basic needs and safety, the tribe equips us to manifest our sacred purpose, designing a model of education that supports us in expressing our gifts. Community actualization describes the Blackfoot goal that each member of the tribe manifest their purpose and have their basic needs met.
Cultural Perpetuity. Each member of the tribe will one day be gone. So passing on their knowledge of how to achieve community actualization and harmony with the land and other peoples gives rise to an endurance of the Blackfoot way of life, or cultural perpetuity.
Maslow’s Failure to Elevate the Blackfoot Model

According to some accounts, Maslow was awed by Blackfoot culture, but unsure how to incorporate their wisdom into a theory that fit with individualistic American culture. As Maslow’s biographer Edward Hoffman writes, Maslow discovered:


To most Blackfoot members, wealth was not important in terms of accumulating property and possessions: giving it away was what brought one the true status of prestige and security in the tribe. At the same time, Maslow was shocked by the meanness and racism of the European-Americans who lived nearby. As he wrote, “The more I got to know the whites in the village, who were the worst bunch of creeps and bastards I’d ever run across in my life, the more it got paradoxical.”

The generosity Maslow witnessed among the Blackfeet is quite common among Native cultures and rarer in European-American culture. The job of Potawatomi leaders, as described in Robin Wall Kimmerer’s Braiding Sweetgrass, was to be a safety net. The Chief would give of their own stores and possessions to help the tribe member return to health or sufficiency. This meant that there was very little inequality in Native cultures. Yet, ours is a civilization where we allow 1 in 4 households to experience food insecurity and in which the richest 0.1% of Americans earn 196x as much as bottom 90%.


And unlike Native Americans, those of us who have more than enough do not generally see it as our role to close the gaps of inequality. As Ken Stern writes in The Atlantic:


In 2011, the wealthiest Americans — those with earnings in the top 20 percent — contributed on average 1.3 percent of their income to charity. By comparison, Americans at the base of the income pyramid — those in the bottom 20 percent — donated 3.2 percent of their income. […] Some experts have speculated that the wealthy may be less generous [than other classes] — that the personal drive to accumulate wealth may be inconsistent with the idea of communal support.

Amidst stark inequality, self-interest, and separation, Maslow might have risked a great deal by using his privileged position to elevate the wisdom of the Blackfeet. Perhaps he would have been like a mid-20th-century Galileo, whose defense of the Copernican heliocentric solar system led to his being labeled a heretic by the Catholic Church and placed under permanent house arrest. But perhaps the interruption to normal life brought by COVID-19 and the growing awareness about injustice in the US might offer us an opportunity to change our story.
Waking up From our Dream

In Decolonizing Wealth, Dana Arviso, executive director of the Potlatch Fund and member of the Navajo tribe, tells author Edgar Villanueva about a perspective from Native communities when she asked them about poverty reduction strategies:


“They told me they don’t have a word for poverty,” she said. “The closest thing that they had as an explanation for poverty was ‘to be without family.’” Which is basically unheard of. “They were saying it was a foreign concept to them that someone could be just so isolated and so without any sort of a safety net or a family or a sense of kinship that they would be suffering from poverty” (p. 151).

It’s time for us to let go of narratives like Maslow’s Hierarchy of Needs and the American Dream, which leave out any mention of participating in community well-being and tell a story only of individual flourishing. This is a profound distortion of reality and leaves us living in illusion, needing to wake up. As Daniel Suelo says in The Man Who Quit Money, “there’s not a creature or even a particle in the universe that’s self-sufficient. We’re all dependent on everybody else” (p. 133).

Who sewed the clothes you’re wearing right now? How many materials from how many different parts of the world are inside the device you’re reading this post on? How many hands touched the food you ate for lunch on its way to your bowl? How many living beings participated in the creation of your home? Even if you purchased these goods with money you earned, you are not self-sufficient. You are living, perhaps, more in alignment with the Blackfoot model than with Maslow’s.

Let this pandemic be our moment to interrupt our old story. There are already encouraging signs about how we’re beginning to embrace previously heretical ideas like reparations, universal basic income in the form of stimulus checks, and mutual aid. Our hope at GatherFor is to be part of this change in our collective story. This is our moment to step out of our lonely struggle to fend for ourselves, which we protect due to our own internalized oppression and at the cost of our humanity. This is our moment not to create something new, but to return to an ancient way of being, known to the Blackfoot and indigenous communities around the world. It’s a story that leaves no one without family, a story in which we begin by offering each other belonging, and end by teaching others how we lived: together.

Thank you to Colette Kessler and Vidya Ravilochan for reading drafts of this post and offering suggestions to improv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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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merican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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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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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Min Ji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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斉藤高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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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out of 5 starsこれからは旦那さんと住む家があなたの故郷になるの
Reviewed in Japan on August 4, 2020
 今、「パチンコ "Pachinko"(上・下)」(ミン・ジン・リー 文藝春秋)を読み終えました。表現が良いか悪いか悩むところですが、3世代に渡る「在日コリアン」家族を描き切った壮大で、鮮烈な物語がチャールズ・ディケンズの著作のようにある「公平性」と透徹した現実認識の下、過度に感傷に流されない文体によって描かれているように思えます。多くのテーマ性によって物語が彩られ、構築されているにも関わらず書き過ぎていないことは或る種の<奇跡>のようです。

