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30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의 소리> 김조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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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을 묻다, 길을 가다: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의 소리> 김조년 발행인 ]
모든 이의 내면에 빛이 있습니다
진행 주요섭사진 홍진훤

조심하고 조심하자고 했다.
생각의 하나 던져 뿌려 보자는 심정으로 나도 생각하고 그도 생각하는, 아니 우리 시대가 함께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보자는 맘으로 편지를 썼다. 무엇인가를 가르치려는 듯이 느껴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매일의 다짐이었다.


함석헌기념사업회의 <씨알의 소리> 김조년 발행인(67) 2011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년퇴임을 두어 앞두고, 제자 450 명에게 매일 아침 보냈던 편지글을 모아 청춘에게 안부를 묻다라는 책을 펴낸다. 책의 머리말에 제자들에게 편지를 마음을 싣고 있다.

어른들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어린 이에게 자꾸 뭔가를 가르치고 길이 옳으니 따라오라고 다그치기 좋아하지 않던가. 그런데 김조년 선생은 어린 제자들을 같이 생각하는 으로 대우하며 조심스럽고 겸허한 태도를 보이니 다른 어른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함석헌 선생의 가장 성실한 제자


씨알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이어받은 가장 성실한 제자로 꼽히는 김조년 선생은 독일에서 사회학, 교육학, 정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26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퇴임 문을 김조년 선생의 연구실 옹달샘터 대전역에서 걸어서 30 정도 걸리는 대흥동성당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김조년 선생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며 차를 직접 내려주었다.


살림이야기_ 한남대 교수직에서 퇴임하신 년이 되었는데, 요즘에는 주로 어떤 일에 주력하십니까?

김조년_ 지금도 일주일에 번씩 학교에서 강의를 합니다. 학기마다 대학원이나 학부 강의를 과목씩 맡아 왔는데, 이번 학기에는 학부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퇴임하면서 연구실에 가득한 책을 보면서 저걸 어디에 두나 하다가 이곳 옹달샘터를 마련했어요. 마침 명상춤 수행공간을 찾던 아내가 옆방을 씁니다.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그전부터 하던 대로 <씨의 소리> 격월간으로 계속 발간하면서, 올해는 함석헌 전집 개정해서 펴내려 합니다. 정본을 만든다 마음가짐으로. 그게 일이 큽니다.


부인 이종희 선생은 명상춤 안내자로서 유명하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 전통에서 비롯한 명상춤은 종교의 벽을 넘어 고요 속에서 평화와 행복을 찾는 영성훈련의 입문과정인데, 부부가 함께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이종희 선생은 평화운동에 참여하고 명상춤을 배웠다. 일주일에 번씩 명상춤 수행모임을 연다. 또한 1970 함석헌 선생이 창간한 <씨의 소리> 1980 7 군부정권에 의해 강제로 폐간되었다. 1988 12월에 복간하여 함석헌 선생이 돌아가신 뒤로는 함석헌기념사업회에서 맡아 격월간으로 내고 있다.


살림이야기_
환경운동연합과 민들레의료생활협동조합에도 참여해 오시지 않았습니까?
퇴임하시고
새로 시작한 일들도 있으실 텐데요.

김조년_ 단체활동에서도 물러나서 지금은 고문을 맡고 있습니다. 그동안 해보고 싶던 일이, 하나는 자존감이 부족하여 방황하는 탈학교 청소년들, 하나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인문학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인문학을 통해서 치유하고 자기 자신을 되찾을 있도록. 그런데 용기를 내지 못하고 아직은 마음만 있어요. 지난해 3월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고전공부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30~40 주부들이 자아정체감 때문에 방황을 많이 한다고 해요. 지인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고전을 읽는 모임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에밀 장자 읽었고 지금은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한국역사 읽고 있는데, 아주 재미있습니다. , 격주마다 옹달샘터 낭독회 열고 있습니다.


옹달샘터 낭독회는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 저녁 시간 남짓 열리는데, 낭독자가 시간 가량 낭독하고, 뒤에 사람들이 음료수를 마시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낭독하는 동안 음악가가 연주를 하기도 한다. 지난 5 15일로 1년이 되었다. 6월에는 서울에서도 낭독회가 열릴 예정이다.

