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08

이택환 목사 - 그리스도인 우리도 과거에 이미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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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환  

목사 at 그소망교회, Studied 신학 at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Studied 사회학 at 고려대학교
그리스도인의 부활이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과거에 이미 부활했다. 아니 역사상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유일한데 어떻게 우리가 부활했다는 건가? 더구나 우리는 죽지도 않았는데 부활은 무슨 부활? 그런데 바울은 골 3:3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죽었고...”, 여기서 '죽었다'가 과거시제다(정확히는 아오리스트). NIV 영어성경에도 ‘you died’라고 되어 있다. 우리가 장례식도 치른 적이 없는데 언제 죽었다는 걸까? 골 2:1에서 바울은 “너희가 세례받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되었다”고 했다. 단지 죽은 게 아니라 장사되어 이미 땅에 묻혔다는 것이다(buried)’. 세례 함부로 받을 게 아니다. 세례는 내가 죽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 세례받아 죽었다는 우리는 왜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가? 바울은 골 3:1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 우리가 세례받을 때 죽어서 땅에 묻혔지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다는 것이다. 만,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가 부활의 몸으로 살고 있다(“You have been raised with the Messiah”- NIV, 현재완료).

물론 여기서 우리의 죽음과 부활은 모두 상징이다. 즉, 앞으로 우리가 죽을 것도 실제이고 마지막 때 부활할 것도 실제이지만, 우리는 지금 미래의 부활의 삶을 상징적으로 살고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미래의 실제적 부활보다 현재의 상징적 부활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바울도 우리가 장차 마지막 때 부활 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보다, 지금 어떻게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늘 초점을 맞춘다. 이는 우리가 마지막 때에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완성될 것을 믿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나라가 이미 현실 속에 이루어진 줄로 믿고(상징) 오늘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인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실제로 부활한 것이 아니지만, 실제로 부활한 것처럼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 예수님처럼 벽을 뚫고 지나가라는 게 아니다. 바울은 ‘위의 것’을 찾으라고 말한다(골 3:1a). 위의 것? 그런데 2절에는 ‘땅의 것’이 나온다. 그러면 ‘땅의 것’은 또 무엇인가? 바울은 골로새서 3장 5절부터 4장 6절에 걸쳐, ‘위의 것’과 ‘땅의 것’의 구체적인 예를 들고 있다. 가령, ‘위의 것’은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서, 사랑, 평강, 말씀, 감사, 찬양 등이고(12-17), ‘땅의 것’은 우상숭배로 대표되는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등이다(5).
그러나 무엇이 위의 것이고 무엇이 땅의 것인지 구분하는 목록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또 그것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때로는 ‘땅의 것’인 ‘거짓말’이 ‘위의 것’이 될 수도 있다.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의 은신처를 묻는 나치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땅의 것'이라고 해야 할까? 또 나치처럼 불의한 권력에 분노하지 않고 '감사'한다면 그 감사는 오히려 '땅의 것'이 되지 않겠나? 따라서 위의 것과 땅의 것의 문자적 목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우리가 위의 것을 찾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골 3:1b).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은, 저 높고 높은 하늘 위 어딘가에 하나님 보좌가 있고, 바로 그 옆에 예수님이 앉아 계신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나라를 받아, 당신이 친히 그 나라를 통치하신다는 그림 언어다. 