 第一部、その物語は1910年(日韓併合条約締結時)に始まりますが、朝鮮、釜山、影島にて、勤勉に下宿屋を営む夫婦の間に生まれたソンジャが、16歳の時に出会った<男>コ・ハンスに誘惑され妊娠してしまいます。私にとっては、日本に妻子のいるハンスからの「結婚はできないが面倒はみる」という申し入れを決然と拒否しつつ、前を向くソンジャのその凛然とした姿からこの物語が怒涛のような感情のブレをもたらしながら始まったと言ってもいいと思います。
 その物語は、第二部、1939年の大阪・猪飼野での物語に引き継がれ、第三部、1982~1989年の東京、横浜へとうねりながら相伝していくわけですが、そのストーリーを詳述するつもりはありません。「在日コリアン」の視点から描かれる歴史認識、一致団結して世の中が何一つ変わらないようにしている「日本」というこの国、多くの差別、偏見に多くの憤りと人物たちへの共感、適度に訪れる違和感を感じながらの読書になりましたが、この物語を蕩蕩と流れ切る地下水脈のような<霊性>の透明度は、やはり計り知れないものがありました。何故なのでしょう?それは、ソンジャの夫になるプロテスタントの牧師イサクと「やくざ」でもあるコ・ハンスという二人の男の間で、世界中で居場所を無くしたはずの「在日コリアン」のひとりの女性・ソンジャが体現する「聖母」としての凛とした姿と、一人の男として成長し、何も変わらない「在日コリアン」という己がアイデンティティを確立させたソンジャの息子、モーゼスの姿に圧倒的な「よきもの」を浴びせられ、心の底から浄化された私自身を見つけることができたからなのでしょう。よって、この困難な時代にあってこの小説が読めたことを深く感謝したいと思います。
 反面、登場するすべての女性たちがある懐かしさをもたらし、豊満で懐深いその「母性」へと導く物語でありながら、コ・ハンスとその息子・ノアの生き方に戸惑いつつも、魅了されている自分がいることも認められるような気もしました。
 読み終えてみて、ある時、ある女性が私にこう言っていたことを即座に思い出しました。
 「子供の頃のわたしから見た時、40代、50代の大人と言われる人たちは、みんなしっかりしていて、立派に見えたものだったわ。でも、私も大人になって、この年になって言えることは、少し悔しいけれども、人は20歳でも清々しい、立派な人がいて、40、50になってもいつまでも愚かで、不出来で、どうしようもない大人がいることに気がついた。丁度、目の前の貴方や、わたしのような・・・」(目の前の貴方は、これを書いている私(笑))
 私は、第一部で描かれた「善き人々」を今でも、いつまでも思っていることでしょう。

 この小説において、遊技機<パチンコ>があたかも「在日コリアン」を表す一つのアイコンのように取り上げられています。<瑕疵>とは言えないとは思いますが、描かれている1962年のパチンコ・ホール、パチンコ台の遊戯性には<囚われ>のような違和感を抱いたことは記述しておきたいと思います。私が知っているその当時のホールは、この国の多くの繁華街で見受けられてはいましたが、遊戯者は立ちながら、買った玉を一発ずつ流し入れ、レバーを弾き、釘の間を通ってチューリップという当たりをひくことで出玉を得られるかなり<技術介入>の高い遊戯だったと思います。そういう意味では、「客」対「釘師」の時代と言ってもいい。この小説で描かれる<パチンコ>は、1980年以降、スタート・チャッカーに玉が入るとリールが回り、数字が揃うと出玉が獲得できる「フィーバー機」をイメージして描かれているような気がします。描かれるホール、パチンコ・チェーン?の様子などと含めて考えた時に、20年ぐらいの時間のずれが感じられるような気がしましたが、いかがでしょう。とは言え、そのことがこの壮大な物語の持つ<霊性>に何らかの影響をもたらすとも思え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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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かちょうちん
3.0 out of 5 stars在日コリアンを考える本としては良いですが、物語としては一本の筋が通っていず感動しませんでした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26, 2020
 本書は、全米および日本の読書好きの多くの人から好評を得ているようですが、私の素直な感想としては、それほど良い本だとは思いませんでした。
 この本の良いところ、いまひとつのところ(良くないところ)を箇条書きすると次の通りです。
◆良いところ
①在日コリアンのことを知り考えるのに、サラーッとですが満遍なく情報を与えてくれています。例えば、日韓併合、土地接収、コリアンの大阪鶴橋への移住、日本での困窮と被差別、北朝鮮への帰国問題、等々です。
②本書の至る所に、人生や社会についての名言・箴言が記されています。これはおそらく、著者の洞察から紡ぎ出されたものと、著者からインタビューをされた多くの人たちの経験から発せられたものなのでしょう。
③主人公の女性のソンジャが超美人でないところが良いです。普通の顔立ち、どちらかといえばガッチリした体型、まじめに粘り強く働く人、生活の知恵も持っているという造形は魅力的でした。本書の上巻の良さはこの人物像によるところが大きいように思います。
④簡潔な表現で人間の心情や状況変化を示していて、読み手が想像を膨らませて深く感じることが出来ます。
⑤家族の絆、喜怒哀楽はどこの民族でも同じだと教えられました。
◆いまひとつのところ(良くないところ)
①いろいろな話が「継ぎ接ぎ」されていて、著者の思いが一本の筋として通っていないように感じました。苦境にめげず逞しく生きた女性を描くのか、底辺に生きる人たちが努力しても努力しても生活が良くならない状況を示すのか、頑張って理想に向かいつつある人と種々の事情から努力できず転落する人を対称的に書くのか、著者の思想を明確にした方が物語として感動を与えるものになったと思います。
②主要な登場人物の名前として、イサク、ヨセプ、ノア、モーザスという旧約聖書に出てくる名前が使われているので、それらの人生に聖書の人物の寓意が込められているはずと思って読み進みました。しかし、私の感性が悪いのか、あまり寓意が感じられませんでした。寓意を感じるストーリー展開を見る前に、主要な人物やその伴侶が次々と死んでしまいます。人物一人ひとりを丹念に描くことが大切だと思いました。
③ソンジャを韓国での愛人にしようとし、その後日本で彼女を支援するコ・ハンスという人物は、捉えようによってはマーガレット・ミッチェルの『風と共に去りぬ』のレット・バトラーを彷彿とさせて興味深いのですが、人物像が一定していません。最初は日本から韓国へやってきた仲買人、やがて鶴橋の高級焼肉店経営者、そして全国に調査網と人脈を持つやくざの後継者と描かれていきます。ノアに期待する立派な心情やセリフとやくざの生き方に、私は矛盾を感じ納得できませんでした。やくざな生き方をしている人は、多くの場合やくざな心情になりがちですから。
④下巻に出てくる同性愛者の野外セックス行為や性的な問題で一般社会から追いやられた女性のセックスシーン、および投資銀行関係者のギャンブルや不正行為などの話は、取って付けたような話で、無かった方が良いと思いました。
◆最後にまとめを言いますと、次の通りです。
①この本が全米で人気があったのは、米国人が、在日コリアンの苦労する姿に、米国へ移ってきた自分たちや親たちの苦労の姿を見、共感したからではないでしょうか。
②著者が多くの事実を調べ、大勢の人にインタビューして、本書を書き上げたことには敬意を表しますが、収集した情報を消化しきれていないと感じました。もっと、ソンジャやノアやモーゼスに的を絞って、その3人の苦労や心情や活躍に寄り添って物語を書いたら、非常に素晴らしいものになったように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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斉藤高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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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out of 5 stars これからは旦那さんと住む家があなたの故郷になるの
Reviewed in Japan on August 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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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今、「パチンコ "Pachinko"(上・下)」(ミン・ジン・リー 文藝春秋)を読み終えました。表現が良いか悪いか悩むところですが、3世代に渡る「在日コリアン」家族を描き切った壮大で、鮮烈な物語がチャールズ・ディケンズの著作のようにある「公平性」と透徹した現実認識の下、過度に感傷に流されない文体によって描かれているように思えます。多くのテーマ性によって物語が彩られ、構築されているにも関わらず書き過ぎていないことは或る種の<奇跡>のようです。