김조년_
가을쯤에는
함석헌 사상 강좌 예정입니다.
그리고 퇴직 교수들과 함께 거리의 사회학 강좌를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강좌에서 물어보았는데, 함석헌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없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함석헌 선생은 폭력과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생명평화주의자였기 때문에 군사독재시절 많은 탄압을 받았지요. 1980년대에는 글을 쓰거나 발언할 기회도 모두 차단당했어요. 그래서 세상과 단절될 수밖에 없었지요. 이제는 제자로서 선생의 생각을 널리 알리도록 노력하려합니다. 선생의 글들은 교과서에 실리기에도 손색이 없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못해왔지요.


김조년 선생이 함석헌 선생과 인연을 맺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 거슬러 올라간다. 1965 굴욕적인 한일협정에 반대하여 14 동안 삭발 단식하던 함석헌 선생에게, 고등학생 김조년이 편지를 보낸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고등학생에게 진지하게 답장했다. 편지 교류는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고 유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졌고, 소년은 스승이 창간한 잡지를 다시 내고 사상 연구와 평화 실천 면에서 스승을 이어가고 있다.

살림이야기_
20 동안 내온 <표주박통신> 요즘 하십니까?

김조년_ 퇴임 후에 이제까지 번도 못냈어요. 최근에 자꾸 묻는 사람들이 생겨요. 이제 하느냐, 오래도록 받았다 이런 얘기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들어요. 사실 다른 것들은 내게 맡겨진 일이고, 일은 <표주박통신>인데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해온 일이거든요.


<표주박통신>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시작했다. 1984 독일에서 귀국하여 사회사상사 수업을 맡았는데, 당시는 대학생들이 수업에만 열중할 사회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마지막 수업 30명의 학생들에게 주소를 받아 다한 강의 내용을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이듬해 막스 호르크하이머 대한 내용을 편지로 보내며 <표주박통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달에 번씩, 홀수 마지막 편지를 썼다. 친구, 친지, 동료 편지를 받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전자우편으로도 보내며 2쪽짜리 편지가 36 책자가 되었고 독자도 30명에서 2,500명으로 늘었다.


권위와 형식에 굴복하지 않는 퀘이커


함석헌 선생은 한국에서 많지 않은 퀘이커로서도 유명하다. 김조년 선생 역시 부인과 함께 퀘이커로, 매주 일요일 아침 옹달샘터에서 퀘이커 예배를 한다. 스승이 퀘이커라고 그대로 따른 것은 아니다. 독일에 유학하던 함석헌 선생이 베를린을 방문하면 동포들과 퀘이커들을 찾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졌지만, 함석헌 선생이 세상을 뒤에야 지역 모임에 나가보았고 한국에 돌아와서 대전에서 퀘이커 공부 모임을 하면서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퀘이커가 되었다.



 퀘이커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글쎄 저도 그게 무엇인지 굉장히 궁금합니다라며 웃었다. 퀘이커는 350 기독교 개혁운동이 일어나던 시대에 생겨났다. 특히 영국 국교의 형식성,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와 삶이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반성으로 조지 폭스가 중심이 되어 시작한 종파이다. 퀘이커들은 미국으로 많이 건너갔는데, 가운데 유명한 이가 윌리엄 펜이다. 펜은 북아메리카 델라웨어 서쪽, 지금의 펜실베니아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영국의 개척자들은 인디언을 학살하고 몰아내며 땅을 차지했는데, 펜은 인디언 공동체와 최초로 평화협정을 맺고 공존하기로 했다.


김조년_ 퀘이커는 오직 진리에만 복종하고, 형식과 권위에는 복종하지 않는다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시절에는 신분이 높은 사람 앞에서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는 관습이 있었다는데, 퀘이커들은 너나 나나 같은 권위의 사람이다. 그러니 무릎을 꿇지 않는다. 우리는 진리에만 복종한다 이랬다고 해요. 그러니 미움을 사서 감옥에 많이 갔겠지요. 감옥 중에서도 가장 환경이 나쁜 곳에 갇히곤 했답니다. 퀘이커들이 감옥에서 나와서 것이 감옥개선운동입니다. 감옥은 지옥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야 곳이다라고 적극적인 운동을 벌입니다. 본인들이 고생을 해봤으니까요.


퀘이커는 신과 사이에 중간자가 필요없다 믿는다. 따라서 다른 종교와 달리 성직자나 예언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믿음이 앞서가는 사람이 있어도 그것이 직책이 되거나 영속적인 직업이 되어서는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크리스트교 사이에서도 한때 이단으로 취급받았다.