다른 말로 하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왜 위의 것을 찾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아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시대, 즉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기 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백성 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위의 것을 찾아야지, 땅의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 나라는 우리가 죽은 뒤에나 들어가는 저세상의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세례받고 예수를 믿을 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으로써 이미 그 나라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이미 부활의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는 우리의 몰골이 왜 이 모양일까? 아직은 모든 게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골 3:3). 즉 세례를 통해 과거의 우리가 죽었고, 새로운 부활의 새 생명의 몸을 상징적으로 입기는 했지만, 그 실체는 아직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작은 씨앗 안에 큰 나무가 감추어져 있는 것과 같다. 예수님도 겨자씨의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셨다. 작은 씨앗의 형태만 보고 우리가 큰 나무의 실체를 상상할 수 없는 것과 같다(그러나 다들 부활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감추어진 비밀의 실체가 드러나는 때는 언제일까? 우리 생명이신 예수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 그때 우리가 지금 상징으로 입고 있었던 우리의 부활의 몸이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골 3:4). 그날을 바라보며 현재를 고난을 이겨내는 우리는, “나중에 그때가 되면...”이 아니라, 바로 지금부터, 이전 시대에 속한 땅의 것이 아닌 새 시대, 새로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위의 것을 찾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이 땅에 하나님 정의를 세우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부활의 새로운 창조의 삶을 살아가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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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하
    부활의 몸을 산다는 말씀이 놀랍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공동체로 살고 공적으로 사는 게 부활을 사는 삶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조성익
    목사님, 성경에서 말하는 삶과 죽음은 영이 죽어있는 채로 그대로 있는가, 아니면 영이 다시 살아났는가를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 윤대일
    목사님 좋은 설교 잘읽고 갑니다 ㅎ 요즘 교회를 나가지 않는데 좋은설교 접하게되어 즐겁내요ㅎ
    • 이택환
      윤대일 언젠가 교회에 다시 나가실 수 있기를, 그리고 항상 신앙 잃어버리지 않으시기를 기도합니다.
  • 허재협
    좋은 설교말씀 감사합니다.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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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을 돈독 오른 운동가 취급하는 인간이나 이용수 할머니를 돈독 오른 노욕자 취급하는 인간이나 다 똑같다.
윤미향의 문제는 돈독보다는 부실한 회계의 문제다.
그러나 부실한 회계가 아무리 열악한 시민단체의 관행이라 해도 돈독 문제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어느 단체나 부실한 회계가 누적되면 돈독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용수 할머니를 돈독 오른 노욕자 취급하는 것은 나가도 한참 나갔다.
만약 그런 시각을 매일 성경말씀 깨나 연구한다는 목사가 가지고 있다면, 차라리 그딴 성경연구 하지 않는 게 낫다. 성경을 연구할수록 현실을 통찰하지 못하는 몽상가가 될 바에야 그가 하는 성경연구에 무슨 의미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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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21, 사순절 두 번째 주일
“저 여우에게 이르되”(눅 13:31-33)
예수님은 갈릴리를 떠나라는 헤롯의 요구/협박을 거절하고,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 사역을 계속하셨다. 그 사역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일이다(13:32).