 第一部、その物語は1910年(日韓併合条約締結時)に始まりますが、朝鮮、釜山、影島にて、勤勉に下宿屋を営む夫婦の間に生まれたソンジャが、16歳の時に出会った<男>コ・ハンスに誘惑され妊娠してしまいます。私にとっては、日本に妻子のいるハンスからの「結婚はできないが面倒はみる」という申し入れを決然と拒否しつつ、前を向くソンジャのその凛然とした姿からこの物語が怒涛のような感情のブレをもたらしながら始まったと言ってもいいと思います。
 その物語は、第二部、1939年の大阪・猪飼野での物語に引き継がれ、第三部、1982~1989年の東京、横浜へとうねりながら相伝していくわけですが、そのストーリーを詳述するつもりはありません。「在日コリアン」の視点から描かれる歴史認識、一致団結して世の中が何一つ変わらないようにしている「日本」というこの国、多くの差別、偏見に多くの憤りと人物たちへの共感、適度に訪れる違和感を感じながらの読書になりましたが、この物語を蕩蕩と流れ切る地下水脈のような<霊性>の透明度は、やはり計り知れないものがありました。何故なのでしょう?それは、ソンジャの夫になるプロテスタントの牧師イサクと「やくざ」でもあるコ・ハンスという二人の男の間で、世界中で居場所を無くしたはずの「在日コリアン」のひとりの女性・ソンジャが体現する「聖母」としての凛とした姿と、一人の男として成長し、何も変わらない「在日コリアン」という己がアイデンティティを確立させたソンジャの息子、モーゼスの姿に圧倒的な「よきもの」を浴びせられ、心の底から浄化された私自身を見つけることができたからなのでしょう。よって、この困難な時代にあってこの小説が読めたことを深く感謝したいと思います。
 反面、登場するすべての女性たちがある懐かしさをもたらし、豊満で懐深いその「母性」へと導く物語でありながら、コ・ハンスとその息子・ノアの生き方に戸惑いつつも、魅了されている自分がいることも認められるような気もしました。
 読み終えてみて、ある時、ある女性が私にこう言っていたことを即座に思い出しました。
 「子供の頃のわたしから見た時、40代、50代の大人と言われる人たちは、みんなしっかりしていて、立派に見えたものだったわ。でも、私も大人になって、この年になって言えることは、少し悔しいけれども、人は20歳でも清々しい、立派な人がいて、40、50になってもいつまでも愚かで、不出来で、どうしようもない大人がいることに気がついた。丁度、目の前の貴方や、わたしのような・・・」(目の前の貴方は、これを書いている私(笑))
 私は、第一部で描かれた「善き人々」を今でも、いつまでも思っていることでしょう。