김조년_ 퀘이커는 종교 박해를 많이 받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이겨내고 남았습니다. 그러면서 평화운동을 열심히 해서 지금은 평화종교라고 불릴 정도이지요. 평화운동의 핵심은 가지입니다. 방법은 반드시 비폭력으로, 그리고 원수는 없다 것이에요. 국가적으로 적대적인 존재라고 해도, 생명은 국가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국가란 한시적인 보호 조직일 영속적이지 않아요. 그러니 인간의 생명은 국경을 초월하지요. 적대국의 사람도 나의 형제이므로 싸움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병역거부입니다.

살림이야기_
학교일뿐 아니라 여러 시민단체의 활동을 해왔고, 물론 지금도 앞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시겠지만, 퇴직한 돌아보는 시간이 생겼을 같습니다.

김조년_ 살면서 순간순간 계속 돌아보아야 되리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개인보다는 공동으로 함께하는 운동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혼자 고요히 생각도 하지만 공동의 불이 비추도록 함께 기원하거든요. 촛불 하나보다는 둘셋 겹치면 밝게 비추듯이, 어차피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요. 개인으로서는 이상대로 살아왔지만, 작은 공동체로 함께 살면서 실천해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번째 아쉬움은 제가 좀더 적극적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제가 남에게 강요를 못해요. 모든 사람은 내면에 스승이 있듯이 누구나가 똑같이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그게 열리면 스스로 하게 되어 있는데, 다그쳐야 할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 사회의 약점 하나는 사람들의 자발성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맘으로는 사람들과 함께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스스로 마음에서 솟아올라서 하는 것이 진짜지 하며 망설이곤 합니다. 젊다면, 보는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살림이야기_
사회학을 전공하고 사회복지학과에서 오랜동안 학생들을 가르치셨는데, 학문이나 학과가 사회활동과도 밀접하게 연결이 되지 않습니까?

김조년_ 저는 가지 희망이 있었어요. 번째는 좋은 학자가 되면 좋겠다. 번째는 좋은 교사가 되면 좋겠다. 처음에는 좋은 학자면 족할 같았는데, 한국에서 강단에 서고 학생들과 접해 보니 학문만으로는 되더라고요. 대학생들도 학문으로 만나는 것보다는 선생과 제자로 만나는 많은 거예요. 그런데 돌아보면 가지가 실패야. 학문적으로 그렇게 업적을 쌓지도 못했고, 이론을 개발하거나 탁월한 연구를 내놓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공부할 무엇인가를 찾는게 중요하다는 것만은 깨달았지요. 독일에서 유학하는 동안, 내가 여기에 사회학을 공부하러 왔나 하는 갈등을 많이 느꼈어요. 사회학이란 사회에 대해 공부하는 건데, 나는 한국에 속해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독일에서는 어느 강좌에서도 한국사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요. 독일의 사회학은 독일사회라는 재료를 가지고 독일의 학문적인 칼로 사회에 맞는 이론을 만드는 거예요. 나의 재료와 칼은 모두 한국에 있다, 여기에서 다만 칼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금속공학을 배우듯이 방법을 배워가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또한 한국에 돌아와서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사회를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판단력으로 판단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얘기하잖아요? 고기를 잡아 주는 것보다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거기에서 한발 나아가 고기의 생리, 어디에 살고 무엇을 먹는지 알게 주어야 해요. 자세를 유지하려고 봤는데, , 실패했나 싶기도 하고.

매일매일 시간을 정해두고 고전을 한두 줄씩 읽자


살림이야기_ 한국사회에서 최근 청년들이 공동체나 공유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생활에서도 공동주거나 공유경제를 실천하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의 전통적인 공동체와는 많이 다릅니다.

김조년_ 달라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달라지는 좋으냐 나쁘냐를 이야기하는 사실 의미가 없어요. 뭐라고 하든 달라지는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판단은 우리의 몫일 텐데 함께 사는 , 그것이 단순히 개인의 확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시 말하면, 내가 똑바로 혼자 살면 되지, 사회가 어떻게 되든 간에라는 생각이 확장되어 우리들끼리만 멋지게 살면 되지 라는 생각은 아니었으면 하죠. 삶은 빛이 되어 주변에 확산되어 나가야 합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거예요. 어떤 삶을 살든 간에. 내가 옳은 삶을 살면 사회에도 옮음이 펼쳐져야 합니다. 이것이 함석헌 사상의 하나이지 싶은데. 함석헌 선생은 개인과 전체는 하나, 시간과 영원도 하나, 생과 사도 하나라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입니다. 개인의 정당한 삶은 사회개혁적 요소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살림이야기_ 가장 작은 공동체라고 하면 가족을 떠올리지 않을 없는데, 가족공동체에서 지키는 원칙 같은 있을까요?