이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오늘날에도 교회가 “귀신 쫓아내고 병 고치는 사역”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먼저 오늘날에는 귀신들린 사람이 거의 없다. <정신병인가 귀신들림인가?>의 저자, 정신과 전문의 김진 선생에 의하면, 귀신들림 현상은 대부분 ‘정신병’이다. 저자는 성경에 나오는 귀신들림을 인정하지만, 이제껏 수천 명의 환자를 진찰해 오는 동안, 그런 환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또한 교회가 문자적으로 병 고치는 일을 하겠다? 그러려면 교회가 병원과 싸워야 한다. 싸워도 이길 수 없다. 병 고치는 것은 교회가 아닌 병원이 전문이다.

그러면 교회가 할 하나님 나라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함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일이다. 쫓아낼 귀신도 없고, 병은 병원에서 고쳐야한다고 하더니, 다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라? 그렇다. 사실 세상에 귀신이 없는 게 아니다. 당장 가정에 폭력이 난무하는 것이 증거다. 최근 한 신학자가 자신의 중학생 딸을 때려죽이고, 1년간 집에 방치한 사건을 비롯하여, 부모 폭력에 의한 자녀 사망사건이 전국에서 속출하고 있다. 이미 우리 가정이 귀신 놀이터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 나라 사역은 우리 가정에서 그런 귀신들을 쫓아내고 그로 인해 생긴 몸과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이다. 그리고 가정에 사랑과 평강이 가득하게 하는 일이다.
교회는 어떤가? 주변에 벌써 몇 년 째, 매 주일마다 성도들이 서로 싸우면서 예배하는 교회가 두어 곳 있다. 모두 버젓한 건물이 있고, 교인도 한 때 1000명에 달했던 곳이다. 예수님의 몸 된 교회가 왜 이렇게 갈라져서 이웃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을까? 예수님 시대에는 성전이 강도의 굴혈이었다. 요즘은 교회가 그러하다. 재정이 불투명한 교회, 비자금이 있는 교회, 직분을 매매하는 교회, 목회자 범죄도 표절, 횡령, 도박, 성매매, 칼부림 등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렇게 교회마저 귀신의 광기가 각축을 벌이는 곳이 되어가는 이 시대에, 하나님 나라 사역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런 귀신들을 쫓아내고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요즘 한반도에는 전에 없는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국민 절대 다수가 굶주리는데, 핵 개발에만 몰두해 온 북한, 그렇다고 우리까지 이제 북한과 대화는 물론 모든 관계를 끊는다며, 멀쩡한 개성공단을 철수해서 자산을 다 북에 몰수당하고, 싸드가 필요하다는 사람들, 그러나 자기 지역에는 두기 싫다는 사람들, 미국과 일본과 중국은 한반도가 마치 자기 땅인 양 맘대로 간섭한다.
그 와중에 위안부 문제는 이상한 방식으로 이미 최종해결이 되었다니, 제정신이 있는지, 모두 귀신에 홀린 것 같다. 무너진 공교육, 높은 청년 실업률, 노인 자살률, 위태한 가계부채, 이 모든 것 뒤에는 자본주의 귀신이 도사리고 있어서 돈이면 무엇이나 가능하다고 사람들을 계속 세뇌한다. 하나님 나라 사역은 이 모든 21세기 귀신들과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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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
난 비록 박근혜일지라도 임기 중 남북평화를 다진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랬다. 일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눈물을 씻어주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랬다.
요즘 황아무개, 나뭐시기를 비롯한 그 당 관계자들을 보면, 문재인의 파멸을 위해서라면, 북한이 우리에게 미사일을 쏴대도 좋고, 심지어 일본이 독도를 가져가도 좋다는 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가 잘되기보다, 차라리 경제가 파탄 나서라도 오직 문재인이 망하기만 바라는 자들 같다. 내 생각이 큰 착각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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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

“민주주의 국가는 대다수 국민들의 수준에 맞는 통치자를 가진다.” 일전에 내가 한 말이다. 알고 보니 토크빌이 오래 전에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것도 따지고 보면 당시 그가 대다수 국민의 수준에 맞기 때문이었다.
장신대 김철홍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하나님이 한국을 버리지 않으신 증거로 여겨 안도했단다. 김삼환 목사는 2014년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 통일을 위해 세워주신 하나님의 일꾼 고레스와 같은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서경석 목사는 링크된 싸이트에 나오듯이 탄핵을 반대한다).
당시 최소한 과반 이상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이 이랬었다. 그들 대부분은 희한하게도 사드, 국정교과서, 한일 위안부 협상, 개성공단 폐쇄 등에 대해 패키지로 찬성의 입장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눈높이가 같기 때문이다.
어제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었다. 대다수 국민이 그를 대통령 자리에 계속 앉히기를 거부한 뜻이 반영된 것이다. 난 국민의 수준이 4년 전보다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도 박근혜 대통령 수준 그대로인 사람들이 있다. 국회의원 중에도 최소한 56명이 있다. 목사, 장로 등 기독교인 중에도 여전히 많을 것이다.
이제 기독교도 좀 수준을 높이자. 상식을 갖추자.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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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