 この小説において、遊技機<パチンコ>があたかも「在日コリアン」を表す一つのアイコンのように取り上げられています。<瑕疵>とは言えないとは思いますが、描かれている1962年のパチンコ・ホール、パチンコ台の遊戯性には<囚われ>のような違和感を抱いたことは記述しておきたいと思います。私が知っているその当時のホールは、この国の多くの繁華街で見受けられてはいましたが、遊戯者は立ちながら、買った玉を一発ずつ流し入れ、レバーを弾き、釘の間を通ってチューリップという当たりをひくことで出玉を得られるかなり<技術介入>の高い遊戯だったと思います。そういう意味では、「客」対「釘師」の時代と言ってもいい。この小説で描かれる<パチンコ>は、1980年以降、スタート・チャッカーに玉が入るとリールが回り、数字が揃うと出玉が獲得できる「フィーバー機」をイメージして描かれているような気がします。描かれるホール、パチンコ・チェーン?の様子などと含めて考えた時に、20年ぐらいの時間のずれが感じられるような気がしましたが、いかがでしょう。とは言え、そのことがこの壮大な物語の持つ<霊性>に何らかの影響をもたらすとも思え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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匿名
5.0 out of 5 stars 人種の問題ではなく、人類が持つ永遠のテーマを題材にした小説です
Reviewed in Japan on September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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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日コリアン3世です。
上巻を読み終えた時、他界した祖父母が語っていた祖国での貧しい生活や父母の子供の頃の苦労話などがリンクし、読んでいて何度も涙してしまいました。それと同時に、日本に対してのあまり読んでいて気持ちよくない表現が出てきたことや、そもそも日本人になじみの薄そうな話も多かったため、この小説は果たして日本で受け入れられるものなのだろうかと不安に思いました。
しかし下巻を読んでみてその心配は払拭されました。この小説の本質があるのは在日と日本人とかいった人種間に起こる事柄ではなくて、「女性と男性」、「母と娘」という人類が向き合ってきた実に壮大な課題にありました。
脚色された部分が少なく、事象が淡々と描かれています。プロットを読むようにパラパラと読み進めることができるため、あっと言う間に読めてしまうでしょう。
この小説は1989年で終わっていますが、それから31年が過ぎました。2020年の日本では、ジェンダー観、家族のあり方、パチンコ業界、日本、韓国、そして我々のような在日の立ち位置も随分変わりました。現在も物語は日本のどこかで続いているのでしょう。本当に素晴らしい小説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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渡部行雄
5.0 out of 5 stars 読み応えのある小説。翻訳もいい。
Reviewed in Japan on August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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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編小説はちょっと・・・・と言っていたのに、大作と言える長編小説に手を出してしまった。上下で5000円を超える小説はこれまで読んだことはない(単行本があるのを知らず電子書籍で購入したが、それでも上下で4800円)。著者は韓国風に言えば、イ・ミンジン。
 日本が韓国を併合した1910年に始まり、1989年のバブルで終わる朝鮮半島出身の一族の4世代にわたる物語。朝鮮人、在日として生きる苦難の話ではあるが、これを反日プロパガンダとみる人がいれば、その人の人品骨柄が疑われるというものだ。この手の小説にありがちな、声高に日本を非難し糾弾することなく、冷静に淡々と語ることによって、むしろ日本人にしみてくるものがあるはずだ。
 今上巻を読み終えたところだが、ここでは戦後の朝鮮戦争あたりまでが描かれている。粗末な家屋での、豚などの家畜やキムチなどの強烈な臭いに包まれた生活。日本人の忌み嫌うこの悪臭は差別の対象となるともなるものだ。そんな中でも解放された半島に帰ることでなく、日本での生活を選択した人たち。
 またこの上巻では、韓国で多く日本人には比較的なじみの薄いキリスト教的世界観も語られる。主人公の連れ合いもその義兄も牧師であり、その故に二重の差別と抑圧にさらされる。偶像崇拝を禁ずるクリスチャンとしては、神社に動員され、現人神の天皇に崇敬の言葉を発することなどできないのだ。
 この小説は冒頭に「故郷とは、ものの名前、一つの語に過ぎないが、強い引力を持つ。その力は、かつて降霊術師が唱えた呪文、霊魂を呼び寄せるまじないの比ではない」(チャールズ・ディケンズ)の引用があり、終わりの方では主人公のソンジャに不義の子を産ませた実業家(ヤクザ)のハンスに「私たちのような人間にふるさとなど存在しない」と言わせる。
 記憶喪失、出生の秘密、交通事故、不治の病、財閥の御曹司等々の、おバカな韓ドラも悪くないが、時にこんな重厚長大な話に身を浸し背筋を伸ばしても罰は当たらない。
 アメリカでは、テレビドラマ化されるようだが、メィジャーな劇場映画にも必ずなるように思われる。キャストを考えてみると、主人公で平凡な容姿のソンジャは、シム・ウンギョン、その夫でイケメンの牧師イサクは、ソン・スンホン、義姉で美人のキョンヒは、ソン・ヘギョ、実業家ハンスは、イ・ソンミンなどどう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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匿名希望
5.0 out of 5 stars 在日コリアン4世代のリアリティあふれる物語
Reviewed in Japan on August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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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パチンコ(上)(下)』読了。在日コリアン4世代の物語。淡々と書き綴られる中にも息を飲むような過酷さ、残酷さ、救いに何度も静かに涙した。着想から何十年越しの魂が籠った超大作。久しぶりに時間を忘れてあっという間に読み切った作品だった。読みながら、何度も自らの生き方、在り方を問う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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ゆうちん
5.0 out of 5 stars タイトルにとらわれないで読んだ方が良い。
Reviewed in Japan on November 1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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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々の身近にいても、よく分からなかった在日朝鮮人の話。被害者意識の強い、対立を煽る視点ではなく、パールバックの大地の様な視点、言うなればグローバルでキリスト教的な視点から書かれている。優秀なコリアン達は、どうやらpoorな日本人より先にこの視点を獲得していて、映画、スポーツ、芸能において世界レベルに到達している。小説として面白く、心に響き、残る。どうやら文学でも後塵を拝することになる様だ。最近の日本の小説は、残念だけれど響かない。つまらないことにこだわり、本質を見抜けず、日々の生活に追われる我々は、どんどん劣化してゆ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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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かちょうちん
3.0 out of 5 stars 在日コリアンを考える本としては良いですが、物語としては一本の筋が通っていず感動しませんでした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26, 2020
Verified Purchase
 本書は、全米および日本の読書好きの多くの人から好評を得ているようですが、私の素直な感想としては、それほど良い本だとは思いませんでした。
 この本の良いところ、いまひとつのところ(良くないところ)を箇条書きすると次の通りです。
◆良いところ
①在日コリアンのことを知り考えるのに、サラーッとですが満遍なく情報を与えてくれています。例えば、日韓併合、土地接収、コリアンの大阪鶴橋への移住、日本での困窮と被差別、北朝鮮への帰国問題、等々です。
②本書の至る所に、人生や社会についての名言・箴言が記されています。これはおそらく、著者の洞察から紡ぎ出されたものと、著者からインタビューをされた多くの人たちの経験から発せられたものなのでしょう。
③主人公の女性のソンジャが超美人でないところが良いです。普通の顔立ち、どちらかといえばガッチリした体型、まじめに粘り強く働く人、生活の知恵も持っているという造形は魅力的でした。本書の上巻の良さはこの人物像によるところが大きいように思います。
④簡潔な表現で人間の心情や状況変化を示していて、読み手が想像を膨らませて深く感じることが出来ます。
⑤家族の絆、喜怒哀楽はどこの民族でも同じだと教えられました。
◆いまひとつのところ(良くないところ)
①いろいろな話が「継ぎ接ぎ」されていて、著者の思いが一本の筋として通っていないように感じました。苦境にめげず逞しく生きた女性を描くのか、底辺に生きる人たちが努力しても努力しても生活が良くならない状況を示すのか、頑張って理想に向かいつつある人と種々の事情から努力できず転落する人を対称的に書くのか、著者の思想を明確にした方が物語として感動を与えるものになったと思います。
②主要な登場人物の名前として、イサク、ヨセプ、ノア、モーザスという旧約聖書に出てくる名前が使われているので、それらの人生に聖書の人物の寓意が込められているはずと思って読み進みました。しかし、私の感性が悪いのか、あまり寓意が感じられませんでした。寓意を感じるストーリー展開を見る前に、主要な人物やその伴侶が次々と死んでしまいます。人物一人ひとりを丹念に描くことが大切だと思いました。
③ソンジャを韓国での愛人にしようとし、その後日本で彼女を支援するコ・ハンスという人物は、捉えようによってはマーガレット・ミッチェルの『風と共に去りぬ』のレット・バトラーを彷彿とさせて興味深いのですが、人物像が一定していません。最初は日本から韓国へやってきた仲買人、やがて鶴橋の高級焼肉店経営者、そして全国に調査網と人脈を持つやくざの後継者と描かれていきます。ノアに期待する立派な心情やセリフとやくざの生き方に、私は矛盾を感じ納得できませんでした。やくざな生き方をしている人は、多くの場合やくざな心情になりがちですから。
④下巻に出てくる同性愛者の野外セックス行為や性的な問題で一般社会から追いやられた女性のセックスシーン、および投資銀行関係者のギャンブルや不正行為などの話は、取って付けたような話で、無かった方が良いと思いました。
◆最後にまとめを言いますと、次の通りです。
①この本が全米で人気があったのは、米国人が、在日コリアンの苦労する姿に、米国へ移ってきた自分たちや親たちの苦労の姿を見、共感したからではないでしょうか。
②著者が多くの事実を調べ、大勢の人にインタビューして、本書を書き上げたことには敬意を表しますが、収集した情報を消化しきれていないと感じました。もっと、ソンジャやノアやモーゼスに的を絞って、その3人の苦労や心情や活躍に寄り添って物語を書いたら、非常に素晴らしいものになったように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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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del
5.0 out of 5 stars 精緻な歴史考証に基づいた圧倒的な物語、息もつかせぬ展開
Reviewed in Japan on September 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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パチンコ読了しました。圧倒的な物語、息もつかせぬ展開で感動と深い思索の世界に引き込まれました。加えて、翻訳が素晴らしい。登場人物の多くが使用する関西弁を見事に表現しており、後追いで英語版を読み進めていますが、英語版よりも臨場感を感じます、、、。