김조년_ 아이가 있는데, 딸이 결혼하여 외손녀가 있고, 아들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에게 간섭하지 않고 스스로 하기를 희망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가족과 아이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바깥에서 남들에게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이래라저래라 하면 되겠죠. 제가 보기에 우리 아이들은 나에게 압력을 받은 같지는 않은데. 안팎으로도, 속과 겉이 일치하는 삶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힘든데요.


살림이야기_ <표주박통신> 통해서 사람들에게 삶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오셨습니다. 우리 살림이야기 독자들에게 말씀 나누어 주세요.

김조년_ 가장 핵심은 스스로 하는 입니다. 살림은 생명의 표현이지 않습니까? 생명은 누가 하라고 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아닙니다.
속에 생명의 힘이 차면 폭발하듯 나오는 것처럼, 한살림에 참여하는 모든 개개인이 건실한 생명력을 확보하면 좋겠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좋은 먹을거리를 갖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역사와 생태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스스로 철학하는 힘을 갖도록 성장하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별로 자기 건강을 챙기는 먹을거리 운동일 뿐이지, 우리 생활 전체,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게 됩니다. 하나,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는데 자꾸 내부가 복잡해집니다. 전부 좋은 일을 하려 모였는데 그럴까? 요사이 사람들이 많이 말하는 영성이 부족하다라는 이야기지요. 영성이란 말이 어려운데, 옛부터 조상들이 말로 바꾸면 이겠다 싶습니다. 우리에게 덕이 부족한 거예요. 남을 날카롭게 지적할 줄은 아는데 이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어 오히려 것을 해친다는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뭉뚝해져야겠다고 생각해요. 노자의 이야기로 밝음이 너무 강하면 눈을 해치듯이, 우리의 일상생활이 그렇지요. 그럼 저놈은 하는데 혼자 하면 손해 보나?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글쎄요, 손해를 보면 얼마나 보겠어요?


살림이야기_ 공부하는 이들이나 사회운동가들 외에 평범한 생활인들은 매일매일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좋은 삶일까도 고민입니다.

김조년_ 우리 학생들에게도 추천하는데, 가정에서 모든 일을 하기 전에 시간을 정해 두고, 부부나 같이 시간을 있는 사람들과 고전 한두 구절씩을 함께 읽어 보세요. 많이 말고 한두 구절만. 그러고 나서 해설하거나 토론하지 말고 명상을 합니다. 우리 부부도 일요일마다 함께 명상하고 평소에도 무엇을 읽었는지 알려주곤 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렇게 살자고 합의하여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게 아니에요. 살다 보니까 둘이 비슷하게 되었습니다. 한살림 조합원이라면 의식이 높겠지요. 또한 조합원을 받아들일 기초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삶은 각자 자기의 몫이지만, 삶이 재미있어지는 공부를 기회를 주면 좋지요.



김조년 선생은 고전을 현대 고전과 과거의 고전 가지로 나누어 추천한다. 현대 고전이란 신문과 잡지를 말한다. 기자들이 가장 최근의 관심사를 쓰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책이나 교과서는 이미 낡은 것이다. 4 동안 신문만 열심히 읽어도 대학공부보다 나을 이라고 강조한다. 과거의 고전으로는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한국역사 씨에게 보내는 편지 함께 추천했다. 특히 <씨의 소리> 권두언을 모아 엮은 씨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생의 마감을 앞두고 우리 모두에게 주는 유언 비슷한 간절한 이야기 담겨 있다.


생각이 깊은 어른을 만나면 자꾸 이것저것 삶의 고민에 대한 답을 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김조년 선생은 한발 물러서서 씨를 뿌리는 사람이다. 저도 궁금하니 함께 생각해 봅시다라고 천천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상대의 의견을 구한다. 모든 이의 마음속에는 빛이 있으니, 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러나 또한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서로 모여 함께 각자의 빛을 찾으면 좋을 것이다.