세상은 넓고 할 일이 많아도, 아직 길이 멀다
야당이 아무리 필리버스터를 해도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것은 테러방지법 찬성이다. 지난 해 11월 27일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테러방지법 필요 64.8% vs 불필요 22.6%로 나타났다. 기독교인만 대상으로 하면 틀림없이 찬성비율이 더 높을 것이다. 비단 테러방지법만 그런 게 아니다. 개성공단 폐쇄, 한반도 사드 배치, 한일 위안부 협상, 국사교화서 국정화 등, 일련의 국가 현안들에 대해 늘 찬성이 반대보다 더 높다. 이 또한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조사하면 찬성비율이 더 높을 것이다.
대통령은 이 모든 일에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 근거가 있다. 아니, 국민들이 원한다는데! 게다가 사람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독교인들(특히 목사, 장로들)이 더 원한다는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며!, 근데 모든 조사에서 더 많은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심지어 하나님도 원하시는 것을), 왜 야당을 비롯하여, 이런 저런 이들이 자꾸 발목 잡느냐고!
우리는 대통령을 이해해 드려야 한다(그의 짜증스런 반응을 충분히 공감해 드려야 한다). 요즘 캐나다 총리가 훌륭하다고들 하는데, 캐나다의 모든 것은 캐나다 국민이 만든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만든다. 지도자 또한 나라마다 국민 다수가 좋다고 선택한 사람이 된다. 북한 같은 전체주의 국가가 아닌 한 그러하다. 우리나라도 국민이 원하는 데로 가는 것이다.
현실을 바꾸기 위한 저항임을 안다. 또 저항하지 않으면 현 체제가 더욱 확고해지리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 또한 알아야 한다. 주변(페북 등)에 모든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왜 이것을 문제 삼지 않는가? 쉽게 분노할지 모른다. 그러나 주변을 조금만 벗어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전혀 다른 세상에서 아무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마음을 누가 얻느냐, 혹은 어떻게 변화시키느냐가 문제다. 일부는 가능할 수 있겠지만, 일부는 오직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므로 몇 자 덧붙인다)
민주주의가 잘 되려면 국민이 스스로 건전한 판단을 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 그런 판단보다 늘 해오던 대로 과거의 것을 답습하거나 누군가의 대리판단을 추종하는 경향이 강하다. 소망이 되어야 할 기독교인이 특히 더 그런 면이 있다. 요즘 기독교는 여러 모로 악성종양스러워 보인다. 그러니 한기총 같은 기독교 단체에게 누가 빛과 소금 역할을 기대하겠는가? 오히려 항암 방사선 치료가 필요하다.
보수교계, 테러방지법 환영...시민단체들은 '반대'
VERITAS.KR
보수교계, 테러방지법 환영...시민단체들은 '반대'
보수교계가 정부가 추진하는 테러방지법에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이영훈 목사, 이하 한기총)는 22일 "국회는 테러방지법을 즉시 통과시켜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기총은 테러방지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에 앞서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최우선적으로 제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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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

어디 청소년뿐이겠는가? 청장년, 노년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디 이슬람, 낙태, 동성애, 혼전 성관계, 종북, 술/담배뿐이겠는가?
진화적 창조론(혹 유신진화론),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칼 바르트 자유주의를 따르는 행위,
이신칭의를 부정하는 톰 라이트 행위구원론을 추종하는 행위 등,

이 모든 것이 한국 교회를 말아먹는 사탄의 놀음이요,
한국 사회를 헬조선으로 만드는 마귀의 장난이렸다!
- 그러니까 한국교회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법하다. 한마디로 뭣이 중헌지를 모르는 것이다.
 