徹底した歴史考証で強制植民地化移行の朝鮮半島と帝国日本、引いては朝鮮半島の人々、在日コリアンが抱える苦悩・不条理を登場人物達の四世代に亘る生き様に投影した大作です。李恢成や金時鐘の作品をも凌駕する素晴らしい作品です。在日コリアンのみならず今を生きる日本人必読の書と言っても過言ではあり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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タミーゴ
5.0 out of 5 stars 日本社会の歪みが苦甘の誘惑になる
Reviewed in Japan on February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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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日コリアンの苦難のサーガ、五世代にわたる家族の切ない物語だった。
・・・という簡潔なまとめだと誰も本書を手にしないだろうと危惧する、
僕の場合は毎日新聞の2020年 年間推薦書籍に複数挙げれれていたことから
最近手にした次第だった、識者の選択眼に狂いはなかった。

上下巻のボリュームではあるが物語の展開の引きこまれる魅力は近年記憶にないくらい、登場人物にこれほど感情移入できることも久しぶりだった。
本書は1910年(韓国併合)から始まり1989年のバブル真っ盛りまでの大きな時代の流れを在日コリアンの視点で描くが、その舞台は主人公ソンジャが日本に渡るまでの釜山、影島での生活以外は、すべて日本。
戦前、戦中、戦後、高度成長期、そして前述したバブル経済下の日本が舞台であり、この79年間の物語の39年を
僕も同じ空気を吸っていたことにちょっと感動する。
著者の綿密な取材の結果、この79年、少なくとも39年は見事に再現されている。
在日コリアンの苦しみを傍らからとはいえうすうす感じ取っていた僕の青春時代が蘇ってなにやら懐かしさまで感じた。

物語りの概略をここに述べることは無思慮であると同時に、この大河物語を一言で括ることはできない。
在日コリアンの代名詞として掲げられたタイトル「パチンコ」を中心に多様なエピソードが五世代にわたって展開する。
小説としての面白さと日本社会の歪みが苦甘の誘惑で次の頁へと読み進ませる。
多くの日本に住む人々に読んでもらいたいと切に思った。

巻末の解説に【まるで「おしん」のような話】とあったが、僕には「風と共に去りぬ」のときのような楽しい読書経験になった、
ちなみに「風と共に去りぬ」は16歳の時の衝撃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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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on customer
2.0 out of 5 stars テーマは上手いが中身がボロボロ
Reviewed in Japan on October 12, 2020
なんでこんなに評価高いの?在日コリアンの近代史をちゃんと書いた小説がなかったから?作者はよく取材したのかもしれないけど、日本国内で育った我々からすると家族がみんなパチンコビジネスに落ち着く時点ですごい無理筋。在日コリアンが何人くらいいるかは調べて数字でわかっていても、住んで肌感覚で知っているのとは違うんだろうね。差別もされているけど普通に学校にも会社にもたくさんいて、野球選手にもアイドルにもいるし、こんなパチンコ屋とかじゃなく普通の会社社長もいるし、富士フイルムやソニー社員なんかにはいくらでもいるわ。「日本にいるのは金持ちのコリアンか貧乏なコリアンのどっちか」ってこんな、無知丸出しの記述がまかり通るなんて読む気なくすわ。アップルTVでドラマ化されたと聞いて納得。確かに太平洋戦争や朝鮮分断という激動の歴史の流れに翻弄される家族のドラマだもん。しかもかなり昼メロ。女は頭の良さとかも含め完全にイロモノだよ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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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ataro
4.0 out of 5 stars 小説として贅沢にもすべての要素が盛り込まれています
Reviewed in Japan on January 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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個人ではどうすることもできない大きな歴史のうねり、釜山から大阪、疎開先、そしてまた大阪というロードムービー的展開、善意と信仰に生きることの意味、勤勉によって貧窮を乗り越えて成り上がろうとする市井の人々、反抗しながらも魅かれてしまう恋愛、悪漢ながら男の魅力を漂わせる人物、爆発しそうな邪な感情、永遠に受け継がれる家族愛などもう小説としては「ビビンパ」状態だと思います。

そして、作者はこれらを上手に操って、いっさい破綻させることなく語り継いでいきます。太平洋戦争が終結してようやく安定しかけたと思う暇もなく朝鮮戦争を迎え、不幸にも南北分断に向かったあたりまでが上巻になります。今からすぐに下巻を読み始め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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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on カスタマー
5.0 out of 5 stars 人間の愛情と尊厳がテーマの米ベストセラーの傑作
Reviewed in Japan on August 16, 2020
懸命に生きる移民の家族を4世代に渡って描き切った壮大な物語である。アメリカでベストセラーになったが、移民の置かれる境遇の普遍性が全世界の共感を呼ぶのだろう。在日コリアンという日本における近世最初の移民の存在を通して日本社会を再考するきっかけともなって欲しいが、この物語が日本社会に広く共感を持って読まれるにはそれへの理解がまだ日本社会には足りないかもしれない。時代背景や社会描写に綿密な研究をしたのが感じ取れる。作者に敬意を表したい。単に差別や日韓の歴史を背景にした軽薄な物語ではなく、人間への深い愛情と尊厳がテーマの深淵な物語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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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on カスタマー
5.0 out of 5 stars 読みごたえ!
Reviewed in Japan on October 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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刺激的で、理不尽で、興味深くて、読みごたえがあります。タイトルの「パチンコ」は上巻にはいっさい出てきませんが、上巻を読み終えるころには、「パチンコ」というタイトルの理由が、何となくわかりました。そして、下巻で登場人物によって、その理由が語られ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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ふゆ
5.0 out of 5 stars 素晴らしい作品
Reviewed in Japan on February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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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場人物が素敵な人が多く、とても魅了された。貧しさが半端ないけど、今後も貧しいながらもなんとかやっていく逞しさがとても心強かった。イサクとソンジャが幸せになってほしいけど、下巻も辛いんだろうなと考えると苦し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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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5.0 out of 5 stars おもしろかっあです。
Reviewed in Japan on January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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発送も早かったです。
おもしろ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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ドリルさん
5.0 out of 5 stars 高いけど、大傑作!
Reviewed in Japan on August 18, 2020
レビューを何度も書き直ししながら、評論めいた事は評論家に任せて、率直に感想を述べたいと思いました。
まず、この本に出会えた事に感謝します。
それと、この本を自信を持って人に薦められる事にも感謝、アーメン!
一つ、ケチをつけます。2冊で5000円です。これは高い。こんな高い本がアメリカで100万部も売れたってすごい。わからんけど、アメリカでは5000円もしない?
オバマ前大統領が推薦といっても、オバマは本の値段を見ないでしょ。一般的に、5000円は法外でしょ。その価値はあると思いますが、この素晴らしい本が、この小説の舞台である日本でさっぱり売れなくてもそれは価格のせいです。