주요섭 님은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으로 생명사상(모심) 협동운동(살림) 대한 연구와 교류활동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841

2월1일 정기총회와 평화포럼 '평화는 더이상 꿈이 아니다'를 마치고 : 네이버 카페

2월1일 정기총회와 평화포럼 '평화는 더이상 꿈이 아니다'를 마치고 : 네이버 카페

2월1일 정기총회와 평화포럼 '평화는 더이상 꿈이 아니다'를 마치고|회원소식
전체공개2008.02.03. 10:01

 대전평화여성회 2차 정기총회

2월 1일 오후 5시 30분 기독교연합봉사회관에서 대전평화여성회 제2차 정기총회와 이어 7시부터 평화포럼' 평화는 꿈이 아니다'가 열렸습니다.
 2차 정기총회에서는 새로운 임원선출을 통과시켜 평화훈련가이자 명상춤전문가인 이종희 선생님을 이정순 선생님과 함께 대전평화여성회 공동대표로, 홍미옥과 최장희 회원을 새로운 운영위원으로 선출했습니다. 강복심 회원의 사무운영비에 대한 간단한 질문이외는 별다른 질문없이 신속한 동의와 재청으로 2차 정기총회를 마무리 했습니다.

 총회가 끝나고 간단하게 김밥과 떡 과일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7시부터는 평화의 노래로 시작해서 15분부터 평화포럼으로 이어졌습니다. 포럼은 비폭력평화물결 대표 박성용, 독일평화훈련가 우테 카스파스, 티벳과 인도 등지를 7개월간 돌아보고 온 홍미옥 회원, 이렇게 세분이 먼저 발표를 하고, 그 다음 질의와 응답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사회은 김조년교수님이, 통역은 2차정기총회에서 공동대표로 선출된 이종희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평화포럼 '평화는 더이상 꿈이 아니다'

 


평화단체 운동의 현재와 과제(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대표)

 우선 비폭력평화물결 박성용 공동대표님께서 '평화단체 운동의 현재와 과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습니다. 박성용 대표는 6.15이전의 평화운동과 6.15이후의 평화운동의 차이점을 말하면서 6.15이전의 평화운동이 주로 하드프로그램 위주였다면 6.15이후에는 지속적인 평화담론과 평화인프라를 구축하고 생활 문화 속으로 파고 드는 평화운동의 특색을 갖고 있다고 구분지어 말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평화운동의 신조류로써 탈군사화운동과 평화운동의 대중화와 지역화, 평화일꾼양성과 재단연구소의 출현 등이 이어지고 있으며, 군사주의 남성성의 연결고리를를 끊고 관계, 연결, 돌봄, 나눔과 같은 여성평화 중심으로 전화하여 억압문화를 해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한국평화운동의 심화와 평화국가 구상의 일환으로 평화체제 평화협정과 새로운 지평으로써 동북아 국제평화 공동체를 건설하고 협력안보와 인간안보 차원에서의 안보의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한국평화운동의 과제로는 평화의 미래구상 상상력을 키우고 주체역량을 강화하고 활성화 세력화하기 위해 훈련프로그램과 일상의 평화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며, 그물망 공동행동을 위한 소통과 연대의 중요성, 지역평화공동체운동의 강화를 지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평화운동은 평화를 의식하고 평화를 사용하며 그것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며, 보편적 가치와 공공성에 기초한 공도안보를 확립하고, 사회적 약자의 인권과 정의를 위한 민중안보를 수립함과 동시에 평화일꾼양성과 지역평화운동을 통한 주체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라 말하면서 발표를 마무리 했습니다.

독일 평화통일의 어제와 오늘( 평화훈련가 우테 카스파스)

 독일에서 온 평화훈련가 우테 카스파스의 발표는 김조년교수님(사회자)이 준비한 몇가지 질문을 먼저 던지고 그 질문에 우테 카스파스 평화훈련가의 답변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1) 우테 카스파스 개인의 분단경험에 대한 사회자의 질문에 답변을 정리하면, " 서독에서 편안하게 살면서 동독이 편안하게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동독생활에 대해서 잘 몰랐다. 1957년 동독에 할아버니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처음 방문했고 그 당시 두려웠었다. 1970년대까지 동독에 친적이 있는 사람은 방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경을 넘을 때 엄숙한 기분은 지금도 기억속에 남아있다. 국경을 통과할 때 20마르크 정도 통과세를 내야했고 이 돈은 비싼 값이었다. 반대로 동독에서 서독으로 오는 사람은 퇴직한 사람만이 올 수 있었다. 퇴직자가 아닌 경우 친적행사에만 방문할 수 있었다."
  (2) "독일교회가 독일통일에 얼마나 공헌했는가? "라는 질문에 우테 카스파스 선생님은 "동독교회의 가장 큰 공헌을 동독정부시스템의 종료"라고 말했습니다.
  (3) 두 국가 통일 과정에 대한 질문에는 "동독 국민들은 통일이후 큰 두려움과 본인이 가지고 있었던 정체성, 자유에 대해 자문하게 되었고, 동독이 서독에 속국이 되지 않나 염려했다. 통독이후에는 동독의 사회규칙, 법, 동독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동독에서 배울점까지 사라진 것은 아쉽다."
  (4)  통일이후 20년이 지난 현재의 모습에 대한 질문에는 " 현재 동독이 인구가 많이 감소했고 공장 학교도 문을 닫았다. 모든 사람들이 서독에 일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했고, 동독 실업률을 높아졌다. 젊은 사람들의 분노는 가끔 폭력으로 표출되기도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끝으로 우테 카스파스 선생님은 "어떻게 하면 독일의 통독과정에서 한 잘못을 하지 않고 한국에서 통일을 이룰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통독의 어려움 중에 가장 큰 것은 자본주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더 갖은 사람이 부족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이다."라는  말로 발표를 마쳤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평화롭게 하는가? - 티베트 여성의 삶
 (대전평화여성회 일상의평화센터위원 홍미옥)