1. 한 청소년 캠프 단체의 홍보 문구를 보고 아침부터 마음이 무겁다.
"이슬람, 낙태, 동성애, 혼전 성관계, 북한의 위협,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등의 죄와 마귀의 세력을 이겨야 한다."
2. 실제로 많은 기독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만나본 결과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음란', '우상숭배', '동성애'. '주초', 마귀의 세력은 '종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죄에 대한 편협한 이해와 선동은 많은 청소년을 우경화 시키고 있다. 저들의 우경화 운동은 트랙터로 모내기하는 수준이라면 하나님 나라 운동은 낫으로 모내기하는 수준이다.
3. 정작 성경에 이슬람, 낙태, 동성애 북한의 위협과 관련된 구절이 몇 구절이나 될까? 정말 대한민국의 위기가 이슬람, 동성애, 북한의 위협인가?
4.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슬람 낙태 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소득 불균형, 혐오, 기회 불평등, 가계부채, 청년 실업, 인권, 위안부 보상문제, 세월호 진실규명 방해, 정치권 부정부패 등의 이유다.
5. 청소년들이 살아갈 사회의 죄와 마귀의 세력은 자본주의와 자유지상주로 점철되는 헬조선이다. 자신의 성공과 지위, 재산을 지킬 수만있다면 약자를 짓밟는 것이 정의라고 가르치는 사회가 진정 청소년들이 싸워야 할 대상이다.
6. 많은 기독 청년들이 헬조선에서는 무기력하고 교회에서만 강자가 되는 이유는 어릴적 자리 잡은 죄와 마귀에 대한 편협한 이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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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가 총신대에서 소외받는 이유

칼 바르트가 총신대에서 소외받는 이유
■케리그마 편[327편]■/칼 바르트(Barth)
칼 바르트가 총신대에서 소외받는 이유
by 고동엽. 2021. 10. 14.

오늘은 칼 바르트라는 신학자를 통해 기독교의 신학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흔히 칼 바르트를 신정통주의 신학자라고 하는데, 신정통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유주의 신학을 이해해야 한다.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교회의 권위에 대해 맹목적으로 순종해야 했었다. 그러나 중세 시대가 무너지고 개인의 자유와 이성의 능력을 발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서 비평적 연구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소위 고등비평이라고 불리는 성경연구 방식이었다. 그리고 과학의 발달과, 찰스 다윈이 주창한 진화론의 등장 등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더욱 회의적인 눈으로 보게 하였다. 더욱이, 경험할 수 없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세계와 창조, 종말에 대한 지식이 인간에게 불가능하다고 말한 칸트(Kant)의 지식론은 당시 지식인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실로 18세기까지 유럽교회는 정통주의 신학을 따르고 있었다. 정통주의 신학이란 성경을 하나님이 불러주는대로 썼다고 해석하는 ‘기계적 영감설’에 근거한 성서무오류설과 인간은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은총과 선택으로 구원받는다는 전적인 부패 교리, 그리고 예수가 인간의 속죄를 위해 수난 받았다는 대속교리가 중심을 이루는 신학을 말한다. 그런데 18세기 계몽주의의 등장으로 인간의 이성이 강조되고, 역사관도 역사의 진보를 신뢰하는 낙관적 역사관(점점 역사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으로 바뀌는 등, 이러한 배경에서 자유주의 신학이 나타나게 되었고, 자연히 유럽교회도 정통주의 신학에서 자유주의 신학(liberal theology, liberal christianity)으로 신학 흐름이 바뀌게 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1)성경을 인간의 종교적 경험을 기록한 문서로 보았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을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쓴 책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에, 성경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물론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데 반드시 필요한 매체로 보기 때문에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성경을 결코 무시하지는 않는다.

2)인간의 이성을 신뢰하여 이성에 맞지 않는 내용은 거부한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정통주의 신학자들과는 달리 이성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성경에 나온 내용이라도 이성에 맞지 않는다면 거부하였다. 따라서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기적들을 이성적으로 해석하려고 했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일종의 신화로 해석했다.

3)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한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를 완전한 인간이자 도덕적인 이상향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모방을 강조하여, 윤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대신해서 죽었다는 교회의 전통적인 속죄론을 거부한다. 이 부분에서 정통주의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은 결정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4)긍정적인 역사발전에 대해 신뢰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낙관적 역사발전론과 이성에 대한 신뢰에 근거, 역사발전을 신뢰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제1,2차 세계대전으로 무너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교회사에서는 종교를 인간의 감정문제로 해석한 독일의 신학자 프리드리히 다니엘 에른스트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1768–1834)를 자유주의 신학자의 시조로 보며, 이같은 자유주의 신학은 이후 사회복음주의, 민중신학, 해방신학 등으로 변모하게 된다.