それと、翻訳者の文章は最高に読みやすくイライラさせ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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みち
5.0 out of 5 stars 力強い作品。出会えたことに感謝。
Reviewed in Japan on March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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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代や背景を超えて、人間の強さ、弱さ、愛や苦しみなど、根っこの部分に訴える、力強い小説です。良い作品に出会えて幸せ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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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23
5.0 out of 5 stars 読み応えのある小説
Reviewed in Japan on January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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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代にわたる在日コリアンの家族の生き様を描いた骨太の移民小説。3日ほどで一気に読め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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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ううううたろううう
5.0 out of 5 stars 是非読んで欲しい一冊
Reviewed in Japan on March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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久しぶりに、こんなに読み応えがある本に出会えた。続きが気になり、夜通し読んでしま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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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
3.0 out of 5 stars 残念
Reviewed in Japan on February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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展開が雑であまり面白くなかった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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ぽっぽ
5.0 out of 5 stars 日本の中の知らない世界
Reviewed in Japan on August 15, 2020
すごく読み応えのあるいい小説で、ここ数年で一番面白かった。
題材が「在日」であり、歴史なのでその歴史観から賛否はあるだろうし、日本で教育を受けて育った「日本人」からすると正直「ん?」と思う部分は少なからずあった。
だけど、そこ含めて在日コリアン側からの日本の見え方であり、日本の中の知らなかった世界を疑似体験することができた。

在日コリアンの方の感想もぜひ聞いてみたいです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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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0

[김조년] 단순함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단순함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단순함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1.04.19

한남대 명예교수

[금강일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해 본다. 

물론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맘이나 생각에서 떠나지 않고 항상 내 삶과 함께 따라다니는 질문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청소년 때, 장년 때, 노년 때도 각각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를 늘 고민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쌈박한 답을 스스로 얻지 못하고 있다. 설령 막연하게 이러한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도 그것을 실천하기에는 너무 멀게 산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확산 사태로 관행으로 살아왔던 모든 것들이 다 흩어지고 새로 정립되어야 하는 것을 느낀다. 많은 이들이 말하고 나 자신도 막연히 생각하는 것이지만, 분명히 코로나19는 인류의 삶의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대한 대응은 전혀 나에겐 없다. 물론 이 때에도 내 맘 속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그런데도 어떤 뾰족한 대답이 찾아진 것 같지가 않다. 이제까지 살아왔던 삶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다만 빈번하게 여러 사람들이 만나던 것이 줄어들었고, 집단으로 하던 것들이 줄어들었을 뿐 나머지는 별로 달라진 것 같지가 않다. 그 결과로 사회 전체의 경제활동이나 일상생활이 크게 손실을 보게 되었다고 걱정하는 것을 많이 보고 듣는다.

굉장히 힘들다고 하는 이 때에 오래 전에는 어떻게 살았을까를 생각하여 본다. 그리고는 순간 아찔한 느낌이 드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내가 어려서 살던 시골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때 삶은 참 단순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삶도 많이 단순했다. 문명의 이기가 지금처럼 좋게 발달하지 못하던 때다.

내가 살던 마을에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다니던 학교들도 교무실이나 다른 특수하게 중요한 곳에만 전기가 들어올 뿐 교실에는 전기가 없었다. 그래서 저녁에 하는 수업이란 것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고보니 그 때 나는 전기없는 세상에서 살았다. 전기 있는 것보다 불편했겠지만, 그런대로 잘 살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살았다. 삶의 기구들도 복잡하지가 않았다. 추위나 더위를 피하는 방법도 유치하지만 단순했다. 나무를 때서 방을 덥히거나 문을 활짝 열어서 식히는 것이 전부였다. 옷과 신발도 무척 열악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기 없는 세상을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 우선 당장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에 전기가 끊어졌다고 생각하여 본다. 내가 안에 있다면 밖으로 나갈 수가 없을 것이고, 내가 밖에 있다면 우리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우선 출입문이 열리지 않을 것이다. 승강기는 멈추어서 높은 계단을 힘겹게 오르내려야 할 것이다. 수돗물이 올라오지 않아 밥을 지을 수도 없고, 세수를 하거나 몸을 씻을 수가 없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물을 내릴 수도 없다. 냉장고도 가동이 되지 않을 것이고, 전화도 안 되고, 컴퓨터사용도 불가능할 것이다. 음악도 들을 수 없고, 뉴스도 듣고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여름이라면 무척 더운 상태에서 살게 될 것이고, 겨울이라면 전혀 난방이 되지 않는 무척 추운 상태에서 살게 될 것이다. 지금 노트북으로 쓰는 이 글도 쓰지 못할 것이고, 이 글을 신문사 편집국장에게 보낼 수도 없을 것이다.


 
지금 만약 전기가 끊어져서 얼마동안 지속된다면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아니,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게 될까를 상상할 수가 없다. 약간 다르긴 하지만, 내가 살던 시골농촌에서도 지금은 전기 없이는 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고도로 문명한 시대라는 지금은 완전히 전기에 종속된 때다. 그런데 불과 60년 또는 70년 전만 하여도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우리가 살았던 것을 잊고 산다. 그렇다고 그 때로 되돌아가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는 말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잘 사는 것은 단순하게 사는 것이라고 스스로 확정하고 있다. 단순, 소박하게 사는 것이 곧 모든 삶의 근본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 가정생활도, 친구관계도, 사회생활도, 국가의 재정이나 정치도, 국제관계도 단순한 것이 바닥을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 생각도, 사상도, 그것들을 펼치는 것도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너무 생각이 탁월하게 예민하니까 복잡하다.