 홍미옥 대전평화여성회 회원은 가족들과 함께 인도와 티베트 등 몇몇 나라를 돌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감과 평화에 대한 생각들을 차분하게 발표해주었습니다. 우선 홍미옥 회원은 인도의 최하층천민이 살고 있는 달리치마을에서 '참새들의둥우리'라는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점과 여성의 경제력 향상을 위해 작은 돈을 저축하도록 돕는 미라클 뱅크 이야기를 해주고, 이들 생활이 힘들어도 낙천적인 생활방식과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소개해주었습니다. 또한 티베트 임시정부가 있는 메크로도를 방문했을 때 티베트 남성들이 모두 티베트 독립시위에 앞장서기 때문에 가정경제 책임을 떠안은 티베트여성들은 또 다른 폭력을 노출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그 곳에서 만나 한국인 여성이 봉제를 배우고 가르치며 티베트 여성의 자활을 돕고 있는 것에 감동을 받았으며, 사랑과 평화를 느낀 여행지로써 독일의 임스 하우젠 공동체를 소개하며 이 공동체에 머무르며 이방인라는 생각을 전혀 들지 않았고 평화로운 분위기와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 감사하고 이런 만남 자체가 축복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외국에서 나그네로 지내다보니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이런 나그네의 경험이 우리나라에 이주노동자로 와 있는 외국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서 평화와 행복은 작은 것에서 시작됨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끝을 맺었습니다.

 짧은 토론! 긴~ 여운

 세 분의 발표가 끝나고 예정되었던 휴식시간도 마다하고 바로 토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송인겸 회원은 평화는 지식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므로 쉬운 말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김조년 사회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뜻을 표현했습니다.  우테 카스파스 선생님이 그동안 해 온 평화활동을 소개해달라는 질문에 AVP 평화훈련은 자기가 갖고 있는 지위 학력 종교 등을 내려놓는 훈련이며, 이 훈련은 처음에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을 위한 평화훈련으로 시작되었고, 이 평화훈련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 안의 빛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끝으로 홍미옥 회원에게는 최영민 회원이 어떻게 가족이 그 긴 시간동안 여행이 가능했는지 계기가 궁금하다는 질문과 김정화 회원이 작년 불거진 기독교 단체의 무리한 선교활동으로 인한 기독교인 납치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선교를 위한 목적이었는지 질문했습니다.이어 홍미옥 회원은 남편 분이 목회활동을 해서 같이 갈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며 무리수를 두는 기독교인도 있지만 그들의 생각과 문화 종교까지도 그대로 인정하며 도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 평화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기게 했습니다.
                                                                                                             작성자: 최영민 회원