● 오늘 우리가 알아볼 인물인 칼 바르트는 1919년 자유주의 신학이 유럽 신학계를 휘어잡고 있을 당시 로마서를 신학적으로 해석한 ‘로마서 강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는데, 이 책을 통해 칼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을 향해 제기했던 신학적 도전이, 그 당시 얼마나 큰 충격이었던지, 어떤 교회사가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이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기독교 신학에 있어서 칼 바르트의 신학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20세기 서구의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은, 자유주의 신학자든 그렇지 않든, 칼 바르트의 사상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그리고 칼 바르트가 사망한지 이미 수십년이 지났지만,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교의학’에 대한 해석은 최근까지도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에 미친 칼 바르트 신학의 영향은 대단한 것이어서, 칼 바르트 신학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각 교단의 신학적 방향이 구분될 만큼 한국 기독교의 중요한 신학적 시금석 역할을 하고 있다.

● 칼 바르트는 1886년 5월 10일, 스위스 바젤에서 출생했다. 부친 프리츠 바르트는 베른 대학의 신학교수였다. 그의 부친은 처음에는 교의학을 가르쳤지만, 나중에는 중세교회사를 담당하게 되었다. 주요 관심은 신약성경에 있었으며, 또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기독교사회주의협회의 설립에도 진력을 다하였다. 이같은 가정환경 속에서 기독교 신학의 영향을 받고 자란 칼 바르트는 1904년 베른대학 신학부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신학을 전공하게 된다. 신학생 칼 바르트는 교수들의 영향으로 당시 유럽신학계의 주류였던 자유주의 신학를 배우게 된다. 그러나 칼 바르트는 강의를 들으면서, 당대 최고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한계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견해를 갖기 시작한다.

대학에서의 신학연구를 마친 칼 바르트는 짧은 기간동안 한 잡지사의 부편집장을 맡기도 하고 1909년부터 1911년까지 제네바에서 잠시 부목사로 목회를 하다가 스위스와 독일의 경계에 위치한 작은 탄광촌인 자펜빌의 교회에 부임하여,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당시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던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질서와 통치가 아닌, 사회정의와 평등이 실현되는 현실 속에서의 체제였기 때문에 광부들을 위해서 노동조합에 대한 강의를 하는 등 스위스 사회운동에 일부 가담하기도 했다.

그래서, 자본가들로부터는 '빨갱이 목사'(Red Pastor)라는 비난을 받았고, 그 지역 일부 공장주들은 개신교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교파를 바꾸는 일도 있었다 한다.

하지만, 29세경부터 그는 신앙의 근본문제로 인해 괴로워하기 시작하였으며, 설교하는 일로 고뇌의 나날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자신이 배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 한계를 느끼게 되는데, 그 이유는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정의로운 심판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 그리고 성경을, 기독교인들이 경전으로써 마땅히 따라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윤리책으로 오해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잘못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특히 1914년 8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대부분이 제1차 세계전쟁을 지지함으로써, 자신이 배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한다. 이때부터 그는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반박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가르치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30세경부터 『로마서강해』를 쓰기 시작하여, 1919년에는 그것을 완성하여 출판했는데, 이 책은 각계에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당시 로마 가톨릭 신학자 카를 아담은 '칼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던졌다'고 말할 정도로 유럽신학계의 충격은 컸는데, 칼 바르트 자신도 '나는 우연히 잡은 교회종의 줄을 잡아당겨,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잠에서 깨게 한 사람 같았다'고 할 정도였다.

● 이후 그는 10년간의 목회를 접고 대학강단에 서게 된다. 괴팅엔대학, 뮨스터대학, 본대학 등 여러 곳에서 가르쳤으며, 잡지를 발간하는 등 자유주의신학을 뛰어넘을 새로운 신학의 정립을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다.