물론 이미 복잡하게 얽힌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복잡하게 생각하고 따라가는 것이지만, 일단 맘을, 생각을 단순하게 하자고 하고 나서면 무엇인가 단순하게 되는 길로 가지 않을까? 단순하게는 일단 자기 맘 속에 처음 떠오르는 것, 어떤 잡다한 계산들이 세워지기 전에 떠오른 그 생각을 따르면 될까? 집이라면 살아야 하는 것, 옷이라면 입어야 하는 것, 밥이라면 먹어야 하는 것처럼 다른 어떤 가치나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 가장 단순한 기본 가치만을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단순하게 살 수 있을까? 어떤 정책,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보여지는 아파트라면, 전망 값, 고요함 값, 편리한 생활권 값, 좋은 학교가 가까이 있다는 값, 시장이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다는 값, 주변이 개발될 것이라는 값이 따로 붙지 않는 단순함을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거기다가 일단 하나만 더, 플라스틱 제품이 없는 삶은 어떨까를 생각해 본다. 무척 불편하고, 지금 쓰고 있는 모든 물건을 다 버려야 할 처지가 되겠지만, 그 플라스틱의 편리함이 가져다주는 어마어마한 폐해를 벗어나는 어떤 단순한 삶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망상일까? 어찌 되었든 나는 단순함이 곧 모든 행복과 평화로운 삶의 기초를 이룬다고 본다. 그 생각에서 앞으로 내 삶을 이끌어 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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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9

Harvard Prof. Ramseyer criticized for poorly-researched revisionist articles on Japan’s WWII “Comfort Women” sexual slavery. Actually, Ramseyer’s shoddy and intemperate research is within character, based on my experience. | debito.org

Harvard Prof. Ramseyer criticized for poorly-researched revisionist articles on Japan’s WWII “Comfort Women” sexual slavery. Actually, Ramseyer’s shoddy and intemperate research is within character, based on my experience. | debito.org

Meister Eckhart - Wikipedia

Meister Eckhart - Wikipedia



Eckhart as a mystic

Since the 1960s debate has been going on in Germany whether Eckhart should be called a "mystic".[43] The philosopher Karl Albert had already argued that Eckhart had to be placed in the tradition of philosophical mysticism of Parmenides, Plato, Plotinus, Porphyry, Proclus and other neo-Platonistic thinkers.[44] Heribert Fischer argued in the 1960s that Eckhart was a mediaeval theologian.[44]

Kurt Flasch, a member of the so-called Bochum-school of mediaeval philosophy,[44] strongly reacted against the influence of New Age mysticism and "all kinds of emotional subjective mysticism", arguing for the need to free Eckhart from "the Mystical Flood".[44] He sees Eckhart strictly as a philosopher. Flasch argues that the opposition between "mystic" and "scholastic" is not relevant because this mysticism (in Eckhart's context) is penetrated by the spirit of the University, in which it occurred.[citation needed]

According to Hackett, Eckhart is to be understood as an "original hermeneutical thinker in the Latin tradition".[44] To understand Eckhart, he has to be properly placed within the western philosophical tradition of which he was a part. [45]

Josiah Royce, an objective idealist, saw Eckhart as a representative example of 13th and 14th century Catholic mystics "on the verge of pronounced heresy" but without original philosophical opinions. Royce attributes Eckhart's reputation for originality to the fact that he translated scholastic philosophy from Latin into German, and that Eckhart wrote about his speculations in German instead of Latin.[46](pp262, 265–266) Eckhart generally followed Thomas Aquinas's doctrine of the Trinity, but Eckhart exaggerated the scholastic distinction between the divine essence and the divine persons. The very heart of Eckhart's speculative mysticism, according to Royce, is that if, through what is called in Christian terminology the procession of the Son, the divine omniscience gets a complete expression in eternal terms, still there is even at the centre of this omniscience the necessary mystery of the divine essence itself, which neither generates nor is generated, and which is yet the source and fountain of all the divine. The Trinity is, for Eckhart, the revealed God and the mysterious origin of the Trinity is the Godhead, the absolute God.[46](pp279–282)

Modern popularisation
Theology
Matthew Fox

Matthew Fox (born 1940) is an American theologian.[47] Formerly a priest and a member of the Dominican Order within the Roman Catholic Church, Fox was an early and influential exponent of a movement that came to be known as Creation Spirituality. The movement draws inspiration from the wisdom traditions of Christian scriptures and from the philosophies of such medieval Catholic visionaries as Hildegard of Bingen, Thomas Aquinas, Saint Francis of Assisi, Julian of Norwich, Dante Alighieri, Meister Eckhart and Nicholas of Cusa, and others. Fox has written a number of articles on Eckhart[citation needed] and a book titled Breakthrough: Meister Eckhart's Creation Spirituality in New Translation.[48]

Modern philosophy
The French philosopher Jacques Derrida distinguishes Eckhart's Negative Theology from his own concept of différance although John D. Caputo in his influential The Tears and Prayers of Jacques Derrida emphasises the importance of that tradition for this thought.[49]

Modern spirituality
See also: Nondualism
Meister Eckhart has become one of the timeless heroes of modern spirituality, which thrives on an all-inclusive syncretism.[50] This syncretism started with the colonisation of Asia, and the search of similarities between Eastern and Western religions.[51] Western monotheism was projected onto Eastern religiosity by Western orientalists, trying to accommodate Eastern religiosity to a Western understanding, whereafter Asian intellectuals used these projections as a starting point to propose the superiority of those Eastern religions.[51] Early on, the figure of Meister Eckhart has played a role in these developments and exchanges.[51]

Renewed academic attention to Eckhart has attracted favorable attention to his work from contemporary non-Christian mystics. Eckhart's most famous single quote, "The Eye with which I see God is the same Eye with which God sees me", is commonly cited by thinkers within neopaganism and ultimatist Buddhism as a point of contact between these traditions and Christian mysticism.

Schopenhauer
The first translation of Upanishads appeared in two parts in 1801 and 1802.[51] The 19th-century philosopher Schopenhauer was influenced by the early translations of the Upanishads, which he called "the consolation of my life".[52][g] Schopenhauer compared Eckhart's views to the teachings of Indian, Christian and Islamic mystics and ascetics:

If we turn from the forms, produced by external circumstances, and go to the root of things, we shall find that Sakyamuni and Meister Eckhart teach the same thing; only that the former dared to express his ideas plainly and positively, whereas Eckhart is obliged to clothe them in the garment of the Christian myth, and to adapt his expressions thereto.[53]

Schopenhauer also stated:

Buddha, Eckhart, and I all teach essentially the same.[54]

Theosophical Society
A major force in the mutual influence of Eastern and Western ideas and religiosity was the Theosophical Society,[55][56] which also incorporated Eckhart in its notion of Theosophy.[57] It searched for ancient wisdom in the East, spreading Eastern religious ideas in the West.[58] One of its salient features was the belief in "Masters of Wisdom",[59][h] "beings, human or once human, who have transcended the normal frontiers of knowledge, and who make their wisdom available to others".[59] The Theosophical Society also spread Western ideas in the East, aiding a modernisation of Eastern traditions, and contributing to a growing nationalism in the Asian colonies.[60]