AVP 입문과정 워크숍 : 네이버 카페

AVP 입문과정 워크숍 :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yesgreens/38

AVP 입문과정 워크숍
단체와 공동체내 그리고 개인 간에 폭력과 갈등이 점증하고 있는 국내외상황에서, 폭력에 비폭력적이고 효율적인 대안대응의 구체적 방법을 소개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40여 나라에서 지난 30여 년간 그 탁월한 효과가 입증된 폭력대응 대안모델(Alternative to Violence Project; AVP)을 국내에 소개하여 앞으로 AVP 전문훈련가 양성 과정을 설립하기 위해 국제AVP훈련가들을 초청하여 AVP 입문과정을 마련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처음 1975년 뉴욕 교도청에 속해 있는 그린헤이븐 교도소의 청소년 재소자를 위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종교와 교화 위원회의 부탁으로 퀘이커 교도들이 시작한 후 첫 번 세미나가 끝나자 미국 전역과 카나다에서, <AVP>라는 이름으로 급속히 받아 들여졌습니다.
90년대부터 유럽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폭력의 희생자이자 제공자인 재소자의 인격적 변화에 대한 AVP의 놀라운 효과에 따라 폭력이 있는 어느 곳(학교, 공동체)에도 이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급속히 번져나가 이제는 세계 40여개국에 국가별 지부가 형성되어 있고 작년에는 6차 국제총회도 열었습니다.
4월에 평화단체 실무자들 참여자 40명이 적극적인 평가를 얻음으로 이루어진 이 훈련워크숍은 강한 자기존중감, 타인배려, 신뢰공동체를 회복시킴으로서 개인의 인격성장과 사회변혁을 위한 강한 동기를 부여하게 됩니다. 이 워크숍은 장기적인 AVP 전문훈련가 양성을 위해 주최단체들의 공동협력으로 진행되며 앞으로 AVP참여자들로 이루어진 훈련 모임을 구성하여 감옥, 학교, 공동체/단체의 영역에서 AVP 정신을 전파하게 됩니다. 다음 심화과정은 9월에 있게 되며, AVP이념에 헌신할 수 있는 단체와 개인들의 참여들 바랍니다.
일 시 입문과정 1기 ­ 2008년 1월 24일(목) ~ 26일(토)
입문과정 2기 ­ 2008년 1월 28일(월) ~ 30일(수)
장 소 바람과물 연구소 ← 약도보기 클릭!!
강 사 Ute Caspers(독일인, 국제 AVP전문훈련가, 영국Woodbrook훈련강사)
Mason Barnett(미국인, 국제 AVP전문훈련가, AVPInternational 위원)
이종희(독일 AVP 훈련가, 평화명상춤 인도자)
참가비 250,000원 신한은행 100­022­976600 비폭력평화물결
* 숙식제공합니다 : 채식하시는 분은 사전에 꼭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 워크숍 참여자에게는 수료증이 주어집니다.
* 신청서 제출과 등록비 입금으로 등록이 완결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주 관 비폭력평화물결 주 최 우리민족서로돕기 / 부산생명의전화 / 평화누룩 / 대전평화여성화
남북평화재단 / 산돌대안학교 / 대전퀘이커공부모임 / 비폭력평화물결
(2008년 1월 7일 현재)
참여요건 및 자세히 보기 (참가신청서 다운로드)
1. 참여형 워크숍이어서 참가자들은 2박3일 전일정을 참여해야 합니다.
2. 이 워크숍은 단계별로 입문, 심화, 인도자 등급으로 진행되며 참여자들간에 자체 훈련모임을 진행할 예정이기에 전문훈련가에 대한 장기적인 의지가 있으신 분들이 등록바랍니다.
◆ 참여자평가
"친구들이 나는 폭력적인 인간이 아닌 듯 한데 어째서 AVP 워크숍에 참가하는가 물었다. 내가 지닌 폭력의 대다수는 자기­비판의 형태로 나를 향한 것이었다. AVP는 나로 하여금 이를 보게 해주었고 나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 기적적인 변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AVP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나는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 AVP를 통해 나는 증오, 성냄 그리고 절망으로 뭉쳐있는 사람으로부터 인간성의 보호와 풍성케 하는 데 내가 책임이 있음을 믿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내가 참석한 AVP 코스는 진실로 놀라운 경험이라고만 말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이제 내 자신과 타인의 욕구를 더 충분히 이해함으로 삶의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섬을 느낀다. 가슴으로부터 진정으로 AVP를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코스는 매우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나는 전 생을 이 일에 투자하고 있다. 왜냐하면 세상이 평화의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며 평화는 개인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나는 믿는다. ­설립자 Larry Apsey)



평화훈련 프로그램 AVP 곧 한국 상륙… “구원 후 달라진 삶 찾는 이들에 유용”-국민일보

평화훈련 프로그램 AVP 곧 한국 상륙… “구원 후 달라진 삶 찾는 이들에 유용”-국민일보

평화훈련 프로그램 AVP 곧 한국 상륙… “구원 후 달라진 삶 찾는 이들에 유용”

입력 2010-02-1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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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훈련 프로그램 AVP 곧 한국 상륙… “구원 후 달라진 삶 찾는 이들에 유용” 기사의 사진

전 세계 50여개 국가에서 진행 중인 평화훈련 프로그램이 조만간 한국에서 시작된다. 1995년 미국 뉴욕에서 청소년 재소자 재범 비율을 낮추기 위해 퀘이커 신자들이 개발, 전파된 ‘(가칭)폭력에 대응하는 새로운 평화훈련(AVP·Alternative to Violence Project)’이다. 기독교인 대상의 훈련은 아니지만 이를 진행할 ‘AVP 한국’ 운영위원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다. 이 중 5명을 서울 연지동 기독교평화센터에서 만나봤다.