그런데 독일의 총선거에서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가 제1당이 되었고, 1933년 1월에는 히틀러가 수상이 되었으며, 4월에는 관청에서 유대인을 추방하는 법안이 채택된다. 7월에는 나치가 독일 교회를 조종하려는 책략에서 <제국교회>를 만들었고, 제국의 주도하에 <독일 그리스도인> 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한 칼 바르트는 9월 <목사 긴급동맹>을 발족시켰다. 10월, 칼 바르트는 <독일 그리스도인> 운동에 찬동하고 있었던 동료들에게 결별의 글을 썼으며, 11년간 계속되고 있었던 『시간과 시간 사이』를 폐간시켰다.

칼 바르트는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야 할 기독교인들과 개신교 신학생들까지도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지지하자, 나치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의 공동체인 고백교회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그는 히틀러의 나치즘운동이 히틀러를 구원자로 숭배하는 우상숭배요, 유대인, 집시 등 다른 민족을 차별하고 박해하는 악마적인 것으로 보았고, 이러한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대중강의와 설교를 통해 드러냈다. 그의 이러한 반 나치이념의 특징을 보여주는 문헌이 《바르멘 선언》이다. 바르멘 선언은 1935년 독일 바르멘에서 개신교와 가톨릭교회 성직자들이 모여서 발표한 反 나치 신학선언으로, 하나님의 말씀(Logos)인 예수 그리스도 그 분외에는 누구에게도 복종할 수 없으며, 그분 외에는 누구도 설교의 주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주요주제이다. 결국 그는 나치 독일의 탄압으로 독일 밖으로 영구추방당한다. 당시 그와 함께 고백교회에서 반 나치운동을 하던 개신교 목사들과 로마 가톨릭 주교들이 투옥되거나 살인적인 고문을 당한 것에 비한다면, 추방으로 그친 칼 바르트는 다행이었다. 칼 바르트가 추방되자 바젤대학이 그를 초빙하였으며, 칼 바르트는 오랜만에 모국 스위스에서 강의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여튼 칼 바르트의 이같은 나치반대운동은 칼 바르트연구의 핵심으로 불릴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후 폴 틸리히, 디트리히 본회퍼 등에 의해 그 명맥을 이었다.

● 전쟁이 히틀러의 패망으로 끝난 후 칼 바르트는 독일 본 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쳤으며, 1948년에는 공산국가가 된 헝가리를 방문, 헝가리 개혁교회와 대화하였다. 그는 또한 세계교회운동에도 커다란 공헌을 한 인물로서, 로마 가톨릭과 대화하기 위해서 바티칸을 방문했던 일도 있으며, 에큐메니칼 운동을 위해 결성된 세계교회협의회(WCC)가 만들어지는데 참여했다. 또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냉전구조를 걱정하였으며, 정치적으로도 많은 중요한 발언을 하였다.

하지만 그의 주요 활동은 저술활동으로,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던 해부터 바르트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교회교의학』출판을 시작한다. 또한 1954년 8월부터 의뢰를 받고 바젤 형무소에서 정기적으로 설교하게 된다. 그는 이것을 77세까지 17년간 계속했다. 그래서 바르트의 설교를 듣고 싶으면, 형무소에 들어가는 길 외에는 없다고까지 말해졌다.

그의 일생의 대작 《교회교의학》은 1968년 바르트의 죽음으로 일부내용이 저술되지 못한 미완성작품이다. 1968년 별세 전날 20세기의 대표 신학자 바르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어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했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고통에 차 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다."

● 바르트가 남긴 유명한 말로는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신문"이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인은 불의한 사회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그의 신앙적 가치관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바르트가 남긴 역작으로는 <교회교의학>이 있는데 이 책은 기독교신학에서 20세기 최고의 고전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하면 바르트가 많이 꼽히고 있다.