Neo-Vedanta
Main article: Neo-Vedanta
The Theosophical Society had a major influence on Hindu reform movements.[56][i] A major proponent of this "neo-Hinduism", also called "neo-Vedanta",[62] was Vivekananda[63][64] (1863–1902) who popularised his modernised interpretation[65] of Advaita Vedanta in the 19th and early 20th century in both India and the West,[64] emphasising anubhava ("personal experience"[66]) over scriptural authority.[66] Vivekananda's teachings have been compared to Eckhart's teachings.[67][68]

In the 20th century, Eckhart's thoughts were also compared to Shankara's Advaita Vedanta by Rudolf Otto in his Mysticism East and West.[69] According to King, the aim of this work was to redeem Eckhart's mysticism in Protestant circles,[70] attempting "to establish the superiority of the German mysticism of Eckhart over the Indian mysticism of Sankara".[54]

Buddhist modernism
Main article: Buddhist modernism
The Theosophical Society also had a major influence on Buddhist modernism,[60] and the spread of this modernised Buddhism in the West.[60] Along with H. S. Olcott and Anagarika Dharmapala, Helena P. Blavatsky was instrumental in the Western transmission and revival of Theravada Buddhism.[71][72][73]

In 1891, Karl Eugen Neumann, who translated large parts of the Tripitaka, found parallels between Eckhart and Buddhism,[74] which he published in Zwei buddhistische Suttas und ein Traktat Meister Eckharts (Two Buddhist Suttas and a treatise of Meister Eckhart). D.T. Suzuki, who joined the Theosophical Society Adyar and was an active Theosophist,[75][76][77] discerned parallels between Eckhart's teachings and Zen Buddhism in his Mysticism: Christian and Buddhist,[78] drawing similarities between Eckhart's "pure nothingness" (ein bloss nicht) and sunyata.[79] Shizuteru Ueda, a third generation Kyoto School philosopher and scholar in medieval philosophy showed similarities between Eckhart's soteriology and Zen Buddhism in an article.[80]

Reiner Schurmann, a Professor of Philosophy, while agreeing with Daisetz T. Suzuki that there exist certain similarities between Zen Buddhism and Meister Eckhart's teaching, also disputed Suzuki's contention that the ideas expounded in Eckhart's sermons closely approach Buddhist thought, "so closely indeed, that one could stamp them almost definitely as coming out of Buddhist speculations".[78] Schurmann's several clarifications included:

On the question of "Time" and Eckhart's view (claimed as parallel to Buddhism in reducing awakening to instantaneity) that the birth of the Word in the ground of the mind must accomplish itself in an instant, in "the eternal now", that in fact Eckhart in this respect is rooted directly in the catechisis of the Fathers of the Church rather than merely derived from Buddhism;[78]
On the question of "Isness" and Suzuki's contention that the "Christian experiences are not after all different from those of the Buddhist; terminology is all that divides us", that in Eckhart "the Godhead's istigkeit [translated as "isness" by Suzuki] is a negation of all quiddities; it says that God, rather than non-being, is at the heart of all things" thereby demonstrating with Eckhart's theocentrism that "the istigkeit of the Godhead and the isness of a thing then refer to two opposite experiences in Meister Eckhart and Suzuki: in the former, to God, and in the latter, to `our ordinary state of the mind'" and Buddhism's attempts to think "pure nothingness";[81]
On the question of "Emptiness" and Eckhart's view (claimed as parallel to Buddhist emphasis "on the emptiness of all 'composite things'") that only a perfectly released person, devoid of all, comprehends, "seizes", God, that the Buddhist "emptiness" seems to concern man's relation to things while Eckhart's concern is with what is "at the end of the road opened by detachment [which is] the mind espouses the very movement of the divine dehiscence; it does what the Godhead does: it lets all things be; not only must God also abandon all of his own – names and attributes if he is to reach into the ground of the mind (this is already a step beyond the recognition of the emptiness of all composite things), but God's essential being – releasement – becomes the being of a released man."[82]
Psychology and psychoanalysis
Erich Fromm
The notable humanistic psychoanalyst and philosopher Erich Fromm was another scholar who brought renewed attention in the West to Eckhart's writings, drawing upon many of the latter's themes in his large corpus of work. Eckhart was a significant influence in developing United Nations Secretary General Dag Hammarskjöld's conception of spiritual growth through selfless service to humanity, as detailed in his book of contemplations called Vägmärken ("Markings").[j]

Carl G. Jung
In Aion, Researches Into the Phenomenology of Self[83] Carl G. Jung cites Eckhart approvingly in his discussion of Christ as a symbol of the archetypal self. Jung sees Eckhart as a Christian Gnostic:

Meister Eckhart's theology knows a "Godhead" of which no qualities, except unity and being, can be predicated; it "is becoming," it is not yet Lord of itself, and it represents an absolute coincidence of opposites: "But its simple nature is of forms formless; of becoming becomingless; of beings beingless; of things thingless," etc. Union of opposites is equivalent to unconsciousness, so far as human logic goes, for consciousness presupposes a differentiation into subject and object and a relation between them. (Page 193.)

As the Godhead is essentially unconscious, so too is the man who lives in God. In his sermon on "The Poor in Spirit" (Matt. 5 : 3), the Meister says: "The man who has this poverty has everything he was when he lived not in any wise, neither in himself, nor in truth, nor in God. He is so quit and empty of all knowing that no knowledge of God is alive in him; for while he stood in the eternal nature of god, there lived in him not another: what lived there was himself. And so we say this man is as empty of his own knowledge as he was when he was not anything; he lets God work with what he will, and he stands empty as when he came from God." Therefore he should love God in the following way: "Love him as he is; a not-God, a not-spirit, a not-person, a not-image; as a sheer, pure, clear One, which he is, sundered from all secondness; and in this One let us sink eternally, from nothing to nothing. So help us God. Amen." (Page 193.)

Jung summed up his view of Eckhart saying:

The world-embracing spirit of Meister Eckhart knew, without discursive knowledge, the primordial mystical experience of India as well as of the Gnostics, and was itself the finest flower on the tree of the "Free Spirit" that flourished at the beginning of the eleventh century. Well might the writings of this Master be buried for six hundred years, for "his time was not yet come." Only in the nineteenth century did he find a public at all capable of appreciating the grandeur of his mind. (Page 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