  • 비폭력평화물결 박성용(52·목사·종교학 박사) 대표와 
  • 같은 단체 김석봉(41) 간사, 
  • 대전평화여성회 이종희(59) 대표
  • 평화를여는여성회 갈등해결센터 여혜숙(49) 활동가, 
  • 기독교평화센터 오상열(46) 목사 등 
운영위원들의 공통점은 ‘평화’라는 이름이 포함된 직업을 가졌다는 것이다.  

AVP는 독일에서 30여 년간 살며 이를 접한 이대표가 2006년 돌아와 소개하면서 한국에 처음 알려졌다. 이후 독일인 활동가를 국내로 초청해 진행된 입문, 심화, 전문가 과정을 통해 이들 운영위원을 비롯한 14명이 지난해 말 활동가 자격을 얻고 ‘AVP 한국’을 열었다. 

AVP는 쉽게 말해 일상생활과 대화 속 폭력을 일깨우고 자존감과 협동 및 의사소통 능력을 높이는 훈련이다. 활동가 3∼5명을 포함, 총 20명 미만 단위로 진행된다. 특징은 가르치고 배우는 개념이 없고 참가자들 스스로의 내면에서 자존감과 소통 능력을 찾아내게 유도한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평화 운동을 오래 해왔지만 이 훈련을 경험하니 그동안 누군가를 ‘적’으로 두고 싸우려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여 활동가는 “일상 속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해진다”고 전했고 김 간사는 “가정과 직장 등에서 갈등을 대면할 때 유연하게 헤쳐 나갈 수 있게 된다”고 장점을 전했다. 물론 훈련을 받는다고 갑자기 180도 달라질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은 “신앙생활에서 ‘영의 눈이 뜨이는’ 것처럼 폭력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특히 오 목사는 “구원받은 후 삶에서 달라진 모습을 원하지만 일상적 갈등 앞에서 어려움을 겪는 기독교인들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오는 5월과 8월 각 2박3일 과정으로 국내 활동가가 진행하는 훈련이 처음 진행된다. 장소 미정. 그밖에도 8∼14단위 그룹은 활동가를 요청해 별도의 훈련을 받을 수 있다(02-312-1678). 

황세원 기자 

2016/06/29

MEMORIES AND VISIONS OF PARADISE: Exploring the Universal Myth of a Lost Golden Age by Richard Heinberg | Kirkus Reviews

MEMORIES AND VISIONS OF PARADISE: Exploring the Universal Myth of a Lost Golden Age by Richard Heinberg | Kirkus Reviews

MEMORIES AND VISIONS OF PARADISE: EXPLORING THE UNIVERSAL MYTH OF A LOST  GOLDEN AGE





KIRKUS REVIEW

A study of paradise myths from around the globe, badly marred by a lack of critical perspective. There's no doubt that Heinberg has done his homework: as an ""everything you've always wanted to know"" handbook on paradise, this excels. After declaring that paradise ""may be the most popular and intensely meaningful idea ever to have gripped the human imagination,"" Heinberg demonstrates its universality, from the Hebrew Eden and Greek Golden Age to the Australian aboriginal Dreamtime. Most paradise myths feature common motifs, which Heinberg examines in detail--sacred rivers, a magic tree, a cosmic mountain, humans with miraculous powers, and, of course, a Fall. 
Still chugging along, he pokes at prophecies of paradise at the end of time, paradise in literature, and a thumbnail history of utopias, from More's original to Stephen Gaskin's The Farm. So far, so useful. 
Heinberg's own Fall comes when he attempts to interpret his material. At times he happily restates the theories of others, with little attempt to sift wheat from chaff. At other times he proffers his own view, an uncertain compromise between paradise as wispy memory of a historical Golden Age and paradise as a state of mind. 
Heinberg does a great job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hundreds of paradise tales, but his questionable analysis garners this a permanent asterisk.
Pub Date: May 1st, 1989
Publisher: Tarcher--dist. by St. Mart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