세계 다수의 개혁교회는 칼 바르트를 20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개혁신학자로, 또한 개혁신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자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미국 내에서도 바르트의 신학은 프린스턴 신학교를 비롯한 여러 장로교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미국교회 내에서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인 라인홀드 니버(R. Niebuhr)와 리차드 니버 (H. R. Niebuhr)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 바르트의 신학사상을 모두 논한다는 것은 상당한 작업과 시간과 분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의 핵심사상만 거론하면 다음과같다.

바르트 신학사상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신학 고전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르트의 <교회교의학>도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을 주창한 바르트의 신학적 결과물이기도 하다.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놀던 마당에 떨어진 폭탄"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도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훼손된 성경의 권위를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당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고고학과 역사비평 등의 영향으로 성경의 축자영감설을 거부하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성경에 접근했다. 그래서 성경의 권위가 자연 훼손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르트는 고등비평 등으로 밝혀진 성경의 일부 모순과 문자적 오류를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고 주창했다.

바르트의 신학에서 나타나는 유명한 사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의 삼중양태"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① 계시된 말씀=예수 그리스도, ② 기록된 말씀=성경, ③ 선포된 말씀=설교"이다.

이처럼 바르트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훼손된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했기 떄문에 그의 신학의 핵심요지를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 바르트가 국내에 왜곡되게 소개된 이유 : 서구의 신학자들 중에서 국내에 가장 왜곡되게 소개된 신학자가 바로 칼 바르트이다. 특히 예장 합동과 고신 등에서는 칼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자로 알려져왔다. 그러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총신대 학장을 지낸 고 박형룡 교수가 근본주의 신학자인 메이첸이 총애하는 제자였던 관계로 메이첸(Machen)의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 바르트의 신학을 왜곡되게 전했기 때문이다.

메이첸은 근본주의 신학자로서 칼 바르트와 무척 앙숙 관계에 있었다. 1929년에는 미국 최고의 신학교인 프린스턴 신학교가 분열된 일이 있었는데 메이첸은 프린스턴 신학교를 떠나 웨스터민스터 신학교를 만드는 주역이 되었고 칼 바르트를 자유주의를 추종하는 신신학자로 매도하며 자신이 신봉했던 근본주의 신학이 정통신학이라고 강변했다.

총신대 학장을 지낸 박형룡 교수는 바로 메이첸에게서 신학을 배운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유학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온 후에는 메이첸의 사상을 그대로 가르쳤다. 그래서 박형룡 교수는 "한국의 메이첸", "제2의 메이첸"이라고 불리어졌다.

박형룡 교수는 국내에서 주로 총신대 교수로 있었지만 부산의 고신대에서도 잠깐 교수로 있었다. 그래서 예장 합동과 고신은 박형룡 교수의 영향으로 칼 바르트를 자유주의 신학자로 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칼 바르트가 서구의 교회에서는 개혁주의 신학자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국내에서 자유주의 신학자로 오해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와 달리 예장 통합의 장신대는 박형룡 교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고 학문성도 어느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칼 바르트의 신학을 매우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 신학계에서는 칼 바르트에 대한 평가는 예장 통합의 장신대가 가장 공정하다고 보고 있다.

국내에서 칼 바르트를 자유주의 신학자로 보고 있는 쪽은 주로 박형룡 교수의 영향을 받은 예장 합동과 고신 쪽이다. 장로교 외의 교단은 아주 보수적인 곳이 아닌한 바르트를 자유주의 신학자로 매도하지 않는다.

또한 예장 합동과 고신에 속한 목회자나 신학자라고 해서 모두가 칼 바르트를 자유주의 신학자로 보는 것은 아니며 그들 중에서도 바르트에 대해 바른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출처 : http://www.imr.co.kr/imrtj2/2015-2%ED%98%B8/%EC%9D%B8%EB%AC%BC/%EA%B5%90%ED%9A%8C%EC%82%AC%EC%9D%B8%EB%AC%BC(%EC%A0%9C52%EA%B0%95)%20%EC%B9%BC%20%EB%B0%94%EB%A5%B4%ED%8A%B8.htm